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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4.2.19~

by 이성근 2024. 2. 19.

1. 이게 가짜 영상이라고?"글자 입력하면 동영상 '뚝딱 2. 보수정부와 조선일보의 이승만 영웅만들기 프로젝트 3. 조선 김대중 씨, 이젠 펜을 놓을 때가 됐습니다 4. 류호정 사태와 진보정당 추락을 직시해야 할 이유

 

이게 가짜 영상이라고?"글자 입력하면 동영상 '뚝딱

대화형 인공지능 챗 GPT의 개발사인 '오픈AI'가 글자만 입력해도 그 내용 그대로 영상을 만들어주는 AI를 공개했습니다. 실제 촬영한 영상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솜씨가 절묘한데요.혁신적인 기술이지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리포트-선글라스를 끼고 가죽 재킷을 입은 여성이 일본의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실제 촬영한 동영상 같지만 오픈 AI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소라'가 만들어낸 동영상입니다.

"세련된 여성이 도쿄의 거리를 걷고 있다. 여성은 검은 가죽 재킷과 빨간 드레스 검정 부츠를 착용했다"라고 문자로 입력하자 만들어낸 영상입니다.

"물에 잠긴 뉴욕 도심을 고래와 바다거북, 상어가 헤엄친다"고 입력하자 이 지시사항에 꼭 들어맞는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습니다.

'휴대전화로 찍은 2056년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이라는 문자에 만들어낸 영상도 놀랄 만큼 구체적입니다.오픈AI"'소라'는 언어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 문장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생생한 감정을 표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 물리적 인과관계를 100% 구현 못 하는 약점도 있다고 합니다.과자를 한 입 먹었는데도 온전한 과자가 그대로 남아있는 식입니다.AI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혁신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문제는 딥페이크로 대표되는 유해 영상 역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최근 미국 대선 후보들의 가짜 음성, 또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사진을 합성한 음란 이미지가 SNS를 통해 퍼지기도 했습니다.

[이재성/중앙대 AI학과 교수]"예전에는 딥페이크라고 해도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이 좀 필요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오픈AI '소라' 같은 경우 텍스트만 입력하면 고품질의 동영상이 만들어지기 쉬우니까 악의적인 정보를 생산을 해서 뿌려버릴 수 있다는 거죠."

오픈AI 측은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콘텐츠, 유명인과 유사한 이미지 생성 등에 대한 요청은 거절할 것"이라며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전문가 검증을 거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I 소라는 현재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돼 있는 상태로, 출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김현지입니다.

보수정부와 조선일보의 이승만 영웅만들기 프로젝트

이승만 독재까지 부정하는 건국전쟁과 조선일보

조선, 1995년부터 꾸준히 이승만 재평가 작업 주도

반공이념의 보수정부 뿌리 찾기, 저항의 역사 축소하는 효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에 다시 시동이 걸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람을 했고 조선일보는 그간 이승만 악마화가 이뤄졌다며 재평가를 화두로 제시한다. 전부터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은 재평가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문제는 명백한 마저 감추고 으로 둔갑하려 한다는 데 있다. 역사 논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 논쟁에 가깝다.

건국전쟁 릴레이 관람과 조선일보의 재조명 기사

윤석열 대통령은 건국전쟁관람 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 정부여당 인사들이 영화관을 찾아 메시지를 냈다. 영화의 흥행을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이승만 재평가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부여당보다 강하게 이승만 재평가작업에 힘을 싣고 있다. 조선일보는 영화 개봉일인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총 28건의 건국전쟁관련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일관되고 일방적이다. 지난 3건국전쟁김덕영 감독을 인터뷰한 <“이승만 죽이기는 의 공작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 기사를 낸 데 이어 <6·25 때 도망? 이승만, 대사 앞에서 인민군 쏘고 날 쏘겠다망명 거절>(26),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내는 역사가들>(211), <“난 이승만을 너무 몰랐다”...‘건국전쟁상영관마다 눈물과 박수 [만물상]>(212), <[광화문·] 그들이 이승만을 덮쳤을 때>(216) 등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이승만 전 대통려이 독재자가 아니고 부정선거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일보는 16일 기사에서 “‘건국전쟁은 좌파의 이승만 악마화를 바로잡는 영화라며 흥행에서 좌파 프레임에 굴복했던 우파의 각성을 본다고 했다.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과 안보 정책 등을 조명하고 그가 교육정책에 관심을 쏟은 결과 민주주의에 관한 의식이 높아져 4·19혁명이 일어나게 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담겼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기사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기사를 통해 영화 속 주장에 공신력을 실었다. 기사가 말한 잘못 알려진 사실은 분단 책임자 친일파 등용 6·25 때 도망 미제의 앞잡이 독재자 부정선거 원흉 등이다. 조선일보는 독재 체제였다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이 봉쇄돼야 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고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 공작으로, 이승만과는 무관했다고도 했다.

조선, 1995거대한 생애 이승만연재 보수정부 들어설 때마다 재평가 시도

조선일보와 보수정부가 주고 받으며 이승만 재평가를 추진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5년 시사저널 기사에 따르면 표면화된 이승만 재평가 작업의 시초는 당시 허문도 통일원장관이 월간조선 19951월호에 기고한 거대한 인물 이승만 90글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활한 모세에 빗대며 주권의식과 민족적 정체성, 국제 정치에 대한 마키아벨리적 전략 감각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내용이다. 직후인 19951월 조선일보는 거대한 생애 이승만장기 연재를 시작하고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기획전전시까지 열었다.

영화 '건국전쟁' 스틸컷

참여정부 때 전면에 등장한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이승만 재평가 작업은 박차를 가하게 된다. 200711월 민간 차원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한다. 박근혜 정부 때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게 되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추진위원에는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 조선일보 출신들이 참여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임시정부 수립일이 아닌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과 이에 따른 논쟁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행사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성숙해져야 한다며 재평가를 다시 공론화했다. 이정현 대표 체제의 새누리당은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했다. 이 시기 조선일보는 이승만 서거 50주년특집연재 기사를 썼고 <건국 대통령 제대로 평가해야 우리 현대사가 바로 선다> 사설을 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 국정교과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중심 독립운동과 교육정책에 대한 공헌,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성과로 담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재평가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국가보훈부가 20241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정했다. 보훈부는 이승만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혜안의 지도자로 치켜세우는 정신전력교육 교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철 경축사에서 건국을 강조하고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한 결정을 내린 것도 연장선에 있다.

반공국가 뿌리 내세우고 공 키우기  항일·독재저항 역사 지우는 효과

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 하려는 걸까.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된 이 작업은 보수세력의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다. 1993년 김종필은 이승만을 ’, 박정희를 ’, 김영삼을 으로 놓는 기승전결론을 제시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3당합당 이후 탄생한 김영삼 정부를 과거 정권과 이질적 세력이 아닌 연장선에 놓고 보며 보수의 기원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1995년 고성국 나라정책연구회 상임운영위원은 이승만 되살리기는 역사 재조명이 아니라며 김영삼 정부를 길들이고 개혁을 보수와 수구의 틀 안에 가두어 놓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현실적 정치 행위라고 주장했다. 민주화 이후 보수 재정립 과정에서 이승만 띄우기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20107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 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 후 고개를 숙여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 재평가 시도가 건국절과 함께 논의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1995년 조선일보 연재 기사엔 자신의 건국기념일을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 나라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이승만 재평가를 전면에 내걸고 건국절’(건국일)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건국을 중심에 놓고 반공을 핵심 기치로 강조하면서 반면 사회주의 계열이나 건국에 반대한 독립운동가들은 배제된다. 이 배제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로 최근 다시 드러났다.

독재 아니다? 4·19는 이승만 덕?   보수도 동의 못하는 무리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행보가 축소됐다는 주장은 타당한 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를 가리긴 어렵다. 이승만 대통령 때 친일 청산을 할 기회였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한 점, 제주 4·3의 비극을 만든 점, 6·25 전쟁 당시 다리 폭파로 민간인 피해를 키운점, 3·15 부정선거가 이뤄졌고 무수한 희생을 낳게 된 사실에 대한 책임은 지울 수 없다.

건국전쟁과 조선일보식 재평가는 를 가리고 숨기는 정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문제다. ‘를 비틀어 으로 둔갑시키거나 책임 소재를 떠넘긴다. 영화와 조선일보는 공통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했을 뿐 민주주의를 지켰다며 독재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종신 집권을 위한 정적 제거와 무리한 개헌 등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아닌 이기붕 부통령에게만 책임 소재를 돌린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교육 정책에 힘을 쏟은 결과 4·19 혁명의 발판이 됐다는 상식을 벗어난 주장까지 담는다. 헌법전문에 수록된 4·19혁명이 이승만 전 대통령 영웅 만들기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에 논리를 비틀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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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건국전쟁과 조선일보식의 재평가는 보수의 동의조차 구하기 힘들다. 지난 14일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가 쓴 중앙일보 시시각각칼럼은 건국전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취사선택한 사실의 나열이라며 이 전 대통령의 공은 크게 증폭됐고 과는 크게 축소됐다. 이승만 정권은 놀라운 성취 못지않게 재난적 말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사오입 개헌 등에 이런 문제에 대해선 강한 비판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 부정선거와 영구집권을 꾀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과가 있다고 했다. 현재 여권에서도 재평가는 하되 공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역사 국정교과도 이승만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조선 김대중 씨, 이젠 펜을 놓을 때가 됐습니다

칼럼서 "보수언론이 보수정권 더 비판했다" 주장

"김건희 명품백 보도 마라"? 보도지침 하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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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개돼지'로 알고 독자 우습게 여기는 소리만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227

 

류호정 사태와 진보정당 추락을 직시해야 할 이유

진보정치 실험 20년에 대한 평가 필요한 상황

'정의당 당론 따랐을 뿐'이라고 우기는 류호정

정의당, '종북몰이' 타협서 '조국몰이' 타협으로

검찰권력, 족벌언론 프레임을 거부하지 못하고

진보정당 지지기반 축소재생산 뼈아픈 결과만

총선에서 몰락 위기투쟁·연대로 기반 구축해야

새로 운미래 조성주(왼쪽부터), 금태섭 공동대표와 류호정 전 의원 등이 8일 서울역에서 설 연휴를 앞두고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4.2.8. 연합뉴스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며칠 전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왜 류호정을 받았냐 묻는데 안 받을 수 있었으면 안 받았을 것이다. 류호정 의원이 이 당에 들어온 이상 어떤 전향적인 태도나 입장을 계속 내지 않는다면 당원들이 그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류호정 의원이 전장연 같은 주장을 우리 당에 와서 한다면, 기분 나쁘게 표현하자면 뜻은 가상하지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류호정 전 의원의 기반이었던 진보정당의 지지자들까지 치욕스럽게 느껴질 발언이다. 하지만 진보정당 출신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류호정 전 의원과 동료들은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준석이 공동대표이자 실질적 오너를 맡은 개혁신당으로 갔다. 국민의힘 전 대표였던 이준석은 여성과 장애인들을 표적으로 혐오정치를 펼치던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데도 말이다.

사회주의 지향과 좌파정치의 깃발을 들고, 함께 제3지대를 개척하자던 김창인 전 청년정의당 대표와 박원석 전 의원 등도 여기에 따라갔다. 지독한 역설과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류호정 전 의원과 주변의 동료들(조성주, 김창인)이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류호정 전 의원은 임기 초부터 민주당 2중대에서 벗어나기를 진보정당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이것은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에 따라서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해서 민주당과 심지어 민주노총까지 비판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민주당과 선 긋기는 어느 순간 진보정당으로서의 가치와 원칙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선 긋기가 진보의 가장 중요한 원칙과 기준'이라는 논리는 일부 좌파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호정 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꼭 진보정당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된다면서 3 지대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민주당에서 나와 국민의힘과 함께하던 금태섭과 손을 잡더니 남녀 갈라치기에 일조하지 않았나 반성해본다며 진보정치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조차 부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변신의 결과는 정의당을 도로 통진당”, “운동권 정당이라고 낙인찍으며 탈당해서 이준석의 개혁신당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면서도 류호정 전 의원은 정의당이 그동안 해왔던 양당 정치 극복, 조국 사태 이후 했던 반성, 민주당과의 결별, 이러한 정의당의 당론을 따라서 저는 움직였다며, 자신의 행보가 일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의 바탕에는 우리 사회 진보정당들의 맏이로서 정의당이 직면한 소위 ‘3중의 위기가 존재했다. 정의당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재정적 위기를 겪었고, 진성당원이 3만여 명에서 1만여 명으로 줄었고, 지지율과 득표율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정의당은 물론 진보당, 녹색당을 다 합쳐도 득표율이 3.5%밖에 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조성주 전 정의당 대표 후보는 거칠게 말하자면 민주당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3지대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류호정 전 의원이 정의당을 가라앉고 있는 배라며 탈당도 안 한 상태에서 당의 분열을 촉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지 류호정 전 의원 등만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정의당이 검찰과 족벌언론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들은 불신과 실망을 낳았다/ MBN 방송 화면 갈무리

한국 사회에서 보수우파뿐 아니라 중도개혁을 넘어서는 진보정치를 만들자던 실험이 왜 지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 평가에서는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해 온 정의당과 심상정 대표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위치와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더 큰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몫이 필요하다는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포함한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2000년대 초반에 한 때 민주노동당이 20% 가까운 지지를 얻었고, 몇 년 전까지도 지역구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진보정당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2010년대를 전후해서 민주노동당이 여러 진보정당으로 쪼개지면서 분열과 위기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 우파와 권력기구, 족벌언론의 종북몰이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2014년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은 그 절정이었다. 여기서부터 뭔가 단추가 잘못 끼워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기득권 카르텔은 진보정치의 일부는 종북이라고 낙인찍어서 공론의 장에서 쫓아내 버렸고, 나머지는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당시에 심상정 의원이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헌법 밖의 진보라고 매도하며 선을 긋고, 자신들은 헌법 내의 진보라고 자처하고 나선 것은 불길한 조짐이었다. 정의당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도 당론으로 찬성했다.

즉 통합진보당에서 분리해 나온 심상정 의원과 정의당이 권력기구와 족벌언론들의 프레임에 흔들리며 타협하기 시작한 변곡점과도 같았다. 하지만 종북몰이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공안통치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6년에 터져 나온 거대한 촛불의 바다는 모든 것을 뒤집고 흔들었다. 그것은 분열과 위기에 빠져들던 진보정당들에도 소중한 기회였다.

2016년 촛불항쟁은 진보정당들에게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사진=공동취재단

진보정당들은 촛불이 만들어준 공간 속에서 적폐 청산에 앞장서면서 더 나아가 급진적 사회경제적 개혁을 아젠다로 만들어내야 했다. 왜냐하면 촛불 이후 집권한 민주당만으로는 그것을 수행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정의당은 이런 방향을 잘 잡는 것 같았다. 새로운 세대의 성장 속에서 청년성평등기후 정의를 강조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019조국 사태때부터 다시 단추가 어긋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의 본질은 촛불항쟁에서 시작된 사회 진보의 물결을 중단시키고, 다시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리며 기득권 우파가 권력을 되찾기 위한 연성쿠테타였다. 검찰권력과 족벌언론들이 앞장섰고 조국 법무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전무후무한 대대적 마녀사냥이 그들의 무기였다.

2016년 촛불항쟁에 참가했던 민주시민들의 일부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서초동에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자발적인 촛불시위에 나섰다. 반대로 광화문에서는 태극기 부대와 청년 우파들이 주도하는 문재인 퇴진과 조국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상황은 박근혜 탄핵을 넘어서서 검찰권력과 족벌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는 진정한 권력자들까지 무릎 꿇릴 수 있느냐의 고비로 넘어갔다.

하지만 정의당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광화문도 서초동도 가지 말자더니, 다시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지지했다가, 결국은 검찰과 언론의 프레임을 받아들이며 공정과 상식의 이름으로 조국 마녀사냥에 끌려갔다. 이것은 류호정 의원 등이 툭하면 족벌언론에 나와서 조국, 윤미향 마녀사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족벌언론들은 정의당이 조국을 파렴치한 위선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연동형 선거제를 얻어내기 위해 장관 임명을 지지해주고 거래했다고 공격할 꼬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심 후보의 뒤늦은 후회는 정치인이 실리에 눈이 멀어 명분을 포기하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평범한 이치를 되새기게 한다며 의기양양하게 꾸짖었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곧 진실이라는 잣대를 이용해서 정의당을 압박하던 조선일보는 최근에는 똑같은 방식을 사용해서 정의당을 공격했다.

이후에도 족벌언론들은 민주당 2중대론을 무기로 계속해서 정의당을 압박했고, 그때마다 정의당은 이재명 방탄을 돕는다는 비난이 두려워서 김건희 특검법안 처리를 뒤로 미루거나, 나중에는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찬성하며 검찰과 족벌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어서 증거를 조작하는 시대는 지났다”(이정미 전 대표)는 것이었다.

갈팡질팡하면서 검찰권력과 족벌언론의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최근 심상정 의원이 출간한 <심상정, 우공의 길>에서도 반복된다. 여기서 심상정 의원은 민주당은 나에게 입각 제안이나 대선 후보 단일화도 제안하지 않았다며 민주당과 협력에 미련을 보이면서, 동시에 명백한 정치적 오류였다"며 조국 임명 찬성을 거듭 사과하고 반성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많은 사람은 정의당의 포지션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어차피 민주당조차 종북좌파라고 생각하는 보수우파 지지자들은 정의당을 지지할 일이 없었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민주당 2중대라고 공격할 뿐이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이 중요한 고비마다 기득권 우파의 편에 선다고 의심하며 불신과 반감을 키웠다.

진보정당을 위해서도 마녀사냥에 맞서며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정의당에 실망하면서 멀어졌고, 결국 민주당과의 선 긋기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소수가 주로 남게 됐다. 그런 소수마저도 정의당의 이름으로 선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면서 당을 떠났다. 류호정 의원이 바로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

물론 진보정당은 기득권 우파뿐 아니라 민주당의 한계까지 넘어서야 한다. 민주당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더 급진적 개혁과 진보는 어렵고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도 그런 불만족을 느껴왔다. 민주당-공화당 양당체제의 미국보다는, 보수당과 경쟁하던 자유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제3당이던 노동당이 차지한 영국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민주당 지지자들을 한심하다고 조롱하고, 민주당이 실패하길 기다리며 선을 긋다 보면, 저절로 다가올 기회일 리가 없다. 민주당을 통한 개혁과 진보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기반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적절한 동맹과 전술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이 확장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무려 권리당원만 240만여 명에 달하는 탄탄한 대중 정당이기 때문이다.

정의당 진성당원이 1만여 명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조직된 노동자들 속에도 민주당 지지가 강력하게 존재한다. 2022년 민주노총 확대간부(산별노조·연맹 대의원) 설문조사 결과 2017년 대선 때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은 42.6%로 진보정당에 투표한 48%에 맞먹었다. 조합원과 한국노총으로 가면 이 비율은 더 커진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 추진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세기 초의 영국에서도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 속에서 노동당은 처음에 기반이 매우 작았다. 자유당의 기반이 노동당의 기반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중간에 노동당이 자유당과 섞이고 선거연합을 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단순히 자유당을 반대하고 비난하며 노동당이 정답이니 여기로 오라고 선언하고 강요하는 방식과 과정이 아니었다.

반면에 미국에서 제3 정치세력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단지 양당에 흡수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소규모 제3세력이 난립해서 독자 출마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의미 있는 대안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필요한 것은 가치는 비슷하지만 규모는 작은 여러 진보정당들의 연대이다.

통합진보당까지 분열한 이후에는 각자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투쟁과 선거에서 협력하는 것이 더욱 필요했다. 특히 4년 전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이 각자의 후보를 내면서도 비례투표에서 힘을 모으는 진보 선거연합이 필요했다. 그러면 사표 심리도 피하면서, 상대적으로 큰 진보정당이 작은 진보정당을 도와서 3%의 벽도 넘어서게 해줄 수 있었다.

진보정당들이 각자도생하느냐민주당과 선거연합 하느냐의 양자택일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진보정당들은 계속 더 분열했고 그러면서 더 약화했다. 크게 다를 수 없는 정책을 가지고 선거 때마다 각자 출마한 진보정당 후보들이 서로의 차이점을 찾아내서 공격하며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들의 지역기반은 계속 더 줄었고, 사회운동과 연계는 더 약해졌다. 20년이 넘은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가 이제 다 합쳐서 3~4% 정도의 지지율이라는 지지기반의 축소재생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정의당의 책임을 더 크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시 총선을 다가오고 있고, 진보정당들은 4년 전보다 더 불리한 조건이다.

여전히 선거제도는 결선 투표 없는 소선구제이고, 투표의 비례성은 약하고, 사표 심리는 여전할 뿐 아니라 윤석열 심판을 위해 거대야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압력이 더 커졌다. 국민의힘의 봉쇄와 윤석열의 거부권 속에서 위성정당 방지법은 추진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민주당은 다행히 병립형 회귀 야합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에 맞서 비례연합 준위성정당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선거연합은 또다시 실패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의당조차 3%의 벽을 넘어설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더구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당 투표에서는 진보정당을 찍는 교차투표도 크게 줄어버렸다.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확실해 보이는 후보들조차 찾기 어렵다. 결국 진보정당들이 아예 의회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이 지난 3일 공식 출범했다. 연합뉴스.

여기서 다시 두 가지 선거 전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정당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만들겠다는 비례연합 정당을 통해서라도 의회에 들어가 진보적 정책과 가치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일부 훼손하는 측면이 있지만, 일시적 선거연합일 뿐이고 총선 이후에 독자적 활동과 주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단일화에 성공한다면 일부 지역구에서도 진보정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연합 과정에서 진보적 정책들을 공동의 과제로 만들어내고 새로운 국회에서 완전한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등을 이룬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진보정당의 독자적 출마와 당선 가능성이 더 분명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한다.

반면 진보정당들 일부에서는 독자적인 후보 출마와 정당 투표 호소라는 정면 승부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민주당과 구분되는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지키는 더 효과적 방식이고, 공동의 공약에는 담기 어려운 진보정당만의 독자적 정책을 더 많이 알리는 길일 수도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선, 양당체제를 넘어선 진보정치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의 지지율에 비추어서는 진보정당과 후보들이 더욱 주변화될 수 있고, 심지어 원내 진출에 실패해서 진보적 정책들을 제도화할 기회 자체를 놓치고 다시 4년을 더 준비해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거대 양당이 아닌 진보정당들의 목소리는 이 사회에서 더욱 들리지 않게 되는 게 쓰디쓴 현실이고, 따라서 선뜻 지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금은 서로 다른 선거 전술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데 집중할 순간은 아니다. 서로 장렬하게 전사하자는 것이냐’, ‘독자적 진보정당 운동과 노선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라며 상대방을 날선 언어로 매도하고 결과를 저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진보정당들 사이의 불신과 상처만 다시 키우고 장기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기회를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가지고 책임지고 평가하면 될 문제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선거 이후에도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며 한국 사회의 철저한 개혁과 진보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할 진보정당의 동료들이라는 사실이다. 선거에서 일시적 전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총선 이후에도 계속될 그 투쟁들에서 함께 연대하며 진보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시민언론 민들레/ 전지윤 편집위원

 

가계부채 감축 의지, DSR 보면 알 수 있다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DSR은 가계부채 감축을 위한 핵심 장치이지만 그동안 예외 사항이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24년부터 개인의 상환능력에 초점을 맞춘 DSR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모습.연합뉴스

117일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공개하며,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주택을 한 채 보유한 사람이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은 경우, 이 대출의 이자 상환분을 DSR에 포함시킨다. 본인은 전세로 살고 있으면서 갭투자로 다른 집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앞으로는 DSR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축소 기조를 선명히 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날 저금리 시대를 지나며 우리나라가 온통 빚으로 쌓여 있는 상태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금융위의 이번 방침은 점진적으로 DSR의 구멍을 막는다고 정리할 수 있다. 가계부채 관리의 핵심 장치로 여겨졌던 DSR은 그동안 예외로 분류되는 대출이 많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전세와 DSR’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비판해온 이들은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과 임차인이 빌리는 전세대출을 모두 DSR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요구하는 이들은 부동산 매입 시 적용되는 DSR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DSR 제도가 가진 막강한 위력 때문에, 양쪽 모두 DSR 관련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부채 감축 최종병기’ DSR

DSR은 낯설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계산도 번거롭다. 개인이 빌린 모든 빚의 총량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DSR 규제는 버는 만큼 빌릴 수 있게 하는 규제.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DSR 규제가 40%라면, 이 사람은 원리금으로 갚는 돈이 1년에 2000만원을 넘겨선 안 된다. 이때 갚는 돈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뿐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론 등 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모든 빚의 원리금을 포함한다.

DSR이 한국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8년이다. 이전까지 가계 금융, 특히 부동산 금융에서는 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기준선으로 작동했다. LTV담보 가치에 초점을 맞춘 비율이고, DTI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소득 대비 갚는 빚을 따진다는 점에서 DTIDSR과 유사하다. 다만 DTI기타 대출(신용대출 등)의 이자만 계산하는 반면, DSR기타 대출의 원리금까지 따진다. 이 차이는 꽤 크다. DSRDTI의 확장판인 셈이다.

초창기 DSR은 금융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으로 활용되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전체 차주(빌린 사람) 평균 DSR’을 제시하고, 금융기관이 알아서 DSR이 높은 차주(소득 대비 돈을 많이 빌린 사람)의 비율을 조정케 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한 은행이 10명에게 대출을 해주었는데, 10명 가운데 한 명의 DSR100%를 넘기더라도, 나머지 9명 차주의 DSR이 낮으면 상관없는 구조였다. 10명의 평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14,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발표되면서 차주(개인) 단위 DSR 규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받기 시작했다. ‘영끌로 대표되는 무리한 대출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탓이다. 뒤이어 202110월에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라는 고강도 정책을 발표하면서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DSR 규제 적용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의 소득에 따른 대출 규제가 확대됐다. 다만 빈 구멍은 여전히 컸다. 전세대출, 전세보증금, 중도금대출, 예적금 담보대출, 서민금융상품 등은 차주 단위 DSR 계산 시 제외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구멍이 전세와 중도금이다. 이들 대출이 제외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를 위한 수단이라는 이유로, 전세보증금은 국민 정서상 대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도금은 분양받은 사람들이 입주 전까지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미뤄왔다. 하지만 가계대출에 지속적으로 적신호가 켜지면서 DSR 확대 필요성이 대두됐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사례

2023717일 한국은행은 장기 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은 한국의 가계부채가 역사적으로, 전 세계 차원에서 무척 독특하다고 설명한다. 두 가지 현상 분석이 눈에 띄었다. 첫째, 한국은 주요 국가와 달리 지난 20년 동안 제대로 가계부채를 줄여본 적이 없다. 둘째, 가계부채를 줄인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니, 빚을 갚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수반되었다.

한국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국가들이 DSR을 적극 활용했고, 이 덕분에 저금리 환경 속에서도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반면 한국은 2018년에야 DSR이 시범 도입됐고, DSR을 적용받지 않는 대출(전세대출 등)도 많아 규제 강도가 약했다고 지적한다. 2010년대 OECD 주요 국가들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완만한 속도로 줄여왔다. 반면 한국은 반대로 이 시기에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겪은 한국이, 역설적으로 가계부채 감축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나라는 한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들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가계부채 감축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과거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긴나라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비율을 축소한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덴마크와 네덜란드다. 덴마크는 2009137%를 넘겼다가 2022년에는 80%대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도 2010120%를 넘겼던 가계부채 비율이 2022년에는 90%대로 낮아졌다.

덴마크·네덜란드 사례는 보험연구원이 202111월에 발표한 주요국 가계부채 조정 사례 및 시사점보고서에도 등장한다. 두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직접적인 피해 국가는 아니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를 겪으며 경기 부진, 실업률 상승, 주택 가격 하락을 겪었고, 여기에 정부의 건전성 규제 정책이 강화되면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덴마크는 17, 네덜란드는 18년 동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상회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십수 년 넘게 끌어온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그나마 덴마크·네덜란드는 온건한 방식으로 가계부채를 줄인 축에 속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시스템이 무너진 미국과 영국, 재정위기로 국채금리가 상승하며 주택시장이 무너진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의 경우 상당한 충격을 수반하며 가계부채가 줄어들었다.

이때 국가별 부채 다이어트의 핵심 도구가 바로 DSR이었다. 한국에서도 DSR과 유사한 DTI2005년부터 운용했지만, 한국에서 DTI는 모든 차주에 일괄 적용된 게 아니라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한국은행은 2013~2022년에 DTI 적용을 받은 신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평균 23%에 그쳤다고 설명한다. DTI가 그동안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큰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세, DSR의 중심에 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로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란 어려웠다. ‘전세를 금융 당국이 겨냥한 이유다. 그런데 전세도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이라는 두 가지 구멍이 존재한다. 금융 당국은 일단 전세대출만 제한적으로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앞선 보고서에서 전세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65%에서 2022914%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된 전세대출이 가계대출 급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평가다.

DSR 규제 확대는 금융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전세대출에 DSR 규제가 전면 적용되면, 다른 대출(신용대출 등)이 많은 사람, 소득이 낮은 사람은 전세대출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정치적 부담이 생긴다. 한번 늘어난 전세대출은 줄이기가 어렵다.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의 DSR 적용 확대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무주택 갭투기를 노린 이번 전세대출 DSR 규제 적용은 규제 대상이 제한적이고, 갭투기를 막는다는 명분 덕분에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다.

일각에서는 전세대출에 DSR 규제를 적용하는 데 부정적이다. ‘전세대출은 2년짜리 대출이고, 어차피 돌려받는 돈이다. 이걸 빌리는 데 원리금을 따지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논리다. 실제로 전세대출은 대부분 원금을 만기(임대인에게 돈을 돌려받은 뒤)에 일시 상환한다. 빌리는 동안 이자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세사기처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원금 상환이 불가능해 임차인이 파산 위기에 처한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개별 임차인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같은 이중 안전장치를 일일이 마련해야 하고, 이는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한다.

전세대출의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DSR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보다 꼼꼼하게 따지고, 무분별한 전세대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용대출 DSR 계산 방식같은 계산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용대출은 1년마다 갱신하는 구조다. 만기가 짧기 때문에 DSR 계산 시 ‘5년 상환을 가정한다. 예를 들어 3000만원짜리 신용대출을 연리 8%에 빌렸다면, 60개월 상환을 가정하고 DSR에 적용하는 식이다. 이러면 원리금 균등상환 기준으로 차주가 매달 원리금을 60만원씩 갚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DSR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을 보기 때문에, 매달 300만원을 버는 사람은 DSR 40% 규제하에서 매달 원리금을 갚는 데 120만원 이상 쓸 수 없다. 만약 이 차주가 앞선 조건으로 3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은 상황이라면 이미 120만원 제약속에서 60만원을 소진한 셈이 된다.

11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DSR 규제 확대 등 주요 업무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방식으로 전세대출을 만기 20으로 가정해 계산해보자. 2억원을 4% 이율로 대출받을 경우 실제로 매달 갚는 이자는 66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DSR 계산을 위해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계산해보면 20(240개월) 동안 매달 120만원을 갚는 셈이 된다. ‘이자만’ DSR에 포함할지, 아니면 원리금 모두를’ DSR에 포함할지에 따라 가계가 빌릴 수 있는 돈의 최대치는 달라진다. DSR 계산 방식에 따른 규제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 역시 DSR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왔다. 20238, 박진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주택학회 세미나에서 전세보증금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갚아야 할 채무라는 관점에서 DSR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 사회가 금리 인상 이후 전세보증금 미반환, 역전세, 깡통전세, 연체율 증가 등을 겪어왔는데 이 모든 사태가 채무불이행이라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보증금을 관습적 제도로 다룰 게 아니라, ‘부채라는 틀에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해 3월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 추정치를 발표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20177709000억원이던 전체 전세보증금 추정액은 202210583000억원으로 5년 만에 37.3% 늘어났다. 이 보증금을 합칠 경우 전체 가계부채는 약 3000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105.8%이지만,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그 비율은 156.8%까지 증가한다. OECD 최고 수준이다.

당장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이 DSR에 포함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임차인이 빌리는 전세대출을 단계적으로 확대 반영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로 얽혀 있는 가계의 부채 악순환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올해 226일부터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DSR은 가계부채 관리의 도구로 작동할 전망이다. 이 제도는 훗날 금리 변동을 감안해 실제 대출금리에 스트레스 금리(가산 금리)’를 더해서 DSR을 도출해내는 방식이다. 한국 차주들은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2022~2023년처럼 급격히 금리가 오를 경우 대응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변동금리 조건에서도 충분한 상환능력을 갖추었는지 살펴보기 위한 제도가 스트레스 DSR’이다.

최근 정부 부처의 연이은 주택경기 부양책과는 별개로,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경제 전반에 위기가 닥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주택자 규제 완화, 세제 완화 등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연이어 내놓는 것과 다소 엇박자 행보처럼 보일 정도다.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다. 주택시장의 침체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빚은 줄여야 하는 상반된 정책 과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DSR은 한국 사회가 뒤늦게 꺼내든 부채 감축 카드다. 금융 당국의 부채 감축 의지가 얼마나 진심인지는 추후 DSR 관련 규제가 유지 또는 강화되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알 수 있다./시사인 김동인 기자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탈출구는

지난해 GDP 1.4%심각한 내수 부진·수출 둔화 영향

1.4%.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등과 같은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저 수준이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낮다. 대외 요인과 함께 국내적으로 내수가 얼어붙고 수출이 경쟁력을 잃어버린 탓이 크다. 저성장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장률 1.4%의 의미

성장률 1.4%는 경제 규모가 큰 미국(2.5%), 일본(1.9%)보다 낮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클수록 성장률은 낮다. 반대로 신흥개도국 성장률은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편이다. 지난 130(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1월 세계경제전망(WEO)’을 보면, 인도(6.7%), 러시아(3.0%), 브라질(3.1%), 멕시코(3.4%) 등 신흥개도국(평균 4.1%)은 대체로 주요 선진국(평균 1.6%)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한국의 역대 성장률에서도 1.4%는 이례적이다. 최근 기준으로는 코로나19 대유행 첫해인 2020(-0.7%)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 전엔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80(-1.6%),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5.1%), 금융위기 때인 2009(0.8%) 등 국내외적으로 큰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역성장을 하거나 저조한 성장을 기록했다. ‘잃어버린 30으로 평가받는 일본에 성장률이 역전된 것도 외환위기 때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저성장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과거엔 우리 경제성장률을 얘기할 때 이례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1~2%대를 전망한 일이 거의 없었다. 작년 1.4%에 이어 올해 2% 안팎 수준의 전망치가 많은 것을 봐도 우리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이미 (이러한 전망치들에)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한 해 수치만 놓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수출이 6327억달러로 전년보다 7.4% 감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11일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부산항 /연합뉴스

성장률 저하 원인은

성장률이 저조했던 건 심각한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 영향이 컸다. 우선 내수를 보면, 민간소비와 정부소비가 각각 1.8%,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년 4.1%, 4.0%와 비교했을 때 큰 폭의 감소다. 가장 큰 원인은 고금리·고물가 영향이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재정 집행을 확대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수 부진은 통계청이 131일 발표한 ‘202312월 및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서 확인된다. 승용차 등 내구재(0.2%) 판매는 늘어난 반면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8%), 의복 등 준내구재(-2.6%)가 줄어 전년보다 1.4% 감소했다. 2003(-3.2%) 이후 최대 폭 감소이자, 전년(-0.3%)에 이어 2년째 감소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자체 집계해 11일 발표한 자료에서도 지난해 우리 내수가 얼마나 힘든 한 해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0.2%였다.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은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가 본격화한 20214분기 6.1%였으나, 고금리·고물가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해 2분기 1.5%, 3분기 0.2%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시기 OECD 38개 회원국 평균은 1.5%였고 경제 규모가 큰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의 평균은 1.2%였다.

골목상권 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3일 발표한 소상공인의 올 1월 전망 경기지수를 보면 79.5(100 이상이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고 100 미만이면 악화했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다는 뜻)로 전달 대비 5.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넉 달 연속 하락세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탈출구는

수출은 최대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면서 1년 내내 부진을 겪었다. 중국 전체 수입에서 한국 비중은 6.3%로 전년의 7.4%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듬해인 1993(5.2%)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다.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가 부진한 영향이 컸다. 한국의 지난해 대중 반도체 수출은 361억달러로, 전년보다 30.6% 줄었다.

야당에서는 국정기조 변화를 촉구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는 지난해 외부 충격도 없이 1%대 성장이라는 역대급 위기를 겪었다윤석열 정부는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초부자 감세를 추진했다.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며, 있지도 않은 이른바 낙수효과를 내세웠다. 현실은 성장은커녕 막대한 세수결손만 초래하고, 재정 부족에 따른 서민지원 예산 삭감, 연구개발(R&D) 예산 대규모 삭감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중국으로의 수출 부진, 국내 부동산 경기 악화 등이 성장률 저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저조한 성장률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첫째는 2010년대 이후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이 우리의 성장 동력이었데, 작년에 반도체 경기가 위축되고 중국 경제가 부진하다 보니 우리도 이런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내수 측면인데, 그간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 증가와 맞물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내수가 활기를 띠는 구조였는데,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죽으면서 이러한 내수 진작 방안이 힘을 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방식의 성장 엔진이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장 우려해법은

정부와 국내외 기관들이 전망하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2%대 초반이다. IMF13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3%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제시한 전망치(2.2%)보다 0.1%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정부(2.2%)·한국은행(2.1%) 전망치보다 높고 OECD(2.3%)와 같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계 경제가 회복하고 미국, 중국 등 주요 교역국 상황이 양호한 점을 감안해 IMF가 이런 (상향) 전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중국 반도체 이미지 / 로이터 | 연합뉴스

반도체 경기가 개선될 것이란 관측도 이런 전망의 배경이 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30일 발표한 올해 품목별 수출 증가율 전망치(전년 대비)를 보면 반도체 21.2%, 컴퓨터 55.4%, 무선통신기기 7.7%, 디스플레이 5.9%, 가전 5.1% 등으로 나온다. 연구원은 스마트폰, PC 등 전방 IT 품목의 수요가 개선되면서 반도체 수출의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반론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8‘2024년 한국경제 수정 전망에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소비와 투자가 바닥을 찍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구원은 성장률이 상반기 2.3%, 하반기 2.1%로 연간 2.2%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부문별로 성장 하방 압력이 크다고 진단했다. 소비는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돼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하며 회복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고, 건설투자는 선행지표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영향으로 건설기업의 자금경색이 지속되고 건설 체감 경기 악화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수출 역시 기업의 수출 경기 회복 체감도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경기 차별화,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연구원은 앞서 지난해 9‘2024년 한국경제전망보고서에서는 연간 2.2%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다만 “2023년 상반기의 낮은 성장률(0.9%)에 대한 기저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상반기와 하반기가 유사한 경기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적었다. 하준경 교수도 반도체 경기가 작년보다 올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저효과 등을 감안했을 때 경제주체들이 경기 호황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수출은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는 수출 친화적인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수출 보험, 저리 융자, 보증 등과 같은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들 말이다. 특히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의 공적자금을 동원해 그간 정상외교를 통해 맺은 국가 간 업무협약(MOU)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사업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주간경향 안광호 기자

 

학생들과 함께 본 '건국전쟁', 충격적인 한 줄 평

[리뷰] '이승만 미화'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실은 10여 년 전부터 기다려온 영화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였던 2013,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역사 수업의 소재로 썼다가 봉변을 당했다. '일베'가 창궐하던 당시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혀 조리돌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봉인이 해제된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독립운동가라고 하기엔 기록으로 드러난 그의 행적이 너무나 비루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활용한 정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도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초대 대통령을 넘어 '국부'라고 칭송해마지않던 이승만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은 4.19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는 것과 6.25 전쟁 중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도망쳤다는 게 이승만의 '유이한' 흠결로 알고 있었다.

대통령보다는 '박사'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이승만의 학위 취득 과정도 석연치 않고, 미주에서의 독립운동 역시 온갖 분란만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의 '2의 고향' 하와이에서 대한인 국민회 설립을 주도한 박용만과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와 이회영 등과도 독립운동 방식을 두고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백년전쟁>3.1 운동 직전 이른바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주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탄핵의 빌미가 됐다는 점도 부각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창립된 국제연맹의 위임 하에서 실력 배양을 통해 점진적으로 독립하자는 주장이다. 당시 신채호 등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라고 한탄한 바로 그 사건이다.

이승만은 강대국을 상대로 한 외교만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국내외 항일 무장 투쟁을 폄훼하는 모습도 담겼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현실에 눈감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조롱했다. 나아가 그의 독립운동 자금 편취 행적과 여성 편력까지 영상에 담아냈다.

반론이 필요했다. 당시 <백년전쟁>의 사회적인 반향이 워낙 컸기에, 곧이어 적시된 내용의 사실 확인부터 역사적 사건의 다양한 해석까지 날 선 반박이 뒤따를 줄 알았다. 그즈음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 관점과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3.15 부정선거의 책임, 이승만에게 물을 수 없다?

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5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연합뉴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부제다. 제목만 보고도 10여 년 만에 <백년전쟁>을 반박하는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사건이든 인물이든 역사적 평가가 긍정 또는 부정 일색일 수는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고 성찰하는 게 후세의 몫이자 역사교육의 역할이라고 확신해온 터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백년전쟁>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용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면, <건국전쟁>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충격을 주었다. 아무런 근거도, 전후 맥락도 없이 '국뽕' 수준의 영상과 음악을 활용해 감성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숫제 '이승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식이다.

"공은 '자신 덕', 과는 '남 탓'이라는 거잖아요."

영화를 함께 본 아이들의 한 줄 평이다. 노골적으로 이승만을 두둔하는 영화치곤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며, 되레 그의 업적이 변변찮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걸 통째로 부정하는' 영화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 말마따나,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4.19 혁명과 6.25 전쟁, 3.1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장면마다 이승만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세한 내레이션을 입혔는데, 우리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궤변투성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적실성과 학문적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100분의 러닝타임 중에 10분가량을 할애한 해방 후 토지개혁 관련 내용이 대표적이다. 토지개혁을 통해 산업 기반이 마련됐고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친일 지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쓴 토지개혁은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에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은근슬쩍 지워버린 사실이 있다. 1949년 이른바 '농지개혁법'의 제정을 이승만의 공적으로 추앙하기엔 어색한 구석이 많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이 지대했던 까닭이다. 또한, 농민들의 열망에 따라 1946338도선 이북 지역에서 전격 시행된 토지개혁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 성격도 뚜렷했다.

그토록 강조한 토지개혁의 공로자인 조봉암은 4.19 혁명을 한 해 앞둔 1959년 이승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했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등 이적행위를 했다는 죄목이었지만, 실제로는 19563대 대통령 선거 때 혁신계 후보로 출마해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던 바로 그 선거다.

백 보 양보해서, 각료의 성취이니만큼 대통령 이승만의 공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4.19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3.15 부정선거의 책임도 이승만에게 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에게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85세 고령의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부패한 관료들의 비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의 공적, 황당한 이유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한 내용도 있다. '런승만'이라는 별명이 생긴 계기인 6.25 전쟁 발발 직후 한강철교 폭파를 최고 지도자로서 당연한 결정이라고 두둔했다. 대통령이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후방으로 피신해 전쟁을 지휘하는 게 유리하다는 거다. 폭파 당시 희생된 민간인 숫자도 7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주장도 덧붙였다.

제주 4.3과 여순 사건에 관한 내용도 기존의 정설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전후 맥락을 소거한 채 남로당이 주도한 폭동이자 반란으로 규정했다. 미소 냉전과 극심한 좌우 대립, 그 와중에 생존을 도모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준동이라는 해방 직후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납작한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6.25 전쟁 전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조차도 '피해자 중심주의'가 외려 정확한 진상규명을 방해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제주 4.3 당시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는 이승만의 명령을 두둔하려는 듯하다. '빨갱이'여서 죽인 게 아니라, 죽이고 난 뒤 '빨갱이'로 낙인찍었던 야만의 역사에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

압권은 전후 1950년대 높은 교육열을 이승만의 업적으로 미화하고, 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의식이 4.19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이승만의 교육 정책이 이승만을 권좌에서 내쫓으면서 결실을 맺었다는 이야기다. 모든 걸 이승만으로 공으로 돌리려다 보니, '자해'의 논리까지 거침이 없다.

"이승만을 먹여 살리는 건 오로지 북한뿐이네요."

느닷없는 <건국전쟁>으로 되레 이승만이 더 추레해졌다며, 한 아이가 이렇게 매조지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건네려는 메시지는 이 하나뿐이라고 단언했다. 가난한 북한에 견줘 남한이 부유한 건 다 이승만 덕이라는 것. 자유민주주의는 ''이고, 공산주의는 ''이라는 철 지난 이분법만 난무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이어진 촌철살인에 무릎을 쳤다.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선동 영화에 부화뇌동하는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씁쓸하네요."/서부원(ernesto)오마이뉴스

행복에 돈이 필수는 아니다연구로 입증된 만족의 힘

세계 19개 토착 원주민 사회 조사 결과

삶의 만족도, 선진 고소득 국가와 비슷

미소 행복 만족 게티이미지뱅크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접하면 많은 이가 고개를 흔들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설문조사 결과들은 고소득 국가 사람들이 저소득국가 사람들보다 삶에 더 큰 만족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2022년 유엔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연 4500달러 미만인 나라 중 주관적인 웰빙, 즉 삶의 만족도(캔트릴 사다리) 점수가 5.5(10점 만점) 이상인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

반면 삶의 만족도 점수가 7점을 초과하는 나라는 모두 1인당 국내총생산이 연 4만달러를 넘었다. 물론 소득이 일정한 수준 이상이 되면 행복감은 소득 증가에 비례하지 않고 정체되는 현상(이스털린의 역설)도 나타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이런 행복 연구들은 인류의 오랜 역사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산업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 산업사회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물질적 부와 삶의 만족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느 정도 편향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금전 소득과 거리가 먼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환경과학기술연구소(ICTA-UAB)와 캐나다 맥길대 공동연구진이 산업사회와의 접촉이 미미한 토착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세계 19개 지역 원주민 29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금전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선진 고소득 국가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Joan de la Malla/바르셀로나자치대 제공

노란색 점은 토착 원주민 조사 결과, 진한 파란색 점은 갤럽 세계여론조사(2022), 옅은 파란색 점은 세계가치관조사(WVS, 2022) 결과다. PNAS에서 인용

자산 75만원내 삶 만족도 10점 만점에 10

연구진은 세계 19개 지역 원주민 2966명을 대상으로 직접 대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금전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현재의 고소득 국가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 지역은 아시아의 중국과 네팔, 인도,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짐바브웨, 가나, 중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과테말라 등이었다. 조사 대상 중 금전 소득이 있는 가구는 64%에 불과했다.

조사에 참여한 소규모 원주민 공동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만족도는 평균 6.8점이었다. 이는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의 세계인 평균 점수 5.1점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점수 6.7점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이시디 회원국인 한국(5.8)과 비교하면 1점이나 높다.

조사 지역 중 4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행복 점수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 점수(8)도 웃돌았다. 특히 과테말라 서부 고원지대의 농부들은 70명 중 30명이 자신의 삶에 10점 만점을 주었다. 연구진은 이 공동체의 1인당 평균 자산을 560달러(75만원)로 추정했다.

삶의 만족도 조사를 벌인 19개 토착 원주민 지역. PNAS에서 인용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상상력 넓혀줘

연구진은 이들 중 상당수가 소외와 억압의 역사를 겪었음에도 높은 점수가 나온 점을 지적하며 높은 수준의 물질적 부가 없어도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관념과 일치하는 조사 결과라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바르셀로나자치대의 빅토리아 레예스 가르시아 박사는 조사 결과는 소득과 삶의 만족도 사이에 흔히 관찰되는 강한 상관관계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며, 산업화된 경제에서 창출된 부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입증해준다고 말했다. 높은 수준의 주관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 집약적인 경제 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들이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는 이유까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대신 이전 연구들을 인용해 가족 및 사회의 지원과 관계, 신뢰, 영성, 자연과의 연결 등이 이러한 행복의 밑바탕에 있는 중요한 요소들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비금전적 요소가 삶의 행복에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이런 요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크리스토퍼 배링턴-리 맥길대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종이며, 다른 사람 및 살아 있는 것과 어떻게 상호관계를 맺느냐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매우 강력한 요소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삶이 있을 수 있고, 그 삶도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줬다.”*논문 정보

https://doi.org/10.1073/pnas.2311703121

High life satisfaction reported among small-scale societies with low incom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50년 지나도 여전한 "걸레 같은 신문과 방송"

[다시! 리영희]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리영희를 생각하다

"걸레 같은 신문과 방송을 보는 것은 고문이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온 지 올해로 50년이 흘렀다. 19741024, <동아일보> 기자들은 편집국에 힘찬 붓글씨로 새긴 걸개를 내걸고 "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 민주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라고 외쳤다.

언론사에 길이 남을 10·24 동아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잠깐의 성취감을 맛보았을 뿐, <동아일보> 기자들의 강제 해직과 투옥이라는 비극으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끝내 <동아일보>로 돌아가지 못한 안종필, 김종철, 박종만, 정연주 기자 등 10여 명의 젊은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구성해 자유언론실천운동에 투신했다. 평범했던 기자의 삶은 그 후 자의 반 타의 반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사의 삶으로 변모해갔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뒤 옥고를 치르던 기자 김종철은 1979725, 법정에서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을 남겼다. "한국 언론이 권력의 앞에 서서 권력자가 좋아하는 기사만을 조작까지 하는 그런 비참한 현실을 볼 때 저희로서는 도저히 이것을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도저히 매일매일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그런 걸레 같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지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박종만도 같은 날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때 과연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했던가 반성을 해 봅니다. (중략) 이제 이 땅에는 언론이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그저 진실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의 죄악만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그러한 적극적인 죄악까지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의 언론의 현실입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뒤 신문을 만들지 못해 우리 사회 저항의 움직임을 유인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결국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을 맞아 죽은 뒤에야 수의를 벗고 구치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거리로 쫓겨난 후에도 출근 시간마다 동아일보사에서 신문회관이나 종로5가까지 시위를 한 해직기자들. 동아투

벌거벗은 임금님과 소년의 용기

동아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온 1974년은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나온 해이기도 하다.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 3년 차를 맞은 그해 언론의 현실이 그만큼 엄혹해서였을까. 선생은 책에서 당대 언론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옷을 걸치지 않고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가 측근 아첨배의 것인가.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들의 속성이어야 하는가.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어떤 것일까.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임금의 알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왜 모두 입을 다물고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또는 못했을까."

리영희 선생은 당시 지적 암흑의 상태와 인간적 타락을 개탄하며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펜타곤 문서'를 전 세계에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의 용기를 지식인의 이성으로 보았고, 엘즈버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광기의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희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당대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광기의 사회를 바로잡기는커녕 임금님이 알몸이라고 외친 소년에게 엄청난 임무를 떠맡긴 채 비굴과 자기 모독의 단계를 자처하고 말았다. 소년 뒤에 숨은 비겁한 어른들로 인해 군부독재의 칼날은 그 후로도 10년 넘게 춤을 추었고, 또 다른 소년들의 희생을 겪고 나서야 어른들은 광기의 칼날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용기를 내 외치는 것은 그만큼 비현실적인 일이다.

나는 지난해 말 <기자유감>이라는 졸고(拙稿)를 한 권 냈다. 면구스럽지만 <기자유감>"나의 사표(師表) 리영희"라는 짧은 글도 실었다. 며칠 전 사인해 달라고 책을 들고 찾아온 후배에게 어떤 글귀를 적어줄까 고민하다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소년의 용기라고 적어주었다. 힘없는 소년의 용기만큼이라도 진실을 향해 발현해달라는 당부였다. 나는 소년의 용기에 비견할 만큼은 안 되지만 어느 날 작은 목소리를 낸 것을 계기로 시청자와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응원을 받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한 몸에 쏟아지는 응원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쭐함에 취해 있다 눈 깜짝할 사이 나락으로 가는 선배 기자들을 여럿 보았다. 나의 용기는 그들의 우쭐함과 달리 순수(純粹)를 유지하고 있는가. 매일 자문하고 다짐한다. "나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

19741024<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이 동아일보사 사옥에 모여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실행.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바이든'이 지워졌고, '날리면'도 사라졌다

하지만 리영희 선생의 바람과 달리, 기자의 용기가 광기의 사회를 바로잡지 못하고 광기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2024112,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 성지호, 박준범, 김병일 판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을 내놨다.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태의 정정보도를 청구한 사건에 대해 "사실 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며 외교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읽어보면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판결문에는 판사의 예단이 가득하다. 판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은''날리면' 중 어떤 발언을 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하더니 그 뒤에는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다"라고 판시했다. 밝혀졌다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바이든이라는 것인지, 날리면이라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판결문에서 모순되는 대목은 이뿐만 아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발언의 취지, 전후 맥락, 목격자의 진술, 발언자의 해명 등은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위 판단 기준만으로는 진위 여부를 밝히기에 한계가 있다"라고 해놓고, 다음 페이지에서는 "발언의 시각과 장소, 배경, 전후 맥락, 당시 위 발언을 직접 들은 박진 장관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향하여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단정했다. 앞서는 전후 맥락과 목격자 진술은 개인의 주관이 개입돼 진위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더니, 뒤에서는 전후 맥락과 목격자 진술을 판결의 논리로 제시한 것이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판사의 오지랖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판결문에는 "대한민국이 글로벌펀드에 1억 달러를 기여하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만약 야당이 1억 달러 기여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경우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라는 판사의 걱정도 담겨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발언할 20229월 당시에는 이미 다음 해 정부 예산안에 관련 글로벌 보건 기여 사업 예산이 편성돼 있었다. 그것만을 따로 떼서 국회 동의나 승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판사는 이를 국가 신뢰도까지 연결해 걱정해 준 것이다. 판사는 여야가 연말에 줄다리기할 전체 연간 예산안 심사에서 혹여 해외 원조 예산이 누락될까 봐 오지랖을 편 것인가. 그러나 여야가 해외 원조 예산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 적은 없다. 전체 국가 예산에서 해외 원조 예산의 비중은 약 0.1%로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판사는 또 당시 뉴욕에서 기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의견을 나눈 것을 두고 "이 사건 발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런데 당시 기자들의 의견 교환 중 바이든이냐 아니냐는 이견이 없었다. 판사는 왜 자의적으로 "기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라고 예단을 한 것일까. 굳이 당시 제기된 이견을 꼽자면 국회니까 한국 국회를 말한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낸 기자가 소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판결문에는 MBC의 음성인식 서비스가 "바이든은"이라는 음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도 판결 논리로 적시돼 있다. 그러나 MBC의 음성 인식 서비스는 편리를 위한 장치일 뿐, 음성분석 기능은 없다. 그저 유튜브 동영상의 자동 자막 생성기(CC)와 같은 것이다. 유튜브가 제공하는 자동 자막에 얼마나 엉터리가 많은지는 써 본 이들은 알 것이다. 네이버 클로바노트도 마찬가지다. 두 서비스 모두 사람의 귀보다 더 잘 들을 수는 없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개그 프로그램에서 '바보 왕자' 역할을 맡은 개그맨이 "스즈측뽕"이라는 유행어를 반복해 시청자들의 배꼽을 빠지게 한 적 있었다. 자신을 세자로 책봉해달라는 희망을 맥락 없이 내뱉어 웃음을 자아낸 것인데 캐릭터에 맞게 발음을 "세자책봉"이라고 하지 않고 "스즈측뽕"이라고 뭉개서 한 것이다. 인간은 알아듣는 "스즈측뽕"을 기계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 "스즈측뽕"을 알아듣고 박장대소하는 관객과 시청자들은 가짜뉴스에 현혹돼 웃은 것인가. 황당할 따름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흐즈므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말라"는 말을 이를 악물고 화를 억누른 채 옆 사람에게 할 때 쓰는 우스개 표현이다. 인간들은 알아듣는 "흐즈므르"를 과연 기계는 알아먹을 수 있을까? "스즈측뽕""흐즈므르"를 음성분석의 영역에 집어넣은들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인간의 우월성을 애써 외면하고 어째서 기계에 의존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판결문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정확히 무엇인지, 바이든 인지 날리면 인지가 담기지 않았다. 듣기 평가 후 2년 동안 결과를 기다려 온 국민은 허탈하기만 하다. 대통령실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그 모든 걸 포함해서 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것"이라는 동문서답을 내놨다. 그 모든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인데 그 모든 것이 포함됐다니. 대통령도, 대통령 참모들도, 재판을 걸어온 외교부도, 판사도, 본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판사는 문제의 발언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이렇게까지 옹호해 주었다. "사람의 음성은 (중략)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중략)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좀처럼 발생하기 어려운 '휘발'이 왜 특정 집단에는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가. 또 왜 이리도 너그러운가.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론인(言論人)과 언롱인(言弄人)

다시 리영희를 떠올린다.

지난해 1219, 국회를 찾은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기자들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질문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기자들의 면전에서 "민주당이 저한테 꼭 그거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고 그러던데요. 여러 군데에다가 공개적으로.."라고 면박을 줬다. 질문한 기자가 "그래서 질문 한 거 아닌데요"라고 짧게 항변했지만 한 장관은 개의치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질문 사주'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은 기자들은 끝내 한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기자를 우습게 아는 권력자들의 언행은 최근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해법을 논의하겠다면서 도쿄를 찾아 이른바 '오므라이스 환대'를 받았던 2023316, 정상회담 후 일본 공영방송인 NHK"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한국 측에게 요구했고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을 전달했다"라고 보도했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라던 윤석열 정부에는 폭탄 같은 보도였다. 그것도 다른 언론사도 아닌,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칭송했던 NHK가 쓴 기사이니 말이다.

NHK의 이 보도를 근거로 국내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굴욕외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당시 도쿄에 있었는데,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NHK의 보도를 수습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굴욕외교 논란이 확산하자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반응은 짜증으로 변해갔다. 한국 기자들에게 "일본의 언론플레이에 넘어가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는가 하면 "일본 언론이 매번 저런 식인 것 모르느냐", "외교 채널로 항의하겠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며칠 뒤에는 한국 기자들에게 일본 언론에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부화뇌동이라는 모욕적 표현에 항의하거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권력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기자들이 어째서 가만히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에게 1호기 안에서 따로 부름 받기를 기다리는 기자, 영부인과 셀카 찍기에 바쁜 기자, 모욕을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자가 허다하다. 이 땅에는 언론인(言論人) 대신 언롱인(言弄人)만 남은 것인가.

197110<창조>라는 잡지에 실린 리영희 선생의 '기자풍토종횡기'는 나의 기자 지침서다. 권력에 기생하고 약자에 군림하며, 촌지를 뜯어내고 지성은 퇴보하고, 권력의 발표를 조건반사적으로 받아쓰는,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기레기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 글이다. 지금 읽어도 50년 넘도록 어쩌면 그리 변한 것이 없는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우리는 언론인(言論人)과 언롱인(言弄人) 어디쯤 서 있는가.

권력이 되려는 기자들

출입처에 매몰된 기자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눈앞의 권력에 취약하다. 선거의 해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는 기자들이 줄을 선다. 자신이 출입했던 정치 집단에 들어가 권력이 되려는 기자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출마를 위해 정치판으로 직행한 폴리널리스트들의 실명이 이미 기사에 오르내릴 정도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는 불편부당하게 기자 직분을 수행했으니 정치를 해도 떳떳하다"라고 말한다.

지난 20195,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말을 여러 차례 끊으며 "독재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는 질문을 했던 KBS 기자, 그리고 같은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전 대통령에게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느냐"라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 경기방송 기자가 당시 문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다. 참고로 그 경기방송 기자는 그 후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문 전 대통령과 KBS 기자의 대담 직후 중앙일보에는 이런 사설이 실렸다.

- "(중략)...대통령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무차별로 공격하는 비이성적 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이다. 다수의 힘으로 겁박해 입을 틀어 막겠다는 발상이고, 결국 여론은 왜곡된다. 악플과 문자 폭탄, 항의 전화 앞에 시달리면 누구든 위축되기 십상이다. 이런 식의 배타성과 패권주의엔 청와대가 분명한 자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사설] '독재자' 질문 향한 융단 폭격 옳지 못하다 (중앙일보, 2019511)

<조선일보>도 당시 칼럼을 통해 문 대통령의 언론관을 이렇게 비판했었다.

- "(중략)...진행을 맡았던 기자는 '태도가 불량했다', '독재자 표현을 썼다'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중략)...지금 언론 상당수가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어서든 친()정권 성향이란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언론을 만나는 걸 극력 피한다. 그는 야당 때 "정치는 소통인데 박근혜 정부는 정치가 없다. 통하지 않고 꽉 막혀서 숨 막히는 불통 정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그 말이 되돌아오고 있다. 이럴 거면 '직접 언론에 브리핑', '24시간 공개' 등의 약속들은 대체 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만물상] 또 기자회견 없는 취임 2주년 (조선일보, 2019511)

이토록 문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비난했던 <조선일보><중앙일보>202211월 도어스테핑 충돌 후 나에게 가해진 각종 위협과 폭력에는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그 신문사 출신의 정치인들이 기자 선배랍시고 나에 대한 비난에 앞장서는 웃기고도 슬픈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나에게 예의가 없다고 비난하다가 돌연 배지를 달겠다며 총선 출마를 선언했고, 장관이 되겠다며 나섰다가 줄행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기자를 하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출입처였던 권력으로 이동한 기자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적이 그동안 있었던가.

참고로 2019511일자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을 쓴 기자는 이동훈 당시 논설위원이다. 이동훈 논설위원은 이 칼럼 작성 2년 후인 20216, 윤석열 캠프의 대변인으로 합류했다. 두 칼럼 모두 5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

다시 1979725. 법정에 선 30대 초반의 <동아일보> 기자 정연주는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을 남겼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한 게 죄라는 겁니다. 나무를 나무라고 이야기한 사실 (중략) 우리들 10명의 동지들, 선배들이 지금 당해야 하는 고통의 원인입니다. 이런 정말 말할 수 없는 처절한 코미디, 이것이 이 땅에 지금 서슴없이 함부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다시 19781126. 당시 반공법으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서대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리영희 선생은 200자 원고지 222매 분량의 긴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는 권력의 광기에 대해 중세 시대 갈릴레오 재판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다소라도 정치적 성격이거나 정부의 이해관계 또는 체면에 관련된 사건의 재판에서 법원과 법관이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반백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언론 자유는 여전히 사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자들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출국금지를 당하는가 하면, 기자와 언론사 압수수색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리영희를 필두로 김종철과 박종만, 안종필, 정연주에 이어 2024년에는 어떤 기자가 또 최후진술을 남기고 사라질 것인가. 권력은 또 어떤 언론을 법정에 세울 것인가. 대통령의 발언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참담한 권력과, 부끄러운 사법의 장막을 걷어치울 용기가 지금의 기자들에게 있기는 한 것인가. "걸레 같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지내는 것이 고문"이라던 김종철의 최후진술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진실을 추구하라"던 리영희 선생의 말도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1974년은 어느덧 2024년이 됐다. 50년 전 그들이 저항하던 자리에 우리가 서 있다. 우리는 지금 떳떳한가./이기주 MBC 기자 | 프레시안

잊지 말아야 할, 대구 지하철 참사 21주기

20032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일이다. 최초 사망자 192, 부상자 151명을 냈다. 항공 사고를 제외하면 역대 6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다. 범인 김대한은 대구 지하철 1호선 송현역에서 오전 930분께 열차에 탔다. 20여 분 후 가방에 든 휘발유에 불을 붙였고, 전동차 바닥에 던졌다. 당시 열차가 가연성 재질이었기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이날 오후 138분에야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다. 방화범과 지하철 관련자 8명은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김대한은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04년 지병인 호흡곤란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사건 이후 전동차 시트와 내장재 등은 불연재로 바뀌었다. 또한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비정기 대피 훈련을 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시사인

텃밭 몰린 '용와대' 출신...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보니

정당별로 순차적으로 공천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공천의 공정성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공천을 받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뉴스타파가 지역구별로 투표 성향을 분석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의 출마지를 살펴봤더니 이번 22대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약 3명 가운데 2명 꼴로 보수우세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험지로 불리는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대통령실 출신 인사는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인사의 2/3 정도는 이미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현역의원으로 있는 지역구를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21대 총선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지역과 비교할 때 쏠림 현상이 상대적으로 더 심해진 것입니다.

보수 텃밭 집중 공략한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들

국민의힘 지역구 공천 신청자 명단과 예비후보자 등록 현황을 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인사는 모두 37명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가운데 수석비서관급은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3, 비서관급은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등 12, 행정관급은 22명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들이 이른바 텃밭에 지원했는지 아니면 험지에 지원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먼저 253개 지역구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분석했습니다.

지난 21대 총선을 포함해 직전 4번의 총선(재보궐 선거 포함)에서 당선된 정당이나 당선인의 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각각 보수완전우세와 보수우세, 경합, 진보완전우세, 진보우세 등 5개 지역으로 분류했습니다. 만약 직전 4번의 총선에서 보수 또는 진보 성향 정당 가운데 어느 한쪽이 4번 모두 당선됐다면 완전우세지역, 3번 당선됐다면 우세지역, 보수와 진보가 각각 2번씩 당선됐다면 경합지역으로 분류합니다.

 

직전 4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면 완전우세지역, 3번 승리하면 우세지역, 보수와 진보가 2번씩 승리를 나눠가져가면 경합지역으로 분류합니다.

분류한 결과 이번 22대 지역구 총선에서 보수완전우세지역은 70, 보수우세지역은 32, 진보완전우세지역은 55, 진보우세지역은 61, 경합지역은 35곳으로 집계됩니다. 보수가 우세한 지역은 빨간 바탕색으로 표시했는데 주로 대구, 부산과 경상도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투표성향을 표시한 지역구 지도 위에 윤석열 정부 대통령 출신 인사 37명의 공천 신청 지역구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노란색 글씨로 표시된 지역구가 윤석열 대통령 참모 출신들이 나서는 총선 지역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들의 출마지역이 보수완전우세지역과 우세지역에 상대적으로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윤 정부 대통령실 인사 62%가 텃밭 출마, 험지 출마는 30%

윤석열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출마한 지역구 37곳을 투표 성향에 따라 다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실 출신 22대 총선 출마자 37명 가운데 17명이 보수완전우세지역에 6명이 보수우세지역에 분포돼 있습니다.

보수완전우세지역에 몰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인사가 17, 보수우세지역에 6명으로 이 두 지역을 합치면 전체의 62%가 됩니다.

진보완전우세지역에는 3, 진보우세지역에는 8명으로 이 두 지역을 합친 이른바 험지지원자는 약 30%에 그쳤습니다. 경합지역에는 3명이 지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 출신들은 험지보다는 당선되기 쉬운 텃밭을 훨씬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 선거에서 보수계열 후보가 모두 당선됐던 구미시 을 선거구에는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과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 2명이 동시에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참모 출신 출마자들의 공천 신청지역 37곳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현역의원으로 지키고 있는 지역구가 24곳으로 전체의 65%나 됩니다.

 

청와대 참모 최다 출마 21대 총선텃밭 vs 험지 비율은 5248

역대 가장 많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출마하면서 논란이 일었던 문재인 정부 때는 어땠을까요?

문재인 정부 4년 차였던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수석비서관 4명과 비서관급 19, 행정관급 23명 등 모두 46명이 지역구 총선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진보완전우세지역에 16, 진보우세지역에 5, 보수완전우세지역에 10, 보수우세지역에 9, 경합지역에는 6명이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진보가 우세한 지역 출마자가 21, 보수가 우세한 지역 출마자가 19명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의 지역구 분포 현황. 진보가 우세한 지역과 보수가 우세한 지역 수가 2119로 비슷합니다.

투표 성향 분석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의 지역구 분포

'시스템 공천'일까 친윤 공천일까

지난 21대 총선과 이번 22대 총선 지역구 투표 성향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에서 과반인 163석을 가져가면서 진보우세지역이 다소 늘어났습니다.

보수우세:진보우세 비율이 117:97에서 102:116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진보우세지역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보수가 우세한 지역이 감소했는데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출마자들의 지역구 가운데 2/3(62%)가 보수가 우세한 지역에 몰려 있고 65%가 국민의힘 현역의원 지역구에 몰려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험지보다는 텃밭에 편중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 가운데 텃밭에 출마한 비율은 전체의 42%였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위원이 있는 지역구 출마자도 41%에 그친 것과 비교됩니다.

지난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당시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잇따른 출마에 대해 친문 국회를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의 안전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냐며 비판했었습니다.

그러나 공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21대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46명이 도전해 28명이 공천을 받았고 이 가운데 당선된 사람은 18명이었습니다. 지금(219일기준)까지 공천이 확정된 '용와대'출신은 4명이고 탈락이 확정된 사람은 2명입니다. 대통령실 왕비서관으로 불리던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이 보수완전우세지역인 해운대갑 지역에 단수 공천을 받는 등 4명이 단수 공천을 받았고 위안부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김성회 전 종교다문화비서관 등 2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국민의힘이 강조하는 이른바 시스템 공천이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지 아니면 현역의원을 몰아낸 자리에 친윤을 채워 넣는 식의 윤심 공천이 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뉴스타파 최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