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사회적 기업 지원 대폭 줄인다
윤미향 향한 보수언론의 친북 비판, 번지수 틀렸다
여의도 국회대로 메운 교권 회복-공교육 정상화 목소리
"일본은 폐 끼치지 말라"던 앵커의 기막힌 변신
교사들 분노에도 '색깔론' 적용? "아예 우리 목소리 안 듣는구나…“
‘간토대학살’ 일본에 한마디 않던 정부·여당…국내용 이념공세는 열일
해방 뒤 10년 육군총장 모두 친일…‘육사 뿌리’가 광복군 거부
김학의 사건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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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추모는 방과 후에 해라"? 한 언론의 황당한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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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사회적 기업 지원 대폭 줄인다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023년∼2027년) 발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그간 취약계층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온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인다.
고용노동부는 1일 정부 지원체계 전면 개편을 골자로 한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023년∼2027년)’을 발표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온 사회적기업은 영리기업과 비영리 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직접지원 축소’다. 그간 직접지원 중심의 획일적 육성정책으로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의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낮은 데다 지원금 부정수급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내년 예산안에서 사회적기업 지원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노동부 소관 사회적기업 예산은 2021년 1828억원, 2022년 1926억원, 2023년 2022억원으로 증가 추세였는데, 이를 깎겠다는 것이다. 김성호 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전날 설명회에서 “대부분 인건비 예산이 삭감됐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삭감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감소 폭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는 대신 ‘간접지원 내실화’에 방점을 뒀다. 사회적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생산품이나 용역의 민간판로를 확대하고 투자유치·정책자금 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존 인건비 등 직접지원은 고용촉진장려금, 장애인 고용장려금 등 일반 중소기업 지원 제도로 통합한다. 노동부는 내년 예산안에 198억원을 추가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목적을 우선하는 사회적기업을 정량적 성과로만 평가해 사업을 축소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한겨레>에 “사회적 기업은 공공이익을 위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재정사업의 하나로, 이윤추구보다는 취약계층 고용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며 “이를 정량적 성과로 측정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도 “보조금 횡령이 일어났다면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소하면 될 일이지, 이를 사업 축소의 근거로 드는 건 본말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윤미향 향한 보수언론의 친북 비판, 번지수 틀렸다
총련- 일본 시민단체 공동 주최... 반 세기 넘게 추모해 온 장소, 왜 문제인가
▲ 지난 2일 조선일보 1면 보도ⓒ 조선일보
<조선일보> 윤미향, 친북 총련 '간토대지진 추모식' 참석… 한국 행사는 불참
<중앙일보> 윤미향, 친북 단체 총련서 주최한 '간토대지진 추모식' 참석
<동아일보> 윤미향, 친북단체 총련서 주최한 '간토대지진 희생자 추모식' 참석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주최한 '간토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 참석하자 보수 언론이 위와 같이 비판에 나섰다. 이들 언론은 북한 훈장을 받은 총련 인물이 참석했고 추도문에서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지칭한 점을 지적하며 윤 의원을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일 지면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윤 의원이 친북 성향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윤 의원 주변인의 친북 행적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며 윤 의원의 배우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라는 점과 윤 의원의 보좌관이 국보법 위반으로 국정원 내사를 받은 전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도에 국민의힘은 3일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를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칭하는 반국가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이런 윤 의원을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맞나"고 비판하면서 "반국가단체와 함께한 윤 의원 제명에 나서야 한다"라며 윤 의원의 제명을 주장했다.
일본 시민사회가 조선인 학살 추모한 장소
윤 의원이 방문한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은 사실 역사적인 장소다. 지난 1963년 '일조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조사해 10년간 증언과 자료를 수집한 뒤 1973년 간토대지진 50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모금을 통해 추모비를 건립했기 때문이다. 추모비 건립 당시 도쿄도의회 각 당 간사장이 대표의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매년 9월 1일마다 지난 50년 동안 일본 시민단체가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식에서 일본 시민단체들은 과거 일본의 잘못을 반성하고 일본 정부의 학살 책임과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현직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를 제외하면 40여 년간 도쿄도지사들 역시 해당 집회에 꾸준히 추도문을 보내왔다.
요코아미초 공원이야말로 일본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해 오고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한 의미 있는 장소인 셈이다. 장장 반세기 동안 일본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간토대지진 학살을 추모해 온 요코아미초 공원에 친북 성향의 총련이 행사를 벌였고 그 행사에 윤 의원이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받아야 할까.
더군다나 해당 행사는 총련이 단독 주최한 것이 아니라 일본 시민단체인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강제연행조사단) 역시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다. 도쿄강제연행조사단은 지난 2004년 발족한 후 일제하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간토대지진, 도쿄대공습 조선인 피해 조사, 교과서 분석, 일본 교과서 분석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단체다.
니시 키요시 도쿄강제연행조사단 대표는 이날 고덕우 총련 도쿄본부위원장과 함께 추도사를 읽으며 "조선인 학살은 현실의 문제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도쿄도지사가 추도문을 송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수언론의 잣대대로라면 과거사 반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본 시민단체 역시 총련과 공동으로 추모행사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친북이라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비판 대상, 침묵하는 윤 정부 아닐까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부근에서 ‘제1586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열렸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의원이 3년만에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은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활동 당시 기부금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뒤 1심에서 검찰이 제기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 권우성
또한 윤 의원은 총련이 주최한 추모식뿐만 아니라 같은 장소인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실행위)'가 주최한 추모식에도 참석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해당 실행위에도 총련이 포함되어 있다.
해당 행사는 앞서 언급한 일조협회 등이 1974년부터 지난 50년간 실행해 온 추모식으로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추도문 거절한 도쿄도지사, 조선인 死者(사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제목의 미야가와 야스히코 실행위 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실행위의 추모식은 1일 오전 11시, 총련과 강제연행조사단의 추모식은 오후 1시에 시작되었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두 추모식 모두 수백 명의 시민이 계속 함께 했다고 한다. 그중 윤 의원도 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보면 오히려 윤 의원이 이 행사에 참석해 지난 50년 동안 과거사를 반성해 온 일본 시민들과 연대함으로써 과거의 비극을 돌이켜보고 한일 양국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탠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 비판해야 할 대상은 윤 의원이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 내부에서 간토대지진 학살을 문제 제기하고 추모에 나섬에도 연대는커녕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가 아닐까.
오마이뉴스 박성우(ahtclsth)
여의도 국회대로 메운 교권 회복-공교육 정상화 목소리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많은 교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은 폐 끼치지 말라"던 앵커의 기막힌 변신
[민언련 신문방송모니터 보고서] 일본 오염수 방류 180도 말 바꾼 조선일보·TV조선
일본 정부가 8월 24일 나라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습니다. 134만 톤의 핵 오염수는 3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해양을 오염시키고, 바다 생태계와 수산물 안전성의 위협할 예정인데요.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언론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며 해양 오염에 대한 시민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불과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의 위험성을 보도하던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오염수 방출이 없다고 주장하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를 비판하는 보도까지 내놨는데요. 이젠 '과학'을 앞세워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괴담'이라 일축하며 오염수의 안정성을 홍보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선일보·TV조선의 상반된 후쿠시마 오염수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2년 전 조선일보 '일, 성의가 있다면 방류를 늦춰라'
▲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 여론이 높다고 보도한 조선일보(2021/4/14)ⓒ 조선일보
2021년 4월 13일 일본 정부가 저장 용기에 보관 중이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2023년부터 30년간 바다에 배출한다고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일본의 오염수 정화 설비로는 삼중수소를 걸러내지 못한다며 오염수 방류를 우려했습니다.
<방사능 논란에도…일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2021/4/14 이영완·유지한 기자)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당장 강하게 반발"하고 "일본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높다"며 "후쿠시마 인근 해안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의 5배에 이르는 방사성물질 세슘이 검출돼 일본의 처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도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을 거쳐 방류의 영향이 우리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요. 조선일보는 일본이 "주변국들과 직접적인 논의를 한 적"도 거의 없어 "해상 방류 이후에도 감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잖다"며 우리나라가 직접 검증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같은 날 사설 <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인접국 불안 배려하지 않았다>(2021/4/14)에서도 "오염수의 70%엔 삼중수소뿐 아니라 기준치를 넘는 세슘, 스트론튬 등 다른 방사성 물질도 포함돼 있"어 위험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원전 오염수 보관 장소가 없어서 문제라면 "주변 주민들 동의를 구해 부지 밖에 보관"하라며,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3년이기 때문에 30년 정도만 더 보관하면 80% 이상은 사라"지니 "일본 정부가 성의만 있었다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방류를 뒤로 늦출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일본 정부가 다른 대안이 전혀 없어 불가피하게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고 꼬집었는데요. 후쿠시마 오염수의 삼중수소와 기타 핵종에 대해 '문제 삼기 힘들고,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현재와는 정반대 보도입니다.
TV조선, 삼중수소 못 거르는 ALPS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 비판
▲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안전하지 않다고 보도한 TV조선(2021/4/13)ⓒ TV조선
지금과 상반된 태도를 보인 것은 TV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2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 알려진 당일 TV조선은 <처리했다지만...70%는 '방사성 물질 검출'>(2021/4/13 송무빈 기자)에서 "문제는 '얼마나 안전할 것인가'"라며 "일본 정부는 이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부르며 안전하다는 점을 홍보하는데 바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고 짚었습니다.
일본이 ALPS(다핵종제거설비)로 방사능 농도를 줄인 후 물에 희석해 방류한다고 하지만 정화 이후에도 "오염수엔 삼중수소가 남게" 된다며 "결국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비판했는데요.
TV조선은 <"1㎞ 앞바다 방류"...일본 어장만 보호?>(2021/8/25 송무빈 기자)를 통해 일본의 방류 방법도 꼼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이 안전하다고 한 "근거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고, 바닷속 방류 역시 오염수를 더 빨리 내보내기 위한 꼼수"라고 반박한 전문가 의견도 전했는데요.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더 빨리 내보내기 위해 1㎞ 떨어진 곳에서 배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의미도 없고, 차이도 없"는 행위로 "어민들의 피해 역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일갈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TV조선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오염 처리수'라 지칭하며 전문가들도 인정한 마실 수 있는 안전한 물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신동욱 앵커의 시선/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8월 28일)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 후 일본이 발표한 삼중수소 수치는 정상"이며 "바닷물은 기준치 70분의 1, 물고기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안전성을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신동욱씨는 "누구보다 막대한 피해를 입는" 일본 국민이 평온한 것은 바보라서가 아니라며 "과학과 이성, 합리적 판단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TV조선이 2년 전엔 과학과 이성을 배제한 채 바보처럼 보도했다는 것인지, 상반된 태도에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핵 오염수 7개월 만에 온다더니...이제는 4~5년?
후쿠시마 오염수 위험성에 대한 TV조선의 상반된 태도는 우리 해역에 오염수가 언제 도달하는지 설명한 보도에서도 반복됐는데요.
2년 전엔 <7개월 후 제주 앞바다에... "즉시 중단하라">(2021/8/25 박상현 기자)에서 "오염수는 해류를 타고 동해안으로 들어"오고 "빠르면 7개월 뒤에는 제주 앞바다까지 도달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며 "국내 수산업에 엄청난 타격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보니 "어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나오지 않아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보도했습니다.
▲ 후쿠시마 오염수 도달 시기를 다르게 보도한 TV조선(2021/8/25, 2023/2/16)ⓒ TV조선
하지만 최근 TV조선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시 5년 뒤 제주에, 삼중수소 검출되기 힘든 양">(2월 16일 윤재민 기자)에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4~5년 뒤 우리나라 제주 해역에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0년 후 오염수 속에 들어 있는 삼중수소 농도는 0.001베크렐 수준으로 예측되는데, 분석기기로도 검출되기 힘든 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7개월 만에 빠르게 제주 앞바다에 도달해 국내 수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검출도 어려운 '극소량'이 도착해 안전하다는 것인데요. 해류의 움직임은 변화가 없는데, 왜 TV조선의 보도 논조는 크게 달라진 것일까요? TV조선은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습니다.
벌꿀까지 걱정하더니, 일본산 수산물 수입 증가 홍보
원전 오염수 배출로 인한 식품의 안전성 우려에도 보도 태도 변화가 있는데요. 2년 전 TV조선 <후쿠시마서 또 기준치 3배 '방사능 우럭'…"이래도 오염수 배출?">(2021/4/20 송무빈 기자)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세슘에 노출된 우럭이 잡혔다며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또 한 번 명확"해졌다고 염려했습니다.
"1956년, 미나마타 화학공장이 수은 섞인 폐수를 바다"에 버려 수은 중독으로 최소 314명이 숨졌다며 "이대로라면, 세슘에 삼중수소가 더해"진 만성 독성을 가진 수산물이 만들어지게 되고, "우리 몸의 세포를 피폭시켜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생긴다는 전문가 의견도 전했습니다. 이어 <후쿠시마 인근 생산 벌꿀서 기준치 초과 세슘 검출>(2021/7/23 이유진 기자)에서는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벌꿀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돼 지역에서 "판매되던 벌꿀을 회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며, 후쿠시마 원전 주변 방사능 오염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현 벌꿀의 세슘 검출까지 걱정하던 TV조선은 이젠 오염수 방류도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TV조선 <일 수산물 수입 급증...대지진 전 80%회복>(3월 23일 김충령 기자)은 불안감이 여전하다면서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절반으로 떨어졌던 수입이 "2010년의 80% 수준까지 회복했"으며 수입액이 1억 7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일본 수산물을 먹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원전 오염수 배출로 수산물 불안감에 대한 국민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일본 수산물이 잘 팔리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인데요. 수산물 수입액이 증가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시의적절한 보도였는지 의문입니다.
TV조선, 국내 원전 언급은 삼중수소 방출 '물타기'
조선일보는 한술 더 떠 우리나라 원전에서 방출하는 삼중수소가 더 많지만, 안전성 논란이 없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도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사설/후쿠시마 가서 수산물 수입 막겠다는 야의 허무맹랑 '정치 쇼'>(4월 3일)는 "작년 한국 원전의 삼중수소 배출량이 후쿠시마 방출 예정량의 10배"라며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괴담 장사"라고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TV조선 <"한·중 비판 따위는"...일, 적반하장>(2021/4/14 송무빈 기자)은 일본 내부에서 "한국이나 중국이 방사능 물질을 더 많이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일본 언론 역시 "우리나라 등에서 삼중수소를 더 많이 버리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같은 일본 정부 자료를 인용하면서 각기 다른 수치를 제시해 정부와 언론이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냔 논란을 낳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국제사회가 일제히 일본의 무책임한 행동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책임을 돌리는 이런 주장은 일본 내에서도 수용되지 않는다고 짚었는데요.
이런 TV조선의 주장에 따르자면, 일본 내부에서도 지적됐던 무책임한 '물타기' 주장을 조선일보가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타기' 주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는 무엇을 위해 이런 보도를 지속하는 것일까요. '과학'을 내세우며, 괴담 장사를 하는 게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안보' 차원에서 고민하자더니, '괴담' 운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려를 두고 조선일보는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걱정을 '괴담'이라 치부하며 '과학'과 '상식'이 "농락당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조선일보 <발언대/일 원전 오염수 '인간 안보' 차원에서 대처해야>(2021/6/3 정길호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는 오염수 속 "삼중수소는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을 거쳐 인체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는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인간 안보'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염수 배출이 "안전, 환경, 복지 등의 측면에서 인접국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위협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방류 계획을 발표"한 일본 정부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인간 안보' 차원에서 오염수의 악영향을 우려하던 과거 조선일보는 현재 조선일보 기준으로 보자면, 국민 다수를 홀리고 '괴담'을 증폭시킨 당사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과 상식, 그리고 오염수를 향한 국민 우려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를 대하는 조선일보 입장의 변화만은 명확해 보이는데요. '정치적' 논란으로 떠밀지 말고, 국민 안전을 위한 보도란 무엇인지 조선일보의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권 따라 말 바꾸는 볼썽사나운 조선일보·TV조선
광우병 사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까지 바뀌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정권에 따라 말이 바뀌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TV조선 신동욱 앵커는 <신동욱 앵커의 시선/볼썽사납습니다>(4월 10일)에서 국제원자력기구가 "'오염수 방류와 모니터링 계획을 신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음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하면서까지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것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보는 사람만 낯을 붉혀야 하는 장면"이라며 "괴담수준의 주장, 괴담정치"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2년 전 <신동욱 앵커의 시선/일본 본색>(2021/4/14)은 오염수 방류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를 무시하고, 방사성 물질 해양오염 문제를 무책임하게 이웃에 떠넘긴 폭거"라며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보다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는데요. 일본이 "다른 나라에 폐 끼치지 말고, 다른 나라의 상처를 배려하라"는 것을 못 배웠다며 날이 선 비난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TV조선의 신동욱 앵커는 동일인인데요. 일구이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닥으로 추락하는 언론의 신뢰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 오염수 방류를 앞둔 일본을 비판한 신동욱 앵커(2021/4/14)ⓒ TV조선
일본의 무책임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는 '괴담'이 아닙니다. 한겨레 <광우병 꺼내든 괴담일보의 속내>(7월 24일 김진철 기자)는 "괴담의 반대편에는 과학이 있다는 듯" 일부 언론에서 "어느덧 과학 수호자가 되기라도 한 양 볼썽사납게 과학을 외쳐"대지만, "광우병이든 핵 오염수든 논란이 많은 사안일수록 과학에 앞서 상식을 먼저 짚어보는 게 타당하다"고 짚었는데요.
"핵 오염수가 드넓은 대양에 뒤섞여 극미량으로 희석될지라도 자연에든 인간에게든 좋을 턱이 있겠"냐며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순순히 수용하고 옹호까지 하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중시한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권이 바뀌니 보도 태도가 뒤바뀌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이런 손쉬운 '변절'은 그들에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보여준 결과입니다. 과학과 상식은 정권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해양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것은 '괴담'이 아닌 '상식'이자 '과학'입니다. '괴담' 운운하며 국민 안전에 눈 감으려면, 조선일보와 TV조선은 2년 전 자신들이 '괴담 선봉자'였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모니터 대상 : 2021년 4월 1일~2023년 8월 31일 조선일보, TV조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보도
교사들 분노에도 '색깔론' 적용? "아예 우리 목소리 안 듣는구나…"
'학습권 침해' 논란엔 "재량휴업이 오히려 학습권 보장"
악성 민원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다 세상을 떠난 서이초 교사의 49재 날인 4일, 교육부가 단체연가 및 재량휴업 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공교육 멈춤의 날'을 저지하고 나선 가운데 교육현장에선 '교육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교사들은 이날 연가 사용, 집회 참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이초 초등교사를 예정대로 추모할 계획이다.
애초 이날 예정됐던 대규모 집회는 교육부의 강경대응 기조 속에 지난 2일 주말집회로 대체됐지만, 일부 교사들은 집회 감행을 위한 주최단체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를 구성해 이날 오후 4시 30분께에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천, 충북, 대전, 충남, 대구, 광주, 제주 등 각 지역에서도 같은 시간 지역 교육청 등 장소에서 추모집회가 열린다.
오후 3시에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고인의 49재 추모제가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리기도 한다. 고인의 유족들이 서이초 현장에서 49재를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를 서울시교육청 측이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추모제 행사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용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과 고인의 학교 선후배 등이 참석한다. 조 교육감은 앞서 지난 25일 "오는 9월 4일을 추모와 함께 '공교육을 다시 세우는 날'로 정하고자 한다"라며 공교육 멈춤의 날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한편 앞서 지난달 24일 교육부는 "법과 원칙에 의거해 학교 현장의 학사운영과 복무관리가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대응할 계획"이라며 이른바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 교사들에겐 최대 파면 및 형사고발에 준하는 조치까지 취해질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9월 4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던 전국 500여개 학교가 재량휴업 지정을 철회, 현재는 서울 10여개 등 전국 30여개 학교만이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한 상태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단체행동이 '학생들에 대한 학습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지만, 교육 현장에선 공교육 멈춤의 날을 향한 이 같은 강경대응 기조가 당위성 측면으로도, 효율성 측면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서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의 대학원 동기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국민의힘 측에서 추모집회에 대한 '전교조 개입설' 등을 꺼내들면서 현직 교사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앞서 지난 3일 국회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과 관련한 당의 대응이나 입장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어느 특정 단체로 인해 교육 현장과 교실이 정치투쟁으로 변했고, 선생들이 노동자를 자처하는 단체 때문에 현장 망가진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국민의힘, 서이초 사건에 "선생이 노동자를 자처하는 단체 때문“)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20대 초등교사 A 씨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 얘기가 나온 이후 안 그래도 (참여 중단을 경고하는) 지시사항이 굉장히 많이 내려와 압박을 받았다"라며 "여기에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치색 같은 것까지 언급하니까, 아예 우리 목소리는 듣지도 않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라고 말했다.
관련하여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진행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모 집회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주최를 한 것으로, 교직단체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49재를 맞이한 공교육 멈춤의 날도 교직단체에서 주관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부터 현재 7차 집회까지 진행된 주말집회는 물론 공교육 멈춤의 날 연가 투쟁 등도 모두 교사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서울교사노조, 전교조 등 주요 교육단체들 또한 해당 활동에 연대하고 있지만, 집회를 주최하거나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등의 주도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노조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9.4 공교육 멈춤의 날'은 서이초 사건 직후인 지난 달 21일 온라인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시작됐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난 고인의 49재에 '연가나 병가를 내서 추모행동에 나서자'는 한 교사의 말이 호응을 얻어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집단행동에 나서자는 논의로 확장됐다.
이형민 전교조 대변인 또한 지난 8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서이초 사태와 관련한 대부분의 행사는 초등교사 커뮤니티 등을 통해 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것이 맞다"라며 "교사노조들도 당연히 연대하는 입장이지만, (비노조 교사들의 의견을 고려해) 오히려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한 바 있다.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 부위원장은 교육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대해서는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아마 2006년도인가 특정 노조에서 연가투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것을 제2의 또 다른 (노조) 연가투쟁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약간 이것을 불법으로 낙인찍고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현재 집회 주최 측에선 정파성 논란을 고려해 여·야 정치인은 물론 노조를 포함한 모든 교육단체의 지원이나 공식 연대활동, 현장 피켓 등도 거부하고 있다는 게 장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한편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서울 천왕초등학교 소속 정용주 교장은 학교 측이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에 대응해 이날을 재량휴업일을 지정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 보호, 교육과정 파행을 막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천왕초는 교육부의 '재량휴업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최종 결정한 전국 30여개 학교 중 하나다.
특히 정 교장은 "학교 유치원을 포함해서 교사들 대부분이 학교장의 연가, 병가 결재와 상관없이 9월 4일 공교육 멈추는 날에 동참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라며 "퇴임하신 강사 분들도 교사들의 뜻에 동참하겠다고 강사로 오지 않겠다는 분이 대부분"이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출근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학생의 안전 학습권 보호를 위한 학교장으로서의 최선의 결정은 임시 휴업일을 지정하고 대체 수업일을 확보하여서 일단 교육과정의 파행을 막는 것"이라는 게 정 교장의 설명이다.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초등학교 앞에 '9·4 공교육 회복의 날을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해당 학교는 4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했다.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인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연가 사용 등을 통해 집단행동을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이어 정 교장은 "오늘 재량 휴업일 실시하지 못하는 학교는 대부분 파행을 예정하고 있다"라며 "(해당 학교들은) 재량 휴업일을 안 했으니까 징계는 받지 않겠지만 (실질적으로 수업을 하지 못한) 오늘이 수업 일수에는 포함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교육과정을 파행시키고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할 경우 학교 측에선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방학일수를 하루 줄이는 등 대체 수업일을 확보할 수 있다. 8만여 명에 달하는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겠다'고 공식 서명한 상황에선 오히려 재량휴업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 수업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교육부는 강경대응 방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추모는 교육부 역시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은 다른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연가 및 병가 사용 시 징계조치에 대해서도 "징계 규정에 맞춰 판단하겠다"고 엄중 조치 입장을 유지했다.
프레시안 한예섭 기자
‘간토대학살’ 일본에 한마디 않던 정부·여당…국내용 이념공세는 열일
지난 1일 오전 일본 도쿄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1923년 도쿄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 행사가 열렸다. 추도비 앞에 참석자들이 바친 꽃이 올려져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주최로 일본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겨냥해 “반국가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윤 의원이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사실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국민의힘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윤 의원을 제소했다.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 이념 전쟁으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윤 대통령과 여권이 윤 의원을 지렛대 삼아 반전을 꾀하려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100년 전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 간토대학살을 놓고 일본 정부에 사과나 유감 표명을 요구하지 않고 침묵해온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반공 공세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 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총련이 주최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윤 의원이 참여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조총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며 “(윤 의원의 총련 행사 참석은) 헌법 가치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국무위원들도 가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 심사에 출석해 “조총련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북한의 대리기관이고 북한의 주일대표부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조총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윤 의원은 조총련 행사 참석과 관련해 통일부에 사전 접촉 신고를 한 바가 없다”며 “윤 의원이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 주민을 접촉하기 앞서 통일부에 신고하게 돼 있다. 북한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도 북한 주민으로 간주되는데, 이에 따라 총련도 신고 대상이라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여당도 일제히 윤 의원 때리기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날 윤 의원의 징계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김기현 당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은 북한 조선노동당 간부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며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 대표는 윤 의원과 더불어민주당과의 관련성을 부각하려고 애썼다. 김 대표는 “윤 의원은 (과거) 민주당 소속이었고 지금도 민주당과 공생 관계”라며 “민주당은 (윤 의원) 제명 등 단호한 조치에 동의해 달라”고 말했다.
윤 의원이 국회사무처 등에 국외 출장 협조 요청을 하면서 행사를 주최한 총련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그가 일본 출국에 앞서 국회와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공문에는 행사 주최를 총련이 아닌 ‘한국 간토학살 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로 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행사 포스터에 총련 주최라고 써 있고, 위원회(가 적힌 문구)는 포스터 어디에도 없다”며 “사기성 출장”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역사인식이 부재한 정부·여당의 색깔론 공세를 비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간토학살 추모는 조총련뿐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가 주도해 수십년간 해온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학살에) 침묵했음에도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연대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행사에는 간토대지진 유족들도 참석했는데 이들을 모두 국가전복세력으로 모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간토학살 100주년 추도사업추진위 관계자도 “간토 대학살 100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진상규명, 특별법은커녕 메시지 하나 내놓지 않을 때 재외동포들은 진상규명과 추모사업에 애썼다”며 “오랜 세월 이어진 추모에 참석한 것을 왜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간토 일대에 발생한 규모 7.9의 강진으로, 당시 일본 경찰이 개입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일어났다. 하지만 한·일 정부 모두 이 문제와 관련한 진상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대통령실도 이에 대해 일본의 사과 등을 요구한 적이 없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해방 뒤 10년 육군총장 모두 친일…‘육사 뿌리’가 광복군 거부
홍범도 흉상 논란에서 뜯어보는 육사의 정체성
지난 2018년 3월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육군사관학교(육사)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육사 정체성을 고려해 학교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육사의 정체성’은 뭘까.
육사 총동창회는 지난달 29일 낸 입장문에서 “육사는 6‧25전쟁, 각종 대침투작전 등에서 1475명의 선배가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다 전사한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조국수호 반공전사’ 양성이 육사의 본질적 기능이자 정체성”(육사 출신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란 주장이다.
육사 누리집은 1946년 5월1일 국방경비대사관학교 개교를 육사 개교라고 설명한다. 국방경비대는 해방 후 미 군정이 만든 군사조직이다. 이 학교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1800명의 사관후보생을 배출했는데, 상당수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었다.
육사는 1951년 10월, 미 육사인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4년제로 다시 개교했다. 이전에는 45일~6개월 단기 교육 과정이었다. 미 육군 제8군 사령관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4년제 육사 재개교 때 큰 도움을 줘서 ‘육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지난 2011년 1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육사에서 기념행사를 하려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육사는 “신흥무관학교가 최초의 독립군 양성소란 점은 인정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창설에 대한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다”며 “기념행사를 육사에서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2011년 1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육사 내 기념행사 개최를 협조 요청하자 육사가 거절한 공문.
왜 육사는 해방 이전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일까.
역사를 1945년 해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국립서울현충원 묘비에 ‘군의 아버지’로 적힌 이응준, 백선엽 등 한국군 원로들의 친일 행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역대 육군참모총장을 보면, 1대(1948년12월15일~1949년5월8일) 육군참모총장 이응준부터 10대(1957년5월18일~1959년2월22일) 육군참모총장 백선엽까지는 10명 모두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일본군이나 만주군 장교 출신이다.
11대(1959년8월7일~1960년5월22일) 송요찬부터 21대(1975년3월1일~1979년1월31일) 이세호까지도 일본군 장교나 부사관, 간부후보생 출신이다. 1948년부터 1979년까지 30년이 넘도록 역대 21명의 육군참모총장이 모두 일본군 혹은 만주군 출신이었다.
국군과 육사의 모태가 미 군정이 만든 국방경비대란 주장에 대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헌법 전문에 따라 정체성을 독립군, 광복군까지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 결과물이 2018년 육사 안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이다. 흉상들은 국군과 육사의 뿌리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아닌 독립군, 광복군, 신흥무관학교라는 상징이다.
육사의 홍 장군 흉상 철거 방침은 국군과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자르려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 전쟁이다. 이미 추앙해온 ‘육사의 아버지’(밴 플리트)와 ‘군의 아버지’(이응준)가 있으므로 ‘소련 공산당원 홍범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육사의 정체성이 ‘반공 전사 육성’이란 일부 주장과 달리 육사 누리집은 교육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국가 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폐지 줍는 노인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함께 걸은 여성. 연합뉴스TV 보도화면
안중근 의사가 '조선족'?…역사 왜곡 시도하는 中
연합뉴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5일 중국 최대 포털인 바이두 백과사전이 윤동주 시인에 이어 안중근 의사를 소개하면서 '조선족'으로 표기한 것과 관련해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바이두가 윤동주와 관련해 몇 년간 '민족'을 '조선족'으로 명시했다"며 "최근 바이두를 검색하던 중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민족집단'을 '조선족'으로 표기한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대표 독립운동가들을 중국의 인물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와 관련해 바이두에서 '민족'을 '조선족'으로 표기한 것을 발견한 후, 꾸준히 항의해 윤봉길 의사의 '조선족'을 없애는 성과도 있었다"며 "체계적으로 준비해 강하게 대응한다면 왜곡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해병전우회 "국가와 조직이 우선…싫다면 팔각모 벗어라“
작금의 행태에 강력한 경고…명예와 전통을 더 이상 무너뜨리지 마라"
"사령관부터 이병까지 이에 걸맞는 해병대 리더십과 충성심 발현해야"
지난달에도 '결자해지' 촉구하는 입장 발표…심상치 않은 예비역들의 기류 반영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의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해병대 전우회는 5일 고 채모 상병 순직과 관련한 항명 파문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 "국방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조기에 법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본 사안을 정리하고 해병대가 다시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병대 전우회는 이날 '해병대 명예와 전통을 더 이상 무너뜨리지 마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작금의 행태에 해병대 수천여분의 호국영령과 모든 전우들이 깊은 실망과 함께 강력한 경고 및 항의의 메시지를 보낸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우회는 "자신보다 국가를, 해병대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면서 "이것이 싫다면 빨간 명찰을 떼어버리고 당장 팔각모를 벗어라. 이것이 지금까지 해병대가 존재해 온 이유이자 해병대만이 가지는 DNA"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병대는 충성스런 군대로 국군통수권과 지휘계통을 최고 준엄한 가치로 여기며 목숨을 바쳐 지금의 명예를 얻었음을 직시해야 한다"며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이병에 이르기까지 이에 걸맞는 해병대 리더십과 충성심을 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 이 시간에도 눈을 부비며 서북도서에서 김포, 포항,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군사대비태세 유지 및 현행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해병들의 전투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며 국민적 신뢰 하락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전우회는 "해병대 100만 예비역들은 해병대 명예 회복과 위기 극복을 위해 불필요한 언행을 자제해 주길 당부하며 무엇이 해병대를 위한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사려 깊게 행동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병대 전우회는 지난달 14일에도 입장문을 통해 공정하고 외부 개입 없는 수사와 군의 결자해지를 촉구한 바 있다.
전우회가 잇달아 두 차례의 성명을 낸 이유는, 최근 해병대 예비역들이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을 옹호하며 단체행동까지 촉구하는 등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나무사랑 개병전우회...동네에서 못되 쳐먹은놈 비슷한 폼을잡고 무조건 니 몇기냐?로 시작한다.... 빨갱이 옷입고 교통통제하고 밤에 야광등 들고 폼잡고 다니는 걸 보면 동네 양아치와 구분이 안된다...... 제일먼저 없애야할 조직은 똥별들 계모임 성우회와 빨갱이 민나시 해병전우회는 없어져야 한다.
-jhrhee 국가와 정권을 구분 못하는 무식하고 한심한 소리하고 자빠졌다.
-zmzm 국가는 국민입니다. 국가가 지금 박단장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고 행동하는 양심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해병과 그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 수사단장을 지키고자 하는 겁니다. 이걸 인정 못하는 해병이라면 팔각모를 벗고 빨간명찰을 때 주시기 바랍니다.
"1억 투자했더니 월 90만원이 계좌에" 개미 몰리는 월배당 ETF
#비상금 3000만원을 묵혀둘 곳을 찾던 회사원 김모씨(39)는 지난달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 (10,355원 ▲55 +0.53%) ETF에 투자했다. 월배당을 지급하는 이 상품은 8월 말 90원의 깜짝 분배금을 공시했다. 월배당 27만원(세전)을 받게 된 김씨는 "앞으로도 적립식으로 계속 투자할 것"이라며 "분배금 재투자로 복리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배당성장주에 투자하는 ETF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매달 배당금을 따박따박 지급하는 '월배당' 매력에 개인들의 노후대비용 적립식 투자가 늘며, 단기간에 덩치를 불린 배당성장형 ETF가 재테크족 사이에 화제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배당성장형 ETF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3개월간 미래에셋운용의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 (10,355원 ▲55 +0.53%)를 629억원 규모로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이는 해당 기간 개인 ETF 순매수 7위에 해당되는 규모다. 그밖에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 (10,555원 ▲45 +0.43%)를 588억원, ACE 미국배당다우존스 (10,720원 ▲45 +0.42%)를 458억원, SOL 미국배당다우존스 (9,690원 ▲55 +0.57%)를 419억원 각각 순매수했다. 4종 ETF에 대한 개인 순매수 총합은 2100억원에 육박한다.
이들은 일명 '한국형 SCHD'로 불리는 배당성장형 ETF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찰스슈왑이 운용하는 SCHD ETF를 복제한 것으로 SCHD와 동일하게 다우존스미국배당100 지수(Dow Jones US Dividend 100 Index)를 추종한다. SCHD는 미국 증시의 대표 고배당 주식에 투자하면 2022년 미국배당 관련 ETF 중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된 상품이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1.05%를 기록했으며 서학개미들 사이에 인기를 끌며 일명 '슈드'로 불린다.
'한국형 SCHD' ETF는 올 들어 자산운용사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배당다우존스가 '한국형 SCHD'로 인기를 끌자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각각 신상품 출시, 상품명 변경, 보수 인하를 단행하며 각축전에 돌입했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후발주자로 지난 6월20일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 TIGER 미국배당+3%프리미엄다우존스 ETF 3종을 출시했다. 출시 3개월도 안 된 현 시점에서는 개인 자금 유입에서는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날 미래에셋운용에 따르면 4일 기준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의 순자산은 2974억원으로 3000억원에 육박했다. 선발주자인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배당다우존스가 2803억원, ACE 미국배당다우존스의 순자산은 1429억원을 기록 중이다.
아울러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의 순자산은 875억원, TIGER 미국배당+3%프리미엄다우존스 ETF의 순자산은 187억원으로 두 상품의 순자산 합계도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들 미국배당 프리미엄 ETF는 SCHD와 동일한 배당주를 기초자산으로 투자하고 커버드콜 전략(주식 현물 포트폴리오에 콜옵션 매도 전략을 함께 구사)을 통해 추가 배당 재원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의 경우 지난 6월20일 상장 이후 기준가 1만원 대비 약 2개월 반만에 5.1% 수익률을 나타냈다. 지난 7월29일과 8월30일에 각각 30원과 34원의 분배금도 각각 지급했다.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7·8월말에 각각 3만원, 3만4000원의 분배금(세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의 경우 8월말 분배금이 90원에 달해 개인 순매수가 급증하고 있다. 월 분배율이 0.88%로, 이는 연환산시 10.56%에 해당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출시한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는 모두 월배당형으로 은퇴생활자의 자금 수요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이들 '한국형 SCHD' 배당성장형 ETF는 다우존스미국배당100 지수에 편입된 고배당주 브로드컴, 펩시코, 버라이존, 시스코시스템즈, 홈디포, 코카콜라, 머크, 화이자 등에 투자한다.
김수명 미래에셋자산운용 전략ETF운용본부 선임매니저는 "다우존스미국배당100 지수를 추종하는 한국형 SCHD ETF들은 월배당으로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발생시켜 '제2의 월급'을 만들고 싶은 투자자에게 적합하다"며 "특히 커버드콜 전략을 활용한 상품의 경우 배당주 투자와 더불어 옵션 매도 전략을 통해 안정성에 추가 프리미엄까지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책 읽지 말라는 윤 정부…“독서 관련 예산 10분의 1 토막 났다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예산 59억 ‘뭉텅’ 폐지
문체부 “건전재정 기조 아래 꼭 필요한 사업만 남겨”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섬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으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2024년도 예산안에서 한 해 60억원 규모로 운용해온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이 통째로 사라지는 등 ‘책 읽기’ 관련 예산이 뭉텅이로 삭감돼 “책 읽지 말라는 정부”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책과사회연구소,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 등 독서·출판·작가 단체들은 5일 성명을 내어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올해 59억원 규모로 잡혀 있던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을 뿐 아니라 이 사업에 부여된 예산코드(1433-308) 자체가 폐지됐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이는 국민독서문화증진을 위한 지원은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것을 예산안을 통해 표명한 것으로, 윤석열 정부는 ‘책은 읽지 말라는 정부, 독서는 진흥하지 않겠다는 정부’”라고 비판했다.
국민 독서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역대 정부들은 ‘국민독서문화증진’이란 이름 아래 다양한 ‘책 읽기’ 사업을 지원해왔다. 문체부 올해 예산에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항목으로 59억8500만원이 잡혀 있는데, 이는 영유아들에게 책을 지원하는 ‘북스타트’, 이동식 도서관인 ‘책 체험버스’, 독서모임을 지원하는 ‘독서동아리 활동’, 연중 캠페인인 ‘책의 해’ 행사 등 다양한 현장에서 독서 지원 사업에 쓰여 왔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분석한 내년 문체부 예산안을 보면, ‘국민독서문화 증진사업’이란 항목 자체가 없어졌다. ‘독서대전’, ‘지역독서대전’, ‘책읽는도시협회지원’ 등 일부 사업들만 ‘지역문화사회 기반 책읽기 수요창출’이란 신규 항목에 포함됐는데, 예산은 10억원가량이다. 체육기금을 활용하는 독서 관련 사업인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2억원가량)을 포함해도, 2024년도 예산안에서 독서 관련 예산은 전체 12억원 규모에 그친다. 이들 단체는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문화팀 운용 예산이 전체 114억원 규모였다는 점을 들어, 단체들은 “전체 114억원 규모의 독서 관련 예산이 10분의 1로 쪼그라들어 12억원 남은 것”이라 주장했다. 청소년들에게 도서교환권을 지원하는 ‘청소년 북토큰 지원’(2023년 예산 34억원), ‘책 읽는 사회 문화기반 조성’(2023년 예산 15억원) 등 다른 항목에 포함되어 있던 독서 관련 지원 사업들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건전재정’ 기조 아래 제도적으로 꼭 지속해야 할 사업들만 남기게 된 것”이라며 “‘국민독서문화 증진’의 경우 지자체·도서관·부처 등에서 진행하는 다른 사업들과 유사·중복된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안에선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8억원), ‘지역출판산업 육성’(2억원), ‘파주출판단지활성화지원’(14억원), ‘영세출판 창작 및 경력자 재취업 지원’(11억원) 등도 폐지 또는 일부 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디지털 도서 물류 지원’(12억원), ‘소외계층 전자책 접근성 제고’(14억원),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지원’(30억원) 등이 새로 생겼고, ‘출판 수출 및 인력양성 지원’이 77억원 규모로 이전보다 커졌다.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만 19살 이상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 중 한 가지 이상 읽거나 들은 비율)은 47.5%다. 이들 단체는 “독서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 독서 진흥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에도 내년도 독서 예산을 전폐에 가깝게 삭감한 처사는 부당하다”며 “정부와 국회가 반드시 예산 복원을 통해 책 읽는 사회를 앞장서 실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책임지지 않는 ‘5년 임기 대통령’, 바꿀 때 됐다
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07
“5년 단임제가 장기집권을 막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제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다. 또 수십 년의 군사독재 탓에 1987년 개헌 무렵엔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정치인이 다수 존재했다. 단임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다음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이런 장점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는 게 현실이다. 정치적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지도자는 점점 찾기가 힘들다.”
2007년 3월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 시안의 취지를 설명하는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대로 노 대통령은 끝내 개헌안의 국회 발의를 포기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5년 단임 대통령제’와 내각제 논란 ②
디제이(DJ)와 와이에스(YS)는 대통령 중심제, 특히 미국식 4년 중임제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장석일 박사(현 성애병원 의료원장)는 “디제이는 정치제도에 관해선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 개헌(1969년)을 하기 전의 3공화국 헌법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 임기는 3공화국 헌법처럼 4년 중임제로 하는 게 맞다’고 말씀하시는 걸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국정운영의 연속성뿐 아니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게 4년 중임제를 지지한 이유였다. 지금과 같은 단임제에선 현직 대통령이 5년 집권에 대한 국민의 직접 평가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이 오히려 국정운영의 책임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한국 현실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내각제를 하면 재벌이 국회의원을 관리하며 정치를 움직이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김 대통령은 재임 시절 윤여준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윤 수석, 이거 하나는 꼭 명심하세요. 우리나라에서 내각제 하면 큰일 납니다. 가령 국회의원이 300명이라고 치면, 그중 ㄱ 그룹이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움직일 거고, ㄴ·ㄷ 그룹도 수십명의 의원들을 관리할 겁니다. 그러면 정말 재벌 공화국 되는 겁니다.”
디제이와 와이에스가 내각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우리 국민이 내각제를 멀리한 이유와 맥을 같이 했다. 하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는 계속 제기됐다. 막상 집권에 성공하면 ‘5년 단임’이란 조건이 국정 운영에 작지 않은 질곡으로 작용한다는 걸 모든 대통령은 깨달았다.
윤여준 전 수석은 “5년 단임제에서 실제로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정도다. 그것도 첫해에 핵심 어젠다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제시하고 일을 추진해야만 임기 내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5년 단임제에선 임기 첫해가 매우 중요하다. 임기 첫해를 그냥 흘려보내면 남은 4년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국회의원은 “디제이는 너무 늦게 (74살에) 대통령이 된 걸 아쉬워했다. 만약 디제이가 60대에 대통령이 됐다면, 또 4년 중임제였다면, 한 번 더 임기를 하면서 못다 이룬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뿌리내리고 싶어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도 5년이란 짧은 임기 탓에 급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4대강 사업은 수자원 확보와 조절이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했다고 본다. 그러나 워낙 반대가 심하니까 내부에서도 여론을 유리한 방향을 이끌면서 속도 조절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면 사업이 흐지부지될 걸 우려했다. 사업의 속도를 올린 데엔 5년이란 임기를 의식했던 측면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비동시 선거주기’와 맞물리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우는 측면도 있다.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도입한 1995년 이후,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가 없었던 해는 열한 해에 그친다. (1999년, 2001년, 2003년, 2005년, 2009년, 2011년, 2013년, 2015년, 2019년, 2021년, 2023년) 이중 최소한 2곳 이상의 광역단체장 또는 5곳 이상의 국회의원·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해가 여덟 해다. (1999년, 2001년, 2003년, 2005년, 2009년, 2011년, 2013년, 2021년)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현직 대통령은 정치적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를 치르는 셈이다.
선거 과잉은 대통령이 장기적 국정운영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싸움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저출산 고령화나 연금 개혁 같은 핵심 과제를 회피하고,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포퓰리즘 이슈에 몰두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3월9일 대선일 이후, 3개월 남짓 남은 지방선거 승리에 온 힘을 기울였다. 지금은 2024년 4월 총선 승리에 모든 국정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직후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건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뿐 아니라 제3의 민주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많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단임제가 유행했다. 필리핀·멕시코·브라질이 그런 경우다. 한국에서도 5년 단임제가 장기집권을 막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제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수십 년의 군사독재 탓에 1987년 개헌 무렵엔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정치인이 다수 존재했다. 단임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다음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이런 장점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는 게 현실이다. 정치적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지도자는 점점 찾기가 힘들다. 이젠 단임제와 비동시선거가 정치 불안정성 및 갈등을 오히려 증폭하는 작용을 한다.”
이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2007년 1월9일 노 대통령은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담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2007년은 대선이 있는 해였다. 여야의 주요 대선 주자들은 개헌에 반대했다. 대선을 앞두고 개헌 이슈가 모든 걸 빨아들이면서 정치 지형을 바꾸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결국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포기했다.
노 대통령은 4년 중임제와 함께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자’고 제안했다. 4년 대통령 임기 도중에 총선을 중간선거 형식으로 치르는 미국식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대선 몇 개월 뒤에 총선을 치르고, 지방선거를 임기 중간에 치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같은 해에 대선과 총선, 2년 뒤 지방선거’라는 선거 주기가 만들어진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의 내각제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권력의 절반을 내주더라도 국회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논란을 부른 ‘대연정’ 발언은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 그런데 야당이 총리를 맡으면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하면서 오히려 국정이 불안정해질 거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대선과 총선을 같은 해에 치르자, 그러면 대선에서 이긴 집권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게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높이자는 뜻이었다. 만약 야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야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게 국민의 뜻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5월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를 마치고 권양숙 여사와 인사를 하며 통곡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DJ의 대통령제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제이는 생의 마지막에 생각을 바꿨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게 영향을 줬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이듬해인 2010년 출간된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했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은 정·부통령제였다. 지금도 정·부통령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제하에서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 후로도 독재자나 그 아류들이 출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5년 단임제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제 민의를 따르지 않는 독재자는 민의로 퇴출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개헌의 필요성엔 여야 모두 공감하지만, 행동엔 소극적이다. 지지층의 반대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개헌을 얘기하는 건 국정 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라고 말한다. 반대로 민주당 지지층에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0.73%포인트 차로 아깝게 졌다. 다음 대선에선 반드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내각제를 정치권이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4년 중임제 + 분권형 대통령제’는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회에 총리 지명권을 주며, 대선과 총선을 같은 해에 치러 집권당이 다수당이 될 확률을 높이는 방향은 여야 어느 쪽에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면서 제도의 취지를 살려나가는 게 최선이다. 제도 개혁이 극단적 대립과 정치 보복이라는 한국정치의 고질을 치료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완화하는 효과적인 첫걸음은 될 수 있다.
박찬수ㅣ대기자 한겨레
'국민 핑계' 뒤에 숨은 정치인들, 좀 들어라"
[정치신대륙을 찾아서④] 박원호 서울대 교수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 국가 장래가 달린 문제
'나쁜 제도가 문제인가, 나쁜 문화가 문제인가.'
갈수록 대결 일변도로 치닫는 한국 정치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의문이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 문제의 답을 "정치문화를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제도를 바꾸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답을 내놨다. 그는 한국 정치의 '독성'을 중화하려면 선호투표제나 결선투표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당장 시급한 과제는 '253대 47'로 철저하게 기울어져버린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원 수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들은 이미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5월 약 500명이 참여한 공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늘리고, 의원 정수 확대도 생각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려면 최소한 이런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을 제시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관련 기사 : 숙의가 낳은 반전... "비례대표 더 늘려야" 70% ).
박 교수는 지난 6월 2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 결과를 두고 "시민들은 선거제도 변화의 필요성을 매우 절감하고 있고,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8월 17일 오전 서울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회의원들 들으라고 한 얘기"라고 했다. 이어 "국민은 정치인을 '리더'로 뽑았다. 정치인들이 전문가에게 설득됐다면 가서 국민들을 만나라"며 "(현재 모습은) 그런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국민 핑계로 그 뒤에 숨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독성 강한 정치의 시대, 그나마 바꿀 수 있는 건..."
- 대결정치의 악순환을 깰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선호투표제'를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제도를 실시 중인 호주는 100년 가까운 역사에 탄탄한 선거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
"호주는 상당한 역사가 있고 유권자 교육 등도 중요하긴 한데, 한국 유권자의 수준을 생각하면 못할 건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아마 없을 거다. 오히려 제일 걸리는 것은 선거에 대한 믿음이다. 현행 제도는 가장 단순한 다수다수제인데도 아직까지 '2012년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 왜 사람들이 선거를 불신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일 수 있는데... 워낙 정치 자체가 양극화했고 내가 잘 되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식으로, 굉장히 독성이 강한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1표만 더 얻어도 이길 수 있는 선거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인센티브가 항상 있다. 만약 이양식(선호투표제)이나 결선투표라면, 제2 혹은 제3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다음 투표에서 나를 지지하게끔 만드는 것을, 연합을 염두에 두게 된다. 그러면 정치가 상당히 부드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 하지만 '선호투표제+소선거구제'인 호주 하원을 보면, 제3당인 녹색당은 하원 151석 중 단 4석뿐이다.
"(선호투표제를 실시하더라도) 군소정당이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은 단점이다. 결선투표를 하더라도 결국 결선에는 빨간당(국민의힘)과 파란당(더불어민주당)이 올라갈 거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차이점 보다 공통점을 찾는 일도 중요한데, (현행 소선거구제에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치문화를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제도를 바꾸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다."
- '제도가 바뀌면 정치가 변한다'의 실제 사례가 뉴질랜드다. 뉴질랜드가 1992-1993년에 걸친 국민투표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의 제일 큰 딜레마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자신을 선출하는 게임의 룰을 스스로 만들고, 제안하고, 그 표결까지 하는 입법권을 갖는다. 거칠게 얘기하면 이해충돌의 문제가 있다. 이게 적절한가. 뉴질랜드도 당시에 독립기구(선거제도를 위한 왕립위원회)가 있지 않았나.
한국 역시 적어도 정치관계법에선 국회의 입법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현행법에 이미 사례가 있다. 선거구 획정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정당, 선관위 등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해서 선관위에 둔다(선관위 지명 1명+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정당 등 추천 8명). 그리고 선거구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내면 의원들이 수정할 수 없다. 1회에 한해서 거부권을 행사해 돌려보낼 수는 있지만, 그 다음에는 표결로 입법을 확정해야 한다.
저는 선거구 획정뿐만 아니라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국회법도 국회의원들의 손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의 왕립위원회도 교훈을 주는 것 아닌가. 몇몇 의원들한테 얘기했더니 '현실적이진 않은데, 어떻게 보면 우리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 그분들도 전혀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분들은 아니다(웃음)."
"'책임감' 갖고 대화하던 사람들... 공론조사 결과는 일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2023.5.6 ⓒ 연합뉴스
- 국회 정개특위 공론조사에도 참여했다. 공론조사에서 선거제도를 다룬 것은 최초였는데.
"개인적으로 되게 재밌었다. 500분 정도 모셔서 하기 싫은 공부를 시키고, 또 분임을 나눠서 자기들끼리 토론할 기회를 드리고, 전문가들에게 질문하게 하고... KBS와 같이 하면서 생중계하는 것도 약간 걱정했다. 그런데 생방송을 하니까 너무너무 집중해서 공부하고, 토론도 되게 열심히 하시더라. 가슴 찡한 순간도 있었다. 연세 많은 분들이 자료집에 줄 쳐서 보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에서 이야기 나누고.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란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셨던 것 같다."
- 결과도 놀라웠다.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숙의 전보다 43%P 증가한 70%를 기록했고, 의원 정수 확대 역시 찬성 의견이 20%P나 늘었다(13%→33%)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인데, 가장 의외였다. (유권자들은) 의원 정수는 줄이거나 심하면 없애자고 하고, 비례대표도 현재는 폐쇄형이라 정당 마음대로 순번을 정해 당선자를 정하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싫어한다. 그런데 2주 간의 공론조사가 끝난 다음 큰 차이가 있었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가 많이 늘고, '줄여야 한다'는 훨씬 줄었다(65%→37%).
이 사안은 제가 발제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얘기했다. '국회의원 300명을 100명, 50명으로 줄이면 정치가 더 좋아질까? 국회 선진화법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전체 3분의 1만 있으면 된다. 전체 의원이 50명이라면 15명만 있으면 어떤 입법도 다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에선 '편향된 교수들이 공론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의원 정수를 줄이자고 하는 사람들이 데마고그(Demagogue,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선동가)다. 의원 숫자를 줄인다고 정치가 좋아질 것 같으면 5명으로 줄이면 되지 않나? 그게 과두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방향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공론조사에서도 제 의견을 강하게 얘기했는데, 잘 받아들여진 것 같다."
- 또 다른 '뜻밖의 결과'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소선거구제를 아직 포기할 준비가 안 됐구나'를 느꼈다(43%→56%). 토론이나 질문할 때 보면 우리 지역구에서 한 명을 뽑아서 마을의 길, 다리 따오는 것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게 '잘하면 다시 뽑아주고 못하면 표로 처벌하는 것인데 중대선거구에서 3명을 뽑는다면 누구한테 책임이 돌아가냐'였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책임성의 원리'다.
그러면서도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라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늘지 않았나. 모순된 결과라는 언론도 있던데, 전혀 모순되지 않다. 저는 선거제도의 문제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균형이 깨진 데에 있다고 얘기했고, 그 점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즉 (공론조사 결과는) 소선거구제로 뽑히는 의원과 비례의원의 균형을 맞추란 뜻이다. 그건 의원 정수를 늘리는 길밖에 없다. 세 개(소선거구제 선호, 의원 정수 확대 찬성 의견 증가, 비례대표 확대)가 다 일관됐다."
"교수도 하는데, 정치인은 왜 국민 설득 안 하나"
박원호 교수는 “(한국)정치 자체가 양극화했고 내가 잘 되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식으로, 굉장히 독성이 강한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며 “만약 이양식(선호투표제)이나 결선투표라면, 제2 혹은 제3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다음 투표에서 나를 지지하게끔 만드는 것을, 연합을 염두에 두게 된다. 그러면 정치가 상당히 부드러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공동취재사진
-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이 내용을 보고하며 "시민들은 선거제도 변화의 필요성을 매우 절감하고 있고,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결국 시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키고, 이분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는데.
"국회의원들 들으라고 한 얘기다. 정개특위에서 합의해서 만든 안에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까지 포함돼 있었다(3월 17일 정치관계법소위원회는 ▲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제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세 개의 안을 채택. 이 가운데 소선거구제 유지안은 비례 의석을 50석 확대함. – 기자 주). 그런데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마디 하니까 3일 만엔가 뒤집어 버리더라.
우리가 정치인들을 대표로 뽑은 건 '리더'로 뽑은 거다. 리더가 뭔가. 본인들이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해서 그렇게 하라는 거다. 정개특위가 안을 만들었다가 3일 만에 뒤집을 것 같으면 정개특위를 왜 만들었나. 그렇게 쉽게 뒤집으니까 새로 내놓은 안이 힘이 없어지는 거다. (정치인들에게) 용기랄까, 리더십이랄까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국민들에게) 다가가서 설득해야죠. 그걸 의원들이 해야지 왜 교수인 제가 하나.
정치학에 쌓인 내용들이 있다. 어떤 제도를 하면 정당이 이 방향으로 간다는 등... 그런 내용은 무시하고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세 가지 안을) 휴지조각 같이 폐기하는 게 굉장히 마땅치 않았다. 정치인들이 전문가에게 설득됐다면 가서 국민들을 만나시라. 그런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국민 핑계로 그 뒤에 숨는 거다. 현재 시스템이 자기들한테 최적(Optimal)이라고 생각하니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022년 5월 27일 오전 경기도 분당구 이매2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유성호
- 선거제도 개편 논의 자체도 지지부진하다.
"선거가 너무 가깝게 다가왔다. 다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현재 몇 석이고, 총선 후 몇 석이 될 것인까'가 제일 중요한 관심사다. 사실 선거제도 개혁 이야기는 국회가 구성되고 선거가 상당한 기간이 남아있을 때 하는 게 맞는데, 영원히 역사에서 교훈을 못 얻는 것 같다. 내년 총선 치르고 나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정개특위든 제3의 기구든 빨리 했으면 한다."
- 어쨌든 제1당이고 169석을 가진 민주당의 의중이 중요할 텐데, 민주당에선 240+60으로 의석 비율을 조정하되 위성정당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더라.
"솔직히 위성정당은 자기들이 만들지 않았나. 그러면서 '위성정당이 큰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만큼 위선적인 게 없다.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연동형 비례제에 합의했을 때의 어떤 정신이 있었을 것 아닌가. 왜 이전 시스템(병립형)에서 연동형으로 넘어갔는지를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위성정당 때문에 준연동형을 없앤다? 위성정당을 안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한테 필요한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지 않나. 굉장히 다양한 의제들이 있고, 갈수록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기후변화도 3~5년 전에는 굉장히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성 문제, 지방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새로운 의제가 정치 안으로 들어오고, 연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의식들이 2020년 정개특위에서 만든 준연동형 비례제에 담겼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그 정신에선 멀어져 있다."
"유튜브, 게시판으로 정치 입문? 오싹하다"
- 공론조사 당시 "국회는 갈등을 발견하고 처리하는 지저분한 일을 하는 것"이라며 "화장실이 냄새가 난다고 줄이거나 없앨 수 없지 않나"란 비유를 썼다. 그런데 정치혐오가 늘고, 무당층이 증가하는 상황은 사람들이 '여기가 진짜 화장실인가' 의심한다는 뜻 아닐까.
"어디가 화장실인지, 거기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가기는 해야 하지 않나. 그건 굉장히 걱정스럽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개혁을 한다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정책을 편다면 국회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수당인) 야당한테 양보하는 것도 있고,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나 대통령실은 '총선까지 기다려달라',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어서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하는데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내년 총선에 모든 게 다 걸려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제도를 어떤 식으로 건드리려고 해도 생각이 많은 거다. 그렇게 당파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미래를 생각하면 어떨까. 여야 모두가. 물론 첫 번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 올해 초 한 칼럼에서 '정치가 건강하지 않다는 진단보다 더 심도 있는 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공유해야 할까.
"'양극화한 정치문화를 넘어서야 된다'고 얘기하긴 쉽다. 그런데 '뭘 하지?' 라고 생각해보면 예를 들어서 캠페인을 할 수 있겠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 좀더 구체적인 것을 찾아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선거제도다. 사실 선거제도를 건드리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게 정당시스템이다. 저는 정당시스템이 움직이면 정치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하는 거다. 거기에 분명한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맞다.
장기 계획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우리의 정치교육은 되게 부실하다. 우리가 선거연령은 낮춰줬는데, 무엇을 준비했는지 잘 모르겠다. 교사들은 정당 가입을 못하는데 학생은 가능하다. 심지어 만16세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교사들의 입과 손발이 다 묶여 있는데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이들(젊은 유권자 세대)이 정치적 토론의 양식과 내용들 어디서 처음 볼까?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의 방식이다. 그걸 생각해보면 약간 오싹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해선 정치 토론이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부모님들이랑 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정치 얘기를 안 하지 않나. 의견이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싸우지 않고, 밥이 잘 소화되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연습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냥 교사들한테만 맡기면 안 된다. (사회 전체가) 같이 고민하고 풀어봐야 한다. 국가 장래가 달린 문제다."
오마이뉴스
김정은 곧 방러, 북·러 정상회담" NYT 이상한 보도
성사 땐 '캠프 데이비드 이후' 한반도 정세급변 신호탄
"북한의 포탄 제공, 러 대북 위성·핵잠 기술 제공 논의"
1년간 계속된 미국, "북한 대러 무기 공급" 경고 연장
4년만의 북·러 정상회담 '수요'는 있지만, 성사 미지수
미 당국, "고위급 무기협상서 '지도자급 회담' 급진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뉴욕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익명의 미 행정부 및 동맹국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아마도(probably) 방탄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지막 정상회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담을 갖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보와 첩보가 뒤섞인 보도
핵심의제는 북한의 대러시아 포탄 및 대 탱크 미사일 판매와 러시아의 대북 핵추진잠수함 및 인공위성 기술 제공으로 보도됐다. 또 북한은 러시아의 식량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북·러 정상이 오는 10일부터 13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보도대로라면 김 위원장이 북한의 정권 창건 기념일인 9·9절 75주년 행사가 끝난 뒤 러시아행 전용열차에 올라야 한다.
타임스는 또 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모항(Pier 33)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1530㎞ 지점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와 모스크바를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여기까지는 전부 익명의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내용이다. 타임스는 8월 말 약 20명의 북한 대표단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를 10일 동안 방문했다면서 첩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방러 준비로 보인다고도 전했다.
이와 관련, 에드리안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북·러 '지도자급 직접 외교'가 예상된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무기 협상을 중단하고 '대러 무기 공급을 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공언을 지키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뉴욕타임스가 기사에서 적시했듯이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첩보 수준에 머문다. 러시아 외교부와 북한 외무성은 어떠한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 왓슨 대변인 역시 김 위원장의 방중을 '예상'되는 일로 전했다. 익명의 첩보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왓슨은 김 위원장의 방문 시점 및 방문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2023'를 참관하던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에 보이는 무기는 북한이 핵어뢰라고 주장하는 '해일'로 추정된다. 2023.7.26. 조선중앙TV화면 연합뉴스
마지막 북·러 정상회담은 2019년 4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년 반 동안 정상외교를 중단했던 김 위원장의 방중, 방러 개연성은 다분하다. 7·27 전승절(정전기념일)에 나란히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군사대표단과 중국 당·정 대표단은 각각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김 위원장을 만나 각각 친서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 군사협력 확대와 함께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제안했고, 쇼이구 장관은 역으로 김 위원장의 방러를 제안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시 주석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방중 초청 의사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서 북·러, 북·중 정상회담을 잇달아 가졌다. 푸틴과는 같은 해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 주석과는 6월 평양에서 각각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의 대러, 대중 압박으로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점에 북·러, 북·중 정상회담의 수요는 충분하다.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이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겨냥하는 만큼 북한이 러·중과 협력을 강화할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다만, 시 주석은 7·27 방북 특사단을 예년 수준으로 구성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보인 만큼 북·중·러 정상회의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북·러 정상회담 자체보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거듭 제기해온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공급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 있다. 쇼이구 장관의 7·17 방북과 한·미·일의 8·18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에는 북한의 무기 공급에 더해 북·러 간 군사협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러 군사협상 급진전" 이번에도 선제적 정보 흘리기?
방러설은 미국이 밝혀온 이러한 우려의 연장선상에서 있다. 왓슨 대변인이 언급한 북·러 간 '지도자급(leader-level) 직접 외교'는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지난 30일 말한 '고위급 군사협력 회담'에서 한 단계 진전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2.11.14.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커비 조정관은 "북한과 러시아 간 고위급 군사협력 회담이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바그너그룹에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을 전달한 북한은 계속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군사적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커비는 앞서 지난 8월 4일에도 "우리 정보에 따르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포탄 판매를 설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지적하면서 "서방의 제재와 수출통제 탓에 러시아 전쟁 기계가 갈수록 타격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의 여론몰이 관행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 이란 등 세 나라의 대러 무기 제공 가능성을 여러 차례 제기해왔다. 언론에 첩보를 먼저 흘림으로써 해당국에 경고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과 비교하면, '선제적 정보 흘리기(preemptive leak)'라고 할 수 있다.
타임스는 같은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방북에 관한 새로운 소식은 이전의 경고보다 차원이 높은 것이라면서도 미국 정보당국이 기밀을 해제하거나, 중요도를 낮춘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정보 전달자들이 언론과 토론하거나, 세부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럼에도 왓슨 대변인은 방러 가능성을 인정했다. 실명과 익명, 정보와 첩보를 오가면서 펼치는 전형적인 여론몰이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북·중·이란의 대러 무기공급 '선제 경고'해온 미국
중국의 경우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 2월 대러 살상무기 제공을 경고했다. 중국은 이후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기술과 부품을 러시아에 제공했지만, 아직 드론이나 중화기를 전달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드론을 제공했지만, 미국 관료들의 잇단 경고 뒤 미사일 수출은 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러시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무기 거래 사실을 부인했음에도 미국은 계속 무기 공급 의혹을 제기했다. 타임스는 '선제적 정보 흘리기'가 북한의 무기 공급을 막았거나,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미국 조야가 울력으로 펼치는 여론몰이는 사실상의 대리전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전략의 '중요한 부분(뉴욕타임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유효할지 의문이다. 북·러 정상회담설은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몰이 전략과 무관하게 북·러 정상회담의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5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우리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성사된다면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후폭풍'이 본격화되면서 동아시아 안보 환경이 또 하나의 변곡점에 놓이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도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악수를 하고 있다. 2023.8.18. AP 연합뉴스
일본 최고재판소 오키나와 민의 배반
한국이든 일본이든 탈미국 균형외교 불허
붉은 선 안쪽이 오키나와 열도. 규슈에서 대만까지 길게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일본영토면적의 0.6%인 오키나와 본섬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다.
4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오키나와 현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 이전과 관련해, 현민들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 강행을 위해 일본 중앙정부 국토교통상이 내린 ‘시정 지시’에 대한 오키나와 현의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는 해병대 기지가 옮겨 갈 오키나와 섬 북동쪽 나고 시의 헤노코 해변 기지조성 공사를 최고재판소가 사실상 용인한 최초의 결정이다.
일본정부 견제해야 할 사법이 행정 편
이날 <아사히신문>은 사설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행정권을 견제하는 사법의 역할을 포기하고, 헌법에 명기된 지방자치의 본의를 경시한 채 정부 정책을 추인했다. 장래에 화근을 남긴 판결이다.”
오키나와 현 지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깔아뭉개고 편법을 동원한 본토 정부의 공사 강행계획에 허가장을 내 준 이번 최고재판소 결정 과정은, 일본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한 자민당식 우익 전체주의 통치행태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기지들이 집중돼 있다.
이로써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오키나와 현민들의 미군 기지 반대운동, 그리고 8년 전에 시작된 현과 국가 간의 소송전은 새로운 고비를 맞게 됐다. 끝난 게 아니다.
중국 자연자원부가 지난 달 28일 공표한 중국 국내용 '표준지도' 2023년 판. 남중국해 거의 전 해역을 감싸고 있는 선들(9단선)은 그것이 중국 관할권임을 표시한 것이다.
중국 ‘표준지도’ “남중국해는 중국 것”
주일 미군과 일본 자민당 정부의 오키나와 미군기지들에 대한 집착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해군력 강화와 대만에 대한 ‘핵심적 이익’ 주장, 과도할 정도의 남중국해 ‘9단선’ 영해 주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지난 달 말 2023년 판 ‘표준지도’를 공표했다. 거기에는 남중국해 거의 전 해역과 섬들이 중국 관할권임을 보여 주는 ‘9단선’이 그어져 있다. 주변국들은 당연히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과 한반도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미국 및 미일동맹 군사기지 확장 내지 강화는 중국의 해군력 강화 및 동남중국해 영역확장과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얽혀 있다. 제주 강정항과 새만금 등의 새 공항 건설계획도 미중의 이지역 패권경쟁과 연결돼 있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 후텐마 기지
1995년에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사 3명이 현지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미군기지에 반발하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기지 정서에 불을 붙여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섬 전체가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섰다.
주일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국면전환을 위해 섬 남서부의 기노완 시 한복판에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후텐마 기지는 인근 국제대학교에 훈련 중이던 미군 헬기가 추락한 적도 있는, ‘가장 위험한 기지’로 주민들의 철수 요구가 거셌던 곳이다. 비행장이 마치 인구 밀집한 시가지 한복판에 떠 있는 항공모함 갑판 같은 형국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 본섬과 주변 섬들. 이 본섬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몰려 있다. 본섬의 남서부에 있는 기노완 시에 미 해병대 후텐마 공군기지가 있다. 이 후텐마 기지를 북동부의 나고 시 오른쪽 헤노코 해안지대로 옮기는 공사를 오키나와 주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미군과 일본 자민당이 강행하고 있다.
일본영토 0.6%에 미군기지 75% 몰려
오키나와 섬은 일본국토 전체 면적의 0.6%에 지나지 않지만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쏠려 있는 곳이다. 하루 종일 미군 전투기와 수송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 다닌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미군기지 정서나 반‘본토’ 정서가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주민들은 미군기지 부담을 일본 본토도 나눠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본토의 중앙정부는 보조금으로 반발을 달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경제 기여도는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도 있지만, 중앙정부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현들 중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현이다.
미군기지를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기지 부담을 본토가 나눠 져야 한다며 기지 일부의 본토 이전이나 철수를 요구해 왔다. 본토와 중앙정부는 거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수백년간 독립 ‘류큐 왕국’으로 존속했던 오키나와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에 복속되면서 오키나와 현이 됐다. 대만 조선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 팽창에 희생당했다.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 독립을 지향하는 정치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탈미국 균형외교 폈다가 쫓겨난 하토야마 총리
주일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약속했지만 그것을 오키나와 섬 바깥 일본 본토나 미국 본토 또는 미국령 괌이 아니라 같은 오키나와 섬 북동쪽 나고 시의 태평양쪽 해안지역인 헤노코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섰지만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헤노코 이전을 강행했다.
2009년에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해 9월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가 들어섰고, 하토야마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과 함께 친미 일변도의 일본 외교를 한국 중국 북한 등 주변 아시아국들과의 관계도 중시하는 균형외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바깥으로의 이전을 추진했다.
그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은 취임 뒤 1년도 못 채우고 2010년 6월에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당시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등 미국 안보전략가들이 민주당의 탈미국 균형외교 움직임에 분노해 자민당 본류 친미파와 손잡고 하토야마 등을 밀어냈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70% 이상이 반대하는 기지공사 강행
2019년에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헤노코 앞바다 매립 여부를 두고 현민 투표가 실시됐고 유효 투표수의 70% 이상이 매립공사에 반대했다. 헤노코 앞바다는 산호와 희귀동물인 바다소 ‘듀공’ 등의 절멸위기종을 포함한 5300종이 넘는 생물의 서식처이기도 해서 미군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공사로 그것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해 현 지사선거에서도 기지건설 공사 저지를 공약으로 내건 다마키 데니 지사가 재선됐다. 이처럼 현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 거듭 확인됐음에도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1일 필리핀 팔라완섬 부근 해상에서 미국·필리핀과의 합동 군사 훈련인 '알론'에 참가한 호주군함 'HMAS 캔버라'의 모습이다.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실시한 이번 합동 훈련은 중국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3.08.22. AFP 연합뉴스
국토교통성과 방위성 사법이 한패가 돼 오키나와 농락
자민당 정부가 해안 바다의 연약지반을 다지기 위해 7만개 이상의 콘크리트 말뚝을 박는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오키나와 현에 공사 설계변경 신청을 하자 오키나와 현은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국토교통상이 승인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렸다. 오키나와 현은 이에 대해 다시 시정 지시 취소 소송을 냈고, 최고재판소가 4일 이를 기각하면서 자민당 정부 편을 들어줬다.
오키나와 현은 설계변경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연약지반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고 환경 파괴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으며, 공사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 등을 들었다. 공유수면 매립법도 환경보전과 재난방지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요건으로 명기하고 있으나 최고재판소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행정청의 재결(행정심판 판단)은 관계 행정청을 구속한다”는 형식론만 강조하면서 오키나와 현의 문제제기를 문전박대하듯 물리쳤다.
앞서 오키나와 현이 설계변경을 불허했을 때 사업주체인 방위성 오키나와 방위국이 ‘사인(私人)’ 입장에서 불복해 이의신청을 했고 ‘한패’인 국토교통상이 심사관청의 자격으로 현의 불허 처분을 취소하는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현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국토교통상은 다시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처럼 정부 내 부서끼리 한패가 돼 심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꼴을 보고 다수의 행정법학자들이 “국가가 사인 행세”를 하면서 “권리구제제도를 남용”한다며 비판하는 성명서까지 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공사를 강행한다는 결정을 이미 내려 놓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절차는 어떻게 해도 좋은 형식요건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견제 위한 오키나와와 한국의 기지들
미군이 이처럼 오키나와 기지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견제다. 중국이 주요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중국이 태평양 대해로 나가는 출구들을 막거나 감시하는 기지들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만 인근의 요나구니 섬과 같은 일본 규슈 이남의 난세이 제도에 자위대 기지들이 새로 들어서고 그것은 미군과의 합동군사훈련 기지, 보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대만에 가까운 필리핀 북서부 지역에도 미군의 임시기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택과 오산과 군산 미군기지, 그리고 제주 강정항과 제주 신공항, 새만큼 국제공항 신설계획 등도 미국 또는 미일동맹의 대중 견제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봐야 한다.
22일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정이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 한 대를 막아서는 모습. 필리핀은 이날 중국 해경의 방해를 뚫고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정박 중인 군함에 물자를 재보급했다고 밝혔으나, 중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2023.08.23. AFP 연합뉴스
‘대국’행세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
21세기엔 어울리지 않는 중세적 개념에 가깝지만, 이른바 ‘대국’들의 이런 행보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중국도 다르지 않다. ‘대국’임을 자처하는 나라들이 행세하는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았다.
지난 달 28일 중국 자연자원부가 중국 국내용 통일규격 ‘표준지도’ 2023년도 판을 공표했다. 거기에는 남중국해 거의 모든 해역이 중국의 관할권으로 표시돼 있다. ‘9단선’이라 불리는 종래의 9개 선에, 이번에는 대만 동부 연안에 선이 하나 더 그어져 있다. 그 선들 안에 있는 바다와 섬들은 모두 ‘중국 것’이라는 표시다.
수백 킬로미터 저 너머에 있는 중국이 자국령으로 표기한 섬들 가까이에 있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가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주변국들 중국 표준지도 거부
5일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외교부는 “지도를 거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중국의 관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2016년의 헤이그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용하며 “국제법상 근거없는 주장”이라 단정하면서 “판결과 국제법에 기초한 의무를 준수하기 바란다”고 했다. 필리핀은 최근 중국함정이 자국령 섬에 정박시킨 폐선으로 보급물자를 싣고 가는 자국 선박을 향해 레이저 빔을 쏘고 물대포로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트남 외교부도 중국 지도 표기가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침해하고 유엔 해양법조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대중 감정은 전부터 좋지 않아 7월에 할리우드 흥행 영화 ‘바비’에 중국이 그어 놓은 ‘9단선’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고 해서 그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 역시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일축하면서 “지도는 말레이시아를 구속하지 못한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브루나이 외교부는 “영유권은 국제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 간부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나라는 국제법과 국제질서에 따르고 그것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말할 것도 없다.
남중국해의 영유권문제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아세안과 중국이 2002년에 “국제법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행동선언’(DOC)을 체결했으나, 실효성이 결여돼 중국은 암초를 매립해 인공섬들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남중국해에서 각국의 활동을 규제하는 ‘행동규범’(COC)에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은 교섭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교섭을 질질 끌며 현상변경을 기정사실화했다.
올해 7월의 아세안 외무장관회의에서는 COC 책정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자고 명기하는데 그쳤다.
중국 표준지도는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 등도 중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어서 인도정부도 반발하고 있다.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8월 29일 “중국이 이른바 ‘표준지도’에 대해 외교 루트를 통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중국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우리는 거부한다. 중국쪽의 조치는 국경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도에서는 오는 9일부터 중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가 및 지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번 G20 회의에서는 미중 정상회담, 중일 정상회담 등이 성사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으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참석하지 않고 리창 총리가 참석할 것이라고 밝혀, 시진핑 불참을 둘러싼 여러 관측들이 오히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
"집단 추모는 방과 후에 해라"? 한 언론의 황당한 사설
[민언련 신문방송모니터 보고서] '공교육 멈춤의 날'에 질서만 칭찬... '불법집회' 비판도
교사들이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 추모일을 기리며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집회를 열었습니다. 교사들은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진상규명과 아동학대 관련법 즉각 개정을 요구하며 '공교육 정상화',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촉구했는데요.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교육부는 집단행동을 위한 연가·병가 사용이나 재량휴업일은 위법이라 강조하며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잇따른 교사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며 비통한 분위기 속에 교사들은 집회에 적극 참여했는데요. 9월 2일 '7차 추모집회'와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추모집회'에 '질서' 강조한 조선일보
교사들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아동학대 관련법 즉각 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9월 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7차 추모집회'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앞두고 주최 측 추산 2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 모였는데요. 그런데 교사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나 요구사항 대신 엉뚱하게도 집회 질서에 주목한 언론이 있습니다.
▲ 교사 추모집회의 ‘질서’를 강조해 보도한 조선일보(9/4)ⓒ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면에 <'집회의 교과서' 보여준 교사들>(9월 4일 주형식·김승현 기자)을 싣고 "시위 현장마다 등장하는 정치인, 민주노총은 찾아볼 수 없었고 쓰레기·폭력 등 민폐도 없었던 3무 집회였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언론이 공교육 멈춤의 날과 연가 투쟁에 주목할 때, 조선일보는 '집회 질서'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5면 <자체 질서요원 뽑고, 시간도 딱 지켜... 경찰 "집회하려면 이렇게">(9월 4일 김승현·김연주 기자)에서도 민주노총 1박 2일 시위와 비교하거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관 추정 글을 인용하며 "교사들의 질서 있는 집회 문화"를 칭찬했습니다. 교사들이 거리로 나온 목적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교권 보호' 등은 기사 말미에 언급했는데요. 조선일보는 집회 목적보다는 '집회 질서 유지'와 '노동조합 배제'가 더 감명 깊었던 모양입니다.
교원노조에 정치색 덧칠하며 책임 전가
집회 질서를 중시한 조선일보는 추모집회에 정치색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설/정치가 끼지 못하게 막아야 일이 된다는 걸 보여준 교권 운동>은 "여야가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교원지위법' 등 교권 보호 관련 법안 4개"를 모처럼 신속하게 합의 처리했는데, "교권 회복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탈정치'를 원칙으로 내세운 단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한 단체가 주도해 "정부, 여야 상대 협상력도 커졌"다는 주장인데요. 정치가 끼지 못해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을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끼지 못해서 협상력이 커졌다는 주장과 달리 조선일보 논조는 국민의힘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세계일보 <여 "학생 인권만 강조한 단체"에 전교조 강력 반발 "편협한 인식…수치스럽다">(9월 4일 김동환 기자)에서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유독 학생 인권만 강조한 특정단체, 신성한 선생님을 스스로 노동자로 격하시킨 단체의 책임이 있다"며 "선생님들이 노동자임을 자처하는 단체 때문에 교육 현장이 망가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나 정부·여당 모두 현재 언급되고 있는 교육 문제의 책임을 교원 노조에 돌린 겁니다.
자발적 집회에 '정치색' 언급, 교사들 "아예 안 듣는구나"
그러나 교사 노동조합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다는 주장이나 정치색이 있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일방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데요. 그럼에도 교사 단체는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을 배제한 채 자발적 참여로 추모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교사들 분노에도 '색깔론' 적용? "아예 우리 목소리 안 듣는구나…">(9월 4일 한예섭 기자)는 "국민의힘 측에서 추모집회에 대한 '전교조 개입설' 등을 꺼내 들면서 현직 교사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20대 초등교사 A씨는 "공교육 멈춤의 날 얘기가 나온 이후 안 그래도 (참여 중단을 경고하는) 지시사항이 굉장히 많이 내려와 압박을 받았"는데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치색 같은 것까지 언급하니까, 아예 우리 목소리는 듣지도 않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라며 유감을 드러냈습니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모집회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주최를 한 것으로, 교직단체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교권을 회복하고 억울한 교사 죽음의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집회에 '정파성 논란'을 들이대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정치권이나 서울신문 <사설/ 전교조, 교권 회복 논의 앞에 설 자격 없다>(9월 4일)처럼 잘못된 주장을 늘어놓는 부적절한 보도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한국경제, 문화일보 등 "수업권 볼모로 한 불법집회"
교권 회복을 위해 나선 교사 집회에 학생의 '수업권'을 언급하며 위법을 부각한 보도도 있습니다. 한국경제 <사설/학교 멈춘 하루, 교육 정상화 출발점 삼자>(9월 5일)는 추모집회 참석 교사들에게 "수업권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보다 정부 학부모 학생 등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과거 전쟁통에도 학교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교권 못지않게 수업권도 존중받아야 할 핵심 가치라는 점에서 부적절한 집단행동"이라며 "불법을 밥 먹듯 하는 정치색 짙은 특정 교원단체가 주도하지 않아 정상 참작 여지가 있지만, 위법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정상적 교육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의 집단 연가 사용은 분명히 우회파업"이라며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 금지의무·성실의무·직장이탈금지 조항 위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8월 29일 문화일보의 오피니언 <극단 선택 교사 49재 추모해도 ‘교육 파업’은 접으라>의 내용 중 일부.ⓒ 문화일보 갈무리
문화일보 <사설/극단 선택 교사 49재 추모해도 '교육 파업'은 접으라>(8월 29일)도 "추모와 교권 회복을 거듭 촉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까지 용인될 순 없다"며 "'교육 파업'은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망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언급하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빼앗는 추모는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는데요. "집단 추모를 하더라도 방과 후"에 하라며 무너져 내린 교권을 회복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동료 교사를 슬퍼하는 방식마저도 제재하고 추모조차 통제하려는 강압적인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연가 투쟁의 절박함, 교사의 목소리 경청해야
하지만 학교에 '재량휴업 금지령'을 내리며 학생의 수업권을 보호하지 않은 것은 교육부입니다. 많은 교사가 추모를 위해 출근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임시 휴업일을 지정해 대체 수업일을 확보하는 게 교육과정 파행을 막는 것이었는데요. 교육부는 오히려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반감을 갖고 재량 휴업일 금지, 연가·병가 신청 시 징계 등을 내세우며 추모 열기를 억제했습니다.
한국일보 <사설/또 교사 2명 사망... 연가집회 엄단한다고 될 일 아니다>(9월 4일)는 "교사들이 오죽하면 연가까지 쓰려는지 그 취지를" 살펴야 한다며 "지방에서 휴일까지 반납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들에게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냐고 되물었습니다. "'교육은 하루도 멈추면 안 된다'지만, 학생들의 수업권은 일정 조정 등으로 얼마든지 보장할 수 있"었다며 "추모집회의 물리적 대응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부족한 해법들을 메워"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근본 대책 필요
최근 나흘 새 또 다른 교사 3명이 숨졌습니다. 이들의 죽음에도 과도한 업무, 학부모 민원 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겨레 <교사들, 징계 각오하고 거리로…"동료 죽음이 벌보다 두렵다">(9월 4일 조윤영·이승준 기자)에서 교사들은 "징계나 고발보다 변하지 않을 교실이 더 무섭다"고 입을 모으며 "아이들 생각하면 오늘 하루 비우는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길게 봤을 때 (학교에 나가는 것은) 교사를 위한 게 아니"라며 "교육이 가능한 학교와 교실을 만들기 위한 실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처럼 "집단 우울증에 시달릴 지경이라지만 교사들의 소명 의식 희석과 일부 특권의식이 교권 추락을 자초했다는 시각도 상당"하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거나 <국제신문>처럼 "교권이 아무리 중요해도 학생의 학습권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교권과 학습권을 상호대립 구도에서 바라보는 비뚤어진 언론의 주장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악성 민원에 스러져 가는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언론은 교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무너진 교권이 회복될 때 악성 민원으로 교육을 침해받던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권 역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언론이 교사들의 절박한 호소를 심층적으로 담아내고, 백년대계인 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게 교육 정상화에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9월 4일 ~ 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보도,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저녁종합뉴스, 빅카인즈에서 8월 1일 ~ 9월 5일까지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관련 기사
‘윤석열 검사’ 봐주기 수사 의혹…검찰은 2년째 ‘수사 예정’ 말만
부산저축은행 사건 1심 판결문. 한겨레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의 대장동 사업 불법 대출 수사를 맡았지만 덮었다’는 취지의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기사에 대해 검찰이 허위보도라며 수사를 확대 중이지만, 해당 기사가 허위라 해도 ‘검사 윤석열’의 부실 수사 의혹은 남는다. 검찰도 이 기사의 허위성 여부와 무관하게 해당 의혹은 계속 살펴본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이 의혹은 2009~2010년 남욱·정영학 등이 관여한 대장동 민간개발업체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1천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불법 알선이 이뤄졌는데, 2011년 중수부가 이 대출을 주선한 조아무개씨를 계좌추적까지 하고도 참고인 조사만 하고 덮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후 강제수사 기능도 없는 예금보험공사가 조씨 등의 범죄 혐의를 인지해 검찰에 수사의뢰했고, 수원지검은 2015년 “금융알선브로커”이자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의 인척”인 조씨가 부산저축은행의 대장동 관련 대출 1155억원을 알선한 명목으로 10억3천만원을 수수했다며 구속기소했다. 조씨는 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핵심은 ‘검사 윤석열’이 몰라서 수사를 안 한 것인지, 알고도 덮은 것인지다. 윤 대통령 쪽은 조씨의 혐의를 2011년 수사 당시 몰랐다는 입장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쓰일 돈이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대출 알선된 정황은 2011년 11월 수사 마무리 뒤 예금보험공사의 추가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고, 당시 중수부 수사에서는 진술도, 증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몰랐을 뿐 봐준 건 아니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여럿 있다. 당시 중수부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을 1280억원 부당 대출 혐의(배임) 등으로 모두 6차례 기소하는 등 치밀하게 수사했다. 조씨가 대장동 대출 알선 명목으로 받았다는 10억3천만원에 비해 액수가 적은 1억~3억원을 대출 알선 명목으로 받은 이들도 모두 구속기소했다.
당시 조씨 변호인이 윤 대통령과 사이가 가깝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였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조씨 변호인이었던 박 전 특검의 연락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2021년 10월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은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사건’과 관련해 “관련 기록을 검토해 철저히 수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검찰이 진행한 ‘1차 대장동 수사’ 때 검찰은 이 부분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대장동 본류’ 수사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뒤 진행된 ‘2차 대장동 수사’ 때도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에 집중한 바 있다. ‘해당 의혹 수사 진행도’를 묻자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다 볼 예정”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2021년 11월19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화천대유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윤석열 후보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관련 직무유기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뉴스타파 “시민에 사과…정치공세·탄압엔 단호 대응”
신학림-김만배 인터뷰 보도 관련 입장문 발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뉴스타파는 지난 대선 직전 신학림-김만배씨 인터뷰 보도와 관련해 5일 입장문을 내어 “후원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사과한다”며 “이와 별도로 저열한 정치공세와 폭력적 탄압에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금전 거래의 경위는 차후 법적 절차를 통해 명확히 밝혀질 일이지만 취재원과 거액의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은 저널리즘 윤리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녹음파일을 제공한 신학림씨가 김만배씨와 오랜 친분이 있었다
는 사실을 간과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얽혔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또 “보도의 경위와 과정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 외부 조사위원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조사 진행 과정과 결과를 보고서 등 적절한 형태로 후원회원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해당 보도가 완전한 허위였다거나 의도적인 대선 개입이라도 있었다는 양 몰아가고 여당과 일부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검찰발 기사를 무기 삼아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치밀한 팩트체크를 통한 합리적 반박 보도는 물론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배후 찾는 대통령실…언론장악 직진?
대통령실 이례적 ‘고위관계자 성명’…총선 앞 총공세
“대장동-언론, 희대의 정치공작”…여당·검찰도 호응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차세대 외교관과의 대화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지난 대선 사흘 전 공개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두고 5일 “대장동 주범과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 합작한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 사건”이라며 “이번 기회에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과 검찰은 “배후를 철저히 가려 책임을 묻겠다”고 호응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가짜뉴스 척결’을 지렛대 삼아 비판적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총공세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이날 ‘대통령 고위관계자 성명’이라는 이례적 형식의 입장문을 내어 “‘대장동 사건 몸통’을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뒤바꾸려 한 정치공작적 행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김대업 정치공작, 기양건설 로비 가짜 폭로 등의 계보를 잇는 2022년 대선의 최대 정치공작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1일,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뉴스타파 전문위원이던 2021년 9월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무마 의혹’ 관련 인터뷰를 한 대가로 1억6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신 전 위원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3일엔 김씨가 ‘이재명의 대장동 의혹’을 ‘윤석열의 부산저축은행 의혹’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관련자 진술 등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날조된 사실, 공작의 목표는 윤석열 후보의 낙선이었다”며 “당시 집중적으로 가짜뉴스를 실어나른 언론 매체들이 있었다. 기획된 정치공작의 대형 스피커 역할이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당시 보도의 ‘배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는) 대한민국 여론을 완전히 뒤집어놓겠다는 가짜뉴스 전문가들의 집단적 행동”이라며 “배후가 누군지 철저히 가려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도 경위, 대가 관계, 배후 세력 등을 규명해 전모를 밝혀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쪽을 겨누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신학림 전 전문위원과 김만배씨 사이에 금전 거래가 이뤄진 것은 언론 윤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도 “집권 세력이 이 사안을 부당하게 침소봉대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 통제, 방송 장악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영국 제2도시 버밍엄, 사실상 파산 선언
영국의 제2도시 버밍엄 시의회가 5일(현지시간) 사실상 파산 선언을 했다. 위키피디아
영국의 제2도시 버밍엄이 사실상 파산을 선언했다.
BBC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 중부 대도시 버밍엄 시의회는 5일(현지시간) 지방정부재정법에 따라 취약계층 보호, 폐기물 처리 등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지출을 금지하는 ‘섹션 114’ 통지를 발령했다.
올해 예산 32억파운드(약 5조3500억원) 가운데 8700만파운드(약 1454억원)가 부족하다는 것이 시의회의 설명이다. 시의회는 영국 대법원의 ‘동일 임금’ 판결에 따라 여성 노동자들에게 미지급 임금 7억6000만파운드(약 1조2700억원)을 소급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재원이 없다고 밝혔다.
시의회 설명에 따르면 재정 적자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법원 판결에 따른 미지급 임금 지출이다. 2012년 대법원은 시의회가 교육 보조, 급식 등의 업무를 담당해온 시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남성 노동자와 동일한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 판결에 따라 시의회는 지난 10년간 11억파운드(약 1조8400억원)의 임금 차액분을 지급했다. 과거 버밍엄시는 환경미화 등 남성들이 많은 직종에만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여기에 앞으로 지출해야 할 미지급 임금도 상당한 데다 새 정보통신(IT) 시스템 구축에도 1억파운드(약 1671억원) 가까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울러 노동당이 집권한 버밍엄 시의회는 지난 10년간 보수당 정부가 지방예산을 줄인 것이 재정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샤론 톰슨 시의회 부의장은 “지난 10년간 보수당 정부는 버밍엄에 10억파운드의 예산을 삭감했다”면서 “여기에 전국의 다른 지방의회와 마찬가지로 성인 사회복지 비용의 증가와 법인세 감소, 물가상승 등이 겹치며 전례 없는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대변인은 “정부는 정기적으로 버밍엄의회와 협력하며 재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면서 “지방에서 선출된 의회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수낵 총리는 버밍엄의회의 재정 지원 요청에 “재정 관리 부실을 겪은 지방의회를 구제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 아니다”라며 구제금융을 거부한 바 있다.
버밍엄에 앞서 크로이든, 워킹 등 영국의 다른 지방의회도 재정난으로 ‘섹션 114’를 발동한 바 있다. BBC에 따르면 영국의 지방의회 등은 지출 약속을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이런 조치를 발동하며, 이후 수정 예산을 통해 서비스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영국 47개 도시 의회로 구성된 지방자치협의체에 따르면 영국의 최소 26개 의회가 향후 2년 내에 파산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디언은 지방정부의 재정난이 확산하면서 13년간 이어진 보수당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향 선명수 기자
죽을 맛"이라는 상인들... 윤 정부는 위기인지도 모른다
'9월 위기설' 일축하고 '상저하고' 주장만... 무슨 근거로?
큰 틀에서 볼 때 위기라고 볼 상황은 절대로 아니다. 9월 위기설은 없다."
지난 1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일각에서 불거진 9월 위기설을 극구 부인했다. 또한 부동산 PF 대출에 대해선 "시스템 위기는 아니다"라며 "여러 소문과 우려가 있지만 관리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맞다. 시중에 나도는 흉흉한 소문은 부풀려지고 과도하게 공포를 부각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대기업들이 줄도산으로 가는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보이는 집착, 기업들이 보유한 달러 등 유동자산의 규모로만 본다면 '9월 위기설'은 분명 기우다.
그런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존망이 달린 내수 경기와 국민의 살림살이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구 실질 소득이 17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하고 7월 소매 판매가 전월 대비 3.2% 감소하면서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소득 감소, 소비 위축, 내수 침체가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은행과 대기업과 국가 재정이 안전하다고 위기가 아니라고 하니, 이게 맞는지 의문이다.
4월 위기설, 9월 위기설, 연말 위기설... 계절병처럼 찾아오는 위기설에도 국가와 기업은 안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을 떠받치는 국민 살림살이는 날마다 위기를 맞고 어느 곳에서는 소리도 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9월 위기설, 정말일까?
▲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통관기준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8.4% 줄어든 518억7천만달러, 수입은 22.8% 감소한 510억달러였고 무역수지는 8억7천만달러 흑자를 기록하여 3개월 연속 흑자세를 이어갔다고 1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 하는 모습. ⓒ 연합뉴스
9월 위기설의 단초가 된 건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보고서 공개였다. "시중 금리가 높고 거시경제 위험성도 커지고 있어 9월 말 상환 유예가 종료되면 자영업자, 중소기업 위주로 시중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4대 은행 부동산PF 위험 노출액이 30.9조 원, 코로나대출 만기연장으로 상환 유예된 금액이 76.2조 원에 달하는데, 9월로 상환기간이 만료되면 상환을 할 수 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폭증하고 이는 곧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국내 언론들이 이 보고서 내용을 '9월 위기설'이라며 큰 비중으로 실었다.
불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보고서의 위험성은 현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잔액이 최근 9개월 새 24조 원 가량 줄어들었으며, 부실 가능성이 큰 대출 규모는 0.07% 정도로 은행 부실로 이어질 정도가 아니고, 만기도 금융권과 협의에 따라 2025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9월 위기설은 과장되었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정부의 설명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나 정부의 해명은 말 그대로 '큰 틀'의 예측이고 해명이다. 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 만기를 연장하고 값싼 이자의 대환대출 정책을 시행해도, 수입이 늘어나지 않으면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는 위기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유예될 뿐이다.
"점포가 자꾸 비어요. 매달 임대료. 관리비. 공공요금은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매출까지 줄어드니 차라리 '노는 게 돈 버는 것'이란 소리, 빈말이 아니네요. 찬바람 불면 좀 나아질까요? 올 여름 같으면 죽을 맛이네요."
같은 골목에 살고 있는, 시장에서 그릇 장사한다는 아저씨의 아침 인사는 듣기에도 버겁다. 시장이 빈 가게가 늘어나고 손님은 점점 더 줄고 물가는 자꾸 오른다는 게 아저씨의 하소연이다. 어디를 가나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은 똑같다. 코로나 시국보다 못하다는 소리. 돈이 씨가 말랐다는 푸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자영업자가 느끼는 불황은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우리 경제가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실물 경제나 각종 경기지표, 경제 연구소의 예측 모두 우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 정책이 있기나 하냐'는 볼멘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얼어붙은 내수 경기, 막힌 수출길, 그 사이에 최근 청년 백수가 12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합계 출산율 0.78명에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다'라는 반응을 보인 한 미국 교수의 반응도 최근의 일이다. 은행이 망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안정적이더라도 이런 게 위기다. 내수, 수출, 청년 실업, 인구 정책, 어느 것 하나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정부. "성장과 복지 선순환을 목표로 행복경제를 만들겠다"는 대선 후보 시절의 약속을, 윤 대통령이 기억이라도 하고 있나 의심이 들 정도다.
'상저하고', 무슨 근거로?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9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성수품 공급을 확대하는 등 내수활성화 대책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임시공휴일 지정, 추석 연휴 통행료 면제 등 관광 활성화 방안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의례적 정책이고, 크게 눈에 들어오는 대책도 거의 없었다.
하반기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에 두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그러나 숱한 난제들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자영업자의 소득을 키우려는 정책은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국민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가계 부채 해결과 '행복경제'가 가능하기나 한 건지,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다.
'상저하고'. 상반기는 부진했지만 하반기는 반등할 것이라는 정부의 경제 예측이다. 근거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지난 7월 국내 산업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줄었다. 일명 '트리플 감소'다. 올 1월 이후 6개월 만에 나타난 좋지 않은 징조다. 수출 부진도 걱정이다. 8월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5%가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다. 그런데도 경제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상반기에는 0.9% 성장했는데 하반기에는 2배 성장할 것 같다"는 예측을 자랑처럼 말한다. 'L자형 장기 침체' '일본형 경제 하강 국면'이라는 국내외 쏟아지는 우려와 지적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으로 상환 유예된 금액이 76.2조다. 만기연장을 한 경우라도 상환이 끝날 때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은행으로 불똥이 안 튀었다고, 국가 경제는 여전히 건전하다고 호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랑이 아니다. 이중 이자조차 갚지 못해 파산을 앞둔 800여 명뿐만 아니라, 76.2조원의 빚을 이고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에게 벌어서 갚을 길을 열어 주지 못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9월 위기설, 정부와 기업은 체감 못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에겐 삶을 망가뜨리는 공포다.
'상저하고' 예측을 뒷받침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수산물 먹방에 진심인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잘 차려진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임대 문의'를 적어놓고 불 꺼진 점포 사연도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은행과 국가 경제로 불똥만 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안일한 위기론 인식, 그것 때문에 자영업자와 빚진 국민들이 더 허리띠를 졸라매며 산다는 현실을 깨닫길 바란다.
[안호덕/오마이뉴스
김만배 대화 내내 법조계 인맥 자랑... 대선 관련 발언은 없어
뉴스타파 '신학림-김만배' 녹음본 전체공개
대장동 언급하며 저축은행 수사 무마 과시
뉴스타파 "보도 과정에서 신학림 개입 없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7일 0시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허위 인터뷰를 보도한 의혹을 받는 인터넷 신문 '뉴스타파'가 7일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과 녹취록을 삭제 없이 전체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대화 당시는 김만배가 알려지지 않은 때로, 오염되지 않은 증언이라고 봤다"며 보도 경위도 밝혔다.
뉴스타파는 이날 홈페이지에 김씨와 신 전 위원장의 대화가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파일은 2021년 9월 15일 김씨와 신 전 위원장이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나눈 대화로, 1시간 12분 분량이다. 별도로 제작한 8분 분량 영상에 해당 보도를 결정하게 된 상황도 소상히 담았다.
먼저 뉴스타파는 대화 시점을 들어 허위 인터뷰 의혹을 반박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결정되기 50일 전으로, 특정 후보를 겨냥한 조작 인터뷰라는 의심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주장이다.
여권이나 대통령실이 허위 인터뷰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한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은 대화 초반에 등장한다. 김씨는 대장동 사업을 소개하며 '조우형'(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이라는 이름을 언급했고, 과거 조씨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수사를 받을 때 자신이 박영수 전 특검을 통해 대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과시하기도 했다.
논란의 '윤석열 커피' 의혹에 대해서도 새로운 내용이 드러났다. 녹취록 속 신 전 위원장이 "박영수가 윤석열하고 통화를 해서 조우형이 박○○(주임 검사)와 커피 마신 거냐" 묻자 김씨는 "아니, 혼자. 거기서 타주니까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검사 누구를 만났느냐"는 질문엔 "박○○를 만났는데, 박○○가 얽어 넣지 않고 그냥 봐줬지"라고 답했다.
지난해 3월 뉴스타파 보도에서 김씨가 "커피 한잔 주면서 '가 임마' 이러면서 보내더래.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라고 말한 뒤 "박○○ 검사가 커피, 뭐하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 보내주더래. 그래서 사건이 없어졌어"라는 내용이 공개된 것과는 어긋난다. 뉴스타파 측은 "대화의 핵심은 커피가 아니고 조우형에게 박영수를 소개한 뒤 수사가 무마됐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녹취록을 보면 김씨가 여러 차례 "이거 기사 나가면 나도 큰 일"이라거나 "형(신학림), 이거 쓰면 안 돼"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뉴스타파는 이를 두고 "짜고친 인터뷰라고 볼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보도 직전 등장인물을 상대로 사실 확인 절차도 거쳤다고도 주장했다. 아울러 내부 논의를 통해 보도를 결정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 전 위원장의 개입 여지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녹취록만 33쪽에 이르는 긴 대화였지만, '대선'에 관한 언급은 전무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법조계 인맥 자랑 등 김씨의 과시성 발언으로 읽히는 대목도 곳곳에 담겼다.
김씨가 가짜 인터뷰를 기획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검찰은 김씨가 신 전 위원장과 공모해 대장동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를 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김씨가 다른 대장동 일당과의 대화 등을 통해 "우리는 이재명 대표와 한 배를 탔다"거나 "형이 광야로 끌고 갈 테니 모른 척하라"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다만, 두 사람의 이날 대화에서 '대선 여론조작' 공모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검찰 특별수사팀이 김씨의 대선개입 혐의를 입증하려면 김씨가 별도의 통로를 통해 신 전 위원장에게 허위의 인터뷰를 게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허위 인터뷰의 목표가 '대선 개입'이었다는 물증을 찾는 것 역시 수사팀의 과제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이재명이 당했던 진짜 '대선 공작' 가짜뉴스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던 3월 6일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가 정치 공작이었다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리고 유통한 국민의힘 세력이 과연 이러한 공격을 할 자격이 있는지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7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뉴스타파의 보도와 김만배 씨와의 대화 녹음 당사자인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을 두고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시도로서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앞서 6일에는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위원장, 뉴스타파 기자와 이 내용을 인용 보도했던 KBS, MBC 기자 등 총 9명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도 ‘국기문란’ 사건이라면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언급했다.
반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6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오히려 대선 기간에 공작을 행한 것은 국민의힘”이라며 “백번 양보해서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에서 문제 삼는 보도가 중대범죄, 국기 문란행위라면 동일한 잣대로 폐간을 고려해야 할 매체들은 정말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 직전 뉴스타파가 보도한 음성파일에는 김만배 씨가 신 전 위원장과 만나 “내(김만배)가 조(우형) 씨를 박영수 변호사에게 소개해줬다. 당시에 윤석열이 (대검 중앙수사부) 과장, 박 아무개가 주임검사야. 그래서 내가 (조 씨에게) 박영수(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 씨는 “박영수가 (조 씨 사건 관련) 진단을 하더니 나한테. ‘야, 그놈 보고, 대검에서 부르면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고 그래’. 그래서 나도 모르고 그냥 (조 씨한테) ‘야, 형님(박영수)이 그랬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란다’ 그러니까 진짜로 (조 씨가 검찰에) 갔더니 (조 씨한테) 커피 한 잔 주면서 ‘응, 얘기 다 들었어. 들었지? 가 임마’ 이러면서 보내더래”라고 말했다. 또 “박 아무개 검사가 커피, 뭐하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 보내주더래. 그래서 사건이 없어졌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의 이러한 보도 내용은 대장동 민간사업자 가운데 한 명인 남욱 변호사의 진술과 일치한다. 당시 JTBC는 “남 변호사가 검찰 조사에서 ‘윤 후보가 대장동 불법 대출을 눈감아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부인했다.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조 씨에게 커피는 왜 타줬느냐’고 묻자 윤석열 당시 후보는 “난 그 사람 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제 와서 국민의힘이 ‘대선 공작’이라면서 공격하는 이유는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위원장 간의 금전 거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 전 위원장은 김 씨로부터 부가세 포함 1억 6500만 원을 받았다. 신 전 위원장은 족벌언론과 재벌가의 혼맥 지도 내용을 김 씨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씨는 책 3권의 판권의 대가로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주장처럼 정치공작 측면에서 본다면 윤석열 대통령보다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작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2021년 10월 18일 경기도 대상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조폭 돈다발 연루설'을 제기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김용판 의원은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활용해 당시 이 지사가 조폭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현금 뭉치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가짜 돈다발'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최고위원은 “가짜 돈다발을 줬다고 주장한 조폭 출신도, 이 가짜 돈다발 사진을 건넨 변호사도, 가짜 돈다발을 공개한 의원도 모두 국민의힘 측 인사였다”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 아닌가”라고 말했다.
장영하 변호사도 당시 이재명 대표의 '조폭 연루설'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집요하게 제기했는데 검찰은 민주당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한 장 변호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민주당이 장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낸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기소하도록 했고, 장 변호사는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장 변호사를 무혐의 처분한 건 김만배 씨가 '허위 인터뷰'를 했다며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 등 법석을 떠는 현재 모습과 대조적이다.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극단적인 편파수사를 일삼는 고질적 행태 중 빙산의 일각이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2021년 10월 18일 경기도 대상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조폭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현금 뭉치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가짜 돈다발'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SBS 뉴스 화면 캡처
박 최고위원은 대선 당시 ‘대장동 그분’을 찾는 언론보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박 최고위원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2021년 10월 9일 '김만배,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김만배 씨가 '천하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말한 대목이 정영학 녹취록에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 씨의 해당 발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존재하지 않았던 발언을 근거로 '대장동 그 분'이 누구냐는 추측 보도가 쏟아졌다. 박 최고위원은 “동아일보가 첫 보도를 했던 2021년 10월 9일부터 2022년 2월 19일까지 무려 767건의 관련 보도가 쏟아졌고, 이 보도는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라면서 “이런 보도야말로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명백한 가짜뉴스 아닌가”라고 말했다.
‘428억 약정설’ 또한 대선 이후에 나온 가짜뉴스 공세 사례다. 428억 약정설은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로부터 특혜 제공의 대가로 428억 원을 받기로 약정했다는 내용이다. 마치 이 대표가 검은 돈을 받은 것처럼 매도하면서 배임 혐의의 근거로 활용됐지만 검찰의 공소장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도 않았다. 박 최고위원은 “2022년 11월 1일 중앙일보 기사에서 최초로 거론되고, 2022년 11월 9일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른바 428억 약정설은 2022년 11월 1일부터 2023년 3월 21일까지 무려 2064건의 보도가 쏟아졌다”면서 “국민의힘이 이런 류의 검찰발 가짜뉴스를 활용해 국민을 선동하는 데 열을 올렸던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차고 넘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 공작적 행태로 의심되는 사례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이른바 ‘쌍방울 대북송금’ 문제도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기 위한 공작정치의 일환으로 볼 소지가 많다. 이화영 전 경기도 전 평화부지사의 진술 번복이 대표적 사례다. 쌍방울이 2019~21년 북측에 전달한 800만 달러 중 500만 달러는 이재명 지사가 추진하려던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을 대납한 것이고, 나머지 300만 달러는 당시 이 지사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한 금액이었다는 것이 '쌍방울 대북송금' 이슈의 요체다.
이와 관련 이화영 전 부지사는 이같은 내용을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했다가 최근 진술을 바꿔 보고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는 7일 언론에 공개한 자필 진술서에서 "이화영은 검찰로부터 별건 수사를 통한 추가 구속기소 등 지속적 압박을 받으면서 이재명 지사가 (대북송금에) 관련된 것처럼 일부 허위 진술을 했다"며 "이는 양심에 어긋난 행위로서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불, 방북 비용 300만 불을 쌍방울이 대신 내줬다는데 그럼 쌍방울은 돈 한 푼 안 내고 대북사업 합의서를 써 주가를 부양하고 이익을 얻었나?”라며 “그리고 도지사가 무엇이 아쉬워 방북해 사진 한 번 찍겠다고 조직폭력배 출신의 믿을 수 없는 사업가에게, 생면부지인데도 수십억 원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믿고 수십, 수백억 원을 대신 낸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런 것으로 영장 청구를 한다고? 그런 과정 자체에 대해 여러분이 의심을 갖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시민언론 민들레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선진국 한국'의 섬뜩한 광고
3년 만에 방문한 한국... 이 사회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는가
선진국이 '앞서가는 나라'를 지칭한다면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3년 만에 돌아본 나의 조국에서 절실히 느낀 바다. 여기가 고지라고, 이쪽이 대세라고 깃발이 나부끼면 우린 전속력을 다해 그리로 달려가는 데 최적화된 5천만의 공동체다. 그곳이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인간을 소외시키는 터치스크린
제법 규모가 있는 카페에서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의 호두과자 판매점까지 이젠 터치스크린 주문이 대세가 됐다. 사람들은 빠르게 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는 분위기다. 한 브런치 카페,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주문을 하려고 입을 떼니 턱으로 뒤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카드가 있으면 주문은 손으로 하시란다. 감정이 소거된 기계적 언어로.
어차피 기계가 주문받는 일을 떠맡기 전, 전국의 카페 직원들은 '주문받는 직원 앱'이 깔린 인조인간처럼 같은 톤, 같은 어휘, 같은 표정으로 말했었다. 기계를 흉내 내던 인간은 결국 기계에 의해 대체됐다.
직원은 현금으로 계산하는 극소수 손님이 사라지는 날 함께 사라질 자신의 역할을 여전히 기계를 흉내 내며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음식에 대해 자세히 물을 수도, 세트 메뉴에 변화를 줄 수도 없다. 철저히 변수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실수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런 방식이 업주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안기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한 걸음 더 인간들의 삶에서 소외되었다.
▲ 무인주문기 앞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들이 12일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무인주문기(키오스크)에서 실제 주문을 해보는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직원의 도움으로 메뉴를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일제히 선팅, 일제히 '한국식 스포츠웨어'
온 나라에 굴러다니는 승용차들의 창문이 까매졌다. 버스도, 택시도 없어서 경복궁 후문에서 결국 인사동까지 걸어가야 했던 상황.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볼까 하다가, 모든 차들이 일제히 선팅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 안에 사람이 보여야 인상 봐가며, 자리가 비어있는지 봐가며 시도해 볼 것 아닌가. 전혀 속이 보이지 않는 차들을 향해 차마 손이 올라가질 않았다. 검은 창은 세상의 시선을 차단한다는 신호. 사람들은 이렇게 다시 한번, 서로 간에 벽을 쳤다. 또 다른 차단의 도구가 일제히 확산됐다.
바닷가. 전통적 개념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나와 딸 뿐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대동단결, 허벅지와 팔을 덮는 기다란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었다. 바다에는 왔지만 햇볕은 사양한다는 의미일까? 등산객들이 일제히 블랙야크식 유니폼을 입고 산에 오르듯, 마치 더 이상 바다에선 전통적인 수영복은 안 입기로 투표로 결의한 듯한 모습에 절망한 건 딸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그 위에 이모가 사준 한국식 스포츠웨어를 걸쳤던 아이는, 이미 혼혈의 외모가 시선을 끄는 중에 지나치게 이목을 끌 것이 싫어 현지적응을 택했다. 아이에게 불과 몇 년 전까진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수영복을 입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두 가지 중 무엇이 낫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왜 일제히 모두 한가지 선택을 했는지가 의문일 뿐.
공공성을 잃은 교육과 의료
▲ 사진은 서울 신사역 안에 설치된 성형외과 광고.ⓒ 연합뉴스
여름 내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대한민국 광고 시장을 두 업종이 양분하고 있는 걸 보았다. 학원과 병원, 즉 교육와 의료다. 약 20년 전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고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진보정당이 떠올랐다. 적어도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세상, 학교 못 가는 세상은 탈피하자는 주장이 그땐 제법 먹혀서, 10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런데 20년 뒤, 이 둘은 한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 된 모양이다.
잘나가는 1타 강사의 소득세가 100억 원이 넘는 시대,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서, 한국 학원 강사를 하는 시대에 공교육은 만신창이가 됐다. 한국에 오자마자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터졌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완전히 무기력해졌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국어 시간에 작문 수업을 했더니, 다음날 학부모로부터 "교과서 진도나 나가시죠"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동료 교사는 "당신이 그러면 우리만 괜히 비교당해" 튀지 말라 종용한다. 사건이 터지면 교장은 교사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뒤로 숨는다. 그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건 무모한 자해행위다.
모든 학생은 결국 수험생의 정체성을 갖는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의대에 가거나, 그게 안 되면 스카이대학의 다른 과에 가는 것. 그런 와중에 "쓸데없이" 전인교육 따위 시키지 말라 학부모가 요구한다. 이 판의 승자들, 그래서 결국 의사가 된 사람들은 버스에, 지하철 전동차에, 역에, 스크린 도어에, 버스에, 심지어 대형마트 카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최신 장비로 시술과 수술을 한다며 학원 강사들과 같은 표정, 같은 포즈로 광고를 한다.
의사가 가장 확실하게 돈 잘 버는 직업이어서, 서울대 물리학과보다 부산의대가 더 인기 있어진 상황이니, 그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모객에 열심인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비슷한 표정, 비슷한 분위기로 학원 강사와 의사들이 광고지면을 도배하는 현상은 거부감을 안겼다.
20년간 프랑스에 살며 병원이 광고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의사들은 자신의 이름과 업종이 새겨진 A4 크기 금속 패널을 병원 건물 입구에 간판처럼 붙일 뿐이다. 여기도 남부럽지 않은 울트라 자본주의 사회지만, 의료와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영역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돈다발을 흔들면 서비스 속도가 빨라지는 민간 병원이란 트랙이 공존할 뿐.
한국 사회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에 있다지만, 가장 병든 지점도 교육인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서로를 해하고 목숨을 던지던 학교에서 이젠 교사들이 그 뒤를 잇는다. 수능 고득점을 책임지지 못하는 학교는 시대가 요구하는 쓸모를 상실했고, 학원이 할 수 없는 보편적 교육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지시를 대통령이 했을 때, 언론은 학교 교사가 아니라, 1타 강사들을 인터뷰했다. 학원의 힘이 비대해질수록, 한국 교육은 수렁에 빠졌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독을 빨아야 했다. 이 아수라판에서 1타 강사들의 도움으로 킬러문항을 돌파하고 마침내 승리의 고지에 도달한 자들. 의료 기술을 가진 자영업자들이 재주껏 마케팅하며 고객을 유혹하는 사회의 보건 의료는 어떤 모습인가?
엄마를 모시고 한국 오자마자 병원을 들락거리며 관찰한바, 병원의 최대 관심사는 비싼 시술을 받겠다는 고객님의 사인을 신속하게 받아내는 데 있는 걸로 보였다. 종종 직업윤리를 잊지 않은 단단한 양심의 의사들이 있을 뿐. 그들의 과도한 욕심을 자제시키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했다. 요란한 광고들과 더불어, 별도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숙련된 어휘로 고객의 계약서 사인을 유도하는 상담 전문 직원의 태도가 병원의 속내를 웅변해 줬다.
에어컨의 최대치 가동
▲ 무더위에 여름철 최대전력수요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7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걸려있다ⓒ 연합뉴스
어디를 가도, 최대치로 틀어 놓는 에어컨 때문에 가는 곳마다 실내에선 추웠고, 밖으로 나오면 따뜻해지는 탓에 더위를 감사히 여길 수 있었다. 에어컨은 역설적으로 더위를 고맙게 느끼게 해주는 기계였다. 국가 전체가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도, 거기에 적극 기여하는 에어컨의 최대치 가동에 대해선 한마음으로 무시한다.
실내 온도는 온전히 인간의 통제 하에 놓여야 한다고 믿고, 에어컨이든 난방기든 뭔가를 틀어줘야 한다고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걸까? 실내와 실외 온도 차가 극심할 때, 그것을 견뎌야 하는 인체의 면역력은 약화된다는 건강 상식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마치 문명의 이기를 최대치로 누려야만 '선진국'이라고 누군가 단단히 주입한 것처럼.
크루아상의 놀라운 가격
전국 구석구석에 일제히 고급 빵집들이 들어섰다. 서울 한복판뿐 아니라, 전남 벌교에, 경기도 시흥에, 부산 남천동에… 이 많은 제빵 장인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셨을까? 빵이라면 언제나 애틋한 내겐 반가운 소식이다. 이 개성 넘치는 고급 빵집들의 등장으로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의 시대는 머잖아 저물 듯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어차피 강남에 집은 못 사니, 빵에서라도 럭셔리한 삶을 구현하고픈 욕망의 저격일까?
경기도 부천에 있는 큰 규모의 빵집, 프랑스 밀가루로 만든다는 크루아상 1개에 5000원에 팔고 있었다. 파리의 평범한 빵집 크루아상 가격의 3배다. 그런데도 잘 팔린다. 빵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네 대형마트에서 파는, 유기농도 아닌 풋사과 2kg에 1만 6000원을 줬다. 파리로 돌아와 유기농 가게에서 산 사과 2kg는 3.5유로(5000원)였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가의 상승으로 물가가 두루 올랐지만, 이렇게 미친듯 널을 뛴 적은 없다. 그동안 GDP도 상승했지만, 전반적 소비자 물가는 2배로 뛴듯했다. 불과 3년 만에.
또한 지난 10년,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224% 상승(2011~2021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 다방 통계) 하는 동안, 파리 부동산 가격은 29.9% 올랐을 뿐(2013~2023, 프랑스공증인협회 통계)이다.
녹색 공간에서의 여유
종종 마실을 다녔다.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다. 언니, 엄마와 함께. 때론 이 조합에 딸이나 근처 사시는 이모가 함께 했다. 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퇴근 후, 편찮으신 엄마와의 밤 산책을 위해 차를 몰고 왔다. 함께 '푸른수목원'에도 가고, 너른 정원이 있는 카페에도 갔다. 비가 올 땐 인근 쇼핑몰을 돌았다. 늘상 눕길 원하는 엄마도, 언니가 오면 기꺼이 몸을 일으켰다.
이모와 언니, 나,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은 88세의 엄마를 부축하고 산책 시켜드려야 한다는 명분 하에, 달빛 아래 산책을 하는 여유를 누렸다. 여전히 끈적한 밤공기, 달라드는 모기떼에도, 그저 밍밍한 대화를 나누며 두런두런 걷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넓은 정원과 테라스를 가진 카페가 인근에 있고, 서울시가 조성한 광활한 녹색 공간 '푸른수목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간이다. 수목원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연꽃들의 존재가 우리가 누린 '럭셔리'한 시간의 정점에 있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시간, 함께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를 마시고, 흙을 함께 밟으며 고운 시선을 주고받는 것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여유로워진 마음의 사치를 누리는 건 우리 가족뿐이 아니었다. 커다란 호수를 낀 수목원을 거니는 모든 사람, 자연으로 둘러싸인 카페테라스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서 같은 표정이 읽혔다. 내려 놓고 쉬어가는 사람의 맑은 표정. 경의선 숲길에서도 같은 것을 보았다. 일터에서의 가면을 벗어놓고 긴장의 근육을 놓은 사람들의 편한 얼굴들을. 한 사회가 도시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넉넉한 녹색공간이라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의 황토 흙길 조성사업이 붐처럼 번진다는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터치스크린 대신, '사람'이 있었네
▲ 헬싱키 공항 카페에서 발견한 100% 자연산 꿀ⓒ 목수정
파리로 돌아오는 길, 헬싱키를 경유했다. 오전 7시, 인적 드문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공항답지 않은 착한 가격보다 심쿵했던 건, 온전히 인간의 태도로 여유있게 말하는 종업원이었다. '카페 알바생'모드로 작동하는 AI처럼이 아니라, 흔한 40대 아줌마처럼 웃고 말하는, 특별히 친절하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직원은 마땅히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온기를 자기 방식으로 건넸다.
모종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커피에 첨가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정무역 설탕 옆에는 100% 자연산 꿀이 함께 놓여 있었다. 두번째 심쿵. 상술이기보다 만인을 위한 배려로 읽혔다.
당시 헬싱키 기온 12도. 5시간 동안 머물러야 했던 공항에서, 반팔로 버티기엔 추웠다. 즐비한 명품 매장들 사이로 중고 옷 가게가 눈에 보였다. 3유로짜리 재킷을 사서 얼른 주워 입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모두 바쁘게 힘겹게 돌진하는 세상에서, 주어진 오늘을 제 속도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려온 기분. 그것이 내 나라를 떠나 헬싱키 공항 카페에서 맞이했던 안도감의 실체였다.
출산율 0.7... 이젠 다른 길로 가보자
▲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 픽사베이
효율과 속도, 편리, 부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며 달려온 결과, 우린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잃었다. 40일 동안 다시 발견한 한국 사회는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라는 역설적 이름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를 향해 누구보다 앞서 도달하겠다고 돌진하는 사회로 보였다.
기계 앞에서 커피를 주문해야 하듯, 기계 앞에서 단 2분 만에 필요한 서류를 뗄 수 있는 편리함을 우리 사회는 갖췄다. 웬만한 강의들은 인강으로 이뤄지고, 기계가 시험을 채점을 하여 승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한 줌의 허무한 승자들을 위해 모두가 고통의 들러리를 선다. 말 그대로 경이로운 세상이다.
'편리'함으로 가장된 이 비정한 세상에 저항없이 빨려드는 사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전체주의에 다가섰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이해를 위해 작동하는 듯하나 실질적 수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린 손에 쥘 수도 없는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일치단결하여 서로를 소외시키고, 스스로를 삶에서 소외시킨다. 한 개인, 한 집단이 전체주의를 주창할 순 있지만, 그것은 다수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서만 완성된다. 우리는 북한과는 또 다른 방향의 전체주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분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을 찍었다. 곧 0.6으로 달려갈 전망이란다. 생명체가 태어나길 거부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이 대세라고 하면 좀 의심해 보고, 게으름도 펴보고, 딴청도 피면서 딴 길로 좀 가보면 어떨까? 기껏 가면 쓰고 기계처럼 일했더니, 다가오는 결과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를 쓰고 직진할 것인가. 누구 좋으라고?
목수정(anouck)/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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