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 기업 수요 절반만 충당”
부산 영도 하리항에 바다낚시 공원 추진…160억원 투입
“다 먹는다니까, 왜 남 일처럼 생각해?”
이승만과 박정희 대놓고 욕하는 추모비 보셨나요? 진주 초전공원
“도시 생기고 최대 사업” 일자리와 일감 목마른 부산에 ‘날개(2) 산업
부산 벚꽃 활짝 폈다…102년 관측 이래 가장 일러
기후변화 재앙 더 가까워졌다···현 온실가스 감축 계획으로는 못 막아
"온난화 대응에 2030년까지 기후재원 최소 3배 더 써야“
“이미 1.5℃ 향해 가는 상황…기후위험 줄일 적응도 중요”
기후변화 보고서는 왜 중요할까?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
SUV가 뿜는 온실가스, 한국 전체 배출량의 1.5배
서울시, 70㎞ 봄꽃거리 만든다
변화 거부하는 윤 대통령, 2030년 대한민국 위험해진다
더 쉽게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법
초록색 물든 광안리 앞바다
미주·유럽·중동서 곧장 부산으로… 2035년엔 1500만 명 '발걸음
가덕신공항 개발권 ‘반경 16.8㎞’ 가닥…54개 읍·면·동 혜택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이륙만 남았다
“도심보다 농도 높다”…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미스터리’
부산 산복도로 건물 높이 제한 벽 무너지나
15곳이나 있는데…정치권은 또 ‘공항 타령’
가덕신공항-TK신공항 ‘국비 경쟁’ 우려 낮아졌다
지역균형 발전정책, 50년간 실패 되풀이… 이제 폐기할 때 됐다
부산진구 “동서고가 철거는 주민 염원” 궐기대회 등 예고
올바른 가로수 가지치기, 수목의 25% 이상 제거 “NO”
IPCC 경고 현실화되면 어떤 모습…'기후재앙' 일상화
가덕도신공항~부산 도심 급행철도 추진…2030엑스포 전 개통
오세훈의 ‘이상한 유럽 출장’ …‘핫플’ 돌며 개발계획만..박형준은
‘딴지 걸기’ 이제 그만, 인천과 가덕도 양 날개로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광풍 못 막는 환경부, 설악산에 봄꽃 대신 케이블카가 피었다
“진해 군항제 벚나무는 일본 벚나무 일색”
부산 달맞이고개 갔던 ‘붉은여우’, 고향 돌아오다 ‘객사’
정당 현수막 공해, 이건 아니죠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파크골프장이 뭐길래?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 기업 수요 절반만 충당”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
국내 기업 재생에너지 수요 최대 172.3TWh
‘10차 전기본’대로라면 56%밖에 충당 안돼
전남 영광군 백수읍 영광풍력 발전단지. 연합뉴스
정부의 현재 정책으로는 2030년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절반밖에 충당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등이 발족한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와 기후단체 ‘플랜1.5’는 19일 발표한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2030년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최대 172.3TWh(테라와트시)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의 미래 재생에너지 수요를 구체적 데이터에 기반해 예측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아르이100’(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에 참여한 국내 기업 등 236곳이 국제 비영리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보고한 감축 목표 등을 바탕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목표에 따른 수요(80.3TWh~98.3TWh)에다 국내 재생에너지 관련 규제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에 따른 수요(90.2TWh)를 더한 뒤 겹치는 부분인 녹색프리미엄 수요 전망값(16.2TWh)을 빼 이같은 전망치를 내놨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는 500㎿(메가와트)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가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한 제도고, 녹색프리미엄은 일반 전기요금보다 비싼 요금 지불을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했다고 인정받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이런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초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기존의 30.2%에서 21.6%로 낮추면서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134.1TWh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는 현재 목표 수준으로도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이100 달성이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의무 이행에 활용할 수 없는 화석연료 기반의 연료전지 등 이른바 ‘신에너지’를 제외하고, 태양광과 풍력을 통해 공급 가능한 재생에너지는 97.8TWh에 불과하다.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된 기업 예상 수요의 56%에 그치는 수준이다.
기후단체들은 이에 정부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최소 33%까지 높여야 하고, 이를 곧 마련될 탄소중립 기본계획과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제10차 전기본에서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21.6%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최소한 33%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가격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수요 대비 공급이 많아져야 하므로, 40% 수준의 도전적인 재생에너지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부산 영도 하리항에 바다낚시 공원 추진…160억원 투입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하리항에 바다낚시 공원 조성이 추진된다.
영도구 하리항
영도구는 '하리 해양 낚시 복합타운'을 조성하기 위한 기본계획 수립·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19일 밝혔다. 용역은 하리항 외곽방파제에 2033년까지 해양낚시복합타운을 만들기 위한 사항을 검토하기 위해 이뤄진다.
160억원을 투입해 낚시 잔교(350m), 가두리시설(600㎡), 전망대(150㎡) 등을 조성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하리항 일대는 2016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해상낚시 복합단지로 조성하기 좋은 전국 10개 후보지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곳이다. 하리항은 수심이 20m 내외로 벵에돔·감성돔·학꽁치 등 어종이 풍부하게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도구가 하리 해양낚시 복합타운을 만들면 부산 첫 바다낚시 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도구 관계자는 "설치 예상지점이 파도가 직접 부닥치는 외해여서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성 등을 확보하지 못하면 추진이 어려울 수는 있다"면서도 "영도구에 바다낚시 터가 조성되면 증가하는 낚시 인구 추세에 맞춰 관광객이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다 먹는다니까, 왜 남 일처럼 생각해?”
: 코앞으로 다가온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바닷물 직접 대하는 이들의 공포감은 과연 어떨까?
지난해 12월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 해저터널 현장의 모습. 도쿄전력은 방사성 물질 정화처리장치로 처리된 물을 원전에서 1㎞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터널 공사를 8할 이상 마쳤으며 6월 이후 방류를 예고하고 있다. ⓒEPA 연합뉴
“어디 반도체 팔아서 꿀(굴) 사 잡수라고 해보시오.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풀리고 우리 죄다 망하면 후쿠시마에서 사다 잡수든가.”
한-일 정상회담이 있던 16일, 여수에서 39년째 굴양식을 해온 어민 남기두(64)씨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인근 저장탱크에서 곧 바다로 쏟아져나올 방사능 오염수 때문이다.
오염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훼손된 후쿠시마 제1원전 핵연료봉 온도 등을 낮추는 용도로 쓰인 물 130여만t을 일컫는다. 오염수는 육지에 설치된 방사성 물질 정화처리장치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를 거쳐 1㎞ 길이의 해저터널을 통해 바다로 나아간다. 실제 방류 개시는 해저터널 공사가 끝나는 6월 이후, 여름을 넘기지 않는 시점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이웃 나라를 위협하는 일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이 오염수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일본 동쪽으로 해류를 따라 북태평양으로 나갔다가 4~5년 뒤 제주해역에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팀은 오염수 영향으로 우리나라 해역 삼중수소 농도가 기존보다 10만분의 1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기기로 검출되기 어려운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내세운 방사성 물질 정화처리장치 ‘알프스’의 정화처리 능력은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있다. 국내 환경단체들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에 측정되지 않는 수많은 방사성 물질을 밝히지도 않고 있다”고 반발하는 배경이다. 최근 일본설문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조차 열에 여섯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도쿄전력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답을 내놓고 있다.
이웃 나라가 쏟아낸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서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의 공포감은 어떨까? 는 일본이 방류한 방사능 오염수와 직접 부대껴야 하는 부산 해녀, 제주 갈치잡이 어민, 여수 굴양식 어민을 만났다. 바다에 기대 사는 이들에게 ‘물’을 향한 불안이 삶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염물질이 온 바다로 흘러든다는데 어쩌란 말이냐”, “코로나19를 지났는데 이제는 오염수가 흘러들다니, 더 버티기 어렵다”며 체념을 쏟아냈다.
부산 기장군 해녀인 김정자씨가 마을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바다 망치는 짓…해녀들, 결사반대”
“호잇, 호오잇.”
물질을 하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해녀들이 참았던 숨을 고르며 내는 소리다. 새소리,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한 독특한 이 소리를 사람들은 숨비 소리라고 부른다. 망태기 가득 채운 전복이며 해삼, 미역 따위에 마음이 든든해진 해녀들이 내는 소리는 마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난 8일 오후 와 만난 부산 기장군 해녀 회장 김정자(74) 할머니는 이날도 숨비 소리를 내며 막 물질을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다. 물 밖으로 나오면 물질하며 잊었던 바다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그 물(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이 그렇게 좋다카면 바다에다가 방류하지 말고 자기네들이 한 10년쯤 먹고 그때 방류하라캐. 이건 총칼 안 든 전쟁이다. 일본이 온 세계를 상대로 오염된 물을 갖다 버리겠다는데. 내 말이 틀렸어요?”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부산 기장군에서 10살 때부터 물질을 해왔다. 60년이 넘도록 해녀로 살아왔다. “그때는 바다 밑에 들어가면 모든 게 많았지. 이만한 돌이 하나 있으면 전복이 여기 붙어 있고, 저기 붙어 있고. 멍게도 꽃밭처럼 널려 있었는데, 그게 다 자연산이었어. 지금은 씨를 뿌려도 그마이(그만큼) 못해.”
할머니는 지난 60년 동안 원전이 바다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직접 목격했다. ‘오염수’라는 말에 몸서리를 치는 이유다. 30~40년 전만 해도 테왁에 주렁주렁 매단 망태기에 해삼, 전복, 소라, 미역 따위를 그득히 담아 나왔다. 지금은 눈에 띄게 줄었다. 1978년 기장 앞바다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수의 영향으로 숲을 이루던 미역, 다시마, 곰피 같은 해조류도 예전 같지 않다. 최근엔 몸이 기형인 물고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단다. “바다에 들어가면 바닥에 붙어 있는 광어 같은 것도 잡아서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년간) 등이 굽거나 꼬리나 지느러미가 없이 태어난 물고기를 많이 봐요. 그런 거 보면 소름이 돋지. 안 그렇겠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 방류로 바다에 흘러들어갈 방사성 물질이 생물체 먹이사슬을 타고 어떻게 이동하며 축적되는지, 그리고 우리 앞바다에서 난 수산식품을 먹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느끼기에 “(예전과 같지만은 않은) 그 물을 매일 바다에 들어가서 일하는 우리가 다 먹고 있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옥죈다. “그런데 오염된 바닷물을 해녀들만 먹는 게 아니잖아요. 해산물만 안 먹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이 매일 먹는 소금은 어떡합니까? 음식 할 때 늘 쓰고, 간장, 된장 담그려고 해도 소금이 필요하고. 우리 자손들 입에 오염된 먹거리를 넣게 되는 거라니까. 왜 그걸 모른 척한답니까.”
“태풍이 오거나 날이 궂어서 며칠씩 물에 들어가지 못하면 몸이 근지러버(근질근질해서) 죽는다”는 김 할머니지만, 후대의 해녀들은 바닷물에 들어가기가 두려워 몸을 떨지도 모른다. 김 할머니는 “(방사성 물질을 담은 오염수가) 4~5년 뒤에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 연구팀이 내놓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의한 해양 확산 시뮬레이션’ 소식을 접한 것이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물이 흐르는데 오염수가 우리한테 영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바다에서 먹고사는 해녀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이 반대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기장군에 해녀가 530명쯤 있는데, 한명도 빠짐없이 오염수 방류 결사반대”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달 28일 제주 갈치잡이 어선 선주 최임규씨가 제주어선주협회 사무실에서 조업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바다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저기 바다 봐. 파랗고 잔잔허니… 좋지? 놀겠다고 들어가면 좋지, 아등바등 먹고살려고 들어가보면 별일이 다 있어.”
지난달 28일 만난 최임규 제주어선주협회 연승위원장은 25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제주 연안여객터미널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우린 하늘만 믿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내려주면 주는 대로 먹고 살지. 거기에 오염수를 붓는다고? 그걸 괜찮다고? 누가 그래?”
그는 한때 자신의 배 ‘대양호’를 타고 수백해리 바다로 나가던 갈치잡이 어부 출신이다. 이제 일흔넷. 더는 배를 타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요즘 검은색 챙 달린 모자에 붉은 띠를 두르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달 28일에도 그는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에 참가하러 나섰다. 머리띠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이미 거리엔 비슷한 옷차림의 500여명이 대열을 지어 앉았다. 최씨는 “최근 10년 사이 도청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다”고 했다.
“전세계가 바다로 연결돼 있는 조건에서 (오염수 방류는) 인류 전체에 대한 핵테러인 것입니다.”(하원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최씨는 이날 집회의 날 선 발언들을 들으며 “(오염수 방류 문제에) 정부 어느 곳에서도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며 “믿을 구석이 없으니 어민들이 목소리만 키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 뒤 참석자들이 일본총영사관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일본 오염수 방류 위험성을 강조하는 하원호 의장의 발언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공개된 오염수 데이터와 관련된 지적이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해외 전문가 초청 토론’에서 미국 핵물리학자인 페렌츠 달노키베레스 교수(미들베리국제대학원)는 “일본 쪽이 공개한 오염수 관련 데이터는 방류 결정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저장탱크 4분의 1만 측정돼 있고, 주로 바닥에 위치해 있는 고준위 슬러지 폐기물 농도에 관한 정보는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예고된 오염수 데이터 측정 과정도 문제다.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이재정 의원실이 공개한 ‘일본 원전 오염수 측정·평가 대상 핵종 재선정 결과’ 문건을 보면, 일본 도쿄전력이 원래 64개 핵종 가운데 방사성 스트론튬과 텔루륨, 루비듐 등 37개 핵종을 제외하고 새롭게 4개 핵종을 추가한 총 31개 핵종에 대해서만 농도를 측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최씨는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보면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25년 전인 1998년 한-일 어업협정을 떠올렸다. 그는 한-일 협정 뒤 양국 어민 협상 과정에서 민간부문 대표를 맡은 바 있다. “한번 정하면 돌이키기가 어려운데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이니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어쨌거나 그때는 똥섬에 못 가도 동지나(해)든, 더 멀리 대만이든 갈치 사는 곳을 찾아 가면 먹고는 살았다”며 “오염수 방류는 갈치가 사는 곳을 전부 바꿔놓을 텐데, 어떡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여수 굴양식 어민 남기두씨가 지난 1일 작업장이 보이는 백야도를 등지고 서 있다. ⓒ한겨레
“결국 다 먹는다니까”
“전쟁을 하더라도 (바다에 오염수를) 못 붓게 해야지, 안 그려요?”
39년째 굴양식을 해온 남기두씨는 입안에서 으깨진 밥알을 자꾸 튕겨냈다. 남씨와 함께 바라본 전남 여수시 가막만은 고요했다. 마을의 작업장에선 사흘 전 들여온 남씨네 굴 200망의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씨가 길러낸 굴은 인천, 충남 보령시 등으로 나갈 참이다.
남씨의 불안은 다른 지역과 달리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상반기 물동량 1위를 기록한 여수·광양항에 드나드는 선박은 컨테이너만 내리는 게 아니라 항해를 위해 배에 실은 평형수도 함께 풀어놓는다. 지난 1월 해양수산부는 최근 5년 후쿠시마·미야기현 등을 포함한 일본에서 선박 평형수를 교환하지 않고, 한국에 입항해 이를 배출한 선박이 519척, 배출량은 약 321만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수부는 이 가운데 후쿠시마·미야기현 등 원전 사고 지역에서 온 6척에 대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연안 해수 방사능 농도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밖에다 풀고 온다고? 그러면 안전하다고? 내가 영농후계자란 말이오. 농약도 저독성이 나와서 그걸로 치라고 허요, 안전하다고. 그 안전이라는 게 죽을 정도는 아닌 건 맞지. 그래도 몇년 지나면 몸속에 쌓이는 걸 왜 몰라. 알면서도 그냥 먹고살라고 치는 거지. 멀리서 (평형수를) 풀면 여기까지 안 온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가 보기엔 방법이 없다.
“결국 다 먹는다니까, 왜 다들 남 일처럼 생각해. 바다랑 육지는 하나란 말이오.”
남씨에게 고민이 또 있다. 계속되는 가뭄이다. “가물면 꿀(굴)도 자라지 않는다. 물이 필요한 건 육지나 바다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겨울 굴이 자라지 않은 것도 속이 끓었는데, 불경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굴을 찾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설 무렵 모두 팔려나갔을 참이다.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게 30%를 넘는다. “이대로도 힘든데, 오염수까지 풀리면 버틸 수 있을까 싶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3.4%가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고 했다.
“아들놈도, 사위도 힘드니까 안 한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데. 방류한 다음 잠잠해질 때까지 버틴다고 치자고. 그게 몇년을 걸릴 줄 알고? 지금 육십넷인데? 아이고, 못한다.”
“이렇게는 버틸 수 없다”는 남씨 같은 어민의 푸념은 여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제주, 부산, 그리고 바다 너머 일본도 마찬가지다. 남씨의 푸념에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일하는 김정자 할머니의 말이 겹친다. “가만히 놔두면 황금알을 낳아주는 바다를 왜 오염을 못 시켜서 난리랍니까. 우리 자식, 손주한테 이 일을 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더러운 바다에 어찌 들어가라고 합니까.”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지하수가 2014년 5월21일 바다로 처음 방출되는 모습. 이날 방출 규모는 560t으로 원자로 건물로 유입돼 고농도 오염수가 되기 전 관측용 시추공에서 퍼올려 탱크에 일시 저장했던 것이다. ⓒ연합뉴스
한반도 남쪽 향하는 오염수?
바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가닿을까. 한편에선 전문가들의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오염수와 관련한) 정확한 데이터를 일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위험성을 검증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난 13일 와 한 통화에서 “방류될 양을 모르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 해역에 영향이 있다, 없다를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다만 잘못 알려지게 되면 어민들만 굉장히 큰 피해를 입을 것 같다. (언론도)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지하수가 2014년 5월21일 바다로 처음 방출되는 모습. 이날 방출 규모는 560t으로 원자로 건물로 유입돼 고농도 오염수가 되기 전 관측용 시추공에서 퍼올려 탱크에 일시 저장했던 것이다. ⓒ연합뉴스
조 교수는 지난달 17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방재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후쿠시마 기원 물질의 아표층 확산’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수심 0~200m에 해당하는 표층수 부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세슘(2011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분석)이 원전 북쪽, 북서쪽으로 퍼졌지만, 수심 200~500m에 해당하는 아표층에서는 한반도 해역인 남쪽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방향이다.
이 시뮬레이션이 ‘안전’과 어떤 관련성을 갖느냐와 관련해선 “중요한 것은 (방사성 물질) 농도다.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를 전제로 하면, 태평양 오염수 방류는 한강에 침을 뱉는 정도”라며 “지금 논란은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오염수 방류)이나 공개되지 않은 정보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하어영, 신소윤 기자
이승만과 박정희 대놓고 욕하는 추모비 보셨나요?
경남 진주시 외곽 초전공원 내 '6.25 전쟁 중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 진주 초전공원에 세워진 6.25 전쟁 민간인 학살 추모비. 오른편 추모비에 새겨진 한시가 이채롭다.ⓒ 서부원
"김장하 선생이 존경스러운 건, '빨갱이'라는 낙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형평운동의 지도자 백촌 강상호 선생의 묘소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진주시민의 김장하 선생에 대한 평가다. 그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고서야 백촌 묘소의 묘비를 세운 이가 김장하 선생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묘비에 새겨진 '작은 시민'이 누군지 내내 궁금했단다.
묘비를 세울 당시만 해도 백촌 선생은 좌익계 인사로 낙인찍혀 사실상 잊힌 존재였다.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재평가되는 상황에도 그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폐지된 연좌제가 혈연을 넘어 지연까지도 옥죄는 현실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김장하 선생 덕에 보수 정당의 텃밭인 진주에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대놓고 꾸짖는 기념물이 세워졌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굳이 진주를 두고 '경남의 대구'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선거 때마다 결과는 보수 정당 일색이라는 거다. 그만큼 '빨갱이'는 이곳에서 금기어라고 했다.
그는 대뜸 진주 초전공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곳들, 곧 김장하 선생과 관련된 자취들을 찾아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내 말에 대한 외마디 대답이었다. 김장하 선생이 대가 없이 국가에 헌납한 명신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이니 꼭 가보라며 신신당부했다.
박정희 만행 낱낱이 소개
▲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상세히 새겨놓았다. 찬찬히 읽다 보면, 안내문이라기보다 한 편의 애끓는 연설문을 보는 느낌이 든다.ⓒ 서부원
그곳엔 6.25 전쟁 중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고 했다. 지난 2021년 진주시가 직접 조성한 건데, 당시 지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다고 귀띔해주었다.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고장에서 희대의 사건이자 유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연신 강조했다.
명신고등학교 방향이라는 조언이 없었다면 헤맬 뻔했다. 내비게이션을 켜니 인근 사천으로 가는 길목에도 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었다. 남성당 한약방이 시작된 곳이 사천인 터라 몰랐다면 자칫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을 것도 같다. 백촌 묘소에서 남강변을 따라 10분 남짓 거리다.
남강변에 조성된 초전공원은 한눈에 봐도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90년대 중반까지 진주시민들이 배출한 생활 쓰레기를 야적했던 곳으로 최근 공원으로 조성됐다. 서울로 치면 난지도의 하늘 공원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주말이어선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여럿 보였다.
한 나들이객에게 추모비의 위치를 물었더니 주저 없이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이곳에 꼭 가보라고 추천한 분의 말마따나 모르는 이가 없는 듯했다. 공원 내엔 남북 방향으로 산책로가 곧게 뻗어있는 데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서 추모비 찾아가기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도톰하게 흙을 돋운 자리 위에 탑을 세우고 희생자의 명단과 사건의 개요를 적은 비석을 병풍처럼 둘러놓았다. 외양으로만 보면 그다지 특이하달 게 없는 추모비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한을 달래는 위령의 글을 한시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곳에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만약 '희대의 사건'이라는 말을 곱씹지 않았다면, 나 역시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6.25 전쟁 중 진주 인근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개요와 진상규명 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 안내문이 그것이다.
역사 교사로서 현대사 관련 유적을 두루 답사해오고 있지만, 이만큼 상세하고 거침없이 써 내려간 소개 글은 본 기억이 없다. '국뽕'으로 활용할 게 아니라면, 지금과 가까운 현대사일수록 두루뭉술 눙치고 넘어가는 게 상례다. 하물며 우리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임에랴.
6.25 전쟁 전후 정부에 의한 학살임을 분명히 밝혔고, 최소한의 법 절차도 무시한 인권 유린 행위였다는 점도 적시했다. 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이었다는 헌병대 간부의 증언도 소개했고, 4.19 혁명 직후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는 사실도 새겨놓았다.
더욱 놀라운 건, 희생자 유족들의 피맺힌 요구를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정권의 만행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5.16을 군사 쿠데타로 명토 박은 뒤, 유족회 간부들을 투옥하고 합장묘를 훼멸했으며 연좌제로 묶어 유족들의 사회활동을 제약했다는 사실까지 적었다.
이어 2000년대 이후 비로소 유족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도 소개했다. 희생자의 유골을 수습한 대학교수의 실명까지 밝히며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놓았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아가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 중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믿어지는 이도 있다는 점도 새겼다. 정부가 은폐하고 지우려 한 사건들은 머지않아 모든 진상이 밝혀질 거라면서, 그것이 역사의 진리이자 심판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안내문이 아니라 한편의 연설문을 읽는 듯했다.
곧장 안내문에 적시된 민간인 학살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차로 2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진주 시내에서 산청 방향으로 뻗은 국도변 골짜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도로에 표지판이 없어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찾아갈 수 없다.
학살터는 진주 시내를 갓 벗어난 고갯마루에 있다. 주변엔 덩그러니 새뜻한 물류창고와 작은 주유소 하나뿐이다. 분명 근처까지는 왔으나 입구가 어딘지, 어디다 주차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주유소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는 길과 도로변 주차할 곳까지 상세히 일러주었다.
알려준 대로 가던 길을 유턴했더니 그제야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왕복 4차선의 도로변엔 잠시 주차해도 좋다는 듯 갓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형 버스라면 몰라도,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은 된다. 비상등을 켜놓은 채 차에서 내려 골짜기에 들어섰다.
빨갱이 낙인에도 의연했던 김장하 선생
▲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 학살터 입구에 세워진 낡은 표지판. 같은 내용의 안내판을 왕복 4차선 도로변에도 세워놓았는데, 부러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서부원
풀숲을 헤치고 오르니 도로변에 세워둔 것과 같은 낡은 안내판이 보인다. 유족회가 세운 것으로, 글자 색이 바래고 벗겨진 채로 방치돼있다.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이라는 글씨가 나뭇가지 덤불에 가려진 상태다. 봄 지나 여름이 되면 울창한 숲에 덮여 보이지 않을 듯싶다.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지만, 주변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근래 이곳을 찾아온 이가 아무도 없는 듯 골짜기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순간 진주시민 중에 이곳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주유소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빨갱이'라는 낙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거다.
민간인 최소 수백 명이 이곳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됐고 유족들은 연좌제에 묶여 수십 년 세월을 피맺힌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 역사적 사실이 명명백백 밝혀졌는데도 시민들은 여전히 숨죽인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부디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해 발굴 사업이 그들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돌아오는 길, 다시 초전공원의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느닷없이 '빨갱이'로 내몰려 무참히 학살된 추모비 속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더불어 '빨갱이'라는 낙인에 의연하게 맞섰던 김장하 선생에 대한 존경심도 보탰다.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이유였던 '빨갱이'라는 용어가 이젠 10대 아이들끼리의 욕설처럼 쓰이고 있는 듯하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동급생에게 조롱하며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한술 더 떠, 그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은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아이들끼리 흔히 사용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빨갱이'를 욕지거리 삼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며, 역사 교사로서 현대사 교육이 부재한 현실과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했다면 나올 수 없는 망언이라는 생각에서다. 단언컨대, '빨갱이'라는 맹목적인 혐오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이곳 진주의 '어른 김장하'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이유다.
▲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진주와 산청을 잇는 국도 너머로 진주 시내가 보인다.
오마이뉴스 서부원(ernesto)
“도시 생기고 최대 사업” 일자리와 일감 목마른 부산에 ‘날개(2) 산업
북항재개발 갑절 넘는 14조 사업
고용 유발 효과 10만 명 넘을 듯
지역 건설 경기 회복엔 ‘특효약’
항공 의존도 큰 수출업체 경쟁력
해외 출장·바이어 초청에 효율적
글로벌 기업·인재 유치에도 도움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에서 바라본 가덕도 모습. 멀리 보이는 연대봉 너머 남측 해안이 가덕신공항 예정지다. 부산은 가덕신공항 개항으로 부산신항과 철도, 공항이 결합하는 동북아 물류 허브를 꿈꾸고 있다. 부산일보DB
가덕신공항은 동남권의 미래 100년을 책임질 ‘엔진’이다. 국내 최초로 ‘국제적인 화물 환적 능력을 갖춘 항만’과 ‘관문 공항’이 연계된 무소불위의 입지를 갖춘 덕이다.
개항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그 이전에도 가덕신공항이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막대하다. 그간 부산이 줄곧 목말라했던 일자리와 일감을 모두 가져다줄 수 있다. 인천이 인천공항 개항 이후 급성장을 이어 갔듯 부산도 항공과 철도가 만나는 배후 부지를 건설하며 경기를 회복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데려와 육성시킬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수출제조업계는 표정 관리 중
당장 가덕신공항 인근에 자리 잡은 제조기업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반도체와 의약품처럼 항공 의존도가 큰 수출업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덕신공항은 부산 경제계의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서구 산업단지와 가까워 부산 기업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녹산산업단지부터 인근 미음·화전산업단지까지는 직접적인 ‘신공항 수혜권’에 들어간다.
부산시는 이들 산단을 중심으로 국내외 기업 본사와 글로벌기업 지역본부 유치에 나선다. 기존 법인에 추가적인 투자까지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녹산산단에 위치한 밸브 전문 제조기업 세진밸브공업의 방영혁 대표는 “1년에 10번 이상 해외 출장을 가거나 중동 바이어가 부산 공장을 찾는다. 가덕신공항이 들어서면 멀리 인천에 가지 않고도 부산에 바로 바이어를 초청할 수 있어 비즈니스 효율성이 높아지게 됐다”면서 “녹산에서 가덕신공항까지 차로 10~15분이면 갈 수 있어서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가덕신공항 개항은 동남권 제조기업의 수출뿐 아니라 인재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명지국제신도시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고 있는 싱가포르 바이오제약회사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PBP) 그룹은 이 분야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진우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그룹 부회장은 “우리 같은 제약기업은 앞으로 부산 대학병원이 국제임상센터로서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가덕신공항 개항으로 향후 석·박사급 고급 인재 유치나 해외 연구자 초청에 유리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또 “충북 청주시 오송의 백신센터에서 생산한 의약품을 해외에 수출할 때, 인천공항과 가덕신공항까지 옮기는 시간이 엇비슷하다”며 “바이오제약회사로서 수출 시 한 가지 선택지가 더 생기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벡스코에서 개최된 가덕도신공항 물류포럼에서 참석자들은 글로벌 물류 비즈니스 거점의 조건을 강조했다. 부산일보DB
■건설업계도 지역업체 우대 기대
가덕신공항 공사는 인천공항 이후 국내 최대 공항개발 사업이다. 부산시만 놓고 봐도 도시가 생긴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14조 원 안팎의 사업비는 이전까지 부산시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리던 북항재개발 사업의 곱절이다. 가덕신공항 건설 자체만으로도 지역 건설업계를 설레게 하는 이유다.
인천공항 사례를 감안할 때, 가덕신공항 건설은 중공업 전환에서 소외돼 침체일로를 달려온 부산 경제를 위한 특효 처방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사업 타당성 용역에서 가덕신공항이 부울경에만 16조 2230억 원의 생산 효과를 유발하고, 10만 3064명을 고용시킬 것으로 봤다.
신공항과 공항 배후로 건설되는 거대한 복합도시라는 대형 SOC 개발에서 지역 기업은 막대한 혜택을 볼 수 있다. 삼수 끝에 유치한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은 당시 관련 공사에 지역 기업이 최소 40~49% 참여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술 용역 때도 지역 기업과 공동수급체를 구성한 입찰자를 우대했고, 자재 구매부터 인부 고용까지 모두 지역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한 선례가 있다.
부산 건설업계는 공사 난도나 사업 규모 자체는 지역에서 완전히 소화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건설 경기를 되살릴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부산 건설 업계의 규모나 수준도 상향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만일 부산건설협회 회장은 “가덕신공항은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수도권의 대기업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지역 기업이 참여할 경우 우대해 준다면 건설 경기 악화 탓에 어려운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부산 벚꽃 활짝 폈다…102년 관측 이래 가장 일러
평년보다 9일가량 일찍 개화
‘부산 온천천에 벌써 벚꽃이 활짝’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20일 부산 온천천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연합뉴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부산의 벚꽃 시기가 앞당겨졌다. 부산 중구 대청동1가에 있는 기상관측소 벚나무가 19일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평년 개화일인 3월28일(30년 평균) 보다 9일가량 이른 편이다.
20일 부산기상청에 따르면 부산의 관측 표준목인 부산 중구 대청동1가의 기상관측소 벚나무가 전날 개화했다. 이는 평년 대비 9일가량 일찍 개화한 것으로 관측을 시작한 1921년 이후 가장 이르게 핀 것이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벚꽃 군락지도 예년보다 이른 20일 개화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엿새 일찍 핀 것으로 2011년 이후 최근 10년 평균보다 이틀가량 이르다.
남천동 벚꽃 군락지의 공식 개화는 남천2동 행정복지센터 앞 벚나무 5그루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 나무의 한 가지에서 세송이 이상 꽃이 활짝 피었을 때를 개화로 본다.
부산기상청은 이달 기온이 평년보다 3도가량 높고, 3월 1일부터 18일까지 일조시간을 합하면 133.7시간으로 예년보다 18시간 이상 길어 개화시기가 당겨진 것으로 분석했다.
부산기상청 관계자는 “벚꽃 개화는 기온과 일조 시간에 영향을 받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기온이 높고 일조시간이 길어 일찍 개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향 권기정 기자
기후변화 재앙 더 가까워졌다···현 온실가스 감축 계획으로는 못 막아
온난화 대응에 2030년까지 기후재원 최소 3배 더 써야"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 표지에 실린 한국 전남 구례군 순천완주 고속도로 구례2터널 부근의 사진. 이 사진은 기상청의 2021년 기상기후사진전 입선 수장작으로 종합보고서가 기후변화라는 안개 속에서 인류가 헤쳐나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상청 제공.
각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모두 실행하더라도 2040년 이전에 지구의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상승폭을 1.5도 아래로 낮추려면 앞으로 약 7년 안에 온실가스 감축량을 현재의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하는데, 인류가 뿜어내는 온실가스의 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유엔(국제연합)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13~19일(현지시각)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제58차 총회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제6차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종합보고서에는 IPCC의 제6차 평가주기(2015~2023년) 동안 발간된 특별보고서, 평가보고서 들의 핵심 내용을 기반으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영향 및 적응, 완화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담겼다. IPCC는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인 근거와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보고서 작성 및 검토에는 전 세계 과학자 1000여명과 195개 회원국 정부 대표단이 참여했다.
북극곰 한 마리가 2022년 8월 8일 캐나다 허드슨만 인근 도시 처칠의 해안가에서 해조류를 먹은 뒤 낮잠을 자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보고서에는 “지속적인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온난화가 심화하면서 거의 모든 예상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상승폭이) 1.5도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 지구 평균 표면온도의 상승폭 1.5도 제한은 기후위기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해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전 세계가 합의한 목표다.
보고서에는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이 이미 지구 온도를 1.09도(0.95도~1.20도) 상승시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1850~1900년과 2011~2020년 사이 지구 온도를 비교한 수치다. 보고서는 또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지난 200만년간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보고서는 ‘1.5도 제한’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하지만 세계 각국이 세운 감축 목표로는 달성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인류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0년 49Gt(기가톤)에서 2019년 59Gt으로 오히려 급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는 살얼음판 위에 있고, 그 얼음은 빠르게 녹고 있다. 기후 시한폭탄이 똑딱거리고 있다”며 “1.5도 제한을 달성하려면 대대적이고, 신속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선진국들은 2040년까지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이 된 상태)를 도달하도록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강한들 기자
"온난화 대응에 2030년까지 기후재원 최소 3배 더 써야“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발표
산업화 시기 대비 지구온도 1.1℃ 상승
온실가스 대응 했지만 오적응도 속출
답은 나와있다…신속한 적용만이 살 길
정부가, 공공재원 주도로 나서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승인한 제6차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가 20일 발표됐다. 세계 195개국에서 온 650여명의 대표단은 지난 14일부터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제58차 IPCC 총회에서 이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지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제6차 평가주기'동안 특별보고서 3개(△1.5℃ 지구온난화 △토지 △해양 및 빙권)와 평가보고서 3개(기후변화의 △과학적근거 △영향·적응·취약성 △완화)가 발표됐는데, 이번 보고서는 앞서 발표된 내용들을 통합적 관점에서 서술한 종합판이다.
기후변화 어디까지 와있나
1850~1900년 대비 전지구 지표온도의 관측(1900~2020년) 및 전망(2021~2100년) 변화. 기후가 이미 어떻게 변했는지와 3개 대표 세대(1950년생, 1980년생, 2020년생)의 수명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 캡처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활동은 전 지구 지표온도를 1850~1900년 대비 현재(2011~2020년) 1.1℃ 상승시켰다. 당연히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에 있어서 각 지역, 국가, 개인이 기여한 양은 균등하지 않다.
1850~2019년까지 총 누적 탄소배출량은 2400±240 GtCO2(기가톤이산화탄소)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 대비 12% 증가했다.
보고서는 그간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 파리협정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완화에 일부 기여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고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증가하는 한편 불평등을 가중하는 식의 '오적응'(maladaptation)도 모든 부문과 지역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상황이다.
또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NDC)에서 예상한 2030년 배출량이 1.5℃·2℃ 경로에서의 2030년 예상 배출량보다 높아 간극이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대로라면 지구는 얼마나, 어떻게 변할까
1850~1900년 대비 1.5℃, 2℃, 3℃, 4℃의 지구온난화 수준에서 ⓐ연간 일최고기온의 변화(℃) ⓑ연평균 총 토양 수분 변화(표준편차) ⓒ연간 최대 1일 강수량 변화(%) 전망.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 캡처
보고서는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온난화가 심화된다면 20201~2040년 가까운 미래에 지구 온도 상승은 1.5℃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전 지구 지표온도의 상승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해수면 상승이나 남극 빙상 붕괴,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일부 변화들은 이미 불가피하거나 되돌이킬 수 없다고 진단했다.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급격하고 불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커지는데, 더 많은 인간과 자연 시스템은 적응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온난화를 제한하기 위해선 CO2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이 넷제로(실질 배출량 '0')가 돼야 한다. 지금의 화석연료 인프라를 활용할 경우 추산되는 CO2 잠재 배출량은 1.5℃ 목표달성을 위한 잔여 탄소 배출 허용량을 넘어선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기 위해 2020년 초 이후부터 남은 탄소 배출허용량은 500 GtCO2다. 2℃ 미만으로 제한하기 위한 총량은 1150 GtCO2다.
당장 대응 가능한 시나리오는?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나설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줄고 있다고 경고한다. 온실가스 완화와 적응 조치를 함께 시행하는 '기후 탄력적 개발'(CRD)로의 전환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화석연료 사용 감소나 산업 생산공정 개선, 산림 보존 등 적합한 시스템 전환의 내용은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신속한 전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에 1.5℃ 또는 2℃ 온난화 제한 시나리오 상에서 2020~2030년 중 온난화 완화를 위한 연간 평균 투자비는 현재 수준보다 3~6배 증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4년 AR5에선 '2030년까지 매년 수천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구체화된 셈이다. 이같은 투자에선 공공재원이 핵심이며 이것이 민간재원에도 영향을 준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번 종합보고서는 향후 기후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협상과 논의에서 과학적 근거로 쓰이게 된다. 특히 올해 실시되는 '전지구적 이행점검(GST, 전지구적 차원에서 파리협정의 장기 온도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체계)에서 중요한 투입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CBS노컷뉴스 정다운 기자
“이미 1.5℃ 향해 가는 상황…기후위험 줄일 적응도 중요”
인터뷰/ IPCC 종합보고서 핵심저자 이준이 교수
“2030년 전반기 1.5℃ 도달 가능성 높아
향후 10년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종합보고서는 각 실무그룹 보고서와 특별 보고서 내용을 종합했을 때 2030년대 전반기에 지구온난화(지구 평균기온 상승)가 1.5℃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우리 대응에 따라서 2100년까지 1.5℃ 약간 아래로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지만,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더 진행될 것을 고려해 완화(온실가스 감축)와 더불어 기후위험을 줄이기 위한 적응(사회 기반 시스템을 기후변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바꿔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일 발표한 제6차 기후변화평가 종합보고서에 핵심 저자로 참여한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위원)는 종합보고서가 인류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 일부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 교수는 한국 기후과학자로는 처음 제6차 기후변화평가 제1실무그룹의 ‘과학적 근거’ 보고서 총괄 주저자와 종합보고서 핵심 저자로 활동했다. 아이피시시 회의에 참석한 이 교수와 줌 인터뷰를 통해 종합보고서의 의미와 작성·승인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회의 폐회가 예정보다 이틀 늦어진 걸 보니 승인 과정에 상당히 난항이었던 것 같다.
“난항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중요하면서도 또 민감할 수 있는, 국가별로 다들 중요성을 인식은 하지만 그 측면을 또 다르게 볼 수가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래서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승인 회의에서 특히 많이 논의된 주제는?
“1.5℃ 지구온난화, 손실과 피해, 기후금융, 기후정의, 탄소예산, 기후탄력적 발전 등이고, 단기 대응 문제가 많이 논의됐다. 극한 기상·기후 현상들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고, 영향과 위험이 커지면서 이미 손실과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지속가능하고 기후탄력적인 발전으로 가려면 결국 앞으로 10년 동안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번 6차 종합보고서가 기후변화 정책 담당자들과 인류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의 현재 추세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세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의 규모와 속도로는 기후변화 완화에 충분하지 않으며, 기후 위험을 줄이기 위한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직면할 위협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따라서 신속한 조치를 통해 기후탄력적 발전으로 나아가야 모두를 위해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조처를 통합하는 기후탄력적 발전은 지구 온난화가 1.5℃를 넘어서면 점점 어려워진다.”
―6차 종합보고서가 이전에 나온 보고서와 크게 다른 점은?
“이번 보고서에서는 단기 기후변화에 대한 평가가 강화되고, 단기적 대응방안에 대한 평가 결과가 크게 확대됐다. 손실과 피해, 기후 정의, 기후 금융, 기후탄력적 발전 등은 이번 보고서에서 새롭게 정립됐다.”
―종합보고서 핵심 저자팀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운이 좀 좋았던 것 같다. 일단 제1실무그룹 보고서의 총괄주저자 역할을 했던 것이 컸다. 그리고 선발 과정에 대륙별 지역별 균형, 성별, 나이까지 많은 것이 고려되는데, 후보 중에 동아시아 여성 과학자가 많이 없었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생각한다.”
―핵심저자로 실제 어떤 역할을 했나?
“종합보고서에서 단기 및 장기 기후변화 평가 부분과 시나리오 박스를 작성하는 저자 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고, 나머지 미래 변화와 단기 대응 부분에 기여했다.”
―종합보고서 핵심저자로 활동한 소감은?
“무엇보다 이번 종합보고서 핵심저자들의 팀워크가 매우 뛰어났다. 기후과학 분야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과 함께 종합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는 것이 앞으로 내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앞으로 국내 전문가들이 아이피시시 보고서의 다양한 활동에서 참여를 더욱 확대해 갈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기후변화 보고서는 왜 중요할까?
IPCC 6차 종합보고서 발간
향후 기후협상 자료로 이용
각국 단어 선택 하나도 민감
지난해 11월6일 이집트 샤름옐세이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의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한다.”
20일(현지시각)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막을 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최종 확정된 제6차 기후변화 종합보고서의 이같은 ‘경고’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인지 불확실했던’ 시절부터 수많은 연구가 차곡차곡 쌓여 무르익은 결과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세워진 건 1988년이다. 과학계를 중심으로 지구온난화에 관심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통일된 과학적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출범시켰다.
그 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5~6년 주기로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와 함께 비정기적으로 특별 보고서를 내고 있다. 그간의 보고서를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고, 그 원인은 인간이 배출한 화석연료 때문이며, 하루빨리 에너지 전환에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픽_안효정 소셜미디어팀 .
1990년 제1차 보고서 때만 하더라도 협의체 소속 과학자들은 ‘인간 영향인지 확신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2001년 제3차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일 확률’을 66%로 봤고, 2013년 제5차 보고서에서는 95%로 더 높게 봤다. 이번에 나온 제6차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전적으로 인간 활동으로 초래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득세하던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설 곳을 잃게 됐다.
2014년 나온 제5차 보고서에 견줘서도 이번 6차 보고서가 본 지구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고, 보고서의 경고는 더욱 강해졌다.
지구 온도는 얼마나 상승했을까?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면, 전 지구 지표온도의 상승치는 4차 보고서에서 0.85도로 봤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1.09도로 더 늘어났다.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의 온난화 기여도도 4차 보고서 0.5∼1.3도에서 이번 보고서 1.0∼2.0도로 올랐다. (실제 지구 온도의 상승치가 적은 이유는 에어로졸 등 오염물질과 자연 작용에 의한 감소 효과 때문이다)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은 2조400억톤에서 2조4000억톤으로 늘었다.
기후협약 맺게 한 일등공신
기후변화 보고서는 세계 기후정책을 움직이고 있다. 제1차 보고서(1990)는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채택으로 이어졌고, 이 협약은 매년 총회를 열어 세계 공동의 기후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2차 보고서(1995)는 1997년 교토의정서의 채택으로 이어졌고, 제5차 보고서(2014)는 ‘포스트 교토체제’라고 불리는 2015년 파리협정을 이끌었다. 지금 각국은 ‘산업화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이내 혹은 2도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해 대응하고 있다. 한국도 2030년에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2017년 북극곰 한 마리가 캐나다 북극권 프랭클린해협의 바다얼음 위에 서 있다. 온난화에 의한 바다얼음 감소는 기후 시스템의 교란과 북극곰 서식지의 소실로 이어진다. 프랭클린해협/AP연합뉴스
기후변화 보고서는 세계 기후변화 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단어의 선택이나 뉘앙스에도 각국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1천명 이상 과학자들이 내놓은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PM)을 만들 때는 각국의 행정 관료가 참석해 자구 하나하나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수출하는 국가는 ‘온도 상승이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온도 상승이 온실가스 증가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나온 제6차 종합보고서도 지난 13일부터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일주일간 열린 회의에서 이런 수정을 거쳐 최종 확정된 것이다.
기후변화 보고서 어떻게 구성되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그동안 다섯 차례의 정기 보고서를 냈다. 각각의 정기 보고서는 세 권의 실무그룹 보고서와 이를 포괄하는 종합보고서로 구성된다.
제1실무그룹(WG1)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제2실무그룹(WG2)은 기후변화 영향과 적응, 취약성을, 제3실무그룹(WG3)은 기후변화 완화에 대한 보고서를 출판한다. 세 권의 보고서가 모두 출판된 뒤, 이를 종합하는 종합보고서가 나온다.
특별 보고서도 있다. 최근 1.5도 지구온난화 특별보고서(2018), 해양∙빙권 특별보고서(2019),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2019) 등 세 권이 나왔는데, 이 내용도 이번 제6차 종합보고서에 포함됐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
어느덧 추운 겨울은 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잠잠해진 코로나19 덕에 3월의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몰려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봄꽃 아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반가운 새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봄꽃과 신입생은 이렇게 우리에게 봄을 일깨워주는 계절의 지시자로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봄꽃이 피면 캠퍼스에 신입생이 오겠구나! 또는 신입생이 보이면 봄이 왔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둘 관계의 시간적 동시성에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계절의 지시자인 신입생에게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봄이 따뜻해진다고 신입생은 학교에 빨리 오지 않지만, 봄꽃은 추운 겨울을 향해 시간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봄추위와 찬 서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꽃이 사람보다 멍청해서 그런 걸까? 과연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은 우리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부터 그 답을 찾아보겠다.
육상생태계 내에서 식물의 개화는 식물의 생장과 진화를 넘어 생태계 내 다른 구성요소와의 교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이 되면 식물의 개화와 함께 많은 생태계 구성요소의 계절활동이 시작된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곤충이다. 곤충은 영양 단계의 관점에서 생산자인 식물과 가장 먼저 교감을 하는 1차 소비자이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봄은 오랜 시간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해 식물의 봄과 자연스레 시공간적으로 동조화(synchrony)되어 있다. 여기서 동조화란 쉽게 말해 곤충의 변화가 식물의 변화에 또는 반대로 식물의 변화가 곤충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곤충과 식물의 관계에 있어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곤충과 식물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곤충과 식물의 봄이 탈동조화되는 것은 식물의 봄꽃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속도와 곤충의 봄이 빨라지는 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곤충의 관점에서 보면 봄꽃과 같은 식물의 계절활동과의 관련성과 상관없이 외부의 온도, 강수, 일사량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계절활동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국에서 봄철 나비의 첫 출현 시기가 지난 30년간 한 달 이상 빨라졌지만, 봄꽃의 개화시기는 한 달씩이나 빨라지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태적 불일치(ecological mismatch)는 식물에서 동물로 이어지는 영양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생산자와 1차 소비자로 이어지는 식물과 곤충의 다음 단계인 동물군 또는 분해자(미생물)의 생태에도 영향을 끼쳐 생태계 내 영향 흐름이나 군집 조성을 바꾸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에 따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그 자체의 영향에 더하여 식물과 다른 생물 종과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 간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뒤영벌도 복수초도 위험하다
요즘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벌과 관련한 문제도 개화시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중위도 지역에서 눈이 녹는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번식하는 현화식물의 개화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벌의 생장주기는 빨라지는 개화시기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벌이 꿀의 질이 좋은 개화시기보다 더 늦게 채밀(꿀을 가져오는 행위)하게 되면 벌의 군집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수분매개 효율 저하로 식물의 생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생장계절의 불일치는 특히 아직 기온이 낮은 시기에 일찍 개화하는 식물과 이를 수분매개하는 벌 간에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나 현호색 같은 꽃들에는 사실 꿀벌보다는 온도 내성이 강한 뒤영벌이 더 효율적인 수분매개자이다. 일반적으로 복수초처럼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단명하기 때문에 빨리 수분매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온도에 대한 내성이 뛰어난 뒤영벌이라도 개화시기가 빨라지면 추운 날씨에 꽃을 찾으러 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복수초와 같이 개화가 이른 꽃들은 대체로 수명이 짧아서 번식에 있어서 수분매개 효율 저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벌이 생소한 분들에게 잠깐 소개하자면 뒤영벌은 흔히 알려진 꿀벌보다는 조금 덩치가 크고 온몸에 털이 달린 털북숭이 벌이다. 일반적으로 꿀벌의 수분매개 능력보다 수십 배 강한 것으로 알려진 능력자이다. 사실 알고 보면 뒤영벌은 꽤 유명한 친구인데 영어 이름을 들으면 아마 눈치를 챌 것이다. 뒤영벌의 영어 이름은 바로 범블비(bumble bee).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노랗고 검은색을 가진 자동차 로봇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화에서도 계속 위기에 처하더니, 지금 실제 세상에서도 기후변화로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개화시기가 빨라져 뒤영벌이 수분매개를 못해 꽃이 위험해진다는 것은 결국 뒤영벌이 양질의 꿀을 채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벌의 처지에서 보면 식량부족으로 인해 군집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화시기를 포함한 각종 기후변화의 영향이 범블비를 위협하고 있다.
몇년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뒤영벌 사진을 올리고 “뒤영벌은 기후위기로 멸종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라는 글을 남겨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개화시기의 변화가 곤충을 거쳐 다른 동물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유럽의 딱새류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유럽으로 날아와 알을 낳는데 이것은 딱새류의 먹이인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오랜 시간 적응한 결과이다. 딱새류가 봄철 단 몇 주간만 참나무류 잎을 갉아먹는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맞추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유럽 딱새류들이 이 짧은 몇 주의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참나무류의 개엽시기가 빨라지면서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 또한 빨라졌는데, 빨라진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를 딱새가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새류는 보통 낮의 길이 변화에 따라 월동지를 떠나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나방 애벌레의 생장시간과 생태적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먹이는 시간을 거슬러 도망가는데 알아채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물질순환 기능 저하 땐 지구도 없어
정리해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종다양성(biodiversity)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종다양성의 위협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종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으로 간단히 해석하곤 한다. 물론 특정 동물, 식물군 종이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보다 더 심각한 종다양성의 문제는 생태계의 기능적 다양성이 저하되는 것이다. 개화-벌의 수분매개-인간의 식량(농작물)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관점에서 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생태계의 식량 서비스 저하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식량위기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면서 나타나는 식물 군락의 변화는 기존의 지구 육상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물, 에너지, 탄소순환이라는 지구시스템의 거대한 물질순환에 기능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순환은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에 지구의 물질순환 기능이 저하된다면 우리의 행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아직도 한겨울인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복수초의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런 뉴스를 가끔 TV에서 봤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등산객이 SNS에 찍어 올리는 겨울 등산 사진을 보면 때 이른 개화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진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명심해야 한다. 그게 당신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복수초의 마지막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결국 봄꽃은 사람보다 멍청해서 추운 겨울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명하여서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구의 종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경향
SUV가 뿜는 온실가스, 한국 전체 배출량의 1.5배
지난해 10억톤…국가 기준 세계 6위 해당
일반 승용차보다 20%이상 연료 더 들어
2022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 46%가 SUV
자동차시장 위축에도 판매량 계속 증가
스포츠실용차(SUV)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2022년 약 10억톤에 이르렀다. 픽사베이
요즘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동차업체들의 최대 수익원으로 떠오른 SUV(스포츠실용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2022년 약 10억톤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SUV는 일반 승용차보다 크고 무거워 평균 20% 이상 더 많은 연료를 소비한다.
가격이 높은 SUV가 기업에는 큰돈을 벌어다주는 듬직한 효자이지만 지구에는 전기차의 온실가스 효과마저 날려버리고 오히려 기온을 높이는 악당이 돼가고 있는 꼴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도로를 운행하는 SUV는 현재 3억3천만대이며,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독일과 영국의 배출량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한국 배출량(2021년 6억8천만톤)의 약 1.5배다. 국가 기준으로는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통적으로 가격이 높아 수요층이 적었던 SUV는 세계 경제의 성장과 함께 레저 인구와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됐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2022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2021년보다 0.5% 감소한 7500만대에 그쳤다. 반면 SUV는 3%가 증가한 3300만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SUV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20%에서 2022년 46%로 두배 이상 높아졌다.
지난해에만 배출량 7천만톤 증가
에너지기구는 더 무겁고 연료효율이 낮은 SUV 증가는 석유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2021~2022년에 SUV를 제외한 전 세계 일반 승용차의 석유 소비량은 거의 변함이 없었으나 SUV의 석유 소비량은 하루 평균 50만배럴(약 8천만리터) 증가했다. 이는 전체 석유 소비량 증가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2022년 SUV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천만톤 증가해 10억톤에 이르렀다. 승용차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1.2%에서 2022년 31.4%로 3배 가까이 뛰었다.
2022년 현재 일반 승용차는 9억5690만대, SUV는 3억2990만대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기존 자동차 대신 전기차를 빠르게 늘리는 것도 큰몫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다양한 전기차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10년대 후반이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엔 전기차 판매 대수가 처음으로 1천만대를 넘었다.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SUV 시장에서도 전기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의 경우 전 세계 전기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이 SUV였으며, 전체 SUV 판매량의 16%가 전기차였다.
그러나 전기차 여부와 상관없이 SUV 수요 급증 자체가 탄소중립엔 큰 부담 요인이다. SUV에는 더 큰 배터리가 필요하므로 전기 SUV 시장이 성장할수록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광물 수요가 더욱 증가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서울시, 70㎞ 봄꽃거리 만든다
25개 자치구 도로변과 관광지 등 화분 설치 계획
서울시청 앞 도로변에 핀 봄꽃. 서울시 제공
서울이 봄꽃으로 뒤덮인다.
서울시는 21일 “춘분을 맞아 오늘부터 이달 말까지 서울 전역 160개 노선, 총 70㎞ 구간에 ‘봄꽃거리’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봄꽃은 25개 자치구 주요 도로변과 덕수궁, 경복궁, 남산, 북서울꿈의숲 등 대표적인 관광지에 심을 예정이다. 서울시는 “수선화, 데이지, 버베나, 루피너스 등을 심어 가로 화분, 테마가 있는 화단, (가로등) 걸이 화분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코로나19 발생 후 지난 3년간 서울시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와 상권이 침체한 관광특구 중심으로 봄꽃거리를 조성해왔다.
서울시는 “올해는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봄을 즐길 수 있게 돼 시민들이 가까이서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도심지와 중심도로뿐만 아니라 주요 관광지 주변도 봄꽃거리를 조성하고 주요 공원과도 연계해 거리마다 봄꽃 축제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변화 거부하는 윤 대통령, 2030년 대한민국 위험해진다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 탄소 국경세 대책 요청... 기후전략·기후세력화 절실
▲ 1일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3.1.1 ⓒ 연합뉴스
작년 12월 20일 블룸버그는 기후가 무역의 핵심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산업계 싱크탱크인 기후리더십위원회(CLC)의 그레그 베르텔센 회장은 기후를 무역의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글로벌 시장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2022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상품의 국제적인 이동에 기후 정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기후와 온실가스에 무심했던 20세기 무역 교리가 바뀐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나라다.
국내 산업계는 일관되게 온실가스 규제를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공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는 "온실가스를 규제 위주로 접근하면 투자 위축과 수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2021년 8월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기준 40%로 정하고, 산업 부문에서 14.5% 감축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에 대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이고, 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길 것"이라고 반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기존 산업 부문의 14.5% 감축은 할 수 없고, 5%만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최근에 알려졌다. 산자부의 입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원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산업계와의 논의 절차가 없었기에 NDC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업계와 정부는 온실가스 규제를 현실을 무시한 공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산업계가 기후 정책에 대해 반발할 수는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다. 작년 12월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CBAM)에 합의했을 때 유럽 철강 산업계가 반발했다. "수입 철강에 탄소국경세가 붙으면 유럽 철 가격이 상승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유럽연합 의회는 "철강산업계가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탈탄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나 탄소국경세 법조문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기후 목표를 낮추고, 유럽연합은 강화한다.우리나라 정부의 태도가 개별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까? 글로벌 시장에서 온몸으로 탄소국경세를 맞아야 하는 개별 기업들 사정은 어떨까?
작년 11월 '국회 1.5℃ 포럼'에 참여한 포스코 탄소중립 담당 임원은 "우리나라 철강기업들이 유럽연합에 2021년에 43억 달러(약 5조 6천억 원)어치를 수출했는데, 탄소국경세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유럽연합 철강회사들은 지난 30년 동안 탈탄소를 준비한 반면 포스코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저탄소 철을 만들려면 수소 환원 공법을 도입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68조 원이 든다고 한다. 그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 "탄소중립이 경쟁력에 긍정적"
▲ 지난해 12월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세(CBAM)에 합의했다. 사진은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이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열린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 유럽의회 회기는 이날부터 16일까지다. 2023.03.14 ⓒ 이준호
이런 사정은 포스코만이 아니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탄소국경세 대상 기업들은 정부 대책을 요청하고 있다. 이 기업들에 탄소국경세는 살고 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온실가스목표관리제 대상기업 400곳을 조사했는데 그중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작년 동일 조사 때는 34.8%였는데 단 1년 만에 탄소중립이 대세가 되었다. 정부와 경제단체의 무심함과 달리 상품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개별기업들에 기후정책은 절박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고 있을까? 2월 16일 산자부는 '철강산업 발전 원탁회의'에서 2030년까지 저탄소 철강, 수소 환원 제철 등에 24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실은 68조 원이 필요한데 정부 대답은 2400억 원이다. 정말 미미하다. 이는 철강산업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탄소국경세 대상인 알루미늄,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고탄소 제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2022년 지구촌 GDP의 1.2%인 1조 1천억 달러(약 1430조 원)가 청정에너지 기술에 투자되었다 한다. 우리나라 2023년 에너지 전환 예산은 1조 2천억 원으로 GDP의 0.05%다. 지구촌 투자의 1천분의 1도 안 된다. 기후정책이 보이지 않는 나라다.
이처럼 기후정책의 부재가 계속되면 2030년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수출 붕괴와 해외 탈출로 일그러진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를 바꿀 신뢰할 만한 경로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과 수출에 의존해 온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있을까? 그 길은 기후 전략과 기후 세력화로 출발할 수 있다.
전략은 대담한 목표, 정의로운 원칙, 다양한 방법에 근거해야 한다. 우선 탈탄소는 대담해야 한다. 문제가 크다면 해결책도 커야 기업과 시민들이 믿는다. 우리나라도 매년 GDP의 1.2%를 투입해야 지구촌 평균에 겨우 도달한다. 아울러 탈탄소 산업 전환과 극단적인 기후 위기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 노동자, 지역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기후 정의다. 기후 해법은 태양광과 같은 에너지 전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효율화, 토양 회복을 통한 온실가스 흡수, 녹색 도시, 기후 교육 등 100가지도 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아울러 전략을 실행할 기후세력화는 필수다. 정치의 기후세력화도 필요하나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녹색공동체도 필수다. 아파트, 마을, 직장이 문제해결을 위해 녹색공동체를 만드는 데 정부와 정치는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기후 전략과 기후 세력화가 없는 우리나라는 현재 전략적 위기다. 탈탄소 무역교리를 무시하고 고립된 갈라파고스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회복할지 선택할 때다. 당연히 대담하고 정의로운 기후 정책으로 살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마이뉴스 오기출(soko)
더 쉽게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법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문제를 풀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벼리고 있는 스타트업을 만났다. 식스티헤르츠는 전국의 모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하는 ‘햇빛바람지도’를 서비스한다.
■ IT 에너지 스타트업 | 식스티헤르츠
3월3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소셜 벤처 ‘식스티헤르츠(60Hz)’ 김종규 대표와 인터뷰를 나눈 두 시간 동안 경남 거제시 아주운동장 주차장에 세워진 태양광발전소에서는 전력 36.02㎾h가 만들어졌다. 햇빛이 더 많은 남쪽 지역은 어떨까? 같은 시간 제주시 봉개동의 한 사무실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에서는 전력 672.86㎾h가 생산됐다. 4인 가족이 한 달 동안 사용하는 평균 전력량(300㎾h)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이런 데이터들은 식스티헤르츠에서 제공하는 ‘햇빛바람지도’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햇빛바람지도는 전국의 모든 재생에너지 정보를 모은 국내 최초의 플랫폼이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전국 각지에 있는 태양광·풍력발전소 8만여 곳의 발전량을 예측해 알려준다. 한반도 지도 위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기호들이 물고기 떼처럼 흐른다. 어느 지역에 구름이 많고 햇빛이 강한지도 색의 차이로 표현한다.
파편화된 공공데이터를 모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에너지업계에서는 만들 수도, 만들 이유도 없는 지도였다. 수익모델도 없었다. 하지만 신생 기업의 ‘튀는’ 행보에 관심이 모였다. 마케팅 인력이 없어 홍보를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학교, 관공서, RE100 기업(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 기업), 한전 같은 에너지 업계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햇빛바람지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1800명 넘게 가입했다. 기업에서 ‘만나서 얘기 좀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2021년 공공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법인 등록을 한 지 1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무엇보다 이 지도는 풍력 발전량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을 분석해야 하는 풍력 예측은 기술적으로 태양광 예측보다 어렵다. 김종규 대표는 풍력발전이 확대되어야 국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풍력발전소를 더 많이 설치하려면 더 정확한 예측 정보가 필요했다. “에너지 분야는 IT 기술 도입이 굉장히 뒤처져 있다. 제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분야가 미디어인데, 넷플릭스만 봐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콘텐츠를 생산·유통·소비하는 모든 것이 IT 기반으로 바뀐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는 어떤가. 할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를 비교해도 거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김종규 대표가 에너지 분야에 뛰어든 이유다.
발전량 예측이 왜 중요한가
에너지 분야는 왜 변해야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한참 전부터 이미 수요가 공급을 앞질렀다. RE100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우리에게 미팅 요청을 많이 하는데,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수출에 문제가 생기니까 비용이 올라가더라도 전력원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데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가 태양광발전소 등이 사고팔리는 가격을 추적하고 있는데 몇 년째 우상향 중이다. 마치 ‘강남 부동산’처럼 재생에너지 발전소 가격이 치솟고 있는 거다.” 김종규 대표의 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계속 늘고 있다. 탄소 저감을 목표로 한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8년 6.2%에서 2030년 21.6%로 늘어날 예정이다.
관건은 에너지 관리다. 전력은 저장이 어려워서 생산 즉시 실시간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남아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력량 수요가 폭증하자 전력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다. 전기차 충전도 금지했다. 당시 전력 대란을 두고 한편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친환경 국가를 원하는 이들의 녹색 유토피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누적 태양광발전 설치량이 가장 많은 주다. 재생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전력난에 시달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19.1%로 가장 높은 제주도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시설 가동 중단(출력 제어)이 132회나 있었다. 2021년(65회)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수요에 비해 전력이 너무 많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김종규 대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전력망에 연결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전력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한국의 표준 주파수 60Hz를 회사 이름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발전량 예측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발전은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를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발코니·주차장·유휴지 등에 소규모로 수십만 개씩 분산 운영될 뿐 아니라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 자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 수급 과정에서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소비자의 시장 참여를 확산하고 분산 에너지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김종규 대표는 에너지 생태계의 전환이 에너지 산업 내부의 동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본다. “‘변해야 한다, 하자’ 이 말이 마치 순환논리처럼 몇 년째 반복된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만약 내부에서 혁신이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지 않았을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적 변화도 더디지 않았을 거다.”
그는 에너지 업계 외부의 힘을 기대했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같은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입하는 경험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상상하기가 어렵다. 왜곡된 유통구조 때문이다. 우리 전력 시장은, 정부가 유기농 농산품이나 화학비료로 키운 농산품이나 다 한 바구니에 넣고 섞은 다음에 하나씩 배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비용을 더 내더라도 석탄화력 에너지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은 분들이 있지만 민간에게 전력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 구조적 변화가 없으면 시민들의 수요는 공급과 연결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선택권’이라는 당연한 권리
기술적으로 대중이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독일에서의 유학 경험을 설명했다. “집 계약을 할 때 전기 계약도 하는데 그때부터 다르더라. 온라인으로 클릭을 세 번 하니까 내가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독일의 인프라가 결코 한국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살던 집의 계량기도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썼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낡았다. 돈 때문에, 인프라 때문에, 기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말이 진짜인가? 왜 못한다고 믿고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엄청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세계적 흐름과 정말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느꼈다.”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시민들이 재생에너지를 쉽게 구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김흥구
‘더 쉽게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하자’는 지향은 재생에너지 구독 서비스 ‘월간 햇빛바람’으로 이어졌다. ‘월간 햇빛 바람’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은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게 매월 일정한 요금을 받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REC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한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REC를 구매해서 RE100 기업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각자 알아서 REC를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도 RE100을 하려고 REC를 샀는데, 그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 먼저 REC 적정가격에 대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부 한마디에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니 가격 격차가 크다. 두 번째는 REC를 사려고 해도 판매하는 발전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는 거래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 전력을 100만원어치 사려고 하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10여 개가 넘는다. 전력을 많이 쓰는 회사라면 여러 발전소와 각각 계약을 해야 하는데, 각 발전소별로 10여 개씩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 작은 회사에선 엄두가 안 난다.”
‘월간 햇빛바람’ 구독 서비스는 올 상반기에 시작할 예정이다. 친환경 제품을 판매·생산하는 업체와 공장 등에서는 이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수요를 확실하게 파악한 것이냐고 묻자 ‘돈을 별로 안 벌겠다고 생각하면 시작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내에서도 ‘돈도 못 버는 것 같은데 이거 왜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캠페인이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고 설득하고 있다(웃음).”
식스티헤르츠의 주요 수입원은 ‘에너지스크림’이라는 소프트웨어다. 태양광, 전기차 충전기,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소규모 분산 전원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기업 등의 전력 관리를 돕는다. 하지만 김종규 대표는 소프트웨어 판매를 넘어 구조적 변화를 꿈꾼다. “소비자들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재생에너지를 사도록 만든 지금 시장은 의미가 없다.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는 경험을 돕는 좋은 서비스가 등장하고 ‘에너지 선택권’을 경험한 시민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이 시장의 가치를 키울 거라고 생각한다.”
햇빛바람지도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8만여 곳의 발전량을 예측해 알려준다. 식스티헤르츠 제공
지난 2월, 식스티헤르츠는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시민 9000명이 생산한 재생에너지 REC를 카카오에 중개·판매했다. 해당 REC는 카카오 제주 사옥 RE100을 달성하는 데 쓰였다. 김종규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이후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당시를 꼽았다. “2년 반도 채 안 된 신생 기업에게 시민들이 REC를 팔아보라고 주실 줄은 몰랐다. ‘정부는 무조건 사주는데 쟤네는 뭘 믿고?’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드셨을 거다. 우리가 수익 창출이나 판매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아주셨다고 생각한다.”
식스티헤르츠는 에너지 시장의 문제를 기술과 상상력으로, 산업 바깥의 시선으로 해결하려는 회사다. 그래서인지 회사의 정관에 적힌 사업 목적에는 ‘에너지’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IT 기술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및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고 적혀 있다. 매년 사회적 성과를 측정해 보고하는 ‘소셜임팩트위원회(사회적성과측정위원회)’ 운영도 정관에 넣었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 시즌에 맞춰 발표된 ‘임팩트 리포트’에는 식스티헤르츠의 ‘발전량 예측 서비스에 따른 화석연료 발전의 탄소배출 저감분에 대한 환경비용’을 3억5300여만 원으로 계산해 보고했다.
에너지 분야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김종규 대표는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에너지’에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이 레고를 아주 좋아한다고 운을 뗐다. 풍력발전소 레고 블록을 보고 놀랐던 이야기였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발전소 레고 블록은 만들어지지 못하겠지만 풍력발전소 레고 블록은 이미 나와 있다. 어린이들이 살아갈 미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의 거대한 흐름은 10년, 20년 뒤의 세상을 사는 우리 삶을 바꿀 거다.”
김종규 대표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전체 전력의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인 독일의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는 대개 10년이면 투자비 회수가 끝난다. 그때 독일 같은 나라의 다음 세대들은 햇빛과 바람만 있으면 전력을 얻는 인프라를 유산으로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다음 세대는 어떨까? 원자력발전에만 의존한 에너지원을 쓰면 우리 다음 세대는 폐기물 처리비용과 탄소중립을 위한 힘겨운 부담만 물려받게 된다. 지금의 선택이 중요하다. 당장 내일 전기요금이 얼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겪을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시사인 김다은 기자
초록색 물든 광안리 앞바다
광안리해수욕장 옆 민락해변공원에 조성된 청보리밭
미주·유럽·중동서 곧장 부산으로… 2035년엔 1500만 명 '발걸음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4) 관광
새로운 관광·마이스 수요 창출
남해안 글로벌 관광벨트 활성화
인천공항 경유 번거로움 사라져
가덕신공항이 2029년 조기 개항하면 향후 20년 동안 국제선 여객 수요가 50% 이상 늘어나는 등 부산 관광 수요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용두산공원(왼쪽)부산시 제공
가덕신공항이 2029년 조기 개항하면 부산의 관광 수요가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국토교통부는 가덕신공항 국제선 여객 수요는 개항 이후 20년 만에 50%가량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관광업계는 장거리 노선 운영이 가능한 공항 확보로 ‘K관광’을 주도하는 ‘새로운 부산 관광시대’를 기대한다.
■유럽 장거리 노선 이착륙 가능
항공업계는 가덕신공항 개항의 이점으로 가장 먼저 24시간 이착륙을 통한 여객 수요 증대를 꼽는다. 김해공항에는 소음 문제 때문에 운항제한시간(커퓨타임)이 있어 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6시에는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지역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전 오전 5시 30분 정도가 되면 항공기가 착륙할 수 없어 경남 김해시 상공을 빙빙 돌다가 내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면서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면 이런 비효율적인 운항은 옛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면 국제선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가덕신공항 국제선 수요는 2035년 1490만 5000명, 2055년 2120만 1000명, 2065년 2335만 7000명으로 늘어난다. 국내선 수요 역시 2035년 766만 명에서 2055년 856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가덕신공항 하늘길이 열리면 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은 물론 중장거리 노선을 갖추게 된다. 활주로 길이는 공항 규모와 기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활주로 길이는 3500m다. 김해공항 활주로 3200m보다 300m가량 길어 미국과 유럽 등을 오가는 대형 여객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여호근 동의대 호텔·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국제관광도시가 되려면 24시간 운영되는 공항이 필수적”이라면서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고 유럽 등 원거리 노선이 확장된다면 부산에 올 수 있는 관광객의 폭이 예전과 다르게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스는 관광과 연계하는 대표적인 복합산업으로 이미 경제적 가치는 증명됐다. 마이스산업 선도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마이스산업이 2019년 직간접 일자리 3만 4000여 개를 창출했다. 오성근 2030부산엑스포 유치지원특별위원회 민간위원은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면 김해공항에서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던 중동, 미주 등으로의 새로운 관광·마이스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감천문화마을 전경. 부산시 제공
■남해안 해양관광벨트 중심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면 영남권 주민이 장거리 노선을 이용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영남권 주민이 인천공항을 이용하느라 이동, 숙박 등에 연간 7183억 원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는 분석도 있다.
가덕신공항 복합도시가 건설되면 새로운 관광, 컨벤션, 물류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현재 부산시는 가덕도 공항복합도시 개발안을 크게 에어시티지구, 항공물류지구, 해양신산업지구 등으로 나눠 구상하고 있다. 가덕신공항을 중심으로 1시간 내로 접근할 수 있는 남부권 광역교통망을 구축해 새로운 해양관광벨트를 만든다는 게 목표다. 지난달 부산관광공사는 경남관광재단, 전남관광재단과 ‘남해안 글로벌 해양관광벨트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여 교수는 “가덕신공항 건립과 함께 도시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깔리면 자연히 시내 대중교통 정체가 풀리게 돼 관광객 이동도 용이해질 것”이라면서 “명실상부한 남부권 최대 공항이 개항하면 경남, 전남 등과 연계한 남해안 해양관광벨트 사업도 활성화돼 지역 균형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가덕신공항 개발권 ‘반경 16.8㎞’ 가닥…54개 읍·면·동 혜택
‘실질적 면적’ 보장 특별법 심의, 대통령령으로 개발지 추가 가능
- 최인호 의원 “TK신공항법 수정
- 국비 경쟁 가능성 없도록 조치”
가덕신공항 주변개발 기준이 공항 중심 반경이 아닌 ‘실질적 면적’을 보장하는 방안(국제신문 지난달 24일 자 1·3면 보도)이 사실상 수용되면서 부산과 경남 등 남부권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덕도 대항항 전경. 이원준 기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원회는 21일 서일준 이광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소위원장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구체적으로는 공항 주변개발 범위를 현행대로 반경 10㎞로 하되, 신공항 건설에 따른 어업권 등의 피해와 주변개발 여건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지역을 추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주변개발 범위가 ‘반경 10㎞ +α’가 되는 셈이다.
애초 서 의원 측은 가덕신공항이 인천공항과 달리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만큼 주변개발 범위를 반경 20㎞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정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인천공항 반경 10㎞’에 해당하는 육지부 면적(314.04㎢·반경 18㎞)’ 기준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에 완강하게 반대하던 국토교통부도 기획재정부와 협의 끝에 가덕신공항 반경 16.8㎞에 대한 주변개발안을 이날 소위에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서 의원이 앞서 제시한 반경 18㎞에 비해 규모가 다소 줄었는데, 이는 국토부가 가덕신공항 건설공법 확정 과정에서 공항 위치를 내륙 방향으로 옮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령을 통해 이 안이 실현되면 부산 강서구 외에도 사하구는 물론 경남 거제 김해 창원까지 최소 54개 읍·면·동이 주변개발 지역에 포함된다.
이날 대구 경북(TK)신공항 특별법도 이날 소위에서 수정 가결됐는데, 두 공항의 ‘국비 확보 경쟁’ 우려의 불씨도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소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법 체계를 넘어서고 과도한 특혜 조항이 담겼던 TK신공항 특별법을 심도 있게 심사했고, 대폭 수정해 통과시켰다”며 “부울경 주민들이 우려했던 국비지원과 공항위계 등 가덕신공항과 충돌될 만한 소지를 모두 삭제·수정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냈다. 그는 이를 통해 10조 원 이상의 과도한 국비 투입을 막을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기재부와 국방부는 TK신공항 특별법상의 ‘차액 보전’ 방식을 놓고 각각 입장이 달랐다. 국방부는 추가적인 정부 지원을 요구한 반면 기재부는 ‘국방부 예산 내’ 지원 입장을 고수했다. 대안은 ‘기부대양여’ 방식인 TK신공항 건설비가 종전부지 개발사업 수입을 초과하면 ‘국가가 예산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어느 부처의 어떤 예산을 지원할지 등에 대해선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했다.
TK신공항 건설비 차액 지원은 ‘완공된 이후 정산’으로 결정하기로 해 가덕신공항 건설의 국비 투입 시기인 2024~2030년까지는 예산 지원이 겹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TK신공항은 2030년까지 민간자금으로 건설된다.
아울러 ‘중추공항’ ‘중장거리 운항’ ‘최대중량 항공기’ ‘국제적인 규모’ 등 법 체계에 맞지 않고, 가덕신공항의 위계와 충돌되는 표현은 전면 삭제됐다. 두 법안은 23일 전체회의를 거쳐 오는 30일 본회의에 오르는 수순을 밟게 된다.
조원호 기자 cho1ho@kookje.co.kr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이륙만 남았다
국회 교통법안소위 통과…이르면 이달 본회의 상정
예타면제 등 핵심내용 반영… 2030년 개항 '청신호'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조감도.
대구·경북지역 최대 현안인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TK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첫 번째 문턱인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해 신공항 건설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국토위는 21일 교통소위 회의를 열고 TK 신공항 특별법 3개안(주호영안, 홍준표안, 추경호안)에 대해 병합 심사한 뒤 위원회 대안으로 수정 가결했다.
정부와 대구시는 오는 2030년 민간·군 복합공항 형태로 대구경북신공항을 개항한다는 목표다. 2025년 착공 예정이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법안에는 △기부대양여 차액의 국비지원 △신공항건설 사업에 대한 예타면제 △종전부지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의제 등 발의안의 핵심 내용이 담겼다.
기부대양여는 대구시가 신공항을 건설해 국방부에 기부하고, 종전 군 공항 부지를 양여 받아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부산지역 의원과 공방을 벌였던 ‘중추공항’ 명칭 문제와 최대 중량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길이 등 공항의 위계와 규모에 대한 내용은 국내에 추진 중인 다른 신공항과 경합 요소가 될 수 있어 여야 위원 합의로 수정됐다.
앞서 대구시는 야당이 문제 삼고 있는 중추공항 명칭을 삭제하고 ‘TK신공항 반경 20㎞를 주변 개발 예정지역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반경 ‘10㎞’로 범위를 축소하기로 하는 등 조율에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국토위 위원인 국민의힘 강대식(대구 동구을) 의원을 비롯해 대구시와 경북도 등 지역 정·관계는 국토위 소위 통과를 위해 여야 위원,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등 관계 부처와 전방위적으로 협의와 설득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이날 소위 통과로 첫 결실을 맺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23일로 예정된 국토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본회의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여야 정치권을 대상으로 마지막까지 전심전력할 예정이다.
TK 신공항 특별법이 이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예타 조사 면제로 인한 절차 단축, 기부대양여 부족분 국비 지원에 따른 원활한 사업자 선정 등 긍정 효과로 2030년 개항이라는 TK 신공항 건설 로드맵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역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의 법안소위 통과를 환영한다”며, “그동안 함께 노력해 주신 여당 지도부와 국토위 위원과 지역 국회 의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국회 본회의까지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 주신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과 홍준표 대구시장,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고 계시는 대구경북 시도민에게 모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3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돼 대구경북신공항이 더 빠르게 건설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강대식 의원은 “대구의 미래 먹거리인 TK신공항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뜨는 순간이 임박했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 대구시는 2020년 8월 경북 군위 소보면과 의성 비안면 일원을 신공항 부지로 확정했다. : 경북일보
“도심보다 농도 높다”…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미스터리’
춘천 등 3곳 숲내 농도 ‘보통’
도심은 ‘좋음’ 예상밖 조사 결과
“숲내 풍속 낮아 공기 정체 탓” 분석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이 강원도 대표 휴양림 3곳을 대상으로 대기질 조사를 했는데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같은 기간 인근 도심보다 모두 높다는 결과가 나와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봄을 맞아 시원한 경치와 청량한 공기를 즐기러 근처 산이나 자연휴양림, 수목원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그런데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도심보다 높다면? 모두의 예상을 깬 조사 결과가 강원도에서 나왔다.
강원도 직속기관인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해 강원 지역 대표 휴양림인 춘천 강원숲체험장과 집다리골자연휴양림, 홍천 가리산자연휴양림 3곳의 대기질을 조사했다. 울창한 숲과 청정한 공기를 자랑하는 강원도 휴양림의 매력을 홍보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첫 조사였다. 하지만 지난 1일 발표된 조사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연구원이 지난해 분기마다 일주일씩 이동측정차량을 이용해 대기질을 조사했더니, 강원숲체험장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17㎍/㎥로 연평균 환경 기준(15㎍/㎥)을 웃도는 ‘보통’ 수준이었는데, 같은 기간 춘천 도심인 석사동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좋음’(13㎍/㎥)을 나타낸 것이다. 집다리골자연휴양림과 가리산자연휴양림도 각각 13㎍/㎥와 14㎍/㎥로 측정됐는데, 같은 기간 춘천 도심은 12㎍/㎥로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근소하게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초미세먼지와 달리 미세먼지(PM-10) 농도는 휴양림 3곳 모두 도심에 견줘 낮았다. 강원숲체험장 21㎍/㎥, 집다리골자연휴양림 20㎍/㎥, 가리산자연휴양림 14㎍/㎥로 측정된 기간에 도심은 각각 24㎍/㎥, 24㎍/㎥, 21㎍/㎥를 나타낸 것이다.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이 강원도 대표 휴양림 3곳을 대상으로 대기질 조사를 했는데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같은 기간 인근 도심보다 모두 높다는 결과가 나와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림은 숲의 미세먼지 저감 개념. 게티이미지뱅크
산림청선 “피톤치드·꽃가루도
초미세먼지로 측정될수 있어”
환경과학원 성분 조사서도 ‘연관성’
이런 예상 밖 결과가 나온 이유와 관련해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은 ‘풍속’에 주목한다. 조사 기간 강원숲체험장의 평균 풍속은 0.4m/s에 불과했지만 도심 지역 평균 풍속은 1.2m/s였다. 휴양림의 낮은 풍속은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고유 환경 때문인데, 풍속이 낮으니 대기가 정체돼 숲에 유입된 미세먼지를 밖으로 배출하지 못해 농도가 올라갔다는 게 연구원 쪽의 설명이다. 연구원이 조사한 분기별 풍속도 강원숲체험장의 평균 풍속이 도심의 27~37%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왜 미세먼지 농도는 낮은데 초미세먼지만 휴양림이 더 높게 나오는 것일까. 숲의 오염물질 정화 능력을 강조해온 산림청의 설명은 다르다. 울창한 숲은 피톤치드 등 치유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데, 치유 물질의 지름이 2.5㎛보다 작다 보니 측정기가 이를 초미세먼지로 잘못 인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과 연구관은 “미세먼지 측정은 단위 면적당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물질의 성분은 보지 않는다. 피톤치드나 꽃가루처럼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모두 초미세먼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게 나온다고 해서 이를 전부 오염물질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이 강원도 대표 휴양림 3곳을 대상으로 대기질 조사를 했는데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같은 기간 인근 도심보다 모두 높다는 결과가 나와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도 시흥에 조성된 도시숲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춘천지역 초미세먼지 상세 성분 결과’ 보고서도 산림청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춘천의 초미세먼지 성분 구성비를 살펴봤더니 다른 지역보다 유기탄소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자연적휘발성유기화합물(BVOCs)의 전환 등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보고서의 추정이다. 자연적휘발성유기화합물은 산림 등 자연 발생원에서 방출되는 휘발성이 높은 유기화합물로, 대표적으로 피톤치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앞서 국립환경과학원은 청정도시로 알려진 춘천이 서울과 비슷한 초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내자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초미세먼지를 측정해 상세 성분을 조사했다.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이 강원도 대표 휴양림 3곳을 대상으로 대기질 조사를 했는데 휴양림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같은 기간 인근 도심보다 모두 높다는 결과가 나와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강원숲체험장 산책로 모습. 강원도산림과학연구원 제공
김태우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 청정대기과장은 “강원숲체험장의 경우, 초미세먼지를 제외한 모든 항목이 청정 지표를 충족하는 깨끗한 수준이다. 아직 휴양림의 대기질에 대한 연구가 걸음마 단계인 만큼, 지속적인 정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실태와 원인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부산 산복도로 건물 높이 제한 벽 무너지나
중구청, 1월 타당성 용역 착수
서·동구청도 용역 진행·마무리
“북항재개발로 제한 취지 퇴색”
재산권·원도심 활성화도 이유
난개발 우려 속 공은 부산시로
22일 촬영한 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일대. 김종진 기자 kjj1761@
북항재개발에 맞춰 부산 원도심 지자체들이 일제히 산복도로 건물 높이 제한 해제를 추진하고 있다. 원도심 지자체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북항 시대에 맞춰 산복도로 건물의 ‘키’도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난개발 방지와 경관 보호 등의 관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향후 추진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중구청은 1월부터 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구 망양로 일원에 대한 고도제한 완화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동대신 지구, 영주 지구, 보수아파트 지구, 시민아파트 지구 4곳이 고도 제한 해제 타당성 검토 대상이다. 고도 제한 해제가 구청의 숙원사업인 만큼 해제가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산복도로를 품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용역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동구청은 지난해 12월 용역에 착수해 산복도로 일원에 적용된 고도 제한 해제를 검토하는 중이다. 서구청은 지난해 9월 용역을 마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시에 고도 제한 해제를 요청했다. 중·동구도 용역 결과가 나오면 서구청과 함께 대응할 방침이다. 그동안 구의회나 주민 차원에서 고도 제한 해제 건의가 나온 적은 있었지만, 지자체가 관련 용역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도시관리계획에 따라 1972년부터 동구 범천로에서 서구 서대신 교차로까지 길이 8.9km 산복도로 구간에서 건축물 최고 높이는 제한돼 왔다. 바다 조망권 확보가 이유다. 이에 따라 산복도로 아래에서는 도로 노면보다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없고, 위에서는 구간마다 10~30여m 높이까지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고도 제한은 난개발을 막아 독특한 산복도로 경관을 만들었지만 재산권을 침해하고 원도심 침체를 부추기는 원인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원도심 지자체들은 북항 시대를 고도 제한 재논의 적기로 본다. 북항재개발로 이미 초고층 건물이 연이어 들어서 바다 조망권을 보장한다는 고도 제한의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것이다. 실제 2021년 북항에 61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는 등 산복도로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관은 상당수 가려졌다. 중구청 관계자는 “북항재개발로 제한의 의미가 옅어졌다고 판단했다. 고도 제한이 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도 제한 변경의 열쇠는 부산시가 쥐고 있다. 고도 제한을 변경하려면 먼저 시가 해당 지역의 도시계획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는 ‘2030 부산도시관리계획(재정비) 용역’을 진행 중이며 고도 제한 해제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역시 북항재개발에 맞춰 고도 제한이 합리적인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것인데, 내년 6월에 용역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북항재개발로 일부 구간에서 조망권이 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산복도로 경관이 유지된 곳이 더 많다”며 “지자체에서 요청이 들어온 만큼 최근 북항 재개발로 변화한 상황까지 포함해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산복도로 고도 제한 해제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시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회경 동아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업타운처럼 산복도로 지역에는 고급주택 단지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산복도로 개발은 시간문제라고 본다”면서 “그렇다면 차라리 시가 고삐를 쥐고 단계적으로 고도 제한을 완화해 난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을 예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호 부산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는 “부산 전체의 공공 이익을 고려할 때 국지적인 북항 개발이 산복도로 고도 제한 해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산복도로 개발은 일부 지역에만 긍정적일 뿐 원도심 전체 경관을 파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15곳이나 있는데…정치권은 또 ‘공항 타령’
예타 면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 국회 소위 통과
여야·지자체들 10곳 추가로 더 짓겠다며 추진·검토 중
졸속 공사에 안전성 우려, 자연환경 훼손 문제도 ‘심각’
정치권과 정부가 부산엑스포와 지역균형발전 등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조사도 생략한 채 공항 건설에 국고를 쏟아붓는 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현재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는 10개의 공항을 더 짓겠다는 입장으로 졸속 공사에 따른 안전성 우려와 함께 중복 투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이 심각한 항공기 운항을 규제하는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는 21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심의해 통과시켰다. 특별법에는 국고 지원과 함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특례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광주 군공항 이전을 위한 특별법’도 통과가 유력해지고 있다.
당초 두 지역의 군공항 이전은 군공항 부지를 매각·개발한 재원으로 공항 이전 비용 등을 마련하는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지방공항 이전 지원 공약을 내걸고, 여야가 지난달 두 개의 특별법을 동시 추진하기로 합의해 국고 지원 등의 물꼬를 텄다.
전문가들은 예타 면제 등에 비판적 입장이다. 대한교통학회가 최근 회원 153명을 대상으로 대구·광주 공항 이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6.6%(102명)는 ‘군공항 이전 특별법 등을 통해 예타 면제를 추진하고 민간공항의 사업비 부족분을 정부가 지원토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수는 “인구 규모에 비해 공항이 너무 많이 건설되고 있는데 이렇게 막대한 돈이 들어가면 미래세대가 재정 부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이를 특별법 등의 이유로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는 공항 건설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에 15개의 공항이 운영 중이지만 정치권과 지자체들은 10개의 공항 건설을 추진·검토 중이다.
졸속 공사에 따른 안전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토목 전문가들은 가덕도 앞바다는 수심이 30m가량으로 깊은 데다 토질이 균일하지 않아 매립을 통해 활주로를 건설하면 부등침하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조성일 르네방재연구원장은 “기한을 정해 쫓기듯 공사하는 과정에서 침하 방지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면 해상을 매립한 공항에서 수시로 불균등 침하에 따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 훼손 문제도 심각하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지난 20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덕도의 국수봉·남산·성토봉을 깡그리 무너뜨려 해양 매립토로 사용하면 가덕도의 자연환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도 성산읍에 제2공항이 건설되면 법정보호종 등 생물다양성이 파괴되고, 숨골과 동굴 되메우기로 인한 지하수 고갈과 홍수 피해 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인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의 경우 독일 녹색당은 2035년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모두 없애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오스트리아는 수도 빈과 서부 잘츠부르크를 오가는 항공편을 없애는 대신 고속철도 열차를 증편하고 있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교수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등은 물론 항공업계가 이산화탄소 저감·최소화를 위한 각종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공항 신설은 경제적 타당성 분석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대광·권기정·박미라 기자 chooho@kyunghyan
가덕신공항-TK신공항 ‘국비 경쟁’ 우려 낮아졌다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기반시설 우선 지원’ 삭제
‘기부 대 양여’ 원칙 안 지켜
대구·경북(TK)통합신공항건설특별법이 21일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수정된 ‘대안’으로 의결됐다. 사진은 지난 14일 국토위 교통법안소위에서 최인호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 연합뉴스
가덕신공항과 대구·경북(TK)통합신공항의 ‘국비 확보 경쟁’ 우려가 크게 해소됐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 심사 과정에서 TK신공항 특별법 가운데 기반시설 지원 등 예산 지원 내용이 상당부분 삭제됐기 때문이다. TK신공항에 대해 ‘기부 대 양여’ 원칙을 깨는 국비 지원이 이뤄지게 됐지만 2031년으로 예상되는 ‘기부 대 양여 정산 시점’ 이전의 국비 투입이 최소화돼 가덕신공항과의 ‘국비 경쟁’ 우려는 낮아졌다.
TK신공항건설특별법은 21일 국토위 교통법안소위에서 수정된 ‘대안’으로 의결됐다. 수정안에는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해 (신공항 건설비가 종전부지 개발사업 수입을) 초과할 결우 “국가가 예산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느 부처의 어떤 예산을 지원할지 등에 대해선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했다. 결국 ‘기부 대 양여’ 사업의 원칙이 깨지고 국비 지원의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예산 지원 규모는 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통제권을 갖게 됐다.
국토위 교통법안소위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종전부지·이전 예정지의 개발 등에 대한 국비 재정 지원 조항을 삭제해 10조 원이 넘는 국비 투입을 막았다”고 밝혔다. 기반시설 지원 근거 삭제로 TK신공항 완공 이전 투입되는 국비는 민간공항 터미널 건설 예산으로 제한될 전망이다. 최 의원은 “TK신공항의 기부 대 양여 사업의 차액에 대한 국비 지원은 완공된 이후 정산돼 2031년 이후에나 정산된다”면서 “가덕신공항 건설 국비 투입 시기인 2024년~2030년까지는 국비 지원이 겹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TK신공항 건설이 가덕신공항과의 국비 확보 경쟁 우려는 최소화됐지만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남았다. 기부 대 양여 사업의 차액을 국비로 지원할 수 있게 돼 민간 사업자가 공사비를 부풀리는 등의 편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일부라도 차액 지원 보장이 없으면 사업 시행 자체가 어려운 구조였다”면서 “기재부에 차액 최소화에 대한 대안을 시행령으로 마련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일부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가덕신공항의 ‘주변개발예정지역’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가덕신공항건설특별법 개정안은 확대 범위를 시행령에서 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신공항 주변개발예정지역의 범위를 기존 반경 10km에서 20km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덕신공항의 경우 주변 10km가 대부분 바다여서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국토위 법안소위에서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20km를 법으로 정하는 내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주변개발 여건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을 추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지역균형 발전정책, 50년간 실패 되풀이… 이제 폐기할 때 됐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의 의한 의견 • 1
지난 3월 15일 개최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710만㎡에 2042년까지 20년간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 5곳을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즉시 해당 지역을 국가 산단 후보지로 지정하였고,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워나가겠다고 지원에 나섰다. 실제로 해당 투자가 진행되면 기흥, 화성, 평택, 이천 등을 연결하는 경기 남부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인 만큼 국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당연해 보이는 반응이지만 몇 년 전 유사한 상황을 기억하기에 이런 반응은 매우 신기했다. 2019년 SK하이닉스는 신규 반도체 라인 건설을 위한 입지를 물색하고 있었고 많은 지자체는 전력을 다해 유치에 나섰다. 특히 경북 구미시는 100만㎡ 규모의 공장 용지 무상 임대를 포함해 파격적 제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종이학을 42만개 접고 어른들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나서는 등 말 그대로 총력전을 기울였다. 최종적으로 용인시 원삼면이 대상 지역으로 발표되자 지역 균형 발전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SK 역시 지역의 불만을 달래기 위하여 대규모 별도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4년이 지난 이번에는 그러한 반발과 비난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수도권 집중에 대해 체념하거나 그냥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4년 사이에 지방의 힘이 분노하기도 힘들 만큼 약해졌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지방의 대학교들은 급속한 학령 인구 감소로 위기 국면에 들어간 지 오래며, 지역의 산업단지와 공장들은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해 외국인 의존도를 높이거나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반대로 지방의 청년들은 지역 기업의 오르지 않는 낮은 임금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인생의 기회를 수도권과 서울에서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지난 50년 넘게 시도해 온 지역 균형 발전과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개발 억제 정책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1969년 12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도시 인구 집중 억제와 도농 균형 발전 조처 수립 지시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개발 억제와 균형 발전의 양대 전략은 이후 모든 정권에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일관되게 추진했다.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이전은 1970년 한강 이남 이전을 시작으로 과천, 세종 그리고 혁신도시 14곳 건설로 이어졌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수도권 개발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수도권 정비법’을 제정하였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 시절 ‘지역 균형 개발 및 지방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데서 볼 수 있듯이 지방의 발전과 서울과 수도권 억제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명제였다. 이렇게 일관되게 수도권 억제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추진하였는데도 지역 간 격차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거나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무의미하게 반복해온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대도시 집중과 지방 중소 도시 및 농어촌의 위축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서까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발전은 필연적으로 집중과 집적에서 시작된다. 인구와 자본, 지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집적된 곳에서 발전이 나타나며, 이렇게 시작된 발전은 새로운 발전을 스스로 더 가속하면서 격차를 벌려나간다. 2500만명이 밀집한 곳에서 생겨나는 직업과 기회는 인구 500만의 공간에서는 20%만큼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집중은 그만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 발전이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과도한 지역 간 격차를 방치할 경우 양극화와 극단적 갈등을 초래하며 국가 분열을 초래할 것은 명백하다. 프랑스에선 파리, 오드센, 론 등 상위 세 지역이 GDP의 22%를 차지하지만 하위 지역 10곳은 단 1.3%만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집중과 불균형은 극단적 대안 정치 세력의 확대를 불러왔다. 중요한 것은 불균형 자체를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초점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수도권 억제가 지방에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수도권을 억제한다고 지방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50년간의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수도권의 발전을 법과 제도로 억제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해서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기관차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신 이러한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지방 거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균형 발전을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수많은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효과는 제한적이며, 실제로 지방 거주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것이 대규모 사업 시행에 따른 불확실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필요한 자금은 수도권의 규제 완화로 얻는 경제적 이득을 활용하여 상당 부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도권 집중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러한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의 의한 의견 • 1
부산진구 “동서고가 철거는 주민 염원” 궐기대회 등 예고
일각 공원화 논의에 발칵 뒤집혀…구, 다음주 주민의견 수렴 설문
부산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건설에 따라 폐쇄가 결정된 동서고가로의 사상~진양램프 구간의 공원화 논의가 나오면서 부산진구가 발칵 뒤집혔다. 개금동 당감동 부암동 등 부산진구의 많은 주거지역이 동서고가로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주민은 동서고가로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지역 발전에도 방해된다며 철거를 고대한 만큼 공원화를 막아내기 위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동서고가로 전경. 국제신문 DB
부산진구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동서고가로 철거와 관련한 주민의견 수렴을 위해 설문조사를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구는 지난 20일 동서고가로 인접 지역 동주민센터 행정사무장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설문조사 관련 세부 내용을 전달했다.
앞서 공원화 논의를 강력 저지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데 이어 주민의 의견을 모아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별도로 다음 달 중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동서고가로 철거를 위한 조직적인 대응에도 나설 예정이다.
부산진구는 “동서고가로 철거는 부산진구민의 염원이다. 동서고가로가 인접하는 부산진구의 개금동 당감동 부암동 등은 대부분 주거밀집지역으로 그동안 고가도로로 인한 소음 분진 조망권 등으로 주민의 피해가 컸다. 도시 중심지 단절로 지역 발전 또한 저해됐다”며 “그런 동서고가로를 철거 대신 유휴공간을 활용해 하늘공원 등 녹지공간으로 조성하면 기본적인 생존권 위협은 물론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지역민의 삶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욱 부산진구청장은 “현재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서울의 ‘서울로 7017’ 등은 주변이 대부분 상업지역이다. 동서고가로 주변은 주거지역”이라며 “서명운동 추진, 궐기대회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올바른 가로수 가지치기, 수목의 25% 이상 제거 “NO”
서울기술연구원, 가로수 가지치기 올바른 방법 제안
“‘강한’ 가지치기 금지하고 ‘약한’ 가지만 제거해야”
봄마다 시행하고 있는 가로수 가지치기에 있어 수목의 25% 이상 제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고, 강한 가지보다 약한 가지만 제거해야 나무 생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서울기술연구원(원장 임성은)이 2022년에 서울시 12개 자치구 60개 도로의 양버즘나무의 가지치기 현황과 관리 형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구간에서는 안전을 위한 나무 높이 조절 등으로 여전히 두절형 가지치기, 즉 나무의 머리를 잘라내는 형태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절형 가지치기’와 같은 ‘강한’ 가지치기는 수목의 형태를 파괴하고, 잎의 성장을 늦춰 광합성을 저해시켜 양분의 축적을 감소시킨다.
국제수목학회(ISA)에서도 두절을 잘못된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절로 인해 나무의 탄소흡수 기능이 감소하고, 굵은 가지를 잘라낸 부위에 일어난 부패가 수목 전체에 퍼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무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서서히 죽어갈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가 쓰러져 인명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서울기술연구원은 가로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올바른 ‘가로수 가지치기 방법’으로 나무 크기의 25% 이상은 절대 제거하지 말아야 하며, ‘두절의 방법’은 금지하고, 배전선 가로수에는 ‘수관 축소’ 방법과, 가지치기로 활력을 잃은 가로수에는 ‘두절 회복’의 방법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임성은 원장은 “지금까지 잘못된 가지치기로 많은 가로수의 활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올바른 가지치기를 꾸준히 시행해야 할 것”이라며 “서울시 가로수의 건강성을 회복해 수목이 주는 아름다움과 녹음을 서울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Landscape Times 지재호 기자
IPCC 경고 현실화되면 어떤 모습…'기후재앙' 일상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오는 2100년에는 전 지구 표면 온도가 최대 4.4도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지표 온도가 올라갈 경우 폭우나 가뭄 등의 기후 재난이 빈번해지는 한편, 생물들의 서식지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질병이 창궐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콜스버그(남아공)=AP/뉴시스]지난 2021년 9월24일 남아공 노던 케이프주 콜스버그의 강 바닥이 가뭄으로 말라 붙여 있다. 세계의 많은 지역이 기후변화와 점점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홍수, 허리케인, 가뭄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으며 물과 관련된 재난을 피하기 위해 더 나은 경고 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같은 해 10월5일(현지시간) 보고했다. 2021.10.6.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IPCC는 지난 13일부터 19일(현지 시간)까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제58차 총회에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전 지구 지표 온도가 1850~1900년과 비교했을 때 현재(2011~2020년) 1.1도가 올랐다고 지적했다.
또 가까운 미래인 2021~2040년에는 지구 표면 온도가 1.5도에 도달할 것으로 봤다. 이 추세면 2081~2100년에는 지표온도가 1995~2014년 평균 대비 오른 1.4~4.4도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환경부가 2019년 정책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기후변화 시나리오 자료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만 올라도 ▲가뭄 지속 ▲물 부족 인구 5000만명 ▲10%의 육상생물 멸종 위기 ▲기후변화로 30만 명 사망 ▲희귀 동식물 멸종 등 큰 재난이 닥친다.
지구 온도가 3도 오르면 기근으로 최대 300만명이 사망하고, 연 1억6000만명이 해안 침수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지가 불타 20~50%의 생물이 멸종될 정도라고 한다.
만약 지구 온도가 4도 오르면 사용 가능한 물은 절반 가까이 줄고 남극 빙하는 붕괴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리카 농산물은 최대 35% 감소해 국가 간 식량 전쟁이 벌어지고, 러시아와 동유럽에는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으며 재난으로 인해 자본시장이 붕괴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지난해 8월8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 도로가 침수돼 있다. 2022.08.08. xconfind@newsis.com
전문가들은 기후재난이 일상화되고, 그에 따른 양극화도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구 표면 온도가 계속해서 오르면 우리나라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는 폭우, 가뭄 등이 더 빈번하게,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이는 지난해 강남역 침수 사건보다 더 심각한 일들이 앞으로는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극단적 기후 현상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며 "가난할수록 집 단열 상태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커 난방비 등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기온 상승으로 지난 수만 년 동안 접촉할 수 없었던 다양한 종들의 서식지가 변할 것이다"라며 "치명적이고 전염성 높은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들이 나타나 코로나19 사태보다 더 심각한 제2, 제3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IPCC 보고서에도 "전 지구 지표 온도의 상승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해수면 상승이나 남극 빙상 붕괴, 생물다양성의 손실 등 일부 변화들은 불가피하거나 되돌이킬 수 없다"며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급격하거나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커진다"는 우려가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 및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인프라 개선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며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의 인프라에 대한 사전 점검 및 조치를 통해 적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1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는 산업 부문에서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하향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감축분은 국외 감축이나 탄소 기술 등을 통해 상쇄한다는 계획인데, 환경 단체 등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가덕도신공항~부산 도심 급행철도 추진…2030엑스포 전 개통
대심도 등 47.9㎞ 구간, 최고 시속 198㎞…2조5천억 투입
비용편익 기준 미달, 박형준 “타당성 확보”…논란 예상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2029년 12월에 조기 개항하기로 한 가덕도신공항과 엑스포 개최 예정지인 부산 도심을 연결하는 급행철도 건설 사업이 추진된다. 이 사업에 대한 사전타당성 용역 결과 경제적 비용편익은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타당성 확보’로 분석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 구간 계획
박형준 부산시장은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BuTX)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uTX는 가덕도신공항에서 강서구 명지동, 사하구 하단동, 2030부산세계박람회 개최 예정지인 부산항 북항(부산역), 해운대구 센텀시티를 거쳐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이르는 47.9㎞ 구간에 초고속 교통 인프라를 갖추는 사업이다.
수소 전동차가 지하 40m 이상 대심도 터널을 최고속도 시속 198㎞, 주행속도 시속 180㎞로 운행하게 된다. 가덕도 신공항에서 부산항 북항까지 15분, 오시리아 관광단지까지는 26분만에 이동할 수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진행한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 사업비는 2조5860억원으로 추산됐다. 하루 수송인원 11만3000명으로 경제적 비용편익(B/C)은 0.88, 종합평가(AHP)는 0.722로 나왔다. 경제적 타당성인 B/C의 기준은 1.0 이상, 정책적 타당성인 AHP의 기준은 0.5 이상으로 비용편익 분석에선 기준치에 미달했다.
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 조감도© 경향신문
그러나 박 시장은 “사업추진의 타당성이 확보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도시철도 건설과 관련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B/C가 기준치 1을 넘는 사례는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다”며 “AHP평가에서 B/C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인데 AHP평가가 기준치 0.5를 훌쩍 넘을 것을 고려할 때 사업타당성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달 중 BuTX 사업화 전략 수립 용역에 착수해 6개 정거장을 복합 개발하는 방안과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최적의 사업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정부와 협의해 2030부산엑스포 개최 시점에 맞춰 BuTX를 개통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정부의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 BuTX를 동남권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오세훈의 ‘이상한 유럽 출장’ …‘핫플’ 돌며 개발계획만..박형준은
“잘 지어놓은 문화시설 하나가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8일 독일 함부르크의 엘프필하모니를 둘러본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재진 앞에서 밝혔다는 ‘시찰 소감’이다. 이 자리에서 오 시장은 열흘 전 밝힌 ‘여의도 제2세종문화회관’ 구상을 조금 더 구체화해 내보였다. 서울시청이나 여의도공원에서 발표해도 무방한 내용을 이역만리의 유명 건축물을 찾아가 공개한 셈이다. 오 시장의 이날 행보는 유럽 출장을 수행한 서울시 출입기자들에 의해 함부르크발 기사로 일제히 보도됐다.
‘세계 건강도시 파트너십 시장회의’ 참석차 지난 12일 출국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9박11일의 출장 일정을 마치고 22일 귀국했다. 오 시장의 이번 출장은 영국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 독일 함부르크, 덴마크 코펜하겐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세계적 금융도시들의 투자 유치 전략과 유럽 수변 도시들의 선행 개발 사례를 직접 둘러본 뒤 성공 비결을 꼼꼼히 챙겨 오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문제는 오 시장의 출장 일정이 유럽의 ‘핫플레이스’를 찾아가 서울의 유사한 개발계획을 발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정책적 참조점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오기 위한 출장이 아니라, 국내에서 이미 틀을 잡아놓은 정책을 공개하려고 비싼 돈 들여 ‘해외 로케’를 다녀온 셈이다.
오 시장은 재선 뒤 싱가포르·베트남(6박7일), 프랑스·스위스·스페인·네덜란드(9박11일, 중도 귀국), 영국·아일랜드·독일·덴마크(9박11일)까지 세번의 외국 출장을 다녀왔다. 앞선 두차례 출장에서도 외국 명소 시찰 뒤 국내 개발계획 발표가 주요 일정에 포함됐다. 싱가포르에서는 고품질 임대주택 시범 조성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 개발계획을, 프랑스에서는 용산 녹지공원과 국가 상징 가로 조성, 수서 차량기지 복합 개발,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 계획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유럽 출장에서도 △한강 곤돌라 설치 △여의도 국제금융시설 조성 △월드컵공원 등 서울 공원 명소화 △성수동 삼표시멘트 부지 미래업무지구 개발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한강 부유식 수영장 설치 △마포 소각장 첨단화 등이 오 시장 입을 통해 기사화됐다. 대부분 이미 결정된 정책에 세부 내용을 일부 더해 발표한 것이다.
이런 오 시장의 출장 스타일은 전임 박원순 시장과 견줘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박 전 시장은 재선 뒤 9개월간 네차례 외국 출장을 다녀왔다. 덴마크·독일(3박5일), 미국(7박10일), 중국(5박6일), 일본(5박6일)이 출장지였는데, 이 기간 발표한 자료 22건 중 국내 개발계획과 관련된 것은 △안데르센 동화공원 조성 △서울역 고가 녹지공원화 2건뿐이었다. 나머지는 패션박람회 서울 유치, 두 도시 간 문화관광시설 이용 할인, 통합재난관리조직 운영 노하우 관련 상호 교류, 국제회의 발표와 강연 등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순방 스타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예전처럼 시민들이 해외 사례를 알기 힘들면 현지에서 직접 설명하는 게 정보로서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의 홍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며 “오 시장의 순방은 신상품 광고를 해외에서 찍는 식의 마케팅 기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딴지 걸기’ 이제 그만, 인천과 가덕도 양 날개로
가덕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최초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2002년 4월 15일 중국 민항기의 김해 돗대산 충돌 사고였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5명의 대통령과 세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고 5명의 부산시장이 바뀌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을 한 몸에 받으며 가덕신공항은 때론 좌절의 슬픔을, 때론 희망의 기쁨을 주었다. 최종적으로 최근 국토교통부는 가덕신공항을 내년 말 착공해 2029년 12월 개항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9년 8개월이나 걸리는 사전타당성 조사의 ‘순수해상설치방식(해상공항)’을 폐기하고, 공항터미널이 설치될 육지에서 활주로로 이어지는 부분의 바다를 메워 연결하는 ‘매립식’ 공법을 활용해 시간 단축과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일부 언론은 공항의 최우선이 ‘안전’인데 공기단축에 따른 안전이 간과되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표적인 것이 육·해상 공항은 부등침하(구조물의 기초에 지반 압밀이 균등하게 가해지지 않아 지반의 침하량이 일정하지 않은 현상)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의 민관학 전문가들이 20여 년간 이 문제를 고민해 왔으며 심도 있는 조사와 사례를 통해 극복 가능한 결과를 도출했고,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될 수 있었다. 또한 국토부도 부등침하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20여 년을 우려먹은 일부 정치권과 수도권의 편협한 ‘딴지 걸기’는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가장 유사한 공항은 1998년 개항한 홍콩국제공항을 들 수 있다. 홍콩의 서부해역 첵랍콕섬의 이름을 따서 첵랍콕 국제공항이라 부르고 있는데 기존 섬과 바다를 매립한 공법으로 가덕도와 유사한 지형을 갖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가덕신공항 또한 첵랍콕 공항과 같은 매립식 공법이다. 공항 배치를 육지와 바다에 걸치는 ‘육해상 배치’로 결정했으며, 공항의 랜드사이드인 터미널 등 건축물은 남단의 육상에서, 활주로 등 에어사이드는 해상에서 공사를 동시에 시작해 공사 기간을 최대 27개월까지 단축시킨다는 방침이다.
부산은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와 가덕신공항 건설 그리고 통합 LCC 본사 부산 유치라는 소위 빅3에 대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가덕신공항 건설의 첫 단추가 온전히 끼워졌다. 부산이 염원하는 세 가지 의제가 현실화 되었을 때 그 효과는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하여 부울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토균형발전의 핵으로 떠오를 수 있다. 가덕신공항과 연계된 트라이포트(공항·항만·철도 연계) 물류산업과 부울경 광역교통망 확충, 공항 복합도시 조성과 이에 더한 배후도시 조성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한반도 남부권의 상생발전과 국가균형발전을 촉진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핵심 동력이 되리라 확신한다.
가덕신공항은 인천공항과 상호 보완하는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 엑스포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며, 트라이포트를 완성함으로써 부산을 동북아 물류중심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로 부상시킬 것이다.
김재원 신라대 항공대학장 국제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강대국이 된 영국은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다. 1851년 5월부터 10월까지 개최되었던 런던 세계박람회는 이렇게 탄생했고 여러 의미가 있었다.
첫째, 최신 기술과 산업 제품이 세계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선진 32개국에서 출품된 10만여 개의 전시품을 무려 600만여 명의 사람이 관람했다. 주요 전시물로는 기관차, 선박용 증기엔진, 거대 기중기, 권총, 굿이어 타이어 등이었다. 둘째, 다른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장으로서 미래 박람회의 길을 열고 영감을 줬다. 또 국제 자유 무역과 협력을 촉진하면서 세계 무역기구 창설의 마중물이 됐다. 셋째, 전시회 공간으로 사용된 수정궁(Crystal Palace)은 디자인, 건축공학 및 엔진니어링기술 개념을 탄생시켰다. 마지막으로 영국 국민에게 통합, 애국심 및 자긍심을 심어줬다.
이후 유럽과 미국과의 박람회 개최 경쟁이 시작됐다. 프랑스 파리는 런던에 이어 1855년 두 번째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후 11년마다 1900년도까지 총 5번의 박람회를 개최하는 박람회 마니아 국가였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던 1889년 파리박람회는 에펠탑을 박람회 입구로 사용했다. 이 박람회는 무려 2800만여 명이 관람했고 에펠탑은 세계건축사의 획기적 건물로 평가됐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 이어 1939년 뉴욕까지 네 차례의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박람회의 흐름을 주도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열렸던 1915년 샌프란시스코 박람회는 에디슨의 장거리 전화 시연이 있었다. 포드사는 박람회장에서 자동차 T모델을 직접 생산했다. 1939년의 뉴욕 박람회는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개막식을 중계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 광선에 대해서 연설을 했다.
박람회 개최를 희망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조정하기 위해 1928년 세계박람회기구(BIE)가 설립됐다. 이후부터는 이 기구에서 박람회 주최국과 시기를 결정했다. 박람회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등록박람회와 인증박람회로 나뉜다. 인정박람회는 등록박람회 사이 기간에 한 번씩 열리는 중규모 전문박람회다.
아시아 최초의 등록 세계박람회는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부터 25년 만에 이룩한 경제 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박람회 역사상 가장 많은 6400만여 명이 관람했다. 필자가 관람한 2010년 중국 상하이 박람회는 ‘잠에서 깬 용’의 포효를 알리면서 G2의 부상을 과시했다. 190개국 참가와 7300만여 명의 관람객 유치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로 기록됐다.
중동 최초의 박람회는 2021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 두바이엑스포’의 명칭은 유지한 채 박람회는 1년이 연기돼 열렸다. 1970년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 열리는 2025년 엑스포는 같은 도시인 오사카다. 명칭은 간사이 연합을 상징하는 오사카·간사이박람회다.
우리나라는 1993년 대전과 2012년 여수박람회를 개최했고 이는 인정박람회였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는 등록박람회로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BIE 실사단이 다음 달 2일 한국을 방문해 준비 사항을 점검한다. 4개국이 유치 신청을 했고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실사단이 이번 방문을 통해 작성하는 보고서는 171개국 BIE 회원국에 전달되고, 11월 개최국 투표를 위한 기초자료가 된다. 유치전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다.
세계박람회는 국가 브랜드 제고, 경제적 이득 및 국민의 자긍심 고취와 통합 등의 측면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의 유치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왜 대한민국 부산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논리로 BIE 회원국을 설득해야 한다.
세계박람회가 지향하는 이념은 ‘인류 공동의 번영과 평화 공존’이다. 한국의 근대 발전사가 실천해 온 길이다. 대한민국은 조선 자동차 반도체 가전제품 스마트폰 등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한 첨단기술제품 선도국가다. 부산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민주와 자유를 수호하면서 인류 평화를 지켜낸 세계 유일의 도시다. 따라서 대한민국 부산은 2030 세계박람회의 최적지다. 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한국에게 평가단이 높은 평가를 하는 이유다.
또한 BIE 실사단은 국가와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중요하게 본다. 많은 기업과 시민이 성금을 내고 자비로 BIE회원국을 찾아가 설득하는 국민은 한국인밖에 없다.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1997년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나라 사랑 열정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와 부산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여야를 떠나 모든 국민이 조금 더 힘을 결집해야 할 때다. 공개가 아닌 비밀투표로 결정되는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2030 세계박람회는 대한민국 지속성장 걸림돌인 지역균형발전의 해법이 된다는 데서도 큰 의미가 있다. 부울경이 힘을 합쳐 부울경세계박람회가 되어야 부울경도 살고 나라도 산다. 박람회 주제인 ‘세계의 대전환’은 부울경에서 시작되고 한국인이 이루어 내야 한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국제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지난 12월 말, 황령산 봉수전망대(이하 ‘황령산타워’) 건설계획이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젠 찬반공방을 넘어 부산이 취하고 득해야 할 것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에펠탑을 거론하며 엑스포 개최를 위해 황령산 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틀리진 않았지만 앞뒤 모두를 잘라낸 논리다. 에펠탑과 같이 고도의 건설기술이 집약된 거대한 구조물을 조성하여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이후의 엑스포는 지구 보전과 인류 문화 번영에 집중하는 것이 주 경향이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부산에 제대로 적용하려면 에펠탑으로 인해 발생했던 파리의 ‘진짜 변화’를 학습해야 한다. 에펠탑도 건설 전 시민의 반대가 심했지만 완공 후 상황은 정반대였다. 에펠탑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본 그들의 감동은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라는 과제로 연결되었고, 결과적으로 파리시는 파리 풍경의 멋짐과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매진했다.
에펠탑도 시대의 발명품이었지만 파리시는 더더욱 특별한 발명품을 창안했다. 에펠탑 주변 높이 규제, 지상 돌출 구조물의 지하화, 색채 규제 등.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휴조(Le Fuseaux) 제도’의 도입이었다. 휴조는 방추형으로 번역되는데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뷰콘(view cone) 개념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에펠탑 일대와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그 판단은 130년의 시간으로 이어지며 에펠탑을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이끌었고 세계 최고의 명소가 되게 했다. 이점에서 우리는 ‘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한편 그동안 부산에서는 지역경제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 기대했던 대형 개발사업들이 여러 차례 있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 센텀시티 동부산관광단지 문현금융단지 해운대엘시티 에코델타시티 북항재개발 등이 해당된다. 사업 면면을 보니 기대했던 결과에는 못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시끌벅적하게 추진했음에도 왜 손에 잡히는 것이 부족해 보일까. 사업성과를 부풀려 개발을 시작했거나, 조급증으로 성과주의에 빠져 부실하게 개발했거나, 또 대강대강 철 지난 콘텐츠에 의존하여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개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늘 또 다른 신규사업, 더 크고 센 프로젝트를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이 반복의 끝은 언제가 될지.
황령산타워도 버금가는 대형 개발사업에 속한다. 완공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지어야 할지, 완성 후의 지역 혜택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용두사미가 되고만 지난 대형 개발사업들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령산타워는 지금까지의 사업들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빈 땅을 채우거나 낙후된 땅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황령산 산정을 들어낸 후 그 위에 거대한 구조물을 건설하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부산은 이제 이 길을 가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함께할 필요가 있다. 느릴 필요가 있다.
언론 기사를 보니 도시계획위원회의 통과 조건이 케이블카 진입로 확장, 주차장 확보, 환경파괴 최소화, 건축물 안전성 확보와 디자인 자문, 매년 영업이익 최소 3% 이상 공공기여 등이라 한다.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들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사안이지 않는가? 황령산타워 건설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짜 조건’의 출발은 과도해 보이는 용량 조정에서 비롯되어야 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황령산타워와 연계된 부산도시계획의 혁신’만을 얘기하려 한다. 에펠탑에 비견하려면 결과만이 아닌 에펠탑 때문에 파리시가 선택했던 총체적 경관관리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파리는 평지 도시이니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부산만의 방식이 고민되고 선택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았다. 눈 아래 펼쳐진 풍경들이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밤이 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시선을 낮추어 모아 보니 작은 산들이 섬처럼 둥둥 떠 다니고 해안가 대부분은 마천루들과 이름 모를 아파트들로 점령당해 있다.
자연이 내려준 혈(穴)들은 토막나 있고 어떤 곳은 바다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현대 도시계획의 핵심 원리는 ‘집중과 선택’임에도 황령산에서 내려다본 부산경관의 멋짐과 자연스러움은 급격히 오그라들어 있다. 21세기에 전 세계인이 지켜가자고 다짐 중인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는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이 난개발의 도시를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을까. 그 계기가 황령산타워가 될 수 있을까. 에펠탑이 그리했듯 황령산타워 건설의 진짜 조건, 즉 부산 난개발을 순화시키고 혁신적인 도시계획과 관리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들이 크게 펼쳐져 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강동진 경성대 교수 | 국제 : 2023-02-23
광풍 못 막는 환경부, 설악산에 봄꽃 대신 케이블카가 피었다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에 사실상 동의했다. 다른 지자체들이 추진하던
케이블카 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지리산 개발에는 무려 지자체 네 곳이 뛰어들었다.
3월3일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며 도로에 누워 있다.ⓒ연합뉴스
네이버 지도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검색하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하나는 1970년에 만들어진 ‘설악 케이블카(권금성 케이블카)’다. 설악산 소공원에서부터 높이 700m 봉우리인 권금성까지 1.1㎞를 잇는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직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사위 일가가 사업 허가를 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다. 이름 뒤에 ‘(2026년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 2월27일 강원도 양양군의 오색 케이블카 사업계획이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사실상 통과하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1982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온 강원도는 환경부의 결정을 반기며 당장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가 2025년 말에는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구간은 오색 약수마을에서부터 해발 1600m 봉우리인 끝청 인근까지, 약 3.3㎞다. 8인승 케이블카 53대가 시간당 825명을 실어 나른다는 계획이다.
환경보호단체를 비롯해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환경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최후의 수문장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저버렸다고 본다. 오색 케이블카 설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선거공약이었다. 지난 2월10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반드시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적인 이유로 환경부의 결정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환경부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스스로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작은 201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부 소속 원주지방환경청(이하 원주청)은 양양군이 접수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오라고 요구했다. 보완할 대상은 5개 항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이 서식하는 공간에 대한 조사가 관건이었다. 이후 양양군이 보완서를 제출하자 2019년 9월, 원주청은 아예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원주청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생태원 등 전문 검토기관과 분야별 전문가는 사업 시행 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단편화, 보전 가치 높은 식생의 훼손, 백두대간 핵심구역의 과도한 지형 변화 등 환경영향을 우려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라고 밝혔다.
2015년부터 환경 단체는 백두대간이 훼손된다며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반대 활동을 해왔다. 사진은 2015년 케이블카 건립을 반대하며 대청봉까지 이어진 오체투지 시위.ⓒ시사IN 이명익
원주청의 결정에 반발한 양양군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부동의 처분 취소심판’을 청구했다. 결국 양양군은 다시 재보완서를 제출할 기회를 얻었다. 원주청은 보완해야 할 항목을 10개로 늘렸다. 이번에는 산양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 GPS 분석을 해오라는 자세한 요구사항도 따라붙었다. 살아 있는 산양에게 위치추적기를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양양군은 환경부가 사업을 무산시키려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비난하며 2차 보완서를 제출했다.
불과 3년6개월 만인 지난 2월27일, 원주청은 양양군이 낸 2차 보완서에 ‘조건부 협의’를 하겠다고 돌연 방침을 바꿨다. 산양에 대한 조사는 위치추적기 대신 무인 센서 카메라로 대체하기로 했다. 부동의 결정을 내릴 당시 근거가 됐던 ‘전문 검토기관’의 의견이 이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제공한 전문 검토기관 다섯 곳의 검토의견서를 살펴보면 이 중 한국환경연구원은 양양군의 2차 보완서에 대해서도 “사업자 측이 제시한 보전대책으로는 자연환경의 최우선 보전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원주청은 “대부분의 전문기관은 ‘사업 시행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영향을 저감하기 위해 좀 더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부동의’ 대신 ‘조건부 협의’ 결정을 내렸다. 환경단체들이 환경부의 정치적인 고려를 의심하는 이유다.
일주일 뒤인 3월6일 환경부가 8년을 끌어온 제주 제2공항 건설 사업에 ‘조건부 협의’ 결정을 내리자 이런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본격적인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가기 앞서 입지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이지만, 환경부가 이미 한 번 반려한 사업인 데다 전문기관 6곳 중 5곳이 우려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오색 케이블카 사업과 비슷했다.
‘설악산이 됐으니 우리도?’
오색 케이블카 사업 통과는 단지 환경부에 대한 의구심만 남긴 게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추진 중인 케이블카 사업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3월3일 국립공원의 날을 맞아 광주광역시 무등산국립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은 이 모든 후폭풍이 한데 얽힌 자리였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국립공원을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환경부는 이러한 국립공원의 혜택을 온 국민과 미래세대가 온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기념식장 밖에서는 환경보호단체와 시민들이 “국립공원 파괴하는 한화진 장관 사퇴하라”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하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에는 무등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국립공원무등산지키기시민연대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동안 무등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주장은 번번이 무산돼 왔으나 이번 오색 케이블카 사업 통과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 대변인실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무등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검토한 바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3월8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환경 공법을 이용하여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다면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는데도 ‘설악산이 됐으니 우리도?’라는 식의 막연한 기대감으로 찔러보는 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
실제 다음 케이블카 사업 추진이 유력한 곳 중 하나는 지리산이다.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경남 산청군·함양군까지 지리산에 걸쳐 있는 각 지자체가 각자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25일 남원시의회는 시가 제출한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1㎞ 구간)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990년부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온 전남 구례군은 환경부에서 네 차례 퇴짜를 맞았음에도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3월2일 도청 기자간담회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정부에 건의하고 산청군과 함양군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명산에 꽃샘추위보다 혹독한 개발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시사인 나경희 기자
“진해 군항제 벚나무는 일본 벚나무 일색”
(사)왕벚프로젝트2050 회원들 전수조사 결과
여좌천 99.7%, 경화역 91.1%, 중원서로 100%
(사)왕벚프로젝트2050(회장 신준환)은 23일 “올해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추어 전수조사를 한 결과, 진해 여좌천 및 경화역 일대, 중원서로 등지에 있는 벚나무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다”고 밝혔다.
진해 여좌천 일대에 식재된 벚나무류 380그루 중 379그루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99.7%를 차지했다. 경화역 일대는 381그루 중 347그루로 91.1%였고 중원서로는 120그루 모두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였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가 아닌 벚나무는 ‘잔털벚나무’ ‘처진올벚나무’ ‘올벚나무’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최근에 심어진 어린 나무들이었고 일본 원산 처진올벚나무가 제일 많았다.
현진오 사무총장(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대표)은 23일 “21일과 22일 단체 회원 등 조사원 17명이 참가해 진해의 대표적 벚꽃명소에 있는 벚나무류 전체를 조사했다”며 “진해에서 우리나라 특산 벚나무인 ‘왕벚나무’는 한그루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준환 회장은 “진해의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1960년대 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해 진해시 전역에 심겨진 벚나무 대부분이 일본 원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진해 군항제는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는 행사”라며 “이런 취지의 행사를 일본 원산 벚나무 개화기에 맞춰서 열어야 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벚나무는 30년 이상 자라면 줄기가 썩어들어가 쓰러지는 경우가 많다.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일본산 벚나무를 우리나라 특산 왕벚나무로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회장은 “일본 원산의 나무를 심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나 국립현충원, 항일 유적지, 군사시설 등에는 곤란하다”며 “연차적으로 군산 경주 구례 부산 영암 제주 하동 등 벚꽃명소와 현충원, 왕릉, 유적지 등에 심겨진 벚나무 수종을 조사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원산 ‘왕벚나무’와 일본 원산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 부모종이 서로 다른 별개의 종으로 밝혀졌다.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에 자생하는 한국특산종으로 올벚나무를 모계, 산벚나무 또는 벚나무를 부계로 한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일본특산종으로 올벚나무를 모계, 왜벚나무를 부계로 한다.
왕벚나무는 한라산 자생 개체들마다 각각 고유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단일 유전자로 구성된 복제품인 소메이요시노벚나무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력이 높고 신품종 개발 가능성도 높다.
내일신문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부산 달맞이고개 갔던 ‘붉은여우’, 고향 돌아오다 ‘객사’
지난해 5월 고향 소백산에서 약 400㎞ 떨어진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고개에 나타났던 여우가 폐사한 채 발견됐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은 2021년 3월 소백산 국립공원연구원 중부보전센터에서 태어나 같은 해 12월 소백산에 방사됐던 여우 ‘SKM-2121’이 지난 7일 강원 정선군에서 사체로 발견됐다고 24일 밝혔다. 이 멸종위기 포유류 여우는 소백산에서 태어난 수컷이다.
소백산에 방사됐던 멸종위기 붉은여우 SKM-2121. 국립공원공단 제공
SKM-2121은 방사된 뒤 강원 영월군과 충북 충주시 등에서 포착된 바 있으며 지난해 5월에는 부산 달맞이고개에 나타났다. 당시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은 여우의 안전을 위해 포획을 시도하는 동시에 무인센서카메라 10대를 현장에 설치하고, 여우명예보호원 3명을 위촉해 이 여우를 보호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 여우에게 부착해 놓은 위치발신기의 배터리가 소진되면서 위치 정보 확인이 어려워졌다. 여우는 낮에는 나무더미, 굴속에서 머물다가 야간에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후 국립공원공단이 여우가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추적한 결과 지난 7일 달맞이고개에서 직선거리로 약 323㎞ 떨어진 정선군에서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여우기 소백산에서 방사된 뒤 야생에서 지낸 기간은 약 460일쯤이다.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붉은여우 희망이(왼쪽)와 동이. 서울시설공단 제공.
여우의 사인은 폐부종 등 호흡기 계통 문제로 확인됐다. 공단은 발견 지점 주변의 올무 등 위협요인을 조사하고, 폐사체를 부검한 결과 농약 중독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폐사한 여우 ‘SKM-2121’의 이동 경로. 국립공원공단 제공.
공단은 폐사체가 발견된 지점은 소백산국립공원으로부터 약 25㎞ 떨어진 곳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폐사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체 발견 당시 체중은 9.4㎏으로 방사 당시 체중 7㎏보다 2.4㎏이 늘어난 상태였다,
여우는 기존 서식지에서 벗어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습성이 있으며 산지·농촌·도심 등 다양한 곳에서 서식할 수 있다. 과거 한반도에는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전역에 여우가 살고 있었지만 1960년대 군사정권이 벌인 ‘쥐잡기 운동’과 털을 노린 밀렵, 서식지 파괴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해 야생에서는 1980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현재 야생에 서식하는 여우 70여마리는 환경부가 2012년부터 실시한 복원사업을 통해 방사된 개체와 이들이 야생에서 번식하면서 늘어난 개체들이다. 방사된 개체들은 중국에서 들여오거나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증식시킨 개체들이다./경향
정당 현수막 공해, 이건 아니죠
머리도 비우고 운동 부족도 때울 겸 자주 걷는 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근래 들어 걷다 보면 영혼이 더 어지러워진다. 여기저기 시야를 가로막는 현수막들. 정당들의 자랑이나 상호비방이 대부분이라 점심 가는 길에 입맛까지 쓰게 한다. 기분 탓일까, 왜 이렇게 갑자기 현수막이 많이 보일까. 알고 보니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11일부터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었다. 개정법은 ‘정당법’에 따른 ‘통상적인 정당 활동 범위’의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고·허가·금지 등 제한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정당 현수막으로 시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보행자나 운전자의 시각을 가리는 것은 물론 소상공인의 가게 간판을 가려 명백한 영업방해임에도 제한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특혜가 있나. 공공장소에 현수막 하나 걸려면 얼마나 문턱이 높은지 행사 한번 치러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정당 현수막은 아무 제약 없이 걸 수 있다니, 언제 이런 법이 만들어진 걸까.
2020년부터 꾸준히 여러 국회의원이 개정을 요청해 마침내 2022년 5월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 본회의에 상정되고 전자투표를 거쳐 가결됐다. 여야 없이 재석 의원 227명 중 20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하니 근래에 보기 드문 초당적 일치단결의 모습이다. 의원들이 이런 난립상을 예상하고 법안을 발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마당에 마땅히 후보를 알릴 길도 없고, 돈도 없는 소수당 후보에겐 거의 유일한 홍보수단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결과는 거리의 흉물이요, 또 하나의 쓰레기산을 낳았다.
이런 일도 있다. 2030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방문기간에는 정당 현수막을 걸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BIE 실사기간(4월2~7일) 현수막을 걸지 않고, 걸었던 것들도 4월1일까지는 철거하기로 했다. 시내에 어지러운 현수막이 실사단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말하자면 시민들의 피로를 다 알고 있었다는 건데,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분들의 그 속셈에 할 말이 없어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국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 등에서 발생한 현수막의 길이는 2739㎞로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을 왕복할 거리다. 벽보와 공보를 합하면 서울어린이대공원의 144배 면적의 종이가 쓰였다. 재활용률이 20~30%에 불과하고, 사용 후 즉시 소각장으로 향해 탄소배출에 한몫하는 일에 정부 예산이 쓰였다.
정부가 지난 21일 2030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14.5%에서 11.4%로 하향조정하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조치를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수막 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부, 기업, 개인이 탄소를 뿜어내는 요인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줄일 생각은커녕 모래알처럼 흘려보내면서 어째서 감축목표 줄이는 데 그토록 노력하는지 묻고 싶다. 부자들은 작은돈에 민감하다. 작은돈 모아서 큰돈 되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소소한 기후행동이 먼저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파크골프장이 뭐길래?
강으로 간 골프장, 파크골프장
지난겨울, 골프장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작은 산골마을에 떠돌았다. 골프장 입지로 거론되는 곳은 다름 아닌 하천이었다. 정확히는 하천 가운데 오랜 세월 퇴적물이 쌓여 생긴 작은 섬, 하중도였다. 섬 가장자리에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솔밭'이라 불리는 그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뜬소문이 아니었다. 관할 군청에 확인해보니 18홀 파크골프장 건설을 위한 실시설계용역이 진행 중이며 군의회에서도 지난해 2월 토지매입비용 등 총사업비 16억 원을 통과시켰다. 담당 공무원은 실시설계용역이 끝나는 대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파크골프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급기야 작은 산골마을 하천까지 넘보고 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파크골프장이 뭐길래
파크골프는 파크(Park)와 골프(Golf)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공원에서 치는 골프다. 일본에서 시작된 파크골프는 국내에는 2004년 서울 한강에 9홀 파크골프장이 조성되면서 시작됐다. 잔디 위에서 공을 치는 방식이 골프와 비슷하지만 공과 홀컵 크기가 커서 골프보다 치기 쉽고 비용 또한 저렴해 노년층에게 인기가 높다.
파크골프장은 최소 9홀이 1코스로 조성되는데 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최소 8250㎡의 면적이 필요하다. 축구장(7140㎡)보다 더 큰 부지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18홀, 27홀, 36홀 등으로 규모를 키워 추진되고 있다.
사단법인 파크골프장협회에 따르면 2023년 2월 현재 전국에 357개의 파크골프장이 운영 중이다. 총 홀수는 6361홀으로 최소 면적으로 잡아도 대략 580만㎡를 넘는다. 지자체마다 어르신들의 체육활동 기여 및 사회체육 활성화, 여가활동과 건강증진 도모, 파크골프 대회 개최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내세우며 앞다투어 추진한 결과다.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전국 곳곳에서 파크골프장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골프장 홀 수 확대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입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에 따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 강원도 홍천군이 18홀짜리 파크골프장을 추진하고 있는 부지 양 옆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반복되는 침수 피해
반복되는 홍수 피해 문제가 대표적이다. 강원도 횡성군 진천 둔치에 조성된 파크골프장은 지난해 7월 진천 상류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잔디가 쓸려나가고 시설물 곳곳이 훼손되는 등 수해를 입었다. 횡성군이 3억5000여만 원을 들여 조성한 파크골프장이었다. 횡성군은 수해 복구비로 사업비에 육박하는 약 3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군의회에 올렸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공공의 공간을 특정 동호인에게 넘겨준 것도 모자라 군 예산으로 수해복구까지 해야 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횡성군의회는 "동호인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조속히 복구사업을 추진하여 줄 것을 당부"하면서도 "(파크골프장) 조성 및 수해 복구 등 사후관리에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추가 조성사업에 대하여는 대체부지에 대한 검토와 특정인이 아닌 군민 모두가 다 함께 수변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활용방안을 마련하여 군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군민이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파크골프장 추가 조성사업비 전액을 삭감했다.
탄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벌어졌다. 지난해 성남시는 탄천 둔치에 조성한 파크골프장을 두 배로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성남환경연합은 "성남시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성남시는 기존에 조성된 수내파크골프장(9홀) 포함 탄천 둔치 시설 복구 비용으로 현재까지 약 37억 정도 들어갔고, 앞으로 50억 정도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탄천 둔치는 홍수기에 매년 물에 잠기는 곳이다. 탄천 둔치는 파크골프장 공사를 추진하기에 알맞은 장소가 아니다. 골프장 부지가 자연습지였다면 홍수로 인한 시설복구 예산이 이 정도로 과도하게 낭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탄천 둔치의 파크골프장 확장 사업은 성남시가 포기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하천 둔치에 조성된 상당수 파크골프장은 침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까지 점령
환경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하천구역 내에서 사업계획면적이 1만㎡ 이상일 경우,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집중호우 대비 시설 피해 방지대책, 하천 생태계 영향 등을 포함한 입지 타당성과 환경영향을 미리 조사하고 예측하여 환경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에 따르면 파크골프장 사업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은 건은 2014년부터 2023년 2월 20일까지 총 71건에 불과했다. 이중 부동의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사업 대상지에 멸종위기종이 발견된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주 남구 파크골프장도 그중 하나다. 환경청은 사업부지가 국가하천 친수공간으로 수달 등 다양한 법정보호종이 서식하고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지역에 포함되었다고 확인했음에도 "사업 시행으로 인해 수질 및 수생태계와 법정보호종 등 주요 생물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정 저감방안을 수립해 시행할 것"을 주문하며 사업에 동의했다.
개발제한구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남시는 미사대교 인근 한강둔치이자 개발제한구역 안에 36홀 파크골프장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하남시 관계자는 하천점용허가 등의 행정적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연내 준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창원시는 더 노골적이다. 지난해 12월 창원시는 '파크골프장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파크골프장을 2022년 213홀에서 2026년 500홀로 확대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이를 위해 기존 공원 및 하천, 개발제한구역 내 가용지를 중심으로 부지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대책 마련 시급
무분별한 파크골프장 조성으로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나 대책 마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 8월 낙동강 구간에 조성된 파크골프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74개의 파크골프장 중 34개 시설이 불법 운영 중이었다. 이에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국가하천 기본계획에 따라 설치가 근본적으로 불가한 보전지구와 복원지구, 취수시설 상류 4㎞ 이내에 조성된 10개 시설은 폐쇄 조치하고 나머지 24개 시설은 기준에 따라 양성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는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낙동강 환경청의 규제로 낙동강변 파크 골프장 등 체육시설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도 차원의 대책을 요구했고 이에 경남도지사는 "도 차원에서 적극 허용하도록 환경청과 협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전국의 4대강 유역 전체에 대해 하천 정비구역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환경청에 주문하기도 했다.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홍수터이자 야생동물의 서식처, 생태통로인 하천둔치를 강에 돌려줘야 한다고 외쳐왔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생물다양성 붕괴가 일어나는 분야 중 가장 심각한 곳이 담수 생태계다. 사람이 하천 가까이 살고 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파크골프장 등 하천의 친수공간이 주는 편의도 적지 않지만 최소한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현재 하천기본계획이라는 큰 틀에서 하천공간에 대한 이용을 계획하고 있는데 엄격한 보호구역을 만들면서 시민 이용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크골프장이 강을 삼키기 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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