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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3.10.2~31 탐욕스러운 일자리와 극우화 되는 윤석열 정권

by 이성근 2023. 10. 31.

검사독재에 굴하지 않는 정신조국 일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10.02.

다시 굳어지는 분단체제 경향 : 2023.10.03

희망은 무엇을 하는가 경향 : 2023.10.03

팬덤정치에 기생하는 언론민주주의 흔든다 한겨레 : 2023.10.03

서방언론은 외면한 북-러 밀착의 의미들 한겨레 : 2023.10.03

힘에 의한 평화’, 그 한심한 구호 한겨레 : 2023.10.04.

()공공정책에 몸서리치는 이유 한겨레 : 2023.10.05.

이재명 '구사일생' 후폭풍, 어떤 경우든 '사생결단' 프레시안 2023.10.06

이재명 구속 기각의 나비효과, 김건희·대장동 '쌍특검'이 기다린다 프레시안 2023.10.07.

정치가 언론을 혐오할 때 시사인 2023.10.07.

이재명표 민주당은 민주정당인가 한겨레 2023-10-08

상속세는 죄가 없다 한겨레 2023-10-08

윤석열 정부, 왜 점점 극우화되나 한겨레 2023-10-08

수박의 정치학 경향 : 2023.10.9

브렉시트와 영국의 가족 해체 경향 : 2023.10.10

전 정권과 싸우는아집이 망쳐놓은 내년 예산안 한겨레 : 2023.10.10

탐욕스러운 일자리 경향 : 2023.10.10.

군면제 환호성과 말라가는 병역자원 아시아경제 : 2023.10.10.

정치인과 나르시시즘 경향 : 2023.10.10.

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주간경향 2023-10-16

 

IMF 세계경제 전망과 리스크 경향 : 2023.10.11

무엇이 국민 편익일까 한겨레 : 2023.10.11

이란이 하마스 지지" 대통령의 위태로운 이분법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11.

우리의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한겨레 : 2023.10.12.

불나방 공천이 정권 쇠락신호탄 쐈다 한겨레 : 2023.10.12

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주간경향 15482023.10.16.

과연 정권 심판 선거였을까? 경향 : 2023.10.12.

선택은 국민이 한다 경향 : 2023.10.12.

TV에서 자막 개표 방송조차 볼 수 없었던 이유 노컷뉴스 : 2023.10.12.

혐오와 분열 상징하는 '트럼프 현상', 미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2023.10.12.

윤 대통령 권력, 쇠퇴하는 징후들 오마이뉴스 23.10.13

위대한 배우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 한겨레 23.10.13

이스라엘 비극의 교훈 한겨레 23.10.15

연구개발과 진보 정치 경향 23.10.15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경향 23.10.15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깡패한겨레 23.10.16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 경향 23.10.16

지도자의 품격 경향 23.10.16

극우로 달려간 윤 대통령의 배신자 콤플렉스한겨레 23.10.17

체면이 사라진 사회 경향 23.10.17

이륙의 역사와 진보의 조건 경향 23.10.17

부사, 문득 한겨레 23.10.19

오웰의 자유와 윤석열의 자유 시민언론 민들레 23.10.19

평화의 적' 이스라엘 극우정권, 한국은 어떤가 시민언론 민들레 23.10.19

판결의 무게 경향 : 2023.10.19.

 

설명 보도의 깃발 2023.10.21

법원의 판결과 언론 공공성 경향 : 2023.10.22.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경향 : 2023.10.22.

팔레스타인을 위하여 경향 : 2023.10.22.

규탄만으로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경향 : 2023.10.23.

기후안보, 총칼보다 강한 위협에 대처하라 경향 : 2023.10.23

이선균이 김승희 가릴 순 없다 경향 : 2023.10.23.

양대 정당에 포획된 정치, 우리 고통 해결할 수 있나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23.

국힘의 미래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24

민생이 진심이면, 실패한 감주성부터 폐기를 한겨레 : 2023.10.24.

사회참여형 지식인부터 권력의 들러리까지 한겨레 : 2023.10.24.

국가주의의 빈곤 경향 : 2023.10.26.

민생의 공허함 경향 : 2023.10.26.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한 나라들 한겨레 : 2023.10.26.

가자 학살이후의 세계 한겨레 : 2023.10.26.

제국이 쇠할 때 나오는 신호들 경향 : 2023.10.26.

'인덱싱 이론'과 검--언 복합체 뉴스타파 김용진

학원과 은행만 잘사는 나라 한국 : 2023.10.27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 경향 : 2023.10.27.

착시와 직시 경향 : 2023.10.27.

인간을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부르기 시작할 때 경향 : 2023.10.27.

'용산 정부'의 실체, 이런걸 우린 예전에 '레임덕'이라 부르기로 했다 프레시안 : 2023.10.28.

역시나로 귀결되는 윤 대통령 첫 셀프 반성한겨레 : 2023.10.29

독일에서 벌어진 한일 역사 전쟁 한겨레 : 2023.10.29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향 : 2023.10.30.

전쟁 저널리즘과 일부 한국 언론의 기레기추태 미디어오늘 2023.10.30

제가 빨갱이예요?”라는 그 말 한겨레 2023.10.30

차분한 변화? 턱도 없다! 경향 : 2023.10.30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경향 : 2023.10.31.

뉴스는 빨라야 할까 경향 : 2023.10.31.

백성들의 처지를 이해할 능력 한겨레 : 2023.10.31.

이것은 왜 정치적 수사인가 한겨레 : 2023.10.31.

광포만이 노자산에게 경남도민 : 2023.10.31.

인간의 부끄러움을 포기한 경제관료들 시민언론 민들레: 2023.10.31.

 

 

검사독재에 굴하지 않는 정신조국 일가

정경심 교수가 추석 전전날 가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전혀 그랬을 것 같진 않지만, 4년전 그 이전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추석을 보냈기를 빈다. 가석방은 전혀 윤석열 정권의 은총이 아니다. 형기의 1/3을 복역한 수형자라면 누구나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흉악범이거나 수형 태도가 지극히 불량하지 않다면 적격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개전의 정도 중요한 고려 항목의 하나겠다.

만연한 검은옷 입은 자들의 무소불위 행태

정경심 교수의 범죄혐의는 일반적으로 입시비리, 법적으로는 업무방해라고 한다. 어떤 정도의 입시비리와 업무방해가 중범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 교수의 혐의는 고작, 입시에 전혀 쓰인 바가 없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한 지방대학 총장의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것이다.

이제 좀 솔직해 지자. 그런 작은 혐의로 정 교수는 4년형(!)을 받았다. 그렇다고 정 교수의 수형생활이 불량했다는 아무런 증언도 없는데(그러니 보고도 없었을 터인데), 심사위는 번번히 정 교수의 가석방을 퇴짜 놓았다. 그리고 이제 형기의 3/4을 넘겨 살고 겨우 풀려난 것이다. 이걸 마냥 기뻐해야 할 일인가. 정 교수는 지난 3년여 동안 검은옷을 입은 잔인한 자들에게 법에 의한 공개적 고문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 교수는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인내를 다한 투쟁으로 그 고문을 이겨내고 끝내 자신의 권리를 찾은 것이다.

나는 사실 지난해 3월인가 4,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경심 교수를 사면복권해야 마땅하다고 내 sns를 통해 청원한 바 있다. 당시의 심경을 솔직히 밝히자면, 죄 없이 벌 받는 정 교수의 처지가 부당하다거나 안타깝게 여겨서도 아니고, 조국 장관이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앞장섰다가 벌어진 일이니 문 대통령이 임기 내에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정 교수를 사면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마치 자신이 절대자라도 된 양 한껏 너그러움을 과시하면서, 어떤 사람도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감옥에 넣다 뺐다, 능소능대, 무소불위, 위세 떠는 광경을 차마 목격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걱정도 팔자라고, 내가 안 해도 될 걱정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경심 교수를 사면하지도, 가석방을 허락하지도 않았으며 대신 김태우라는 자신의 심복은 대법원 확정판결 3개월 만에 사면·복권하고 다시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태우 그 사람의 범죄행위로 인해 다시 치르는 선거에 말이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불법은 아닐 것이다. 불법은 아니되 바닥으로 추락한 도덕심과 인성이 권력과 결합할 때 얼마든지 법을 박살낼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정경심 전 동양대학교 교수가 27일 오전 가석방으로 풀려나 휠체어를 타고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3.9.27. 연합뉴스

독립운동가는 한동훈 아닌 조국 일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런 불법이 아닌 불법, 급기야 무법천지를 만들고 있는 인물은 한동훈 법무장관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런 인물을 두고 독립운동가라고 칭송한 적이 있다. “(검사 노릇을) 거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굉장히 유능한 검사라 아마 검찰 인사가 정상화되면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과연 그는 검찰 인사가 정상화되기도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자마자 중요한 자리에 갔다.

그러나 내가 알기론, 독립운동가는 훨씬 훌륭한 분들이었다. 죄 없는 사람 잡아 가두고, 협박하고, 고문하고, 자신의 죄는 덮고, 불리할 때는 피하고 변명하는 그런 추한 인성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일제 고등계 순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독립운동가는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들이 좋은 자리에서 호의호식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항상 감시당했으며 때로는 인질로 잡혀 고문당하기도 했고, 독립운동가인 남편이나 아비 대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홍범도 장군의 가족들이 그러했다고 나는 배웠다. 지금 정경심 교수 가족에게 닥친 환난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조국 장관 일가야말로 검사 독재국가에서 온갖 환난을 겪으며 독립을 꿈꾸는 독립운동가 가족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른바 조국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때 정경심 교수는 어리둥절했을 것이고 당황스럽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표적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사태를 온몸으로 직접 겪으며 남편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뜻하지 않은 변을 당했을 때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감정 아니겠는가.

그러나 조국 가족은 이 환난을 너무도 잘 견뎌내고 있다. 최근 조 교수와 조민 씨의 활동을 보면, 이 가족은 단지 견뎌내고 있을 뿐 아니라 이겨내고 있다. 조 교수의 디케의 눈물은 법의 지배와 사회 정의에 대한 그의 성찰이 한층 더 깊어진 것을 느끼게 하며, 딸 조민 씨가 비슷한 시기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를 출간하면서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아니라 조민 그 자체로 살아가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실로 굴하지 않는 독립정신의 발로 아닌가. 이런 가족에게 가만히 있지 않으면 계속 괴롭히겠다는 협박은 얼마나 가소롭고 치졸한 짓인가!

안타깝게도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면 많은 독립지사의 가족들이 핍박과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몰락, 심지어 변절한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그것을 친일파들은 위안거리 혹은 변명거리 혹은 놀림거리로 삼았다.

그러나 검찰 독재국가에서의 조국 가족은 다르다. 정경심 교수가 병약한 몸에도 검사들의 핍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와 함께 가족들 간의 강한 유대와 상호 격려 덕분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러한 격려를 통해 이 가족은 자신들에게 닥친 엄혹한 시련이 한 개별 가족을 덮친 불운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대신해 겪어야 할 도전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여기에서 우리가 무너지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죽는다는 결의까지 다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찌 이 가족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꽤 많은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가해자들 뿐 아니다. 자신이 중립이라고 믿는 사람들, 아는 게 많다고 뻐기는 사람들, 바른 양심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결과적으로 양심이 없는 가해자들 편을 든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 말이다. 이들은 조국 가족의 유죄를 오래전부터 이미 확정지은 채 아빠와 딸이 무슨 행동과 말만 하면 아직 반성이 모자란다” “자성하는 마음이 겨우 하루짜리였나” “지금 벌써 당당해질 때인가라며 이죽거리기 일쑤다. 딸 조민 씨까지 기소한 만행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런 해괴한 상황을 보며 문득 3년여 전 한 지인(교수)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내가 2020524표창원을 좋아하는 이유란 페이스북 글에서 표 의원이 이른바 조국 사태때문에 정계 은퇴를 결심했다면서 의혹은 커지는데 우리 편이라고 감싸는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 ‘말빨로 조 전 장관을 지켜주는 도구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의원 역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을 내가 몹시 실망스럽다고 비판한 데 대한 지인의 반응이었다.

이사장님, 표창원 의원은 경찰 출신일 뿐만 아니라 서구 유학파 교수 출신이란 점에서 법적 다툼 이전에 도덕성 차원에서 양심의 갈등을 느꼈다는 말에 저는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청문회 때 당사자들이 인정한 것만 봐도 입시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준을 많이 벗어났다는 게 대다수 교수들의 생각입니다. 도덕 기준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기준과 자신이 속한 윤리 공동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마치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서로 대화가 어려워집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덕 기준이 무당파층이나 일부 민주당 지지자와도 맞지 않았기에 민주당 지지도가 하락한 것 아닌가요? 그는 조국을 지지한 사람을 비난한 적이 없어요. 다만 자기 양심에 맞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말씀하시면저도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가족에 대한 과도한 수사에 분노하고 조 교수가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믿지만 그게 도덕적 흠결마저 정당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표 의원도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어요. 조 교수가 머리 숙여 수 차례 사과했다는 건 도덕적 흠결을 인정한 것 아닌가요? 일반인은 그 정도면 장관에 문제없다고 볼 수 있지만 다수 교수들은 교수로서 윤리성도 문제이니 법무장관은 안 된다는 게 압도적 다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교수가 꼭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라 제 주위 진보 일변도 교수들도 조 장관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건 아마도 교수 특유의 윤리 기준 때문인 것 같아요. ()”

3년여 친검무죄 반검도륙본질은 검찰 독재

나는 이른바 조국사태 초기에, 몇 사람이나 검찰의 기획수사를 간파했는지, 그중에서 몇 사람이나 지레 조국 일가의 완벽한 무죄 혹은 유죄를 예단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마도 표창원 씨나 내게 문자를 보낸 교수 같은 이들은 검찰이 저렇게 털어대고 언론이 저렇게 떠들어대니 조금이라도 책임져야 할 범죄사실이, 최소한 도덕적으로나마 비판받아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에 속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도 나는 알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조국은 유죄다~”라는 소리 외의 말은 잘 들리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년여 동안 상황은 명백해졌다. 그것은 검찰 쿠데타였고 그 집중 타격 목표는 조국이었다. 그 작전은 태산명동으로 시작됐으되 튀어나온 서일필은 고작 표창장 한 장, 인턴 증명서 한 장이었다. 그런데도 위조할 필요도 없는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엄마는 4년 징역을 살게 됐고, 딸은 의사면허를 빼앗겼다. 고작 몇 시간을 더 일했다고 적은 인턴 보고서가 허위라는 혐의로 국회의원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고, 아들은 범죄 용의자가 됐다. 남편은 딸이 받은 장학금 6백만 원이 뇌물이란 이유로 교수직을 잃었다. 지난 3년여간 검찰과 언론과 (대법원 포함) 법원과 교육계와 의료계가 똘똘 뭉쳐 저지른 것이 이런 만행인것이다. 죄 아닌 것을 죄로 만들고, 작은 혐의를 큰 범죄로 둔갑시키고 확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등장한 정권은 자기들 편의 죄를 철저히 덮었다.

처음 잘 몰랐을 때 무턱대고 조국 가족 비판에 뛰어들었다면 믿음이 부족했거나,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거나, 시기 질투에 사로잡혔거나 서운해서 그런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런다면 편협하거나. 비겁하거나, 졸렬한 것이다. 나는 그때 메시지를 주고받은 지인과 지금까지 연락두절인 채 살고 있지만 언제라도 그가 다시 연락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편협과 비겁과 졸렬을 벗어 던지고 말이다./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시민언론 민들레 2023.10.02

다시 굳어지는 분단체제

명절에 만난 친지들은 불안감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의 미래가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나 하는 걱정이 만연해 있다. ··일은 결속했지만 북한은 고립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미국·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련의 사회적 붕괴 현상에 대해서도 무대책이다. 정부·정치권·시민사회에서 모두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는 논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큰 흐름을 짚어내야 할 시간이다. 진보개혁 세력에서도 체제적 인식과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가다듬고 거대 담론들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격변이 진행되는 시기에 일국·양국·민족 차원의 담론은 유효성이 줄었다. 한편 분단체제론의 인식론적 유용성은 더 강화되는 것 같다.

분단체제론의 문제의식은 세계체제-남북한체제-국가체제를 연결해 통합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한반도체제라고도 이름 붙일 수 있다고 본다. ·중관계의 악화, 남북관계의 악화, 한국 및 북한의 국내적 퇴행이 겹치면서 한반도 분단체제는 다시 강화되고 있다. 분단체제가 강화되면 한국은 더 위험해지고 미래는 더 불안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자유주의 정치질서를 표방하고 소통의 정치를 복원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정권 출범 초기에 약간 소통을 시도하다가 정치적·정책적 무능이 노출되었다. 이후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고 반대세력을 적대화하는 포퓰리즘 경향을 내보이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퇴행은 분단체제의 재공고화로 규정될 수 있다.

이남주 교수에 의하면, 윤석열 정부는 한··일 대 북··러의 대결이라는 신냉전적 인식에 기반해 분단체제를 재공고화하는 퇴행적 기획을 시도한다. 여기에는 첫째, 보수의 비전 부재, 둘째, 집권 초의 정치적 위기, 셋째, 미국의 요구 등 요인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는 분단체제의 재공고화가 국내 기득권 세력의 안정화를 위한 기획의 결과이고, 북한의 전략 변화도 분단체제의 재공고화에 호응했다고 본다(‘창작과비평’ 201). 필자는 분단세력의 기획 행위보다는 2010년대 이래의 체제적·구조적 요인에 더 주목하고 싶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에 포함된 하위 시스템이다. 그래서 분단체제의 국면 변화에 미치는 세계체제 요인이 중요하다. 세계체제의 변동과 분단체제의 강도가 서로 연동돼 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체제 아래에서 세계 10위권에 접근하는 경제규모로 성장했다. 이 시기에 중국·러시아가 세계자본주의에 합류했고, 글로벌 시장이 확장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분단체제 유동화 국면에 비적 탄력적으로 대응했다. 국내적으로는 진보·보수의 교착 속에서 경제성장을 지속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글로벌화가 승리하는 한편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점차 약화됐다. 미국의 성장률·자본수익률이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은 성장률 침체와 불평등 확대에 직면했다. 중국은 과잉 생산능력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을 수출하고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도 아시아로의 회귀를 내세우며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미국과 중국의 내부 모순이 확대되고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한편,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계기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으며 남북 교류가 중단됐다. 2013~2017년 사이에 네 차례의 북핵 실험이 이어졌다. 20166월에는 개성공단 폐쇄, 7월에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중국은 미군 무기 배치에 토지를 제공한 한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했다.

한국경제 지표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저성장, 불평등, 저출생·고령화 추세가 뚜렷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악화는 정치적 적대의 격화, 사회적 붕괴 현상과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총체적 악화가 분단체제 재강화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시도된 북·미 협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는 세계체제와 남북한 내부의 분단체제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졌다. 시장은 좁아지고 정치·경제·사회적 붕괴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상황을 개선할 방도는 없을까. 분단·분열과 파괴를 막는 활로는, 세계-남북한-국내 각 차원에서 중도·중간의 영역을 꾸준히 마련하는 길뿐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 유일한 희망의 길이다./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 2023.10.03

 

희망은 무엇을 하는가

정치인과 지식인 모두가 기후위기를 심각하다고 부르짖지만, 뒤돌아서는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소비한다. 로이 스크랜턴은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문명과 인류를 이어갈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혁신이 이어지고 경제가 성장해도 미래는 암울하다. 아니, 더 암울한데,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는 바로 이런 자본주의적 혁신과 성장에서 오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전망도 과장되어 있다. 우리는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하는데, 그 길은 죽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애착이 가는 것, 사랑하는 존재, 확실한 미래, 자아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구원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한다. 죽음 직전에 주변을 정리하듯, 우리는 지금 살아서 버려야 한다. 인류세 시대에 제대로 죽는 법을 배우는 게, 우리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대안도 희망도 없는 남은 시간

위 인용문은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안규남 옮김, 시프, 2023)라는 책에 과학철학자 홍성욱이 쓴 추천사이다. 나는 이 글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했는데, 독후감이 다양했다. 젊은이들은 주로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았고, 중년은 웰다잉 혹은 공수래공수거로 생각하는 듯했다.

 

죽음을 배우는 일은 자신과의 투쟁, 쉽지 않은 과정이다. 먼저 할 일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다같은 사고방식을 폐기해야 한다. ‘는 행위의 결과물일 뿐이다. 자의식은 자신을 상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저 지구상의 수억만개 구성원 중 하나다. ‘자아자체가 문명이 만들어낸 지식이지만, 그 자아와 초자아는 문명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끝이 없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 사이의 삶의 격차와 지구 파괴는 필연적이다. 최근 몇년간 우리는 그 최정점을 겪고 있고 매일 갱신 중이다.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의 저자 로이 스크랜턴은 대안이 없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내 생각에 죽음을 배우는 일이란, 소비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서 최소한으로 살며 동시에 서서히 소멸하는 삶인 것 같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는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희망은 없다. 종말론이 아니라 지구는 종말하고 있다. 종말은 곳곳에서 산불로, 홍수로, 전염병으로, ‘자살 당함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5년에 쓰였다. 저자가 코로나19를 경험했다면 책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책에 의하면,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그린란드에서 남극대륙까지 존재하는 빙하와 빙상이 녹으면 2040년에는 해수면이 2.4m 정도 상승하게 된다. 이미 진행 중인 서남극 대륙의 빙상 붕괴가 완전히 끝나면 해수면은 6m 올라간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할 때 35000만명, 2도 올라가면 41000만명의 도시 인구가 물 부족 상태에 내몰린다.

 

이처럼 이 책에는 실감나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인 각종 통계들이 빼곡하다. 지구는 되돌릴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반복되는 비상사태’, 즉 일상을 외면하는 극한의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지인은 수년째 여름만 되면 수해를 겪고 있다. 홍수가 아니라 지반이 무너지는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집 밖의 에어컨 실외기가 흙더미에 묻혔다. ‘순살 아파트옆집이 무너지니 친구 집도 지반이 침하된 것이다. 공유지가 아니라고 관할 지자체는 보상해주지 않았다. 기후위기세()를 개인이 내는 것이다.

 

이미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단어, 인류세(Anthropocene)는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시기, 즉 지구 자체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환경 파괴 행위로 지질학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를 뜻한다. 저자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 자본주의의 위기(실업),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모두 탄소를 연료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같은 원인의 다른 모습들이라고 본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자동차를 몰고 비행기를 타고 난방기와 에어컨을 사용하고 각종 기기를 충전하는 안락한 소비를 반복한다. 지속 불가능한 삶을 살면서 동시에 그 사실을 망각한다. 망각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49,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벌어진 기후변화민중행진에 30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행사가 진행되었던 약 일주일 동안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확인하고 트위터를 하고 사진을 찍는 글로벌 정보·소통 생태계에 접속하느라 사용한 전기량은 전 세계 전기 사용 총량의 약 10%라고 (추정)한다.

 

기후 관련법을 만들고 1회용품 안 쓰기, 분리수거, 재활용 등 일상의 실천들과 인식 변화를 위한 운동들도 문제 해결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마치 제주도 해안가에 끊임없이 몰려드는 스티로폼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발전주의 콤플렉스 때문에 사태와 상황 인식이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너무 거대하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이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중단, 현재와 같은 우리 일상생활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든 국가든 이에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대국들은 기후 문제보다 자국의 국력, 인구 증가에 더 관심이 있다.

 

어떻게 살아갈 / 죽어갈 것인가

문명의 진보 자체가 문제인데, 이는 안보 딜레마의 원리와 같다. 안보 딜레마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행동이 주변국의 불안을 일으켜 다른 국가도 군사력 증가로 대응함으로써 군사력의 상호 경쟁으로 인한 인류 전체의 안보 불안을 말한다. 한 번 진보한 기술은 후퇴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개발한 오펜하이머나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처럼,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핵무기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일본의 만행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이후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욕망하게 됐고 또 보유하게 됐다.

 

물리학자 박권에 의하면, 2023년 현재 핵무기의 개수는 대략 러시아 6000, 미국 5000, 중국 400, 프랑스 290, 영국 220, 파키스탄 170, 인도 160, 이스라엘 90, 북한 40(추정)이다. 실상 북한의 개수를 보면,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북핵 문제라는 말이 무색하다. 나의 이런 생각은 위험한 것일까. 핵 자체가 나쁜가, 강대국만 소유하는 것이 나쁜가.

 

홀로코스트 같은 비합리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인간 행동이나 기후위기를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문명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 기술은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온다. 문제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 지능 연구를 멈추자고 호소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도 말을 안 듣는다. 개인 간, 국가 간 불평등 때문이다. 지구가 동시 멸망하면 좋겠지만 피해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이 피스 보트를 타고 크루즈 여행이라는 착한 소비를 할 동안 아니 바로 그런 여행 때문에, 바다는 죽어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유일한 해결은 자본주의의 중단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다른 삶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라 아메드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이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행복이라는 관념이 없다면, 통치는 불가능할 것이다. 행복은 염원이지 가질 수 있는 이 아니다. 건강, 안전, , 좋은 관계 인간은 이런 불가능한 희망을 평생 염원()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실을 각성하지 않으면 대안 없는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 행복을 희망에 대입시키면,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이 있는가가 아니다. “희망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희망이라는 관념이 지구를 방치하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희망 역시 바라는 마음이지 실현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희망이라는 언설이 부정의한 현실을 작동시킨다. 희망이 없다고 확실히 인식하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죽음 배우기 같은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죽는 방법이 곧 사는 방법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경향 : 2023.10.03

 

 

팬덤정치에 기생하는 언론민주주의 흔든다

시지프의 신화가 떠올랐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쩌면 이건 형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 있는 시민을 자임하는 그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 분노와 체념, 다짐, 우울감이 뒤섞인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괴로워했다. 어떤 날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잠시 미디어를 멀리하는 것이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는 단호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감시의 눈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시지프가 스쳐 지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부조리한 형벌. 그가 말한 그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의 정치 활동에 장애가 되는 대상을 뜻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언론일 수도 있고 반대 진영의 정치 리더 심지어는 같은 진영의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때는 의기투합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미묘하게 엇갈리며 팽팽한 평행선을 좁히지 못했다. 비슷한 가치지향을 갖고 있지만 팬덤정치의 열혈 지지자로 고군분투 중인 그와 나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분명할 때가 많았다.

 

한때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낭만화했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와 같은 모바일 개인 미디어가 일상화되면서 시민들의 자기표현과 주장이 쉬워졌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더 성숙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더 좋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소외된 목소리가 반영될 길이 열렸다는 환호도 많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성공 사례도 전세계적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같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흐름의 정점에 있는, 이른바 팬덤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팬덤정치는 혐오와 증오를 기반으로 편을 가르는 당파적인 정치인과, 그런 정파성에 안일하게 기생하는 레거시 언론, 그리고 시민이기보다 지지자로 활동할 뿐인 대중이 합작해서 만든 기형물이다. ‘조회수페이지뷰’, ‘좋아요를 노리는 상업적인 이해득실과 알고리즘이라는 무책임한 테크놀로지도 한몫하고 있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나 퇴행이 아니다. 디지털미디어 환경에 연결돼 활동하는 모두가 팬덤정치를 조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부터 내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팬덤정치가 기승을 부릴 만한 토양이 더욱 기름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팬덤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해묵은 이념논쟁이나 문자폭탄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갈등을 치유할 수 없다. 시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인간관계를 증오와 혐오로 재단하는 데 편승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오만과 독선의 정치는 좋은 사회를 이루기는커녕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팬덤정치의 이익을 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언론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수 없다.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않는 언론은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트릴 뿐이다. 지지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거듭날 자신이 없는 대중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뒤흔드는 해악이 될 것이다.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정치, 정치공학적인 계산만을 확대재생산하는 언론, 폭력적인 방식일지라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효능감에만 집중하는 대중, 이 모두와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추석 밥상에서 확인한 민심의 경고였다.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겨레 : 2023.10.03

 

 

서방언론은 외면한 북-러 밀착의 의미들

최근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상회담은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 자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한반도 외교에 균형을 잡겠다는 푸틴은 집권 초기에 이미 평양을 방문했으며, 4년 전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사실 두 정상의 회담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회담에 대한 구미권 언론의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거래설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북한이 러시아와 같은 구경의 포탄을 대량 생산하고 있고, 현재 러시아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여태까지 북한이 무기 수출로 외화를 벌어온 점 등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거래의 개연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한데 개연성 있는 일을 마치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간주하는 태도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언론 보도의 테두리를 한참 벗어났다. 그리고 이 정상회담에 관해 서방 언론들은 다음과 같은 그 핵심적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단순 무기거래라면 과연 두 나라 정상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거래인 만큼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내고 과시하기보다는 꼭꼭 숨어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정상회담에서 실제 무기거래가 언급되었는지 판단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만남의 의미로는 세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겠다.

 

가장 확실한 것은 남한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였다. ··일 사이 군사적 밀착의 강화가 북한에 도전으로 인식되었다면, 남한산 무기가 우회 수출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이미 투입됐을 가능성이나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개연성은 러시아에 현실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구체적 불만의 사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윤석열 정권이 한-미 동맹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것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문제에서 미국에 맹종하는 태도 등에 관해서는 북·러가 극도로 비판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무기거래나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의 북한 유출 같은 무수한 주장을 낳은 이번 회담은, 윤 정권의 외교 노선이 지금까지와 같은 식으로 지속될 경우 북·러가 공동 대응할 것이라는 예고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째는 일종의 가치동맹과시다. 가치동맹이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특히 한-미 관계를 일컬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데 북한과 러시아를 각각 통치하고 있는 보수적 당 관료와 보안기관 출신 관료집단 등도 나름대로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다. -미 사이에 공유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아마도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을 가진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전체적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큰 틀에서 시스템의 규칙에 합의하는여야 사이의 정기적 권력교체 정도일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일면 시스템의 반대자들에게도 일정한 발언권을 허용해주지만, 일차적으로 재산가의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등 재산을 가진 개인본위로 규정돼 있다.

 

반면 서방과 역사적으로 대립하거나 따라잡기시도를 반복해온 주변부적 제국인 러시아나, 세계 체제 핵심부와 대립해온 탈식민 국가 북한에 핵심적 가치는 국가의 주권, 즉 시스템 자체의 생존이다. 반대자들이 설 자리가 없거나(북한) 계속 줄어드는(러시아) 것은 물론이고, 재산가들도 국가 주권의 존속을 담보해준다는 관료집단의 지배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북·러가 공유하는 시스템의 실질적 작동 규칙이자 가치다. 러시아에 미국이란 자국의 제국적 영향권을 위협하는 좀 더 힘센 경쟁자인가 하면, 북한에 미국은 체제 존속에 대한 잠재적 위협 그 자체다. , 이유는 각각 약간씩 다르지만 둘 다 미국 글로벌 패권의 상대화와 자신들과 같은 비주류 행위자들에 더욱 넓은 운신의 폭을 허용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도래를 희망한다. 김정은이 푸틴의 성스러운 싸움에 본인도 같이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단순한 외교 수사라기보다는 이런 근본적 공통 지향의 반영이라고 봐야 한다.

 

세번째 의미는 특히 과도하게 높은 중국 의존성을 낮추려는 시도일 것이다. 국제 제재와 남북 교역 중단으로 북한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96.7%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절대적 종속에 가까운 상황이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 혈맹같은 정치적 수사들이 계속 오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일 뿐이고 실은 동상이몽이야말로 북-중 관계의 실질을 가장 정확히 가리키는 성어일 것이다. 자국의 생존이 최우선 순위인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해왔지만, 북핵이 초래할 수 있는 지역 안보질서의 균열 그리고 이를 계기로 심화할 수 있는 미국의 개입 등을 경계하는 중국은 사실 북핵을 애당초부터 반대해왔다. 2016~2017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들은 사실 미국과 함께 중국이 주도했고, 이로 인해 북한과 잠시 노골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지부진해 전쟁의 늪에 빠진 러시아로서도 전례 없는 중국 의존 심화는 여러모로 버겁기만 하다. 결국 두 나라 정상이 만난 것은, 사실 남한에 대한 메시지이자 중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고, ·러가 공유하는 가치나 지향과 관련한 대외적 선언이기도 했다.

물론, ·미가 대변하는 극단적 유형의 자본주의가 인류의 밝은 미래와 무관하듯이, ·러 양국 지배자들의 가치·지향은 보편적 인류 해방이나 기후 정의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데 북·러의 정치 구조가 당분간 바뀔 가능성이 없는 만큼, 북방의 이웃인 그들의 우려 사항을 적어도 무시하지 말고 외교노선을 결정할 때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대미 맹종, -미 동맹 맹신, 그리고 맹목적 대북 적대가 오늘의 북-러 밀착을 초래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만큼 윤석열 외교에 관한 비판적 성찰과 궤도 수정이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일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 2023.10.03

 

 

힘에 의한 평화’, 그 한심한 구호

말로 외치는 평화가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구축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힘에 의한 평화를 안보·국방정책의 핵심 가치로 설명해왔다. 최근 들어 표현의 강도와 빈도 모두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방미 이후 윤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와 대비하며 압도적이란 수식까지 붙인 거다.

올해 75주년 국군의 날 공식 구호는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였다. 작년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국군의 날 구호가 튼튼한 국방, 과학기술 강군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힘에 의한 평화에 대한 강조가 확연하다.

 

그런데, ‘힘에 의한 평화란 무엇인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 북한과 외교적 협상을 배제하는 것? 그 어떤 것이라 해도 한심한 구호이며 후진적인 정책 지향이다.

먼저, 힘에 의한 평화가 압도적 군사력 확보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것이라고 해보자. 이미 압도적인데 뭘 더 압도적으로 하겠다는 건지가 한심한 지점이다. 2012년 기준 대한민국 국방비는 북한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북한 국방비가 아닌 국내총생산을 넘어선 거다. 2022년 대한민국 국방비는 약 54조원, 북한의 국내총생산은 약 31조원, 1.5배 차이가 넘는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9위다. 이미 충분히, 아니 지나친 힘에 의한 평화.

 

대한민국 역대 어느 정부든 국방비를 지속해서 증가시켰다. 윤석열 정부가 말로만 외치는 평화’, ‘가짜 평화라고 비판하는 문재인 정부 시기 국방비 증가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높은 연평균 6.3%였다. 노무현 정부 시기는 8.3%였다. 한국전쟁 이후 그 어떤 정권이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적이 있었나?

 

문제는 대한민국이 마주하는 최우선 안보 과제인 북한과의 군사 갈등과 북핵 문제가, 우리가 더 많은 군대와 무기를 갖는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19931차 북핵 위기 이후 30여년 역사가 그 증거다. 한국 국방비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북한 핵개발도 고도화되었다. 북한 역시 미사일을 쏴대며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악순환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실패한 안보정책을 주술처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강한 군대와 강한 무기, 가질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모든 정책은 기회비용이다. 무기를 사는 만큼 다른 예산이 깎인다. 다른 사회에서는 군비와 복지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느냐, 그 적정 비율을 두고 이른바 총과 버터논쟁이 이루어지곤 했다. 군사주의와 전쟁 공포가 압도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물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가 이렇게 강조되면서 희생되는 정책과 예산은 무엇인지, 이미 힘이 넘치는 상황은 아닌지.

 

다음으로 힘에 의한 평화가 외교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짜평화’, ‘말로만 외치는 평화라 낙인찍는 정책이라면 이 또한 한심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첫 유엔 총회 연설에서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 등 해결에 외교적 지렛대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선언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과의 군사 긴장과 북핵 문제는 오래된 난제이다. ··러 연대가 강화되고, 국제사회가 북한에 관여할 수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교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정책이 강구되어야 마땅하다.

 

힘에 의한 평화가 외교 포기 선언이라면, 한국에 남은 일은 넘치는 무기를 더 사들이고, ··일 군사훈련을 대대적으로 치르는 일뿐이다. , 하나 더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이 즐기는 도심 군사행진을 서울에서 거창하게 개최하는 것이다. 북한 그리고 세계에 우리가 이렇게 힘이 세요하고 외치는 호전적이고 전체주의적 행사 말이다.

 

육군훈련소 훈련병들이 현재 쓰고 있는, 시멘트 바닥에 구멍만 뚫린 재래식 화장실 개선을 위한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배정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러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반면 10년 만에 개최된 올해 국군의 날 군사행진을 위해 소요된 예산은 100억원이 넘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힘에 의한 평화.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 2023.10.04.

 

 

()공공정책에 몸서리치는 이유

정책은 화석화한 법제가 아니다. 생명체와 같다. 태어나 자라고 바뀌며 소멸한다. 정책을 낳고 바뀌게 하는 요인은 무얼까? 인구, 기술, 기후 등 세상의 갖가지 변화다. 무엇보다 이들 변화가 빚어낸 숱한 문제, 특히 삶의 질곡이다.

국가와 사회, 정책결정자를 비롯한 각 구성원이 품은 가치 또한 정책의 형성과 변화를 강제하는 핵심 요인이다. 가끔 정책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세상에 그런 정책은 없다.

 

정책은 오히려 가치의 산물이다. 가치는 정책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예컨대 지하철이나 버스에 별도의 표시로 만들어진 노약자 좌석은 경로와 사회연대란 가치에 따른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정치권력은 무릇 정책을 통해 가치를 달성하고자 한다. 때로는 정책을 앞세워 특정 가치를 부정한다. 정책을 논할 때,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정책이 한 사회와 구성원들의 가치를 뒤바꾸거나 병들게 하는 데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행보는 정책과 가치의 관계를 새삼 숙의하게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정부 출범 뒤에도 국정과제에서 앞세운 데 이어 사회보장전략회의 등 여러 자리에서 지속해서 이를 복창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국정 청사진을 주창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정책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어 보았을까?

 

기실 복지국가의 역사는 가치 추구와 실행의 정책사다. 그렇다면, 윤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가 저마다 내세운 복지국가의 정책가치는 무엇일까? 필자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공공성을 핵심으로 꼽는다. 공공성은 사적인 것(the private)과 구분되는 공동체(common), 공동의(public), 널리 공개된 성질이라는 등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한마디로 공동의 선, 공익을 우선시하는 행동성향을 가리킨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이를 권리(사회권)로 보장한다는 복지국가의 이상은 저절로 이뤄질 수 없다. 그것은 모두 함께() 합의하고 달성해야 할 공()적인 어떤 가치”, 곧 공공성이 널리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그 실체다. 최희경 경북대 교수는 북유럽의 공공가치란 저서에서 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의 의료와 교육 정책 현장에서 이 공공성이 어떻게 복지국가의 정책 토대로 작용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복지국가 북유럽은 단순히 법과 정책을 잘 만들거나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특정 집단의 도덕성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의료재정의 85%, 교육재정의 97%를 정부가 부담하면서도, 개개인이 자율성을 갖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평등을 중시하는 보편주의와 관용의 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것, 사회가치와 개인가치가 견고하게 결합한 공공가치로 지탱된다는 게 그의 논지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비전과 정책을 공공가치의 시선으로 보노라면 모순적이고 병리적이다. ‘가치전도와 공공에 대한 적대감을 빈번히 마주한다. 복지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우면서 시장근본주의를 지향하고 시장화를 외치는 괴이함에다, 경제, 복지, 교통, 노동, 교육, 환경, 에너지, 미디어 등 우리 사회의 갖가지 분야에서 추진되는 정책에서는 실상 공공성의 역행을 확인할 뿐이다. ‘공공기관 혁신은 과도한 복리후생을 조정하고 공공과 민간의 협력 강화를 말하지만, 인력과 예산에서 공공성을 심대하게 낮추는 구조조정 조처에 가깝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선 민자발전 모델이 확산하면서 에너지 전환은커녕 이윤에 눈이 먼 사업자들에 의해 산과 농지, 바다가 파괴될 우려를 심화시킨다.

 

더는 민영화할 것도 없는 보건의료 영역에선 규제 개혁이란 이름으로 공공이 소유한 시민의 건강정보를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자본이 더 쉽게 활용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지속된다. 장기요양 영역에선 어떤가? 공립요양시설 확충보다는 요양시설 임차 허용을 통해 민간 보험사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주려는 시도가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뭇 영역에서 나타나는 친자본 반공공의 정책 움직임은 가뜩이나 협소한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공공가치의 공간을 더욱 압착한다. 그 빈자리엔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해는 사회화하는이익지상주의, 과거 성장지상주의 정책이 낳아 괴물처럼 부풀린 전도된 가치가 독가스처럼 파고들 것이다.

 

윤 정부의 반공공 정책을 두고서 몸서리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이런 흐름이 비단 윤 정부뿐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크다./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05.

 

 

이재명 '구사일생' 후폭풍, 어떤 경우든 '사생결단'

총선 상수는 '적대적 진영 정치'

한국 정치를 규정짓는 진영과 대결의 정치는 상수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 검찰의 영장청구,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은 숨 가쁘게 달려온 극단 정치의 분수령들이다.

 

이 대표 영장 기각 후 정치는 어떨까. '영장심사를 회피하기 위한 체포동의안 부결', '구속을 피하기 위한 단식' 등의 비판이 일거에 잦아들었다. 21일 체포동의안 가결로 인한 영장심사가 극적으로 이 대표를 구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증거인멸'을 주장하며 이 대표 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향후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된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이 대표와 새로 선출된 홍익표 원내대표 체제로 치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이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 아님에도 그동안의 정치적, 사법적 격랑의 차원에서 보면 구속영장 기각 전후의 정치 상황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민주당 친명 체제가 난공불락 요새의 진영을 갖추면서 비명계 의원들의 투항이 이어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능성이 적다. 이재명 체제가 비명계 의원들의 공천을 보장해 주면서 이들의 이탈을 막는 통합의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30여 명은 결코 소수세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당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영장이 발부됐으면 당이 새로운 체제로 반전을 모색했겠지만 그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비명계 의원들의 원심력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친명계가 비명계를 회유해 공천 시 지역구 경선까지 가도록 하면서 비명계를 고사시키는 전략이 나올 수도 있다. 비명계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비명계의 원심력이 커질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귀결될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둘째, 국민의힘의 태도 변화 여부다. 이 대표 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대표 비난과 공격에만 몰두한다면 집권세력으로서 위상을 확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장 기각 후 국민의힘에서는 '법원이 개딸(개혁의 딸)이라는 강성 지지층 때문에 영장을 기각했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다.

 

국민의힘이 의연하게 이 대표 사건을 검찰과 법원에 맡기고 민생에 당력을 집중하고 통합의 정치를 한다면 오히려 이 대표 영장 기각이 득이 될 수 있다. 만약 영장이 발부됐다면 민주당이 새로운 전열을 갖추게 되고 이는 국민의힘에 오히려 위협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당의 친명 체제가 자신들이 주장한 명분을 과도하게 내세우면서 이 대표를 민주투사, 항일투사 식으로 떠받든다면 이는 오히려 민주당에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표의 영장 기각은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지 이 대표의 혐의가 무죄라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적대적 정치와 진영 정치가 민주화 이후 거의 최고조에 이른 데에는 복합적 원인이 있겠으나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그 중심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의 경로의존성에 비추어볼 때 여러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까지 정치복원은 생각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 행태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여야 모두 사생결단의 태세로 총선에 임할 것이다.

 

각 영역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을 관리하는 본령을 벗어나 붕괴된 현재의 정치 상황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더욱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다. 총선에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고 여야 내부 상황과 이합집산 등의 중층적 변수가 있지만 여야는 극단 대치를 이어갈 태세다. 영장기각을 변곡점으로 정치를 복원시킬 실력도 능력이나 의사를 한국 정치에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표 영장 기각 이후 양대 정당이 보여준 퇴행적 모습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이 대표 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놓인 재판은 이 대표에게는 적잖은 부담요인이다. 이미 선거법 재판이 진행 중이고 6일에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관련 첫 공판이 열린다. 이번에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 재판도 남아있다. 문제는 이러한 재판들이 최종심까지 가려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온전할 수 있을까. 영장 기각 후에도 한국정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3.10.06

 

 

이재명 구속 기각의 나비효과, 김건희·대장동 '쌍특검'이 기다린다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돼" 한동훈 장관에 이 말을 돌려 주며

본인은 동의 안하겠지만, '이재명 구속판'을 크게 벌인 건 사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었다. 그는 현직 검사도 아니고 수사 책임자도 아니었지만, '도어스테핑'과 국회 발언 등을 통해 이재명 대표를 거의 중범죄자 수준으로 묘사해 왔다.

 

이 대표의 단식 때 한 장관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선례가 남게 되면 앞으로 잡범을 포함해 누구나 다 소환 통보를 받으면 단식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후에는 "이재명 의원은 잡범이 아니다""중대 범죄 혐의가 많은 중대범죄 혐의자"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가 징역 36년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구속영장 청구서를 언론사들은 대체 어떻게 입수했는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판을 키웠으니, 당연히 이재명 대표가 구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검찰은 범죄 혐의자 구속을 '골인'에 비유하며 수사를 해 왔으면서, 막상 구속 영장이 기각되니 "범죄수사를 위한 중간과정일 뿐"이며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한동훈 장관)"라고 했다. 징역 36,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를 받는 자의 구속 영장이 기각된 것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애초에 본 적이 거의 없다.

 

2년 수사했는데 아직까지도 '증거 인멸'을 우려하고 있을 정도면 검찰 수사에 구멍이 뚫렸거나 수사를 태만하게 한 걸 자백하는 꼴이다. 설사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고 치자. 언론 지면을 통해 수사 과정의 상세한 내용을 2년간 전국민에 생중계한 것은 사실상 검찰이다.

 

결과적으로 국회 체포동의안의 처리 과정과 구속영장 심사의 정치적 의미를 키워온 것은 검찰이고 한 장관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국민의힘은 영장 기각을 '야당 권력'의 책임으로, '판사'의 책임으로 돌린다. 부실 수사를 탓해야 정상 아닌가? 이재명의 부활이니, 민주당의 미래니 하는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검찰 입장에선 한 장관이나 이원석 검찰총장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파장이 클 수도 있다. 윤석열 정권의 총선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제 '쌍특검'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 검찰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특검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가진 '유능함'의 이미지가 무너졌다. 과거 한동훈 장관은 '50억 클럽 특검법'에 대해 "수사 대상인 이재명 대표가 입맛대로 수사할 검사를 고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이 입맛대로 수사 검사를 고르지도 않은 이재명 사건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재명 대표 범죄 혐의도 입증 못하는데 대장동 50억 클럽 범죄 혐의는 입증할 수 있을까?

 

한 장관은 지난 2월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냐고 여론조사를 하면 평균 50% 이상 '불공평하다'는 답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죄는 증거와 팩트로 정하는 것이지 여론조사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죄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하지 않지만, 검찰 수사는 여론의 힘을 업어야 잘 된다는 건 한 장관도 알 것이다. 그 신뢰에 금이 갔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양 극단 지지자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재명의 혐의에 반신반의했던 중도층은 무리한 수사 내지는, 최소한 부실수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민주당 주도로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타 있는 상태다. 오는 12월 국회에서 표결이 이뤄진다.

 

쌍특검의 한 축인 50억 클럽 특검(대장동 특검)에는 김만배의 누나가 윤석열 대통령 부친의 집을 사준 의혹 규명도 포함돼 있다. 물론 검찰이 그 내막을 밝혀주리란 기대는 접은지 오래다. 쌍특검의 또다른 한 축인 김건희 영부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지지부진하다. 검찰의 태도를 보면 마치 '어차피 특검할 건데'라는 듯한 모습마저 읽힌다. 이쯤에서 한동훈 장관의 속마음이 등장한 과거 채널A 기자와의 '녹취록'을 꺼내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게 뭐 여러 가지 야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척(김건희 수사)'도 못해놓고 '불공정 수사(이재명 영장 기각)'만 부각된 최악의 상황이다. 이제 김건희 영부인 수사는 '공정한 척'에 부합하는지, 한 장관에게 그의 발언을 돌려 줄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검사 70명 동원, 300번 이상 압수수색에도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자를 구속 못시키는 검찰에 대통령 일가와 관련된 중대한 의혹 수사를 맡기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쌍특검' 처리의 명분은 강화된다.

 

집권 여당 정국 운영의 두 축, 이념과 사정이 무너지고 있다

한가지 더, '윤석열 아바타'인 한동훈의 실패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타격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중원 전략'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이 '중원 공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집권 여당이 가진 '쌍전략'의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행태를 참고하면, 집권 여당의 총선 전략은 크게 이념 전략(홍범도 흉상 이전)과 한동훈 전략(검찰 사정정국)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 전략,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으로 상징될 수 있는데, 재미를 별로 못 보고 있다. 929KBS가 발표한 한국리서치 의뢰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 밖으로 옮기려는 데 대해 63.7%"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6.1%만이 "동의한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긍정평가는 34.6%인데, 홍범도 흉상 이전 동의는 26.1%, 부정평가는 58.7%였는데 홍범도 흉상 이전 부동의는 63.7%였다.

 

거칠게 보면 윤 대통령 지지층조차 일부가 홍범도 흉상 이전에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주목할 만한 수치이고, 이념 전략이 어떤 '위험 수위'를 넘어선 데 대한 '경고음'과도 같은 것이다. '마이너스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다.

 

두번째 전략은 대대적 사정 정국 조성이었다. 이 전략의 정점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이 있었다. 추석 밥상에 '이재명 구속'을 올리고, '무신 정권'의 영웅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띄우려는 시도는 첫 단추부터 떨어졌다. 한 장관의 체면이 구겨졌다.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은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법무부장관이 뭉개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플랜B가 없다. 유일한 플랜B는 중도 실용으로 가는 것이다. 야당과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야당으로부터 두들겨 맞으며 동정표를 얻는 길이 유일하게 집권 세력에 허락된 '프리미엄'인데, 이 정부는 그럴 생각 자체가 없다. 야당에겐 여당 복이 있다. 물론 이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10.07.

 

 

정치가 언론을 혐오할 때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 보도를 언급하며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 어리둥절했다. 우리나라가 취재, 보도 활동을 이유로 언론인을 사형시키는 나라였던가?

 

국제 비정부기구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의 자료를 보니 1992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취재 활동 때문에 죽임을 당한 언론인은 한 명도 없다. 2022년 한 해 취재 활동 때문에 수감된 언론인도 없다. 취재 활동으로 인해 언론인이 사망하거나 수감되는 국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언론인 39명이 취재 활동을 이유로 살해됐고, 지난해에만 19명이 수감됐다. 군부정권이 들어선 미얀마에서는 지난해에만 언론인 2명이 살해되고 42명이 수감된 것으로 확인된다.

 

해당 건과 관련해 언론은 취재 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상세히 살피고, 비판 받고,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날이 수위가 높아지는 정치인의 언론 혐오 발언은 괜찮은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언론을 공격하고 몰아붙임으로써 국민들이 나쁜 건 언론이고 정부는 결백하며 선하다고 여기길 바라겠지만, 그럴 리 없다. 행정·사법·입법·언론 등 주요 민주주의 기구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태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개별 기구에 관한 태도 간 차이가 크지 않다. 예를 들어 사법부를 매우 신뢰하는데 입법부는 매우 불신한다거나, 행정부는 매우 신뢰하지만 언론을 매우 불신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언론 신뢰는 정치 신뢰와 연관되어 있다

하니츠와 반 달렌(Hanitzsch & Van Dalen, 2017)신뢰의 넥서스(nexus·연계)’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 기구에 대한 신뢰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들은 세계 가치관 조사(1981~2014)’유럽 가치관 조사(1981~2008)’ 데이터의 시계열 분석을 통해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정치기구에 대한 신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 관계는 정치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국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남을 밝혔다. 시민들이 정치인과 언론인 모두를 동질적인 엘리트 집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양쪽 집단을 보는 태도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내가 속한 연구진이 2022년 한국 대선 당시 3차례에 걸쳐 수집한 패널 설문 데이터를 분석해 지난 5월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냉소가 높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에 대한 냉소가 높아졌으며, 정치에 관한 높은 냉소는 또다시 언론에 관한 높은 냉소로 이어져, 시간이 갈수록 언론과 정치 모두에 느끼는 냉소가 커지는 소위 하방형 나선 모델의 형태를 보였다.

 

정치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언론을 향한 정치인의 혐오 발언이 거칠어질수록 시민들의 언론 혐오도 더 심화할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는 다시 부메랑처럼 다른 민주주의 기구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같은 공격은 언론이 더 좋은 보도를 할 동기를 제공하는 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기현 대표는 같은 발언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싱크홀을 파는 사악한 짓이라고 했는데, 조금도 생산적이지 않은 정치인의 언론 혐오 발언 자체가 민주주의에 싱크홀을 파는 행위일 수 있다.(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시사인 2023.10.07.

 

 

이재명표 민주당은 민주정당인가

이런 수사는 처음 본다고들 한다. 한 사람을 겨냥한 15개월 초장기 수사는 유례가 없고, 투입된 검사의 규모(인풋) 대비 결과(아웃풋)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수부 출신 검찰 선배들이 후배들의 이재명 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구속영장은 기각을 당했다. 대장동 의혹의 본령인 ‘428억 뇌물 약정은 여태 기소를 못 했다. 이 대표를 지난 3월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며 신속한 수사를 다짐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배임 입증의 핵심인 고의는 공란인 채로 남아 있다. “(투입된) 검사가 대체 몇명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냐라든가 증거를 따라가는 수사 맞냐선배들의 험구가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당 운영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상식이다. 그래서 그 당 지도부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구속영장 기각 전후로 보여준 전근대적 행태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체포안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이 대표 체포안 가결 직후 단죄를 공언했다. ‘너희 중에 마녀가 있구나?!’ 색출 소동이 벌어졌다. 의심받는 혐의자는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무기명 비밀투표한 기표 용지를 공개하는 의원들이 나타났다. 사법부 압박용 기각 탄원서를 내라니 가결 의심표보다 많은 의원이 허겁지겁 써냈다. 마녀로 찍히지 않으려면 십자가 밟기라도 하라는 투다. 자유투표에 맡기지 않았냐,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법조항(국회법 제114조의2)이 있지 않냐는 항변은 댓바람에 무시됐다.

 

영장이 기각되자 지도부는 더 거칠어졌다. ‘가결파로 의심하는 의원들을 외상값을 갚지 않은 고름이라 호칭했다.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무자비한 응징을 다짐하는 이 뒷골목 언어에는 혐오와 비하의 적대 감정이 흘러넘친다. 경고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가 지나기 무섭게 새 원내대표가 말했다. “당원들이 직접 제소할 경우 윤리심판원에서 다룰 수 있다.” 외상값 청구는 이제 강성 팬덤인 개딸’(개혁의 딸)들 손에 맡겨졌다. 다음 수순은 내년 총선의 공천 배제일 것이다.

 

적전분열엄단 구호는 내부의 비민주를 합리화하는 손쉬운 핑계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축출을 내부 총질러퇴출로 포장했다. 민주당은 그때 국민의힘이 윤석열의 사당이 됐다고, 전체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럼 지금 이견불허의 억압과 일사불란의 폭력이 횡행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뭐라고 지칭해야 하나.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 극단주의를 배격하며 소통과 연대,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한다.” 민주당의 강령으로는 민주당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이 대표로 인해 생겨났다. 대선과 지난 6월 연거푸 약속한 대로 체포안 가결을 촉구했다면, 당당히 걸어나가 기각을 받아냈다면, ‘클라스가 다른 정치인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가결=해당, 부결=구당식의 저급한 갈라치기 소동이 일어났을 리도 없다. 물론 결과론이다. 검사 수십명이 자나 깨나 자신의 목을 겨눈다고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생존 본능에 몸을 맡길 법하다.

 

하지만, 일찍이 노무현이 말했다. “대의가 있고, 그다음에 가능성도 있다.”(‘성공과 좌절’) 이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그런 노 대통령님의 길을 따라 끝까지 가겠다고 자필로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사정변경 사유한 줄 없이 체포안 부결을 호소했다. 구속 모면이라는 눈앞의 이익과 정치인의 생명이라는 신뢰를 맞바꿨다. “국민항쟁을 앞세운 단식에 방탄딱지를 붙인 건 이 대표 자신이다. 당은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 노골적인 반민주적 행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동의라고 했다.

 

이 대표에게 결자해지의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공당이다. 대표는 오너가 아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민주당(또는 열린우리당)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사당화는 박근혜가 망한 길이다. ‘이견이적으로 갈라친 새누리당의 비박 처단공천이 2016년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모두가 안다. 강희철 I 논설위원 한겨레 2023-10-08

 

상속세는 죄가 없다

최근 상속세와 증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최고 한계세율이 50%인 현재의 세율 구조에서는 지배주주 일가 자녀들이 회사 주식을 상속 또는 증여받을 때 세 부담이 너무 커서 주가를 떨어뜨려서라도 세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또 세금 납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일감 몰아받기 등 각종 사익편취 행위가 불가피하며 이 때문에 회사 가치는 더욱 저평가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속증여세의 세율 인하를 제시하고 있다.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 원인 진단과 처방에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회사 가치가 저평가된 이유는 고율의 상속증여세율 때문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권을 유지해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해서 회사를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과욕만 포기한다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게 유일한 목적이 되어 저평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주가를 끌어올리면 세 부담이 높아져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팔지 않고 남은 주식의 가치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주가를 떨어뜨렸을 때의 주식 가치보다 얼마든지 더 높을 수 있다.

 

높은 세율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면 세율 인하도 그 처방이 될 수 없다. 올바른 처방은 회사를 계속해서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배주주 일가가 회사로부터 빼앗는 다양한 형태의 사적 이익을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줄이면 된다. 더 이상 특혜 채용으로 입사한 뒤 고속 승진을 할 수 없고, 특별히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도 없으며, 일감을 몰아받거나 사업 기회를 가로챌 수도 없다면 굳이 골치 아픈 경영에 직접 참여할 이유가 없다.

 

성공적인 거버넌스 개혁으로 실제 이런 상황에 이르면 지배주주 일가 자녀들은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게 될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나 회사가 자손만대 번창하길 바라던 창업자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족 승계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핏줄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사적 이익을 가져다줄 정도의 지배력이 없는 만큼 상속증여세를 부과할 때 주식 평가액을 20% 할증하는 제도도 사라진다.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권 유지 욕심을 내려놓으면 최근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병들게 했던 계열사 간 부당 합병, 쪼개기 상장, 자사주의 마법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들 문제도 그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욕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욕심만 내려놓으면 합병 비율을 지배주주 일가에게 유리하게 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유망 사업 투자재원을 모회사 유상증자가 아닌 쪼개기 상장으로 조달할 필요가 없으며, 인적 분할 후 자사주를 한쪽 회사에만 배정할 실익도 없다.

 

이처럼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이에 반해 상속증여세율 인하 처방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엄청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먼저, 세율 인하 폭이 너무 작으면 애초 논의의 발단이 된 회사 가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가를 떨어뜨리거나 세금 납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각종 사익편취 행위를 할 유인이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율을 대폭 낮출 수도 없다. 부의 불평등 문제와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는 특별히 부의 세습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만약 상속증여세 인하로 부의 세습이 계속된다면 불로소득계층의 양산, 기회 불평등 심화, 근로의욕의 저하 등을 초래해 우리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려고 죄 없는 상속세를 건드리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식 투자 환경만 더욱 열악하게 만들 수 있다.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권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라면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아직 채택되지 않은 개혁 방안들이 즐비하게 많다는 것이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한겨레 2023-10-08

 

 

윤석열 정부, 왜 점점 극우화되나

윤석열 정권이 갈수록 극우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됨에 따라, 그 정확한 실상과 배경, 의미를 이해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어떤 정권이 다음 세 요건에 해당하는 만큼 극우 정권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권력자들이 공적 발언에서 극우 논리를 전파한다. 둘째, 극우 성향 인물들이 국가기관의 요직을 차지한다. 셋째, 정부가 극우적 원리에 입각하여 정책을 펼친다. 이렇게 봤을 때 윤석열 정권은 극우인가? 상당한 정도로 그렇다.

 

담론의 측면에서 현 집권 세력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국가 세력’, ‘이적단체’, ‘종북주사파’, ‘공산주의자로 공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민주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합의를 흔드는 행위다. 권력의 측면에서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과거사정리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 공공기관장부터 통일부, 보훈부, 국방부, 문체부 등 중앙부처 장관까지 극우 성향 인물로 채워지고 있다. 정책에서도 공공시설물에 대한 사상 통제, 노동·시민단체와 비판적 언론에 대한 이념 공세, 극우단체들과 정권의 밀착 등 사태가 심각하다.

 

왜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극우화의 길을 가고 있는가? 지지층 결집용, 총선 전략, 대통령의 성향 등 나름대로 타당한 여러 해석이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한국 사회와 정치에서 극우의 힘이 점점 더 커져온 역사적 과정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현재의 정치 지형을 이해하는 일이다.

 

먼저 윤 정부의 극우 정치가 사소한 시대착오적 희극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수십년간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거대한 백래시의 한 장면임을 직시해야 한다. 독재 종식 후 정치사회적 변화들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크게 세차례 일어났다.

 

1차 백래시는 민주화 직후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여러 우익단체가 이때 창립됐고, 지금까지 조직망과 자원들을 확장시켜왔다. 더 강력한 2차 백래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였다. 냉전반공주의, 신자유주의, 기독교근본주의 세력의 조직화와 집단행동, 이념적 체계화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이 우파 운동들은 위기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사회 대개조의 기획과 행동주의로 무장해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이 호전적 우익 세력들이 권력의 중심에 들어왔다.

 

보수 정권은 국민의 75%가 지지한 촛불과 탄핵으로 막을 내렸지만, 곧이어 3차 백래시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더 적대적이고 격렬했으며, 우익 대중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정치집회로 결집했다. 반북, 반좌파, 반복지, 반노동, 반여성 등 다방면의 백래시가 연계됐다. 이처럼 1, 2, 3차 백래시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는 상당한 규모의 의식화되고 활동적인 극우 세력이 형성됐다. 그들이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의 무대에 올라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이 그의 정신세계를 반공·자유의 구호로 채우고,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전사들을 공직에 앉히게 된 데는 구조적 배경이 있다. 지금 한국 보수정치의 정신적, 인적 자원을 극우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보수는 극단주의를 억제할 만한 세련된 이념과 활동적 세력을 만들지 못했고, 그 결과 극우들은 그들의 자격과 능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무 큰 권력을 갖게 되었다.

 

보수 엘리트들은 이러한 극우 정치를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한다. 그 이유는 진보 세력이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무엇보다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과 함께, 또 그들과 경쟁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극우에 의탁해서라도 보수의 권력을 확실히 보장받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보수-극우 동맹을 유도하는 힘은 오늘날의 양극화된 적대적 정치다. 윤 정부의 양대 권력인 검찰과 극우는 타인을 처벌하고 공격하는 기술이 가장 발달한 집단이다. 검찰과 극우가 배출한 정치집단이 보수의 수호자로 나설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은 증오의 정치다. 탄핵 때 형성된 보수-진보 촛불시민 연합이 허망하게 해체된 것이 통탄스럽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극우화는 민주화 이후 커져온 백래시의 힘이 오늘날 양극화된 대결정치 속에서 더욱 강력해져서 국가의 심장부까지 들어오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현실에 맞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도덕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와 더불어,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서 이러한 극우의 성장을 허용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3-10-08

 

 

수박의 정치학

너 수박이지?”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 대선 때 대학생들은 군사정권의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참관인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참관인단으로 많은 부정선거를 목격한 나는 신민당을 방문해 부정선거를 여론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했다가 정당법·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로 보내졌다. 며칠 뒤 검찰청으로 불려가 만난 검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내게 수박 타령을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하는 내게 그는 다시 물었다. “, 빨갱이잖아?” 수박과 빨갱이가 무슨 관계인가? 당황해하는 내게 그가 설명해줬다. 전통적으로 검찰 등 공안기관들은 공안사범을 세 가지 과일로 분류해 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사과다. 사과는 겉은 빨갛지만 속은 희다는 점에서 좌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파인 사람이다. 두 번째는 토마토다. 겉도 속도 붉다는 점에서 일관된 좌파를 말한다. 세 번째가 수박이다. 수박은 겉은 푸른데 속은 붉다는 점에서 겉은 우파인 자유주의자같지만 사실은 좌파인 경우로 공안당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분단이 가져온 기이한 과일의 정치학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수박의 정치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당론이나 주류다수파와 의견을 달리하는 소수파와 당내 비판세력은 민주당에 위장취업해 있는 국민의힘의 프락치인 수박이란 비판이다. 이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수박과는 정반대로 위장한 보수라는 의미다. 이렇게 된 것은 빨간색이 좌파를 상징하는 역사와 달리 국민의힘의 뿌리인 한나라당이 차떼기·노무현 탄핵주도당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당 색깔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고, 민주당도 당 색깔을 푸른색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수박론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과 관련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급기야 의원들을 수박의 정도로 분류한 수박 당도 감별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 감별에서 당도 0으로 최고의 친명으로 평가된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은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며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군사독재가 저지른 ‘1971년의 만행을 민주당이 재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1971년 민주당의 전신인 신민당이 제출한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여당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의 찬성투표로 가결됐다. 격노한 박정희는 이를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당 중진 김성곤 의원 등을 중앙정보부로 끌고 가 콧수염을 뽑는 고문 등을 하고 정계에서 쫓아냈다. ‘정통 민주정당을 자부해온 민주당이 유신세력처럼 막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대표가 스스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와 상관없이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것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데, 무기명 비밀투표에 대한 가결 투표자를 색출해 도려내겠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극렬 친명세력의 팬덤조직인 개딸(개혁의 딸)들로 구성된 더불어민주당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비명계 의원들을 잡아다가 고문해 찬성투표를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도려내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 덕분에 민주당이 방탄 정당이란 비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고, 법원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 발부를 거부해 이 대표가 법원을 통해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비명의원들이야말로 고름이 아니라 당의 발전에 기여한 소금이 아닌가? 이 지면에 쓴 좌표찍기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2022329일자)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다양성과 관용인데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다양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로 나가고 있다.

 

당을 전체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는 개딸과 친명 강경파들이야말로 당을 망치고 국민의힘을 도와주는 국민의힘 프락치진짜 수박들아닌가? 아니 수박에 대한 개딸 식의 용법은 분단상황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온 역사적 개념인 수박에 대한 모독이다. 민주당의 진짜 문제는 겉으론 민주당이란 자유주의 우파정당, 정확히 말해 중도우파정당에 속해 있지만 속은 좌파내지 진짜 진보진정한 수박의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수박, 만만세다! 수박이여 영원하라!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 2023.10.9

 

 

브렉시트와 영국의 가족 해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가 시행된 지 3년이 흘렀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탈퇴 지지자들이 주장하던 영국 경제의 부활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 전쟁, 인플레이션 등 외부 악재로 영국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여론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브렉시트 탓으로 돌리며, 브렉시트와 후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 리그렛(regret)’을 합친 브레그렛(bregret)’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다수의 언론과 연구들은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손익 판단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발생한 사회 문제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버밍엄대 연구진이 사회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는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사회 문제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연구는 EU 국가 출신 가족들이 경험한 브렉시트발() 가족 해체, 이주, 이혼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영국이 EU에 속해 있던 시절,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영국으로 이주한 많은 EU 시민들이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한 EU 국적 영국 거주자는 2016EU 탈퇴 국민투표 시점 300만명에 달했다. 이들 중 다수는 영국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정착했다. EU가 품고 있던 하나의 유럽(Pan European)’이란 비전과 권역 내 자유이동이란 권리를 갖고 있던 EU시민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가족들은 이주냐 잔류냐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수는 영국을 떠나는 쪽을 택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주를 택한 가족들은 EU에 속해 있음으로 얻는 장점(이동의 자유, 일자리 기회, 사회안전망)뿐만 아니라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영국 내 반이민 정서, EU 정서에 충격을 받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부모가 같은 국적을 가진 가족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들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자녀들은 부모 국가에서 한 번도 거주해보지 않아 문화 차이와 언어 장벽에 부딪혔다. 부모도 오랜만에 찾은 고국에서 세대 차이와 달라진 환경에의 적응 등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 각자가 다른 국적을 가진 경우 일자리 문제와 자녀의 학업 등 선택지가 많아진 탓에 거주하기에 적합한 국가를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가족들은 일자리와 학업 등의 이유로 가족의 일부만 먼저 타국으로 이주하고, 나머지 가족은 영국에 잔류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영국인인 경우도 살펴보았다. 이들 그룹에선 영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영국인 남편과 EU 국가 출신 아내의 의견 차이, 이주 시 자녀 교육의 가치관 차이,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이주와 이혼을 결심한 가족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브렉시트와 같은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브렉시트에 대한 손익 분석도 유의미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브렉시트는 영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최근 영국의 EU 재가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총선 승리 시 브렉시트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노동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만큼 브렉시트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경향 : 2023.10.10

 

 

전 정권과 싸우는아집이 망쳐놓은 내년 예산안

윤석열 대통령은 6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치 권력이라면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건전재정,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829일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는 국무회의에서는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하고, 정치 보조금과 이권 카르텔 부분을 삭감하는 등 23조원의 지출 구조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재정 건전성을 무엇보다 우선하겠다는 결기를 읽을 수 있는 발언들이다.

 

재정적자를 줄이고, 국가부채 비율 상승을 억제한다는 이런 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대통령선거 때의 공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전히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실제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했나? 그렇다고 볼 근거는 사실 희박하다.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세계 주요국이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2021년 말 국가부채비율을 2019년과 비교하면 일본은 26.2%포인트, 캐나다 25.7%포인트, 미국 29.4%포인트, 영국 18.9%포인트, 프랑스 15.1%포인트 상승했다. 제조업 강국 독일이 상대적으로 낮은 10.74%포인트 올랐고, 우리나라는 9.2%포인트 올랐다. 윤 대통령은 이런 수치를 아직도 보고받지 못한 것일까?

 

세계 주요국이 국가부채 비율 급증을 감수하고 그렇게 대응한 이유가 있다. 국제결제은행(BIS)202012월 내놓은 경기침체와 사망률: 글로벌 관점이란 논문이 이를 잘 설명한다. 논문은 1961년부터 2018년까지 180개국의 패널 데이터를 이용해 경기침체와 사망률의 관계를 분석한 뒤,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하락하는 해에는 주로 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에서 사망률이 증가하며, 특히 어린이 사망률이 증가한다. 선진국에서는 사망률이 약간만 증가한다. ‘경기침체의 상처 효과는 몇년 동안 지속되며 경기침체가 깊어질수록 사망률이 더 크게 증가한다. 반면 호황기나 완만한 성장기는 사망률의 현저한 감소와 관련이 없다. 코로나19 경기침체의 영향을 무시할 경우 팬데믹으로 인한 최종 사망자 수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

 

이 논문이 나오기 전에도 경기침체의 상처 효과가 알려져 있었다. 경기 상황을 무시한 채, 무작정 재정 건전성만을 강조하는 논리를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눈과 귀를 꼭 막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는 윤석열 정부 경제팀 인사들의 귀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정부는 올해 경기가 상저 하고가 될 것이라 낙관하며 10개월을 보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세수결손이 심각하니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서라도 정부지출을 늘려야 하지 않느냐는 야당의 지적에, “경제성장률을 0.1~0.2%포인트 높이기 위해 재정을 쉽게, 방만하게 빚을 내면서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건전재정이란 아집에 갇혀 민생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발언이다. 8월 고용동향을 보면, 36시간 이상 취업자가 100만명 줄고,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1313천명이나 늘었는데 가볍게 보아 넘기기 어렵다. 8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4.8%나 줄었다. 경기 회복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9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1%로 낮춰 전망했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선 아집이 더 심해졌다. 명목성장률을 4.7%로 내다보면서 정부지출 증가율은 2.8%로 낮췄다. 초긴축이다. 정부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비롯한 전쟁이 오래가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경제 성장률이 작년(3.5%)보다 올해(3.0%), 올해보다 내년(2.9%)에 더 낮을 것이라고 10일 내다봤다. 정부는 우리나라 내년 성장률을 2.4%로 내다보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은 2.2%로 낮췄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2.0%로 낮추는 등 하향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민생은 제쳐두고 아직도 전 정권과 싸우는아집이 만들어낸 초긴축 예산, 이를 위한 마구잡이 예산 삭감이 우리 경제에 어떤 상처를 남길지 걱정이 크다. 정남구 I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10

 

 

탐욕스러운 일자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9(현지시간) 메사추세츠주 하버드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에 천착했다. 그는 남녀 임금격차 원인 중 하나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를 꼽는다. 남성들은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두둑한 보수를 받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택하고, 여성들은 가정과 육아라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 규범에 따라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여성의 경력은 타격을 받는다. 고학력 출발선이 같아도 10년 뒤엔 여성의 임금이 뒤처진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 같은 탐욕스러운 일자리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한국일 것이다. 생산성으로 직결되지 않는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가운데 가장 긴 장시간 노동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여기에 여성은 가사노동도 짊어진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더라도 남편은 집에서 54, 아내는 3시간7분을 일한다. 출산·육아 무게까지 더해지면 여성은 퇴사를 고민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력단절 여성은 140만명에 달한다.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 가운데 경단녀가 된 비율은 58.4%에 달했다.

 

연공서열제에서 승진 트랙을 벗어나면 관리자 되기는 요원해진다. 2021년 기준 한국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8.7%에 그쳐 OECD 평균(28%)을 한참 밑도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차이는 OECD 평균의 3(31.1%)에 가까운 남녀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OECD는 한국의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며 그렇게 된 요인의 75%는 동일 기업 내 유사한 숙련도를 갖추고도 업무·책임을 분배한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명시적 차별은 줄었대도 가부장적 문화와 구조적 차별이 끈질기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게 여성 노동자에겐 합리적 선택이 된다. 골딘 교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6(20221분기)에 불과하다. 경제가 너무 빨리 발전하면 전통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성차별 인식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여성의 경제 참여는 생산인구 감소 위기 대응에도 필요하다. 미래를 가로막는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은 바뀌어야만 한다. 골딘의 경종이 한국 사회를 더 놀라게 했으면 싶다. 최민영 논설위원 경향 : 2023.10.10.

 

 

군면제 환호성과 말라가는 병역자원

숙명의 한일전을 앞두고 유럽의 축구팬들은 한국을 응원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면 병역 면제로 통용되는 특례를 받기 때문이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에는 해외구단 소속 선수가 여럿 있었다. 독일 축구 전문매체 키커"한국이 결승에서 이기면 클럽도 이득을 본다"고 했다. 다른 나라 네티즌에게도 한국은 제1호 경계대상이었다. 한국이 첫 축구경기에서 쿠웨이트를 90으로 대파한 다음날 인도네시아의 한 축구팬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한국은 우승하면 병역 면제라서 절대 한국을 만나면 안 된다"고 썼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메달과 병역이라는 주제를 확실하게 도마 위에 올렸다. e스포츠와 바둑 등이 정식 종목이 되면서 군 면제의 기회가 늘어났다. 일부 종목은 목표가 메달이 아니라 군 면제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국을 제외한 야구 종목 참가국 대부분은 아마추어로 구성돼 있다. 대표팀 승선이 곧 병역 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름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외에서도 경기력과 군 면제를 운운할 정도니 말 다했다.

 

군 면제 기회와 그 대상자가 늘어나는 데 반해, 병역 자원은 씨가 말라가고 있다. 한국군은 저출산 앞에 무방비 상태다. 18개월 복무를 기준으로 36만여명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26만명의 입대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20세 이상 남자, 입대 가용인구는 2025년 기준 22만여명에 그친다. 인구절벽 가속화로 입대 가용인구는 2040년 현재의 절반 수준인 14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국방부는 예상하고 있다.

 

남자축구·남자야구 대표팀이 동아시아에서 금메달의 축포를 쏘아 올리던 때, 반대편 아시아 서쪽에서는 포탄과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축구 대표팀의 3연패, 야구 대표팀의 4연패는 분명 대단한 일이다. 함께 응원하고 함께 환호성을 질렀지만 동시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신냉전 구도하에서 지정학적 위기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에 이어 세계는 그다음에 터질 화약고가 어디일지 주목하고 있다. 대만해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 한반도일 수도 있다. 하마스의 기습 전술 성공을 평양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973년 도입된 예술·체육계 종사자의 군 면제 범위와 대상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국위선양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만들어진 각종 병역 특례제도는 더 파격적인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 ‘방탄소년단(BTS)이 그깟 공놀이 금메달보다 국위선양을 못 했느냐라는 식의 소모적인 주장은 그만 할 때가 됐다. BTS도 야구대표팀도 모두 보물이요 자랑이다. 다만 국위선양이 군 복무 면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국위선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인재는 앞으로 더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군 면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고된 소모전을 끝내기 위한 새로운 룰을 세울 때다 김동표 이슈2팀장 아시아경제 : 2023.10.10.

 

 

정치인과 나르시시즘

최근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논의가 두드러지게 많다. 물론 화려한 등장과 불명예스러운 퇴장에 이어 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트럼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결단한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푸틴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다. 브렉시트 모험을 단행했던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리비아의 카다피,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튀르키예의 에르도안도 이와 관련해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경험적 연구도 일반인과 비교해 정치인에게는 특히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기에 실증적인 연구를 떠나서도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정서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를 추구하는 자는 권력을 좇는다. 권력을 이상적인 또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든지, 아니면 권력이 주는 우월감을 즐기기 위해서 추구하든지 간에 그렇다<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적했다. 자기도취적인 우월감이 정치의 근거를 제기하는 동기의 하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기애(自己愛)로 번역되는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로부터 유래한다. 미소년 나르시스는 많은 애절한 구애를 물리치고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서 입맞춤하려다 그것이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고 슬픔에 빠져 자살했다. 바로 그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였다는 내용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르시시즘은 주로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조명되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더불어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분석에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접목한 허버트 마르쿠제와 에리히 프롬에 이어 1970년대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1932~1994)<나르시시즘의 문화>(1979)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서 나르시시즘을 분석했다.

 

나르시시즘은 심리적·사회적·문화적 관점에 따라 각각 방점이 조금씩 다르게 찍혀있지만, 자신을 관찰하는 주위의 사람보다 자신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지나친 자기애나 자기도취를 뜻한다. 따라서 자긍심과 자신감의 결손도 문제지만 이와 반대로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속한 집단생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극우 득세 정치적 나르시스와 연관

이와 관련해서 개발된 나르시시즘 성격 목록(NPI)도 있는데 정상인지, 임상의 낮은 단계에 와 있는지, 아니면 자아도취의 경계에 서 있는지를 측정하는 목록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이와 관련한 자가진단을 해보는 테스트를 담은 사이트도 많이 나돈다. 이 목록이나 테스트에 등장하는 모든 문항은 결국 과도한 자기애 때문에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결손, 공감력의 부족, 허영심과 공허함,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와 같은 병리적 현상을 추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재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끝없는 성공, 권력, 존경,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환상에 대한 강한 집착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다른 명망 있는 인물들만이 이를 인정할 수 있고, 이들만이 자신의 교류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열광적이고 과도한 지지의 요구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고 이러한 기대는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생각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이들과 일체감을 갖는 감정 이입의 결핍 다른 사람에 대한 빈번한 질투와 시기와 함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질투하고 시기한다는 믿음 거만하고 건방진 행동양식을 미국 심리학협회(APA)는 자아도취적인 인격장애의 판단 근거로 삼고 있다.

 

이 같은 성향이 있는 사람 대부분이 반드시 병적이지는 않지만, 자기애가 지나치면 자신과 사회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정치와 경제분야의 이른바 지도급 인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흔한 현상이란 경험적 연구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발표됐다. 정치인들의 권력 추구와 지배욕이 충족되었을 때는 이러한 자아도취적인 성격장애가 오히려 성공의 열쇠처럼 보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사라질 때는 자신들이 흡사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여기고 자학적인 행동도 보여준다.

 

자기도취적인 정치인들은 언제나 그들이 설 무대와 공적인 행사를 열심히 찾고 사회적 관계망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들은 정치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말과 행동도 불사하며,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항상 믿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치적인 경쟁자들과 싸운다. 특히 동지나 아니면 적으로 나누어 보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중간지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열성 팬으로 불리는 지지세력의 열광적인 목소리만 듣지 비판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지금 독일에서 급격한 상승세를 타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자들에게 이런 나르시시즘 경향이 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큰 전환기를 맞는 정치와 경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를 요구하는 정서와 특히 외국인 이주자와 난민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지구촌 여러 곳에서 보이는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현상은 이 같은 정치적 나르시시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치적 나르시시즘 치유는 불가능

그러면 정치 또는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의 한국적 모습은 과연 어떤가. 이를 나름대로 보여주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 관한 여러 여론조사의 결과다. 여론조사 기관 사이에도 들쑥날쑥한 차이도 있고, 또 지역과 나이, 이념적 성향에 따른 여론의 흐름은 그런 조사가 없이도 대충 예견할 수도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정운영의 신뢰도를 묻는 문항 가운데 하나는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나름대로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로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보다는 오히려 그의 결단력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가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며 경험과 능력도 부족하기에 그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도취적인 인격장애의 여러 표징을 생각하면 한국적 정치와 나르시시즘의 관계를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지지자들이 결단력이 있다는 평가를, 반대자들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며 능력도 부족한데도 자신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정치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문화적 차이에 따라 나라마다 정치인의 나르시시즘적 경향은 종종 달리 나타난다. 가령 약간의 희극적 요소까지 가미된 트럼프, 베를루스코니, 카다피의 나르시시즘과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는 듯한 푸틴의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는 다르다. 윤 대통령의 나르시시즘에는 그의 성장 과정과 오랜 검사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과 동지의 분명한 구별과 무딘 감정이입이 특별히 드러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10.10.

 

 

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지난 8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한 남성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사상자를 낸 뒤 백화점 내의 행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칼부림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량돌진으로 5명이 다치고, 그중 1명이 사망했으며 9명이 칼부림으로 피해를 입었다. 721일에는 서울 신림역에서 한 남성이 칼부림을 일으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밖에도 여러 칼부림 미수 사건이 발생했고, 또한 수백 건의 칼부림 예고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다. 817일 신림동 한 공원에서는 점심시간 직전에 한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고 살인해 충격을 주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세계적으로 안전하던 한국이 흉흉해졌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보며 많은 사람이 한국사회가 어딘가 잘못됐고, 앞날도 걱정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병리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커다란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었다. 물론 범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포함해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사회적 배경 중 하나는 불평등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불평등이 부르는 사회적 병리현상들

실제로 불평등은 사람들의 마음 건강을 해치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영국의 역학자인 윌킨슨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와 피켓 요크대학교 교수는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에서 불평등한 사회에서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가 기대수명이 낮고 10대 출산율과 영아사망률과 정신질환, 약물사용과 비만인구, 살인율이 높고 사람들의 신뢰와 아동의 교육성취도와 행복도는 낮다. 다른 요인들이나 시간적 변화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선진국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소득불평등이 여러 건강과 사회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의 최근 저작인 <불평등 트라우마(The Inner Level)>에서 불평등이 사람들과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만드는지에 관해 상세한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윌킨슨과 피켓은 불평등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이면에 사람들의 지위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여러 분야의 연구결과를 검토하며 불평등이 심각하면 소득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강화되고 이것이 사회불안과 스트레스로 나타나 사회적 접촉과 공동체 그리고 공감이 약화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회평가 위협과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가 지위 불안과 정신적인 압박 또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를 견디기 힘들어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되거나 반대로 자기도취나 과시, 우월감을 표출한다. 또한 가짜 해결책으로 도박이나 쇼핑 그리고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이 심화되기도 한다.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는 이렇게 개인도 사회도 정신적으로 병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평등은 상대적 빈곤과 지위 불안을 심화시키는 반면 사회적 신뢰와 상호성의 규준을 약화시키고 계급차별, 조롱과 수치 그리고 복수로 이어져 범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는 불평등이 높은 곳에서 살인이나 강간, 총격, 아동학대 등의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한다.

 

총기난사·학교폭력 등 범죄와 연관성

미국의 3144개 지역별 데이터를 사용한 한 실증연구는 총기난사 사건이 빈곤율과 실업률 그리고 총기규제 등 여러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소득불평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한다. 일본에서는 2008년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한 비정규직 남성이 트럭으로 횡단보도에 돌진한 이후 행인들을 마구 찔러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00년대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과 함께 구조조정으로 실업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했다. 당시 묻지마 범죄가 증가한 것도 불평등의 확대와 취약한 노동자들의 증가와 관련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편 불평등은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 높은 사회는 아동의 행복도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으며 가난한 학생들이 자라 성공하기가 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불평등이 학교폭력도 증가시킨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는 소득불평등과 왕따 등의 학교폭력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한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지위 차별과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엘가 맥길대학 교수 등의 최근 연구는 40개국 약 29000개 학교 87만명의 서베이 자료를 분석해 0~4세 유아기에 겪은 그 사회의 불평등이 아이들이 커서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행사하는 확률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생생하게 보여준 학교폭력 문제도 근본적으로 우리 안의 불평등과 관련이 높다는 이야기다. 특히 어린 시절 폭력이나 아동학대와 같은 불평등의 악영향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학교폭력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묻지마 칼부림과 같은 최근의 범죄도 불평등 문제와 관련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범죄는 여러 요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불평등을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포함한 여러 사회문제를 개선하고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윌킨슨과 피켓 교수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개선되면 사회관계가 개선돼 공동체와 신뢰가 강화되고 지위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폭력과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 역설한다.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낙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해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를 실시했고 경기둔화에도 재정긴축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책기조 하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개선돼온 소득불평등과 빈곤율이 다시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와 빈곤율은 OECD 선진국 중에서 높은 수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소득불평등이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세금과 사회복지를 통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역할이 다른 국가에 비해 크게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경찰은 칼부림 사건들에 대응해 장갑차와 기관단총을 소지한 경찰특공대원을 배치했다. 그러나 사회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장갑차와 특공대가 아니라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취약한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해 불평등을 개선하는 노력일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주간경향 2023-10-16

 

IMF 세계경제 전망과 리스크

바야흐로 전망의 계절이다. 지난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세계경제 전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 3.0%, 내년 2.9%로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역사적 평균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1%에서 1.5%, 중국은 5.0%에서 4.2%로 예상된다.

 

IMF가 지난 7월에 발표한 내년 전망치에 비해 미국은 0.5%포인트 올랐고, 반대로 중국은 0.3%포인트 떨어졌다. 미국 경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상당히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이른바 연착륙이 가능한 반면, 중국은 내년에도 경기 회복이 그리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지난 18개월간 많은 국가들, 특히 미국의 빠르고 큰 폭의 금리인상을 촉발했던 물가상승률 또한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소비자물가는 올해 4.6%에서 내년 3.0%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물가는 4.1%에서 2.8%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1.4%에서 내년 2.2%, 물가상승률은 3.4%에서 2.3%로 전망된다. 올해 6월 이후 25%나 올랐던 원유 가격 역시 내년에는 80달러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본다. 물론 현시점에서 보자면 이스라엘-하마스 간 분쟁이 어디까지 확대되고 얼마나 오래 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다를 터이다. 한편 각국의 수출·수입을 합산한 국제 교역량 증가율도 0.9%에서 3.5%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야말로 아주 완만하고 느린 회복세인 셈이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고린차스는 내년도 세계경제의 향방과 관련해 몇 가지 리스크 요인들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중국 부동산 위기의 악화 가능성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 은행과 가계의 재무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금융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경우에는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지라도 다른 투자 기회들을 구축(驅逐)함으로써 상황이 더 악화되고, 특히 지방정부의 재무건전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긴장의 격화로 인한 에너지·농산물·핵심 광물 등을 포함하는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 확대이다.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가치사슬 내지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심각한 거시경제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물가상승 이슈이다. 인플레이션이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통화정책 목표 수준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당분간 지속될 거라는 얘기다. 이에 고린차스는 중앙은행이 추가적인 긴축은 아니더라도 긴축기조는 유지해야 하며, 너무 빨리 긴축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결국 목표치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 통화정책 운신의 폭도 제약될 수밖에 없고, 고금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네 번째는 각국의 재정 여력 고갈이다. 높은 정부 부채, 상승하는 조달비용, 저조한 성장 등으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재정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 상황이 다소 완화되고 서서히 정상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의 구조나 글로벌 경제에서의 위치를 감안할 때 중기적 관점에서 구조적 변화 리스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대응이 긴요하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 본격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 일련의 사태들이 글로벌 공급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첨단기술 부품 수출 규제, 보건 장비와 의약품 원재료 수출 금지, 항구 봉쇄,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부족,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통제 등이 그렇다.

 

지정학적 긴장은 국제교역과 기술이전에 대한 제한이나 상품시장의 교란뿐 아니라 금융 분절화에 대한 우려 또한 증대시킨다. 지정학적 긴장에 의해 초래된 금융 분절화는 이미 진행 중이며 국경 간 자본배분, 국제 지급시스템, 자산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글로벌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 요인들에 대한 당국의 면밀한 감시와 함께 금융회사들 또한 대외충격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경향 : 2023.10.11

 

 

무엇이 국민 편익일까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이유

공공부문 파업을 둘러싸고 편익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철도노조 파업 때 정부와 코레일은 국민 편익에 역행하는 파업이라며 역정을 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도 국민 편익설명이 뒤따랐다. 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의 쟁점으로 떠오른 비대면 진료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주요 논리 역시 국민 편익이다. 그런데 묘하다. 이런 정부 정책을 개악으로 규정하며 막겠다고 나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 역시 모두의 삶을 지키는 파업’, 즉 국민 편익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건강보험 보장성을 예로 들어보자.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은 건강보험 보장성 후퇴를 강행한 정부다. 그 덕분에 이제 병원에 가면 자기공명영상(MRI)과 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축소돼 병원비가 톡톡히 오르게 됐다. 지난 문재인 정부와 그 이전 이명박 정부도, 심지어 중도 하차한 박근혜 정부 역시 암과 중증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꾸준히 높여온 것과는 거꾸로다. 윤석열 정부는 이로도 모자라 비대면 진료의 수가는 일반 진료보다 30%나 가산한다고 한다.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가산하는 이유는 이른바 위험 관리때문이라는데,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을 인정한다면 이를 원천적으로 재검토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옳다. 수가를 더 지급하면서까지 강행할 이유가 없다. 실손보험 간소화도 국민 편익보다는 재벌 편익에 더 가깝다. 국민의 민감한 질병 정보를 담고 있는 진료 내역이 통째로 민간보험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상품과 비슷한 물건이 소셜미디어(SNS) 광고에 뜨듯,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온갖 보험 상품을 안내하는 문자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아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공공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20233월까지 정부가 쏟아부은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은 모두 86544억원이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민간병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만일 이 예산으로 인구 15만명 이상 중진료권 70곳 가운데 공공병원이 없는 24곳에 공공병원을 지었다면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확보해 재난위기에 대응할 최소한의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도 국민 편익인가?

 

부산교통공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역무 업무 등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안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는 못할망정, 안전과 생명이 희생되더라도 이른바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인력을 더욱 줄이겠다는 말과 같다. 교통요금 인상도 국민 편익과 거리가 멀다. 지하철요금 인상의 이면에 공익서비스 제공에 따른 손실 보전’(PSO) 예산 증액을 거부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의 외면이 있다. 도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요금으로만 운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용자가 부담하는 요금만으로 재정을 충당할 경우 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요금이 비싸지면 시민의 이동권이 침해되고 대중교통이 제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 대도시의 대중교통 운영비 가운데 요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수준을 나타내고, 미국 36.9%, 프랑스 파리는 30%에 불과한 이유다.

 

편익편리하고 유익함을 뜻한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하철-공공의료-건강보험 정책에서 등장하는 편익의 주체는 국민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보험을 영위하고 있거나, 철도-지하철 운영에 눈독을 들이거나,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재벌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건 재벌의 수익이 아니다. 서울대-경북대병원 노동자들이 11일부터 파업에 나서고 부산지하철,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한겨레 : 2023.10.11

 

 

이란이 하마스 지지" 대통령의 위태로운 이분법

"이란과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지하고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국제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전한 말이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5차 중동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 양대 거대 이슈에 한동안 파묻힌 국제정세에 새로운 악재가 되고 있다.

 

취임 이후 분쟁의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쪽을 배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입지를 줄여온 대통령의 그간 언행에 비하면 그나마 부정적인 요소가 적은 발언이었다. 그러나 한 꺼풀 들어가면, 여전히 국제문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 한쪽으로 치우치는 성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우침은 필연적으로 다른 쪽의 반발을 야기할 터. 불필요하게 우리의 전쟁, 우리의 분쟁이 아닌 사안을 일도양단하는 것은 단순히 국가의 대외 전략을 꼬이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로에선 한·러 관계에서 보듯 국가 차원의 경제적, 안보적 비용 지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란과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것은 이란과 헤즈볼라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전 이슬람권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지난 세기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은 이집트는 물론, 20209월 아브라함 협정에 의해 관계 정상화를 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팔레스타인의 절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슬람권뿐만도 아니다. 유엔 안보리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도 75년 동안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해 왔다. 팔레스타인 난민에 관련된 안보리 결의안만 187개다. 이스라엘이야말로 유엔 헌장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도 미국의 비호 아래 건재해 왔다.

 

이스라엘의 국경봉쇄, 구호물품 차단,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돼온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은 상당한 반향을 얻어왔다. 정당하기 때문이다. 무장정파의 폭력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언급한 '영국·프랑스·독일'에 더해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서방 5개국이 9일 내놓은 '이스라엘에 관한 공동성명'은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란''헤즈볼라'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절반을 약간 넘는 면적(365)230만 명이 몰려 사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중동 전반의 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이란 관계는 대통령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을 내놓아 감정이 악화된 상태다. 이란과 UAE의 관계 개선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졸지에 한국을 이란의 '비우호국'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한국이 이란에 돌려줘야 할 원유 대금 70억 달러를 지난 8월 상환해 개선 여지를 확보한 양국 관계를 다시 험악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세계관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국가의 운명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이 팔레스타인과 하마스를 지원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이란 혁명정부는 이스라엘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fabricated entity)'이기에 "지도상에서 지워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역시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8일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지도자 및 지아드 알나카라 이슬람 지하드 운동 대표와 잇달아 통화를 하고 지지를 확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지''지원'은 다르다. 이란의 하마스 지원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언급하지 않는 게 맞다. 대통령의 이란·헤즈볼라 언급은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에 제기한 '이란 배후설' 탓에 뒤숭숭한 상황에 기름을 부은 발언이다.

 

'이란 배후설'은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가 8일 공개적으로 제기한 주장이다. 에르단 대사는 "우리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주변 '테러 군대' 지도자들의 회의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란을 지목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같은 날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2일 베이루트에서 하마스(가자지구, 수니파)와 헤즈볼라(레바논, 시아파) 4개 무장정파 지도자들과 회의를 갖고 하마스의 공격작전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는 8일 성명을 통해 이란 배후설은 이스라엘이 유포한 가짜뉴스라면서 선을 그었다. 이란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하마스의 '-아크사 홍수' 작전은 "저항그룹들과 피압박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빼앗길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인 자발적인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1일 현재까지 이란 배후설을 인정한 나라는 없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번 공격을 지휘했거나 배후라는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확인했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은 이란 개입설과 관련, 아예 "이란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이란이 문제"라는 인식을 밝히고 있는 유명 정치인은 선거판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아니듯, ·팔 분쟁 또한 우리의 분쟁이 아니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평화적 해법을 찾도록 촉구하는 정도가 한국 정부가 표명할 수 있는 입장이다.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안보리 15개 이사국을 상대로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비난하는 결의안 채택을 주장했지만,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세계는 미·, ·중 갈등 속에 아무런 거버넌스가 없이 무질서로 치닫고 있다. 우리 코가 석 자다. 한반도 안팎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만도 벅찬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의 '위험 발언'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대체 팔레스타인 문제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어온 서방 주요국들도 넘지 않는 ''을 왜 동아시아 분단국 대통령이 넘으려 하나. 김진호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11.

 

우리의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국제질서가 요동치며 여기저기서 갈등과 대립, 전쟁 소식이 들려옵니다. 정치는 미국, 유럽 등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란 곳도 예외 없이 적대와 혐오, 진영대결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악화한 불평등과 소외에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화가 나 있습니다. 그 화를 약자에게 겨눠 혐오와 배제의 칼날을 날립니다. 정치와 언론은 갈라치기로 갈등을 부추겨 이익을 얻습니다. 분열과 대립이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한 번 더 지적하느니, 해결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 간의 만남과 대화에 눈이 갔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만남이 적대와 혐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웠습니다. 진영의 골이 깊어지는 데는 불편한 사람 안 만나고, 끼리끼리 모여 편견을 굳히는 문화가 있다고 봤습니다.

 

국외 사례가 참고됐습니다.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2017년부터 해마다 여는 독일이 말한다프로젝트였습니다. 이는 유럽이 말한다’, ‘세계가 말한다로 확대돼 지금까지 연인원 30만명이 참여한 대화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겨레는 성공모델을 세계로 확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이 컨츄리 톡스’(My Country Talks) 사무국과 지난해부터 접촉해 국내 첫 협력 언론사로 등록했고, 한국에서의 행사 계획도 논의했습니다.

 

마침내 923일 인사동의 한 문화공간에서 46명이 참여한 11 대화가 열렸습니다. 참가자 모집과 진행은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가 함께 했습니다. 사전등록 단계에서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기에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나요?’ 10개의 질문을 준 뒤, 의견 차이가 큰 참가자끼리 짝을 지었습니다. 존중하고 경청하는 대화를 해 달라는 당부도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 했습니다.

 

저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는데요, 제 짝은 29살 청년이었습니다. 아들뻘인 그와 저는 여러 질문에서 생각이 달랐지만, 80분 동안 집중하며 이야기를 나눠 보니 서 있는 지점이 다르면 저렇게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뒤 모여 작성한 설문조사를 보면 다들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화를 통해 기존 생각에 변화가 생겼냐는 질문에는 10점 척도에서 긍정과 부정의 중간 수준인 5.2 점이 나왔습니다. 반면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정서적 공감도와 이해도가 증가했느냐에는 8점이란 높은 긍정 응답이 나왔습니다.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또 참여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긍정 응답이 9.2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가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주는 의미를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1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4회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 한국의 대화세션을 만들어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몇 대목을 인용합니다.

 

적대적 민주주의 해소를 위해 정책결정자와 시민의 토론이 필요하다. , 시민 간의 소통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책결정자와 시민의 토론만으로는 집단지성이나 공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단적 의견을 배제하고 공론장으로 나가려면 나의 지각, 지식, 선택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삶의 다양성은 많이 증가했지만 모두 고립되어 홀로 외치는 모양새이다. 다양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도 직·간접적 만남과 연결이 늘어나야 한다.” (설동준 문화기획자)

대화 상대의 표정과 느낌을 통해() 대화 전후가 상당히 달랐고, 이런 파장, 온도를 만든 것이 대화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권민희 뉴닷 편집장)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라는 낯섦과 새로운 시도에 마음을 내주려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발굴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인터넷의 역기능을 얘기하지만 온라인이 그런 만남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황현숙 빠띠 이사)

 

이제 우리의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믿음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말싸움,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배틀이 아니라, 오가는 말이 마음에 공명하는 대화 말입니다. , 불평등과 불공정 구조를 놔두고 대화 몇 번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대화가 만능열쇠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 분배제도를 택하느냐도 정치의 일이고, 그 정치의 질은 공론장이 어떤 상태냐에 달려있다고 우리는 봅니다.

 

우리는 이번 실험을 바탕으로 내년에 토론을 확대해 가려 합니다. 횟수도 늘리고 전국 단위로 치를 수도 있습니다. 세대, , 지역 등 결을 달리해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겨레 혼자 할 일은 아닙니다. 정치성향이 다른 언론사나 시민단체의 동참을 환영합니다. ‘독일이 말한다도 중도 좌인 디 차이트가 시작했지만 진보·보수를 어우르는 언론사가 함께 주관하는 행사로 전환했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만나고 경청하는 문화가 확산해, 병들어가는 공동체와 민주주의가 생기를 찾길 바랍니다. 이봉현 I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12.

 

 

불나방 공천이 정권 쇠락신호탄 쐈다

권력의 속성은 뻔히 타버릴 걸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비슷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상징적이다. 국민의힘 패배는 지난달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천할 때부터 예고됐다. 김태우 전 구청장의 유죄판결 때문에 치러지는 선거에 당사자를 사면 복권시켜 다시 후보로 내세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그 무리수를 윤석열 정권은 거리낌 없이 뒀다.

 

내부에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느 국민의힘 인사는 당내에선 우리 책임으로 선거가 다시 치러지는 만큼 후보를 내지 말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보란 듯이 김태우씨를 사면 복권시켜 버리니, 공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국민의힘 내부 여론조사에서 적잖은 격차로 김태우 후보가 뒤진다는 얘기가 당 안팎엔 나돌았다.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건 자신은 불에 타지 않으리란 믿음 때문이리라. 지금 용산 대통령실을 휘감고 있는 게 바로 이 착각과 오만이다. 누가 봐도 뻔한 결말을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만 모른 체했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명확하다. 그동안 지지율이란 수치로만 떠돌던 민심의 이반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 점에서 20214월 열린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부산 시장 보선을 9개월 앞둔 20207월 한국갤럽 조사에선 야당(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9%, ‘여당(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37%)을 앞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귀책사유로 열리는 선거엔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바꾸면서까지 후보를 냈고, 큰 격차로 패배했다. 그때 원칙을 지키고 무공천했더라면, 20223월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민심이 돌아선 게 확인됐고, 그 이후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면서 대선 승리의 기반을 마련했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그때보다 훨씬 현 정권에 뼈아픈 것처럼 보인다. 여야 득표율 격차가 서울시장 보선(18%포인트 차) 못지않게 벌어졌고, 국회의원 총선까지는 불과 6개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임기는 겨우 15개월 지났을 뿐이다. 이번 결과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은 중도층이 거의 완전히 돌아섰음을 뜻한다. 경제와 민생보다 이념을 중시하고, 자격 미달 인사를 오직 자기편이란 이유로 장관 등 고위직에 앉히는 인사 행태가 선거에 영향을 끼쳤음을 여권 인사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근래 어느 대통령보다 막강한 것처럼 비쳤다. 30%대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면서도 기반을 확장할 생각은 않고, 검찰 수사하듯이 일방적으로 국정을 밀어붙인 영향이 컸다. 그 이면에 감춘 취약함이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김태우씨를 재공천하고 추석 연휴 직전에 제1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신청해 윤석열 대 이재명구도로 몰아간 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다. 그러니 선거 패배 책임을 여당 지도부에 돌리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김 대표는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데 온 힘을 쏟았을 뿐, 국민 여론을 솔직하게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데엔 실패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이처럼 대통령에게 쓴소리 한마디 전하지 못한 집권여당 대표를 찾기는 힘들다. 보궐선거 의미를 축소하려는 당 지도부 생각과 달리, 내부에선 지도부 교체론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 내년 4월 총선은 더 어려울 게 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바뀔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권력이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언터처블일 거라는 미몽에 빠지게 한다. 포용과 유연함을 나약하다고 공격하는 강경론이 득세하기 쉽다. 역대 모든 정권이 임기 말로 갈수록 측근을 중용하며 친정 체제를 굳힌 건 그런 이유에서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데 익숙한 윤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이번 보궐선거가 현 정권에 쓴 약이 되길 바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세계는 수십년 전의 충돌과 침략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던 한국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져드는 조짐을 보인다. 이런 시기에 앞으로 3년 넘게 지금 같은 국정 운영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박찬수ㅣ대기자 한겨레 : 2023.10.12

 

 

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모두가 위기에 관해 말한다. 위기 아닌 것이 없고, 위기 아닐 때가 없었다. 지난 모든 칼럼의 주제 역시 한국 정치와 사회의 위기였다. 그런데 위기란 무엇인가?

맹목적 보수주의

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시기나 고비. 여기서 시기와 고비가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위기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이면서, 이 시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미래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고비이기도 하다. 흔히 위기로 번역하는 서구어(영어 crisis, 프랑스어 crise, 독일어 Krise)도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이 단어들의 원래 의미는 결정적 시기인데, 이는 결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 그리스어 크리시스(krsis)에서 온 것이다. 현대로 오면 여기에 위험한 시기라는 의미가 추가된다. 의학 용어를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어떤 식으로 결합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지금 환자에게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고, 이 증상의 진행 경과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경우, 현 상태를 위기(crisis)라고 부른다.

 

따라서 위기는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생각해보자. 이 말은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의 전조가 이미 시작됐다혹은 파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모두 의미한다. ‘이미아직의 차이는 꽤 크다. 파국은 이미 시작됐으니 그걸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당연한 결론처럼 보이지만, 파국은 아직 오직 않았으니 급격한 변화가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위기 개념에서 결정적 시기라는 의미를 삭제하고, 위기를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기정도로 이해한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질문은 모든 것을 바꿔 생존할 것인가, 익숙한 방식대로 살다가 재앙을 맞이할 것인가?’이다. 후자를 택한 사람은 기후위기에서 아직이라는 의미만 읽어낸다. 이런 태도를 맹목적 보수주의라고 부르자. 보수주의란 진보와 변화에 맞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태도인데, 우리는 지금 인류의 생존을 대가로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 목적 없는 보수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한국의 주류는 기존 질서를 바꾸느니, 원래 살던 대로 살다가 파국을 맞겠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위기와 파국의 반복

파국적 종말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위기는 파국을 낳고, 이 파국은 새로운 위기가 되어 더 심각한 파국을 불러온다. 한국은 수십 년간 이런 위기와 파국의 반복을 겪어 왔다.

 

합계출산율 0.78은 미래의 파국을 예고하는 위기의 지표이면서, 이미 도달한 파국의 지표이기도 하다. 이 수치는 수십 년 후에는 대한민국이 사라질지 모른다를 의미하는 동시에 지금의 한국은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한국은 앞으로 망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한국은 이미 망했고 앞으로 더 망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지난 20년을 돌아보자. 한국의 정치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당시의 위기는 정당 정치와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뿐 아니라 정치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 일반의 형태, 지식과 문화의 생산 및 유통 방식, 공동체의 규범과 주체화 방식 등 모든 영역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이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 전체에 대한 반성과 수정을 의미한다. 한국의 대응 방식은 그러나 늘 같았다.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근본적 변화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저출생 문제를 둘러싼 막연한 우려만 쏟아질 뿐, 어떤 수준의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시작하지도 못했다. 눈앞에서 화산이 폭발했지만, 원래 살던 대로 생활하면서 입으로만 큰일 났다고 중얼거리는 꼴이다.

 

한국의 주류는 기존 질서를 바꾸느니, 원래 살던 대로 살다가 파국을 맞겠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앞서 맹목적 보수주의라고 부른 태도의 극단적 형태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파국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는 상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근본적 변화(혁명) 자체가 서구 문화의 발명품이라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것일까?

 

위기와 파국이 반복하는 곳에서 살아남은 개인은 아직의 논리,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괜찮다는 믿음에 의존한다. 공동체의 파국은 아직 오직 않았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적어도 나와 가족의 파국은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기존 질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니, 이런 믿음이 유일한 희망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는 다시 맹목적 보수주의를 강화하게 된다. 지금의 내 노력이 유효하려면, 기존 질서가 그대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상위 신분으로 올라가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는데, 평등한 사회가 오면 어떡하나? 놀랍게도 근본적 변화를 통해 공동체의 파국을 회피하려는 사람보다 기존 질서를 지지하면서 나만 아니면 된다에 베팅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낙관의 종말

지금은 낙관주의자가 되기 힘든 시대다. 작은 노력이 쌓이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현세대의 실패는 다음 세대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한가한 소리가 돼버렸다. 현세대가 위기 대응에 실패하면, 이는 다음 세대의 파국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현재가 축적돼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진보의 시대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다음 세대가 우리의 노력을 이어받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국이 파국을 낳는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탄소 중립에 실패했지만, 다음 세대가 우리의 노력을 이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뻔뻔한 책임 회피나 헛소리로 취급될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지금은 죽은 세대의 유산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시대다. 현세대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세상을 위한 작은 노력을 축적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지금 당장 만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음 세대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앙을 피할 방법은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애초에 재앙이 아닐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선택의 문제다.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가, 원래 살던 대로 살다가 재앙을 맞을 것인가?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주간경향 15482023.10.16.

 

 

과연 정권 심판 선거였을까?

득표율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서울에서 한 정당이 17%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구청장 선거를 이긴다는 것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에선 정권심판론이 통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선거를 이긴 쪽이 정치적 기세를 잡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내부적으로 단합을 강화하고 상대를 당황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로도 이런 평가가 옳을까?

 

민주당에는 아쉽겠지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만으로 정권이 심판당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강서구라는 선거구의 특성과 이번 선거의 국면적 특성이다.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선전한 지역이다. 현재 강서구의 3명 국회의원도 모두 민주당이다.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 후보가 49.1%를 득표해 46.9%에 그친 윤석열 후보를 이겼다. 여당이 압승한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김태우 후보는 51.3%를 득표해서 48.7%를 얻은 민주당 김승현 후보를 간신히 이겼다.

 

이런 지역의 특성에 더해 이번 선거에서는 국면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것은 보궐선거의 원인제공자인 김태우 후보를 재공천한 것이다. 지난 5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한 사람을, 8월에 대통령이 특별사면하고, 10월에 있는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시키는 일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여기에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은 애교로 봐달라는 말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이번 보궐선거의 특성도 한몫했다. 단체장급 이상 보궐선거 지역이 강서구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구청장 선거가 마치 대선처럼 치러졌다. 단 한 곳인데 여의도 국회에서 가까우니 하루에도 수십명의 국회의원이 지역을 누볐다.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도 자세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동시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해 잘 알기가 어려워 정당을 보고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정당과 언론이 두 후보자에게만 집중했으니 인물 검증에서 비교가 안 될 수 없었다. 경찰 대 검찰이라는 구도도 민주당의 의도대로 짜였고, 선거기간 중에 나온 김태우 후보의 강서구 월세 거주 사실은 판을 크게 기울게 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선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조건이 더해졌고, 민주당 입장에선 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17.15%포인트 차이는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투표율이 민심을 반영할 만큼 높았을 때다. 이번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48.7%였다. 다른 보궐선거에 비하면 높아 보이지만, ‘대선처럼치러진 이번 선거의 특성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 지역의 선거에 단순화해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투표율과 득표율의 해석에 적용해볼 만한 유권자 분석 자료가 있다.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평가에 해당했던 새로고침위원회의 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보수의 잠재적 지지층은 전체 유권자에서 50% 정도였고, 크게 3개 집단으로 구분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자유보수주의그룹이 20%, 박세일 교수가 따뜻한 보수라고 불렀던 온건보수그룹이 20%, 이준석 지지층으로 분류 가능한 포퓰리스트그룹이 10% 정도였다. 이번 김태우 후보자의 득표수(95492)를 전체 유권자 수(50만명)에 대비해 보면 20% 정도 된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투표장에 나온 보수 유권자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큰 차이로 이겼으니 잠재 지지층 공략에 제대로 성공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조사에서 민주당의 잠재 지지층은 약 40%였다. 열혈지지층인 개혁 우선그룹이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더 넓은 지지층인 평등평화그룹이 약 35%로 나타났다. ‘평등평화그룹에서 무조건 투표장에 나오겠다는 응답자들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 절반은 다른 당을 찍지는 않겠지만, 민주당이 하는 걸 보면서 투표장에 나올지를 결정할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진교훈 후보가 득표한 결과(137066)를 보면, 전체 유권자의 27% 정도 된다. 민주당에 유리한 강서구의 특성을 감안하면 민주당 역시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잠재 지지층이나 중도 유권자를 투표장까지 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정권심판론이 통했다고 믿게 되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지난 114개 여론조사기관의 공동 전국지표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1%, 민주당 29%였다. 이관후 정치학자 경향 : 2023.10.12.

 

 

선택은 국민이 한다

선거는 모든 걸 걸고 하는 도박게임 같다고들 한다. 영화 <타짜>에서 봤듯 현실도박의 세계에서 진 편은 여차하면 손목이라도 건다. 승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선거도 다를 게 없다. 패한 쪽은 고통스러운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거에 패한 지도부의 총사퇴는 뒷감당의 기본이다. 잘나가던 도박꾼이 한번의 패배로 몰락하듯, 선거 지휘에 실패해 중심에서 밀려난 주요 정치인들은 셀 수 없었다. 그게 게임의 룰이고 정치의 법칙이다.

 

말 많고 탈 많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의 기상천외한 재도전은 대패로 끝났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당선인에게 17.15%포인트 차이로 졌다. 일찌감치 표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등 개표 과정은 싱거웠지만, 이번 선거의 정치적 의미는 어느 전국단위 선거 못지않게 풍부했다. 내년 4월 총선의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의 전초전,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는 성격이 있었고, 민주당에 대한 민심도 엿볼 수 있었다. 선거 결과에서 보듯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민주당의 승리보다 여권의 패배가 도드라졌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선거 전부터 패배를 예견한 듯 수많은 선거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김을 빼려 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 못할 참패를 묻어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년 총선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룰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윤 대통령이 깊이 개입했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 후보를 석 달 만에 사면하고, 공천까지 받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지역선거를 중앙선거로 격상시킨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다. 대통령 입김에 당도 등 떼밀렸다. 패배 시 리더십 위기를 우려해 무공천을 염두에 뒀던 김기현 대표는 지역에 상주했고, 여당 인사들은 장밋빛 개발 공약들을 내놓았다. 그래도 참패했으니, 여권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치고, 제풀에 쓰러진 꼴이다.

 

강서을 밖에서도 악재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난데없는 이념전쟁을 벌였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을 통한 언론장악까지 시도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 강행,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줄행랑 사태등은 윤석열 정부의 인사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독선과 일방통행은 예외 없이 유권자의 응징을 초래했던 점을 고려하면 여당 참패는 윤 대통령이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초짜가 타짜라도 되는 양 막무가내로 패를 돌렸으니 결과가 어떻겠는가. 이번 선거의 진짜 패자는 윤 대통령이다.

 

국정동력 상실 등 선거 참패의 뒷감당을 하게 된 여권에는 이제 고통스러운 정산의 과정이 남아 있다. 윤 대통령부터 여당 지도부까지 잘잘못을 엄격히 따지고 반성하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김행 후보자가 선거 참패 다음날 사퇴했는데,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 정도로 성난 민심이 누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김 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투표 당일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작설을 제기했는데,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몸부림으로 비칠 뿐이다.

 

무엇보다 참패의 중심에 있는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그간 대통령이 붕 떠 있다’ ‘민심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이 여권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들려왔던 터다. 윤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현실을 깨닫길 바란다. 제왕적 눈높이에서 국민적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패배 원인을 가짜뉴스나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등 정신승리를 고집한다면 국민들은 완전히 등돌릴 것이다. 이번에 받은 옐로카드를 가볍게 여기면 내년 총선에서 레드카드를 받게 될 것이고,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의 식물정권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

 

민주당도 웃을 일이 아니다. 선거 승리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커다란 반감이 작용한 결과다. 이재명 대표가 구속영장 기각과 선거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방탄 단식을 했으며,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을 늘 새기길 바란다. 국민은 아직 민주당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번 선거가 여야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르치려, 이기려 들지 말라. 선택은 국민이 한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경향 : 2023.10.12.

 

 

TV에서 자막 개표 방송조차 볼 수 없었던 이유

김기현 여당대표가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 논란과 관련해 "3.15 부정선거 주범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1960년대라면 시비 걸기 어려운 말이지만, 2023년 민주주의 정당 구조에서 여당 대표에게 '사형'이라는 말을 청취했을 때 섬뜩했다. 비유도 비유다워야 여당 대표 발언에 동의가 될텐데 여튼 고약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유행하는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그 정의를 따져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포털 지식 백과사전은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뉴스"라고 규정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한다는 것은 때로 단순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난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식을 가졌을 때 이른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란 말이 등장했다. 오바마 취임식에 비해 트럼프 취임식 인파가 적다고 언론이 보도하자 트럼프 측근은 '대안적 사실'이라며 당시 지하철 이용객수 등을 거론하고 '사실이 그러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 이후 가짜뉴스 시비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아주 흔한 일들이 되었다.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용혜인 의원이 김행 후보자에게 물었다. 위키트리 언론 사주인 김행 후보자가 '역대 급 노출 기사'로 큰 돈을 벌었다는 꾸짖음 이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따져 봐야겠으나, '혐오장사'로 주가를 79배 급등시켜 1백억 대의 주식 재벌이 됐다는 지적이다. 공론장에서 제기된 사실이니 모두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관인 것은 트럼프를 뺨치고도 남을 김행 후보자의 발언이었다. '저도 부끄럽습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언론 현실입니다. 여기에 대한민국 큰 언론사, 메이저 언론사 1,2,3위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위키트리의 노출기사 장사 술법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행 후보자는 언론사를 운영하는 다수의 개인이나 회사를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고 소외시켜 버리는 놀라운 괴력을 발휘했다. 대한민국 언론 안에서 사주 김행 씨의 비윤리성과 책임성을 일반적인 언론 문제로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는 놀라운 '대안적 사실'이다. 김 씨가 위키트리 라는 '상업적' 언론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경도된 나머지 법과 제도, 사람을 모두 수단화 하고 경시하는데 이골이 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1977년작 화가 천경자씨의 <미인도>는 아직도 진위시비에 놓여 있다. 소장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 하지만, 유족 중 일부는 '위작'이라고 소송하고 있다. 실물로 존재하는 것조차 진위논란을 우리는 가끔 목격한다. 실물이 있는 것조차 그러할진데, 그렇다면 실물이 없는 뉴스 세계에서 진짜,가짜뉴스를 구분한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에서 전대미문의 가짜뉴스 심의권을 방심위가 부여 받았다고 한다. 위법적 논란은 우선 한켠으로 밀어두자. 류희림 방심위 대표는 국회 과방위에서 '가짜뉴스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허위 조작된 정보를 뉴스로 오인하게 만드는 정보"라고 말했다. 방심위 대표가 규정한 가짜뉴스 정의는 매우 포괄적이고 자의적이다. 이 잣대로 가짜, 진짜뉴스를 구분하면 표현의 자유 및 언론 자유가 대체 숨 쉴 공간이 있을까.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2백년 전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무려 250 페이지가 넘는 <자유론>에서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자유는 지식백과 사전처럼 결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주제이다.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확대는 권력자가 솔선해 나눠준 자선품이 아니다. 시민들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제한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법의 힘을 빌어서 개개인을 부당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이 확대 될 때, 사회의 권력을 강화시켜 개개인의 힘을 약화시키려 할 때 반드시 '해악'은 뒤따라 온다. 그에대한 수많은 시민 저항이 있었고, 민주주의는 3권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강제함으로써 그 '해악'을 최소화시켜 온 시스템이다.

 

가짜뉴스 논란에서 언론자유의 위협을 문득문득 느낀다. 이 나라 방송통신위원장이란 분은 '국기문란'을 밥 먹듯이 얘기한다. 가짜뉴스는 '국기문란'이고, 김만배 인터뷰도 '국기문란'이고, 포털의 중국 응원 방치도 '국기문란'이라고 포고한다. 그 이유와 배경을 차분히 살펴보고 법적으로 따져보면 될 일들을 사법권한이 없는 행정권력이 국기문란이라고 '금줄'을 그어버린다. 그러므로 가짜뉴스를 퇴치하겠다는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마침 방심위의 주축인 팀장급들이 가짜뉴스 규제를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원이 아닌 누가 무슨 자격으로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또 방심위라는 행정기구가 그런 권능을 갖고 있는가.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은 개개인의 개성을 퇴보시킨다. 개성의 퇴보는 민주주의 퇴보이다. 밀은 <자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대하는 자들이 아무도 없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배우는 사람들이나 책상 앞에 앉아서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잠을 자게 될 것이 뻔하다."

 

ps; 가짜뉴스 논란 와중에 TV에선 강서구청장 선거 자막 개표방송 조차 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유튜브로 몰려갔다.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노컷뉴스 : 2023.10.12.

 

 

혐오와 분열 상징하는 '트럼프 현상', 미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있는 타협'의 실종

저는 한국에서 정치·선거·공공 여론조사와 데이터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여의도 아저씨'이지만, 미국 정치를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입니다. 최초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자 우리와 같은 양당제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민주정치의 전범(典範)처럼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요.

 

지금은? 글쎄요, 오히려 한국 정치가 가진 심각한 문제들, 즉 양극화, 이념화, 협상과 타협의 실종, 맹목적 팬덤, 정치의 사법화 등을 비추는 거울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여기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만, 저에게 결정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20161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일입니다. 캠페인 기간만 해도 저는 인종과 성, 이민자 등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마저 내버린 듯한 그에게 열광하는 일부 미국인들을 애써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이나 반감에 공감이 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포퓰리즘 이데올로기가 결국 승리합니다. 정말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한 것인가, 다른 나라 선거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며 촉발된 사건입니다. 놀랍게도 트럼프가 나서서 시위 참여를 독려했고, 폭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하원의장 사무실과 상원의장 의장석을 점거했습니다. 이 일은 미국의 최상위 의사 결정 기관이 자국민들에 의해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는,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최근에 벌어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입니다. 미국에서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 다음인 권력서열 3위인데, 의회의 표결 끝에 해임안이 가결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그것도 같은 정당 소속인 공화당의 강경파 의원(맷 게이츠)의 주도로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결탁해서 임시 예산안을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미국 의회는 내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만, 공화당 초강경파 의원들이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셧다운(shut down)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매카시 의장이 연방정부 예산 동결을 골자로 한 수정안을 전격 제안해 압도적인 가결을 끌어냈고,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셧다운 위기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 경제도 당분간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매카시 해임을 주도한 이들 일부는 심지어 후임 하원의장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의원이 아닌데요?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만, 미국 헌법에는 하원의장을 원내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로 치자면 국회의장을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이 해도 된다는 것이죠.

 

현재 미국 하원은 공화당 221, 민주당 212석으로 9석 차이에 불과한데, 공화당에서 강경파라고 할 수 있는 비율은 약 10%, 20명 정도라고 합니다. 강경파가 빠지면 공화당은 과반에 미달해 어떤 법안도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사실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여기는 강경파의 눈에 민주당과의 초당적 협력으로 의회를 이끄는 매카시 의장은 눈엣가시였던 겁니다. 지금 미국은 하원의장 공석인 초유의 사태로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길 때마다 위협을 받습니다(Our democracy is threatened whenever we take it for granted)."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미국 정치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궁금하던 차에 <아메리칸 카오스(American Chaos)>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받았습니다. 2018년 제작된 이 작품은 영화감독 제임스 D. 스턴(James D. Stern)2016년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지지자들과의 대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대표하는 트럼프의 엄격한 이민·무역 정책, 거침없는 성격, 주류 정치의 아웃사이더라는 포지션에 매혹됩니다. 자신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낍니다. 결국 트럼프가 워싱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불만스러운 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게 되죠. 현재 트럼피즘(Trumpism)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만 없어진다면 트럼피즘도 사라질까요? 저는 트럼프 현상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정치인이 정치 불신과 혐오를 이용해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대감과 불화, 증오가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는 음모론에 기반하고, 허위 정보(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정부를 믿지 않고, 사법기관을 의심하며, 마녀사냥을 감행합니다. 마치 종교가 다르다고 전쟁을 치러야 했던 절대 신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미국의 상황이 안타까운 건, 다른 나라의 정치임에도 기시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거대 양당의 강경파가 주도하는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도 대화, 협상, 양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다 보니 극한의 대결과 제로섬 게임만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선명성 경쟁이 과열되고, 극단적 지지층의 목소리만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타협이 비겁함을 의미할 필요는 없습니다(Compromise need not mean cowardice)." -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 1955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겠다(Let us never negotiate out of fear, but let us never fear to negotiate)." - F. 케네디, 1961120일 대통령 취임사

 

냉전 시대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케네디 대통령은 정치적 용기와 원칙을 확고히 지키는 동시에 더 큰 이익을 위한 협상의 힘을 믿었습니다. 타협이 실종된 정치는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무능한 권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당파의 이해를 국가의 이익에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주권자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민생의 문제는 의제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오로지 내 편과 네 편만 남습니다.

 

예산 삭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연방정부 폐쇄를 감수하려 했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행동은 정당한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셧다운을 막기 위해 자신이 속한 정당의 목표를 양보하고 민주당과 타협한 매카시 하원의장이 옳았을까요? 만약 우리나라의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 같나요?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 프레시안 2023.10.12.

 

윤 대통령 권력, 쇠퇴하는 징후들

선거 승승장구하다 첫 패배... 대법원장 부결, 김행 사태 등 총체적 위기...독선과 폭주 멈출 수 있을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선거에서 질 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용산에서 보궐선거 원인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국민의힘이 그를 공천했을 때부터 선거 패배는 예정된 길이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런 사실을 최고권력자가 몰랐다면 그 자체로 국정 운영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얘기밖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사면권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고, 김태우는 문재인 정권의 비위를 폭로하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인데 뭐가 문제냐는 인식을 가졌을 수 있다.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 여기고 선거에서도 당연히 이길 것으로 믿었을 터다. 주변의 누구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으니 확신은 커졌을 게다. 백성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데 혼자만 망상에 사로잡힌 모습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선거에서 패한 윤 대통령의 충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승승장구하던 윤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쓰라림을 안겼다. 그것도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참패다. 아무리 의미를 축소하려해도 민심이 윤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이보다 확실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비단 선거뿐이 아니다. 근래들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거대한 벽에 부닥친 형국이다.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부적격 장관 임명 강행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민생은 악화일로고 '가치동맹' 외교전략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난국을 돌파할 뚜렷한 묘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냉엄한 현실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실

사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은 1년반이 지나도록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오로지 '반 문재인' 정서에 기반한 정책 뒤집기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공권력을 동원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 비판세력을 손보거나 야당 흠집내기에 다걸기를 하고 있다. 이로인해 국가와 제도는 수십 년 전으로 퇴행했고, 미래는 실종됐다. 이번 선거를 불통과 독주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준엄한 심판으로 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통령실의 태도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와 관련해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짧게 말했다. 자성과 성찰의 메시지는 고사하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고 채찍질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자진사퇴도 보선 패배에 대비해 남겨놓은 카드라는 얘기가 많았다.

 

윤 대통령은 지금 고비를 맞고 있다. 권력이 계속 확장되느냐 아니면 약화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 정치론'에서 "대통령이 지나치게 강력하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이는 대통령이 그 정도로 강력하지 않거나 그의 권력이 퇴조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권력이 실제 강하면 여론은 지나치게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이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권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대통령이 독선과 폭주를 멈추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윤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더 가혹한 국민 평가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계속될 비합리와 비상식을 감내해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이 안타까워서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윤 대통령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이충재 전 한국일보 기자 오마이뉴스 23.10.13

 

 

위대한 배우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

한달 전 40주년 회고전을 여는 정지영 감독 인터뷰를 하던 중 정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그날 저녁 열릴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배우 안성기의 연락이었다.

남부군’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등 정지영 감독의 주요 작품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안성기는 정지영 회고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 감독은 긴 시간 혈액암 투병을 해온 안성기의 건강이 염려돼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안성기가 직접 연락해 오겠다고 한 것이었다. 안성기는 같은 식으로 1년 전 이맘때 열렸던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에도 참석했다. 그때 얼굴이 붓고 가발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 암 투병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며칠 뒤 안성기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준익 감독 30주년을 기념하는 춘천영화제 특별전에서 영화 라디오스타를 상영하며 이 감독, 짝을 이뤘던 박중훈 등과 함께 관객과 대화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관객과의 대화를 보면서 조금 놀랐다. 얼굴은 혈색이 돌고 좋아졌지만 목소리나 움직임은 더디게 회복 중인 것으로 보였다.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고, 말은 느렸으며 문장은 어렵게 이어지다가 중간에 서둘러 마무리됐다. 머릿속에 준비된 언어들을 운반하기에 그의 육신은 아직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그 어떤 직업보다 전면적으로 육체를 세상에 드러내어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연기자가 육체의 감옥에 갇혀있는 듯해 보였다. 게다가 안성기는 65년 동안 백편이 넘는 영화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던 특별한 존재였다. 어쩐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미안해졌다.

 

행사가 끝나고 스태프와 관계자들의 조촐한 축하 자리에 끼어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막국숫집에 차려진 음식들을 집는 손길에도 어려움이 느껴졌다. 항암치료 뒤 다시 자란 머리카락은 거칠거칠했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버거워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마디한마디에 귀 기울이며 예의 그 주름 가득 짓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뜨끈뜨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이런 단어를 책이나 영화 같은 매체 아닌 곳에서 떠올리긴 처음이었다. 써놓고 보면 분명 민망하겠지만 위대함이라는 단어 말고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배우 안성기는 거절 못하는사람으로 유명하다. 영화계 많은 사람이 아쉬울 때마다 그를 찾았고 그는 생색 안나는 감투를 많이도 맡았다. 그가 유일하게 끝까지 거절한 자리는 보수와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제안해 왔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준비할 때 비중도 크지 않고 그가 맡아본 적 없던 악역을 제안했다가 제작발표회 직전 안성기의 고심에 찬 거절을 들었는데, 정작 제작발표회에서 후배들과 함께하게 돼서 기쁘다는 안성기의 말을 듣고 너무 기뻐 해운대 바다로 돌진했던 에피소드를 회고하기도 했다.

 

최근 모습을 보면서, 안성기는 거절을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서는 게 아니라 전부를 걸고 나선다. 나이 들고 병들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추레하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면 나서는 게 꺼려진다. 의전이나 주변의 후광으로 초라해진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할 수 있는 자리를 고르게 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이 대중의 뇌리에 박힌 스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배우 안성기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포장 없이 자리를 찾아다닌다. 그것도 스포트라이트 받을 일은 별로 없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다닌다. 나이 들고 불편해진 몸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그럴 수 있는 대중스타가 그 말고 또 있을까. 지금도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 같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에서 그를 만날 수 없어 서운했다. 송강호도 주윤발도 빛났지만, 위대한 배우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를 많은 이들과 함께 보고 싶었다. 내년에는 꼭 만날 수 있기를, 위대한 배우 안성기씨!

김은형문화부 선임기자 한겨레 23.10.13

 

 

이스라엘 비극의 교훈

19673차 중동전쟁 이래 이스라엘은 한국 안보의 모범 사례였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3억 인구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생존,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를 착실히 일구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일 안식일에 발생한 청천벽력 같은 비극은 그림의 반대편을 보여준다.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5천발 이상의 로켓 발사를 필두로 육상·해상·공중에서 이스라엘 영토에 침투해 무고한 시민 1천여명을 무참히 사살하고 2400명 이상을 다치게 했다.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보복 반격과 전방위 폭격으로 하마스 무장대원 1600명이 사살됐으며, 가자지구 주민 희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응징 의지로 보아 가자지구의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참극이 없다.

 

세계 최고 정예군과 정보 능력을 갖춘 이스라엘이 이집트도 아닌 일개 무장정파 하마스에 이렇게 당했다는 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 실패였다. 이스라엘군(IDF)은 하마스의 의도와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내부의 정치적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공세적 행동을 자제하거나 혹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응징이 두려워 대규모 공격을 단념했다는 정보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변에 있던 병력 일부를 소요가 일고 있는 유대-사마리아 쪽으로 이동한 것은 그 방증일 수 있다.

 

7년 전 필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인적 정보(휴민트), 영상정보 그리고 신호정보의 융합을 통해 하마스 쪽 동향을 24시간 감시해 아이언돔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특히 하마스가 하루에 5천발 이상의 카삼 로켓을 발사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수만발 이상 비축 물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모사드나 아만(국방정보본부)이 이러한 물량의 생산과 배치에 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해 선제적으로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정부의 적대적 압박 정책도 한몫했다. 세종시와 유사한 면적의 가자지구에 220만명이 거주한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 가운데 50%가 실업자다. 더욱이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어 이스라엘 정부 발급 통행증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고, 수도·전기·식량의 유입도 통제되고 있다. 지구 위에서 가장 큰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봉쇄 압박 정책은 하마스의 정치 기반을 강화했고, 이번 사태와 같은 거의 극단에 가까운 비인간적 도발로 나타났다. 출구 없는 일방적 압박이 빚어낸 불행한 결과다. 물론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하마스와의 협상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적 해법을 모색했다면 상황이 과연 오늘과 같았을까.

 

문제의 또 한축은 정치의 실패다. 어렵게 보수연정을 구성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7월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법안'을 추진하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했다. 시민들의 저항은 거셌다. 30만 넘는 이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항의시위를 이어가고 예비군 1만여명이 독재체제로 향하는 정부 아래서는 복무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군의 준비태세에도 차질을 가져왔다. 이러한 이스라엘 국내 정치적 양극화와 정정 불안이 하마스의 군사모험주의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크다. 독선과 오만으로 일관해온 네타냐후 총리와 가자지구를 지도에서 없애자거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서슴지 않고 주장해왔던 일부 보수연정 구성원들은 이번 비극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의 참극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명백하다. 정보 체계와 3축 체계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평양은 언제든 작은 틈새를 이용해 우리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북한의 내부 붕괴 가능성에 기대는 일방적 압박 전략은 격렬한 반발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북한은 일개 무장정파가 아니라 핵 능력을 보유한 위협 세력이다. 그리고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편가름의 정치는 결국 내부 단합을 해쳐 국가 안보에 독소가 될 뿐이다. 우리의 적대 세력은 우리의 분열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전쟁의 예방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소중하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킨다. 숱한 무고한 생명을 부질없게 희생하고 난 뒤 승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23.10.15

 

 

연구개발과 진보 정치

한국은 공업입국정신으로 지금의 나라를 만들었다. 많은 논란에도 박정희의 확실한 공적은 카이스트를 비롯해 공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주변 장치도 같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후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기술자를 우대하고, 기술이 모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최초의 인터넷 회선실험을 한 사람은 카이스트 교수였던 전길남이었다. 그는 일본 교포였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나사(NASA)에서 일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박정희 정권의 기술 우대 정책 때문이었다. 결국 1982년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전길남의 제자들이 삼보컴퓨터와 넥슨, 엑스엘게임즈(리니지 개발), 아이네트 등을 창업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한국이 그냥 IT 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WTO가 출범하면서 금융을 통해 수출에 주던 지원금은 금지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수출 지원을 연구·개발 지원으로 전환하였다. 그렇게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NIS(National Innovation System)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공공기술을 비롯해 이제는 개별 기업의 혁신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혁신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가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

 

1997년 정권 교체가 되었지만, 김대중 정권은 이 흐름을 승계하였다. 외환위기로 기업은 물론 국가도 초유의 위기에 빠졌다. 민간이 연구·개발비를 줄인 만큼 정부는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외환위기 한가운데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은 늘어났다. 한국은 그 이후 위기에서 탈출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줄이지는 않았다. 이제 기업도 다른 건 줄이더라도 연구·개발비를 줄이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도 세계적인 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존했고, 수많은 세계적 위기에도 버텨왔다.

 

IMF에도 연구개발비 늘었는데

공업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서비스업으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스웨덴, 스위스 등 1인당 국민소득으로 앞줄에 선 나라 중 그렇게 한 나라는 없다. 유럽과 달리 서비스업 비중이 더 높았던 미국도 오바마 이후로 공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도입하고, 심지어 편법에 가까운 국수주의 정책도 과감히 도입한다.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결국은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되었다.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눈물 날 정도다.

 

상황이 이런데, 윤석열 정권은 그 어떤 정권도 하지 않은 연구·개발비를 대폭 삭감하는 정책을 과감히 제시하였다. 그전에 연구·개발비를 대폭 증대해 기술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자신이 한 얘기도 다 까먹었다. 과거 어느 왕이 침대에서 왼발로 내려온 날은 조용했지만, 오른발로 내려온 날은 피바람이 불었다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공동의 투쟁 경험도 없고, 분야도 워낙 달라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그들만의 일은 아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그 삭감의 피해를 온통 뒤집어쓰고 있다. 인건비가 줄면, 젊은 연구진과 비정규직 연구진부터 해고한다. 프로젝트가 사라지면, 그들 중 상당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막 줄인 거라서, 우주항공 분야는 물론이고 코로나 백신 연구 같은 데도 일괄 삭감의 대상이 되었다. 공업은 그냥 죽어라고 일하면 되는 분야가 아니다. 결국은 지식의 일인데, 그 연구 인프라가 지금 붕괴되고 있다.

 

이제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다른 것은 건별로 증액할지 감액할지 그렇게 살피지만, 연구·개발 분야만은 정부 최종안 이전의 초안부터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진보 정치에서 연구·개발은 무엇인지, 그 철학의 재정립과 청사진을 지금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뭘 살리고, 뭘 더 강화할지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이 분야만큼은 민주당 내에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예산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현장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를 길게 듣는 프로세스를 만들면 좋겠다. 서류만으로 그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은 원래 정치의 영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연구·개발 예산 삭감과 함께 정치의 영역, 여의도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진보 정치 1번지가 과학과 기술에서 최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저성장 국면으로 넘어간 윤석열 경제가 아사(餓死)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정희 이후의 국가혁신시스템을 그냥 죽일 것인지, 아니면 개혁안을 만들 것인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3.10.15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1029일이면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1년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정부는 신종재난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는 행정안전부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책임을 지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하자, 정부의 대응은 더 나빠졌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재난 첫 보고를 받은 뒤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징계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직후였다.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이 반복됐다.

 

위험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이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위험에 대한 예측이다. 현 정부 역시 두 참사에서 예측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시스템의 문제이지 재난 앞에선 인간의 영역이 아닌 듯하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나 행사에서 압사 등의 사고는 늘 있어왔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압사의 위험을 느끼지 않은 시민들이 없을 정도로 압사의 위험은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다.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발생하는 지하공간 침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왜 하필이면 핼러윈 축제가 있었던 이태원에서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는지, 왜 하필이면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었는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재난은 도저히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우발적인 신의 장난질이 되거나, 하필이면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시민의 책임이 된다.

 

시민들이 압사의 불안을 이겨내고 매일 지옥철을 이용하는 이유는 위험을 즐기는 모험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충분히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기상청과 교통통제시스템, 지자체의 안전대책이 폭우 시 바다에 배를 띄울지 결정하는 것처럼 교통흐름의 통제 역시 이뤄지고 있다는 기대는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그 예측에 실패한 것은 시민이지, 정부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내거는 국민안전따위가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수많은 매뉴얼이 관료의 캐비닛 안에서 잠자고, 정교한 그물망처럼 연결된 시스템이 결국 말단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것으로 해결되고 있는지를 모른 시민의 잘못이다.

 

시스템이 있음에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위험은 증폭된다. 이태원 참사 원인 조사 따위는 필요 없다며 가볍게 패스한 이상민 장관이 주관해 마련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은 신종위험의 예측력을 강화하겠다는 온갖 대책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많은 대책들을 소화하려면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방안은 찾기 힘들다. 마치 기업의 책임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지우는 플랫폼 기업들처럼 지금 정부는 AI에 기댄 무인시스템을 꿈꾸는 듯하다. 실패와 책임, 애도의 정치적 행위 대신에 예측 불가, 작동 불능, 시스템 오류의 기계어를 반복하는 정부에 재난은 늘 새롭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향 23.10.15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깡패

201612월 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특검 수사팀장에 임명된 검사 윤석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그가 박근혜 정권 초기에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된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한 말이다. 수사권은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지, 검사 개인이나 검찰 조직의 사적 보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검사가 대통령이 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보복 수사가 기승을 부린다. 겉은 전임 정권의 비리를 처벌하는 신적폐청산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사적 복수에 가깝다. 지난 9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도 그중 하나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인 장 대표는 지난해 7월 펀드 사기 혐의로 이미 한차례 구속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서울남부지검은 올해 9월에 또 수사할 게 있다며 장 대표와 직원들에 대해 별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일부 혐의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이고, 일부 혐의에 대하여는 충분한 소명이 부족하여 피의자의 방어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관련 형사사건도 진행 중이어서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한마디로 검찰이 문제 삼는 별건이 죄가 되는지 불분명한데다, ‘본건에 해당하는 재판에서도 1심에서 무죄가 났으니 구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검사가 주장하는 근거들은 (증거) 자료를 잘못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사가 펀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소한 게 아니냐고 면박을 준 것이다. 검사가 제정신이라면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항소심 재판에 집중할 텐데 엉뚱한 짓을 하다 연거푸 망신을 당했다. 장 대표를 구속해서 항소심 재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들 속셈이었나. 1심 판결은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펀드 판매사(은행, 증권사)의 책임이 크다고 봤는데, 여기에 대한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검찰이 투자자의 피해 회복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검찰이 장 대표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디스커버리 펀드에는 그의 형 장하성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투자했다. 보수언론들은 이 펀드에 장하성 펀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권력 실세가 개입한 펀드 사기라고 공격했다. 틈만 나면 전 정권 공격에 열을 올리는 윤 대통령의 취향에 딱 맞는 수사다. 그래서일까. 서울남부지검의 수사 책임자들은 최근 검찰 인사에서 나란히 승진했다. ‘국내 최고의 금융·증권 전문 수사단을 낯부끄럽게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윤석열 사단의 좌장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이 결재한 인사다.

 

수사 대상자들은 억울한 게 있어도 검찰의 보복이 두려워 입도 뻥긋 못한다. ‘정권의 돌격대를 자처한 감사원에 의해 통계조작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문재인 정권의 정책 담당자들도 마찬가지다. 통계 조사와 작성에 대규모 인력이 참여하는데 어떻게 조작이 가능하냐고 반박할 법한데도 숨죽이고 있다. 지난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된 것을 보고 겁먹은 것 같다. 검찰이 노리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무섭다고 피하면 계속 괴롭히는 게 깡패의 속성이다. ‘해병대 수사 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과 감사원의 표적 감사에 저항한 조은석 감사위원에겐 오히려 깡패들이 겁을 먹는다. 감사원과 국방부, 해병대 수뇌부를 보라.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자꾸 형님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검찰은 최근 이재명 전담 수사팀을 수원지검에 새로 꾸렸다. 앞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로 역시 망신을 톡톡히 당한 윤석열 사단 검사를 승진시켜 지휘하도록 했다. 이 대표의 기존 사건에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별건까지 갖다 붙였다고 한다. 윤석열 사단이여, 이번만큼은 보복 수사가 아니길. 여러분의 주군은 검사가 그런 짓 하면 깡패라고 했다. 이춘재 | 논설위원 한겨레 23.10.16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을 치른 후 모든 정당에서 혁신이 다시금 화두다. 그런데 뭘 어찌 혁신하려는지, 그게 뭐든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진짜 하겠다는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목청 높여 소란스럽게 당 지도부 혹은 집권세력에 책임 추궁만 하고 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모르지만 총선 승리라는 당면의 목표를 감안하면 주어진 혁신의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런저런 조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효과를 통해 성패가 갈린다고 할 때 특히 그렇다. 효과의 중요성은 이번 보선 승패가 누가 더 잘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더 화가 나 있는지를 담고 있을 따름이라고 할 때, 한층 더 심대하게 여겨져야 한다.

 

사실 혁신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에서는 그렇다. 저마다 생각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당으로 모여 있는 이들끼리도 그렇다. 그래서 각기 다른 생각과 처지를 반영해 하나로 묶어내야만 하는데,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와 정당은 위에서 시키면 아래에서 행하는 식의 위계가 분명한 세계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윗선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표를 얻어야 하는 유권자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권자의 마음과 부합하는 한에서 그리한다. 이를 모르고 무시하는 자가 있다면, 애초에 정치할 능력과 자격이 없거나 아예 독재를 하기로 작정한 자이다.

 

혁신이 문제 될 때마다 등장하는 게 리더십이다. 혁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혁신의 의지를 발현하며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혁신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을 조정하는 게 바로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정당학자들이 리더십을 정당다움을 구현하는 중추로 간주하고, 심지어 조물주의 실천에 비견하면서까지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리더십은 -헤드십과 다르게- 지위에 기댄 권력이 아니라, 주변과 뭇사람의 신뢰와 동의에 바탕을 둔 권위를 통해 작동한다. 대통령이나 당대표 등과 같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혁신을 주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래의 생각과 처지도 잘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 뭇사람에게 나의 리더는 분명 그런 리더십의 성격을 잘 알고 행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사야 한다. 또 나의 리더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조치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데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시민 총선 관여 활동 다시 지펴내야

이미 여기까지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은 혁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집권세력이든 야당세력이든 혁신을 가능케 할 리더십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만약 리더십이 작동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태도를 취하거나, 그런 의견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만약 들을 시간이 아직 없었다면, 찾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제일 먼저 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집권세력은 구청장 보선을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전국적 사건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 사건의 정치적 의미 해석에 걸맞은 행동을 준비해놓지는 않았다. 야당세력은 이에 편승해 구청장 보선 결과를 집권세력 실정의 바로미터로 몰아갔지만, 그 실정을 넘어설 수권세력에 부합할 구상과 계획을 만들어놓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혁신을 내세워도 지금까지 해왔던 체제와 전략이 유지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렇지만 혁신과 리더십 부재의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인들도 그렇지만, 시민들은 특히 더 그렇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행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의 쓰임새와 의미가 정치학 교과서에서 칭송하는 바와 달리 한정적임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거무용론이나 투표 불참론에 빠져들 일은 아니다. 또 둘 다 미워하면서도 결국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시민 주도의 새 정치판을 만들어야 한다. 작금의 정치판에서 혁신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시민들이 나서서 내년 총선의 의미를 앞서 규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표를 줄 세력을 만들거나, 기성정당들이 따라오게끔 만들어야 한다. 섣불리 -3지대론을 기치로- 새 정당을 만들어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입장에 설 일도 아니다. 작금의 상황은 결국은 기존의 정치판과 게임의 규칙 속에 들어갈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기대하는 때가 아니다. 누차 반복되어온 제3당의 등장과 쇠퇴와 사멸 속에서 그것의 허망함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을 계기로 선거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권심판 혹은 야당심판과 같은 단순 선택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재명 vs 윤석열 3차전으로 치러서도 안 된다. 승패 결과에 상관없이 기성정치세력 간 적대성만 더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미 경험해온 바와 같이 승패 결과 자체를 제외하고는 서민 삶의 고통 해소 측면에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 국제정세의 군사화-기후위기의 심화-민생파탄을 극복하기 위한 의제-담론-정책을 두고 겨루게 하되, 그 내용 평가의 기준을 정당이 시민과 함께 혹은 시민 주도로 만드는 장으로 세워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간에 들어 저조해진 시민의 총선 관여 활동을 다시 지펴내야 한다. 현실 정치가 망가진 데에는 의제-담론-정책에 대한 정치권 밖의 시민참여에 기반한 사회적 압력과 영향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팬덤밖에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기성정당들이 진짜 혁신을 하겠다면 팬덤을 넘어선 공적 차원의 시민정치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고 연계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공약개발과 후보자 선정 등에 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아예 공천권의 상당 부분을 시민에게 내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기성정치, 사회적 압력으로 바꿔야

이당도 저당도 아닌 제3당을 기치로 한 세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당 자체가 아니라, 그들 정책의 시대적 조응성과 시민적 개방성을 중시해야 한다. 일단 제3당은 거대 양당의 혁신을 유도할 지렛대로 삼는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의 정당정치환경과 준비세력의 속도와 역량을 보면 제3당이 그 자체로 대안세력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 충족과 같은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관여도 증대에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초점을 둬야 한다. 3당이라는 존재 자체가 또 다른 하나의 정파가 아니라, 정치의 탈바꿈을 바라는 상식 있는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와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보수나 진보 혹은 그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중도라는 이름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체가 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끼리끼리 뭉쳐 자기들이 먼저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정해놓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는 건 복잡다단한 삶의 세계와 현실에 들어맞지도 않지만, 설사 들어맞는다 해도 호응을 얻기는커녕 귀를 기울이게 할 수도 없다. 새로이 정당을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내용과 형태의 실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기대하지 않고 있다 해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오랜 세월 이미 제3당이었던 정의당과 같은 군소정당도 이와 같은 선상에서 재창당 전략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총선에서 바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다.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분명치 않다. 계속되는 고용과 소득과 주거 불안정함에 고물가-고금리 현상마저 더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삶의 현실이 녹록지 않아 특히 그렇다. 하지만 시민 주도의 정치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치 지성의 핵심을 상기하는 것은 기나긴 여정의 시작을 도모함에 있어 무의미하지 않을 듯하다. 정치 지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성정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압력과 도전이 없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둘째, 그 압력과 도전이 제 정치세력의 혁신 경쟁을 촉발하는 데로 작용해야 한다. 셋째, 그 혁신경쟁의 결과는 특정 정치세력의 선거 승패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시민 주권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 시민주권은 투표권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 관한 정책 결정권의 행사를 통해 구현된다. 이를 염두에 둔 정치혁신의 노력이 일단 다음 총선에서의 선택 기준일 수 있으리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 23.10.16

 

 

지도자의 품격

며칠 전 서울대는 세계 한인 통일평화 최고지도자 과정이란 이름 아래 세계 한인 리더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상을 웃도는 지원자들로 프로그램은 성황을 이뤘다. 세계 각국에서 1년에 두 번 서울대에 들어와 각각 34, 56일 오프라인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사이 3개월간은 온라인으로 수강해야 하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대해 교내에선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열기가 남달라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

 

본 프로그램에는 하태경·이인영 두 현역 의원과 윤영관·정운찬·반기문 등 전직 관료와 정치 지도자들이 열강에 나섰다. 한국 사회의 중도좌우를 망라하는 최고 지도급 인사들이다. 이분들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과 질의, 토론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강의에 대한 청중 평가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다.

 

무릇 지도자의 품격과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론 화려한 언변으로 좌중을 사로잡고, 때론 외모나 옷매무새 같은 신체적 장점이 모든 걸 압도하기도 한다. 말과 글, 외모 외에도 몸말, 보디랭귀지가 남다른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보디랭귀지도 연습과 학습에 의해 체현되는 건 마찬가지다. 패션에도, 드라마에도 유행이 있듯이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대치도 유행이 있다. 필자는 청중들이 어떤 정치 지도자를, 그들의 어떤 자질을 평가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강의 열정으로만 따지면 70대 중반에 접어든 정운찬 전 총리가 무선 마이크 하나를 달랑 쥐고 강의실을 오가면서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장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라는 동반성장 구호를 뇌리에 남기기 위해 수많은 에피소드를 던지는 쾌도난마식 강연은 한국 경제학의 인적 자산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드문 장면이었다.

 

대북 정책에 대한 현역 정치인의 두 강의는 그 내용만 비교하면 서로 티키타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런 식의 비교에 익숙한 재외 한인 지도자들의 관심은 두 의원의 강의 내용이나 논리 전개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의 정치 지도자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사심을 떠나 공심으로 뛰고 있는가를 판단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런 청중들에게는 화려한 언술도 중요하지만 신중한 몸말과 진정 어린 응대가 만들어 내는 공감의 설득력도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단상에서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한 국문학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평화의 경제학을 얘기할 때 환호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로 무대를 옮기는 결단을 얘기하며,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가이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할 때도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시종일관 강조한 전환기 한반도에 대한 강의를 곱씹으며,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고국의 지도자에게 이들이 바라는 덕목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언변을 자랑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아니요, 연신 어퍼컷을 날리며 내전을 독려하는 야생의 리더십도 아닌 성싶었다. 기후변화 대책을 역설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몸소 실천한 절약, 생활 속에 묻어 있는 절전의 삶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 서민 속에 자리한 정치 지도자의 품격에 감동의 쓰나미를 느꼈다고들 했다.

 

행사 중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과 인질극 소식이 들려왔다. 인사청문회 도중에 문을 박차고 나가 김행랑이란 별명을 단 장관 후보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막장극의 리스트가 길어져만 가고 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팔리지 않는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현실 세계에 막장이 판을 치니, 막장으로 장사해 온 드라마들이 막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반듯한 정치 지도자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갖기 시작했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신중하고 사려 깊음으로 무장한 준비된 관료들을 찾고 있는 듯하다. 보궐 선거의 결과보다 역대급 투표율이 말해주는 참여의 열정 역시 서울대 최고 지도자 과정에서 확인한 열망과 동일하다. 돌이켜보면 불확실성의 시대, 세계 한인들이 지구촌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라는 유홍림 서울대 총장의 환영사에 모두 환호작약했던 것도, 의례적 갈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랜 정치사상 연구에서 배어 나오는 차분하고 느린 톤의 저음이 전달하는 온화한 리더십과 진정성에 대한 격한 공감이지 않았을까? 다시 철학의 시대가 오려나 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23.10.16

 

 

극우로 달려간 윤 대통령의 배신자 콤플렉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을 특별사면했을 때, 그가 서울 강서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되리라 장담했다. 유일한 단서는 윤 대통령의 배신자 콤플렉스였다.

 

기수 파괴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임명됐고,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를 대놓고 하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끝까지 두둔해줬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자의식이 윤 대통령 영혼의 심연에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몸담았던 전 정권과 싸우는 비슷한 처지의 김태우에게 동지적 유대감을 느꼈고, 그가 구청장으로 복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법원 유죄 판결문을 받아든 지 석달도 안 된 사람을 무리하게 사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극우 행보도 배신자 콤플렉스로 설명된다. 배신자가 아님을 납득시키려면 나라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해야 하고,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통해 실적을 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만이 아니라 집권 1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전 정부 탓을 하고, 거의 모든 걸 거꾸로 돌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책은 큰 차이가 없다. -미 동맹과 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안보 및 경제관도 별로 다르지 않다. 더구나 검찰개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값 안정과 소득주도성장, -미 협상을 통한 종전선언 체결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일련의 개혁이 반발에 직면하거나 수포로 돌아가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사실상 개혁을 포기한 상태였다. 두 당의 차이를 굳이 꼽으라면, 검찰을 사병처럼 쓸 수 있는 권력의 유무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해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단 두개 있을 때, 두 가게는 손님을 더 끌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운데로 모이게 된다는 민주주의 경제 이론’(미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가 1957년 주장한 합리적 선택 이론)의 정합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가운데로 수렴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가 절실했던 윤 대통령은 오른쪽 끝으로 달아나는 길을 택했다. (앤서니 다운스의 아이스크림 가게 이론에 따르면, 이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는 물론이고,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불가피하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훨씬 적게) 늘어났던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부풀렸고, 기후변화 시대의 세계적 추세인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악마화했다. 과도한 감세를 감행했으며, 역대급으로 세수가 펑크 나자 연구개발(R&D)을 비롯한 미래 투자부터 줄였다. 인구 감소의 쓰나미가 경제 축소로 이어지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재정을 줄여 축소 경제를 앞당기고 있다.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택했던 차별화 정책이 나라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념을 앞세우면 실용은 멀어진다.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경제는 좋았던전두환 시대를 언급하며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했고, 경제관료를 대거 등용했다. 전두환 정권이 군인+경제관료정권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검찰+경제관료정부다. 경제 전문가가 경제관료밖에 없다는 인식은 윤 대통령의 낙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윤 대통령의 엘리트주의는 개발독재 시대의 고시 패스인재 수준에 정체돼 있다.

 

게다가 윤석열은 전두환이 아니다. 무지 앞에 겸손했던 전두환과 달리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생각하는 윤 대통령은 경제 정책의 가이드라인도 본인이 제시한다. 참모들은 바이든-날리면처럼 대통령 말을 주워담기 바쁘다. 독재자에게도 직언할 수 있었던 강직한 관료는 이제 없다. 학창 시절 아무리 공부를 잘했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경제는 복잡해졌고, 발전하는 기술을 뒤늦게 이해하기도 벅차다. 한때 마법의 꾀주머니였던 관료들의 캐비닛은 유통기한이 지난 서류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이명박의 자원외교, 박근혜의 창조경제 같은 의제도 윤석열 정부에는 없다.

 

윤 대통령의 무능은 본인이 유능하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거친 성정과 권위주의는 이견의 존재를 원천 봉쇄했고, 검찰에서 터득한 무오류주의는 자정 기능마저 거세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대통령과 여당의 익숙한 대응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사법의 과잉과 정치의 결핍이 낳은 후진국형 관료연합정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경제마저 정권과 함께 쓸려 내려갈까 그것이 걱정될 뿐이다. 이재성 | 논설위원 한겨레 23.10.17

 

 

체면이 사라진 사회

시대 변화와 함께 사용 빈도가 줄어든 어휘 가운데 체면(體面)’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하는 도리라는 사전적인 뜻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체면이 깎이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등 부정적인 용례가 대부분이다. “체면이 서다는 말도 겨우 낭패를 면했다는 수세적인 긍정에 불과하다. 체면이 서도록 일부러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체면치레역시 기분 좋게 쓰는 말은 아니다.

 

실속도 없이 체면만 차리는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악습으로 지목돼 왔다. 나의 내면을 성찰하기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므로 체면에 매여 행동하는 게 바람직할 리 없다. 주로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주어지는 속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다만 대개 그렇듯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체면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좇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이름을 중시하는 삶이 지니는 가치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고 있다.

 

체면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처럼 버리던 시대, 사대부로서 궁형의 치욕을 안고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마천이 죽음을 피하고 궁형을 택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름때문이었다. 사마천으로서는 죽음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명분 없는 죽음이었다. 투항한 장수를 위해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죽는다면, 절의를 위한 죽음으로 인정되기는커녕 그저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 없어지듯 아무런 이름도 없이 허망하게 죽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명한 시간을 사마천은 이름을 남기는 일에 바쳤다. 백이 숙제처럼 훌륭한 이들은 비참하게 죽어가고 도척 같은 천하의 악인은 승승장구 천수를 누리는 부조리를 해결하는 길 역시 이름에 있었다.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음으로써 안연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렇게 잊히고 말 이름들에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겠다는 다짐이 <사기>의 완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와 함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본인의 이름도 지금까지 남았다.

 

나의 이름이 어떻게 남을까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삶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체면을 넘어 이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향 23.10.17

 

 

이륙의 역사와 진보의 조건

세계경제의 성장 역사에서 본격적인 이륙은 1820년대에 이루어졌다. 증기기관이 상업화되고도 한 세기가 지난 뒤였다. 그러나 번영은 서유럽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국가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당시 가장 부유했던 지역은 이후에도 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은 축에 들었다. 이륙의 시동을 먼저 건 나라들은 1870년대부터 출산율 하락을 먼저 경험했다. 기술 변화로 자녀 교육비가 늘어난 탓인지 몰라도, 생산량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던 인구 증가세도 함께 둔화했다. 인구가 정체되면서 인류는 역설적으로 맬서스의 덫(인구 증가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현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경제성장에서 이륙의 역사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제시한 혁신의 경제학에 비춰 파악할 수도 있을 법하다. 혁신 경제학의 중심 생각은 첫째, 성장은 지식의 축적과 혁신의 누적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 둘째, 혁신은 재산권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 셋째, ‘창조적 파괴의 과정인 혁신은 기득권 세력의 방해에 직면하므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 생각은 산업혁명의 설명에 유용하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기술 변화가 과학 원리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성격이 변모했기 때문이다.

 

혁신 경제학의 두 번째 생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경제학자 필리프 아기옹과 같은 내생적 성장론자들은 영국이 앞설 수 있었던 원인을 일찍부터 발달한 특허 제도에서 찾았다. 의회 권력이 강해지면서 재산권 보호가 강화된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나 재산권 보호는 프랑스가 영국보다 더 강했다. 영국은 의회가 재산권 제한에 적극적이어서 프랑스보다 토지 수용이 수월했고 세금도 1인당 두 배를 걷었다. 그렇다면 재산권을 민주적으로 제한하고 기술 독점의 시간적 유한성을 제도적으로 공식화한 것이 어쩌면 성장의 이륙을 자극한 원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편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이륙의 역사와 관련해 혁신 경제학의 세 번째 생각을 강조했다. 사회 변화는 생산을 조직하는 기존 방식과 과거의 사회적 위계에 도전하면서 혁신을 이끌 주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영국은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중세적 가치를 일찍 내던지고 누구나 부자만 되면 인정받는 자본주의 사회로 가장 먼저 변해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존재한 유일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그렇게 영국이 새로운 중간 계층 사람들, 개천에서 난 용들의 나라였기에 산업혁명의 발원지가 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 개천 용들이 딛고 선 계층 사다리는 밑바닥 노동자계급의 처참한 삶을 전제한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에야 못 미치지만,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들은 주 65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신음했다. 최악의 공중 보건 여건과 가혹한 공정도 견뎌냈다. 그래도 미숙련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중세 농노와 별 차이가 없었다. 부자들은 세금 덜 내려고 노동자들을 더욱 비참한 처지로 내몰았다. 보수 정치인들은 미약한 지원과 광범위한 사각지대로 악명 높았던 구빈법을 개악해 혜택을 더 줄이고 문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노동자계급이 의회에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미숙련 노동자들의 처지는 열악했지만 영국은 유럽에서 평균 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에너지 가격이나 기계 대여 비용과 비교하면 영국 탄광 지대에서 노동력의 상대 가격은 확실히 비쌌다. 노동력이 비싼 만큼 기계화를 진전시키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화했으며, 그것도 영국에서 성장의 이륙이 일어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스 경제학의 용어로는 당시 영국 경제의 공급 측면이 임금 주도적이었던 셈이다. 임금 상승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존재했다는 뜻이다.

 

세계경제의 이륙 역사는 오늘 한국경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노동자계급이 제도권 정치에서 대표되지 못하는 가운데 극우 세력이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 공세에 열을 올리는 닮은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연 이 반동의 땅에서도 노동의 정치가 대항력을 확보해갈 수 있을까. 비록 제한된 진보였지만 계층 이동성이 과거 영국에서 진보의 조건이 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기회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국제기구들의 포용적 성장 담론과 맥이 닿는 경험이었다. 실증 분석에 따르면 한국도 공급 측면이 임금 주도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경제는 어떤 성장의 역사를 써갈 수 있을까.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경향 23.10.17

 

 

부사, 문득

부사(副詞)는 이름부터 딸린 식구 같다. 뒷말을 꾸며주니 부차적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더부살이 신세. 같은 뜻인 어찌씨는 이 품사가 맡은 의미를 흐릿하게 담고 있다. 글을 쓸 때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 모든(!) 글쓰기 책엔 부사를 쓰지 말라거나 남발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문장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동사)로만 되어 있다는 것. 부사는 글쓴이의 감정이 구질구질하게 묻어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단다. (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분량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것도 부사군.)

 

그래도 나는 부사가 좋다. 개중에 문득을 좋아한다. 비슷한 말로 퍼뜩이 있지만, 이 말은 갑자기보다는 빨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퍼뜩 오그래이’). ‘문득은 기억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는 기억하는 걸 다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너무 깊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 오른다. 그래서 문득떠오른다와 자주 쓰인다.

 

망각했던 걸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문득은 성찰적인 단어다. 예측 가능한 일상과 달리, 우연히 갑자기 떠오른 것은 정신없이 사는 삶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한다. 기억나지 않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오르면 자신이 겪어온 우여곡절이 생각난다. 작정하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유도 모르게 솟아나는 게 있다니. 나에게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기대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인생, 허덕거리면서도 잘 살아내고 있다.

 

당신은 이 가을에 어떤 부사가 떠오르는가.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겨레 23.10.19

 

오웰의 자유와 윤석열의 자유

이중사고의 달인 윤석열의 자유는 빅 브라더의 자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유독 자유자유민주주의가 많이 등장한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동일한 맥락에서 공산’, ‘전체주의같은 말도 잦다. 실제로, 한 언론사에서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문 23개를 분석해 단어별 빈도를 살핀 결과, 자유(71), 자유민주주의(44), 국가(36), 세계·정부·평화(28), 경제(27), 북한(25), 보편적 가치(24), 공산(12), 전체주의(8), 공산전체주의(7)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합은 총 4회 언급되었다. ‘통상적인대통령의 언어 문법과 사뭇 다르다.

 

물론, 여기서 염두에 둘 것은, 모든 단어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맥락과 흐름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자유나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나 감시주의, 특권주의와 대립하는 맥락에서는 매우 정당하고 고귀하다. 반면, 이것이 시장의 자유나 자본증식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할 때는 오히려 인간적 자유나 생태계 조화를 해치는 결과를 부르기 쉽다.

 

파시즘뿐 아니라 영국의 제국주의에도 저항한 오웰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한 평생 파시즘이나 공산전체주의에 대항해 정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일관되게 싸운 조지 오웰(1903~1950)을 떠올린다. 물론, 그가 파시즘이나 공산전체주의에 저항했다고 해서 그를 자본이나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시스템을 옹호했다고 보면 오판이다. 세상은 결코 흑백논리식 이분법의 시각으로 설명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발상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지극히 위험하고 해롭다.

 

오히려 그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 이전에 조국(祖國)’인 영국이 제국주의 시스템을 구축, 인도나 아프리카 등 온 세상을 한갓 시장이나 원료, 노동력 공급지로 여기고 맘대로 억압, 수탈, 파괴하는 것에 대해 근원적 저항감을 드러냈다. 그가 (식민지 인도의 대농장주인 조부나 인도에서 식민지 공무원을 한 부친에 이어) 청년기에 제국 경찰신분으로 버마(미얀마)에 머문 5년의 경험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특히 오웰은 1936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참전한 경험(반파쇼 저항군)까지 있다. 그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에서 그는 파시스트 병사 하나가 바지춤을 추스르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쏠 수가 없었다. 그는 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이었기에, 그런 사람을 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결코 중립이 없는 전쟁 상황이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파시즘과의 싸움이었지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 깊은 성찰이 곧 오웰의 자유 개념을 형성한다.

 

오웰의 자유 개념이 좀 더 노골화한 것은 <카탈루냐 찬가> 속의 반파쇼 민병대(의용군)의 분위기였다. 오웰은 특히 노동자 민병대에서 이상적인 자유 사회를 체험했다. 지휘관과 사병은 역할 분담이 다를 뿐, 모든 점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일례로, 사병이 사단장에게 담배 한 대 달라고 할 정도였다. 월급이나 대우에도 차이가 없고 체벌도 없었다. 상명하달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규율을 정하며 체계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면서도 혁명을 말하는 이중사고

한 걸음 더 나가 오웰은 혁명이후의 사회에서조차 자유와 평등이 억압당할 수 있음을 <동물농장>이나 <1984>에서 실감나게 묘사했다. <동물농장>, 존스라는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장원농장동물들이 지도급 돼지들(나폴레옹, 스노볼, 스퀼러)의 지휘 아래 혁명을 일으켜, 인간을 내쫓고 새 세상인 동물농장을 건설한 얘기다. 기본 이념은 모든 동물이 평등한이상촌이었는데, 7가지 계율(두 발로 걸으면 적, 네 발이나 날개 동물은 친구, , 침대, , 살생 금지, 모든 동물은 평등)로 표현됐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철학 아래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말처럼, ‘동물농장에서도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이상주의자 스노볼이 제거된다. 권력주의자 나폴레옹 아래 갈수록 자유는 억압되고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초창기 구호도 퇴색하고 빈부 격차도 커진다. ‘동물농장이 과거 장원농장의 오류를 반복하는 셈! 지도부는 이제 인간 흉내를 낸다. 구호 역시,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로 둔갑했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를 넘어 어떤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로 바뀐다. 오웰은 이런 식으로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면서도 겉으로는 혁명입네하는 그 모든 위선들, 이중사고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했다.

 

역시 압권은 <1984>이다. 이는 동물농장이 이룩한 혁명 세상을 다시 인간 사회(오세아니아) 안에서 세밀히 비춘다. 이 혁명 세상은 한마디로 감시사회. 권력과 정보를 독점한 당과 빅 브라더가 온 사회를 지배한다. 그 지배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당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제코자 중요한 단어들을 금기시한다. 단어 사전에서 아예 예민한 단어는 빼버리는 식이다. 일례로, 나쁜, 탁월한, 훌륭한 등의 단어 대신 좋은(good)’이란 말 하나를 변주해 모두 표현(ungood, plusgood, doubleplusgood)하는 식!

 

자발적 순종이 완성하는 자유는 곧 예속의 전체주의

다음으로, 현재의 당이 늘 옳음을 보이기 위해 과거의 기록(기억)을 조작, 수정한다. 이 일은 주인공인 윈스턴이 행하는 직무로, <동물농장>에선 돼지 지도부 중 참모인 스퀼러가 했던 일이다. 기록도, 책도, 그림도, 심지어 거리 이름까지 바뀌었다. 끝으로, 당은 무지한 대중이 각성하지 못하도록 늘 전쟁 상태를 유지한다. 전쟁은 지배층에게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데, 그간 축적된 사회적 잉여를 전쟁이나 무기로 소모해버림으로써 노동대중이 더 나은 삶을 요구할 근거가 되는 물적 토대 자체를 없애버리는 공식적수단이다.

 

그러나 혁명 당시와 달리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깊이 느낀 윈스턴은 진정으로 이런 세상을 바꾸고 싶다. 비슷한 입장을 가진 줄리아와 우연히 만나 은밀한 사랑도 나누고 친밀한 관계 속에 세상 변화를 함께 꿈꾼다. 그러나 전방위 감시장치인 텔레스크린이 없는 골동품 가게 2층을 밀회 장소로 쓰던 윈스턴과 줄리아는 갑자기 사상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알고 보니, 평소의 냉소적 태도에 자기들 편이라 굳게 믿었던 오브라이언이 사상경찰의 우두머리였던 것!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말한다. “우리는 수동적 복종이나 폭력적 굴복에 만족하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건 자발적 순종이야. () 우리에게 저항하는 자를 우리가 죽이진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 내면을 장악해 다시 만들지. () 그렇게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데, 그저 외관상이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다해 충성하게 하는 거라고.”

 

그리하여 숱한 고문과 치욕, 극단적 공포를 겪은 윈스턴은 마침내 포기하고 만다. 그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자기 신념을 버렸을 뿐 아니라 줄리아에 대한 사랑마저 배신한다. 그 대가로 그는 안락한 삶을 얻는 대신 내면은 공허해진다. 그는 끝내, 사상경찰 오브라이언의 의도대로, “빅 브라더를 (순종을 넘어) 사랑하게 됐다. 이로써 전쟁이 곧 평화, 자유는 곧 예속, 무지는 곧 힘이라던 전체주의 구호가 마침내 완성된다. 여기서, 작가 오웰이 일관되게 추구한 자유는 영혼의 자유, 내면의 자유다.

 

이중사고의 달인 윤석열의 자유는 빅 브라더의 자유

반면, 윤석열 대통령이 수시로 강조하는 자유는 오웰이 비판한 자유, 즉 표리부동의 자유, 엘리트의 자유, ‘빅 브라더의 자유에 가깝다. 윤석열의 자유는 비교적 일관되게 반공주의, 자본주의, 시장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자유, 정신의 자유가 아닌, 자본의 자유, 권력의 자유라는 냄새를 풍긴다. 그는 이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오웰이 언어에 대한 포장과 과장을 지극히 혐오한 반면, 윤석열은 언어에 대한 포장 기술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오웰이 (거짓을 진짜처럼 믿고, 자유를 말하면서도 자유를 억압하는) ‘이중사고를 맹렬히 비판한 반면, 윤석열은 이중사고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웰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속에서 발견되는 부자유, 불평등을 가혹하리만치 비판했다고 해서 마치 그가 자본주의나 반공주의를 정당화한 것처럼 착각해선 안 된다. 오웰의 시각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막론, 그 어떤 부자유나 불평등도 위선이라 보는 입장이었다. 요컨대, 그가 진실로 추구한 것은 그 어떤 이념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물, 생물, 사람과의) 자유롭고 친밀한 관계였다.

 

오웰이 최후의 작품인 <1984>를 집필하기 전에 쓴 두꺼비에 대한 단상은 그런 태도를 잘 증언한다. “나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나무와 물고기, 나비, 그리고 두꺼비에게 느꼈던 사랑을 간직함으로써 조금 더 평화롭고 즐거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반면에) 철과 콘크리트를 제외한 그 무엇에도 감탄하면 안 된다는 교리가 설파된다면 인간이 남아도는 에너지를 배출할 출구는 오직 증오와 지도자 숭배밖에 남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을 온 사회에 구현함으로써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리더들은 바로 이런 오웰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진보 진영의 비판에 대해 수시로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며 증오감만 물씬 발산하는 (‘콘크리트 공화국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은 지도자 숭배놀이는 그만 하고, 세계적 작가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읽고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물론 이는 다른 정당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별로 기대할 순 없겠지만.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시민언론 민들레 23.10.19

 

평화의 적' 이스라엘 극우정권, 한국은 어떤가

야훼가 약속한 땅안에 있는 지붕없는 거대 감옥

 

서울시의 1/3밖에 안 되는 가자 지역에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중 14세 이하 인구가 절반에 가깝다. 바다에 닿은 곳을 제외한 동남북 방향은 높이 6m, 길이 65km의 장벽이 둘러싸고 있다. 전기는 하루에 절반 동안만 들어오고, 인구의 80% 이상이 정수되지 않은 물을 마신다. 실업률은 46%에 이른다. 가자 지역은 세상에서 제일 큰, 지붕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이유다.

 

대중 조작의 천재인 네타냐후 정권이 이스라엘을 오래 지배해 왔다. 부패 사건으로 실각했던 그는 작년 11월 총선에서 연정을 구성하면서 유대교 근본주의 정당인 종교적 시오니스트당과 손을 잡았다. 그들은 요르단강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야훼가 약속한 땅에 유대 국가 건설을 최고 목표로 삼고, 점령지역인 가자와 서안 지구에 대한 정착촌 확대와 팔레스타인 정체성 말살 정책을 지휘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일상적 구조적 폭력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은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왔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이 수반하는 피치 못할 일부 폭력은,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인 1명이 희생될 때 팔레스타인인 60명이 죽어나간다. 폭력과 저항폭력이 같은 차원에서 논의되고 비교되고 평가될 수는 없다. 영국 BBC 방송은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를 테러리스트집단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1 60, 구조적 폭력과 저항 사이의 비대칭 목숨값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한 지난 7. 하버드 대학의 34개 학생단체가 가입한 팔레스타인 연대 위원회(PSC)’폭력을 일으킨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에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수백만 명은 지붕 없는 감옥에서 살도록 강요받았으며, 가자 지구의 대학살은 이미 이스라엘에 의해 시작되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느리게, 갑작스럽게 죽음의 상태에서 살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인종차별과 강제점령, 이 탄압에 대한 미국의 공모야말로 이 모든 폭력의 원천이라고 성명은 분명히 밝혔다.

 

가자 지구는 커다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비유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비극에서 가자 지구를 왜 떠올리지 못할까. 어제의 피해자 유대인은 오늘의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교훈은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독일 철학자 헤겔이 떠오른다. 유대인은 자신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가.

 

일본 식민지 군대에 저항한 우리 독립군을 테러리스트집단으로 부르는 한국인이 어디 있을까.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어디 있을까. 일본 군대와 우리 독립군 둘 다 틀렸다고 말할 한국인이 어디 있을까. 일본군 밀정과 친일파 한국인을 빼고 말이다.

 

이스라엘 비판과 유대인 혐오는 다르다

서양 그리스도교는 유대 민족이 예수를 죽이게 했다며 오랜 동안 악의적으로 유대인을 비난해 왔다. 예수 당시 모든 유대인이 예수 사형에 찬성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의 후예들에게 예수 죽음의 책임을 추궁할 수도 없다. 현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그 정책을 그리스도교인이 무조건 지지할 의무도 없다. 이스라엘 정권의 잘못에 대한 비판이 곧 유대인 혐오는 아니다.

 

정의와 평화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에 누가 잘못했는지 모르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유대교 랍비들의 시위가 뉴욕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어제의 유대인을 동정하고 편들듯이, 오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정하고 편들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저항을 지지한다.

 

최근 수십 년간 전 세계가 보아온 위기 중에 가장 위험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제이피 모건 대표가 얼마 전 말했다. 우리 시민들은 지금 국제정세가 어떻게 될지 불안과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인 민주주의 실현, 평화를 실현하는 진지한 노력, 이 세 가지를 강하게 촉구했다. 그의 말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한반도 상황에도 충분히 고려하고 적용할 가치가 있다.

 

네타냐후 정권은 이스라엘 대법원의 권한을 제거하여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사법부 기본법 개정안'을 지난 1월 공표하고 합법적 독재를 밀어붙이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에게서 윤석열 정권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전쟁으로 돌파하려고 하듯이, 윤석열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전쟁으로 모면하려고 잔꾀를 부릴 수도 있다.

 

민주주의 실천이 평화 생명 재산 안전 등 모든 것의 기본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보호받지 못하고,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로 인해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 민주시민들은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해야 한다. 동시에 대한민국 건국이념이기도 한 민주주의를 끈질기게 실천해야 한다.

 

평화가 밥 먹여 주는가. 당연히 그렇다. 평화는 우리에게 밥도 먹여주고, 목숨과 재산도 지켜준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진지한 노력 또한 중요하다. 두려움과 불신으로 지탱되는, 거짓 안보에 기초한 안정과 평화 보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전쟁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 없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의 말이다.

 

팔레스타인 역사와 현실을 보면, 심각한 정치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겹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억압적 구조적 폭력과 심각한 불공정이 있다. 무력감과 절망에 잠긴 시민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우울증에 빠진 시민들에게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조언은 뻔뻔한 사기요 속임수에 불과하다.

 

무기력을 긍정하는 것이 정치적 우울증에 대한 첫 처방이 될 수는 없다. 무기력을 극복하고 우뚝 일어서야 한다. 악의 세력에 대한 저항 없이는, 정치적 우울증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는 것이 평화와 생명과 안전을 되찾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시급하고도 유일한 길이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23.10.19

 

 

판결의 무게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 독일 판결문 상단에 적혀 있는 문구다. 사법권도 국민주권의 원리에 충실함을 상징하는 머리말이다.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수임기관으로서 내리는 판결이니 무게감은 엄청나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언론에서 판결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정치인이 관련 판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 시절, 독일 연방법원을 방문해 재판이 언론이나 여론의 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있는지 물었을 때, 범죄나 판결에 관한 언론보도가 거의 없으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판결문에는 독일 판결문 머리말 같은 거창한 문구는 없다. 그렇다고 독일 판결문보다 권위와 중량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니 판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수십년 경력의 대법관이 내리는 대법원 판결은 물론이고, 하급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판사가 국민의 이름은 아니더라도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숙고해 내린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시비 걸 정도로 가볍지 않다. 대법원 확정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권으로 날려버릴 만큼 중량감 없는 결과물이 아니다. 영장판사 한 명이 내린 결정이라고 사법 후진국 소리를 들을 정도는 더욱 아니다. 영장판사를 향한 저주와 조롱을 담은 조화가 대법원 담벼락을 둘러쌀 정도로 허술하지도 않다.

 

이제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이 내려지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언론에 대고 하기도 하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판결이면 환영하고 그렇지 않으면 좌편향, 몰상식, 함량 미달 법관 운운하며 사설 형식을 빌리거나 논평,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판결한 판사의 신상을 털거나 고소, 고발도 난무한다.

 

근거가 있는 정당한 비판이면 당연히 받아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사법부와 판결이 비판적 공론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입법의 사법 견제가 민주주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재판을 방청할 수 있고 판결문도 공개하는 이유다.

 

문제는 확정되지도 않은 하급심 판결을 감정을 섞거나 이념의 잣대로 난도질하고, 판결이 아니라 판결한 판사의 자질과 성향까지 들먹이는 것이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가 보장된다고 해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기자나 정치인이 사건의 전말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재판의 전 과정을 방청한 것도 아니다.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사안일 수 있는 데도 세세한 부분은 모른 채 대략의 줄기만 알고 판결문을 접하면 잘못된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법관은 각자가 재판상 독립돼 있으므로 유사하게 보이는 사건에 대해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다. 법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고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 필요한 증거에 대한 심증 형성이 다를 수 있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왜 똑같은 사안인데 판결이 제각각이냐고 비판한다. 형량도 판사마다 다르다고 뭐라 한다.

 

법정에서 양 당사자의 치열하고 지난한 공방을 다 지켜본 사람은 재판부뿐이다. 검사와 피고인과 그 변호인도 참여하나, 그들의 시각은 주관적이고 일방적이다.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관찰한 사람은 판사뿐이다. 사건에 관해, 양형 사유에 관해,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지에 관해 가장 잘 알고 불편부당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판사다. 그가 헌법과 법률, 양심을 걸고 내린 판단이니 신뢰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인, 시민의 선 넘은 개입은 사법 불신을 부추길 수 있다.

 

심급제도가 있는 이상 정당한 비판이라도 언론이나 정치권은 최종심까지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에 의해 재판이 좌우될 위험성이 커진다. 사법의 외부로부터의 독립은 멀어질 수 있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경향 : 2023.10.19.

 

 

설명 보도의 깃발

어느 시인의 문장 그대로,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깃발처럼 그것은 펄럭였다. 출입처와 신문사를 오가는 우물 안에서 왜 이러고 사는지 헷갈렸던 기자는 어쩌다 살펴본 미국 퓰리처상 홈페이지에서 깃발을 보았다. 맑고 곧은 저널리즘의 푯대 끝에서 백로처럼 날개를 펼친 깃발들이 손짓했다. 이리 와, 이 깃발을 따라 기사 써, 아우성치고 있었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s). 사진=퓰리처상 홈페이지

 

예컨대 공공 봉사’(public service)의 깃발은 오직 공익을 높이는 게 기자의 최고 지향이라며 높은 곳에서 펄럭였다. ‘수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의 깃발은 검·경의 발표를 받아쓰지 말고, 기자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 권력을 고발하라고 엄중하게 펄럭였다.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독자를 기사에 몰입시켜야 한다며 부드럽게 펄럭이는 피처 쓰기’(feature writing)의 깃발도 있었다. 10여 개 부문을 일별하면서 눈이 딱 뜨였다. 이런 기사 쓰면서 기자로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영 알쏭달쏭한 깃발이 있었다. ‘설명 보도’(explanatory report)였다. 처음엔 한국의 해설 기사인가 싶었다. 한국에서 해설 기사는 익명 취재원의 말에 기자의 관심법’(觀心法)을 뒤섞어, 의도와 손익을 평가하고 향후 전망을 담는 (주로 정치 기사의) 장르다. 퓰리처상의 설명 보도는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 자료를 보면, ‘중대하고 복잡한 주제를 다양한 도구로 취재하여, 매끄러운 문장과 명쾌한 표현으로 온전한 실체를 보여주는 기사가 설명 보도다. 중대하고 복잡한 주제의 실체를 온전하고 명쾌하게 보여주는 기사란 도대체 무엇일까.

 

2023년 이 분야 수상작은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가족 격리 정책을 설명한 <디 애틀린틱(The Atlantic)>의 기사였다. 2022년 수상작은 제임스 웹 천체 망원경의 연원과 가치를 설명한 <콴타 매거진(Quanta Magazine)>의 기사였다. 그밖에 코로나, 기후 위기, 금융 위기, 조세피난처, DNA 검사, 예멘 민주화, 애플(Apple) 등을 다룬 기사가 설명 보도 부문에서 수상했다. 정책 이슈는 물론 금융, 과학, 의학 분야의 기사들이 많다. 서로 다른 주제를 다뤘어도 공통점이 있다. 복잡하고 전문적이지만 사회, 세계, 문명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이슈를 기자가 완전히 소화하여 쉽고 친근하게 보도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2018년 수상작 장벽’(The Wall)이 있다. 지역 신문 <애리조나 리퍼블릭(The Arizona Republic)>과 전국 신문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가 공동 보도했다. 3,300km에 이르는 미·멕시코 국경을 횡단하면서 영상으로 기록했다. 몇몇 지역을 직접 찾아 미국인과 멕시코인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 지리정보분석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텍스트 기사,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팟케스트, 가상현실의 방법으로 보도했다. ‘장벽이 과연 무엇인지 완전히, 철저하게, 그러나 친근하고 직관적으로, 독자의 여러 취향에 맞춤한 모든 언어를 동원해 알려주겠다는 기자들의 태도와 야심이 가히 압도적이다.

 

애리조나 리퍼블릭(The Arizona Republic)과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가 공동 보도한 기사 '장벽(The Wall)' 갈무리

 

이런 기사를 접하면, 엄마와 아이가 마주 앉은 밥상 머리가 떠오른다. 싫고 귀찮다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면서, 거친 음식을 꼭꼭 씹어, 부드럽고 따뜻하고 달달한 덩이로 빚어진 필수 영양소를 작은 입에 쏙 집어넣는 일의 지혜와 정성이 설명 보도에 담겨 있다.

 

사실 보도에서 분석해석의 가치가 무엇인지 지난 몇 편의 글에 적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기자의 내면에서 진행된다. 설명 보도는 그다음 단계에 더 주목하는 장르다. 어렵게 수집하고 검증한, 뭉치를 파헤쳐 연관을 해석한, 중요하고도 복잡한 정보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일에 각별한 신경을 쏟는 기사가 설명 보도다. 퓰리처상 위원회가 이 부문을 추가한 것은 1998년이었다. 세계의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증대하던 시기였다. 21세기 저널리즘의 역할이 설명 보도에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동유럽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중동 전쟁이 시작됐다. 장관 후보자 A에 대한 검증이 끝나지 않았는데, 문제적 후보자 B가 나타난다. 재정 위기가 있고, 복지 위기가 있는데, 기후 위기도 중대하다. 이 정도로 세상이 복잡해지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다. 다만, 기자의 행운은 세상의 불행과 함께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깃발로 삼을 정보가 귀해졌으니, 기자의 일도 많아졌다. 설명 보도는 그 일을 감당해보겠다는 기자들이 내건 깃발이다. 기자 일이 무엇인지 혼란스런 기자들을 바로 잡아줄, 백로처럼 날개를 펼친 깃발이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2023.10.21

 

 

법원의 판결과 언론 공공성

언론의 자유나 공공성을 법원 판결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 불행한 현실이다. 언론의 자유나 공공성이 현실에서 침해당하거나 위협에 처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올바른 판단으로 바람직한 원칙이 정립되는 경우도 충분히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관습법의 전통이 있는 미국 대법원의 판례로 정착된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나 현실적 악의이론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선 2012MBC 노조가 진행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례가 대표적이다. 낙하산 사장과 방송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에 참여했던 핵심 노조원들을 MBC가 업무방해 혐의로 해직시키자 해직자들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남부지방법원은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마련(방송의 공공성)은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이나 근로 조건에 관한 것으로 쟁의 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언론노조가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언론 공공성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판례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언론 공공성을 보장한 획기적 판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반면 법원의 판결은 권력의 언론 탄압을 정당화시킬 위험성도 안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김의철 전 KBS 사장이 제기한 해임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가 남은 방송통신위원장을 해임하고 임기 만료된 위원의 후임 임명을 보류한 3인 비상 체제가 공영방송 KBS 이사장을 해임하는 등 이사회 구성을 바꿨다. 구성이 바뀐 이사회는 신속히 KBS 사장을 해임했다. 김의철 사장은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임기가 202412월까지라서 본안 소송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이익의 침해가 심하다면서 해임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해임 처분 당시 KBS의 기자와 PD, 간부들 상당수가 전국언론노동조합(KBS본부) 출신이고 신청인이 취임한 이후 임명된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 2명이 모두 위 조합의 위원장 출신인 것으로 보이고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주요 간부 임명동의제 확대가 사장이 상위 직위로의 승격임용을 한다KBS 인사규정(17)에 저촉되고, ‘내부 규정에 따라 이사회 심의·의결로 이뤄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KBS 내 다수 노조다. 더군다나 기자나 PD들 중 대다수가 가입한 노조다. 기자·PD 직종의 간부 상당수가 본부 노조 출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아닐까? 소명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판사가 이를 무시했을까? 주요 간부 임명동의제 확대가 인사규정에 저촉된다는 논리도 합리적이지 않다. 인사규정상 사장에게 권한이 귀속된다고 해도 사장이 단체협약을 통해 관련 직군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그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정권이 언론을 장악해 강요한 것도 아니고, 노사가 자발적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이다. 법원이 자율적으로 협의한 사안까지 규율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법원은 언론의 공공성 확보 투쟁의 역사성을 부인했다. 1980년대까지 쿠데타 독재 정권들은 공영방송 사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내부 구성원의 저항이 있었다. 언론 민주화 투쟁이다. 사장 임명이 중요한 것은 언론 보도의 공공성을 좌우할 주요 간부의 임명 권한이 사장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장이 누가 되든 부당한 인사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내부 자율성(내적 자유)을 확보하는 것이 언론 공공성 보장의 핵심 의제가 된 것이다. 임명동의제는 그 성과이다. 더군다나 김의철 사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른 언론사에도 권장되어야 할 사안을 인사규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은, 언론의 공공성에 역행하는 판결이라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경향 : 2023.10.22.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지역신문에 기고된 의사들의 칼럼에서는 종종 유사한 한탄이 등장한다. 진단을 못 믿겠다며서울의 대형병원 투어를 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 말이다.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다쳐서 지방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왜 서울로 안 갔는지를주변에 자꾸만 해명해야 하는 우주의 기운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를 탓하면, 자신은 병원 갈 때 의사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말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EBS 프로그램 <명의>는 좋은 취지였겠지만, 명의에 출연한 의사 명단이 오늘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맛집처럼 떠도는 시대의 단면일 거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 앞에서 의사를 새로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과학고 출신이라는 묘한 문구가 이해됐다. 의사라고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저 투박함에, 오만함보단 애잔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서도, “능력 있으면 서울에 있었겠지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잘난 걸 하나라도 더 강조해야 하니 말이다.

 

지역의료를 불신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의사가 유명하면 사람이 몰리고, 그러면 임상사례가 풍부해지면서 시스템도 좋아진다. 그러면 그 의사에게 배우려는 전공의도 많아지고, 환자가 계속 오는 등의 선순환이 줄줄 언급된다. 이를 부정문으로 바꾸면, 지역의료의 악순환도 쉽게 설명된다. 이 고정관념이 머리에 들어오면, 같은 의료서비스일지라도 지역에서는 더 불친절하다, 더 과잉진료한다고 느낀다. 짜증의 크기만큼, “병원만큼은 서울이 최고라며 주변에 강력히 권장한다. 이 말을 몇 번 들으면, 지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동일치료를 나중에 후회할까봐 사는 곳을 떠나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반복되면, 의사가 지역에 오지 않게 되고 사회시스템은 엉망이 된다. 모든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게 아니다. 지역의료 불신의 본질을 제대로 짚자는 거다

 

최소한 의사들은 당사자 문제인 만큼, 이를 사회적 해결과제로 볼 줄 알았다. 하지만 3년 전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란에서 지역병원에선 배울 게 없다는 이야기는 의사들 입에서부터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의료격차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아니고서야, ‘아프다고 병원 못 간 적 있나요?’ ‘한국처럼 전문의 만나기 쉬운 곳이 또 있나요?’라는 팻말을 과감히 들 순 없었을 거다. 억울하면 서울에 살라는 수준인데, 마치 의사는 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랐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역의료 해결을 위한 의사 정원 확대가 논의되면 의료계는, 그 방법으론 어림도 없다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이유를 든다.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요구가 관철된들, 죽어도 지역은 싫다는 분위기가 의사 내부적으로견고하게 있는 한 문제는 그대로일 거다. 의사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을 서울 남쪽이 아니라 아래로 보며 자란 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돼 있으니 말이다. 생애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이 거친 편견을 의사들이 감추는 한, 의사 정원 확대 논의는 곁다리만 짚게 될 거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경향 : 2023.10.22.

 

 

팔레스타인을 위하여

제정신으로 볼 수 없는 일을 제정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누가 계속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인간인가, 수없이 되묻는 시간이다. 팔레스타인 전쟁 속보를 부산역 대합실에서 처음 들었다. 함께 모여 뉴스를 응시하던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눈동자 속에는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길, 일요일 오후 동서울터미널에는 동부전선으로 귀대하는 군인들로 붐빈다.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의 군인을 보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땅. 아무리 모른 척하며 살아가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그 진동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이곳의 하늘 위로 겹쳐진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이 땅의 비극과도 닿아 있다. 강대국 간의 전후 협상이 비극의 씨앗이 되고, 전쟁이 끝났을 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던 곳. 1948,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해는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분단 상태로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해다. 이 땅의 일제강점기는 36년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은 올해로 75년에 이른다. 만약 이 땅의 식민지 역사가 그때 끝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서,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임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전쟁에 대한 기사와 댓글은 압도적으로 이스라엘 편이다. 무장독립운동은 점령국의 입장에선 언제나 폭동이고 테러로 규정되는데,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일본 우익에 대해선 식민지 민중의 입장에서 분노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점령국이 아닌 약소국의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선 점령국의 입장에 선다.

 

이제 하마스는 끝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없앨 명분을 잡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쌍하게 됐다.’ 가장 선량한 사람들의 태도라 할 만한 동정심도 여기에 머문다.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가 지금 일어나는 보복학살의 명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기습에 의해 개전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이스라엘 군대와 민병대에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230명에 이른다. 2022년 한 해 희생자는 204명이었다. 하마스의 작전 직전인 올해 615일부터 915일까지 3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부상자는 2830명이고, 1504명이 체포당했으며,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75년 동안 겪어온 고난은 극단에 달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누가 시작했는가가 아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가자지구의 알 아흘리 아랍병원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전에 촬영된 영상이다. 어린이들이 동그랗게 손에 손을 잡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는 모습. 어른들은 종종 어린이들을 이 병원 안마당으로 데리고 왔다. 어린이들이 공습에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놀고 난 후에는 함께 마당을 청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터를 돌보고 가꾸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없다. 가장 많이 울었지만 나는 비로소 전쟁에서 죽음만이 아니라 삶도 보게 되었다. 주검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영상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누구의 폭탄인가가 아니라 그곳에 어떤 삶이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도 삶이 있다. 내일 결혼할 부부가 있고, 오늘 태어난 아이가 있으며, 선생님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교가 있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고,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내고 있다. 전 세계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생지옥이라 묘사하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로를 돌보며 최후까지 존엄을 지키는 인간의 모습을 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본다. 무엇에서 시작되었든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명백한 집단학살이고 인종청소다.

 

우리의 침묵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감행할 용기를 준다. 전쟁은 전쟁 수행자만이 아니라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의 존엄과 인간성도 파괴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력감과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러니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시작하자. 전쟁에 반대한다. 학살을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10.22.

 

 

규탄만으로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충돌이 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해 이스라엘 측에 민간인을 포함해 12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고 150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납치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감행된 직후 14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다.

 

23일 현재 가자지구에서 양측을 합한 사망자는 5000, 부상자는 15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여론의 대세는 공격과 보복이 이어지면서 민간인들의 희생이 커지는 사태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 사태의 원인을 두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력의 역사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을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과 납치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망자 숫자로 전쟁의 피해를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엔 발표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발발 500일 동안 약 90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니,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에 전쟁이라는 말을 덥석 쓰기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흔히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공식적인 명칭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역(OPT)이며, 이스라엘의 점령은 국제법상으로는 불법이다. 이스라엘이 만든 장벽과 이집트와의 국경으로 둘러싸여 봉쇄 상황인 가자지구 외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담당하는 서안지역이 존재하지만, 후자 역시 불법적인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지속적으로 들어서면서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지역 모두를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이스라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에 대해서도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체포와 살해의 위협을 받으며 활동해 온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들에게도, 살던 지역을 떠나 난민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언론의 자유를 빼앗기고 독재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시민들에게도 삶은 이미 전쟁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이 봉쇄와 대치라는 극단적인 폭력 상황에서만, 혹은 정치적인 쟁점들을 둘러싸고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장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지구 밖에서도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닌 취급을 받았다. 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 문제였다. 20218월 이스라엘은 자국이 1인당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자 당시로는 3차 접종을 시행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는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인을 제외했을 때만 통하는 얘기였다. 20228월까지 이스라엘 국민의 75%1회 이상, 50%3회 이상 백신을 접종했을 때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에서 1회라도 접종 경험이 있는 사람은 40%밖에 되지 않았다.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스라엘 보건당국은 선의로 이웃에게 백신을 나눠줄 사람은 없다는 취지로 응대했다. 국경을 넘어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서안지구에 사는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접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이들을 별도의 국가이자 타국의 국민인 듯 취급해왔다는 사실은 전쟁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스라엘의 국민도 아니고 다른 어느 국가의 국민도 아닌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죽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모호한 처지는 이번 충돌을 너무 쉽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말하면 안 되는 이유다. 동시에 전쟁을 중단하라는 규탄만으로는 평화를 찾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요구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으로 해시태그라도 하면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민은 그나마도 소수이고, 어쩌면 한국의 대다수 시민에게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너무 먼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쟁기업들도 참가하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아덱스·ADEX) 2023’이 요즘 열리면서 행사장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을 들으며 전쟁을 과연 남의 일이라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잠시 인터넷에서 검색한 뉴스들에서는 잇단 전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주가 정보가 뜬다. 10년 만에 서울 시내에서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목격한 한국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는 태도에는 어떤 행동들이 뒤따라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3.10.23.

 

 

기후안보, 총칼보다 강한 위협에 대처하라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건만 세계의 화약고 중동 가자지구가 뜨겁다. TV 너머 보이는 참혹한 세상은 내가 체감할 수 없기에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며 총칼과 같은 무기에 무수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고 주변국 또는 내부의 분쟁으로부터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안보, 즉 기후변화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실존적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두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요인은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긴장하며 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안보 위협은 예측도 대응도 매우 어렵다.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분명하다.

 

잠깐 여기서 샛길로 빠져 역사를 논하기에 앞서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좋아한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배우도 해리슨 포드이다. 어릴 적 영화에 등장한 해리슨 포드는 정글을 누비며 악당을 물리치고 놀라운 신공으로 보물을 찾아내는 나의 영웅이었다. 몇번이고 DVD(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화나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디스크)를 돌려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어린 시절에 늘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보물의 주인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임자 없는 보물을 찾는 해리슨 포드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지만 사라진 보물의 진짜 주인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내게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지녔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13년 한 학술지(Nature Geoscience)에 실린 논문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2008년 개봉한 시리즈 4<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에 나온 마야문명 이야기에 대한 해답이다.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가 세계를 지배할 힘을 지닌 크리스털 해골을 차지하기 위해 마야문명이 번성했던 전설의 도시를 찾는 이야기다. 바로 이 크리스털 해골의 주인이 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는지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마야문명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고고학 기록을 보면 마야문명은 굉장히 우수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어 도시에는 우물을 만들고 농사를 짓기 위해 관개를 하는 등 시대를 앞서가는 문명이라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 당시 가장 앞선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형문자를 완성하여 책을 만들어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뛰어난 문명이 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전 인류의 역사적 숙제로 남아 있었던 상황이다.

 

기후변화, 지금의 문명 앗아갈 수도

전 세계 24개국 78명의 과학자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문헌정보, 역사사료, 나이테 분석, 빙하시추 등 다양한 분석기법을 통합하여 마야문명의 붕괴 시기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심각한 가뭄의 도래 시기와 일치함을 밝혀냈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 영국과 미국의 지질학자-기후학자-고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마야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의 호수 속 침전물 분석을 통해 기온 상승과 강수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급격한 기온의 상승과 강수량 감소에 따라 수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마야문명은 식량위기를 맞이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가뭄이 마야문명을 붕괴시킨 절대적 원인이라고 100%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표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후속 연구결과들 대부분이 기후변화를 마야문명 붕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기서 기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정말 가뭄이 그렇게 심각했던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피해가 심각했기에 문명이 사라진 것인가. 사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기준으로 봤기에 그럴 것이다. 어쩌면 가뭄의 정도가 같더라도 가뭄의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피해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보통 이러한 능력을 기후적응 능력이라고 한다. 여기서 기후적응이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다. 다가올 미래의 기후변화 피해를 정확히 예측하거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확한 모니터링 및 사회적 인프라 구성, 그리고 발생한 기후변화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체계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문명의 멸망을 초래한 가뭄은 마야의 기후적응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당시 수준에 비해 높은 과학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나름의 기후적응 능력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적응 능력을 넘어선 피해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적응능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기후변화는 화려한 마야문명을 현실 세계가 아닌 세계사 책 속으로 가두어 버렸다. 인류가 겪은 무시무시한 전쟁 세계 1차 대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인간이 발명한 가장 무서운 무기라 불리는 원자폭탄의 투하에도 문명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기후변화는 달랐다. 물론 총칼을 앞세운 전쟁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문명을 송두리째 앗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가장 큰 위협 요인은 기후변화의 피해가 유발할 수 있는 또 다른 리스크, 기후안보일지 모른다.

 

한국에 기후위기는 실존적 위협

기후안보에 있어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은 한국이 겪는 기후변화 피해만이 내가 사는 한국의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는 단순히 한국의 국내정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하여 식량자급률이 OECD 38개 국가 중 최하위에 있다. 식량안보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 감소는 한국의 밥상물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경제안보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에너지도 마친가지이다. 한국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나타난 에너지 수급 문제를 살펴봤을 때 에너지 공급 국가의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정책 변화는 한국의 에너지안보를 흔들어버릴 수 있다.

 

사실 여러 가지 더 많은 안보 위협 요인이 도사리고 있지만 가장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점은 국방문제다. 한국은 분단국가이기에 국경을 맞댄 다른 국가의 기후변화 피해는 그곳의 사회, 경제, 정치 문제를 야기하여 한국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국방안보의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 바이든 정부 초창기 발표된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기후변화 적응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 피해는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적 약점을 강화하여 그 국가의 체제안정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은 반드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의 물리적 피해는 한 국가의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은 반드시 거시적(macro)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식량, 에너지, 국방 등 여러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기후적응 체계를 강화함에 있어서 한국의 현황에 대한 대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는 마야문명이 남긴 크리스털 해골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이것은 바로 크리스털 해골이 세상을 지배해줄 힘을 가진 엄청난 보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야문명이 남긴 진짜 유산은 기후변화에 대한 교훈이다. 기후변화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능력이란 값진 보물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보물을 찾아 나설 때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 2023.10.23

 

 

이선균이 김승희 가릴 순 없다

주말을 앞둔 20, 두 가지 뉴스가 터져나왔다.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자녀 학교폭력무마 의혹, 그리고 배우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의혹이다. 이씨 의혹은 전날부터 소문으로 돌았으나, 특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실명이 공개된 것은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김 전 비서관 의혹을 폭로한 이후다. ‘보이지 않는 손같은 음모론엔 관심없다. 다만 대중의 시선이 이씨에게 쏠린 사이, 김 전 비서관 의혹이 묻혀선 안 된다고 여긴다.

 

의혹의 개요는 이렇다. 김 전 비서관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지난 72학년 여학생을 폭행해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사건 발생 두 달 후에야 열렸다. 피해 아동 학부모가 강제전학을 요구했으나 학급 교체에 그쳤다. 동급생이 아닌 만큼 의미 없는 조치다. 학폭위 총점 16점부터 강제전학인데 가해 학생은 딱 1점 모자라는 15점을 받았다.

 

김 전 비서관 부인은 학폭 가해를 사랑의 매라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딸에게 임시 출석정지가 내려진 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프사’)을 남편과 윤석열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김 전 비서관은 김건희 여사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동기다. 카카오톡 친구 중 기혼여성이 많지만, 남편과 남편의 상사가 함께 찍힌 사진을 프사로 올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대통령실은 김 의원 폭로 직후 공직기강 조사에 착수했으나, 김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내자 곧바로 수리했다. 별정직 공무원은 감찰 중에도 사표 수리가 가능하다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그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사표부터 받는 게 온당한가. 21일 시작되는 대통령의 순방 뉴스가 김승희로 덮이기 전에 꼬리 자르려 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지난 18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엄숙한 톤으로 교시를 전할 때, 잠시 감동할 뻔했다. 이내 정신차렸다. 김 수석 브리핑에 이어 김대기 비서실장이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지명됐다고 발표해서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동창이다. 수많은 동기 중 한 명이 아니다. 2006년 당시 윤석열 검사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이던 이 후보자가 기각하자, 두 사람의 막역한 사이”(국민일보)가 기사화될 만큼 절친이다. 당시 이 후보자는 친구는 친구고 일은 일이다. 기각 후 윤 검사에게 전화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중 검사징계법 헌법소원을 청구하자 심리를 회피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에선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것 같고, 동기라고 불이익 받는 것도 그렇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편이 낫겠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윤 대통령 발언은 앞이나 뒤가 생략된 게 분명하다. “(나를 지지하는 30%가량의)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거나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하지만 나는 무오류다)”로 해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절친(문모 변호사)의 절친(이균용 판사)’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가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를 겪고도 다시 다이렉트 절친을 헌재소장에 지명할 수 있나.

 

입법·행정·사법 3권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작동의 기본 원리다. 헌재는 특히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될 경우, 파면 여부를 심판하는 기관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저와 우리 내각에서 돌이켜보고 반성도 하겠다”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등의 발언도 했다. 그런데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이어,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을 기리는 독립전쟁 영웅실철거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4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한 뒤 용산 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심리학에 인지부조화이론이 있다. “ ‘나는 똑똑하다고 자신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형편없는 시험성적을 받으면, 자신의 행동(형편없는 시험성적)과 태도(‘나는 똑똑하다’) 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한다”(심리학용어사전).

 

윤 대통령이 비슷한 상황 아닐까. ‘나는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아 마땅한 지도자라 생각하는데,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30%에 턱걸이했다.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았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할 법하다.

 

사전을 계속 살펴보자. “의사결정이나 개인의 행동이 이미 가지고 있는 태도나 생각, 느낌과 충돌하면 사람들은 심리적 갈등을 줄이고자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켜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윤 대통령도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키기로 한 것 같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돌이켜보고 반성” “이념보다 민생등의 언명이 그것이다.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나쁘다 할 순 없다. 다만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련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할 일이 많다. 당장 할 수 있는 세 가지만 알려드리겠다.

 

첫째, 김 전 비서관이 딸의 학폭 처리 과정에 권력형 외압을 가했는지 명명백백히 규명하고 관련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영호 의원은 폭로 전 대통령실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언론사 기자도 지난 여름, 김 전 비서관 관련 의혹을 제보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사전 인지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몰랐다고 면책되진 않는다. 알고 쉬쉬했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이지만, 몰랐다 해도 공직기강 관리에 구멍이 난 것이다.

 

둘째, 절친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을 헌재소장·대법원장감을 찾아야 한다.

 

셋째, 독립운동가 폄훼를 중단해야 한다. ‘늘 무조건 옳은국민 뜻을 참고하시라. KBS가 지난달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동의하지 않는다63.7%, ‘동의한다26.1%였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경향 : 2023.10.23.

 

 

양대 정당에 포획된 정치, 우리 고통 해결할 수 있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 승리한 민주당을 제외한 각 당은 모두 심각한 내부 비판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측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비리에만 집착해 수사하고 수차례 기소까지 했으나 그런 민주당에 이번 강서 보선에서는 참패했다고 개탄하며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다. 당의 총력을 기울였으나 1.83%라는 매우 초라한 성적을 거둔 정의당에서는 이정미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와 함께 재창당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득표율을 모두 합쳐도 3.5%가 안 되기 때문에 “‘진보통합론을 포함한 재창당안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강서구청장 선거 최대 의사 표시층은 선거 불참자들

강서구민도 아니고 어떤 정당의 당원도 아닌 나는 투표장에 가지 않은 51.3%의 주민 편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정당 후보의 모든 득표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다수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가 내년 총선의 전초전이라고 의미부여한 다음 당의 총력을 집중했고, 여러 소수정당들은 후보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당으로서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부각하고 내년 총선 이후의 한국정치에서 의미있는 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 이 선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 양당과 소수당들의 득표를 모두 합쳐도 선거 불참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선거의 최다수는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사회조사에서 가장 주의 깊게 봐야할 응답은 모르겠다라는 것을 지적한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 주장과 통하는 것이다.

 

즉 이번 선거에서 대다수의 서울 강서주민은 모르겠다”, 아니면 싫다”, “어느 후보 어느 정당도 내 삶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지자체 선거가 아니라 총선이었다면 투표율은 좀 더 높았을 것이고, 대선이면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모두 싫다”, “누가 되어도 같다등의 불참 비율이 유권자의 반을 넘었다는 말은 바로 이 대답들을 나오게 한 질문의 문항들, 즉 선거에서 유권자가 받아든 선택지의 메뉴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은 이 선거가 내놓은 질문 자체에 항의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선거정치나 정당,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경고장이다. 이런 선거에 각 당의 대표급 인물이 총출동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엄청난 금전과 시간을 투여하는 것 자체가 절반 이상 국민들에게는 쓸데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두 거대 정당의 한 축인 국민의힘은 내부의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에도 불구, 대통령은 그대로 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다른 한 축인 민주당도 이번의 승리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져 윤석열 정부의 온갖 퇴행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선거 준비에 몰두할 자세다.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진로를 좌우할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위부대 중심으로 당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모든 의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선거에 가장 중요한 변수인 언론 장악에 사활을 걸고, 자유총연맹 등 관변 단체에 총력 지원을 하고, 모든 시민단체의 발목을 자르고 있다. 아마 윤석열 정권은 내년에 1960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관권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러한 시도에 맞서 민주당은 정권심판 담론을 중심으로 총력을 다 할 것이고, 모든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양당 총력전이 국민의 삶 향상시키는 결과를 낼 수 있나?

그런데 이 양당의 사활을 건 쟁투가 과반수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오게 만들 수 있을까? 투표율이 낮더라도 지역구 유권자의 4분의 1만 얻어도 대략 당선되니까, 그 정도 표를 얻는 일만이 양 정당의 관심사가 아닐까? 대중들의 불만이 더 누적되면 촛불시위도 더 동력을 받을 것이고, 정권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투표장에 나온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지난번 총선 정도로 민주당이 압승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과 협치를 하거나 대연정 같은 것을 할까?

 

지금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로 봐서는 거의 기대 난망이다. 아니면 민주당이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문재인 정부가 못 다 한 개혁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만약 내년에 그렇게 할 것이라면 대법원장의 임명을 무산시킨 지금의 의석수로써 왜 지금까지 그러한 개혁적 입법 작업을 하지 못했을까?

 

윤석열 정권이나 국민의힘이 아무리 국민의 불신을 받아도 민주당이 개혁의제를 추진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내년 총선에서 투표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즉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 여부, 혹은 양 정당의 선거 전략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투표율이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 왜 정권을 빼앗겼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 즉 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복기나 자기반성이 나온 것이 없으니,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총선에서 모르겠다” “싫다라는 의견이 찬반을 압도하여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처럼 될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윤석열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왜 1% 밖에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정당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라고 묻지만, 한국 정치, 아니 국가와 국민의 삶은 이번 서울 강서구 선거에서 총 3.5%밖에 얻지 못한 소수정당들이 던진 의제들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후보들이 내세운 주거 빈곤 문제, 생명 안전, 생태주의 공약은 지역개발과 경제 활성화라는 성장주의 기조를 갖는 양당의 공약보다 서울과 강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재와 미래, 특히 경제적 약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소수정당의 후보들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후보보다 도덕성이나 자질에서 결코 떨어진다는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득표 밖에 거두지 못한 것은 후보의 자질이 아니라 결국 승자독식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수정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조건들

결국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서울시민의 강력한 비토를 확인해 주기는 했으나 그것 이상으로 양당 독점구조에 대한 불신도 표출했다. 즉 정권의 심판이나 정권교체가 희망과 기대 충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1987년 이후 여러 번의 정권교체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현재의 승자독식의 선거법과 소수정당의 조직화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정당법을 바꾸지 않는 한 양당 독점구조를 깰 수 없고, 양당 독점구조가 그대로 가는 한 야당에 의해 윤석열 정권이 심판을 받을지라도, 심판 이후의 정치는 또다시 칼자루를 쥐어줘도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던 문재인 정권의 반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호남의 민주당 독점, 영남의 국힘당 독점을 보장해주는 현재의 지역주의 정치,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당법과 선거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 선거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난 9월 헌재는 지구당 5곳 이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정당의 자격을 갖춘다는 현행 정당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4.19 이후 정국에서 난립한 정당을 통제할 목적으로 1962년 제정된 법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이 정당법은 영남과 호남에서의 양대 지역주의 정당의 40년 독점을 지탱해 주는 장치다. 현재 호남에서 민주당이 아닌 후보, 영남에서 국민의힘이 아닌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총선은 결국 수도권에서 몇 십 석의 차이만 드러낼 뿐, 양당의 교대 집권 양상은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선거는 영호남 사람들만 탈정치화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탈정치화하고, 인구의 과반수인 지방의 소외를 만성화한다. 수도권 집중 문제 아무리 심각해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거법과 정당법뿐만 아니라 1987년 선거의 기본인 5년 단임 대통령제, 그리고 선거 외의 정치참여가 조직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지구당 폐지 조항 등 기존 법안이 국민의 정치참여를 조직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만이 정치참여의 유일한 길이고 그것을 제외하고 주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선거의 공간에서는 오직 거대 정당만이 게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다수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인구의 반 이상이 언제나 지지 정당이 없다는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 요구 제한하려는 틀은 시민들의 힘으로 깰 밖에

한국의 법과 제도와 이데올로기에서 이루어지는 제도권 정당정치는 비등하는 대중들의 불만과 요구를 일정한 틀 내로 제한하여,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선거법, 정당법 등 풀뿌리 자치를 차단하고 지구당 활동을 차단하는 각종 법과 규정이 그것이고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요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금압하는 교육정책이 그것이다. 이런 봉합구조 하에서 시민들은 오직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선거만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창구라고 교육받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동적으로 선거에 동원된다. 이런 봉합구조 하에서는 부자들과 TV에 많이 출연한 사람, 판검사, 고위공무원 출신,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국민의힘과 민주당 공천을 받는 사람, 수도권에서 호남향우회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선거정치에 나설 수 없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기만적이다. 엘리트의 독점적 지배를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장치에 가깝다.

 

대의제, 선거제도, 그리고 결정권 위임이 곧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촛불시위와 같은 항의가 중요했지만, 그 성과는 결국 기성 정당과 정치가, 그리고 헌재의 몫이었다. 양당 독점구조를 깨는 법 제도 개혁이 없는 한, 한국의 다급한 현안,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대처 등 미래지향적인 과제는 후순위로 돌려질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게임을 민주주의라 믿으며 선거에 동원되어야 하는가? 19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개혁, 헌법 개정,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 그리고 대대적인 정치적 판갈이를 압박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 역시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고, 한국의 미래는 매우 암담해질 것이다. 이제 선거와 대중의 일상 활동 사이를 매개하는 시민정치, 시민정치교육, 시민 직접참여의 길을 시민 스스로 찾아야 할 때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23.

 

국힘의 미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했다. 투표율은 50퍼센트 가까웠고 득표율 격차는 17퍼센트를 넘겼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여론조사 아닌 실제 투표로 드러난 건 6월 지방선거 이후 처음이었다. 보선 이후 여론조사 추세는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의 동반 하락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국힘 당내 민주주의의 붕괴

대한민국의 집권당 국민의힘은 특정한 이념 성향과 문화를 지닌 정치집단이다. 반면 국민의 힘은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쓰는 말이다. ‘국민의 힘은 신뢰하지만 국민의힘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의힘소속 정치인들이 국힘이라는 약칭을 싫어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맥락을 분명하게 하려면 둘을 구분해야 하겠기에 약칭을 쓴다. ‘국힘의 당원과 지지자가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이 칼럼을 본다면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불가피하게 쓰는 약칭일 뿐이다.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는 2020년 총선 결과와 비슷했다. 그때 민주당 후보들은 강서구의 세 선거구 모두에서 이번과 비슷한 격차로 국힘 후보들을 눌렀다. 만약 현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가 지금 수준 그대로 내년 4월까지 이어진다면 국힘은 총선에서도 참패할 것이다. 종편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정치비평가들은 대부분 보궐선거 패배 책임자로 윤석열 대통령, 김기현 지도부, 김태우 후보를 지목했다. ‘여론조사 꽃에 따르면 국민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 빠진 것이 있다. 국힘 당원이 자주성을 잃었고 국힘의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내년 총선 후보 공천과 국힘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지적하는 이가 별로 없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로 했다.

 

국힘의 보선 참패 이유는 너무 분명해서 심오한 정치학 이론이나 복잡한 데이터를 가져올 필요가 없다. 첫째, 국민은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다. 취임 직후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는 늘 60:35 수준이었다. 조금 낫거나 조금 못한 때도 있었지만, 정체가 수상한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통계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긍정 평가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친윤 언론이 환호성을 지르며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보도를 무더기로 쏟아냈지만 다 헛소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년 반 동안 의미를 부여할 만한 지지율 상승 계기를 단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붙박이 윤 지지율, 잘 해서가 아니라 잘 하기를 바라는 35%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한다고 대답한 35퍼센트 안팎의 시민들도 정말 그렇게 믿어서가 아니라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열 가운데 셋 정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힘을 지지한다. 국힘 후보가 너무 싫은 경우에도 민주당 후보를 찍느니 차라리 투표를 포기한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다음 총선에서 집권당이 다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것 역시 객관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주관적 희망의 표현이다.

 

유권자 열 가운데 셋 정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한다. 민주당 후보가 너무 싫은 경우에도 작은 진보정당에 표를 주거나 투표를 포기할지언정 국힘 후보를 찍어주지는 않는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매우 잘못하고 있으며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전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다. 이념적 감정적 호오(好惡)와 희망사항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넷 가운데 둘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다. 평소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며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둘 정도가 평론가들이 매우 좋아하는 스윙 보터. 그들은 선거 때마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믿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 투표하지 않는 20퍼센트와 그때그때 지지 정당을 바꾸는 20퍼센트를 무당층또는 중도라고 한다.

 

3:3:260:35로 바뀐 증거가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

종합하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이념지형은 보수 3 진보 3 중도 4 정도로 볼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 무관심층을 제외하면 3:3:2가 된다. 작년 3월 대선 때는 투표하는 중도층이 국힘과 민주당으로 거의 비슷하게 갈라졌다. 그래서 1퍼센트도 되지 않는 격차로 승패가 갈렸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중도층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정치여론 지형은 60:35로 기울어졌으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그 사실을 실제 득표율로 보여주었다. 투표하지 않는 무당층 때문에 득표율 격차가 17퍼센트 수준에 그쳤지만 여론 격차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투표율이 65퍼센트 안팎인 총선에서는 강서구에서 민주당과 국힘의 득표율 격차는 이번 보선보다 더 커질 것이다.

 

스윙 보터는 집권세력에게 불만을 느끼면 야당에 표를 준다. 윤석열 정부가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일이 하나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근접했다. 주가는 곤두박질했고 물가는 근래 보기 드문 수준으로 올랐다. 원화 가치가 폭락했는데도(달러 환율은 치솟았는데도) 무역수지는 일찍이 없었던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다. 법인세 감세와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60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나자 재정건전화라는 명분 아래 하필이면 국민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무지막지하게 칼질했다. 달러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이 3년 전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민간가계의 가처분소득도 감소했으며 소득불평등 지표는 악화 일로를 걷는 중이다. 모두가 현 정부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시민들은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경제와 민생의 위기를 외면하고 정치적 막말에 가까운 독선적 언어를 쏟아냈다. 극우 이념과 부패 비리 전력을 가진 아는 사람과 검사 출신 측근으로 국가행정기관의 요직을 채웠다. 취임 1년 반이 넘도록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았고 야당과 단 1초도 대화하지 않았다. 최측근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고 정치검사들에게 검찰 요직을 주어 민주당을 흠집내고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는 일에 정치적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이유 모를 집무실과 관저 변경에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탕진했고 영부인은 명품 쇼핑을 하며 해외 문화를 탐방했다. 이렇게 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170석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국민을 검찰청 직원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무능, 불통, 전횡이 자초한 회복 탄력성 상실

집단적 의사결정 이론에서 유권자가 집권당에 실망해서 야당 지지로 옮겨 가는 것을 이동성(mobility)’이라 한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정당들의 이념과 정책이 비슷해진다. 조금이라도 다수 국민의 여론에 어긋나면 선거에서 몰살당하기 때문이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낮으면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고착된다. 어떻게 하든 선거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정치인과 정당은 국민이 원하는 바를 살피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만 행동한다. 유권자 이동성은 적당히 높은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다수파의 뜻을 관철하면서도 소수파의 생존을 열어주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권자 이동성은 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진보 거대 양당이 각각 30퍼센트 선의 고정 지지층을 보유한 가운데 20퍼센트 정도의 투표하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여론조사 흐름을 근거로 추정하면 지난 1년 반 동안 스윙 보터는 압도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힘 고정 지지층이 강고하게 결속해 투표했지만 스윙 보터가 대거 민주당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17퍼센트 넘는 득표율 격차가 났다. 이런 여론 지형에서 여당이 선거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총선을 앞두고 여론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 다른 하나는 국힘 당원의 무기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완성형이다. 이념, 성격, 언어, 취미, 지성, 능력, 그 무엇도 변화 또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일절 듣지 않는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무엇인가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 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한 척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민심의 요구를 받드는 시늉,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론 지형이 60:35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더 나빠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스윙 보터의 민주당 지지율이 더 올라가고 국힘 고정 지지층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국힘은 내년 총선에서 2020년보다 더 참혹한 패배를 당할지도 모른다.

 

대통령 무능·독선 보다 심각한 국힘 당원들의 무기력

국힘 당원의 무기력은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당원이 무기력하면 정당은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데 필요한 회복 탄력성을 잃는다. 최근 상황을 보면서 국힘 당원들은 자주성을 거의 완전히 상실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원이 뽑은 이준석 대표를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징계해 대표직을 박탈했다. 그런데도 당원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경선에 개입해 당원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 의원을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김기현 의원은 대통령이 자신을 당대표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원들은 압도적인 표를 주어 그를 당대표로 뽑았다. 김기현 지도부는 당원의 대표라기보다는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장에 가깝다.

 

김기현 지도부는 강서구 보궐선거에 집중할 뜻이 없었고 후보 공천을 포기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문의 잉크 냄새도 가시기 전에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강서구청장 직을 상실했던 김태우 씨를 특별 사면했고 국힘 지도부는 경선 참여 자격을 주었다. 강서구 당원들은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김태우 씨를 후보로 선출해 그 자신의 유죄판결로 인해 치르게 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다시 내보냈다. 대통령과 국힘 지도부의 어리석은 결정에 당원도 동의한 셈이다.

 

오늘의 국힘 당원제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4-2006기간당원제도’(현재 민주당의 권리당원제도)를 도입한 열린우리당과 정당 혁신 경쟁을 하면서 책임당원제도를 도입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바뀌면서 기간당원 제도를 완전 폐지했지만 한나라당은 여러 차례 당명을 바꾸면서도 책임당원 제도는 착실하게 발전시켰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그것을 사실상 해체해 버렸다.

 

회복 탄력성잃은 채 파도치는 민심의 바다 떠도는 국힘

당원은 민심을 당에 들여오는 통로다. 당원이 많을수록, 당원 구성이 지역소득직업연령 등 모든 면에서 국민 일반과 비슷할수록, 당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당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할수록 정당의 결정은 민심과 가까워진다. 지금 국힘의 당원제도는 껍데기만 남았다. 당원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한다.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뽑았고 김태우 씨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뽑았다. 그래서 강서구 보선에 참패했다. 국힘 지지율은 지속 하락하는 중이다. 당원들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임명 당직자만 교체한 소위 김기현 체제 2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대통령과 국힘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 국힘 당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국힘은 회복 탄력성을 잃은 채 너울과 파도가 일렁이는 민심의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다. 운이 좋으면 침몰하지 않고 22대 국회에 안착하겠지만 운이 나쁘면 일부만 겨우 생존하게 될 것이다.

 

오보(의도하지 않은 허위보도)와 가짜뉴스(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일부러 만든 허위보도)가 많은 세상이라 믿기는 어렵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수석과 비서관·행정관 등 용산 낙하산’ 30여 명이 총선 출마를 위해 곧 사직서를 낼 것이라고 한다. 중앙부처 장차관과 공공기관 임원 등 윤석열 대통령이 공직 경력을 달아준 인사들을 모두 더해 윤석열 낙하산이라고 하자. 그들 중에는 전직 검사가 아주 많다. 총선 후보 공천이 김기현 당대표와 김태우 보선 후보 선출과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런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지난 총선 국힘 강세지역은 영남 전역과 강원·충청의 농촌지역, 영남 출신과 부유층이 많은 서울 강남 3, 경기도의 농촌지역 등이었다. 현역 의원 지역구는 대부분 이런 곳에 있다. 그들에게는 본선보다 공천이 중요하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선거를 어렵게 만드는 언행을 해도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원들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윤석열 낙하산한테 지역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충성심을 의심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망해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김기현 지도부를 통해 공천에 대한 자신의 방침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집권 후반기 대통령을 옹위하고 퇴임 후에도 지켜줄 충성파를 최대한 영남과 비영남 강세지역에 투입하는 것이다.

 

윤석열 낙하산이 윤석열 지켜주리라는 엄청난 착각

영남과 비영남 강세지역 중진들 중에는 하태경 의원처럼 자진납세를 선택하는 이가 더 나올 것이다. 지역구를 지키지는 못해도 명분을 세움으로써 수도권의 민주당 현역 지역구 가운데 그나마 해볼 만한 곳을 받기 위함이다. 부당하게 지역구를 빼앗긴 이들 중에는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유승민과 이준석 등 비윤 반윤 수괴들은 공천 배제가 확실해지면 신당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시일이 촉박하면 비윤 반윤 보수 무소속 연대로 총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영남에서는 보수의 내전이 벌어지고 PK와 비영남의 일부 국힘 강세지역은 표 분산으로 인해 민주당이 접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윤석열 낙하산은 국힘이 참패를 당하는 가운데 영남에서만 성공할 것이다. 교섭단체를 이룰 만큼 당선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옹위하고 퇴임 후를 지켜주는 데 앞장설까? 천만의 말씀이다. 영남 민심은 노태우를 뽑았고 노태우를 버렸다. 김영삼을 뽑았고 김영삼을 버렸다. 이명박을 뽑았고 이명박을 버렸다. 완전히 버리지 않은 정치인은 박근혜 하나뿐이다. 윤석열이 영남에서 박정희나 박근혜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런 꿈은 아예 꾸지 않는 게 좋다. 영남 민심은 결국 윤석열을 버릴 것이다. 그러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윤석열 낙하산들도 그를 버릴 것이다. ‘윤석열 사단은 이념의 동지가 아니며 의리로 뭉친 패거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단이다. 저마다의 사익(私益)을 도모하려고 손잡은 일시적 정치 카르텔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아무 부담감 없이.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 2023.10.24

 

 

민생이 진심이면, 실패한 감주성부터 폐기를

와이프와 아이만 빼고 다 바뀌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23일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인용했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교차한다. 하지만 기존의 양 위주 경영에서 탈피해 질 중심 경영으로 혁신을 주도한 것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쇄신 요구가 쏟아진다. 무엇보다 퇴행적 이념 공세와 검찰독재를 앞세운 독선과 극단 정치의 정상화가 시급한데, 또 하나 더는 미룰 수 없는 게 있다. 국가경제와 민생을 모두 파탄으로 몰고 가는 실패한 경제정책의 정상화다. 윤 정부는 출범 이후 부자감세 주도 성장’(감주성) 정책을 고수해왔다.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성장률이 오르고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감주성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4%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런 추세면 윤 정부 첫 2년간 평균 성장률은 2%에 그쳐, 문재인 정부 때의 3.03%에도 미달한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인 민생은 3(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직격탄을 맞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보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30% 이하로 급락한 이유로 경제·민생·물가가 1순위로 꼽힌다.

 

내년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다시 낮췄다. 급기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처음 2%를 밑돌고, 내년에는 1.7%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이 나와 충격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그늘이 임기 5년에 그치지 않고, 미래 후손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방향이 틀린 감주성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되어 있었다. 민생과 경제가 어려우면 재정을 풀어 경기를 진작하고, 취약계층 지원을 늘리는 게 경제정책의 상식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어 세수 감소를 자초했다. 그러면서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며 취약계층 지원을 줄이는 청개구리식 정책을 폈다.

 

경제위기에는 감세가 성장과 세수 확충으로 이어지는 게 더 힘들다는 게 일반론이다. 재정정책도 불황 때는 확장 기조를 취하고, 장기적으로 재정 여력을 확충해 복원력을 강화하는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런 상식에 역행한 감주성은 성장, 재정건전성, 약자 보호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를 자초했다.

 

윤 정부는 눈앞의 경고마저 무시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다. 1년 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는 대규모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 급락, 국채금리 급등으로 대혼란이 벌어지자 백기를 들었다. 윤 정부는 이를 보고도 한국은 영국과 다르다면서 눈을 감았다.

윤 대통령이 최근 이념 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패한 감주성을 고수하는 한 민생을 살리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비정상의 극치인 내년 예산안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 수입이 줄어드는데 재정건전성을 앞세우다 보니 약자 복지, 시민사회 지원, 미래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까지 줄이려 한다.

 

그런데도 경제팀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내년 성장률은 국내총생산 1조달러 이상 국가 중에서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돈키호테식 행태를 보인다. 또 기재부의 엉터리 전망으로 올해 연말까지 60조원에 가까운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데도 세계경제 급변 등 남 탓으로 돌렸다. 경제팀 수장이 이 지경이니 민생과 경제가 온전할 리 있겠나?

 

정부·여당이 보궐선거의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고, 윤 대통령의 민생 강조가 진정이라면 먼저 감주성실패를 인정하고, 그 책임자인 추 부총리부터 경질하는 게 순리다. 그리고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폐기하고 취약계층 지원, 미래 산업 발전에 필요한 투자 등 꼭 필요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이건희 신경영 선언의 요체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윤 정부가 이미 실패한 감주성을 고집하는 것은 이념과 진영논리에 얽매여 현실에 안주한 채 혁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요한 위원장도 진정으로 여당의 쇄신을 바란다면, 감주성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곽정수ㅣ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겨레 : 2023.10.24.

 

 

사회참여형 지식인부터 권력의 들러리까지

27 _대학교수 1

정책은 지식의 형태를 띤다. 이른바 정책지식의 생애주기도 여느 상품과 다르지 않다. 생산과 유통, 소비 등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이 제도화로 이어진다. 이 과정엔 여러 정책 행위자들이 참여하는데, 정책지식의 전문성을 앞세워 가장 다양한 모습으로 관여하는 게 바로 대학교수다.

 

이들은 마치 색색의 가면을 수시로 바꾸어 쓰는 중국 전통극의 변검술사와 같다. 때로는 강력한 의제제기자이자 정책생산자로서 날 선 주장을 내놓지만, 정치인이나 관료가 만든 정책을 추인, 정당화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할 때도 적잖다. 몇몇은 대통령 또는 힘센 정치인에 의해 간택돼 대통령실이나 내각 고위직으로 옮겨 정책결정자로서 힘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학교수는 과연 어떤 정책행위자인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여러 교수들에 이 질문을 던졌더니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점은 같아도 그 역할과 비중이 천차만별이어서 그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윤홍식 인하대 교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하나의 동질집단으로 성격을 규정할 수 없는 정책참여자라는 점에서 대학교수는 대통령, 정치인, 관료 등 공식적인 정책결정자는 물론 시민단체 활동가 및 노동운동가 등과도 구분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정책행위자로서 대학교수를 크게 네 유형으로 나눈다. 우선 정책 활동의 장에 따라 정치영역 행위자와 학문영역 행위자가 있다. 두 유형은 다시 활동 지역 범위에 따라 전국형 지역형으로 나뉜다. 정책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대학교수는 의 조합인 전국형 정치영역 행위자이다.

 

이들은 정치인들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면서 정무적이고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정책을 선택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아주 소수일 것이다. 적잖은 이들은 정책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유사 정치인이 되거나 그저 정치 엘리트의 종속적 파트너로 전락하기도 한다. 같은 정치영역 행위자라도 정책 역량이나 상황, 주어진 역할에 따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학문 영역 행위자는 정책 콘텐츠를 생산해 정치엘리트들에게 수용을 촉구하는 의제제기자로서 기능한다. 때로는 정책결정자와 직접적인 접촉 혹은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노동시민단체, 즉 시민사회 행위자들과 연대하거나 공론장에서 얻은 상징권력을 이용해 정책당국을 압박하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건강보험(통합)법 같은 각종 개혁 입법을 추동한 80~90년대 개혁적 교수들의 모습이 그랬다.

 

분명한 건 한국의 대학교수는 어떤 얼굴을 하든 정치·경제 등 분야 권력 엘리트들과 쉽게 친분을 맺을 수 있는 연고 자본을 지닌 학벌체계의 수혜자이며, 다른 어떤 나라 교수들보다도 많이 정책과정에 직·간접으로 잇대어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대학교수가 사회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어떤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또 정책혁신을 꾀할 원천지식을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빚어내느냐, 정책과정에 얼마나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느냐는 정책지식생태계 활성화는 물론 한국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다. 사회의 발전은 결국 정책(지식)의 제도화와 혁신을 통해 이뤄지기에, 그 생산과 유통에 직접 관여하는 대학교수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정책행위자로서 대학교수의 활동과 행태는 제대로 조명되거나 구체적으로 검증된 적은 거의 없다. 이들 활동과 구체적 역할의 양태가 워낙 다양한 데다, 드러난 듯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학계, 구체적으로 대학교수는 어떤 존재인가? 적극적인 정책지식 생산자인가? 아니면 그저 정책결정자들의 정당화 도구에 불과한가? 한국 대학교수의 정책 전문성과 역량 그리고 글로벌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숱한 대학교수가 직·간접적으로 정책과정에 참여해왔고, 지금도 정책시장이란 무대의 위, 아래 또는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탐구되거나 제시된 바 없다. 대학교수는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의 또 하나의 블랙박스이다.

 

그런 이유로 10여명 교수를 상대로 이와 관련한 설문을 진행했다. 대부분 안 그래도 할 말이 많았다는 듯 예상보다 긴 응답문을 보내주었다. 응답을 살펴보니, 교수들이 스스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다수의 대학교수는 (정책생태계와) 직접 관련이 없고, 정책자문을 하는 교수들의 경우는 정부나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정책에 권위를 부여하는 과정에 수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주하 동국대 교수도 민주화 이후 (대학교수들이) 다양한 시민단체와 정부위원회에 참가해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속칭 폴리페서란 문제점을 드러내거나 정치 및 행정조직 장악력이 미흡해 정책결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 또한 정책문제를 포착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면에서 (교수의 역할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정치적·이념적으로 결정된 (특정 진영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거나 스스로 팩트를 취사선택해 선전선동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등 해악도 크다고 평했다.

 

부정적인 평가의 논점은 주로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는 들러리 역할에 모였다. 깊은 연구와 분석 끝에 퍼 올린 학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각종 자문기구에서 정치인과 관료들이 내놓은 안을 추인하는 구실이나 하는 건 문제란 얘기다. 이들의 참여 창구인 여러 자문기구를 두고서는 학자들에겐 세미나 장소, 정치인들에게는 교양대학이나 포토존 같은 곳”(신진욱 교수)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상황은 진보냐 보수냐 정부 성향에 따라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선 노동시장개혁 권고안을 제시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기능했다”(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는 평가를 받았다. 고용노동부가 노동개혁을 위한 국민소통형 논의기구라고 밝힌 이 기구엔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비롯해 교수 12명이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에 참여한 한 교수도 정책제안을 공문서 형태로 했지만 제안한 문서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를 여러번 경험했다며 불쾌했던 들러리 체험을 털어놨다.

 

이런 부정적인 기류 속에서도 대학교수는 정책과정 참여는 필요하다는 쪽이 많았다. 사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건 지식인의 사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현직 교수는 주류에서 논의되지 않은 여러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교수의 정책참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의 원천지식 생산자 및 이슈제기자란 고유의 역할은 여전하고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오늘날 더 큰 문제는 지식인으로서 대학교수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결과 정책행위자로서 대학교수의 영향력도 급속히 약화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 한국사회 노동정책 논의와 관련된 수많은 장에 오랜 기간 참여해 온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대학 내 실적관리 강화에 영향받아 사회참여 및 비판적 지식인들의 역할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상파와 케이블방송, 유튜브 등 다양해진 미디어에서 지식이 매력적인 상품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소비되는 지식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지식인의 소멸을 짙게 느끼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하여, 이 시대 대학교수는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전국 모든 대학교수 앞에 던져진 질문이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24.

 

국가주의의 빈곤

지난 23일 육군본부 국감 현장. 한 국회의원이 묻는다. “6·25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침입에 맞서 싸운 전당(육사)에 공산주의 참여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놓는 것이 정당하냐?”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답한다. “정당하지 않다.” 다른 국회의원이 묻는다. “육군총장이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독립영웅을 부정하며, 일제에 항거한 역사를 지우는 것이 옳은가?” 박 총장이 다시 답한다. “육사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광복운동, 항일운동 학교가 아니다.” 육사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육사의 목적. “국가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 교육의 제일 목표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이다. <학교역사>를 살펴봤다. 194651일 국방경비대 사관학교 개교. 같은 해 615일 조선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 194895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개칭. 육사의 정신적 뿌리를 물었더니 뜬금없이 제도의 뿌리로 답한 국방부 대변인의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이 제일로 내세운 공약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반공으로 쪼그라트렸다. 그 이후 60년이 더 넘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지만, 국가주의자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반공으로 축소하고 이를 제도화한 국가를 절대주권으로 떠받든다. 대한민국은 1948년 세워진 신생국가이며, 한반도라는 명확하게 구획된 영토 안에서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관료제도다. 하지만 현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국가가 있다. 국가주의자는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를 절대주권에 도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말살하는 것에서 찾는다.

 

국가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언제나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당대 국가를 맹종한다. 현실주의 국가관을 처음 명확하게 드러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트라시마코스. 비열한 동기와 사적 이해관계가 모든 정치를 지배한다는 현실론을 펼친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며, 강자에게 유익한 것으로 귀결된다.” 현실주의자에게 국가는 최고의 강자다.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사적 보복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온다. 이 평화는 너와 나를 묶어줄 수 있는 연대의 토대가 된다. 국가의 절대주권이 언제든 괴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제도 민주주의자는 어떻게든 국가 권력을 쪼개려 한다. 민주주의가 3권분립과 같은 형식 제도로 축소된다. 공수처와 같은 국가 제도를 만들면 괴물로 변해가는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국가주의자이든 제도 민주주의자이든 국가를 제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현실주의자라는 점은 똑같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수립을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2차대전 승리가 가져온 부산물로 여긴다. 독립운동은 현실적으로는 대한민국 수립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고 주장한다.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 성서로 장기간의 조선 역사를 해석한 이상주의자 함석헌마저도 이렇게 말하니, 현실주의자의 인식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 국가주의자는 가치의 차원에서 너무나 빈곤하다. 가치가 초월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대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뿐만 아니라 초월을 지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수는 로마가 지배하는 당대 현실에서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제도적으로 해방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누구도 예수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대인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넘어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의 초월적 가치에 공감한다. 독립운동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수립에 현실적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자율적 시민이 만든 보편적 연대를 초월적 가치로 남겨주었다. 이를 현실 제도로 실현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경향 : 2023.10.26.

 

 

민생의 공허함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17.15%포인트 차이로 대패했다. 그런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에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돌연 민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23일 한 달여 만에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정치권의 가장 큰 과제는 국민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민생을 들고 나왔다.

 

여야가 공히 민생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어쩐지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여겨지는 것은 왜 그럴까? 아마 국면 전환용으로 민생을 이야기하거나 피상적이고 실효성 없는 민생 대책을 남발해 왔던 우리 정치권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소멸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민생 문제로 정치권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를 꼽을 것 같다. 여야 공히 가격 통제로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맞장구칠 수도 있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도 풀어야 한다고 국민의힘은 주장할 것이고, 민주당은 재정을 대폭적으로 풀어서 경기 부양의 마중물을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무책임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전기료를 원가 미만으로 유지하고 유류세 인하를 지속해서 현재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정치권이 그런다면, 기성 정치권에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다. 가격 통제는 극단적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나 통상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일 수 없다. 인플레이션과 고물가를 이야기하면서도 경기 진작을 위해 감세하거나 재정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경제학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국민이 잘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도기 때의 단순한 경제구조와 시장의 미형성 시절에 통용되었던 정책을 경제가 성장하고 구조가 바뀐 오늘에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우리 경제 관료를 볼 때 절망하는 것과 이런 경제 관료의 자질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는 정치인의 말을 들을 때 절망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절망스러운지 모르겠다.

 

시장에 개입해, 가계부채 문제를 제어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 부실 채권 문제를 막고, 부동산 PF 대출과 부동산 부양 문제도 해결하려는 경제관료들의 잔재주 부리기는 결국 정상적으로 이자율 정책을 쓸 수 없도록 만들고, 우리 경제를 비정상적인시장경제로 몰고 가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이자율을 올리고, 높은 이자 부담에 따른 한계 기업의 도산이 일어나도, 이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과제이다. 기업이 망하면 안 된다는 황당한 경제관을 가진 정치인들은 시장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민생을 강조하는 정치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또 있다. 눈앞에 보이고 당장에 부딪히는 문제와 피상적인 해법에 매몰되어서 정말로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와 미래 문제를 외면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제조업 위기, 사회 양극화 그리고 탄소 중립으로 이행이라는 보다 근본적이면서 미래의 문제이기도 한 난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저성장·저출생·지방소멸 등의 피상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할 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제아무리 민생을 외쳐도 더욱 악화될 뿐이다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형성된 재벌과 재벌 중심의 경직된 산업 및 경제구조를 유지한 채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탄소중립과 RE100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재벌 대기업들은 새로운 공장을 미국 등 국외에 짓고, 국내에서는 단가후려치기와 기술탈취로 고탄소배출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려 할 것이다. 결국 국내 산업은 몰락하고, 한국의 동남권을 중심으로 러스트 벨트화가 진행될 것이다.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재벌의 경제·사회·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감히 누가 재벌들에 맞설 수 있을까?

 

그때가 되어도, 정치인들은 민생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우파는 감세와 규제 철폐로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좌파는 재정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때가 되면, 좌우 정치세력이 나라를 교대로 거덜 낼 것이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 2023.10.26.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한 나라들

엄청난 불행 뒤에는 엄청난 책임이 있다. 흔히 누구 책임인지 가리는 데 몰두하지만 골고루 나눠 가지고도 남을 책임이 있는 일도 많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적 배경이 그렇다. ‘유대인 문제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뿌리가 이렇게 깊은 갈등은 흔치 않다.

 

107일 하마스의 기습적인 공격 직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 명단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국가와 민족들의 커밍아웃이라는 느낌을 풍겼다. 이들은 쌓이고, 얽히고, 뒤틀린 문제를 만들고 키우는 데 기여한 세력이거나 그 후예들이다. 2천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이 얼마나 살뜰하게 비극을 만들고, 지금도 이어지는 참극의 기반을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 대략 살펴보자.

 

1번 이탈리아. 이 나라가 뿌리로 삼는 로마제국은 1세기에 더는 죽일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해 유대인 디아스포라(이산)’라는 신화의 주요 장을 썼다.

2번 프랑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각지에서 추방당하고 학살당했다. 흑사병 시대에는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 탓에 도처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이 학살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1394년 샤를 6세는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

 

3번 영국.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후원했다. 특히 1917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민족적 거처를 마련하는 것에 찬동한다는 밸푸어 선언이 결정적이었다.

4번 독일. 반유대주의는 나치 홀로코스트로 절정을 이뤘다. 더는 유럽에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갔다.

 

5번 미국.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가장 먼저 승인했다.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돕는 한편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한 국제적 비판과 저항에 맞서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

 

서구가 이스라엘의 건국과 존립을 도운 것은 과거에 저지른 막대한 죄악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이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방식이었다. 히틀러가 유대 민족을 절멸시키려는 방식을 택했다면 다른 세력은 이들을 유럽 밖으로 내보내는 인도주의적해법을 택한 셈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전부터 제기됐다. 동아프리카로 보내자는 제안도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유대인들을 연해주로 보내 비로비잔 자치주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결국 팔레스타인 땅을 택했고,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쫓겨났다. 그런 면에서 유럽은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했고, 유대인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유럽 기독교인들 죄악의 대가를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치르는 꼴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처럼 이스라엘인들도 끔찍한 희생을 겪는다.

 

이 비극에 역사적·도의적 책임을 느끼는 국가와 문명이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주고 그곳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빵을 주겠단다. 이 무슨 해괴한 행태인가.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으라는 말인가.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만 양쪽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다시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한겨레 : 2023.10.26.

 

 

가자 학살이후의 세계

20231018일은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쇠락을 상징하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포옹하고,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지지했다. 같은 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 구호품 전달을 위한 인도주의적 전투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브라질이 제출한 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14개국 중 미국이 유일했다.

다음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집트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 휴전을 촉구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스라엘의 대응은 자위권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온 것은 수십년 된 관행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패권 경쟁과 맞물리면서 길고 강력한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이중잣대를 들이대면서 두 개의 전선모두에서 명분을 잃었다.

이스라엘 방문에서 돌아온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적들의 위협을 받는 민주주의라 부르며 대규모 군사지원을 다짐한 것은 참으로 기묘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빼았고 가혹한 식민 지배를 해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과 학살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제재해왔다. 이스라엘은 벌써 20일째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의 물과 식량, 전기, 의약품 공급을 끊고 무차별 공습으로 6500명 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와 인질 납치에 함께 분노하고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학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 정치가인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점령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지하면서, 중동에서는 우리를 계속 점령하고 있는 점령자를 지지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함께 막아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지키자며 동맹을 규합해온 미국 외교의 토대는 무너질 것이다.

 

둘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인 글로벌 사우스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즉각 휴전 촉구발언 이후 자이쥔 중국 중동문제 특사가 중동을 방문해 민간인을 해치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면서 중재자로 나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후원자로 비판을 받아온 중국이 피스메이커이미지로 변신하고, 중동에서 친중국 여론을 넓히려는 계산이다.

중국이 자국 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무슬림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순이 분명하다. 중동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중국의 능력과 외교력은 제한적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사우스국가들에서 미국의 위선에 대한 분노가 커질수록, 중국을 대안으로 받아들이려는 흐름은 확대될 것이다.

 

셋째, 미국 외교 정책이 국내 정치의 한계에 매몰되는 현실이 분명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쟁터를 직접 누비는 외교전문가 바이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친이스라엘 세력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외교·안보 담당자들은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편들기가 큰 역풍을 일으키고 미국의 외교 전략에도 심각한 손실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 지도자들까지 연일 이스라엘의 과도한 행태를 비판하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지상전을 중단시키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을 향한 대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없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세력과 유대인 로비단체의 막강한 영향력과 국내 정치적 이해득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년 이스라엘에 33억달러(44335억원)의 군사 원조를 해왔으며, 이번 하마스 공격 이후 즉각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공격용 무기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공급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다. ‘하마스 제거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최대한 쫓아내고 가자지구의 땅을 차지하려 한다. 아니, 세계가 지상전은 언제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 민간인들이 죽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을 빼앗는 것을 막는 것이 국제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던 미국은 이 학살을 멈추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자지구 아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더욱 참혹한 지옥도를 만드는 데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분노에 불을 붙이면서, 그 고상한 국제질서가 도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박민희ㅣ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26.

 

 

제국이 쇠할 때 나오는 신호들

주식시장에서는 최고의 기업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는 과잉낙관에 대해 주가가 반응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업일지라도 낙관적 기대가 주가에 충분히 투영돼 있다면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장밋빛 미래의 스토리는 투자자들을 매혹하지만, 이미 이런 기대를 넘치게 반영하고 있는 주가는 뒤늦게 매수에 가세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곤 한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일 때가 실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다.

 

국가 경제 역시 자신감이 넘칠 때가 하강 사이클이 시작되는 변곡점이 되곤 한다.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듬해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중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4조위안의 경기 부양책을 통해 한때는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가 중국을 살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칭송을 받았던 때가 경제적으로는 정점이었다. 부동산에 집중됐던 과잉투자는 지금까지도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 미국의 경제력은 확장과 수축의 사이클을 그려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십수년은 미국 경제의 3차 황금기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 혁명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고, 글로벌 밸류체인 역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고 있다. 중산층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화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가 1차 황금기, 동서 냉전 종식과 정보기술(IT) 혁명을 배경으로 부흥했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를 2차 황금기로 규정할 수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 건국 이래 경기가 100개월 연속 확장세를 나타냈던 경우는 모두 3차례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3번의 황금기가 이에 해당한다.

 

과거 미국 경제의 장기 확장세는 과잉낙관 속에서 저물어갔는데, 미국 경제가 쇠할 때 나타났던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전쟁, 소프트파워 훼손 등이 그것인데, 이들 요인은 서로 연관돼 있다. 여기에 5번째 공통점으로 주식시장에서의 성장주 강세를 덧붙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호황의 산물이다. 과잉수요가 존재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나타날 수 없다. 경제가 정상치보다 과속 성장할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정부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다. 이에 더해 전쟁까지 벌어지면 정부는 지출을 줄일 수 없게 되고,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동행하는 현상이 빚어지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의 호황이 꺾이는 과정을 복기해보자. 출발은 미국 민주당의 과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대공황 후 1960년대까지는 경제 운용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스 경제학이 자본주의 주류 모델이었다. 그야말로 진보의 시대였다. F 케네디 사후 대통령에 오른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주당적이었는데, 존슨 행정부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위대한 사회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원대한 포부가 축약돼 있는 구호였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기 시작한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든다. 여기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전비 지출로 재정적자는 더 확대되고, 1970년대 원유 파동과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은 장기화된다. 이후 1980년대까지 미국은 일본과 독일 등에 밀리는 이류 국가 취급을 받게 된다.

 

한편 전쟁은 미국이 가졌던 소프트파워의 후퇴를 가져오기도 했다. 파시즘과 나치즘에 맞서 세계를 구했던 미국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 후반 베트남에서 미군이 행한 양민학살이 폭로되면서,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미국 경제 2차 황금기가 끝나갈 때 나타났던 모습도 비슷하다. 역시 재정적자가 출발점이었다. 케인스주의자의 시대는 가고, 1980년대부터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보수주의 경제학이 득세한다. 정부 기능 축소, 규제 완화, 민영화, 감세 등이 시대정신이 됐다. 2000년대 초 재정적자 확대는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파격적인 감세가 원인이었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름 붙은 대규모 군사작전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다.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이때도 바닥까지 추락한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장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불통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특히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는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의 대립이 격화했다.

 

재정지출 확대나 감세는 나름의 선의를 가진 정책이었을 테고, 전쟁 역시 자신들의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과잉을 불러왔다. 1960년대는 진보주의자들, 2000년대는 보수주의자들의 과욕이 재정적자를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미국이 벌였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베트남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2차 이라크 전쟁 등도 자국의 필요가 언제나 관철돼야 한다는 자의식 과잉의 산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장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가장 자신감에 차 있을 때 재정적·군사적 과잉팽창이 나타났고, 이는 도리어 미국의 경제적 패권 상실로 귀결되곤 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욕은 정부지출 증가로 이어져 국내총생산(GDP)6.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2개의 전쟁에 지원을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체시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번영하던 제국에 황혼이 물들 무렵 주식시장에서는 성장가치로 무장한 종목들의 버블이 만들어졌다. 1차 황금기가 끝날 무렵에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로 불렸던 성장주 버블이 있었고, 2차 황금기 종반부에는 닷컴 버블이 있었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도 매력적인 7개 종목(magnificent 7)으로 불리는 성장주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고, 가장 좋아 보일 때가 실은 새로운 변화로 가는 변곡점인 경우가 많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 : 2023.10.26.

 

 

'인덱싱 이론'과 검--언 복합체

권력의 프레임 그대로 따르는 한국 언론... '허위 인터뷰' 입증됐나

인덱싱 이론(Indexing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언론 보도가 힘센 자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미국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학자 랜스 베넷이 권력과 언론의 역학 관계를 연구해 이론으로 정립했습니다. 미국 상황에서 나온 이론이지만 한국의 언론과 권력 관계에 대입해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아니, 한국에선 따라가는 경향정도가 아니라 따라가는 게 공식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언론의 기본 책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 주류 기득권 매체들은 권력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그들의 논점(Talking Point)과 시각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유는 뭘까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고,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덱싱 이론이 들어맞는 언론 환경에서 권력 감시라는 책무가 들어설 자리는 없겠죠.

 

202391, 검찰이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시작한 직후 종편 MBN은 온라인 판에 단독' 표기를 달고 <검찰, ‘김만배 허위 인터뷰'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압수수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 최초 입력 시간은 오전 848, 최종 수정 시간은 오전 9.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작하자마자 허위 인터뷰'라는 키워드가 기사 제목으로 툭 튀어 나온 것입니다. 이어 8분 뒤 연합뉴스도 다급하게 같은 제목만으로 1보를 올렸습니다.

 

허위 인터뷰? 과연 뭐가 허위라는 걸까요? 인터뷰 내용이 허위라는 건지, 인터뷰 자체가 허위라는 건지? 기자나 데스크는 허위 인터뷰라는 말을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썼을까요.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분석해 내용이 허위임을 발견한 걸까요? 아니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지어낸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검찰이 던져준 한마디를 그대로 따라간 걸까요.

 

뉴스타파는 9772분 분량의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 음성파일을 가감없이 공개했다.

이날 언론보도에 등장한 허위 인터뷰'라는 용어는 검찰과 대통령실, 집권여당이 뉴스타파를 공격하기 위해 짜놓은 프레임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후 허위 인터뷰'라는 말은 삽시간에 대다수 매체를 도배했습니다. 91일부터 현재까지 빅카인즈에서 허위 인터뷰'뉴스타파'를 넣어 전국 54개 주요 언론사 기사를 검색해보면 1200여 건의 기사가 나옵니다. 포털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같은 기간, 같은 키워드로 네이버 뉴스를 검색하면 무려 500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허위 인터뷰=뉴스타파라는 낙인 찍기 공작이 성공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어디가 허위인지, 과연 이것이 인터뷰가 맞는지 등에 의문을 갖고 보도하는 매체는 거의 없었습니다.

 

뉴스타파가 97일 김만배-신학림 음성파일을 전체 공개( https://newstapa.org/article/n0A3I) 한 이후에야 일부 매체들은 허위 인터뷰' 대신 녹취록보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선 공작' 프레임, 저급한 정치공학 기획

--정 복합체가 만든 프레임의 두 번째 키워드는 대선공작'입니다. 93일 국민의힘의 소위 가짜뉴스 괴담 방지 특별위원회'가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 문란의 범죄이자 대선공작이라고 규정해주자 대다수 언론은 집권여당의 말을 그대로 졸졸 따라갔습니다.

 

이틀 뒤인 95일엔 드디어 용산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희대의 대선공작'이라는 가이드라인을 하달합니다. 93일부터 지금까지 네이버에 뉴스타파대선공작을 함께 검색하면 무려 천여 건의 기사가 나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뉴스타파를 겨냥해 사형해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 운운하며 발악 수준의 막말을 퍼부은 것도 대선공작' 프레임에서 뻗어나간 변주입니다. 국정감사 때 나온 집권여당 의원들의 발언도 대동소이합니다.

 

용산을 향한 충성 경쟁,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대한 두려움의 병리적 발현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언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검찰은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엄호와 지원사격을 업고 소위 대선 허위보도' 수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검사 10명으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914일 뉴스타파 사무실과 한상진,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오늘(1026)은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기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했습니다.

 

2년 전에 여러 매체에서 나온 대선 후보 검증보도를, 그것도 대선이 끝나고 새 정권이 출범한 뒤 1년 반 넘게 지난 이 시점에서 검찰이 마구잡이 수사를 벌이는 것은 마치 브레이크가 나간 차의 폭주를 보는 듯 합니다. 매우 저급한 정치공학 차원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행태입니다. 이런 기획이 어느 선에서 어떤 의도로 실행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윤석열 정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명을 재촉할 뿐이라는 걸 역사는 보여주고 있죠.

 

검찰과 정치 권력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 안에서 그들의 말을 따라가는 언론사들도 언론의 위기, 신뢰 추락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인덱싱 이론이 증명되는 사례를 한국 매체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큰 고통입니다.

 

진짜 '가짜뉴스'는 무엇인가?

1025일 카타르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대통령실

 

어제 오늘 대다수 매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엄청난 외교 성과를 거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조선일보가 대통령·카타르 국왕 정상회담...LNG5사상최대 계약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입니다.

 

마치 윤 대통령이 카타르 국왕과 정상회담을 해서 5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LNG 선박 수주 계약을 따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현대중공업과 카타르에너지는 이미 지난 927일 서울에서 LNG 선박 17, 39억 달러(53천억 원) 상당의 건조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여러 매체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KBS도 지난 930일 현대중공업이 5조 원 규모의 LNG 선박을 수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기업들이 따 낸 해외 수주에 숟가락 얹기, 치적 부풀리기, 이를 통한 용비어천가 부르기 패턴은 이명박 정권 때 많이 봐왔습니다. 대통령 순방에 따라가는 기자들이 대통령실이 주는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안에서는 더 부풀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국민들을 바보로 보는 게 아니라면 이런 기사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지는 않겠죠. 바로 이런 기사들이 진짜 가짜뉴스' 아닐까요?

 

윤석열 정권은 뉴스타파 보도를 빌미 삼아 방통위, 방심위 등 온갖 감독, 규제, 심의 기관 등을 총동원해 가짜뉴스'를 뿌리뽑겠다고 합니다. 잘 됐습니다. 가짜뉴스라는 용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차제에 정말 가짜뉴스를 근절하는 데 힘껏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뉴스타파 김용진

 

학원과 은행만 잘사는 나라

회사원 A(49)씨는 매달 월급 400만 원을 학원과 은행에 절반씩 갖다 바친다. 먼저 중고생 자녀 두 명의 학원비로 200만 원이 나간다. 수학과 영어는 주 2, 국어는 1회 보내는데 이 정도다. 특강이 많은 중간·기말고사나 방학 땐 부담이 더 커진다. 나머지 200만 원은 전세대출 원리금을 내는 데 쓰인다. 대치동 학원가와 가능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탓에 고금리 부담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결국 열심히 일해도 손에 쥐는 건 한 푼 없다. 필수 생활비는 마이너스통장 대출로 당겨 쓰는 중이다

 

A씨가 유별나 그런 게 아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이 붕괴된 걸 모르는 건 나랏일 하시는 분들뿐이다. 학교는 잠자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친구들 모두 학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 보낼 수 없다. 더구나 일타 강사 학원 등록 후 성적이 오르면 달러 빚을 내서라도 더 보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6조 원도 넘었다.

 

그런데 A씨가 교육을 위해 쓰는 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성실 납세자라기보다는 월급에서 원천 징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납부된 세금 중 상당 부분이 교육에 쓰이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실제로 내년 교육 예산은 90조 원이나 된다. A씨는 도대체 그 많은 교육 예산이 어디에 쓰이길래 자신이 또 생돈 200만 원을 매월 학원에 바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국가와 개인이 이중으로 많은 돈을 들여 아이들을 키워내는데도 대학에선 학생들이 뭘 배우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업은 더 심각하다.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토로한다. 도대체 대학 졸업까지 16년간 우린 뭘 한 걸까. 국가적으로 보면 삼중, 사중으로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이가 불만이고 불행하다. 학생들은 입시 지옥과 무한 경쟁에 시달리고, 선생님은 추락한 교권에 실의에 빠졌다.

 

학부모가 아니어도 월급 절반을 은행 대출 원리금 갚는 데 쓰는 이가 적잖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40%를 넘은 차주는 모두 624만 명으로, 전체 빚 있는 가구의 32%에 달했다. 은행은 덕분에 먹고사는 정도가 아니라 배가 터질 지경이다. 전체 은행권 상반기 이자 이익만 30조 원이다. 은행마다 분기당 순이익도 1조 원을 훌쩍 넘어서며 사상 최대 실적이다. 혁신의 결과라기보단 임계치도 넘은 가계부채와 손쉬운 예대금리차 때문이다. 은행 평균 연봉은 1억 원을 넘긴 지 오래고, 퇴직금 잔치엔 입이 벌어진다. 2018년 이후 은행권 희망 퇴직자 1인당 평균 퇴직금은 55,000만 원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 미친 집값의 최대 수혜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은행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중산층 월급을 몽땅 가져가는 학원비와 주거비 도둑은 젊은 층의 결혼과 출산까지 막고 있다. 새도 둥지가 있어야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법이다. 미친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데 결혼부터 밀어붙일 순 없다. 사교육비가 너무 커 2세를 제대로 키울 자신도 없는데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저출산은 당연하다.

 

8월에 태어난 아기가 18,964명으로 집계됐다. 월간 출생아가 19,000명 선까지 붕괴된 건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감소폭도 29개월 만에 최대다. 우리나라 총인구는 매달 1만여 명씩 줄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가장 빨리 소멸하는 국가가 될 것이란 경고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출산 수당이나 양육비를 더 주는 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원적 대책은 교육 개혁과 주거 안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학원과 은행만 번성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박일근 논설위원 한국 : 2023.10.27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

언젠가부터 선을 넘는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이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점차 힘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점점 나빠져 가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옛날이 좋았고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며 요즘 것들은 예의없다는 결론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선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에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숨어 있다. 선이란 사람들 간에 합의된 사회적 규칙이다. 선을 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의미다.

 

사회적 약속에 대한 기존의 합의가 깨어지는 주된 이유는 바로 다양성의 증가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다. 다른 나라들이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겪은 일들이 한국에서는 고작 수십 년 안쪽에 일어났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왕조시대에서 일제강점기,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다양성의 증가는 문화의 개인주의화를 가져온다. 문화의 변화를 유발하는 선행요인들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 트리안디스는 개인주의적 경향을 촉진하는 조건으로 사회의 경제력, 풍부한 자원, 산업-정보화 사회와 함께 문화적 복잡성을 꼽았다. 문화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은 다양한 규범 체계가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한국인들은 비교적 단일한 규범체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격동의 현대사는 서로 다른 가치와 생활 패턴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사회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살아온 시대와 그 시대에 필요한 가치들이 다르다보니 서로의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를 개인주의 문화라 한다. 한국사회는 빠른 속도로 개인주의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꽤나 집단주의적인 문화도 갖고 있다. 집단주의란 개인이 어떤 집단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두드러지는 문화를 말한다. 트리안디스에 따르면 집단주의는 개개인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워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야 했던 조건에서 나타난다. 과거 농경사회였고 잦은 외침을 겪었던,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고 뚜렷한 외부의 적이 존재하고 있는 한국은 집단주의적 경향성 역시 강하게 나타나는 나라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날로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요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동하는 요즘 사람들의 행동이 과거에 비해 이기적인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의 규범과 개인적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적 가치를 우선하는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데 개인주의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한편,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도 일부 사람들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집단주의를 개인의 개성을 짓밟고 권리를 무시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생각은 전체주의지 집단주의가 아니다. 집단주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의 행동을 하기 전에 다른 이들을 고려하는 것이 내 개성과 권리를 무시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의미이고, 그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저마다의 기준과 원칙이 중요해지고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선을 넘는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들을 갑자기 받아들이기엔 변화들이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왕조시대의 신민들과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같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해 뜰 때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던 산업화 시대의 역군들과 개인의 삶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청년들이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갖게 되었다. 그럴수록 내 생각만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옳은 가치란 없다. 누군가가 선을 넘는다고 판단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경향 : 2023.10.27.

 

 

착시와 직시

최근 정치권 모습은 좀 낯설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 반성, 소통 메시지를 냈다.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17),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18), “많이 반성하고 더 소통하려 한다”(18). 국민의힘은 정쟁성 현수막을 철거했고, 여야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일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이 낯선 건 그간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비호감 경쟁으로 치러진 지난해 대선 후에도 국민들은 여야 간 극한 대치와 이로 인한 정치 실종을 지겹도록 봐왔다. 그래서 지금 착시일 수 있다. 여야가 바짝 엎드리는 건 6개월도 안 남은 총선 때문일 터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여야가 건전한 쇄신 경쟁을 하고, 상식의 정치를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태세 전환의 애매함이다. 강서구청장 선거는 여당의 17%포인트 차 완패였다. “윤 대통령의 패배라는 게 중론이다. 오만과 독선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어떤 선거 결과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한편에선 일개 구청장 선거” “송파구청장 선거였으면 이겼다같은 말들이 나왔다. 민심을 잘 읽고 그 숨은 뜻을 푸는 게 정치의 일이다. 그런데 엉뚱한 진단을 하고, 처방도 임명직 당직자 교체같이 엉뚱하다. 그러니 당내에서도 드라마 <아내의 유혹>처럼 장서희씨가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라고) 나온 듯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달라진 메시지가 나온 시기(17~19) 이뤄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뚜렷해진 민심의 경고를 보여준다.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3%포인트 하락한 30%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대구·경북(TK)에서도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등 지지층 이탈 조짐을 보였다.

 

여권의 인식과 대응에서 이상 신호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보궐선거 전후 상황을 보면 윤 대통령은 이렇게까지 패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식파킹 의혹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카드를 갖고 있었을 거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인의 장막이 있다는 세간의 추측이 맞을지 모른다.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재출마시키면 선거에서 진다는 건 상식이다. 대통령 주변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던 셈이다. 지금 애매한 태세 전환도 마찬가지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외부자극을 지각해 뇌로 전달하고 반응하도록 하는 신경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달라진 메시지는 자기고백이다. 30%대의 낮은 지지율에도,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안 쓰고 주먹을 휘두르던 그였다. “골프로 치면 300야드 날릴 실력이 있는데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 소용 없다며 이념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그였다. “일개 구청장 선거때문에 이럴 거면 당선 이후 15개월 동안 안 하고 뭘 했나. “국민이 늘 옳다라니, 그걸 이제 와서 깨달았다는 건가.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이 이념 투사가 된 것을 두고 늦깎이 의식화라고 했다. 뚜렷한 철학이나 이념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메시지 전환도 너무나도 가볍다.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 모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국민들께서 듣고 싶어 하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변화된 윤석열 보여드리겠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한 말이다. 지금 나오는 메시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로 뭐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뭘 반성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협치의 시금석으로 지목됐던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거부하고 있다.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달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태원 참사 시민추도식은 정치적 성격이라며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다. KBS 사장 내리꽂기, 언론에 대한 잇따른 압수수색 등 언론 길들이기 논란은 진행형이다.

 

국정기조 전환 없는 태세 전환은 위기모면용 보여주기일 뿐이다. 일단 소나기부터 피하고, 좀 살 만해지면 다시 본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척하지 말고 제대로 해야 한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국민은 다 안다./김진우 정치에디터 경향 : 2023.10.27.

 

인간을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부르기 시작할 때

분노와 증오의 불길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태워버릴 만큼 강력하다. 그 불길은 증오의 상대가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원료를 삼는다. 서로 죽이고 원한을 쌓아가던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은 이제 국지적 충돌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인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공격은 끔찍한 민간인 학살과 무차별적 인질 납치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스라엘은 피의 보복을 선언했고, 탱크가 가자지구 경계선을 뚫고 진격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대규모 지상전이 임박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다른 듯하다. 희생자 수뿐만이 아니라 아랍 국가들의 격앙된 반응과 복잡한 중동의 역학관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 그 자체다. 이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랍 국가들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시위를 벌이고 서로를 비난하며 진영 갈등을 벌이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 간에도 무차별적 혐오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양측 갈등을 역사적인 배경에 바탕을 둔 종교 분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영토분쟁의 관점에서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분석으로도 그들의 증오와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태가 발발하자 세계의 경찰국임을 자임하는 미국의 지도자는 황급히 중동으로 날아갔다. 뭔가 새로운 해법이나 화해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스라엘 도착 8시간 만에 다시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스라엘 군대와 하마스 간의 교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가자지구로 향하는 유엔의 구호 물품 대부분이 국경지대에 발이 묶여 있고, 연료를 제외한 극히 적은 양의 생존 물품만이 공급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불과 며칠 사이에 발생한 사망자 수만 해도 23일 현재 양측 합산 6000(이스라엘 측 사망자 수 1405,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수 5182)을 넘어서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린이와 여성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가자지구 사망자 가운데 약 6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피로 피를 씻는 상황이다.

 

양측이 내놓는 공식 혹은 비공식 성명에는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상대방을 짐승혹은 나치등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인종적 증오와 히스테리가 군인과 정치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모두를 사로잡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과 폭력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동조되고 습관화되는 것이 차별과 폭력이다. 대량학살 같은 인류사의 비극은 미사일이나 총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부르기 시작할 때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당시 경제와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에 대해 거미가 천천히 민족의 땀구멍에서 피를 빨아먹기 시작하고 있었다라며 혐오와 분노를 조장했다. 인간을 거미로 달리 호칭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인권의식은 사라지고, 폭력과 처분을 내적으로 정당화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증오 발언의 끝에는 홀로코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폭격 참사에 대해, 현재 양측 모두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하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하마스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요구하고 있다.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양측의 공방이 차라리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극악한 상황이라도 전쟁범죄가 발생했다면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이 마땅하다. 최소한의 진실 규명마저도 뒷전으로 미뤄두고 야만과 광기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인간을 지워내고 짐승이나 그 무언가로 호명하기 시작할 때가 새로운 암흑의 시간으로 질주하는 시작점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바이다.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앞서 선전·선동을 했듯이 말이다. 누가 됐든 그 말이 발화되는 순간,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바로 비극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어느 누가 자식이 납치돼 살해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양측 모두 피의 보복을 멈춰야 한다.” “보복은 어떤 형태로든 부당하고 잘못됐다. 살인은 살인일 뿐이다.” 2014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50일 전쟁당시, 희생당한 양측 소년들의 유가족이 남긴 말이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경향 : 2023.10.27.

 

 

'용산 정부'의 실체, 이런걸 우린 예전에 '레임덕'이라 부르기로 했다

용산이 한눈 팔면 곧바로 '복지부동'?

지난 9, 추석을 앞두고 철도 파업이 있었다. 경쟁 효과 '제로'STRKTX 통합 요구 등 쟁점들은 있었지만, 이 글에서 논할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의외로 큰 이슈 없이 철도 파업이 끝났다. 한 간부 출신 조합원에게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파업을 시작할 때, 지난해 '화물 노조 파업' 때처럼 정부가 대대적 '노조 때리기'에 돌입할 줄 알고 긴장 속에서 대응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파업 과정에서 국토부 공무원들은 너무나 '젠틀'했고, 노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진 않았지만, 노조가 내놓은 주장에 귀를 기울이려 애써주는 '진정성'도 보였다는 것이다. 이 간부 출신 조합원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몇 가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화물파업에 강경대응해 '재미'를 좀 봤다. 이어 노조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겠다고 했고, 노조에 침투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때렸다. 나아가 '노조로 위장한 조폭' 건폭 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그 결과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간간히 간첩단 사건이나, 노조와 별로 관련 없는 '위장 노조 조폭' 검거 스토리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대체 정부가 이루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정작 노동시간 개편은 69시간제 논란 후 논의의 명맥이 사실상 끊겼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방안 등 산적한 노동 개혁 현안들은 오리무중이다.

 

대통령이 '노조 때리기'에 관심을 끊자, '노조의 악행'을 뿌리뽑을 것처럼 요란하게 '대통령 지시 사항'을 늘어놓고 엄포를 놓던 공무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몰두하고 있었고, 국토부 공무원들은 '부드러운 중재'를 위해 '몰래' 뛰어다니고 있었다.

 

'용산 정부'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대통령이 관심 갖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분야의 공무원들은 혹사당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한 때 뿐이다. 그때그때 이슈가 있을때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용산이 분주해지고, 관계 부처 고위 공무원 몇은 크게 질타를 듣고 몇은 현란하게 움직였다. 실무를 다루는 공무원들은 눈치를 보다가 대통령과 용산의 관심이 다른 '카르텔'로 옮겨가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 이젠 '카르텔'이라는 말도 과거의 유물이 된 것 같다.

 

검사들이 그렇다. 그들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조직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찾아내 조치하고 처벌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수년 씩 묵은 미제 사건이 즐비해도 새로운 정치인 혐의, 경제인 혐의가 나오면 열일 제쳐놓고 역량을 특수부에 쏟아 넣는다. 한 사건이 일단락되거나 화제성을 상실하면 다른 사건에 눈을 돌린다. 기소 결정 과정도 불투명하다. 어떤 사건은 기소가 가능해 보이지만 미제로 남아있고, 어떤 사건은 기소가 불가능해보여도 기소한다. 검찰총장은 '암막' 뒤에서 이 과정을 미세 조정한다. 유일하게 대통령이 경험한 조직이 '검찰 조직'이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부처를 '검찰 조직'처럼 다루고 모든 이슈를 검사처럼 다룬다.

 

관가는 지금 숨족이고 있다. 사정기관들만 바쁘다. 2년동안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건에 특수부 인력을 집중시켰다.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팀이 25명 수준인데, 지금 이 대표에 대한 수사에 약 50여 명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과의 전쟁, 건폭과의 전쟁에 이어 검경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시절 의혹 검증 보도를 한 언론사들에도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을 비롯해 시민단체의 보조금 관련 수사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나쁜 놈 때려잡기'는 계속 진행중이지만, 윤석열 정부가 호기롭게 외친 연금 개혁, 교육 개혁, 노동 개혁 등 국정과제들은 언론 지면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과 같은 거친 언사들이 껍데기처럼 나부꼈다.

 

법무부(검찰청)와 행안부(경찰청)을 제외하고 다른 부처 상황은 어떤가. 연금개혁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7일 보험료율, 지급연령, 소득대체율 등 핵심 지표의 목표 수치를 제시하는 이른바 '모수 개혁'을 회피한 채 두루뭉술한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얼마만큼 더 내고, 얼마만큼 늦게 받는지, 소득 대체율은 얼마인지 구체적인 내용 없는 연금 개개혁안은 수십년 동안 봐 왔던 것들이다. 그마저 "이런 식으로 (인상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라며 "앞으로 공론화 과정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대체 정부 출범 1년 반 동안 뭘 했다는 말인가. 결국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전광판은 보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호기도 한풀 꺾인 모양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또 혼이 났다. 자율전공학부로 입학한 학생들의 의과대학 진학을 허용하겠다는 이 부총리의 발언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불필요한 언급으로 혼란을 야기한 교육부를 질책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대체 몇 번째 사과를 하고 있나. '킬러 문항'을 배제했다는 지난 10월 모의고사 결과, 올해 '물수능'이 예측된다는 말에 반수생이 '역대급'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A 아니면 B 식의 정책이 남발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비책은 가지고 있는가? 교육 현장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지 알 수가 없다.

 

여성가족부는 잼버리 사태로 망신당한데 이어 신임 장관 후보자가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해버렸다. 국토부는 '순살 아파트'와 각종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으며,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국토부장관의 '백지화 선언' 이후 꼬여만 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고 YTN 민영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지만, KBS 사장은 '낙하산 논란', YTN 민영화는 졸속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정부 유관 기관 소유의 지분을 '통매각'한 결정은 YTN 최대 주주인 한전KDN의 손실을 일으키는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지금 정부 부처는 스스로 벌인 일도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감사원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감사원의 전방위 감사는 전 정권 털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최근 국회에서 한 답변에서 "어차피 현 정부도 (정권) 중반이 되면 현 정부 사업도 감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타이거 감사'가 현 정부 공무원들에게도 "중반" 이후 적용될 텐데, 어느 공무원이 '개혁적'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위에 언급한 부처들이 하고 있는 일이 죄다 감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도어스테핑은 없어진지 오래고, 이후엔 그 흔한 기자회견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간간히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워딩이 신문과 방송을 메우는데, 목소리는 있으되 형체는 불분명하다.

 

감사원, 검찰, 법무부, 경찰, 방통위, 이런 조직들에만 과한 관심이 쏠린다. '적폐 청산'의 선두부대다.(이 글에서 전쟁 용어를 사용하는 건 이 정부가 많은 것을 '전쟁'에 비유하기 때문이니 양해를 바란다.) 일을 할 수 있는 조직만 '공격적'으로 굴리는데, 그 대상은 '적폐 청산'에 그치고, 삶은 팍팍해지는데 살림살이 나아질 '비전'은 안 보인다. 과거를 들추고 쑤셔대다, 급기야 1920년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홍범도를 부관참시하는데, 어느 국민이 이 정부를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을 발목잡힌 정부로 보겠는가. 현란한 칼춤의 칼끝만 부각될 뿐이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긴 것은 이 정부의 두고두고 상징이 될 것이다. 용산에 우뚝 선 '그들만의 리그'는 국정 전반을 다루는 방식에서 실패하고 있다. 곧 있으면 총선이다. 용산에서 '철새'들이 국민의힘으로 대거 날아들 것이다. 그러면 용산에 새로 입성한 참모들은 또 다시 업무를 파악하고 인수인계에 골몰할 것이다. 대통령은 장관 대신 '용산 출신 차관'을 내려보내 부처를 통솔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잘 되는 것 같진 않다), '용산 정치인'들을 의원으로 만들어 국회에 '내려보낼' 수는 없다. 철학 없는 정책, 준비 없는 대책이 남발된다.

 

이런 총체적 상황을 우리는 '레임덕'이라고 부르기로 과거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너무 빠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 2023.10.28.

 

 

역시나로 귀결되는 윤 대통령 첫 셀프 반성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 뒤 윤석열 대통령도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솔솔 흘러나왔다. 여러 보수신문까지 변하는 척이라도 하라며 대통령의 변화를 주문했고, 윤 대통령도 얼핏 달라진 듯한 발언을 내놨다. 패배 엿새 만인 지난 17일엔 국민통합위의 정책 제안이 얼마나 집행으로 이어졌는지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저와 내각에서 반성하겠다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셀프 반성을 언급했다. 이 발언 전후로 국민 소통,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해달라”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같은 말도 했다. 유체이탈 흔적이 배어났지만,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던 것과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혹시나역시나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대와 동떨어진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국빈 방문 환대에 취해서일까, 잠깐의 각성 효과마저 사라진 듯하다. 26일 귀국 뒤 첫 일정은 박정희 추도식참석이었다. 현직 대통령 참석은 역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민 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고,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님과 유가족분들께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바로 이날 유가족들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내온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엔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4년 전 독재자의 죽음엔 각별한 위로를 보내고서, 1년 전 온 나라를 비통에 빠트린 159명의 희생을 기리고 유가족을 보듬는 일정 참석은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유가족뿐 아니라 야 4당이 공동 주최하는 정치집회라서 안 간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추모식 장소 문제 때문에 야 4당과 공동 주최 형식을 취하기로 했지만, 최근 서울시와 서울광장 사용에 합의하면서 이미 야 4당은 주최에서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간곡히 참석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불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애초 대통령실이 유가족협의회에 잠깐 전화로 사정을 물어보기만 했으면 주최가 바뀐 사실을 진즉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참모들도 국민 소통, 현장 소통할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사실 실무진의 소통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하다. 가눌 수 없는 국민 아픔을 달래는 자리인데, 주최가 누구인지가 그리 중요한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누가 주최를 하든 대통령이 참석하면 그 행사는 대통령 행사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29일 기어이 추모식 대신 간 곳은 서울 영암교회 추도예배다. 여기서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을 유가족이 있는 곳에서 직접 건네지 않나. 유가족 앞에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싫고, 현장의 쓴소리는 더욱 듣고 싶지 않다는 불편한 속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행보가 말해주는 건 윤 대통령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성언급도 국민이 아니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향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 셈이 됐다. 소통 역시 자기편 지지층만이 대상이다. 대구·경북 고령층에 기반이 너른 독재자의 딸을 위로하고 다음날 또 경북을 찾은 반면, 홍범도 흉상 철거엔 어떤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여전히 보수언론에선 윤 대통령이 보수부터 결집하고 중도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북 치고 장구 친다. 그러나 싹이 노랗다. 아마 보수 결집도가 조금만 더 높아지면, ‘옳다구나그길로 쭉 갈 가능성이 크다.

그간 해온 모습을 보면, 윤 대통령에게 과연 여당의 총선 승리가 절실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쩌다 대통령이 된 걸로 이미 정치적 목표 달성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국정 비전은 빈곤하고 국회 입법을 통해 이를 성취하겠다는 야심 또한 박약해 보인다. ‘··마저 총선 지면 식물 대통령 된다며 모범 답안을 들이밀고 있지만, 윤 대통령 본인은 변화 시늉조차 제대로 안 내는 이유일 것이다.

 

아쉬울 게 없는 대통령이 안 바뀌면, 절박한 여당이라도 소리를 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맹종이 체질이 된 여당 돌아가는 꼴은 기대 난망이다. “대통령하고도 거침없이 얘기할 것이라고 큰소리 치던 혁신위원장은 참사 추모식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데 그쳤다. 이런 대통령과 정당을 기다리는 건 지난 보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섭고 혹독한 심판일 수밖에 없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29

 

독일에서 벌어진 한일 역사 전쟁

몇년 전 느닷없이 일본 교수 5명에게서 기이한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독일 교수들에게 똑같은 이메일이 발송됐다. 그 내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거짓말이기에 이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당시 독일과 일본이 나란히 힘을 합쳐 싸웠는데 유엔의 전쟁범죄로 낙인찍혀 희생을 당했다고 우기면 독일 지식인들에게 먹힐 줄 안 모양이다.

 

일본 사회에 일제와 2차 대전 당시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를 은폐하고 자국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반동적 극단주의 세력이 있다는 것은 필자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치의 만행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라는, 자기들의 일그러진 역사수정주의에 동조하라는 어불성설 같은 주장을 직접 접하자 깜짝 놀랐다. 고등교육을 받은 몰염치한 이들의 불쌍한 자화상이다.

 

당시 일본 교수 5명이 독일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진정한 이유는 20209월 말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선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소녀와 여성들이 당시 일제에 의해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강제 매춘과 살인을 당한 전쟁범죄를 상기시키는 베를린 소녀상은 이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이 소녀상을 세운 시민활동가들을 반일, 친북이라고 매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에서 한-일 과거사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투사는 이들 일본 우파 교수들만은 아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두번이나 요구할 정도로 집요했다.

 

일본 우파는 그렇다고 쳐도 일부 한국인들조차도 이런 심각한 역사 왜곡에 동조한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다. 이른바 엄마부대를 필두로 한 한국의 우익 반동 활동가들은 지난해 독일로 날아와 베를린 현지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 역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매춘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여성들은 전쟁 중 성노예 피해자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등 일본 교수들과 비슷한 논리를 독일 국민과 정부에 피력했다.

 

물론 극단주의 세력은 어느 나라에나 어느 정도 존재한다. 건강한 사람의 몸이라면 썩은 음식을 조금 먹는다고 해도 위액 속에 들어 있는 산이나 장내 세균에 의해 분해되는 것처럼, 건전한 민주 사회라면 소수의 극단주의자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영향력이 큰 정치 세력이 역사수정주의에 가담하면 위험해진다. 이런 점에서 현 한국 정부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수정주의 움직임은 극히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인도적 범죄나 인권유린을 전면적으로 부인한 사례가 아직은 없지만,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 동상을 폐기하고(cancelling)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그냥 덮고, -일 관계의 어두운 과거사를 결말내려고(Schlussstrich ziehen) 하는 모양새는 충분히 심각하다. 또한 이런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을 이른바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등 냉전 시기 매카시즘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국민에게 과거사 미화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몹시 걱정스럽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결코 그런 일부 정치인들의 일그러진 역사수정주의 시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다. 왜냐하면,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고, 깨어 있는 한국 시민들은 퇴행적이고 낡은 정치인 계급보다 훨씬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를린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들이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은 세계인들도 이런 비판적 역사의식이라는 상식에 연대하여 함께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한겨레 : 2023.10.29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둑선배 소집이라고 했다. 안 갈 수가 없었다. 20125월 광주 5·18기념재단 2층 대강당 옆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얘기를 들었다. 항상 겸손하며 노련한 오두둑 선배는 늘 물음형이었다. 대강당 안에서는 평화바람의 명목상 단장인 문정현 신부께서 그해 5·18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금 5000만원 모두 내놓자고 했으니 길 떠나는 종잣돈은 되지 않겠어요?” 식이 끝나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거리며 나오신 신부님은 오두둑과 평화바람 사람들이 결정했으면 된 거지 뭐, 하셨다.

 

일명 스카이(SKY) 행진이었다. 서울대·고대·연대 등 속칭 일류대로만 가야 한다는 학벌과 경쟁지상주의 우선의 천박한 한국사회에 대한 힐난과 야유, 풍자의 마음도 담겨 있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함께 가야 할 길은 소수 자본가의 이해만을 위해 수백만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시키고 10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불의한 구조조정 과정에 저항하다 당시 스물두 번째 희생자가 나왔던 쌍용자동차 대한문 합동분향소(S)이며, 4·3의 아픈 역사를 품은 평화의 섬 제주에 다국적 전쟁기지에 다름 아닌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제주 강정 구럼비 바위 곁(K)이며, 용산4구역에서 철거민 다섯 명을 불태워 죽인 정권 심판과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 대한 저항(Y)이라는 뜻을 담았다.

 

윤석열 정권 들어섰다고 모두 낙담해 있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22년 세계 기후위기, 한반도 평화위기, 여전히 사회에 만연한 각종 소수자 차별, 비정규직 확산 등에 맞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자들의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자고 전국의 민주주의 투쟁 현장을 순례했던 ‘2022 봄바람 행진도 평화바람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를 일으켜 세워 온 평화바람 사람들의 물음을 접한 지도 20여년이 되었다.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험난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길 위의 신부로 불리며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고 만 문정현 신부님외 평화바람 벗들은 세속의 이름도 없다. 그들은 만날 때부터 딸기’ ‘오이’ ‘중서’ ‘보리’ ‘’ ‘나무’ ‘어쭈’ ‘여름’ ‘잎싹’ ‘고철’ ‘무지’ ‘낮잠’ ‘두시간등이었다. 2003년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와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 후 중형버스를 개조한 꽃마차를 끌고 평화유랑단 전국 순례에 나선 게 평화바람의 시작이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여 동안은 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반대해 평택 대추리 주민이 되어 살았다.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작전명으로 15000여명의 군경이 몰려들던 새벽, 문정현 신부님은 대추초교 옥상 망루에 올라가 계셨고, 평화바람 벗들은 초교 울타리 앞에 인간방패가 되어 서 있었다. 내일이면 대추리에서 쫓겨 나와야 했던 마지막 대추리의 밤, 미군부대 철책 건너편 평화바람 집 마당에서 세간들을 태우는 거대한 화톳불을 피우며 문정현 신부님의 아코디언 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울고 웃기도 하던 그 밤을 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2009년부터 2010년 초까지 이명박 정부의 거센 공안탄압 속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용산 철거민 학살 진상규명 투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도 평화바람이었다. 한국 사회운동 그 누구도 학살 현장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을 결의하지 못할 때 군산에 있던 평화바람 사람들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꽃마차를 끌고 와 현장 분향소 옆에 붙박이로 세우곤 키를 뽑아 버렸다. 그후 1년여 동안 그들은 용산4가 철거촌 주민이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1차를 준비할 때도 평화바람은 폐차 직전의 꽃마차를 끌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희망버스 후에는 제주 강정으로 넘어가 지금껏 10년 넘게 강정 주민이 되어 살고 있다. 현재는 두 집 살림을 산다. 군산에서는 마지막 남은 새만금 갯벌을 지키고 미 공군 활주로에 다름 아닐 비행장 건설에 반대하며 600년 된 새만금 팽나무의 가족이 되어 살고 있다. 그 모든 현장에서 우린 단 한번도 평화바람 벗들이 생색을 내거나, 공치사를 바라거나, 자신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조용히 헌신하고 일한 후 조용히 떠난다. 그런 평화바람이 길 위의 삶을 시작한 게 올해로 20주년. 이젠 우리가 뭐라도 한번 해줘야 하지 않을까?” 본인들은 마다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작당모의를 해서 다시 꽃마차를 만들어주자고 한다. 소식을 들은 문정현 신부님은 그 꽃마차 타고 소외와 차별이 있는 곳, 반생명과 반평화에 맞서 싸우는 곳들 찾아다니다 길 위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하셨단다. 1125, 팽팽문화제 때까지 그 일이 가능할까?

송경동 시인 경향 : 2023.10.30.

 

 

전쟁 저널리즘과 일부 한국 언론의 기레기추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국제적인 주시 속에 벌어지면서 언론의 전쟁 보도, 전쟁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평시 언론 보도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객관성, 진실성 등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 참사 보도는, 전쟁위기가 높은 한반도 상황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실태의 적절성 여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쟁 저널리즘은 인간의 행위가운데 가장 참혹한 전쟁을 보도하는 것으로 언론에게도 최악의 상황이다. 전쟁은 상대를 죽이는 과정으로 살인은 애국행위로 칭송되며 적군은 악, 불의이고 아군은 선, 정의로 단순화된다. 적의 적은 동지이며 동맹은 최상의 가치로 칭송된다. 전쟁 저널리즘은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해하는 것 등을 보도 윤리로 삼고 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전쟁 상황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전쟁 당사국 등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면서 갖가지 보도통제, 심한 경우 언론보도 억제를 노리는 수법까지 등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쟁 보도는 전쟁 지휘부의 전략 접근이나 보도가 어렵기 때문에 전쟁 당사국의 공식 발표에 의존하거나 전쟁터의 참상과 비극을 전달하는 비중이 커진다. 전쟁이 시작되면 검열이 실시되거나 당사국은 언론을 수단으로 삼아 적에 대해 심리전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아 언론이 전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이스라엘군 언론인 안전 보장 못한다경고 속 언론인 다수 희생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장기화되고 지상전이 본격화되면서 양측 사망자만 1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언론인도 지난 7일부터 27일까지 최소 29명이 사망했다. 전투현장에서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인들이 큰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은 기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언론인들이 전쟁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고 그에 따라 희생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총회가 휴전을 결의했는데도 강력 반발하면서 가자지구 진입에 대해 악마들을 전멸시켜야 한다며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과정에서 들어난 바와 같이 전쟁 당사국이나 이해관계가 큰 쪽에서는 전투 현장에 대한 접근 통제는 물론 전쟁의 명칭 등 보도 용어에서부터 일방적 주장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언론 보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전쟁당사국들은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는 프로파간다를 유포해 자신의 방어,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언론의 입지도 좁아진다.

 

언론 자본이나 경영진은 전쟁 당사국과의 이해관계를 따지게 되는 수가 많아 전쟁 지휘부가 발표하는 사항을 받아쓰는 일을 중요시 하게 되고 취재 편의, 객관성 등을 내세워 중동지역 출신 언론인을 앵커 등에서 배제하는 내부 통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쟁 저널리즘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의 원인, 그 타당성이나 합리성 등에 대한 보도보다는 전투 현장 상황에 대한 보도의 비중이 커지기 마련이다.

 

최근 벌어진 두 개의 전쟁처럼 전쟁 당사자들은 언론을 전쟁 수행 과정에서 아군의 정당성, 적군의 전쟁범죄를 부각시키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자신들이 행하는 군사적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대신 상대방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기 위한 정보만을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언론의 입장에서 상업적인 뉴스 가치와 사실관계나 진실 확인 등을 놓고 고민하지만 결국 언론사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전쟁 보도가 포격이나 공습 등이 벌어지는 전투현장의 영상 등이 중시되면서 전쟁 자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전쟁 당사자들이 번갈아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식의 공방전을 보도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 참상을 널리 알리고 평화중요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전쟁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이나 제 3자의 객관적 입장 등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근본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두 개의 전쟁은 미국과 유럽이 한 쪽 진영에 모이고 러시아, 중국, 중동이 다른 진영을 형성하는 식의 신냉전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판이나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도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식의 정치적 움직임이 있고 일부 언론도 그와 무관치 않거나 그것을 부채질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전쟁 당사국 어느 편의 시각에서 생산된 정보를 다루느냐에 따라 선악, 정당성 유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언론이 편향적 보도를 하게 될 경우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어느 쪽에서 제시하는 정보를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보도효과가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남북한 간에 상대방에 대한 말싸움이 격화되면서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정치권의 안보행보도 강화되고 있다. 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현지를 방문하거나 중국과 러시아에 날선 발언을 하고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키 위해 한미일 군사 협력 체제를 강화하면서 한미연합을 강화하는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한미 두 나라는 한 목소리로 북한이 핵공격을 하면 정권은 종말이라는 구호를 합창하거나 윤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할 경우 1초도 기다리지 말고 응사하라"라고 일선장병에게 훈시하고 있다.

 

언론이 정치외교에 대해 거울의 기능만을 발휘하고 소금의 역할을 극소화할 경우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키거나 한반도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여론 형성을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언론은 제 4부의 입장에서 신중하고 대안제시에 노력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의 피해가 막심하게 된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특성상 남한 수도권에 수천 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 유사시 이들 주민의 대피나 안전보장에 대한 시스템 점검 등이 언론의 책무 일터인데 그런 보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은 무기나 군인, 동맹이 수행하는 것이라 해도 주권자인 민간의 피해도 주요 변수로 고려해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심리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남한이 고려해야 할 측면도 언론은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정권 종말이면 한반도 전면전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공격하기 이전 상황에 대해, 그리고 전쟁이이나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정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언론에 의해 제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라는 점은 정치가 군에 우선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이는 정치가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나 언론은 이 점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심각하다.

 

정치권이 남쪽 주민 다수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거나 우발적 총격에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미 연합훈련을 스포츠 중계 방송하듯 보도하거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항하기 위한 신무기 개발, 시험현장의 모습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경우 전쟁 논리가 강조되는 상황에 기름을 붓는 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어 자성이 요구된다. 4부의 역할을 방기한 채 정치권의 나팔수나 보조 역할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윤 대통령 정부가 전쟁이 발생하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거나 전쟁을 하지 않고 승리하는 방식 등을 보도를 통해 제시하지 않은 채 전쟁 불가피성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그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극찬하는 식의 보도행태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거대 통신사는 21세기 지구촌의 가장 심각한 불평등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극찬하는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한 유력 일간지는 한미 동맹 70, 번영을 위한 동맹 - 韓美 전투기 조종사가 한 부대에군산 하늘엔 애국가·국가 함께 울린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불평등 한미동맹만을 칭송하는 언론은 또 다른 기레기

한미군사동맹의 종속성은 필리핀과 미국이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맺은 군사협력 체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군은 필리핀에 영구주둔은 하지 못하고 주둔 시 필리핀 군부대내에서 가능하며 미군주둔으로 발생하는 환경 피해 등에 대해 필리핀 법의 적용을 받는다. 또한 핵무기 반입은 금지된다. 군대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것에 보듯 양날의 칼과 같은 측면이 있어서 그에 대한 안전판이 필요한데 필리핀과 미군의 관계에서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심각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은 한국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미국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권리(right)를 보장받는 등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고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 사령관직을 겸하거나 전시작적권을 틀어쥐고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군사적 사태에 대비하는 그물망과 같은 기득권 유지 체제를 만들어 놓고 있다.

 

미국은 이에 따라 북한 선제타격 등의 전략을 수행할 시스템을 갖춰놓은 상태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결정권은 미국에 있고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인 상황인데도 윤 대통령은 마치 군사적 자주권 국가의 지도자인 양 북한에 대한 군사적 보복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막대한 원조를 국제적 환시리에 약속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은 주한미군이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군 최전방 부대로서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2차대전 종전이후 한반도에서 취한 정책은 미국익 추구라는 일관된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에 엄청난 시혜와 기여를 한 것으로 칭송하고 있지만 이를 미국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미국은 자국의 해외 파병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어 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미국 정부가 고려할 때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이유다. 정부가 사실관계에 부합치 않은 한미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가짜뉴스의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 이익 관철이 목표, 이를 외면한 주장은 가짜뉴스

미국이 한미관계에서 자국 이익을 배타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은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전면 이행치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에서도 그 심각성이 들어난 바 있다. 문재인 전 정부, 윤석열 정부 모두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고 오늘날 한미관계는 미국이 북한을 세계핵전략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켜놓고 한국은 그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모습만으로 비춰지고 있다.

 

군사주권이 외국에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전쟁 불가피성만을 강조하는 정치논리를 칭송하고 박수갈채만을 보내는 것은 전쟁저널리즘의 기본취지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언론은 박정희 이래 여러 정부에서 남북교류, 협력에 합의하고 이행을 추진한 이유,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어떤 접근이 최상인지에 대해 차분하게 접근해 언론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언론이 준전시체제인양 정부의 무력증강만을 앞세운 강경대북 정책만을 중계 방송하는 식은 또 다른 기레기의 모습일 뿐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이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해 가능한지 여부를 언론이 살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이 언론 본연의 책무라 하겠다. 전쟁은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인 될 수 있고 그로 인한 비극이 참혹해서 가능한 피해야 하고 언론이 제 4부의 입장에서 그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미디어오늘 2023.10.30

 

 

제가 빨갱이예요?”라는 그 말

이태원 참사 1년을 돌아볼 때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날, 기자들 앞에 유가족들이 서자 극우 유튜버를 비롯한 이들이 노래와 야유를 시작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발언을 멈춘 채 먹먹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분노를 참을 수 있는지 나로선 가늠조차 힘든 당시 심경을 얼마 전 조심스레 물었다. “사실 아주 담담했어요. 원망이나 분노 같은 걸 넘어 이제까지 우리가 한 게 뭔가 같은 참담함뿐이었으니까. 저리 조롱하는 이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한심하고 답답했습니다.”

 

1년 전 그날, 이정민씨의 딸 주영씨는 약혼자 서병우씨와 웨딩플래너를 만나고 저녁을 먹으러 이태원을 찾았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9월 부부가 됐을 그들이다. 몇달 전 시작한 인스타그램에 병우씨는 매일 주영씨와 찍은 사진을 하나씩 올린다. 자신만의 애도 공간일 것이다. “걱정은 언젠가 주영이 사진, 주영이랑 찍은 사진이 다 떨어질 텐데 그러면 뭘 올려야 할지.” 최근 출간된 청년 생존자와 유가족 증언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읽다가 1년이 지나도록 이들이 상실과 아픔을 달랠 곳 하나 제대로 없다는 사실이 새삼 사무쳤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포털들이 관련 기사에 며칠간 댓글창을 닫았지만 홈페이지에 댓글창을 그대로 둔 언론사도 있었다. 지난 주말 읽은 한 일간지의 유가족들 관련 기사도 그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추모하세요. 여론몰이하지 말고’ ‘시위꾼들이 유족 사칭해서 쇼하는 건 아님?’ 같은 댓글은 양반인 편, 차마 옮길 수 없는 내용이 다수였다. 유가족과 생존자, 목격자들이 내내 겪었을 일이다. ‘아이들이 놀러 갔다가 마약 했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바로잡고자 댓글을 달았다가 2차 가해 댓글들을 접했던 생존자 이재현군은 지난해 12, 159번째 희생자가 됐다. 뉴스타파 분석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 54천건의 댓글 230만건 가운데 30%가 심한 정도의 혐오표현과 욕설이었고 지금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어쩌다 우리는 온전한 애도조차 못 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가.

세월호 학습효과라는 이들이 많다. 당시엔 추모와 애도 분위기가 그래도 한동안 지속됐다. 이태원은 초기부터 달랐다. ‘재난의 정치화란 말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구실이 됐다. 1주기 추모대회를 정치집회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을 거부한 것은 이 나라의 지도자가 앞장서 그런 낙인을 찍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1주기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외국으로 떠나기 전 팽목항이라도 갔고, 이완구 국무총리는 안산분향소를 예고 없이 찾았다가 쫓겨나기라도 했다.

 

쇼하기를 싫어하는 정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념이나 정치적 계산을 떠나 이 정권의 리더십엔 애당초 따뜻한 심장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뉴스타파의 최근 이태원 1주기 영상 인터뷰에 응한 한 생존자는 울음을 참으며 제가 빨갱이예요?”라고 되물었다. 피해자들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사회가 정상인가, 거기에 사는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32명의 전·현직 공무원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 인터뷰를 통해 유능한케이-공무원 사회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분석한 책 정부가 없다’(메디치)에서 작가 정혜승은 서울대 임기홍 박사의 논문을 인용해 재난은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 현상이라며 정치화와 정쟁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재난은 기술적 영역의 문제, 행정의 대상으로만 사고되고 복구 과정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재난은 복구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얼마나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되는 정치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치혐오라는 파도 속에 우리는 이를 직시하지 못해왔다. 사실 유가족 등 피해자들의 고립과 외로움을 덜어내는 일은 비단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혐오와 비난과 정쟁을 멈출 수 있는 길이자, 있어선 안 되지만 또 다른 재난에 처할지 모르는 나와 우리를 미리 구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며칠 전 찾은 이태원역 1번 출구 그 골목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30대 직장인이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 유행한다는 술을 두캔 사 들고 와 향을 피운 그는 “20대 그 친구들을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다정한 정부를 기대할 순 없어도 다정한 연대는 가능하다. 비록 극우 유튜버나 포털의 혐오 댓글이 요란한 것 같아도 다정한 연대의 힘을 믿는 이들이 내 곁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게 희망이다.

김영희 | 편집인 한겨레 2023.10.30

 

차분한 변화? 턱도 없다!

비운의 노무현 전 대통령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급진적이미지다. 하지만 정책 면에서 노무현 정부는 급진적이지도, 그리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탈권위주의 등 진보적 정책도 있었지만, 이라크 파병,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파견근로제 확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전반적으로 보수정책들을 폈다. 그럼에도 그에게 급진적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것은 급진적 언술때문이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여고생들 추모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반미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반미면 어떠냐고 되받아쳤다. 대통령으로 미국을 방문해서는 반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아니었으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고맙다며 우파 대통령들도 안 했던 급진적인 친미발언을 했다. 그의 급진주의는 내용의 급진주의가 아니라 스타일의 급진주의였다.

 

스타일의 급진주의에서 노 전 대통령 못지않은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의 언술은 노동운동에 대해 건폭’(건설조폭), 야당 등 비판세력에 대해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등 이것이 정말 극우논객이 아니라 대통령의 언어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투적 언어와 적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스타일의 급진주의는 어퍼컷이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공식 행사에서 어퍼컷을 날리는가! 윤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다른 점도 있다. 내용까지 급진적이다. 정확히 말해, ‘극우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그 내용이 극단적 보수주의, ‘급진보수주의. 이는 여러 정책들, 극우 인사만 골라 중용하는 인사 등이 잘 보여준다. 그 같은 급진주의, 극단주의는 독선과 불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다. 유죄 판결로 쫓겨난 사람을 바로 사면해 다시 후보로 내세우는 오만과 독선을 보였으니, 17%포인트밖에 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놀라운 것은 참패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윤 대통령은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처방했다. 그간 언행에서 차분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그가 차분한이라는 말을 쓴 것이 놀랍다. 그의 사고 속에 차분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대 밖이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쓴소리에 격노하고,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 내부총질이라고 생각하면서 지혜가 가능할 수는 없다. 사고의 안일함도 놀랍다.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문제가 차분한 변화로 수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차분한 변화로는 턱도 없다. 물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여론이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밀고 나가겠다는 그의 독단과 소명주의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그는 선거 참패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이념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말일 뿐 스타일과 정책 면에서 실제 얼마나 변화가 생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을 보면 별 희망이 안 보인다. 당을 내시당으로 만들어 보선 참패에 책임이 있는 김기현 대표가 유임됐고 사표를 낸 지명직 당직자 중 총선 공천을 책임질 사무총장에 친윤계를 임명했다. 혁신위원회 역시 친윤일색이다. 뼈를 깎는 발본적 개혁이 아니라 화장을 고친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진짜 한심한 것은 위로부터의 궁중 쿠데타를 통한 윤석열 신당창당설이다. 문제의 근원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데 신당을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스타일의 급진주의, 급진보수주의를 차분하게가 아니라 혁명적일 정도로 급진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희망이 없고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차분한 변화가 아니라 소통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 국민이 그에게 기대했던 공정과 상식으로의 혁명적, 급진적 변화이다. 즉 그의 특징을 살려, 급진보수주의와 급진적 언술을 급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비대위원장 유승민, 혁신위원장 이준석정도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이 두 사람에게 공천을 주고 중임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윤 대통령이 차분한 변화에 안주하다가 총선에서 참패하고 빨리 레임덕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파를 떠나,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을 레임덕으로 표류하여 국정이 망가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분한 변화? 턱도 없는 이야기다./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 2023.10.30

두려움에 사로잡힌 대통령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막연히 잘될 거라고 윤석열 대통령을 추켜올려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들던 자들이 갑자기 손가락을 대통령에게 돌리며 문제를 진단하는 척하고 있다. 소통 강화나 민생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변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윤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지금의 통치스타일 문제가 기술적 미숙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당대표의 관계로 지낸 기간을 반추해보면 대통령을 관통하는 맥이 있다. 대통령은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다. 과장된 어법, 끝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자신감이나 자긍심의 발로일 수 없고, 그저 내재된 여러 두려움에 대해 반사작용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

 

윤 대통령은 스타검사 출신이고, 그 명성의 근원은 최고 권력층을 처벌하고 저인망식으로 수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언론에 나오기 좋은 화려한 수사를 해왔다.

 

부패한 아들들이 있었지만 책임이 연좌되지 않았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봉하대군과 영일대군이라는 형들이 있었음에도 그 일로 본인에겐 형사적 책임이 지어지지 않았던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최순실씨와 경제공동체로 엮여 엄중한 시련을 겪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화려한 수사를 위해 좁혀놓은 그물코가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그것이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에 매우 방어적인 자세를 가져오게 하는 이유다. 만약 야당이 주장하는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처가와 대통령이 경제공동체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없어 두려운 것이다. 채모 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최고 윗선까지 책임을 물리려 했던 박정훈 대령을 탄압한 내용이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윤 대통령은 자신이 검사라면 이 사건을 매우 화려하게 수사할 수 있음을 직감했을 테다. 두렵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 시절 진실한 사람들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수사를 받으며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떤 불리한 진술을 했는지 우리는 몰라도 윤석열 검사는 안다. 스스로 윤핵관이라 호칭하는 이들이 권력 끈이 떨어지면 어떻게 대통령에게 불리한 얘기를 할지 불안할 테다.

 

임기 초 이준석과 홍준표, 유승민과 나경원 모두 본인보다 보수 진영에서 활동해온 이력이 길고 깊은 상황에서 느낀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을 제압하고자 몇 년 전 검찰총장 청문회장에서 자신을 맹비난했던 장제원 의원을 위시한 윤핵관을 앞세웠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의 변심 이력이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국회를 채워야 하는데, 민심을 보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겠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각 영주와 경산에서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지지를 받는 상황이라고 한다. 자신이 엄벌주의로 단죄한 사람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민심의 선택을 받아 정치에 복귀한다는 것도 두려울 것이다.

 

얼마 전 윤 대통령이 당에 입당하기도 전에 당을 완전히 뽀개고 대표는 3개월 내로 내쫓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긴 녹취가 공개되었다. 뒤에 들리는 말로는 녹취한 사람이 이미 몇 달간 대통령실에 해당 녹취의 존재를 알렸다고 한다. 그 몇 달간 대통령실은 알게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녹취를 공개한 이들은 비슷한 녹취가 500여건 더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라면 그 녹취 내용이 뭔지 통화 당사자인 대통령 측은 알 테니 얼마나 두렵겠는가.

 

지금까지 대통령이 느낄 법한 많은 두려움을 언급했지만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역사에 오명이 남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빠져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정권의 위기가 지속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역사의 많은 철권 통치자들은 불안증후군을 앓았다고 한다. 불안한 만큼 겉으로 철권을 휘두르면서 두려움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 증세는 많은 권력을 손에 쥐려는 사람일수록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작고 소중한 불안을 벗어던지고 시대의 과제를 짚어내길 기대한다.

 

돌팔이 이준석의 처방전은 다음과 같다. 두려움에 공산전체주의와 같은 허수아비와 싸우지 말고, 다시 공정과 상식이란 구호를 되새기며 시대적 과제와 싸워야 한다. 이준석 대신 경제적 불평등과, 홍준표 대신 저출산과, 유승민 대신 지방소멸과 싸우면 된다. 그러면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두려움을 씻을 만큼의 지지로 화답할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경향 : 2023.10.31.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산업화와 민주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추모식에 참석해 그가 이룬 산업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질문.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주역은 박정희였나? 일찍이 손호철은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등 개발 독재 지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가를 키우게 된 농지개혁(한국과 대만) 혹은 지주계급의 부재(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자본주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지원이 핵심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호 역시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 쇼윈도전략이 한국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고 언급한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기회로 긴밀한 관계가 된 미국은 공업화 경제개발 모델로 한국을 선택한다. 모델이 된 한국의 성공을 위해 미국 주도의 바이 코리아 정책은 한국을 수출지향형 공업화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질문. 산업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강의 기적은 수없이 짓밟힌 인권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것이다. 김호기는 박정희식 모델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 시기였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이 관행이 되고 인권탄압이 가해진 권위주의 시대였다고 썼다. 1930년대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겪는 와중에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를 바탕으로 소련을 세계 강국으로 만든 스탈린은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짓뭉개고,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개석,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칭송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국을 등에 업고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체제는 정권의 정당화, 안정화, 장기화에 안간힘을 다한다. 1972년 선포한 유신헌법은 반민주주의 행태의 절정이었다. 유신헌법은 국민주권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그들이 만든 어용 기관으로 넘겼으며, 국회의 권한을 축소해 삼권분립을 훼손함으로써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원리도 위반하였다. 대통령의 탄핵을 불가능에 가깝게 수정함으로써 민주공화국 국가형태에도 반함을 보여주었다.

 

박정희는 계엄령, 위수령, 국가비상사태, 휴교령 등 반민주적, 반헌법적 행위를 수없이 자행하였다. 박정희 통치 아래 유신의 광기는 정적인 김대중 납치 살해를 지시하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서울대 최종길 교수를 중앙정보부 직원이 퇴근길에 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반유신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자, 박정희는 19741월 긴급조치를 발효하여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511개월 동안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지속한다. 장준하와 백기완, 김경락 목사 등 수많은 민주인사를 구속하고, 용공 카드로 1974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국민을 겁박하였다. 이어 민청학련 조정 혐의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날조해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19798. 회사 운영 정상화와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가발업체 YH무역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18세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사건은 박정희 정권 몰락의 서곡이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을 놓기는커녕, 반민주주의의 대표적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 박정희였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만난 92개국 정상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압축 성장을 모두 부러워하며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라고 전하면서 박정희를 공부하면 당신 나라의 압축 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난 그들에게 언젠가는 터질 수 있는 압축 성장보다는 차라리 더디 가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성장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주의 주체인 국민 다수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성장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경향 : 2023.10.31.

 

 

뉴스는 빨라야 할까

신문(新聞)에 대한 오랜 개념 중 하나는 새로운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정기 간행물이다. 신문은 이미 아는 이야기, 즉 구문(舊聞)과 대비되는 속도의 매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호외(號外)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윤전기를 세웠다는 표현이 긴급한 뉴스를 대신하던 시절 역시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이런 맥락 때문에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은 경쟁이 안 되고, 종이 신문은 사양 산업이라는 통념이 생겼다.

 

정말, 신문 산업의 미래는 신속성의 문제일까. 주지하다시피 현실이 모두 뉴스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사실인가 자체가 논쟁거리다. 뉴스에는 가짜 뉴스 vs 진짜 뉴스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두 종류가 있다. 뉴스로 선택받은 현실과 그러지 않은 현실이 그것이다. 이처럼 가시화된 현실과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신속성은 중요한 특성이 아니게 된다. 빠른 보도는 신문 발생 초기, 1883년 한성순보(漢城旬報) 시절부터 불과 몇십년 전까지의 이슈였다. 속도를 다투다 보면 팩트를 더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가능했다.

 

특정 세력에 의해 급한 뉴스로 선택된 현실은 예전에는 TV,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파된다. 인터넷은 간혹 사용자 집중으로 과부하가 걸리긴 해도 바로 회복된다. ‘누가 먼저 보도했는가가 특종의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속도에서 인터넷이 승자가 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뉴스는 빠른 것이라는 속설을 변화시킨 인프라는, 인터넷의 등장이다. 인터넷이 속도를 무기로 신문의 정의를 신속에서 콘텐츠로바꾼 셈이다.

 

속도 조절이 콘텐츠

뉴스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요즘 신문의 개념을 신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느린 속도와 빠른 속도가 있을 뿐이다. 이는 권력이 속도를 조절, 즉 어느 시점에 어떤 뉴스를 내보낼 것인가를 결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사와 콘텐츠를 조작(making)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속도를 대신하여 콘텐츠는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종합일간지든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신문이든 인터넷 신문이든,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이지 결코 먼저 아는가가 아니다.

 

빠름은 수직적, 종적(縱的)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온다.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읽을거리의 취향이나 질이 우선시된다. ‘정보의 바다를 다 마실 수는 없다. 뉴스 생산자도 선택하지만, 수용자도 선택을 해야 한다. 읽을 만한 글,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생산하려면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속과 새로움은 별개의 범주다. 신속하다고 해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관점은 속도를 줄일 때 숙고 속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이 뉴스 그 자체일까, 뉴스에 대한 해석일까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은 지식을 공유하는 연결망이 아니다. 특정한 현실을 솎아내고 취사(取捨)하여 가공한 그물로, 사회적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자화상 같은 것이다. 뉴스가 우리를 문명케 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생산하는 상황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뉴스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한 이해 집단이 만든 매체(메시지)를 온 국민이 일상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당대. 이처럼 위험한 자발적 파시즘도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위험군과 잠재적 위험군을 포함한 과의존 수치는 23.6%이다.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수치로 보인다. 어느 대중교통 수단에서도, 어떤 모임에 가도 사람들은 시간, 장소, 상황과 무관하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돌아왔다, 오프-라인되찾았다, -전한 나”, 경향신문 1028일자 참조).

 

대중성, 즉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한꺼번에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에서, 읽히는 뉴스는 짧고 익숙하면서도 자극적인 글들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인터넷 뉴스가 하향 평준화된 보편성을 추구한다면, 그런 뉴스는 누구에게, 왜 필요할까. OTT 서비스는 자본이 예술을 쥐락펴락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인터넷 뉴스 생산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제 자본은 무조건 빠름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뉴스를 내보낼 수 있다. 속도 조절은 매우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배우 마약 혐의 뉴스와 정치

중요한 정치 뉴스가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사생활, 음주운전, 마약 관련 사건에 묻힌다는 얘기는 비단 이번 정부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여느 정권에나 있었다. 뉴스가 데이터로 축적되면서, 권력이 위기 상황 때 모아둔 파일을 꺼내는 일은 더욱 쉬워졌다. 팩트가 아니라 시기가 뉴스를 결정하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더구나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사회,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는 패권 사회에서는 뉴스도 패권적이 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얼마 전 YTN 라디오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혐의 입건과 관련해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바보가 아니라면 누군가 의도하고 기획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 민주당 상근부대변인도 지난 21SNS김건희씨와 고려대 최고위 과정 동기인 김승희 비서관 딸이 학폭 가해자로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사면 복권해 김태우를 강서구청장 선거에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런 기사가 유명 배우의 마약 의혹으로 덮여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시민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덮기가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덮기 논란의 이전 상황이 더 중요하다. 하나의 기사가 전 매체에 도배되어 사람들의 관심사를 독점하는 때다. 뉴스들이 각각 부분적 현실을 반영하고, 수용자가 다양한 매체에 접속한다면 이런 논란은 불필요한 것이다. 연예인 관련 뉴스가 가진 가장 커다란 힘은, 그들을 타자화하는(활용하는) 문화와 동일한 매체(스마트폰)를 모두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 뉴스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빠르다고 간주될 뿐이다. 인간의 경험이 전부 재현되는 세상은 없다. 어떤 현실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뉴스 생산자-개인, 공동체,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뉴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취재(‘발견’)한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른 관심사에 의해 발명되는 것이다.

 

통치 세력의 치부만 은폐되는 것이 아니다. 소외계층의 어두운이야기도 덮어지기 쉽다. 아니, 말 그대로 매장(埋藏)되기 쉽다. 10여년 전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있었다. 수차례 거절하다가 그의 상록수 정신에 감복,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친족 성폭력, 특히 친부에 의한 자녀 성폭력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내게 이런 일이 정말 많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의 조사와 연구는 방대하고 꼼꼼했다. 나중에 연락이 왔다. 베테랑 기자인 그가 쓴 가족 내 성폭력 기사가 삭제됐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이유는 단 하나, 기사가 어둡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사는 어둡다. 어두운 현실은, 분노할 만한 현실과 결이 다르다. 어두운 현실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문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생기는 것이다.

 

가짜 뉴스 논쟁은 팩트를 떠난 문제다. 가짜든 진짜든 수용자가 인식하면 그만이다. 가짜 뉴스는 객관성의 이면이자 산물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현실과 언설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뉴스를 늦게 혹은 빨리 알아봤자, 반나절 차이도 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모든 뉴스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속도는 경쟁 요소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뉴스가 종이 신문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종이 신문이 새로운 매체에 밀렸다는 사고는 발전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시대는 언제나 전후(前後)가 혼재, 연결되어 있고 나중에 나온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빠름이 아니라 콘텐츠의 시대를 열었다.

 

무엇이 중요한 기사인가? 유명 배우의 위법 혐의인가, 최상위 통치 세력의 불법과 부패인가. 콘텐츠 측면에서 후자를 덮을 이유는 충분하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경향 : 2023.10.31.

 

 

백성들의 처지를 이해할 능력

성경의 한 대목을 이야기체로 풀어 설명해 본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이 찾아와 당신의 아버지인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씌운 무거운 멍에를 좀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고된 노역을 조금 줄이고 세금도 조금 적게 낼 수 있게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르호보암 왕은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한 뒤 원로들과 상의한다. 원로들은 왕께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이 요구한 것을 들어주시겠다고 좋은 말로 답해주시면, 백성들은 평생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한다.

 

르호보암 왕은 그 충고를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자신과 함께 자란 친구들과 다시 상의한다. 친구들은 당신의 아버지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라고 조언한다. 사흘 뒤 다시 찾아온 백성들에게 르호보암 왕은 친구들의 조언대로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메운 멍에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다.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때렸지만 나는 쇠 채찍으로 치겠다고 답한다.

 

르호보암 왕의 친구들은 왜 그렇게 조언했을까?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 측근의 자식들로서 어릴 때부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금수저로 살았으니 가난을 모르고, 노동해본 적도 없어 백성들의 처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기조를 보였다. 지난 30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주 대통령실에서는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이 소상공인 일터와 복지행정 현장 등 36곳의 다양한 민생 현장을 찾았다.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듣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민생 현장에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들은 뒤 깨달았다는 내용이 놀랍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비상대책 마련을 호소하셨다고 했다.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다지금보다 더 민생 현장을 파고들 것이고 대통령실에서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를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주목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호소가 아니라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의미하는 듯하다. 50인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비명이 아니라 그 사업장 경영자들의 애로 사항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이고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인 듯하다. 차라리 내가 오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독일의 이주노동 정책 담당자가 오래전 한국을 방문해 독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마라충고한 적이 있다. 독일 정부는 이주노동자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주하는 선택을 하면서 독일의 다문화 사회를 형성했다.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도 적지 않은 수가 독일에서 교포로 살아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등적인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저하시켜 국가 경제에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2022년 노동재해 사고사망자 874명 중 80.9%707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사업주에게 부담된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계속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업주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다.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대통령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영업자의 고충에만 귀를 기울이고, 노동재해 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영세 사업주의 호소만 접하다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경영자의 말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말을 몇배나 더 많이 들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르호보암 왕이 금수저 친구들의 말만 듣고 따른 행위가 결국 그의 몰락을 재촉했거늘.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겨레 : 2023.10.31.

 

 

이것은 왜 정치적 수사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에도 검찰은 무리한 수사에 대한 성찰 대신 법원 결정에 불만을 쏟아내며 또다른 가지치기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의 대선후보 검증 보도에 형사처벌의 칼을 들이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정치적이다.

미국에서도 수사·기소의 정치화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돼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고 당시 법무장관도 수사에 개입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트럼프는 퇴임 뒤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되자 이번엔 정치적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논란의 와중에 시민단체 민주주의를 지켜라’(Protect Democracy)가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국가에서 정치 지도자에 대한 수사·기소: 법치인지 권한남용인지 판별하는 방법’. 이 보고서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기소가 정당한지, 아니면 정치적인지를 언론이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질문들을 제시한다. 이 단체는 권위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전직 연방검사 등 법률가들이 조직했으며 정치적으로 중도를 표방한다.

 

보고서에 제시된 핵심 질문들 가운데 몇가지를 국내 수사에 적용해본다.(이 질문들을 통해 현재 진행중인 트럼프에 대한 수사·기소가 정치적인지 여부를 논한 뉴욕타임스 칼럼 정치적 기소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나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공개된 증거로 볼 때 혐의가 뒷받침되나?”

정치적 수사 논란이 있는 사안일수록 명쾌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복잡한 법률적 쟁점이 있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장동 사건의 경우 5503억원을 공공환수한 모범사례’(이재명 대표 주장), ‘성남시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검찰 주장)이냐는 양극단의 시각이 부딪치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가 숨은 지분 428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이 주목받았다. 이 혐의가 입증된다면 재개발 사업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혐의를 기소 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이 대표가 부정한 이득을 취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현동 사건이나 대북송금 사건도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소명할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

같거나 비슷한 행위로 수사·기소된 전례가 있나?”

그동안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장이 형사처벌받은 사례들은 뇌물 등 부정한 이득과 관련돼 있다. 정책적 판단만을 문제삼아 처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표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는 백현동 사건과 관련해 시와 도시개발공사 사이에 배임이 문제된 전례를 못 찾겠으니 검찰이 찾을 수 있으면 자료를 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형사처벌하지 않던 사안을 특정 정치인에게만 적용하려 한다면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민주주의를 지켜라의 지적이다.

 

이 질문은 반대로 물어볼 수도 있다. 처벌된 전례가 많은 행위인데도 권력과 가까운 인물에 대해선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이란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이 이런 경우다.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같거나 비슷한 행위를 한 사람들 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사·기소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런 경우다. 대선 당시 윤석열 이외의 후보들에 대한 검증 보도 중에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된 것들이 있는데, 유독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만 집중 겨냥하고 있으니 이 역시 정치적 수사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법원·배심원 등 검찰 밖의 기관이 수사·기소 내용을 인정했나?”

당연한 질문이다. 3의 객관적 기관이 수사·기소 내용을 인정한다면 정치적이란 의구심은 줄어들 수 있다.

이 대표 구속영장은 법원이 기각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 의혹의 경우 김 여사 계좌들이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온 바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의 정치적 인물들이 해당 수사·기소에 대해 언급하거나 개입하려 했나?”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토론을 거부하며 확정적 중범죄 후보와 토론은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이런 인식을 바꾸었다는 신호는 없었다. 여당도 범죄 피의자와 회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잡범 발언을 비롯해 이 대표를 겨냥한 공격적 언사를 쏟아냈다. 국회 체포동의안 설명 때도 역대 장관들과 달리 장황하고 구체적으로 피의사실을 공개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구속영장 기각에도 수사의 적절성을 되돌아보기는커녕 법원과 입장이 다르다고 강변했다.

 

이런 모습들이 결국은 정치적 수사라는 의구심을 키우는 요소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현 법무장관이 여당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라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등 트럼프 수사·기소에 대해 철저히 말을 아낀 점, 트럼프를 기소한 특검도 기소 발표 기자회견 외에는 사건에 대해 일절 침묵한 점등을 트럼프 기소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하나의 근거로 들었다.

 

이번 질문은 맨 처음 질문과도 연관돼 있다. 야당 정치인이 큰 죄를 저질렀다면 조용히 수사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아 기소하면 된다. 반대로 시끌벅적하게 수사를 벌이고 결국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무부·검찰 내부의 감시기구가 수사·기소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거나 우려를 표하고 있나?”

수사·기소는 법률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많은 자료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수사·기소가 적정한 것인지 가장 잘 판별할 가능성은 수사기관 내부에 있다. 그래서 미국 법학계에서는 검찰의 정치화를 방지할 제도적 대안으로 법무부 감찰관실 등 내부 감시장치의 강화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장치가 작동할 수 있을까? 성매매나 성추행을 한 검사도 제대로 징계하거나 축출하지 못하는 게 현재 법무부·검찰의 감찰 기능이다. ‘제 식구 감싸기의 유구한 전통이 검찰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의 비위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는데,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 간부들은 왜 그런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제기하느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하는 게 우리 검찰의 수준이다.

 

정권과 검찰이 태생적으로 얼마나 근접해 있나?”

이 질문은 민주주의를 지켜라가 제시한 질문들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적 상황이 미국에서도 벌어졌다면 당연히 포함됐을 질문이다.

검찰총장 출신 검사가 대통령이 되고 검찰 내 핵심 세력이 정치적 결사체처럼 대통령과 혼연일체가 돼 움직이는 지금의 상황은 어느 민주국가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에 대해 훨씬 더 엄밀한 감시와 추궁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라는 보고서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검찰의 무기화는 민주주의의 쇠퇴요 권위주의의 출현 조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검찰의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고, 대중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중요한 정치적 인물을 수사·기소할 때는 시민 대다수가 납득할 만한 증거가 있었다는 점도 상기시키면서.야당과 비판 언론은 전방위로 수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의혹은 외면하는 검찰의 현실을 보며 더 깊은 질문과 씨름하게 된다.

한국 검찰은 민주국가의 검찰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검찰인가?”

박용현 | 논설위원 한겨레 : 2023.10.31.

 

광포만이 노자산에게

쏙 빼닮았다.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곳.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곳. 인간 탐욕의 용광로인 곳. 거제 노자산과 사천 광포만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현실에 처해 있다. 노자산은 여전히 골프장 개발 광풍에 신음하고 있는데, 광포만은 매립 위기서 벗어나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 주말에 가을 노자산을 찾았다. 무위자연. 노자산.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임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윤슬이 보인다. 산달도 너머로 한산도, 추봉도가 보인다. 더 멀리 떠 있는 섬들도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래서 노자산이 처한 아픔일랑 잠시 잊었다.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함께 간 아이들은 노자산 생물 관찰하며 웃음꽃 피운다. 산 중턱에 가재가 산다. 올해 지은 팔색조 둥지도 만났다. 노자산 품에서 소중하게 새끼 키워 지금은 남쪽 나라에 가 있겠다. 조금 더 가다가 비탈길 내려가니 대흥란 한 송이가 우리를 반겨준다. 7~8월에 피는 꽃인데 10월에 만났다. 순간, 세계일화란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세상은 한 송이 꽃이다. 한 송이 꽃 속에 우주 이치가 담겨 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인간과 자연도 둘이 아니다. 하나다.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짐승이 있어야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렇게 소중한 대흥란은 아름드리 큰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울창한 숲에서 볼 수 있는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그런데 노자산에서 발견한 대흥란만 727개체에 이른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삵의 배설물도 만났다. 거제외줄달팽이 흔적도 간혹 보인다. 모두 노자산에 터 잡고 사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이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귀한 생명인데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천연기념물 팔색조와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신비의 산으로 일컬어지며, 불로초와 절경이 어우러져 늙지 않고, 신선이 된 산.' 노자산 정상 표지석에 새겨져 있는 글귀라고 한다. 이런 걸 두고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천 광포만도 비슷한 위기에 처했었다. 산업단지 조성 계획으로 갯벌이 모두 매립될 뻔했던 위기다. 썩은 갯벌, 죽은 갯벌이라며 외면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거짓 환경영향평가서에 농락당할 뻔한 적도 있다. 광포만에도 노자산처럼 수많은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이 산다. 대추귀고둥, 갯게, 흰발농게, 붉은발말똥게, 검은머리갈매기, 흰목물떼새, 물수리들이다. 대부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사는 생물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 가까이에 살다가 사람들 욕심의 희생양이 될 뻔한 생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광포만은 이겨내고 버텼다. 끈질기게 저항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모여 관찰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응원한 결과 결국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까지 끌고 갔다.

 

버텨내야 한다. 저항해야 한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광포만이 노자산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기후위기 시대, 지구 열대화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일화(世界一花)란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것'. 늦추지 말아야 한다.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전 대표 경남도민 : 2023.10.31.

 

 

인간의 부끄러움을 포기한 경제관료들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올해 1.4%에서 내년 2.2%0.8%포인트 더 오르는 것 아닙니까? 왜 이 숫자는 안 보려고 합니까?” “IMF가 한국의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낮췄지만, 웬만큼 규모 있는 국가에서 2%대 초반은 없다. 주요국 전망치를 보면 우리보다 잘 나가는 국가가 거의 없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그 해 가을까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무 문제가 없다던 공직자의 기만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펀더멘털은 그때보다 더 좋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삶을 살았기에 한 나라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경제 수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번 칼럼에 좀 더 중요한 글을 쓰려고 했다가 추경호의 후안무치를 대학선생이 꾸짖지 않으면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 글의 방향을 바꾸었다.

 

전망 수치로 호언장담, 올해도 그 거짓말 반복할 텐가

IMF는 매년 10월이면 다음 해의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WEO)을 통해 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다. 올해도 지난 10일에 나왔다. 앞의 추경호 발언은 여기서 소개한 수치들을 거론한 것이다. ‘웬만큼 규모 있는 국가라고 한 것은 한국보다 GDP 규모가 크거나 유사한 국가들을 일컫는 소리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13위였던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 중에 우리보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높은 나라는 중국과 인도 정도다. 우리보다 규모가 조금 작지만 비슷한 20위 내 국가 중에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정도다.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해당 국가 국민이 들으면 불쾌하겠지만) 한국과 비교하기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기에 추경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말 그대로 전망치다.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IMF의 세계경제전망(WEO)를 보면 당시에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 2.0%는 비교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내년 우리보다 성장률 전망치가 높을 것으로 보는 5개 국가가 지난해에도 우리보다 성장률 전망치가 높은, 같은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1.0%로 우리의 절반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던 미국의 3분기 누적 성장률은 2.3%로 우리의 1.5%를 크게 앞서고 있다. 2분기까지 발표한 일본과 비교하면 2분기 누적 성장률이 한국은 0.9%이고 일본은 2.0%이다.

 

경제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추경호가 그리 집착하는 재정건전성은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중앙정부 채무가 윤석열 집권 직전에 1001조 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8월 기준 1110조 원으로 16개월 간 109조 원이 증가하였다. 문재인 정권 16개월 평균치가 101조 원이다. 이것도 코로나 팬더믹 2년을 포함한 결과이다. 그토록 문재인 정권에서의 재정 파탄을 떠들었는데 입이 있으면 변명 좀 해봐라. 지난 16개월이 전시 상황이기라도 했었는가? ‘웬만큼 규모 있는 국가GDP 대비 중앙정부 채무액 비중이 지난해 유일하게 증가한 나라가 한국이다. 중앙정부 절대 채무액은 대부분 증가했지만, 분모에 해당하는 GDP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크게 낮았기 때문이다.

 

제 입으로 전망치 낮추면서 여전히 큰소리-한은의 콜라보

내년이라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경제정책 기조가 변한 것이 없기에 내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수치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3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하였다. 추경호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는 1.4%이다. 사실 IMF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2.0%였다. 이것을 추경호 자신이 지난해 1221‘2023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서 올해 74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1.4%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자기 스스로 두 차례나 전망치를 낮추면서 내년도 IMF 성장률 전망치를 가지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먼저, 올해 성장률 1.4%를 달성할 가능성부터 짚고 넘어가자. 한국은행은 3분기 성장률을 발표하면서 4분기에 최소 0.7%를 달성하면 올해 1.4% 달성할 수 있다며 억지로 정부를 쉴드쳐준다. 그런데 4분기에 0.7% 수치가 나오면 올해 성장률은 1.35%가 된다. 반올림해서 1.4%로 맞출 수 있다는 얘기이다. 온전하게 1.4% 성장하려면 4분기 성장률이 0.9%가 나와야만 한다. 한국은행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추경호의 경제정책은 부문별 경제수치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올해 3분기 동안 내수의 누적 성장률은 0.1%였다. 소비가 0.1%, 투자가 0.1%를 기록했다. 내수가 사실상 성장을 멈춘 것이다. 게다가 정부소비의 3분기 동안 누적 성장률이 1.6%였다. 정부의 지출 감소가 만들어 낸 참사다. 추경호가 4분기 성장률이 0.7% 이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적으로 수출이다. 그런데 국민은 윤석열 정권 이후 수출이 어떻게 곤두박질쳤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2022년도 한국의 수출액은 세계 순위 6위였다. 그런데 올해 7월까지 한국 수출액의 순위는 8위로 밀려났다. 수출 감소를 세계 경제 악화 탓으로 돌린다면 상대적 순위는 유지됐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수출 증가율 하락폭은 세계 12대 수출 강대국 중 가장 크다. 그 결과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세계 수출 점유율은 평균 3.0%였으나 지난해 윤석열 정권에서 2.71%, 그리고 다시 올해 7월까지 2.66%로 하락하고 있다.

 

200위로 떨어진 무역수지에도 국민 망각 이용한 수출 는다

수출 참상은 무역수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라는 환란을 겪은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무역수지 흑자 달성을 사실상 국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왔다.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2008년이 무역적자였지만 이명박 정권 전체적으로는 무역흑자였고, 무역흑자 기조는 문재인 정권 때까지 역대 정권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이 기조가 붕괴된 것이 윤석열 정권이다. 작년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17개월 동안 자그마치 606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 중이다. 209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 무역수지 순위에서 문재인 정권 중에는 20위 이내였던 한국이 200위로 곤두박질친 이유이다.

 

그럼에도 추경호가 4분기(10~12) 수출 증가를 기대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추경호가 우리 경제가 부진에서 완만하게나마 다시 회복하는 지표가 나오고 있다라며 “10, 11월 가면서 조금씩 더 가시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 것이 바로 수출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의 망각을 이용해 현실을 호도하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221분기 이후 올해 3분기(7~9)까지 분기별 수출 증가율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수출 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지더니 10~12월에 해당하는 지난해 4분기부터는 10.0%까지 급락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지난해 수출 증가율이 높았던 분기가 올해 수출 감소율이 크다. 이른바 기저효과이다. 지난해 10%나 감소하였기에 올해 4분기에는 3분기 추세가 지속하여도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서는 플러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4분기에 수출 증가율이 플러스가 나와도 문재인 정권의 20214분기 수출액을 회복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것조차 수출금융에 23조 원 투입과 20대 수출전략 분야에 올해 총 41조 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해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거짓말, 둘러치기, 은폐공직자의 양심은 어디 갔는가

수출이 성장률에 착시효과를 만들어내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성장률 계산을 원화 단위로 하기 때문이다. 수출액이 감소해도 환율이 오르면 수출액은 증가할 수 있다. 게다가 수출액 감소보다 수입액 감소가 크면 경제성장률에는 플러스(+)로 기여한다. 무역수지 참상은 고환율 지속과 외환보유고 축소, 그리고 외국인 자금 철수에 따른 주가 폭락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율 방어로 외환보유고가 윤석열 정권 이후 352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외신()이 지적했듯이 환율 방어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IMF가 권고하는 적정 외환보유 수준에 미달할 뿐 아니라 블룸버그가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통화로 분류하는 태국이나 필리핀보다도 크게 낮은 상태이다. 무엇보다 이창용 총재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해외투자가는 많지 않다. 한은 총재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순간 한국 원화는 대폭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중 약 90%를 유가증권, 특히 미국채 중심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미국채와 미국 정부가 보증한 MBS 등 채권 가격이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미국채 전체 평균은 2020년 여름 정점 대비 15% 이상 하락했고, 특히 10년물 이상의 장기 국채 가격은 45% 이상 하락한 상태이다. 액면가치를 반영하는 장부가격 기준 외환보유액과 평가손익이 반영된 외환보유액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가증권의 평가손은 현금 동원 능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시장 불신을 잠재우려면 한은의 유가증권 구성 내역과 평가손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시중에 실제 외환보유액은 4천억 달러가 붕괴하였다는 말이 회자한다. 8월 기준 미국채 보유액이 1178억 달러였다. 평균 손실율 15%만 적용해도 177억 달러이다. 9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이 4141억 달러이니 4천억 달러 붕괴는 합리적 주장이다. 게다가 나머지 유가증권도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창용이 걱정없다는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린다. 이것들이 외국인 자금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이다.

 

그 결과 윤석열 정권 출범 전날 2610.81이었던 코스피는 약 12%가 하락하며 2300 방어를 힘겨워하고 있다. 860.84였던 코스닥은 13% 넘게 하락하였다. 반면, 미국 S&P500과 나스닥은 같은 기간 각각 3.2%3.2% 상승했고, 일본 니케이225와 유로스탁스50은 각각 18%14% 상승했다. 부동산시장 붕괴 등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중국의 상해종합주가지수조차 하락하지 않고 0.5% 상승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라면 기본적인 양심은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표현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기본자세가 아닌가? 참으로 양심이 없고 책임지지 않는 윤석열 정권의 공직자들이다. 공직자를 떠나 인간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 아니던가?

최배근 건국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