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서고가로 철거비는 1000억, 공원 조성비는 150억… 실제 효과는? 2. “철거·활용 중 어떤 게 부동산 가치 더 높일까”… 동서고가 인근 주민 ‘갑론을박’ 3. 이대로면 지구 온도 3.2도 증가, 그러나 예고된 재앙은 멈출 수 있다 4. ‘기후공시 의무’ 기업들 비상…그린워싱 했다간 소송 리스크도 5. “ESG 시대, 진짜 지속가능 기업은?…유엔 지표가 대안 제시” 6. 윤석열 정부의 'CF100', 국내 기업 경쟁력 떨어뜨린다" 7. “탄소흡수원총량제 도입하라!” 8. ‘설악 케이블카’ 마지막 절차 완료…국립공원공단, 양양군에 사업시행허가 내달 착공식만 9. 기후소송 제기 3년 7개월 지났는데…헌재 결정 왜 늦어지나 10. 일본 ‘오염수 2차 방류’ 일주일 만에 삼중수소 4차례 검출
11. “후쿠시마 원전서 나온 방사성 세슘 67%, 인근 숲에 잔류” 12 “철강 부문 탈탄소화 예상보다 빨라질 것” 13. ESG 공시 의무화 2026년 이후로 연기…“기업 요청 고려 14. 다들 의심했지만 지체없이 직진, 독일의 놀라운 '기후정치' 15. 바이든이 용인한 핵오염수, 그리고 일본의 '핵기지국가론' 16. 가자지구 분쟁에 한국이 제공한 불씨... 현실은 이렇다
17. 하루 수만 명 다니는데… 존폐 논란 시달리는 ‘도심 속 공중정원’ 18. “고가 철거 않고 활용한다면 길인지 공원인지 개념부터 명확하게” 19 가뭄에 아마존 강물마저 말랐다…항구 수위, 121년 만에 최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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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가로 철거비는 1000억, 공원 조성비는 150억…실제 효과는?
[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철거비 대심도로 통행료에 포함
부산 시민 경제적 부담 가중시켜
공원 등 조성 철거비 중 일부 활용
건강·환경 개선 등 부가가치 발생
“없애고 나면 다시 세우기 힘들어
예산 포함 다양한 요인 꼭 검토”
부산 부산진구 수정터널 입구 상부를 덮어 피해를 보던 주민에게 돌려준 감고개공원 전경. 도로 위 공간을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곳처럼 동서고가로에도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 수직 연결 통로와 인근 건물과 연결한 보행교량 등이 설치되면 시민들이 새롭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동서고가로 활용 여부 논의에서 비용은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이르면 2030년 부산 사상~해운대 고속도로(대심도 도로) 개통 후 약 7km 구간(사상~진양)의 도로 기능 폐지가 예고된 상황이어서 철거와 활용에 따라 각각 투입될 예산과 파급효과도 따져 봐야 할 부분이다.
■철거비 무상? 통행료에 포함
동서고가로 7km 구간 철거비는 약 1000억 원이다.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제3자 제안 재공고’ 내용에 따르면, 사업자는 총사업비에 철거공사 위탁사업비 1025억 원을 포함시켜 제안서를 작성하게 돼 있었다. 이는 2016년 기준으로, 현재는 1200억~1300억 원가량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용은 향후 대심도 도로를 이용할 시민 통행료에 포함될 예정이다. 동아대 김회경 도시공학과 교수는 “중복 구간에 대한 철거비가 대심도 도로 사업비에 포함되면 통행료가 비싸지거나 요금 지불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철거 비용을 민간사업자에 맡겨 부산 시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동서고가로 건설에는 4633억 원(1995년 준공·10.6km 구간)이 투입된 바 있다. 또 2019년 이후 최근 5년간 유지관리비로 연간 약 1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와 함께 내진보강 공사에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19억 45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동서고가로의 안전등급은 B(양호)로, 아직 도로 이용에 문제가 없는 만큼 당장 철거하기엔 아깝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김지현 균형발전연구센터장은 “고가도로를 한 번 없애고 나면 다시 세우기 어려운 만큼, 철거와 활용 모든 선택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예산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을 검토하는 긴 숙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가 활용에 드는 비용은
동서고가로를 자전거 전용도로나 보행로, 공원 등으로 활용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서울역고가를 보행길로 전환한 ‘서울로7017’의 경우 총 647억 원의 조성비가 들었다. 하지만 서울역고가는 안전등급 D(미흡)로 보수·보강 비용이 많이 포함됐다. 또 인근 만리동 광장(1만 353㎡) 조성 사업비까지 포함돼 예산이 적지 않게 투입됐다. 올해 기준 관리·운영비는 6억여 원, 인건비까지 포함한 운영 예산은 총 18억여 원이다.
도로 기능 폐지가 결정된 동서고가로는 길이로 따지면 서울로7017(약 1km)의 7배에 달하지만, 공원 조성·운영비는 이보다 적게 들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등급이 양호해 보수·보강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 것으로 본다. 부산시 안철수 공원정책과장은 “동서고가로 7km 구간의 경우 공원 기반시설, 조명 등을 설치하는 조성비로 약 150억 원을 예상한다. 철거비 중 일부를 활용하면 충분할 것”이라며 “물론 시설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간 관리 예산은 10억 원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높이 10~20m의 고가도로를 이용하기 위한 접근로 설치에도 예산이 든다.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 수직 동선 확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동의대 양재혁 교수는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는 철도와 건물이 붙어 있어 접근성이 높지만, 동서고가로는 수직 동선과 편의시설 설치에 예산이 많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도시 활력은 가로에서 나오는데, 가로와 동떨어진 레벨에서 공원을 만드는 건 큰 효과가 없다”며 “구간별 활용이 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반면, 공원화된 고가도로와 인근 상업시설을 연계하면 지역 상권 활성화 등의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건축·재개발 사업 때 연계 통로를 설치하는 아파트 단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접근로 확보를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다.
산과 경사로가 많은 지형적 특성상 평지 공원이 거의 없는 부산에 고가를 활용한 공중공원은 새로운 대안이라는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철거와 존치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동서고가로가 가진 잠재력이 크다”며 “기존 고가는 도로 기능만을 수행해 주민에게 피해를 줬지만, 공원으로 활용하면 주민 건강 증진과 환경 개선 등 다양한 부가가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철거·활용 중 어떤 게 부동산 가치 더 높일까”… 동서고가 인근 주민 ‘갑론을박’
철거 찬성 주민들 ‘수혜’ 기대
“조망권 향상에 집·상가 오를 것”
‘용도 전환 땐 더 큰 이익’ 시각도
“공원 조성 효과로 지역 개발 유인”
부산 동구 초량동 ‘협성마리나G7’ 상업시설과 부산역을 연결한 보행교. 동서고가로와 인근 아파트, 건물 사이에도 이런 통로를 설치할 수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동서고가로 사상~진양 구간 철거 여부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부동산 가치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철거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인근 아파트와 상가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고가가 철거되면 콘크리트 구조물로 그늘져 어두웠던 일대 공간이 환하게 개방되고 대로변 접근성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2017년 해운대 과선교 철거 이후 고가와 접하던 소규모 점포의 매매가가 상승했던 것처럼, 동서고가로를 철거하면 인근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다.
부산진구 개금주공아파트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고가와 인접한 동에 사는 5~8층 주민들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딱 가로막고 있다”며 “아파트를 가리는 고가를 철거하면 미관이 개선되고 인근 주민들이 일조권, 조망권을 누릴 수 있어 해당 아파트와 상가의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의대 신병윤 건축학과 교수는 “부산 자성고가교, 서울 청계천 고가도로 사례 등 도시 환경을 고려해 고가도로를 없애는 것이 최근 추세”라며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고가가 철거돼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 그에 따라 집값 등 자산 가격 상승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고가를 활용하는 것이 집값 상승에 더 큰 호재로 작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고가와 바로 접한 일부 건물만 한정적으로 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우려다. 오히려 자전거도로나 보행길 같은 새로운 활용안이 제시되면, 이것이 개발 호재가 돼 침체된 지역을 변화시킬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공원의 경우 이른바 ‘팍(Park·공원)세권’ 효과로 인근 집값을 올리는 대표적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경제적 이득이 생기는 시설을 지역에 끌어오려는 현상) 시설이다. 재건축·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지역의 경우 명물이 될 공원 조성 소식만으로도 호재가 될 수 있다. (주)에이컴퍼니 손명균 대표는 “동서고가로와 그 주변이 새롭게 탈바꿈하면 지역 내 개발 자본을 끌어당기는 유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서면을 중심으로 이런 호재가 생기면, 오히려 외곽 개발이 한풀 꺾일까 우려할 정도”라고 말했다.
부산대 우신구 건축학과 교수는 “주변 재건축·재개발 단지와 고가 상부 공원이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면, 각종 편의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고가와 너무 인접해 피해를 보는 기존 주택, 상가는 해당 구간만 고가 폭을 좁혀 간격을 더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이대로면 지구 온도 3.2도 증가, 그러나 예고된 재앙은 멈출 수 있다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 2023년 여름, 세계는 이미 1.5도의 문턱을 넘었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지난 8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CCN
섭씨 1.5도. 그것은 세계 지도자들이 지구의 난방을 제한하려고 노력하기로 약속한 중요한 문턱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섭씨 1.2도 상승했는데, 주로 대기 중의 화석연료 배출로 인한 온실 효과 때문이다. 대부분의 온난화는 1975년 이후 일어났고, 지난 8년은 기록상 가장 따뜻했다. 이 안내서는 섭씨 1.5도 목표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기온 1.2도 상승하자 폭염 5배 자주 발생
1.5도 온도 목표는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에 따라 세워졌다. 세계 지도자들은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고, 산업화 이전 수준의 1.5도 이하 상승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지구 온도가 1.2도 상승했을 때 인류는 이미 기록적인 더위, 가뭄, 화재, 폭풍,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폭염은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것보다 5배나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기온 상승은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손실, 식량 불안, 그리고 인류 건강에 대한 위협도 야기하고 있다.
기온이 2도 상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학자들은 북극에서 여름에 빙하가 다 녹을 수 있으며,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며, 해양 먹이 사슬의 기초가 되는 산호초의 99%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홍수, 폭풍, 가뭄, 폭염 등 이상기후가 5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속도로 온도 상승이 진행되면 지구는 2100년까지 약 3.2도 정도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1.5도 상승 제한은 '의지'의 문제다…핵심 조치 2가지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2030년까지 지구의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순제로 배출량에 도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인류는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도구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성취 가능한 범위 내에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빠르게 닫히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전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이다. 정말로 의지의 문제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기온 상승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첫째, 세계 경제는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그러나 빠르게 퇴출시키고 태양광, 풍력 등 비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제 에너지 기구(IEA)는 새로운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해서는 안된다고 밝혔고, 과학자들은 오늘날 석탄 매장량의 90%, 석유와 가스 매장량의 60%는 남겨져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둘째, 인간은 쇠고기, 콩, 그리고 팜유 등 산업화된 농업 생산 확대를 위해 발생되는 삼림 벌채를 끝내야 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일부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탄소 흡수원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탄소 공급원으로 바뀌었다.
2023년 여름, 세계는 이미 1.5도의 문턱을 넘었다
세계는 이미 단기적으로 1.5도의 문턱을 넘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7월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1.6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기상 기구(WMO)의 과학자들은 지금부터 2027년까지 지구의 온도가 적어도 1년에 한번 꼴로 섭씨 1.5도의 문턱을 통과할 가능성이 66%라고 추정한다고 사무총장인 페타리 탈라스 교수가 밝혔다.
2022년 IPCC 보고서를 공동 저자인 볼프강 크레이머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열이 있는 사람에 비유한다. 표준 체온 37도 이상으로 1도가 오르면 불편과 두통을 유발할 수 있고, 2도가 오르면 고통이 심화되며, 3도를 넘으면 취약한 이들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지구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기온 상승의 결과는 각 정도마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다를 것이다. 가장 취약한 곳에서는 가장 심각할 것"이라며 "1.5도로 상승을 제한하는 것은 항상 1.6도보다 나을 것이고, 항상 1.7도보다 더 좋다"고 말했다.
아직 파국은 아니다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취약한 생태계를 보호하고, 극한 날씨의 위험을 줄이며, 물과 식량 안보를 보호하고,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이클 오펜하이머 프린스턴대 교수는 "1.5도 이상이 되면 이런 현상들이 비선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인간이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짐 스키아 IPCC 의장은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충격 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만약 계속해서 우리 모두가 멸종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이는 사람들을 마비시키고 기후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5도 이상 따뜻해진다고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더 위험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overing Climate Now)'는 영국 가디언지와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 기후위기 저널리즘 기구이다. 로이터, 블룸버그, CBS, PBS, 알자지라 등 전 세계 500여 개 매체사가 파트너사로 활동하며, 한국에서는 프레시안, TBS, 한겨레21, 동아사이언스, 조선사이언스, 뉴스트리 등이 파트너사로 활동한다. 편집자주
전홍기혜 기자 (번역) /프레시안
‘기후공시 의무’ 기업들 비상…그린워싱 했다간 소송 리스크도
기후공시’ 의무 적용과 전망
국제사회가 내년부터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면서 개괄적 수준에서 관련 정보를 공개해온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동해안의 송전탑 사이로 붉은해가 떠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기후변화 가속화로 전 세계 150개 나라가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은 산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기업의 기후대응 관련 정보공개를 강제하는 이른바 ‘기후공시’ 의무화가 임박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당장 내년부터 국내 기업들은 달라진 국제 공시환경과 맞닦뜨려야 한다. 기후공시 제도의 ‘빅3’로 불리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와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이 공시 기준을 정했거나 곧 확정하기 때문이다.
기후공시는 지금까지 비재무적 요소였던 기후대응 정보가 재무적 요소와 같은 가치로 취급된다는 것을 뜻한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지난 7월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공시 토론회에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대응 전략 등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면, 탄소가격으로 그 위험의 정도를 재무적으로 측정하고 반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에쓰오일이 작년에 발표한 (9조원 규모) 울산 석유화학 플랜트 투자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의 잠재적 비용 등 신규 투자로 인한 위험요인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며 “만약 신규 투자와 관련한 엄격한 비재무정보 공시가 의무화돼 있고, 탄소가격제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에쓰오일이 이런 투자결정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핫이슈로 떠오른 기후공시
유럽 최대 연기금 운용사인 네덜란드 에이피지(APG)는 지난해 초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기업 10곳에 서한을 보내 탄소 배출량의 실질적인 감축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연금자산 규모가 850조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인 에이피지는 국내 기업들의 지분을 대거 보유한 주요 주주다. 이 서한이 발송된 지 6개월여 만에 삼성전자는 ‘RE100’(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글로벌 프로젝트) 가입을 선언했다. 글로벌 금융투자기관들이 기후변화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압박감이 커졌다.
국제사회가 ‘기후공시’를 강제하게 되면 기업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영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기후 대응 관련 재무적 위험과 기회 요인을 산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 허위로 기재된 게 없는지 신경을 곤두 세울 수밖에 없다. 그린워싱으로 눈속임하거나 공시를 소홀히 했다간 미국처럼 관련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나라에서 각종 소송 리스크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공시 규칙안은 미국 기업뿐 아니라 포스코, 신한금융지주, 엘지(LG)디스플레이, 케이티(KT) 등 뉴욕증시에 상장한 한국 기업들에게도 적용되는 사안이다. 기업들이 원하던 원치않던 기후위기 대응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때가 온 것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비재무적 정보를 공개하는 창구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다. 상장기업 중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은 150곳에 이른다. 이 보고서에 공개되는 이에스지 정보는 일종의 자율공시다. 자율공시는 의무공시와 달리 공시 항목과 정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 때문인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은 늘어나고 있으나, 그 내용이 충실하지 않고 ‘홍보’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녹색전환연구소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국제 권고안(TCFD)의 지표를 바탕으로 올해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상위 32개 기업의 비재무공시를 분석했더니,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38점에 그쳤다. 권고안은 주요 20개국(G20) 주도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의 지침이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탄소중립이 기업의 경영목표로 내재화 되지 않거나, 기후관련 위험과 기회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개괄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한계”라고 평가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변호사)은 “경제개혁연구소도 주요 산업을 대표하는 10개 기업에 대한 평가를 해봤는데, 정보공개를 이행했다는 것 자체 말고는 실효성 있고 유의미한 정보공개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며 “기후공시의 충실성이나 구체성은 단순히 정보공개의 문제라기보다 국제 기준에서 요구하는 수준만큼 기후변화 대응을 이행하지 못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발적 공개, 실효·구체성 떨어져
이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하이닉스, 포스코, 엘지(LG)화학 등 국내 5개 대기업의 2022~2023년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봤다. 기업별로 100~200쪽의 방대한 분량을 할애해 이에스지 정보를 수록했는데, 그 중에서 환경(E), 특히 기후 대응 정보의 실효성은 꼼꼼히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전반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 친환경 에너지기술, 자원순환 및 리사이클 등 이에스지 전략 속에 기후 대응 노력을 보여주려고 애쓴 흔적이 배어 있고 양적으로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나열식 서술이 많고 일부 보고서는 장황한 느낌을 줬다. 온실가스 배출이 원가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연간 감축 목표치에 미달했다면 원인은 무엇이고 제품 공정에서 개선 과제가 무엇인지 설명이나 해석이 없었다. 국내외 사업장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얼마이고, 전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투자자나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이 보고서만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열거된 수치로 상호 연관성과 유의미성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 영역인 ‘스코프(Scope)1, 2’에 머물지 않고 ‘기타 배출 영역’으로 분류되는 ‘스코프3’ 영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항목을 공개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스코프3은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량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물류, 제품 사용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와 세계자원연구소(WRI)가 제시한 탄소 배출량 산출 영역으로, 2025년부터 스코프3에 맞춰 공시 의무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업에서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부문이다.
앞서 5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검증한 기관들은 모두 ‘적정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검증보고서(또는 검증의견서)에서 “검증과정 중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중대한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고 관련 활동자료와 증빙이 적정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본 검증은 회사에서 설정한 산정기준 자체의 타당성 확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검증의 한계를 인정했다. 오덕교 한국ESG기준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준 자료만 갖고 하는 제한적 검증을 지양하고, 어떻게 배출량을 산출하고 오류는 없었는지 합리적 검증을 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검증기관의 자격 요건을 마련해 등록제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5개 기업에서 발간한 2022~2023년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홍대선
기후공시는 기후 관련 재무적 위험과 기회를 투자자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만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기후공시 표준화 작업을 진행중인 곳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와 미 증권거래위원회, 유럽연합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 등 3곳이다. 유럽연합이 공시 기준을 확정한 데 이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도 지난 6월 세계적으로 통용될 이에스지 공시 기준의 최종안인 S1과 S2를 내놓았다. S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약자이다. S1은 일반 요구사항이고, S2는 기후변화 관련 요구사항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도 올해 안에 상장사의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확정한다. 나라별로도 기후공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의 보고 기준에 맞춰 2024년부터 모든 상장사의 기후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현재 우리나라는 사업보고서 또는 거래소 자율공시를 통해 일부 제한된 환경 정보를 공시하거나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 일반투자자에게 제공되는 환경공시 체계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지만 최근 기후공시 도입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의무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은 이에스지 정보를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그동안 자율적인 정보공개 활동의 하나였던 지속가능보고서를 이제 글로벌 흐름에 따라 의무 공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과 검증에 필요한 명확한 기준, 기업 간 정보 격차는 풀어야 할 과제다.
금융위원회는 올 연말까지 공시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재계는 “최근 추진되는 이에스지 공시기준이 기업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공시 의무화 일정을 최소 1년 이상 늦춰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거론되는 2025년부터 단계적 의무화 방안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할 때 현저히 늦은 수준이다. 글로벌 표준에 뒤처져 초래할 손실은 기업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상당수 국내 기업이 이미 해외투자자와 고객사들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시시기를 늦춰 기업의 부담을 낮춰준다는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공시시기를 앞당기고 이에 맞는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ESG 시대, 진짜 지속가능 기업은?…유엔 지표가 대안 제시”
‘2023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3
ESG 워싱을 넘어, 새로운 지속가능보고 제안
아미래포럼 분과세션3 ‘ESG워싱을 넘어, 새로운 지속가능보고 제안’에서 ‘글로벌200+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 최근 동향 및 중요 이슈’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글로벌 차원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이에스지(ESG) 정보공시(보고) 표준화와 의무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11일 서울 대한상의에서 열린 제14회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의 제3세션 행사인 ‘이에스지(ESG) 워싱을 넘어, 새로운 지속가능보고 제안’ 토론회에서는 기업의 ‘ESG 워싱’을 극복해서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또 유엔사회개발연구소가 개발한 ‘지속가능발전 평가지표’(SDPI)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규범적 임계점을 제시하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유엔 산하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의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은 ‘비재무성과 측정 및 보고를 통한 기업의 행동변화: 유엔 지속가능발전 성과지표(UN SDPI)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발제에서 “현존하는 수많은 ESG 평가지표들은 지속가능성을 정확히 측정하고 있는가”라는 도전적 질문을 던지면서, “SDPI는 진정한 지속가능성 평가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유엔은 빈곤과 질병, 기후변화 대응 등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제시하고 있는데, SDPI는 기업들이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에 제대로 기여하도록 이끌기 위해 유엔사회개발연구소가 개발해 지난해 말 공개했다.
이 선임연구조정관은 “(현재의 ESG 지표들은) 거대 영리기업만을 위한 게임에 그친다”면서 환경의 수용 가능성과 괴리된 점진주의적 접근, 2~3년 간 변화에만 주목하는 단기주의, 단순 평균주의의 오류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SDPI의 특징으로 평가 대상에 고용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과 사회연대경제까지 포괄, 규범적 임계치 제시, 맥락에 기반한 접근, 최소 5년 이상 장기추세 분석을 강조했다.
폴 라드 유엔사회개발연구소 소장도 주제발표에 앞서 특별연설에서 “ESG 평가의 문제는 기업의 좋은 행동과 충분히 좋은 행동 간에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라면서 “SDPI는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제시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ESG 평가 및 컨설팅 기업인 ‘머니케어’의 카타리나 헬조그 공동창업자 및 대표는 ‘글로벌 200+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 최근 동향 및 중요 이슈’라는 주제발표에서 “ESG 최고등급을 받은 기업이더라도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역시 ESG 평가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공존의 길을 찾으려면 지속가능성 측정의 재정의가 필요하다”면서 “SDPI 평가지표 61개 중에서 기후, 사회, 성별 관련 12개 지표를 선별해서 지속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전 세계 200여개 상장기업을 평가한 결과 많은 기업이 기후 지표부터, 성별 임금 격차, 최고경영자-근로자 간 임금 비율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지 못한 실망스러운 결과를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변동팀장은 ‘글로발 IT 기업의 지속가능성 분석:상위 5개 기업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에서 SDPI를 활용해서 애플·인텔·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티에스엠씨(TSMC) 등 글로벌 IT산업 분야의 빅5의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양 팀장은 “환경과 다양성 및 포용성 영역은 애플과 인텔, 임직원 안전 및 삶의 질 영역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좋은 이행 수준을 보였다”면서, “TSMC는 전 영역에서 정보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공개하고 있었으며 다양성과 포용성, 지속가능한 경영관행 등에서 좋은 수준의 이행 정도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는 “빅5 모두 다른 지속가능성 평가 혹은 인덱스에서 좋은 성과 혹은 상위에 있는 기업들이지만 SDPI의 평가 대상 5개 영역에서 모두 좋은 이행 정도를 나타내는 기업은 없었다”고 밝혔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CSES) 원장이 사회를 본 토론에서 박세원 키움투자자산운용 ESG전략팀장은 “ESG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단순히 정보를 공시하느냐 뿐만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통해 진짜 지속가능한 기업을 찾는 방법론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SDPI는 다양한 자속가능성 테마와 관련해서 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론과 기준점(임계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지연 한국사회적가치연대기금 경영기획실장은 “SDPI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천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머니케어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분석은 SDPI의 유력한 활용 모델 사례”라고 말했다.
이은선 경상국립대 교수(경제학)는 “SDPI는 기존 ESG 지표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데, 특히 한국의 경우 최고경영자-근로자 간 임금격차, 생활임금, 성별 임금 및 승진 격차, 물 사용량 등 4가지 평가지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SDPI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SDPI 적용 확산, SDPI 지표를 공시의무화에 반영, 기업의 행동변화를 이끌 수 있는 동인(인센티브 또는 페널티) 마련 등을 통해 기업의 행동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채널과 동력 확보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윤석열 정부의 'CF100', 국내 기업 경쟁력 떨어뜨린다"
양춘승 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기업에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묻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적 투자로 환원하는 일. 지금은 대세가 됐지만,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가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고민하며 사회에 공헌할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낯선 개념이었다. 양 상임이사는 당시 40여 명의 전문가와 2주에 한 번씩 만나 토론을 하면서 "돈 있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기업이 돈을 버는 행위는 경영자의 창의성도 있고 자본 투자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의 기여가 보태져 돈을 번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에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에 양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 활동의 철학을 바꾸자는 게 사회책임투자포럼의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양춘승 상임이사와의 만남은 10월 어느 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진행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목표로 2007년 설립된 비영리 기관이다. 지난 2008년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한국위원회 조직을 주도해 매년 CDP 보고서를 내고 있으며, 국내외 투자자, 정부, 국회, 시민사회 등 여러 주체와 협력해 입법 지원, 정책 연구 개발, 캠페인 및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돈 벌었다고 다 자기 주머니에 넣는 자본주의는 없다"
양 상임이사의 말처럼 CSR은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삼성이나 현대처럼 거대 자본을 가진 경영진이 가족과 친인척을 주축으로 한 기업체, 즉 '재벌(財閥)'에 의해 한 나라의 GDP가 결정되는 한국의 특성상 기업에 CSR을 묻는 것은 '비난'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저도 기업인이었고 사업을 했던 입장에서 돈 버는 행위를 비난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돈을 벌었다면, 그 이윤이 누구 덕분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가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다 자기 주머니에 넣는 시스템은 자본주의에 없다."
양 상임이사는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라며 "기업들이 살려면 국제적인 추세를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게 있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를 하고 있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데 대해서 둔감한 것 같다. 실제로 미국 같은 자본주의의 첨병을 걷고 있는 나라에서도 '신자본주의법'이 나왔다. 기업 이사회에 노동계 대표가 참가하는 등 노동자의 권한을 강조하자는 제안이다."
양 상임이사는 한발 더 나아가 CSR이나 신자본주의야말로 '우파 운동'이자 '친기업적'이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세계적 흐름이 아니다. 기업에 CSR을 묻는 것은 친기업적인 행동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다. 기업이 살려면 이 길(CSR)로 갈 수밖에 없다."
▲ 글로벌 조사 네트워크 WIN이 2022년 10~12월 36개국 성인 2만9269명(전화/온라인/면접조사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lity, CSR)의 개념을 아는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51%가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39%는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한국조사는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2022년 11월 7~24일간 면접조사원 인터뷰(CAPI)방식으로 전국(제주 제외) 만 19세 이상 15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률 26.7%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다.)
"'CF100'이라는 개념은 없다"
오늘날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자원봉사나 재난성금과 같은 일차원적인데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생산 활동으로 야기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공적기금과 투자를 통한 경영권 압박 등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양 상임이사가 이끄는 사회책임투자포럼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양 상임이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탄소중립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 'CF100(Carbon Free 100%)'에 대해 "CF100이라는 개념은 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CF100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과 청정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CF100으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RE100은 철저히 민간인들의 거래로 이뤄진다.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CF100을 요구하는 바이어는 없다.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자기네 물건을 사주는 쪽의 의견을 선택하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의 CF100은 접근은 잘못됐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세계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CF100은 국내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탄소중립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 조사·분석).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무탄소 에너지 정책은 오히려 국내 기업에 재생에너지와 무탄소에너지 활용 사이에서 혼란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
국민연금 개혁도 CSR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즉 국민들의 돈을 잘 운영해 재정 고갈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는 동시에 연금을 활용한 투자로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도입한 2018년 10월부터 1년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으로 활동한 양 상임이사는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을 뭐라고 생각할까.
"국민연금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금을 낸 사람들한테 연금을 제때 주는 것, 그리고 모아놓은 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것.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하나의 조직에서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젊은 40대 CEO를 앞세워 운용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투자자(국민)들의 돈을 운용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융의 논리를 따라야 된다. 어떻게 하면 투자의 성과를 더 좋게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그 투자가 공적으로 올바른 방향에 서게 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적 논리가 우선하는 분위기다. 구조적으로도 그렇다. 국민연금 이사회는 이사장 휘하에 있지만, 국민연금 운영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양 상임이사는 연금이 정치적 입김의 영향을 받는 한, 재정 고갈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노인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실제로 미래 세대는 지금 식으로 가서는 비전이 없다"며 "문제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의 경우, 연금의 핵심 기능인 노후 소득 강화안은 빠진 채 연금기금 재정 건전화 방안에만 초점이 맞춰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노후 소득 강화 방안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넣기로 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한 반발이 큰 상황이다. 국회 논의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시민 500명이 참여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특위)를 꾸리기로 했지만, 구성이나 운영 방식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6개 참가국이 2030년까지 지구 자연의 30%를 보전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로운 생물다양성 협약에 합의했다.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생물다양성 분야, 투자의 중요 요소 될 것"
2000년대 초반 생소했던 CSR을 생각하면, 지난 16년간의 사회책임투자포럼 활동은 한국 기업의 철학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 상임이사는 "사회책임투자포럼이 아닌 세계적 추세에 따른 선진적인 생각을 가진 바이어들 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와 기업들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마지못해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는 수준이라며 더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상임이사는 CSR에 있어서 앞으로 생물다양성 분야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리서치 회사 모닝스타가 지난해 12월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을 고려해 투자 전략을 짠 펀드는 14곳에 불과했다. 반면 기후변화을 고려해 투자 전략을 짠 펀드는 약 1100곳이나 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퍼리스 또한 지난 1월 투자자들에게 "투자할 때 생물다양성 보호 요소를 간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양 상임이사는 또 노동과 인권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기업 평가 요소인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ial Issue) 가운데 지금까지는 'E'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앞으로는 'S'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것. 한국도 금융위원회가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노동자에 대해서 우파적인 선전에 매몰된 바가 크다. 민주노총에 비판적 여론이 크고 어느정도 타당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처지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들은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기업가에 비해 돌려받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 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 |
“탄소흡수원총량제 도입하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전국 지자체 탄소흡수원총량제 촉구 기자회견을 한 후 경기도의 탄소흡수원 총량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탄소흡수원총량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30년까지 2018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해야 하고 동시에 30%의 육⋅해상 보호구역과 훼손지 복원이라는 생물다양성협약의 목표 역시 달성해야 한다”며 지자체의 탄소흡수원총량제의 적극적 도입을 주장했다.
앞서 경기도는 탄소 흡수량만큼 대체 흡수원을 조성해야 하는 ‘개발사업 탄소 총량제’ 사업을 포함한 ‘스위치 더 경기’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예산 확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악 케이블카’ 마지막 절차 완료…국립공원공단, 양양군에 사업시행허가 내달 착공식만
환경단체 “취소 소송·물리적 저지도 불사”
지난 3월 3일 오후 제3회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며 행사장 출입구 앞 도로에 누워있다. 연합뉴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13일 강원도 양양군의 ‘설악산국립공원 오색 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대해 공원사업 시행 허가를 내줬다. 이로써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환경부가 국립공원 안 케이블카 건설 규제 완화를 추진한 지 14년 만에 공사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끝내고 착공식만 남겨두게 됐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5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13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에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조건부 공원사업 시행허가를 내줬다고 밝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공원사업 시행허가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사후 관리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환경보전기금을 조성해 훼손지 복원 대책을 추진하고,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이행하기로 한 내용을 철저히 이행하라는 것 등이 주요 허가 조건”이라고 말했다.
공원사업 시행허가는 공원관리청이 아닌 기관이나 개인이 공원계획과 공원별 보전·관리계획에 따른 사업을 시행할 때 공원관리청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허가다. 설악산케이블카 사업은 지난 2월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과한 이후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투자심사 △국토교통부의 특별건설 승인 △산림청의 국유림 이용과 산지일시 사용허가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공사 착수까지 국립공원공단의 공원사업 시행허가만 남겨둔 상태였다. 양양군이 낸 이 사업 시행허가 신청은 지난달 25일 접수돼, 연휴 등 휴일을 뺀 업무일 기준으로 10일 만에 허가가 이뤄졌다.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국시모) 사무국장은 “공단의 공원사업 시행허가에서 핵심은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가 공원계획 변경을 허가하며 제시한 멸종위기종과 산양 보호 대책 수립 등 7가지 부대조건의 충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라며 “수년간 논란이 돼 온 이 문제 검토를 단 10일 만에 끝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결국 정무적 판단에 휘둘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색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구간은 설악산 국립공원 내 오색지구부터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 왼쪽 봉우리인 끝청(해발 1480m) 사이 3.3㎞ 구간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논의는 40여년 전인 1980년대 초부터 지역사회에서 제기됐으나 국립공원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국립공원 규제 완화에 나서 2010년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설치 가능한 삭도(케이블카) 길이를 2㎞에서 5㎞까지 늘리는 내용으로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본격 추진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어 2015년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위한 국립공원계획 변경까지 이뤄졌으나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서 이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환경부가 적극성을 보이면서 지난 2월 가장 높은 문턱이었던 환경영향평가 협의까지 넘어서게 됐다.
강원도 양양군은 조만간 최대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성대한 착공식을 연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11일 ‘강원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3억원은 애초 양양군이 ‘수십 년 만에 해결된 현안사업의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한 예산 편성’이라며 잡아둔 5억원에서 군의회가 ‘예산 한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2억원을 삭감해 줄어든 것이다.
환경단체는 이번 시행 허가 처분에 대한 법적 투쟁과 공사 현장 저지 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국립공원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 훼손되는 경우는 수십 년 동안 없었던 일”이라며 “공단이 내준 공원사업시행허가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공사가 진행되면 현장에서 비폭력적 틀 안에서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기록하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기후소송 제기 3년 7개월 지났는데…헌재 결정 왜 늦어지나
“파급 효과 크기 때문에 심리에 상당한 기간 소요”
독일은 1년 2개월, 미국 몬타나주 3년 5개월 걸려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19명 원고들이 2020년 3월13일 기후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헌법재판소가 ‘기후소송’ 심리에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소송이 제기된 지 3년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헌법재판은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다. 청구인 쪽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며 결정이 더 늦춰져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헌재는 13일 기후위기 관련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를 묻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질의에 “헌법재판은 ‘대세효’가 있어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선진외국의 헌법재판판례 및 입법례, 국내외의 연구자료 수집·분석, 관련 기관의 의견 취합 등 소정의 절차를 거친 후 신중한 결론을 도출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심리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는 답변서를 보냈다. 대세효는 해당 판결의 효력이 원고와 피고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미치는 것을 의미하는 법률 용어다.
헌재는 또 “재판부에서도 관련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는 점을 인지하고 보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과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가 지난 7월6일 ‘제1차 국가 탄소중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기에 앞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 19명이 이른바 ‘청소년 기후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헌재에는 지금까지 청소년·어린이·태아를 청구인으로 하는 기후소송 헌법소원 6건이 제기돼 있다. 청소년 단체 등은 관련 법령·법정계획 등에 담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미래세대를 포함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난달 20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주도한 헌법소원은 기후 관련 위험과 대응, 전략 등의 정보를 공개하는 기후공시를 의무화하지 않아 시민의 환경권을 위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헌재는 청소년기후행동이 위헌 확인을 청구한 지 딱 2년 만인 지난해 3월13일 전자헌법센터를 통해 ‘쟁점이 많고 사안이 복잡하여 심층적으로 이해 중’이라는 심리 진행 상황 고시를 게시한 이후 지금까지 소송 진행 상황을 알린 바 없다. 이에 법조인 215명은 기후소송이 제기된 지 3년을 맞은 지난 3월13일 헌재에 빠른 결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전달한 바 있다.
기후환경단체 등은 외국 법원들의 사례를 들어 헌재가 심리를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과 소송 형식이 가장 비슷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경우, 소송이 제기된 지 1년 2개월 만인 2021년 4월29일 독일 기후변화대응법 일부 위헌을 결정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이후 기후변화대응법을 개정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55%에서 65%로 상향 조정하고, 탄소중립 목표 시기를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다.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 16명이 한국 청소년 기후소송과 같은 날(2020년 3월13일) 제기한 ‘기후소송’도 3년 5개월 뒤인 지난 8월14일 주 법원에서 승소했다.
미국 몬태나주 정부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지난 6월 20일(현지시각) 헬레나에 위치한 루이스클라크카운티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청소년 기후소송을 대리하는 ‘플랜 1.5’의 박지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있는 독일에서 1년 2개월 만에 결정이 나왔는데, 우리나라가 특수하게 더 시간이 걸려야 하는 여건인지 의문”이라며 “최근 해외 선례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헌 의견 표명 등을 고려하면 헌재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8월21일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에서 정한 탄소 감축 목표치가 낮고 2031년 이후 감축 목표가 없어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결정을 내린다고 한들 늦어지면 소용이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헌재가 이제는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일본 ‘오염수 2차 방류’ 일주일 만에 삼중수소 4차례 검출
방수구로부터 200m 떨어진 곳
1차 방류 한 달 동안은 ‘1차례’
한국 정부는 “문제 없다” 입장
도쿄전력 발표보다 느슨한 설명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오염수의 2차 해양 방류 이후 일주일간 방류구 인근의 삼중수소 농도가 검출한계치를 4차례나 초과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1차 방류 이후 한 달여 간 검출한계치를 단 한 차례만 초과했던 이전 추이에 비해 이례적인 현상으로, 오염수 방류로 인해 인근 바다에서 삼중수소가 일상적으로 검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전력이 15일 공개한 삼중수소 농도 속보치 분석 자료들을 보면, 방수구로부터 약 200m 떨어져 있어 가장 가까운 ‘T-0-1A’ 모니터링 지점에서는 2차 방류가 이뤄진 뒤인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약 일주일간 삼중수소 농도가 4차례 검출한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검출한계치는 측정 장비로 검출할 수 있는 최소 수치를 말하며, 측정 지점마다 조금씩 다르다. 배출된 삼중수소의 양이 검출한계치 미만일 때는 정확한 양이 측정되지 않는다. 검출한계치를 넘지 못하면 바다에서 삼중수소가 사실상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며, 초과하면 검출된 것으로 본다.
자료에 따르면 T-0-1A 지점에서는 2차 방류 이후 사흘만인 지난 8일 삼중수소 농도가 리터당 9.4베크렐(㏃)로 관측돼 검출한계치를 넘겼으며 10일에는 11㏃, 13일에는 14㏃까지 높아졌다. 도쿄전력이 아직 구체적인 수치를 발표하진 않았으나 그래프를 보면 14일에도 10㏃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점의 삼중수소 농도는 검출한계치 이내였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8월24일 시작된 1차 해양 방류 때는 속보치 기준으로 검출한계치를 넘은 사례가 매우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2차 방류 이전에는 지난 9월1일에만 검출한계치를 한 차례(10㏃) 초과한 바 있다. 이 기록까지 합하면 바다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은 이날까지 총 5차례다.
T-0-1A 지점의 삼중수소 농도 분석 속보치. 연두색으로 메워진 점이 검출한계치를 넘은 사례로, 지난 5일 이후 최근까지 4차례 이어지고 있다. | 도쿄전력 ‘오염수포털’ 자료
이는 오염수가 방류돼도 해류를 타고 퍼지기에, 특정 지점의 삼중수소 농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진 않을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과 다른 것이다. 다만 도쿄전력 측은 “해당 해역은 해류 흐름이 주기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수치에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삼중수소가 검출됐어도 이상치 판단 기준인 리터당 700㏃에 크게 못 미쳐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오염수 방류 이전까지 삼중수소가 검출되지 않았던 바다에서 이 같은 현상이 빈번해진다면 인근 어민들이나 인접 국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삼중수소는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생물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삼중수소의 변화에도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16일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브리핑에서 “2차 방류에 특이사항이 없다”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판단을 그대로 전했다. 삼중수소 농도와 관련해서는 “이상치 판단 기준보다 낮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출한계치 초과 여부 등을 밝히며 원인 분석을 내놓는 도쿄전력의 브리핑보다도 느슨한 설명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도쿄전력에 따르면 오염수의 2차 방류 직후인 지난 6일에는 해양 방류에 사용되는 이송 펌프의 압력이 저하된 현상이 관측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전력 측은 펌프에 있는 금속제 필터에 이물질이 끼어있기 때문으로 보고 해당 필터를 청소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가 방류 일정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경향 박용하 기자
“후쿠시마 원전서 나온 방사성 세슘 67%, 인근 숲에 잔류”
연구 지역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 지역. (A) 연구 지역 위치(빨간색 사각형). (B) 후쿠시마 원전(FDNPP) 사고 직후 주변 지역 세슘-137 오염도와 주요 하천(파란색 선) 및 연구 지역(파란색 사각형). (C)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노댐 상류 지역의 토지 이용 유형. [Rosalie Vandromme et al./PNAS]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FDNPP) 사고 당시 낙진으로 대량 방출된 방사성 세슘(Cs-137) 가운데 67%가 여전히 주변 숲에 남아 강물 등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지질광물조사국(BGRM) 반드롬므 로잘리 박사가 이끄는 프랑스·일본 공동연구팀은 17일 과학 저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 낙진 피해가 가장 컸던 인근 지역의 강 모니터링과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연구에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주변 지역이 방사성 오염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된 후 일본 정부가 표면 흙을 제거하는 방법 등으로 제염 작업에 나섰다. 연구팀은 이같은 전략이 가파르고 광범위한 산악지역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정량화된 적은 없었다며 이번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이 사고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후쿠시마 원전 북서부 지역 44㎢를 대상으로 강 모니터링과 모형화 실험을 결합해 토양 침식과 퇴적물, 방사성 세슘-137의 이동 등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일본 정부가 토양 오염을 제거한 면적은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가파른 오염 산악지역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반면 오염 제거 작업을 한 지역의 경우 강으로 유입되는 세슘-137의 농도가 2011년과 2020년 사이에 약 90% 줄어들었다는 것.
문제는 방대한 숲에 여전히 남아있는 다량의 방사성 오염물질이다. 연구팀은 사고 초기 이 지역에 배출된 세슘-137의 67%가 여전히 숲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염지역에서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세슘-137의 양도 오염을 제거하지 않은 경우와 비교했을 때 17%만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숲에 남아 있는 67%의 세슘-137이 향후 침식 작용으로 계속 하류로 확산할 것이라며 이는 지역 주민의 복귀와 산림 개발 관련 경제활동 재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방사능 오염으로 지역을 떠난 주민 가운데 2019년까지 최대 30%만이 돌아온 점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주민 복귀를 목표로 오염지역 중 일부만 오염을 제거한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철강 부문 탈탄소화 예상보다 빨라질 것”
‘넷제로 철강 앞장’ 스웨덴 기업
북유럽 철강기업 마틴 페이 SSAB 최고기술책임자 인터뷰
우리는 여전히 철기시대를 살고 있다. 자동차와 선박, 고층건물과 다리, 가스·수도관, 가전제품 등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품과 인프라는 대부분 철에 기대고 있다. 철은 산소와 쉽게 결합해 적철광(Fe₂O₃), 자철광(Fe₃O₄)과 같은 산화물로 존재한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내는 환원과정을 거쳐야 순수한 철을 얻을 수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환원제로 석탄을 사용했다.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라고 불리는 큰 용광로에 넣어 1500°C 이상의 고온에서 녹이면,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반응(Fe₂O₃+3CO→2Fe+3CO₂)이 일어난다. 철을 얻는 대가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피할 수 없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가 철을 만들면서 나온다.
수천 년간 변함없던 이 제조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철강 분야 탈탄소 해법으로 ‘수소환원제철’이 등장하면서다. 석탄 대신 수소(H₂)를 쓰면 환원과정(Fe₂O₃+3H₂→2Fe+3H₂O)을 통해 철과 함께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을 얻는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이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고, 여기서 나온 수소를 다시 수소환원공법에 투입할 수 있다. 철강 제조에서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탄소배출량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녹색 철강의 선두주자는 북유럽의 철강기업 SSAB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철 스크랩을 재생에너지와 바이오가스를 사용하는 전기로에 녹여 만든 넷제로 철강 ‘사브 제로(SSAB Zero)’를 선보였다. 2026년에는 수소환원제철공법인 하이브리트(HYBRIT) 기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 없이 만든 철강(SSAB Fossil-free)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일반 철강의 탄소배출량은 강철 1㎏당 2㎏인데 반해 사브 제로는 0.05㎏ 미만이고, SSAB Fossil-free는 배출량이 없다.
지난 10월 11일 SSAB의 마틴 페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넷제로 철강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등으로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이 초기 예상보다 빨라지리라고 내다봤다. SSAB의 경우 기존 고로의 전환 완료 시점을 2045년에서 2030년으로 크게 앞당겼다. 그러면서 철이 다양한 산업 분야에 쓰이는 만큼 철강 분야의 탈탄소는 다른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SAB와 유럽 최대 철광석 생산업체 LKAB, 유럽 최대 에너지 기업 바텐팔(Vattenfall)이 힘을 합쳐 2016년 조인트벤처인 ‘HYBRIT’를 결성했다.
“SSAB의 연간 제강 생산 능력은 900만t(생산량 기준 세계 50위·시총 기준 15위)이다. 스웨덴, 핀란드에서는 주로 스웨덴 북쪽의 철광석 광산에서 공급되는 철광석을 원료로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재활용 스크랩을 주원료로 2개의 전기로에서 후판을 만드는 제철소들을 운영한다. 고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약 40년 전 LKAB와 함께 철광석을 분쇄해 직경 10~12㎜의 둥근 알갱이 상태인 ‘철광석 펠릿’을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1982년 이후 100% 펠릿 가동으로 전환해 석탄 사용을 줄일 수 있었고,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이용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배출량을 유지했다. 고로 기술을 매우 잘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SAB는 여전히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회사다. 현재 우리의 생산 설비에서 스웨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 핀란드의 경우 7%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파리협정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스웨덴은 파리협정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국가 목표를 설정했다. 우리에게는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신기술 개발이 중요했다.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가격도 분명히 상승할 것이라 예상했다. 세 번째 요소로, 스웨덴은 이미 완전히 탈탄소화된 전력망을 구축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스웨덴 북부는 수력발전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고, 안정적인 원자력 발전이 있고, 풍력발전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 목표는 석탄 수입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그린수소)와 화석연료 없이 만든 전기라는 두 기반 위에서 오늘날처럼 고품질의 철강을 만드는 것이다. HYBRIT 이니셔티브의 기본 구상인데, SSAB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LKAB, 바텐팔과 힘을 합쳤고, 기술 개발 임무를 맡은 합작 회사(HYBRIT)도 만들었다. 영리한 결정이었다. 파일럿 규모에서 기술의 유효성을 입증했고, 이제 상용화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
-스웨덴에서의 생산을 고집한 이유는.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제철 역사를 가진 국가 중 하나다. 우리 생산 현장 중 하나는 145년 전인 1878년부터 철강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제조업이 매우 발전한 국가라 공급업체와 서비스, 엔지니어링 역량, 운영 역량뿐만 아니라 고객층까지 모든 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다. 우리가 철강 생산을 중단하면 가치사슬의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우리는 제조 기반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도 수소환원제철 공법인 ‘HyREX’를 개발하고 있다. 2026년 시험설비 준공, 2030년 상용화 기술 개발 완료 계획인데, 수년의 차이가 존재한다.
SSAB가 화석연료 없이 만든 철강(SSAB Fossil-free) 막대 / SSAB 제공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계 전체가 가능한 한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접근 방식은 기존 용광로를 유지하고 그 위에 CCS를 더하는 것이다. 다른 접근은 수소환원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생산 기술을 사용하는 새 시설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SSAB는 매우 포괄적인 분석을 수행했고, 적어도 현재 고로 기술에 CCS를 추가하는 것보다는 기술을 변경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철강업체는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철강사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밸류체인에서의 협력 기업을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탈탄소 철강의 가격은 일반 철강보다 비싸다. 수요처 찾기가 어렵진 않나.
“HYBRIT의 시험 프로젝트에 투자를 결정하기 전 사전타당성 조사를 했다. 유럽의 탄소배출권 비용이 상승할 것으로 가정하고 HYBRIT 기술로 넘어갈 경우와 현재 기술로 계속 생산할 때를 비교한 결과, HYBRIT 기술 경로가 20~30% 정도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고객들이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전환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2018년 초의 예상인데 지금은 많은 변수가 바뀌었다. 배출권 가격이 훨씬 더 비싸졌고, 석탄을 비롯한 에너지 가격도 많이 올랐다. 시험 시설에서 소량으로 제품을 만들어왔는데 고객들은 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를 매우 열망하고 있었다. 전환이 가능하려면 고객이 프리미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받은 반응은 처음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다. 우리는 ‘그린스틸’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탄소배출량을 조금 줄여놓고 친환경이라고 선전하는) 그린워싱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들이 ‘무화석 철강’인 우리 제품에 프리미엄을 인정할지 우려가 컸는데, 수요의 신호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미 2021년 볼보그룹에 첫 번째 제품을 납품한 후 2년이 흘렀다. HYBRIT 기술을 상용단계로 확장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필요한데, 고객들은 기다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생 전기만을 사용해 재활용 스크랩으로 사브 제로를 생산했다. 1t당 300유로(약 43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데도 고객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는 2022년 1월 SSAB 이사회가 전환 계획을 가속화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기존에는 고로를 2045년 이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었는데 이제 우리의 계획은 10년 이내, 2030년쯤 전환을 완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탈탄소 철강과 일반 철강의 품질은 차이가 없는가, 생산량은 어느 정도 예상하는가.
“볼보,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고객들은 현재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소량의 무화석 강철을 테스트했고 품질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품질 측면에서 모든 품질의 철강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입증됐다. 현재 사브제로 제품의 경우 올해 약 4만t 정도 공급을 목표로 잡고 있다. 충분한 바이오가스 확보가 가장 큰 제약이 되고 있다. 현재 HYBRIT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스톡홀름 남쪽 옥셀뢰순드에 전기 아크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단계로 이곳에 있는 용광로 2개를 개조하고 스웨덴 룰레오와 핀란드 라헤에 있는 용광로도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전환할 계획이다. HYBRIT 파일럿 플랜트에서 현재 화석연료 사용 없이 만든 해면철을 시간당 1t 생산하는데, 그다음 단계로 연간 135만t 규모로 확장하려 한다.”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시행 후 수입 철강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유럽 철강 회사들에 기회가 될까.
“CBAM은 유럽연합 외부에서 생산되는 철강에 대해 탄소 배출 비용의 차이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체제다. 중국,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에 있는 회사가 유럽에 철강 제품을 수출하려면 탄소국경세를 내거나 자체 기술로 유럽과 같은 수준으로 배출량을 낮춰야 한다. CBAM은 유럽 역내는 물론 역외 기업들에 탈탄소에 나설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한국사회에 조언해준다면.
“권고하기보다는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하도록 우리가 배운 것을 공유하고 싶다.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HYBRIT 시험 시설로 초대하겠다. 이 기술이 전 세계에 확산돼 더 많은 기업이 이 기술을 활용한다면, SSAB 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투자자들의 탈탄소 압박도 작용하고 있나.
“수많은 NGO와 투자자, 주주, 우리 직원과 자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탈탄소화를 더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해관계자들의 이런 인식이 SSAB가 탈탄소를 추진하는 주요 동기였고,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이도록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철강 분야 탈탄소화가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는 철강 생산 자체가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철강이 없으면 현대사회를 구축할 수 없다. 산업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 철강 산업이 탈탄소화를 할 수 있다면 볼보그룹과 같은 고객들이 제품을 만들 때 스코프3 배출을 탈탄소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감축이 어렵다고 간주되는 철강 부문이 탈탄소화를 한다면, 다른 많은 산업도 과감하게 탈탄소화에 나서도록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SG 공시 의무화 2026년 이후로 연기…“기업 요청 고려”
2025년으로 예정돼 있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가 연기된다.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추후에 확정된다.
금융위원회는 이에스지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미룬다고 16일 밝혔다. 당초 이에스지 공시는 2025년부터 국내에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열린 이에스지 금융 추진단 제3차 회의에서 “주요국 이에스지 공시 일정을 고려해 국내 도입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하겠다”며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추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의 반발을 받아들인 결과다. 금융위는 기업 쪽에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갖기 위해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기업들은 관련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명확한 기준도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해왔다. 기존 계획대로 2025년에 공시 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기업들은 내년 정보부터 공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이에스지 공시 의무화가 지연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는 향후 이에스지 공시를 도입할 때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고도 밝혔다.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대형 상장사부터 도입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입 초기에는 공시 위반에 따른 제재 수준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다들 의심했지만 지체없이 직진, 독일의 놀라운 '기후정치’
독일이 정치로 2045 탄소중립을 만들어가는 방법
▲ 지난 15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독일은 남아있던 세개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멈췄다. 사진은 독일 니더작센에 있는 엠스란트 원전의 모습. 2023.4.15ⓒ 연합뉴스
독일의 연합정부(이하 연정)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연정이라 말할 수 있는 연합정부는 1965년 기독민주당(이하 기민당)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예산 문제로 파트너십에 균열이 발생하며 기민당이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과 정부를 함께 구성한 것이다. 그전에도 독일은 여러 정당이 참여한 좌파/우파 정부가 늘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학자들은 독일의 민주주의를 '정당 민주주의'라 자주 칭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정당이 늘 호평받아 왔던 것도, 받는 것도 아니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나치 정권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보다 정당이 강한 대의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고, 다원주의적 정당 체제를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방지하고 대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독일 사회에서 정당의 역할은 '의원내각제' '혼합형 선거제도'와 연계되어 발전했다.
지금도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 자민당이 정부를 수립하여 운영하는 일명 '신호등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내각의 중심인 총리는 사민당 소속의 올라프 숄츠가 맡고,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벡이 부총리와 기후경제부 장관을 겸임, 자민당의 크리스티안 린트너가 재무부 장관을 한다. 이 내각 수립 후 3개 정당은 2개월 동안 177쪽짜리 '연정 합의서'를 만들고 '더 많은 진보를 감행하다(Mehr Fortschritt Wagen)'라고 이름 붙였다.
2045년 기후 중립, 독일 신호등 정치는 준비 되었나
그러나 최근 신호등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많이 꺾이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가 불안정해지면서 유럽은 상상 이상의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독일은 가스 가격이 최대 3~4배까지 올랐고, 현재는 많이 완화되었으나 유럽은 물가가 6%까지 상승했다. 이에 대한 백래시(Backlash)로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극우정당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 현상을 보며 독일 정당 민주주의가 휘청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지만 이 신호등 정부는 2045년 기후 중립을 목표로 항해 중이다. 증거가 바로 독일이 올해 4월 '계획대로' 탈원전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다들 의심했으나, 지체없이 직진했다. 원전을 중단할 수 있었던 주요 동력은 끈질기게 싸워온 '반핵운동'이었지만 그 전부터 독일 사회에서는 완전 처리가 불가한 '원전 폐기물' 이슈가 부상하면서 더 다양한 반핵 정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원전 건설 반대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커지면서 원전 에너지를 대체할 더 확실하고 분명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결과 독일은 모든 원전을 중단할 수 있었고, 독일의 마지막 원전인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하기 직전, 원전이 생산한 전력에너지는 전체 전력량의 6%가 전부였다. 그에 비해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해 만든 재생에너지 비율은 절반에 가까웠다. 이미 원전이 주요 에너지원은 아니었던 셈이다.
메르켈과 보낸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기후 싱크탱크들의 냉랭한 평가
▲ 독일에서 반핵 집회를 하는 시민들ⓒ 녹색당
재생에너지 확대를 매우 기원하는 입장에서 '50%'라는 숫자는 필자에겐 꿈만 같은 것이지만 여전히 독일과 유럽의 기후 싱크탱크들은 냉정한 평가를 쏟아낸다. 전력에너지 생산량 '52%'를 도달했음에도(2023년 9월 기준) 기후 중립을 위해선 "여전히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건물과 난방, 수송 부문에서는 여전히 멀었다는 지적이다.
9월에 직접 만난 독일의 기후 싱크탱크들은 에너지 부문뿐만 아니라 수송·건물·산업 등 부문별·분야별 기후 중립 목표를 아주 치밀하게 계획하며 진단과 함께 로드맵을 그리는 중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야 다양한 각도에서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후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메르켈이 총리로 지낸 시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소극적인 기후정치로 인해 건물과 수송, 산업 부문에서 에너지 전환이 늦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독일의 쇠나우 전력회사의 대표는 메르켈이 더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정치를 펼쳤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충격도 덜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쇠나우 대표 외에도 정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독일의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아델피, 부퍼탈 연구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러한 토론과 논쟁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선 그동안 독일을 먹여살렸다고 하는 자동차 산업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크지만, 독일은 이미 거의 '완전 고용 상태'에다가 정치와 싱크탱크들은 기후 중심으로 산업을 재배치하는 문제를 더 주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 우려는 녹색당이나 기후 싱크탱크만의 몫이 아니었다.
▲ 독일 기민당 소속 베를린 시의원 대니 프레이마크ⓒ 녹색전환연구소
기민당 소속의 베를린 시의원 대니 프레이마크는 녹색당에 대해 '환경밖에 모르는 정당'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독일 기후정치는 더 가속화 되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것이 베를린에 더 필요한 고민이라고 판단하는 점이 한국의 보수 정치와 많이 달랐다.
또한 그는 기후 중립 베를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역시 가지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준비하고 있는 100억짜리 기후예산을 지지하며, 이 예산을 통해 건물과 난방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정용 히트펌프 설치를 확대하고, 기후 적응을 위한 슈프레강 중심의 물관리 정책(일명 스펀지 시티)을 진행중이었다.
또 기후정치에 적대적인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AfD)'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AfD는 기후 위기를 믿지 않아 기후정책이 없는 정당, 직접 민주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으로 유명한데, 대니 프레이마크는 그들의 정치 방식과 주장을 경계하며 자신은 꾸준히 지역에서부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설득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과 주장을 듣자면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정당, 보수정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기민당 정치인이었다.
유럽은 괜찮냐는 말, 그럼 아시아는?
이러한 흐름엔 유럽연합(이하 EU)도 한몫했다. EU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REPower EU'를 제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30년까지 42.5%까지 달성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했다. 2021년에도 'Fit for 55'를 통해 이미 재생에너지 32% 확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졌으나, 1년 후인 2022년에 더 강화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약속한 것이다. 게다가 EU가 세운 이 목표는 전체 에너지 소비(수송, 건설, 난방 등)에서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의미한다.
이 목표가 실제로 달성될 것이라고 보는 예측은 적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은 괜찮냐?' '프랑스는 여전히 원전을 가동하지 않냐'라는 말이 솔솔 나온다. 그러나 자전거 수송분담률 36%(한국 1.6%)에 빛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이미 수송 부문에선 2030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프랑스 파리의 경우 올림픽을 앞두고도 자전거 도로 대폭 확장, 공공주택 확대를 통해 에너지 전환 문제를 푸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과 유럽은 그 어려운 일을 '거의' 해낼지도 모른다.
▲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 REN21
한국이 포함된 대륙, 아시아는 어떨까. 지구상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 대륙에선 기후를 위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기후 문제를 국제적으로 다루는 IPCC에 가입되어 있고, 유럽과 무역을 하며 여러 '제제'를 받게 된다.
기후가 경제와 외교 질서와 경로를 획기적으로 변경하고 있는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정부들은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었을까.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아시아에서 외교 능력은 기후 문제를 다루는 능숙함에 달릴지도 모른다.
양당정치의 한계에 정지된 한국의 기후정치
한국을 좀 더 들여다 볼까. 독일에 있는 동안 한국의 정치뉴스 주요 키워드는 '단식'과 '가결' 이었다. 하다못해 경제나 국정감사와 관련된 뉴스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기후정치가 실종된 한국 사회에 최근 서울시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시행하겠다고 하여 반짝 이슈가 된 것은 퍽 반가운 일이었다. 교통정책을 기후 문제와 결합하는 일은 최근 몇몇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의 동백패스가 시작이었고, 이후 몇몇 지자체와 함께 교통혼잡의 끝판왕인 서울에서 이를 시작하겠다는 선언은 더 주목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경기도와 인천이 허락하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뉴스가 주로 반복되고 있다. 경기와 인천의 결단을 요구하는 언론의 목소리나 정치권,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가 올해 10월부터 공공교통요금을 대대적으로 인상하며 '기후동행카드'를 하겠다 말한 데에는 기만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를 비롯한 경기와 인천의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이 건물과 운송 부문(서울의 건물과 운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88%)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공공교통 완전 공영제⋅이동권 확대를 전제로 교통정책을 기후정책과 연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독일은 사실 이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교통정책 문제를 '49유로 패스'로 풀었다. 독일은 '교통요금 수능시험(비유적 표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교통요금에 대해 일일권과 반일권, 월권, 주간권과 야간권, 학생요금과 직장인 요금 등 수백 가지의 요금제도가 있었다. 그런 상황을 신호등 정부가 정치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 독일 녹색당 소속 연방의원 슈테판 겔프하르ⓒ 녹색전환연구소
특히 이 과정에서 49유로 패스의 전신으로 알려진 9유로 패스는 사회정책이었다고 녹색당 연방의원인 슈테판 겔프하르는 평가한다. 당시 난방 요금 인상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독일 시민들을 위한 민생 정책으로 9유로 패스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교통부 장관을 자민당이 맡고 있는 사실에 기반하면 놀라운 결정이기도 하다.
정치가 덜 양극화되었을 때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이 정책에 대해 독일 시민들은 환영했고, 이후 가능 지역과 교통수단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며 49유로 패스로 전환하였고, 이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주요한 정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9.23 기후정의행진
그럼에도 기후 정치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독일과 유럽 답사를 통해 가슴에 남은 것은 '그래도 기후정치'이다. 결국 독일과 유럽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과 아시아도 설득과 합의 그리고 양적⋅질적 다원성을 함유한 민주주의를 통해 길을 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민주주의로 해결하는 일은 가끔 요원해 보일 때가 있다. 2050년이라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 그어진 상태에서 '바꾸자'라는 말을 하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용감한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많은 것이 악화되는 시대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성취 가능성이 있는 욕구는 희망이라 말하고, 성취 가능성이 없는 욕구는 절망이라 한다"라는 토마스 홉스의 말을 빌린다면, 정치가 여전히 희망을 주기 위해선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가능한 한 온 힘을 다해, '성취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안을 만드는 정치와 운동을 지지하고 낙관할 의지와 투지가 필요하다. 정치 역시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을 조직하고 책임질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에도 3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정치가 선명한 기후정치로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
김혜미(green2013)
바이든이 용인한 핵오염수, 그리고 일본의 '핵기지국가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작년 2월부터 1년 8개월째 지속되어 종식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10월 7일 새벽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되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10월 15일(현지시간) 현재 가자지구 사망자가 4000 명을 넘어섰고, 병원에서는 연료 비축량이 하루분 정도에 불과해 수천 명의 환자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무고한 시민들이 극심한 전쟁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과연 전쟁위기로부터 안전한지, 그리고 한반도 평화는 유지될 것인지 불안감이 생긴다. 결국 전쟁과 평화 이슈는 외교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맺지 못하고, 아직도 정전선언 상태이기 때문이다.
북미정상은 한때 서로를 비방했다. 북미 간에 갈등이 격화했었다. 이 갈등은 과거 한동안 진행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따라 남북관계와 함께 북미관계에도 진전이 이뤄지는 봉합에 이르렀다. 남북은 4월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맺어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최근 임명받은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9.19 공동선언, 남북 군사합의가 최후의 안전핀이라는 주장에 맞서, 군사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한편 대북전단 살포 및 확성기 가동을 통한 심리전의 재개를 시사했다. 이에 더해 한반도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 위험과 먹거리의 안전 위협에도 노출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바이든의 일본 핵오염수 방출 용인의 본질을 진단한다'라는 주제로 10월 18일 시민사회 긴급세미나가 열린다. 발제 주제는 작금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사태에 있어서 국제적 큰 틀에서부터 당사국인 일본과 이웃인 한국, 그리고 핵 전문가의 입장까지, 정치 외교적 입장에서 과학 관련 내용까지 폭 넓게 다룬다. 세미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전반적인 시각을 갖게 함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해주어 한반도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고, 시민사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통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발제자인 김준형 교수(한동대 교수, 외교광장 이사장)는 미국의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며 진영싸움의 최전방 돌격대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가 최악의 선택을 내려 한국 외교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고 염려한다. 윤 정부의 안보 절대주의와 동맹 신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우리의 역량을 지정학과 미국의 전략적 범위 안에 갇히도록 만들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 전략은 '미들 파워(middle power)' 또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외교에서는 포지셔닝이 중요한데, 이제 균형자론이나 한반도 운전자론은 오간 데 없고 외줄타기, 편향된 외교로 인해, 한반도가 어떤 국가에는 적대국이 됨으로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문제이다.
김준형 교수는 발제문에서 지난 6월의 <Foreign Policy>을 인용하며 국제정치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할 국가로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를 꼽았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미·중 전략경쟁의 판도에서 오히려 어느 한쪽 진영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역학 구도를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구애하는 나라들인 것이다. 우리의 국익을 생각하면 우리도 어느 한 편에 섰다는 이유로 특정 국가에는 적으로 상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대결구도를 넘어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잘 활용하여 우세한 외교전략을 통해, 주변 열강이 우리에게 사정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빼기 외교가 아니라 더하기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기정 교수(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잠재적 핵무장국가 혹은 핵기지국가로의 전환을 꾀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미중 대립국면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 상황'이라는 발제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큰 장애물이 '기지국가'로서의 일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즉, 휴전 상태의 한반도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북한을 통해 자민당은 이익을 얻고 있으며, 이 이슈는 집권과 재집권을 보장하는 큰 요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남 교수는 평가하였다. 또한, 일본 고도경제성장은 '기지국가'와 '핵우산'을 통해 가능했으며, 일본의 원자력 정책이 핵연료주기 완성,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눔 획득과 이를 통한 잠재적인 핵무기 확보에 의도가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서균렬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의 발제는 "핵우산과 핵폐수 사이: 플루토늄 다원주의"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서 교수는 핵 오염수가 30여년에 걸쳐 방류될 때 후속 영향은 무조건 안전한 것이 아니라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우리로선 가보지 않은 길이라 방류가 30년을 넘게 지속될 때 생명체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전예방원칙'을 정해서 규제하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서균렬 교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는 육상보관 내지는 콘크리트 처리해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론을 맡은 우희종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는 기후 위기 등으로 상징되는 인류세에 기여하는 인류문명의 또 다른 폐해 흔적이 된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반도 공동체는 늘 특수상황이다. 분단으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감내하면서 언제든지 전쟁위기에 다시 내몰릴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평화는 우리에게 생존이다. 일상에서 평화는 우리에게 경제이다. 한반도에 온전한 평화만 구축된다면 통일이 되기 전이라도 남과 북의 경제교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남과 북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은 지금 종래의 핵우산정책에서 또 다른 길로의 변화를 획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핵전쟁 도발은 우리의 미래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과 일본이 획책하는 핵연료 재처리와 핵기지국가로의 변신이라는 움직임을 시민사회는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한반도평화를 위한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함과 동시에, 이번 핵오염수 문제에서 바다와 생명의 안전을 둘러싸고 윤석열정부의 엄청난 착오를 바로 잡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강경숙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상임대표 프레시안
가자지구 분쟁에 한국이 제공한 불씨... 현실은 이렇다
[StopADEX③] 무기의 사용 결과는 죽음... 현실을 감추지 않는 보도가 필요할 때
▲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3' 프레스데이에서 전투기 및 항공기가 전시돼있다.ⓒ 연합뉴스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ADEX(아덱스)가 17일(오늘) 열린다. 전국 일간지와 경제지를 비롯한 언론들은 이번 아덱스가 '역대 최대규모'이며, KF-21 등의 신무기가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리이고, 최대 33조 원 수출입이 논의될 것을 예상한다며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항공우주·방위산업'이 성황을 누리고, 수조 원의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현실은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아덱스를 비롯한 여러 '방위산업 전시회'는 '최첨단 기술'이 아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미얀마와 시리아 등지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피 흘리게 만든 '살상 무기'를 거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대급 호재?
▲ 2022년 9월부터 ‘K-방산’에 대한 보도가 급증했다. 보도 건이 하락하는 구간이 있지만, 2023년 9월까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BIGKinds)’에서 분석한 ‘K-방산’를 키워드로 하는 기사 건수)ⓒ BIGKinds
무기 박람회의 '찐' 모습은 한국 언론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K-방산'이라는 한국의 '효자 산업'이 제 역할을 해내는 기회로 포장된다. 그러나 K-방산이 '효자 산업'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라는 슬픈 현실이 존재한다.
실제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K-방산을 보도하는 열기는 그리 세지 않았다. 2020년에는 26여 건, 2021년에는 68여 건의 기사에만 등장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7개월째 지속되며 안보 불안이 유럽 전반에 퍼져나갈 무렵, 한국산 무기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K-방산'이 보도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해당 기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군비 증강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계속될 것이고, 한국산 무기의 해외 수주가 계속될 것 (<헤럴드경제>, 2022년 9월 26일 자 보도)'이라며, 역대급 '호황'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쓰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2023년 약 600여 건의 기사는 '지정학적 위기'는 한국 방위 산업에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며, '새로운 국면'이 열렸고, '유도무기·전차·자주포 등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무기 수출을 위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기조의 보도를 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K-방산 관련 보도ⓒ 피스모모
특히 전쟁이 장기화되고 통신과 드론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양상을 띠자 그동안 윤리적인 이유로 투자를 꺼리던 거대 투자자들까지 '방산 테크'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보도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각종 첨단 방산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라는 식이다(<조선일보>, 2023년 6월 23일 자 보도).
무기=죽음이라는 명백한 공식을 생략해 버린 보도
각종 무기 사진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이런 보도들은 무기 산업이 상점에서 매겨지는 금전적 가치에만 집중할 뿐, 그 무기가 '사용되는' 현실에는 대부분 등을 돌린다. 무기들의 사용 결과가 죽음이라는 명백한 공식을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에 따르면 무기 박람회에서 한국산 무기를 사들이는 주요 고객은 분쟁에 개입된 국가들이다 (죽음을 팝니다 – 무기박람회, 무엇이 문제인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2023년 8월 3일).
작년에 진행된 무기박람회 DX KOREA 2022의 경우 28개국에서 'VIP'가 초청됐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이나 무력 분쟁, 인권 침해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국가에서 왔다. 한국은 지난 5년간 국내외 분쟁 중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2014년 가자지구 분쟁 이후 한국산 무기 수입이 30%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4배 이상 증가했고,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인 2008년, 2012년의 이듬해의 한국산 무기 수출이 전년보다 각각 2배, 1.5배씩 늘었다(<경향신문>, 2021년 05월 20일 자 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에도 한국의 무기 산업이 계속 불씨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경제지들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중동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중동 무기 수출이 늘어나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전쟁이 빚어내는 호재를 기대하고 있다(굿모닝 경제, 2023년 10월 11일 자 보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최근 5년간 한국의 무기 수출 규모가 74%나 급증했고, 이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국인 미국,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에 판매되었다. 'K방산'이 폴란드서 "7.6조 원 잭팟"을 터뜨렸다는 보도들에는 우리가 수출한 무기로 죽음을 맞았을 우크라이나의 여성과 어린이의 얼굴들은 드러나지 않는다(<서울신문>, 2022년 08월 28일 자 보도).
<한국경제>는 2019년 터키가 '평화의 샘'이라는 작전명 아래 쿠르드를 침공할 당시 한국이 터키에 수출한 K9 자주포의 수출형 기종인 T-155가 사용되었다고 보도했다(<한국경제>, 2019년 10월 10일 자 보도). 그러나 해당 보도는 K-9 자주포를 '국산 명품 무기'라고 언급하며, "40㎞에 달하는 최대 사거리를 자랑하며 15초 동안 포탄 3발을 발사하는 급속사격 능력을 갖춰 전 세계 자주포 중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한다.
'평화의 샘' 작전은 시리아 북동부에서 7만여 명 어린이의 살 곳을 빼앗았고, 십여 명의 어린이 사상자를 냈으며, 학교와 보건시설 등을 공격한 최악의 폭력 사태임에도 무기가 만들어낸 죽음은 보도에서 삭제되었다.
무기는 반드시 죽음으로 연결된다. 언론은 무기와 연결된 다양한 죽음의 고리를 최선을 다해 담아낼 책임이 있고, 정보를 소비하는 시민들은 그 책임을 담아낸 보도들에 힘을 실어줄 의무가 있다.
▲ <굿모닝경제>의 11일자 기사 <이-팔 전쟁…정유 '불확실성 증대' 속 방산 기회 될까> 캡처ⓒ 굿모닝경제
무기 박람회 보도가 반드시 담아야 할 이야기
영국의 분쟁 및 환경 관측소(Conflict and Environment Observatory)는 전쟁이 발생하기 전과 도중, 이후의 과정에서 환경에 악영향이 가해진다고 분석한다. 전쟁이 발생하기 전, 군사 훈련과 군사 기지로 인한 환경 오염이 발생하고, 전쟁 도중에는 폭발물로 인한 환경 파괴와 독성 물질 배출 등이 발생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산림 파괴와 난민 등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단기적, 장기적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무기 박람회를 보도할 때에도 무기의 경제적인 가치에만 중점을 둘 게 아니라, 무기와 전쟁으로 인한 장기적인 사회 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난민
2018년,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한꺼번에 도착했던 일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예멘인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할 지 여부를 두고 사회적으로 논쟁이 일기도 했다. 당시 후티 반군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주)한화가 만든 세열수류탄 K413과 국방과학연구소와 LIG 넥스원이 개발한 대전차유도미사일 '현궁'이 사용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한겨레21>, 2018년 11월 2일 자 보도). <한겨레21>은 무기가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맞는지 추적 보도를 하며 예멘 난민 사태에 한국 무기 산업의 책임이 있음을 다룬 바 있다.
비인간 존재의 죽음
기후위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언론 <뉴스펭귄>은 수단의 무력분쟁으로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아사로 추정되는 것(2023년 5월 12일 자 보도), 미 해군의 괌 기지 확장으로 석회암 숲이 파괴되는 것(2022년 05월 27일 자 보도) 등 전쟁이 비인간 존재에 끼치는 폐해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
기후위기
지구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는 군사부문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전 세계의 5.5% 정도로 추산한다. 군대를 국가로 친다면 세계 4번째로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국가가 이를 보고할 의무도, 감축할 의무도 거의 없다. 군사/무기 분야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데이터도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안보 기밀이라는 명목 아래 성역화되어 있어 보도조차 잘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은 기후위기로 촉발되기도 하며, 무력 분쟁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2022년부터 군사 활동/전쟁과 기후가 주고받는 악영향에 대한 보도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관련 보도들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촉발된 군비경쟁이 기후대응을 위한 협력을 저해한다는 논조에 집중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에너지 단절을 모색하면서 G7에서 LNG 공공기금 지원을 모색하는 등 탈석탄 기조에서의 후퇴가 감지된다는 보도도 의미 있게 나타난다(중앙일보, 2022년 7월 3일 자 보도).
이외에 '인도와 러시아가 화석연료와 원유 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한겨레>, 2022년 11월 9일 자 보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으로 러시아가 전쟁 자금을 확보하게 허락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뭄이 우크라이나 내부 혼란을 일으키면서 전쟁을 촉발했다(<뉴스펭귄>, 2022년 12월 21일 자 보도)'는 보도, 지구 온난화로 북극권 항로 이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와 나토가 북극해의 자원과 항로개발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는(<중앙일보>, 2022년 7월 7일 자 보도) 군사 활동/전쟁과 기후가 주고받는 악영향을 파헤치고 있다는 데서 매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다중의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복합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가 강한 무기와 군사력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전통적인 접근의 안보관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군사력이 대응할 수 없는 안전 보장의 차원을 경험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세계는 첨예한 진영화에 돌입했고, 신냉전이라 불리는 진영화는 안보 불안을 초래하여 군비경쟁을 강화했다. 동북아시아의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유례없는 군사비 증가는 지역의 안보균형을 흔들었고, 한미일 안보협력체 출범으로 역내 군사훈련이 더욱 잦아졌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역시 더욱 빈번해졌다. 무기는 최첨단화되고 군사력은 강해졌지만, 그럴수록 일상은 더 긴장에 휩싸이고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은 '강한 무기'라는 단순한 답이 줄 수 없는 뿌리 깊은 갈등을 보여준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은 무기의 경제적인 가치를 화려한 언술로 전시하는 보도를 넘어, 무기가 사용되는 현장의 참상도 놓치지 말고 전달해 주길 바란다. 또한 무기와 관련된 정보를 소비하고, 무기 박람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들은 무기의 끝이 향하고 있는 수많은 죽음들도 함께 생각하며, 실상을 감추지 않는 보도에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
김가연(피스모모 리서치랩 실장)(stopadex1) 오마이뉴스
하루 수만 명 다니는데… 존폐 논란 시달리는 ‘도심 속 공중정원’
[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5. 서울로7017 가 보니
6년 전 서울역고가 철거 않고 재생
산책·출퇴근용으로 활발한 이용
연결통로 덕에 주변 상권 활성화
충분한 공감대 없이 추진돼 한계
서울시 “철거 계획 없다” 못 박아도
개장 초기부터 소모적 논란 계속
‘서울로 7017’의 야경.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2017년 낡은 서울역고가를 재생해 개장한 ‘서울로7017’. 최근 서울역 일대가 국가상징공간 조성 대상지로 검토되면서 일각에서 서울로7017의 철거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개장 초기보다 이용객이 확 줄었다는 이야기부터 콘크리트 화분이 흉물이라 인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부산일보〉 취재진이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와 함께 지난달 22일 ‘서울로7017’ 일대를 직접 찾았다.
서울로 일대를 오가는 시민들. 이자영 기자
■매년 700만 명 안팎 방문
서울 중구 회현동, 중림동, 만리동과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 걸친 서울로7017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조성됐다. 개장 초기부터 설치미술 조형물 ‘슈즈트리’가 흉물 논란에 휩싸이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서울로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서울로7017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약 1만 8000명.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700만~800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개장 첫 해의 경우 5월 20일부터 7개월여 동안에만 741만 명이 방문해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올해도 지난 8월 31일 기준 436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취재진이 방문한 이날도 인근 직장인과 시민, 관광객들이 이곳을 보행로로 활발하게 이용 중이었다.
상권 활성화 효과로 서울로와 접한 중구 만리동 일대 음식점과 카페 야외 좌석에 손님이 가득 차 있다. 이자영 기자
60대 시민 김홍진 씨는 “예전에는 효창공원을 산책했는데, 서울로7017이 생기고부터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며 “사람들 다니는 거 구경도 하고, 남대문 노을 사진도 찍고 하면서 1시간 이상 운동 겸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상가에서 일하는 박희자 씨도 “서울로를 걸을 때마다 철마다 다른 꽃이 피어서 계절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며 “개나리, 장미, 라일락, 수국 등 다양한 꽃이 피고 매미도 우니, 삭막한 도시 풍경을 완화해 준다”고 말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고보영 씨도 “서울로 조성 당시부터 거의 평일엔 매일 이용한다. 서울역 일대의 복잡한 지상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돼 보행에 편리한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30대 김효진 씨는 “높은 지대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엔 산책로로 활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심 속 공중정원’ 개념으로 조성된 서울로7017은 실제 공원이라기보다는 육교에 가까운 보행길로 활용되고 있었다. 최고 높이가 17m에 이르다 보니, 2.2m 높이의 투명 난간을 설치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도 신경을 썼다. ‘보안관’이라 불리는 현장 경비 인력도 24시간 교대로 근무 중이었다.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숭례문을 조망할 수 있는 데다가 인근 빌딩과 도로의 야경도 아름다워 저녁에는 사진을 찍으려 온 사람도 많았다.
차도로 활용되던 서울역 고가(위)와 보행길로 변신한 ‘서울로7017’. 서울로관리사무소 제공
■정치 이슈화된 철거 논란
이처럼 유동 인구와 방문객이 많음에도 철거설이 나오는 데 대한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좌승호 서울시 도시계획과 종합계획팀장은 “서울로와 관련해 철거 등 별도 계획을 수립한 바 없다고 서울시 차원의 해명 자료도 냈다”며 “철거가 자극적이라 그런지 추측성 기사가 나온다. 정치적 이슈로 다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입장에서도 총사업비 647억 원이 투입된 서울로를 철거하는 결정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서울역 인근에는 ‘서울로’의 이름을 딴 가게와 건물도 생겨나 상인 반발도 우려된다. 서울로관리사무소 김연호 운영팀장은 “서울로와 연결된 빌딩 3곳이 있다. 철거하게 되면 협약상 민간 건물의 연결 통로를 막는 공사를 시비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 건물주도 철거설의 진위에 촉각을 세운다. 상권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서다. 호텔 마누 신기준 이사는 “서울로와 연결 통로를 만들고 1~2층 객실 10실을 F&B(식음료 시설)로 리모델링한 뒤 매출이 배로 늘었다”며 “서울로가 생긴 뒤 만리동 등 상권도 활성화됐는데, 일부는 코로나19도 피해 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고 전했다.
서울로7017 사례에서 동서고가로가 배울 점은 뭘까. ‘철거냐 재생이냐’ 하는 결정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민 동의를 얻은 뒤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가로 철거나 활용이 특정 정치인의 결단 아래 치적용 프로젝트로 추진될 경우 정권 교체 후 소모적 논쟁이 재점화하거나 세금이 낭비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치우치지 않은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한 뒤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시민사회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거 대신 활용한다면,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산대 김동필 조경학과 교수는 “서울로처럼 콘크리트 화분에 식물을 심는 것은 생태적이지 못하고, 관리도 어렵다”며 “부산시가 지향하는 ‘15분 도시’, 걷기 좋고 녹지가 가까운 도시가 되기 위한 길로 기반 시설인 고가를 재활용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고가 철거 않고 활용한다면 길인지 공원인지 개념부터 명확하게”
서울로 BI 참여 오준식 디자이너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만리동 사무실에서 ‘서울로7017’ 브랜드를 설명하는 오준식 디자이너. 주민이자 전문가로서 재능기부로 작업에 참여했다.
“만약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활용한다면, 길인지 공원인지 개념부터 잘 잡아야 합니다.”
‘서울로7017’의 브랜드 이미지 통합화 작업(BI)에 참여한 오준식 디자이너는 부산 동서고가로 활용과 관련해 이런 조언을 내놓았다. 크리에이티브그룹 ‘베리준오’의 대표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그는 재능기부로 ‘서울로7017’이라는 브랜드 개발에 참여했다.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 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7017’은 서울역 고가가 탄생한 1970년과 보행로로 거듭난 2017년을 함께 담은 숫자다. 현대카드와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표 기업의 임원을 지낸 그가 무보수로 서울로7017의 BI를 담당한 것은 당시 그 자체로도 큰 화제였다.
오 디자이너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고 나서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7017에 참여했을 땐 이미 하드웨어가 만들어진 상태였다”며 “사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로7017이 애초에 ‘서울역 하늘공원’과 같은 개념으로 기획돼 알려진 것이 시민들의 실망을 키웠다는 것이다. ‘공원’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사람들이 떠올리는 녹색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콘크리트 길과 화분은 결국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는 “부산도 고가도로를 재생한다면,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보행길, 자전거 도로가 콘셉트라면 공원이라고 하는 순간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구 만리동에서 음식점과 디자인센터를 운영 중이기도 한 오 디자이너는 자신을 “서울로7017 개발로 피해를 본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동네가 낙후돼 있을 때 들어와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장사가 잘됐다”며 “외국 출장이 잦은 편이라 공항철도가 있는 서울역을 자주 찾는데, 이 근처에 버려지다시피 한 땅이 있다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 디자이너는 “음식점을 연 지 6개월 만에 서울로7017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땅값이 치솟았다. 개인적으로는 사업 영역 확장에 실패했고 야망을 접어야 했지만, 대신 좋은 이웃과 친구가 많이 생겼다”며 웃었다.
글·사진=이자영 기자
가뭄에 아마존 강물마저 말랐다…항구 수위, 121년 만에 최저치
브라질 아마조나스주 마나우스 네그로강이 16일(현지시각) 가뭄으로 메말라 소형 선박들이 오도가도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마나우스/AP 연합뉴스
브라질 네그로 강과 아마존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도시 마나우스의 항구 수위가 1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16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역대급 가뭄으로 인해 1902년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위(13.59m)를 기록한 것이다. 이번 가뭄으로 아마존 강의 지류가 빠르게 마르면서 소형 선박들의 발이 묶여 외딴 정글 마을에 식량과 물 공급이 끊겼고, 수온이 상승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강돌고래 100마리 이상이 폐사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브라질 과학기술부는 이번 가뭄의 원인으로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기상 패턴을 유발하고 있는 ‘엘니뇨’ 현상을 꼽았다. 과학부는 엘니뇨의 영향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소 12월까지 가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겨레
설악산이 이렇게 망가진다고? 윤 대통령 염두에 두었나
"어차피 몇 마리 남지 않은 천연기념물이 사라진다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보호해야 하죠?"
몇 마리밖에 없는 녀석들이 존재해봤자 지구상에서 기여도나 영향력이 전무할 것이란 생각이 대뜸 들었나 보다. 환경단체와 처음 연을 맺었던 시기,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나는 감히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네 이 사람. 대체 어디서부터 교육이 필요한 거야?' 버럭! 했을 법한 수준의 질문이었다.
"천연기념물이 서식한다는 의미는 생물종 다양성, 생태적 우수성이 뛰어난 공간이란 의미이고, 천연기념물을 보호한다는 의미는 보호종과 더불어 그들이 깃들고 있는 서식지를 보호한다는 의미예요."
당시 녹색연합 활동가는 지긋하게 대답해 주었다.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보호종이란 개념은 그렇게 내게 서식지 보존과 하나 된 개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국립공원위원회의 설악산 사망선고
설악산은 생태적,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다섯 겹으로 보호장치를 둔 곳이다.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백두대간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국립공원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국제사회를 비롯해 국내법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멸종위기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비롯해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수많은 법적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1982년 강원도와 당시 건설교통부가 오색케이블카 건설 사업을 신청했을 때 문화재위원회는 "설악산은 우리나라 자연 중에서 가장 대표가 되는 천연보호구역이며, 유네스코에서도 이 지역을 생물권보전지구로 지정하였으므로 동 지역의 자연은 인위적인 시설을 금지하여 자연의 원상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 이 지역 관리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며 두 차례나 부결시켰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 산악관광활성화 방안에 따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재추진되었다.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는 ▲ 탐방로 회피대책 강화방안 강구 ▲ 산양 문제 추가 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 수립 ▲ 시설 안전대책 보완 - 지주 사이의 거리, 풍속 영향, 지주마다 풍속계 설치(낙뢰, 돌풍 대비 등) ▲ 사후관리 모니터링시스템 마련(객관적 위원회 구성) ▲ 양양군-공원관리청 간 삭도 공동관리 ▲ 운영수익 15% 또는 매출액의 5% 설악산 환경보전기금 조성 ▲ 상부 정류장 주변 식물 보호 대책 추진의 7가지 부대조건을 두고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가결했다.
다름 아닌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맹비난이 쏟아졌고, 절차에 따라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었다. 환경단체들이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분석한 결과 산양 관련 조사 결과를 고의로 누락하고, 현지 조사를 실시한 것처럼 해당 일자를 조작하고 현지 조사 시간이나 조사 지점이 거짓 표기되어 있는 것을 밝혀냈다. 물리적으로 조사가 불가능한 시간인데 기한 내 조사를 마쳤다고 허위 작성되어 있었다.
환경부는 사업자인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서 보완을 통보했고, 문화재위원회는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현상 변경 허가 신청을 부결시켰다. 그러나 양양군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심판 청구를 했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인용했다. 이후 문화재청장은 문화재현상변경 조건부 허가 처분을 내리게 된다.
2019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통보를 하면서 케이블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 듯 보였다. 그러나 양양군은 또다시 부동의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재보완 기회 없이 입지가 부적절하다는 전제하에 부동의 한 것은 부당한 재량권 행사'라며 사업자의 취소 청구가 인용된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바뀌었고, 제출된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에 대해 지난 2월 환경부(원주지방환경청)는 조건부 동의(조건부 협의) 결정을 했다.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검토한 국책 전문기관들은 모두 부정적 의견을 냈다. ▲ 백두대간 핵심구역 내 지형훼손 등과 관련해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기 어렵고, 산양 서식 및 번식에 큰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한국환경연구원) ▲ 영향이 예상되는 삵, 담비, 하늘다람쥐 등 법정보호종과 관련해 저감방안이 대체로 미흡하고(국립생태원) ▲ 상부정류장 구역 설정이 산양서식지를 포함하지 않는 범위로 계획할 것을 권고했으며(국립환경과학원) ▲ 강풍에 따른 시설물 안전성과 관련해 보완이 필요하다(국립기상과학원)고 했다.
그러나 검토기관 모두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전문기관 검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던 환경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꿔 조건부 협의 결정을 통보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왜 정권 따라 달라지나
우리나라 환경부는 부처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없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산업자원부와 같이 돈도 많고 돈이 되는 개발사업을 벌이거나 승인하는 부처의 막개발 사업을 제어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도록 하는 일종의 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 환경정책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듯, 국가가 환경기준의 적정성을 유지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환경에 미치는 계획이나 개발 사업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수립되고 시행되도록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국민들이 보다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권한이다.
그러나 이 권한을 환경부는 소신 있게 행사하지 못하고 정권의 하명을 받들듯 개발부처의 이중대 노릇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설악산은 위기에 놓여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협의(동의) 이후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투자심사도 조건부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지난 13일 국립공원공단은 공원사업 시행을 조건부 허가했다.
10월 말에는 케이블카 착공식을 할 거라고 하고 착공식을 위해 3억 원을 책정했다고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식 지출 비용이 8000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3억 원은 과도하다. 그나마도 주요 인사 경호를 고려한 예비비 2억 원을 삭감하면서 3억 원으로 축소한 것이라고 한다. 무조건 추진을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
게다가 김진태 도지사는 착공식 이야기를 하면서 대청봉을 언급하고 있다. 오색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 정류장인 끝청까지 가더라도 대청봉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환경부의 국립공원 삭도(케이블카) 설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왕복 이용이 전제이고, 기존 탐방로와의 연계는 피하도록 되어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 끝청에 오른다 하더라도 대청봉으로 갈 수는 없다. 게다가 양양에서도 경관 최악의 코스가 현재 계획 중인 오색케이블카 노선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 환경단체활동가와 지역주민들이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앞에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녹색연합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빗장이 풀리자 지리산, 소백산, 속리산, 가야산, 무등산, 치악산, 북한산 등 국립공원이 소재한 지자체들이 케이블카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비가 2014년 460억 원에서 2015년 587억 원으로 오르더니 그사이 다시 두 배가 늘어 1172억 원에 달하고 있다. 이 중 국비 0원, 도비 200억 원, 양양군이 투입해야 하는 사업비는 972억 원으로 양양군 예산의 1/4에 달한다. 1/4에 달하는 군의 예산을 경관 최악 노선에 투입하느니 차라리 병원을 지으라는 군민의 절박한 요구가 지당하지 않은가.
전국에 설치, 운영 중인 관광용 케이블카는 41곳(2022년 기준)이지만, 흑자 운영되고 있는 경우는 권금성, 남산, 통영케이블카 정도다. 대부분 개장 시 반짝 특수 기간 외에는 적자 운영이라 지역경제 활성화는커녕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는 실정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무조건 개발사업은 벌이고 본다는 식이다.
모두의 자산 국립공원을 보존의 공간이 아니라 개발의 공간으로 취급하면서 마치 케이블카가 사회적 취약계층인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인 듯 아직도 이동권 프레임을 꺼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정작 버스를 이용하기조차 힘들어 설악산까지 갈 수조차 없는 장애인들의 기본적 이동권 보장과 항변은 평소 철저히 짓밟고 외면하면서, 이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자애로운 표정은 케이블카 사업의 구실로 장애인들을 활용하고야 말겠다는, 그야말로 도리를 넘어서는 일 아닐까?
공공의 공간이 개발사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전용되거나 공공의 것을 훼손하면서 누군가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회용 논리로 쓰는 일이 설악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이는 씁쓸함을 넘어 예의가 무엇인지 회의하게 한다. 그럼에도 곧 어김없이 단풍으로 타오를 설악. 첫눈이 오기 전에 우리는 이곳을 지키러 가야 한다.
임성희 녹색연합 오마이뉴스
산림청 "임도 밀도 매우 낮다"... 윤미향 의원실 "계산 기준 달라"
산림청 설명자료에 윤 의원실 재반박... 홍석환 교수 "미국은 임도 폐쇄 중“
▲ 윤미향 의원실이 확인한 한국과 미국의 임도현황 및 정책비교(2017) 산림청 인용 자료.ⓒ 윤미향 의원실
우리나라 산림청이 임도(林道) 밀도 계산 기준을 미국·일본·오스트리아 등 임업선진국과 다르게 하고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다. 산림청이 우리나라 임도밀도가 임업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아 계속 확대해야 한다고 하자 윤미향 국회의원(무소속)은 서로 기준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림청은 2022년 말 기준으로 전국 임도가 총 2만 3939km이고, 이를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에 대비해 1ha당 임도밀도가 3.97m라고 했다. 산림청은 임업선진국의 임도밀도가 오스트리아 50.5m/ha, 미국 9.5m/ha, 일본 23.5.m/ha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반면 윤미향 의원은 임도밀도 기준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산림청이 산에 낸 임도만 계산의 기준으로 삼지만, 임업선진국은 산에 난 국도, 지방도, 농도, 사유도로까지 포함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면 다 포함한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여러 도로를 다 포함할 경우 "국내 임도의 면적당 밀도가 미국보다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산림청 임도밀도 계산 기준, 임업선진국과 달라... 정책 오류" https://omn.kr/261qp)
그러자 산림청이 18일 설명자료를 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우리나라의 임도밀도는 임업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앞으로 산림 경영·관리에 필수 기반 시설인 임도를 확대해 나가되, 튼튼하고 안전하게 시설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미향 의원실은 "여러 자료 분석 결과, 임업선진국의 임도밀도 산정 방식과 기준이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라며 재반박했다.
▲ 정우담 논문 <미국의 국유림 임도 관리>(한국산림공학회지, 2003년, 42쪽).ⓒ 윤미향 의원실
먼저 산림청은 설명자료를 통해 "미국의 임도밀도는 산림 내 국도, 지방도, 사유 도로 등을 포함하지 않고, 미국 국유림 내 시설된 임도 거리(60만㎞)를 국유림 면적(6300만㏊)으로 나눈 값인 9.5m/㏊를 사용하였다"라고 했다. 그 근거로 2003년에 나온 한 논문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윤 의원실은 "미국 산림의 임도밀도 계산에 인용한 자료가 '추정' 자료에 근거하고 있으며 국도와 지방도, 사유도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없다"라며 "20년 전인 2003년도의 자료로 신뢰할 수 없는 자료를 아직까지 인용하고 있다. 이 자료는 추정에 더해서 미국 국유림 지역(Wilderness, 약 4520만ha)을 제외함으로써 우리나라와 비교 불가하다"라고 반박했다.
또 윤 의원실은 "미국 산림청의 임도시스템 또한 사유지를 지나고 있어 산림청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라며 "산림청은 해당 자료를 통해 미국 국유림 내 임도밀도를 9.5m/ha로 계산하였으나, 국유림 내라는 내용은 제시한 문헌에 어디에도 없으며 산림청이 관리하는 도로라고만 나온다"라고 했다.
윤 의원실은 "우리나라 산림청 자료를 인용한 한국과 미국의 임도현황 및 정책비교(2017년)에 따르면 미국도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산림청 관할 국유임도 뿐만 아니라 공공도로, 사유도로 모두를 임도망에 포함하며 이 모두를 합한 임도밀도 값이 9.5m/ha임을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 윤미향 의원실이 확인한 일본 임야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임도밀도.ⓒ 윤미향 의원실
일본과 관련해, 산림청은 "일본은 임도를 임도, 임업 전용도, 산림 작업로로 구분하고 있다"라며 "임도밀도는 임야청이 <산림·임업백서>(2022년)에 발표한 23.5m/ha를 인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실은 "산림청이 근거자료로 제시한 자료는 원자료를 인용하면서 2020년 '임도 등'의 밀도를 제시하고 있으나, '임도 등'에 어떤 도로가 해당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라며 "일본 임야청이 발간한 <2022년 임도 노망과 작업시스템 보고서>에는 임도밀도 계산에 포함되는 도로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국도, 도도부현도(지방도), 공도, 농도, 산림작업도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산림청이 제출한 오스트리아 임도 밀도 산정자료.ⓒ 윤미향 의원실
오스트리아와 관련해, 산림청은 "오스트리아의 임도밀도는 국도, 지방도, 사유 도로가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며, 과학인용색인확장(SCIE)에 등재된 학술지(Forests)의 수치를 인용하였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의원실은 "산림청에서 제시한 오스트리아 임도밀도 논문의 인용원문을 확인한 결과, 오스트리아는 3가지 유형으로 임도밀도를 구분하여 산정하고 있었으며 모든 도로를 포함하고 있다"라며 "특히 산림 가장자리에서 75m 떨어진 도로까지도 임도밀도에 포함하였고, 이 밀도 또한 500ha 이상의 대규모 경영림지역만을 대상으로 밀도를 산정한다"라고 반박했다.
또 산림청은 "윤미향 의원실에서 산출한 미국의 임도밀도 1.9m/ha는 국유림에 시설된 임도 거리(60만km)를 국유림 면적만이 아닌 미국 전체 산림면적(3억 1000ha)으로 나눈 값으로, 이는 미국의 정확한 임도밀도를 산출한 수치라고 볼 수 없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미향 의원실은 "산림청 또한 임도밀도를 계산할 때 한국 전체 산림면적을 나누고 있다. 산림청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계산된 것으로 잘못된 수치가 아니다. 이 수치가 잘못되었다면 산림청 역시 한국 전체 산림면적이 아닌 해당 임도가 있는 지역의 면적으로 산출해야 할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임도를 연구해온 홍석환 교수는 "각 국가별 임도밀도를 계산하는 근거자료가 있다. 그런데 특히 산림청은 미국과 관련해 20년 전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을 인용하고 있다"라며 "미국은 이미 20년 전부터 임도를 더 이상 만들지 않고, 매년 수천 킬로미터씩 폐쇄하고 복원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일본은 산림청이 제시한 임업백서의 밀도 산정내용에 분명히 국도와 지방도 등 산림 내부에 있는 모든 도로를 포함하고 있다고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또 다시 확인도 않은 채 설명자료를 배포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오스트리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산림청의 설명자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산림청이 제출한 오스트리아 임도밀도 산정자료가 인용한 원문ⓒ 윤미향 의원실
오마이뉴스 윤성효(cjnews)
세계 격찬 '한국녹화'는 절반의 성공..."숲 가꾸기로 완성을“
잘 닦인 임도를 이용해 조림하고, 지속적인 숲 가꾸기를 통해 높은 경제적 가치의 나무로 키워내는 일본 미야자키현 목재 생산 현장. 한국은 민둥산을 푸르게 바꾸는 데 성공한 녹화 성공 국가지만, 밖에서 보기와 달리 쓸 만한 나무가 많지 않아 세계가 격찬하는 한국의 녹화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야자키=정민승 기자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한국의 푸른 숲은 인류가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잉에르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올해 산림녹화 50주년을 맞은 한국의 산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감탄과 격찬 일색이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이 같은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 그들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치산녹화를 통해 숲 경관 제공, 대기질 개선, 생물다양성 보전, 산림 정수 등 산림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는 크게 높였지만, 국토 면적 63%에 해당하는 산림의 경제적 가치, 경제림으로의 활용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박상준 경북대 산림과학조경학부 교수는 18일 “반세기 전 헥타르(㏊)당 3,000본씩 식재받은 숲이 꾸준히 관리돼서 현재 300~400그루의 건장한 나무를 품었다면 우리 숲은 경제적 수익까지 내면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 숲은 어릴 때 한방에서 키우던 아이들을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한방에서 데리고 사는 집의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풍요 속의 빈곤’ 한국 숲
통상 나무는 고밀도로 식재돼 높이 성장을 하고, 가지치기와 솎아베기 등 숲 가꾸기의 도움으로 우량 대경재(직경이 30cm 이상인 원목)로 성장한다. 우리 숲은 식재 이후 반세기 동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부피 성장은 거의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분석은 ‘우리나라 숲에 나무는 많지만, 쓸 만한 나무는 많지 않다’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필요 목재 대부분이 수입으로 조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15% 수준이다. 우리와 산림면적 비율이 비슷한 일본(42%)은 물론, 독일(53%), 미국(71%)과 비교해도 한국의 목재 자급률은 낮다. 산림청 관계자는 “세계가 인정하는 녹화 성공 국가이고 나무의 양(임목 축적)도 1972년 ㏊당 11㎥에서 165㎥/㏊(2021년)로 15배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 목재 수입액은 7조 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녹화엔 성공하고도 쓸 만한 나무는 많지 않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숲 가꾸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건이 녹록하지 않다. 고령화와 함께 임업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7년 국내 1만2,500명 수준이던 임업 생산 관련 인력은 지난해 1만1,700명으로 800명(6%) 감소했다.
고령화 대응할 임업 기계화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한 일본의 임업 현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조구현 산림교육원 교수는 “일본은 임업 현장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펠러번쳐(벌도기), 프로세서(조재기) 등 고성능 임업기계 보급을 통해 목재 생산성을 올렸고, 기계화로 작업 여건이 개선되자 젊은 노동력이 유입됐다”며 “이와 함께 산촌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지역소멸도 어느 정도 지연, 예방하는 선순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치기현의 한 임산기업에서 여직원만으로 구성된 소재 생산반 모습. 일본 임야청은 고성능 임업기계 보급을 통해 청년들의 임업 취업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임업 기계화 수준은 매우 낮다. 대표적인 고성능 임업기계인 ‘프로세서(조재기)’는 일본에 2,239대가 보급돼 있지만, 국내엔 18대에 그친다. 프로세서는 벌도기(펠러번쳐)가 베어서 눕혀놓은 나무를 가지치기하면서 일정한 길이로 자르는(조재) 장비다.
또 일본 임업 현장에서는 2,000대 이상 보급된 하베스터(벌도기)의 경우 국내에선 보급이 미미하다 보니 대부분의 벌목작업은 기계톱에 의한 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 교수는 “조이스틱으로 게임하듯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젊은 여성들도 임업 현장에 들어오고 있다”며 “도치기현의 한 임산기업에선 여직원으로만 구성된 목재 생산반이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녹화가 가린 임도..."주목해야"
임업 현장의 기계화를 위해선 이들 장비가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혈관’, 임도가 필수적이다. 임도 양쪽으로 300m씩 접근한다고 볼 때 1㎞의 임도가 나면 약 60㏊ 면적의 숲 관리, 목재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임도는 ㏊당 3.6m로, 미국(9.5m/㏊), 일본(23.5m/㏊), 오스트리아(50.5m/㏊)에 비해 크게 낮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박 교수는 “산은 푸른 게 정상이고, 산의 나무는 길이 없어도 자라니 임도가 주목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녹화에 성공한 숲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숲 가꾸기, 50년 동안 키운 목재의 생산은 물론, 캠핑과 트레킹 등의 산림 휴양 기능 확대를 위해서도 임도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농로를 내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듯, 임도가 없으면 임업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임도의 이 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부정적 여론이다. 최무열 한국임업인총연합회장은 “임도는 산을 파괴하는 길이 아니라 숲 관리, 목재 수확과 이용을 통해 기후위원에 대처하고 산불 등 산림재난에도 대처하는 국가 중요 시설”이라며 “일각에선 산사태 원인으로 임도를 지적하지만, 정부가 이런 비판 여론을 의식, 임도 건설을 주저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원전 카르텔’ 전관 업체에 연구용역 몰아준 한수원
한빛원전본부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안전과 관련한 연구용역 다수를 전관 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르텔 혁파’에 나선 윤석열 정부가 정작 ‘원전 카르텔’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한수원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재직 중인 중소기업 A사의 매출액 상당 부분이 한수원으로부터 수주받은 연구용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2014년 7월에 설립된 회사로, 원전 관련 기술 자문을 주로 해왔다.
2019년 매출이 11억6000만원이었던 이 회사는 같은 해 한수원과 6억원 규모의 연구용역을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12억원, 9억6000만원에 달하는 연구용역을 한수원과 수의계약을 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연평균 12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매출이 한수원과의 수의계약에서 나온 셈이다.
해당 회사는 현재 한수원 출신이 최소 2명 이상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에 기술고문으로 재직 중인 B 씨는 1997년부터 2020년까지 24년간 한수원에 재직하다 2021년부터 해당 회사로 옮겼다. 한수원에서 35년간 근무했던 C씨도 2022년부터 기술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김 의원이 건강보험 공단 자료 분석 결과, 최근 10년간 한수원에서 해당 회사로 이직한 전관은 총 4명이다. 이 회사가 수주한 용역은 ‘원전 안전규제 상시 기술 자문 용역’(6억원), ‘원전안전 규제 대응능력 강화 기술자문 용역’(6억원), ‘한빛1,2호기 2차 주기적 안전성평가(PSR) 종합평가(GA) 기술 자문용역’(5500만원) 등 원자력발전소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 다수였다.
한수원이 최근 5년간 수의 계약을 가장 많이 맺은 상위 10곳 중 해외기업이나 공기업을 제외한 5곳에서도 전관이 다수 포진했다. 최근 10년간 한수원에서 이직한 직원이 20명에 달하는 B기업은 한수원과 462억원 규모의 118건의 수의계약을 맺었다. 김 의원은 “‘카르텔 혁파’에 나선 윤석열 정부가 왜 ‘원전 카르텔’에는 눈 감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원전 안전을 위해서라도 원전 카르텔은 혁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A사의 경우에는 공개경쟁입찰을 했지만 단독으로 들어와서 2번 유찰이 돼 수의계약을 진행한 사례”라며 “수의계약 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사전공개 절차를 거쳐 수의계약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퇴직자를 챙긴 한수원이 원전 사고에서도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 한빛 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 감사 징계 결과, 7명의 징계자 중 중징계 이상을 받은 직원은 1명(정직)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직원은 감봉 4명, 견책 2명으로 대다수가 경징계를 받았다. 감봉을 받았던 2명은 법원에서 위법행위로 벌금까지 부과받았다.
해당 사건은 무면허 운전자가 원자로를 운전하는 것으로도 밝혀져 사회적 파문이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징계를 받은 이들은 2019년 5월 10일 한빛원전 1호기 제어봉 제어 능력 측정시험을 하던 중 원자로 열 출력이 제한치(5%)를 초과했음에도 즉시 가동을 멈추지 않고 면허가 없는 직원이 제어봉을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항소심 재판부는 감독 면허를 가진 발전팀장의 감독하에 제어봉을 조작해 무죄라고 판단했지만 ‘사고 당시 상황을 몰랐고 5일 후에야 알았다’는 취지의 허위 진술서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해당 판결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지난해 한수원은 허가받지 않은 기기를 설치·교체하거나 검증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부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319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관련자 징계나 감사를 진행하지 않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바 있다. 1년이 지난 이후에도 징계 시효가 지나지 않은 4건 중 실제 감사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경향 박상영 기자
인재이자 관재인 리비아 대홍수 참사
폭풍 ‘대니얼’에 휩쓸린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가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폐허로 변해 있다. / AFP연합뉴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지중해에 접해 있는 아랍 국가다. 면적은 약 176만㎢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나라이고, 남한 면적(약 10만㎢)에 비해 약 17배나 큰 대국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이 사하라사막이기 때문에 실제 개발 가능한 면적은 해안가에 한정돼 있다. 인구도 약 700만명 정도로 국토면적에 비해 적다.
리비아의 기후는 북부 해안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우 건조하고 작열하는 태양만 있는 전형적인 사막기후다. 강수량이 250㎜ 미만인 지역을 사막기후로 지칭하는데, 리비아의 연평균 강수량은 26㎜로 극단적으로 적다. 참고로 전 세계 연평균 강수량은 약 800㎜이고,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다. 리비아에서는 수십 년째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곳이 많다. 비교적 비 올 가능성이 높은 고원지대에서도 5년에서 10년 사이 겨우 한 번 비 구경을 한다. 당연히 리비아에서 물은 중요성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과거 필자는 물 관련 과제를 수행하며 중동에 거주했다. 비가 오는 날은 중동인들에겐 신의 축복이다. 집 바깥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신께 감사를 드렸다.
의외로 리비아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내륙 사하라사막 지하 깊은 곳에 1만년 이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가 있다. 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 도시들에 물을 공급하는 대수로 공사를 한국의 과거 동아건설이 실행했다. 지름 4m, 총길이 4000㎞가 넘는 거대한 송수관을 사막을 가로질러 매설해 하루에 650만t의 물을 북부 지중해 연안에 공급하는, 20세기 단일 토목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1000만명의 인력과 500만대 분량의 중장비를 동원한 대공사 끝에 성공적으로 대수로 공사를 완공했고, 리비아는 한반도 면적 8배 이상의 땅을 농지로 얻었다. 대수로 공사의 통수식 날 메마른 사막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신기한 광경에 리비아 국민은 열광했다. 당시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는 성공적인 대수로 공사를 세계 8대 불가사의라며 치켜세웠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국기업이 중동에 진출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석유붐을 탄 중동 건설에 한국기업을 홍보하는 단골 수단이기도 했다.
리비아 대홍수
최근 물이 귀중한 리비아에 비가 많이 내렸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다. 지난 9월 11일 월요일 리비아 동북부 해안 도시 데르나에는 하루 만에 무려 414㎜에 이르는 비가 내렸다. 쏟아진 물은 도시 남부의 계곡 골짜기로 몰려들었다. 홍수를 방지하는 두 개의 댐이 존재했지만, 폭우로 인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한 댐이 터졌다. 이어 두 번째 댐도 터졌다. 댐이 터지며 형성된 거대한 물줄기가 쓰나미처럼 해안도시로 쏟아져 내렸다. 데르나 도심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9월 18일 현재 유엔(UN)은 약 1만13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만명 이상이 공식적인 실종자로 남아 있어 최종 사망자 수가 얼마로 집계될진 아직 불분명하다. 데르나 도시 인구가 약 10만명인데, 도시 인구의 10% 이상이 사망했다. 리비아 정부의 오사마 하마드 총리는 재해 복구 능력을 초월한 ‘대재앙’이라고 선언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변이 나타난 이유를 해수면 온도에서 찾고 있다. 올해 지중해 동부와 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3도 올랐기 때문이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량이 증가해 대기로 유입되고 폭우, 폭설,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바닷물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고 그 위력도 강해진다. 올여름 기록적인 더위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보유하며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재앙을 단순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인명손실과 피해가 너무 크다. 같은 폭풍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그리스와 튀르키예, 불가리아에서는 약 20명의 희생에 그쳤다.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던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 사태에서도 사망자가 약 1700명(물론 파키스탄의 인명피해도 엄청나지만)으로 데르나 한 도시에 닥친 재앙의 크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이토록 한 도시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재앙의 퍼즐 조작
첫째 지리적인 특수성이 있다. 습한 지역에서 비가 오면 토양이 물을 흡수하고 홍수 위험을 완화하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와 반대로 데르나 같은 건조한 지역에서는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아 지표면에 머물며 빠르게 움직이고 갑작스러운 홍수를 일으킨다. 특히 데르나의 경우 강과 개울을 따라 흘러내린 퇴적물이 산맥 기슭에 형성된 위치에 있다. 마치 깔때기에 비를 모아 한곳으로 흘려보내는 배출구 마지막에 도시가 자리한 형국이다. 홍수로 인한 물이 갑자기 이동하며 많은 퇴적물과 잔해물을 운반하고 도시 중심부의 모든 것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렸다.
둘째,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댐과 같은 홍수 조절 및 상수도 인프라 구축을 통해 물을 다스렸고, 이를 통해 문명의 번영과 활력을 얻었다. 데르나는 두 개의 댐으로 홍수를 방비했다. 이를 믿고 도시 중심지를 지나는 하천 주변으로 건축물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댐은 2002년 이후 유지·보수를 받은 적이 없었다. 댐으로 인해 물이 모이고, 댐의 붕괴로 모였던 물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시가지를 쓸어버렸다. 믿었던 댐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온 셈이다.
셋째, 리비아 정치 리더십의 분열과 무능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으로 카다피 권력이 무너진 이후 정치, 경제, 치안 등이 불안정해지고 전반적인 인프라의 퇴보로 이어졌다. 20년 넘게 수리를 미뤄온 데르나댐이 강력한 폭우로 붕괴할 수 있다는 논문이 2022년 발표됐지만, 정부는 관심이 없었다. 폭우가 강타했을 때 집에 머물라는 당국의 잘못된 지시는 인명 사상자 피해 규모를 키웠다.
데르나의 지형, 인프라 노후화, 폭우에 대한 부적절한 경고가 이미 재앙의 퍼즐 조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비를 했더라면, 댐의 유지·관리를 잘했더라면, 재난 대비 경보가 올바로 작동했더라면 리비아 대홍수의 큰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가속화된 기후위기가 퍼즐을 완성하며 치명적인 홍수 재앙을 일으켰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갈수록 더 많은 폭우가 발생하고 있다. 홍수는 더 위험해지고 큰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 주변의 약한 틈을 찾아내며 재앙의 씨앗을 뿌린다. 뿌려진 씨앗은 우리 무관심 속에 자라나며, 기상이변이 나타날 때 재앙의 꽃을 피운다.
리비아의 슬픈 소식은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예고된 미래’ 우리 옆의 녹색일자리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 소속된 유희준씨는 태양광 설비기사로 일하고 있다. 태양광 설비기사는 탄소를 저감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표적 녹색일자리다.ⓒ시사IN 박미소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안산시민햇빛조합)은 태양광 설비기사 유희준씨의 두 번째 직장이다. 어느덧 입사 2년 차가 됐다. 스물다섯 살, 또래보다 일찍 취직한 유씨는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지금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 친구들은 ‘직업의 전망’이 급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전기 분야 업계가 워낙 다양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비전이 있는 회사는 어떤 곳일지 많이들 고민한다.”
유씨의 첫 직장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였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롭게 부상한 분야다. 이직한 지금의 직장도 친구들에게는 생소하다. “일반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에서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거니까 더 낯설게 느끼는 것 같다. 처우를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쁘다면 이직하지 않았을 거다. 노동조건도 좋고,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데 적극적인 분위기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유희준씨가 몸담았던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도, 현재 직장인 태양광협동조합도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터다. 대표적인 ‘녹색일자리’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lLO)는 녹색일자리를 ‘친환경적인 생산 과정에 종사하거나 환경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괜찮은 일자리’로 정의한다.
녹색일자리는 오해받는 직업이다. 지식집약적 노동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기술·연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만 허용된 일자리일 거라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화된 자본을 이용한 고도의 숙련노동’이 녹색일자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 더 주요한 녹색일자리의 특징은 ‘노동집약성’과 ‘지역성’이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녹색일자리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일자리를 예로 들었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설계부터 제작, 설치, 수송, 유지·보수·관리, 폐기 등에 이르기까지 일자리 사슬이 매우 길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기도 한다. 태양광 패널을 옮기는 트럭 운전사처럼 공급망 단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부터, 폐기·재활용 단계에 투입되는 노동자까지 광범위하게 녹색일자리 종사자가 된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산하 정치경제연구소(PERI)에서 발간한 ‘한국 에너지 대전환의 일자리 창출 효과 보고서’다. 한국 그린피스가 의뢰한 연구 결과로, 한국 정부의 탈탄소 정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적절한 투자를 할 경우 2030년까지 일자리 81만~86만 개, 2031년부터 2050년까지는 90만~120만 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특히 에너지 효율 부문·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학력 수준의 노동자에게 취업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봤다. 예를 들면 ‘빌딩 에너지 효율 제고’ 분야에서는 고졸 이하 노동자 비율이 65.2%로 국내 전체 노동인구의 학력 수준에서 고졸 이하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약 48%)보다도 높다. 숙련도에 따른 다양한 일거리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그림〉 참조).
노동집약성과 지역성이 특징
녹색일자리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화다. 재생에너지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에너지 공급체계가 중앙집중형에서 지역분산형으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다. 석탄화력·원자력 발전소 같은 대규모 중앙집중형 발전원과 달리 태양·바람 같은 재생에너지원은 밀도에 차이가 있지만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산형 에너지 공급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고 있다. 내년 6월부터 시행될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에너지특별법)’은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달리 책정할 수 있는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근거를 담고 있다.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요금이 내려가고, 수도권처럼 먼 지방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지역일수록 요금이 올라간다.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거리 송전 방식에서 벗어나 전력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 분산에너지특별법은 전국 어디서나 전력 생산과 관련된 일자리를 늘릴 초석인 셈이다.
새로운 일자리만 녹색일자리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녹색일자리가 기존 전통적인 직업과 상관없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이자 청년만을 위한 일자리일 거라 생각하지만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탄소중립 시대가 되면 두 명 중 한 명은 녹색일자리에 종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직업이 ‘녹색화’되는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 운전기사는 탄소중립 시대에 공공교통 시스템을 떠받치는 필수 노동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스 기사와 녹색일자리를 쉽게 연관시키지 못한다. 승용차 중심으로 교통체계가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버스 운전기사의 노동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유진 소장의 말이다. “왜 우리 사회에서 버스 운전기사는 녹색일자리가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기존 직업이 녹색일자리가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해 해당 노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직업을 녹색화할 때는 그것이 ‘괜찮은 일자리, 해볼 만한 일자리’가 되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궁금증은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된다. ‘예고된 미래’인 녹색일자리 시대에 내가 속한 '일의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환경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녹색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달라진 일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자리 태양광 설비기사
안산시민햇빛조합 태양광 설비기사 유희준씨를 만난 곳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단독주택이었다. 주차장 흙바닥 위에 시멘트를 붓고, 그 위에 골재를 세워 3kW(3000W) 용량의 태양광 패널 모듈을 올리는 작업 준비로 분주했다. 일반 아파트 발코니 난간에 설치하는 미니태양광 패널 모듈 ‘한 판’은 한 시간에 약 330~350W 전기를 생산한다. 아파트 난간에는 안전문제 때문에 패널이 한 개만 들어갈 수 있지만 이번 현장 같은 단독주택은 더 큰 용량을 설치할 수 있다.
태양광 설치의 걸림돌은 이웃의 문제 제기다. 대표적인 게 ‘패널이 더러워지면 세정액을 써서 청소를 할 텐데 그때 건강에 나쁜 물질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염려다. 그럴 때마다 가정에 설치하는 작은 태양광 패널은 비바람에 의해 오염물질이 저절로 씻겨 나간다고 설득한다. 빛반사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모듈의 각도를 조정한다.
유희준씨는 요즘 수면 위에 짓는 태양광 발전시설인 ‘수상 태양광’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3월 환경부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제품 생산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19곳에 1.1GW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산림 훼손이 없는 데다 기울기 없는 평평한 수면 위에 패널을 설치하다 보니 지상 태양광보다 발전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유희준씨와 함께 일하는 박성국 시공팀장은 40대가 되어 전기기사 자격증을 딴 뒤 안산시민햇빛조합에 취업했다. 중년의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선택한 이유는 재생에너지 기술이 미래 기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져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자격증 시험부터 준비하면 된다. 앞으로 쓸 일이 더 많은 기술이다.”
‘앞으로 쓸 일이 많다’는 박 팀장의 말은 추측이나 기대가 아니다.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0년 설치된 지붕형 태양광 보급 용량은 1099MW로, 625MW였던 2018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태양광을 지붕에 설치할 경우(즉 발전효율을 높일 경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받을 때 가중치가 두 배 이상 높다. 쉽게 말해 발전사업자가 한전에 전기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산업단지 내 공장 지붕이나 옥상 등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산단 태양광’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국내에 있는 1257개 산업단지 공장 지붕 모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경우 발전량이 최대 54GW급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원전 약 54기를 돌리는 양과 맞먹는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발전 잠재량’을 ‘실제 발전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 곳곳에 ‘녹색일자리’가 있다.
녹색 소득이 있는 일자리 에너지협동조합원
지난 9월 광주광역시에서 전국 최초로 청년들이 발족한 늘품청년햇빛발전협동조합이 출범했다. ⓒ늘품청년햇빛조합 제공
유희준, 박성국 두 사람이 속한 안산시민햇빛조합은 국내 최대·최다 태양광발전소를 세운 협동조합이다. 2013년 창립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창립한 해에 안산시 호수동 중앙도서관 옥상에 한 시간당 30kW 규모의 1호 발전소를 설치했고, 현재 발전소 41개를 운영 중이다. 태양광의 하루 평균 발전 시간을 3.8시간으로 적용할 경우(한국 평균 일조시간에 그늘·먼지 등 태양빛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고려해 계산한 일조시간), 41개 발전소에서 한 달에 만들어내는 발전량은 4인 가구 1680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가구당 월평균 전기 사용량 307kWh 기준)이다. 이렇게 줄인 탄소감축량은 연간 2만t에 이른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안산 시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데, 현재 조합원 수는 1472명이다. 조합원 한 명당 1년 동안 탄소 13t을 저감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성장 중이다. 현재 누적 출자금 규모는 49억5000만원이며, 지난해 매출액만 59억원에 이른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 판매와 태양광 설치·전기공사 수입 등으로 매출을 얻는다. 수익은 조합원 배당금과 사회공헌비 등으로 사용된다. 출자금 배당률은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5%)보다 높은 6%다.
9월19일 방문한 안산시민햇빛조합 사무실에서는 서수원IC 인근에 들어설 예정인 1만6000MW 용량의 발전소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안산시민햇빛조합 소유의 발전소는 아니지만 몇 년째 공들여 진행 중인 사업이다. 조항오 안산시민햇빛조합 본부장은 “이 발전소는 경기도 내에 있는 30개 이상의 에너지협동조합이 함께 만드는 발전소다. 부지 확보에만 3~4년이 걸렸다. 아직 자립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에너지협동조합을 키우기 위해 우리 조합도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이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공공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여 년간 지자체와 협의해온 노하우는 다른 협동조합들의 ‘공동 자산’이 되고 있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 것’은 에너지협동조합의 지향이기도 하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무한한 공공 자산으로 얻은 수익을 많은 시민과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조항오 본부장은 “지금까지 전력과 관련된 일자리는 한국전력공사 등 큰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제는 개인이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투자하거나, 협동조합 조합원이 됨으로써 녹색일자리 종사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신재생에너지 육성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월에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가 기존 30.2%에서 21.6%로 줄었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 역시 올해 1조489억원에서 6054억원으로 42% 삭감됐다.
에너지협동조합에는 타격이 없을까? 태양광 사업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역량과 관심에 따라 대응책은 다르다. 경기도의 경우 RE100(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선언한 대기업이 많다. 그렇다 보니 에너지협동조합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4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 RE100 비전’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9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확충하고, 공공기관 역시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너지협동조합 모델은 다양한 계층에 확산 중이다. 9월7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청년들이 참여하는 ‘늘품청년햇빛발전협동조합(늘품청년햇빛조합)’이 만들어졌다. 학교 밖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징검다리 배움터 ‘늘품’의 졸업생들과 교사가 태양광발전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이 협동조합은 이사장 등 발기인 5명이 모두 청년이다. 만 25세인 임채은 이사장은 탈학교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직장을 구할 때, 더 나은 사회와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회사든 들어가서 돈은 벌 수 있겠지만 청년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광주 빛고을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빛고을햇빛협동조합)의 도움이 있었다. 빛고을햇빛협동조합은 늘품청년햇빛조합이 창업지원금 7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늘품청년햇빛조합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녹색일자리’를 청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늘품청년햇빛조합의 내년 목표는 재생에너지 시민교육을 확대하고, 100kW 발전소를 하나 갖는 것이다.
‘녹색화’된 일자리 버스 운전기사
전남 신안군은 전국 최초로 버스 완전공영제를 도입했다. 김성숙씨는 신안군 팔금면에서 수요응답형 관내 버스인 1004 버스를 운전한다. ⓒ시사IN 박미소
전라남도 신안군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버스 완전공영제를 시행한 지자체다. 완전공영제는 버스 노선권을 지자체가 갖기 때문에 ‘비수익 노선’에도 재정을 투입해 배차할 수 있다. 2007년 압해도를 시작으로 7년에 걸쳐 신안의 14개 버스업체를 인수해 노선권을 확보했다. 완전공영제가 도입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버스 이용객은 연간 19만명에서 67만명으로, 버스 운행 대수는 22대에서 75대로, 버스 운전기사도 25명에서 9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신안에는 일반 공용버스(65세 이상 무료, 일반 1000원, 청소년 500원)와 ‘수요응답형’ 관내 버스인 1004 버스(20세 미만과 65세 이상 등 교통약자 무료, 그 외 1000원)가 운행된다. 버스공영제가 교통약자를 위한 복지 시스템인 것만은 아니다. 그 자체로 녹색일자리 창출의 모델이다. 9월14일 〈시사IN〉 취재진은 전남 신안군 팔금면을 찾아 1004 버스에 동행했다. ‘1004’는 섬 1004개로 이루어진 신안군을 상징하는 숫자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섬마을은 사방이 젖어 있었다. ‘빵~’ 하는 경적 소리가 운무를 뚫고 신안 섬마을 팔금도를 깨웠다. 운전대를 잡은 김성숙씨가 1004 버스의 속도를 서서히 낮추며 버스 정류장 없는 마을의 골목을 누볐다. 경적 소리를 들은 동네 주민들이 낮은 돌담 너머로 얼굴을 들어 눈인사를 했다. 마침 김성숙씨의 전화기가 울렸다. 주민 정옥자씨였다. 늘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김씨는 정씨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그의 집 앞으로 버스를 몰았다.
버스에 올라타던 정씨가 말했다. “내가 감자 좀 캔다고 이제야 외출할 채비를 마쳤어. 추석이 오니까 방앗간에 기름 짜러 가야제.” 정옥자씨는 오늘 벌써 두 번째로 1004 버스를 탔다. “아침 5시 반에 1004버스 타고 공공근로 하러 가거든. 11명이 다 같이 이 버스 타고 일하러 가는데 이거 없으면 그 이른 시간에 우리가 다 어떻게 거길 가겠어. 노인들한테 너무 다행이고 고맙지.” 병원에 가려는 이웃도, 마트에 가려던 이웃도 각자 집 앞에서 1004 버스에 올랐다. 김성숙씨는 내비게이션 한번 찍지 않고 마을 곳곳 주민들의 집을 누볐다.
1004 버스는 배차시간도, 버스 정류장도 없다. 용무가 있는 주민이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하면 직접 데리러 간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가 도입한 대표적인 교통복지 서비스다. ⓒ시사IN 박미소
1004 버스는 일반 버스가 닿지 않는 작은 섬을 오가는 24시간 버스다. 배차시간도 정류장도 정해진 게 없다. 용무가 생긴 주민이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면 버스가 주민이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신안에는 이런 1004 버스가 총 10대 있는데, 운전기사 20명 중 여성이 5명이다. 군에서 재정을 투입하면서 처우가 개선되고 고용이 안정되자 여성 운전기사가 늘었다. 현재 신안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4대 보험과 60세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고 자신이 원할 경우 67세까지 일할 수도 있다.
김성숙씨는 4년 전인 2019년, 서울에서 신안으로 귀향했다. 신안에서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1004 버스를 도입한 해다. 팔금면 1004 버스 운전기사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김씨가 취업했다.
김씨는 신안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대형 버스를 1년 넘게 몰았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물었다. “봉급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하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서울에서 버스를 운전할 때는 출퇴근 시간에 승객들로 꽉 찬 버스를 운전하는 게 힘들었다.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온전히 기사 책임이다. 버스 기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신안, 화성, 정선 등 전국 10여 곳 지자체에서 완전 혹은 일부 공영제를 채택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광역시에서 도입한 준공영제는 민간 버스회사들이 버스 노선권을 갖되 운행 및 서비스 등에서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대신 민간업체는 운행 실적에 따라 지자체로부터 사전에 정해진 운송원가를 보전받는다. 민영제의 경우 대다수가 ‘재정지원형 민영제’다. 적자 노선 운영 등을 위해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준공영제와 민영제에서는 인사권 등도 민간 회사가 가진다.
2007년 당시 공영제 전환 업무를 담당했던 김형수 신안군청 교통지원과 육상교통팀 팀장은 준공영제든 민영제든 시민들의 세금으로 버스 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하지만 이동 공공성 면에서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영제인 목포의 경우 버스 155대를 가진 큰 업체가 있다. 이 회사에만 1년 재정지원금이 110억원 들어간다. 하지만 승객들은 교통 편의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 비용이 서비스 개선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시 2004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2019년까지 총 4조320억원에 달하는 운송 적자를 지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김형수 팀장은 민간사업자의 이윤 보전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대중교통의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지자체가 직접 투자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신안의 경우, 공영제가 도입되어 버스가 늘고 정시 운행을 하자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리질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친구들도 버스에서 만날 수 있으니 눈에 띄게 이용자가 늘었다. 이들이 읍내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지역 상권도 활성화됐다.
우리나라 버스 운영체계는 공영제, 준공영제, 민영제로 나뉜다. 준공영제와 민영제에도 지자체의 재정 지원금이 투입된다. ⓒ연합뉴스
버스공영제는 미래를 향한 ‘그린뉴딜’ 정책이기도 하다.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교통 분야의 녹색 정책이 주로 ‘전기차 보조금’에 치중되어 있는 현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기차 보조금도 결국은 승용차를 타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승용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버스공영제를 하자고 하면 예산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유류세 같은 세원을 대중교통 기금 등을 조성하는 데 쓸 수 있도록 재정구조를 바꿀 수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공공화되어 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수송분담률이 높아지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녹색 교통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
신안의 다음 목표는 전기버스 도입이다. 원래 신안군의 버스 75대는 모두 경유 버스였는데, 탄소 저감을 위해 2027년까지 관내 모든 공영버스를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다. 실제 작년에 6대, 올해에 6대를 전기차로 바꿨다. 내년에는 14대가 교체될 예정이다. 신안의 완전공영제는 지자체의 의지가 교통 인프라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주민들과 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녹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시사인 안산·신안/김다은 기자
숨이 턱 막힌다"..170m 허가 어떻게 나왔나
송도해안가 스카이라인 난개발 문제
얼마전, 송도해수욕장 바로 앞에, 48층 높이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건립안이 구청 승인을 받았다. 해안가에 어떻게 이런 건축허가가 가능한 건지 들여다봤더니,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편법이 판을 치고 있었다.
◀ 리포트 ▶해변에서 불과 20m 떨어진 부지.
최근 48층짜리 주상복합 건축 허가가 승인됐습니다. 연면적 9만9천905㎡. 10만㎡에서 딱 95㎡, 30평이 모자랍니다. 이 30평에, 건축허가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49층 높이로 계획됐습니다.연면적 10만 4천㎡로,환경영향평가 대상입니다.
그런데, 평가대상 기준인 10만㎡에서 딱 30평을 줄이자,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건물 1개 층을 포기하고, 환경영향평가를 면제받은 겁니다. 강풍과 태풍피해 영향, 일조권 등을 포함하는 환경영향평가를 몽땅 피해갔습니다.
[서구청 관계자]"10만㎡이상으로 하다가 연면적이 줄어들어서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닌 게 돼서..."
꼼수로 규제는 피해가면서, 건물높이는 마구 높여놨습니다.송도해수욕장 인근의 지구단위 계획상 준거높이는 80미터. 하지만, 해당 주상복합 최고 높이는 170m로 기준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인센티브와 각종 예외 규정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서구청은 개발면적이 3천㎡가 넘는다며 기준 높이의 30%를 더 높여줬고, 여기에 리모델링이 쉬운 구조라며 20%,또 건물에 녹색식물을 심는 조건으로 5%를 추가해 높이 170m 주상복합 건축허가를 내줬습니다. 해당부지 주변은 빌라와 중저층 아파트 등원주민들의 주거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인근주민]"공기도 맑고 전경도 너무 좋은 아파트였지만, 지금 48층 짜리 아파트가 바로 4m 띄우고 들어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서구청은 부산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서구청 관계자] "(9월) 12일자로 승인 났어요. (착공만 남은 건가요?) 네, 이제 착공하셔야죠."
이곳에서 300m 떨어진 69층 초고층 아파트는부산시가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해주며 특혜의혹을 빚었고, 그 바로 옆에는 높이 120m, 생활형숙박시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개발 예정지가 해수욕장 코앞이잖아요? 태풍 때면 피해를 입는 재난 취약지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 기 자 ▶네, 맞습니다. 지난해 태풍 당시에 개발 예정지 주변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습니다. 해변 모래와 쓰레기가 밀려와 도로를 완전히 뒤덮었고, 상가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이미 지어진 주상복합은 월파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주민들의 얘기 들어보시죠.
[주민]"창문이 흔들리는 느낌까지 받으면서 생활해오고 있는데, 만약에 앞에 48층짜리 아파트 2동이 들어서게 되면 그 사이에 빌딩풍이라는 건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앵 커 ▶네, 저도 취재당시 송도에 큰 피해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이런 곳일 수록 오히려 환경영향평가를 더 강화해야 하지 않나요?
◀ 기 자 ▶ 최초 개발계획 대로라면 이번 개발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면적 따라 평가대상이 결정되다 보니, 층수를 딱 한 층 줄이는 방식으로 손쉽게 이 규제를 피해갔던 건데요.
취재진이 확인한 최초 개발안에 대한 부산시 검토 내용을 보면요.
당시 "해안가 고층 건물로 인한 경관변화, 주변 일조권 침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또 "태풍, 강풍피해 조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업자는 침수 피해 대비시설을 짓겠다고 밝히고는 있는데, 정작 해운대 엘시티의 빌딩풍처럼, 이 고층 건물이 주변에 어떤 피해를 줄 지,아무런 조사는 이뤄지지 않게 된 셈입니다.
◀ 앵 커 ▶ 높이 규정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권고기준은 80m인데, 이 건물은 두 배가 넘는 170m잖아요.
"친환경으로 짓겠다" 이 한 마디면 높이 규제가 풀린다고 지적했는데, 이 정도면 있으나 마나한 규정 아닌가요?
◀ 기 자 ▶이 규정은 14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서구청은 개정보다는 오히려 고층 아파트나 생활형숙박시설 개발을 장려하는,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역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인데요.민간사업자의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사업수익 보장을 위한 인센티브 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공공재인 해안가 사유화를 허용하고, 대신 지역을 개발하겠다"라는 건데, 주상복합건물이 타지역이나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이게 관광산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앵 커 ▶송도에는 이미 완공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있죠. 국회의원 일가가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개발이 승인된 곳도 또 다른 국회의원이 3년전에 개발을 추진했던 곳 아닌가요?
◀ 기 자 ▶맞습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측 건설사가 이 땅에 주상복합 개발을 추진하려다가, 특혜 논란이 일자 2년 전 사업을 포기했고요. 지금은 또 다른 건설사인 N사가 이 땅을 사들여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N사와 이의원측, 어떤 관계인지 취재내용, 화면으로 준비했습니다.
◀ 리포트 3년전, 이주환 의원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서호도시개발이 추진했던 개발계획서입니다. 49층 건물 두 동을 짓는 안입니다. 한쪽엔 아파트, 다른 쪽엔 생활형 숙박시설을 넣겠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특혜 논란이 불거지면서 2년 뒤인 2021년, 이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서구청 관계자]"서호에서 2021년 1월에 취소했어요. (신청은 언제했는지 나오나요?) 2020년 9월에." 그런데 1년 만에, 또 다른 건설사인 N사가 다시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안을 보니, 건물 두 개 동 구조에 디자인까지, 이 의원측 안과 똑같습니다 층수만 49층에서 48층으로 낮춘 것 뿐입니다. N사 대표를 접촉해봤습니다. N사의 사업 계획안이 이 의원측 개발안을 그대로 승계한 거라고 인정했습니다.
[N사 대표] "서호에서 추진하던 그 개발안을 저희들이 그대로 잘 만들어보겠다고 그렇게 된거죠." N사는 이 의원 가족이 소유한 890억원 규모 땅을 회사설립 20여 일 만에 모두 사들였고, 그 다음 달, 일사천리로 사업계획서를 서구청에 제출했습니다. 취재 결과 N사 대표는 과거 이 의원 가족소유 건설사에서 ′대표′로 활동하던 사람입니다.
[N사 대표]"사장님 사장님이라 하는데 정식 직원이 아니고 그냥 업무 자문만 했습니다.
그냥 뭐 한 번씩 이야기 있으면 한 번씩 가고..."
국회의원 특혜논란이 일자 사업자 이름만 바꿔 개발을 다시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주민]"48층짜리가 들어서서 해수욕장을 자기들 공원화를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를 안 지어도 송도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다고 봅니다."
천 억원 가까운 땅 구입 자금을 신생회사가 어떻게 조달했냐는 질문에 대출과 신탁을 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의원측은 땅만 팔았을 뿐, N사가 추진 중인 개발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MBC 뉴스 김유나
환경오염물질 배출 규정 위반 1년 8개월간 ‘1492건’…솜방망이 처벌 논란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환경오염물질 배출 규정을 위반한 사업장이 1500건 가까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처분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위반 사업장이 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한강유역환경청 관할 지역에서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했다가 적발된 사업장이 600건으로 가장 많았고, 낙동강유역환경청 351건, 금강 유역 환경청 316건, 영산강 유역 환경청 225건 순이었다.
한강유역환경청 관할 지역에서는 골프장이 40건 이상 적발됐다. 주로 하수도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준을 지키지 않은 8곳이 모두 골프장이다. 세차장도 30건 이상 적발됐다. 주로 폐수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하거나, 폐수 배출시설 변경 신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수도권매립공사 골프장, 수자원공사 광주 지사, 지역난방공사 미래개발원 등 공기업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기업들도 위반 사업장 명단에 올랐다.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는 포스코케미칼, LG화학, 해태제과식품, 삼성전자 등이 대기 오염 방지시설 고장 방치 등 사유로 적발됐다. 금호타이어는 대기 오염 관련 시설을 고장 난 채로 방치해 과태료 처분을 받았는데 6개월 뒤 같은 이유로 또 적발됐다. 롯데케미칼도 대기오염물질 방지시설을 고장 난 채로 방치해 두 차례 적발됐다.
총 1492건의 적발 사례 중 1068건(71.6%)은 경고, 과태료, 개선명령 정도의 처분을 받았다. 과태료를 공개한 금강유역환경청의 자료를 보면 과태료는 1회당 평균 90만원 수준이다. 한강청 위반사업장 중에는 오염물질 배출 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39건이 모두 경고·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여기에는 ‘허위·거짓’ 작성 4건도 포함된다.
환경부는 “현행법상 대부분 1차 위반 행위는 상대적으로 경미해 ‘경고 처분’하고 있고 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위반행위는 고발, 폐쇄명령 등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수진 의원은 “경고나 과태료로 끝나니까, 사업장이 그냥 위반하는 것”이라며 “중대한 위반 행위는 고발, 폐쇄 명령 등 엄정히 법률을 집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향 강한들 기자
아덱스와 기후위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 개막식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서울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가 지난 17일 개막했다. 세계 9위 무기수출국의 ‘K방산’을 과시하는 자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새로운 역사”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행사를 위해 미군 전략폭격기 B-52H가 국내에 처음 착륙하기도 했다. 안보는 물론 경제에도 이롭다며 이 무기 전시회에 대한 찬양론 일색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 순간에도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군사활동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책임을 위한 과학자(SGR)의 스튜어트 파킨슨과 분쟁·환경 관측소(CEOBS)의 린제이 코트렐이 지난해 낸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군사활동에서 비롯된 탄소배출량은 전체의 약 5.5%를 차지한다. 군사 부문이 항공·해운·철도 부문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점이 놀랍다. 이 추계는 미국·유럽 등의 일부 공개된 군사 부문 탄소배출 수치를 근거로 추론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당시 미국 등의 반대로 탄소배출원 산정에서 군사 부문을 예외로 한 탓이다. 하지만 직관적으로도 군사활동이 엄청난 탄소배출원일 것임은 알 수 있다. 전략폭격기 연비는 승용차의 100분의 1 수준이고, 따라서 소비하는 연료도 엄청나다. 전략폭격기의 1시간 소비 연료량이 자동차 1대의 7년 사용량에 맞먹는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전쟁 변수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니 5.5%는 매우 보수적인 추정치일 것이다.
평화군축 연구활동가 정욱식씨는 최근 출간한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에서 기후위기는 생존 기반의 잠식을 가져와 국가 간 전쟁 빈도를 더 높인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와 군비경쟁이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가 인류 공통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문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신냉전에 어떤 식으로든 제동을 걸어야 하고, 이를 위해 미·중 협력의 복원이 절실하다. 군비 지출과 온실가스 배출에서 모두 10위권에 올라 있고, 신냉전 한복판에 있는 한국 같은 ‘글로벌 중추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경향
기후동행카드'는 기후정의 '카드'가 될 수 있을까
교통요금정책 넘어 '공공교통'으로 전환을
▲서울 연세로가 다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경 운영돼 승용차가 통행할 수 없게 됐다. 10월 1일부터 연세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되면서 버스와 16인승 이상 승합차, 긴급 차량, 자전거만 연세로 통행이 허용되며 택시는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제한적으로 다닐 수 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연세로에 버스가 통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가 월 6만5000원에 서울 내 버스, 지하철, 자전거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정기이용권 '기후동행카드' 도입을 발표했다. 버스 요금 인상 한 달 만이다. 내년 1월부터 5월까지 시범운영을 하고 이르면 내년 7월 본격 시행한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달 평균 대중교통 비용을 떠올리면서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월평균 교통비용이 6만5000원을 훌쩍 넘어서는 나는 반드시 쓰겠다는 쪽에 손을 들었고, 또 다른 동료는 현재 쓰는 알뜰교통카드와 견주어 볼 때 더 나을 게 없다며 사용에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서울 내 이동에만 한정하니 경기도민인 동료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요금 상품을 고르듯 한바탕 떠들고 나서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 카드의 도입 취지가 눈에 들어온다. 과연 기후동행카드라는 요금정책은 기후위기시대에 필요한 공공교통의 요구를 실현하는 카드가 될 수 있을까.
기후동행카드에 생기는 질문들
교통요금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은 중요하다. 이는 국제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지난해 6-8월 독일은 전국에서 운행하는 모든 대중교통을 9유로 티켓 한장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요금정책을 시범적으로 펼친 결과, 대중교통 이용률을 25% 높여 상당한 이산화탄소량을 감축하는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정의당이 발의한 월 '3만 원 프리패스'에서부터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온 '1만원 교통패스' 등 요금을 통한 대중교통 활성화 요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서울시뿐만 아니라 부산, 세종 등 지자체마다 저렴한 정기권 또는 무상교통 도입을 발표했고, 정부여당도 지하철·버스 통합 정기권인 '케이(K) 패스'를 도입하기로 결정해 그야말로 '대중교통' 요금정책은 우리 사회 뜨거운 의제로 급부상 중이다. 특히 서울시는 여기에 '기후'라는 분명한 주제어를 입혀 이목을 끌고 있다. 실제 서울 시내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수송 분야 배출량이 17%나 차지하기에 승용차 이용의 수요를 대중교통 수요로 전환하는 일은 시급하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연간 1만3000대 가량의 승용차 이용이 감소해 의미있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가 새로운 요금정책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를 성취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인상된 대중교통 요금을 기준으로 볼 때 기후동행카드로 요금의 혜택 폭이 크지 않은 점, 동일한 생활권이나 마찬가지인 경기도에서의 사용이 제한되는 점, 서울 시내에서도 기본료가 다른 광역버스에는 적용이 안 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중교통 이용률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이 전국의 교통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상회할 정도로 높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서울에서만 적용되는 교통요금체계로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 서울시가 대중교통 전용지구를 해제하고 남산에서 걷던 혼잡통행료도 폐지하는 등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카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보를 동시에 보인다는 점에서 기후동행카드의 목표가 명확하게 기후위기를 겨냥하는지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
공공교통, 교통요금을 낮추는 것 넘어
대중교통 요금은 저렴해질수록 이용자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승용차 이용 저감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요금 혜택을 통한 대중교통 활성화만으로 기후위기 대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거나 그 자체로 공공교통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버스의 운영 체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서울시 버스는 준공영제로 노선 설정권은 시에서 갖고 버스회사는 여기에 맞춰 운영하는 체계다. 과거 돈이 되는 노선에 버스회사들이 과도하게 경쟁하고 돈이 안 되는 노선은 폐지하며 이윤추구에만 매몰되는 버스 운영 폐해를 막고자 2004년 서울시가 처음 도입한 게 바로 준공영제다. 지자체는 버스회사의 운행 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배분하고, 운송수입금이 원가보다 적으면 이 부족분을 지자체 재정으로 보조해준다. 지자체의 통제와 관리가 필수적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22년 서울시에서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버스회사에 지급한 보조금이 8000억에 이른다. 이 총액이 어떻게 65개 버스회사에 분배되었는지 그 적절성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단적으로 단기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준공영제 버스업체를 인수해 수익을 얻고 투자자에게 거액의 배당금을 챙겨주는 최근의 흐름은 준공영제하에서 활성화되는 대중교통이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를 접게 한다. 이런 구조에서 기후동행카드를 통한 대중교통 활성화가 서울시의 기대만큼 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적자' 운영에 대한 청구서가 이용자에게 날아들 것이다.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버스회사는 노동자의 인건비를 삭감하거나 해고하며 안전운행에 드는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교통정책에 공공성을 높이자고 도입된 준공영제였지만 '공공'의 책임과 역할을 지우고, 버스회사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이 현실을 바로 잡을 공영제로의 전환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서울시에 공공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고 궁극적으로 '공공교통'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편 대중교통 활성화 대책으로 기후동행카드를 내세우는 서울시에 모두의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고민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단적으로 서울시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에 열차 운행 지연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 8억원 규모의 손해배상도 청구했지만, 해당 시위로 불편을 겪은 시민들에게는 운임을 환급해주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교통체계가 누구의 이동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시장은 지하철이 “1분이라도 늦으면 큰일”이라며 정시성을 지키는 게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라고 설파했지만, 그 책임 아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으며 1분이라도 지각하면 안 되는 착취적인 시스템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서울시가 물어준 환급금은 대중교통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를 위한 것일 수는 있어도, 권리로서 공공교통을 요구해온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이유다. 공공교통은 단순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을 넘어 교육, 여가, 돌봄, 관계망 구축과 같은 삶의 필수요소를 연결하고 조직한다는 점에서 권리다. 사회와 접속하고 연결될 권리가 지하철 문앞에서 끊긴다면, 그것은 공공교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단순히 이동수단의 확장이 아닌 삶을 확장하고 다르게 조직하기 위한 공공교통으로의 전환이 기후위기시대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목표이자 방향이다.
기후정의 '카드'가 되려면
공공교통을 향하는 기후위기 대응조치에 필요한 것은 요금만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수도권의 모든 교통망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개발되어온 것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투입이 수익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높은 수익성이 곧 대중교통 이용자의 전체 편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교통분야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기본 전제는 전체 이동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처럼 수도권 인구의 상당수가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는 데는 일자리나 교통망 등 거주지역 근처에 필요한 시스템이 없거나 부족한 이유가 절대적이다.
기후위기시대 공공교통의 목표가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더 많이 도로를 깔고 더 많이 버스를 배차하여 도로 위를 대중교통으로 혼잡하게 메우는 것일 수 없다. 공공교통에 대한 요구는 심야버스를 확충할 것이 아니라 밤낮없이 일하며 높은 노동 강도를 강제하는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시간 빈곤으로 인해 메뚜기처럼 이동하는 삶이나 오래 일하고 오래 이동해야 하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전환의 그림 속에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기후위기시대에 우리가 요구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은 더 저렴하게 더 많은 이동이 아니라,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덜 이동해도 지속가능한 삶이다. 이는 결국 삶의 공간을 재배치하며 연결망을 다시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럴 때 무제한 정기권이든 무상교통이든 교통요금정책이 탈 것만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기후 부정의한 세계를 정의로운 세계로 전환을 촉매하는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동행카드 넘어 그 전환을 요구하고 만들어가야 할 때다.
가원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프레시안
독소 뿜는 '지구 허파'의 재앙…아마존 분노케 한 인간의 실수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일산화탄소 등의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고 있다. 역사상 최악의 가뭄과 산불 등 기후 재앙이 낳은 결과다.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을 중심으로 고농도의 일산화탄소(붉은색 영역)가 관측된 모습. 유럽우주국
유럽우주국(ESA)이 ‘코페르니쿠스 센티넬-5P’ 위성으로 16~18일 일산화탄소(CO) 농도를 분석한 결과, 고농도의 일산화탄소가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을 중심으로 브라질과 페루, 파라과이 등 남미 일대로 퍼졌다.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무미의 기체로 혈액의 산소 수송을 방해할 수 있어 인체에 유독한 대기오염 물질이다. 대기 중에는 약 한 달 동안 머문다.
이렇게 많은 일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온 건 계속되는 산불로 인해 아마존 열대 우림 곳곳이 잿더미가 됐기 때문이다.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에서는 이번 건기 동안 2770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현지 언론은 이 수치가 역대 최고라고 전했다.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면 대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평소보다 크게 상승해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폭염과 가뭄이 브라질에서 파라과이까지 영향을 미치며 아마존 유역의 대부분을 덮치고 있다”며 “이는 산불을 일으키고 대기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잿빛으로 변한 아마존 도시…강은 메말랐다
브라질 마나우스 시내가 산불 연기로 인해 뿌옇게 변했다. AP=연합뉴스
아마존강 유역의 중심도시이자 브라질 아마조나스의 주도인 마나우스는 열대 우림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덮치면서 잿빛 도시로 변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마나우스는 지난주에 387㎍/m³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태국의 산업 중심지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쁜 수치였다.
아마존 네그루강 수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여객선이 멈춰선 모습. EPA=연합뉴
계속되는 가뭄으로 아마존 강의 수위도 121년 만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마나우스의 네그루강 수위는 18일을 기준으로 1902년 이후 가장 낮은 13.38m를 기록했다. 1700㎞에 이르는 네그루강은 아마존강을 형성하는 물줄기 중에서 가장 길다.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로를 통해 식료품과 원자재 등을 실어 나르던 선박들은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아마존 테페 호수에서는 수온이 39.1도까지 오르면서 153마리의 돌고래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기후변화·엘니뇨·화전…아마존 ‘삼중고’
위에서부터 2022년 10월 8일과 2023년 10월 3일에 촬영한 아마존 네그로강의 모습.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강줄기가 1년 전보다 눈에 띄게 메말랐다. NASA
무엇이 아마존 지역에 이런 재앙을 불러온 걸까. 기상학자들은 엘니뇨 현상과 기후변화가 맞물리면서 건기가 예년보다 더욱 혹독해진 게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북대서양 해역의 온난화로 인해 비구름의 흐름이 바뀌면서 극심한 가뭄을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과학부는 “엘니뇨 영향이 최고조로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12월까지 가뭄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필립 펀사이드 국립 아마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건기가 길어지고 폭염과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열대 우림이 돌이킬 수 없는 쇠퇴 지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의 책임도 크다. 보통 11월에 우기가 시작되기 전 아마존 곳곳에서는 나무를 자른 뒤 불을 지르는 불법 화전(火田)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농경지나 소나 말을 기르기 위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화전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산불이 열대우림 소멸 가속화”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서 불법 화전으로 인해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산불의 확산이 아마존 열대 우림의 소멸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등 공동연구팀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산불이 아마존 숲의 재성장을 막는 것으로 밝혀졌다. 열대 우림의 나무들은 쏟아진 비를 다시 대기로 운반해 새로운 비가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산불의 증가로 나무가 급격히 줄면 이런 아마존의 선순환 흐름이 손상돼 산림 손실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 열대 우림은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흡수하는 중요한 탄소흡수원의 역할을 해왔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커스틴 토니케는 “열대림이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넘지 않도록 지구 시스템을 안정된 경계 내에서 유지하고 기후 변화와 산림 벌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 앞두고 "생산 감축은 어렵다" 선 그은 환경부
자원순환의 날인 지난 9월 6일 경기도 수원시 자원순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입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국제협약 제정을 앞두고 정부가 공식 대응 방향을 공개했다. 제품 생산단계 재활용성 제고 및 다회용기 확대 등의 방안이 담겼지만, 협약의 핵심인 생산 감축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여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0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유엔 플라스틱 협약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다음 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리는 정부 간 협상회의를 앞두고 한국의 입장을 정한 것이다. 국제협약 제정을 위해 노력하되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 전담팀을 만들고, 재활용 강화 등 국내 이행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은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유통,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규제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다. 지난해 3월 열린 유엔환경총회(UNEA)에서는 내년 말까지 이 협약을 완성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협약이 체결된다면, 파리기후협정 이후 가장 의미있는 환경협약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4일 공개된 협약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재사용 목표 설정 △수명이 짧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단계적 퇴출 △정의로운 전환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핵심 쟁점은 초안 제1번 조항인 '신재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다. 신재 플라스틱은 석유 추출 원료로 만든 새 플라스틱으로, 재활용 기법으로 생산하는 재생 플라스틱과 구분된다. 각국 정부는 앞으로 전 세계 공통의 감축 목표를 정할지, 국가별 목표만 정할지, 또는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지를 두고 협상할 예정이다.
이날 정부가 밝힌 핵심 대응방향은 ‘신재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 설정 등 일률적인 규제조항 신설에는 신중한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생산량이 4위(1,270만 톤·에틸렌 기준)에 달하는 만큼 국내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률적인 생산량 규제보다는 각 나라별로 실정에 맞게 정하자는 의견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가별 감축 목표만 정할 경우 감축에 소극적인 국가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협약이 이행 강제성이 떨어져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국제플라스틱협약 우호국 연합(HAC)의 북유럽 회원국 각료회의는 ‘2040년까지2019년 대비 플라스틱 생산을 40% 줄인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라 우리 정부 입장보다 강화된 협약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결론이 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협약 내용에 따른 참여 여부 등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미국·일본 등 입장이 비슷한 국가와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신재 플라스틱 감축 목표가 소극적인 것은 물론, 재활용 방안으로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화학적 재활용'을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오염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미 환경보호청 등은 열분해가 플라스틱 소각의 다른 형태이며 재활용과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플라스틱 생산에 대한 통제 없이는 수명 주기 전반에 걸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한국은 2024년에 열릴 마지막 회의 개최국으로서 일부 기업의 이익창출이 아닌 우리의 삶과 건강을 위한 강력한 협약 체결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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