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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으로 강제이주한 아동, 지난 6년간 4310만 명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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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채굴에 쓰이는 거대한 양의 물... 고통받는 남미 사람들
클레멘테씨는 아르헨티나 북부에 위치한 살타주에 산다. 마을의 이장 역할을 맡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식수를 공급받는 우물을 확인하러 간다. 우물은 거의 말라있다. 덮개를 완전히 열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남아 있는 물은 손목을 겨우 적실 정도다. 지하수뿐만 아니라 마을 주변을 감고 흐르던 강물도 말라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던 수도꼭지를 끝까지 열어보지만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 마을의 공동 수도에서는 물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고 있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화면 캡쳐ⓒ Calma Cine
<리튬이라는 이름으로(En el nombre del litio)>(2021)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엘모레노(El Moreno) 마을은 하얀 흙먼지로 가득하다. 이곳은 최근 몇 년 동안 주민들이 먹을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원래 건조한 기후로 물이 풍부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지하수를 퍼올려 가축을 기르고 필요한 농사를 짓기에는 충분한 땅이었던 이곳이 이렇게까지 말라 갈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리튬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인 측면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클레멘테씨는 지난 10월 2일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을에서 가까운 소금사막 지역에서 리튬을 채굴하면서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지하수와 강물이 마르고 주민들이 먹을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리튬을 채굴하는 회사들은 주민들을 살던 집에서 내쫓기도 하고, 대대로 이어오던 소금 생산을 막기도 한다"라며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리튬 채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증언했다.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리튬은 이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전기차, 휴대폰, 드론 등 일상의 필수품인 전자기기에 널리 쓰이는 리튬. '화이트 석유' 혹은 '하얀 황금'이라고 불리는 이 리튬 때문에 이렇게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북반구에서 쓰일 전기 자동차에 들어갈 리튬을 생산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 남미에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필수재, 리튬 이온 배터리
▲ 바카노라 리튬사의 멕시코 소노라주 리튬 프로젝트 현장ⓒ 바카노라 리튬 소셜미디어 캡처 = 연합뉴스
리튬은 광물 속에, 염수 속에 비교적 많이 존재하는 금속 중 하나이다. 풍부한 양이 존재하지만 순수한 리튬을 생산하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염수를 증발시키고 농축해서 리튬을 분리하는 방식이 가장 접근성이 좋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선호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소금호수 우유니가 있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살타, 까타마르까 지역, 그리고 칠레 북쪽의 고산지대인 아타카마 사막은 리튬 함유량이 높은 염수를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 배터리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이 세 나라의 리튬 생산 지역을 '리튬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볼리비아에 2100만 톤, 아르헨티나에 1900만 톤, 칠레에 980만 톤의 리튬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기술과 투자금 부족으로 최대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생산량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 리튬의 60퍼센트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참고 기사) 멀지 않은 미래에 '리튬 트라이앵글' 지역은 세계 수요를 책임지는 리튬 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의 개발과 폭발적인 수요는 리튬 배터리의 생산에 박차를 가했고, 2020년 1톤당 6천 달러 수준이었던 리튬의 국제 가격은 2023년 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참고 기사).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남미로 집중되었고, 리튬이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도 볼리비아와 리튬 개발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리튬이 곧 고갈된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루머였을지 모르지만 리튬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들과 여러 나라들의 움직임은 총성과 미사일만 주고받지 않을 뿐 마치 전쟁처럼 치열해 보인다.
자원 패권국인 중국은 볼리비아의 리튬 개발권을 얻어냈고, 아르헨티나와 칠레에는 이미 미국, 호주, 일본 기업들이 진출해 리튬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포스코 홀딩스도 아르헨티나 살타 지역에서 리튬 생산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언론 <엘 파이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지역에도 50만 톤 가까이 리튬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니 그곳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참고 기사).
이렇게 리튬의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원이 많아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생산하고 높은 가격에 팔아서 나라의 빚도 갚고 사회 복지도 늘리고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듯이 자원 부국의 현실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다.
리튬 1톤 생산 위해 2백만 리터의 물 사용
아르헨티나 과학기술연구원(Conicet)에서 리튬 개발 문제를 오랜 시간 연구한 브루노 포르니요 박사는 지난 9월 25일 필자와의 화상통화에서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주변의 수자원이 완전히 말라버린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포르니요 박사는 "리튬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지하 소금층에서 염수를 뽑아내서 그것을 축구장 넓이 수천 배에 달하는 넓은 폰드(pond)에 가두고, 이 염수가 증발되면서 일정한 농도로 농축되면 그 농축액에서 리튬을 분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투입되는 여러 화학물질이 나중에 부산물로 남아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점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하에서 염수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지반에 구멍을 뚫게 되는데 염수가 추출된 곳으로 땅 속에 흐르는 담수가 이동하게 되고 결국 담수와 염수가 섞이면서 지하수의 균형이 깨진다는 점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리튬 생산지는 사막 기후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원래 물이 귀한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땅속에 고여있는 지하수까지 모두 끌어내 사용하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깨지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부족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리튬 생산에 도대체 얼마 큼의 물을 쓰이길래 이런 문제들을 야기하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언론 퍼필(Perfil)의 보도에 따르면 1톤의 리튬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백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에서 리튬을 생산하는 리벤트(Livent) 회사가 15일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은 그 지역 주민들이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과 같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물을 소비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참고 기사).
마실 물까지 부족해 다른 도시에서 식수를 공급받아야 하는 마을들이 늘어나고,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사람들은 가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국적 회사가 리튬 개발권을 따내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적당한 보상도 없이 쫓겨나기도 하고, 염호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 소금사막은 주민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채취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Calma Cine
남미 여행을 구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여행 일정에 넣어두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소금 사막이 우기가 되면 거대한 거울로 변한다. 물빛이 반사되면 하늘이 내려앉아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풍경이 연출되는 바로 그곳이다.
소금 사막과 염호는 관광지로서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포르니요 박사에 따르면 이곳은 "수억 년의 소금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으로 원시 미생물의 흔적이라고 알려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가 발견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무기질이 고농축 된 염호수는 지구의 물 순환과 기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아르헨티나의 소금사막 살라르그란데의 모습.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Calma Cine
에너지 전환,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 것에서 그친다면
인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발생을 줄여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었다. 현재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인류의 공동 과제를 수행 중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질량과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다는 장점 때문에 녹색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고, 특히 전기차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리튬 이온 배터리의 수요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따라 당연히 주원료인 리튬 생산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숙고해야할 다양한 이슈들을 안고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을 추출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환경을 파괴해야 한다면? 광산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화학물질이 물과 땅을 오염시키고,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쓰레기로 전락해 지구를 오염시킨다면?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탄소발자국이 발생한다면?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전기 자동차를 타는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을 잃게 된다면? 과연 그 전환을 지속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리튬의 이름으로>에 출연해 리튬 개발의 여러 문제를 드러냈던 클레멘테씨에 따르면 "리튬 개발을 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보유량 측정과 개발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갖가지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을 포섭하거나 복종시키고 있다"고 한다. 학교, 공원 등의 복지시설을 약속하거나 지역 리더들을 뇌물로 포섭하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클레멘테씨는 "현재 주민들은 여론이 분산되어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지도 못한 채" 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증언했다.
▲ 전통을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Calma Cine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금호수는 그들 자신과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은 리튬 채굴을 막기 위해 삶과 인생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소금호수에 구멍이 뚫리고 생물다양성이 무너진다면 그들 또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과 공존하며 겸손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진 이 가혹한 상황은 누구의 탓일까.
역사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이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혜택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여전히 에너지와 자원을 누리는 쪽은 북반구, 그것으로 인해 피 흘리는 쪽은 남반구다. 기후위기라는 급박한 과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는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 한다면 그것을 모두를 위한 희망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앞에 쉽지 않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오마이뉴스 이주영(chuu)
기후재난으로 강제이주한 아동, 지난 6년간 4310만 명 달해
유니세프, 기후재난 인한 강제이주 아동 수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 공개
▲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6년간 총 44개국에서 기후재난으로 인해 자국 내에서 강제이주한 아동의 수가 43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하루에 2만 명 꼴이다.ⓒ 유니세프 보고서 갈무리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6년간 총 44개국에서 기후재난으로 인해 자국 내에서 강제이주한 아동의 수가 43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하루에 2만 명 꼴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6일 "기후변화로 이재민이 된 아동들"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유니세프는 해당 보고서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홍수, 폭풍, 가뭄, 산불로 인해 거주지를 강제이주한 아동 수에 대한 최초의 전지구적 분석이며 향후 30년 동안의 예측을 살펴본다"고 소개했다.
필리핀·인도·중국만 합쳐도 2300만 명 넘는 아동 강제이주
강제이주한 아동이 가장 많은 국가는 필리핀으로 970만 명에 달했다. 인도와 중국이 각각 670만 명과 640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세 국가만 합해도 전체 강제이주 아동의 절반을 넘는다.
유니세프는 이들 국가들이 "극한 기후에 대한 노출, 대규모 아동 인구, 조기 경보 및 대피 역량에 대한 진전으로 인해 강제 이주한 아동의 절대적인 수가 많다"고 분석하며 "하지만 아동 인구 규모에 비해 도미니카, 바누아투 등 작은 섬나라의 아동이 폭풍의 피해를 많이 입었고 소말리아와 남수단의 아동이 홍수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도미니카와 바누아투는 폭풍으로 인해 각각 전체 아동의 75%, 25%가 강제이주했다. 소말리아와 남수단은 홍수로 인해 각각 전체 아동의 12%와 11%가 강제이주했다. 강제이주한 아동이 가장 많은 필리핀의 경우는 전체 아동의 23%가 강제이주했다.
유니세프는 전체 강제이주 아동 중 95%에 달하는 4090만 명의 아동이 홍수와 폭풍으로 인해 강제이주했다며 이는 더 나은 보고 체계와 증가한 선제적 대피의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가뭄으로 인해 강제이주한 아동은 130만 명으로 소말리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산불로 인해 강제이주한 아동은 81만 명으로 캐나다와 이스라엘, 미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30년 동안 홍수로만 1억 명 가까운 아동 강제이주 예상돼
유니세프는 "기후재난 발생이나 선제 대피의 결과로 강제이주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강제이주는 생명은 구할 수 있지만 많은 아동은 여전히 집에서 쫓겨나거나 장기간 대피하는 위험과 어려움에 직면한다"며 "특히 분쟁과 빈곤 등 이미 중복되는 위기에 직면해 있고, 추가적인 아동 이주에 대처할 수 있는 지역 역량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아동이 이주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유니세프는 "내부이재민모니터링센터(IDMC)가 개발한 재난이주위험모델을 사용해 현재 기후데이터를 기준으로 예측한 결과 향후 30년 동안 홍수로 인해 9600만 명의 아동이 강제이주할 것이며 같은 기간 동안 사이클론과 폭풍 해일로 인해서는 각각 1030만 명과 720만 명의 아동이 강제이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이 같은 예측 결과는 현재의 기후데이터가 기준인 만큼 "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재난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심해지면 실제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유니세프는 "국제 지도자들이 오는 11월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COP28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가운데, 유니세프는 정부, 후원자, 개발 파트너, 민간 부문이 앞으로 이재민이 될 위험에 처한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고 그들이 그들의 삶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문했다.
캐서린 러셀 유니세프 총재 또한 "강제이주한 아동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강제이주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두려움과 영향력이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러셀 총재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확대됨에 따라 기후 중심 운동도 확대돼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아동을 향한 도전에 맞설 지식과 도구를 갖추고 있음에도 너무나 느리게 행동하고 있다"며 자라나는 아동을 위해 기후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박성우(ahtclsth)
‘탄소장벽’ 커지는데 ‘한국형 CF100’ 웬말
EU 탄소국경조정제 확대 전망 속 미국 청정경쟁법 추진
수출 위해 탄소중립 인프라 시급한데 정부는 원전에 집중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각국이 탄소가격제 도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탄소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탄소세 부과에 시동을 걸었고, 미국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일각에선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탄소를 배출하는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 것이란 우려도 있다.
CBAM 적용 대상 확대 전망도
EU가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골자는 2026년 본격 시행에 앞서 대(對)EU 수출 품목의 탄소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EU에 수출하려는 기업들은 철·철강, 시멘트, 전기, 비료, 알루미늄, 수소 등 6개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산출해 분기별로 EU에 보고해야 한다. 올해 10~12월 배출량을 내년 1월 보고하는 식이다. 보고서는 각 회원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EU 역내 수입업자가 제출한다. 보고서에는 수입 상품의 수량과 탄소배출량, 신고자 신원 등과 같은 기본 정보부터 제조설비와 상품의 세부 정보까지 담는다. 기한을 지키지 않거나 보고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1t당 10~50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2025년 말까지는 전환기(준비기간)다. 하지만 2026년 1월 제도 시행 이후에는 전년도에 수출한 상품의 탄소배출량에 상응하는 배출권(CBAM 인증서)을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인증서 매입 가격은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근거를 둔다. 한국은 자체 탄소배출거래제인 K-ETS를 시행 중인데, 이에 따라 지불한 탄소 가격이 있다면 일부 차감받는다. 예컨대 A업체 수출상품의 탄소배출량에 따라 CBAM 인증서 구매 가격이 1t당 10만원으로 매겨지고, 해당 업체가 국내 탄소배출거래제에 따라 1t당 7000원을 냈다고 가정했을 때 수입업자는 나머지 9만3000원을 추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정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2026년 본격 시행 전까지 CBAM 시행 규칙이 13차례 정도 추가 발표될 것으로 보여 인증서 구매 가격을 포함한 일부 규정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CBAM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 9월 27일 발간한 <EU 탄소국경조정제 Q&A 북>에 따르면 EU는 유기화학품, 폴리머 등 탄소누출 위험이 있는 기타 제품으로 CBAM 적용 범위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강준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EU는 향후 CBAM 적용 대상 산업을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로 확대하고 밸류체인(가치사슬)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럴 경우 화석연료에 의한 전력으로 생산된 수출상품은 EU 시장에서 가격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탄소 무역장벽이 세워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상원이 발의한 청정경쟁법(CCA)은 화석연료, 석유정제, 석유화학, 비료, 수소 등 12개 수입품목에 1t당 55달러의 탄소가격을 매기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탄소가격제도가 없다. CCA는 미국 내 해당 산업 평균보다 탄소배출량이 높은 수입품 등에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인데, 탄소배출집약도(상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가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 기업에 경쟁 우위를 제공하려는 측면이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CBAM에서 알 수 있듯, 주요국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자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예상외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CBAM의 경우도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식으로 무역장벽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북 포항의 한 철강회사 제품창고에 열연코일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가격 경쟁력 약화 등 우려
CBAM이 향후 본격 시행되면 수출기업의 비용 부담 증가는 불가피해진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9월 26일 내놓은 ‘미리 보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시범 시행 기간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 EU 수출액 681억달러 중 CBAM 대상 품목의 수출액은 51억달러(7.5%)다. 이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9.3%(45억달러), 알루미늄이 10.6%(5억4000만달러)로 각각 집계됐다. 철강산업은 업종 특성상 제조·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석탄으로 인해 대규모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현지에 수입 관련 자회사 영업법인을 둘 여력이 없는 수출기업들은 기밀유출 피해가 우려된다. 정훈 연구위원은 “분기별로 수입업자에 탄소 배출 정보 등을 보고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배출 정보와 기반 시설 등과 같은 기밀을 노출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관할 당국에 직접 신고하는 것이 그나마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격 시행 전까지 일부 규정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훈 연구위원은 “EU 집행위의 CBAM 추진 과정을 보면, 2021년 7월 CBAM 초안이 나온 후 지난해 12월 집행위 합의가 있었고, 올 8월 17일에 CBAM 전환기간 동안 적용될 이행규칙이 채택됐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제도를 만든 EU 집행위 인사들도 정책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앞으로 규정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회원들이 지난 2021년 9월 24일 기후 파업의 날을 맞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붕괴를 막기 위해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생에너지 공급원 확대가 해법”
수출기업의 우려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탄소 배출 최소화다.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RE100과 같은 탄소중립 달성 인프라를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운동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주요국 중 최하위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현황 2023’을 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3.4%(2019년 기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꼴찌로, 평균(23.42%)의 7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원전 중심의 탄소중립 정책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CF100의 국제표준화를 추진 중이다. 카본프리 100%의 줄임말인 CF100은 재생에너지를 포함,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 수소 등 모든 에너지원을 의미한다. 에너지원에 원전이 포함된 것이 RE100과 가장 큰 차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전사업장에 100% 전력을 공급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내 기업들이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무탄소에너지의 국제 확산과 선진국과 개도국 간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열린 국제 플랫폼으로 ‘CF(카본프리·무탄소) 연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CF100 도입 취지 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인형 (사)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은 “유엔(UN)과 구글이 주도하는 CF100은 ‘24시간 7일 내내 무탄소에너지 실시간 수급(24/7 CFE)’이 핵심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지 못한 부분을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로 조달하는 게 가능하지만, CF100은 연중무휴 무탄소에너지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라는 점에서 RE100보다 더 엄격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기업 부담 가중을 이유로 이러한 원칙은 배제한 채 국제사회가 (RE100보다) 더 엄격한 적용의 대가로 끼워준 ‘원전’만 추가해 ‘한국형 CF100’이란 것을 만들고, 이를 국제표준화하겠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전형적인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했다.
당장 기업들의 호응도가 낮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6월 6일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응답한 10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2.4%가 ‘CF100 캠페인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전체의 68.6%는 CF100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CF100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엔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나 이행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서’(35%)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수출기업 경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지적이 있다. 이인형 전문위원은 “원전을 통해 생산한 제품을 글로벌 기업과 해외 소비자들이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글로벌 기업이나 주요국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결국엔 재생에너지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국제적 흐름에 맞춘 재생에너지 공급원 확대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기업 “돈이 없냐 땅이 없지” 지자체 “땅 줄게, RE100 해”
귀뚜라미 아산 공장의 지붕에 6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 아이솔라에너지 제공
“금 모으기 하는 심정으로 작은 재생에너지도 모아야 하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RE100을 이행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경기도에 모여 있다 보니 집적화된 대규모 단지도 필요하다. 그래서 RE100 특구 지정이나 산업단지 RE100, 수상태양광 등을 준비하고 있다.”(경기도 관계자)
“도내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수출하려면 RE100을 달성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향후 수출이나 대기업 납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태양광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전해 시설 등으로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충청북도 관계자)
경제활성화, 일자리 해법으로 RE100에 주목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수출 장벽이 된 RE100을 성장의 기회로 삼고 기후위기에도 대응하자는 취지다. 가장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RE100을 준비하는 곳은 경기도다. 글로벌 RE100 기업과 협력업체가 모여 있는 도의 특성상 재생에너지 확보는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일자리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본사 소재지 기준으로 글로벌 RE100 기업 중 7개가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25%)하고 그 절반 이상을 산업부문에서 사용하는데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력 소비 대비 2.5%(전국 8.2%)에 불과하다.
RE100, 팔 걷어붙인 지자체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업투자 유치를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경기도는 지난 4월 24일 ‘경기RE100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산단 태양광을 중심으로 원전 6기 규모인 9GW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공 RE100’을 추진하고, 재생에너지가 도민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의 참여를 확대(도민 RE100)하기로 했다. 산업단지 RE100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집적단지를 조성하는 ‘기업 RE100’과 4차 산업과 재생에너지 융복합 모델을 만드는 ‘산업 RE100’도 추진한다.
도민 RE100은 시민이 투자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에너지 기회소득 마을’과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을 중심으로 만드는 에너지자립마을 혹은 전력자립가구가 핵심이다. 마을 주민들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마을시설과 공간을 찾아 협동조합(마을기업)을 만들어 운영하고, 발전수익을 마을발전기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김연지 경기도 에너지산업과 과장은 “에너지 기회소득 마을은 월 15만원 정도의 농촌 기본소득에 상응하는 기회 소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라면서 “경기도에서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이 15% 정도 되는데 이 지역에 에너지복지 성격의 에너지 자립마을을 조성해 공동체의 활력을 증진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돈이 없냐 땅이 없지” 지자체 “땅 줄게, RE100 해”
공공부지에도 도민과 기업의 참여로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방향을 택해 예산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지역 내 협동조합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한 사례로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야산은 과거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으로 활용되던 곳인데, 안정화 상태가 끝난 이곳을 ‘RE100’ 정원으로 바꾸면서 주차장과 산책로, 주변의 사면에 주민참여 형태로 6㎽ 규모의 태양광을 설치할 계획이다.
조항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경영지원부장은 “RE100을 이행해야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안 되고,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협동조합에 부지를 빌려주고, 협동조합은 주민의 출자를 받아 발전소를 설치하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RE100 이행 과정에서 주민참여 방안을 도출하는 공론화를 11월에 추진할 계획이다. 시화호에 100㎽ 규모의 수상태양광을 설치하는 방안도 여기서 논의된다.
영농형 태양광 선도모델도 만든다. 농업과 태양광 발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은 농촌 주민의 소득을 높여 농촌 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농지 10%에 영농형 태양광을 병행하면 7GW를 보급할 수 있다. 파주시 객현리 등 3곳에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설치한 영농형 태양광 시범단지가 있는데 이런 사업을 늘려갈 계획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좌초자산이 될 주유소를 태양광 발전과 소규모 연료전지로 전력을 생산·판매하고, 전기차 충전 서비스와 F&B 결합 인프라로 전환하는 ‘RE100 스테이션’ 사업도 준비 중이다. 주민참여 사업에서 만들어낸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필요기업에 제공하는 RE100 플랫폼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 확보한 재원은 다시 기후위기 대응 재원으로 활용한다.
RE100을 선언한 기업들은 지자체의 적극적 행보를 반기고 있다. 고석규 티센크루프머티리얼코리아 이사는 “우리가 쓰는 에너지가 그린에너지이길 원하는데 경기도엔 발전소가 많이 없어서 호남이나 경상도에서 끌어오고 있다. 열매는 수도권에서 누리고, 고통은 지방에서 지고 있다는 말이 와닿았는데, 공단 지붕 등 수도권의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게 장기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경기도 평택 포승공단에 있는 공장 지붕에 700㎾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준비하고 있다. 고 이사는 “(독일의) 그룹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30% 절감하려고 한다. 이행을 못 하면 우리의 핵심성과지표가 떨어지고, 그룹사의 신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 로드맵을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먼저 화석연료 사용부터 줄이려고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돈이 없냐, 땅이 없지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촘촘하게 세웠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남아 있다. 이격거리 규제다. 주택과 도로 등에서 100~500m 거리를 두라고 하니 태양광을 설치할 부지를 찾기 어렵다. 고재경 경기연구원 기후환경연구실장은 “요즘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부지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기업의 RE100 이행 애로사항을 조사해도 지자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부지발굴이라고 강력히 말한다. 공공부지를 발굴해 민간이 투자하기 쉽도록 규제를 개선하고 인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주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실장은 “중앙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아 기업이 답답해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가 기업의 대변자가 돼 경기도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 개선도 요구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태양광 모듈은 빛을 최대한 흡수해야 성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반사방지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반사율(5.03~6.04)은 강화유리(7.48)보다 낮고, 눈부심의 정도인 휘도는 창호 유리의 15분의 1 수준으로 낮다. 태양광 모듈에는 직류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전자파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국내 설치되는 태양광 모듈은 모두 크롬, 카드뮴 등 유해 중금속이 포함되지 않은 결정질 실리콘계 모듈이라 중금속 문제도 염려할 수준이 아니다.
지난 9월 13일 열린 경기도-시·군 정책협력위원회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신상진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성남시장) 등 31개 시군 단체장이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단계적 폐지 등을 합의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격거리 규제에 객관적인 근거는 없지만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프레임화 된 면도 있다. 김연지 과장은 “주차장에 캐노피(지붕)를 설치한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는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득이 될 것도 없는데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고 실장은 “기초지자체에 재생에너지 목표 할당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이 반대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응하려 해도 일부 지자체 외에는 한두명이 담당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설치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거나 갈등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엔 굉장히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이격거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도내 31개 시군 중 이격거리 규제가 있는 12개 시군과 이격거리 폐지에 합의했다. 이격거리를 산업부가 권고한 수준으로 개선하자는 취지다. 산업부는 올해 2월 이격거리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주거 지역은 100m 이내로 이격거리를 두되 가급적 폐지하고, 도로 이격거리는 없애자는 내용이다. 경기도는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하는 시군의 도비 보조금 지원사업 선정 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군이 새로 공영주차장을 건설할 때 재생에너지 설치 조건으로 최대 30%의 도비도 지원한다.
산업단지 태양광 단계적 의무화해야
기후 관련 국제 무역규제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산단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경기도는 지난 7월 산단 RE100 추진을 위해 공모를 거쳐 8개 민간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들은 4조원을 투입해 산단 지붕과 유휴부지 등에 2.8GW의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8개 투자사 중의 한 곳인 아이솔라에너지는 경기도 안산과 시흥시에서 약 30㎽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설치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업 진행을 통해 누수 문제 해결과 같은 지붕 보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제조업의 경우 탄소 배출권을 확보 등을 기대할 수 있어서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면서 “재생에너지 필요량, RE100 이행 가능 수준, 요구되는 탄소 감축량, 달성 목표연도 등을 설정하려면 기업의 에너지 효율 등급이나 에너지 사용량, 탄소배출량과 같은 수치들을 회계 기준에 따라 분석하고 진단하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단지는 태양광 설치 잠재력이 큰 곳이다. 이미 개발된 곳이라 환경 관련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적고, 계통을 연결해야 하는 문제도 없다. 경기도가 대규모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하기 가장 용이한 부지라고 보는 이유다. 다만 대규모 태양광 설치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사실상 PF가 어렵다. 금리를 더 높이는 요인은 태양광발전소의 철거 리스크다. 20년 이상 장기 발전을 하는 가정하에 수익을 계산해 PF를 일으키는데 설치한 지 7년 만에 철거된다면 남은 기간 수익을 회수할 수 없는 위험이 발생한다. 김 과장은 “이게 모두 태양광발전사업의 금리를 높이고, 태양광 원가를 높인다. 산단 태양광이 의무화된다면 이런 리스크는 없어진다. 그래서 정부와 국회에 법령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산업단지는 물론, 기존 산단에도 단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신규 산단에 재생에너지 공급률과 조달계획을 포함하도록 산업입지법을 개정하고, 기존 산단에는 태양광발전설비 설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할 수 있도록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기업이 공장을 팔 때 태양광발전소를 승계하도록 산집법 시행령도 바꿔야 한다. 지난 8월 이용선 의원이 태양광발전소 승계를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산업단지에 입주하려면 태양광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신호를 준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시화호수로 자전거 도로와 도로사면에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경기도는 자체 권한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설치를 유도하는 중이다. 신규 산단의 경우 산단 입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재생에너지 설치 산단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기존 산단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비용(약 2000만원)을 지원하고, 태양광 승계 업무도 지원한다. 김연지 과장은 “재생에너지 설치 계획과 설치율이 산단 계획에 포함되지 않으면 경기도에는 못 들어온다. 사실상 의무화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도는 투자사, 입주 기업이 상생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민간 투자사는 공장 지붕이나 주차장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서 나온 전력을 전력 시장(한전)이 아닌 RE100 수요 기업에 직접 판매한다. 재생에너지 구입 의무가 있는 발전사에 판다면 계통한계가격(SMP·가장 비싼 발전원인 LNG 발전단가)에 REC 가격을 더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RE100 기업에 팔면 더 적은 돈을 받게 된다. 국산 기자재 사용을 권장하는 것도 부담이다. 도는 태양광발전이 가능한 공공부지 개발권을 투자사에 제공하는 형태로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부지를 제공한 기업의 노후시설을 교체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사업도 지원한다. 경기도는 지난 9월 20일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약 1200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 기금의 일부를 여기에 활용한다.
산업단지에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전기요금 현실화도 필요하다. 낮은 산업요금을 적용받는데 굳이 태양광을 설치해 자가 소비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다. 박지혜 플랜 1.5 변호사는 “태양광의 손익분기점이 10년 정도로 많이 낮아졌는데 그조차 팔고 나갈 때 걸림돌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설치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장주나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나설 유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RE100 이행에서 중요한 변수는 지방의 정치권력 교체다. 일례로 경기 여주시는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태양광 자립마을 사업을 추진해 환경부 표창을 받을 정도로 성과를 냈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예산이 사라지고 담당 부서도 폐지됐다. 서울시도 오세훈 시장 취임 후 태양광 발전은 ‘금기어’가 됐다. RE100 이행은 정치나 이념이 아닌 경제의 문제, 전력 시장의 효율성 향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수도권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8% 수준으로 낮고, 더군다나 에너지 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더 낮다. 수요지인 수도권 인근에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부지가 싼 전남과 제주에 몰려서 오히려 계통부담을 키우고 있다. 많이 보급되지 않았는데도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할 정도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지자체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늦더위 길어진다 했더니…9월 평균 기온 ‘역대 최고’ 찍었다
9월 전국 평균기온 역대 1위, 22.6도 기록해
1940년부터 2023년까지 1991~2020년과 비교한 매년 9월 세계 평균 기온 차. 올해 9월은 평년 대비 0.93도 높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출처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
가을옷 꺼낼 일 없던 지난 9월, 전국 평균기온이 관측 이래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기상청은 지난 9월 전국 평균기온은 22.6도로 평년(20.5±0.3)보다 2.1도 높아 1973년 이래 9월 평균 기온 중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종전 1위는 1975년 9월(22.2도)로 48년 만에 1위 기록을 경신했다. 1973년은 기상 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돼 기상 기록 기준으로 삼는 해다.
기상청은 9월 늦더위의 원인으로 9월 상순 강한 햇볕과 중·하순 따뜻한 바람을 꼽았다. 9월 상순에는 대만 부근 해상에 열대저기압에 의한 대류 활동이 강했고, 그 북쪽으로 하강기류가 발달해 중국·우리나라·일본에 동서로 폭넓게 고기압이 발달했다. 고기압권의 영향 아래 강한 햇볕이 더해져 기온이 크게 오른 것이다. 이로 인해 올해 9월 상순은 일조시간 순위도 역대 1위를 갱신했는데, 총 81.7시간으로 2009년 9월 상순 일조시간(80.7시간)을 앞섰다. 9월4일에는 서울에서 88년 만에 열대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전 마지막 기록은 1935년 9월8일이다.
9월 중순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에 비해 동중국해상으로 확장하면서,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따뜻한 남서풍이 지속해서 불어오면서 기온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역대 최고급으로 더웠던 9월은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는 5일(현지시각), 9월 지구 평균 기온은 16.38도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최고기록인 2020년 9월과 비교해 0.5도 높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위스는 가장 더운 9월을 기록했으며 계절에 맞지 않은 높은 기온이 10월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고, 미국 국립 기상청은 지난달 25일 “천문학적으로 23일 가을이 시작됐지만, 미 서부, 중부, 플로리다 남서부에서는 26~32도의 높은 기온이 10월까지 지속되겠다”고 밝혔다.
늦더위가 이어진 9월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을 찾은 시민이 반려견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앞서 7월과 8월에도 역대 가장 더운 달을 기록했다. 기상학자들은 뜨거워진 바다가 이상고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올해 북태평양, 북대서양, 북극 지역 등 북반구 바다 대부분이 평년보다 기온이 높은 상태이다. 한쪽 바다 수온이 높으면 다른 한쪽은 낮아지기도 하는데, 올해는 북반구 해수면 온도가 전반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해수면 온도가 높을 경우 열이 계속 대기 중으로 공급되면서 대기 온도도 높아진다.
이에 대해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해수 온도 상승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상 고온 현상의) 한가지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 교수는 “이런 역대급 기온이 기록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하나는 인간 활동과 같은 외부적 요인, 또 하나는 지구 내부의 자연적인 변동성”이라며 “화석연료 사용 등 인간활동에 기인한 지구온난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올해는 특이하게 북태평양, 북대서양, 북극 지역까지 계속 양의 해수면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기후변화에 대한 10가지 거짓 신화 깨기
기후변화가 정치적 사기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현실이며, 현재 일어나고 있고, 화석 연료의 연소로 인해 발생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거짓 신화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후변화 거짓 신화는 화석 연료 회사와 그들의 정치적 동맹자, 그리고 현 상태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영속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광고, 싱크탱크 '연구', 로비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 대중, 정책 입안자, 언론을 혼란스럽게 하고 기후행동을 방해해 왔습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 이후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의 증가를 보여주는 킬링 곡선(keeling curve). ⓒ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다음은 이처럼 반복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10가지 오해입니다.
오해 1: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기후 과학자의 99% 이상이 인간 활동이 지구를 과열시키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설명: 기후변화만큼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진 과학적 이슈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적 합의는 압도적이고 지속적입니다. 이 기사에서 NASA의 기후 과학자인 케이트 마블은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보다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더 확실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오해 2: 기후변화는 정치적 사기다. 사실: 물리 법칙은 정치적 이념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과학 기관이 결론을 내린 과학적 사실입니다.
설명: 마이애미 시장 프란시스 수아레스(보수)부터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진보)에 이르기까지 이념을 초월한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행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중앙정부, 주정부, 지방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해 3: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알 수 있고, 실제로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통해 석탄과 기타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태우기 시작한 이래로 지구 온도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는 일정한 속도로 증가해 왔습니다. (출처: NASA)
설명: NASA, NOAA, 영국 기상청, 일본 기상청, 유럽 중기 기상 예보 센터(European Centre for Medium-Range Weather Forecasts)는 이런 온도 및 이산화탄소 수치 기록을 수집한 최고 수준의 과학 기관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오해 4: 기후는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사실: 지구의 기후는 이전에도 변화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250년 동안의 화석 연료 연소 덕분에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한 적은 없었습니다.
설명: 2016년 <네이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인간이 유발한 탄소 방출 속도는 "지난 6600만 년 동안 전례가 없는 수준"입니다.
오해 5: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사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이미 기후 변화를 막고 최악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선언한 바 있습니다. IPCC 종합 보고서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로 제한할 수 있는 5가지 주요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설명: 인류는 앞으로 수년 동안 오늘날의 더운 기온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지금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면 미래의 피해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기후 솔루션은 풍부하고 상식적이며 오늘날의 관행보다 경제적으로도 우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많은 정부와 기업이 친환경 에너지, 대중교통, 해안 복원력, 기후 스마트 농업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드로다운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 목록도 많이 있습니다.
오해 6: 석유 없이는 살 수 없다. 사실: 현대 사회가 하루아침에 석유를 끊을 수는 없지만, 태양열, 풍력 및 기타 재생 에너지원의 급격한 비용 하락과 급속한 확장은 우리가 원한다면 화석 연료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명: 건강한 경제와 건강한 환경은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은 화석 연료 회사와 기타 특수 이익 단체가 오랫동안 조장해 온 해로운 신화입니다.
오해 7: 중국은 어떤가? 다른 나라는 더 심각하다. 사실: 미국은 역사상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습니다. 중국은 최근 미국을 제치고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대기에서 중요한 것은 연간 배출량이 아니라 누적 배출량이며, 미국이 기후 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설명: 기후 변화는 정의상 글로벌 과제입니다. 모든 국가, 특히 미국과 중국과 같은 최대 배출국이 화석 연료를 빠르게 단계적으로 퇴출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해 8: 1.5℃의 기온 상승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실: 오늘날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약 1.2℃(화씨 2도) 높습니다. 이러한 기온 상승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날씨를 심화시켰습니다. 1.5도에 가까워질수록 영향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설명: 1.2℃의 온도 차이는 일반인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단지" 1.2℃의 온도 상승 이후 전 세계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영향을 살펴보세요.
오해 9: 인간, 식물, 동물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사실: 적응은 수억 년 동안 성공적인 종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식물, 동물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는 엄격한 제한이 있습니다. 설명: 오늘날의 급격한 기온 상승과 강수량 패턴의 변화는 이미 많은 종의 적응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 정책 플랫폼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오해 10: 아무도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다. 사실: 전 세계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점점 더 걱정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를 막는 방법을 알고 싶어합니다.
설명: 예일대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 따르면 미국인의 66%가 기후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걱정"하거나 "매우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퓨 리서치 센터에서 1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2%의 사람들이 기후 변화가 개인적으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어느 정도" 또는 "매우"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40세 미만의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더 많은 뉴스를 원한다고 합니다.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overing Climate Now)'는 영국 가디언지와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 기후위기 저널리즘 기구이다. 로이터, 블룸버그, CBS, PBS, 알자지라 등 전 세계 500여 개 매체사가 파트너사로 활동하며, 한국에서는 프레시안, TBS, 한겨레21, 동아사이언스, 조선사이언스, 뉴스트리 등이 파트너사로 활동한다. 편집자주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번역)
“기후위기 피해, 시간당 215억원…연평균 189조 깨졌다”
2000~2019년 연평균 189조원 피해 발생 추정
게티이미지뱅크
기후위기로 인해 지난 20년 동안 시간당 1600만달러(215억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란 노이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 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와 레베카 뉴먼 뉴질랜드 중앙은행 연구원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폭염·가뭄 등으로 발생한 인명 피해 및 재산 등 기타 자산 손실 등을 경제적 가치를 따졌을 때 연간 평균 1400억달러(189조원)의 피해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계산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지난달 29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20년 동안 12억명에 달했으며, 인명 피해에 따른 비용이 가장 큰 비중(63%)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폭풍(64%)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많은 기후 비용을 발생시켰으며, 폭염과 홍수·가뭄 피해에 따른 비용도 각각 16%, 10%였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후모델링 도구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이 실제로 발생한 특정 기상이변 현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계산해 정량화하고, 기상이변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비용을 결합해 추정치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노이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1400억달러라는 수치는 상당히 과소 평가한 것”이라며 “예컨대 유럽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데이터는 입수할 수 있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어난 폭염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지는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계산에 포함되지 못한 인명 피해나 경제적 피해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기후위기 관련 피해 지원 혹은 기후소송에서 손해를 산정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국가대표’ 금강송 붉은 신음…이젠 역부족인가
갈림길 선 한반도 소나무
재선충병과 기후 스트레스 탓
울진·삼척·경주·안동 등 확산세
전체의 25%…민족과 함께한 역사
‘소나무 소멸’ 실질적 대책 필요
경북 울진군 소광리 숲에서 빨갛게 죽어가는 금강소나무.
소나무가 위기다.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로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우선 소나무재선충병은 주요 산림 지역에서 대규모 죽음을 부르고 있다. 1988년 국내에 유입된 소나무재선충병은 이후 몇차례 고비를 겪으며 관리 가능한 통제가 기대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극심한 지역은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경북 포항·경주·안동과 경남 밀양 등은 대응 자체를 포기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확산세가 심각하다. 도로에서도 가을 단풍 든 활엽수처럼 죽어가는 소나무가 쉽게 관찰된다. 경북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고금산은 전체 산림의 70~80%가량을 죽은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잎이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은 소나무를 비롯해 잎이 붉게 타들어 죽어가는 소나무가 쉽게 보인다.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방제를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밀양과 안동도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대구시는 주택가나 도로에서 단풍 든 것 같은 감염목이 보인다. 남해안의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는 경남 거제·통영도 섬 전체에 죽어가는 소나무가 즐비하다. 국립공원공단이나 경상남도는 방제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을 현장에서 예찰(관찰과 기록)하고 방제를 수행하는 일선 기관에서도 ‘이제 역부족’이라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014년 전후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될 때는 국회가 나서서 대책을 주문하며 ‘극심 지역’에 많은 행정력이 동원돼 일시적으로 통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현재의 극심 지역은 소나무가 사라지는 현실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경북 봉화군 태백산에서 금강소나무가 집단 고사 중인 모습.
금강소나무, 재선충병 아닌데 죽어
병해충이 아닌 기후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소나무도 확인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소나무 숲으로 알려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금강소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10월1일 현재, 경북 울진군 소광리, 강원 삼척시 풍곡리, 경북 봉화군 석포리·고선리 등을 중심으로 금강소나무 고사목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백두대간과 낙동정맥(백두대간에서 분리돼 부산까지 이어진 산맥) 등의 생태축이 이어지는 금강소나무 최대 서식지다. 남한에서 원시림에 가까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장 양호한 상태로 하늘로 뻗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인 금강소나무는 경복궁과 남대문 등 국보 창건에도 사용됐다. 지금도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는 지름 1m에 키가 20m에 이르는 금강소나무가 1만㏊ 넘는 드넓은 숲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런 숲에서 적게는 3~5그루, 많게는 10~30그루까지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계속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낙동정맥을 중심으로 울진군 소광리, 삼척시 풍곡리 그리고 백두대간 자락인 봉화군 대현리·고선리 등이 대표적이다. 올여름에도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깊은 숲속에서 빨갛게 타들면서 죽어갔다.
고사 현상은 2015년 울진에서 시작돼 삼척과 봉화로 번지고 있다. 2020년부터는 백두대간으로 확산하기 시작해 2023년에는 태백산국립공원과 설악산국립공원 등 백두대간 생태축 곳곳으로 이어졌다. 국립공원공단에서도 공원 구역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공원 구역 경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금강소나무 집단 고사가 확인되고 있다. 금강소나무 고사목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소나무의 고사 원인을 기후위기로 인한 겨울철 건조와 가뭄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등의 금강소나무 관련 연구진은 기후위기에 의한 수분 부족이나 토양층에서 고사의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소나무는 병해충에 계속 시달리고 금강소나무는 기후 스트레스로 점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국내 산림의 약 25%가 소나무류라는 점이다. 죽어가는 소나무가 숲에서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킬지 관찰과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식물 군락으로 변해가는 자연 천이 과정처럼 소나무의 쇠퇴가 숲의 자정 능력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부작용과 재난의 양상을 보이며 사라질 수도 있다. 소나무가 죽어간 숲이 경사가 급하면 산사태 위험은 커진다. 고사목 지대에서 또 다른 생태계 교란이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경북 포항시 고금산에서 죽어가는 소나무 군락.
소나무 고사, 재난 위험 커져
소나무는 특히 재난에 취약하다. 산사태 발생도 소나무 숲에서 더 가능성이 크고 빈번하다. 산불도 소나무 숲이 관건이다. 소나무 숲이 아닌 활엽수림은 산불의 속도와 화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이제는 소나무를 잘 키우는 것보다 소나무로 인한 재난 방지가 더 중요하다. 소나무 쇠퇴의 충격이 감소할 수 있도록 산지 재난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의 산림 정책도 소나무 심기를 중단하고 쇠퇴하는 소나무를 적극적으로 살피고 충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소나무가 사라지는지 자세히 살피고 기록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라지는 소나무의 변화를 적극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백두대간, 국립공원, 산림보호구역 등 보호구역의 금강소나무의 종과 유전자를 영구히 보존하는 복원 노력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언급되는 나무다. 역사적으로 소나무는 한민족과 함께 생존했다. 문화유산인 모든 건축물은 모두 소나무로 지어졌다. 지금도 소나무는 ‘송이’라는 알짜배기 경제적 혜택을 산촌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제 소나무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 적응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 소나무의 쇠퇴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며, 본질은 기후위기에 의한 생물다양성 위기다. 이 길을 어떻게 헤쳐 가야 할지 무거운 질문이 던져진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대심도 도로로 정체 풀릴까” 의문… ‘유료 불만’ 해결도 과제[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부산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개통 후 동서고가로 약 7km 구간의 도로 기능 폐지가 예정돼 교통 정체 우려가 나온다. 지난 6일 오전 출근 시간대에 동서고가로 범내골램프에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뒤엉켰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동서고가로 사상~진양 구간의 철거 여부가 이슈가 되면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교통 문제다. 출퇴근 시간과 주말을 중심으로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는 이 고가도로를 철거해도 과연 차량 소통에 문제가 없겠냐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선 유료도로인 사상~해운대 고속도로(대심도 도로)가 개통하더라도 무료인 동서고가로를 그대로 이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여전히 나올 정도다.
지난 6일 오전 출근 시간대 혼잡을 빚고 있는 부산 동서고가로 범내골램프. 김종진 기자 kjj1761@
■왕복 6차로 고속도로가 대체
이르면 2030년 준공 예정인 사상~해운대 고속도로(총 22.8km) 건설의 전제 조건은 동서고가로 노선 중 사상~진양 구간(약 7km)의 도로 기능 폐지다. 대심도 도로와 중복되는 이 구간이 무료도로로 존치될 경우 유료도로의 수익성이 나오지 않아서다. 부산시 임경모 도시계획국장은 “대심도 도로와 겹치는 구간의 노선 폐지는 민간투자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대심도 도로 개통 후에도 동서고가로를 도로로 이용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동서고가로의 교통 정체가 만성화돼 있는 만큼 향후 개통될 대심도 도로만으로 원활한 차량 소통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상구에 직장을 둔 한 운전자는 “가뜩이나 BRT(간선급행버스체계) 노선이 생기면서 지상 도로의 차선이 줄어들었고, 신호 체계도 복잡해져 교통 체증이 심해졌다”며 “동서고가로가 없어지면 교통량을 분산할 대책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현재 동서고가로는 왕복 4차로이고, 대심도 도로는 구간에 따라 왕복 4~6차로로 계획돼 있다. 시 도로계획과 김정명 주무관은 “사상~진양 구간의 대심도 도로는 왕복 6차로로, 현재보다 편도 1차로씩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며 “차량 속도 역시 동서고가로는 시속 70km 정도로 제한되지만, 대심도 도로는 말 그대로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시속 100km까지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주무관은 또 “해운대에서부터 대심도 도로를 바로 이용하는 차량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시내 차량 흐름도 개선될 것”이라며 “광안대교나 황령터널 정체도 지금보다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동서고가로를 화물차나 버스 같은 대형차 전용도로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 도로계획과 측은 “사상~해운대 고속도로는 화물 물동량까지 고려해 전 차종이 다닐 수 있는 지하 고속도로 첫 사례로 건설된다”며 동서고가로의 대형차 전용도로 활용에 선을 그었다.
1992년 12월 개통 이후 17년 만인 2009년 8월 1일부터 무료화된 부산 동서고가로에서 2009년 8월 3일 오전 굴착기를 이용한 요금소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일보DB
무료도로이던 동서고가로가 유료도로인 대심도 도로로 대체되는 데 대한 시민 불만은 부산시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동아대 김회경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산은 유료도로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라며 “요금 징수가 종료되는 도로가 하나씩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유료도로가 건설돼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은 7km 구간은 어떻게
사상~진양 구간의 도로 기능 폐지 후 우암고가교를 포함한 나머지 7km 구간은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동서고가로의 잔여 구간을 대심도 도로에 접속시켜 사용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어디에 접속 구간을 둘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확정되지 않았다. 시는 올 2월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GS건설(주)컨소시엄(가칭 사상해운대고속도로(주))과의 협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통영향평가 역시 실시협약 체결 후 실시설계에 들어가야 진행되는 절차다.
부산 동서고가로 진양램프. 김종진 기자 kjj1761@
시민단체의 제안대로 동서고가로를 철거하지 않고 자전거 전용도로나 공원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당장 부산항 북항까지 이어지는 전 구간을 즐기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시가 우암고가교를 대체할 지하도로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자체 검토한 결과 9000억~1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부산항대교 바깥에 위치한 북항 부두의 운영 여부도 우암고가교 활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우암고가교를 포함한 동서고가로의 기능이 애초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에 있었던 만큼 북항 부두가 운영되는 한 항만물류 도로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부산항만공사 윤지현 국민소통부장은 “해양수산부의 ‘북항 중장기 운영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까지는 신선대와 신감만·감만 부두는 인트라 아시아 물량을 처리하는 부두 기능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향후 운영 방안은 확정된 것이 없는데, ‘2030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가 확정되면 55보급창 이전과 함께 북항 기능 재편도 탄력을 받지 않을까 관측된다”고 말했다.
부산 동서고가로 우암고가교 구간.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시도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행사장으로 예정된 북항 재개발지역 접근 도로망 개선사업 명목으로 우암고가교 대체도로 건설 비용에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역시 2030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어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여부에 따라 동서고가로 전체 구간의 활용 방안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시 민순기 도로계획과장은 “동서고가로를 뜯고 난 뒤에는 활용할 수 없게 되는 만큼 섣불리 철거 여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양한 시각으로 충분히 고민한 뒤 전체적으로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인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고가 안전 ‘양호’… “보행로·자전거도로로 무리 없어”
B등급… 내진 설계는 안 돼 있어
“공원화 검토할 만한 아이디어”
규모·수종 따라 추가 검토 필요
지난 6일 출근 시간대 부산 동서고가로 범내골램프.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동서고가로 중 도로 기능을 다한 사상~진양 약 7km 구간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안전 문제다. 부산시에 따르면 동서고가로의 안전등급은 B(양호)다. 2006년에 이어 2012년에도 안전등급 D(미흡)를 받아 한때 철거 논의가 진행됐던 서울역고가와 달리 기능이나 구조적 안전에 문제가 없는 상태다. 서울역고가는 이후 보수·보강과 안전시설 설치 등을 거쳐 2017년 ‘서울로7017’로 공원화된 바 있다.
부경대 이환우 지속가능공학부(토목공학전공) 교수는 “애초에 차량이 다니던 교량이고 B등급이면, 자전거도로나 보행로로 활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며 “부산에서도 수정터널 상부(감고개공원)라든지 공원화된 교량 사례가 많기 때문에 공원화 역시 검토해 볼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원화의 경우 공원 규모나 식재할 나무의 종류 등에 따라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잔디나 초본류는 흙을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지만, 소관목이나 대관목은 30~60cm의 토심 확보가 필요해 하중을 고려한 구조 검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서울역고가를 2017년 공원화 한 '서울로7017'. 이자영 기자
동서고가로가 내진설계 의무화 시점인 1996년 이전에 건설됐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동서고가로(사상~문현교차로)는 1995년, 우암고가교(문현교차로~감만사거리)는 1997년 준공됐다. 부산연구원 이원규 선임연구위원은 “동서고가로는 지은 지 오래돼 내진설계가 안 돼 있다”며 “보수해서 쓸 수는 있겠지만, 유지·관리비 부분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1998년 진행된 부산 동서고가로 안전진단 모습. 부산일보DB
관련법에 따라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교량도 내진성능을 검토해 보강하는 추세로, 현재 동서고가로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부산시와 전문가의 판단이다. 시는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동서고가로 램프구간 8곳의 교량받침 52곳을 교체하는 등 내진보강 공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환우 교수는 “동서고가로는 특히 내진보강 대상 1순위였던 만큼 안전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며 “시와 시민, 전문가가 여러 안을 검토해 합리적인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용도에 맞게 안전 부분은 보강해서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파장'알맹이' 없었던 런던총회…'신냉전 구도'
앵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해양 폐기물 투기' 금지를 논의하는 런던협약 당사국 총회가 지난주에 끝났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해양 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참석한 국가들 사이에서 공방이 있었는데,
[기자] 런던협약 총회는 이달 초인 지난 2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진행됐는데요. 정식 명칭은 국제해사기구(IMO) 주관 제45차 런던협약 및 제18차 런던의정서 총회입니다. 우리 시각으로 지난 5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 진행된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에 관한 사항'(Matters related to the management of radioactive waste) 세션에서 오염수 관련 발언들이 나왔습니다.
지난 1975년 발효된 런던협약은 비행기와 선박, 그 밖의 해양 구조물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보호하자는 취지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오염수 처리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은 오염수 해양 방류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 때문에 런던협약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2019년부터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 측은 오염수 방류가 결국 '해양 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총회에서 논의하자는 반면 일본 측은 아니라고 반박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핵심 쟁점인 '해양 투기' 여부에 대해선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 알프스(ALPS)라는 처리 설비를 거쳐서 해저 터널에 설치한 파이프 라인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바다에 '투기'하는 게 아니라 해저 '파이프 라인'으로 방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IMO 법률국은 당사국들 간 갈등이 고조되자, 해양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not certain)"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앵커] IMO 쪽은 발을 뺀 것처럼 보이네요.
[기자] 사실상 그렇게 해석됩니다. 다만 참석 당사국들 사이에 합의를 통해 총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IMO 입장에선 특정 주장에 무게를 두지 않고, 총회에 참석하는 국가들 간 합의에 맡긴 거죠.
[앵커] 이번 총회에서 우리 정부 입장은 구체적으로 어땠나요?
[기자] 해수부에 따르면 이번 총회에서 우리 측은 모든 당사국들이 런던의정서 2조와 3조1항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은 오염수 처리와 방류를 해양 환경 보호 기준에서 요구하는 대로 안전하게 할 것을 요청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런던의정서 2조에는 해양환경 보호 의무 등 규정이 있는데 원론적인 부분을 강조한 겁니다.
[앵커] 다른 나라들은 어떤 입장을 보였나요?
[기자]오염수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외교'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처럼 확연히 '신냉전 구도'로 입장이 갈렸습니다. 기존 미‧중 패권싸움 속에서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과거 공산진영에 속했거나 색채가 남은 북한, 중국, 러시아와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의 대립 구도가 명확한 상탭니다. 이번 총회에서 화상으로 참석한 중국 측은 "오염수가 정말 안전하다면 일본이 바다에 버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고, 러시아 측도 "런던협약 위반이라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미국 측은 "일본 원전 오염수 관련 적절한 국제 논의의 장이 IAEA라고 보고 런던협약·런던의정서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도 미국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앵커] 이런 애매한 상황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이번에 드러낸 입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있다고요?
[기자] 우리 정부는 오염수 방류 전부터 IAEA 보고서를 지지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면서 사실상 일본 측 주장을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번 총회에선 이전 총회 때와 달리 오염수의 해양 배출이 해양 환경과 생태계, 주변국 건강과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컷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냉각수 첫 해양방출 계획
“日오염수보다 방사능 크게 낮아” 지역사회 안전성 논란 불가피
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 해체과정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냉각수’ 처리를 위해 사상 첫 해양 방류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들끓었던 안전성 논란이 다시 고개 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바닷물 기준치로 희석하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10일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근거로 이같이 밝혔다.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해 39년만인 2017년 가동을 멈췄다. 한수원은 내년 6월 고리 1호기의 해체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승인 시점으로부터 8년 6개월 내 사용후핵연료 온도를 낮추는데 사용된 냉각수 처리를 시작한다.
방류수의 방사능 농도는 기준치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 안전성 논란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한수원으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기준 보다 훨씬 낮은 농도의 방사능 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박 의원은 “그렇다 해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이후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원호 기자 cho1ho@kookje.co.kr
엑스포 부산 랜드마크…케이블카 연결 ‘황령산전망대’ 2026년 준공
해발 510m… 엘시티 전망대보다 높아
내년 착공 목표 이달 중 건축·교통 심의
부산시 “자연환경 훼손 최소화할 계획”
부산 황령산 봉수전망대 조성사업이 내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2026년 준공 예정인 황령산 봉수전망대 높이는 해발 510m로 국내 최고 높이 건축물 2위인 해운대구 엘시티 전망대(411m)보다 높다. 황령산 봉수전망대 조감도. 대원플러스그룹 제공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개최지가 부산으로 결정되면 세계인에게 명함을 내밀 랜드마크는 어디가 될까. 광안대교와 해운대해수욕장, 부산롯데타워 등이 유력한 후보지만, 부산의 중심인 황령산 정상에 추진되는 ‘봉수전망대’ 도 대표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케이블카 건립 사업과 함께 내년 착공을 목표로 부산시 건축·교통 심의 등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9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황령산 봉수전망대 조성사업을 위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주민설명회를 오는 16일 부산진구청에서 연다. 시는 이를 토대로 낙동강유역환경청과 협의해 환경 보전 방안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시는 지난해 12월 첫 심의인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해 이번 달 중으로 건축·교통 통합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시행사인 대원플러스그룹은 나머지 관련 절차를 마친 뒤 이르면 내년 초 착공, 2026년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환경친화적 건축물 등으로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녹지는 최대한 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봉수전망대에는 다목적복합문화시설, 음식체험관 등이 들어선다. 고층부에는 전망대와 라운지 위주로 배치하고 저층부에는 복합문화예술공유센터 등과 함께 부산 노포식당이 복합된 공간이 마련된다. 황령산 봉수전망대 시설의 높이는 110m에 불과하지만, 427m의 황령산 정상부에 지어져 부산 최대 높이의 전망시설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봉수전망대 높이는 해발 510m로 국내 최대 높이 건축물 2위인 해운대 엘시티 전망대(411m)보다도 높다.
대원플러스그룹은 난개발 여론을 피하고자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을 실현하는 승효상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다. 사업자 측은 두 개의 지주로 구성된 전망대를 만들어, 지주 사이로 부산 전체 조망이 가능한 ‘풍경의 건축’을 실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망대와 황령산 사이 숲길을 조성하고 문화·체험 공간 등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즐길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전망대까지 연결하는 케이블카도 건설된다.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황령산 정상부까지 총 539m 거리다. 시점부인 전포동 황령산레포츠공원 인근에는 서면관광센터, 종점부에는 황령산관광센터가 지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봉수전망대까지 약 240m 거리는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당초 케이블카 종점부와 전망대를 바로 연결하는 방식도 고려했지만, 케이블카를 떠받치는 지주 설치 문제로 현재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 방식대로라면 케이블카를 받치는 지주는 4개만 설치하면 돼 환경 훼손이 줄어든다.
대원플러스그룹은 539m의 1단계 케이블카 설치 이후, 황령산관광센터에서 남구 스노우캐슬 인근까지 잇는 2단계 케이블카(2.4km)도 추진할 계획이다. 시는 단절된 부산의 동서 교통 축을 케이블카로 연결한 뒤 향후 광안리해수욕장까지 연결하는 케이블카 사업도 구상 중으로 알려졌다.
서울 남산타워의 한 해 방문자는 1052만 명 정도인데 황령산은 88만 명에 그친다. 대원플러스그룹은 황령산전망대와 케이블카를 통해 관광객 유치와 부산의 동과 서를 잇는 교통수단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대원플러스그룹 관계자는 “사업이 완료되면 동부산권의 관광 콘텐츠를 즐기다 서부산권으로 이동이 편하게 가능한 축이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kksh@busan.com)
불꽃축제의 이면...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이러다 다 죽는다
두 개의 전쟁과 불꽃놀이
▲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2023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 하늘이 불꽃으로 물들고 있다.ⓒ 연합뉴스
검은 하늘을 다채로운 빛과 형상으로 채우는 불꽃놀이는 참으로 아름답다. 어린 날의 나는 불꽃놀이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타던 불꽃이 하얀 연기가 되어 하늘에 흩어질 때쯤, 한 발의 폭죽이 더 남아있기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다. 지난 주말 여의도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에 백만여 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폭죽은 7세기 수나라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13세기 화약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으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불꽃놀이의 연원도 화약제조법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불꽃에서 시작되었다. 화약이 군사용으로 정교해져 온 것과 동시에 불꽃놀이도 마찬가지로 정교해져 온 것이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폭약과 화공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대기업 한화가 주최하는 연례행사다. 한화는 이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바쁜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2000년부터 20년이 넘도록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러하다. 시원한 가을, 밤하늘을 가득 수놓는 불꽃을 바라보는 것은 썩 괜찮은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대기업 한화가 정말 시민들의 일상에 기쁨을 주고자 이런 이벤트를 선사할까? 한화에게 이 축제의 다른 이름은 '불꽃프로모션'이다. 전 세계에 한화의 안전한 발사기술과 불꽃기술을 알리기에 매우 효과적인 홍보의 장인 것이다. 아름다운 불꽃으로 수놓아진 하늘을 보며 그 정교한 불꽃놀이의 실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정교한 화약, 정교한 폭약에 대한 호감도를 결합시키는 방식의 스텔스마케팅(숨김 광고)이라고 할 수 있다.
불꽃놀이는 폭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했다. 폭죽과 폭약의 불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폭죽의 불꽃은 하늘에서 전소하지만 폭약의 불꽃은 목표물에 부딪히며 연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사람이다. 국제법상 민간인을 목표로 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보통 포탄들은 주요 기반 시설을 목표물로 삼는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할 뿐 수많은 민간인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런 민간인들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라 불린다.
여의도에 운집한 사람들 위로 쏟아지는 불꽃이 폭죽의 불꽃이 아니라 폭약의 불꽃이라면 어떻게 될까? 장소가 여의도가 아니라는 것뿐, 세계 곳곳에서 폭약의 불꽃은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무력분쟁에서 폭약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과 한강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일상을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폭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불꽃놀이가 폭약이 초래하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은폐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너무 저항 없이 수용해 주는 것은 아닐까?
전쟁산업의 스텔스마케팅과 은폐된 기후악당들
▲ 2021년 10월 18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1'(서울 ADEX) 프레스데이 행사에 소총이 달린 드론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이런 효과적인 스텔스마케팅이 일어나는 또 다른 현장이 있다. 바로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3(이하 서울 아덱스)'이 그것이다. 스텔스마케팅이라고 하기에는 직접적인 무기들이 전시되는 노골적인 현장이지만 그 무기들이 사람을 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교묘하게 숨기고 '국방', '안보'와 같은 이름들로 위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꽤 적확하다.
이 무기박람회를 통해 과연 '안보'가 강화될까? 도대체 어떤 누구의 안보가 강화될까? 한 국가가 더 강력한 무기를 구비한다면, 그 국가와 긴장 관계에 있는 국가는 더욱 더 강력한 무기를 구비할 것이며, 이렇게 끊임없이 펼쳐지는 군비경쟁 속에 안보딜레마는 끝없이 계속된다. 이 안보의 딜레마가 무기회사들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매출 호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진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진영화는 바로 이 안보딜레마의 결과이다.
2023 서울 아덱스가 시작되면 수많은 사람이 그 무기를 보기 위해 모여든다.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듯, 거대한 금속 무기의 매끄러움에 매료되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 우리만 아니면 된다, 다른 나라의 누군가가 저 전투기에, 우리나라 기업이 수출한 폭약에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나만 아니면 되고 우리나라만 아니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는 초연결 되어있고, 모든 작용은 반작용을 가진다. 현 정부가 울려대는 전쟁의 북소리는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과 더불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개선시킬 소중한 기회들을 박탈하고 있다.
서울 아덱스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기후위기라고 말만 할 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고 그저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하며 공중을 곡예하는 거대한 전투기의 비효용과 비효율을 목격할 수 있고, 세련된 척, 멋있는 척하는 각종 무기들이 전쟁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그 전쟁에 대한 절실한 필요는 무기산업 종사자들의 수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전쟁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갖 탄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군대가 지구 전체 탄소배출량의 6.6%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불과하며 공식적인 수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군대도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를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당시 군사영역을 제외하도록 한 미국의 로비가 성공한 결과이다.
이렇게 군대와 무기산업은 기후위기를 비밀리에 악화시키고 있다. 죽음의 상인들은 곧 기후악당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이 개별적으로 선한 개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들이 무기산업을 통해 축적한 부는 모두 무고한 자들의 사체와 고혈을 짓밟고 선 결과이다.
두 개의 전쟁, STOP ADEX
▲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도시 가자시티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모습.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뒤 교전이 벌어져 양측에서 2천 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날 공습으로 300여 명이 사망했고 주말 사이 사망자가 천 명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백린탄을 투하하고 있다는 정황도 보도되었다. 폭약의 화염 속에 불타고 있는 가자지구의 사진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무력분쟁은 그래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 어떻게도 복구할 수 없는 상실, 그 상실과 함께 남겨진 자들의 고통, 복구 불가능한 피해와 폐허 말고 이 전쟁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류는 어째서 이 백해무익한 일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이 다시금 촉발되었다. 레바논도 이 전쟁에 합류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무력분쟁을 보면서 그러니 우리도 더 강한 무기를 준비하자고 말할 것인가? 이스라엘이 무기가 충분하지 않아 지금 이 상황이 벌어졌는가? 인간이 만들어 낸 재앙, 전쟁 하나 막지 못하는 인류가 대체 무슨 수로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것인가?
뜨거워지는 지구, 폭우와 폭염, 이 기후위기의 상황들이 진심으로 염려된다면, 내 자녀, 내 조카, 내 손주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전쟁의 북소리를 울려대는 현 정부에 동북아 무력분쟁 가능성에 대한 조기경보를 울리며, 전쟁이 더 이상 문제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을 만큼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장기적인 목표들과 함께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실천도 한 가지 소개한다. 바로 서울 아덱스 공동운영본부장, 국방부 장관과 방위사업청장에게 서울 아덱스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www.stopadex.org)을 보내는 것이다.
디스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다. 차가운 금속의 살인무기들을 '안전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고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는 무기산업의 스텔스마케팅이 펼쳐지는 현장, 죽음의 상인들이 모여 생명 운운하며 피 묻은 돈을 챙기는 서울 아덱스가 바로 그 디스토피아다.
이 눈앞의 디스토피아를 인식하고, 그 디스토피아를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지구 위의 모든 생명들과 연대하는 일이자 '나'에게 스스로 더 나은 내일을 선사하는 일이다. STOP ADEX, 살인무기전시회 아덱스를 중단하라.
아덱스저항행동(stopadex1)/ 오마이뉴스
지구온난화 직격탄 메탄 배출량 1위는 이곳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최고
화석연료 기업도 10위권 5곳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제공
2021년 한국은 메탄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20년과 비교해 30% 줄인다는 글로벌메탄서약(GMP)에 가입했다. 동일한 양을 기준으로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치명적 영향을 주는 가스다. 메탄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국내 기업과 지역은 어디일까?
9일 환경부가 진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메탄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은 폐기물 업체인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다. 약 137만1895톤(이산화탄소 환산량)의 메탄가스를 배출했다. 2020년 163만773톤, 2021년 154만4741톤이었다. 2021년 기준으로는 국내 메탄가스 배출량의 27.2% (상위 50대 기업 중 59.7%)가 이곳에서 나왔다. 매립시설 포집 시설 신규 설치와 유지 등 노력하고 있어 배출량은 소폭으로 줄고 있지만 여전히 그 양이 가장 많다.
보통 메탄 배출량은 농축산·폐기물·에너지 순서로 많이 발생한다. 가축이 사료를 먹고 소화하면서 내뿜는 가스나 음식물쓰레기, 기타 유기물 폐기물이 밀폐된 환경에서 부패할 때 메탄이 나온다. 실제 메탄 배출량 상위 10대 기업 중 폐기물 업체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포함해 4곳(네이처이앤티·유니큰·코엔텍), 에너지 기업이 5곳(경동·대한석탄공사·지에스칼텍스·에스케이에너지·에쓰오일)에 이른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난화에 같은 양 기준으로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지수화한 온난화지수(GWP) 기준으로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100년 기준 28배, 20년 기준으로는 80배가 높다. 이런 까닭에 같은 양을 감축할 경우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비용 대비 편익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탄 배출량 감축을 위해선 가축 사육 자체를 줄이거나 방귀가 나오지 않는 사료를 소에게 먹이거나, 음식물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사육·생활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메탄 감축이 좀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역별(광역자치단체 기준)로는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특별시가 54만5152톤으로 메탄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부산(39만3898톤)·대구(30만9288톤)·대전(11만4622톤), 광주(11만458만톤)·울산(9만65톤)이 뒤를 이었다. 1인당 배출량 기준으로는 대구(129.68㎏)와 부산(117.58㎏)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진성준 의원은 “시민들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메탄 배출량 1위인 것을 알 필요가 있고 메탄 배출원 10위 안 기업들은 사업장 관리를 집중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메탄 배출 현실과 감축 행동 계획을 포함한 전략을 수립하고 법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메탄 품은 LNG는 청정연료 아냐…태양광·풍력은 수입할 필요 없다”
“액화천연가스(LNG·엘엔지) 발전소에서 나오는 (매연 섞인) 불꽃 기둥을 매일 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엘엔지는 절대 청정연료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알 것입니다.”
제프리 저코비 텍사스환경캠페인(Texas Campaign for the Environment·TCE) 부대표는 지난 1일 서울 성수동 한 회의장에서 이뤄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엘엔지는 온실가스 중에서도 메탄을 다량 방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며 이렇게 말했다.
텍사스환경캠페인은 미국 텍사스주와 인근 루이지애나주에서 화석연료 산업의 확장을 반대하고 있는 풀뿌리 시민단체다. 저코비 부대표는 지난 6월19일부터 미국 엘엔지 산업의 주요 수요지인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을 돌며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엘엔지는 석탄, 석유 다음으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다. 엘엔지의 주 성분인 메탄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80배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엘엔지를 액화‘천연’가스로 부르며,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전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올해 40.2GW(기가와트) 수준인 석탄 발전량을 2036년 27.1GW로 줄이면서, 엘엔지 발전은 43.5GW에서 62.9GW로 늘려잡았다.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28기를 고스란히 엘엔지 발전소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충남과 경남 등에선 현재 엘엔지 수입 터미널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코비 부대표는 “30∼50년 동안이나 사용하려고 새로 짓는 엘엔지 인프라를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때까지 필요한) ‘브리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엘엔지 의존도를 낮추지 않고서는) 이런 방식으론 원하는 기후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주요 엘엔지 수입국 중 하나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이 쓴 ‘한-미 엘엔지 밸류체인 현황과 한국 공적 금융의 역할’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카타르에 이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엘엔지를 들여왔다. 특히 이 가운데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엘엔지 터미널에서 수출한 물량이 96%를 차지했는데, 이 수출 터미널에 지원된 한국 공적 금융은 2조4700억원에 달한다.
그는 지난해 6월 텍사스주 프리 포트 터미널 화재 사고를 언급하며 “당시 폭발사고로 엘엔지 수출이 이뤄지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축소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며 “미국 가스산업에 의존해 ‘에너지 안보’를 담보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공적 금융이 투입된) 엘엔지와 석유화학 산업은 다년간 환경을 파괴하면서 텍사스주 원주민,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희생양 삼아 발전해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코비 부대표는 이런 화석연료 산업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극심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7월 텍사스 폭염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2년 전 겨울에는 엄청난 한파로 전력망이 붕괴됐다. 폭풍우도 더 잦아지는 등 널뛰기하는 극한 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텍사스 주민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징검다리란 명분을 내세워 환경 파괴적인 엘엔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대신, 태양광과 풍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코비 부대표는 “태양과 바람은 수입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숲’ 행사…미래세대 어린이 직접 참여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APEC 나루공원에서 ‘영화의 숲’ 조성 행사가 열렸다. 안지현 인턴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APEC 나루공원에서 ‘영화의 숲’ 조성 행사를 열었다. 기후 위기 속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해 영화인들이 나무를 심는 행사다. 2020년 시작돼 올해로 4회째다.
부산시, (사)부산그린트러스트와 공동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부산 생명의 숲 이상용 이사장을 비롯해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 부산환경회의 유진철 대표 등이 함께했다.
이번 영화의 숲 조성 행사에서는 사정상 영화인들의 참여 대신 시민들이 대리 참석해 행사를기념했다. 영화의 숲은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조성됐다. 지난 3년 간 3명의 감독과 9명의 배우들이 취지에 공감해 참여한 바 있다.
올해는 미래세대인 5세 미만 어린이 10명이 참가해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그간 미래세대 몫으로 식재된 탄소중립 염원 나무가 있었지만 정작 미래세대의 참여가 없었다는 지적이 반영됐다.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APEC 나루공원에서 ‘영화의 숲’ 조성 행사가 열렸다. 안지현 인턴기자
행사 시작을 알리는 풍악이 울리자 지나가던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행사를 지켜봤다.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영화의 숲은 기후 재앙 시대, 위기에 대응하려는 영화인과 시민들의 실천 의지가 모여 이루어졌다”며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행사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이후 (사)부산그린트러스트와 부산환경회의 등 시민단체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가 실천해야 할 몇 가지 미션을 요구했다.
이들은 영화의전당 옥상 마감재의 태양광 교체와 함께 영화제에서 사용하는 모든 홍보물을 재생 가능하고 폐기 시 분해가 용이한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는 한편 플라스틱 사용 거부를 천명할 것을 제안했다. 또, 영화제 상영 관람객의 교통 이용을 대중교통으로 권장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영화제 관련 각종 배송과 물류에 탄소상쇄프로그램인 고그린(GOGREEN) 서비스를 이용할 것도 요구했다.
영화제 기간 사용하는 식음료를 친환경 제품 및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당해 상영 영화에서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담은 영화를 선정할 것도 요구했다.
이들은 “설정한 목표는 후퇴하고 탄소배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경고 수치를 넘어서고 있다” 며 “곧바로 실천해야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인 만큼 부산시와 영화제는 당장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SG성패, 데이터에 달렸다] 데이터 못갖춘 `그린워싱` 낙인땐 글로벌시장 퇴출 시간문제
유럽, 2018년 비재무지침 시행
적용범위 구체화… CSRD 적용
기업 규모에 비례 정보공개 강화
한국도 직간접적 영향 불가피
금융위, 하반기 ESG 기준 확정
"데이터 생성·관리 중요성 부상"
ESG 공시 데이터화가 급선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도이체방크의 자산운용 자회사인 DWS에 대해 2500만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ESG 투자'라며 자금을 모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그린워싱을 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ESG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요구에 따라 ESG 공시 제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ESG 관련정보가 재무제표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재무정보로 격상됐다는 의미다. 투명한 공개의 핵심 도구는 데이터다. ESG 정보는 비재무적 정보가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재무공시 기준이 국경과 상관없이 표준화 됨에 따라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이 가능해졌듯 ESG 등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가 표준화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 경영 정보에 대한 측정과 평가, 이를 활용한 투자, 대출, 보험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보다 지속 가능한 기업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갈수록 촘촘해지는 ESG 공시
세계 시장에서 기업의 ESG 정보 공시는 '자율'을 넘어 의무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기준을 만드는 속도도 결코 늦지 않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1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최종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6월에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지속가능성 및 기후공시의 글로벌 표준 최종안'을 발표했다. 7월에는 EU 집행위원회가 EU의 독자적인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인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의 최종안을 통과시켰다. 계획대로라면 SEC도 연내 기후 공시 규칙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곳은 EU다. EU는 지난 2018년부터 비재무보고지침(NFRD)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NFRD는 근로자 수 500명 이상 유럽 내 상장회사, 은행, 보험회사, 그외 공공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에 대해 환경 보호, 임직원의 사회적 책임과 처우, 인권 존중, 부패 방지 및 뇌물 수수, 이사회의 다양성(연령, 성별, 교육 및 직업적 배경)과 관련된 각종 정책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비재무' 대신 '지속가능성보고'라는 용어를 사용해 NFRD의 개정안인 CSRD를 만들었다. CSRD는 별도의 보고기준을 제정해 적용한다. 별도의 보고 기준은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이 개발했다. 이른바 '유럽연합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11월 28일 NFRD을 개정한 CSRD를 최종 승인했다.
CSRD는 올해 3월부터 시행됐다. 일단 법률(Regulation)이 아닌 지침(Directive)으로 EU 회원국에 대해 직접적인 구속력은 갖지 않는다. 다만 각 회원국은 18개월 이내에 자국에서 관련 법률을 제정할 의무를 지게된다.
CSRD에 의하면 1차 적용대상 기업은 2024년 활동사항에 대해 2025년부터 공시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며, 공시의무 대상 기업은 2029년까지 점차 확대된다.
CSRD 공시 의무는 2023년 현재 NFRD 공시의무에 해당하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은 2025년회계연도부터, NFRD 공시 의무에 해당하지 않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은 2026회계연도부터 부여된다. 상장 중소기업에는 2년간의 유예기간이 허용된다. 비EU 기업 중에도 EU 내 순매출이 1억5000만유로를 초과하는 기업은 2029회계연도부터 적용의 대상이 된다. 이로 인해 의무공시대상 기업은 기존 NFRD 적용 시 1만1600개사에서 CRSD 적용시 5만개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ESRS는 ISSB와 SEC 기준안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의 규범으로 공개됐던 초안과 달리 상당 부분이 완화됐다.결론적으로 정보공개 요건은 136개에서 84개, 정량 및 정성 데이터(data point)는 2161개에서 1144개로 간소화됐다.
ESRS는 2개의 공통 표준과 11개의 주제별 표준을 제안하고 있다. ESRS의 공통표준은 일반 원칙(general requirements)을 담은 ESRS1과 일반 공시(general disclosure)를 규정한 ESRS2로 구성됐다.
주제별 공시 기준은 기후변화와 오염 등의 기준을 다룬 환경, 근로자와 지역 사회 등을 다룬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요구사항을 11개로 구분해 다루고 있다.
◇국내 상황 글로벌 동향 파악하고 미리 준비해야
우리 기업의 시장이 세계인 만큼 공시 표준에 대해서는 미리 숙지하고 준비해야 한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은 "당장 유럽에 진출해 있거나 유럽 회사에 납품하는 한국기업은 오는 2027년부터 ESG 공시 의무가 부여된다"면서 "국내 기업들은 이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ESG 공시 제도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21년 1월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코스피 상장사 중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부터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2030년에는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이 ESG 공시제도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는 올해 하반기에 ESG 공시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결국 데이터화가 급선무
기업 입장에서는 수많은 ESG 공시 표준안이 나오면서 이것들이 요구하는 의무적 공개 정보의 범위와 항목이 다 다르면서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위해 정보기술(IT )시스템에 기반해 ESG 데이터를 생성·관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투자 대상의 ESG 성과에 대해 독립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정회계법인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ESG 정보공시의 성숙도가 낮을수록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해 정보를 생성하는 반면, 성숙도가 높아질수록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특징을 보인다"면서 "ESG 데이터의 원천이 다양해지고 공시 요구사항이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작업에 기반하는 비정형화된 프로세스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렵다. 더욱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IT 시스템에 기반해 ESG 데이터를 생성·관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많은 IT 솔루션이 탄소 관리, 데이터 집계 및 관리, 공시 현황 모니터링 등 각 분야별로 개발되고 있다. 데이터 수집 자동화 및 연계, 데이터 측정 및 관리, 공시 대시보드 등을 고려한 ESG 정보공시의 IT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SG 공시 `PR 아닌 IR`… 온난화·리스크 노출 데이터 중요해져
IIRC 'IR 프레임워크' 발표 등
재무·비재무 통합보고법 제시
기업 투자판단에 ESG 큰 영향
ESG 공개여부로 등급 달라져
위험도 데이터 관리 중요성 ↑
대형 건설사인 A사. 비상장사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내면서 사회 공헌 활동을 유독 강조했다. 하천 청소,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운동, 연탄 배달, 그리고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까지…. 활동 횟수와 함께 보고서에 빼곡히 나열된 봉사 활동 내역을 보면 일견 대표이사부터 말단 직원까지 'ESG경영'으로 무장한 회사라는 느낌이 든다. 보고서 속 회사 비전, 경영이념 역시 ESG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게 전부다. 사회공헌 활동이 곧 ESG의 요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ESG 공시시대, 가장 중요한 도구로 여겨지는 숫자(데이터)는 경영실적과 사회공헌 활동 횟수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ESG 조직도 홍보(PR)팀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A사의 사례만은 아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물론, 일부 상장사에서 조차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IR영역으로 넘어온 ESG 데이터
◇ESG 공시, '빛 좋은 개살구' 피하려면 PR 아닌 IR돼야
전문가들은 ESG가 자칫 기업 PR의 영역에 그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ESG 공시 역시 '생색내기'식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IR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ESG는 여전히 기업의 환경 개선이나 사회적 책임 관련 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14명의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임된 백태영 ISSB 위원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지난 7월 개최한 ESG 공시기준 관련 웨비나에서 이를 지적했다. 백 위원은 "아직도 전통적인 관점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환경 개선을 얼마나 했느냐에 대한 회사의 성과를 홍보하는 PR 행태로 ESG 보고서를 많이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ISSB 기준에 따른 ESG 공시는 PR이 아닌 IR"이라고 강조했다.
IR 프레임 워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경영의 성과를 공개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지속하라는 요구가 확대되면서 기업의 보고서들도 지속가능보고서와 같이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는 유형으로 변화해왔다.
재무보고서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하나로 합친 형태의 통합보고 기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기업은 통합보고서를 발간해 기업의 실적과 현황에 대한 재무적 성과는 물론 ESG 등 비재무적 성과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임직원, 공급망, 지역사회, 입법기관, 규제당국, 정책 입안자 등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통합보고위원회(IIRC, International Integrated Reporting Council)는 2013년 IR 프레임워크를 발표하고 통합보고 작성시 고려사항과 원칙 세부 지침, 방법 등을 제시했다. IIRC에 따르면 국제통합 보고는 '기업의 전략, 지배구조, 성과, 외부환경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 기업의 단기, 중기, 장기 가치창출 과정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약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된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매출 250대 기업 중 76%가 사업보고서를 통해 재무 및 비재무정보를 통합 공시하고 있다. 비중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다만 IR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통합보고서를 발간하는 비율은 약 16% 수준에 그쳤다. 2020년 기준 국내 매출 100위 기업 중 79개사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IR 프레임워크를 적용·준수하는 기업은 10개사 남짓이다.
하지만 속도가 더디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투자라는 방향성 자체가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무디스, 모건스탠디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모닝스타 서스테이널리틱스 등은 글로벌에서 운용하는 2조7400억달러(한화 약 3650조원) 규모의 펀드에서 ESG 등급을 직·간접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06년 UN에서 ESG가 도입된 목적을 보면, ESG 투자는 책임있는 투자를 지향하며 사회에 무조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 기업을 발굴하는 것보다는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고 위험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비재무정보를 바탕으로 평가를 산정하고 등급이 높은 지수를 설정, 기초지수를 이기는 것이 결국 ESG 투자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형 연기금의 책임투자활동 범위는 위탁운용사까지 확대된 지 오래"라면서 "이들은 위탁운용사 선정, 평가 시 투자자산군의 ESG 운용 상황을 보고 있으며, 위탁자산군에 대해서는 다양한 책임투자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현재까지는 ESG 리스크를 잘 관리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컨트롤하는 기업보다는 많은 비재무 정보를 지속가능보고서에 공개하는 기업에 좋은 등급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 연구원은 "기업의 ESG 정보를 공개하는 의지에 따라서 등급의 높낮이가 나뉘게 되니 여유가 있는 시총 상위 기업일수록 조직을 잘 갖추고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면 상위등급을 부여 받는다"며 "이에 MSCI ESG 지수와 기초지수는 구성종목과 수익률이 비례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흐름은 계속 간다…답은 '데이터'에 있다
국내 기업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종민 한국IR협의회 IR지원팀장은 "ESG가 투자 판단의 척도로 자리잡으면서 과거 PR 영역에만 치중돼 있던 ESG가 최근 2~3년 전부터 IR 영역으로 넘어오는 추세"라면서 "ESG 공시도 시기의 문제일뿐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코스피 기업 대부분은 이미 ESG본부와 IR팀이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가져가고 있다"며 "ESG보고서에도 IR 관련 내용을 담고, 이를 다시 IR팀에 전달해 IR 영역에서도 ESG 정보가 활용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공시 체계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지만, ESG가 기업 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MSCI 전세계국가지수(ACWI)·미국·유럽의 기후변화 지수가 모두 벤치마크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MSCI 기후변화 유니버스(편입 후보군)는 무기 제작 회사나 심각한 ESG 논란에 노출된 회사나 화석연료 기업 등을 제외한다.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한투자증권이 MSCI ESG 국내 유니버스에서 환경 내 12가지 테마 포트폴리오에 대한 사후검증을 시도한 결과 기후변화 점수가 높거나, 탄소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기업이 시장 대비 초과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6월 말부터 이달 21일까지 탄소배출과 기후변화 포트폴리오는 코스피 누적 수익률을 각각 15.05%포인트(p), 15.01%p씩 웃돌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ESG 공시의 핵심은 '데이터'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MSCI ESG 리서치는 기후변화에 대한 지역별 물리적 위험을 계량화해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경제적 비용 예상 금액과 리스크 노출도를 백분위 점수로 제시하는 식이다. 이 연구원은 이어 "앞으로 ESG 공시 강화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 리스크를 공시하는 것도 점차 중요해질 전망"이라며 "지구 온난화 가속화와 경제적 피해 규모의 급증에 따라 물리적 위험에 대한 데이터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버스전용차로 공사 한창… 자전거는 찬밥 신세
창원시, 자전거·환경 도시 표방
S-BRT 추진하며 전용도로 없애
이용자 불편·주행 위험성 높아
시, 녹지공간에 새 길 확보키로
한 시민이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서 지워진 자전거 전용도로를 불편하게 달리고 있다.
자전거도시 경남 창원시에서 자전거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S-BRT(고급 간선급행버스체계)가 멀쩡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잠식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환경수도를 표방하며 대표정책으로 공영자전거 ‘누비자’를 자랑해온 창원시가 정작 필수 인프라를 뺏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창원시에 따르면 시는 2008년 ‘누비자’를 시행하며 25개 노선, 103.3km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보했다. 하루 평균 1만 1400여 명이 누비자를 몰고 이 도로를 달린다. 작년 한 해 누비자 이용 횟수도 412만 9817회에 이른다. 그만큼 자전거 활성화에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년 3월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S-BRT로 인해 자전거 이용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BRT는 도로 중앙에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어 버스의 정시성과 속도를 높이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중앙분리화단을 철거해 중앙버스차로를 확보하고, 좁아진 기존 차로 폭을 확보하려 가장자리쪽 자전거 전용도로 분리 화단을 없애고 있다. 이 때문에 의창구 도계광장에서 성산구 가음정사거리까지 9.3km 1차 사업 구간 내 자전거 전용도로는 사실상 차로가 돼 버렸다.
문제는 아직도 상당수 자전거가 이 길을 따라 주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전거도로를 표시하는 빨간색 도막형 바닥 포장이 여전히 도로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차로와 경계가 없는 탓에 버스나 트럭이 지날 때면 종종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안전을 위해선 인도를 달려야 할 판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자동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인도 주행은 금지된다. 위반 시 범칙금 3만 원이 부과된다. 여기에 일부 신호등과 교통섬도 사라지면서 횡단보도와 연결된 자전거도로는 완전히 끊어졌다. 게다가 하필 사라진 자전거도로가 모두 주거밀집지역이라 불편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자전거 라이딩이 취미라는 김정숙(43) 씨는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것에 동의한다만, 저희 (자전거)동호인들은 자전거도로를 뺏긴 기분이다”면서 “대체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를 마련하고 공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시는 도로 옆 녹지공간의 인도(4m)를 쪼개 자전거 길을 확보하기로 했다. △도계광장~서부경찰서(1.3km)는 보행자·자전거 겸용 △서부경찰서~상북사거리(1.4km)는 완충녹지 내 자전거 전용도로 신설 △상북사거리~은아아파트(4.1km)는 자전거·보행자 겸용 △은아아파트~장미공원(2.5km)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신설하기로 했다. 다만 차·자전거 도로 정비 공사도 BRT 공기와 맞추기로 했다. 새 자전거도로도 내년 3월에나 완벽한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다.
창원시 관계자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자전거 운행 불편에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면서 “빠른 시일 내 녹지공간에 자전거도로 안내판을 설치하고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글·사진=강대한 기자 kdh@busan.com
먹고 마시는 데 돈 펑펑… 국제관광포럼 초호화 잔치
8월 개최 국제행사 외국인은 5명
사실상 내국인 잔치 참석도 저조
175명 규모에 예산 2억 원 퍼부어
오찬 등 식비로만 2708만 원 지출
유사 규모 행사 15%만으로 치러
부산시의 국제관광도시 육성사업이 4년 차에 접어들어서도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보이질 않는다는 우려가 높다. 사진은 광안대교 전경. 부산일보DB
지역 관광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부산시의 ‘국제관광도시 육성사업’(부산일보 지난 5일 자 1·4면 보도)과 관련해 마련된 국제회의도 사실상 내국인만의 2억 원짜리 ‘초호화 잔치’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가 운영하는 다른 포럼과 비교해도 ‘혈세 낭비’가 명확해 사업 전반에 대한 집중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부산시에 따르면 ‘2023 국제관광도시포럼’이 지난 8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에서 열렸다. 이 포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였다. 시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추진 중인 ‘국제관광도시 육성사업’의 일환이었다. 시와 문체부가 주최하고, 부산관광마이스진흥회 주관으로 부산관광공사 등이 협업했다. 포럼 행사에는 지난해부터 2024년까지 3년간 매년 2억 원씩 총예산 6억 원이 투입된다.
사업계획서에는 포럼의 목적이 '국내외 기관과 단체의 정기적인 소통 체계 마련으로 급변하는 국제관광도시 육성 정책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됐다. 이날 포럼의 주제는 ‘케이(K)푸드 미식관광 활성화와 국제관광도시 부산 경쟁력 강화’로 '국제행사 전문 용역업체(PCO)를 통해 행사를 운영하겠다'며 이 포럼이 국제회의라는 걸 강조했다.
그러나 4세션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목표 인원 200명에 못 미친 175명이 참석했고, 외국인은 이 중 2.8%인 5명에 불과했다. 참가 외국인 중 2명은 기조연설자와 패널, 나머지 세 명은 일반인으로 확인됐다.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국제회의 조건이 ‘회의 참가자 100명 이상에 그중 외국인이 50명 이상’으로 규정됐다.
예산 사용 명세를 살펴보면 식비와 숙박비에만 총 3298만 원을 썼다. 구체적으로는 오찬과 다과, 리셉션 등 먹는 데에만 총 2708만 원을 사용했다. 오찬에는 140명이 참석했다. 그중 135명은 1인당 15만 원인 코스 요리를, 나머지 5명은 1인당 9만 6000원인 호텔 뷔페를 이용했다. 포럼 전날에 이뤄진 리셉션에는 50명이 참석해 총 375만 원을 썼다. 또 커피 한 잔에 1만 7400원씩 총 150명이 261만 원을 썼다. 나머지 예산은 행사 대행업체 용역비, 연사 초청 등 인건비, 회의장 임차료 등에 사용됐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 관광 전문가는 “국제관광도시 사업의 방향이나 계획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어 '수박 겉핥기식' 회의였다”며 “그런데도 부산관광공사의 한 발표자가 ‘예산이 많아 이런 좋은 곳에서 발표하니 발표할 맛이 난다’고 말할 때 어이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과도한 예산이 투입된 회의라는 점은 다른 비슷한 규모의 회의와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부산 최대 현안인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와 관련해 지난달 15일 열린 포럼의 예산은 국제관광도시포럼 예산의 15%에 불과한 시비 3000만 원이었다. 시와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주관한 이번 ‘제2회 부산엑스포 포럼’의 3개 세션에는 130명 이상 참석했다.
시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문체부 공모 사업으로 ‘국제관광도시 육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총예산 1391억 원이 투입되지만 전체 사업이 69개에 달하는 데다 정작 지역 관광업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백화점식 정책 나열’에 그친다는 비판이 높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국제관광도시 사업은 까도 까도 문제가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사업이다.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내년 국제관광도시포럼을 전면 재구조화해 알찬 회의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도쿄에서 만든 초콜릿에 세슘이? 日 가공식품 안전 '빨간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슘 샘플조사로 세슘 검출사례 199건…세슘검출 빈도 1위, 어린이들 많이 섭취하는 초콜릿 류
샘플 검사로 세슘 2차례 검출된 일본된장 제품… 검출 이후 국내로 수입되어 들어와
김영주 의원 "여러차례 세슘검출 이력 있는 식품은 소비자에 공개 강화하고, 재수입 시 세슘 검사 강화와 현지실사 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입 제품 중 세슘이 검출된 가공식품이 2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영주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일본산 가공식품 방사능 검출 현황(2011.3~2023.5)에 따르면 후쿠시마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생산한 식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
세슘이 가장 여러차례 검출된 제품은 초콜렛이었다. 세슘이 검출된 이력이 있는 제품은 지난 2012년과 2013년에 주로 수입됐는데 동일한 제조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
일본산 가공식품 중 초콜릿 류 세슘 검출 이력.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제공
다음으로 세슘이 자주 검출된 품목은 '녹차류'였다. 세슘 검출 이력이 있는 11개 품목 중 4건과 3건이 각각 동일한 제조업소 품목으로 확인됐다.
일본산 가공식품 중 녹차류 세슘 검출이력.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제공
그 외에도 횟감용으로 수입한 냉동방어‧훈제방어 4차례, 가다랑어 추출물‧가쓰오부시에서 6차례 등 수산가공식품에서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냉동방어는 원재료가 100% 수산물인 식품으로 사실상 수산물이다. 세슘이 검출된 수산가공품도 같은 제조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일본산 가공식품 중 수산가공품 세슘 검출이력.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제공
지난해에는 일본식 된장도 2차례 세슘 검출 이력이 확인됐다. 세슘 검출로 반송된 된장 600kg 모두 동일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해당 제품은 2019년부터 24차례에 걸쳐 총 4160kg이 국내에 수입됐는데, 세슘이 검출된 이후에도 9차례에 걸쳐 1550kg이 들어왔다.
세슘이 검출된 핫쵸미쇼 수입 현황.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제공
동일 제조업소에서 생산된 제품에서 세슘이 반복적으로 검출되는 경우 식약처는 현지에 조사관을 파견해 제조시설과 원료를 파악하는 등의 현지실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식약처는 필요시 해외 현지조사를 통해 위생관리 등이 미흡한 곳에 수입중단 조치를 내리고 있는 만큼, 세슘검출에 대해서도 엄격한 현지 조사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영주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식품에서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며 "일본산 된장과 수산가공품 등 일부 제품의 경우 여러차례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온라인직구 및 여행을 통해 식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사례도 있는 만큼 세슘이 2회 검출된 제품의 경우 국민들이 유의해서 소비할 수 있도록 공개를 강화해야 한다"며 "식품 섭취로 인한 내부피폭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만큼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된 이력이 있는 제품의 경우 검사하는 샘플의 양을 늘리거나 필요시 전수조사를 하는 등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조혜령 기자 tooderigir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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