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더 외로워진 세계인들, 이제 로봇과 대화”…‘대화로봇’ 시장 14조원 규모로 성장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챗봇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거리를 두게 됐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 고립되고, 더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챗봇(Chatbot, 대화로봇) 개발 경쟁이 전 세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특허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고 인공지능(AI)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챗봇 관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및 기업 간 특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챗봇은 ‘수다’를 뜻하는 ‘채터(chatter)’와 ‘로봇(robot)’을 합성한 것으로, 사람이 음성이나 문자로 질문하면 AI가 일상언어로 대화하듯 답변해주는 프로그램 또는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한 로봇을 말한다.
지식재산권 5대 강국(한국·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에 출원된 챗봇 관련 특허는 2011년을 기점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허청의 분석 결과,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5개 나라에 출원된 챗봇 관련 특허 건수는 1만766건으로 이전 10년간 출원 건수(5132건)의 2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2016년~2020년)의 출원 건수는 7024건으로 이전 5년간 출원 건수(3742건)의 약 2배로 늘어났다.
특허청 관계자는 “애플(Apple)이 2011년 출시한 시리(Siri)가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빅테크 기업 사이에서 챗봇 기술 개발 경쟁이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특히 2017년부터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형 챗봇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이후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챗복 관련 기술 개발 경쟁이 심화하는 데는 전 세계 챗봇 시장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것이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2020년 29억달러(약 3조8802억원) 수준인 세계 챗봇 시장 규모는 연평균 23.5%씩 성장해 2026년에는 105억달러(약 14조4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년 사이 5개 특허 강국에서 챗봇 관련 특허를 출원한 사람 및 기업을 국적별로 보면, 미국이 43.3%(4667건)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중국(19.9%, 2138건), 일본(17.4%, 1874건), 한국(13.4%, 1445건)이 이었다. 하지만 연평균 증가율은 중국(49.3%)과 한국(16.1%)이 1위와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5개 국가에 출원한 챗봇 관련 특허 건수를 기업별로 보면, 구글이 712건(6.6%)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IBM 583건(5.4%), 삼성 544건(5.1%) , 마이크로소프트 444건 (4.1%), 애플 384건(3.6%) 등이 이어갔다.
박재일 특허청 인공지능빅데이터심사과장은 “한국 기업의 챗봇 관련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지속해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경향 윤희일 선임기자
중소 제조업 평균일급 10만1116원···전년비 2.8%↑
올해 하반기 국내 중소 제조업체의 하루 평균 일급이 10만1000대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7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8월 기준) 중소제조업 직종별 임금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제조 생산직 129개 직종의 평균 일급은 10만111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10만697원)보다 0.4% 오른 것이다.
일급은 기본급과 통상적 수당을 합한 금액을 근로시간으로 나눈 뒤 하루 기준인 8시간을 곱한 것으로 국가를 상대로 계약할 때 노무비 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주요 직종별 부품 조립원의 조사 노임은 8만8920원으로 올 상반기 대비 0.6% 상승했다. 단순 노무종사원은 8만4618원으로 0.4%, 작업반장은 12만1072원으로 0.1% 올랐다.
일급이 가장 높은 직종은 화학공학품질관리사로 14만6603원이었다. 이어 패턴사(13만9706원), 전기기사(13만7598원), 금속재료품질관리사(13만5670원), 전기산업기사 (13만4143원)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리절단·재단원은 7만4494원으로 가장 낮았다.
공표된 조사노임은 2023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세부 직종별 조사 노임과 해설 등 조사 결과보고서는 중앙회 홈페이지(www.kbiz.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죽게 만든’ 권력에 통치의 정당성은 없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개인 또는 공동체 전체로 미루려는 정부·언론
모두의 책임이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 정부 책임 물어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진욱의 질문 이태원 참사를 전후해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는 행태를 두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전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공론장에서는 ‘왜 그날 그 시각에 이태원에 갔느냐’며 희생자를 탓하거나, 희생된 개인이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 ‘공동체의 책임’이란 논리도 횡행한다. 왜 우리는 이 미증유의 사회재난 앞에서 ‘개인’도 ‘모두’도 아닌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제1438호)
“통치란 어떤 지도자가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그 지도자의 권위 아래 개인들을 두는,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일생 전반에 걸쳐 그들을 인도하려는 활동을 의미한다.”(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이 정권은 ‘환멸’에 빚진 정권이다. 전임 정권의 무능과 오만이 빚어낸 집단적 절망감이 없었더라면 촛불에 쫓겨간 구세력이 5년 만에 정권을 되찾는 희비극적 시나리오는 결단코 현실화되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그들이 집권을 위해 한 일이 환멸이라는 대중의 정동 위에 올라탄 것 말고 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국가 경영의 원대한 비전과 정교한 통치 테크닉을 그들에게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망한 일이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의 비극이 폭로한 건 근대국가의 핵심 기능인 ‘살게 만드는’ 능력, 미셸 푸코식으로 이야기하면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과 그들이 하는 일에 책임을 지고, 개인의 삶 전반을 인도하는’ 통치 능력이 이 나라 집권세력엔 결핍돼 있다는, 참담하되 놀랍지 않은 현실이었다.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 살게 만드는 권력
푸코에 따르면 17~18세기를 전후해 서구에선 권력의 작동 방식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난다.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 대신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지배적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은 ‘칼의 권력’이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초판 표지에 등장한 주권자의 모습은 이 칼의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왕관을 쓴 주권자는 낮은 구릉들로 이뤄진 자신의 영토 위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왼손엔 왕홀을, 오른손엔 칼을 쥐고 정면을 응시한다. 군주의 몸을 이루는 건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신체이다.
리바이어던의 칼은 ‘죽게 만드는’ 권력의 징표다. 그는 삶을 빼앗는 권리, 죽일 수 있는 권리(생살여탈권)를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죽게 만드는 권력’으로 인민의 삶을 보호하는, 역설의 권력이다. 그것이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인 이유는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는 한 누가 어떻게 살든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며, 누군가를 ‘살게 만들’(살릴) 능력 자체가 애초부터 없는 탓이다.
이 권력은 근대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에 점차 자리를 내준다. 푸코는 말한다. “주권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뒀습니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제가 조절이라고 부르는 권력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뤄진 권력이 나타났습니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살게 만드는’ 권력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정보를 모으고 이들을 ‘인구’라는 집합 단위로 묶어 건강과 수명, 위생, 출생률 등을 증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푸코가 여기에 ‘생명관리권력’이란 이름을 붙였다. 생명관리권력의 뿌리는 기독교의 양치기 모델(사목 권력)이다. 그것은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권력이자 신도 집단의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기예를 구사하는 종교 권력이다. 반면 생명관리권력은 내세의 구원(영혼의 안식) 대신 현세의 구원(인구의 안전, 복지, 행복)을 추구한다. 물론 이것이 선하고 인간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생명관리권력의 진짜 목표는 인구의 규모와 질을 인위적으로 조절·통제해 한 사회가 보유한 경제적 생산 능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10월29일, 이 나라에 통치는 작동했는가
150명 넘는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한다. 참사가 일어난 그날 밤, 이 땅에 국가는 존재했는가, 통치는 작동했는가. 재난과 사고, 전염병 같은 우발 사태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은 인구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근대국가의 핵심 기능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재난과 우발 사태를 다루는 기술과 정책, 매뉴얼, 법규를 촘촘히 배치해두는 이유다.
하지만 참사 이후 드러난 건 구멍이 숭숭 뚫린 재난안전시스템, 재난에 대한 책임 추궁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공적 주체들의 한결같은 비루함이었다. 그들의 행태와 심리는 핼러윈데이 행사 관리가 자신들의 공무와 무관함을 강변하는 짧은 진술 안에 집약돼 있다.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안전관리 매뉴얼 자체가 없다.’ 이것은 ‘왜 사전에 충분한 안전관리 조처를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관할 용산구와 서울시,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공통된 답변이었다.
참사 이틀 뒤엔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이번 사고처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10월31일, 확대 주례회동) 대통령의 이 말은 이태원 행사의 관리 책임이 정부나 지자체엔 없었으니, 예방과 대처가 부실했던 것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정치적 지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참사 발생 사흘 뒤, 상황이 달라졌다. ‘압사 공포’를 호소하는 112신고 전화가 참사 4시간 전부터 현장 접수됐다는 사실, 경찰과 지자체가 아무런 비상 대응 조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심지어 참사가 발생하고 1시간이 훌쩍 넘어간 시각까지 경찰 수뇌부와 안전 주무부처의 장관은 관련 사실을 인지조차 못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여론은 충격과 분노로 들끓었다. 행정적·법적 책임을 다했다며 버티던 용산구청장과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정안전부 장관이 줄줄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후 정부 대응은 경찰과 지자체에 대한 법적·행정적 책임 추궁이 정부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맞춰졌다. 대통령이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과학에 기반한 강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11월10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간담회) 참사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책임은 현장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실무진의 부적절한 대처에 있었던 만큼 주무장관과 총리, 대통령에겐 행정 각료와 수반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는 것 이상의 반응은 기대하지 말라는 투였다.
개인화·윤리화, 국가 책임을 회피하는 두 가지 길
정치권력의 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하나가 정치적 정당성을 의심받는 경우다. 정통성 위기다. 하지만 심각한 선거부정을 저지르거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정권의 인기가 떨어져도 정치적 정당성을 문제 삼기란 쉽지 않다. 집권 뒤 위기는 대체로 ‘통치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원인은 부패와 무능이다.
정권의 무능은 주로 정책 실패를 통해 가시화된다. 집권 마지막 해까지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주택 전세·매매가 폭등, 일자리·소득 양극화가 대표적이다. 그 무능함에 유권자는 선거로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는 결국 국민이 촛불을 들어 탄핵한 세력에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줬다.
정책 실패가 ‘주기적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추궁받는 것과 달리 생명·안전과 직결된 국가기능이 오작동해 발생한 사회재난은 즉각적인 통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잘) 살게 만드는’ 데 실패한 정권은 선거를 기다려 책임을 묻지만,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을 방치해 누군가를 ‘죽게 만든’ 권력에 대해선 정치적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줄 국민이 많지 않은 탓이다.
집권세력으로선 국가기능 오작동이 통치 위기로 비화하는 상황만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여기엔 오작동 책임을 행정의 하부단위로 위양(委讓)하는 수준 이상의, 한층 근본적인 ‘프레임 전위(轉位)’가 필요하다. 국가의 개입 이전 불행한 사태를 촉발한 원인이 피해 당사자의 선택에 있는 것처럼 ‘개인화’하거나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문제를 ‘윤리화’하는 것이다.
이런 전위 메커니즘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희생자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언설이 주로 ‘위장된 솔직함’으로 자락을 깔고 들어가는 사적 대화와 익명의 온라인 세계에 횡행한다면, ‘누구의 잘못을 탓할 것 없는,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란 진술은 대체로 보수적 레거시 미디어의 공론장에서 환영받는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공동체적 책임’이다. 이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공범이다.”(11월3일 <중앙일보> ‘진중권 칼럼’)
국가의 오류와 실패를 하나하나 되짚어야
재난은 그 파괴성과 충격으로 인해 희생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당하는 개인에게는 갑작스럽고 돌발적인 경험이지만,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선 예측 가능했던 위험이 현실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책임을 개인에게 오롯이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할뿐더러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사회적 재난에는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 역시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국가’나 ‘권한을 가진 공적 주체’에 대한 책임 추궁의 부당함을 지지하는 논거로 채택되는 순간, 무책임을 방조하고 국가의 실패를 변론하는 보수적 국가주의의 언어로 타락하고 만다.
국가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할 정책 생산을 위임받은 주체로, 그것을 실행할 자원과 권력을 독점적으로 소유한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의 오류와 실패를 하나하나 되짚는 것부터 이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재난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정치적으로 공론화하는 것,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재난에 책임지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두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게 된다.
이세영 <한겨레> 기자
문과 침공' 부추기는 수능, 이대로 괜찮나
[아이들은 나의 스승] 통합 수능에 아른거리는 학생부 종합전형의 그림자
▲ "수능대박! 사랑한다! 응원한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미적분과 언어와 매체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갑절은 더 많아진 듯하다. 수능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택과목 변경에 관한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내년에 운영될 학급 및 시간표 편성 작업이 마무리되는 와중이라 담임교사와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옛말로 치면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겠다는 거다. '통합 수능'이 치러진 작년 이후 부쩍 늘어난 기현상이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사라진 데다 과목별 난이도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표준점수가 반영되다 보니 당장 선택과목에서 대입에서의 유불리를 따지게 된 것이다.
국어 영역의 선택과목은 화법과 작문에서 언어와 매체로 이동이 눈에 띄고, 수학 영역에서는 확률과 통계에서 미적분과 기하로의 변경 요구가 확연하다. 표준점수가 다른 선택과목보다 높다는 이유에서다. 작년의 경우 각각 2~3점 차이가 났는데, 올해는 더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상위권의 경우 국어 영역이, 중상위권의 경우 수학 영역이 대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절대평가로 전환된 후 영어 영역은 대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졌다. 절대평가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어, 어떻든 일렬로 줄 세우려면 국어와 수학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단 몇 점 차이로 명문대 합격 여부가 '인 서울'과 '지방대'로 갈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똑같이 100점을 받아도 선택과목별 표준점수의 차이로 피해를 겪게 되는 모순 아닌 모순 속에서, 특히 상위권일수록 민감하다. 어느새 그들에게 미적분과 언어와 매체는 선택과목이 아닌 '공통과목'이 됐다.
더욱 심해진 자연계의 문과침공
문과 침공. 작년 수능 이후 생겨난 신조어다.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이과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표준점수를 활용해 대학의 문과 계열로 방향으로 트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예컨대 연고대 이과 계열로 갈 바에야 비슷한 점수대의 서울대 문과 계열로 가겠다는 거다.
작년 수능을 치른 올해 서울대의 문과 계열 신입생의 경우, 둘 중 하나가 미적분과 기하 등 이과 선택과목을 이수한 아이들이다. 심지어 60%를 상회하는 대학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전국 모든 대학이 겪고 있는 공통적 현상이다.
문과 침공과 짝을 이뤄 회자되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통합 수능이 치러지면서 '수능(修能)'이 '수능(數能)'으로 변질됐다는 거다.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판별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수능이 오로지 수학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이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수학은 문과와 이과로의 진학을 정하는 기준이었다. 수학에 흥미가 없거나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경우 운명인 양 문과를 선택하곤 했다. 영어는 문이과 공통과목이고, 국어를 잘하면 문과, 수학을 좋아하면 이과를 선택하는 게 전가의 보도였다.
통합 수능 이후 공식은 깨졌다. 문과든 이과든 이젠 대학 진학의 열쇠는 수학이 쥐게 됐다. 수학의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 명문대는커녕 '인 서울' 대학 진학 꿈조차 꿀 수 없다. 대입에서 수학 영역을 반영하지 않는 일부 학과나 학령인구의 감소로 정원 채우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이른바 지잡대(지방 소재 대학을 비하하는 뜻의 속어)를 제외하곤 진학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문과와 이과라는 이분화한 교과 장벽을 허물고 각자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통합 수능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도입한 지 불과 두 해 만이다. 학벌 구조라는 몸통은 그대로 둔 채 대입 제도라는 꼬리만 흔들어서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먹고살 걱정이 별로 없는 의치한약(의대·치대·한의대·약대)을 제외하면 대학 간판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선택이에요. 각자도생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입시 전쟁터에서 흥미와 적성 운운하는 게 귀에 들어올 리 있겠어요? 말이 좋아 통합 수능이지, 학벌과 점수 경쟁만 더 치열해질 뿐이죠."
통합수능은 실패
아이들은 통합 수능이 실패로 귀결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한 아이는 자신의 친척 형의 사례를 들어 학벌은 최후의 기댈 언덕일 뿐, 최종 목적지는 '의치한약'이라고 말했다. 명문대 국문과에 학적을 두고 있지만 2년째 '반수'를 선택했다. 작년 '문과 침공'에 성공한 경우다.
대학에 진학한 제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학과와 전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대학별로 전과와 복수전공이 허용되는 분위기 탓도 있지만, 전공 공부보다 '별도의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이 많아서란다. 별도의 시험이란 로스쿨 시험과 반수를 뜻한다.
학과마다 로스쿨 대비반이 운영되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종 진로가 문과 계열은 로스쿨로, 이과 계열은 의치한약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 뒷맛이 개운찮다. 죄다 법조인과 의사, 약사를 꿈꾸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통합 수능의 부작용은 대입 이후에도 계속된다. 로스쿨과 의치한약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가닿기 위해서라도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이과는 두 곳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문과는 의치한약에 아예 갈 수 없다. 그나마 로스쿨 진학에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대학과 고등학교는 요지경 속이다. 의치한약을 목표로 반수하는 이과생, 이과생의 문과 침공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문과생, 재수하며 이과로 전향한 문과생, 재수생으로 인해 갈피를 못 잡는 재학생 등이 도미노처럼 연쇄적 혼란을 겪고 있다. 알다시피, 올해 수능 응시생 세 명 중 한 명은 재수생이었다.
통합 수능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학종은 수능의 폐해로 지적된 기출문제 풀이식 교실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온갖 편법이 난무하며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웠고,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통합 수능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통합 수능의 도입으로 '문송한(문과라서 죄송한)' 현실은 더욱 강화됐다. 이젠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가 성적순으로 구분되는 모양새가 됐다. 언제부턴가 문과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낙인찍혔다. 덩달아 이과 쏠림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통합 수능을 두고 문과를 이과에 흡수 통합시킨 수능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졸업 후 취업도 안 되는 문과 계열 학과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과정이라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학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당이다.
이 와중에 낼모레 학교에선 진로 탐색의 날 행사가 열린다.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학과와 직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문과 침공이 벌어지는 수능(數能) 시대에 이게 과연 무슨 효용이 있을지 자문해보게 된다
오마이뉴스 서부원(ernesto)
회원 수 부족•경영난에 시달리는 시민사회단체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 및 발전방안 토론회 개최
“시민사회단체 역량 키우고 지원 체계 갖춰야”
경남 지역 비영리 민간단체가 회원 수, 상근자 부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타개하려면 시민사회단체 특유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경남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지난 25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경남도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 및 발전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성정현 경남조사분석연구원 대표가 경남도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번 조사는 도내 602개 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25일 오후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경남도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 및 발전방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경남도공익활동지원센터
그 결과 회원 수가 '100명 이상~250명미만'이 39.7%로 가장 많았으며 ‘1000명 이상~5000명 미만'이 12.6%, ‘500명 이상~1000명 미만'이 10.3% 순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 기준을 보면 상시 구성원 수가 100인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단체가 전체 14.2%에 달했다.
비영리 민간단체 중 상근 활동자가 ‘없다’고 답한 곳은 전체 45.5%에 달했다. 상근 활동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1명(23.8%)이거나 2명(11.6%)인 비중이 많았고, 상근 활동자 3명 이상은 16.6%에 불과했다.
단체 운영과 활동에서 어려운 점로는 재정적 어려움(5.79점), 활동가 부족(4.61점), 시민 참여 부족(4.57점), 정부·지자체 비협조적 태도(4.16), 단체 운영 내부 갈등(3.11점), 단체 정체성 내부 갈등(2.92점) 등이 꼽혔다. 1점은 전혀 어렵지 않음, 4점은 보통, 7점은 가장 어려움으로 평가했다.
지원이 필요한 분야 응답률을 비교해보니 시민사회 공익활동 사업비 지원 확대가 63.5%로 1순위였다. 시민사회·공익활동 관련 연구·조사와 유용한 정보 제공 57.1%, 단체 사무공간 지원 36.5% 순이었다.
사회운동성, 지속가능성, 환경적응성으로 나눠 단체활동에 관한 인식도 측정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1점, 매우 그렇다 5점으로 점수를 매겼더니 ‘지속가능성’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고유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4.26점), 구성원 소통 원활(3.84점) 항목을 제외하고, 나머지 항목은 재정을 안정적으로 충당하고 있다(2.68점),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2.59점), 적정하게 상근자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2.55점), 원활하게 공익활동가를 충원하고 있다(2.54점)는 3점 이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날 비영리 민간단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토론회도 이어졌다. 이들은 시민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역량을 키우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정시식 경남시민주권연합 대표는 “시민사회단체는 자생력을 키우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순수성을 간직해야 한다”며 “시민참여를 높여 시대 변화에 따라 활동해야 시민사회단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풍(국민의힘·거제2) 경남도의원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이 아니어서 나름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갖춘 조직이 돼야 시민들에게 보완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동식 전 서울시 협치담당관은 “시민사회 관련 경남도 조례에 도지사 의무를 규정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살펴야 한다”며 “시민사회 관련 예산은 협치 예산이지 보조금 예산이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다솜 기자 (all@idomin.com)
검사 만난 뒤 ‘진술 오염’?…대장동 재판에 등장한 ‘김학의 판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1년여 재판을 받아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기존 진술을 뒤집자, 법조계에서는 해당 진술의 증명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대장동 2차 수사·재판의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진술 오염 가능성 때문이다.
‘오염된 진술’ 논란은 대장동 본류 사건(배임 혐의)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50억원 로비 의혹 재판에서 먼저 시작됐다. 검찰이 ‘수사 상황에 진척이 있다’며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증인으로 ‘다시 불러’ 신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이 둘은 석방 뒤 이 대표 쪽으로 책임을 돌리는 증언을 이어가며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이미 증인신문을 마친 남 변호사를 재차 증인으로 부르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존에 진술했던 부분에 대해 (당시엔) 법정에서 왜 진술을 안 했는지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공동 피고인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쪽 변호인도 남 변호사 등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하는데 강하게 반대했다. 전면 재수사로 연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남 변호사 등의 진술이 검사의 회유·압박 등으로 오염됐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남 변호사 등과 달리 기존 진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김씨 쪽 변호인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판례’로 추가 증인신문을 반대하고 있다. 사업가 최아무개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 재판에서, 최씨는 검찰 조사와 1심 때 진술을 뒤집고 항소심부터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김 전 차관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최씨는 항소심 증인신문에 앞서 검사와 따로 면담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대법원은 최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공판에서 증인신문할 사람을 검사가 미리 수사기관에 불러 면담하고, 이후 해당 증인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 검사가 회유·압박·답변 유도·암시 등으로 증인의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 담보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곽 전 의원 로비 의혹 사건에서 시작된 ‘오염된 진술’ 논란은 대장동 본류 사건으로도 번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혐의와 관련해 태도가 180도 바뀐 유동규 전 본부장 진술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 과정에서 김용·정진상 등 이재명 대표 최측근과 관련된 본인의 뒷돈 전달 혐의를 자백한 셈인데, 이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은 변호인 없이 혼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27일 “법정에서 부인하던 혐의를 변호사 입회 없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백하게 된 상황인데, (검사의 개입 없이) 자백이 이뤄졌는지 충분히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증인 사전 접촉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에 대한 오랜 논란이 대장동 재수사를 계기로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본다. 원칙적으로 검찰은 법정에서 진술할 증인을 만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공동 피고인을 증인으로 신문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욱·유동규 두 사람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으로 계속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라는 점에서 ‘단순 증인’과는 다른 처지에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오히려 이런 불리한 처지에서 진술이 바뀐 만큼 증언의 신빙성을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현직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전에 미리 만났다는 것은 일단 의심을 사는 행위이기 때문에 증인신문에 앞서 (검찰이 회유 및 압박은 없었다는) 설명을 어느 정도 해야 할 것이다. 공동 피고인 쪽에서 ‘왜 진술을 번복했는지’ ‘회유는 아닌지’ 적극적으로 물어볼 텐데 판사가 직접 듣고 신빙성을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판사는 “대체로 뇌물 공여자는 입을 닫고 있다가 나중에 털어놓는데 이게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관점에서 약점이 되어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증인 진술이 앞뒤가 맞는지, 객관적 자료 증거와 부합하는지 등에 비춰서 증명력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이XX들"... 그들은 사흘에 한 번 이상 털렸다
[윤석열 200일①] 검찰공화국 101일∼200일까지... 언론에 공개된 67개 주요 압수수색 일지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 후 퇴장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민주연구원 압수수색 등에 항의하여 불참했다.ⓒ 공동취재사진
'범죄와의 전쟁'.
앞서 윤석열 정부의 100일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대통령실은 물론 국무총리실, 법무부,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국가보훈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검사 출신 인사들이 포진했다. 행정부 입법 최종 관문인 법제처 수장, 심지어 입법부(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까지 검사 출신들이 차지했다. 이렇게 검찰공화국 인적 토대가 구축되고 나온 말이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유행했던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32년 후 들어선 검찰공화국 전쟁 상대는 '마약'으로 보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특히 '검수원복' 입법 과정에서 마약 수사 등이 민생 수사라고 강조했고, 검찰공화국 99일차(8월 16일)에 대검찰청에서는 전국 6대 지검 마약·조직범죄 전담 부장검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정확히 취임 100일을 넘긴 윤 대통령은 '검찰공화국' 첫 검찰총장으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명했다. 그 이후 전쟁 상대가 단지 '마약'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는 '야권'이었다. 왜, 6천 글자에 달하는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단 한 번도 '협조, 협치, 동반, 야당'과 같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는지, 정부 출범 후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는 왜 단 한 차례도 회동을 갖지 않는지, 대통령 취임 136일차(9월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터져 나온 '비속어 논란' 당시 대통령실이 내놓은 공식 해명이 왜 '이XX들 = 더불어민주당'일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케 만드는 일들이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100일 동안 일어났다.
[관련기사] 윤석열 정부 100일... '범죄와의 전쟁' (http://omn.kr/20bj6)
37:1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10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정권의 외교참사 정치탄압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 취임 101일차부터 200일차를 맞았던 11월 25일까지 <연합뉴스>에 기록된 검찰의 주요 압수수색 상황을 종합해봤다. 보도로 확인된 경우만, 100일 동안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은 67회였다. 그런데 그중 37회가 '이재명', 문재인 정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에 집중돼 있었다. 최소 사흘에 한 번 이상 검찰은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이뤄진 경우는 한 차례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압수수색이 가장 많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 반부패수사3부(강백신 부장검사), 공공수사2부(이상현 부장검사),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유민종 부장검사) 등 5개 부서가 19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관세청도 합세했다.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에 대한 압수수색을 북한 그림 밀반입 의혹과 관련해 2회 진행했다. 관세청 경우까지 포함하면 100일 동안 압수수색 21회가 '이재명'에게 집중됐다. 닷새에 한 번 꼴이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는 위례신도시 개발 의혹, 그리고 이재명 대표 측근인 김용·정진상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국회는 물론, 민주당사(민주연구원)까지 차례로 '털렸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야당 중앙당사에 압수수색이 진행된 사례로는 최초였다. 수원지검은 쌍방울그룹 비리에 더해 대북 송금 의혹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뇌물 의혹 등을 파헤치기 위해 6회,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성남FC 후원 의혹 수사를 위해 역시 6회 압수수색을 각각 벌였다.
그 다음으로 많았던 표적은 '문재인 정부'였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형사5부(최우영 부장검사),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서현욱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이병주 부장검사),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이준동 부장검사),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박경섭 부장검사)·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단장 유진승 부장검사) 등 서울 지역 검찰 조직이 총동원됐다.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8개 부서가 대통령기록관, 국방부, 통일부, 국토해양부, 방송통신위원회, 광복회 등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사건은 기사 하단 참조)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한 대전지검 경우까지 더하면 모두 14차례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민주당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은 '이정근·노웅래' 사건 관련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가 4회 진행했다. 여당 쪽에서는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창원지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1회 당했다.
압색, 압색, 또 압색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와 관련해 지자체장을 상대로 압수수색 실시가 확인된 경우는 오영훈 제주지사를 비롯 민주당 소속이 3명, 국민의힘 소속이 2명이었다. 경기도지사로 출마했던 강용석 변호사도 압수수색을 피하지 못했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가 지난 24일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그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올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조영달 전 후보는 선거 운동원에게 불법으로 금품을 준 혐의로 최근 압수수색 후 검찰에 구속됐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과 하윤수 부산시교육감도 공직선거법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배임·탈세·횡령·담합 등 혐의로 기업을 상대로 실시된 압수수색은 11회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대한 압수수색은 3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명종합건설 탈세 의혹과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진 외환 거래와 관련하여 우리은행이 집중적으로 '털렸다'. 검찰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국정원까지 나서 진행하고 있는 '수상한 외환 거래 수사' 규모는 17조 3186억원. '대북 송금'과의 관련성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사건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검찰의 압수수색은 최근에는 공안 분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특히 지난 9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내세워 강은주 4.3 민족통일학교 대표 등 통일운동 관계자 5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제주, 창원, 진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했다. 암 투병중이었던 강 대표는 이날 압수수색 도중 응급실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윤 대통령 취임 101일∼200일 사이 검찰이 진행했던 주요 압수수색 일지를 정리한 것이다. (날짜 - 주체 - 대상 - 사건)
[08월 18일] 서울지검 반부패수사2부 - 이정근 자택 등 - 불법정치자금 수수
[08월 19일] 대전지검 - 대통령기록관 -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08월 19일] 서울지검 공공수사3부 - 대통령기록관 - 탈북 어민 강제북송 의혹
[08월 22일] 서울지검 공공수사3부 - 대통령기록관 - 탈북 어민 강제북송 의혹
[08월 22일] 제주지검 - 제주도청 등 - 오영훈 지사 선거법 위반
[08월 22일] 전주지검 - 이스타항공 등 - 이스타항공 부정 채용
[08월 24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 - 신성식 검사장 - KBS 한동훈 오보 의혹
[08월 25일]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 - 산업통상자원부 유관단체 - 블랙리스트
[08월 26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 - 대통령기록관 - 탈북 어민 강제북송 의혹
[08월 26일] 수원지검 형사6부·공공수사부 - 쌍방울 -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08월 29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 - 서울구치소 등 - 우리은행 직원 횡령
[08월 29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 - 박은정 검사 자택 등 - 찍어내기 감찰 의혹
[08월 31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 - 호반건설 등 - 위례신도시 의혹
[09월 01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 - 미래에셋증권 등 - 위례신도시 의혹
[09월 01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 대통령기록관 - 서해 공무원 피격
[09월 06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 - 경기도청 - 이재명 허위발언 혐의
[09월 07일] 수원지검 형사6부 - 경기도청 -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뇌물 혐의
[09월 07일] 대전지검 - 천안시청 - 박상돈 시장 선거법 위반 혐의
[09월 1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 신풍제약 - 비자금 조성 혐의
[09월 16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성남시청 등 - 성남FC 후원 의혹
[09월 2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두산그룹 - 성남FC 후원 의혹
[09월 22일] 대구지검 - 우리은행 - 외환 거래 내역 의혹
[09월 22일] 부산지검 - 하윤수 교육감 자택 등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09월 23일]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 - 방송통신위원회 - TV조선 재승인 심사 의혹
[09월 23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 - 서울교통공사 - 신당역 살인사건 수사
[09월 26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네이버 등 - 성남FC 후원 의혹
[09월 27일]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수사부 - 대명종합건설 - 탈세 편법 승계 혐의
[09월 28일] 광주지검 - 광산구 장학회 - 금고 선정 심의 명단 유출 의혹
[09월 29일]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 - 우리은행 등 - 외환 거래 내역 의혹
[09월 29일]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수사부 - 우리은행 - 대명종합건설 탈세 혐의
[09월 30일] 울산지검 - 울산시청 시민신문고위원회 - 관계자 비리
[10월 04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농협 등 - 성남FC 후원 의혹
[10월 05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 - 광복회 등 - 김원웅 전 회장 횡령 혐의
[10월 05일] 수원지검 형사6부 - 대북협력업체 - 대북송금 - 이화영 뇌물
[10월 06일] 수원지검 형사6부 - 동북아평화경제협회 - 대북송금 - 이화영 뇌물
[10월 06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네이버 - 성남FC 후원 의혹
[10월 07일] 인천지검 - 롯데바이오본사 - 삼성바이오 영업비밀 유출
[10월 07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 비덴트 등 - 빗썸 횡령 혐의
[10월 12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 현대제철 등 - 철근 입찰 담합 혐의
[10월 14일] 수원지검 형사6부 - 아태평화교류협회 등 - 대북 송금 의혹
[10월 17일] 수원지검 형사6부 - 쌍방울 본사 - 그룹 비리 - 대북 송금 의혹
[10월 19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 - 민주연구원 - 김용 불법정치자금 혐의
[10월 19일] 청주지검 - 소방청 - 내부 청탁 비리
[10월 20일] 전주지검 남원지청 - 전북도의원 사무실 - 선거법 위반 혐의
[10월 24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 - 민주연구원 - 김용 불법정치자금 혐의
[10월 25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 - 안산시청 - 성남FC 후원 의혹
[10월 26일] 창원지검 - 하영제 의원 사무실 -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1월 02일] 창원지검 - 홍남표 시장 자택 등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1월 08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 SPC그룹 본사 등 - 경영진 배임 혐의
[11월 09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 정진상 자택 등 - 뇌물 수수 혐의
[11월 09일] 전주지검 군산지청 - 군산시청 - 강임준 시장 선거법 위반 혐의
[11월 10일] 전주지검 정읍지청 - 정읍시청 - 김학수 시장 선거법 위반 혐의
[11월 10일] 광주지검 - 광주교육청 - 이정선 교육감 선거법 위반 혐의
[11월 10일]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범죄수사단 - 태양광업체 - 태양광사업 비리
[11월 11일]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 - 삼성물산 건설부문 - 가거도 방파제 사업 의혹
[11월 15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 삼성화재 등 - 임대보험 입찰 담합
[11월 15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합수단 - 차이코퍼레이션 - 테라루나 사태
[11월 16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 국회 의원회관 - 노웅래 뇌물 수수 혐의
[11월 17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 국방부 등 - 서해 공무원 피격
[11월 17일]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 - 방송통신위원회 - TV조선 재승인 심사 의혹
[11월 18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 노웅래 의원 자택 - 뇌물 수수 혐의
[11월 22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 경기도청 - 정진상 뇌물 수수 혐의
[11월 23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 국토부 등 - 노영민 취업 청탁 개입
[11월 24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 국회 본관 - 노웅래 뇌물 수수 혐의
[11월 24일] 수원지검 공공수사부 - 강용석 자택 등 - 선거법 위반 혐의
[11월 24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 한국타이어 등 - 부당 지원 혐의
[11월 00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 - 조영달 자택 등 - 선거법 위반 혐의
오마이뉴스 이정환(bangzza)
'건강보험' 둘러싼 윤석열 정부의 수상한 행보, 그 의도는?
'건강보험의 책임성 강화' 담론과 보건의료 민영화
2022년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국회에 일 좀 하라고 다그치느라 분주하다. 올해 말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 제도의 '일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시민사회 단체들은 '건강보험 정부 지원 항구적 법제화 및 정부 지원 확대'를 지지하는 시민 45만 명의 서명을 국회에 전달했다.(☞ 바로 가기 : 무상의료본부 10월 26일 자 '45만 2,122명의 국민들이 서명했다. 건강보험 정부 지원 한시 조항 폐지하고, 정부 지원 대폭 늘려라')
시민사회는 올해 초부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고, 국회는 연말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한시적 제도로 시작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논의가 십수년째다. 만일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올해 말로 정부 지원이 중단된다면, 시민들은 17.6% 인상된 보험료를 부담해야만 지금 수준의 보장을 받을 수 있다.
'통치' 차원에서도 정부나 국회가 그렇게 놔둘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과거와 유사하게 마무리 될지 모른다. 또다시 몇 년을 연장하는 것. 기존과 다른 맥락과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보험을 둘러싼 현 정부의 수상한 행보와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대응 경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을 둘러싼 정부의 행보는 어떤가?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서 "건강보험 지출개혁을 통한 필수의료 보장 확대", "공공정책수가 도입 등 필수의료 기반 강화"를 핵심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7월 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필수의료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던 시점이다. 9월에는 의사협회, 병원협회와 '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의료계와의 협의체' 회의를 갖고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중심으로의 보상체계 개편"을 포함한 필수의료 종합대책 추진방향을 논의했다.
앞서 지난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필수의료 기반 강화 및 의료비 부담 완화"가 복지부 과제로 포함되었다. "필수·공공의료 인력·인프라 강화"가 그 자체로 목표이자 "언제 어디서든 모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 제시되었고, "의료비 부담 완화"와 "건강보험제도 개편"은 별개로 제시되었다. (2017년 여·야 합의로 마련한) 소득 중심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 2단계가 올 하반기에 시행되면 보험료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약품비 지출 적정화 및 부적정 의료이용 방지 등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와 "건강보험 재정 정부지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2022년을 한 달 남겨둔 지금 건강보험 재정 정부지원 확대는 소식이 없고,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는 "필수의료 보장 확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둔갑했다. 이 과정에서 '필수의료에 대한 건강보험의 책임성 강화'라는 담론이 등장했다. 복지부 업무계획은 "초음파·MRI 등 급여화된 항목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와 "외국인 피부양자 기준 개선"을 통해 "건강보험 지출개혁"을 달성하고, 그를 통해 "필수의료와 고가약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필수의료 기반 강화 수단은 "공공정책수가 도입"으로 축소됐다. 고가약제의 경우 신속등재를 위한 대책 없는 규제완화가 환자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인 신약의 고가화를 도리어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바로가기 : 10월 19일 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의약품시민사회연대][성명]복지부가 내놓은 ‘치료제 접근성 제고 방안’으로는 가속화되는 신약의 고가화를 막을 수 없다') 결국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해 개개인의 부담은 늘리면서 필수의료를 핑계 삼아 민간공급자와 제약기업을 배불리는 계획이라는 말이다.
이주민을 "피부양자 제도 부적정 이용 등 건강보험 재정 누수" 원인으로 호명했던 복지부는 모순적이게도 건강보험 부과체계 2단계 개편안에서 내국인의 피부양자 자격 기준을 애초 계획보다 완화해, 건강보험료 수입은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대응 경험은 무엇을 남겼나?
한편 지난 8월 말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에서 보건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0.6% 인상되어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됐다. 코로나19 예방접종 실시,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등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늘렸던 지출을 감액한 결과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지역거점병원 공공성강화와 같은 공공보건의료 확충 예산도 삭감됐다. 특히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실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여러 언론이 복지부 보도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보건복지예산 100조 처음 넘었다"느니, "올해 대비 11.8% 증가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정부의 긴축재정과 선별복지 기조에 대한 비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예산 증가분 대부분이 복지예산이라는 것, 보건예산 특히 공공보건의료 예산이 삭감된 사실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공공보건의료 확충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사회구성원들의 고통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요구이자,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엄청난 희생과 투쟁 끝에 정부로부터 얻어낸 노정합의 사항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공보건의료 예산 삭감은 예산을 둘러싼 현실정치의 비민주성의 극치이기도 하다.
건강보험과 필수의료, 공공보건의료를 둘러싼 정부의 행보는 국가 역할과 책임의 축소라는 면에서 명백히 민영화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여기에는 물론 현 정부의 기조가 작동하지만, 문제는 보다 더 구조적이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건강보험과 민간의료 중심의 건강체계가 코로나19라는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 곧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한 민간의료 총동원이 공중보건체계에서 민간 역할의 확대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는 국가 책임이므로,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한 코로나19 진단, 치료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생각해 보자.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이 국가의 책무라는 주장은 어떻게 가능할까? 감염병 예방과 관리를 제외하면, 국가는 책임이 없는 걸까?
우리는 감염병 예방과 관리는 물론, 모두의 건강에 대한 관리라는 의미에서 공중보건체계 나아가 건강체계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체계를 건강보험체계로 축소 이해함으로써 건강보험마저 공적인 부담이 아니라 개개인의 부담이라는 원리가 지배적이게 되는 경향,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마저도 시민사회 구성원들과 건강보험만의 책임으로 전환시키려는 경향, 이를 통하여 공공보건의료마저 보편적 제공이 아니라 잔여적이고 선별적인 제공이라는 원리가 지배적이게 되는 경향이 바로 우리가 처한 구조적 문제의 맥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적 의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조차도 '건강에 대한 개인 책임 강화' 담론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하려는 권력의 통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의 운명과 건강, 의료이용은 스스로 책임지게 부추기면서 공적 건강체계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축소하려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전략이 내재하고 있다.
건강보험과 민간의료에 의존하는 체계를 넘어, 모두를 위한 공적인 건강체계는 개인의 노력과 건강보험만으로 구현될 수 없다. 조세 기반의 새로운 건강보장제도, 시민사회의 공유재로서의 공공보건의료체계 확충, 사회권력이 주인되는 공적 건강체계와 같은 대안적인 공적 건강체계를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당장은 '시민사회의 희생에 기반한 건강보험의 책임성 강화' 담론전략으로 통치의 효율성을 달성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3년 예산안 심의에 대한 감시와 참여, 예산의 목표 및 방향에 대한 대안 제시는 구체적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 전망을 가지되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이제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에 대한 책무성을 시민사회에 이전하기 위하여 건강보험도 노골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사회권력은 '건강보험의 책임성 강화' 담론을 철저히 해부하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공격하고 방어해야 한다. 이미 공격이 시작되었으니 오래 시간을 끌 일은 아니다.
시민건강연구소/ 프레시안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엄마는 그저 눈물만 흘리지 않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1월22일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단상 앞으로 굳은 표정을 한 유가족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참사로 희생된 가족의 사진을 들고나온 유가족도 다수였다. 애써 덤덤하려 노력한 얼굴은 마이크를 손에 쥘 때부터 무너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식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목소리는 떨리고 공기는 무거워졌다.
11월22일 오전 11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사 이후 24일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모두 숨죽이며 유가족들의 말을 경청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한국 사회는 한 가지 조심스러운 합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 누구도 유가족의 슬픔을 섣불리 헤집지 말자는 원칙이다. 언론은 재난보도 준칙을 지키려 했고, 시민들은 줄 지어 애도했다. 애도의 또 다른 의미는 기다림이다. 유가족들이 언젠가 슬픔을 추스르고 목소리를 낼 때, 이들을 응원해주겠다는 기다림이다. 24일간의 기다림 끝에 유족들이 용기 내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민에게 꺼내놓았다. 말마디마다 끝 모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분노와 고통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참사를 예방하지 못하고, 참사 이후에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질책이 섞여 있었다.
〈시사IN〉은 이날 유족들의 말을 통해 정부 대응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점검해보았다. 발언 내용은 당일 기자회견 발표와 11월22일 KBS 〈뉴스9〉에 출연한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저는 제 슬픔이 가장 슬픈 슬픔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렵게 유가족들을 연락해 만나보니… 다른 분들 슬픔이 제 슬픔보다 훨씬 더 깊었어요. 저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몇 시에 갔는지, 어느 병원에 있었는지, 제대로 과정을 아는 분이 부모조차 없어요. … 공간을 만들어서 서로 위로하고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무런 지원 없이 무슨 비밀공작 하듯이 말입니다.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이 세상 어느 부모가 내 자식 태어난 곳, 태어난 시간, 날짜, 태어난 순간을 모르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요. 보십시오. 이것이 저희 아들의 사망진단서라고 하네요. 사망 일시도 추정. (사망 장소는) 이태원 거리 노상. 사인은 미상. 이게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무슨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 시신을 경기도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놓으셨나요? 유가족끼리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계산 속에 이뤄진 것은 아닐까요?”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정부는 유가족과 공무원을 1:1로 매칭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느낀 정부의 대응은 부족함이 많았다. 희생자의 사인이나 사망 시각을 ‘미상’으로 판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의 사후 지원 역시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민변 윤복남 변호사는 “장례 지원 뒤 (연락이나 지원이)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신다. 마음에 맞게, 배려 있게 (유가족 지원이) 진행된 것은 아닌 듯하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공통적으로 희생자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번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 각자의 빈소가 제각각 흩어져 있고, 정부 차원의 네트워킹 기회도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나마 연락이 닿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11월16일 민변에서 주선한 간담회가 처음이었다. ‘공간’을 달라는 것은 곧 아직 모이지 못한 유가족들도 함께 모이게 해달라는 요구다. 혼자 고립되어 있을 다른 유가족에게 최소한 함께 이야기 나누자는 제안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참사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유가족 기자회견 직후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난 피해를 겪은 분들에게 서로 울 수 있는 공간은 중요하다.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과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아무 연락을 원치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분들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 그러나 위기를 느끼는 순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그런 분들에게도 (정부 차원의) 최소한의 정성이 필요하다.”
이날 유가족이 정부에 제시한 ‘6가지 요구사항’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과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유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주고, 명단 공개를 원하는 유가족들에게는 온전한 추모가 가능한 사회적 추모시설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기존 정부 주도 분향소는 위패 없이 익명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만 이뤄졌다.
11월21일 꽃과 포스트잇 등으로 장식된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시사IN 신선영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엄마는 그저 눈물만 흘리는 무능하고 무지한 엄마는 되지 않겠노라고요.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다시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밝혀달라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었습니다. 오후 6시34분부터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112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들은 ‘특이사항 없음’으로 상황 종료했습니다.”
“만약 류미진 전 과장,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국무총리의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그곳에서 ‘숨 쉬기 어렵다.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달라. 통제해달라’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를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백종우 교수는 재난 피해 유가족들이 참사 초기 머릿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품는 단어가 ‘왜’라고 설명한다. 왜 내 가족은 참사에서 사망해야 했나. 왜 하필 그 참사는 내 가족에게 덮쳤나. 왜 참사는 발생했으며 정부는 참사를 막지 못했나.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참사 유가족들도 ‘왜?’라는 질문을 정부에 던졌다. 왜 경찰은 초기 신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으며, 왜 시민들의 절규를 제때 알아듣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유족들이 이날 주장한 공식 요구사항에도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 규명’과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 규명’이 포함되어 있다.
유가족들은 이날 진상 및 책임 규명의 범주로 ‘피해자들이 납득 가능한 수준’을 강조했다. 경찰 특수수사본부(특수본)가 진행 중인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 대상보다 더 폭넓은 수준이다. 참사 사흘 만에 조직된 경찰 특수본은 11월24일 현재 17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가족들이 주요 책임자로 지목하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총경(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 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아직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같은 윗선에 대한 소환조사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특히 참사 당시 경찰기동대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이임재 전 서장과 김광호 청장 간의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 서장은 서울청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김 청장은 경찰기동대를 요청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선 유가족이 묻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주체는 경찰 특수본뿐이다. 그러나 수사가 미진할수록, 경찰의 ‘자기 식구 수사’에 대한 불신이 쌓여갈수록 유족이 원하는 ‘철저한 진상규명’은 공염불이 된다. 특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3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제는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아들의 장례식이 비엔나(빈)에서 28일날 있어서 저는 가야만 합니다. 저는 비엔나에 가서 일하겠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외국인들(을 위해서)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습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사과란 게 조계종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었나? 내가 사과를 들었었나? 우리 유가족들이 사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처음 사과가 늦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들을 모아놓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해주세요).”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비롯해 더 이상 우리 아들딸들을 영정 사진도, 위패도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지 말아주시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누구누구 정치인, 누구누구 유명인 죽음 앞에 방송은 영정 사진과 애통함을 표하면서 왜 우리 아들은 안 되는 겁니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발표는 참사 엿새 뒤인 11월4일에야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과에 대한 진정성 문제가 불거졌고,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유가족과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로 정부 공식 석상에서 추가로 사과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형식적 사과가 시기와 내용 모두 유가족에게 와닿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진정한 사과’를 요구사항의 첫 번째로 꼽았다. 유가족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참사의 책임’을 명확히 해줄 것을 주장한다. ‘참사의 책임이 10월29일 밤 이태원을 찾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지자체·경찰에 있다는 것’을 정부의 사과에 명시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정부의 사과가 곧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아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붙어 있는 유가족의 포스트잇.ⓒ시사IN 신선영
참사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잇따른 실언은 그래서 더욱더 유가족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가장 괘씸죄를 추가하고 싶은 (대상은) 행안부 장관의 말 바꾸기”라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30일에 남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발언을 꼬집어 비판했다. 참사 책임자가 대중이 쏟아내는 비판의 화살을 피할 경우, 피해는 애꿎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돌아간다. 유가족들은 이 점을 명확히 하며 시민들에게도 부탁을 남겼다.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왜 놀러 갔냐, 부모는 왜 잡지 못했냐’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태원에 그러면 놀러 가지 공부하러 갑니까? 초등학생은 소풍을 가고, 중·고등학생은 수학여행을 가고, 대학생은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우리 어른들은 단풍놀이를 가고 모두 다 갈 자유가 있습니다. 왜 갔냐니, 왜 잡지 못했냐고요? 왜 다 큰 성인을 잡아야 합니까? 얼마든지 갈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이런 일을 당하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유가족들의 6대 요구사항 마지막 항목도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이었다. 참사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정부 차원에서 2차 가해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무분별한 SNS 게시물, 악성댓글, 사진과 영상 유출, 미확인 정보와 억측 보도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1월23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를 비롯한 163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시민사회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시민 모니터링 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시민사회단체들은 “2차 가해로 지적된 보도, 댓글, 콘텐츠에 대한 신속한 차단 및 삭제 등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며 심각한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도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역시 진즉 국가가 나섰어야 할 일이다.
유가족들이 공개 석상에 등장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장례 이후 국가의 지원에서 벗어나 있는 유가족, 다른 유가족과 교류하지 못한 유가족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로 일한 사단법인 마음건강센터 김은지 이사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현 시점을 일종의 ‘급성기’라고 진단한다. “초기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어야 한다. 국가에서 장을 열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많이 모일 수 있게 해야 했다. 지금은 참사 초기인 ‘급성기’에 해당된다. 아직 적극적으로 심리 지원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해 심리적인 허들(행정절차 등)을 낮춰야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자식을 앞세우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깊어질 수 있다.”
백종우 교수도 “생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지원 체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참사의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각종 지원을 수용하도록 하려면 정부의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알리고 부담 없이 지원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라며 정부의 적극적 재난 대응 소통을 강조했다.
세상 밖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알린 희생자 유가족들도 그렇게 말한다. 혼자 있지 말고 꼭 도움을 받으라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초 발언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한 유가족은 급히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 센터에서 장례 치르고 바로 연락이 왔는데,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하루 이틀 더 지나다 보니까 트라우마가 심해져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른 유가족분들 중에 그런 것(심리 상담과 복약)을 아직 조치를 안 하셨거나 연락이 없었다면 (정부 지원) 전화를 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찢어지는 마음이야 그렇지만 일단은 현실적으로 몸을 가누고 저희도 정신을 차려야지 고인이 된 저희 자식들도, 부모가 좀 더 괴로워하지 않고 잘 지내기를 아마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른 분들도 용기라도 좀 얻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시사인 김동인·주하은 기자
‘세대론’ 내세우며 갈등 심화 ‘악순환’ 만드는 한국 언론
세대 갈등 보도, 정치·선거와 연동…청년 세대 주로 언급돼
“언론이 갈등 유발”…기자들도 “세대론, 게으른 보도 방식”
‘세대론’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조국 전 장관 사태, 대통령선거 등을 거치면서 사회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청년층이 주 대상이었는데, 언론은 이대남·이대녀·MZ세대 등 키워드를 사용하며 청년층을 집중 조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세대론 보도가 ‘문제 진단·해결’이라는 효과가 아니라 ‘갈등 심화’라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자들도 세대 갈등을 조명한 기사가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달 31일 신문사의 세대론 관련 보도 분석과 기자·전문가 인터뷰를 담은 ‘세대 갈등 관련 보도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책임연구를 맡았다. 공동연구자는 이설희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와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보조연구자는 이진선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석사과정이다.
▲ 4월17일, 서울 마포구 홍대 부근 거리에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연구진은 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경향신문·한겨레 등 5개 언론사의 세대 갈등 보도 1021건을 분석했다. 연도별 세대 갈등 보도 건수는 2017년 43건, 2018년 66건, 2019년 180건, 2020년 109건, 2021년 449건, 2022년 1/3분기 174건 등이다. 2019년은 조국 사태로, 2021~2022년에는 대선 기간으로 인해 세대 갈등 보도가 늘어났다.
세대 갈등 보도 연관어를 보면 이준석·윤석열·민주당·정치권 등 선거 관련 어휘가 주로 등장했다. 여론조사·지지율 등 키워드와 세대 문제가 함께 언급되는 빈도가 높았다. 연구진은 세대 갈등이 선거 전략으로 동원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대 갈등 보도 연관어. 사진=세대 갈등 관련 보도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기사 제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이대남’(18.5%)이다. ‘이대녀’가 제목에 쓰인 경우는 4.8%에 불과했다. 언론이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이대남’을 조명했다는 뜻이다. ‘MZ세대’가 제목에 들어간 보도는 10%다. 86세대(6.4%), 중장년(3.8%), 기성세대(1.6%), 노인(1.6%) 등이 제목에서 사용된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기사 본문에 자주 등장한 세대 관련 용어는 청년·이대남·이대녀·신세대·MZ·2030·20대·90년대생(72.6%) 등 청년층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86세대·기성 세대·노인·중장년 등 용어가 나온 경우는 25.3%에 불과했다.
언론이 청년층을 주목한 것과는 별개로, 기사에 인용된 인물의 연령대는 60대가 가장 많았다. 50~60대 비율은 31.5%, 20~30대 인용 비율은 21.9%다. 연구진은 “관련된 사건과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60대의 목소리가 과도 표집 되는 것”이라면서 “세대 갈등과 관련된 기사 목록이 대체로 선거에 몰려 있고, 선거에서 인용하게 되는 주요 정당 인물들의 연령이 50~60대의 인물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세대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이 언론사별로 상반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는 세대 문제와 관련해 불평등·불공정 등 이슈를 주로 거론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페이스북, 여성가족부 등 폐지를 자주 언급했다. 연구진은 “정파성에 따른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페이스북 인용 보도, 국민의 힘에서 제시한 세대 내 젠더 갈등 이슈 등이 중심적으로 표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보도에선 ‘책임 귀인·비난’을 세대 갈등 주제로 삼는 빈도가 높았다. 조선일보 보도 중 ‘책임 귀인·비난’ 관련 보도 비율은 47.47%, 중앙일보의 관련 보도 비율은 39.64%다. 한국일보의 경우 갈등 원인을 진단하거나 해소 방법을 제시한 보도 비율이 각각 43.28%, 35.07%였다.
▲사진=세대 갈등 관련 보도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언론, 세대 대립·분리하는 구도로 갈등 유발”
연구진은 언론이 세대별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다양성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연구진은 “언론이 세대 관련 용어 및 세대별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면, 이들이 가질 수 있거나 배제할 수 있는, 혹은 세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수 있는 보완적 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이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세대를 대비·대립·분리하는 구도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다. 대비와 대립의 구성 방식은 글을 명료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자주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기사가 갈등 유발에서 그치는 건 언론이 사회갈등을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세대 갈등의 현상적 보도와 더불어 이러한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며, 해소를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연구진은 취재원이 취약하다면서 “전문가들의 수가 적어서 좀 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선정적, 자극적, 감정적 언어가 자주 나타나는 온라인 취재원을 활용하는 문제도 나타났다”고 했다. 연구진은 “세대 보도에 있어서는 특히 다양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줄 필요가 있으며, 정보원의 대표성 문제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대갈등 관련 보도. 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갈무리.
기자들도 문제로 꼽는 세대 갈등 보도
심층 인터뷰를 한 기자들도 연구진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기자 A씨(일간지 논설위원, 16년차)는 세대론이 낙인 효과를 일으킨다면서 “굉장히 위험하고 논란이 많을 수 있어서 언론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기자 B씨(일간지 평기자, 7년차)는 문제를 세대론으로 치환하는 건 “쉽고 게으른 보도 방식이다. 너무 남용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대론 보도에 대해선 △무턱대고 젊은 층을 라벨링하는 것 △MZ세대 분석이 겉돈다 △게으르고 뭉뚝하다 △심층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특정 집단에 이익을 주고 있다 등의 혹평이 나왔다.
기자들은 언론이 쉬운 취재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을 기사화했고, 그 결과 일부 여론이 과잉대표됐다고 봤다. 연구진은 “(정치권이) 특정 커뮤니티 발 이슈와 여론을 ‘20대 남자의 여론’으로 간주해 이를 인용하고 참고하며 선거 전략으로 삼은 정치적 맥락이 언론의 보도로 이어져 커뮤니티 발 여론이 20대 청년을 과잉 대표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자 C씨(일간지 평기자, 6년차)는 “멀쩡한 언론사라면 (커뮤니티 게시물) 인용하긴 하되 그것만 듣지 않고 전문가 얘기도 듣고 종합적으로 쓸 것이다. 근데 그런 데(온라인 대응팀·자회사)서는 그렇게 쓰기가 쉽지 않다. 기사라고 할 수도 없는 기사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다들 포기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극적 제목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언론이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제목을 사용해 높은 PV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 기자 D씨(일간지 기자, 9년차)는 “약간 클릭을 유발할 수 있는 제목을 좀 만들자고 편집하는 분들한테는 교육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기자 E씨(일간지 차장, 16년차)는 “온라인 유통팀에서 ‘타사에서는 클릭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제목이 심심하냐’고 하면 수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세대 갈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E씨는 “(인종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장기간 경험한 국가 언론은) 기준 같은 게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거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깊숙하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E씨는 “내부적인 기준이 약한 것 같다”면서 “큰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대응이 그렇게까지는 빠르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언론 전문가 ‘독자 교육’ 강조…“시민의 비판적 사고, 언론 감시”
전문가들은 언론사 변화를 유도하는 것만큼 ‘독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봤다. 부적절한 갈등 기사가 양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시민들이 이를 클릭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 전문가 F씨는 “시민들이 보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거나 숙고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면 언론의 세대 갈등 프레임에 손쉽게 넘어가는 경향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 G씨는 “세대 갈등을 언론이 스스로 유발하는 다양한 보도 양상들을 점검하고 감시할 수 있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대중들은 물론 언론인들도 그 내용에 대해 주목하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여전히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라서?…보험업법 개정안이 공회전하는 이유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모든 특혜는 종식되어야 한다
1. 삼성의 볼모, 보험계약자
보험회사는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 중에서 사업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국내 생명보험회사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얼마나 될까?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2년 6월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회사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32.8조 원이다. 이 중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31.3조 원인데, 이 중 그 대부분인 29조 원은 삼성전자 주식이다. 삼성전자 투자 비중이 가히 압도적이다.
보험업법은 특정자산의 투자 한도를 최대 3%로 정해놓았다. 보험회사로 하여금 특정 주식에 '몰빵'해서 투자할 수 없도록 해놓은 이유는 투자손실이 커지면 보험료를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제104조(자산운용의 원칙)에 의하면 "보험회사는 그 자산을 운용할 때 안정성·유동성·수익성 및 공익성이 확보되도록 하여야 하며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그 자산을 운용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안정적인 투자의 기본은 분산투자를 통한 위험회피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투자 비중이 너무 크다. 이 정도의 대규모 투자로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8.73%이다. 이렇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과다 보유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의 이유이다.
이재용 회장 등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이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가진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보험계약자들의 돈을 볼모로 잡아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2. 삼성에 의한 해석, 보험업법 감독규정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요지는 보험회사가 시가 기준 다른 회사의 지분 3%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사실, 국회에서 보험업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된다. 금융당국에서 보험업법 감독규정만 개정하면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취득원가가 아닌 공정가액(시가평가)으로 수정해서 고시하면 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금까지도 감독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
2014년 이종걸 의원의 보험업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감독규정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법률로 제어하고자 낸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이후, 박용진 의원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감독규정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대로 개정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야당 시절 이종걸 의원이 요구한 것을 집권여당 의원이 다시 요구한 것이다.
그래도 금융위원회는 꿈쩍하지 않았다.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면 금융위원회의 입장을 알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보험회사 소유주식을 공정가액으로 평가하는 경우 주식가격의 변동에 따라 자산운용 비율, 한도규제 준수여부가 결정되는 문제점이 있으며, 이에 따라 보험회사 자산운용규제의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 해당주식을 취득하는 시점에서의 가치(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자산운용 한도규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20년 박용진, 이용우 의원에 의해 보험업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자 금융위원회의 입장은 사뭇 달라졌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 따르겠다고 말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IFRS17(국제회계기준 보험계약)과 K-ICS(신지급여력비율)도 시가평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도 해괴망측한 논리를 더는 들이밀 수 없게 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렇다면 금융위원회의 직무유기는 누구를 위해서일까? 그들이 판단했을 리 없다. 삼성에 의한 해석, 그것이 바로 보험업법 감독규정이다.
3. 삼성을 위한 기준 ① - 국제회계기준(IFRS17)
최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유 지분을 2023년 국내에 도입되는 국제회계기준(IFRS17)에서 '자본으로 분류'해도 되는지 금융감독원에 질의했다고 한다. 무슨 자신감일까 싶어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며 읽다보니, 잘 짜인 퍼즐이 한 조각씩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삼성생명의 이 질의는 그들이 어떻게 판을 뒤집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꿀지를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게끔 했다.
2017년,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의 IFRS17 적용 지원을 위한 전문가그룹(TRG)에 삼성생명 출신의 한 인사가 합류했다. (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2019년 IASB는 이사회를 열고 계약자 배당과 관련한 미래 현금흐름을 '금융가정 변동'으로 본다는 해석을 'IFRS17 기준서'에 추가했다. (관련기사 보기) 주식가치 상승으로 유배당 계약 상품에서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간주돼도 보험사가 이를 손익에 곧바로 반영하는 대신 자본으로 회계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준서'는 IFRS17의 실제 적용방식을 규정하는 '시행령'에 해당한다.
삼성생명이 자기 사람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심고, 게다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기준서를 변경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삼성생명의 최근 질의는 이미 삼성이 짜놓은 답변을 금융당국이 다시 한 번 확인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이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삼성에게 끌려 다니는 꼴을 지켜보게 됐다.
4. 삼성을 위한 기준 ② - 신지급여력제도(K-ICS) 장기보유주식 특혜
2023년부터 보험업계에는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이 도입되고, 현행 지급여력비율인 RBC는 사라지게 된다. 대신, 자산과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총 재무제표방식을 기반으로 보험회사에 내재된 각종 리스크 양을 요구자본으로 산출하고, 이에 상응하는 가용자본을 보유하도록 하는 신지급여력제도인 K-ICS가 도입될 예정이다.
기존 K-ICS 4.0은 주식위험액을 선진시장상장주식, 신흥시장상장주식, 우선주, 인프라주식, 기타주식으로 구분해 위험계수를 각각 적용했다. 적용된 주식 위험계수는 각각 35%, 48%, 4~49%, 20%, 49%였다. 각각의 위험계수를 적용해 주식위험에 대한 요구자본을 산출하므로 위험계수가 낮아지면 쌓아야 할 요구자본도 줄어드는 식이다.
그런데 2021년 12월 발표된 K-ICS 최종본에는 '장기보유주식' 항목이 추가되었다. 장기보유주식에 대한 위험계수는 20%가 적용됐다.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를 장기보유주식으로 설정하면 종전까지는 위험계수를 35%로 적용받았으나 이제는 현격히 낮은 20%로 줄어들게 된다. 장기보유주식은 1개만 설정할 수 있는데, 삼성생명은 당연히 삼성전자 주식을 설정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금융당국은 "주식을 단기매매로 운영하면 변동성 노출이 있어 위험계수가 큰데,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한 주식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보유할 경우에는 자본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이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보유분을 3% 시가 규제에 따르도록 묶고, 3%를 초과하는 나머지 보유분은 시장에 내다팔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작 금융위원회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면 위험계수를 35%에서 20%까지 인하해 주고, 그만큼 요구자본을 줄어주겠다고 K-ICS에 못박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은 전체 생명보험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88.2%에 달한다. 한 마디로 금융당국에서 삼성생명만을 위한 기준을 설정한 것이 바로 장기보유주식 혜택이다. 주식의 총량이 아니라 기간으로 위험도를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5.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모든 특혜는 종식되어야 한다
사실 금융은 어렵다. 수치모델이 나오면 더 어렵다. 그러나 모든 법과 제도는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 상식을 배반하도록 금융전문용어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본질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11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보험업법 개정안이 상정되었다. 처음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무려 8년만이다. 아마 이번에도 금융당국은 매번 그래왔듯이 국회의 논의를 지켜볼 뿐 뒷짐 지고 있을 것이 뻔하다.
보험계약자들의 돈으로 삼성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삼성에만 유리하도록 직무를 유기하고, 규칙을 만들거나 바꾼다면 과연 공정한 것인가? 2014년부터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8년 동안 이 법 하나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삼성공화국에 불과하다.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모든 특혜는 종식되어야 한다.
김경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정책실장/프레시안
미국은 생각도 않는데 ‘핵존맛’ 김칫국 타령만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에서 나온다. 독자 핵무기 주장은 미국의 확장 억제 정책을 의심하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게 ‘NO’다.
11월2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다. 9월8일 발표한 핵무력정책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관하여’에 ‘선제 핵 공격’도 가능하다고 적었다. 도발 수위도 높였다. 11월2일에는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지대공미사일을 쐈다. 11월3일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11월5일과 11월9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각각 서해상에 4발, 동해상에 1발씩 쐈다.
여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핵은 소량으로도 효과가 막대한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이기에 재래식 전력 격차가 무색해진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현실화 가능성이 극히 낮다. 한국을 포함한 191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되어 있다. NPT를 주도하는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등장한다. 미국의 소형 핵무기를 한반도에 두자는 것이다.
전술핵(tactical nuclear weapon)은 사정거리가 짧은 핵무기다. 사거리가 긴 전략핵(strategic nuclear weapon)과 대비된다. 미국은 벨기에·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동맹국에 전술핵을 배치해뒀다. 미국 정부는 수량을 공개하지 않으나 외신과 전문가들은 150~180여 기로 추정한다. 한국에도 전술핵이 배치된 적이 있다. 2017년 11월2일 안보·과학 전문지 〈불레틴 오브 아토믹 사이언티스트(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기사에 따르면 한반도 전술핵은 1958년 주한미군이 반입을 시작해, 1967년에는 최대 950기에 달했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합의하면서 전량 철수했다. 그해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는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론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개별 의원들이 주장하던 전술핵 재배치론은 홍준표 대표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이끌던 2017년, 잠시 당 차원의 논의로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몇몇 의원이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기 위해 방미했으나 미국 현지 인사들의 부정적 반응을 접한 바 있다.
전술핵 등 핵무장 논의는 5년이 지나 당내에서 다시 반복된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꼽히는 이들이 전술핵 재배치론을 재차 들고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10월5일 자신의 SNS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핵 공유, 전술핵 재배치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조경태 의원은 10월1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술핵을 “지역구인 (부산) 사하구에 (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의원은 11월2일 페이스북에 “미친 깡패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핵무장을 통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게 ‘NO’다. 국내 전술핵 재배치론에 불쾌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미국 인사들도 있다. 미국은 한국에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정책을 천명한다.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국이 받는 핵공격도 방어한다는 의미다. 한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은 핵으로 공격자를 보복한다(핵우산). 이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재확인됐다.
1961년 프랑스와 2022년 한국은 달라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독자 핵무장 주장은 미국의 확장 억제를 의심한다는 전제하에만 성립한다. 의심하는 바가 미국의 능력이든 의지든,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으로 꺼내기 어렵다. 10월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라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확장 억제는 핵전력을 포함해 모든 부문을 동원해서 보호한다는 의미다. 이건 누구도 의심해선 안 된다.”
게다가 미국이 마음을 바꿔 한반도에 전술핵을 들이더라도 그리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전술핵 사용을 결정할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나토식 핵 공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핵정책을 논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배치 수량과 타격 요건 등 결정적 사안은 사실상 미국 정부가 정한다. 미국에 의지하지 않고 한국이 직접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다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과 현실은 꽤 거리가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궁극적으로 핵무장을 통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연합뉴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미국의 의지를 의심한다. 10월14일 YTN 라디오에서 김기현 의원은 “국제사회가 (북핵 방어에) 지원 안 하면 어떡하나? 미국이 우리 동맹국이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지키겠다고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1961년 베를린 위기 당시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을 언급했다. “미국은 정말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 동·서독 갈등을 둘러싸고 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거세지자, 미국의 핵우산에만 기댈 수 없다며 드골 대통령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본토 핵 피격을 염려해 소련에 핵을 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10월17일 ‘미국은 서울을 위해 시애틀을 내놓을 것이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여기서 군사전략 분석가 재커리 켁은, 1960년대 프랑스와 2022년 한국 상황은 다르다고 썼다. 국내 핵무장론자들과 달리, 드골은 만약 소련이 프랑스를 상대로 핵을 먼저 발사한다면 미국도 소련에 핵으로 보복할 것이라고는 확신했다. 드골의 의문은 ‘선제 핵 사용’ 여부였다. 1960년대 초반 유럽 지도자들은 소련과 재래식 무기만으로 맞붙었을 때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소련이 재래식 공격을 가할 때도 미국이 먼저 핵을 쏴줘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드골은 봤다. 이를 확신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독자 핵 개발에 나서게 된다. 〈포린 폴리시〉 칼럼은, 선제 핵 발사를 고민할 정도로 (재래식 무기 기준으로) 전력이 열세였던 “냉전 시기 유럽과 달리 한국군과 미국군은 북한의 재래식 침공을 쉽게 격퇴할 수 있다”라고 썼다.
동맹국이 핵 타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보복할 것이라고 여길 이유는 무엇일까? 칼럼에서 켁은 현지 주둔 미군, 오늘날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은 자국 시민이 공격받을 때 자제력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에 핵을 사용하면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만 명이 틀림없이 죽는다. 진주만이나 9·11의 비극은 수치상 희미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미국 대통령이든 최소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만큼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정부는 선을 긋는다. 10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술핵 재배치론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기 초 CNN 인터뷰에서 부정적으로 답한 것과 뉘앙스가 다르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11월3일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전술핵 재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정책과 상충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핵을 들이면 북한에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만 잃고, 실익은 없다는 의미다.
여론은 전술핵 재배치 찬성론이 우위다. 10월2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찬성 49%, 반대 39%다. 그러나 여당 정치인들과 달리 정부로선 여론만 바라볼 수 없는 사안이다. 결정적으로 한국 정부가 칼을 쥐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인 이상원 기자
주거지이자 관광지인 골목... "살 수 없다"와 인증샷의 큰 간극
돌아온 '오버투어리즘',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을 거닐다
▲ 11월 8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핵심 장소인 가회동 한옥 골목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간 듯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 신서윤
"제가 드릴 말씀이 없어요. 본 그대로 쓰시면 돼요. (방문 시간은) 규제가 안 되고 있죠. 강제성이 없죠... 잠시만요."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이자 주택가가 즐비한 주거지인 북촌 한옥마을. 그곳의 백미로 손꼽히는 가회동 한옥 골목에서 만난 '마을 지킴이'에게 대화를 마무리 지을 여유는 없었다. 수많은 관광객에게 '작은 소리로 대화하기' 등 에티켓을 전달하며 고군분투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과 같이 꾸준히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를 보며 거주민의 생활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적 있는가? 대부분은 상권 활성화 등의 장점만 쉽게 떠올릴 뿐이다.
2018년 트렌드모니터의 오버투어리즘 및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오버투어리즘 문제 해결이 시급한 지역'에 북촌 한옥마을이 58.3%라는 과반의 비율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오버투어리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 공해(45.4%), 관광지역 실제 거주자들의 삶의 질 저하(43.7%)가 거론되기도 했다. 오버투어리즘이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이 침해되는 현상을 말한다.
매스컴을 통해 거주지가 관광지로 홍보돼 온 한옥마을에서는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과 무분별한 사진 촬영, 사생활 침해 등 다양한 갈등이 계속됐다. 거주민들의 생활권 침해 역시 계속해서 언급됐고, 이에 서울시와 종로구도 대응에 나서고자 2018년 7월 '북촌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 추진(마을 방문 시간 제한, 단체관광객 현장 안내 지원, 관광버스 불법주정차 특별단속, 집중청소구역 지정, 개방화장실 확대, 관광객 금지행위 예방, 관광가이드 사전교육, 주민 관리인력 양성)'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강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문제 해결은 미흡했다. 이후 2019년 정부는 관광진흥법에 '특별관리지역' 제도를 도입해 향후 늘어날 관광수요와 이에 따른 갈등을 정책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노력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확산되며 해당 문제가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일상 회복 이후 그 우려는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사람이 없어 조용했던 북촌 한옥마을이 2년 여의 팬데믹을 지나 내·외국인으로 이미 시끄러워진 것이다.
골목마다 관광객으로 북적... 거주민은 생활권 침해로 여전히 한숨
▲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북촌한옥마을운영회 현수막ⓒ 신서윤
지난 8일 방문한 한옥마을은 주말이 아니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팬데믹 이전과 같은 풍경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거주민의 불만이 담긴 현수막이 곳곳에 있어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북촌의 현재가 피부에 와닿는다. 현수막 너머에는 셀카봉과 삼각대를 설치해 인증샷 및 웨딩·돌잔치 스냅 사진을 남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대비돼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2018~2019년도에 세운 대책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개선되지 못한 채 같은 현상이 반복된 이유가 궁금하다. '북촌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의 주요 내용으로 내세워진 마을 방문 시간 제한, 마을 지킴이 배치를 중심으로 그 적절성과 시행 효과를 살펴봤다.
▲ 한옥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방문 시간 안내문ⓒ 신서윤
한옥마을의 방문 시간은 평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시각에도 골목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방문 시간 제한이라는 자율시행제가 지니는 한계점은 분명했으며, 거주민들의 피해 역시 여전했다. 종로구청 관광정책팀 이은지 주무관은 "관광객들이 마을 방문 시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점이 강조돼 홍보가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2021년 종로구 관광과가 진행한 '주거지역 관광명소 주민피해 실태조사' 결과, 오버투어리즘 해결방안 1순위로 관광객 방문 시간 제한(22.7%)이 꼽혔다.
시행 중인 오버투어리즘 정책 효과 '미미'
▲ 정숙 관광을 전달하는 마을 지킴이와 곳곳에 배치된 정숙 안내판의 모습ⓒ 신서윤
수용 적정인원 초과 시 분산을 통한 통제, 정숙 관광 홍보 및 금지 행동을 계도하는 마을 지킴이 제도에도 실효성은 부족했다.
혼잡한 시간대에도 골목은 1명의 마을 지킴이가 배치돼 운영이 효율적이지 못했고, 마을 방문 시간이 아닐 때 출입하는 관광객을 제한할 인력도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북촌을 관광지로 조성된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거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지킴이는 주로 그들의 행동을 제한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은 모습도 다수 눈에 띄었다. 즉,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대책은 과태료 부과 등의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보였다.
관광객이 방문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오버투어리즘의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과 늘어날 관광수요에 대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은 필요하다. 새로운 대책이라는 무리한 시도보다는, 실태조사 및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광객과 거주민이 서로의 입장을 상호 존중할 수 있는 관광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한계를 개선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 한적한 북촌로12길 일대와 관계자가 추천한 대표적인 공공한옥 ‘백인제 가옥’ⓒ 신서윤
한적한 공공한옥 골목 기회 삼아 '거주민과 관광객의 공존' 이뤄야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의 제한이 아닌,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서울 공공한옥을 조명해 관광객을 공방, 체험관 및 문화시설이 모여있는 가회동 공방 골목으로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가회동 공방 골목이 위치한 북촌로12길 일대는 한옥의 내부를 감상할 수 있는 공공한옥밀집지역이지만, 가회동 한옥 골목이 위치한 북촌로11길 일대와 달리 텅 비어 있다시피 한산했다. 한옥을 보전·활용하여 방문객과 주민에게 개방하고 운영시간 내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공공한옥 관계자는 "이쪽(북촌로12길)을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저쪽(북촌로11길)을 주로 많이 가고"라고 말했다. 또한 "북촌 한옥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한옥마을'"이라고 강조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점은 팬데믹 이전과 같은데, 당시와 비교하면 언론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오버투어리즘의 심각성과 이를 사회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로구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북촌 한옥마을은 전통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매력적인 장소다. 그러나 거주민의 일상생활과 주거환경이 먼저 보호돼야 관광지로도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다.
여행객을 막는 것이 아닌, '여행객과 거주민의 공존'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거주민의 생활권 보호, 관광객의 원활한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목표로 삼은 채 점차 불가피하게 증가할 관광수요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거주민의 삶을 존중하는 성숙한 여행 또한 진정한 '공정여행'임을 인식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가길 기대해본다. 팬데믹 이전에 이루지 못한 '거주민과 관광객의 공존', 이제는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오마이뉴스 신서윤(tongkasu)
하필 포주가 쓰던 번호…“예약돼요?” 열흘간 전화 98통 왔다
성매매 알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끔찍한 요구, 너무 당당하게
“성매수, 범죄라 생각 않는 듯”
국내외에서 추정한 한국 성매매 규모는 연간 15조5천억원(2015년, 미국 해벅스코프닷컴)에서 30조원(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다. 젠더미디어 <슬랩> 갈무리
성매매’는 성매매처벌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으로 처벌받는 ‘범죄’다. 201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성착취와 온라인 그루밍 범죄 등의 심각성이 알려지며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아간 사이, 전통적인 ‘성착취’인 성매매 범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크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성매매 규모는 거대하다. 국내외에서 추정한 한국 성매매 규모는 연간 15조5천억원(2015년, 미국 해벅스코프닷컴)에서 30조원(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다. 일상적인, 너무 일상적인 성매매 범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강씨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 증거 가운데 하나였다. 강씨는 전화를 서둘러 없애지 않고, <한겨레>의 문을 두드려 전화를 건넸다.
범죄라 생각 않는 듯 너무 당당”
남성 가운데 열에 아홉(90.5%)은 성매매를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지만(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심각한 범죄로는 여기지 않는 듯 하다. 강씨는 “전화를 건 사람들은 성매수를 전혀 범죄라고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았다. 너무 당당했다”고 했다. 실제 성매수자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자백하는 데 스스러움이 없다. 성매매 산업의 한 축인 ‘성매수자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성매매 예방·감시 활동을 하는 서울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센터)는 지난 9월27일 성매수자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하루에만 1600개가 넘는 성매수 후기 또는 성매매 정보 공유글이 올라왔다. 김민영 센터장은 “성매수 후기는 (성매매처벌법으로 처벌하는 행위인) 성매매를 알선, 유인, 조장하는 행위와 다름없는데도 수사기관은 이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나라는 성매매를 정말 줄이고 싶은 걸까?” 강씨는 반문했다. 전화번호 하나만 알면 너무도 쉽게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구심을 키운다. 강씨는 “그저 말로만 성매매를 하면 안 된다고 할 뿐, 성매매는 너무 쉬운 범죄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지금 법(성매매처벌법)으로는 성을 판매한 사람으로 처벌받기 때문에 신고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활동가들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김민영 센터장은 “현행법으로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성매매 종사자가 가장 많은 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종사자와 함께하는 단체들은 성매매처벌법을 개정해서 종사자가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내부고발 할 수 있는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문화일보 “기획파업” 왜곡보도와 ‘세 가지 무지’
노사 합의했는데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방문 뒤 결렬됐다?
양대노조 “사실 아냐”…이뤄지지 않은 합의, 방문시간도 틀려
보수언론이 따라쓰고 정치권서 인용하는 패턴 되풀이
“당사자 취재 않고 익명에 기댄 보도, 1면 올라가도 되나”
문화일보가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당일 ‘노사가 합의했으나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방문한 뒤 교섭이 결렬됐다’며 “민주노총의 기획 파업 의혹”을 제기했으나 잘못된 사실 관계에 기초한 왜곡 보도였다. 문화일보는 1면 머리에 익명의 서울시 관계자를 출처로 이같이 보도하면서도 당사자인 양대 노조 취재는 거치지 않았다. 언론이 문제적 보도를 하고 정치권이 이를 언급하며 노조의 쟁의 행위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양상이 이번 파업에도 되풀이됐다.
문화일보는 지난 11월30일자 1면 머리에 ‘화물연대 업무복귀 안 하면 안전운임제 전면 폐지’ 보도를 냈다. 문화일보는 이 보도에서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합의문 완성 직전 단계에서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방문 직후 교섭이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민주노총의 기획 파업 의혹이 제기된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노사는 전날 협상을 통해 126명 올해 인력 감축안 내년 연기, 기본수당 총액임금제 반영 등에 합의해 두 차례 기초문안까지 작성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노조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의 현 위원장이 오후 6시쯤 서울교통공사를 방문한 후 교섭이 정회됐다”며 “이후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이 오후 10시쯤 교섭 결렬을 선언한 후 퇴장했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민주노총 지휘 아래 노조가 협상을 결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출처는 “서울시 고위관계자 등”이라고 밝혔다.
▲2일 문화일보 1면 머리기사.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30일 오전 서울시청 서편에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그러나 노조 연합교섭단에 참여한 양대 노조는 해당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현 위원장이 방문한 시간은 오후 6시가 아니고 그 후 교섭이 정회된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오후 4시40분에 공사에 방문했으며, 정회는 그에 앞선 오후 2시5분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조는 “명순필 위원장이 오후 10시쯤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9시42분께 속개된 연합교섭단위원회에서 부결돼 교섭이 결렬됐다”고 했다.
합의 이뤄지지 않아…방문 시간도, 정회 순서도 틀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현 위원장 방문 전 합의 단계였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김판규 한국노총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교육실장은 당시 상황을 두고 “합의 그런 건 없었다”며 “공사 측이 경영 혁신안을 유보하겠다고 구두로 밝혀 노측이 문서화하자고 해 정회했다”고 했다. 그는 “문화일보가 어디서 그 얘길 듣고 썼는지 모르겠다”며 “보도 이후에 (정치권이) 파업을 ‘정치파업’이라 몰아가는 발언들이 나왔다”고 했다. 김정섭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교육선전실장도 “합의가 아니었다”며 “문화일보는 우리에게 아예 취재가 없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노조에 따르면 현 위원장은 노조 지원 요청에 따라 공사를 찾았다. 김정섭 실장은 “교섭 쟁점이 난항이라 상급단체인 현 위원장에 지원을 부탁했다. 안을 가지고 나갈 수 없어 방문 요청했다”며 “핵심 쟁점은 공사가 2021년 (강제 구조조정 않기로 한)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공사와 대화가 안 되니 공사를 사실상 지휘 감독하는 서울시에 이 문제를 수용하도록 압박하고 설득할 조치를 취해달라 했다”고 했다.
김 실장은 이번 파업에서 보수언론이 틀린 보도를 받아쓰고 정치권이 언급하며 노조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는 패턴이 반복됐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일 아침 기자회견에서 파업을 두고 ‘정치파업’이라고 주장한 뒤 문화일보의 ‘서울시 관계자’ 발 보도가 나왔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따라썼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후 합의가 타결된 뒤까지 국민의힘 의원은 물론 서울시당에서도 ‘정치파업’을 언급하며 파업을 비난했다”고 했다.
▲1일 중앙일보 9면.
▲1일 조선일보 1면.
화물노동자 특수고용인데 “비정규직 관심 없는 민주노총”
문화일보의 다른 파업 기사에서도 노조와 관련해 기본 사실관계를 틀린 대목이 여럿이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경기동부가 장악한 민노총, 별안간 협상 엎어’에서 “화물연대와 지하철노조 파업 등이 이어지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 실제로는 상위 10% 대기업 노동자만 대변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문제 해소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현재 파업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해당 기사는 또 현 위원장이 방문한 뒤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며 “이에 한국노총 집행부가 항의차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김판규 교육실장은 이에 “사실이 아니다”라며 “항의차 찾아간 것이 아니었으며 만남도 이뤄졌다”고 했다.
▲30일 문화일보 3면
문화일보 데스크 “신뢰할 만해서 썼다”
문화일보 데스크는 취재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병권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2일 통화에서 익명 관계자발 오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얘기해서 썼다. 당시에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고 했다. 당사자 반론을 취재하지 않은 이유에는 “서울시도 파업에 대해 책임 있는 기관”이라고 했다. 기사 수정 의향에 대해선 “(틀렸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그걸 왜 당신이 그리 묻느냐”고 밝힌 뒤 “한 쪽 얘기만 들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절차와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동부가 장악한 민노총, 별안간 협상 엎어’를 작성한 기자는 2일 문자메시지로 “‘항의 차’라는 게 취재 내용이었고 ‘설득차’라는 건 사후 주장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노조 간 만남이 이뤄진 데 대한 입장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특수고용노동자임을 알고 있는지 등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지난 30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파업 관련 안내가 나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은 1∼8호선 기준으로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었다. ⓒ연합뉴스
“당연한 노조활동을 이상한 행위처럼 덧씌워”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은 이번 보도가 노조에 대한 무지와 취재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일보 오보는) 기본적으로는 세 가지 무지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며 “첫째는 교섭에 대한 무지다. 파업은 노사가 요구를 가지고 줄다리기하다 불일치가 있을 때 발생하는 쟁의 행위다. 상급단체가 와서 파업하라 해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 갈등이 생긴 게 파업의 원인인데, 그 본질과 교섭 양상을 살펴보지 않고 낸 기사”라는 것이다.
▲서울시 유관사업장 노조들이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동파업대회를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이 실장은 이어 “두 번째는 노조에 대한 무지”라며 “한국 노동조합 구조는 단위사업장과 상급단체, 민주노총이란 총연합단체로 이뤄진다. 유사한 요구를 가진 사업장들이 함께 모여 싸우자는 취지다. 공공운수노조의 연대 파업도 정부 혁신 가이드라인이나 예산 감축에 함께 맞서고자 시기를 잡아서 진행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그 힘을 모으는 것이 상급단체 역할인데, 이걸 마치 꺼려야 할 이상한 행위처럼 그렸다. 노조 자체를 몰라서 나온 보도”라고 했다.
이 실장은 “앞서 두 쟁점은 산별조직이나 노조에 문의하면 금방 답을 받을 수 있다. 기본적 확인도 없이 익명에 기대 1면 보도하는 게 과연 허용돼야 하는가 의문”이라며 “당사자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공식 채널보다 익명에 의지하는 취재 관행이 특히 노동조합 관련 보도에서 심한데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지난 30일 서울교통공사의 반복적인 인력 감축 추진에 반발해 파업했다. 공사와 양대 노조 연합교섭단이 같은 날 자정께 합의를 타결했다. “재정 위기를 이유로 강제적 구조조정이 없도록 한다”는 지난해 합의를 재확인하고,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과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제기된 안전 인력 부족 문제는 노사TF를 꾸려 충원 방안을 찾기로 했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다시, 예금의 시대 만약 은행이 파산하면?
예금도 무한정 안전하진 않다. 예금자보호제도가 있지만 1인당 한도는 5000만원이다. 금액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금융회사와 소비자에게 양날의 검이다.
11월15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정기 예적금 특판 광고가 걸려 있다.ⓒ연합뉴스
다시, 예금의 시대다. 돈이 은행의 저축성 수신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11월9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지난달보다 56조2000억원 늘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정기예금 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평균 1.05%였던 예금은행 평균 수신 금리가 올해 9월 기준 3.35%까지 올랐다. 13.39%까지 올랐던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보다는 아직 한참 낮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첫 금리 상향 추세다. ‘돈은 은행에 묵혀두는 게 아니다’ ‘빚을 질수록 돈을 번다’는 게 금융 상식인 것처럼 통하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예금도 무한정 안전하진 않다. 은행도 기업이라 망할 수 있다. 내 돈을 맡겨놓은 금융기관이 폐업하거나 파산한다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997년 12월2일 한국 금융 역사상 처음으로 9개 종합금융회사들에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면서 정상 영업 중이던 종금사들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2011년 1월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도 비슷했다. 부실경영 진단을 받아 영업 정지를 당한 금융기관에서는 한동안 정상적인 예금거래가 중단된다. 맡겨놓았던 돈을 당장 찾아 쓸 수 없는 예금자들은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금융계 전반으로 번져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피해와 불안을 막아내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예금자보호법’이다. 1993년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은행이 도산할 경우에 대비한 예금자보호제도 도입을 중장기 정책과제로 설정했다. 2년 뒤 예금자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3년 뒤 예금보험 업무를 전담하는 기구인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됐다. 제도가 전면 시행된 건 1997년 1월부터다. 이때부터 예금자들은 은행이 파산해도 일정 한도 내에서 예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은행들이 평시 예금보험공사에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보험료가 이 파산 보전금의 재원이 된다.
첫 시행 당시 1인당 금융기관별 최대 예금보장한도액은 2000만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시적으로(1997년 11월19일~2000년 12월31일) 모든 예금이 전액 보장되도록 보호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가, 고금리 예금 유치 경쟁이 심해지는 등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수 발생하자 1998년 8월1일부터 부분보호제로 다시 바뀌었다. 그러다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된 2001년 정부는 예금보장한도액을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 한도가 20년째 유지되어왔다. 예금자보호법 제32조 2항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액, 보호되는 예금의 규모 등을 고려해 예금보장한도를 정할 수 있다. 20년 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배 증가했다. 예금 자산 규모도 5배 이상 늘어났다.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한도가 낮은 편이다. 미국은 1인당 25만 달러(약 3억3200만원), 일본은 1000만 엔(약 9500만원), 독일은 10만 유로(약 1억38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보장받는다. 이에 맞추어 예금보장한도액을 1억원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예금보험공사와 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부터 이런 요구를 포함해 예금자보호제도 개선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내년 8월까지 제도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예금보장한도가 상향되면 예금 유치액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납부해야 할 예금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이다. 예금보험료는 금융회사별로 매년 다르게 책정된다. 예금보험공사가 각 회사의 경영 및 재무 리스크를 평가하고 차등화된 예금보험료율을 적용한다. A+에서 C까지 5등급으로 나눠 각 업권별 표준요율(은행 0.08%, 보험사 0.15%, 금융투자사 0.15%, 저축은행 0.4%)에서 할인하거나 할증한다. 예금보장한도가 올라가면 목표 기금액이 증가하고 보험료율도 따라 오른다. 1997년 한시적으로 모든 예금 전액을 보호하게 되었을 때도 보험료율이 0.01% 올랐다(당시는 차등보험료율제가 아니었다).
예금보장한도 상향이 희소식이 아닌 이유
금융 소비자 처지에서도 예금보장한도 상향은 양날의 검이다. 한도가 올라가면 당장 목돈을 안전하게 불리고 지키기는 좋지만, 길게 보았을 때 은행이 지는 예금보험료 상승의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예금보험료율이 오르면 그만큼 수신 금리는 낮추고 대출금리는 높이면서 수익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금융사가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비용 중 하나에 예금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다. 예금할 자산은 없고 대출할 필요만 있는 서민층에겐 예금보장한도 상향이 희소식은 아니다.
보장한도 상향으로 금융시장 내 고금리 경쟁이 격화되면 결국 모두의 피해로 돌아갈 위험도 있다. 재정건전성이 열악한 금융기관일수록 출혈 고금리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하고, 위험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할 기회와 유혹에 노출된다. ‘예금보험 보호 한도액의 증대가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미치는 영향(박아련, 2012)’에 따르면 예금보장한도액이 증가함에 따라 은행들의 고정 이하 여신비율이 증가하고(건전성 악화), 총자산 대비 순이익률이 감소했다(수익성 악화). 금융기관과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금보장한도를 확대하더라도 금융회사 업권과 재정건전성 등에 따라 차등화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산 보전금이 원하는 때 당장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도 예금자들이 알고 있어야 할 사항 중 하나다. 예금자보호법에는 ‘보험 사고가 나고 2개월 이내 위원회 의결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지급 결정 시한만 명시되어 있다. 2017년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영업인가 취소일로부터 7일 이내’ 예금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보장한도를 초과한 예금액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절차가 끝난 뒤 파산 배당을 통해 일부에 대해 보전이 이루어진다. 87개 저축은행 파산 사례를 분석한 ‘금융기관 부실과 개산지급금 제도에 대한 연구(오승곤 외, 2011)’에 따르면 예금자들이 돌려받은 평균 배당률은 약 55.45%였고, 지급까지 평균 약 2.04년(1차 배당), 3.49년(2차 배당)이 소요되었다.
시사인 변진경 기자
문소리 저격한 '중앙' 안혜리 칼럼 유감
▲ 12월 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안혜리 논설위원의 '애도로 포장한 정치' ⓒ 중앙일보PDF
정치적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라는 단어 뜻 일부를 떠올려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안혜리 논설위원의 '애도로 포장한 정치'라는 제목의 칼럼을 봤다. 그가 과거에 쓴 칼럼은 주로 지난 정부의 방역 체계를 비판하거나 글로벌 기업 총수 혹은 정치권을 겨냥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다분히 정치적 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응원한다. 안 논설위원 글들은 우리 삶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방증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미끼를 대통령이 확 물어버렸다' (인터넷판 2022년 9월 29일자) 라는 제목의 칼럼이 영화 <곡성> 내용 일부로 시작하는 걸 보니 영화에도 꽤 강한 애정이 있어 보인다. 영화 담당 기자로 10년을 넘겨 일하다보니 한편으론 괜히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도 할 정도다.
하지만 '애도로 포장한 정치' 칼럼 내용은 좀 이상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중앙일보'가 '중앙일보' 했다고나할까. 안 논설위원은 지난 11월 25일 배우 문소리가 청룡영화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자신의 의상 스태프 이름을 언급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말한 걸 문제 삼고 있다. (관련기사 : 이태원참사 희생자 호명한 문소리, 돌발 발언이 아닌 이유 http://omn.kr/21rqi)
일단 해당 글의 '본인이 상을 받은 주인공도 아니고 시상자로 나와 이런 발언을 하는 게 뜬금없긴 하지만'이란 구절과 '솔직히 슬프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진짜 슬퍼해 주겠다는 시혜적 태도인가'라는 부분을 보자.
전자를 보면 시상식의 주인공은 수상자이니 시상자가 발언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소리의 애도를 일종의 목적성이 분명한 반쪽짜리이며, 진정성도 의심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사실 이런 시상식에서 시상자가 무대에서 '정치적' 발언을 한 사례는 적지 않다.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온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주 노동자이자 멕시코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나는 모든 장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멕시코 출신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작심 비판한 것이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주제가상 시상자였던 배우 케빈 하트가 "오늘은 시상식 앞줄에 앉아 제 얼굴을 자주 보여 드릴 수 있다. 다양성에 대한 부정적인 사안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고 오늘을 축하하자"고 말해 유색인종 배제 비판을 받던 아카데미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아카데미는 수상자뿐 아니라 시상자, 심지어 사회자도 다분히 정치적 발언을 시원하게 뽑아내는 무대였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 이후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정치적 발언이 너무 없었다며 미국 현지 언론이 비판하는 칼럼을 낼 정도다.
연예계 약자에 대한 관심, 환영한다... 다만
▲ 지난 11월 25일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시상을 위해 배우 문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 청룡영화제
문소리에 대해 '시혜적 태도'라고 지적한 부분을 보자. 그리고 그가 정치적 발언만 하고 정작 스태프 인권 문제엔 무관심한 것처럼 표현한 부분도 함께 보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관능의 법칙> 등 문소리와 6편의 영화를 함께한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 때도 한걸음에 달려와 간담회 패널로 참석해준 배우다. 정의로운 오지랖이 있는 분"이라 평한 적이 있다. 든든 센터는 영화계 내 성평등 문제를 직시하고 환경 개선을 위해 출범한 조직으로 각종 상담과 성폭력 예방 교육 등으로 영화 스태프들 처우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문소리는 영화산업의 독과점 구조를 해결하고,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제도화하자는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법' 지지 서명에도 함께 했다. 대규모 상업영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법을 위해 그는 배우 안성기, 정우성 등과 함께 성명서에 이름을 함께 올렸다. 이런 배우에게 '조건부 애도'라느니 '시혜적 태도'라느니 하는 건 평소 그의 행적을 너무 몰라서 하는 표현이라 치부해도, 너무 과한 비난 아닐까.
마지막으로 안 논설위원이 희생당한 스태프를 언급한 부분을 보자. 해당 인터넷판 글엔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는 연예계의 대표적 약자'라며 '열악한 노동환경'이 있었을 것이고, '격무에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문소리가 이를 모를리 없다(이 표현은 인터넷판에만 남아 있다)'고 표현돼 있다.
우선 열악한 연예계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을 걱정하는 안 논설위원의 시선에 박수를 보낸다. 분명 존재하는 일이고, 여전히 해결돼야 할 과제니까. 다만, 사실관계는 조금더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분히 문소리가 그런 열악한 환경을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그 글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소속사에 확인해봤다. 스타일리스트로 통칭되는 의상 스태프는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다. 해당 스타일리스트는 안 논설위원 표현처럼 어시스턴트는 아니었다. 현장에서 의상 전반을 책임질 정도의 경력이 있는 스태프였다.
소속사 측은 "마치 그분을 스타일리스트 보조 어시스턴트처럼 칼럼에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 분은 책임을 맡을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문소리 배우는 함께 일하던 분이 그런 일을 당해서 너무 슬퍼했고,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일정을 다 빼고 장례식에 갔다"고 말했다.
안 논설위원에게 묻고 싶다. 문소리의 발언이 정치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참사 이후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아무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은 건 맞지 않냐고. 사회적 참사,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장관이든 국무총리든 대통령이든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혹은 책임을 지고 사퇴해온 과거와 달리 이 정부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냐고. 국정조사를 겨우 합의해 놓고도 '이상민 장관 사퇴'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영화계 선배로서, 그리고 함께 일한 동료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게 그리 잘못된 것일까. 2021년 6월 대권 도전에서부터 대통령 취임사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수십 번씩 외치며 이를 강조했던 대통령이 있는데, 시상식에서 한 배우가 진상규명을 말할 '자유'는 있는 게 아닐까.
안 논설위원의 '자유롭지 않은' 경직된 시각이 유감스럽다. 글 제목인 '애도로 포장한 정치'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그야말로 한 배우의 애도를 정치로 포장해 공격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오마이뉴스 이선필(thebasi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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