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물난리·산불·허리케인…기후변화로 앓는 세계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여름봄겨울가을
돔은 겨울을 지내고 못 보던 쥐치가 잡히고
경북 사과는 다 옛말?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정 67만 명, 피해 인정은 949명
밥상 물가 상승의 원인은 ‘기후위기’] 농산물 가격 변동, 자주 반복되고 더 심해진다
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
온난화가 무지막지한 괴물 태풍 만든다
플라스틱 프리’ 외치는 사람들 “코로나와 환경, 무관하지 않다”
뛰어난 기후 적응력에 내병성까지 스트로브잣나무가 대세"
한국의 기후 운동, ‘우리’는 누구이고 ‘저들’은 누구인가?
기후위기 심각성 인식에 코로나도 큰 영향 끼쳤다
코로나, 54일간 장마...'1.5도 지키기' 약속은 어디로 갔나"
징그런 해충이라뇨? 애벌레는 크릴처럼 생태계의 밥”
태풍 마이삭에 핵발전소 멈추다..."자연재해에 더 위험한 건 원전"
역대급 물난리·산불·허리케인…기후변화로 앓는 세계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 찰스에 있는 자동차부품 판매업체 오토존 매장의 지붕이 허리케인 ‘로라’의 영향으로 통째로 뜯겨 나가 있다. 레이크 찰스|AP연합뉴스
</
전 세계 곳곳이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는 각각 100년, 46년 만의 폭우가 내렸다. 네팔·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서도 홍수로 물난리를 겪었다. 미국 서부에선 서울 면적의 9배를 태운 산불이 나는가 하면, 남부에선 160년 만의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이 불어닥쳤다. 과학자들은 전세계적 재해들이 지구 온난화에서 비롯됐으며, 이런 현상들이 온난화 시대의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시아 곳곳은 이례적인 홍수로 물난리를 겪었다. 중국은 6월부터 석 달 넘게 폭우가 내렸다. 양쯔강 상류에 있는 칭이강에서 지난 18일 100년 만의 홍수가 발생했다고 관영 CCTV가 전했다. 중국 남부 지방에만 수재민 6300만명이 집을 잃고 떠돌았다. 경제 피해는 1780억위안(30조379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몬순 우기를 맞이한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에서는 6월부터 시작한 홍수로 1300명 넘게 숨졌다. 인도에서는 46년 만의 폭우로 산사태가 나 868명이 숨졌고, 300만명이 수재민이 됐다. 방글라데시는 폭우로 국토 3분의 1이 침수됐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27일까지 내린 폭우로 각각 150여명, 90여명이 숨졌다. 1~4월까지 아프간 전역에서 1만7000명이 수해를 입었고 가옥 2000채가 무너졌는데, 지난 25일부터 아프간 파르완주에 내린 폭우로 가옥 수천 채가 추가로 파괴됐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이 증발하고, 대기에 수증기 수용량이 늘어나면서 폭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구 기온이 화씨 1도(섭씨 약 0.56도) 오를 때마다 일반적으로 대기는 수증기 4%를 더 수용할 수 있다. 2018년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3도 오르면 중국에서 연간 2000만명이 추가로 홍수에 노출된다. 한국 기상청은 지난 1~6월까지 시베리아 기온이 예년보다 평균 5도 올라가서 올해 한국과 중국의 장마 기간이 길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일부터 시작한 약 600건의 산불이 서울 면적 9배가 넘는 산림을 태웠다. 1만2000건에 달하는 동시다발적인 낙뢰가 산불의 원인이었다. 데이비드 롬프스 버클리 대기과학센터 소장은 지난 20일 매사추세츠공대 잡지인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지구가 더워지면 미국 전역에 낙뢰가 약 12%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자연기금이 펴낸 ‘지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숲이 말라붙으면서 산불의 규모가 1970년대보다 8배 늘어났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와 텍사스주에서는 허리케인 ‘로라’가 27일 상륙해 최소 14명이 숨졌다. 8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고, 주민 58만명이 대피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허리케인은 따뜻한 물에서 힘을 얻으며, 지구 기온 상승이 더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0년대 이후 극심한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는 대서양에서 약 두 배 늘어났다. 지난 2월 여름이었던 남극 시모어섬 아르헨티나 마람비오 기지에서 기온이 20.75도로 관측됐는데, 이는 관측사상 최고 기온이었다.
과학자들은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되면서 앞으로 점점 더 기후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리라고 우려한다. 미 환경전문잡지 그리스트는 6일 산불, 허리케인, 폭염, 가뭄 후에 진부하게 따라다니는 ‘뉴노멀’이라는 단어조차 지금의 기후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후과학에서 ‘정상(노멀)’은 30년 평균을 뜻하는데, 기후에 이변이 너무 많아 30년 평균을 낼 수조차 없어진다는 것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갈 데가 없지. 하는 수 없어서 오전에 지하철 타고 한 바퀴 돌고 온 길이야.”
지난 8월 19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문화센터 앞에서 만난 백정근씨(78)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날렸다. 가로수 그늘에 줄줄이 놓인 벤치가 백씨를 비롯한 동네 할아버지들의 피서 장소였다. 그늘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기온은 30도, 기상예보 사이트에 올라온 해당지역 기온은 31도였다.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경로당은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진 지난 3월부터 줄곧 닫힌 채로 있다. 그나마 열려 있던 주민센터의 무더위쉼터도 수도권 코로나19 방역지침 강화에 따라 이날 다시 문을 닫았다. 갈 곳이 없어서 모이다 보니 흔한 장기판이나 바둑판 하나 없다. 어르신들은 담배 연기나 내뿜으며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백씨 할아버지는 한낮에는 경로할인 덕에 무료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을 타고 더위를 식혔다. 목적지 없이 서울지하철 6호선을 타고 갔다 돌아오니 2시간 가까이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딱히 볼거리도 없는 지하철 구경이 재미있을 리 없다. 게다가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답답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갔지만 혼자 사는 집 역시 무료하긴 마찬가지다.
할아버지 몇 명이 모여 있어도 화제가 궁해 오가는 말은 많지 않다. “자고로 처서(處暑)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댔어. 며칠만 더 참아.” 옆에 있던 김모 할아버지가 날씨에 관해 한 마디 꺼내자 백씨 할아버지가 되받았다. “올해처럼 말복 지나 장마 끝나는 거 예전엔 본 적이나 있어? 날씨가 바뀐 지가 언젠데.” 이들은 오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늦은 장마를 겪은 적은 몇 번 있어도 올해처럼 길었던 적은 없다며 농사가 잘 안 될 것이라 걱정했다.
해마다 여름이면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뒤따른다. 그런데 올해는 기록적인 장마가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54일이나 이어졌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중부지방이 지난 8월 16일을 끝으로 지겨운 비 소식과는 작별했지만, 남부지방에선 폭염 특보가 발효 중이다. 길게는 지난 8월 11일 이래 폭염경보가 해제되지 않고 있는 대구와 경북 경산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폭염경보·주의보가 장마와 바통을 주고받은 상태다. 강원 영동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더위로부터 피할 곳은 없는 셈이다.
역대 최장인 장마 이어 폭염 특보
코로나19 사태로 노인정 등 취약계층을 위한 무더위쉼터가 5곳 중 4곳꼴로 문을 닫긴 했지만 폭염은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할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때문에 벌어진 물난리는 손 쓸 도리 없이 다가온 기후위기의 현실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진 것도 전례 없는 기후변화가 이미 위기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미 기후위기는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올해 장마철 폭우로 인한 물난리로 총 42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8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 규모가 막대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방자치단체도 18곳이다. 하천이 범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도 1500건이 넘게 발생했다. 또 농경지 곳곳이 물에 잠겨 전체 벼 재배 면적 가운데 3%가 침수됐고, 축산농가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80만마리 이상, 돼지 6000마리 이상이 홍수에 휩쓸려 폐사했다. 이런 피해가 벌어진 와중에 폭염이 바로 밀어닥치면서 복구현장에서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의 여파는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는 피해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사과로 유명했던 대구가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하지 못하는 도시가 된 배경에도 지구온난화가 자리 잡고 있다. 기온이 더 높아진다고 해서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수가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추운 날이 적어진 탓에 과일의 맛이 떨어져 기존의 유명 산지에서는 재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 문제는 논에서 잡초를 먹는 우렁이를 키우는 농가들이 따뜻해진 겨울 때문에 월동에 성공하는 우렁이들이 생기면서 우렁이농법을 포기하는 경우와도 닮았다. 잡초뿐 아니라 벼까지 파먹을 정도로 우렁이 개체수가 늘어나면 더 이상 논에 우렁이를 풀어놓을 수가 없다. 또 강원 동해안 지역의 황태덕장이 겨울 동안 눈 대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점차 대관령 등 고지대로 이동해야 하는 현실 역시 기후위기가 부른 변화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추세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100여년 동안 한반도의 연 강수량은 매년 평균 1.63㎜씩 증가했다. 기온 역시 꾸준히 높아졌다. 기상청 빅데이터를 보면 서울의 여름은 1910년대 10년 동안의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 들어서는 평균 131일로 늘어 3분의 1가량 더 길어졌다. 이미 한 해의 3분의 1이 넘는 38.3%를 평균기온 20도 이상인 여름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온이 오르는 경향은 대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 지구적으로 100년간 기온이 0.75도 오르는 동안 서울 등 국내 6대 도시는 2배가 넘는 1.8도나 올랐다. 이에 따라 2050년이 되면 한 해 폭염일수는 최대 50일까지 늘어나고, 폭염 사망자 수도 250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울은 1년 중 3분의 1이 여름
다른 자연재해와 같이 기후위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폭염 역시 인간사회 내부의 가장 약한 집단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다. 질병관리본부의 폭염 대비 건강관리 매뉴얼에 나와 있는 폭염 취약계층은 흔히 말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기도 하다. 노인,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 어린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던 2018년에는 국내에서 48명이 폭염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수치가 각급 병원 응급실을 통해 운영되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바탕으로 한 집계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폭염으로 인명 피해를 입는 인원은 이보다 3배 이상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취약계층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심각할 정도의 폭염이 아니더라도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 주민들이 여름철 경계해야 할 잘 알려지지 않은 대상이 있다. 바로 오존이다. 장마가 끝난 뒤 햇빛이 강해지고 기온이 오르는 이 시기는 대기 중 오존농도가 올라가 오존특보 발효가 잦아지는 때다. 오존은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배출가스 등에 함유된 질소산화물, 탄화수소류 등이 강한 자외선과 광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만들어진다. 햇빛이 강하고 맑은 여름철 오후 2∼∼5시 무렵, 특히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더욱 농도가 높아진다. 대기 중 오존농도가 높아지면 호흡기나 눈을 자극해 기침이 나고 눈이 따끔거리거나 심할 경우 폐기능 저하를 가져온다.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의 한 경로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폐쇄되어 있다. / 김태훈 기자
말 그대로 숨쉬기 힘든 날들이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겨울부터 봄철까지 한반도를 덮었던 미세먼지는 여름이 되면 농도가 낮아지며 진정세를 보이지만 곧이어 폭염과 오존이 함께 다가온다. 향후 미세먼지 관련 사망이 지금보다 2배 증가할 동안 지표면 오존과 관련된 사망자 수가 4배 증가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결과도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한여름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쓰고 더위 속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기후·생태위기로 인한 것임을 감안하면 당장 숨 쉴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기후위기에 맞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게 됐다.
기상학계에서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올해 최장 54일에 이른 긴 장마가 불러온 홍수와 산사태는 순식간에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인명을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치만 놓고 볼 때 폭염은 조용히 다가와 오래 지속되는 동안 목숨을 잃는 사망자 수를 급격하게 늘린다. 더위뿐 아니라 오존과 같은 부수적인 피해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폭염도 장마도 모두 거대한 규모의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미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많이 나왔어도 실제 시민들이 체감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분위기가 만연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빠르고 쉽게 행동할 수 있는 방향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제안을 찾아내고 공유하기 위해 지난 8월 6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 워크숍을 열었다. 시민들은 워크숍에 참여한 기후위기 관련 전문가들의 대책을 들으며 일상 속에서 당장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워크숍에서 발제를 맡은 <폭염의 시대> 저자 주수원 마을교육공동체포럼 공동대표는 “미국 시카고의 사례를 볼 때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 단지 건강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폭염에 관한 정보와 돌봄을 충분히 지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이러한 모습은 쪽방촌 등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자체는 한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문제지만 국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파급되는 피해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이러한 복합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시민들의 제안은 폭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한 시민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서울의 무더위쉼터 3769개소 중 77%를 차지하는 경로당의 절대다수가 문을 닫은 점을 고려해 1인용 무더위쉼터 공간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올렸다. 공중전화 부스처럼 도시 곳곳 접근성이 높은 지역에 설치하면 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은 물론 헬멧과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일해야 하는 배달노동자들에게도 쉴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다.
‘소리 없는 살인자’ 폭염
기후위기를 초래한 에너지 소비 증가 양상이 다시 고온다습한 여름철 기후 때문에 에어컨 사용이 늘며 더욱 심각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시민행동 제안도 있다. 대도시에서 여름철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절반이 넘는 58%가량을 건물이 소모한다. 때문에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은 “햇빛 반사율과 열 방사율이 모두 높은 밝은색 도료로 건물 지붕이나 옥상을 덮어 온도를 낮추는 ‘쿨루프’를 적용하면 도시 열섬을 막고 냉방에너지의 20%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단기간에 모든 건물에 적용하기는 어렵더라도 서울로 한정해 적용 가능한 모든 건물에 쿨루프를 도입할 경우 건물 온도를 평균 2도가량 낮추고, 100㎡당 연간 1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취약계층은 아니지만 옥외 노동현장에서 혹독한 기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2018년처럼 ‘폭염파업’을 겪지 않게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폭염파업은 의도적으로 파업에 나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일할 수 없고 휴식시간,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일을 멈춰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이나 도로공사는 물론 공원관리, 조리, 청소, 택배, 경비 등 노동현장에서 폭염 시 작업을 중지하고 휴게시간과 공간 마련을 강제하는 법적 조치와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시민들이 가까운 노동현장을 지나칠 때 안전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고 기준 준수 여부를 질문하기만 해도 안전한 노동 환경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한반도는 여름봄겨울가을
2020 청소년 기후위기 리포트
그래픽 장광석
2020년을 되돌아봅니다. 1~3월은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기상 관측 1973년 이후 전국 평균기온 상위 1위). 4월은 역대급으로 쌀쌀한 봄이었습니다(평균기온 하위 5위). 6월은 때이른 폭염으로 가장 뜨거운 초여름이었습니다(폭염 일수 상위 1위). 7월은 사상 처음으로 6월보다 선선했던 여름이었습니다. 6월 말~8월은 가장 많은 비가 가장 오래 내린 장마였습니다(강수 일수 1위, 강수량 2위).
누구도 예상 못한 ‘이상한 날’들이 이어진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긴 장마의 집중호우로 42명(잠정)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가축이 200만 마리 가까이 폐사했습니다. 폭염으로 8명이 사망했고 온열환자 961명이 발생했습니다(8월25일 기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농작물은 썩거나 시들고 어패류는 산소가 부족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런 연속적인 재난을 이해하려면 ‘나쁜 날씨’ ‘자연재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답은 지금 우리 모두가 떠올리듯이 ‘기후위기’입니다.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지구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0.87도 더 뜨거워졌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평균 지표온도는 1.8도 상승했습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기온 상승폭도 한반도(4.7도)가 전 지구 평균(4.6도)보다 다소 높습니다. “고위도로 갈수록 온도가 많이 올라가고 바다보다는 육지가 더 뜨거워지기 쉬운데, 한반도는 육지면서 중위도라 (전 지구보다) 온도가 더 많이 상승”(민승기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교수)하기 때문입니다.
폭우, 산사태, 폭염, 냉해, 고수온…. 정신없이 몰아쳤던 ‘2020년의 기후위기’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겨레21>이 전국의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이 동행했습니다. 기후재난이 삶을 관통할 당사자이자,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이수아 활동가)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됐다는 이들은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의 위력을 목격하고는 “미래를 살아갈 두려움”(박선영 활동가)이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자들의 취재가 더해진 ‘2020 기후위기 목격’ 리포트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기후위기에 관한 최소의 기록입니다.
이 리포트를 읽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요? <2050 거주불능 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행동지침을 따르면 됩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논의하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정확하게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려고 애써야 하는 입장이다. (중략) 환경파괴를 중단하는 일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즉 집단적으로 무작정 행동하되 극적인 방식은 물론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으로 해낼 수 있다.”
남원·충주=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청송=고한솔 기자 sol@hani.co.kr·완도=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돔은 겨울을 지내고 못 보던 쥐치가 잡히고
완도 우럭 양식장, 2016년 고수온 뒤 바이러스로 집단폐사 겪어
진해만에는 올해 장마 영향 홍합 집단폐사
폭우, 산사태, 폭염, 냉해, 고수온…. 정신없이 몰아쳤던 ‘2020년의 기후위기’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겨레21>이 전국의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이 동행했습니다. 기후재난이 삶을 관통할 당사자이자,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이수아 활동가)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됐다는 이들은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의 위력을 목격하고는 “미래를 살아갈 두려움”(박선영 활동가)이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자들의 취재가 더해진 ‘2020 기후위기 목격’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기후위기에 관한 최소의 기록입니다_편집자주
김기장(49) 사장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과를 시작합니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옆 완도군의 신지도 가두리양식장을 방문한 8월21일 해 뜨는 시각은 5시58분, 김 사장은 5시에 나와서 물고기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해가 뜨기 전에 식욕이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두 시간 넘게 걸리던 먹이 주는 시간은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더울 때 먹이를 많이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고 죽기 때문입니다. 전남 함평 지역에 고수온주의보가 연일 내려지던 때였습니다. 바다의 수온은 달궈진 뭍이 식은 뒤에도 8월 말, 9월 초까지 계속 올라갑니다. “일이 없어서 편하겠다고요? 물고기 무게가 돼야 출하하는데 그게 몇 달 미뤄집니다.” 우럭(조피볼락)은 5월 양식장에 새끼를 넣어서 다음해 12월에 무게 400~500g에 이르러 출하하는데, 여름 먹이가 줄면 그다음 해에나 출하할 수 있습니다.
제주 어부가 통영으로 간 까닭은
군대를 다녀와 부모님 양식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김 사장의 경력도 20년이 넘어갑니다. 고수온을 피부로 느낀 건 최근인 2016년의 일입니다. 폭염으로 뜨거워진 바다에 어류 바이러스인 이리도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어장에 있던 어류가 집단폐사를 했습니다. 바다 온도가 27~28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시기에 바이러스가 확 번져, 80% 정도 성장한 줄돔이 손도 못 쓰고 죽었습니다. “바이러스가 무서워요. 약이 없어요. 휩쓸면 다 죽는다고 봐야 해요.” 여전히 고수온이 생길 때면 해양 감염병이 양식장을 타격할까 두렵다고 합니다.
“완도는 적조도 없는 지역”으로 남쪽에서도 차가운 바다입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바다가 따뜻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럭 외에 줄돔, 감성돔, 빨간돔 등 비싼 종류의 치어(어린 물고기)를 키워 9월 경남 통영으로 보냅니다. 돔은 따뜻한 곳에 사는데 통영 쪽이 완도보다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9년에는 통영에 보내지 않고 완도에 남긴 돔이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완도의 겨울 바다가 돔의 최저 생존 온도인 7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서입니다. “벵에돔, 쥐치 등 안 보이던 게 낚인다는 말도 듣습니다.”
지난 1월 제주에서 만난 어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주에서 잡히던 어종이 이제는 잡히지 않아 통영으로 일터를 옮겨 잡고 있다고요. 익숙하게 잡던 어종을 따라 어부가 이동하는 거지요.
고수온이 빈번해지고 해수 온도가 점차 오르면서 등수온선이 올라가면 돔 등 비싼 아열대성 어종을 많이 잡을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태계는 급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이 상황에선 전체 수산자원이 줄어듭니다.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은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RCP(대표농도경로) 8.5 시나리오) 전세계 해양생물 총량은 최대 15.0%, 어획량은 최대 25.5% 줄어든다고 예측합니다(1986~2005년 대비 2080~2099년).
장보고대교 앞 전남 완도군 신지도 가두리양식장에서 김기장 사장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여름 끝무렵 고수온 시기에 관리를 잘 못하면 물고기 집단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구둘래 기자
미동도 없는 바닷속 민물덩어리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인근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플랑크톤의 크기가 작아지는 걸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열대 지역은 식물플랑크톤이 작아서 에너지 전달률이 낮아 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데,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거지요.
뭍에서 벌어진,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중부지방의 경우)는 바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해만에서 홍합 집단폐사가 일어났습니다. 거제·창원·통영·고성 4개 시군에서 굴, 가리비, 홍합, 미더덕, 멍게 등 6종 피해 신고는 827건, 피해액은 72억5800만원(8월25일 기준, 경상남도 자료)으로 추정됩니다. 원인은 빈산소수괴(산소가 거의 없는 물덩어리, 용존산소량 3㎎/ℓ 미만)입니다. 장마 때 바다로 엄청난 양의 민물이 밀려왔고, 바로 높은 온도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밀려온 민물이 꼼짝없이 바닷속에 갇혔던 까닭입니다. 이 경우 양식줄을 위로 당겨 산소가 풍부한 쪽으로 올리면 되지만, 이번에는 그런 조치로도 복구가 불가능했습니다. 평소 바닷속 10m에 자리하던 물덩어리가 5m 높이까지 올라왔답니다. 이렇게 수면 가까이 올라온 것은 처음이라고 어민들이 이야기합니다. 태풍(바비)이 물을 뒤집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 태풍 대비에 분주한 경남 고성군 해양수산과 관계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어주기만 하면 좋은데 바람이 거세면 양식줄이 날아가 2차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양식장을) 오래 할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김 사장은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고수온으로 먹이를 적게 주기는 하지만 양식장 한쪽에선 치어가 몇십 마리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치어가 죽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수온 상승? 산소 부족? 자기들끼리 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얕게나마 이해하기 위해 갔는데 사실 우리가 정말 이해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한 공감과 얕은 이해,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면 우리가 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피해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무례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더 민감하게 겪는 현장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무게가 얼마인지 결론 내리지 못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치어가 뻐끔뻐끔 숨 쉬는 것을 보니, 폭염을 마주한 우리처럼 보였습니다.
전세계 평균보다 높은 한반도 해수 온도
지난 46년간(1968~2013년)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은 약 1.19도 올랐습니다. 전세계 평균 표층 수온 상승(0.37도)보다 3배 이상입니다(국립수산과학원, 2014년). 누구도 예외 없이 기후위기에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피해 정도는 다릅니다. 서울에 사는 나는 완도, 한반도 끝으로 가서 기후위기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지구 평균온도 1.5도 상승(산업화 이전 대비)까지 7년4개월 남았습니다. 한국은 이미 1.8도 올랐습니다(‘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국립기상과학원, 2018). 우리가 만난 이들이 그리고 수많은 기후위기의 당사자가, 모든 생명이 안전하길 바랄 뿐입니다.
완도=김서경(18)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취재 도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경북 사과는 다 옛말?
사과나무 베고 체리 심은 청송의 김태현 농부,
겨울은 따뜻하고 봄은 냉해가 오면서 체리로 바꿔 심어
“농사짓는 사람들이 기댈 곳이 점점 더 없어지잖아요. 하늘마저도 이러니….”
8월21일 경북 청송군 부남면, 사과나무가 자취를 감춘 너른 대지에는 내 키만 한 체리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습니다. 다른 농민들이 심어놓은 사과나무에 빙 둘러싸인 그곳은 마치 섬 같았습니다. 베테랑 농부 김태현(55)씨는 2019년까지 이곳에서 30년째 사과농사를 지었습니다. 3300여 평(약 1만1천㎡)에 심긴 사과나무 1160그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자, 아들딸 건실하게 길러내게 한 살림 밑천이었다고 합니다. 자리를 옮겨 새로 심은 지 9년밖에 안 된, 인간으로 치면 청년기를 막 벗어난 전성기 상태였습니다. 제대로 관리가 안 돼도 15년은 갈 나무였습니다. 그런 사과나무를 2019년 11월 마지막 부사(사과 품종)를 수확한 뒤 베어냈습니다. 그리고 체리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미련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후에선 더는 사과농사를 지을 수 없겠다고, 3년여 고민한 끝에 결론 내렸기 때문입니다.
수정은 어렵고 꼭지는 짧고 표면은 거칠거칠하고
“겨울이 춥지 않아요. 눈도 안 오고요. 있는 사람들은 살기 좋을지 모르겠는데, 농사짓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에요. 겨울에 1차로 병해충을 박멸해야 하는데, 몇 년 사이 그 고리가 깨졌어요. 그러다 꽃 피고 수정될 시기에는 기온이 확 떨어져서 냉해를 입어요.
2019년 한 그루에 사과 185~200개가 열려야 하는데 평균 33개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해율이 83%였습니다. 바로 냉해 때문입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4월에 영하 날씨는 상상하기 어려웠는데요. 2018년 4월 영하를 기록한 게 2일(최저 영하 1.7도)이 되더니, 2019년 4월엔 7일(최저 영하 6.1도)로 늘었습니다(청송군청 제공). 개화기에 기온이 떨어지거나 서리가 생기면 꽃의 암술과 수술에 기형이 생겨 수정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운 좋게 수정됐다 해도 사과 꼭지가 짧아 과실이 나무에 매달리지 못하고 가지에서 밀려나 떨어지거나, 녹슨 것처럼 사과 표면이 거칠거칠한 동록이 생기는 등 제값을 받을 수 없는 사과가 속출한다고 해요. 사과 한 상자 가격이 절반까지 뚝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체리는 기후와 크게 상관없어요. 농사가 6월이면 끝나요. 그런데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어서 6월부터 우기로 접어들면 체리나무 저것도 다 캐내야 해요. 체리는 물을 많이 먹으면 당도가 떨어지거든요. 농사는 24절기마다 언제는 이것 심고 언제는 저것 하는 게 있어요. 지금은 그런 게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있어요.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어
8월21일 경북 청송군 부남면에서 체리농사를 하는 김태현씨가 자신의 농장에서 약 2㎞ 떨어진 심상국씨 사과농장에서 냉해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청송 사과 재배 면적의 94%에서 냉해 피해
청송 지역 대부분 농가는 여전히 사과농사를 짓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감내하면서요. 김태현씨 농가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심상국(42)씨는 체리농사를 짓기로 한 형님 김태현씨 선택을 묵묵히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과 대신 다른 농작물을 심을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데, 몇십 년간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모두 버리고 새로 농사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아요.”
심상국씨 과수원에 달린 홍로(사과 품종)는 붉은색으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과에 누렇고 우둘투둘한 무늬가 번졌습니다. 동록입니다. 그 옆의 사과는 꼭지가 너무 짧아서 가지에 찰싹 붙어 있더라고요. 2천여 평에서 30% 면적이 냉해로 이런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부모님 고향인 청송에서 2005년부터 사과농사를 지어왔다는 그는 이렇게 꼭지가 짧은 사과를 본 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홍로가 부사보다 꽃이 더 크거든요. 되게 복스럽게 보이는 꽃인데, 올해는 꽃과 꽃대가 작아서 꽃따기하려고 해도 어떤 게 살아남을지 모르니까 손을 못 대겠더라고요. 사람이 추위에 움츠리듯, 꽃대가 짧아지니 꼭지도 짧아지는 거죠.”
올해 청송의 3312㏊에서 저온 피해를 보았는데, 그중 사과 재배 면적이 3166㏊라고 해요. 청송 지역 사과 재배 면적(3339㏊·2018년 기준)의 94%입니다. 지난해에도 힘들었습니다. 서리(5월), 우박(6월)에 이어 17호 태풍 ‘타파’와 18호 태풍 ‘미탁’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농민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어요.
통계청은 2018년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 지역이 21세기 후반기에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주요 농작물 재배 가능지는 북상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사과, 복숭아, 포도, 인삼 등은 재배 가능지가 점차 줄어들 거라고 해요. 특히 사과는 주산지인 대구와 주변 지역(경산·영천·경주 등)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면서 충북(충주·제천)과 충남(예산 등)에 재배 면적이 집중됐고, 강원도(정선·영월·양구) 산간 지역까지 확산했다고 하네요. 결국 재배 적지가 급감해 21세기 말이 되면 강원도 일부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고 전망했어요. 올해 우리나라 사과 재배 면적(3만1601㏊)은 전년(3만2954㏊)보다 4.1% 줄었다고 합니다.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우리들
경남 김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은 이번 장마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고 하셨습니다. 얼갈이배추 가격은 2배, 상추는 1.6배 뛰었다고요. 과거 부모님이 걱정하니 오른 가격에 대해 불평만 했지, 농산물 가격을 오르게 한 기후위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사과농장에서 체리농장으로 바꾸는 게 농민의 선택에 달렸지만,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진다면 이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닐 겁니다. 기후위기로 불가피한 선택에 내몰리는 사람이 농민뿐만은 아닐 거고요.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설 기회조차 없이, 암담한 미래를 맞고 싶지는 않습니다. 2020년 3월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에 참여한 원고 19명 중 한 명이 된 이유도 그래서였어요. 나와 친구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법(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과 시행령 제25조 1항 등)이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냈어요. ‘사상 최고 폭염이다’ ‘사상 최장의 장마다’ 하는 말이 뉴스에서 반복되는 걸 보면서 기후위기를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미래 세대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기후위기로 우리 생존을 위협받는다면, 그때 우리는 누굴 원망해야 하나요?
청송=구민주(19)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취재 도움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정 67만 명, 피해 인정은 949명
"9년간 1만1518명 중 949명만 폐질환 등 3개 질환 인정돼"
"文정부 들어서도 낙제수준…정부·국회 해결 위해 전력해야"
비대위 "정부가 나서 추모재단 설립하고 추모제 진행해야"
사참위, 가습기닥터 등 신규 가습기살균제 9종 추가로 확인
1994년 출시 후 48종 판매…판매량 확인된 것만 990여만 개
"동일제품이어도 살균물질 농도 제각각…최대 32배까지 차이"
유족과 시민단체 "정부가 피해 인정 늘리고 피해자 적극 찾아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9년이 된 날, 참사 피해자들은 '아직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정부에 제대로 된 피해 대책 마련과 피해 규모 파악 조사를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31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1만1518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 신청자 중 8.2%인 949명만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고 구제급여를 받고 있다"며 "판정 신청자 10명 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유족과 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피해대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피해의 규모를 파악하는 조사조차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유족과 센터는 "정부는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과 피해대책 그리고 재발방지에 있어 무슨 성과를 냈는지 엄중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내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지 10년이 되는 날이 되기 전 정부와 국회가 전력을 다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다"고 촉구했다.
2011년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특별법 제정까지 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출산 전후 산모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원인미상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역학조사를 발표하며 처음 알려졌다.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최초의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해 판매를 시작한지 18년만의 일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그해 초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서였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옥시 불매운동 등을 통해 가해기업의 책임을 물었다. 2016년 하반기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국정조사가 추진됐다. 2017년 1월에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이 제정됐다.
같은 해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가슴 깊이 사과한다"며 "이 문제가 종료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알려진지 9년인데 피해 추정 67만 명, 피해 인정 949명
이후 2017년 11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기관지염, 비염, 편도염 등 상기도 질환군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새롭게 인정됐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식화 9주기인 이 날까지도 피해 신청자 10명 중 9명은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가 18년 동안 유통된 탓에 피해 추정 규모가 피해 신청자 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달 27일 한국사회의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 경험자를 67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보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겉으로 드러난지 9년이 지난 오늘까지 67만 명의 피해자 중 949명만 피해를 인정받은 것이다.
유족과 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문제 대응에는 초라한 낙제 수준의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앞으로 피해 대책 마련과 피해 규모 파악 조사에 적극 나설 것을 당부했다.
최용락 기자 프레시안
밥상 물가 상승의 원인은 ‘기후위기’] 농산물 가격 변동, 자주 반복되고 더 심해진다
지난 장마로 2만7900ha 농경지 침수·유실… “이상기후 걷잡을 수 없는 추세” 지적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지난 8월 2일 장마로 물에 잠겼다.
양파 농가는 올해 추대(숫양파)로 골머리를 앓았다. 꽃을 피우는데 양분을 쏟아 상품 가치 없는 추대가 상품이 될 주변 양파(암양파)의 생장을 막았다. 8월말 9월초 파종해 키운 모종을 10월 중순 지나 아주(완전) 심었는데, 추대가 돼버렸다. 겨울이 따뜻해 웃자랐다. 양파는 겨울 동안 잎 6개 이상, 밑동 직경 1㎝ 이상으로 빨리 크면 추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남농업기술연구원은 경남의 경우 전체의 30%에서 추대로 변할 꽃눈이 분화했다고 집계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추대로 작황이 좋지 않자 양파 가격은 현재 1년 전의 두 배인 2만원이 됐다”고 말했다.
추대로 앓았던 농가의 골머리는 8월 벼로 옮겨갔다. 추대를 만들었던 따뜻한 겨울이 여름엔 장마로 돌아왔다. 지난해 겨울 한국의 겨울 추위가 줄어든 데는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작용했다. 그리고 따뜻해진 시베리아는 여름 장마 전선의 정체에 일조했다. 장마는 54일간 이어졌다. 비가 벼를 삼켰다. 전국에 있는 벼 재배지 2만2304헥타르(ha)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전국 벼 재배면적(73ha)의 3%다. 경남 산청에서 양파와 벼농사를 짓는 서형자(66)씨는 “30년 넘게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처럼 나쁜 날의 연속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반복되는 생산 불안에 따른 농산물 가격 인상
춥지 않은 겨울, 50일 넘는 장마로 농산물 생산이 위기에 처했다. 특히 지난 장마로 국내 농산물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오이와 파프리카 농가가 많은 강원도 철원은 하우스가 찢기고 날아갔다. 700㎜의 ‘물폭탄’으로 한탄강 물이 범람해 농가 일대를 덮치면서다. 지난 8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낸 ‘호우 피해현황’에 따르면 2만7932ha 규모의 농경지가 침수·유실 또는 매몰됐다. 벼 재배지가 2만2304ha로 가장 피해가 컸고 밭작물(1802ha), 채소류(1638ha), 인삼·특용작물(698ha) 등 4138ha도 피해를 봤다. 축구장 약 3만8300개 규모다.
당장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농산물종합유통정보시스템(KAMIS)에 따르면 양파 20㎏ 도매가는 8월 25일 기준 2만500원에 형성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배로 올랐다. 평년 가격(1만9600원)과 비교해도 약 5% 가격이 뛰었다. 벼 재배지가 비 피해를 겪으면서 쌀 가격도 오름세다. 8월 25일 쌀 20㎏당 도매가격은 4만9780원으로 1년 전 4만8956원보다 올랐다. 오이(10㎏)와 파프리카(5㎏) 도매가는 각각 107%, 55% 상승했다. 문제는 생산 불안에 따른 가격 인상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라는 데 있다. 농산물 가격 인상 뒤에 지구온난화라는 기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기온은 1912년부터 2017년까지 105년 동안 약 1.8도 상승했고, 사과로 유명했던 대구는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하지 못하는 도시가 됐다. 또 온도 상승에 따른 여름철 강수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비에 약한 상추나 배추 등 잎채소는 매년 ‘금(金)상추’ ‘금배추’로 불리고 있다. 기상청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기온 상승으로 여름철 강수량이 10년마다 11.6㎜씩 늘었다고 분석했다.
가격 변동은 최근 들어 더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쌀 가격(20㎏ 도매)은 2015년(3만9719원), 2016년(3만4930원), 2017년(3만4930원)으로 떨어지다 2018년부터 급등했다. 2018년 4만5412원으로 전년대비 30% 상승을 기록한 쌀값은 2019년 4만8630원으로 또 뛰었고 올해 4만7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2018년 ‘사상 최악의 더위’가 왔고, 2019년 ‘최다 태풍’과 ‘겨울 기온상승’, 2020년 ‘최장 장마’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쌀농사를 짓는 임종완 서산간척지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더워 가물면 벼에 알이 안차고, 태풍과 많은 비에는 벼가 쓰러진다”고 말했다.
쌀 가격 폭등을 이끈 더위, 태풍, 장마는 모두 기후위기와 연관이 있다. 지구온난화가 북극의 고온 현상으로 나타났고, 북극과 북반구 내 온도차로 불었던 바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북쪽은 차고 남쪽은 더운’ 균형이 깨진 것이다. 실제 2018년 더위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북쪽의 냉기가 조율치 못해 불거졌다. 2019년은 달궈진 태평양 바닷물에서 끊임없이 태풍이 만들어졌고, 한반도에 평년의 2배 넘는 태풍이 닥쳤다. 그리고 올해 북극 기온 상승으로 극지방 주위를 도는 제트기류가 한반도 근처까지 늘어졌고, 장마의 북상을 막았다.
“농산물 수급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것”
전문가들은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앞으로 매년 심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후위기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추세로 자리 잡았다는 판단에서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기후변화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2018년은 캐나다 연안에 접한 단단하고 잘 부서지지 않는 빙하마저 녹아내린 해”라면서 “빙하는 지구로 들어오는 열을 튕겨내는 역할을 했지만, 빙하가 없으면 열 흡수가 늘고 기온은 더 빨리 올라간다. 이제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서울 기준)은 1910년대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 평균 131일로 늘어났다. 여름이 한 달 넘게 길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이미 1년의 3분의 1을 평균기온이 20도 이상인 여름으로 살고 있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는 “길어진 여름의 폭우와 가뭄, 또다시 불어닥치는 가을 태풍, 겨울의 이상 고온 등 변화무쌍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일상이 되면 농산물 수급은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농산물 가격과 같은 밥상 물가 상승만을 볼 것이 아니라 농업 지원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
1만년 전 가축화 재현 실험…온순해지면서 두뇌 감소 현상도
타이 정글의 적색야계 수컷. 매우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이 야생닭을 가축 닭으로 형질을 바꾸는 과정은 매우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란체스코 베로네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남아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매우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8000∼1만년 전 이들을 가축화하려던 사람들이 했던 첫 번째 일은 아마도 겁 없고 대범한 닭을 고르는 것이었을 것이다. 레베카 카타야마 등 스웨덴 리쾨핑대 연구자들은 실제로 이런 초기 가축화 과정을 재현해 동남아 야생닭(적색야계)을 육종하는 실험에 나섰다. 가장 순한 닭을 골라 육종한 결과 놀랍게도 10세대 만에 잘 놀라 다루기 힘들던 야생 닭은 잘 놀라지 않는 대범한 가축 닭이 됐다. 육종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도 나왔다. 가축화가 진행하면서 닭은 두뇌가 몸집에서 차지하는 무게 비중이 점점 작아졌다.
연구자들이 육종에 쓴 야생닭 암·수. 왼쪽 암컷은 칙칙하고 두드러지지 않는 모습이다. 페르 옌센 제공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우리 조상이 가장 온순한 닭을 골라 육종했을 때 그들은 동시에 다른 뇌를 지닌 닭도 선택했던 셈”이라며 “그런 두뇌가 사람과 함께 사는 데 훨씬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결과를 두고 야생닭이 가축 닭이 되면서 머리가 나빠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연구자들은 실험에서 가장 겁 없는 닭과 겁 많은 닭을 따로 골라 길렀는데, 가축이 되는 겁 없는 닭 쪽의 체중이 야생에 가까운 겁 많은 닭보다 무거웠다.
가축화가 진행하면서 두뇌의 절대적인 크기는 야생 때보다 커졌지만 체중에 견줘 상대적인 비중은 줄어들었다. 두뇌 가운데 특정한 스트레스 반응 등 원시적인 기능과 관련된 간뇌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야생닭을 육종해 가축화한 닭. 체중은 훨씬 늘어났지만 두뇌의 상대 비중은 줄어들었다. 안드레이 니미메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렇게 두뇌의 크기와 조성이 달라졌다면 기능은 어떻게 됐을까. 연구자들이 수행한 행동 실험의 하나로 깜짝 놀라게 하지만 실제로 해롭지는 않은 경험, 예컨대 플래시 불빛에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는지를 알아봤다. 길든 닭일수록 이런 자극에 훨씬 일찍 적응해 놀라지 않았다. 주 저자인 카타야마 이 대학 박사과정생은 “알 수 없지만 깜짝 놀라게 하고 그러나 위험하지 않은 사건들을 일상적인 일로 익숙해지는 것이 사람 가운데 사는 닭에게 이득이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또 다른 실험인 패턴과 먹이를 연관 짓는 연상 실험에서는 두 집단 사이에 성적 차이가 없었다.
공동 연구자인 페르 옌센 교수는 “닭을 비롯해 동물을 어떻게 가축화하는지, 또 그 과정에서 행동의 차이가 두뇌 구조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이번 연구로 좀 더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에서 기르는 210억 마리 닭의 원종은 적색야계로 인도 동부,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열대우림에 서식한다. 큰 볏과 광택 있는 화려한 모습의 수컷은 번식기에 ‘꼬끼오’ 하고 울어 짝을 찾고 봄에 한 번 산란하는 암컷은 환경 속에 녹아드는 수수한 빛깔이고 볏도 작다(세계를 ‘정복’한 닭 어디서 어떻게 퍼졌나).
소련 동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가 1959년 시작한 야생 은여우 가운데 온순한 개체만 골라 육종하는 실험은 현재 노보시비르스크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가 이어받아 계속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가축화를 재현하기 위해 야생동물의 특정 형질을 선택해 육종을 거듭할 때 어떤 형질이 나타나는지 보는 실험은 닭 이외에도 은여우를 비롯해 밍크와 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사람과 자주 만난 생쥐는 가축이 된다).
인용 저널: Royal Society Open Science, DOI: 10.1098/rsos.20062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온난화가 무지막지한 괴물 태풍 만든다
온난화가 태풍 피해 키우는 5가지 이유
에너지 더 많이 얻고, 수증기 더 머금어
가을까지, 더 북쪽까지 진출 피해 키워
거센 비바람을 동반한 제9호 태풍 '마이삭 '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 태풍이 스치는 제주도는 물론 태풍이 상륙할 남해안과 영남 지역에서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제10호 태풍 '하이선'도 일본 열도를 관통해 오는 7일쯤 영남지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7개의 태풍이 영향을 준 데 이어 올해는 지난달 8호 태풍 '바비'를 비롯해 3개가 연이어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셈이다.
기상청 국립태풍센터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 숫자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상륙하는 태풍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21세기 말까지는 태풍의 강도가 최대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기상전문가들은 지구가 더워지는 온난화가 지속할 경우 앞으로 태풍·허리케인 같은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해수 온도 상승이 초강력 태풍 만든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저기압은 더운 바닷물에서 탄생한다. 더운 바닷물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세력이 더 강한 태풍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심 기압이 낮고 더 강해지면서 파괴력이 커지는 것이다.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옌'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태풍의 최대 풍속은 초속 63.9m(시속 230㎞)를, 순간 최대풍속(1분 풍속)은 초속 87.5m(시속 315㎞)를 기록했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해수 온도는 평균 1도가량 상승했고, 그 만큼 강력한 태풍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발생하는 태풍 숫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태풍이 발생이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북서 태평양,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는 태풍 발생 숫자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적도 부근에 쌓인 열을 중위도 지방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게 태풍이므로 초강력 태풍이 한꺼번에 에너지를 이송하기만 한다면 태풍이 자주 발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②힘을 유지한 채 북상한다
지난 2016년 10월 초 태풍 '차바'가 강타해 부산·울산 등지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줬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태풍이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더 북쪽까지 이동하고, 더 늦은 시기까지 북쪽으로 진출하게 된다.
2016년 10월 한국기상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지속할 경우 21세기 말에는 한 해 동안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숫자가 지금보다 최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현재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숫자가 연평균 3.2개인데, 6개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상학자들은 "태풍의 경우 북위 27도 부근, 즉 대만 부근 해역에서 가장 강력해지고, 그다음부터는 약해지는 게 보통인데, 해수 온도가 높게 유지되면 태풍이 세력을 잃지 않고 한반도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달 서해로 북상했던 태풍 '바비'의 경우 대만을 지나면서도 세력이 줄지 않았고, 제주도 서쪽을 지날 때 세력이 가장 컸다. 특히, 태풍 ‘차바’처럼 10월 초인데도 한반도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왔다는 것은 ‘슈퍼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의 기준에 따르면 ‘슈퍼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태풍이다.
③해수면 상승이 침수·해일 피해 키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또,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 부피가 팽창해 해수면이 상승한다. 같은 세력의 태풍이라도 해수면이 상승하면 연안 침수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태풍 해일 피해가 증가할 수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한반도 해역에서는 평균 해수면이 최근 40년간 약 10㎝ 상승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산정된 해수면 상승률은 연평균 2.48㎜였고, 해역별로는 남해가 2.89㎜, 동해는 2.69㎜, 서해는 1.31㎜ 상승했다.
10㎝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먼바다에서부터 연안까지 드넓은 면적에 걸쳐 10㎝ 높이의 물을 태풍이 밀어댄다면 해안에서는 엄청난 높이가 될 수 있다. 태풍과 해수면 상승의 조합이 일어난다면 영종도 인천공항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진행된다면 2100년까지 한반도 연안의 해수면은 1.36m 상승하고, 남한 국토 면적의 4.1%에 해당하는 4149.3㎢가 해수 침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토지와 주택 침수 피해, 주민 이주비용, 경제활동 손실 등으로 2100년까지 286조원(현재 가치)에 이를 것으로 KEI는 추산했다.
④수증기 증가로 '물 폭탄'이 떨어진다
지난해 9월 제17호 태풍 '타파'가 몰고 온 '물 폭탄'으로 전국 곳곳에 폭우가 쏟아졌다. 제주도 한라산 어리목에서는 727.5㎜의 강수량이 기록됐고, 한라산 윗세오름에도 649㎜의 폭우가 퍼부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강릉에 하루 870㎜의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열역학 관련 클라우시스-클라페이론 방정식(Clausius-Clapeyron equation)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하면 대기는 수증기를 7% 더 포함할 수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도 상승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하게 된다.
2017년 8월 미국 텍사스 휴스턴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는 일주일 넘게 이 지역에 연간 총 강수량과 맞먹는 '물 폭탄'을 쏟아부었다. 1000㎜가 넘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지구온난화가 하비 강수량을 19~38%는 끌어올렸다고 추산했다.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도 인간이 유발한 지구온난화 시대가 오기 전을 가정한 환경과 비교한다면 하비가 뿌린 폭우 양이 15%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⑤느리게 이동하며 계속 타격한다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옌'. 태풍의 눈이 뚜렷하다. 미 해양대기국(NASA)
태풍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 빨리 지나가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키우게 된다. 누적 강수량도 많아지고, 강풍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진다. 지난 2018년 6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물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태풍을 비롯한 열대 저기압의 이동속도가 70년 전보다 10% 정도 느려져 피해를 가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북태평양 서쪽 지역의 경우 태풍 이동속도가 20%나 느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온난화로 대기와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열대지역의 대기순환이 약해져 열대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떨어지고,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면 같은 지역에 내리는 강우량이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로 태풍 피해가 증가한다는 것은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한 데 따른 결과이고,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구의 경고'인 셈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플라스틱 프리’ 외치는 사람들 “코로나와 환경, 무관하지 않다”
양은냄비·반찬통에 담긴 케이크
환경 생각한 카페·손님 합작품
장기적으론 일회용품 사용이
바이러스 취약 사회 만들 수도
31일 서울 종로에서 직장인들이 포장 음식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 201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컵, 빨대, 종이컵, 물티슈 등 일회용품을 찾아볼 수 없다. 매장에서는 물론이고, 포장을 원하는 손님들도 블루베리나 청포도가 올라간 예쁜 케이크를 일회용 상자가 아닌 집에서 쓰던 밀폐용기 혹은 양은냄비 등에 담아 간다.
하지만 플라스틱 없이도 인기 만점이었던 카페의 매출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카페를 운영하는 길현희씨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평소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70% 가까이 줄었다”며 “일회용품 포장 판매를 하지 않다보니 일반적인 카페들보다 타격이 더 큰 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식음료 매장의 일회용품 배출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커피전문점들은 테이크아웃(포장 판매) 서비스에 집중하고 배달도 시작했다. 일회용품을 이용한 포장 판매가 아니면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플라스틱 없는 삶, ‘플라스틱 프리’를 외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코로나19는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회용품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매장 월세도 내기 힘든 상황이지만, 길씨는 일회용품 사용 계획이 없다. 그는 “손님에게 플라스틱 포장이 안 된다고 하니 ‘요즘은 코로나여서 일회용품 써도 된다. 규제가 풀렸다’고 알려주시는 분도 있었다”면서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회용품을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길씨는 최근 카페 인스타그램에 ‘요즘 주위 카페에서 택배 포장이나 배달 앱을 시작한다는 공지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렇게라도 (영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격하게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지구가 정말 걱정이 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플라스틱프리 카페 ‘얼스어스’에서 손님들이 다회용기에 음식을 담아가는 모습. 얼스어스 제공.
.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2018년부터 플라스틱 프리 카페를 운영하는 정다운씨 역시 “확실히 손님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여전히 일회용품을 사용할 생각은 없다. 깨끗이 씻은 개인 식기나 다회용기 등도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일반 식당에서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평소 텀블러 사용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생활을 하는 직장인 김지현씨(33)는 “최근 회사에서도 배달이나 포장 음식을 사먹는 경우가 생기는데 먹고 쓰레기를 치울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며 “이 같은 생활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개인 용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이들의 노력은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없는 삶에 동참하려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2022년까지 일회용품 사용 35% 감축을 목표로 카페 등의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환경부는 올해 2월부터 공항·역의 식당,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의 일회용품 사용을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수도권에 ‘강화된 거리 두기 2단계’(2.5단계)가 시행되며 프랜차이즈 카페 등은 종일 포장 판매만, 제과점·패스트푸드점·일반식당 등은 오후 9시 이후 포장 판매만 가능해졌다. 일회용품 배출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회용품은 정말 더 안전할까. 지난 6월 세계 공중보건 전문가 115명은 ‘코로나 시대의 다회용품 사용은 안전하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플라스틱과 석유화학 산업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며 환경규제를 약화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플라스틱 없는 미래를 요구했다. 또 “플라스틱 포장에는 특별히 위생적인 것이 없다”며 “일회용 플라스틱은 사용 후 버려져서 청소노동자 등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일회용품 사용이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회를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한 신종 전염병 발생이 무관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적극적인 일회용품 사용 저감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류승룡·박진희, 기후위기 캠페인에 목소리 재능 기부
배우 박진희와 류승룡이 그린피스 기후위기 캠페인 영상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제공) 2020.09.03. photo@newsis.com
배우 류승룡과 박진희가 기후위기 캠페인을 위해 목소리를 재능 기부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3일 그린피스의 새로운 TV 광고 캠페인의 내레이터로 류승룡과 박진희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류승룡과 박진희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전 세계가 처한 지구온난화의 실상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전달한다. 앞선 그린피스의 TV 광고 캠페인에는 배우 류준열과 이선균이 참여해 북극과 플라스틱 문제를 알렸다. 이날부터 방송되는 영상은 우리가 당장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호주 산불로 목숨을 위협받는 코알라, 해수면 상승으로 서식지를 잃은 바다거북과 북극곰에 이어 우리의 아이들까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승룡은 "최근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기후위기 캠페인에 목소리를 재능 기부하게 돼 큰 기쁨을 느낀다"며 "많은 분들이 이 메시지에 귀 기울여주시기를 바라며 참여했다. 앞으로도 우리 환경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생활의 작은 실천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개인 SNS에 'STOP PLASTIC(플라스틱 그만)'이란 메시지와 함께 바다거북 사진을 올리며 팬들에게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 함께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평소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박진희는 "기후변화는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위기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번 캠페인의 취지에 깊게 공감하고 내레이션을 통해 참여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크리스티나 산 비센테 그린피스 동아시아 부사무총장은 "최근의 장마와 태풍 피해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역시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두 배우의 의미 있는 동참으로 더 많은 시민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뉴시스 akang@newsis.com
뛰어난 기후 적응력에 내병성까지 스트로브잣나무가 대세"
국립산림과학원은 기후에 적응력이 뛰어나고, 소나무재선충병에도 내병성을 가지는 스트로브잣나무를 우수 조림수종으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스트로브잣나무는 1964년 북미에서 도입한 수종으로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는 위도보다 남북으로 더 넓게 분포해 향후 우리나라에 급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수종이다.
또 춘천과 청주, 임실 등 전국적으로 조림된 스트로브잣나무 숲의 평균 재적생장량을 조사한 결과, 향토 수종인 잣나무와 비교해 1.5~2.2배 많이 생장하는 등 생장력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트로브잣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도 내병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지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수종이라는 평이다.
원산지인 북미지역에서는 스트로브잣나무가 자연 상태에서 재선충병의 감염이나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 위험수종 목록에서 제외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스트로브잣나무를 고급목재 생산용으로 대규모 조림하고 있다. 잎은 오렌지나 레몬보다도 비타민 C 함량이 높아 허브차로 음용이 가능하고, 형성층은 암이나 심장질환 예방에 효과가 좋은 레스베라트롤 등을 함유하고 있어 식·약용자원으로도 효용가치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형이 아름다운 스트로브잣나무를 공원 및 정원 식재용 등 조경수로 활용하고 있다. 탄소흡수능력도 뛰어나 우리나라의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산림분야의 기여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자원개량연구과 이석우 과장은 “향후 스트로브잣나무를 확대 조림하기 위해서는 형질이 우수한 나무로부터 안정적으로 종자를 생산·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먼저 생장과 형질이 우수한 임분을 발굴하고, 유전적으로 우수한 나무들로 조성된 채종원을 조성하여 우량종자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진환 (pow17@edaily.co.kr)
한국의 기후 운동, ‘우리’는 누구이고 ‘저들’은 누구인가?
지난 7월 14일, 정부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공개한 후 시민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발표 당일 나온 그린피스의 성명서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커녕 기본적인 기후위기 인식조차 결여”된 정부 계획을 일갈했다. 환경운동연합도 “탄소중립이나 생태계 복원 등의 과제들”을 간과한 채 “기존 사업들을 확대해 나열한” 정부 계획을 비판했다.
비판의 내용만 보면 정부의 그린 뉴딜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부에 그린 뉴딜을 전면 폐기하고 제대로 된 계획을 재수립하라는 요구를 낼 법도 한데, 그런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린피스는 정부 정책에 “크나큰 실망을 표한다”는 말로 비판의 포문을 열었고, 환경운동연합은 정부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이후 ‘보완’을 통해 “잘 추진되길 기대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협력적 동반자적 관계가 이런 것일까? 마치 ‘정책이 엉망진창이라 우리가 비판은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너희 곁을 떠나진 않을 거야’와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논평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발표된 다음 날, 기후위기비상행동(비상행동)은 정부안에 기후위기나 “경제성장 중심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각성” 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논평을 통해 ‘구조적 변화’의 필요성까지 강조했던 비상행동의 피켓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기후변화 말고 체제변화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대신 ‘기후변화 말고 사회변화’라는 애매한 문구를 담고 있었다. ‘체제변화’ 라는 표현은 너무 과격하다고 여긴 탓일까? 논평에 담긴 비판 정신과 피켓 문구 사이의 간극이 너무 또렷했다.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기후 운동은 각종 교육 프로그램, 토론회와 더불어 공공장소에서의 피케팅, 기자 회견, 퍼포먼스를 주된 행동 전술로 삼아왔다. 언론 취재와 SNS를 매개로 한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운동방식을 통해 기후 운동은 그나마 문제를 이슈화하고 대중적 공감대를 넓혀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온건한’ 운동 방식을 답답해하며 보다 급진적인 기후행동을 갈구하는 기후 활동가들의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우선 기후위기가 절박하고 급박한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보다 비상하고 급진적인 행동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정부나 기업이 기후 활동가들의 요구나 압력에 크게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다 보니 답답함이 쌓였던 측면도 있다. 여기에 해외에서 벌어지는 기후파업, 점거나 교통방해 같은 급진적 기후행동은 이런 문제의식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의 해결점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기후위기를 알리는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공공장소 피케팅도 계속되고, 한국전력공사나 삼성 앞에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투자를 규탄하는 행동들도 언론에 보도 되지만, 운동의 효능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회 운동은 많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현실 인식과 이 둘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동력으로 삼는다.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에서부터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나 최근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성화된 사회 운동에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명징한 정체성 구분이 수반됐다.
정치적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사회 운동이 사회적 갈등 조장을 통해 목표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집단행위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 상황은 예외 없이 진영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여기서 사회 운동의 목표는 정당한 ‘우리’와 그렇지 못한 ‘저들’ 간의 싸움으로 사회적 의미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언론과 대중으로 하여금 ‘선과 악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건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 운동의 일차적 과제다.
[정보공유 라이선스 2.0:영리금지]
적대적 관계에 기반한 정체성의 정치는 사회 운동 활성화에 필수적인 감정적 동원을 가능하게 해준다. 한국의 기후 운동은 과학적 지식과 정보의 유통에 많이 의존하는데, 각종 여론조사는 이미 한국인들의 기후위기 인식이 해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기후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식과 감정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탓이 크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다. 87년 6월 항쟁은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의 죽음을 거치며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분노로 전환된 결과였다. 너무나 공고한 가부장제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리고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는 많은 이들을 페미니스트로 만들기도 했다. 그전에는 정치가 어떻고 가부장제가 어떻고 하는 것을 몰랐기에 행동이 없었던 게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현실이 감정의 역린을 건드릴 때, 행동은 폭발하고 지식도 사회 운동의 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분노의 동원은 급진적 사상 혹은 이념의 도움을 받는다. 국제 기후 운동의 급진적 행동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면, 이들의 행동 뒤에 어떤 이념이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가 UN 기후변화 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어찌 감히! (How dare you!)”라 일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후위기의 절박성을 넘어 그 근본적 원인이 되는 성장 만능의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예컨대 지난 7월 16일 툰베리를 비롯한 유럽의 학생 활동가들은 지금껏 권력자들이 단 한 번도 기후위기를 위기로 다루지 않았을뿐더러, 사회적 부정의와 억압으로 부터 눈을 돌리려 한다며 유럽 지도자들을 질타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유럽 권력자들이 그린 뉴딜조차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삼으려 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존재론적 위기를 대하고 있고 이 위기는 무언가를 사거나 새로 짓거나 투자한다고 빠져나올 수 있는 위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기후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해왔던 경제체제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 것은 너무도 부조리한 일입니다. 현 체제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애초의 디자인 그대로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고쳐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기후위기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몇몇 화석연료 기업들만 탓할 문제도 아니다. 자연과 생태, 사람까지 체계적으로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위기의 원인이며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기후위기 극복도, 생태 다양성과 인간 공동체의 지속도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부정의와 억압의 피해를 받는 생태계와 대다수 인류를 포함하는 ‘우리’는, 이 체제에 기대 끊임없이 이득을 취하는 ‘저들’ 자본과 권력자들에 분노하며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기후 운동에서는 ‘우리’와 ‘저들’의 구분을 찾기 힘들다. 대신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당위와 수치화된 탄소배출 감축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가 주된 동력을 이룬다. 당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수치도 기후 운동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그러나 수치화 된 목표만 부각되다 보면 기후위기가 사람의 문제라는, 사람이 겪는 부정의와 억압의 문제라는, 하여 사람의 문제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기후정의 감수성이 들어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돈 벌려고 열심히 하니까 지구가 지켜지는 정책” 이라며 그린 뉴딜을 홍보하는 국회의원이나, 경제적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태양광업자, 그리고 재벌그룹 임원까지 기후위기 전사를 자처하며 기후 운동의 틀 안에 들어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꿈꿀 수 있는 급진적인 기후 운동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해외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어떻게 볼까?/ 김선철(독립연구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민중언론 참세상
.기후위기 심각성 인식에 코로나도 큰 영향 끼쳤다
녹색연합 시민 1500명 조사
96% ‘폭우와 코로나’ 꼽아
“정부 홍보로 정보 얻어” 5%
마이삭’이 몰고 온 돌덩이 제9호 태풍 ‘마이삭’이 부산에 상륙한 3일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 돌들이 굴러와 있다. 부산 | 우철훈 선임기자
시민 대다수는 최근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와 50일 넘게 지속됐던 최장 기간 장마가 인식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일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 14∼69세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변화 위기 인식’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 중 95.8%는 코로나19와 폭우 등을 겪으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답했다. 기후위기 심각성을 느끼게 된 계기로는 ‘올여름 폭우’를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고, ‘코로나19’와 ‘2018년 폭염’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가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응답자 3명 중 2명(66.7%)은 코로나19 사태를 기후위기와 연관지어 인식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 연구팀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산업 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 등을 꼽은 바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연구진 역시 코로나19의 원인을 ‘동물 서식지 파괴 및 야생 동물 거래’로 규정했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의 1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봤다. 기후위기 대응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중 36.9%는 ‘정부’라고 답했다. ‘기업·산업’(28.5%)과 ‘개인’(25.3%)을 꼽은 응답자들도 적지 않았다. ‘국회·정당’(4.6%), ‘언론’(2.7%), ‘교육기관’(2.0%)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시민 3명 중 1명은 기후위기 정보를 충분히 접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 취득은 ‘정부 홍보’(4.8%)나 ‘교육’(4.0%)보다 ‘언론 기사’(42.5%)와 ‘인터넷’(40.6%)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풍력발전기 풀썩 3일 오후 경남 양산시 에덴밸리 리조트 인근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한 대가 태풍 ‘마이삭’의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높아진 만큼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응답자의 90.8%는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90.6%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을 지원할 때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전제해야 한다는 데 응답자의 87%가 동의했다.
반면 응답자 4명 중 3명은 석탄발전소 가동 현황과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현황 등을 잘 알지 못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는 현재 국내에만 59기가 가동 중이며, 신규 발전소 7곳이 건설되고 있다. 응답자의 81.6%는 신규 석탄발전소의 건설이 지금이라도 중단돼야 한다고 답했다. 또 한국이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종료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90.7%가 동의를 표했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올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폭염, 폭우, 산불, 코로나19 등 재난이 일어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높아졌다”며 “많은 시민들이 기후위기 책임 주체로 정부를 지목한 만큼 시민 인식에 상응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조사는 지난달 20일부터 6일간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53%포인트다./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코로나, 54일간 장마...'1.5도 지키기' 약속은 어디로 갔나"
기후위기 비상행동, 파리협정 계획안 제출 앞두고 '기후비상 집중행동' 선포
최장의 장마, 연이은 태풍, 그리고 폭염 등 기상이변과 코로나19 재확산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환경단체가 기후위기에 정부가 대처해 줄 것을 촉구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코로나, 폭우, 폭염, 기후위기 우리는 살고 싶다' 기자회견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기후 위기로 빨갛게 변한 지구로 인한 생물 멸종 가속화를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인권·종교 등 200여개 사회단체 연대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이 2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기후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 54일간 이어진 장마, 이 재난의 이름은 다름 아닌 '기후위기'"라며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지 못한다면 기후 재난과 생물 대멸종은 이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1.5도를 지키기 위해 남은 시간은 불과 8년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5도는 '21세기 말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뜨거워지지 않게 노력을 기울이자'는 파리기후협정의 약속을 말한다.
이들은 "2020년, 올해는 모든 나라들이 파리협정을 지키기 위한 계획들을 제출하는 때"라며 "한국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안이하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향도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올해 말까지 유엔에 2030년 감축목표와 2050년 저탄소 발전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특히 "'그린뉴딜'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여기에는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의 강화도, 2050년 배출제로 목표도 없다"며 "이 땅에는 아직도 석탄발전소가 건설 중이고,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수출도 서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기후위기가 초래할 사회적 불평등을 우려했다. 이들은 "힘없고 약한 생명이 먼저 무너질 것이고, 그 재난의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또 이윤을 챙길 구실을 찾을 것"이라며 "기후위기는 이 사회의 불평등을 파고들 것이고, 정의롭고 안전한 삶이라는 인류의 꿈은 기후위기 앞에 무력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 9월 한 달 간 '기후비상 집중행동'을 선포하며 다가오는 25일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기후 정의를 위한 행동의 날'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정규석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우리 모두 하나뿐인 이 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를 기후위기로부터 보호하고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뚜렷한 목표와 정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9월동안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국회·정부·기업 등에 과감하고 시급한 기후정책 수립과 실행을 요구하는 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에 △기후비상을 선언할 것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할 것 △2050년 배출제로 계획을 수립할 것 △신규 석탄발전 건설, 해외 석탄 투자 중단하고, 탈석탄 로드맵 마련할 것 △기후재난 안전망을 강화하고 기후정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촉구했다. /프레시안 조성은 기자
“징그런 해충이라뇨? 애벌레는 크릴처럼 생태계의 밥”
인터뷰: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나비목 애벌레 전문 도감 ‘캐터필러’ 1∼4권 출간
24년간 애벌레 608종 기록, “생물 소재 가치 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이 각종 나방 애벌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크릴이 남극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먹이인 것처럼 나비·나방의 애벌레는 육상생태계의 ‘밥’ 구실을 합니다. 해충이나 징그러운 벌레로만 보는 건 오해이자 편견입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사진)은 지난 24년 동안 말 그대로 ‘애벌레와 함께 살았다’. 그동안 연구소가 위치한 강원도 횡성은 물론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나비목(나비와 나방)의 알과 애벌레를 사육시설에서 애지중지 길러 그들이 무얼 먹는지, 언제 발생하고 어느 지역에 사는지 등을 기록했다.
그 결과를 담은 나비·나방의 애벌레 전문 도감인 ‘캐터필러’(도서출판 홀로세)를 2016년 1권을 시작으로 지난달 4권까지 펴냈다. 캐터필러란 나비목의 애벌레를 가리키는 영어 명칭으로 어떤 장애물이든 타고넘는 애벌레의 독특한 배다리가 전차의 무한궤도를 닮았다는 데서 온 이름이다.
나비목 애벌레 전문 도감 ‘캐터필러’ 4권째가 출간됐다.
신종 나방도 2종 발견
도감 4권에 수록한 애벌레는 모두 608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나비목 곤충 약 3800종에 견주면 일부이지만 성체인 나방과 나비가 아닌 애벌레에 관한 정보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알이나 애벌레를 채집해 사육실에서 기르는데 곰팡이, 천적, 기생벌이 노리고 먹이식물이 무언지 몰라 굶어 죽는 일이 잦아 해마다 1000종 가까운 애벌레를 기르지만 성체까지 자라는 것은 100종도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일본과 미국의 저명한 애벌레 도감에도 나비목 애벌레는 200∼300종을 수록하는 데 그친다”며 “1000종 수록을 목표로 후속 도감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애벌레를 기르다 보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나방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소장은 지난 6월 게재가 확정된 국제 학술지 ‘산림연구저널’에 참나무굵은줄수염나방(가칭)을 신종으로 보고했다. 그가 이미 신종으로 발표한 홀로세큰날개뿔나방과 함께 연구소가 자리 잡은 강원도 횡성에서 채집한 나방이다. 또 과 차원에서 국내에 처음 보고되는 우묵날개뿔나방과 등 3개 미기록 과와 쑥둥근날개뿔나방 등 10종의 미기록종을 보고하기도 했다.
애벌레 은행’도 만들어
캐터필러 4권의 큰나무결재주나방 항목.
암청색줄무늬밤나방 애벌레. 천적이 오면 일제히 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쫓아낸다.
애벌레를 기르며 연구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애벌레가 ‘생태계 수레바퀴를 돌리는 엔지니어’라고 말한다.
“남극 바다에선 물고기부터 펭귄, 바다표범,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크릴을 먹고 삽니다. 크릴처럼 육상생태계에서 양이 많아 포유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다른 곤충에 이르기까지 먹여 살리는 주인공이 바로 나비목 애벌레죠. 흔하고 영양가 높으며 먹기 편하니까요.”
그는 애벌레를 성체인 나비나 나방이 되기 전의 미숙한 단계로 보는 것은 흔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나비나 나방의 일생에서 화려한 성체보다는 애벌레로 사는 기간이 훨씬 길다. 또 애벌레는 마치 별개의 곤충처럼 다양한 생존전략을 편다.
“워낙 다양한 포식자가 노리니까 애벌레도 숨고, 속이고, 겁주는 다양한 행동을 개발했어요. 가시가지나방은 몸을 구부리면 새똥 모양이다가 펴면 나뭇가지로 바뀝니다. 멧누에나방의 눈 무늬는 독사 머리 같고 암청색줄무늬밤나방은 몸을 흔들어 천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를 냅니다. 대왕박각시나방의 바람 빼는 소리나 산왕물결나방의 찌직 하는 전자음도 놀랍습니다.”
물론 식물에 애벌레는 어린잎을 마구 뜯어먹는 공포의 천적이다. 그래서 식물도 애벌레를 막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나 빽빽한 털, 두꺼운 잎 등의 물리적 방어 수단을 동원하고 나아가 화학적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식물은 알칼로이드나 페놀 화합물을 분비해 애벌레의 신경에 독성을 끼치거나 대사 활동을 억제해 먹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애벌레는 여기 대응해 화학물질을 해독하는 메커니즘을 발달시켰어요.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효소와 장내 미생물은 사람에게 의료와 산업에 쓰일 가능성이 큽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사육하는 모든 애벌레를 알코올 액침 표본으로 만들어 수장하고 있다. 이른바 ‘애벌레 소재 은행’이다.
암청색줄무늬밤나방 애벌레. 천적이 오면 일제히 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쫓아낸다.
애벌레를 기르며 연구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애벌레가 ‘생태계 수레바퀴를 돌리는 엔지니어’라고 말한다.
“남극 바다에선 물고기부터 펭귄, 바다표범,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크릴을 먹고 삽니다. 크릴처럼 육상생태계에서 양이 많아 포유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다른 곤충에 이르기까지 먹여 살리는 주인공이 바로 나비목 애벌레죠. 흔하고 영양가 높으며 먹기 편하니까요.”
그는 애벌레를 성체인 나비나 나방이 되기 전의 미숙한 단계로 보는 것은 흔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나비나 나방의 일생에서 화려한 성체보다는 애벌레로 사는 기간이 훨씬 길다. 또 애벌레는 마치 별개의 곤충처럼 다양한 생존전략을 편다.
“워낙 다양한 포식자가 노리니까 애벌레도 숨고, 속이고, 겁주는 다양한 행동을 개발했어요. 가시가지나방은 몸을 구부리면 새똥 모양이다가 펴면 나뭇가지로 바뀝니다. 멧누에나방의 눈 무늬는 독사 머리 같고 암청색줄무늬밤나방은 몸을 흔들어 천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를 냅니다. 대왕박각시나방의 바람 빼는 소리나 산왕물결나방의 찌직 하는 전자음도 놀랍습니다.”
장차 생물 자원화에 대비해 액침 표본을 보관한 애벌레 소재 은행 내부 모습.
그가 내 온 애벌레 도감은 상업적으론 실패다. 제작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가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은 “보면 볼수록 애벌레가 예쁘고, 무한한 생물자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벌레를 기르고 연구하는 일은 노동 강도가 세고 반복적이며 고달프긴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이 분야에는 세계적으로도 전문가가 거의 없습니다. 할 데까지 하는 수밖에요.”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태풍 마이삭에 핵발전소 멈추다..."자연재해에 더 위험한 건 원전"
부산 관통하던 3일 새벽 윈전 4기 일제히 셧다운...원안위, 원인 조사 착수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원자력발전소 4기가 정지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을 두고 전력 차단에 따른 대규모 정전사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은 3일 성명을 내고 "기후위기 시대 핵발전소는 대안이 아니라 위험일 뿐이다. 정부는 이번 신고리핵발전소 태풍 정지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핵발전소의 대규모 전력공급 중단에 대비한 대책 또한 점검해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 고리 원자력발전소. ⓒ한수원 고리본부
앞서 태풍 마이삭이 부산을 관통하던 이날 0시 59분쯤 신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신고리 2호기, 고리 3호기, 고리 4호기 순서로 원전 운영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는 이번 사고로 방사선 영향은 없다고 밝혔으며 발전기 밖 전력계통 이상으로 추정하고 상세 원인을 점검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4기 정지에 따라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해 조사 중이며 정지 원인이 밝혀진 후에 허가가 내려지면 다시 가동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은 "문제는 태풍으로 인해 다수호기가 밀집되어 있는 핵발전소 부지내 모든 발전소가 셧다운 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며 "다행히 이번에는 전력사용량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에 발생해서 문제가 없었지만 대규모 정전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발전소가 태풍으로 일시정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9월 13일 태풍 매미로 고리 1~4호기와 월성 2호기가 정지되는 사고가 있었다"며 "문제는 태풍의 피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발전소 내 뿐만 아니라 송전선로 문제로 인한 정전 등 외부전원공급 차단에도 핵발전소 정지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찬핵인사들과 보수정당들은 이번 여름 폭우와 홍수에 태양광발전이 산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가짜뉴스를 남발했다. 하지만 더 이러한 자연재해에 더 위험한 것은 핵발전소라는 점은 후쿠시마 사고와 이번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고리핵발전소 정지사고가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원전 안전에 대한 위기감을 나타냈다.
프레시안 박호경 기자
'세상과 어울리기 > 생태환경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13~9.18 팬데믹 또 기후 디스토피아 닥친다 (0) | 2020.09.13 |
---|---|
9.6~9.11 1년 전 오늘의 이 상황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0) | 2020.09.06 |
8.23~8.28 이대로면 환경악당국가 된다, (0) | 2020.08.23 |
8.17~8.21 병든 지구의 몸부림, 기후위기 속 코로나19 (0) | 2020.08.16 |
8.12~8.15 제주의 자연경관은 누구의 것인가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