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평가와 전망’ 여론조사
정부 노조 때리기 지지율 왜 오르나
“명백한 적”-“일전불사 결기”…새해 벽두부터 남북 군사적 긴장 고조
대일 외교 굴욕... 윤석열 정부 어디까지 갈 건가
왜 자꾸 일하다 죽는가, 영국 ‘로벤스 보고서’의 질문
북한·이태원 참사 없고... 윤 대통령 고집 드러낸 신년사
文 '불통' 비난하던 보수언론, 尹 '쇼통'에는 침묵 '이중잣대’
尹대통령 '실언'?…美 바이든 이어 NSC도 "한국과 공동 연습 안 해“
그날 국회는 유족에게 규정을 들이밀었다
윤 대통령 “뭐라도 잡아내려고 처가 수사”…검찰에 주는 메시지?
보고서 조작, 증거인멸 짜맞추기 수사의 흔적 [고발 사주 법정 중계 4차 공판]
도를 넘는 '2차 가해'... 대책도 의지도 없는 정부
일본의 '공격능력'과 한국의 '반격능력’
이태원 유가족 혐오 방치하는 유튜브
가계는 여윳돈 줄고, 기업은 대출 늘었다
중앙일간지 간부들 김만배와 돈 거래 정황 드러나 파장
윤삭열퇴진 이건희특검 22차 촛불대행진
초등생 급감… 5년뒤엔 30% 더 줄어 184만명
침체의 서막 1부 - 모두가 가난해진다
법인세 감세, 모든 국민에 혜택 돌아간다?
갈등을 치유하는 언론 VS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
SNL ‘MZ오피스’, MZ세대 공감인가 조롱인가
윤석열 정부 평가와 전망’ 여론조사
시민 과반 “내년 총선, 야당 후보 뽑겠다”
53% “현 정부 독주, 견제 필요성”
차기 여당 대표 적합도 질문엔
유승민 전 의원이 전체 응답자 1위
지지층에서는 나경원·안철수 순
[‘윤석열 정부 평가와 전망’ 여론조사] 시민 과반 “내년 총선, 야당 후보 뽑겠다”
내년 4월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국민이 과반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1일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차기 여당 대표로 나경원 전 의원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새해를 맞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달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2.9%가 ‘현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응답(38.1%)보다 14.8%포인트 높은 수치다. ‘모름·무응답’은 9.0%였다.
연령별로 민심이 크게 갈렸다. 20대부터 50대까지는 야당 투표 의사가 강했고, 특히 20대부터 40대에선 야당 투표 의사를 밝힌 사람이 10명 중 6명 이상이었다. 60세 이상은 다수(57.9%)가 여당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18~29세 여성은 여당 후보 투표(16.6%)와 야당 후보 투표(67.4%) 간 격차가 50.8%포인트로 가장 컸다.
현재 국민의힘 지지자는 여당 후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당층에서는 야당 후보 투표(56.4%)가 여당 후보 투표(24.9%)보다 많았다. 지역별로는 격전지로 예상되는 서울, 인천·경기, 대전·세종·충청에서 모두 야당 후보 투표가 50%대, 여당 후보 투표가 30%대로 조사됐다.
차기 국민의힘 대표 지지도는 전체 응답자와 국민의힘 지지층 간에 크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는 유승민 전 의원이 1위였지만, 국민의힘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나경원 전 의원이 앞서나갔다. 국민의힘은 최근 당헌·당규를 개정해 국민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고, 자당 당원투표 100%로 대표를 선출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자 간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전체 응답자 기준 순위는 유 전 의원(29.3%), 안철수 의원(9.6%), 나 전 의원(9.5%), 김기현 의원(4.6%), 주호영 원내대표(2.9%), 황교안 전 대표(2.7%), 권성동 의원(1.0%), 윤상현 의원(0.9%), 조경태 의원(0.7%) 순이었다. 유 전 의원은 민주당 지지자(50.0%)에게 특히 지지도가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자 사이에서는 나 전 의원(22.7%), 안 의원(14.8%), 김 의원(11.1%), 유 전 의원(10.6%), 주 원내대표(7.2%), 황 전 대표(4.5%), 권 의원(2.0%), 윤 의원(1.9%), 조 의원(0.9%) 순이었다. 유력 주자 가운데 나 전 의원·안 의원·김 의원의 지지도가 전체 조사 대비 뛰어오르고, 유 전 의원은 크게 하락한 것이 눈에 띈다.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전체 조사에서 29.8%였는데,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대상을 좁힐 경우 16.2%로 줄어들었다.
경향 조문희 기자
정부 노조 때리기 지지율 왜 오르나
약자들도 불신하며 사회적 고립
사업장 울타리 못 벗어난 한계에
도 넘은 책임론 ‘이기적 집단’ 매도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던 정부가 노조를 타깃 삼았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노조, 그중에서도 민주노총을 겨냥한 정부의 총공세가 이어졌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20%대에 갇혔던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화물연대가 파업을 접은 12월 33%까지 반등했다(한국갤럽 2022년 월별·연간 통합조사).
대우조선해양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유최안씨가 지난해 6월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화물창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각 1m의 철구조물을 용접해 스스로를 가둔 채 농성을 하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공권력 투입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 이준헌 기자
화물연대의 파업 과정에서 정부의 반노조 발언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파업의 이유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 “강경대응”을 강조하는 점은 역대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조에 대한 공세가 보다 노골적이고 적대적이었다는 점이다. 화물연대는 지난해 6월 정부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을 약속하고도 후속 논의에 의지를 보이지 않자 11월 24일 파업에 돌입했다. 나흘 만인 11월 2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물류 마비가 “코로나19나 이태원 참사와 똑같이 사회적 재난”이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노조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중대본을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전운임제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12월 1일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하자 “민폐노총(민주노총) 손절이 민심”이라며 “민폐노총에 경고한다. 철도노조에 기획파업을 사주하는 당신들의 검은 손을 당장 치우기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도 거들었다. 화물연대 파업 직후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약자들도 등 돌린 노동운동
문제는 노골적인 반노조 발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역효과는커녕 정치적 이득을 봤다는 점이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한 직후 발표된 11월 넷째 주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0%, 부정 평가는 62%였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한 직후인 12월 셋째 주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가 36%, 부정 평가가 56%로 나타났다. 7월 초 이후로 긍정 평가는 가장 높았고, 부정 평가는 가장 낮았다. 무엇보다 강경발언은 지지층 결집에 효과를 보였다. 원희룡 장관의 “민폐노총” 발언이 나온 직후인 12월 첫째 주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71%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둘째 주 62%를 기록한 이후 한 번도 70% 선을 넘지 못했는데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넘어섰다. 긍정 평가의 이유로 노조 대응을 꼽는 의견이 20%(한국갤럽 12월 셋째 주 조사기준)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비중이 소폭 하락했다. 수위 높은 발언에도 정치적 손해는 안 봤다는 얘기다.
이후 정부의 ‘노조 때리기’는 보다 과감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12월 13일 “산업현장에 만연한 조직적인 불법행위”라며 건설노조를 겨누더니, 이틀 뒤인 15일에는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과제의 첫머리로 노동개혁을 꼽았다. 급기야 같은달 21일에는 “노조부패도 공직부패, 기업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의 하나”라고 했다. 노동개혁이라는 국가적 의제에 부합하지도 않고, 노사단체의 자율적 운영이라는 국제 규범에도 어긋나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일반적으로 노동개혁이라면 제도적인 측면의 의제가 나와야 한다. 회계 문제라면 비리를 찾자는 것인데 검찰의 의제는 될 수 있어도 대통령의 의제로는 적합지 않다”고 했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성공적인 정치 기획이 된 배경에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이 있다. 실제 노조에 대한 불신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은 2013년부터 매년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기관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묻는 사회통합실태조사를 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대상 기관을 중앙정부, 대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 4가지로 좁혀 비교했을 때 박근혜 정부 1년차인 2013년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대기업(믿지 않는다 66.4%)이었다. 중앙정부(64.6%), 노조(58.0%), 시민단체(49.5%) 순으로 뒤를 이었다. 문재인 정부 1년차인 2017년에 노조를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62.0%로, 노조의 신뢰도가 대기업(68.7%)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에는 노조(52.2%)가 가장 신뢰도가 낮은 기관이 됐다. 반면 대기업은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43.3%로 4개 기관 중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
상대적으로 노조가 절실한 인구집단에서 노조 불신이 더 높게 나타났다. 노조는 기업이나 정부 등 권력 집단과 1 대 1로 맞상대할 수 없는 개개인, 사회적 약자들의 결사체다.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의 분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노조에 대한 불신은 연령별로는 19~29세(54.9%)에서, 가구 소득별로는 100만원 이상~200만원 미만(56.0%) 구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학력으로 구분하면 대졸 이상 고학력자보다 고졸 이하 저학력자의 불신 정도가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30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자 자리를 뜨는 국토부 관계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왜 상당수 약자마저 노조에 등을 돌렸을까. 윤석열 정부는 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책임이 있다고 진단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시장은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는 반면,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 노동시장은 임금은 낮고 고용은 불안정한 상태로 구조화됐다는 걸 말한다. 윤 대통령은 12월 26일 “노조가 노동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노 간 착취구조 타파가 시급하다”고 했다.
완전히 잘못된 진단은 아니다. 경제위기 때마다 기업과 정부는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대를 도모했다.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한국의 능력주의>(2021)에서 “갈등을 피하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기업 및 정부와 구조조정으로 인한 내부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기업별 정규직 노조는 외부로의 비용 전가에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악화를 용인한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다수가 동의하는 더 큰 문제는 노조가 단위 사업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기업에서 활동하는 노조를 기업별 노조라 한다면, 금속·금융 등 하나의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노조를 산별노조(초기업노조)라 부른다. 산별노조는 교섭도 산업별로 벌이는 만큼 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격차 해소에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산별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산업 전반에 적용돼 노조 밖의 노동자도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기업별 노조를 만든 이래 실질적인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이뤄내지 못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90%는 산별노조에 가입돼 있지만, 대부분의 교섭은 여전히 개별 기업 단위로 이뤄진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기 사업장, 우리 조합원이라는 틀을 뛰어넘는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기업별 노조는 ‘노조를 만든다’는 자본가와의 첫 번째 게임에서 살아남으면 그 자체로 완성이 된다. 노조가 가진 힘을 쓸 곳이 없으니 사업장 울타리 안의 조합원들만 챙기고, 이들의 임금인상에 모든 힘을 쏟게 됐다”고 했다.
노조 책임만 부각시키는 정부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노조가 있어도 임금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국외 연구에서 노조조직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정부 복지지출은 증가하고 임금불평등은 완화하는 경향이 확인됐던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김창오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교수의 2020년 연구를 보면 한국의 노조는 2011년까지는 불평등지수를 낮추는 임금평준화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2년부터 그 효과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로는 임금소득 7분위(상위 30%) 이상의 상위 임금노동자 집단에서 노조조직률 증가가 관찰됐다. 노조의 교섭 등을 통한 임금 인상 효과도 소득 6분위(상위 40%) 이상 노동자 집단에서 증가했고, 소득 1~5분위(하위 50%)에서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노조를 향한 비난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를 만드는 데 국가와 기업의 영향력이 노조보다 컸기 때문이다. 노조의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노조가 책임져야 할 범위는 제한돼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도 책임이 적지 않은 정부는 오히려 노조의 책임만 부각시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5일 2021년 전국 노조조직률이 14.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업체 규모별로는 300명 이상 사업장의 노조조직률이 46.3%로 가장 높았고, 30명 미만 사업장이 0.2%로 가장 낮았다. 이정한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우리 노동조합이 영세기업의 취약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인 만큼 정부는 보호받지 못하는 미조직 근로자들의 보호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취약노동자들의 노조조직률이 낮은 책임도 노조에 물은 셈이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노조 조직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귀족노조’, ‘정규직 중심 노조’라는 오명과 달리 민주노총은 2018년 말 기준 비정규직 조합원이 32만여명(당시 전체 조합원 수는 99만여명)에 달했다. 조합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노조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속도가 더디다. 가장 큰 장애물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할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노동조합법 등에 있다. 예컨대 5인 미만 사업장은 노조를 만들어도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특수고용직들은 노조를 만들어도 실질적인 교섭력을 갖기 어렵다.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조를 조직해도 유지하기 어렵다. 회사가 고용 안정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압박할 수 있고, 회사에 지불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면 조직률이 확 올라갈 수 있는데 ‘기득권 노조 때문에 조직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의 이중적인 행태”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 200여명과의 노동·교육·연금 등 3대 분야 개혁 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조합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노조가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기적 집단’이라는 규정도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의 2018년 연구를 보면 정규직 노동조합이 기간제, 파트타임, 일용직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에 대한 교섭을 시행한 경우는 전체의 37.3%로 나타났다. 적잖은 수의 노조가 제한된 파이를 두고 비정규직과 몫을 나누길 택했다.
노조의 사회적 고립을 자양분 삼은 노동개혁은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예컨대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가 반대하면 현행 노동시간 제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만 노동시간이 늘어나 노동시간도 양극화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예외적으로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당초 내년부터는 이들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여당은 2024년까지 주 60시간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규항 작가는 “노동을 혐오한다기보다는 노동자를 분리하는 전략이다. 노동제도가 악화되면 조직력이 약한 부분에 타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흐름 바꿀 계기 필요하지만
노동조합의 위기는 사회적 위기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노조가 중요한 이유는 그 집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힘을 가질 수 있는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정부와 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결사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기득권 집단이나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의 오해와 편견, 왜곡이 섞여 있을지언정 반노조 연대가 한국사회의 다수파가 됐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어보인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2022)의 저자 김학준 독립연구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취업 시장에 진입하기 전의 청년들은 본인이 노동자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거나, ‘나는 저렇게 안 될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못하면 잘리는 거지’라는 내면화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불신이 쌓였고, 이렇게 만연한 불신이 정부에게는 믿는 구석이 됐다. 다수파 전략이자, 합리적 선택”이라며 “그들에게는 이 연대의 끈이 나한테 안 온다는 확신이 있다. 연대하면 바꿔나갈 수 있다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사회가 부서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흐름을 바꿀 계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낮은 노조 조직률로 인해 노조를 직접 경험해본 일이 거의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실질적인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 선제적인 혁신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무엇 하나 물꼬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누가 이 갈등을 풀 수 있을까. 정치라는 답은 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정부·여당의 공개적인 반노조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은 그리 거세지 않았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정치구도가 잘못됐다. 유럽은 노동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 굳건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쪽은 반노조 발언을 계속하는데, 그 반대쪽도 막아서기는커녕 난처해하면서 손절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김윤철 교수도 “민주당이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 산업구조에 포획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 이효상 기자
“명백한 적”-“일전불사 결기”…새해 벽두부터 남북 군사적 긴장 고조
김정은 “2023년 전쟁동원 준비”
전술핵 탑재 가능 방사포 발사
윤 대통령 “도발에 확실한 응징”
육참총장, 북 침투 훈련부대 방문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노동당 중앙위 8기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12월26~31일)에서 “남조선괴뢰들은 명백한 적”이라며 “핵탄(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이를 기본중심 방향으로 하는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천명했다”고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1일 남북 정상이 경쟁하듯 “전쟁 준비”를 외치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정면대결하면서 한반도가 새해 벽두부터 전쟁 공포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지난 12월26~31일)에서 한국을 명백한 적이라고 규정하고 “2023년을 전쟁동원 준비와 실전능력 제고에서 전환을 일으키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대형 방사포 30문 실전배치를 앞두고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주요 군지휘관들과 통화하면서 “우리 군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보도자료를 내어 ‘일전 불사’ 방침을 밝혔고, 북한이 만일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김정은 총비서는 호전적이고 적대적인 대남 정책 기조를 밝혔다. 그는 “남조선 괴뢰들은 명백한 적”이라며 “핵탄(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이를 기본중심 방향으로 하는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천명했다”고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12월31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된 ‘30문의 600㎜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 연설에선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일 새벽엔 “인민군 서부지구 장거리포병구분대에서 인도된 초대형 방사포로 1발의 방사포탄을 동해를 향해 사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합참은 “1일 오전 2시50분께 평양 용성 일대에서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 초대형 방사포는 2019년 8월 첫 시험발사와 함께 개발 사실이 외부에 공개됐고, 여기에 전술핵 탑재가 이론상 가능하나,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기술이 완성되지 않아 아직 못 하고 있다.
이날 남북 정상 모두 ‘대화’ 대신 ‘전쟁’을 강조했다. 김 총비서는 ‘대화’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윤 대통령도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남북 정상 모두 대화·협상엔 관심이나 기대가 전혀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김 총비서는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 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 시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속한 핵반격 능력을 기본사명으로 하는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남쪽을 겨냥한 북쪽의 전술핵무기 등 “핵반격 능력” 강화 방침의 ‘억지 신뢰성’(핵무기 대응의 실행 능력과 의지)을 높이려는 의도적 공개 발언이다. 김 총비서가 개발을 독려한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란 고체연료 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뜻한다. 김 총비서는 “국가우주개발국은 최단 기간 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군사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합동참모본부과 육·해·공·해병대 등 군 수뇌부로부터 대비태세를 보고받고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이날 김승겸 합참 의장 등 군 지휘관들에게 “우리 군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후 국방부는 “북한이 만일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어 김승겸 합참 의장, 육·해·공군 작전사령관과 긴급 지휘관회의를 열어 “북한이 직접적인 도발을 자행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주저하지 말고,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며 “일전 불사를 각오한 응징만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적지종심특수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특수임무여단을 방문해 “여러분이 압도적인 대응의 핵심부대로서 적에게 전율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훈련에 전념하라”고 지시했다. 특수임무여단은 유사시 평양 등 북한 중심에 침투해 주요 시설 파괴, 주요 인사 제거 작전 등을 수행하는 최정예 특수부대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29일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아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강조했고, 이튿날(12월30일) 저녁 국방부는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 비행 시험을 했다.
김 총비서도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적투쟁 원칙”에 따라 “구체화된 대미, 대적 대응 방향”을 천명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김 총비서는 미국에 대해선 “‘동맹 강화’의 간판 밑에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새로운 군사 블록을 형성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남쪽에 대해선 “적대적 군사활동을 활발히 하며 대결적 자세로 도전에 나서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곤 “조성된 정세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동태에 대처해 압도적인 군사력 강화에 배가의 노력을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총비서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정세 인식에선 대미·대남 대화·협상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최근 통일연구원의 ‘2023 한반도 연례정세전망’ 보고서는 “2023년이 북핵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한해로 점철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경쟁적으로 감정적인 강경발언을 주고받다 남북이 ‘확전의 사다리’를 넘어가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시원 부산대 교수는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 미국, 일본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호기로 여길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자국 이익에 한반도 위기 상황을 활용할 것”이라며 “호전적인 분위기가 이어져 한반도 평화가 흔들리면 최대 피해자는 남북 주민들”이라고 말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당장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남북 정상 모두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위기 관리와 소통 문제 등 상황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대일 외교 굴욕... 윤석열 정부 어디까지 갈 건가
산케이 보도에 담긴 참담함... 한국군 장병 굴욕으로 이어질 수도
일제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의 종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산케이신문>에서 나왔다. 이 신문의 1월 1일자 기사인 '단독: 징용공 소송 문제, 한국이 1월 중에라도 해결책 제시, 일본 측에 전달(<独自>徴用工訴訟問題、韓国が1月中にも解決策提示、日本側に伝達)'이 그런 내용을 전했다.
이 기사는 지난 12월 26일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국장의 협의를 소개하면서 "빠르면 1월 중에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공표할 의향을 보인 것이 31일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서씨는 원고단이나 지식인들이 참가하는 공청회에서 의견을 청취한 뒤 신속하게 결론을 내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라고 한 다음, 한국 외교부가 제시한 방안을 이렇게 요약했다.
"해결책은 전 징용공 지원 활동을 하는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패소한 일본 기업의 배상금에 상당하는 기부금을 한국 기업 등으로부터 모금해 원고에게 지불하는 안이 유력하다."
이 방안은 지난 12월 26일에 피해자 법률대리인단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및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성명서와도 일치한다. 성명서는 "지난주 외교부 측으로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한 안을 청취"했다며 "한국 정부 유력안은 (1)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를 받아 재원을 마련하여 (2) 일본 기업을 상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월중 전범기업 대신해 한국 재단이 피해자에게 금전 지급"
피해자 측이 외교부로부터 들은 내용과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내용은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을 대신해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들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징용 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한국 측의 입장 전달이 지난달 26일 한·일 협의 때 있었다는 것이 <산케이신문>의 보도다.
행정안전부 산하인 위 재단은 지난달 21일 임시이사회를 통해 정관 개경을 의결했다. 재단의 사업 범위에 '피해자 보상 및 변제'를 넣는 이 개정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확정된다.
재단이 지원금 명목의 금전을 지급하는 것과 '보상 혹은 변제' 명목의 금전을 지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 정부의 재단이 후자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면, 책임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국 정부가 일본을 면책시키고 스스로 책임을 떠안는 모양새가 된다.
후자 명목으로 지급하면 또 다른 문제점을 만들게 된다. 피해자들에게 변제 형식으로 지급하면, 이들과 전범기업의 관계가 단순한 채권채무관계였다는 말이 된다. 일본제국주의자가 한국에 죄악을 짓고 간 게 아니라 빚만 남기고 갔다는 말이 된다.
만약 보상 형식으로 지급하면, 피해를 초래한 행위가 불법인지 적법인지 모호해진다. 합법적인 토지수용에 대해 보상이 이뤄지듯이, 보상은 불법행위뿐 아니라 적법행위로 인해서도 발생한다.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 형식을 취하지 않고, 변제나 보상 형식으로 처리하면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덮어주는 결과가 된다.
한국 단독 발표 유력
▲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 배상 문제 해결책 발표 전망을 보도하는 <산케이신문> 갈무리 ⓒ 산케이신문
<산케이신문>은 윤석열 정부가 그 같은 방안을 한·일 공동이 아닌 한국 단독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와 다른 방식으로 종결될 것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합의처럼 일·한 양국 요인의 대면 형식은 취하지 않고 한국 측이 단독으로 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국민들의 희망대로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일본의 성의표시만큼은 받아내겠다고 공언했다. 미쓰비시나 일본제철의 사과 표명과 더불어 얼마간의 금전 출연을 관철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산케이신문> 보도대로 흘러가면, 일본은 최소한의 성의표시를 하기는커녕 발표 현장에 나올 필요도 없게 된다. 위안부 합의 때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대신이 한국에 찾아와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현 외무대신이 한국을 찾아오지도 않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단독 발표로 사안을 봉합하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 협상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발표 현장에 일본 측을 참여시키지도 못할 정도라면, 2015년 합의는 물론이고 1965년 한일협정보다도 훨씬 못한 외교적 굴욕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1965년과 그 이전에 우리 국민들은 굴욕 협상을 그만두라며 거국적인 저항운동을 벌였다. 윤 정부가 단독 발표로 문제를 봉합하게 되면 1965년보다 더 굴욕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우리 DNA 속의 식민지배 상처를 다시 한번 짓누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거짓 주장을 내세우면서 윤 정부를 상대로 '해결책을 갖고 오라'고 요구했다. 윤 정부가 단독 발표로 종결시키게 되면, 이는 그간의 협상이 일본 측에 해결책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식민지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결책을 보여주고 승인을 얻고자 그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가 최종 발표를 하기 전에 "원고단이나 지식인들이 참가하는 공청회에서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공청회가 윤 정부의 최종 입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 이제까지 윤 정부가 개최한 민관협의회나 4자 현인회의(현자회의)가 국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산케이신문>은 "공청회는 결론에 도달하는 절차의 최종단계"라고 보도했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공청회는 문제를 종결짓기 전에 거쳐가는 형식적 관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곧 한국군 장병 굴욕으로 이어질수도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이처럼 윤석열 정부를 움직여 강제징용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려 하는 것은 이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일 군사협력을 안정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지금 일본의 최대 현안 중 하나는 반격능력 제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미일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공식 협조를 끌어낼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선제타격이나 다름없는 반격능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려면 주일미군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협조도 절실히 요구된다. 비상시의 반격능력 행사에 대비하려면, 북한·중국과 인접한 한국과의 연합군사훈련을 자주 실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보다 강력한 군사정보 공유 시스템이 한·일 양국에 의해 검토되고 있다는 1일자 보도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으로부터 군사 첩보를 신속히 제공받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게 되면, 윤 정부가 위와 같은 군사협력을 과감히 실시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기시다 내각은 윤 정부를 움직여 징용 문제를 조속히 종결지으려 할 수밖에 없다.
징용 문제의 봉합이 한일 군사협력 안정화로 나아가는 전 단계라는 사실이 한국의 운명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 방향대로 흘러가면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안보에도 커다란 불이익이 생기게 되리라는 점이다.
징용 문제를 굴욕적으로 봉합하는 쪽으로 일본과 손을 잡게 되면, 다음 단계인 한일 군사협력에서 한국군이 일본군에 예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징용 피해자들의 굴욕이 한국군 장병들의 굴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1965년의 굴욕적 협정이 대일 종속적인 경제관계를 초래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다음 단계에서도 한국은 대일 굴욕의 굴레에 계속 갇히게 된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의 굴욕적 한·일 협상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오마이뉴스 김종성(qqqkim2000)
왜 자꾸 일하다 죽는가, 영국 ‘로벤스 보고서’의 질문
세월호 참사 8년 뒤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 매년 800명 넘게 사람들이 일하다 죽는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영국은 ‘로벤스 보고서’로 이 질문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어린이 116명을 포함해 144명이 사망한 1966년 영국 애버밴 참사 이후 ‘로벤스 위원회’가 꾸려졌다.ⓒAP Photo
‘국가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이태원 참사 유족의 물음은 2023년 한국 사회에도 무겁게 울린다. 세월호 참사 8년 만에 일어난 국가적 비극 앞에서, 우리는 왜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지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적 실패’가 만연한 곳이 있다. 바로 일터다. 한국에서 매년 800명 넘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는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이나 ‘끼임’ 같은 재래형 사고다. 한국 산업안전 수준은 OECD 38개국 중 34위. 어떻게 보아도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산업안전에 관한 법이 존재한다. 교육도 하고 감독도 하고 처벌도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최선인가? 당장 무엇을 바꿔야 할까? 그 전에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애초에 뭐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나?
이 질문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회가 있다. 반세기 전의 영국이다. 1966년 영국 웨일스의 탄광촌 애버밴. 전날 내린 폭우로 불안정해진 석탄 폐기물 더미가 무너져 작은 초등학교를 덮쳤다. 7세에서 10세 어린이 116명을 포함해 144명이 사망했다. 앞서 수십 년간 주민들이 사고 위험이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무시되었다.
사고 후에야 광산 주변을 관리하기 위한 법안이 만들어졌다. 당시 집권당이던 노동당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원했다. 바버라 캐슬 고용·생산성부(노동부) 장관은 기존 법률보다 훨씬 포괄적인 새 안전 법안을 제출했지만 번번이 의회에서 막혔다. 여야도 노사도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즈음 영국노총(TU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녀는 이렇게 쓴다.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처리하는 방법은 오직 ‘고위급 외부 조사’를 통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의장과 서너 명 정도 위원으로 구성된 작은 기구여야 합니다.”
이에 따라 1970년 5월29일 꾸려진 기구가 바로 ‘로벤스 위원회’다(정식 명칭은 일터안전보건위원회). 아이러니하게도 애버밴 참사 당시 국영석탄공사 사장으로 책임자 위치에 있던 앨프리드 로벤스가 위원장으로 선택됐다. 이에 대해서는 영국 안에서도 비판이 나왔지만, 노동조합으로부터 두텁게 신임을 받고 있던 점이 고려되었다. 노동당 정치인 출신인 로벤스는 최악의 노사관계를 경험하고 있었던 석탄공사의 사장으로 10년간 재임하며 석탄 산업의 쇠퇴를 최대한 늦추고, 탄광 지역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다.
위원회 구성에만 반년 가까이 걸렸다. 여야 합의가 필요했기에 보수당 의원 머빈 파이크가 들어왔다. 노측 대표 시드니 로빈슨과 사측 대표 조지 비비도 합류했다. 법학 교수·방사선 전문의·경영 컨설턴트를 포함해 총 6명으로 구성했다. 위원회는 정부 부처 20여 곳과 관련 기관 100여 곳, 개인 38명으로부터 총 183개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공장과 연구소를 찾았고, 감독관들과 비공식 토론을 했으며, 캐나다·미국·독일·스웨덴을 방문했다. 그렇게 2년간 활동한 끝에 1972년 ‘일터에서의 안전과 보건(Safety and Health at Work)’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로벤스 보고서(Robens Report)’라 불리는 이 보고서는 영국 산업안전을 획기적으로 바꾼 기념비적 보고서로 평가받는다.
당시 사고 책임자 위치에 있던 앨프리드 로벤스 국영석탄공사 사장이 위원장을 맡았다.ⓒkmflett's blog 갈무리
사람들은 왜 안전에 관심이 없을까
로벤스 보고서 제1장은 “매년 영국에서 약 1000명이 일터에서 사망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보고서는 영국의 산재 사망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통계 비교는 타당하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자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전개는 다소 의외다. “직장 내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무관심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체로서의 사회는 재해에 민감하게 반응할지 몰라도, 사실 일터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사고란 개인의 경험 차원에서는 드문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기이한 역설”을 고려하면, 평소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안전의식을 갖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법을 더 많이 만들어서 지키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보고서의 답은 부정적이다. 바로 그 “엄청난 분량의 법”이야말로 사람들이 안전을 “외부 기관이 강제하는 상세한 규칙의 문제로 여기도록” 길들인다는 것이다. 앞서의 ‘무관심’은 바로 이런 토양에서 나온다. 따라서 대전제는 이렇다. “작금의 산업재해와 질병 수위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위험을 발생시키는 사람과 위험을 안고 일하는 사람에게 있다.” 보고서는 영국에 당시 존재하던 9종류의 법과 500개 규정들이 5개 부처와 7개 감독국에 걸쳐 중복되고, 그러면서도 5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법 바깥에 방치하고 있으며, 개정하는 데 평균 5년에서 길게는 15년이 걸릴 만큼 지식과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self-regulation)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은 규제를 완화하자는 뜻일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로벤스가 인간 본성에 너무 많은 신뢰를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로벤스 보고서에 가해진 대표적인 비판이다. 그러나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벤스가 말하는 자율규제는 규제완화가 아니다. 특히 사업주에게는 자율규제가 훨씬 더 부담스럽다”라고 말한다. “전에는 정부가 일일이 간섭했다면, 이제는 자기 사업장에 위험요인이 뭐가 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그 방법도 알아서 정하라는 것이다(이를 ‘위험성 평가’라고 부른다). 국어·영어·수학 공부를 한다고 해보자. 이전에는 책상에 몇 시간 앉을지, 밥을 언제 먹어야 할지 선생님이 정해주었다면, 자율규제에서는 90점 이상 맞는지만 본다. 물론 교재도 주고 시험에 뭐가 나오는지도 알려준다. 단, 공부는 자기가, 즉 노사가 해야 한다.”
로벤스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1974년 만들어진 ‘일터에서의 안전과 보건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로벤스식 자율규제의 작동방식을 알 수 있다. 과거 공장법 제1조는 작업장 청소 규정부터 시작했다. “모든 작업장의 바닥은 적어도 주 1회 물청소를 해야 한다”라는 식이다. 1974년 일터안전보건법 제2조는 이렇게 쓴다. “모든 사업주는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so far as is reasonably practicable)… 모든 자신의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 및 복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업주의 일반적인 의무를 규정하되, 그 구체적인 방식은 하위 법령(regulations)에 위임했다.
정부가 하위 법령으로 일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표준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만, 꼭 이것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으로 정하지 않았어도 산업현장에서 만들어지고 통용되는 ‘실무 규범(code of practice)’들이 있다. 로벤스 위원회의 권고로 만들어진 독립 행정기구인 영국 보건안전청(HSE)은 노·사·정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 실무 규범을 검토해 승인한다. 없으면 직접 만들고, 낡은 것은 개정하거나 폐지하기도 한다.
승인된 실무 규범은 법령이 아니지만 법령에 준한다고 인정받는다. 지키지 않았을 경우 법령 위반이 될 수 있으며, 감독관들은 이를 근거로 개선 통지를 내릴 수 있다. 각 사업장의 노사는 하위 법령이나 실무 규범 중에서 자신의 사업장에 맞는 것을 선택해 지키면 된다. 이것이 보고서가 말한 ‘자율규제’의 실체다. 심지어 보건안전청이 하위 법령을 고치거나 폐지할 수 있다. 법령을 없앤 게 아니라 유연하게 적용되도록 바꾼 것이다. 규제완화 우려를 일축하며 보고서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나태한 접근을 지지하지 않는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참사와 산재 사망과의 관계
로벤스 위원회가 출범하던 당시 매년 1000명 수준이던 영국 산재사고 사망자는 반세기 만인 2021년 123명으로 줄었다. 치명적인 부상은 일터안전보건법이 제정된 1974년 대비 약 88% 감소했다. 이 기간 영국의 산업이 중공업·광업·제조업 대신 서비스업 위주로 재편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86년에서 2003년 사이 영국에서는 치명적이지 않은 부상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그중 60%는 영국의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었으며, 나머지 40%는 안전기준 개선을 포함한 다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로벤스는 후에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로벤스 위원회 이후의 영국도 풍파를 겪었다. 안전 규제가 지나쳐서 영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비난이 심심치 않게 제기됐다. 그럼에도 50년이 넘도록 영국 일터안전보건법의 큰 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안전에 대한 영국식 접근은 유럽연합의 안전 지침에 영향을 주었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싱가포르도 로벤스 방식을 차용했다. 아직까지도 로벤스 보고서가 산재 판결에 인용된다.
어떻게 한 변화가 이토록 오래갈 수 있는가? 관건은 합의에 있었다. 로벤스 위원회는 노동당 정부하에서 출범했는데,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했다. 위원회는 보수당 정부하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고 보수당 내각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권고를 반영한 일터안전보건법은, 다시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 때 통과되고 집행되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이렇게 말했다. “전임 정부의 보고서나 위원회가 버려지지 않고, 보수당과 노동당이 초당적으로 협력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정당들이 일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실제로 일이 된다는 것이다. 로벤스 위원회를 보라. 내각의 장관이자 하원의원이 노사와 여야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렸고, 시간을 들여 문제를 근본부터 돌아봤다. 보고서가 나왔을 때 영국노총과 영국산업연맹(CBI) 모두 환영했다. 그 결과 법안이 만들어졌고 독립적인 보건안전청이 설치됐다. ‘어젠다 빌딩(의제 구축)’은 이렇게 하는 거다. 한국의 수많은 위원회와 보고서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
영국에서 애버밴 참사로 기소되거나 해임된 사람은 놀랍게도 한 명도 없다(로벤스는 석탄공사 사장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반려되었다). 이 역시 적절했는지 비판의 여지가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사 이후의 영국 사회가 안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어떠했을까.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이 해양경찰 해체를 선언했고, 해경 관계자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선장은 무기징역, 선원들은 징역 1년6개월~7년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8년 만에 이태원 참사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래프가 하나 있다. 연도별 산재 사망자 수다. 현재 공식 산재 통계는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은 시점이 기준이다. 통상 사망사고에서 보상까지 몇 개월에서 5년까지 걸리므로 시차가 있다. 이를 보정해 실제로 매년 몇 명이 산재로 사망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위 〈그림〉을 보면, 2014년 산재 사망자 수는 전년의 1111명에서 932명으로 무려 179명(16.1%) 감소했다. 지난 13년간 이 정도로 단기간에 산재 사망이 감소한 것은 처음이다.
이 데이터를 계산한 박두용 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해당 기간에 특별히 산업안전 제도가 바뀐 건 없다. 예산이나 인력이 크게 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산재 사망이 이만큼 줄어든 건, ‘사고 나면 큰일 난다’라며 기업도, 일하는 사람도 극도로 조심했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전’이 강조되던 사회적 분위기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 크게 감소한 산재 사망자 수는 2015년에 다시 상승선을 그린다. 박두용 전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2015년 그 1년 동안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안전 규범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아니라 정치 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부는 이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하기를 회피했고 유가족은 고립됐다. 2014~2015년의 그래프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해준다. 하나는 획기적인 예산이나 인력, 제도 변경이 없이도 기업 내에서 조금만 관리하면 산재 사망을 줄일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추가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장의 변화는 쉽게 후퇴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산업안전과 관련해 최근 몇 년 사이 두 가지 큰 정책 변화를 겪었다. 하청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이 법으로, 적어도 사내하청에 대해서는 원청 기업도 안전을 책임지게 됐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명확하지 않던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의무를 명시했다. 이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죽게 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두 법 모두 여야가 합의했기에 통과될 수 있었지만,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는 논란이 거세다. 김용균법 때와 달리 중대법은 입법 당시 더불어민주당도 소극적이었다(당시 민주당은 중대법 같은 특별법을 따로 제정하기보다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법 완화 의지를 드러냈다. 기획재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안전의무가 있는 ‘경영책임자 등’에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넣자는 법 개정 방향이 담겼다. 이러면 산재가 나도 중간관리자만 처벌받던 중대법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11월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영국 로벤스 보고서를 언급하며 “‘처벌·감독 단계’를 넘어 ‘자기규율 단계’에 진입”하겠다고 쓴다. 전형배 교수는 이런 접근이야말로 전형적인 오류라고 지적했다. “로벤스 보고서에는 ‘처벌이 심하니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내용이 없다. 자율규제가 되려면 처벌이나 행정규제 중 하나는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한국의 행정규제는 늘 약했는데, 감독관과 공무원이 산재를 다루는 숙련을 쌓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산재 문제를 직접 다루는 국내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은 현재 약 800명 수준이다. 이 중 절반 가까이는 행정직으로 3년마다 고용·실업급여·근로감독 등 부서를 돈다. 산재만 담당하는 감독관 중에서도 약 절반은 경력이 3년이 안 된다(문재인 정부 때 다수 채용되었다). 현직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ㄱ씨는 “그래도 6년은 해야 사업주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가능한데, 현장에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 산재를 일으킨 사업주가 숙련된 감독관을 만날 확률은 약 4분의 1밖에 안 된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영국처럼 일터 안전을 다루는 독립된 전문 행정기구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로 승격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 정부는 공무원 수를 줄이는 분위기다. 산업안전보건청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ㄱ씨는 산업안전 감독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이 ‘수용성’이라고 했다. 시정명령을 내려도, 과태료를 물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진득하게 해결하고 싶어도 다음 점검을 나가야 하다 보니, 해당 기업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근원적인 해결책까지 가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행정처분만 내리는 경우가 많다. ㄱ씨는 수용성을 높이려면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현장에서는 노도 사도 안전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기 부담스러워하고, 노동자들도 가외 업무가 생긴다고 여긴다. 사고 때마다 들끓는 분노와 달리,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의 핸드레일을 잡지 않는다. (카페의 가파른 계단을 가리키며) 만약 저 계단에 안전조치를 하느라 이 커피를 20% 비싸게 판다면, 소비자들이 이해하고 구매할지 회의적이다. 안전사회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안전을 위한 비용을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22년 5월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중대재해 예방 산업안전포럼을 열었다.ⓒ연합뉴스
“아무도 핸드레일을 잡지 않는다”
안전을 위한 비용 지불에 한국 사회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예컨대 건설 추락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강관 비계(강철로 된 관으로 만든 발판)’를 사고 발생이 덜한 ‘시스템 비계(일체형 작업 발판)’로 교체하는 변화는 더디다. 인건비를 아끼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가 파업하며 확대 적용을 요구한 ‘안전운임제’ 역시, 제도의 개선 여지에도 불구하고, 화물차 기사를 포함한 모두의 안전을 위해 누가 어떻게 비용을 댈 것이냐의 문제였다.
일터 안전과 시민 안전은 연결되어 있다. 로벤스 위원회 출범 전 영국에서도 건설현장 크레인이 관광버스 위로 무너져 승객 7명이 사망했다. 로벤스 보고서는 “공업 및 상업 활동에서 직접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쓴다. 보호의 범위는 자영업자에게까지 확장된다.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는 오늘날 더 무겁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1970년대 영국과 2022년의 한국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럼에도 이 고전적인 보고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처럼 중소기업에 안전 규제를 면제해주는 게 맞을까? 노동조합이 없는 곳의 ‘자율규제’는 어떻게 가능할까? 로벤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하나의 만병통치약도, 간단한 지름길도 없다. 이 분야의 진전은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심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개개인의 마음속에 일터 안전보건이라는 주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난 12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화물차 안전운임제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로 딸 조한나씨를 잃은 어머니 이애란씨는 딸에게 쓴 편지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니?”라고 물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만병통치약과 지름길만 찾다가 시간을 보낸 건 아닐까. 반세기 전 타국의 보고서가 또다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참고 자료:류현철 외, 〈로벤스 보고서 번역 및 해제〉,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정책보고서, 2022
시사인 전혜원 기자
북한·이태원 참사 없고... 윤 대통령 고집 드러낸 신년사
[전문] '자유·연대' 강조했지만... '윤석열식 개혁 반대=기득권' 규정, '약자' 없고 '평화'도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신년사에서도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자유 사랑'도 변함없었다. 하지만 북한이나 한반도 문제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한국 경제 악화를 우려하며 "엄중한 경제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계와 기업의 과도한 채무 부담 확대를 막기 위한 "선제적 관리"를 강조했지만, 경제 대책의 핵심은 "복합의 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수출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고 일자리의 원천이나 WTO 체제가 약화되고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안보, 경제, 기술협력 등이 패키지로 운영되고 있다"며 "우리의 수출전략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경제와 산업을 통해 연대하고 있다"며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연대는 지금의 외교적 현실에서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라고도 했다. 또 직접 수출전략을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정책의 방점이 '수출'에 찍혀있다면, 정치·사회 쪽은 '3대 개혁'이었다. 윤 대통령은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물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며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다.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봤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고등 교육에 대한 권한을 지역으로 과감하게 넘기고 그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이러한 교육개혁 없이는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내기 어렵다. 또 지역 균형발전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며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고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연금개혁 역시 중요하다"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금 재정의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그는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의 공통점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목표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논의해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며 "연금재정에 관한 과학적 조사·연구, 국민 의견 수렴과 공론화 작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여 국회에 개혁안을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개혁 반대세력을 "기득권"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는 "기득권의 집착은 집요하고 기득권과의 타협은 쉽고 편한 길이지만 우리는 결코 작은 바다에 만족한 적이 없다. 자유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연대는 우리에게 더 큰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며 "2023년 새해, 자유가 살아 숨 쉬고 기회가 활짝 열리는 더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와 연대의 대상은 모호할 뿐이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했고 정부의 경제·복지 정책 기조로 '약자복지'를 내세웠지만, 신년사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를 강조하거나 복지정책의 방향성을 보다 구체화한 내용은 없었다. 이날 오전 <조선중앙통신>이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발언을 공개하는 등 연일 한반도 긴장이 높아가고 있지만 북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참사 초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매일 합동분향소를 참배하기도 했지만, 이후 참사에 관한 언급을 아끼고 있다. 12월 16일 희생자 49재날에도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대표로 추모위령제에 참석했을 뿐, 윤 대통령 부부는 서울시 종로구 송현광장에서 열린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깜짝 방문'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점등했다. / 오마이뉴스
▲ 한국갤럽, 2022년 국정 수행 평가 월별 추이 한국갤럽이 매주 조사한 결과를 월별로 통합해 2022년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추이를 보여줬다. 출범 2개월차 하락이 두드러진다.ⓒ 한국갤럽
文 '불통' 비난하던 보수언론, 尹 '쇼통'에는 침묵 '이중잣대'
민언련, 주요 언론의 尹 대통령 신년사 보도 모니터 결과 발표
한국 주류 언론이 국민과 소통을 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간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3일 발표한 국내 신문과 언론 모니터 결과에서 윤 대통령의 신년사 발표를 두고 국내 주요 언론이 과거 문재인 정부 때와 다른 보도 태도를 보였다고 일침했다.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지난 1일 약 9분에 걸쳐 신년사를 발표했다. 각본 없는 신년 기자회견이 처음 시작된 김영삼 정부 이후 집권 2년차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것은 윤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민언련은 이 같은 이례적 상황에 관해 1일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 4사 저녁종합뉴스, 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보도를 확인한 결과, 우선 확인된 건 '기자의 질문 없는 신년사'라는 상황을 보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대비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KBS, TV조선, 채널A, MBN,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윤 대통령 신년사 발표가 출입기자 없이 일부 참모만 배석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고 민언련은 밝혔다.
제대로 된 국민과 소통이 없이 진행된 행사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반면 MBC, SBS, JTBC,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는 언론 질문을 배제한 윤 대통령을 두고 신년부터 불통 행보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JTBC는 "대통령실은 '업무보고가 많아서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을 하지만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상황에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회 비판했고, <한국일보>는 "윤 대통령의 불통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내 주요 보수 3대 언론의 하나로 꼽히는 <동아일보>의 경우 '기자 없는 신년사 발표'라는 점을 건조하게 보도했다고 민언련은 평가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해 오직 <조선일보>와만 독점 인터뷰를 진행해 역시 큰 논란을 낳았다. 이를 비판한 주요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뿐이었다고 민언련은 밝혔다.
이와 관련해 특히 민언련은 <조선일보>가 윤 대통령의 질문을 받지 않은 신년사 발표에 관한 비판을 하지 않았으며,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2022년 신년 기자회견을 취소했을 때와는 정반대" 태도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월 25일자 신문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국민은 문 대통령이 이 많은 현안들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궁색한 처지에 몰리면 국민 앞에 나와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뒤로 숨어 모른 척해왔다", "비겁한 행태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민언련은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논조"였다고 힐난했다.
<한국경제> 역시 문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댔다고 민언련은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2일자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부문의 구조개혁 의지를 천명"했으며 이는 "장밋빛 먼 미래 청사진이나 현실성 떨어지는 '소통' '타협' 같은 뻔한 말 대신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실행해야 할 3대 부문 개혁을 강조한 것"으로 "방향성이나 우선 순위에서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문 전 대통령 등 민주계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을 비교해 윤 대통령을 극찬하는 내용이다.
반면 <한국경제>는 작년 1월 26일자 사설에서 문 전 대통령을 두고는 "현안에 정통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오가는 기자회견은 가장 적극적인 대국민 소통수단"인데 문 전 대통령이 오미크론 변이 대응을 이유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며 이는 "'소통 대통령이 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에 정면 배치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제>는 이어서 "화상회견이라면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국민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차고 넘친다"며 "기자회견을 통한 대국민 소통은 대통령으로서 포기해선 안 될 최소한의 책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을 향한 사설 내용과 입장이 백팔십도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경제>는 작년 4월 16일자 사설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대담한 데 대해 비판한 바도 있다고 민언련은 밝혔다.
당시 이를 두고 <한국경제>는 "기자회견 대신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대담한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며 "'내 편' 언론인을 골라 껄끄러운 질문을 피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경제>는 "껄끄러운 사안에 대해선 뒤로 숨는다는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는 마당에 끝까지 '소통' 아닌 '쇼통'을 남기는 것 같아 유감"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이번 윤 대통령의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 <한국경제>의 과거 잣대로는 이번 윤 대통령의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도 역시 '쇼통'으로 볼 수 있다.
민언련은 국내 주요 언론의 이 같은 이중적 잣대를 두고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공동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에 따르면 '윤리적 언론은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며 '공정보도'를 천명"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신년사 발표로 대신한 데 대한 언론보도는 '공정보도'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尹대통령 '실언'?…美 바이든 이어 NSC도 "한국과 공동 연습 안 해"
국방부 "미국과 확장 억제 분야별 협력 강화 합의"…윤 대통령 정확한 이해 없이 해당 단어 언급한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연습을 논의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한 가운데,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방안을 한국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며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공동 핵 연습(joint nuclear exercises)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변인은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회담한 데 이어 (한국이) 북한의 핵 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효과적인 조율된 대응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미국은 한국과 동맹에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방위력을 통해 확장된 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은 또 미 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 공유 및 비상 계획과 모의 훈련 확대 등에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며 "아직 훈련을 할 시기는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실효적 확장 억제를 위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고,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핵무기는 미국의 것이지만 계획과 정보 공유, 연습과 훈련은 한미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2일(현지 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냐는 질문에 'No'(아니다)라고 대답하면서 한미 간 핵 공동 기획 및 연습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를 두고 김은혜 홍보수석은 3일 "오늘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로이터 기자가 거두절미하고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는지' 물으니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공동 핵 연습은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가능한 용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공동 연습에 대해 "작년 11월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공유, 협의체계, 공동 기획 및 공동 실행 등 확장 억제 분야별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에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공동 연습'이라는 단어를 다소 경솔하게 사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간에는 핵을 보유한 국가끼리 시행하는 공동 연습이 아닌, 확장 억제에 대한 협력을 합의했는데 윤 대통령이 이와 관련한 정확한 이해 없이 해당 내용을 언급하면서 양국 간 소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핵 전력 운용의 공동 기획에 대해서도 한미 간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 대변인은 "한미 간에 다양한 방안을 협의 중인데 그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그날 국회는 유족에게 규정을 들이밀었다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심신이 힘들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한 말이 아니다. 국정조사에 나와서 답변해야 하는 책임자들이 낸 불출석 사유다.
2022년 12월25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성탄 미사를 방해하는 보수단체.ⓒ연합뉴스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김원준씨의 큰누나 김선아씨(가명)는 오랜만에 녹사평역 인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12월14일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때 김원준씨의 영정 사진을 놓으러 온 이후 첫 방문이었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바쁜 일상에도 김씨의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너무 고통스럽게 가진 않았는지, 언제까지 이 참사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지….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도 분향소에 오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그는 말했다. “혼자 있으면 동생에게 못 해준 것들이 계속 생각난다. 혹시나 분향소 주변에서 누군가 내 동생에게, 다른 유족들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와서 직접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낫다.”
성탄절 저녁, 합동분향소 앞에서 진행된 성탄 미사에서 김선아씨의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미사를 진행하자 합동분향소 옆에서 집회 중이던 보수단체 신자유연대 소속 회원들이 노골적으로 미사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미사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을 비난했다. 김씨에 따르면, 한 여성은 희생자 영정을 향해 “너희들은 좋겠다. 천국에 갔잖니. 아줌마도 천국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주희씨의 어머니 이효숙씨 역시 이 광경을 목격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에게 이 미사는 의미가 남달랐다. 이씨는 미사 때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려 했다. 미사 시간에 편지를 읽는다면 하느님을 통해 딸에게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보수단체의 시위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미사 인파가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이효숙씨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원래 이씨는 크리스마스에 딸 주희씨와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핀란드에 살고 있는 큰딸의 집으로 가 오로라를 보고 성탄절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로 여행은 취소되고, 이씨는 핀란드 대신 주희씨가 숨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 맞은편에 섰다.
생전 마지막 통화에서 딸 주희씨는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일을 그만두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씨는 “돈 많이 벌어서 너 결혼할 때 엄마가 금송아지 사줄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것 필요 없으니 엄마 일 그만두고 몸 먼저 챙기라”던 딸의 당부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씨는 사업을 병행하면서도 이틀에 한 번꼴로 녹사평에 와서 추위를 버티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12월27일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띄워진 자료 화면.ⓒ시사IN 이명익
탄식만 터져 나온 국정조사
분향소를 지키는 유족들은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현장에도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제대로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12월23일에는 합동분향소 인근에 위치한 용산구청에서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유족들은 용산구청 지하 2층에 있는 통합관제센터에서 함께 그날의 CCTV 영상들을 살펴봤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용산구청 직원들 간의 질의응답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답변은 유족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상황을 제일 잘 알기 마련인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사령은 ‘그날의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안전업무 담당자인 재난안전과장은 ‘구속영장 청구로 심신이 힘들어서’ 현장조사에 불출석했다. 용산구청은 참사 발생 직후 어떻게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변하지 못했다. 유승재 용산구 부구청장은 “22시29분에 (소방에서) 당직실에 연락이 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당직실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고를 안 했던 것으로 본다. 그 직원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직실 직원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구청 측은 “해당 직원이 지금 구청에 없다”라고 답했다.
용산구청의 불충분한 대응과 답변에 유족들은 이따금 소리를 치기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하는 외침이 유족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용산구청 현장조사가 끝나고 분향소로 돌아온 이종철씨(이지한씨의 아버지)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 유가족들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국조 현장까지) 나왔는데 심신이 힘들어서 못 나왔단다. 재난에 앞서서, 재난을 맞닥뜨려서 스스로 행동한 사람도 하나 없다. 저런 사람들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걸 꼭 국민들께서 아셨으면 좋겠다.”
12월27일 이태원 참사 유족 조미은씨(오른쪽)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항의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12월27일 국회에서 진행된 1차 기관보고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국회의사당 4층에서 진행된 국정조사 회의실이 협소해 대부분의 유족은 2층에 있는 빈 회의장에서 TV를 통해 국정조사를 지켜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의가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사용 논란에 집중될 때마다 유족들의 탄식이 터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인정보 문제로 서울시로부터 유가족 연락처를 전달받지 못했다”라고 답하자 유족들은 허탈하다는 듯 웃기도 했다. 몇몇 유족들은 “국정조사가 저렇게 진행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거냐. 올라가서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오후 4시쯤 기관보고가 정회되자 유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국조위 위원들을 직접 만나 제대로 국정조사를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유족들이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국회 직원들이 앞길을 막아섰다. 길을 막는 직원들 앞에서 유족들은 “우리를 제발 내버려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회 직원들은 국회청사관리규정 제5조를 인쇄해 가져와서 유족들의 행동이 ‘점거, 농성’에 해당할 수 있다고 고지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층으로 내려와 “유족 여섯 분을 대표로 더 모시고 올라가겠다”라고 중재한 뒤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진선미 의원과 함께 올라간 유족들은 다시 한번 회의장 앞에서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유족들이 회의장으로 향하는 사이 기관보고가 재개됐기 때문이다. 잠시 뒤, 국조위 위원이 유족을 피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회의장 내부에 있던 유족들의 항의와 여야 위원 사이의 언쟁으로 기관보고가 다시 정회되자 조수진 의원(국민의힘)은 회의장을 나갔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실로 향하는 조 의원의 뒤를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가 쫓았다. 이씨는 조 의원에게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대화를 좀 하자”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조 의원은 응답하지 않은 채 법사위 소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갔고, 이종철씨는 다시 한번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함께 조 의원을 쫓아간 한 유족은 회의실 앞에서 “국회 벽이 이렇게 높았냐. 그러니까 이렇게 귀 닫고 눈 감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파행된 국정조사를 지켜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유족들은 다시 녹사평 합동분향소로 돌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며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먹어야 힘내서 버틸 수 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국정조사를 현장에서 지켜본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에게 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씨는 “감정을 잘 추슬러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똑똑히 지켜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12월28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놓였던 추모 물품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재가 열렸다.ⓒ김흥구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요”
그날 밤 합동분향소에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김연희씨의 아버지 김상민씨와 손님들 사이에서 들려온 웃음이었다. 국정조사를 참관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씨를 만나러 딸 김연희씨의 직장 동료들이 찾아왔다. 아버지 김씨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딸의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자 직장 동료들이 웃었다. 한참 사진을 보며 웃던 그들에게 김상민씨가 말했다. “건강이 최고예요. 돈 못 벌어도 상관없어요. 자신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게 부모에게 제일 효도하는 거예요. 위험한 것들 항상 조심하세요.” 그 말을 들은 한 직장 동료가 말했다. “며칠 전에도 연희 생각이 나서 한 시간 동안 울었어요. 저희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힘드실까요. 이제 저희를 서울에 사는 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김씨는 딸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번 분향을 하고, 합동분향소를 떠나는 이들을 배웅했다. 홀로 남은 김씨가 멀리서 합동분향소를 지켜보며 말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두고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요. 유족들이 덜덜 떨며 분향소를 지키는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거예요.”
12월28일 아침, 서울 서초구에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건물에서 ‘추모 물품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재’가 열렸다. 일주일 전 유족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놓였던 추모 물품을 정리해 민변 사무실에 임시로 맡겼다. 유족들은 시든 국화를 태우려 했으나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불교식 재를 치른 후 치악산에 있는 사찰 인근에 묻기로 결정했다. 재를 앞두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씨가 국민들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국민들께서 저희의 슬픔에 공감해주시며 주신 물품들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까지 진행된 국정조사는 저희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어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말씀 한마디가 저희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시사인 주하은 기자
윤 대통령 “뭐라도 잡아내려고 처가 수사”…검찰에 주는 메시지?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처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뭐라도 잡아내기 위한 수사’로 규정한 것을 두고 수사·재판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을 직할하고, 검찰 요직을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차지한 터라 윤 대통령의 저런 메시지가 수사와 공소유지(재판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조국 장관 내정자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이후에 몇 년이 넘도록 제 처와 처가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뭐라도 잡아내기 위해서 무슨 지휘권 배제라고 하는 식의 망신까지 줘가면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을 수사하자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처가를 겨냥한 ‘보복 수사’를 벌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부인인 김 여사와 장모인 최씨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는 수사지휘를 내렸다. 이 수사지휘의 대상이 ‘검찰총장’이기 때문에 김오수 전 검찰총장에 이어 이원석 현 검찰총장까지 윤 대통령 가족 관련 사건에 대해 보고받거나 지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 2021년 12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공범들을 줄줄이 기소했지만 주가조작에 돈을 댄 ‘전주’ 혐의를 받는 김 여사에 대해선 처분을 미뤘다. 검찰이 주범들을 기소한지 1년이 넘도록 김 여사에 대해선 소환 조사는 물론 서면 조사조차 하지 않자 더불어민주당은 김 여사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 재판에선 김 여사의 이름이 수차례 등장했다. 특히 검찰이 주가조작 작전에 가담한 투자자문사 사무실 컴퓨터를 분석하다 김 여사의 주식 현황과 계좌 내역을 정리한 ‘김건희’라는 파일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1차 작전 시기인 2010년 1~5월에만 계좌를 맡겼다고 주장해왔는데, ‘김건희’ 파일은 2차 작전 시기인 2011년 1월 작성된 것이라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적극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졌다.
최씨의 경우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심 재판 중이다. 최씨는 2013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땅을 매입할 때 통장에 약 349억원의 잔고가 있는 것처럼 증명서를 위조해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최씨는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에 대해선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증명 부족을 이유로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수긍한다”고 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 본인이 검찰총장이었기 때문에 부인과 장모에 대해 검찰이 수사, 기소, 공소유지를 제대로 하겠냐고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자신의 가족 비리 의혹에는 더욱 엄정한 수사를 하도록 해야 하는데 검찰은 물론 법원에도 ‘적당히 하라’는 메시지를 줬다”고 했다. 경향 허진무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 마을에 등장한 ‘응원’ 현수막
최근 사면복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의 기념관에 이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경북매일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보고서 조작, 증거인멸 짜맞추기 수사의 흔적 [고발 사주 법정 중계 4차 공판]
[고발 사주 법정 중계]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한 검찰이 참고인 진술을 왜곡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검찰이 김웅 의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근거 중 하나가 흔들리게 된 셈이다.
지난 12월5일과 12월19일 열린 3차, 4차 손준성 공판에서 검찰이 김웅 사건 종결 당시 참고인 진술을 왜곡하고, 고발 사주 보도 당일 증거인멸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림 못니
■ 2022년 12월5일 손준성 공직선거법 위반 등 4차 공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손준성 검사로부터 ‘백지 고발장’을 받아 미래통합당 관계자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를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겼다. 지난해 9월2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지난 12월5일 열린 4차 손준성 공판에서, 김웅 사건 종결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가 포렌식 수사관의 진술을 왜곡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검찰이 김웅 의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근거 중 하나가 흔들리게 된 셈이다. 12월15일 더불어민주당은 이희동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부장검사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하고, 공수처는 해당 사건을 수사3부에 배당했다.
변호인:2022년 8월29일 17시30분경 조성은(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와 관련, 중앙지검 ○○○호실에서 이희동 부장검사와 ㄱ 아무개 수사관과 함께 면담한 사실이 있나? 김웅 사건이 (공수처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됨에 따라 추가 수사 과정과 관련해 증인을 면담했던 것 같다.
증인(ㄴ 당시 중앙지검 포렌식 수사관):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면담하겠다고 해서 답변한 적 있다.
변호인:당시 ‘텔레그램에서 뭘 보냈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네 가지 가능성에 대해 질문받으셨는데 다시 읽어드리겠다. ①손준성 전달→김웅 전달→조성은 수신 ②손준성→제3자→김웅→조성은 ③제3자→손준성→김웅→조성은 ④제3자→손준성→제3자→김웅→조성은 이렇게 나눠 대화했는데, 기억나는가?
증인:그거는 부장님이 임의로 나누신 것 같다. 저에게는 ‘(특정인의 이름 대신) A가 B에게 준다면’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최초 전달자가 손준성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보고서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돼 있다.
증인:아니다. A가 B에게 파일을 보낼 때 시간값이 어디 기준이냐고 물었다. 텔레그램 서버를 통해서 보내니까 용량이 크면 보내는 행위가 끝났을 때가 생성시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공수처:그렇다면 증인이 기억하는 건 시간값에 대한 답변이고, 피고인이 어떤 식으로 개입했다는 등의 의견 관련 진술은 없었다는 건가?
증인:그렇다.
공수처:면담 과정에서 (제3자) 개입 여부가 중요한 내용이라고 (면담 보고서) 결과가 작성돼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증인:받은 적 없다. 오히려 그렇게 물었다면 저는 내용을 몰라서 설명 불가하다고 했을 거다.
공수처:면담 내용을 다시 읽어드릴 테니 맞는지 확인 부탁드린다. 아까 변호인이 네 가지 경우를 얘기했다. ‘가능성 중에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모두 가능하므로 손준성이 최초 전달자가 아닐 수도 있음’ ‘전달자라 할지라도 그 파일 작성을 의미하지 않음’ ‘여러 가능성 중 실체가 뭔지 확인할 필요 있음’ 이 내용 중 증인이 말한 게 있나?
증인:없다.
공수처와 변호인은 텔레그램 기능을 두고 증인신문을 벌이기도 했다. ‘손준성 보냄’이 실제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문서를 받지 않고 ‘반송’하려는 목적으로 보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공수처:텔레그램에 반송이라는 절차도 있나?
증인:반송이라…. 지금까지는 본 적 없다.
공수처:누군가 나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나 파일 보낸 것을 내 폰에 저장하고 보내준 사람에게 다시 돌려 보내주는 건?
증인:그것도 전송이나 전달이다. 반송은 없다.
변호인:텔레그램에 답장 기능이 있나?
증인:그렇다.
변호인:항목은 답장으로 돼 있으나 기술적으로는 전달이나 전송인가?
증인:그렇다.
변호인:받은 걸 그대로 줘도?
증인:본인 의도는 반송이라 할지라도 전송이나 전달이다.
■ 2022년 12월19일 손준성 공직선거법 위반 등 5차 공판
이날 공판에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소속이던 ㄷ 수사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신문 과정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가 ‘손준성→김웅→조성은’ 순서대로 전달됐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당시 수사팀 수사보고서) ○○○쪽을 보면, ‘제보자가 텔레그램 메시지 조작했을 의혹은 더 이상 제기할 수 없고 메시지 최초 작성자와 전달자가 손준성·김웅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증인(ㄷ 당시 중앙지검 수사관):결론을 그렇게 냈던 것 같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옥곤 부장판사(이하 재판장):법리를 떠나서 전달 사실관계에 대해 수사팀 차원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나? 고발장 초안과 판결문 초안 포함해서 피고인→김웅→조성은으로 전달되는 사실관계 부분이 수사팀 차원에서 맞다고 확정한 것인지?
증인:그렇게 (결론을) 공유한 상황에서 사건이 진행됐다.
재판장:의심을 한 것인지, ‘이걸 분석해보니 맞는 것 같다’ 그런 판단 단계까지 간 것인지?
증인:포렌식 보고서를 읽으면 충분히 그렇게 결론이 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호인: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조성은에게 전달된 1·2차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는지 알고 있는가?
증인:전혀 모른다.
고발 사주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을 당시 공공수사1부 수사팀이 포착했다는 사실도 증인신문을 통해 새롭게 드러났다.
공수처:당시 수사 보고서를 보면 임홍석 검사(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연구관)가 휴대전화 내용을 삭제한 후 복원이 되지 않도록 안티포렌식 앱 세 개를 설치한 것이 확인된다고 기재했다.
증인:그렇다. 일부는 복구됐고 같이 선별 작업을 하며 어떤 내용이 발견됐을 때, 임 검사가 ‘그게 남아 있네’라는 식으로 놀라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게 있다.
변호인:안티포렌식 앱이 깔려 있는 게 통상적인지 아닌지 이런 판단은 증인이 의견으로만 말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증인:통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변호인:불리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인지는 인지상정인 거고.
증인: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거다.
변호인:숨기고자 한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나?
증인:일부만 복구됐을 뿐이다.
공수처:2021년 9월27일에 증인이 작성한 수사 보고서를 보면, 2021년 8월6일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노후 PC 25대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해 정보통신과에서 제공받았다. (수사 보고서에는) 2021년 8월20일 (새롭게 교체돼) 장착된 SSD 저장장치를 10여 일도 지나지 않아 또 포맷했다고 기재돼 있다. 불과 10여 일 만에 SSD를 포맷한 것에 대해 임홍석 검사가 수사팀에 해명한 사실이 있나?
증인: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는 물어보지 않았고 다른 분이 물어봤는지는 모르겠다.
다음 공판은 4주 뒤인 1월16일 열릴 예정이다.
시사인 나경희 기자
도를 넘는 '2차 가해'... 대책도 의지도 없는 정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향한 2차 가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나서 2차 가해를 막아 달라"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요구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매뉴얼에 있는 '2차 피해' 방지 의무 외면한 중대본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의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 계획' 매뉴얼을 입수했다. 매뉴얼에는 재난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상황 관리를 해야 하는지, 각 기관과 부처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담겨 있다.
매뉴얼에는 재난 수습 과정의 핵심 업무 중 하나로 'SNS 등에서 퍼지는 유언비어에 대한 모니터링'이 적시돼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 배포를 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산하의 재난 대응 기구다. 이태원 참사처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따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 중대본이 역할을 대신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매뉴얼에 따라 사회적 재난인 '코로나19'가 심각하던 2021년 중대본은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보도자료를 여럿 배포했고, 중대본부장인 국무총리가 나서 가짜뉴스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의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계획' 매뉴얼. 재난 대응 기구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보를 배포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적 재난인 이태원 참사에 대처하는 중대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참사 직후인 10월 31일,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에서 혐오 발언과 자극적 영상 유포 자제를 요청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2차 가해 문제를 다룬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재난 대응 매뉴얼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중대본, 인권위 '2차 피해 방지' 협조 요청도 무시
심지어 중대본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2차 피해 문제 대응' 요청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인권위의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 대응 계획(안)'에 따르면, 인권위는 혐오 표현 피해자에 대한 대응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중대본에 '참사 피해자 및 관계자 관련 2차 피해 관리 여부 및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또 "재난 대응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정확한 정보 전달로 혐오 표현이 생산·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11월 7일 인권위는 중대본부장인 국무총리가 있는 국무조정실과 중대본 차장인 행안부 장관 측에 각각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성한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 대응 계획(안)' 중 일부. '중대본에 혐오 표현 피해자에 대한 대응 마련을 촉구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은 인권위 요청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행안부의 답변은 부실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행안부가 전화로 답했다. 2차 피해 관련 자료는 따로 없고, 중대본 일일상황보고서에 있는 내용으로 자료 제출을 대신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중대본이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작성한 100여 개의 일일상황보고서를 모두 살펴봤다. 하지만 일일상황보고서에는 2차 피해 관련 내용이 거의 없었다. 중대본 차원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떤 문제를 논의했다거나 어떤 대책을 추진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악의적 게시물을 얼마나 적발했는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을 한 게시물은 몇 개인지를 확인한 정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지난 두 달 간 경찰이 적발한 2차 가해 행위는 전국적으로 36건이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재난 계획을 세울 때 2차 피해 문제를 빼놓지 말고, 나아가 2차 피해 해결의 콘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취지로 중대본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중대본은 2차 피해 문제를 주요 사안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대응 TF' 소속인 오민애 변호사는 "정부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큰 책임 주체이고, 진상규명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2차 피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걸 꺼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2차 가해'
결국 행안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도, 인권위의 요청도 따르지 않았던 중대본은 2차 가해를 사실상 방관만 하다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됐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향한 혐오와 조롱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온라인상의 댓글과 영상을 통한 2차 가해를 넘어, 이제는 극우단체가 직접 나서 이태원에 설치된 희생자 분향소 근처에 추모 방해 선전물까지 내걸고 있다. '신자유연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분향소 바로 옆으로 매일 집회 신고를 내고, 2차 가해 집회를 열고 있다. 유가족과 분향소 봉사자들을 상대로 욕설, 막말, 혐오 발언을 내뱉는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에 욕설과 희롱을 하기도 한다. '신자유연대'의 2차 가해는 지난해 12월 14일 분향소 설치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극우단체 '신자유연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인근에 '추모 방해 선전물'을 내걸었다.
'신자유연대' 관계자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지나는 추모객과 봉사자, 유가족들을 촬영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신자유연대'(오른쪽). 경찰이 울타리를 치고 '신자유연대'의 집회를 관리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이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인 이정민 씨는 "가장 심각한 것은 분향소 옆에 있는 '신자유연대'다. 유가족들을 비방하고 희롱하고 조롱한다. 이건 2차 가해를 넘어서 인권 유린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경에는 유가족 협의회 대표 얼굴을 붙인 현수막을 내걸고 비방했다. 선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유가족들은 여당인 국민의힘과 면담에서 2차 가해의 심각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아버지이자 유가족 협의회 대표인 이종철 씨는 당시 면담에서 "지한이 엄마한테 막말을 해서 지한이 엄마가 기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차 가해 방치하는 정부·여당의 '조직적 무책임'
하지만 정부는 중대본 해체 뒤에도 여전히 팔짱만 끼고 있다.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국무총리실과 행안부가 2차 가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어떤 문서를 생산했는지 물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2월 21일 보낸 답변서에서 "2차 가해 문제는 중대본에서 논의하고, 경찰청이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된 중대본에 책임을 떠넘기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행안부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었다. 행안부는 답변서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2차 피해 관련 생산·접수·발송한 문건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유가족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이태원 참사 행안부 지원단'(이하 이태원 지원단) 까지 만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태원 지원단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유가족 요구사항 취합·검토 및 사후조치'다.
행안부 '이태원 지원단' 관계자는 "2차 피해 문제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해당 부처에 관련 권한이 있다. 그런 곳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협조 요청을 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취재진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연락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20일 유가족 면담에서 "곧 이태원 분향소를 방문할 것이고, 분향소 옆에서 2차 가해 집회를 하는 극우단체인 신자유연대를 설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은 "기회가 되는대로 분향소를 방문하도록 하겠다. (신자유연대가 집회 장소를 옮기도록) 설득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현재(1월 3일)까지 이태원 분향소를 방문하지 않았고, 2차 가해 집회를 주도하는 '신자유연대'와도 접촉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분향소 일정 관련해서는 따로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신자유연대' 관계자도 "국민의힘으로부터 연락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했던 국민의힘의 약속은 거짓말이 됐다.
지난해 12월 20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분향소를 곧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2차 가해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진행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유가족들을 향해 "(민주당과)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인 이정민 씨는 "국회의원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저쪽(민주당) 편이니 공격하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머릿속으로 편가르기를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에도 연락해 2차 피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대통령실은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가 답변할 일"이라고만 답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 문제는 대통령실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투였다.
지난해 10월 30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은 참사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2차 피해 문제에 대해 답변을 회피했다.
오민애 변호사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2차 가해 행위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는 것 자체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해도 괜찮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2차 가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 이정민 씨는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어린 고등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2차 가해 때문이거든요. 끊임 없는 댓글과 비방에 상처를 받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이건 살인입니다. 어린 학생이 받았을 상처는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청소년이나 청년들한테 그런 모습이 안 나타나게끔 모범을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부는 이런 분열과 혼란을 막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분리되지 않게 계속 이야기하고, ‘2차 가해는 결코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죠. 지속적으로 국민들한테 홍보를 해줘야 되고, 하다못해 홍보 자료라도 만들어서 노력을 해야 될텐데....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정민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유가족 협의회 부대표)
뉴스타파 홍주환
일본의 '공격능력'과 한국의 '반격능력’
일본은 20세기 초 중국 '의화단의 난'을 진압하며 당시 초강대국 영국의 눈에 들었다. 토벌작전은 무자비했지만 서양 연합군에겐 깍듯했다. 이후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은 러일전쟁 승리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
육상자위대 사열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일본은 이미지 가공과 세탁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 게임 캐릭터 '수퍼 마리오' 복장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장면이다. 일본 우익전범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 세운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조직적 로비로 일본에 우호적인 전문가 그룹 '재팬 핸즈'(Japan Hands)를 양성하고 '쿨 재팬'(멋진 일본)을 홍보한다.
봄철 워싱턴의 상징이 된 벚꽃나무도 100년 전 일본이 선물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면에 내건 인도‧태평양 전략도 아베 전 총리가 창안해 미국에 이식한 전략이다. 미국은 일본의 이런 재주에 감탄한 것인지 미래의 화근이 될지도 모를 일본의 안보전략 대전환에 '담대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극찬했다. 이미지 가공‧세탁의 관점에서 일본 새 안보전략의 백미는 '반격능력'이다. 적이 공격에 '착수'했을 때 반격할 것이기 때문에 공격이 아니라 반격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격 착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것은 모호한 문제이고 판단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선제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사히, 도쿄신문 같은 일본 언론조차 '공격능력'이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식 표현인 반격능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일본 측이 북한 공격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했음에도 따끔한 일침 한 방 날리지 못했다.
연합뉴스
이르면 오는 4월 방류를 시작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작명도 전복적인 상상력의 끝판왕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정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처리수'(treated warter)로 불러야 온당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아베 전 총리가 2018년에 명명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낙제점에 가깝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돌려 말한 것인데 일본 내에서도 별 호응이 없다.
아베 전 총리는 강제징용이 주는 불법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몰가치적 표현을 애써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여전히 기존의 '징용공' 표현이 일반적이다. 그 징용문제의 해결책을 한국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외교부도 설 연휴 이전에 공개 토론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우리 측이 먼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 판결금을 지급하고 이후 일본 측의 상응 조치를 기다리는 방안이 유력시된다는 점이다. 이 방안대로 실행된다면 피해자 측 주장처럼 '일본 측 요구가 그대로 관철된, 0대 100의 외교적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측이 성의 있는 조치로 화답할 것이란 아무런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법 기술만을 앞세워 강제징용 문제를 강제적으로 풀려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정부는 이미 채권자(피해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고 알려진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정부와 피해자가 싸우고 일본은 관전하는 황당한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공수를 넘나드는 일본의 현란한 처세를 지켜보다 보면 한국의 '반격능력'은 과연 얼마나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CBS노컷뉴스 홍제표
이태원 유가족 혐오 방치하는 유튜브
주간경향 보도 뒤 윤지사TV 채널 삭제·재개설 숨바꼭질
지난 1월 3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녹사평역에 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분향소 가는 길. “국민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마라!”,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을 하는 사람들은 꺼져라!” 등 신자유연대가 내건 플래카드들이 신호등 넘어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지난 1월 3일 방문한 이태원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길 건너 신자유연대 측이 내건 플래카드가 시민분향소를 포위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광장 입구에는 노란색 배경에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얼굴 옆으로 “세월호 팔아 집권한 문재인·이재명 민주당! 제도 정비·법령 정비 안 하고 뭐했나”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태원 참사도 전 정권과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탓에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유족들이 내건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배경의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플래카드는 딱 하나. 신자유연대 측의 막말 주장에 포위된 형국이었다.
신자유연대 주장에 ‘포위’된 유가족 분향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는 혹한의 날씨에도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이 공간이 혐오 선동과 2차 가해를 일삼는 극우세력들의 패륜적 악행에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송 의원은 패륜적 악행의 근거로 사진 두 장을 제시했다. 신자유연대 측이 분향소 건너편 가로수에 붙여놨던 플래카드들이다.
“13. 문재인 정권 때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14. 문재인 정권 때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분향소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추모’ 현수막은 모두 14장이 걸려 있었다. “왜 14건인지 기준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자기네들 말로는 제천 화재사건이나 현대산업개발 붕괴사건 같은 대표적 사건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문재인도 사과를 안 했지 않냐는 겁니다.” 이미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의 말이다. 피장파장이라는 논리다. 문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왜 윤석열 대통령더러 사과하라고 요구하느냐는 주장이다.
기자가 방문한 1월 3일 현재 이 현수막들은 떼어졌다. 이 실장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기관보고에서 불법 현수막들을 왜 방치하느냐는 질의에 집회시위 물품이라 놔두고 있다는 서울시 측의 답변을 받았다. 아무리 집회시위 물품이라고 하더라도 자리를 비웠는데 24시간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용산구청이 새벽에 철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우리가 내건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현수막도 다 뗐다.” 분향소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신자유연대 측은 이 현수막들을 다시 돌려받아 내걸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측이 ‘윤지사TV’를 삭제하자 김상진 측은 지난해 12월 26일 네이버TV로 옮겨 같은 이름의 채널을 개설했다. / 네이버tv 캡처
왜 ‘신자유연대TV’ 채널은 방치되는 걸까
2주 전 기자는 이태원 분향소 인근에서 이른바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는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른바 진보단체들의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집회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맞불집회를 진행한다는 그의 주 선전무대는 유튜브다. 기사 직후인 12월 25일, 유튜브 측은 김상진 측의 집회를 실시간 중계하던 채널인 ‘윤지사(윤석열을 지키는 사람들)TV’ 채널을 삭제했다. 신자유연대 측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두 차례 채널복구를 시도했지만 모두 삭제됐다. 구글은 정말 ‘김상진 채널’을 퇴출시킨 걸까.
김상진 채널이 유튜브 측으로부터 삭제조치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6월 기자는 ‘선 넘은 우파 유튜버들의 폭주’ 기사를 썼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폭력행사를 다룬 기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반공회사라고 주장하던 GZSS 안정권 등의 행태를 주로 보도했다. 유튜브 측에서는 안정권과 함께 당시 김상진씨가 운영하던 김상진TV 역시 삭제했다. 유튜브 측이 크리에이터 측에 제시하고 있는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 경고사항’에 따르면 콘텐츠가 유튜브 정책을 처음 위반하면 경고메일이 발송된다. 두 번째로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1차 경고’ 통보와 함께 1주일 동안 동영상이나 실시간 스트림 등을 올릴 수 없는 조치를 받는다. 1주일 제재가 끝나면 권한이 자동복구되지만, 최초 경고로부터 90일 이내에 2차 경고를 받으면 제재 기간이 2주로 늘어난다. 3번 받으면 채널이 영구삭제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된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업계 측에 따르면 “특정 인물에 ‘밴’(활동금지)을 걸었다면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구글 측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주간경향의 기사 후 안정권과 GZSS의 콘텐츠는 모두 퇴출됐다. 그후 안씨는 ‘벨라도’라는 독자 플랫폼을 만들어 활동했다. 영향력은 유튜브 플랫폼에서 활동할 때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실제 유튜브 활동을 해보니 활동을 계속해야 후원이 들어온다. 만약 개인사정이라도 생겨 한 달이라도 중단하면 후원도 확 준다. 김상진이 채널이 폭파돼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계정을 또 파고 또 파고 하는 이유다.” 강민구 턴라이트 대표의 말이다.
윤지사TV를 1차 삭제한 유튜브 조치 이후 김씨 측은 “아무 발언 없이 자기들이 이태원 분향소 현장에 내건 플래카드만 비추는” 방식으로 운영방식을 바꿔 채널을 재개설했으나 48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적어도 ‘윤지사TV’는 퇴출시키겠다는 유튜브 측의 의사가 확인된 셈이다. 윤지사TV는 퇴출됐지만 웬일인지 유튜브 측은 본진에 해당하는 ‘신자유연대TV’ 채널은 살려두고 있다.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대부분 김상진 대표의 활동 위주 영상으로 채워져 있어 윤지사TV와 다른 성격의 채널로 보이진 않는다. 윤지사TV가 삭제되자 김씨 등은 네이버TV에 윤지사TV를 옮겨 개설했다. 신자유연대TV 채널에도 이종철 유가족 대표를 겨냥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등의 저격 영상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측은 알고리즘을 변경시켜 신자유연대나 김상진을 검색하는 경우 신자유연대 채널을 보여주는 대신 관련 보도영상을 우선 보여주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튜브 검색창에서 신자유연대를 검색했을 때 신자유연대TV 채널을 찾기가 몹시 어려운 형태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조치만으로 유튜브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25일 이태원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린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 바로 옆에는 분향소 철거 주장과 행사를 주최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비난하는 집회가 함께 열렸다. / 연합
집회신고했다고 ‘유가족 혐오’도 허용하나
앞에서 송갑석 의원이 ‘패륜적 악행’이라고 불렀던 실력행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성탄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연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 현장 바로 곁에서 고성능앰프를 동원한 이들의 방해 집회가 열렸다. 이날 이들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을 두고 “종북사제들 물러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울면 안 돼~”와 같은 캐럴을 틀고 춤을 추는 등의 방해 행위를 벌였다.
“그런 욕을 하라고 집회신고를 내준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법은 잘 모릅니다. 이렇게 욕하고 계속 시비를 거는 식이라면 적어도 제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경찰도 방관만 하고 있고 아무도 손을 못 쓴다면 뒤에서 누가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지난 1월 3일, 이태원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의 호소다. 응급실에서 누워 있던 아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는 조씨는 “이런다고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마디 사과도 듣지 못한 게 억울해 매일 이태원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신자유연대 측의 끝없는 확성기 방송과 현장중계 등 지옥도(地獄道)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가끔은 현실감이 없어질 때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뭐를 하겠다고 집회신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가족을 향해서 욕설을 뱉고 확성기로 방해하고 차 위에 올라가서 뭐라고 떠들어도 좋다고 집회신고를 내준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분명히 모욕과 명예훼손을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데 집회신고를 했다고 다 허용해줘야 하는 건가요.”
윤지사TV는 삭제해놓고 신자유연대TV 채널은 왜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유튜브 측은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콘텐츠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과 법을 준수해야 하며, 사용자들이 신고한 콘텐츠는 담당팀이 리뷰하고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콘텐츠는 삭제한다”라며 “개별 콘텐츠나 채널(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 등)에 대해서는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변했다. 유튜브 채널이 삭제된 뒤 네이버TV로 옮겨 윤지사TV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네이버 측은 “타 플랫폼에서 한 발언 등을 토대로 네이버TV 플랫폼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으며, 해당 채널(윤지사TV)의 경우, 현재 업로드된 영상을 기준으로 이용약관을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다만 해당 채널의 콘텐츠가 사용자들의 쾌적하고 안전한 인터넷 활동을 해치지 않도록 네이버의 이용약관과 네이버TV의 운영정책을 벗어나는 부분은 없는지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가계는 여윳돈 줄고, 기업은 대출 늘었다
한은, 작년 3분기 자금순환 통계
가계 순자금 운용액 7조4000억↓
주식 대폭 줄고 예금으로 돈 몰려
기업 61조7000억 순조달 역대 최대
원자재가 상승·고환율 대출 키워
지난해 3분기 가계 여유자금이 1년 전보다 7조4000억원 줄면서 5분기 만에 감소 전환했다. 금리 상승과 자산시장 부진의 영향으로 가계가 대출을 줄이고 여윳돈을 주식보다 예금에 넣는 현상도 뚜렷해졌다.
반면 기업들은 차입이 크게 늘어 순자금조달 규모가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 규모인 61조7000억원에 달했다.
중앙일간지 간부들 김만배와 돈 거래 정황 드러나 파장
한겨레 간부 6억·한국일보 간부 1억·중앙일보 간부 9000만 원
종편 간부는 명품 신발 선물받아… 조선일보, 언론사명 공개
한겨레신문·중앙일보·한국일보 간부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금전 거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김 씨에게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렸거나, 빌린 돈을 되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SBS 8뉴스는 5일 ‘언론사 간부들에 흘러간 거액 수표…“명품 신발도 선물”’ 보도에서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김만배 씨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검찰이 언론사 간부들에게 거액의 수표가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SBS는 “1억 5천만 원짜리 수표 4장이 지난 2019년 상반기에 한 중앙일간지 간부 A 씨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 수표 9천만 원이 지난 2019년 또 다른 중앙일간지 간부 B 씨에게 흘러간 기록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종합편성채널 간부는 2018년 11월 김 씨에게 명품 신발을 받았다고 한다.
▲5일 SBS 8뉴스 갈무리.
A씨는 SBS에 “빌린 돈”이라고 해명했으며 6억 원 중 2억 원은 대장동 사건이 터지기 전 갚았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4억 원은 김 씨가 출소하면 갚을 계획이라고 했다. B씨는 2018년 김 씨에게 8000만 원을 빌려준 후 원금과 이자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SBS는 언론사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6일 10면 ‘김만배, 일간지 중견기자 3명과 수억대 돈거래’ 보도에서 언론사명을 모두 공개했다. 김 씨에게 1억 원을 받은 언론사 간부도 새로이 공개됐다. 6억 원을 받은 A씨는 한겨레신문 간부, 9천만 원을 받은 B씨는 중앙일보 간부, 1억 원을 받은 C씨는 한국일보 간부다.
▲6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김 씨와 억대의 돈거래를 한 것으로 나타난 언론인은 3명으로, 김 씨와 비슷한 연조이거나 법조기자로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김 씨와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가 3억씩 갹출해 A씨에게 총 9억원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김 씨가 자신의 몫을 빼고 남욱·정영학씨 돈 6억 원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간부 B씨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8000만 원을 빌려주고 7~8개월 뒤 원금과 이자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원금의 12.5%를 이자로 받은 셈이다. 한국일보 간부 C씨는 조선일보에 “2020년 차용증을 쓰고 이사 자금 1억원을 급하게 빌렸으며 그동안 이자를 정상 지급했다. 사인간의 정상적 거래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기자들과 금전 거래를 했다는 정황은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서도 등장한다. 뉴스타파의 지난달 29일 ‘대장동 키맨 김만배 “기자들에게 현금 2억씩, 아파트 분양권도 줬다”’ 보도에 따르면 김 씨는 2020년 3월 정영학 씨에게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응?. 회사(언론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했다.
또 정 씨는 같은해 7월 김 씨에게 “형님, 맨날 기자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 씨는 “걔네(기자)들한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어. 그런 다음에 2억씩 주고. 그래서 차용증 무지 많아. 여기, 응? 분양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서울에. 분당”이라고 했다. 녹취록에서 김 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신문사 기자들 모임을 ‘지회’라고 불렀다. 김 씨가 어떤 언론사 기자에게 돈을 줬는지 나오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초등생 급감… 5년뒤엔 30% 더 줄어 184만명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들면서 2028년 전국 초등학생 숫자가 사상 최초로 200만명을 밑돌아 184만2362명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산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574만9301명)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며, 지난해보다도 30% 넘게 감소하는 것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6일 기존 집계된 학생 수 추이에 취학률·졸업률·진학률 등 요인을 반영해 추산한 ‘2023~2029년 초·중·고 학생 수’ 통계를 발표했다. 교육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2020년 전국 학생 수 추계가 법적으로 의무화된 후, 2021년 12월 시범 통계를 거쳐 처음으로 정식 발표된 통계다.
초등생 급감… 5년뒤엔 30% 더 줄어 184만명
이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 수는 올해 520만2000명, 2024년 512만4000명, 2025년 500만5000명 등 해마다 감소하다 2029년엔 425만3000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527만5000명으로 집계된 전국 초·중·고 학생이 7년 새 100만명 넘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의 감소 폭이 눈에 띄게 가파르다. 작년 266만4000명이었던 전국 초등학생은 올해 258만3000명, 2024년 246만6000명, 2025년 230만9000명 등 매년 급감할 전망이다. 2028년엔 결국 200만명 밑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초등학생만큼은 아니지만 전국 중학교 학생 수도 올해 133만1000명에서 서서히 감소해 2029년 122만9000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고등학생 수는 2023년부터 2029년까지 128만~134만명 내외로 유지되지만, 교육부에선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많은 황금돼지띠(2023년 고1), 백호랑이띠(2026년 고1), 흑룡띠(2028년 고1)의 영향이 없어지는 2030년대엔 고등학생 숫자도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통계의 추산보다 실제 감소 폭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발표된 시범 추계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초·중·고교 학생은 487만명 수준으로 전망됐는데, 이번 통계에서는 그보다 6만명 더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실제로 집계된 지난해 초·중·고 학생(527만5054명)이 기존 추산(528만710명)보다 적고, 작년에 새로 발표된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결과 학생 수 추계에 차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침체의 서막 1부 - 모두가 가난해진다
유난히 추웠던 2022년 겨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벌써 수천 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칼바람 소식이 불어닥친다. 전문가들은 앞다퉈 곧 지금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2023년. 정말 우리는 모두 가난해질까.
■ 자장면의 배신, 서민의 몰락
서민물가의 지표였던 자장면값마저 평균 6,000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 지수는 5.1%로, IMF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팬데믹의 여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고물가 시대는 서민들에게 더 가혹하다.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자 일부 농수산물은 오히려 가격이 폭락해, 농어민들이 생산을 포기해버리는 역설이 벌어지기도 한다. 치솟는 물가에 자영업의 마지막 보루였던 노점상마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무너져가는 사회 곳곳의 약한 고리들. 202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고물가 시대의 여파는 어느 정도인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천 원씩 올렸어요. 안 올리고 싶었는데 밀가루값이 너무 많이 오르니까. 재료비가 얼마인지 이런 걸 안 봐요. 아예 보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최미경 / 중식당 운영 -
“기름값도 비싸죠.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올라가죠. 고기 시세가 같이 따라서 올라가 주면 괜찮은데 자꾸 떨어지다 보니까 옛날만큼 잡아서는 지탱하기가 힘들어요. 붙잡고 있다가는 망하게 생겼어요.”
안장남 / 어민 -
■ 더 많이 뛰어야 살아남는다
‘新 경제중심지’로 불리는 평택 고덕신도시 반도체 공장. 이곳에는 6만 명이 넘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들이 동이 트기도 전 하루를 시작한다. 자영업자,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는 근로 시간의 제약이 적고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자영업을 하던 임상진 씨(45세)도 그중 한 명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까지 총 16시간을 일하며 한 달 내리 만근을 찍었다. 근무표가 빼곡하게 채워지는 만큼 어린 두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새벽 출근길에 오른다.
본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A씨. 그는 이른바 ‘오픈런’이라 알려진 명품구매 대행 줄서기 아르바이트로 부수입을 올린다. 최근에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부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구인시장도 호황을 맞았다. 자정부터 아침까지, 백화점 앞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꼬박 지샌 A씨가 수중에 얻은 돈은 10여만 원. 손등이 부르터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본업 외 부업을 뛰는 가장의 수가 5년 만에 41%나 상승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치솟는 물가에 실질임금이 7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이전과 같은 벌이로 생계유지도 어려워진 이들은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기 위해 또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다. ‘N잡러’는 더 이상 새로운 문화가 아닌 불가피한 현실, 생존의 문제이다.
“몸은 조금 힘들어도 여기에 온 보람은 있죠. 일 한 시간만큼 급여가 많이 나오니까. 지금은 악착같이 살면서 가능한 몸을 갈아 넣고 있습니다.”
- 임상진 / 건설 일용직 근로자 -
"하도 빠져나가는 돈이 많아서... 공과금에, 생활비에, 관리비까지 진짜 죽겠어요.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안 오르고."
- 오픈런 아르바이트 종사자 A씨 -
■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매출이 25%가량 급감하며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경기도의 한 엔진 제조업체. 24명이었던 직원을 15명으로 감축하고 정책지원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버텨왔으나 금리가 오르며 대출금 상환 만기까지 다가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27년 업력, 32억 매출을 자랑하던 김해의 한 중공업체는 작년 9월, 회사 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고 결국 파산을 선고했다.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 모두 이곳에서 10여 년이 훌쩍 넘게 근무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50대 후반부터 60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도 쉽지 않은 한 가장의 아버지들은 밀린 임금과 퇴직금도 정산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도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만 53조를 넘는다. 지난 2년여의 팬데믹 시절을 저금리대출로 연명해오던 ‘한계기업’들이 줄도산을 맞는 순간, 본격적인 체감 위기를 가져올 고용 한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영업이익 감소와 고금리로 상승한 이자 비용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2023년에는 한계기업 비중이 상당폭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경란 / ‘ㄱ’은행 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장 -
시사직격 신년특집 KBS 230106
법인세 감세, 모든 국민에 혜택 돌아간다?
법인세 인하를 두고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1천만 주식투자자에게 그 혜택이 공유된다”는 신선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KDI는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보고서(2022년 10월)에서 “개인이 여러 주식계좌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도 주식투자 인구는 이미 1천만 명을 넘었다. 국민연금의 상당 부분도 주식투자로 운영되고 있으니 법인세 감세 혜택이 고령자와 중산·서민층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공유될 수 있다. ‘법인세 감세=부자 감세’ 주장은 정치 과정에서 제기된 구호일 뿐”이라고 했다. 더 많은 배당소득과 시세차익이 개인에게 돌아가려면 기업투자가 추세적으로 확대되고 더 많은 법인소득이 발생하는 순환구조가 강화돼야 하는데, 법인세율 인하로 기업의 경영환경과 실적이 좋아지면 전국민의 자산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 법인세 인하론의 최신 논리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2022년 12월9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을 부자로 보는 인식은 출발점 자체가 잘못됐다. 삼성전자 주주가 600만 명, 카카오는 190만 명, 현대차는 120만 명이다.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투자·소유하고 있는 기업이고, 또 거기에 상당한 큰손이 국민이 낸 국민연금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는 현실에서 엄연한 사회·경제 계층 간 자산·소득 격차와 투자정보 비대칭성이라는 ‘차별적 지위’를 고려하는 시야가 빠져 있다. 저축해둔 큰돈이 있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산·소득을 바탕으로 더 큰돈을 빌려 주식투자에 나설 여력을 가진 일부 계층과, 그럴 형편이 못 되는 다수가 ‘주식투자 국민’에 뒤섞여 있는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경제에서는 개별 경제주체마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상호 교환하면서 참가자 모두 이익을 누린다고 경제학원론은 설파한다. 주먹이나 집단·세력·권력·계급·불평등·위계 같은 건 ‘자유시장에는 쓸모없는’ 사회학적 용어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듯이 가진 돈과 신용·담보력의 크기가 곧 시장에서 파워이고 주먹이다. 요컨대 ‘기득권’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6) 끝 문장을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결국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사상”이라고 맺었는데, 위험한 건 사상일지라도 강력한 건 기득권일 것이다. 경제적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옹호해온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조차 1999년 칼럼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수많은 펀드도 사실은 여러 개인이 가진 돈을 한곳에 집중시켜 그 큰돈으로 시장가격을 지배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제도적 수단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부유층의 저축이자 수입도 급증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2000년 2조원가량에서 2021년 말 166조원까지 확대됐다. 고소득 부유층이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주식시장에서 국민이 낸 사회보험이 주가를 부양·방어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부유층한테 더 많은 혜택을 안겨주는” 연기금 투자활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민들이 대출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상은 금융·부동산 자산가들이 훨씬 더 큰돈을 빌려 운용한다. 지렛대(레버리지)를 활용한 위험 분산투자다. 신용공급이 팽창하고 시중 유동성이 넘쳐났던 오랜 저금리 시대에 담보제공 및 차입신용 능력을 가진 자산가들이 막대한 돈을 빌려 주식·채권·외환·부동산 등에 분산투자했다. 투자자산의 상품구성 조합을 활용해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려왔다.
한겨레 기자 kyewan@hani.co.kr
갈등을 치유하는 언론 VS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
고1 아이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한다. “아니 넌 전혀 살찌지 않았는데 왜 다이어트를 하니?” “내가 5년 전보다 몸무게가 29% 급증했단 말이야.”
5년간 29% 몸무게가 늘었으면 ‘급증’한 것일까? 도대체 ‘급증’의 정의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을 조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이 29%보다 크면 우리 아이 몸무게가 ‘급증’했다고 할 수 없다. 29% 증가 사실만으로 다이어트를 주장하면 안 된다.
조선일보 12월28일 1면 및 5면 기사다. <문정부, 민간단체에 보조금 연 5조 뿌렸다>, <민간단체 사업 연 25만 건 정부지원… 5년간 29% 급증>.
5조 원이 얼마나 큰 금액일까? 1조 원, 2조 원, 다음은 많다는 아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5년간 29% 급증했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총지출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2017년 우리나라 총지출은 406.6조 원에서 2021년 600.9조 원으로 5년간 47.8% 증가했다. 국가 총지출이 47.8% 증가하는 동안 민간단체 보조금 건수는 29% 증가했으니 <총지출 증가율에 크게 못미치는 민간단체 보조금… 민간 거버넌스 저버린 문정부 >란 제목도 가능하겠다. 지원 건수뿐만 아니라 지원 금액도 총지출 증가율을 하회한다. 최소한 민간단체 보조금은 ‘급증’한 것은 아니다. 보조금이 많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뿌렸다’, ‘급증’이라는 서술어가 등장한다. 통계를 전하는 기사 제목은 좀 더 드라이할 필요가 있다.
▲ 2022년 12월28일 조선일보 5면
오해하지 마시라. 민간단체 지원금이 총지출 증가율을 하회 하니 민간단체 지원금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간단체 보조금 사용내역을 조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보조금 지급액이 많든 적든 국가의 보조금 사용내역은 당연히 점검되어야 한다. 그런데 보조금 사용내역을 조사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가로막는 거의 유일한 논리는 윤 정부가 정파적 목적으로 민간단체 보조금 내역을 조사한다는 오해(?)다. 보조금 사용내역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조금 조사 목적이 건전한 민간 거버넌스 확립이 아니라면 문제다. 만약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 보조금 삭감 목적이거나, 문정부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정파적 목적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면 민간 보조금 조사는 명분이 떨어지고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 보도자료에는 문재인 정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는 문정부 5년간 민간 보조금 지원 내역을 공개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보조금 지원 내역을 공개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7년간 보조금 사용 내역을 전하지 않는다. 문정부 5년간의 보조금 내역만을 전한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 내역을 점검하는 행동도 정파적 행동으로 해석해서 기사화한다. 결국, 보조금 사용내역 점검이라는 행동도 구정권과 신정권의 갈등으로 포장하여 기사화 한다. 언론의 역할은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론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역할을 선두에서 한다고 생각이 들때가 자주 있다.
▲ 2022년 12월28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정부는 스스로 지난 정부 흠집내기와 입맛에 맞지 않는 민간단체 보조금 삭감이으로 읽히도록 ‘떡밥’을 제공한 측면도 많다. 보조금 부정 사용 예시를 보면 ‘공산주의’, ‘종북’, ’반미’, ‘민노총’, ‘김일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보조금 수령 단체 대표가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SNS에 반미 성향의 글을 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조금 단체 대표가 SNS에 반미적 글을 올리는 것을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보조금 단체 심사시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도 있다. 즉, 보조금 수령 단체를 공정하게 선정하고자, 단체명을 가리고 보조금 사업 수행 능력에 대한 정보만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 대표가 SNS에 반미 성향의 글을 올린 것이 보조금 사업의 문제점이라는 정부 보도자료는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의 보조금 수령을 줄이라는 정파적 목적으로 읽힐만 하다.
결국, 정부는 보조금 내역을 조사한다면서 지난 정부를 흠집내고자 하는 ’떡밥’을 흘렸다. 그리고 언론은 이 ‘떡밥’을 확대 재생산해서 지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좌파단체에 보조금을 뿌렸다고 보도를 한다. 이렇게 정부의 행정 점검 행위를 정파적으로 과잉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 했을 때의 최대의 피해는 정부 보조금 사업이 잘 집행되는지 조사하는 진솔한 점검행위다. 그래서 정부가 보조금 사용 내역을 점검하면서 이를 정파적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언론은 보조금 사용내역 점검을 보다 차분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 보도자료에 조차 나오지 않는 정파적 의미를 더욱 확대 재생한 하면, 진솔한 보조금 사용점검은 더욱 어려워지고 사회 갈등은 더욱 커질뿐이다.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NL ‘MZ오피스’, MZ세대 공감인가 조롱인가
업무 중 에어팟 껴도 될까’, ‘고기는 누가 구울까’ 등 회사 생활 다뤄
“나도 MZ인데 공감” vs “또 사회 초년생 조롱, 불쾌” 반응 갈려
‘인턴기자’에 붙었던 논쟁, 성장 서사 살린 ‘주기자’처럼 돌파 가능할까
‘90년생이 온다’ 작가 “회사 내 갈등, 세대 탓 아닌 합의로 해결해야”
장면1.
팀장: “업무 중엔 에어팟 빼는 게 좋지 않을까?”
사원: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입니다.”
팀장: “내가 현영씨에게 업무를 줄 때 능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소통이 안 되니깐.”
사원: “메신저 있잖아요.”
장면2. 고깃집에서 회식 중인 상황.
선배1: (안 뒤집나, 이것들아.)
선배2: (야, 구우라고.)
선배1: “탈것 같은데.”
부장: (이거 내가 구워야 하는 분위기인가?)
▲1월1일 SNL코리아 시즌3, 김슬기 편 '욕 딜리버리 서비스'는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사원에게 욕을 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사진출처=SNL코리아 시즌3 유튜브.
“나도 MZ지만 공감” vs “또 사회 초년생 조롱, 불쾌” 반응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 시즌3의 코너 ‘MZ오피스’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MZ오피스’는 SNL크루들이 MZ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회사원들을 연기하면서 MZ세대끼리의 갈등이나 다른 세대와의 갈등 등을 코믹하게 그려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5일에 올라왔던 MZ오피스 박해수편 하이라이트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424만회를 기록했고 지난 1일에 올라온 김슬기 편 하이라이트 ‘욕 딜리버리 서비스’에서도 MZ오피스 속 MZ세대에 욕을 해주는 김슬기의 이야기가 다뤄졌는데 242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MZ오피스에서는 ‘사무실에서 에어팟(이어폰)을 껴도 될까?’, ‘회식을 가면 누가 고기를 구워야 할까?’, ‘회사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누가 주문을 해야 할까?’, ‘회사에서 업무 브이로그를 찍어도 될까?’ 등의 모호한 회사 매너부터 시작해 나이가 많은 후배의 반말, 기존의 사무실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면접자의 모습, 나이 어린 면접자의 문해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모습 등을 다룬다.
해당 코너가 큰 인기를 끌며 ‘나도 MZ지만 공감간다’는 평도 있지만 코너가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사회 초년생’인 경우가 많고 특히 ‘여자들의 기 싸움’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불쾌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 속 한 장면. 사진출처=SNL코리아 유튜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SNL이 MZ세대에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이들이 친숙한 생활 이야기를 가지고 접근한 코미디를 선보인 것 같다”며 “코미디에 공감하는지, 조롱으로 느껴 불쾌한지는 객관적인 선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 공감을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 불편한 부분을 지적한다면 제작진은 어떤 부분이 불편함을 초래하는지 참고해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 평론가는 “다만 풍자란 결국 조롱과 희화화가 포함되기에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고, 약자를 상대로 한 풍자는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이러한 풍자의 특성상 이전부터 SNL은 ‘정치 풍자’ 등 권력자 풍자를 하면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다양한 코너를 통해 그러한 균형을 보여줘야 한다. 풍자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풍자 대상에 대한 문제는 계속 지적될 것”이라고 말했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 속 한 장면. 사진출처=SNL코리아 유튜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MZ를 다루는 콘텐츠들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리얼해서 ‘공감’이라는 반응과 불편하게 보는 시선이 공존한다. 많이 나왔던 지적이지만 ‘MZ세대’는 굉장히 폭넓은 나이대의 사람들로, 사실 가상의 세대”라며 “하나의 세대로 묶기보다는 세대를 떠나 과거와 달리진 가치관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MZ세대를 통한 이야기가 결국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라면, 같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불편과 공감이 공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지상파가 아닌 OTT나 유튜브 등에서 흥행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불편한 사람은 안 보면 된다’는 경향이 강해진 현상도 언급됐다.
정 평론가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지상파에서 코미디 프로를 할 때는 소재 등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왔지만 최근 OTT나 유튜브를 통해 코미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흥행작이 많아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경향이 있다”며 “이제 코미디 프로에서 정치 풍자보다 본능적 웃음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모두가 보는 지상파가 아니므로 자극적 소재도 많이 차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진 않지만, OTT나 유튜브를 통한 개그 프로는 ‘불편한 사람은 안 보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강해지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인턴기자 주현영’에도 붙었던 논쟁…돌파 위한 해결책은
사실 SNL에 대해 이 같은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SNL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이라는 캐릭터가 급부상하면서도 논쟁이 됐던 부분이다.
배우 주현영씨가 연기하는 ‘인턴기자 주현영’은 사회초년생 20대 여성의 말투와 몸짓을 모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턴기자 주현영은 안영미 앵커가 질문하면 당황하지만 모른다고 하지 않고 횡설수설한다. 앵커가 계속 질문을 하면 울면서 퇴장하기도 한다. 반면 앵커에게 당돌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해당 코너도 큰 인기를 끌었고 마찬가지로 “현실 고증이다”라는 반응과 “사회초년생, 특히 젊은 여성을 조롱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지난 해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2'에서 인턴기자 캐릭터로 활약한 배우 주현영씨.
당시 SNL제작진은 “20대의 애환을 다루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러면서 제작진은 “사회초년생, 특히 어린 여성을 무능한 사람으로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알아차린 듯 인턴기자 주현영을 이용해 거물 정치인을 인터뷰하는 데 이용하고, 앵커의 질문에 잘 정리된 대답을 내놓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장 서사’를 쌓아나갔다. 이 때문에 인턴기자 주현영 캐릭터는 비판에 사라지는 캐릭터가 아닌, 공감을 사는 캐릭터로 계속 활용될 수 있었다.
최근 새로운 시즌의 MZ오피스 역시 아직 극 초반이며, 앞으로 제작진이 어떠한 모습으로 이 MZ 회사원들의 모습을 활용할지는 알 수 없다. SNL코리아가 인턴기자 주현영을 20대 사회초년생의 성장 서사로 활용하며 돌파구를 찾은 것처럼, MZ오피스에 던져지는 지적들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90년생이 온다’ 작가가 말하는 세대 갈등 해결법
“세대 탓 아닌 조직에 맞는 합의 만들어야”
‘MZ오피스’가 이처럼 화제가 된 것은 곧 비슷한 갈등이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능을 포함한 미디어 전반은 이같은 세대 갈등을 극대화한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많은 문제를 세대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조직 특성에 맞는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책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 작가는 지난 2일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MZ오피스의 사례를 활용해 ‘회사에서 에어팟끼고 일하면 안 되나요? 왜요?’라는 글[링크]을 게재했다. 이 글은 “회사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근무 이슈들은 곧잘 ‘특정 세대의 업무 태도’와 결부돼 결국에는 세대 대결로 번진다”며 “이러한 논란을 세대 문제로 귀결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 속 한 장면. 나이가 어린 면접자가 회사 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력이 낮은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출처=SNL코리아 유튜브.
임홍택 작가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SNL은 재미를 위한 예능프로그램이니 단정적인 의견을 덧붙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 코너에서 다루는 이슈들은 몇 년 전부터 익히 나왔던 이야기들”이라며 “‘MZ 풍자’ 이면에는 언론과 수많은 미디어들이 많은 문제를 세대론으로 퉁치는 것에 익숙한 현상을 보여준다. 예능이야 재미를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예능이 아닌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마치 마법의 언어처럼 ‘요즘 것들은 다 저렇다’는 비난과 논란을 만드는데, 그런 행태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 작가는 “같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조직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코너를 통해 문제로 드러나는 사람의 모습이 실제로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현실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기에 세대론을 활용해 비난하고 극대화하기보다는 어떻게 해결할지 의견을 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밝혔다.
임 작가는 “최근 많은 조직은 세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MZ세대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은 조직의 특성상 이러하니 하지 말자’ 혹은 ‘특정한 행동에 대해 문제 삼지말자’는 식으로 합의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를들어 MZ오피스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껴도 될까?’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조직, 업무의 특성에 따라 대면으로 꼭 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따져보고 대면 소통이 많은 조직이라면 에어팟을 쓰지 않는 것으로 합의하고, 메신저로 충분한 소통이 가능한 특성을 가진 조직이라면 에어팟을 끼는 것에 지적하지 말자고 합의하는 등이다. 대학입학을 위한 논술시험에서 ‘헤어롤’을 낀 수험생을 지적한 시험감독관에게는 면접이 아닌 필기 시험에서는 지적을 하지 말자는 합의를 본 대학의 사례도 있었다.
임 작가는 “이러한 갈등을 이야기하지 않고, 합의하지 않고 세대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나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새롭게 나올 수많은 문제를 세대문제로 돌리지 말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침들을 설정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신현영 징계 요청'으로 본 '의원 징계'의 정치학
여야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열흘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기간만 합의됐을 뿐입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신현영 의원에 대한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사 출신인 신 의원은 참사 당일 명지병원 재난 의료지원팀의 긴급출동차량, 닥터카에 중도 탑승해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 의원의 배우자가 닥터카에 동승했고 비슷한 거리에 있는 다른 병원의 지원팀보다 현장 도착이 늦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구조 활동이 차질 빚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 20명은 지난달 국회 윤리위원회에 징계안도 제출했습니다. 징계안에는 신 의원이 국회법에 규정하고 있는 직권남용 금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21대 국회 들어 34번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2번째 징계안입니다.
일각에서는 의원 징계안이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여야가 걸핏하면 징계안을 발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 보도도 여럿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여러 정치적 논란이 있지만, 오늘 팩트체크는 징계안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의원 징계안이 어떨 때 많이 발의됐는지, 과거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 보는 작업입니다.
"정쟁이 심할 때 징계안도 많이 발의됐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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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징계 절차는
사실은팀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https://likms.assembly.go.kr/bill/main.do)에 올라와 있는 국회의원 징계안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기간은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부터 21대 국회 현재까지입니다.
[ https://likms.assembly.go.kr/bill/main.do ]
논의를 하기 전에 먼저, 먼저 국회의원 징계 절차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징계안은 법안과 마찬가지로 의원 20명 이상,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등이 발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모욕 당한 의원 당사자도 징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원들로 구성된 윤리특위에서 논의가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국회에 설치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의견을 물을 수 있는데, 윤리특위는 자문위 의견을 참고해 징계 수위를 결정하게 됩니다. 자문위 의견은 참고 사항일 뿐, 구속력은 없습니다. 윤리특위가 징계 수위를 결정하면, 국회 본회의로 안건이 넘어갑니다.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징계가 집행되고 부결되면 폐기됩니다.
징계안 전수 분석 결과, 민주화 이후 총 280건의 징계안이 검색됐습니다. 280건의 징계안 가운데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의원들 의사에 따라 철회한 게 245건으로 87.5%였고, 33건은 21대 국회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단 두 건이었습니다. 2011년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강용석 전 의원이 '30일 국회 출석 정지'로 처리됐고, 그다음이 지난해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었습니다.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 대치 과정에서 법사위원장석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30일 국회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의 실력 행사로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김 의원은 바로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헌법재판소는 가처분을 인용했습니다.
지난해 6월,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있는 모습.
일부 언론에서는 2015년 성폭력 혐의로 수사를 받은 심학봉 전 의원의 경우 제명이 의결됐다고 쓰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윤리특위에서 '제명'이 의결돼 본회의로 넘어갔지만, 심 전 의원이 본회의 의결 전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징계안은 임기만료 폐기됐습니다.
어쨌든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 징계 가결률, 280건 가운데 단 두 건으로 0.7%였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셀프 심사'를 하다 보니 징계안 논의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최다…연말에 대거 발의
그러면 본격적으로 분석 결과 살펴보겠습니다. 한 번에 7건 이상 발의된 경우를 따로 표시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초기에는 의원 징계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수립 직후인 1998년 3월, 징계안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김종필 총리 인준 파동' 때였습니다. 무려 25건이 발의됐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당시 자민련 명예총재를 첫 국무총리로 지명했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5·16 쿠데타 가담 경력 등을 이유로 인준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임명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표를 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백지투표를 했습니다. 이에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를 제지했고,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욕설과 고함이 오가며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에 여당은 징계안을 대거 발의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징계안 대거 발의의 첫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들이 민주당 신현영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는 모습.
위 표를 쭉 보시면, 18대 국회에서 징계안이 유독 많이 발의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와 겹치는 시기인데, 예산안을 비롯해, 언론법과 같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법안을 강행 처리한 적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20대 국회 때도 대거 발의됐을 때가 많았습니다. 박근혜 후반, 문재인 정부 초중반과 겹치는 시기입니다. 특히, 2019년 2월 징계안이 많이 제출됐습니다. 2019년 1월 손혜원 전 의원의 이해충돌 의혹이 나오자 당시 자유한국당은 징계안을 발의했고, 이후 민주당은 5.18 망언으로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습니다. 민주당은 이후 별건으로 송언석, 윤영석, 이장우, 이학재, 장제원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대거 내놓으며 맞섰습니다.
발의 속도로 보면 지금 21대 국회 때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벌써 34건이 발의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후반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으로 갈등이 극에 달했을 시점과 겹칩니다.
즉, 18대와 20대, 그리고 지금의 21대 국회, 이명박 정부 당시, 문재인 정부 중후반 징계안 발의가 유독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8대와 21대 국회는, 한 정당의 의석수가 압도적인 경우였습니다.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사례가 있었고, 그 반작용으로 맞은편 정당의 저항이 극렬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많았고,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징계안 발의로 이어졌습니다. 자연히 맞은편에서는 보복 발의로 맞대응하면서, 징계안이 많이 쌓여갔습니다.
한 해를 기준으로, 주로 언제 많이 징계안이 제출됐는지, 월별로도 분석했습니다.
마지막 분기에 징계안이 많이 제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국정 감사도 있고, 연말에는 예산안 심사가 있는 시기입니다. 여야가 얼굴을 맞대고 협상할 일이 많습니다. 다툼도 많고, 심지어 막말과 폭력이 오가기도 합니다. 자연히 '징계안' 쏟아질 때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만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순방 당시 비속어 발언을 두고 여야 간 막말이 오갔고, 그만큼 많은 징계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윤리'가 아니라 '정쟁'?
사실은팀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34건의 징계안의 내용도 분석했습니다. 의원 개인의 발언과 관련해 징계안이 발의된 경우를 따로 뽑아 정리했습니다.
여야가 격하게 대립하는 현안, 그 과정에서 나온 거친 말들에 대해, 상대 정당이 징계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 징계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의원 징계안과 정쟁 간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쟁이 심하면 그만큼 막말과 폭력이 오갔고, 자연히 상대방에 대한 징계안 발의도 많았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싸울 일이 많은 정기국회 기간, 징계안 제출이 많다는 점은 이런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이런 면에서 의원 징계안은 정쟁의 거울입니다.
국회의원 징계 제도가 '의원 윤리'가 아닌, '정쟁'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윤리적 결함을 부각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소재였던 셈입니다. 수북이 쌓여가는 의원 징계안, 그 중심에는 토론과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한 정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국회의원 징계 제도는 효능감이 없어진지 오래며, 보다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인턴 : 강윤서, 정수아)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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