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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하는 거대 양당의 '집시법 개정안'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집회·시위가 법적 보호를 받는 이유다.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확대하고 집회 금지 제한 조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 지난해 국회에서 벌어졌다.
집시법의 시대적 흐름은 '자유의 확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각급 법원과 국회, 대통령 관저, 총리 공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외교관 등 주요 기관으로부터 반경 100m 이내를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조항은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우리 헌법 21조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2018년 헌재는 결국 이 법에 제동을 건다. 집시법 11조 1호 중 '국회와 각급 법원, 국무총리 공관 주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규정이 위헌(헌법불합치)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해당 법 조항이 평화로운 집회·시위마저도 일률적이고 절대적으로 금지해 우리 헌법상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아래는 2018년 헌재 결정문 내용 중 일부.
심판대상조항(집시법 11조 1호)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 가능한 옥외집회⋅시위까지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중략)... 입법자로서는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법관의 독립과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옥외집회⋅시위는 허용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2018헌바137, 2018.7.26.)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해당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예외적 허용'하는 방향으로 집시법을 개정했다. 원칙적으로는 금지지만 '해당 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에는 집회·시위를 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집시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금지 원칙을 고수하면서 단서 조항에 해당할 때만 허용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거대 양당이 각각 발의한 '집회 금지법'
지난해 국회에 2개의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5월 민주당에서 낸 개정안(정청래 의원 대표발의, 일명 '정청래 안')과 4월 국민의힘에서 낸 개정안(구자근 의원 대표발의, 일명 '구자근 안')이다. '정청래 안'의 핵심은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 안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넣자'는 것이었다. 전직 대통령, 정확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서 벌어지는 보수단체의 각종 시위를 막기 위한 법안이었다.
'구자근 안'의 핵심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넣자'는 것이었다. 법안이 발의된 지난해 4월은 취임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나와 용산에 집무실을 두고, 관저와 집무실을 분리하겠다"고 공언한 직후였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집무실 주변 시위를 막겠다는 목적이 뻔히 보이는 법안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를 막을 법조항이 딱히 없다는 게 법안 발의의 명분이 됐다.
집시법 11조에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는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반면 대통령 집무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가 사실상 한 공간(청와대)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관저와 집무실을 분리해 법안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구자근 안'은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가 나뉜 초유의 상황을 감안한 맞춤형 법안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작동한 2개의 법안이 거의 동시에 발의되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곧바로 비판과 항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제약하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지난해 4~5월 국회에서 발의된 2개의 집시법 개정안. 각각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워낙 반발도 세고 위헌성도 다분하다 보니, 처음 법안이 발의됐을 때만 해도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이 통과되리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헌재는 이미 2018년에 집시법 11조 1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게다가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내 집회·시위를 절대적 금지'한 집시법 11조 3호에 대해서도 헌법소원 심리가 진행 중이었다. 2018년에 그랬던 것처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다. 국회가 '위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법률'을 발의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두 거대 양당은 이렇게 위헌성이 다분한 법안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거래'에 나섰다.
'위헌 소지 집시법 개정안' 거래한 여야... 국회법도 위반했다
통상 국회가 발의한 법안은 속성에 따라 상임위에 배정된 뒤 토론 과정을 거친다. 꼭 필요한 법안인지, 위법·위헌성은 없는지 등을 따져묻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지키자는 2개의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토론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3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2차 법안심사 2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 모두에 대해 전혀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금지 구역에 추가하는 '정청래 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발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민주당 소속 보좌진은 "여야가 사전 협의를 끝내놓고 회의에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정청래 안'에, 민주당은 '구자근 안'에 반대하지 않기로 미리 입을 맞췄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더해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아예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을 합쳤다. 집시법 11조의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이 모두 추가되는 '종합 안'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안은 곧바로 행안위 전체 회의에 상정됐다. 당시 행안위 소위에 늦게 참석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집시법의 개선 흐름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법안이지만, 아무도 반대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용혜인 의원은 아래와 같이 '종합 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헌법은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시민의 손으로 끝내고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자부하는 국가에서 집시법 11조는 악법입니다. 제가 집시법 11조 폐지안을 발의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집시법 개정안은 아예 예외적 허용 규정도 두지 않고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절대적 금지 방식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른 처분을 받은 국민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합니다.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 2022.12.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천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공간에 포함시킨 이 개정안은 위헌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결과적으로 위헌 결정을 얻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회적인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기보다는 수정해 의결해주시든지 아니면 소위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채익 행안위원장(국민의힘)이 법안 의결에 대해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묻자 용혜인 의원은 곧바로 "이의 있습니다, 위원장님. 표결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천준호 의원도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112조에는 '의장은 안건에 대해 이의가 있는지 물어 이의가 없다고 인정할 때는 가결됐음을 선포할 수 있다. 다만, 이의가 있을 때에는 표결해야 한다'고 돼 있다. 표결을 하면, 법안 의결에 찬성·반대한 의원들의 이름은 국회 회의록에 남는다.
하지만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용혜인, 천준호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추가 토론 없이 법안을 밀어붙였다. "여야 간 합의가 이미 끝났다"는 이유였다. 이채익 위원장은 표결을 개시하지 않고 "(여야) 간사 간 협의를 마친 법률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했고, 여야 간사(국민의힘 이만희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에게만 의견을 물었다. 김교흥 의원은 "그냥 하세요", 이만희 의원은 "그냥 집행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채익 위원장은 "사전에 여야 간사 간 합의된 법안이기 때문에..."라며 의결을 강행했다. 명백히 국회법 112조를 위반한 처사였다. 용혜인 의원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거대 여야 의원들은 침묵했다.
법안은 행안위 의결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올라갔고, 현재 계류 중이다. 법사위가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마치면, 국회 본회의로 상정된다. 용혜인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간사 간 합의로 표결을 생략하는 관행이 국회법의 강행 규정에 앞설 순 없다. 이렇게 명백한 위법적 의사 진행을 한 이유는 위헌성이 농후해 떳떳하지 못한 법안의 처리에서 개별 위원들의 찬반 의사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전직 대통령 사저,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주변 집회 절대적 금지도 위헌'... 법안 위헌성 '재확인'
그런데 얼마 뒤, 국회 행안위가 통과시킨 집시법 개정안의 위헌성이 확인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26일 헌재가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이내 집회를 절대 금지한 현행 집시법 3호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2018헌바48). 국회와 법원, 국무총리 공관을 넘어 이제는 대통령 관저까지 집회·시위의 자유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2018년 결정에 이어 2022년 결정까지 4년이나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재판관 9명 중 7명이 교체됐지만 '집회·시위에 대한 절대 금지는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단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아래는 헌재 판결문 중 일부.
구체적인 위험 상황이 발생하였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막연히 폭력 불법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해 대통령 관저 인근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중략)...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적 구성요소이고 집회의 장소를 선택할 자유는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 보장 내용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는 다소간의 행정적인 불편함 등은 감내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2018헌바48, 2022.12.22.)
이렇게 대통령 관저 주변 집회·시위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면서,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 집회·시위 금지를 법제화하려 했던 거대 양당의 입장은 그야말로 머쓱해졌다. 대통령 관저 주변 시위까지 허용되는 마당에 대통령 집무실, 그리규 헌법기관도 아닌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 시위가 금지될 순 없기 때문이다. 국회 행안위가 밀어붙인 '종합 안'의 위헌성이 한층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법원,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금지도 과도하다'... 집시법 개정안 폐기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12월 서울행정법원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대한 경찰의 집회금지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서울행정법원 2022구합66385) 그동안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이 집시법 11조에서 집회 금지구역으로 정한 '대통령 관저의 개념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은 대통령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폭력적 집회·시위로부터 집무실을 보호할 필요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다른 집시법 조항으로도 공공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확한 집회 등은 금지하거나 해산할 수 있다", "집무실 인근 집회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지 말고, 그 내용과 성격을 따져 폭력성과 불법성이 짙은 집회만 걸러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국회에서 발의된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 그리고 '종합 안' 모두를 사실상 부정하는 판결이었다.
경찰의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금지 조치에 맞서 행정소송을 벌여온 김선휴 변호사는 "법원은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에 귀 기울이며 소통에 임하는 것은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수행해야 할 주요 업무이므로 집무실을 집회 금지 장소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시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행안위의 행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저버린 야합이다"고 말했다.
결국 헌재 결정과 법원 판결로 인해 거대 양당이 머리를 모아 만든 '종합 안'은 법사위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민주당 보좌진은 "법사위도 헌재 결정을 봤을 것이다. 집회금지 구역을 오히려 추가하는 법안을 그대로 본회의로 올리기엔 부담이 클 것이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16년 집회·시위 금지 구역의 범위를 축소하자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시위로 인해 설치된 경찰 울타리.
입법권은 자유의 성숙한 확대를 위해 쓰여야 한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직무상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영단어가 'Lawmaker(입법자)'인 이유다. 국회의원에게 면책·불체포 특권을 주고, 세금을 들여 각종 인적·재무적·사회적 지원을 주는 것도 법을 잘 만들게 하기 위해서다. 정치적 이해나 탄압, 돈에 휘둘리지 말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법을 만들라고 국민이 부여한 특혜다. 국회의원의 자격은 그렇게 무겁고 엄중하다.
국회 행안위에서 여야가 합의 혹은 거래로 통과시킨 '종합 안'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정청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주당 안', 구자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안' 역시 마찬가지다. 무분별한 집회·시위로 인해 여러 피해와 불편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 헌법에 명시된 중요 가치를 축소시킬 만큼의 문제였는지 돌아보고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역행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나섰던 국회의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국회의 입법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만 쓰여야 한다.
뉴스타파 홍주환
28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24차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2023.1.28. 촛불행동 제공
이재명,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검찰 파쇼' 공세
이재명 "검찰, 정치가 아닌 수사를 해야"…'피의자' 아닌 '정치인 이재명' 강조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라는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되새겨야 할 경구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약 12시간반에 걸쳐 대장동 특혜 사건 관련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는 조사 도중이던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A4 용지로 33쪽에 달하는 진술서 전문을 게재했다.
이 대표는 진술서의 상당 부분을 검찰의 오만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검찰은 정치 아닌 수사를 해야 한다" "법과 질서 유지에 최고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검찰이 권력자의 정적 제거를 위해 조작 수사에 나서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 "중립성을 잃고 이미 기소를 결정한 검찰은 진실과 사건 실체에 관심이 없다"고 일갈했다.
지난 10일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 조사 당시 제출한 진술서에서는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혐의 소명에만 초점을 맞춘 것과 비교된다. 검찰이 소환을 거듭 요구하자,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태도에서 공세적인 태도로 전환한 것이다. 아울러 대중에 자신의 신분을 '피의자 이재명'이 아닌 '정치인 이재명'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 대표는 "검찰은 이미 결정한 기소를 합리화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사실을 왜곡하며, 저의 진술을 비틀고 거두절미하여 사건 조작에 악용할 것"이라며 "그러므로 검사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진술서로 갈음할 수밖에 없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란다"며 묵비권 행사를 예고했고, 실제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대부분의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죄 혐의와 관련해선 "'천화동인 1호가 저의 것'이라는 혐의에 대하여 이는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모략적 주장"이라고 했다. 검찰은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등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천화동인 1호에 이 대표의 지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제가 천화동인 1호의 실 주인이 아님은 천화동인 1호 재산의 처분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천화동인 1호는 대장동개발사업에서 모두 2018억 원을 배당받았는데 배당이 이뤄지자마자 수백억 원이 김만배 씨의 대여금 형식 등으로 새 나갔고, 주식투자나 부동산구입에 수십억 원이 사용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손실 처리되었다"고 했다.
이어 "유동규 씨는 700억 원(428억 원)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가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하는 돈이라고 한다"면서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정민용 씨와 같은 부수적 역할을 한 사람이 100억 원을 받고, 김만배 씨의 학교 후배로 화천대유 실무를 챙기 이모 씨도 120억 원을 받는다는데 이들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유동규 씨의 지분이 아예 없다는 것이 상식이냐"고 묻기도 했다.
배임 혐의에 대해선 "개발이익을 100% 공공이 차지하는 공영개발이나, 개발이익을 일부 환수하는 민관공동개발은 시장의 의무가 아니"라며 "개발 이익이 100% 민간에 귀속되도록 특정 개인에게 민간 개발을 허가해도 적법하며, 검찰은 부산시장, 양평군수, 제주지시가 부산 엘씨티, 양평 공흥지구, 제주도 오등봉지구에 민간 개발을 허가해 개발 이익을 100% 민간업자들이 취득한 것을 배임죄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검찰이 다른 시도지사와 달리 선택적으로 자신에게만 혐의를 적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표의 검찰 진술서 전문이다.
검찰 진술서
진술인 : 이재명(641222- 주 거 : 인천 계양구
직장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1
연락처 : 010- 전자우편 :
귀 청의 소환에 응하여 아래와 같이 진술합니다.
이 사건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므로 사건에 대한 진술에 앞서 저의 입장을 먼저 말씀드리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심장 없는 사람 없듯, 주권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듯, 주권이 제 몫을 찾지 못하면 죽은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이 박탈되거나, 주권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면 민주공화국은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공권력, 즉 국민에게 명령 강제하는 국가권력은 당연히 이러해야 합니다.
첫째, 공권력 행사 특히 중립적이고 정의로워야 할 형사사법 권력 행사에서 편견과 사심을 끊어내야 합니다. 편견과 예단은 진심을 가리는 연기와 같아서 연기를 걷어내야 실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는 공권력 행사 주체가 타인에게 편견과 예단을 주는 행동을 하느냐 아니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형사사법권은 오직 증거에 입각하여 행사되어야 합니다. 진실을 찾는 힘은 증거에서 나오는 것이지, 감각이나 추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증거가 없음에도 여론을 동원해 혐의를 주장하는 것은 공권력의 비정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 억압적 공권력 행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오만을 견제해야 합니다. 공권력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돤다"라는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되새겨야 할 경구입니다.
모든 검사가 하는 취임 선서에는 이런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듯한 검사,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
형사사법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검사라면 이런 모습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께서 작금의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려하십니다.
"언론 뒤에 숨은 비겁한 검사,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 되어 대통령 가족은 조사 않고 대통령 정적 제거에만 몰두하는 차갑고 불공정한 검사, 검찰 관계자들에게만 관대한 검사가 되고 있지 않는가?"
검찰 스스로 자문해야 할 때입니다. 검찰은 정치 아닌 수사를 해야 합니다.
법과 질서 유지에 최고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검찰이 권력자의 정적 제거를 위해 조작 수사에 나서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검찰은 정치공작이 아닌 진실을 위한 공정 수사에 매진해야 합니다. 참나무숲인지 소나무 숲인지는 산에 올라 눈으로 보면 압니다. 소나무 숲을 못 보게 막고, 다람쥐가 물어 온 도토리, 날려 와 쌓인 참나무의 잎과 가지를 모으고, 땅속에서 수백년 전 참나무숲 흔적과 DNA를 찾아 참나무숲이라 선언한다 해도 참나무숲이 되지는 않습니다.
가짜뉴스와 조작 수사로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진실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엄청난 시간과 고통, 비용이 수반되겠지만 사필귀정할 것입니다.
순리와 진실의 힘을, 국민을 믿겠습니다. 역사와 대화하고 소명을 되새기며 당당히 맞서겠습니다.
중립성을 잃고 이미 기소를 결정한 검찰은 진실과 사건 실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합리적 소명도 검찰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고, 검찰은 이미 결정한 기소를 합리화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사실을 왜곡하며, 저의 진술을 비틀고 거두절미하여 사건 조작에 악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검사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진술서로 갈음할 수 밖에 없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장동 택지개발 사업 관련〉
1. 대장동 개발사업 추진 경위
가. LH가 공공개발 중 대장동 일당이 강제수용 예정 토지를 대량 매수
대장동 일대는 판교 신도시 주변 토지로 개발압력이 높아 LH가 2005년경부터 공공개발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10월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LH는 수익 나는 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고,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 이하 동일) 신영수 국회의원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LH의 대장동 개발사업 포기를 종용했습니다.
이 때쯤 대장동 투기 세력은 부산저축은행에서 부정 대출받은 약 1800억원으로 대장동 일대 토지를 시세의 2,3배 가격에 집중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신영수 국회의원의 동생에게도 수억원의 뇌물을 제공하며 LH의 공영개발 포기를 위한 로비를 하다 적발되어 처벌받았습니다.
나. 2010.6. 말 LH가 돌연 대장동 공영개발 포기 선언
제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직후인 2010.6. 말경 LH가 대장동 사업을 포기하였는데 당시는 몰랐지만 대장동 일당의 로비 결과로 의심됩니다.
다. 성남시는 공공개발 추진 중 국민의힘 방해로 민관공동개발로 전환
저는 제5기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후, 인허가권 행사로 생기는 불로소득을 민영개발을 통해 투기세력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대장동을 공공 개발하여 인허가권 주체인 성남시민에게 개발이익을 돌리는게 합당하다고 판단해,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 설립, 공공개발 자금 용도인 지방채 약 4600억원 발행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다수인 시의회가 지방채 발행을 반복적으로 부결하여 공공개발이 막혔습니다. 그렇다고 민간개발을 허가할 수는 없어 차선책으로 민간의 자금과 역량을 이용한 민관공동개발로 개발이익을 일부나마 환수하기로 했습니다.
라. 성남시의 민관공동개발은 철저히 시민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추진
분당구에 비해 낙후된 성남 본시가지(수정구, 중원구)는 재개발을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했고, 그 방안 중 하나가 공장들이 빠져나가 비어 있던 1공단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1공단 공원화는 사업비 2~3천억원이 필요했는데, 분당구 대장동을 먼저 개발하여 그 수익금으로 공원화 사업을 하려다가, 이후 대장동과 1공단을 하나로 묶어 동시 개발을 추진하였습니다.
2015.2 경 민간사업자를 경쟁 공모하여 3개 컨소시엄 중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선정되었습니다. 공사는 25억원만 부담하고 일체의 위험부담을 하지 않고 1조3천억원에 이르는 개발자금의 조달과 사업 시행, 사업 실패나 손실 발생 위험을 모두 민간사업자가 떠안는 한편, 민간투자자가 2561억원으로 1공단을 공원화하고 공사에는 임대아파트 부지나 1822억원을 우선 배당하기로 해 총 4583억원의 공익 환수를 확정하였습니다.
마. 1공단을 분리한 것은 정상적 사업추진을 위한 조치
사업자 선정 후 1공단 부지 문제로 여러 소송이 제기되어 사업의 표류나 심지어 실패가 우려되자 공사는 1공단 공원화를 분리해 별도 사업으로 하자고 했고, 시 공무원들은 먹튀 우려로 반대하였습니다.
의견수렵 결과 2016년 초 두 사업을 분리하되, 대장동 사업자가 1공단 공원화 사업을 동시에 책임지고 진행하게 하였습니다. 1공단 공원화를 대장동 사업의 인가조건에 명시하고 사업확약서와 부제소특약까지 받아 먹튀를 방지하였습니다.
바. 대장동 사업자에 1120억원대 추가 부담
2016년 말 실시계획을 인가하면서 성남시는 대장동 사업자에게 920억원 상당의 터널공사, 배수지, 진입도로를 만들어 기부채납하도록 인가조건에 부가하였고, 그 외 1공단 지하주차장 공사비 200억원도 추가 부담시켰습니다.
김만배 등은 추가 부담으로 이익이 줄자 저를 "x같은 놈, 공산당 같은 새끼" 등으로 거칠게 욕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들과 결탁했거나 사업이익 일부를 취하기로 했다면 저의 이익을 줄이는 일을 왜 하겠습니까?
2. 검찰과 언론의 잘못된 주장에 대한 의견입니다.
가. 천화동인 1호가 저의 것이라는 혐의에 대하여
이는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모략적 주장입니다.
저는 천화동인 1호와 관계가 없고, 언론보도 전까지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개발사업의 민간사업자들은 천화동인 1호를 포함한 수익자들은 모두 SK증권 특정금전신탁 형식으로 들어왔다는데, 제가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천화동인 1호는 화천대유의 100% 출자회사이고 화천대유의 주주는 김만배씨라고 합니다.
제가 천화동인 1호의 실주인이 아님은 천화동인 1호 재산의 처분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천화동인 1호는 대장동개발사업에서 모두 2018억원을 배당받았는데 배당이 이뤄지자마자 수백억원이 김만배씨의 대여금 형식 등으로 새 나갔고, 주식투자나 부동산구입에 수십억원이 사용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손실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정영학 녹취록에서 김만배씨가 유동규씨에게 700억원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그 돈이 남아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제 것이라면 김만배씨가 천화동인 1호의 돈을 그렇게 함부로 써 버릴 수 있었을까요?
유동규씨는 700억원(428억원)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가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하는 돈이라고 합니다. 결국 자신은 전달자에 불과하고 자신은 아무 몫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역학녹취록에 따르면, 정민용씨와 같은 부수적 역할을 한 사람이 100억원을 받고, 김만배씨의 학교후배로 화천대유 실무를 챙기 이모씨도 120억원을 받는다는데 이들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유동규씨의 지분이 아예 없다는 것이 상식일까요?
제가 천화동인 1호의 소유라는 주장이 허위임은 제가 민간사업자에 보인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뒤에 보는 것과 같이 저는 개발사업 도중에 민간사업자의 부담을 1120억원 추가했습니다. 정영학녹취록을 보면 대장동 일당은 성남시가 부담시킨 추가부담금을 사업종료 후 소송을 해서 되찾아가려고 모의한 사실도 나옵니다. 이들이 욕을 하며 반발하고 나중에 소송을 통해 반환받으려고까지 한 추가부담금 부과는 천화동인 1호가 제 것이라는 것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천화동인 1호의 재무상태가 추가이익 환수는 검찰도 다 아는 것인데 이런 객관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번복된 대장동 일당의 진술을 가지고 저의 소유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나. 배임죄는 시장이 의무에 반하여 시에 손해를 입히고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대장동 개발과 관련해 시장의 배임이 성립하려면 시장의 의무에 반해 시에 손해를 입히고 민간사업자에게 이익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투기 세력의 이익을 위해 시에 손실을 입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사업자에게 1120억원을 추가 부담시켜 그들에게 손실을 입히고 시와 공사의 이익을 더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간에 개발허가를 내 주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고 공공이 개발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각까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개발이익을 100% 공공이 차지하는 공영개발이나, 개발이익을 일부 환수하는 민관공동개발은 시장의 의무가 아닙니다. 개발이익이 100% 민간에 귀속되도록 특정 개인에게 민간개발을 허가해도 적법하며 검찰은 부산시장, 양평군수, 제주지시가 부산 엘씨티, 양평 공흥지구, 제주도 오등봉지구에 민간개발을 허가해 개발이익을 100% 민간업자들이 취득한 것을 배임죄라 하지는 않습니다.
3. 투기세력의 바램에 반한 공공개발 추진
국민의힘 성남시의우원들의 방해가 없었으면 대장동은 완전공공개발로 개발 이익을 100% 공공 환수했을 것이고, 대장동 일당은 민간사업자 공모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들과 결탁했다면 공공개발이 아니라 그들의 소원대로 민간개발을 허가해주었을 것입니다.
불법 대출금 약 1800억원을 투입해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매집하고 민간개발을 위해 불법로비까지 하며 LH의 공공개발을 포기시켰던 대장동 일당은 제가 성남시장에 당선되어 공공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라. 저는 대장동 개발허가 과정에서 그들의 계획과 반대로 함
시의회의 반대로 공공개발은 못 하게 되면서, 민간자금을 활용하되 공공이 주도하는 민관공동개발을 모색하였는데, 당시 대장동 주민들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① 개발사업지구를 LH가 신청한 지역이 아닌 주민들이 원하는 지역으로 지정해달라(이 경우 대장동 일당이 매수한 토지가 개발구역의 80%를 넘어 그들이 사업자가 되는 즉시 잔여토지의 강제수용이 가능하지만, LH 신청대로 지정하면 이들의 매수비율이 50%대여서 사업자가 되어 강제수용하려면 토지를 추가 확보해야 함)
② 대장동과 1공단을 결합하지 말고 대장동만 따로 개발하라.
③ 대장동은 현금 보상하는 강제수용이 아닌 토지로 보상하는 환지 방식으로 하라(이 경우 지주와 토지매수자가 개발이익을 대부분 차지)
④ 민관공동사업에 참여할 민간사업자를 공모하지 말고 주민들이 만든 대장동개발추진위를 지정해달라.
그러나 성남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책 판단에 따라 ① LH 신청대로 개발구역 지정 ② 대장동과 1공단 결합개발 ③ 강제수용 ④ 경쟁 공모에 의한 민간사업자 선정으로 확정하였습니다. 이 결정 때문에 대장동 일당은 토지 매수에 따른 기득권을 잃었고 그간의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되었습니다.
대장동 일당은 최근 재판에서, 유동규에게 수 억원의 뇌물을 주고 위와 같은 청탁을 했지만, 청탁은 실패(받아들여지지 않았다)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성남시장을 상대로 "십수 년간 로비(트라이)를 시도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더라", "이재명이 합법적으로 우리 사업권을 뺏아갔다"는 남욱의 JTBC 인터뷰나, "이재명이 우리 사업권을 빼앗으려 했지만, 우리가 도로 빼앗아왔다"고 자찬하는 정영학 녹취록의 발언도 있습니다.
제가 대장동 일당의 결탁 또는 개발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라면 이런 결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정한 조건을 붙여 민간개발 허가를 내주거나, 공모하지 않고 민간사업파트너로 임의 지정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수용 아닌 환지방식으로 해주거나 그외에 그들의 이익을 더 많이 확보해주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 공모 이후 2016년까지 1120억원 추가 부담
2015년 사업자선정 당시는 미분양이 쌓이고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장려하던 시기입니다. 집값 폭등을 걱정하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주택시장 붕괴를 걱정하며 정부가 미분양 물량을 긴급 수혈할 만큼 부동산 시장은 급변하고 예측이 어렵습니다.
1조원 이상 투자되는 초대형 개발사업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계획 개발이 실패하면 개별 허가에 따른 난개발이 생기고, 땅을 팔고 경매압력에 시달리던 주민 처지에서도 사업을 미루기 어렵습니다. 모라토리엄을 운위할 만큼 어려운 시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적정한 개발이익 환수가 필요했습니다.
검찰이 문제로 삼는 서판교터널은 성남시가 오래전에 계획해 두었던 것으로 당초 대장동 사업자에게 부담시키려다가, 사업성 부족으로 민간사업자가 참여하지 않을 우려가 있어 사업성을 개선을 위해 제외하였다가 이후 선정된 대장동 사업자에게 추가부담 시킨 것입니다. 대장동 일당의 이익을 고려했다면 시의 비용으로 시행해도 문제가 없지만 대장동 사업자에게 부담시켰습니다.
3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배수지, 고속도로 진입로 확장도 성남시가 할 일이지만 사업자에게 추가 부담시켰습니다.
바. 공공수익을 비율 아닌 확정액으로 하게 한 이유
성남시 몫의 1공단 공원화 비용 부담은 최소조건이었고, 공사의 몫은 비율 아닌 확정액으로 하도록 하였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아니고 공익을 추구하는 행정기관이므로 안정성을 추구해야 합니다(안정성이 중요한 행정은 기업처럼 벤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익배분을 비율로 정하면 예측을 벗어난 경기변동시 행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불안정성이 있고, 민간사업자가 비용과다 계상 등으로 이익을 축소하며 비율은 의미가 없으며(위례 사업이 그랬음) 정산 지연으로 배당 몫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고(판교신도시 개발이 그랬음) 관련 공무원과 부정거래가 시도될 수 있습니다.
사. 대장동개발은 택지개발까지이고 아파트 분양은 공사의 업무가 아님
대장동 택지개발사업의 이익분배를 논할 때, 아파트 분양이익은 논외로 해야 합니다. 공사는 성남시로부터 위탁받고 성남시의회로부터 승인받은 것은 대장동 택지개발사업이지 아파트 분양사업이 아닙니다. 공사가 왜 아파트 분양사업을 하지 않았냐고 하는 건 수사가 아닌 정치입니다.
공사는 민간기업이 아니어서 돈이 된다고 아무 사업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남시가 성남시의회의 승인은 물론 법이 정한 각종 용역, 타당성 검토 등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더구나 건축분양 사업을 위해서는 투자자금이 필요한 공사는 자금도 없고 자금을 마련할 길도 없습니다. 공사의 법적 업무 한계는 택지개발까지여서 아파트 분양사업은 공사가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화천대유가 사업을 시행자인 성남의뜰(민관합작법인)로부터 택지 5개 필지를 매입하여 아파트를 지어 분양해 얻은 수익 3103억원은 공사의 택지개발사업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국민주택규모 이하용 택지는 감정가격에 추첨으로 공급하고 택지를 공급받은 건설업체는 화천대유가 아니더라도 분양수익을 남깁니다. 화천대유 외에 3개, 3개, 2개 블록의 택지를 취득하여 아파트 사업을 한 코OO하우징, 토OO홀딩스, OO아트 회사의 아파트 수익도 성남시가 이들 회사에게 부당이익을 얻게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 성남시와 공사의 몫은 지가폭등 결과에도 개발이익의 50%이상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업자로 선정된 하나은행컨소시엄의 응모 기준으로 택지개발 예상이익은 1공단공원화비 2561억원을 빼고 약 3600억원이었습니다.(산업은행 컨소의 예상이익은 약 2600억원, 메리츠컨소의 예상이익은 약 3200억원, 성남시 용역결과 예상이익은 약 1800억원)
1공단은 대장동과 직선거리 약 10km가량 떨어진 곳이라 1공단공원화 비용은 형식이 비용이든 배당이든 대장동 개발이익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2015년 공모와 협약 당시 기준으로 공익 환수액은 공원화 2561억원과 최소우선배당 1822억원을 합한 4383억원이고, 민간사업자 몫은 1800억원 이하(약 3600억원-1822억)이고, 1120억원을 추가 부담시킨 2016년 실시계획 인가 당시 기준으로는 공익 환수액이 5503억원, 민간이익은 1800억원 이하이며, 부동산 폭등으로 개발이익이 예상보다 폭증해 민간사업자 이익이 약 4천억원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공공환수액 5503억원에 못 미칩니다.
1공단 땅값도 올랐을 것을 감안하면 공공환수 비율은 더 높아지고, 부동산 경기가 하강한 경우라면 성남시와 공사 몫 이익 비율은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자. 지가 폭등을 예상 못했다는 비난은 부당함
부동산은 일반적 예측을 벗어나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으며, 단순 등락을 넘어 폭등하거나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집값 폭등으로 대혼란을 겪다 몇 달 만에 집값 폭락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금의 현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의 경기를 정확히 예지하는 것은 신의 영역입니다.
고정금리 약정을 했는데 이자율이 예상보다 더 오른 경우 차입자는 잘한 계약이고, 대여자느 잘못한 계약이 됩니다. 예상보다 이자율이 내리거나 덜 오른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이 경우 누구도 잘못 결정했다고 비난받지 않습니다. 물가가 일반적 예측선을 벗어날지 여부, 벗어나는 방향이 상방일지 하방일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배당방식은 예상보다 경기가 호전되면 비율로 정하는 것이, 예상보다 경기가 악화되면 사전 확정하는 장식이 유리하지만, 경기가 예상을 벗어나 악화될지 호전될지는 모르는 일이므로 안정성을 중시해야 하는 행정기관으로서는 비율 아닌 확정액으로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비율 약정이 언제나 잘한 결정도 아닙니다. 부동산 시장이 예측과 달리 급락하여 이익이 대폭 줄거나 손실이 발생한다면 반대로 고정이익 아닌 비율로 정한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공모에서 배당개요가 정해졌는데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추가 배당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당연히 예상을 벗어난 이익감소나 손실 발생시에 손실이나 이익감소에 대한 분담을 요구할 것이고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익분단만 합의하고 손실 분담, 이익감소분담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배임으로 문제될 것입니다.
차. 하나은행 컨소시업 내 배당비율은 성남시와 무관한 그들 내부문제
은행들이 이익 배분을 적게 받고 화천대유, 천화동인 등이 4000억원을 배분받은 것은 그들 내부에서 스스로 결정한 사항으로 성남시로서는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일입니다. 화천대유, 천화동인이 왜 이렇게 큰 이익을 배분받았는지는 하나은행 등 민간사업자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카. 투기 세력은 환지 방식을 요구하였으나 수용방식 채택
개발방식 중 환지 방식은 토지 소유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이라 그들이 선호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소유자에 과도한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현재는 잘 채택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성남시가 수용방식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시민을 위하여 개발이익을 최대한 환수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환지 아닌 수용방식 채택으로 주민들에게 손해를 가했다고 주장하나, 주민 이익보다 전체 시민의 이익이 우선입니다. 더욱이 투기 세력이 이미 대부분 토지를 샀기 때문에 환지 방식을 채택했다면 투기 세력이 환지를 받습니다. 투기세력 아닌 일부 주민들을 위해서는 충분한 토지보상금과 이주 및 생활 대책을 시행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타. 터널공사 확정 시기는 배임 의제와 관련이 없음
검찰이 소수를 제공한 것이 거의 확실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성남시가 터널공사를 뒤늦게 확정시켜 수용은 저렴하게 택지매각은 비싸게 하도록 해서 배임죄라고 합니다.
터널공사는 2000년대부터 이미 성남시 도로 계획에 들어 있던 것으로 공개 되어 있는 것이고, 원래 성남시 예산으로 개설해야 하지만 2016년 대장동 실시계획 인가 시 개발사업자에게 부담시킨 후 도시계획법 절차에 따라 터널공사를 한 것입니다.
파. 1공단 공원화 사업 분리와 공사시기 지연이 배임?
검찰이 소스를 제공하고 모 언론이 쓴 단독성 기사의 주장인데, 1공단을 사업지에서 떼어내는 바람에 1공단 보상비 수천억원을 절감시켜 주고 1공단 공원화 공사 지연으로 지연기간만큼 공사비에 대한 금융비용 상당의 이익을 주어 배임죄라는 것입니다.
소송 때문에 사업의 정상적인 진행을 위해 분리는 불가피했으며 행정절차를 거쳐 1공단 공원화를 최대한 빨리하는 것이 시의 공식 입장이었으며 일부러 공사를 지연시킨 것도 아닌데, 공사 지연기간의 금융비용 상당의 이익을 주고 시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하. 컨소시엄을 금융사 중심으로 하고 건설사를 배제한 것이 배임?
금융사 중심으로 민간사업자를 정한 것은 자금난으로 사업이 좌초 또는 지연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고, 재개발 사업 등에서 보는 것처럼 건설사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불경기 속에서 1조3천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필요한 대규모 사업에서 자금의 안정적 조달은 사업 성패를 좌우합니다. 건설사는 대규모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실제 의왕시 백운밸리 개발사업에서 주관사입 건설사의 자금난으로 사업이 지연되었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사업 지연은 금융비용 폭증으로 사업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대기업들이 비자금 조성용으로 건설회사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고, 재개발 재건축 수주비리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건설사들은 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건설회사가 주관사가 될 경우 과잉 발주를 통한 비용 부풀리기나 이익 빼돌리기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하면 금융사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꾸리고 건설회사는 공정한 도급계약에 따른 시공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실무의견도 같았습니다.
부담을 안기는 침익적 행정행위와 달리 혜택을 주는 수익적 행정행위에는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됩니다. 사업의 안정적 수행과 투명경영을 위한 금융사 중심의 컨소시엄 공개모집은 배임이 될 수 없습니다.
거. 민간주도개발 허용 가능성을 봉쇄한 이유
성남시는 대장동 택지개발 사업을 공사에 위탁하면서, 공사가 위탁을 기화로 특정 세력과 결탁하여 '일정한 수익확보' 조건으로 민간개발을 허용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사업시행자는 반드시 '공사나 공사가 출자한 법인'이 맡도록 하였습니다.
대규모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사업을 민간에 전적으로 맡기면 부정부패가 발생하게 되므로 민간의 자본과 역량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공공이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남시의 입장이었습니다.
너. 투기 세력과 결탁하거나 이익을 받기로 한 사실 없음
검찰은 제가 투기 세력과 결탁하거나 그들로부터 재산상 이익을 받기로 약속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유일한 근거는 대장동 관련 부페범죄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관련자들의 번복된 진술입니다.
그러나 저는 투기 세력으로부터 시민의 정당한 이익을 지켜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뿐 부패행위에 관여한 사실이 없습니다. 최근 정역학 녹취록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이제 국민의 정역학 녹취록에 근거하여 검찰의 공소 사실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정영학녹취록에 근거하여 수사 결론을 도출해었는데, 이제 와서 검찰의 올가미에 걸린 관련자들의 번복된 진술에 의존하여 정영학 녹취록에도 없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허위사실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3. 대장동 관련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혐의의 세부 내용은 알기 어려우나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제가 비밀정보를 대장동 일당에게 제공하거나, 유동규가 제공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동규가 그들과 결탁하여 비밀정보를 제공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유동규가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범죄사실을 시장인 제게 알릴 이유도 없고 제게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이나 정영학녹취록을 보아도 저는 이들의 부정비리와 관련이 없습니다. 정영학 녹취록과 이들의 법정 증언 등에 따르면 이들은 '이재명이 우리 사업권을 빼앗아 호반건설에 주려 했지만, 우리가 도로 빼앗아 왔다'거나 이재명 모르게 특정금전신탁 뒤에 잘 숨어 있었다며 자부하거나, '이재명이 너네 졸라 싫어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대장동 일당이 사업자공모에서 하나은행 컨소시엄의 특정금전신탁에 숨어 있었던 사실은 이 사건이 문제되고 나서야 알았으니, 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형사처벌을 무릅쓴 채 그들을 위해 비밀을 유출하거나 유동규로부터 범죄행위인 비밀 유출을 보고받고 승인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합니다.
〈위례신도시 주택분양 사업과 비밀누석 관련〉
성남시는 분시 가지의 원활한 재개발을 위해 임시거주용 임대아파트 단지가 필요했지만, 임대단지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시 예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위례신도시 주택건설사업으로 분양이익을 확보하고, 그 수익으로 임대아파트를 건설하여, 이를 재개발 이주 단지용으로 활용해 LH가 시행하다 중단한 본시가지 재개발사업의 재개를 구상했습니다.
2010.7 성남시장 취임 후 저는 개발이익의 성남시 귀속을 주장하며 LH와 협상하여 가장 위치가 좋은 공동주택 부지의 우선 매입권을 확보하고, 이명박 정부를 설득하여 주택건설자금 조달용 지방채 발행을 승인받았으며, 경기도는 이 지방채를 인수하는 예산편성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다수인 성남시의회는 위례 주택사업용 지방채를 반대하며 지속적으로 공유재산관리계획을 부결시키고 결국 지방채 발행까지 부결시켰습니다. 이유는 부동산 불경기로 인한 사업 실패와 적자 우려, 공공이 수익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등이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시의회의 지방채 발행 부결로 공공개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성남시는 아파트 분양사업도 임대주택 건설사업도 재개발지원도 모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위례신도시 주택 부지는 LH가 추첨으로 공급하는데, 추첨 경쟁률이 심지어 수백 대 1에 이를 정도였으므로, 기왕 확보된 아파트 부지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공사가 수익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공사는 토지매수권을 넘겨 받은 후 민간투자자와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민간투자자가 사업자금과 투자위험을 부담하되, 지분 5%(2억5천만원)만 출자한 공사가 이익의 50%를 배당받기로 하였습니다.
재개발과 연계된 주택분양사업은 시의회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토지매입권을 활용한 자투리 사업은 공사가 수행하는 자체 수익사업이었습니다.
출자는 5%인데 위험부담이나 재무부담도 없이 50% 수익지분을 확보했으니 외관상은 좋은 결정이었지만 '사후정산 해야 하는' 비율 배당의 약점이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당초 예정 분양이익이 1100억원이었으니 550억원대 수익이 가능했지만, 사후 정산 결과는 총수익 약 300억원으로 공사 몫은 약 150억원 정도였습니다.
제가 평소 강조하는 것처럼 돈은 마귀이고, 부모형제까지 갈라놓을 만큼 힘이 셉니다. 수익배분을 비율로 정할 경우 사업을 주도하는 민간사업자 측의 비용 부풀리기와 이익 빼돌리기는 예상되는 일이므로, 비율배당은 피하고 비율이 적더라도 배당 몫을 사전 확정해야 한다는 저의 지론입니다.
위례 사업도 예정수익 1100억원의 30% 정도인 300억원을 사전 확정했다면 50%의 비율배당을 약정한 결과(약 150억원) 보다 나았을 것입니다.
또한 대장동 일당이 위례신도시 아파트 분양사업에 관여한 사실을 저는 알지 못했고, 위례 주택건설사업 시행자에 대해 아는 바도 없으므로 그들에게 사업 관련 비밀을 유출할 이유도 없습니다. 유동규가 스스로 저지른 불법행위를 제게 보고한다는 것도 상식밖입니다.
2023.1.28
위 진술인 이재명 (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귀중
미디어오늘 서어리 기자
김부겸 “한국사회 지금 정서적 내전 상태, 한 발 더 나가면 나치즘”
정계은퇴 후 청년정치인 만나며 공개 행보
“원로들과 함께 선거제 개편 강하게 압박”
김부겸 전 국무총리(왼쪽)가 28일 서울 마포구 ‘정치학교 반전’ 강의실에서 청년 정치인들을 상대로 김성식 운영위원장(오른쪽)과 대담 형식으로 강연하고 있다. 정치학교 반전 제공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28일 청년 정치인들과 만나 “사회 원로들과 함께 선거제 개편을 강하게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와 함께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이날 처음으로 강연 형식의 공식 행보를 가졌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서울 마포구의 청년 정치인 양성학교인 ‘정치학교 반전’에서 김성식 전 국회의원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강연에서 “승자독식 선거 제도가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관계 속에 있는 한국 사회와 안 맞는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반전’ 멘토단이고, 김 전 의원은 운영위원장이다.
김 전 총리는 정계를 은퇴한 이유에 대해 “어느 한쪽에 발을 담그고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전부 죽이자’는 식의 정치는 못 하겠더라”고 회고했다. 현 정치 상황을 두고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 상태’가 돼 버렸다”며 “그 다음 단계로 ‘싹 다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사회 심리 위에 등장했던 세력이 나치와 파시스트이고, 지금 우리는 그만큼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김 전 총리는 청년 정치인들에게 “청년 정치가 이렇게 귀중한 줄 알면서도 정치에 청년 몫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사과했다. 김 전 총리는 대안으로 “고맙게도 국회의원 70명 정도가 현행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법을 바꾸자는 운동을 시작했고, 저도 사회 원로 입장에서 이건 해야 한다고 강하게 푸시(압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아직 선거(총선)가 남아 있을 때 각 정당이 이 문제에 대한 국민적 압박을 받아야 한다”며 “국민이 곳곳에서 ‘언제까지 이 난장판 정치를 가지고 뭘 할 것이냐’라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보고 늦은 건 납득 안 가”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두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가 늦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연결된 데는 정부 대응 태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과거 세월호 참사 경험으로 안전이 국민적 이슈였고, 그래서 국민안전처를 행정자치부와 묶어서 행정안전부를 만들었다”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국민 안전에 대한 거의 모든 사안이 실시간으로 행안부가 있는 정부세종청사에 들어온다. (참사 발생) 10분 이내면 상황이 전파돼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조치가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리는 ‘지금 이 장관 처지라면 어떻게 처신했겠냐’는 질문에 “(저라면) 집에 갔다”고 답했다.
김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고 “‘민주당만의 정부’가 아닌 ‘촛불 혁명 정부’여야 했다”며 “박근혜 정권 핵심을 제외하고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울러서 우리 사회의 합의 수준을 높여가는 집권을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에서 우리가 건방졌다”고 반성했다. 김 전 총리는 특히 “28차례 발표한 부동산 정책 결과 우리 사회에서 건널 수 없는 자산 양극화가 왔다”며 “부끄럽다. 그래서 심판받았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정책포럼 ‘사의재’ 고문으로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 정부 들어서 전 정부의 모든 정책이 다 잘못됐다고 할 뿐 아니라 (정책을 결정한) 당사자들을 전부 검찰이 소환하고 처분하려 하니 혼자(로는) 방어가 안 되더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사의재가 출범하기에) 적절한 시점인가에 다 동의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우리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 정부의 지나친 ‘문재인 정부만 빼고’(Anything but 문재인) 정책으로 이렇게 난도질당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겨냥 “한솥밥 먹는 동지···민주당에 가혹”
김 전 총리는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두고는 “같이 한솥밥을 먹는 동지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고 감쌌다. 그는 “권력을 쥔 사람들이 무슨 의도로 이렇게 (수사)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민주당이 여러 어려움을 겪기에 (민주당이)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며 “민주당 개혁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에 지금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여야 정치권에 “국민이 어떻게 믿겠나. 한쪽(보수)은 너무 욕심쟁이라서 싫고, 한쪽(진보)은 너무 대책이 없어 싫은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정치권 혁신 과제에 대해서는 “보수는 지금보다 덜 뻔뻔해져야 한다”며 “복지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나”라고 반문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내놓은 취약계층 에너지 바우처 지원액 인상 대책을 언급하면서 “(저소득층은) 2만~3만원 나오던 가스비가 12만~15만원 나오면 어떻게 견디겠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진보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공동체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을 위해 진보가 양보할 선은 어디까지인가를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청년 정치인들에게 “(유력 정치인들에게) 줄서는 버릇하면 안 된다”며 “장신구 대접받고 운 좋은 한두 사람은 선택받겠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나. 자기 브랜드를 가질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5월13일 총리직 퇴임사에서 “30년 넘게 해 왔던 정치인과 공직자 여정도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1977년 대학 시절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정계에 입문한 김 전 총리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소장파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며 열린우리당 창당에 관여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지낸 뒤 2012년부터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대구 수성갑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했다. 2016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민주당 정치인 중 최초로 대구에서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문재인 정부 초대 행안부 장관과 마지막 총리를 지냈다. 2020년 8·29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맞붙었다가 패배했다.
경향 김윤나영 기자
몰라서 더 무서운 ‘코로나 후유증’…치매·심장마비·정신질환도
혈관과 면역 이상 속출
코로나19에 걸린 뒤 치매 위험이 33%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0년 2월 이탈리아 산피오라노에 사는 노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
심장마비, 뇌졸중, 정신질환, 치매…. 코로나19 감염 뒤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나 이미 감염 사실조차 잊은 뒤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단순한 호흡기 감염 질환이 아니라 혈관 질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69살 환자는 코로나19 감염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다. 그러나 한 달 뒤 그는 갑자기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가족과 친구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고 주소와 약속을 잊어버렸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의 의사들이 국제 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뉴롤로지>(Frontiers in Neurology)에 사례를 기술한 이 여성은 병원에 왔을 때 심한 언어장애가 있었고, 주어진 문장을 반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치매 진단 테스트에서 30점 만점에 7점을 받았다. 5점부터 심각한 인지장애로 간주한다.
뇌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고 가족 가운데 비슷한 병을 앓은 사례도 없었다. 의사들은 신진대사장애 같은 다른 원인도 배제했다. 갑작스럽게 발병한 치매는 ‘제2형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즉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후유증이었을까?
단순 호흡기 질병 아니다
이전에 다른 질병이 없었던 58살의 또 다른 여성 환자도 코로나19를 잘 이겨냈지만 이후 조금 무리하면 가슴통증이 생긴다고 호소했다. 미국 텍사스공과대학 보건과학센터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대학 의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이 환자는 코로나19 감염 3개월 뒤 가슴뼈 뒤쪽에서 급성 통증을 느꼈고 이 통증은 왼쪽 팔로 퍼졌다고 한다. 3개월 전 코로나19 감염을 제외하고는 타당한 설명을 찾을 수 없는 심근경색이었다.
실제로 대규모 비교연구에서 심근경색, 심부정맥, 심부전 또는 심장 돌연사의 위험이 코로나19 감염 뒤 최소 1년 동안 크게 증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텍사스공과대학과 알렉산드리아대학의 과학자와 의사들은 “코로나19 증상이 경증일 때도 후기 심혈관 합병증을 진단하려면 장기적이고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2022년 10월에는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이 120만 명 이상의 환자 사례를 분석한 연구논문을 게재했다. 그 결과는 명확할 뿐만 아니라 경악스럽다. 치매, 간질, 정신병 같은 신경·정신질환의 위험이 코로나19 감염 이후 증가하며 때로는 최대 2년 동안 계속된다.
코로나19는 여전히 단순한 호흡기 감염쯤으로 위험성이 경시된다. 그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은 다기관염증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바이러스는 장기간 지속하는 염증 진행뿐 아니라 심장과 뇌, 신장, 간, 생식기 등 전신에 후유증을 남기는 혈관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이것이 수백만 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 아직 알 수 없다.
독일 기센대학의 바이러스학자 프리데만 베버는 “어떤 경우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해한 감기 바이러스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겨울철에 순환해서 유행하는 다른 네 가지 경증 코로나바이러스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전신의 혈관 내벽을 감싸는 내피세포가 이 질병에 영향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혈관을 통해 “신체의 중심적인 구조”에 영향을 준다고 베를린 샤리테병원 심장전문의이자 심근병증 부서 책임자인 카르스텐 최페는 설명했다. 혈관에 의존하지 않는 장기는 없다. “혈액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장기는 일부 기능을 상실한다. 이를 통해 몸 전체에 손상이 발생한다.”
최페는 코로나19 후유증이 19%에 이르는 2022년 10월의 초과사망률에도 기여했다고 확신한다. 사망자 수는 이전 4년 동안의 10월 사망자 수 평균보다 1만4560명 더 많았다. 의사와 보건 분야 정치인들은 이 점을 매우 우려했다. “구급차가 더는 갈 수 없을 정도로 환자가 꽉 찼다”고 심장전문의 최페는 말했다. “이미 심장 질환이 있던 환자는 더는 가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코로나19 감염이 초과사망률에 영향을 줬다.”
바이러스학자인 이자벨라 에케를레도 과소평가된 장기 후유증을 경고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신종바이러스질병센터를 이끄는 에케를레는 “일반 사회에서는 코로나19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제 지난 3년을 결산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 년 뒤 이 결산을 후기 합병증까지 고려해 다시 검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별 사례에서 코로나19 감염의 결과로 심근경색 혹은 치매에 걸렸는지, 아니면 그 뒤에 다른 원인이 있는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대부분의 환자에게서는 후유증 위험이 극적으로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의사가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알려진 SARS-CoV-2의 전자현미경 사진. NIAID통합연구시설(IRF)/로이터
치매·정신질환 30% 늘어
독일 니더작센주 브레머푀르데의 가정의인 마르크 하네펠트는 “당연히 이런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내 병원에서 그런 사례가 많아진다는 인상은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환자에 대해 확실히 고민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합병증, 중증화, 사망 사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그것이 무해하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과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불분명한 것을 좀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대규모 비교연구는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코로나19 후유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코로나19 감염에서 살아남은 15만3760명의 미국 참전용사를 연구한 결과가 게재됐는데, 감염 뒤 1년 동안 감염자 1천 명당 45명의 심혈관 질환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심근경색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와 오리건주의 연구자들이 환자 1355명에게 수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감염이 중증인지 경증인지는 상관없었다. 심장 문제로 치료받은 적이 없는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백신이 이런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보호해주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지금까지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감염은 비만이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유사한 심장 질환의 위험 요소라는 것이다.
샤리테병원의 최페 박사는 “코로나19 이후 발생률이 증가하지 않은 심장학적 임상 증상은 없다”고 말했다. 혈관 손상이 때때로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는 얼마 전 한 환자의 심혈관조영술에서 경험했다. 조영제를 관상동맥 혈관에 주입해 엑스(X)선 스크린 아래에서 관찰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조영제는 총을 발사한 것처럼 빠르게 혈관을 통해 흐른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조영제가 통과하는 데 3~4초 걸렸다. 혈관이 심하게 변형돼 염증이 생겼고, 작은 혈전이 생겨 혈류가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심장병 전문의의 설명이다. 해당 남성 환자의 심장 기능은 20%에 불과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알려졌다. 인플루엔자 감염 뒤에도 심근경색 위험이 몇 주 동안 많이 증가한다. 그러나 위험이 1년 또는 그 이상 지속한다는 사실은 의사들에게는 새로운 현상이다. 독감도 자주 과소평가되지만, 이 이유만으로도 코로나19는 독감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감염병을 앓은 뒤 신경학적·정신적 후유증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페인독감 이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약 100만 명의 기면성뇌염(Encephalitis Lethargica) 환자 사이에 시간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질환은 처음에는 발열·졸음·운동장애를 일으켰고 몇 달에서 몇 년 뒤에는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다. 코로나19도 그와 비슷하게 나쁜 것일까?
2022년 10월 <랜싯>에 코로나19를 겪은 환자와 감기 또는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비교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감염 뒤 반년이 지나 평균적으로 코로나19에서 회복된 사람들의 치매 위험이 33%, 인지장애 위험이 36%, 환청을 듣거나 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의 위험이 27% 정도 증가했다. 불안장애, 뇌전증(간질발작), 수면장애 및 우울증의 위험도 늘었다.
2020년 봄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탈리아 북부 출신의 54살 간호사 사례는 어떤 기묘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전문학술지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logical Sciences)에 그의 병력을 기술했다. 그는 4주 동안 심하게 앓았고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하루에 6~8회 약 1분간 지속하는 후각적 환각(고무가 타는 듯한 냄새)을 경험했고 이후 각각 10~15분 동안 ‘정신 혼란’이 이어졌다. 의사들은 전두엽 뇌전증으로 진단했다.
광범위한 조사에도 코로나19 감염 외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뇌전증 약물치료 뒤 증상이 호전됐다. 매일의 환각 대신 그는 일주일에 두 번만 코안에서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들은 “우리는 이러한 합병증이 미래에 훨씬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결론지었다.
2021년 10월31일 미국 뉴욕에서 코로나19를 유발하는 바이러스(SARS-CoV-2)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들. 로이터
동공수축 안 되는 경우도
<랜싯>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코로나19 감염 뒤 약 2개월이 지나 정상을 되찾았지만, 뇌전증·치매·인지장애·정신질환의 위험은 감염 뒤 2년 동안 계속 남았다.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은 어린이에게서도 후기 신경정신 질환의 발생 위험이 있다.
그러나 <랜싯> 연구의 저자인 폴 해리슨은 공황상태(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정신과 교수인 해리슨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정신질환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뒤 상대적인 위험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코로나19 환자는 이런 후유증을 겪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리슨에 따르면 감염병이 사회서비스 시스템에 미칠 결과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치매 사례가 팬데믹 이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에 대비해야 한다.”
개별 사례에서 코로나19는 치명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12월 전문학술지 <감염·약물내성>(Infection and Drug Resistance)에서 의사들은 루마니아 동부 도시 갈라치의 정신과 응급실로 경찰이 이송한 루마니아 출신 44살 정보기술(IT) 엔지니어의 사례를 보고했다. 이 남성은 망상에 빠졌고 칼로 자신을 찌르려 했다. 그의 병력에서 의사들은 3개월 전 코로나19 감염을 제외하고는 정신질환 발생을 설명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또한 특이한 신경학적 증상이 코로나19 감염 뒤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 아주 건강했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36살 여성은 코로나19로 인한 폐 컴퓨터단층촬영(CT) 소견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약 한 달 반이 지나 왼쪽 동공이 수축하지 않았다. 아무리 밝아도 동공이 계속 확장된 상태를 유지함에 따라 눈이 빛에 매우 민감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검사 결과 팔과 다리의 ‘깊은힘줄반사’(Deep Tendon Reflex·힘줄에 자극을 가하면 순간적으로 근육이 수축됨)도 사라졌지만 뇌 MRI 검사를 포함한 다른 모든 소견이 정상이었다. 의사들은 자율신경계 손상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일명 ‘홈스-에이디(Holmes-Adie) 증후군’으로 진단했고 코로나19 감염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는가?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심혈관학과 교수 마우로 자카는 “메커니즘이 없다”고 했다. 그는 2020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심장 일부가 심하게 손상된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혈관 손상 외에 급성감염보다 훨씬 오래 지속하는 면역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감염 중에 형성되는 염증 유발 메신저 물질이 뇌에 도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물질은 뇌 안에서 뇌세포 기능을 손상하는 면역반응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뇌전증과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장에서 뒤늦게 발생하는 후유증과 관련해서도, 통제 상태를 벗어나 미세혈전 형성을 촉진하는 면역반응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빈번할 것이다.
코로나19 안 걸리는 게 최선
코로나19로 인한 치매는 아마도 뇌혈관 손상의 결과일 것이다. “코로나19 환자의 뇌에서 비어 있는 ‘멤브레인 튜브’(Membrane Tube·막만 남은 혈관)를 발견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독일 뤼베크대학 ‘실험·임상약리·독성학 연구소’의 마르쿠스 슈바닝거 교수는 보고했다. “우리는 해당 부위에서 혈관의 세포가 죽었고 혈액이 더는 흐를 수 없는 빈 막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슈바닝거는 “특히 신경세포는 산소 공급에 매우 의존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혈류 속 박테리아 등 해로운 물질이 뇌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장벽)이 산소 부족으로 투과성이 높아질 수 있고, 이는 실험 모델에서는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는 혈액순환이 더는 최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때, 많은 노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강화하고 가속한다. 일반적으로 ‘석회화’로 알려진 혈관 변화로 발생하는 치매는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다. 슈바닝거는 “혈액순환 장애 측면에서 코로나19는 일부 사람에게 아마도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앙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혈관 내벽을 감싸는 내피세포를 직접 공격하면서 시작될 것이다. 이로써 전체적인 손상과 후속 손상이 일어난다. 면역반응은 점점 더 활발해지고 혈소판이 한데 뭉치는 경향이 증가해 혈전증과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세포의 에너지원인 미토콘드리아가 약해지고 결국 내피세포는 죽는다. 남는 것은 막(Membrane)만 남은 텅 빈 혈관이고, 뇌와 다른 장기의 혈액순환이 영구적으로 손상된다.
슈바닝거는 이 프로세스를 상세하게 조사했다. 이를 통해 그는 내피 손상을 예방하거나 막는 약물, 즉 현재 임상실험 시작 단계에 있는 RIPK(세포괴사를 일으키는 단백질) 억제제를 생각해냈다.
의사들은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스타틴(Statin·혈관 내 콜레스테롤 억제제)과 ACE(Angiotensin Converting Enzyme·혈압상승 호르몬인 앤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 등의 약물을 위험 환자의 코로나19 후유증을 완화하는 데 사용해보려 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당분간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한 최선의 예방은 처음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몸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학자 이자벨라 에케를레는 “우리는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코로나19를 단순히 풍토성 감기 중 하나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되도록 감염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베로니카 하켄브로흐 Veronika Hackenbroch <슈피겔> 기자
욕심, 불신, 반목... 대장동 '이지스함'은 어떻게 침몰했나
[정영학 녹취록 보고서⑤] 2013년 4월 16일, 대장동 일당 '인증샷' 나비효과... "같이 뒤져야지“
"4000억 짜리 도둑질 완벽하게 하자, 이거는 문제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다."
"김만배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최신종합무기 시스템을 탑재한 군함)이야. 김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대장동)을 해서 언론에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 (2020년 3월 13일 정영학-김만배 등, 분당의 한 식당)
오마이뉴스 이주연(ld84)
불황이라는데, 잘 나가는 그것
복권·립스틱·담배·소주 등 ‘불황형 상품’ 속설 증명
실용적 소비 속 일확천금 심리…명품·고급차 과시도
복권·립스틱·소주·콘돔·담배·게임·라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많이 팔리는 이른바 ‘불황형 상품’이다. 불황기엔 변하지 않는 법칙들이 있다. 실용적 소비 성향이 짙어진다. 최대한 덜 쓰면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는 소비 유형이다. 명품 매출이 늘거나 일확천금의 심리도 강해진다. 올해도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내수시장엔 찬바람이 불 전망이다. ‘불황의 속설’이 통할까.
불황 알리는 상품들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6조4292억원으로 전년(5조9753억원)보다 7.6% 증가했다. 복권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많이 팔렸다. 연도별로 2017년 4조2000억원, 2018년 4조4000억원, 2019년 4조8000억원으로 4조원대를 기록하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5조4000억원으로 뛰었고, 2021년과 2022년에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불경기일수록 복권이 많이 팔린다’는 속설이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다.
지난해는 특히 고물가와 고금리 영향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내수시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9일 발표한 ‘11월 소비동향’에서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 대비 1.8% 감소하며 3개월 연속 뒷걸음질했다. 가계 형편도 어려워졌다. 지난해 11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6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3.0% 늘었지만, 물가 변동분을 제거한 실질소득은 2.8% 줄어 전년도 2분기(-3.1%) 이후 5개 분기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해 3분기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9% 올랐다. 분기 기준 상승률로는 1998년 4분기(6.0%) 이후 가장 높았다. 골목상권 경기도 얼어붙긴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지난해 12월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중 68.6%는 매출이 1년 전보다 줄었다고 답했다.
복권을 산 사람 중에선 중산층 이상 소득자가 많았다. 지난해 복권 구매 경험자를 가구소득 5분위별로 나눠봤더니 상위 20~40%에 해당하는 4분위(월소득 466만~673만원)가 39.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득 5분위(674만원 이상) 비중은 10.9%였다. 과거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복권을 사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중산층 이상 소득자들이 복권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셈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저소득층의 복권 구매 여력이 줄었거나, 경기 불황에 일확천금을 노린 중산층이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직업별로도 사무직(화이트칼라) 비중이 32.1%로 가장 높았다. 자영업(20.2%), 전업주부(18.9%), 생산직(블루칼라, 17.9%)이 뒤를 이었다. 무직이나 은퇴자 비중은 5%에 그쳤다.
담배도 불황기에 호황을 누리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연초로 불리는 궐련 담배 판매가 소폭 줄어든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는 크게 늘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7월 말 내놓은 ‘2022년 상반기 담배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전체 담배 판매량은 모두 17억8000만 갑으로, 전년 동기(17억5000만 갑) 대비 3000만 갑(1.9%)이 더 팔렸다. 궐련 담배는 15억2000만 갑이 팔려 전년 동기 대비 2000만 갑(1.0%)이 덜 팔린 반면 같은 기간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는 5000만 갑(22.5%) 많은 2억6000만 갑이 팔렸다.
술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소주의 경우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 후레쉬가 지난 10년간 연평균 약 5%씩 매출이 늘었는데, 지난해는 전년 대비 9%나 뛰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조금씩 완화되면서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줄었던 유흥업소에서 판매량이 23%나 올랐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17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5억8126만달러(약 7187억원)로, 전년 5억5981만달러 대비 3.8%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돈을 아끼려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집에서 여유롭게 술을 즐기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가 하나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는 전반적인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이러한 흐름이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의 한 화장품 매장에 립스틱이 진열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황의 속설’ 뭐가 있나
대표적으로 ‘립스틱 효과’가 있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립스틱과 같은 저가 화장품이 많이 팔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빨간 립스틱 하나만으로 화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기에 대다수 상품의 매출이 떨어졌지만, 립스틱 매출은 오르는 기현상을 보고 경제학자들이 붙인 용어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미국의 경우 방역 완화 효과와 맞물려 립스틱 매출이 크게 늘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1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 최고경영자(CEO) 니컬러스 이에로니무스를 인용해 “2022년도 3분기 자사 매출이 코로나19 관련 규제로 인한 중국 판매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기보다 9.1% 증가했다”고 밝혔다. 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 1~10월 전체 립스틱 판매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37%나 늘었다. 올해 국내 화장품 시장 전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지난 1월 12일 “과도한 소비보다 패션 소품 등으로 스타일링 효과를 누리는 ‘불황 속 나를 위한 소비’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게 되면 립스틱과 같은 색조 화장품 판매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불황형 상품 중 하나인 콘돔은 속설과 반대로 매출이 줄었다. 콘돔은 경기가 나쁠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져 평상시보다 잘 팔린다고 알려졌지만,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불황기엔 판매가 오히려 감소했다. 세계 최대 콘돔 생산업체인 카렉스의 고 미아 키앗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10일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콘돔 판매량이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불황에는 사치재로 불리는 명품이 더 각광받는다. 해외 패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는 지난 1월 4~5일 가방 제품인 가든파티36을 기존 498만원에서 537만원으로 7.8%, 에블린은 453만원에서 493만원으로 8.8% 각각 인상했다. 시계 H아워(에르 H 워치·스몰·카프스킨·금장)는 398만원에서 456만원으로 14.6% 인상했다. 스위스의 명품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지난 1월 1일 대표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와 데이트저스트 등의 가격을 2~6% 올렸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도 일부 제품 가격을 5~10% 인상했다.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크리스챤 디올은 1월 12일부터 파인 주얼리 가격을 평균 10% 이상 올렸다.
대당 가격이 수억원인 초고가 차량은 불황기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벤틀리는 지난해 국내에서 775대가 판매돼 전년(506대) 대비 53% 늘었다. 람보르기니는 2019년 173대, 2020년 303대, 2021년 353대, 지난해 403대 등 코로나19 확산 이후 오히려 판매 실적이 크게 늘었다.
경기가 나쁠 때 명품 가격이 오르고 잘 팔리는 현상을 가리켜 흔히 ‘베블런 효과’라고 부른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평론가인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따온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줄지 않고 되레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기업들이 사람들의 과시욕을 자극하기 위해 한정판이나 리미티드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수량은 적게 판매하되 가격은 높게 책정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제품들. 라면은 불황기에 호황을 누리는 제품 중 하나다. 연합뉴스
2009년 호황 누렸던 수입품은
과거 불황기엔 어땠을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담배와 화장품, 고급 시계와 스마트폰 등이 주목을 받았다. 관세청이 2010년 5월 발표한 ‘2009년 불황을 잊은 10대 수입 소비상품’은 스마트폰, 커피 원두, 고급 생수, 담배, 사케(일본 청주), 비디오 게임기, 중소형 디젤 승용차, 화장품, 악기, 고급 시계 등이었다.
이중 담배는 전년 대비 17.5%(중량 기준)나 증가했다. 금연초와 금연껌 등 담배 대용품 수입이 전년 대비 중량 기준 6.4%, 금액 기준으로 18.6%나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침체 시기에 흡연 인구도 증가했지만, 동시에 담배 대용품을 통해 금연을 하거나 흡연량을 줄여보려는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불황기엔 돈이 많이 드는 야외활동보다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기 수입이 크게 늘었다. 닌텐도 위(Wii),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비디오 게임기 수입이 전년 대비 48% 증가해 총 수입액이 1억600만달러에 달했다. 향수 수입액은 전년보다 4.5% 증가한 7459만달러, 고가 악기인 색소폰 수입은 전년보다 7.9% 늘어난 1168만달러, 스위스산 손목시계 수입은 전년보다 20.5% 증가한 1억6000만달러로 각각 집계됐다. 2500cc 이하 중소형 디젤 승용차 수입액도 2억698만달러로 43% 증가했다. 특히 휴대전화 수입액은 1억3704만달러로 전년보다 무려 149%나 증가했다. 2008년 11월쯤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품목은 웰빙과 가치 중시, 젊은층 주도 소비 등 당시의 소비 트렌드를 이끌며 관심을 받았던 제품들이다. 금연초와 금연껌 등 담배 대용품이 크게 늘어난 것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두드러진 결과로 해석된다. 또 고급 생수와 악기, 고급 시계 등의 수입이 늘어난 것은 ‘가격’보다는 제품에 내재된 ‘가치’를 중요하게 고려하면서도 문화와 명품 이미지를 동시에 취하려는 소비 유형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스마트폰, 커피, 사케, 중소형 디젤차, 화장품 등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각광을 받았던 대표적 품목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은 많지 않지만, 유행에 민감한 20~30대 젊은층의 소비 성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서울 종로 재래시장의 한 상가에 점포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창길 기자
올해 내수 전망은
올해도 고물가와 고금리 영향으로 내수시장 전망은 어둡다. 지난해 여름 이후 켜진 ‘경기 둔화’ 경고음이 최근 들어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13일 발간한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감소와 경제 심리 부진이 이어지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됐다”고 했다. 지난해 6월 그린북에서 언급한 이후 연말까지 계속 유지한 경기 둔화 ‘우려’를 1월엔 둔화 ‘우려 확대’로 더 암울하게 진단했다.
소매업계 분위기도 좋지 않다. 지난 1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올해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전망치가 64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2009년 1분기·73)와 코로나19 확산 시기(2020년 2분기·66)보다 낮다. RBSI가 100 이상이면 ‘다음 분기의 소매유통업 경기를 지난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이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RBSI는 지난해 2분기 99에서 3분기 84, 4분기 73, 올해 1분기 64로 하락하며 3분기 연속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한상의는 “새해에도 고물가, 고금리, 자산가격 조정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어렵다”며 “각종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높은 물가 수준이 지속되고 이를 잡기 위한 고금리 기조 유지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소비 회복이 어려우리라는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당 조사에선 업태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기전망치가 좋지 않았다. 대형마트(83)가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나머지 백화점(71), 온라인쇼핑(65), 편의점(58)은 ‘한파’를 맞을 것으로 봤다. 고소득 이용객이 많은 백화점의 경우 자산가치 하락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에 따라 매출 감소폭이 커질 수 있다. 온라인쇼핑은 높은 가격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경기 하락세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이한 점은 편의점이다. 통상 불황기에 매출이 늘어나는 업태 중 하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부진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염민선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 박사는 “1~2월 겨울철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데다 비수기여서 매출 체감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이후 경기전망치까지 낮은 것은 경기 불황이 예고된 상황에서 편의점 간 치열한 경쟁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불황기에는 구독서비스와 같은 고정 비용 지출이 줄어드는 반면 한 번에 대량으로 사면 할인이 되고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치약과 샴푸 등 대용량 제품과 1인 가구가 즐겨찾는 소용량 제품의 매출이 늘어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자산 버블을 경험하면서 단순히 아껴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이 아닌 플랫폼에서 내가 매출까지 낼 수 있는 방법, 예컨대 온라인 중고 마켓을 통해 실속형 구매를 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물건을 올려 이익을 거두려는 소비 유형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주간경향 안광호 기자
그 많던 공급론자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시사IN 이명익
얼마 전, 동네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600세대가 조금 넘는다. 아파트가 코앞이라 우리 집 거실에서 공사 현장이 훤히 보였다. 여름철에 소음과 먼지 때문에 다소 불편해 얼른 완공되면 좋겠다 했다. 완공되면 전망을 가려 ‘좀 답답하겠구나’ 싶었지만.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동네 이웃이 집에 놀러와 ‘직장 후배가 그 아파트에 입주한다’고 말했다. 그 후배는 첫 내 집 마련이라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궁금해, 쉬는 날에 이따금 공사 현장을 찾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거실에서 보이는 공사 현장을 촬영해 몇 번 보내주었다. 공사가 이만큼 진척됐다고. 그 직장 후배에게 보내주라고 이웃에게 전송했다. 내 집 마련도 좋지만, 휴일에는 쉬어야지.
지난해 11월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거실에서 본 새 아파트 풍경. 아파트 단지가 한적했다. 밤에는 불 꺼진 집이 훨씬 많다.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에게 물으니, 입주 예정자들이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거나, 세입자를 찾지 못해서 다들 입주가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심각해요, 심각해”라고 했다.
부동산시장, 몇 년 사이 체감이 다르다. 불과 두어 해 전만 해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니 뭐니 했는데. 요즘은 듣기 힘든 신조어가 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기에 부동산 경기가 확 바뀐 듯하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라고 자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시작으로 한 금리인상이 집값 약세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고,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가격 유지에 ‘호재’로 작용할 부동산 세금 부담 완화 정책을 정권 초부터 내놓지 않았나. 재주는 ‘연준’이 부리는데, ‘광을 파는’ 느낌이랄까. 대통령의 발언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건 나만이 아니었을 성싶다.
윤석열 정부가 1월3일 ‘주택시장 연착륙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었다. 이종태·변진경 기자가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부동산 규제 완화, 부동산시장과 금리’를 다루었다. 부동산시장을 ‘읽는’ 데 도움이 되리라. 두 사람의 기사를 읽으며, 불과 2~3년 전이 떠올랐다. 그 많던 ‘부동산 공급론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휴일에 공사 현장을 찾았다던 이웃의 직장 후배는 새 아파트에 입주했을까? 이번 규제 완화가 몇 년 뒤 후폭풍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시사인 차형석 편집국장
이명박·박근혜 공천 잔혹사로 돌아본 尹의 '오래된 미래'
[분석] '친위 체제' 무리수가 부른 '공천학살' 흑역사…나경원 사태, '윤심 총선' 프리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총선을 두 번(2008년, 2012년) 치렀다. 두 번 모두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여당의 입법부 점령 효과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 간, 압도적인 보수 우위의 정치체제가 이어졌다.
1987년 개헌 이래 가장 오랫동안 펼쳐진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대통령의 국정이 그리 순탄하게 운영되지는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집권기를 마감한 민주당이 오랜 정체를 겪는 사이, 여당 지붕 아래에서 동거하는 '실질적 야당'이 골칫거리였다.
정치적 앙숙처럼 서로를 견제했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기에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은 번갈아 여당이자 야당으로 충돌했다. 자해적인 계파 갈등이 공천 과정마다 기승을 부렸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박근혜).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열린 2008년 '허니문 총선'을 코앞에 두고 한나라당은 극심한 '공천 학살' 파동을 겪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총선 의중은 '상왕'으로 통한 이상득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으로 흘렀다. 친이계가 휘두른 '공천 학살' 칼날에 '관리형 대표' 역할에 머문 강재섭 대표의 조정력은 극히 제한됐다.
"살아서 돌아와 달라"(박근혜)는 생환 기원과 함께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탈당해 만든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가 총선에서 기염을 토했다. 결국 26명에 달하는 탈당 친박이 당선돼 여당의 '이명박 친위체제' 구축은 완성되지 못했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핵분열이 일어났다. 집권 공신인 정두언 전 의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이상득 공천 철회'를 촉구한 '55인 파동'이다. 항명은 실패로 끝났다. '상왕'은 그대로 출마해 당선됐고, 정 전 의원은 그 이후 권부에서 밀려났다.
집권당 내부의 제 살 깎아먹기식 분열은 이명박 정부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선 강력한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 칼자루를 쥐었다. 이번에는 친이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여당 내 주류와 비주류의 처지가 뒤바뀐 '보복 공천'으로 평가됐다.
공천 잔혹사는 이후에도 무한 반복됐다. 2016년 총선에선 친이계를 향한 청와대발 '살생부'가 새누리당에 떨어졌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추천장에 직인 날인을 거부한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그해 총선에서 패해 여대야소를 마감했고, 친박계에 유리하도록 경선에 개입한 박근혜는 훗날 이 혐의로 실형을 확정받았다.
7년 전 여당의 공천 난맥을 상징하던 "옥새 들고 나르샤", "진박 감별사" 용어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국에 다시 등장했다. '나경원 사태'의 본질을 2024년에 벌어질 공천 파동의 전조로 보는 관측이 많다.
'친윤', '비윤', '반윤'이 뒤엉킨 경쟁구도 속에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 의중은 '친윤 당권' 구축을 통한 여대야소 회복에 맞춰져 있다. 연초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나는)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 결과에 윤석열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고 보는 위기감과 승부욕은 지난해에 "내부 총질" 문자에서 드러난 '이준석 찍어내기'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어 국민의힘이 당대표 경선 룰을 '100% 당원투표',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바꾼 것은 민심에서 우세한 '유승민 출마 봉쇄' 목적이 작용한 결과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심에서 우세를 보이자 이번엔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출마를 차단했다.
국민의힘 역시 민심과 당심보다 '윤심'으로 기울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50명은 나 전 의원을 향해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여당 내에서도 "집단적인 린치"(윤상현 의원), "깡패들도 아니고 그게 뭐냐"(이재오 상임고문)는 탄식이 나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윤심'의 좌표는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 힘싣기'로 선명하게 맞춰졌다. 전당대회 '판짜기' 과정에 주도적인 목소리를 낸 장제원 의원은 김기현 의원이 대표에 오르면 사무총장 기용설이 나온다. 2008년 '관리형 대표(강재섭)와 실세 사무총장(이방호)' 진용을 떠올리게 한다.
김무성 상임고문이 26일 김기현 의원에게 "정당 민주주의 확립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천제도 확립"을 당부하며 "민주적 상향식 공천 외에는 다른 답이 없다"고 한 언급에서도 2016년 '옥새 파동' 경험이 엿보였다.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이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까지 남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은 안철수 의원이다. '나경원 사태' 이후 여론 흐름은 안 의원이 나 전 의원 지지층을 흡수하며 김기현 의원을 빠르게 추격하는 양상이다.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김 의원은 "다음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얼굴로 치르는 선거"라며 "대통령과 갈등하거나 대립하는 강한 긴장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차기 대선주자인 안 의원을 겨냥해 "대선에 나가겠다는 분들이 공천 과정에서 사천(私薦)이나 낙하산 공천을 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는 2016년 총선을 앞둔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 서청원 의원이 경쟁자인 '비박' 김무성 의원을 향해 "차기 대권에 나올 사람이 당권을 맡으면 인사권, 당권 모두 장악할 것"이라고 압박했던 장면과 겹친다. 그러나 당시 전당대회는 '선거인단 투표(70%)와 여론조사(30%)' 경선 룰에 힘입어 민심에서 앞섰던 김무성 체제가 등장했다.
'여당 내 반대세력'을 불허하는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겹겹이 방어막을 친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심이 통할지, 그렇게 국민의힘에 '친윤 체제'가 등장하면 내년 총선에서 여대야소를 되찾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윤석열 얼굴'로 치르게 될 내년 총선 시간표는 집권 3년차다. 임기 중 총선을 두 번 치른 이명박 전 대통령도 3년차에 또 한 번 전국단위 선거를 치렀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50%를 상회했고 천안함 사태 여파로 '북풍'이 일었음에도 2010년 지방선거 결과는 여당의 패배였다. 특히 수도권 6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15곳만 건진 여당은 46곳을 민주당에 내줬다.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2055년 연금고갈’ ‘월급 35% 날라간다’ 연금 불신 조장 보도의 이면
27일 재정추계 결과 이후 불안 부추기는 보도들
고갈시점, 보험료율 등 비현실적 숫자에 “공포 마케팅” 비판
“연금은 신뢰가 중요…세대 갈라치기 그만하고 공론의 장 열어야”
“여태 낸 거라도 돌려줘라 각자도생하게”
국민연금 관련 기사의 주요 반응은 ‘연금 불신’이다. 언론이 비현실적 수치를 내세우며 연금 불안을 부추긴 결과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국민연금에 언론이 공론의 장이 아닌 ‘싸움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대를 갈라치며 연금의 사회적 수용성을 떨어뜨리고 구조적 개혁 등 필요한 논의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7일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하자 28일 신문은 ‘2055년 고갈’, ‘소득 20% 내야할 판’, ‘문재인 정부 허송세월’ 등의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다. 전병목 재정추계전문위원장이 보도자료에 “(추계 결과는) 연금제도 세부내용을 조정하지 않고,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전망해 기금소진연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참고자료로 활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보도는 그 반대였다.
▲ 28일자 한국경제 1면 기사.
▲ 28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한국경제는 28일 기사 <개혁 미룬 대가… 국민연금 고갈 2년 빨라졌다>에서 “현행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65세부터 연금 수급’ 조건을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 1755조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41년 적자 전환하는 데 이어 2055년엔 완전 고갈된다. 4차 재정추계 때와 비교하면 기금 수지가 적자 전환하는 시점은 1년, 기금 고갈 시점은 2년 앞당겨졌다”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가 핵심 원인”이라고 밝혔다.
매일경제는 28일 기사 <국민연금 적자 피하려면… 2년 뒤부터 소득 20% 내야할 판>에서 “기금이 고갈된 이후 ‘바로 걷어 바로 주는’ 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국민이 부담할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급증해 2080년에는 34.9%(부과방식비용률 기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며 “2080년 기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월 소득이 300만 원인 사람은 무려 105만 원을 매달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 28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1면에서 “분석 결과 재정목표 시나리오별(적립배율 1배, 2배, 5배 유지하는 경우)로 필요보험료율은 17~24% 수준으로 제시됐다”며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최소 2배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1면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5년 동안 연금 개혁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전보다 더 악화된 상황에 직면한 셈”이라고 했다.
해당 보도들엔 ‘세대 분열’과 ‘연금 불신’이 주요 반응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27일 기사에는 “국민연금 대국민사기다. 내 돈 돌려줘라. 왜 근로자 소득에서 국민연금을 강제로 뺏어가서 윗세대들한테 줘야 하냐. 이거 완전 폰지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라는 댓글이 달렸고, 30일 중앙일보 기사엔 “그냥 (연금)원금 돌려주고 폐지합시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2055년 고갈” 헤드라인에 “공포 마케팅” 비판
‘고갈시점’에 주목하는 언론보도 행태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이다. 미래에 내가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기 때문이다. 이번 재정계산은 지금부터 70년 후인 2093년까지, 국민연금이 현재 가진 모습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정한 추산치다. 각종 주요 경제변수와 인구변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기금이 소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국민연금기금소진, 정말로 문제인가? 지난 20일 발간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이슈페이퍼(남찬섭 동아대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마치 (연금)제도가 파산하는 것처럼 사망선고날짜 쓰듯 언론이 얘기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오히려 불신을 부추기고 사회적 수용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형태”라며 “저희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얘기한다. 2007년 연금개혁할 때부터 반복됐던 패턴이다. 국민연금은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한데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번 재정추계결과 기금소진 후인 2080년에 연금지출은 GDP의 9.4%”라며 “지금도 유럽 각국은 연금지출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영국, 독일, 스페인은 기금이 거의 없지만 그 나라 노인 중 기금이 없어서 연금을 못받았다는 노인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2055년 고갈’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이미 지난 2019년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2060년 국민연금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국민연금 소진 시기가 2054년으로 정부 추계보다 3년 앞당겨진다고 발표했고 이 때도 조선일보 <국회예산처 “국민연금 2054년 고갈… 정부 예상보다 3년 빨라”>, 동아일보 <국민연금 2054년 고갈… 정부 예상보다 3년 빨라>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이슈페이퍼에서 “미국도 작년 재정추계 때 2034년 기금소진으로 나왔다. 하지만 우리처럼 온 나라가 망할 듯 그러지는 않는다”고 했다.
월급 35% 날라간다…‘보험료율 괴담’ 진실은
▲ 27일 보건복지부 5차 재정추계 결과 갈무리.
28일 언론은 재정안정이 필요한 보험료율로 17~24% 수준을 제시했다. 소득대체율, 수급 연령 조정 등 연금의 다른 요인을 고정한 숫자다. 하지만 현재 9% 수준인 보험료율을 일시에 20%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2093년 기준의 적립배율(해당연도 총지출 대비 연초 적립금)을 목표로 했을 때 나오는 숫자들”이라며 “19%까지 일시에 올린다는 것이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15%까지 단계적으로 가고 ‘더 늦게 받자’거나 ‘덜 받자’ 등의 안이 혼합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료율 20%를 넘어 35%까지 언급되는 보도는 ‘공포’ 그 자체다. 매일경제는 “2080년 기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월 소득이 300만 원인 사람은 무려 105만 원을 매달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연금 기금 고갈 이후 현재의 ‘적립식’ 연금을 그해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부과식’으로 바꿨을 때를 가정한 숫자다.
해당 보도의 기준인 2080년까지 현 상황이 유지될 리는 만무하다. 더군다나 보험료율 35%는 분모를 ‘근로소득’에 한정했을 때의 숫자다. 전체 GDP가 아닌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해 과장돼 보인다는 지적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근로소득만을 분모로 잡으면 당연히 엄청난 숫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적연금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표는 근로소득이 아닌 GDP 대비 비용률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늘어나는 노인인구 부양부담을 얼마 안 되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라며 “독일은 한해 연금지출의 1/4을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을 넓히고 조세가 지원된다면 근로소득에만 부과되는 35%가 아니라 GDP 전체의 9.4%를 나누어 부담하게 될 것이다. 부과방식비용률이 아니라 GDP 대비 비용률을 봐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부과방식비용률 35%가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는 월급의 35%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득에만 연금보험료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며 조세도 연금지출에 지원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기금소진과 부과방식비용률만 앞세워 월급의 35% 보험료 운운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겁박하는 것이자 재정계산이 주는 보다 큰 함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 부과방식비용률,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난 20일 발간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이슈페이퍼(남찬섭 동아대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매번 반복되는 언론의 연금 보도가 세대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승윤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이 주도하는 청년-노인 갈라치기는 약간 허구적인 게 있다. 청년과 노인의 불평등보다 청년 내 불평등이 더 심하다. 쭉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청년과 여러 상황으로 여기저기 직장을 옮기는 청년 사이의 연금 격차가 더 크다”라며 “청년 세대 내 일자리가 어떤 형태이냐에 따라 노후소득이 확 갈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인데 그 논의가 전혀 안 되고 있다. 언론이 확실하게 보이는 집단을 응집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국민연금은 한 직장에서 40년 일을 한다는 가정으로 설계가 됐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1인 자영업자등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직장인들이 얼마를 더 내야 하고 이런 논의가 상당히 무용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일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고갈시점을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빠져있는 상황이다.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반도체 한파, 무역적자 ‘사상 최악’
1월 -127억달러…11개월째 적자
에너지 수입액 큰 폭 증가 대비
수출, 반도체 44% 급감에 16% ↓
반도체 한파, 무역적자 ‘사상 최악’
지난달 무역수지 적자 폭이 월간 기준 역대 최대인 126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비중이 가장 큰 반도체 수출이 44%나 급감한 가운데 에너지 수입액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무역수지는 11개월째 적자를 냈고, 수출도 4개월 연속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수출이 462억7000만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감소했다고 1일 밝혔다.
산업부는 “고물가와 고금리 등 세계 경기둔화와 반도체 업황 악화로 수출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수출은 코로나 확산 초기인 2020년 3∼8월 이후 처음으로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최대 효자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1년 전보다 44.5%나 급감했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약 48억달러 감소하면서 지난달 국내 전체 수출 감소분의 약 52%를 차지했다.
일반기계(-15.8%), 석유화학(-25.0%), 철강(-25.9%) 등 다른 주요 수출 품목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이 지난해보다 21.9%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어냈지만 전체 수출량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 수출이 31.4% 줄었다. 반도체 등 주요 품목 가격 하락과 맞물리며 중국 수출 둔화는 8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0.2%)을 제외한 아세안(-19.8%), 미국(-6.1%), 일본(-12.7%) 등 주요 수출시장도 뒷걸음쳤다.
같은 기간 수입은 589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6% 줄었다. 반도체와 철강 등 원부자재 수입이 감소했지만,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수입은 늘었다. 지난달 에너지 수입액은 158억달러로 최근 10년 평균(103억달러)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474억7000만달러)의 4분의 1을 웃도는 규모다. 이는 월간 기준으로 종전 적자 최대치였던 지난해 8월(94억3500만달러) 기록을 넘어섰다. 무역적자는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 연속 이어졌다.
정부는 대규모 무역적자는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무역금융·인증·마케팅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애로를 해소해 나가는 한편, 원전·방산·플랜트 등 대형 프로젝트의 수주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향 박상영 기자
예고된 세계 경기 침체, 네 가지 변수는?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과 경제학자들은 일부 국가나 전 세계가 올해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 강도로 현실화될지는 주요 변수의 움직임에 달렸다.
지난해 12월 영국 의회 앞에서 임금인상 문제 등으로 파업 중인 로열메일 소속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
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세 약화로 세계경제의 회복이 기대되었던 해다. 각국의 방역 규제 해제로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긴 했다.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낙관주의는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기초 생필품인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의 가파른 오름세를 부추겼다. 하반기 접어들면서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국들의 인플레이션율(인플레율)은 10% 선으로 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중앙은행들은 1980년대 초중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며 인플레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해가 밝았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과 경제학자 대부분은 일부 국가나 전 세계가 올해 경기침체(recession)를 겪을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전망이 어느 정도 강도로 현실화될지는 ‘중앙은행’ ‘중국 경제’ ‘에너지 가격’ ‘지정학’ 등 주요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변수 1. 중앙은행
미국과 유럽은 지난해 말부터 인플레율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물가가 잡혔다’는 것이 아니라 ‘덜 오르는 조짐이 보인다’ 정도의 의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중앙은행은 올해에도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초,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우리는 금리인상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 우리 입장은 굳건하다”라고 못을 박았다.
중앙은행들의 의지는 매우 확고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기준 인플레율이 미국은 7.1%(2021년 12월 대비), 유로존은 9.2%다. 중앙은행들의 인플레 목표치는 2% 내외다. 갈 길이 멀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미국은 인플레율을 5.1%포인트, 유로존은 7.2%포인트 더 끌어내릴 때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역사적 평균 이하인 0.5% 정도에 머물 것으로 본 가장 큰 이유는, 금리인상이다.
그러나 올해 경기침체 국면에서 중앙은행들이 자신의 의지를 순조롭게 관철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기능 자체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들은 ‘정부와 민간의 단기적 이익’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지향해왔다. 국가경제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데이터(경제지표)에만 기반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가들은 ‘주가와 고용률이 떨어지니 금리를 내려달라’ 따위의 외부 압박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중앙은행들은 지난 20~30년 동안 지극한 행복을 누렸다. 인플레율이 대체로 낮았고 심지어 마이너스(물가하락)로까지 내려갔다.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금리인하) 인플레율을 높여야 했다. 이에 따라 경기가 부양되면, 해당 시기 정부와 민간 경제주체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2023년의 중앙은행들은 정부와 민간에 맞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운명이다.
지난해 12월 독일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EPA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경기침체기엔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에도 돈이 필요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말, 산업구조 재편과 기후위기 대처 등 국가전략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문제는 정부지출이 민간의 수요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의도(민간 수요를 압박해 인플레 하락)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부지출이 인플레를, 인플레가 다시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더 강화하는 악순환이 현실화될 수 있다. 더욱이 중앙은행들은 민간 경제주체들에게 ‘실질소득 감소를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시민들이 ‘너무 많이’ 고용되어 임금을 올리기 때문에 인플레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플레 저지가 지상 목표인 중앙은행들은 올해 정부지출 삭감, 세율 인상, 실업률 상승, 임금인상 중단 등이 실현되기 바란다. 모두 민감한 정치적 이슈다. 시민들에게는 하늘 저편의 구름 너머 어딘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중앙은행이 이제 정치적 격돌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런던 시티대학의 스티브 시퍼스 교수는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1월3일)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인플레를 길들이는 동시에 경제성장에도 타격을 가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보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우려했다. “(인플레가 어디까지 갈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책 혼선이 일어나면) 1970년대 스타일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인상 동시 발생)이 현실화할 수 있다.”
1월3일 상하이 인구의 70%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는 상하이의 한 병원.ⓒAFP PHOTO
변수 2. 중국 경제
중국 시진핑 정부는 1월8일, 코로나19에 대한 ‘A급 감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를 해제했다. 국경을 다시 연 것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중국 내 방역 규제를 크게 완화한 바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편이지만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넘어왔다.
‘제로 코로나’는 기괴하리만치 강력한 방역 규제였다. 상하이 같은 수천만 인구 규모의 대도시 전체를 식량 대책도 제대로 세워놓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봉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중국의 2022년 경제성장률은 2%를 약간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 2019년까지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7%에 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모두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규모 기준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는 반가운 뉴스다. 어쩌면 중국은 2023년 글로벌 경제 성장의 거의 유일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1월5일)에 따르면, 중국은 글로벌 석유 수요의 5분의 1, 구리·니켈·아연의 절반 이상, 철광석의 5분의 3 이상을 점유해왔다. 브라질 같은 원자재 수출국은 큰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재개가 글로벌 경제에 의외의 큰 충격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이 ‘위드 코로나’를 버텨나갈 수 있는지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백신접종률이 낮고 약품이나 설비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 확진자에 대한 대응 노하우도 미숙하다는 평가다. 공산당 정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는 백신도 받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체 모델링으로 산정한 결과에 따라,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억제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 몇 달 동안 중국인 150만여 명이 사망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인구 1억명에 가까운 허난성의 주민 중 약 90%, 베이징(인구 2200만명), 상하이(인구 2500만명) 등의 70~80%가 감염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코로나 변종이 출현할 수 있으므로, 다른 국가들은 중국인의 입국을 규제한다. 가뜩이나 취약한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망가지고, 이는 새로운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최소한 2023년 1분기엔 성장은커녕 오히려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급속히 회복된다고 해도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수요가 다시 늘어나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며 글로벌 인플레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통화 긴축을 더 강도 높게 오랫동안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중국공산당 정부의 대내외적 신뢰 하락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가혹한 방식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행하다가 적절한 사전 준비 없이 폐기하는” 오락가락 행태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신뢰 하락은, 이 나라 경제시스템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가 공산당이란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부동산 거품,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 등이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지탱되어온 측면도 있다. 만약 중국 내에서 이런 거품들이 터진다면 그것은 즉각 세계경제 차원의 위기로 전이될 것이다.
변수 3. 에너지 가격
에너지는 생활필수품으로 물가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물가지수들이 전반적으로 오른다. 다른 산업 생산품들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면서 경기침체를 유발하기도 한다. 더욱이 이 부문의 가격 변동성은 매우 높다.
지난해 초, 배럴(브렌트 원유)당 80달러로 시작한 원유 가격이 3월과 6월엔 120달러를 넘겼다. 1월9일 현재는 다시 80달러로 돌아왔다. 천연가스 가격은 더욱 변화무쌍하다. 지난해 1월 초에는 MMBtu(천연가스 부피 단위)당 3.9달러 수준이었는데 5월과 9월엔 9달러 내외까지 두 배 넘게 튀어 오르더니 1월9일 현재는 3.71달러까지 내려갔다(〈마켓인사이더〉 참조).
지난해 봄과 가을에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결정적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다. 서방 선진국들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와 러시아 측의 반격, 이런 정세를 틈탄 금융 투기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다. 특히 유럽은 난방, 전기 생산, 기업 운영 등에 필요한 천연가스 가운데 40~50%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왔기 때문에 우려가 컸다. 유럽이 이번 겨울(2022년 말~2023년 초)을 비교적 잘 넘기고 있는 이유는, ‘적극적 천연가스 비축’ ‘자발적인 가스 소비 감축 캠페인의 성공’ 그리고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 기온 덕분이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대체로 유럽이 비교적 충분한 천연가스 저장고 덕분에 올해 봄까지는 성공적으로 천연가스 가격, 나아가 인플레율까지 억제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이후가 문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만큼 에너지 공급 전망 역시 불투명해진다. 지난해 12월12일, OECD 차원의 정부 간 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대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의 2023년 에너지 수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유럽은 2023년에 270억㎥에 이르는 천연가스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 유럽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거의 7%에 달하는 규모다. IEA는 올해 에너지 부족이 현실화할 수 있는 세 가지 위험을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첫 번째, 러시아가(2022년에는 EU에 600억㎥ 규모의 가스 공급) 전황에 따라 EU에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할 수 있다. 두 번째, 올 연초와 연말에 추위가 닥쳐 가스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세 번째, 중국 경제의 재가동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만약 천연가스 부족이 현실화하면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배급제 시행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것이다. IEA는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채택 촉진, 친환경 난방기구인 히트펌프 보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1000억 유로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28일 러시아 군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일대.ⓒAP Photo
변수 4. 지정학
이 밖에도 올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여러 변수가 있다. 저명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타임스〉(1월4일) 기고문에서 “이제 아시아는 달러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달러 강세로 글로벌 자금이 일본 엔화 등 아시아 통화에서 미국 달러로 갈아타는 바람에 아시아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이런 흐름이 정반대로 뒤집히면서 다시 아시아를 덮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페섹이 달러 약세를 예측하면서 그 이유를, ‘미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뒤집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정치권의 극단적 분열로 인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국가적 역량마저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러가 강세에서 약세로 전환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 역시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타이완을 둘러싼 미·중 갈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 등과 관련된 ‘돌발 사태’가 터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네덜란드의 초국적 금융기관인 ABN암로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서 제시했듯이 “인플레율이 크게 낮아져 2023년 말까지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가 가능해지면서 2024년에 완만한 회복의 발판이 마련되는 것” 정도다. 올 한 해는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어려운 시기가 될 듯하다.
시사인 이종태 선임기자
PF의 마법은 어떻게 시한폭탄이 되었나
부동산 개발에는 엄청난 돈이 든다. 건설사업의 추진 주체(시행사)인 재건축조합이나 개발업자들은 돈이 없다. 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사들은 영세해서 신용도가 낮다. 또한 건설사업에서는 수익(분양대금)이 발생해서 돈을 갚기까지 빨라도 3~5년 걸린다. 이런 사업에 누가 돈을 빌려주려 할까. 저신용도의 차입자에게 거액을 수년 동안 빌려줘 묶어놓아야 겨우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해당 사업이 망해서 본전도 찾지 못할 리스크까지 있다.
돈을 빌리려면 이런 악조건들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수년이 아니라 수개월 정도의 단기에 원리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돈을 떼일 위험이 없다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5년 동안 써야 할 돈을 ‘3개월째 갚는다’라는 조건으로 빌려도 괜찮은가. 또한 영세한 시행사가 아무리 ‘나를 믿어줘’라고 빌어도 냉정한 투자자들이 넘어갈까?
■ 가정을 현실로 바꾼 금융기법
그러나 이런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비결이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부동산 PF)’이란 금융기법이다. 부동산 PF 가운데 최근 수년 동안 널리 사용된 방식은 대충 다음과 같다.
먼저 법인(법적인 인간)을 하나 만든다. 이 법인은 법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 그러나 법인(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만큼 돈을 빌려주고 빌릴 수 있다. 고양이나 강아지는 차입·대출의 법적 주체로 인정되지 않지만, 법인은 가능하다. 법인 설립 목적은 ‘유동화’다(‘유동화 법인’).
다음 단계에서는, 유동화 법인이 시행사에 1000억원을 빌려줬다고 ‘가정’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와 동시에 당신에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권리(대출채권)’가 발생한다. 은행에 1000만원을 예금한다(=빌려준다)는 것은 1000만원에 대한 대출채권을 보유한다는 말과 같다. 유동화 법인 역시 앞의 가정 덕분에 1000억원짜리 대출채권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된다.
유동화 법인이 1000억원과 이자를 받게 되어 있다면, 이 사실을 기반(‘기초자산’)으로 돈을 빌릴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의 변제능력이 충분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 법인은 예컨대 만기 3개월인 1억원짜리 채권(유동화증권) 1000장을 발행·매각하는 방법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5년이 아니라) 3개월 뒤에 원리금을 돌려주겠다고 하니 끌릴 만하다. 더욱이 1000억원의 뭉칫돈이 아니라 10억원(1억원짜리 유동화증권 10장)이나 100억원만 빌려줄 수도 있다.
유동화 법인이 이 증권을 팔아 조달한 1000억원을 시행사에 넘기는 것으로, 당초의 ‘가정(유동화 법인이 시행사에 대출)’은 현실에서 실현된다. 시행사가 이 돈으로 5년 동안 번듯한 아파트 단지를 완공해 분양하면 그 대금으로 빚을 최종 청산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유동화 법인은 불과 3개월 뒤에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 약속은 어떻게 지키지? 답은 차환이다. 유동화증권을 다시 발행해서 새로운 투자자(혹은 더 빌려주겠다는 기존 투자자)에게 팔면 그 돈으로 이전의 빚을 갚을 수 있다. 이 과정을 (분양대금으로 최종 청산이 이뤄질 때까지) 되풀이한다. 차환은 ‘카드 돌려막기’와 비슷하다.
만약 시행사가 은행으로부터 1000억원을 빌렸다면, 이 돈은 원리금 상환이 끝나는 5년 동안 양측의 관계 속에 묶인다. 그러나 앞선 이야기에서 1000억원은 3개월을 주기로 자유롭게 금융시장을 흘러 다닌다. 그래서 유동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줄거리엔 중대한 허점이 있다. 1000억원짜리 대출채권의 발생, 이를 기초로 한 유동화증권, 되풀이되는 차환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모두 ‘유동화 법인이 시행사에 1000억원을 빌려줬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시점엔 그런 일이 없었다. 투자자들이 가정을 믿고 유동화증권을 샀기에, 그 가정이 사후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허약한 가정을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 현실로 바꿔버린 뭔가가 있다. 바로 보증이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신용등급이 높은 다른 기업이 ‘시행사가 유동화 법인에 돈을 갚지 못하면’ 혹은 ‘유동화 법인이 투자자들에게 갚지 못하면’, ‘내가 대신 갚겠다(보증)’라고 계약했던 것이다. 이른바 ‘신용보강’이다. 이런 ‘보증 기업’들은 주로 건설회사(시행사의 프로젝트에 실제 건축을 담당하는 시공사로 참여)나 증권사(유동화 등 자금 중개를 주관하고 수수료를 받는)들이다. 투자자들은 시행사나 유동화 법인이 아니라 ‘보증 기업’들을 믿는다. 이 믿음 위에서 부동산 PF라는 현란하고 신비로운 신용의 고리가 형성된다.
신용이 덫으로 바뀌는 순간
지난 3~4년 동안의 부동산 호황기에 PF는 매우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시행사는 집값과 분양률 상승을 통해 거둔 높은 수익으로 유동화 법인에 빚을 갚았다. 유동화 법인은 그 돈으로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에게 채무를 상환했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고 있어서 차환을 위해 다시 돈을 빌려도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부동산 호황에 기대어 유동화증권을 신뢰했다. 많이 발행하고, 많이 샀다. 만기가 보통 3개월인 ‘단기 유동화증권’ 규모가 한때 급속히 증가했다.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단기 유동화증권(ABCP와 AB 단기사채)의 발행 잔액이 2021년 1월4일의 27조7000억여 원에서 같은 해 마지막 날엔 38조3000억여 원으로 10조원 이상 늘어난다. 2022년 11월29일 현재는 35조원 정도다.
그러나 단기 유동화증권은 고금리와 부동산 침체를 맞아 금융시장의 다이너마이트로 반전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분양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시행사가 유동화 법인에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동화증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더욱이 금리가 오르면 유동화증권의 가격도 하향세를 탄다. 금리와 채권(유동화증권도 채권) 가격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격이 떨어지는 금융상품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유동화증권을 사지 않거나, 사더라도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차환에 큰 비용이 든다. 차환에 실패하면 유동화 법인에 부도가 발생한다. 보증을 선 건설사와 증권사가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한다. 결국 탄탄한 재무구조의 보증 기업들까지 자금난에 휘말리게 된다. 신용보강이 덫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덫은 올해 들어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침체가 예상되면서 건설사와 증권사들을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한국기업평가가 낸 ‘건설업 신용보강 A to Z’(9월21일)에 따르면, “롯데건설,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지에스건설, 대우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가 큰 편이다.” 우발채무란 ‘지금 당장’은 빚으로 인식되지 않으나 가까운 시일 내의 상황에 따라 채무로 확정되는 돈을 의미한다. 차환이 되지 않을 때 건설사나 증권사가 시행사 대신 채무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롯데건설의 우발채무를 4조3000억원, 태영건설의 그것을 2조3000억원으로 추정(6월 말 현재)했다.
경제적으론 이미 비상시국이다. 시장 일각에서 소망하듯이 한국은행이 앞으로의 금리인상을 조절하면 다시 채권 수요가 회복되고 차환에 대한 우려도 수그러들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건설사발’ 경기침체나 금융위기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의 인플레이션,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지정학 문제로 인한 식량·에너지 위기 등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외부 여건들이 존재한다.
경제주체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섣불리 돈을 빌려주지 않기 시작할 때가 금융경색 국면이다.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태를 금융위기라고 부른다. 이런 시기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정부의 ‘보이는 손’이 강력하면서도 꼼꼼한 리더십으로 신뢰와 자신감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후 엄습해올 다양한 리스크의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인 이종태 선임기자 2022.12.15
김건희 연루 정황 공개한 검사, 세계은행 파견...법무부 해명은?
도이치 공판 검사 2명, 미국 파견·인천지검으로 이동..."언제 갈지 몰라, 계속 공판 관여"
검사의 PT화면에 등장한 김건희·최은순... "윤 대통령 해명과 달라"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8032&utm_source=dable
윤 대통령 해명 어그러뜨리는 '도이치' 문자, 검찰에서 나왔다 22.12.2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9648
이재명 모른다던 김성태 “李 방북용 300만불 송금” 진술 바꾼 까닭
채널A 단독보도에 이재명 “신작소설” 민주당 “허무맹랑한 소설, 검찰이 흘려”
“모른다” → “이화영이 이재명에 전화 바꿔줘”
KBS MBC SBS “구속된 뒤 진술 달라져” 임선숙 “당근과 채찍, 법치주의 종말”
첫보도한 채널A측 담당기자, 답변없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모른다고 했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검찰 구속된 이후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300만달러를 송금했다고 진술했다는 채널A 보도가 논란이다. 이 대표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신작 소설”이라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허무맹랑한 소설을 검찰이 흘렸다”고 반발했다.
채널A는 지난달 30일 <뉴스A> ‘[단독]“300만 달러는 이재명 방북 경비”…李 측 “사실무근”’에서 자사 취재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중국 단둥에서 2019년 상반기 두 차례에 나눠 500만 달러를, 하반기에 300만 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총 800만 달러, 우리 돈 약 100억 원 규모”라고 보도했다.
채널A는 “상반기에 보낸 500만 달러는 이화영 당시 경기 평화부지사가 북한과 맺은 스마트팜 조성 사업 비용으로 알려졌다”며 “주목받는 건 하반기에 북으로 보낸 의혹이 제기된 300만 달러, 36억원인데, 김 전 회장은 주변에 이재명 지사의 평양 방문을 위한 경비였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방송했다. 채널A는 “북한이 이 대표의 평양 방문시 행사와 퍼레이드 준비 명목으로 요청해 건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널A가 지난달 30일 뉴스A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북한에 송금한 800만달러중 300만달러는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한 것이라고 진술했다는 내용을 단독보도하고 있다. 사진=뉴스A 영상 갈무리
그러나 과거 쌍방울의 대북사업 차 송금했으며 이재명 대표를 모른다고 했던 김성태 전 회장이 진술을 왜 바꾼 것이냐는 의문이 나왔다. KBS는 31일자 <뉴스9>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돈은 당초 500만 달러였다”며 “2019년도에 이뤄진 이 송금의 목적은, '대북 경협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김 전 회장은 주장했다”고 전했다. KBS는 “그러나 구속 뒤 조사 과정에서 진술 기조가 바뀌었다”며 “특히, 2019년 11월에 송금한 3백만 달러는, 당시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위한 비용이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MBC도 같은 날짜 <뉴스데스크> ‘김성태 “이재명 방북 위해 송금”’에서 “최근 구속된 김 전 회장이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며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해서 북한에 3백만 달러를 보냈다고 검찰에 말했다”고 전했다. MBC는 김 전 회장이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열린 경기도의 국제행사에서, 북한 공작원 리호남을 만나, 이재명 대표의 방북 의향을 전달했다”, “리호남은 5백만 달러를 비용으로 요구했는데, 김 전 회장은 3백만 달러로 협상한 뒤 이 돈을 북측에 보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통화한 적 없다던 입장도 뒤집었다. MBC는 “스마트팜 비용을 처음 보낸 2019년 1월,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대북사업 논의를 하던 자리에서 이화영 부지사가 전화를 바꿔줘 이재명 대표와 통화했고 이 대표가 고맙다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나세웅 MBC 기자는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에 나와 앵커와 대담(‘김성태는 왜?’)에서 “다만, 북한 전문가들은 김 전 회장 진술에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며 “'스마트팜' 사업은 돈을 버는 이권 사업이 아니라, 북한 농촌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건데, 굳이 뒷돈을 줘가며 추진했겠냐는 것”이라며 “또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때인데, 북한이 지자체장의 방북 대가로 거액을 요구했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SBS도 같은 날짜 <8뉴스> ‘“李 방북 위해 300만 달러”…“신작 소설”’에서 김 전 회장의 말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통화 여부부터 말이 달라졌다”며 “지난 2019년 김 전 회장은 이화영 당시 경기 평화부지사 등과 함께 북한 광물 사업권과 관련해 중국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나는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 전 부지사가 전화를 걸어 이재명 대표를 바꿔줬고, 이 대표로부터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방송했다. SBS는 “쌍방울의 대북송금이 ‘경제협력 사업용’이라는 주장에도 일부 변화가 나타났다”며 “김 전 회장은 지난 2019년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을 목적으로 500만달러를 송금했다고 했는데, 그해 11월에 추가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을 위해 300만달러를 송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국회 본관 당대표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 송금한 300만달러가 이 대표 방북용 이었다는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이 나왔다는 기자들 질의에 신작 소설이 나온 것 같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도 반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신작 소설이 검찰로부터 나온 것 같은데, 이번엔 종전의 창작 실력으로 봐서 잘 안 팔릴 것”이라고 부인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브리핑에서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 대변인은 “당시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검찰 주장은 한 마디로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황당무계한 소설”이라며 “경기도가 여러 대북 사업 중 하나로 스마트 팜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은 사실이며, 현물 지원 방안이 있을지 북 측과 협의하며 검토 중이었으나, 이후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실제 물품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 대변인은 “사업이 진행중이던 2019년 상반기에 스마트 팜 사업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했다는 건은 시점 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대변인은 “당시 경기도는 스마트팜 지원 사업을 추진할 충분한 예산을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확보하고 있었다”며 “김 전 회장이 이재명 도지사의 방북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도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채널A 보도를 두고 “검찰이 흘리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검찰발’ 보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임선숙 최고위원은 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쌍방울 김성태 회장은 구속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검찰 각본에 따라 말바꾸기를 시작”했다며 “이화영 부지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전부 보고를 했다고 들었다라는 취지로 보도하였다”고 보수 언론들의 관련 보도내용을 소개했다. 임 위원은 “그동안 쌍방울은 북한에 보냈던 돈은 쌍방울의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해왔고, 실제로 쌍방울의 자회사 나노스는 2019년 5월경 북한과 북한 자원개발과 관련된 합의서를 작성해, 그 무렵 나노스의 주가가 급등하였다”며 “그런데 정치검사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대북사업권 대가였던 대북송금이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한 비용이라고 그 돈의 성격과 목적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 최고위원은 “대북송금 사업 수사는 돈을 받았다는 북한 측 인사를 수사할 수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검찰은 몇가지 사실관계들에 김성태의 진술을 꿰맞춰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추정했다. 임 위원은 “정치검사들이 이재명 대표와 관련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입안에 들어온 김 회장에 어떤 당근과 채찍을 썼을지 생각하면 정치검사들에 의한 현재가 법치주의 종말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임선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성태 전 회장의 이재명 대표 방북용 대북송금 300만달러 진술에 당근과 채찍썼을지 생각하면 현재는 법치주의 종말의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영상 갈무리
이에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수원지검 담당 공보관은 31일과 1일 오전까지도 ‘신작소설’ ‘황당무계한 언론플레이’ 등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반박 입장과 관련된 견해를 묻는 문자메시지, SNS메신저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리포트를 한 채널A 담당기자와 동아미디어그룹 측 역시 이 대표와 민주당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이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31일과 1일 오전까지 리포트를 한 김유빈 기자와 동아미디어그룹 대외담당 기자에 ‘신작소설’, ‘검찰이 흘린 것’ 등 이 대표와 민주당 주장의 세부내용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문자메시지, SNS메신저, 취재공문까지 발송했으나 1일 오후 3시 현재까지 답변을 얻지 못했다.
한편,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일 오전 논평에서 ‘신작소설’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반박에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실에 입각한 ‘이재명 대표 범죄 실록’으로 보고 있다”며 “이 대표뿐만 아니라 지난 정부의 청와대와 정부 당국도,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보수언론의 간첩단 수사중계 사건, 자극적인 간첩드라마 같아”
국회 토론회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압수수색 보도, 민주노총 당하는 장면 구경거리로”
간첩수사 관련 보도, 조선일보 제일 많아…“방첩당국 일방 주장, 추가취재 없이 받아쓰기”
지난달 9일 조선일보 단독보도로 국가정보원 등의 간첩수사 상황이 공개되면서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저지하는 여론을 키우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민주노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노조 탄압 분위기와 함께 공안정국을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간첩수사 관련 첫 기사인 9일 1면 톱기사 제목을 “민노총·시민단체 앞세워 투쟁하라”로 뽑으며 간첩과 민주노총을 연결지었다.
1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에서 주최한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란 토론회에서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의 발제문을 보면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 기준으로 지난달 9일부터 29일까지 간첩단 수사 관련 보도는 종합일간지의 보도량이 가장 많고, 조선일보가 64건으로 가장 많았다. 빅카인즈는 주요 언론사 54개를 언론보도를 분석할 수 있다.
조선일보 보도 중에서 8건은 <7NEWS>라는 주요뉴스를 간단하게 줄여서 소개해주는 형식의 일종의 큐레이션 보도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56건으로 타사보다 보도량이 많다(기사 요약, 타사 보도 소개, 기사 큐레이션 보도는 타사 보도도 포함되어 있음). 다음으로 세계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순으로 보도량이 많았다.
▲ 1월9일부터 29일까지 간첩수사 관련 보도량. 자료=김언경 발제문
김 소장은 최근 보도를 두고 “언론의 간첩단 수사중계 사건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여론전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20여일간 사설이 31건인데 제목만 모아서 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만큼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이 민주노총을 간첩조직처럼 규정하거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국정원 등 방첩당국의 주장을 담은 단독보도가 많은 것도 지적했다. 김 소장은 “국정원에서 흘린 정보를 누가 더 빨리 받았느냐를 자랑하는 식의 보도를 단독으로 강조해 보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단독보도는 총 25건이었는데 조선일보 8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각 6건, 국민일보 3건,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각 1건씩이었다”고 했다.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사설 제목 모음. 자료=김언경 발제문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단독보도 제목. 자료=김언경 발제문
이에 김 소장은 “전형적인 수사기관발 일방보도에 수사기관의 의심까지 그대로 중계하는데 거의 모든 보도는 ‘방첩당국이 수사 중이다’, ‘방첩당국이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며 “출처가 명백한 것은 압수수색 영장인데 그것도 방첩당국의 일방 판단이 담긴 문건이니 상식적으로 추가 취재를 할 필요가 있지만 보도에서 생략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보도제목 중 직접 인용 즉 큰따옴표가 있는 보도만 보면 187건인데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105건”이라며 “공안정국 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민주노총 압수수색 당일날 나온 (민주노총 측) 거친 목소리들이 제목으로 뽑힌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8일 압수수색 당시 국정원 등은 매트리스와 사다리차 등 장비를 동원했고 국정원 50여명 등 병력 700여명이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이 1명 간부의 사무공간인데 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과 장비가 동원된 것이다. 김 소장은 “민주노총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하다”며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이 압수수색을 막았다는 프레임으로 거친 발언을 하나하나 보도를 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보도가 많았지만 무리한 압수수색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당하는 장면을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보도가 많지 않았나 싶다”며 “하루에 하나씩 공개되는 내용의 자극적인 간첩드라마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18일 국정원의 대대적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언론보도는 ‘민주노총 간부도 북한 공작원 접선해서 민주노총에서 활동했으니 민주노총의 반정부투쟁, 반미투쟁 등은 간첩 활동의 결과’라는 수준으로 비약했다”고 했다.
한 예로 문화일보는 <민노총 간부가 ‘총책’ 정황…反정부투쟁 배후에 北지령 있었나>란 18일자 기사에서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규명 정도에 따라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를 이용한 윤석열 정부 비판, 반미 여론 조성 등으로 반정부 활동을 사주한 북한은 그동안 뿌리 깊게 한국의 각종 단체에 침투해온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 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일보의 <“국정원장 혼자 다 하는 구조…통제·감시 강화해야”>란 기사를 추천했다. 최근 언론보도의 논조대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것이 문제라면 최근 3년간 이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다각도로 짚었어야 하는데 실제 관련 보도는 많지 않았다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 지난해 12월16일 한국일보 기사
김 소장은 “대공수사권이 경찰에 있어도 국정원에 있어도 신뢰하기 어렵고 우려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언론이 두 기관의 조직 보위 차원에서 하는 주장, 정치적 고려에 기반한 주장만을 받아쓰기해서 보도하기 보다는 더욱 면밀하게 대공수사권을 둘러싼 고민을 던지고 톺아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일보 보도는 좌담 형태로 국정원 개혁이 이뤄졌던 과정, 개혁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 국정원 간첩사건 수사내용 보도, 목표는 대공수사권 지키기?]
[관련기사 : 간첩사건으로 보수언론·정치권·사정기관 카르텔 작동하나]
[관련기사 : 국정원 민주노총 압수수색에 한몸처럼 움직였던 조선일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053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고립·빈곤 벼랑 끝엔... ‘나홀로 죽음’
1인가구·가족 간 단절 매년 늘고... 생활고·장애 등 ‘사회적 고립’ 불러
고독사예방법 시행 2년 ‘속빈강정’... 원인 파악 등 정부 차원 대책 시급
'이슬람 사원 반대' 바비큐 파티한 주민들, 이번엔 돼지수육 잔치 예고
대구 북구 대현동에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이번에는 돼지고기 수육과 소고기 국밥 잔치를 예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이 지역 주민들은 사원 공사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벌인 바 있다.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위원회)는 2월 2일 소고기 국밥과 돼지고기 수육을 먹는 국민 잔치를 열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앞서 비대위는 지난해 12월 15일 사원 공사장 앞에서 돼지머리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당시 바비큐 전문업체가 현장에서 성인 40~50명이 먹을 수 있는 50㎏가량의 통돼지를 숯불에 구웠고 공사장 인근에는 돼지머리와 줄에 걸린 족발·돼지 꼬리 여러 개를 진열해 놓았다.
이를 두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서는 "한국 사회 개방성의 한계를 드러낸 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죄악으로 여긴다. 소고기도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기에 돼지머리 바비큐 파티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반면 비대위 측은 "(행사는)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는 잔치"라며 "건축주 측이 자신들의 문화를 존중해달라고 말하려면 우리의 문화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북구청의 건축 중지 처분에 불복해 건축주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 '공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해 법적 분쟁이 종료된 바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에 있는 이슬람 사원 공사장 앞에서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비대위’가 통돼지 바비큐를 구워 먹는 행사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최종현학술원’ 여론조사 받아쓰고 끌어쓰고, 핵무장담론 불 지핀 언론
윤석열 대통령이 1월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무장’을 언급해 파장이 일었습니다. 대통령실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를 준수한다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언급은) 최악의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1월29일)에 출연해 대통령실 해명에 동조하며 “대한민국은 무역국가로서 NPT를 위배해 보복을 당하면 경제에 큰 주름살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언급이 불러온 ‘핵무장담론’은 대통령실과 권영세 장관 해명으로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최종현학술원이 1월30일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언론은 해당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국민 상당수가 한국 독자 핵개발을 지지’하고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경북도민일보 등 일부 언론은 해당 여론조사를 근거로 한국 독자 핵무장을 주장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관련 보도를 근거로 ‘한반도 핵무장’을 주장했는데요. 과연 언론은 최종현학술원이 발표한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보도하고 있을까요?
오차범위 안인데… ‘약간 높았다’ ‘조금 높았다’ ‘소폭 많았다’
연합뉴스는 <국민 10명 중 7명 “한국 독자적 핵개발 지지… 북 비핵화 불가”>(1월30일 오수진 기자)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며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51.3%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48.7%)보다 약간 높았다”고 보도했습니다. 51.3%와 48.7%는 2.6%포인트 차이로 오차범위 내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여론조사 결과가 오차범위 내에서 차이를 보일 경우 이를 ‘차이’로 보도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최종현학술원 조사 결과를 전하는 어떤 보도에서도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전해야 할 ‘표본오차’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최종현학술원 의뢰로 조사를 진행한 한국갤럽에 1월31일 문의한 결과,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 값이 오차범위 6.2%포인트를 넘어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섰다’, ‘높았다’, ‘많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해 차이가 난다고 보도해선 안 됩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뿐만 아니라, KBS, MBC, SBS, YTN,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뉴스1, 뉴시스 등 언론 대다수가 ‘약간 높았다’, ‘조금 높았다’, ‘소폭 많았다’, ‘차이를 보였다’ 등 표현을 사용해 해당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는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은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뿐만 아니라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같은 사회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조사기관도 방법도 다른데, 2년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
한국경제는 <국민 76.6% “독자 핵개발 필요”… 핵무장 여론 더 커졌다>(1월30일 김인엽 기자)에서 “(최종현학술원)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귀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7.6%가 ‘그렇다’고 답했다”며 “한국갤럽이 2017년 9월 발표한 ‘핵무기 보유 주장’ 여론조사 당시 집계된 60%의 찬성여론보다 17%포인트 높은 수치”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와 한국갤럽 2017년 9월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는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1 대 1 면접 조사방식으로 11월28일부터 12월16일까지 19일간 진행했습니다. 조사단위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인구주택총조사를 바탕으로 가구를 추출한 후 가구원을 추출했으며, 연령·성·학력·직종·정치성향까지 고려해 직접 가구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는데요. 한국갤럽 자체 정례조사인 2017년 9월 여론조사는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전화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2017년 9월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진행했습니다. 조사단위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무작위 발생한 휴대전화번호를 기본 표본추출틀로 했으며, 휴대전화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고연령대 일부는 무작위 발생한 집전화번호 조사로 보완했고 반영비율은 15% 내외입니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17조(조사 결과의 비교)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그 조사방법이 동일한 경우에만 상호비교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한국갤럽 2017년 9월 조사는 조사시점이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상호비교를 위해서는 조사방법이 동일해야 하지만, 두 조사의 방법은 확연히 다릅니다. 한국경제는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두 조사를 비교한 뒤 2017년 조사에 비해 한국 독자 핵무장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17%포인트 늘어났다고 잘못된 보도를 한 것입니다.
(※ 한국경제 <국민 76.6% “독자 핵개발 필요”… 핵무장 여론 더 커졌다>(1월30일 김인엽 기자)에서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 : ① 조사의뢰자 : 최종현학술원 / 여론조사기관 : 한국갤럽 / 조사일시 : 2022년 11월28일~12월 16일(19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 표본 추출 : 다단계 층화 계통 추출법(Multi-Stage Stratified Systematic Sampling) / 조사방법 : 개별면접조사(Face to Face Interview)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3.1%p / ② 조사의뢰자 : 한국갤럽 자체조사 / 여론조사기관 : 한국갤럽 / 조사일시 : 2017년 9월5~7일(3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 표본 추출 :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3.1%p / 그 밖의 사항은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275호(2017년 9월 1주)> 보고서 참조, 클릭 시 이동)
최종현학술원 발표 받아쓴 동아·서울·한경·파이낸셜
조사방법이 다른 여론조사를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비교한 언론은 한국경제뿐만이 아닙니다. 파이낸셜뉴스도 같은 보도를 냈으며, 서울신문은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 진행한 조사를 언급하며 “이번 조사 결과는 핵무장 필요성을 물은 유사한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라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도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는 최근 2년간 한미 연구기관 여론조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라고 보도했는데요.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가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조사방법이 다른 여론조사를 비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여론조사보도 기본원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 1월30일, 최종현학술원 여론조사 결과 발표 그대로 인용한 동아일보
최종현학술원은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 지지율 추이’를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조사방법이 다른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와 아산정책연구원, 샌드연구소, 통일평화연구원, 통일과나눔재단의 ‘한국 독자 핵무장 찬성 수치’를 함께 나열하고 단순 비교했습니다.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와 아산정책연구원,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자료는 온라인상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샌드연구소와 통일과나눔재단 조사자료는 그마저도 어려운데요.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 등은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 발표를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며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가 핵무장 필요성을 물은 유사한 여론조사 중 가장 높은 수치’라고 보도했습니다.
(※ 최종현학술원이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 발표(1월30일) 중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 : ① 조사의뢰자 : 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 여론조사기관 : 한국리서치 / 조사일시 : 2021년 12월1~4일(4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00명 / 표본 추출 : 성·연령·지역별 인구 비례 할당 추출 유·무선 혼합 임의전화걸기(RDD)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2.5%p / 그 밖의 사항은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핵무기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보고서 참조, 클릭 시 이동 ② 조사의뢰자 : 아산정책연구원 / 여론조사기관 : 리서치앤리서치 / 조사일시 : 2022년 3월10~12일(3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 / 표본 추출 : 성·연령·지역별 인구 비례 할당 추출 유·무선 혼합 임의전화걸기(RDD)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3.1%p / 그 밖의 사항은 아산정책연구원 <한국인의 한미관계 인식> 보고서 참조, 클릭 시 이동 ③ 조사의뢰자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여론조사기관 : 한국갤럽 / 조사일시 : 2022년 7월1~25일(25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00명 / 표본 추출 : 다단계 층화 계통 추출법(Multi-Stage Stratified Systematic Sampling) / 조사방법 : 구조화된 질문지(Structured Questionnaire)를 이용한 개별면접조사(Face to Face Interview)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2.8%p / 그 밖의 사항은 통일평화연구원 <2022 통일의식조사> 보고서 참조, 클릭 시 이동)
‘핵무장 찬성’과 ‘북한 비핵화 불가능’, 답정너 여론조사?
언론이 검증하지 않은 것은 또 있습니다. 최종현학술원 여론조사 문항입니다. 문항을 살펴보면 해당 조사에서 ‘핵무장 찬성’과 ‘북한 비핵화 불가능’ 답변이 높게 나타난 이유가 유도성 문항 때문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 적지 않은데요.
▲ 최종현학술원, 아산정책연구원, 통일평화연구원 여론조사 문항 비교. 표=민주언론시민연합
해당 여론조사의 2번 문항은 “북한은 2013년 핵보유국 선언을 한데 이어 올해 9월 핵 선제타격을 법제화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비핵화는 없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입니다. 비핵화하기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 비핵화 가능성을 물었는데요. 같은 내용을 물을 때 통일평화연구원 2022 통일의식조사 문항은 “OO님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입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달리 건조하게 북한 비핵화 가능성만 질문했습니다.
4번 문항은 “북한이 ICBM, SLBM, MIRV 등의 미사일 개발의 고도화를 통해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 가능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을 무릅쓰고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확장억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 미국의 안보 보장 신뢰여부를 물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물을 때 2022년 아산정책연구원 한미관계 조사 문항은 “북한의 남침 시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전쟁에 개입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이며, 통일평화연구원 문항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주변 4국은 어떻게 대처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미국’은요?”입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달리 건조하게 미국의 안보 보장에 대해서만 질문했습니다.
6번 문항은 “한반도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귀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앞선 문항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확장억제가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후 한국 독자 핵무장 찬반을 물은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물을 때 아산정책연구원 문항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며, 통일평화연구원 문항은 “OO님은 다음의 의견에 얼마나 찬성 또는 반대하십니까? 한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입니다.
여론조사 응답은 문항에서 제시하는 정보에 따라서 크게 변화할 수 있는데요. 아산정책연구원과 통일평화연구원 조사가 건조하게 북한 비핵화 가능성, 미국의 안보 보장, 독자적 핵개발 필요성을 물은 반면, 최종현학술원 조사는 질문에 앞서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결과적으로 특정 응답을 유도할 수 있는 문항을 제시했습니다. 따라서 언론이 최종현학술원 조사에 등장한 유도성 짙은 질문의 문제점을 간과한 채, 조사결과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확장억제 : 핵무기를 가진 국가가 핵이 없는 동맹국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개념. 만약 북한이 우리나라에 핵 공격을 한다면 우리 동맹인 미국이 핵 공격으로 대응해 전쟁을 억제한다는 것을 말함.)
조선일보, ‘자체 핵무장’ 주장하려 슈라이버 전 차관보 발언 왜곡
조선일보는 <국민 76% “독자 핵개발 필요”… 77% “북 비핵화 불가능”>(1월30일 노석조 기자)에서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를 전하며 “최근 한국과 미국에선 한국 독자 무장론 등과 관련한 기류가 ‘절대 불가’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논의 가능’ 등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랜들 슈라이버 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의 VOA(미국의소리) 한국어방송 인터뷰를 근거로 제시했는데요. 조선일보는 슈라이버 전 차관보가 “한국이 (북핵·미사일 등) 끔찍한 위협에 직면한 것은 유감스럽다”며 “(북핵의) 위협 증대를 고려할 때 우리(한·미)가 한국의 핵무장을 논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적절하다”고 발언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VOA 한국어방송 인터뷰를 보면 조선일보가 슈라이버 전 차관보 발언 취지를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VOA 한국어방송 <신년 인터뷰 : 슈라이버 전 차관보 “한일 핵무장 논의 ‘금기’ 없어져… 타이완 유사시 한국 역할 논의 시작해야”>(1월26일 조은정 기자)에서 슈라이버 전 차관보가 “북한의 무기 역량 진전을 고려할 때 우리가 한국과 그 논의(한국 독자 핵무장)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미)동맹의 맥락에서 우리가 이런 것들(한국 독자 핵무장이나 미국 전술핵 배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적절하다”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해당 발언 이후 등장하는데요. 슈라이더 전 차관보가 “우리(한·미)는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해야 한다”며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미국 전술핵 배치 등 다른 길을 추구”할 경우 “일본을 포함한 역내 전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중국과 북한의 군 현대화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일본을 포함한 역내 모든 국가가 핵무장에 나서게 되면서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것이고, 이를 근거로 중국과 북한이 군 현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동북아 군비경쟁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조사 수치가 곧 여론 아니다, 여론조사 보도 원칙부터 지켜야
VOA 한국어방송 <미 전문가들 “미국 정부 ‘한국 핵무장 여론’ 압박 받아…워싱턴 주류 인식은 핵무장 반대”>(1월31일 조은정 기자)에서 미국 안보 전문가들은 “워싱턴 전문가들의 (한국 독자 핵무장 반대) 인식에 큰 변화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1월31일 “윤석열 정부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 확장억제 메커니즘을 통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으며,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도 2월1일 “우리는 (핵 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활용해 이 같은 약속(확장억제)을 현실화해 나가는데 완전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한국 독자 핵무장에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한국에서 핵무장담론 파장이 일 때마다 미국이 보여 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민언련 보고서 <조선일보는 왜 ‘한국 핵무장론’에 목매는가>(1월12일)에서 지적했듯 여론조사를 통해 민감하고 복잡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유권자 선호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한국 독자 핵무장 찬성 응답이 높게 나타나도 그 결과가 핵무장 당위성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3조(여론조사의 한계) 역시 “여론조사를 통해 얻은 수치가 곧 여론 그 자체는 아니므로 미디어는 여론조사 결과를 여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수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종현학술원 여론조사에서 높게 나타난 핵무장 찬성 수치에만 주목해 ‘한국 독자 핵무장 여론이 높다’고 결론 내고 섣불리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는 오차범위 내 우열 표기 금지, 동일방식 여론조사 외 상호비교 금지, 유도성 짙은 문항 검증 등 원칙부터 지키는 것이 순서입니다. 여론조사 발표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도 당연히 해서는 안 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1월30일~2월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최종현 학술원’ 관련 보도 전체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日 “한국서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
日언론 “강제징용 해결 분위기
관계 개선 흐름 따른 판결” 분석
관방장관 직접 나서 “반환 촉구”
외교부는 “언급 부적절” 말 아껴
日 “한국서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
▲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
한국 법원이 한일 사찰 간 소유권을 놓고 다퉈 온 고려시대 불상의 일본 반환을 판결하자 일본의 상당수 언론들은 한국 내 ‘반일(反日)은 무죄’라는 공식이 깨졌다고 분석했다.
2일자 주요 뉴스로 이번 판결을 보도한 요미우리신문은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최대 현안인 징용공(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내 표현) 소송 문제가 해결될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이번 (한국) 사법부의 판단도 이 흐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특히 이 신문은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판결은 반일이라면 뭐든지 용서된다는 ‘반일 무죄’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봤다.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 신문은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징용공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 정부의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분위기 속에 한국의 사법부가 찬물을 끼얹는 일을 피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진보 성향 마이니치신문 역시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불상 문제가 한일의 중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반환되지 않은 불상이 이른 시일 내 일본으로 올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사법부 판단에 대해 행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끼는 데 그쳤다.
문제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사진)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에 있는 사찰인 간논지에 있었지만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훔쳐서 국내로 들여왔다. 서산 부석사는 과거 이 불상을 제작한 사찰이라며 국가를 대상으로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심 재판부는 부석사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대전고등법원은 1일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해 간 증거가 인정되나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서울 이재연 기자
수출 넉달째 줄었는데…“사상 최대 수출” 윤 대통령 셀프홍보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영상 띄우기로
옥외 전광판 송출 예시 사진.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성과 10가지를 정리한 20초짜리 영상을 2월 한달간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송출한다. 대통령실은 2일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운영 기조 아래 경제, 국방, 보육, 청년 분야 등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약 9개월에 걸쳐 이뤄낸 대표적인 정책 성과와 결실 10가지를 선정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대통령실은 “10가지 주요 성과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 다시 경제 강국으로 부흥하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에 따라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는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국민과의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상 콘텐츠는 대통령실 누리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게시됐다.
대통령실은 경제 분야 주요 성과로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40조원 투자 유치 △부동산 3중 규제지역 해제 △101명 기업인과 원팀 투자 유치 등과 함께 △사상 최대 수출액 달성으로 세계 수출 순위 6위 달성이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새해 첫 달 수출이 대폭 줄어드는 등 10월 이후 넉 달 연속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2년 실적을 강조한 것이다.
또 군사 분야에선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2차 시험비행 성공 △5년 만에 한·미 연합연습 정상화 △역대 최고 수주 케이(K)-방산 21조원 수출 등이 언급됐고, △만 0살 아동 월 70만원 부모급여 지급 △5년간 5천만원 목돈 마련 청년도약계좌 △34만호 청년 공공분양 주택 공급 등 청년·보육 정책도 성과로 꼽았다.
대통령실은 옥외 전광판 광고 노출 인구수는 서울 강남 역삼동 1곳 기준 하루 260만명, 광화문 1곳 기준 119만명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한겨레 김미나 기자
태극기 휘날리며…도로한국당 앞장서는 최고위원 후보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무릎 꿇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달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극보수 성향 인사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여론과 동떨어진 이들의 언행에 대한 당내 우려가 적지 않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1일 국회에서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했다. 과거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고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 홍준표 당시 당대표와 막말 설전을 주고받은 끝에 2017년 제명됐다가 지난해 8월 복당했다. 류 전 최고위원은 출마선언에서 “가짜뉴스와 유언비어에 의해 그분(박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지난 26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건희사랑’ 전 회장 강신업 변호사가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광화문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지난해 11월6일에는 페이스북에 이태원 참사를 두고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 지금부터 촛불은 다시 추모가 아니라 난동”이라고 적었다.
극보수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 신혜식 대표도 최고위원에 출마한 상태다. 신 대표는 지난 13일 유튜브 방송에서 자신을 지지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에 대해 “목사님의 지도력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여기에까지 왔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일에는 친박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김세의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다. 김 대표와 강용석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만든 가세연은 2018년 설립 뒤 극보수적인 주장과 거친 표현, 유명인의 사생활 폭로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신의한수와 가세연은 2020년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31일 최고위원 본경선 진출자를 12명(일반 최고위원 후보 8명, 만 45살 이하 청년 최고위원 후보 4명)으로 추렸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본경선에 진출할 수 있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 후보들이 본경선에 진출해 기존의 성향대로 발언을 이어가면 전당대회가 민심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오르지 않는 민주당 지지도, 그 원인 셋
보수언론의 부풀리기? 베테랑 지목된 북 리광진, 실제론 '허술'
여권번호 털리고 20회 이상 촬영 당해... "스파이가 얼굴 공개? 비상식적“
대한민국에 지하당을 조직하고, 주요 요인에 대한 테러 및 암살 활동을 목표로 한다는 북한 문화교류국의 활동이 실제론 매우 어설펐던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사진 뉴시스)ⓒ 충북인뉴스
공안당국와 보수언론이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지나치게 부풀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피의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의심하면서 리광진 등 북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을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 만큼 위험한 인물로 묘사하는 것을 두고 '과한 해석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이른바 고위 대남 공작원들의 여권번호가 노출되는가 하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에 의해 10여 년간 이들의 활동이 촬영되고, 실명과 활동내역이 국내 언론이 보도될 정도로 빈틈이 많아서다. 전문가들도 "얼굴이 공개된 채 활동하는 허술한 공작조가 있을 리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정원 등 공안기관이 북한 고위 공작원으로 지목하고 보수 언론이 위협적인 인물로 보도한 이들의 실체를 경찰이 2021년 '충북동지회 간첩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들을 상대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통해 확인해봤다.
차관급 공작원 리광진... TV에 버젓이 출연
ⓒ 충북인뉴스
지난 2021년 국가보안법과 간첩죄 혐의로 피의자 4명이 입건돼 재판이 진행 중인 일명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당시 4명 중 3명은 구속송치됐고, 나머지 한 명인 충북 지역 인터넷언론사 대표 손아무개씨는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돼 불구속 송치됐다.
이들에 대한 당시 경찰의 구속영장에는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조인 차관급 고위 공작원 리광진과 조일운, 김세은에 대한 신상정보가 상세히 나와 있다.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리광진(여권명 : 김동진, 1960년 9월 21일생, 여권번호 : 8XXXXXXX4. 아래 '리광진')은 1990년대 모자 공작조·부부 공작조로 수차 국내 침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웅칭호'를 받은 인물로, 미상시기 부과장을 거쳐 과장 이상 직급으로 승진했으며 2017년 5월 21일 피의자 박○○이 중국 북경에서 조일운(1969년 4월 9일생, 여권번호 : 9XXXXXXX3, 아래 '조일운')이라는 북한 여권명을 사용하는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선할 당시 사전 정찰 임무를 수행했고, 2018년 4월 2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윤태영을 만나 검열했다."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김세은(43세, 영문명 : KIM SE UM)은 '남포 사범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 출신인 처 이소영과 결혼, 함께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돼 2006년경 '무역참사부' 소속으로 위장, 베트남에 파견됐다. 2017년 8월경부터는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부부 공작원으로 피의자 윤아무개가 2018년 4월 28일과 2018년 4월 29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리광진‧조일운과 접선할 당시 이들에게 차량 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접선‧검영 장소를 함께 정찰했으며 실제 접선 시 역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충북동지회의 한 피의자 구속영장에서 공안당국은 문화교류국(전 225국)이 "특수교육으로 양성한 대남공작원을 침투시켜 한국 정계·군부·사회·문화·종교계와 시민단체 인사를 포섭해 조선노동당 지령에 따르는 지하당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조선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지하당 조직을 혁명 매개체로 활용해 한국 체제 전복을 목표로 활동하면서 국가기밀 탐지·수집, 북한 체제 우월성, 김일성 일가 우월성 선전 및 요인암살·테러 등을 수행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 문화교류국에 소속돼 핵심 대남공작을 펼친다는 말인데, 중요한 조직 소속의 공직원이 한국 공안당국에 여권번호와 성장배경까지 쉽사리 노출당한 것이다.
충북동지회에 대한 재판에선 이들 신원과 관련해 더 많은 영상 증거가 제출됐다. 충북동지회 소속 인사와 문화교류국 공작조 인사가 팔짱을 끼고 커피숍에 들어가는 장면 등 이들의 만남 직후 사정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동영상에는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만나는 장면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리광진 등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조에 대한 신원은 이미 K목사 사건 때 공개된 바 있다. K목사가 지난 2011년부터 문화교류국 공작조 리광진과 조일운을 중국 등 해외에서 접선해 공작금과 북 지령을 받고 통신한 혐의와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고무찬양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충북인뉴스>가 입수한 당시 K목사 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리광진을 두고 "한국에 두 번에 걸쳐 침투해 지하당을 구축해서 간첩을 포섭해 공화국 영웅칭호를 두 번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조일운에 대해서는 "김동식(부여간첩단 사건 남파간첩)보다 대학 2년 선배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공작원을 하면서 모자공작조로 위장해 1988년경 한국에 실제로 침투해서 서울에서 활동했다"라고 언급했다.
검찰은 북한 <조선중앙TV> 2015년 10월 9일 자 영상을 제출하며, 국정원이 촬영한 영상 속 인물이 리광진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2015년 10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 방송에서 촬영된 사람과 호찌민에서 만난 사람은 리광진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며 "위 영상에서 앉은 위치와 다롄과 호찌민에 수행원을 데리고 나타난 점에 비추어 볼 때 리광진 지도원은 북한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여권 번호까지 노출된 북한 공작조
2015년 기소된 K목사 사건에서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증거로 검찰은 이들의 여권 사진도 제출됐다.
K목사 사건 재판 당시 증거로 제출된 영상자료에 따르면, 국정원과 경찰은 리광진과 조일운 등 북한 공작조 일행의 활동을 꾸준히 촬영했다. 지난 2011년 4월 21일 중국 다렌에서 K목사와 리광진과 조일운이 만난 날을 포함해 2012년 5월 31일 베트남 호치민, 2014년 3월 하노이 호수공원, 2015년 4월 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촬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1월 K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뒤에도 리광진 등 공작조의 활동은 지속됐다. 국정원과 경찰 역시 K목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활동 내역을 촬영했다. 2016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민주노총 조직실장인 S씨와 리광진을 만나는 장면 등 2020년 1월도 포착됐다.
수년간 활동이 발각될 정도로 허술한 북한 공작조를 두고 일각에선 리광진 등 문화교류국 공작조의 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
전직 공안검사 출신의 변호사 A씨는 "공작요원의 기본은 신분 보안이다. 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나고 얼굴이 알려진 상태가 되면 더 이상 활동은 불가능해진다"며 "그런데 리광진등 문화교류국 공작조는 얼굴이 공개되고 여권번호까지 공개된 상태에서도 5~6년간 지속해 활동해 왔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2015년 K목사 사건으로 리광진 등의 신원은 언론에까지 공개됐다. 또 비슷한 시기에 <조선중앙TV>에 출연했다고 한다"며 "스파이가 텔레비전에 출연한다? 이건 참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K목사 사건과 충북동지회 사건으로 기소된 인사들은 국정원이 촬영한 영상 속에 나오는 인물이 문화교류국 리광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부인했다.
다만 K목사 사건 1심, 2심, 대법원 재판부는 국정원이 제시한 영상 속 인물이 북한 공작원 리광진이 맞다고 판결했다.
충북인뉴스 김남균(043cbinews)/ 오마이뉴스
교사, 공무원, 기관사 50만명 연대파업에 영국 국민 뜨거운지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다우닝 스트리트 부근에서 시위대가 손팻말 등을 흔들고 있다. 영국 전역에서 지난 2011년 이후 최대 규모의 파업이 일어나 학교, 교통 등이 마비됐다. 영국 노총은 교사, 교직원, 공무원, 철도 기관사, 버스 운전사 등 약 50만 명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2023.02.02. ⓒ사진=뉴시스
영국에서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에 임금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자 지난 1일 50만 명의 교사, 공무원, 철도 기관사 등이 임금인상과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는 영국에서 30년 만에 실시된 가장 큰 연대파업이다.
영국노총(Trade Union Congress, TUC)에 따르면 이번 파업 참가자 중 약 30만 명이 교사라고 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역의 교사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피켓 라인을 형성한 것이다. 자동차를 탄 일부 주민은 지지와 연대의 의미로 경적을 울리고 주먹을 치켜들고 지나갔고, 다른 주민은 참가자에게 파업 이유를 묻기도 했다.
학교 문이 닫히고 대부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많은 집에서 코로나 폐쇄를 연상시키는 재택 학습과 근무가 이뤄졌다. 영국의 전국교육노동조합(National Education Union, NEU)는 파업에 영향받는 약 23,000개의 학교 중에서 85%가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9%가 교육부문 파업에 찬성했다.
런던에서 파업 참가자들과 함께 한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는 ‘더 공평한 조세제도’를 촉구했다. 그는 “영국은 현 수준의 불평등을 유지할 수 없다. 영국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억만장자가 있다. 억만장자와 백만장자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파업에 참여한 교사 잭은 현재의 노동조건 아래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학생을 챙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교사는 교사의 역할 이상을 한다. 교사는 사회복지사이기도 하고 간호사이기도 하다. 그들을 수많은 다른 직업도 가지고 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상태로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2월 1일(현지시간) 파업으로 텅 빈 영국 워털루역 ⓒ사진=뉴시스
교사 외에도 박물관 직원, 런던 버스 운전사, 해안 경비대, 공항 출입국 심사대 관리 등 수많은 노동자도 이번 파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 혹은 몇주 내에 간호사와 구급차 직원 등의 노동자들도 집단행동을 할 예정이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현재 10.5%로 G7 선진국 중 가장 높다. 노조 간부들은 정부가 제안한 교사 임금 5% 인상 등으로는 공공부문 임금이 급등하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사실상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TUC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공공부문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2010년보다 203파운드 적어졌다고 했다. 교사들은 10년 전과 같은 임금으로 2023년의 물가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월 30일에 리시 수낙 총리는 공중보건 노동자들을 만나 “요술봉을 써서 여러분 모두가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물가상승을 통제하고 절반으로 줄이려면 정부 부채를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된다. 합리적인 임금인상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질리언 키건 교육장관도 1일 큰 임금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박았다.
NEU를 이끌고 있는 매리 부스테드는 정부에게 협상 시한을 제시했다. 그녀는 “우리는 이번 파업이 하루로 끝나기를 바란다. 정부에게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지역파업인 다음 파업까지 27일이 있다. 그때까지 우리를 만나 진지하게 협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 학교의 충원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12년간 다른 어떤 업종보다 급격히 떨어진 교사의 임금을 장기적으로 조정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연 기자 haeyeonchung5@gmail.com
극우단체 분향소 앞 2차 가해, 비판은커녕 ‘맞불 집회’로 소비한 언론
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장관·국무총리·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2차 가해 발언뿐만 아니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극우단체 활동도 지속적으로 문제되고 있습니다. 시민분향소 설치와 함께 시작된 이들의 시위는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는 내용 등의 현수막을 걸고 이어져 왔으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조치는 없고, 시민분향소 앞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는데요. 언론은 이런 2차 가해성 집회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요.
‘신자유연대’ 보도 절반 이상 ‘맞불 집회’로 소비
시민분향소 인근에 추모를 방해하는 선전물을 내걸고 시위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신자유연대’가 있습니다. 2019년 4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집 앞에서 협박성 방송을 한 유튜버 김상진 씨가 대표인 단체입니다. 그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자 검찰지지 집회를 여는 등 정반대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채널 ‘윤지사(윤석열을 지키는 사람들)TV’(현재 삭제)를 운영하거나 윤 대통령 팬클럽 ‘열지대’ 공동대표 등의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신자유연대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 반대하며 맞불 성격의 집회를 열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14일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유가족의 뜻을 모아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자, 같은 날 ‘윤석열 잘한다’,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더니 계속 분향소 바로 옆에 집회 신고를 내고 ‘국민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거나 ‘이런 사고, 사망도 국가가 책임지고 대통령이 사과해야 합니까’라며 유가족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태를 비판한 언론은 적습니다. 전국일간지 11개 포함 54개 언론사 뉴스를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지난해 10월29일부터 지난 1월26일까지 ‘신자유연대’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해보니 총 299건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신자유연대를 언급한 이유나 기사 소재를 가지고 분류(중복집계)해보니, 절반 이상(55.9%) 기사가 ‘주말동안 서울 도심에서 보수성향과 진보성향이 각각 대규모 집회를 연다(또는 열었다)’는 내용입니다.
▲ 2022년 10월29일부터 2023년 1월26일까지 ‘신자유연대’ 기사 소재 분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일례로 YTN <‘이태원 참사’ 첫 주말, 도심 곳곳에서 추모 집회>(11월5일 단신)에선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첫 주말인 오늘(5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며 ‘진보단체의 추모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집회 성격”의 집회를 연 사례로 신자유연대를 언급했습니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주말마다 비슷한 기사가 되풀이됐습니다.
이들이 시민분향소 인근에 자리 잡은 12월14일 이후에도 도심 대규모 집회를 여는 하나의 단체로 소개됐습니다. 조선일보 <영하권 강추위에도 서울 대규모 집회… 광화문‧삼각지역 교통 혼잡>(12월17일 신지인 기자)을 포함해 동아일보,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집회 주관단체 중 하나로 언급했습니다. 대규모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회와 관련된 정보를 미리 소개하는 기사를 쓸 수 있고, 또 집회의 세를 비교하고 여론 향배를 알기 위해 이런 보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분향소 앞에서 2차 가해 상황을 반복해 벌이고 있는 문제는 비판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무대응을 지적하는 기사 역시 나왔어야 합니다.
2차 가해 심층 보도, 고작 8건
‘신자유연대’ 관련 보도에서 다음으로 많았던 기사는 이들이 시민분향소 근처에서 벌이는 2차 가해성 상황에 대한 내용(67건)입니다. 대부분 현장에 신자유연대의 반대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하는 내용(38건)이고,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내용이 언급된 기사(21건)는 그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기사는 2차 가해 상황을 단순히 지적하는 내용으로,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2차 가해 문제를 심층 취재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는 8건에 불과했습니다.
▲ 2022년 10월29일부터 2023년 1월26일까지 ‘신자유연대’ 기사 중 2차 가해 관련 기사 유형 분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2차 가해임을 단순 지적한 기사 21건도 대부분 유가족 발언을 통해 단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12월20일 유가족협의회와 국민의힘의 간담회에서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배우 고 이지한씨 아버지)가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과 신자유연대 등을 언급하며 2차 가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아주경제 <이태원 참사 유가족, 여 간담회서 울분 토로… “왜 안오셨나, 우리가 그리 우습나”>(12월20일 김서현 기자), 중앙일보 <여, 이태원 국정조사 복귀… ‘시체팔이’ 망언 시의원 징계도 진행>(12월20일 윤성민 기자)처럼 보도됐고, 이런 기사들이 유가족 발언을 통해 2차 가해임을 단순 지적한 기사로 분류됐습니다.
▲ 2022년 10월29일부터 2023년 1월26일까지 ‘신자유연대’ 기사 중 2차 가해 지적한 기사의 취재원 분류. 표=민주언론시민연
그 외에는 시민사회나 종교계의 2차 가해 지적을 받아쓰거나 여야 국회의원의 2차 가해 지적을 받아쓴 보도가 있었으나 시민분향소 현장 2차 가해를 직접 비판한 보도는 2건에 그쳤습니다.
오프라인 2차 가해 다룬 보도도 없다
신자유연대 보도에서 맞불 집회, 2차 가해성 상황 다음으로는 △유가족협의회가 신자유연대와 김상진 씨를 상대로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는 내용 △신자유연대가 유족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매체 ‘민들레’와 ‘더탐사’를 고발했다는 내용 △국가인권위원회가 신자유연대 회원 등에 대한 경찰 조치가 적정한지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내용 등의 순서로 많았습니다. 신자유연대의 2차 가해성 집회를 지적하는 기사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법적 조치를 단건으로 작성하는 기사의 비중이 컸습니다.
빅카인즈 검색 기준으로 2차 가해를 심층 취재한 기사는 한겨레 <이태원 유족 앞 극우 고성·막말 집회, 경찰·구청 ‘수수방관’>(2022년 12월15일 곽진산·장예지 기자)이 띄었습니다. 한겨레는 경찰과 용산구청 등이 ‘별다른 조처를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외에 경향신문이 경찰과 지자체가 2차 가해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내일신문은 시민분향소를 찾아 ‘유족을 폄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시민들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뉴스타파 <도를 넘는 ‘2차 가해’… 대책도 의지도 없는 정부>(1월3일 홍주환 기자)는 2차 가해에 대한 정부 무대응을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산하 재난대응기구인 중앙사고수습본부가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 배포를 해야 한다”고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계획 매뉴얼에 명시돼 있음에도 이태원 참사에서는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에서 혐오 발언과 자극적 영상 유포 자제를 요청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차 피해 문제 대응’을 요청했으나 중대본이 이를 묵살한 정황도 전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된 중대본 대신 행정안전부, 여당인 국민의힘, 대통령실 등을 두루 취재했으나 그 결과는 2차 피해 방치임을 잘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12월12일, 이태원 참사 10대 생존자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참사 이후 악성 댓글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2차 가해는 시민분향소 현장뿐 아니라 유튜브, 포털 뉴스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를 중심으로 2차 가해의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시민분향소 설치 당일부터 문제가 된 오프라인 2차 가해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프라인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언론의 관심이 시급합니다.
조선일보가 ‘민들레’ 명단공개 집중 보도한 이유
10·29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2차 가해에 대해 정파적,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포털에서 ‘이태원’, ‘2차 가해’로 검색하면 많은 기사가 나옵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개최한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도 있고, 사회재난 관련 기사엔 댓글 게시판을 운영하지 않도록 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매체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실명을 공개한 것과 관련된 기사도 있습니다.
민들레가 지난해 11월14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실명으로 공개한 것으로 명단공개의 적절성 여부 논란과 함께 정치권에서는 정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희생자 명단을 두고 정부와 여권에선 ‘재난의 정쟁화’를 이유로 비공개를, 일부 야권에선 ‘진실규명’을 이유로 ‘공개’를 주장했는데요. 민들레가 명단을 공개하자 정부·여권에서는 ‘유감’, ‘패륜적 행위’, ‘법적 책임을 묻겠다’ 등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진정한 추모는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명단공개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보다 정치권의 정파적 해석이 주를 이루며 논란은 진영 간 갈등으로 확장됐습니다.
▲ 2022년 10월29일부터 2023년 1월30일까지 조선일보 ‘이태원 2차 가해’ 기사 소재 분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일부 언론 보도는 이런 정파적 갈등과 논란을 부추겼는데요. 조선일보의 경우 ‘이태원’, ‘2차 가해’로 검색했을 때 참사가 일어난 지난해 10월29일부터 1월30일까지 총 36건이 나옵니다. 그중 16건이 민들레 명단공개 관련 기사입니다. 조선일보가 다른 2차 가해 보도를 소재별로 나누면 온라인 2차 가해 또는 국민의힘에서 이를 지적한 6건, 유가족협의회 2차 가해 요구 5건, 야권의 2차 가해 지적 4건, 2차 가해 수사 상황 4건 등 19건입니다. 이와 비교해도 조선일보가 민들레 명단공개를 2차 가해로 다른 기사는 월등하게 많았습니다. 빅카인즈 기준으로 분석기간 ‘신자유연대’와 관련된 조선일보 기사는 20건입니다. 그중 18건은 이들이 진보진영에 맞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고, 다른 2건은 신자유연대가 민들레를 고발했다는 기사와 유가족협의회가 신자유연대에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는 기사입니다.
신자유연대의 2차 가해를 제대로 비판한 기사는 없지만, 민들레의 희생자 명단공개를 지적한 기사는 그 어떤 2차 가해 관련 기사보다 많았습니다. 조선일보가 2차 가해 문제를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2차 가해를 제대로 다루고 싶다면, 시민분향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2차 가해에 대한 심층 취재와 포털 뉴스 악성 댓글을 줄이기 위한 조선일보의 대책 마련부터 권하고 싶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10월29일~2023년 1월26일 빅카인즈에서 '이태원 신자유연대'가 포함된 기사 / 2022년 10월29일~2023년 1월30일 포털 네이버에서 '이태원 2차 가해'가 포함된 조선일보 기사
출처 :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소녀상 앞·이태원광장 극우보수단체가 ‘선점’
수요시위, 2020년 6월부터 자리 뺏겨 주변 전전
시민분향소, ‘추모 방해용’ 신자유연대 현수막에 포위
지난 1월 2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경찰 펜스가 설치돼 있다. / 정희완 기자
‘평화의 소녀상’(평화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도로 건너편에 있다. 소녀상은 현재 경찰 펜스에 둘러싸여 있다. 극우단체들이 2020년 6월부터 소녀상 앞에서 집회신고를 선점하기 시작하면서다. 이에 따라 세계 최장기 집회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도 28년 만에 처음으로 소녀상 앞 집회자리를 빼앗겼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서울 용산 이태원광장의 시민분향소도 극우단체의 표적이 됐다. 분향소 바로 옆에 극우단체가 천막을 치고 상주한다. 추모를 방해하고 정치적 색채를 담은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분향소를 가리고 있다.
“수요시위 방해 목적으로 조직된 것”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했다.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매주 수요일 낮 12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됐다. 지난 2월 1일까지 모두 1581차례 열렸다.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 이를 계기로 소녀상 앞 도로는 일명 ‘평화로’라고 불렸다. 수요시위는 평화로에서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수요시위는 2020년 6월 24일 처음으로 소녀상 앞에서 열리지 못했다. 신자유연대 등 극우단체가 집회신고를 통해 자리를 선점한 탓이다. 당시 극우단체는 집회에 “28년 만에 수요시위 장소를 우리가 빼앗았다”라고 했다. 경찰은 종로구청의 시설보호 요청에 따라 소녀상 주변에 펜스를 설치했다. 이들 단체가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하면서 소녀상이 훼손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코로나19 거리 두기 강화로 집회가 금지되면서 수요시위는 한동안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 형태로 진행됐다. 이때는 소녀상 앞에서 가능했다. 그러다 2021년 11월 거리 두기가 완화돼 1년 4개월 만에 대면으로 개최됐다. 신자유연대 등이 다시 선순위 집회신고로 소녀상 앞을 차지했다.
수요시위는 소녀상 주변을 전전해야 했다. 소녀상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약 30m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열렸다. 이마저 다른 극우단체가 선점하면서 30m 더 떨어진 서울국세청 옆 인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수요시위를 주최하는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우익단체들이 365일 밤낮 경찰서에 상주하며 2~3명이 6~7개 단체의 집회신고를 하고 있어 평화로 모든 집회장소의 1순위를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2월 1일 수요시위는 소녀상에서 왼쪽으로 약 30m 떨어진 서머셋팰리스서울 호텔 앞에서 열렸다. 이곳도 극우단체가 먼저 신고를 한 곳이지만 실제 집회를 개최하지 않아서 가능했다. 같은 시각 반일행동은 소녀상 앞에서 ‘소녀상 사수 수요문화제’를 개최했다. 이곳도 신자유연대가 선순위 신고를 한 장소다. 다만 반일행동은 2015년 12월 28일부터 한·일의 ‘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주장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 2020년 6월 23일에는 신자유연대의 소녀상 점거를 방지하기 위해 소녀상에 몸을 묶고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극우단체들도 일제히 낮 12시에 집회를 시작했다. 소녀상 바로 왼쪽에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 “위안부 사기극의 상징, 소녀상을 철거하라” 등을 주장하며 집회를 했다. 연합뉴스 사옥 앞에선 엄마부대 등도 같은 취지의 집회를 열었다. 길 건너편에선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와 국민계몽운동본부가 마찬가지 내용의 현수막을 펼쳐놓았다.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던 엄마부대는 5분 만에 집회를 마치고 소녀상 옆 집회에 합류했다. 한 참가자는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위안부는 끌려간 게 아니다. 끌려갔다는 증거를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충돌 방지를 위해 펜스 등 질서유지선과 차량을 동원해 양쪽 진영의 집회를 분리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바로 옆에서 극우단체가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이날 반대집회를 개최한 극우단체들은 모두 지난해 1월 출범한 ‘위안부 사기 청산연대’라는 연합체 소속이다. 청산연대 소속 4명은 지난해 6월 독일 베를린에 있는 소녀상 앞에서 원정 시위를 벌여 국내외에서 논란이 됐다. 일본 언론은 이들을 두고 소녀상 철거를 추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뜻밖의 원군’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신자유연대 명의로 소녀상 옆에 집회신고를 내고 있지만, 이들이 신자유연대로부터 위임을 받아 집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극우단체 측은 “2월 15일부터는 반일행동이 있는 소녀상 앞에서도 집회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극우단체의 집회가 ‘알박기 집회’ 성격을 띠고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지난해 1월 수요시위가 온전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하라고 서울 종로경찰서장에게 긴급구제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우선 수요시위가 세계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운동으로 의미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나아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두 개의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이뤄질 때 조정하는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고 불의에 대해 책임을 구하는 세계 최장기 집회에 대한 보호 방안 마련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어 극우단체의 집회가 오직 수요시위를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의견이 다른 집회를 주변에서 개최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방해로 볼 순 없지만, 극우단체는 수요시위의 내용과 상반되는 입장을 평화롭게 표명하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근거로 극우단체가 ‘위안부’ 피해자 가면을 쓰고 피해를 거짓 주장했다고 말하는 퍼포먼스를 한 점,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발언 등 모멸적인 방식으로 진행을 한 점 등을 들었다. 또 대포 소리를 크게 틀며 “돌격하라”는 소리와 함께 수요시위 쪽으로 달려가는 위협적인 행위를 한 점, 일부 수요시위 진행 시간대에 집회신고로 장소만 선점하고 실제론 집회도 개최하지 않은 점 등도 고려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이후로도 바뀐 것은 없다”고 했다.
정의연 등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위안부피해자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한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개정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인·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금지한다. 신문, 방송이나 출판물, 집회 및 기자회견, 온라인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단 ‘학문 연구, 예술적 창작 목적을 위한 행위이거나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김 의원은 “고령화된 피해자나 유족 등이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등을 통해 권리피해 구제와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피해자의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행위를 더욱 강력하게 금지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유를 밝혔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피해자에 대한 왜곡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라며 “법이 개정되면 실익과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옆에 2차 가해 방지를 촉구하는 팻말이 놓여 있다. / 권도현 기자
“추모감정 훼손, 접근금지해야” 서울 용산 이태원광장에도 2018년 7월부터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소녀상 바로 옆에는 신자유연대가 설치한 천막이 있다. 신자유연대는 이곳에 집회신고를 내고 상주하고 있다. 광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마련된 곳이다. 경찰은 두 장소를 펜스로 분리해 놓고 경력을 배치했다.
지난 2월 2일 시민분향소 주변은 신자유연대가 걸어놓은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국민에게 더 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등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이다. ‘이재명 상습 거짓말쟁이 구속하라’, 특정 단체를 향해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하는 OO 꺼져’ 등도 적혀 있었다. 특정 유가족의 얼굴과 함께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는 취지의 현수막도 걸었지만 현재는 철거된 상태다.
분향소 뒤편에도 신자유연대의 빨간 천막이 있었다. 광장으로 들어서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이곳이 분향소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 측은 분향소를 설치하는 날부터 신자유연대가 줄곧 추모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자유연대의 집회를 두고 “현행법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협의회는 지난해 12월 29일 신자유연대와 김상진 대표를 상대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했다. 협의회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 추모감정을 신자유연대가 모욕적 발언 등으로 방해한다고 밝혔다. 반면 신자유연대 측은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비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지난 1월 17일 심문을 진행한 뒤 양측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협의회의 대리인인 하희봉 변호사는 두 차례 걸쳐 참고서면을 재판부에 냈다. 유가족 측은 추모감정을 이유로 영화의 일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의 상영금지 가처분 결정이 2005년 1월 내려진 적이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재판부가 추모감정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접근금지 등을 요구할 수 있는 판례가 있는지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었다.
형법에는 ‘장례식 방해죄’가 있다. 법 제158조는 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한다.
협의회는 분향소가 설치된 지난해 12월 14일부터 25일까지 확성기, 스피커, 고성 제창 등으로 훼방을 놓은 목록과 증거도 냈다. 앞서 언급한 문제의 현수막 사진도 제출했다. 협의회는 “신자유연대가 추모감정을 훼손할 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돼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함으로써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협의회의 요구는 신자유연대가 분향소에 출입하거나 접근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분향소 반경 100m 이내에서 확성기나 앰프 등을 이용해 방송하는 행위, 고성의 구호로 제창하는 행위, 팻말·벽보·현수막을 게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해 달라고도 재판부에 요청했다. 협의회는 “이를 통해 유가족의 인격권을 훼손하고 분향소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를 못 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신자유연대가 분향소 주변에 상주하면서 방해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1월 17일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한 지킴이는 “이날 아침에는 누군가 유가족 측에서 걸어놓은 현수막을 칼로 찢는 일이 발생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2일 만난 다른 지킴이도 “신자유연대의 방해는 가처분 제기 이후 다소 줄어든 면이 있지만, 여전히 새벽에 어떤 분이 와서 난동을 부릴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신자유연대의 행위는 추모를 방해하기 위한 명백한 집회 방해 행위임에도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의 법과 제도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정치적으로라도 해결을 해야 하는데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는 사실상 방치를 하고 있다”라며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신자유연대의 집회장소 변경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공직자들의 무책임이 2차 가해와 혐오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경향 정희완 기자
정치 깡패가 된 '아스팔트 유튜버’
기사 요약
1. 집회 활동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유튜버들을 ‘아스팔트 유튜버’라고 부른다.
2. 아스팔트 유튜버들은 욕설과 폭력적인 시위로 사람들을 자극했고, 시청자들은 이들에게 엄청난 돈을 후원했다. 이들은 서로 중독적인 관계가 됐다.
3. 정치인들은 아스팔트 유튜버들의 생태계를 지지층 결집에 활용했다.
‘윤석열을 지키는’ 아스팔트 유튜버
지난 1월 28일, 용산 대통령실이 보이는 삼각지역 앞 8차선 도로. 커다란 크레인이 스피커 16대를 연결한 ‘플라잉 스피커’를 공중 10미터 높이에서 늘어 뜨리고 있다. 무대가 설치된 스피커 앞쪽에는 깃발을 든 집회 참가자 300여 명이 모여 있다. 서로 경례를 하며 출신을 밝히는 이들의 손에는 "'찢' 큰집 가즈아"라는 전단지가 들려있다. 이들은 연신 “윤석열 잘 한다”, “이재명 구속” 구호를 외쳤다. 집회의 이름은 ‘맞불집회'. 같은 시간 시청에서 열리는 ‘윤석열 퇴진과 김건희 구속' 촛불집회가 대통령실로 행진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이 목적인 집회다. 이 맞불집회는 신자유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주최하고 있다.
저희가 생각을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세력들 중에 상당수가 친북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요. 그들이 대통령을 끌어내려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보고 있거든요.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라는 판단하에서 어찌 보면 원시적인 방법인데 몸으로 막겠다. 그게 저희들이 진행하는 맞불집회입니다. 김상진 / 신자유연대 대표, 아스팔트 유튜버
집회 자리를 선점하고, 유튜브로 생중계 하기
김상진 씨는 유튜버다. 보통 자신을 ‘아스팔트’라고 소개한다. 길거리 투쟁가를 뜻하는 아스팔트는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김씨는 9년 넘게 아스팔트 활동을 해왔기에 집회의 생리를 잘 안다고 주장한다. ‘집회장소를 선점하고, 과격한 모습을 유튜브로 생중계 하는 것’. 그러면 온오프라인 속 사람들은 열광하고 후원금을 보냈다. 아스팔트 유튜버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 2019년 3월, 서영교 국회의원의 집 앞에서 모욕 행위를 한 아스팔트 유튜버 김상진 씨.
저도 태극기부대 출신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박근혜)이 갑자기 탄핵이라는 걸, 건국 이래 최초로 당해버리니까 막 화병이 오는 거예요. 어디 마음 둘 데도 없고. 그런데 아스팔트 활동을 하면서 이거 누가 저희를 안 찍어주면 우리가 이거 하는 줄도 누가 모르는 거예요. 그때 제가 삼각대 놓고 유튜브 현장 중계를 찍기 시작한 거예요.강민구 /턴라이트TV ,아스팔트 유튜버
더 쎈 욕 하면, 더 큰 돈 버는 아스팔트 유튜버
아스팔트 활동을 유튜브로 생중계하자 후원이 쏟아졌다. 이때 두각을 나타낸 유튜버가 'GZSS' 안정권 씨다. 안 씨는 ‘세월호 기획침몰설'을 들고 나왔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일부러 세월호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했다.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실제로 믿었다.
▲ 유튜버 안정권 씨가 2018년 12월 방송한 <세월호 국정원 소유설과 기획침몰설> (출처 : GZSS)
일단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GZSS 인터넷방송의 대표이사입니다. 원래는 여객선 선조 감독이었죠. 세월호 도면 참여도 제가 관여를 했고, 세월호 하면 저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중략) 이 간첩이 진도VTS하고 당시 여당 대표였던 문재인 이런 놈들하고 통화를 했고 그 체육관에서 ‘청와대로 갑시다’ 이게 시그널이고 이게 계획이에요. 안정권 / GZSS (2018년 12월 19일 방송 중)
‘문재인이 이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오래전부터 세월호부터 기획 탄핵했어’ 이렇게 해석이 돼버리는 거예요. “안정권만이 문재인 정권을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영웅이 돼버린 거예요.
전략TV ,아스팔트 유튜버
이후 안씨는 더 자극적이고 더 모욕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욕설과 비방은 돈이 되어 돌아왔다.
문재인은 개*끼다 개*끼다. 문재인은 간첩이다 간첩이다, 하나님 아버지 좀비 새*들에게 천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안정권 /벨라도 (2021년 11월 5일 방송 중)
저희도 깜짝 놀랐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을 해버리는 거예요. 하루 밤에 수백만 원은 기본이고 집회를 하면 수천만 원씩 막 올라가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강민구/턴라이트TV ,아스팔트 유튜버
슈퍼챗 카드 결제액만 연 1억… 왜? 이유는 “인정 중독”
유튜브에는 실시간으로 유튜버에게 후원금을 보낼 수 있는 ‘슈퍼챗' 기능이 있다. 실시간 채팅창에서 슈퍼챗을 쏘면 유튜버뿐 아니라, 함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후원자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고액 후원자들은 아스팔트 사이에서 자연스레 유명인사가 된다.
누가 돈 주는 게 없잖아요. 다 사비 들여서 하는 건데 그건 부족하거든요. 유튜버들은 또 그거 받아가지고 밥도 먹어야 되지, 숙박 시설도 쓸 거 써야 되지. 그러니까 부족하지. 애국하는 거야. 아리부(활동명)/ 아스팔트 유튜버 후원자
▲ 경상남도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아스팔트 유튜버들과 후원자의 모습
김상진하고 안정권 둘이 합쳐도 천만 원 이상은 가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카드 결제 내역만 보면 재작년에만 유튜브로 나간 게 1억이 넘어요. 닉네임을 제가 대통령선거 경선 때 3개인가 4개를 더 만들었어요. 그걸로 계속 쏴야 되니까. 이수영/ 아스팔트 유튜버 후원자
도발적인 발언으로 시청자를 시원하게 해주는 유튜버, 그 유튜버에게 돈을 보내주는 후원자, 그런 후원자를 인정해주는 시청자가 서로 중독적인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고 험담을 한 뒤에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고 감사의 말을 듣게 되면 그 욕이나 험담을 멈출 수가 없는 거죠. 계속 보상이 높은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상태를 ‘인정 중독’ 상태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거죠. 유튜버 같은 경우 나의 행동에 대한 어떤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고요. 후원자도 나의 행동이 정당한 행동이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유튜버의 행동이 정당한 행동이여야만 되겠죠.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패륜, 욕설, 폭력 유튜버들 끊지 못하는 정치권
20대 대선은 유튜버들이 선거운동을 다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에는 구독자 수만 명의 거대 유튜버부터 구독자 수십 명의 일명 ‘짝대기' 유튜버들이 진을 친다.
아스팔트 유튜버들에게 선거는 대목이다. 돈이 되고, 권력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아스팔트 유튜버들의 방송 영상 썸네일 모음
지난해 8월, 한겨레신문은 대통령취임식에 초청된 명단에 ‘여사님' 추천으로 유튜버 30여 명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초대받은 유튜브 채널 명단에는 안정권 씨가 속한 ‘GZSS’뿐 아니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운영하는 ‘너알아TV’, 황경구 씨가 운영하는 ‘애국순찰단’ 등 극우 아스팔트 유튜브 채널들이 대부분이다.
또 안정권 씨의 둘째 누나 유튜버 '또순이'는 지난해 대통령실에 영상 편집자로 취업하기도 했다. 유튜버 '또순이'를 잘 아는 사람들은 ‘편집 능력이 없는데 영상편집자로 대통령실에 취업한 사실이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었다. 유튜버 '또순이'는 대통령실 취업 사실이 기사화되자 곧바로 사임했다.
유명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 관련한 소문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이슈 몰이를 하는 ‘사이버렉카'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 역시 올해 1월 대통령실로부터 설 선물을 받았다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 ‘여사님’ 초청으로 대통령취임식에 특별초청 받은 유튜버 안정권 씨가 김건희 여사와 인사했다며 즐거워하는 모습 (출처 : 벨라도)
▲ “고소 취소했다”며 유튜버 김상진 씨의 어깨를 치고 가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 (출처 : 상진아재)
범죄적 수준에 이를 정도까지 혐오와 증오를 발산하는 유튜버들. 그걸 산업화하고 사업화하는 사람들, 그들과 결탁되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생겨나면 그야말로 간단히 말하면 이거거든요. 반지성주의에 의해서 정치가 오염되는 거예요. 이게 역사적으로 보면 간단하거든요. 전체주의 파시즘이 등장하게 되는 전조예요.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한때 ‘유튜버 대통령’이라 불렸던 안정권 씨는 현재 인천구치소에 수감중이다. 지난해 6월 있었던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고, 선거운동을 방해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됐다. 안씨는 편지를 통해 구속은 억울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자들에게 전하며, 옥중 모금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비난과 모욕은 이제,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이 지지하고 응원했던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향하고 있다.
설마 내가 알고가진 무기가 없어 가만 있는줄 아니. 니들 내가 진짜 나쁜 마음 먹고 어떤 새끼들처럼 등돌리면 느그 윤통 탄핵당해. XXXXX. 감당 가능해? 추신. 윤석열 대통령. 안정권한테 X같이 하면 누가 됐든 X되는 줄 명심하도록. 의리는 안정권만큼만 지켜라. XXXXX.-안정권 '옥중 편지' 중
뉴스타파 박종화
"집값 폭등은 저금리 아닌 문재인 탓" 언론보도는 '거짓'
[팩트체크] 집값 하락하자 '금리 탓'... 전문가 "집값 폭등도 기준금리 인하 탓"검증 결과 거짓
▲ 주택가격에 금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언론 논조는 불과 1~2년 사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부동산값 급등, 저금리 아닌 정부 정책 탓”이라고 보도했던 <국민일보>는 지난 2022년 12월 13일에는 “정책도, 공급도 무의미… 2023년 부동산 시장, 금리에 달렸다”라고 보도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검증대상] "집값 폭등은 저금리 아닌 문재인 정부 정책 탓" 언론보도
- "주택 가격 오를 때는 '문재인'이고 내릴 때는 '기준금리'?"(네이버 댓글 masa***)
- "작년 재작년에 정부였다며? 김현미(전 국토교통부 장관)였다며, 집값에 가장 영향 미친 게 금리 때문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정부에서 폭등시켰다며. 집값 떨어져서 말 나오니 금리라고 말 바꾸는 거 보소."(다음 댓글 '내***')
주요 언론에서 지난 1월 30일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해 "주택가격에 가장 큰 영향 미치는 요인은 기준금리"(연합뉴스 등)라고 보도하자, 독자 댓글에 '언론의 말 바꾸기'라는 비판이 다수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집값 폭등 원인이 '주택공급 부족'과 '대출 규제' 같은 정부 정책 탓이라고 비판했던 언론이 정작 윤석열 정부 들어 집값이 하락하자 '금리 탓'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다. 실제 '집값 폭등은 저금리가 아닌 문재인 정부 정책 탓'이라는 언론 보도를 검증했다.
[검증내용] "집값 폭등은 저금리 아닌 정책탓"이라던 언론, 집값 하락에 "금리탓"
▲ 기준금리 변동추이(위)와 주택가격 추이(아래). 아래 그래프에서 첫번째 파란색 배경은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대출총량규제를 시행한 시기. 빨간색 배경은 저금리 및 대출총량규제 미시행 시기, 두번째 파란색 배경은 기준금리 인상 및 대출총량규제를 시행한 시기.(출처 : 국토연구원, '주택시장과 통화(금융)정책의 영향관계 분석과 시사점', 2023.1.30) ⓒ 국토연구원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가 0.5%까지 떨어지면서 2021년 상반기까지 집값이 폭등했고, 2021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가 다시 상승하면서 집값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는 부동산 가격과 정반대로 움직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 금리도 떨어지고 이에 따라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유동성이 늘어나 집값이 오른다. 반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반대로 시중 자금이 금융기관으로 몰리고(유동성 감소) 대출 금리도 올라 집값이 떨어진다.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구입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기 주택 수요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8월 보고서(이슈노트 '주택시장 리스크 평가')에서 "기준금리의 인상은 주택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기준금리가 100bp(1%p) 인상될 경우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경우에 비해 주택가격을 1차 연도말 0.4~0.7%, 2차 연도말 0.9~2.8% 정도 각각 낮추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 역시 집값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토교통부 소속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에서 지난 1월 30일 발표한 보고서('주택시장과 통화(금용)정책의 영향관계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75%에서 0.5%까지 1%p 이상 떨어지고 집값이 폭등했던 2019년~2021년 사이 '기준금리'의 주택가격 변동 기여도는 50~60%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대출 규제' 기여도는 그사이 40%에서 18%로 떨어졌고, '주택 공급' 기여도는 8.5%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한국부동산원 아파트매매가격지수 기준).
문재인 정부도 2020~2021년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저금리라고 계속 밝혔지만, 당시 대부분 언론은 주택 공급 부족과 대출 규제 등 정부 정책 탓으로 돌렸다.
특히 <국민일보>가 지난 2021년 1월 6일 "부동산값 급등, 저금리 아닌 정부 정책 탓"이라는 제목으로 "정작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인 (2020년) 3, 5월을 전후해 유의미한 가격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면서 "규제 위주의 정부 대책이 오히려 매매가·전세가 동반 상승의 주범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하자, 국토교통부가 "기준금리 인하가 시장은행금리 인하로 이어지기까지 시차가 있다"고 직접 반박하기도 했다.
[대선 3개월 전 보도 분석] "집값 폭등은 수급 탓" 31건 vs. "금리 탓" 10건
▲ 기준금리 인상으로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지난 2021년 12월 주요 언론들은 주택산업연구원 보고서등을 근거로 금리가 더 오르더라도 주택 공급 부족으로 2022년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전망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언론의 '문재인 탓'은 대통령선거를 3개월 정도 앞둔 지난 2021년 12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당시 2021년 8월과 11월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 이후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였고 정부도 집값 하락을 경고했지만, 주요 언론은 여전히 주택공급 부족 때문에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거란 전망을 내놨다.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등이 공동 출연한 건설업계 싱크탱크인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은 2021년 12월 14일 '2022년 주택시장전망'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 주택가격 변동 영향 요인을 상관계수로 분석한 결과 주택수급지수 > 경제성장률 > 금리 순으로, 수급지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새해에도 주택공급 부족으로 집값 2.5%, 전셋값 3.5% 상승이란 전망을 내놨다.
반면 국토연구원은 그해 12월 24일 '주택가격 변동 영향요인과 기여도 분석' 보고서에서 "집값 상승은 주택 공급보다는 저금리 때문"이라는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19년 7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인 실질CD(4개월) 금리의 주택가격 변동 기여도가 14.2%에서 34.3%(한국부동산원지수 기준)로 크게 오른 반면, 주택 공급(전체 주택 준공물량) 기여도는 3.8%에서 8.6%로 오르는 데 그쳤다.
서로 상반된 두 연구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량은 주산연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쳤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해 당시 중앙일간지, 경제일간지, 방송사, 전문지 등 26개 언론사 보도를 분석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관련 보도는 12월 14일과 15일 양일간 19개 매체에서 사설 3건 포함 31건이었던 반면, 국토연구원 관련 보도는 12월 24일 9개 매체 10건에 그쳤다. 국토연구원 관련 보도에는 '국책연구기관의 정부 감싸기'(디지털타임스)로 평가 절하하는 기사도 포함돼 있었다.
▲ 2021년 12월 24일 국토연구원 '주택가격 변동 영향 요인과 기여도 분석’ 보고서 관련 언론 보도. 9개 언론사에서 10건을 보도했다.(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중앙일간지, 경제일간지, 방송사, 전문지 등 26개 언론사, 2021년 12월 24-25일 보도 분석) ⓒ 김시연
1년 뒤 집값 하락하자 "부동산시장, 금리에 달렸다"
결과적으로 주산연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2022년 한 해 동안 기준금리가 1.0%에서 3.25%까지 2%p 이상 수직 상승하면서 집값 상승률이 떨어지고 거래량이 줄며 본격적인 집값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언론도 지난해 하반기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고금리 탓'을 하기 시작했다.
2021년 집값 폭등이 저금리 탓이 아니라고 보도했던 <국민일보>도 지난해 7월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해 "금리 상승기 진입 후 1년 뒤부터 집값 떨어진다"고 보도했고, 지난 12월 13일에는 "정책도, 공급도 무의미... 2023년 부동산 시장, 금리에 달렸다"는 정반대 보도를 내보냈다.
그렇다고 기준금리 인상만 집값을 떨어뜨리고, 기준금리 인하는 집값에 영향을 덜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금리 인상기보다 금리 하락기에 집값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더 즉각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7월 8일 보고서('주택 가격에 대한 금리의 시간 가변적인 영향 연구')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 인하는 초기부터 빠르게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반면, 금리 인상은 12~15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집값 상승 예측한 주산연 "금리보다 수급 영향 커... 지금은 예외적 상황"
그럼에도 주택산업연구원은 여전히 금리보다 수급이 주택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권영선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일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물가를 잡으려고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상승시키거나 경제위기 때 하락시킨 것처럼 인위적으로 금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면서 "결국 주택 가격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건 수급과 경제성장률이라는 논조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는 기준금리를 급격히 내리진 않고 낮은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면서 "(금리 인상이 주택 가격 하방 요인이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금리 기여도가 60%를 차지할 만큼 높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은 금리 영향이 크고 서울과 수도권 수급이 부족한데도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예외적인 상황이고 시장이 조금만 안정되면 공급이 부족한 지역부터 주택 가격이 반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 의견] "문재인 정부 집값 폭등은 수급보다 금리 영향 커"
주산연 주장과 달리 부동산정책 전문가들은 국토연구원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폭등 역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저금리 영향이 더 컸다고 보고 있었다.
배문성 외국계 자산운용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문재인 정부 초반 기준금리를 1.5%(2017년 11월)와 1.75%(2018년 11월)로 단 두 차례 올렸는데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주춤하면서 침체기가 왔고, 2019년 7월 이후 경기 침체 때문에 0.5%까지 지나치게 끌어내렸기 때문에 집값이 폭등했다"면서 "2020~2021년 2년간 서울지역 입주 물량은 장기 평균보다 많았는데도 집값과 전세값이 폭등했다는 건 공급이 아니라 금리 영향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집값 하락은 금리 인상이 인위적이고 급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준금리가 3%대까지 올라온 건 예상 못한 급격한 상승으로 볼 수는 있지만, 0.5%였던 기준 금리를 인하 이전 수준인 1.25%까지만 올렸어도 이렇게 빨리는 아니여도 집값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동했을 것"이라면서 "금리 인상 초반인 1% 수준에서도 세종, 대구 등 주요 도시 집값이 하락했으며 서울도 거래가 위축됐다"고 반박했다.
수년간 건설업 애널리스트로 활동해온 그는 지난해 11월에 펴낸 책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에서도 "상승장에서 대세를 이루고 목소리가 커진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화에 실패한 정부 실책을 공급 부족 프레임으로 비난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금리와 부채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간과해 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도 1일 <오마이뉴스>에 "2020년 이후 전 세계 자산시장과 주식시장이 폭등한 건 금리 인하로 돈값이 싸졌기 때문이지, 주택 수급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다"면서 "건설업계에선 집값이 오를 때만 주택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런 논리로는 지금은 왜 집값이 폭락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도 주택 공급을 많이 하면서 세금도 강화하고 대출을 규제했지만, 낮은 금리가 자산시장을 끌어올리는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언론은 정부가 공급을 등한시하고 세금으로 해결하려다 실패했다는 프레임을 짜고 일부 부동산 전문가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금리 요인과 더불어 경제성장률도 중요하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 기준 금리가 높고 정부가 강력히 규제했는데도 집값이 많이 오른 건 성장률이 높아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가 금리를 극복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은 기준 금리가 동결되고 하반기 중에 꺾인다고 해도 경기 침체 때문에 집값이 다시 상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증 결과] "집값 폭등은 저금리 아닌 문재인 탓" 언론 보도는 '거짓'
문재인 정부 당시 기준금리 인하 영향으로 집값이 폭등했지만, 대부분 언론은 주택공급 부족과 대출 규제 등 정부 정책 실패 탓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금리보다 주택 수급이 집값 변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설업계 주장과도 일치했다.
하지만 국토연구원과 부동산정책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주택가격 폭등 역시 기준금리 인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언론도 최근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해선 '금리 탓'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집값 폭등 원인이 저금리가 아닌 문재인 정부 정책 때문'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연구 결과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 보도와도 모순돼 '거짓'으로 판정한다.
오마이뉴스 김시연(staright)
"자잘한 뇌물보다, 부패집단과 권력의 결탁 악영향 엄청나"
[인터뷰] 김거성 국제투명성기구 국제위원
김거성 목사는 전북 익산 출생으로 서울 한성고, 연세대 신학과,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시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다. 지난 2004년 부터는 매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를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한국인 최초로 이사를 지냈다. 또 현재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투명성기구 국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을 지내면서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거침없이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협박과 고발 등 온갖 어려움을 당했다(관련기사 : "사립유치원, 교육청에서 손댈 수 없는 '성역'이었다" https://omn.kr/1baak)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한국투명성기구 회장을 지냈고 필자는 당시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그는 또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상임집행위원을 지낸 반부패 전문가다. 다음은 지난 1월 31일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인 한국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와 관련해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2022년 세계 부패인식지수ⓒ TI
- 지난 1월 31일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2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서 한국은 100점 기준에 63점으로 180개 국가 중 31위에 올랐다. 먼저 이 결과에 대해 총평을 하면?
"국제투명성기구의 2002년 부패인식지수(https://www.transparency.org/en/cpi/2022)에서 우리나라가 점수와 순위에서 1점과 1순위 오른 것은 함께 기뻐할 일이다. 특히 국제투명성기구가 2018년부터 4년 동안 CPI 점수의 개선 폭이 큰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꼽은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38개 OECD 가입국가들 중에서는 22위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명성이나 위상에 비추어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이번 CPI에서 한국의 결과가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은 공적자금과 관련한 청렴도가 크게 개선된 점이다. 하지만 공직사회 그리고 경제활동과 관련된 지표들이 하락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나?
"뇌물이 부패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결과는 한 마디로 '보이는' 뇌물은 줄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또 '교묘하고 지능적인' 부패가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CPI는 '인덱스들로 만든 인덱스'(index of indices)라고 불린다. 즉 하나의 조사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자료들을 취합하여 표준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각 조사별로 질문의 특성에 따라 그 나라의 분야별 청렴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CPI에서 한국이 언급된 10개 조사들 중 개선 폭이 크게 나타난 것이 있다.
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뇌물 관행을 묻는 국가위험지수로 지난해(2021) 55점에서 올해(2022) 72점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지수는 61점에서 57점으로, '민주주의의 다양성'이란 기관에서 정치부패의 만연 정도를 측정한 결과에서 71점에서 67점으로 하락하면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걸) 가로막았다. 직접적인 뇌물은 줄고 있지만, 정치부패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렇게 하락한 우리나라 공직사회 그리고 경제활동과 관련된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경제계의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나?
"부패는 어느 한 부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되기 힘들다. 공공부문과 경제부문은 우리 사회의 양대 주축 아닌가? 유엔 반부패협약의 비준국으로서 우리나라 사회 각 부문이 꾸준하게 또 성실하게 그 기준에 맞추어 나기 위해 노력한다면 청렴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 2005년 공공부문, 기업, 정치부문, 시민사회 등이 반부패를 내걸고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하고 추진했던 투명사회협약이 최선의 모델이라고 본다."
▲ 2010년 국제투명성기구 임원들과 함께(김거정 왼쪽 뒤)ⓒ 김거성
- 이번에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촉구한 '민관협력을 통한 반부패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동반한 민관협력이 필수적인 것 같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2월 '민간단체 보조금' 조사를 선언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정치적 줄세우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대결적 상황에서 민관협력을 통한 반부패문화를 어떻게 확산할 수 있을까?
"가장 심각하고 대규모의 부패는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검찰이나 감사원 등이 권력의 하수인처럼 일부 소수 이익집단이 되어 작동한다면 그런 권력의 남용이 가장 심각한 부패 아닌가? 자잘한 뇌물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소수 이익집단이 말아먹는 이른바 '정책포획'이나 부패집단과 권력의 결탁을 통한 봐주기 등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난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등도 내부 거버넌스를 개선할 책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만을 부패집단으로 낙인찍어 마녀사냥 하듯, 부패를 도려내고 발라낼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욱이 권력과 그 주변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반대세력에게는 가혹하게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시민사회의 감시나 지적, 조언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액튼 경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를 들려주고 싶다. 민관협력이 불가능할 때에는 기다리며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지 어찌하겠나? 들으려 하지 않더라도 부패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한 지속적 노력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마땅한 책임(due diligence)이다."
-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3년 임기의 국제투명성기구 이사로 선출되었고, 2007년에 재선, 그리고 2020년에는 1년 임기의 이사로 위촉되어 재무감사위원장을 맡는 등 세 차례 이사로 활동하셨고, 지금은 국제투명성기구의 국제위원으로 역할하고 계신다. 국제위원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또 그런 활동들을 통해 깨닫고 또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우선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이사로 활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개인적 능력보다는 한국 사회나 아시아-태평양 권역의 반부패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또는 격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국제위원회는 TI 운동의 구체적인 활동과 목표에 대해 조언하기 위해 선임된 34명의 독립적인 전문가 그룹이다.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TI 운동을 지원하며, 외부 개인 및 기관과의 지식 교류, 그리고 외부 행사나 회의에서 TI를 대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TI 활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첫째 부패를 적발처벌이나 제도개선 등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고 '통전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청렴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공공부문, 기업부문, 시민사회 등의 연대와 협력(coalition building)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구체적인 반부패 전략은 각 사회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꾸려져야 한다."
▲ CPI 점수 변화폭이 큰 국가들(2018-2022), 출처: Transparency International, 2023.ⓒ TI
- 김 박사님의 최근 책 <함께 빛나는 큰 별>에서도 지적하셨지만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학에서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보호가 너무나 빈약하다. 공익신고자 보호확대를 위해 정부의 어떤 조치가 더욱 절실하다고 보는지?
"일부 비리 사학들은 학교나 교육을 '황금알을 낳는 비즈니스'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하고, 직무 관련자들에게 뇌물이나 향응 제공으로 유착관계를 강화해갔던 것이 그들의 과거 흑역사이다. 사학의 이런 상황을 드러내고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분들이 바로 공익신고자들이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개정되어 이제 사립학교법도 공익신고 대상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사학에서의 비리 신고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고에 따른 불이익 조처를 당하기 쉽고 또 신고 후에도 같은 재단 내 학교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학비리 신고자들을 '공립특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사학의 공공성을 확대해 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 이번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하면서 한국투명성기구는 "정부 차원의 반부패리더십을 강화하여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 부패인식지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 예측하나.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는 그 국가 또는 사회의 종합적인 노력의 결과가 지수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함부로 예측할 일은 아니다. 다만, 각 정권마다 부패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접근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향후 변화를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반부패를 마치 일종의 규제처럼 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투명성기구 등이 성명에서 국가청렴위원회 폐지와 반부패 정책 후퇴에 반대했고, '반부패 없이는 건강한 경제성장도 없다'는 국제투명성기구 메시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견해를 무시해버린 결과가 이후 부패인식지수에 나타났다. 100점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매년 평균 1.82점 상승,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0.18점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1.77점씩 상승했는데, 이런 상승세가 다시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락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내 편'과 '네 편'에 서로 다른 반부패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 1771년 프랑스 대사의 보고서에 "스웨덴은 정부와 의회의 모든 정치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패의 병에 감염되어 움직이는 나라"라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지금 스웨덴은 세계 청렴선진국 중 하나다. 스웨덴의 부패청산 성공모델은 위로부터의 개혁모델이었다.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국가재건에 동참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위로부터의 부패청산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부패의 극복은 물론 스웨덴처럼 위로부터, 즉 정치적 리더십을 통해서 진전한 모델도 있지만, 반대로 아래로부터, 즉 국민적 분노와 항거를 통해 실현된 모델도 여럿 있다. 따라서 둘 중 어떤 모델이 잘 작동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양자가 결합한 모델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미루어 볼 때 반부패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도는 국민적 감시와 참여, 행동을 통해 청렴사회를 향해 전진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 김거성 목사는 전북 익산 출생, 서울 한성고, 연세대 신학과,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신학박사)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Transparency International 이사,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상임집행위원.
(현) Transparency International 국제위원, 상지대 객원교수
(저서) <반부패 투명사회>(2009, 한국투명성기구), <그날이 오면>(2021, 동연), <함께 빛나면 큰별>(공저, 2022, 동연)
김성수(wadans) 오마이뉴스
공부에 집착하는 엄마들, 날 소름끼치게 한 대화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75] tvN <일타스캔들>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위험한 현실
"난 대한민국 사교육 과열은 다 엄마들 책임이라고 봐. 너무 유난들인 거지. 유난이 유난을 낳고 유난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또 경쟁을 낳고"
tvN <일타스캔들>의 첫 회. 국가대표 반찬가게 사장 행선(전도연)은 이렇게 말한다. 가정 형편을 고려해 스스로 공부하는 해이(노윤서)의 '엄마'(낳지는 않았지만 버려진 어린 해이를 키운 행선은 엄마와 다름없는 존재다)인 행선은 사교육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수학에서 번번이 1등급을 놓치는 해이는 조심스레 행선에게 수학 일타강사 치열(정경호)의 강의를 듣고 싶다하고 그렇게 행선 역시 대한민국 사교육 현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다짐한다. "나도 열혈 엄마가 되어 보겠다"고.
이렇게 시작된 <일타스캔들>은 일단 재밌다. 진심과 열정이 있지만 나름의 아픔을 지닌 치열이 행선의 음식을 통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 또한 따뜻하다. 쇠구슬 살인으로 버무려진 스릴러의 요소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가 거듭될수록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올라왔다. 이는 아마도 드라마가 '당연하게' 그리고 있는 사교육에 대한 '강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타스캔들>속 인물들의 '공부 강박'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본다.
강박적으로 공부에 집착하는 어른들
행선의 표현대로라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모두 '열혈맘'이다. 아이들의 학원이 끝나는 밤 10시면 교통이 마비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 엄마들의 일과는 학원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다. 그 중 첫 아이를 '스카이'에 입학시키는데 실패한 변호사 서진(선재맘/장영남)과 맘카페 인플루언서로 학원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희(수아맘/ 김선영)는 열혈맘 중에도 열혈맘이다. 이들은 이런 대사를 종종 던진다.
"엄만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너마저 잘못되면 엄마 진짜 죽어." (2회, 서진)
"얜 네 경쟁자야." (3회, 서진)
"개념이 없네. 그런 자료를 유출하다니." (6회, 수희)
나는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친구마저 '경쟁자'로만 바라보도록 하는 이 엄마들의 말들이 참으로 씁쓸했다. 동시에 이런 말들이 현실에서도 낯선 것이 아님에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현실적인' 대화들이 오가는 가운데 급기야 5회 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함께 공부하던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난 이럴수록 휴강은 아니라고 봐. 어차피 애들도 다 알 텐데 얼마나 놀랍고 무섭겠어요? 근데 수업까지 안 해? 그럼 우리 애들 멘탈 더 흔들려요." (수희)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이럴 때 휴강하고 방치하면 애들이 더 동요하죠." (서진)
이 대목에선 소름이 끼쳤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에게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아파 보였다. 공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 인물들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집착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인 '강박'과 매우 유사했다. 더 소름 돋는 건 이런 대사들이 개연성 있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이런 전개가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 자체가 '공부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 실제 현실이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강박을 유발하는 세상
심리학자들은 강박을 일종의 불안반응이라고 본다. 무언가에 심한 불안과 압박감을 느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강박이다. 이런 강박적 사고와 행동의 많은 부분은 '파국적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걸 하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거나 파괴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들 때 점점 더 그 행동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일타스캔들> 속 엄마들에게 공부에 대한 집착은 일종의 강박과 같다. 이들은 좋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큰일'이 나고, 친구와의 우정을 나누거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매우 '큰 문제'인 것처럼 지각한다. 공부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은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위험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인물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대부분의 학부모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 사교육을 비판했던 행선마저 해이가 올케어 반에서 빠지자 마치 '큰일'인 것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이런 설정들이 전혀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대다수가 이런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은 그 원인이 개인이 아닌 사회에 있다는 뜻일테다.
▲ <일타스캔들>의 엄마들에겐 학원수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 tvN
이는 드라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타스캔들> 속 세상엔 '아버지'가 부재한다.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는 이는 모두 엄마들이고, 엄마들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 이는 여성의 삶을 엄마 역할에 그것도 자녀의 출세에 가두는 유교적 가부장 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또한, 오직 '의대'만이 살길인 대한민국의 현실도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에서 '올케어' 반은 의대 입시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올케어반에 들어간 아이들이 의대를 가고 싶어하는지는 드라마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해이조차 자신이 의대를 원하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올케어반에 붙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이는 다양한 직업이 존중받지 못하는, 그러니까 위계적 직업관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공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파국적 사고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는 치열이 말하듯 모든 부모와 아이들을 "데스게임"(5회)속으로 끌어들인다. '데스게임'은 당연히도 불안을 조장한다. 불안은 강박을 키우고 결국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
그렇다면 이런 강박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단지 '공부를 잘해 의대에 가야 한다'가 아니라 '내가 왜 공부에 집착하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불안은 무언가를 잘 알지 못하고, 모호할 때 더욱 커진다. 내 마음의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와 선을 긋는 용기도 내어 보아야 한다.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상담자들은 불안으로 인한 강박으로 상담실을 찾은 이들에겐 '불안해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도록 돕는 개입을 한다. 사실 불안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정서이다. 불안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위협을 지각하고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불안 자체는 터부시할 감정이 아닌 것이다. '불안한 상태'를 불안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러니까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조금 불안한 미래를 꿈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의대처럼 미래가 보장되는 곳에 진학하지 않고, 진짜 내 꿈을 위한 불안을 선택한다면 '도무지 괜찮지 않을 것'처럼 몰고 간다. 보다 다양한 꿈과 진로가 존중받고, 이를 찾아가는 동안 느껴지는 불안들을 사회가 '괜찮다'고 수용해준다면, 의대 진학을 위해 공부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 <일타스캔들>의 아이들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사망한 후에도 바로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다. ⓒ tvN
나는 <일타스캔들>의 인물들이 이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나친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서진이 아이들의 공부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수희가 아이에게 바라고 있는 게 무엇인지 성찰해 볼 수 있다면 '공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이와 드라마 속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꿈을 추구하는 모습도 그려진다면 정말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일타스캔들>은 정말 재밌다. 치열처럼 멋진 일타 강사가 내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전하는 재미를 누리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이는 드라마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고 질문해보았으면 한다. 이 '공부 강박'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를 말이다.
송주연(serenity153)오마이뉴스
“주주·독자·후원회원은 존재 자체로 경남도민일보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자랑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금까지 자랑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입니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도 여러분에게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부장)
1999년 6000여 명의 시민 주주로 창간된 경남도민일보가 지난해 5월 ‘후원회원제’ 운영을 시작했다. 이승환 부장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왜 필요하고, 어떤 효용성이 있을 것인지’ 전하기 위해 후원회원제를 시작하며 10회의 <경남도민일보 후원회원이 돼 주세요> 글을 연재했다. 글을 통해 지역 밀착 보도로 독자들에게 더 다가갈 것, 도민들의 공존을 위해 귀 기울일 것, 사회적 약자이기에 외면받는 주체가 없도록 보도할 것 등을 약속했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2.5
때마다 나오는 언론윤리 강화, 김만배 돈거래 사건 정답일까
이해충돌 방지 규정 대상 ‘취재원’ 중심, 윤리기준 실행력 부족
“언론윤리가 아니라 일반적인 윤리 문제” 반박도… 언론사마다 대응 차이도
화천대유 대주주이자 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김만배는 언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유력 신문사 간부 3명이 김만배와의 수상한 돈거래로 인해 옷을 벗었으며, 문제가 된 신문사들은 저마다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수습에 나섰다.
뚜렷한 재발방지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언론인이 돈거래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며, 사인 간의 돈거래를 조기에 차단하기도 쉽지 않다. 언론윤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지만 한국의 언론윤리 기준은 뉴욕타임스와 비교해 구체성이 떨어지며 실행력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김만배 돈거래 사건’은 여느 언론계 사건·사고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인이 취재원이나 사업가가 아닌 같은 기자 동료에게 거액의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당사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돈거래’라고 해명했다. 언론계 선후배 간 돈거래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김만배의 대장동 의혹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돈거래 역시 수면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만배 돈거래 사건’이 드러난 후 언론은 ‘윤리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언론윤리와 직업윤리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적용받는 언론윤리 가이드라인은 사내 규정을 제외하고도 수 개에 달한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실천요강, 언론윤리헌장, 신문윤리실천요강, 방송기자연합회 강령 등 언론 유관 단체들은 저마다의 윤리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들 윤리기준을 보면 언론인의 금품·금전 거래에 대해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한다(기자협회 실천요강)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기자협회 윤리강령) △취재원으로부터 정당한 이유가 없는 혜택과 편의를 제공받지 않으며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언론윤리헌장) △취재‧보도‧평론‧편집과 관련하여 이해 당사자로부터 금품, 향응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되며, 이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신문윤리실천요강) △출입처나 취재원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지 않아야 한다(방송기자연합회 강령) 등이다.
이들 윤리기준에서 설정하는 대상은 ‘취재원’으로 한정돼있다. 김만배처럼 돈거래 당시 취재원이 아니었던 사인과의 거래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TV조선의 전·현직 언론인이 사업가에게 금품을 받은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건’ 역시 취재원이 아니라 사인 간의 거래로 볼 수 있다. 언론계가 보다 구체적인 언론윤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달리 뉴욕타임스는 가이드라인에서 구성원들의 투자 및 금융 관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을 보면 뉴욕타임스는 단순히 ‘취재원에게 금전적 편의를 받으면 안 된다’는 규정을 넘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 뉴욕타임스는 기자 지인의 주식까지 확인한다]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뉴욕타임스는 △취재 대상이거나 차후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개인 혹은 단체로부터 그 어떤 선물이나 티켓, 대출 상환혜택, 기타 각종은행 대출도 제공 받아선 안 된다 △본의 아니게 받게 된 선물은 정중한 설명과 함께 되돌려줘야 한다 △공식적인 업무상 관계와 개인적 친분 관계의 차이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정했다.
또한 뉴욕타임스 편집인, 편집국장, 부국장, 경제금융 산업 에디터·부에디터, 논설실장 등 고위 편집권자들은 연례적으로 재무 점검을 받아야 한다. 편집권자들이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재산을 갖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조치는 기자들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게 만든다. 가디언 기자들은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부서장에게 가족들이 하는 사업, 직업 등을 공개해야 한다.
윤리강령·가이드라인과 이번 돈거래 사건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반박도 있다. 사인과 거액의 금전 거래를 할 때 법과 절차를 지키는 것은 언론윤리를 넘어선 일반적인 상식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만배와의 돈거래 행위가 일과 관련성이 발견되면 언론윤리가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언론인이 관련되는 모든 문제가 언론윤리인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단계다. 앞질러서 사실관계를 예단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윤리적이진 않다. 지금 시점에선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법조기자단을 사건의 시발점으로 꼽기도 한다. 김만배가 법조기자단을 중심으로 언론계 인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김 씨와 돈거래를 한 3명 외에도 화천대유로 취업한 이 아무개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 아무개 서울경제 법조 선임기자, 신 아무개 뉴스1 사회부장은 법조팀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 최근 한겨레 사장 선거에 출마한 박찬수 대기자,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은 이번 사건의 원인 중 하나를 ‘법조기자단’으로 꼽고 “법조 취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 “법조기자단 탈퇴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법조기자단 자체를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꼽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박도 있다. 김만배와 일부 기자들의 문제일 뿐 법조기자단 전체를 문제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법조팀장을 역임한 복수의 기자들은 1월1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만배가 법조기자단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했다.
▲Gettyimages.
신문사별 대응방법 천차만별… “조사결과 외부 공개해야”
김만배와 돈거래 사실이 드러난 신문사들은 대응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 모두 지면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진상조사와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한 건 같았다. 그러나 이후 대처는 확연하게 달랐다.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신문사는 한겨레다. 한겨레는 지면에 사과문을 게재한 것에 이어 중간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한겨레는 석진환 전 신문총괄의 문제적 행위를 모두 공개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조사에 나섰는지까지 상세히 알렸다. 또 한겨레 노동조합은 사측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대표이사·편집인 즉각 사퇴 등을 요구했다.
한국일보는 김만배에게 돈을 받은 김 아무개 전 뉴스부문장을 해고한 후 추가 진상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13일 성명을 내고 진상조사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조 아무개 전 논설위원이 사표를 제출하자 별도 징계 없이 수리했으며, 이후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새로운 사실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구체적인 후속조치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1월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어떤 재발방지책을 마련했는가”라는 질문에 “이 같은 사안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고 했다. 또 “디테일한 대책은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석태 교수는 “한겨레의 경우 윤리를 강조해온 신문사이고, 금액이 가장 크기 때문에 그런 것(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있다”며 “중앙일보의 경우 설명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 내부적으로 고민이 있겠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고 외부에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심 교수는 “언론은 일반 소비자를 향해 글을 쓰고 논평하는데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해명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도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위원장은 “잘못된 금전거래를 한 당사자들이 함구한다면 회사가 이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한겨레의 경우 문제를 사전에 적발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며 “(석진환 전 기자에게 금전거래 사실을 들은) 데스크가 회사에 보고하지 않으면서 직무배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한겨레·한국일보·중앙일보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도) 차제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내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남 일 보듯 할 순 없다. 외부에서 (규제를) 강제하는 법률보다는 언론사 내부적으로 문제를 미리 걸러내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언론인의 엄격한 직무수행을 유도하겠다며 지난 12일 언론인에게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규정된 것과 유사한 책임을 지우는 신문법 개정안, 일명 ‘김만배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한국신문협회는 “사적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과잉 입법이다.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도 언론인을 공직자로 규정해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등에 적용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며 폐기를 주장했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간첩사건과 종북몰이, 되살아난 국가보안법
어처구니없는 간첩 혐의들…과장‧조작 의심 짙어
윤석열 정부 비판 목소리에 무차별적 '친북' 딱지
정권 초부터 시작된 치밀한 공안정국 준비 작업
주기적 되풀이되는 종북몰이, 국보법 방치 안 돼
동남아 국가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각각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얼마 전 국가정보원은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실시간 중계를 하면서 민주노총 등 전국 10군데를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치밀한 정치적 기획에 따른 한바탕 쇼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실제로 국정원과 족벌언론들의 호들갑이 일으킨 거품을 걷어내고 이 사건들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간첩과 접촉해 지하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의심받는 3명이 '서로 연락을 안 했던 것이 더 의심스럽고 단선연계 복선포치형 조직'이라는 주장을 보자. 서로 연락을 했으면 또 그것대로 지하조직의 증거가 됐을 것이다.
'친북 지하조직의 특징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우습다. 진술거부권은 수많은 피의자가 사용하는 기본적 권리일 뿐이다. '외국계 메일과 클라우드를 사용해서 교신하는 사이버 드보크의 신종 첨단 수법'이라는 지적은 또 어떤가? 요즘 지메일과 클라우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 무슨 당황스러운 주장인가.
해외여행 갔다가 만난 사람이, 숙박 문의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알고 보니 북한 간첩이었다는 수사 내용도 뭔가 이상하다. 해외여행 가서 한국 사람이 인사하는데 무조건 모른 척하거나 누구인지 신분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고, 문의 전화를 받을 때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미리 알고 안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설명을 그냥 기각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정원은 그렇게 난리를 치며 호들갑을 떨고도 초기에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고 입증하지도 못해서 관련자 중에 한 명도 구속기소하지 못했다. 물론 몇 달간의 꾸준한 언론플레이와 여론재판을 통해서 결국 최근에 4명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년 전쯤에 비슷한 수법으로 호들갑을 떨던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청주간첩단)' 사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지하조직원으로 지목받았던 사람들이 '북한 간첩인 리광진을 접촉했다'며 대대적인 공포 분위기 조성이 있었다.('리광진'은 최근 사건에도 겹치기 출연 중인 북한 간첩이다.) 그렇게 구속됐던 사람들은 '간첩과 접촉했다는 사진과 동영상이 국정원에 의해 편집되거나 위변조됐다'고 반박했다. 결국 수사기관이 입증을 못하면서 관련자들은 모두 석방된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에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서 무시무시한 지하조직의 핵심 간부로 지목된 사람 중 하나는 현재로서는 사회운동에서 멀어져 있는 말기암 환자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영장도 없이 미행하고, 초등학생 자녀의 일기장을 뒤지는 등 반인권적인 수사를 진행해 왔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결국, 이번에도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과장되거나 조작된 사건이 아니냐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안기관이 국민을 속여 온 무수한 역사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서 윤석열 정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반대파들을 위축시키며 불신과 균열을 일으켜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거나, 반전 평화를 위한 요구와 운동,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을 지지하는 모든 활동에 전부 '북한의 지령'이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한다. 나아가 다가오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서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또한, 내년 1월에 예정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도 막으려 한다.
국정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하면서 감시, 사찰, 공작, 조작을 벌여온 비밀 경찰기구로서 윤석열 정부에게는 너무 매력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집권 초부터 국정원의 힘을 강화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해 왔다.
정권 초부터 시작된 공안정국 준비 작업
먼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인 이시원 검사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앉혔다. 국정원의 요직인 기조실장 자리에도 친윤 검사를 보냈다. 공안 조작 사건에서 프락치 노릇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 김순호를 경찰국장에 임명했다. 이를 통해서 검사나 검사 출신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실, 검찰, 국정원, 경찰을 수직계열화하며 고발, 수사, 기소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덧붙여서 윤석열 정부는 '방첩사'로 이름만 바꿔 군의 기무사를 부활시켰고, 국정원은 지난해 연말에 '사이버안보협력센터'를 개소했다. 곳곳에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공안정국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갈수록 야당과 반대 진영을 "종북 주사파"로 매도하는 발언들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서해 공무원 사건으로 문재인 청와대를 '종북'으로 낙인찍어 왔고, 무인기 파동 때는 군 장성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마저 '북한과 내통한 간첩'으로 몰았다. 이제는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고리 삼아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도 '종북' 낙인을 찍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에 북한과 연계된 지하조직이 있었다'며 대대적인 종북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주기적인 종북몰이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법이다.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제19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 등이 언급돼 있지만, 국가보안법은 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7조에서 이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보안법 7조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하거나, 또는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이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가입"하거나 "이런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7조로 인해 정부는 사상·표현의 자유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손쉽게 구속할 수 있다. 정부와 기득권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주장은 '반국가 단체 찬양·고무'라고, 조직과 활동은 '이적단체 구성·가입'이라고, 그런 내용의 책과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소지'로 옭아맬 수 있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그럴듯한 핑계였다. 사실 '내부의 적'을 치기 위해 '외부의 적'을 핑계 대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러시아의 스탈린 정권은 자신들의 정적을 숙청하면서 '제국주의의 첩자'로 몰았다. 193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은 국내의 노동운동가들을 '소련의 첩자'로 몰면서 공격했다.
북한의 위협이 주로 핑계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구속자 중 간첩죄인 3조 구속자가 별로 없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들마저도 대부분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구속자는 대부분 국내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한 노동자, 학생, 활동가들이었다.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의 구조
국가보안법 옹호자들은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보안법의 남용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종북몰이 광풍에 이용됐다. 그 절정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었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이 다시 약화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거나 구속된 사람의 수가 1/4 정도 줄어들었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개혁정부가 들어서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남북간 화해와 교류 정책을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도 약화한다.
그런데 보수우파가 다시 권력을 되찾아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남북간 대결을 추구하면서 다시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이 강화된다. 그리고 기존의 개혁정부에서 추진하던 남북 정부간 대화나 민간 차원의 교류 과정을 전부 다 국가보안법의 심판대로 올려서 '간첩과 이적행위'로 재해석하며 종북으로 몰아간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다시 여기저기서 수많은 사람을 찔러대고 있다. 얼마 전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국가보안법 7조를 옹호하며 '이적표현물'을 "아동성착취물"의 해악과 비교했다. 무시무시한 간첩단이 적발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별 게 없으면 나중에 서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책을 압수해 '이적표현물 소지'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최근에 국정원이 민주노총 전 간부에게서 압수한 것은 소설책 <녹슬은 해방구>였다. 결국 우리는 지금의 종북몰이 마녀사냥과 공안정국 조성 시도에 맞서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의 핵심적인 무기가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도 반대해야 한다. 국회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가진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힘을 합쳐서 이미 발의 돼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재확인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공안 탄압과 종북몰이가 가능한 구조를 없애지 못하면, 언제든지 그것은 반복될 것이다. 2013년에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댓글 조작을 덮기 위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터트렸을 때도 초기에는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부의 의도와 조작을 의심했다. 하지만, 국정원과 주류언론들이 피의사실을 계속 흘리며 '종북몰이'를 더욱 본격화하자 하나둘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까지도 '종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급속히 '손절'하기 시작했고, 진중권 같은 지식인들은 오히려 앞장서 종북몰이에 함께했다. 결국 공안정국은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로 나아갔고,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오류가 반복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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