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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18 1.15~7.5

by 이성근 2019. 3. 5.

   

경향 18.1.15 전쟁과 평화

시사인 53918.1.16 민주주의가 밥이 되려면

한겨레 18. 1.18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년

한겨레 18.1.30 결혼이라는 이름의 시장?

PD저널 18. 1.31 '손석희 없는 JTBC', 누가 원하나

시사인 18.2.8 종교, 악의 평범성

한겨레 18.2.27 젊은이들, 급진화하다

시사인 제54418.3.1 블록체인과 경제학의 대화

경향 18.3.22 소모적 정원경쟁

경향 18.4.5 에너지전환과 거대자본

경향 18.5.7 정치와 진정성

한겨레 18.5.17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

한겨레 18.5.22 반란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대한민국

경향 18.6.25 최저임금과 종부세

시사인 56318.6.29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보면

한겨레 18.7.5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다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혐오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내가 시대변화에 둔감한 순진한 로맨티시스트여서일까,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는데 알지 못한 채 혐오한다는 말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다만 인종주의 언행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다 돌아온 나는 한국 땅을 찾은 난민들을 보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민 처지가 된 것도 엄청난 불행인데 참으로 마지막 운도 없구나. 유럽이나 캐나다가 아닌 한국 땅에 오다니! 난민 인정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2% 수준으로 난민이 난민으로 인정받는신의 일로 여겨지는 나라, 기적처럼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노동허가제가 아닌 고용허가제여서 노동권이 없고 고용주에게 간택되어야겨우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곳, 하필이면 수많은 나라 중에 여기 왔을까라고.

 

그러면서 내가 난민 자격심사를 받았던 곳은 프랑스 외무부 산하 난민과 무국적자를 위한 보호실’(OFPRA)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법무부 산하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신분,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난민신청자 출신국의 정황을 가까이 알 수 있고 신청자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도 외무부에서 관장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다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 법무부 관할로 둔 것은 난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보다 통제하고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등 정부의 난민정책을 주로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내 생각은 짧은 것이었다. 제주도에 온 예멘 출신 난민들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혐오감정 표현에 나는 격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떼로 쳐들어온 성폭력 범죄집단으로 비치기까지 했다. 독일처럼 한 해에 8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오스트리아처럼 내국인 출생자 수보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인원수가 더 많다는 이유로 극우 정치세력에게 정체성 공포의 빌미를 주는 정도가 아닌 고작 500여명.

 

그런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제기된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증,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개정청원 요구에는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댓글 중에는 차마 옮길 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내 귓가에는 벌써 인권 감성팔이, 집어치워!” “네 집이나 내줘!” 따위의 소리가 들린다. 이 거대한 혐오감정은 어디서 분출된 것일까?

 

이 공격성에 짓눌린 탓일까. 일부 언론의 방어적 보도는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일이었을까. “난민이라면서 스마트폰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가족, 친지와 소통할 길이 그뿐이라고, “왜 남성이 훨씬 더 많으냐?”는 질문에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가족 중에 먼저 떠나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들 대신 답변해준 기사, 전 재산이 8만원뿐인 난민이 672천원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미담 기사, 2013년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난민 범죄행위가 없었고 주변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으며 오히려 서글픔이 밀려왔던 것은.

 

여기서 수오지심과 함께 측은지심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은 맹자님의 말씀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 위대한 영()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라는 한 인디언 부족의 기도문에 담긴 역지사지를 본받아 예멘인들의 자리에서 생각해보라고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부부 사이도 서로 설득되지 않아서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 평생 살아가는데 남을 설득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다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혐오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내가 시대변화에 둔감한 순진한 로맨티시스트여서일까,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는데 알지 못한 채 혐오한다는 말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다만 인종주의 언행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나와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대상을 차별, 배제, 억압하고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 혐오의 단계로 넘어가는 게 순서일 듯싶은데, 어떻게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혐오하는 것일까.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3년 전 세살짜리 시리아 어린이 알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 죽은 채 떠밀려온 사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질 수도 있었던 측은지심은 가령 그의 아버지, 그의 아저씨가 제주도 난민으로 왔을 때엔 혐오감정으로 돌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화면으로 만나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가. 마치 <레미제라블>을 관람할 때 바리케이드의 소년 가브로슈에겐 환호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불량(이라고 규정된)소년들은 혐오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들을 향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지적했듯이,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가족이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는 지디피(GDP) 인종주의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신주의와 인종주의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교묘히 결합된, 우리보다 지디피가 높은 나라 사람들에겐 받는 것 없이 올려다보고 낮은 나라 사람들에겐 주는 것 없이 내려다보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여기에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강력히 결합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또 믿고 싶어 하는 얘기만 들으려 하는 확증 편향도 있겠는데, 그래도 이것들만으로 이 폭발적으로 증오감정을 유발시킨 공포와 불안의 정체, 특히 그 공격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나머지 부분은 혹시 우리가 손해 보는 일로, 약자·패배자의 몫인 양 서로 다투어 내팽개친 친절과 환대, 배려와 연대 대신에 채운, 공격성을 띤 힘에의 의지 아닐까. 오랫동안 국가폭력에 익숙해진 우리는 오로지 물적 조건으로 힘의 크기가 규정되는 사회에서 맘몬의 숭배자, 힘의 숭배자가 되었다. 폭력 행사는 강자, 가진 자의 권리였다. 억울하게 당한 자가 법에 호소해보았자, 최근까지 양승태 대법원이 보여주었듯이 법이란 크로폿킨의 말 그대로 힘센 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에게 행사하고 은 당한 만큼 에게 풀어내는 방식이 자리 잡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성소수자들 사이의 연대가 거의 일방적으로만 유효하듯이, 젠더 폭력의 오랜 피해자인 여성들 대부분이 더 약한 소수자인 난민들에게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더 공격적인 혐오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난민은 자기가 속했던 국가와 사회를 떠나야 하고 가족, 친지, 동료, 이웃과도 멀어져야 하는, 그러면서 물설고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고 가슴 먹먹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언제나 소수자이고 약자인 그들에게 잠시 편견과 혐오감정을 내려놓고 눈길 한번 주면 안 될까. 감성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어서 사소한 냉대와 불친절을 당해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게 인간이지만, 한순간의 눈길 교환만으로도 상대방이 겪은 삶의 층위를 느낄 수 있고, 그 깊이와 폭에 대한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뢰를 느낄 수 있는 게 인간이기에.

 

나의 과거 모습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당신들, 부디 꿋꿋하게 살아내시길. 비록 소수지만 오늘도 제주도에서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18.7.5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보면

최근 소득분배 악화지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계기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도 종합 점검하자.

지난달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감소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점검회의를 소집해 저소득층의 소득분배 악화는 아픈 지점이라 말하고 우리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대화해보고 싶다라며 보완책을 주문했다.

 

이에 더해 나는 복지정책도 종합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이번 수치를 보면 특히 하위 계층 비근로 가구의 소득 감소가 눈에 띈다. 여기에는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 가구주가 노인인 경우가 다수이다.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복지정책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말한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전환점으로 복지가 늘고 있다지만 정작 우리는 느끼기 어렵다. 무상보육을 보자. 예전에도 가난한 집은 보육료를 지원받았다. 2009년부터 전액 지원 대상이 하위 50%까지 확대되고 2013년에는 전체 계층으로 보편화되었다. 보육복지가 모든 아이에게 제공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가난한 가구의 처지에서는 질문이 남는다.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생긴 거지?

 

무상급식도 그렇다. 저소득 가구 학생들은 이전에도 급식비를 전액 지원받았다. 2009년 기준 전체 학생의 약 10%가 이에 해당되었다. 무상급식은 한국에서 보편복지 바람을 일으키는 기폭제 구실까지 했으니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가난한 아이의 눈에선 질문이 남을 수 있다. ‘나에게는 원래 무상급식이었는데.’

 

빈곤 노인의 경우에는 역진적 후퇴가 발생했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기 이전에 빈곤 노인을 대상으로 월 3~5만원의 경로연금이 존재했다. 당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은 생계급여와 별도로 경로연금을 받았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경로연금이 폐지되었고, 이후 기초노령연금만큼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조치가 뒤따랐다. 이러한 방식은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뀌고 금액이 인상돼도 동일하기에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으로 불린다. 이제 빈곤 노인은 기초연금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전에 받던 경로연금마저 박탈당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공공부조 복지는 강화되었을까? 2013~2017년 사회복지 예산의 평균 증가율은 7.7%이다. 반면 국민기초생활보장 부문 예산 증가율은 5.2%로 이보다 낮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슷한 기조이다. 올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작년 추경예산 대비 1.7% 증가에 그친다. 같은 기준으로 보건복지부 전체 지출은 7.9% 증가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생계급여 수준이 중위소득의 30% 이상으로 명시돼 있는데, 정부는 현행 30%를 인상할 계획을 지니고 있지 않다. 가난한 사람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450만명이 최저생계비 아래에서 살고 있다

대신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 밖에 있는 비수급 빈곤층에 주목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공공부조 사각지대가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이 9.3%, 즉 전체 국민 중 약 450만명이 최저생계비 아래에서 살고 있다. 올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63만명이니 거의 300만명이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사각지대를 얼마나 개선하려는 걸까? 3개년 계획을 보면, 복지부는 2020년까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252만명으로 약 90만명 늘릴 예정이다. 언뜻 수치는 커 보이지만 알맹이는 부실하다. 공공부조의 핵심인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규 적용자는 7만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83만명은 주거급여만 받는 사람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주거급여에서만 폐지되고 핵심 급여인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계속 유지된 결과이다.

 

결국 지난 몇 년 복지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심지어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다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최근 소득분배 악화 지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계기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도 종합 점검하자./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시사인 56318.6.29

 

최저임금과 종부세

지난 22재정개혁 특별위원회공평과세 실현을 위한 종합부동산세제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에 이어 또 한번 논란이 일어날 터였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 노동자 552만명이 대상이지만 종부세는 최상위 자산가(2016년 기준 274000)를 겨냥한다. 대기업 총수는 물론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상당수, 그리고 고위직 언론인, 경제학자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될 테니 훨씬 더 시끄러울 것이 뻔했다. 그런데 의외로 잠잠하다. 한마디로 생색만 낼 테니 부자 여러분 안심하세요가 위원회 발표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뭐가 두려운지 기획재정부는 다음 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가장 강력한 제3(공정시장가액의 현실화와 동시에 세율 인상)을 따르더라도 30억원 주택 소유자가 내년에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174만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다(20억원짜리는 약 55만원 인상). 10년 전인 2008923일 기재부는 20억원짜리 주택의 종부세를 약 1000만원(800~1300만원) 깎아줬다. 주먹구구로 계산해도 10년 동안 1억원 넘는 혜택을 봤으니 이 정도 증세는 눈감아 달라는 얘기다. 30% 지지율의 대통령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겨우 만든 종부세는 80% 지지율의 대통령하에서도 여전히 빈사 상태다.

 

최저임금 정책도 통상임금의 정의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까지 한발 물러섰다. 주지하다시피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중 하나이다. 시장에서의 분배를 개선해서, 중하층의 소비를 늘리려는 이 정책은 여간해선 실행하기 어렵다. 정부가 함부로 가격에 손을 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또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기실 정부의 개입 수준은 시장을 구성하는 집단 간의 역관계에 달려 있다. 경제학 교과 안에서,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시장은 상이한 생산요소 소유자들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에는 수많은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노동자보다 강력하고, 건물주는 세입자를 좌지우지하며 재벌은 하청기업을 짓누를 수 있다. 임금, 임대료, 하청단가와 같은 가격은 이런 세력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만일 우리 사회의 약자 집단이 힘을 기른다면 시장에서의 분배는 지금보다 더 평등해질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북유럽에서는 최저임금 제도 자체가 없었고,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영세기업들은 하청단가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가격이 매번의 사투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범위의 규범 안에서 합의된다면 사회는 안정될 테고 이럴 때의 가격이야말로 균형가격이라는 이름에 값한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노동자, 세입자, 하청기업들의 세력화를 도와야 한다. 노동조합 강화나 적용률 확대,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 제정과 조직화 지원, 공동 하청단가 교섭 등이 그런 제도이다. 루스벨트 뉴딜개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최저임금 정책의 부담을 줄이려면 사회 집단의 힘을 강화하면 된다.

 

반면 종부세는 2016년 주택 소유자 1331만명 중 2.1%에만 부과된 세금이다. 위의 얘기들이 유량(flow)의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였다면 종부세는 저량(stock)의 가격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한 정책이다.

 

한국의 부동산 자산 총액은 20161713조원이며 2006년에 비해 75.4% 올랐다. 부동산 수익률이 여느 나라처럼 5%라면 여기에서만 500조원의 자산소득이 발생하는 것, 즉 상당부분 누군가의 월급에서 지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2015년 기준 보유세 부담률은 0.15%OECD 13개국 평균 0.33%의 절반도 안되며 캐나다의 0.87%와는 너무나 멀다. 즉 우리의 세금제도는 자산불평등을 한껏 부추기고 있다. 돈만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칠 수 있는데 왜 골치 아프고 위험한 혁신에 힘을 쏟으랴. 너도 나도 부동산에 목을 매단다.

 

그 결과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불평등한(순자산/소득, 피케티의 β에 비춰) 나라가 됐고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물론 종부세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소득불평등 문제에서 최저임금제도가 그러했듯이 종부세(또는 국토보유세)는 자산 불평등 해소의 첫걸음이다.

 

지지율 80%의 대통령도 못한다면 지난 20여년간의 이 압축 불평등경향을 역전시킬 수 있는 정권이 어디 또 있으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자산 불평등의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종부세 트라우마와 같은 역사 해석의 오류, 그리고 재선 가능성과 같은 단기 정치적 이익이 이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는 건 혹시 아닐까정태인 | 독립연구자·경제학 경향 / 18.6.25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반란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대한민국

검투사들은, 비록 위험천만하긴 하지만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휴식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기에 집단적 저항이라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일반적 노예의 삶은 전혀 여유가 없었다. 어떤 다른 삶을 꿈꿀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노예들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했던 것은 여유가 전혀 없는 삶과 개인적 해결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균적 대한민국 선남선녀에게 강요되는 삶이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집단적 저항은 아닐까?

 

나는 어린 시절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중해 지역 고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한 가지 미스터리에 부딪치곤 했다. 누가 봐도 고대 이 지역 이른바 선진 사회들의 주된 생산자층은 바로 노예들이었다. 2천년 전의 이탈리아반도에서 인구의 4할 정도는 노예였으며, 2400년 전의 전성기 아테네에서는 시민 한 가구당 평균 3~4명의 노예가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전시에 전사가 돼야 할 시민은 노동과 운동, 정치참여 등에서 균형을 맞춘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반면, 노예의 몫은 그저 쉴 틈 없는 노동뿐이었다. 그리스 같으면 주인이 노예를 마음대로 죽일 수야 없었지만, 사적으로 벌을 줄 수는 있었다. 노예에게는 인신의 자유도 자신의 재산에 대한 완전한 처분권도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인구 중의 비중이 크며 이처럼 족쇄 이외에는 잃을 것도 그다지 없는 사람들이 반란을 거의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어린 나로서는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였다. 그리스 같으면 일종의 국가적 농노제를 운용했던 스파르타에서는 한 차례의 대규모 농노 반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외에는 전시 등 비상시의 집단적 도주 사건은 일어나도 반란은 찾기 힘들었다.

로마의 역사에서는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기원전 73~71) 이외에는 약 두 차례의 커다란 노예 봉기가 기원전 2~1세기에 발생하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외에는 노예들의 주된 저항 형태는 개별적인 도주나 소극적인 태업 같은 것이었다. 상당수가 무기를 들고 로마인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전쟁 포로 출신의 노예들은 왜 이토록 집단적인 저항에 소심했을까? 정말 기괴하고 신기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이 미스터리를, 세계의 사회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하나는 집단저항 의지를 꺾는 개인적 해결에 대한 기대였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이미 시장경제가 발달한 만큼 노예가 주인과 개인적으로 계약하여 약 20~30년 동안 부지런히 노동·저축하여 결국 속량(贖良)에 필요한 금전을 모으는 것은 특히 고숙련 노예에게는 충분히 가능했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스스로 억제해 가면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약속 하나 믿고 수년간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사실 동격이었다.

 

또 한 가지는 연대를 어렵게 하는 분산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34376개의 편의점에서 한 점포당 2~3명씩 일하는 알바들의 단결·연대·투쟁이 어렵듯이, 특정 가구에 몇 사람씩 예속돼 있었던 노예들이 서로 간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가 결국 7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집단도주와 봉기에 성공한 렌툴루스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훈련소는 수백명의 검투사를 소유했던 고대 로마의 대기업격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그나마 피억압자들 사이의 연대가 더 쉬웠다.

 

검투사들이 노예해방 투쟁의 전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었다. 오늘날 대기업 고숙련 노동자와도, 연예인들과도 비교될 수 있었던 검투사들은, 비록 위험천만하긴 하지만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현대의 이종격투기 선수들처럼 멋진 싸움을 보여 가학적인 오락에 익숙해진 군중들의 신경을 자극해야 했던 그들은 영양가 좋은 식사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정기적 치료와 안마까지 받았고 또 충분한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휴식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기에 집단적 저항이라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일반적 노예의 삶은 전혀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일만 하고, 최소한의 영양을 섭취하고, 자고, 드물게는 일부 종교적 의례에 참여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다른 삶을 꿈꿀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가? ‘여유라는 말은 사실 꽤나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한다. 일차적으로는 집단저항 등 대안적 삶을 누군가와 함께 꿈꾸자면 일단 시간적 여유부터 필요하다. 대한민국 평균적 노동자는 통계상 연간 2124시간 동안 일하는데 이는 1929년의 독일 수준(2128시간)이나 1938년의 스웨덴 수준(2131시간)과 엇비슷하다. ,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에 있어서 유럽과 한국 사이의 시차는 약 80~90년 정도 된다. 한데 비록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해도 80~90년 전의 독일이나 스웨덴 노동자들은 오늘날 한국보다 훨씬 더 조직력·투쟁력이 강한 조합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최악 수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불안정, 근로조건 악화를 겪고 있지만,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훨씬 더 편안하게 노동해도 되는 다른 사회에 비해 차라리 규모상 미약하다고 할 정도다. 2015년에 노동자 1천명당 파업으로 인해 손실된 일수(日數)는 한국에서는 23일이었지만 전형적인 복지국가인 핀란드에서는 52, 캐나다에서는 아예 119일이었다. 보수언론들은 강경노조타령을 늘어놓지만, 실제로 한국 노동자들이 당하는 초과착취에 비하면 한국 노조들의 투쟁 경력은 차라리 미흡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데 여유를 이야기하자면 시간적 여유 이외에 어느 정도의 정신적 여유도 집단저항에 필요하다. 그저 생계유지와 쌓인 가계빚 이자 갚기, 그리고 자식의 교육비를 대느라고 정신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만을 무기한 반복할 확률도 높다.

 

한국만큼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드물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의 23.7%가 저임금에 시달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6% 정도다.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아예 7% 정도밖에 안 된다. 저임금으로 인해서 월세와 아이 교육비를 다 조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임금이 열악한 중소기업 종사자들 중에는 약 41%투잡족이다. 퇴근하고 나서도 또 알바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간신히 경제적 생존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집단저항씩이나 꿈꾸는 건 쉽겠는가?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노예들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했던 것은 여유가 전혀 없는 삶과 개인적 해결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균적 대한민국 선남선녀에게 강요되는 삶이란 과연 그리스나 로마 노예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 싶다.

 

여유의 박탈은, 이미 영어까지 배워야 하는 유치원 시절쯤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하등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험들은 동시에 개인적 해결에의 기대감도 심어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을 시작한 금수저 자녀들이 어차피 이기게 돼 있는, 그 결과가 예정된 불공평 경쟁이라는 점을 이성적으로 인지해도, 시험공화국의 각종 통념들이 계속해서 흙수저들의 현대판 장원급제의 꿈들을 키우는 것이다.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개인적 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워도, 많은 한국인들이 전국적으로 편의점보다 훨씬 더 많은 교회(55767)나 성당(1706), 사찰(965)을 찾아가 초자연적 힘에게 기적이라도 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집단적 저항은 아닐까? 지금 독일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보다 1년에 700여 시간을 덜 일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의 꾸준한 노동투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민 가지 않아도 캐나다만큼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대우를 받는 삶을 살고 싶다면, 여유없고 정신없는 삶이라 해도 그래도 캐나다 노동자들만큼 파업의 무기를 자주 들어야 할 것이다. 18.5.22

 

정치와 진정성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자 제1야당은 이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하며, 국회에서 비준할 수 없다면서 어깃장을 놓는다. 이른바 보수계의 지도인사라는 사람들도 덩달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선언 발표 직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88.4%가 이번 선언이 잘됐다고 평가했고, ‘잘못되었다는 평가는 7.7%에 불과했다. 또 보수 지지층 81.6%도 판문점선언을 긍정 평가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의 진정성에는 신뢰한다’ 64.5%, ‘신뢰 못한다’ 29.8%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번 선언에 보여준 국민의 높은 신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진정성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문제 대상은 정치다. 평화주의자로서 나치를 피해 영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했던 빈 출신의 유대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다. 그는 프랑스혁명 때 민중의 증오를 한몸에 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담은 전기적 소설을 썼다. 이 작품 속에 진정성과 정치가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유대인대량학살범으로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악의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한 여성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도 진정성은 정치적 덕목에 결코 속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권모술수의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정치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다고 생각되는 진정성은 그러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진정성은 우선 말한 내용 자체의 진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대신에 말하는 주체의 인격적인 통일성을 전제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의 진정성이 평가되기 때문에 진정성은 의무나 책임 같은 문제를 당연히 제기하게 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율에 이어 거짓은 곧 영혼의 죽음이며 진리의 근거는 신밖에 없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은 기독교문화권의 진정성 이해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올려 놓은 근대 계몽사상은 진정성을 이성적 존재의 의무로 보았다. 특히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을 요청했던 칸트의 실천이성은 이 같은 진정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했다. 정신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도 알고 선악의 구분도 한다<논어> 속의 가르침이 있다. 인간의 본래적 속성인 수치심에 의거해서 사회관계를 파악한 유교문화권의 진정성에 대한 대표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성의 이러한 규범적인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 사상적 흐름도 있다. 이런 흐름은 진정성의 과도한 정당화는 단지 진정성으로 포장된 힘의 관계를 숨기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못하는 자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며 언어를 매개로 해서 굳어진 관습에 따라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의무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비슷하게 노자의 무명(無名)사상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 속에 갇혀 있는 시비선악의 판단이나 진정성도 사실은 사회적 명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이나 지적이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치문화 현실을 보다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도 종종 받는다. 기성정치가 표방했던 진정성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를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소용돌이 속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은 더욱 심해졌으며, 살 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주민과 난민의 긴 행렬은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불안과 공포, 선동과 증오가 정치의 주요내용을 채우고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공약을 내세운 극우정당들의 약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차별 테러 등이 지구촌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지킬 수 있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확신을 지닌 많은 투쟁이 지구적 연대 속에서 벌어지고 있고, 깨어난 세계시민들의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지적 노력 역시 활발하다. 진정성에 의거한 정치의 복원을 위한 기획은 그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우리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치에 건 기대나 희망보다는 기피와 멸시, 아니면 체념과 냉소가 지배한 분단체제에서 정치의 진정성이 숨쉴 공간이 과연 있느냐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본다. 적어도 ‘4·19의거’(1960), ‘5·18민주화운동’(1980), ‘6월항쟁’(1987) 그리고 촛불혁명이 그런 체험공간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내가 우리 땅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건은 4·19의거였고 나머지는 모두 먼 외국땅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특히 눈여겨본 우리의 정치공간은 촛불혁명과 이를 뒤따른 판문점선언이다. 부패와 무능한 정권을 주권자가 평화적인 수단으로 몰아내어 정치에 있어서 진정성을 회복하고, 전쟁의 먹구름도 걷어내면서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밝은 전망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정치적인 것의 함의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70여년을 증오와 불신 속에서 시달려왔던 남과 북이 과연 서로 간에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여전히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김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서 나온, 진정성을 담은 발언이라고 판단한다.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문 대통령도 상대방의 이러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 판문점선언에 서명했다고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한 비방이 서로 오갔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도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상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차세계대전의 재앙을 체험한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정열,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을 꼽았다. 나는 여기에 진정성을 추가하고 싶다. 정치와 가장 인연이 먼 덕목일 수도 있는 진정성을 내가 꼽는 이유는 평화와 번영을 분명히 약속할 수 있는 한반도 땅에 정치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랫동안 불신과 증오, 실망과 냉소를 심어왔기 때문이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경향 18.5.7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

국가의 물리력을 장악한 지배세력은 공산세계의 대립물로 절대 긍정화한 자유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허구 위에서 비판세력을 친북좌경,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 왔다. 그리하여 이승만의 자유당에 담겼고 박정희, 전두환을 거쳐 오늘의 자유한국당에 계속 남아 있는 자유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세 슬로건 중 하나인 자유는 예속보다 더 심한 반어에 속했다.

 

폴 엘뤼아르는 자유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 자유여라고. 그에게 가슴 벅차게 다가온 자유, 그것이 우리 내면에서도 공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유를 빼앗겼다. 우리의 비극은 자유를 오랜 동안 빼앗겼는데 그 의미가 훼손된 탓에 우리 또한 자유를 외면한 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자유가 우리를 배반했다면 우리 또한 자유를 버린 것이다. 최근 사회 각계에서 고발되고 있는 성폭행을 비롯하여 힘센 자들, 가진 자들의 갑질행태는 지금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가 그 찬란한 의미와 함께 사라졌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를 지향하고 자기형성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게 인간이라면, 우리는 먼저 각자 몸이 거하는 곳, 집과 배움터, 일터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자유가 몸의 자유’, 당신의 몸은 당신이 지배한다”(habeas corpus)에서 출발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1679년 영국에서 법제화된 인신보호령이 오늘날까지 구속당한 사람이 그 강제행위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해 법원이 판단해줄 것을 요청하는 구속적부심의 전거가 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이 땅은 이 기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동토였다.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몸의 자유는커녕 속절없이 죽임을 당했고 수십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그런데 기막힌 역설은 그렇게 반세기 동안 자유를 잔혹하게 짓밟은 명분이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데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5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로 규정한 자신을 규탄하는 민중당 당원들의 피켓시위를 보고 창원에 여기 빨갱이들이 많다고 발언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더 일찍 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813일치 <동아일보>는 당시 남한을 지배했던 미 군정청의 여론국이 38선 이남 주민 8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는데, 문항 중 귀하는 어느 것을 찬성합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자본주의 1189(14%) 사회주의 6037(70%) 공산주의 574(7%) 모릅니다 653(8%).(김기협, <해방일기> 4, 435)

 

당시 38선 이남의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주의에 관해 잘 알고 있어서 7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막연하게나마 평등의 가치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사회주의에서 찾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아직 새로운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교육과 언론을 통해 관철되기 이전이기에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온전히 적용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그 의식들은 용납될 수 없었고 킬링 필드는 예정되어 있었다. 국가의 물리력을 장악한 지배세력은 공산세계의 대립물로 절대 긍정화한 자유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허구 위에서 비판세력을 친북좌경,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이승만의 자유당에 담겼고 박정희, 전두환을 거쳐 오늘의 자유한국당에 계속 남아 있는 자유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세 슬로건 중 하나인 자유는 예속보다 더 심한 반어에 속했다. ‘예속이 당하는 자의 수동적 표현이라면, 그들의 자유는 억압을 위한 능동적 기제였다.

 

그렇게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우리는 우리를 배반한 자유를 말하기조차 기피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위에 소개한 엘뤼아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한국의 한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외치는 대신 민주주의를 호명했던 것은.

 

우리가 자유를 외면한 것은 산업화 과정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자유세계의 학살하고 고문하는 자유가 노동을 탄압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자유방임주의, 신자유주의의 자유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령 박근혜에게 모든 규제가 암덩어리이고 쳐부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가진 자들에게 사유재산의 무한 자유, 이윤추구의 무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우리는 다시 공공성, 공익, 공개념과 충돌하는 그 자유와 맞서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속 민주화를 말할 뿐 자유를 말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화 담론을 경시하자는 게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지나치게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을,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되지 않는 사회 민주화란 빈 허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멀리하게 되면서 사회 민주화를 통해 자유로운 시민을 형성한다는,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한 것인지 모른다.

 

시민사회운동에서도 자유는 민주, 정의나 평등에 비해 가장 먼 언어였고 운동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주체화조차 조직 보위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 어디에서도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나오미 울프의 말은 적용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조차 대부분의 조합원은 주체이기보다는 동원 대상이었고 조직의 우산 아래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는 수혜자에 머물렀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자유의 가치는 우리가 계속 외면해도 될 만큼 하찮은 게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남북관계 반전의 전망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자유의 참뜻을 되새기고 되찾아야 한다. 근대 공화국의 보편적 개념 규정이 자유로운 시민들이(주체), 공익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로서(목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수단) 국가라고 할 때, ‘자유로운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주체로 서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의 자유가 존중될 때 남의 자유도 존중하게 된다고 할 때, 우선 당신의 몸은 당신이 지배한다는 명제가 우리 몸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살아 꿈틀대도록 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더욱 확산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배움터인 각급 학교에서 시민교육과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들, 서지현 검사들, 오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선 대한항공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아닌 힘센 자, 가진 자가 그들의 몸을 지배했고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멈춰야 한다. 배움터에서는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일터에서 당한 갑질을 자신보다 약한 이나 에게 을질을 하거나 가족에게 푸는 걸 멈춰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파편화되어 차별에 찬성하면서 가슴속에 화를 품고 살아가는 사회, 가진 자, 힘센 자의 폭력에 맞서기보다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에 우리가 오랜 동안 빼앗겼고 버렸던 자유의 깃발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각 개인의 자유로운 주체화와 사회 민주화는 줄탁동시줄탁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병아리가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 것이 이고, 어미 닭이 바깥에서 알을 쪼아 새끼의 부화를 도와주는 것이 이라고 할 때, 개인의 주체화는 ’, 사회 민주화는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병아리가 껍데기 안쪽을 쪼는 이 어미 닭의 에 우선한다는 점을 구태여 덧붙인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18.5.17

 

에너지전환과 거대자본

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경향 18.4.5

 

소모적 정원경쟁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오랫동안 숙성된 적폐의 청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청산의 봄을 맞는 이 길목에 우리는 또 다른 폐단이 쌓이고 있지는 않는가도 짚어봐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정원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유독 아파트를 선호하는 독특한 주거문화에서는 조금 의아한 현상이다. 향후 주거공간의 선호도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아파트로 상징되는 부동산 불패신화와 대도시에 집중된 국가정책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어찌되었건 시민들이 더 이상 회색도시가 아닌 녹색 공간을, 특히 양질의 녹지공간을 원하는 변화는 확실한 듯하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틈타 개인의 여가를 위한 사적 공간의 의미를 담는 정원이라는 이름이 그 본질적 의미를 벗어나 국가정원또는 관에서 주도하는 단순 계절 이벤트의 형태로 자리하며 정부부처 간, 정부와 시민단체 간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발 빠른 산림청은 일명 국가정원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혼란을 주고, 정부 예산에 목을 매는 지자체는 눈먼 세금을 달라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시민의 높은 관심을 빙자해 최근 모 지자체는 하천 둔치에 국가정원을 만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까지 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는 정성과 애정이 필요한데, 늘 범람하는 하천 둔치에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세금을 홍수에 흘려보내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미 4대강사업을 통해 하천 둔치에 조성한 각종 시설들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용을 치르면서 학습하지 않았던가?

 

과거 극소수 지배층이 수많은 하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권력과 부의 과시용으로 만들었던 정원과 드넓은 사냥터가 시민에게 돌아오면서 공원이 되었다. 이후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은 꾸준히 확대되었고 이들 공간은 최소한의 관리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형태를 바꾸어 나갔다. 최근 많은 예산을 들여 공원 일부 또는 전체를 화려하게 꾸미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높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얼마 못 가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 바뀌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공원과 정원은 소유와 소비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구분된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사적 공간이 정원이며, 이 사적 공간이 공공을 위하게 되면 공원이 된다. 공적 비용으로 조성하는 정원은 많은 비용을 들인 공원을 만드는 것이기에 이름을 공원이 아닌 정원이라 쓴다고 해서 그 의미나 조성방법이 변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공간인 정원은 높은 유지관리비용을 전제하기에, 과거에도 현재도 공리주의적 접근이 아닌 오로지 소유자 개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소모적 정원경쟁은 매우 우려스럽다. 보편적 가치를 위해 세금으로 관리하는 공간이 많은 유지관리비용이 들 경우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게 된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정원 전시를 통해 주거환경 변화를 위한 정보와 감흥을 주는 이벤트 공간도 필요하지만, 집 주변에 편안하게 휴식할 공간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이벤트에 집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시행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고밀 주거지 주변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의 충분한 확보와 질적 개선이 우선되어야만 하는 시기이다.

 

순천만 정원이 서울의 올림픽공원이나 월드컵공원, 부산의 시민공원과 무엇이 다른가? 아파트가 캐슬로, 파크로 변하는 것은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 아파트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공원을 국가정원이라 이름 붙인다고 해서 정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원을 정원이라 부르는 것은 정부부처가 세금을 취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과거 정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민의 돈으로 현대판 권력자가 되려는 것인가?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경향 18.3.22

 

블록체인과 경제학의 대화

블록체인은 기존 시스템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들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아무런 신뢰 없이도 수학 프로그램만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비트코인 현상을 애써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젊은 논객이 암호화폐를 탈집중적인 새로운 사회로 가는 혁명 수단이라고 강조하고, 이어서 청년들이 당국의 암호화폐 규제를 부동산으로 한몫 챙긴 구세대의 공격이라고 비난하는 걸 보면서 달라졌다. “이게 도대체 뭐길래라는 심정으로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교수,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해서 일약 스타가 된 루비니 교수, 최근에는 점잖은 경제사가인 해럴드 교수까지 암호화폐 비판에 나섰다. 암호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유럽은행과 국제결제은행의 금융 감독기구 수장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학자들이 암호화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화폐의 일반적 기능을 지니지 못했고,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추론할 것이다. 무릇 화폐는 교환의 매개, 가치 척도, 그리고 가치 저장의 기능을 갖춰야 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일반 상품을 구입하기란 매우 어렵다. 몇백%씩 가치가 변동하는 어떤 존재를 가치의 척도로 사용할 순 없다. 현재는 오직 가치 저장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또한 높은 변동성 때문에 앞날이 밝지 않다.

 

블록체인이라는 분산 원장 기술은 획기적 발상이며 암호화폐는 천문학적 투자 자금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암호 장부를 만들어서 시간 순서대로 연결하면 장부 조작도, 해킹도 불가능하다. 누가 검증과 확인의 비용(현재의 암호화폐 발행=채굴은 상당한 인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무임승차 문제는 새 비트코인이라는 인센티브로 해결했는데 이 또한 천재적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확산에는 예외 없이 투기가 개입했으니 현재의 비이성적 열광을 그렇게 비난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술은 보안·투명성의 대가로 속도라는 효율성을 희생시켰다(이른바 확장성의 문제). 퍼블릭 블록체인은 성공할수록, 즉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블록의 크기를 늘리거나 샤딩 등의 대처 방안이 논의 중이지만 현실에서는 암호화폐 공동체가 분열하고 있으며 이미 700종에 이르는 코인들을 쉽사리 하나로 통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억제 요인의 강도에 따라 각 코인의 최적 규모가 결정될 것이고 결국 현재의 열풍도 사라질 것이다.

 

사실 비트코인 거래란 거래 당사자 장부에 잔고가 있는지, 송금 결과가 정확히 기록됐는지를 확인하는 데 불과하다.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도 주식의 컴퓨터 매매나 선물 거래처럼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적으로 계약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이들 비용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 비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안·투명성의 대가로 속도라는 효율성 희생시켜

대기업들, 그리고 정부가 앞다퉈 나서고 있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 즉 특정 개인이나 기관들만 활용하는 데이터 처리이다. 대기업이나 기관들은 자신의 전체 사업 중 일부를 블록체인 기술로 보완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은 사물 인터넷사업에서 해킹에 의한 시스템 마비를 방지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들이 동반 급락했다. 2018.1.11

 

블록체인은 여러모로 쓸데가 많은 기술이지만 과장은 금물이다. 예컨대 프로그램 경제(programmable economy)’에서 말하듯이 전 세계 경제를 하나의 컴퓨터 안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처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며 이 때문에 오히려 신뢰를 잃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블록체인은 기존 시스템(즉 중앙집중화한 신뢰받는 제3)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들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아무런 신뢰 없이도 수학 프로그램만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행동/실험 경제학은, 신뢰가 없어도 되는 사회란 환상이며 그 반대로 적절한 제도와 규범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과 경제학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시사인 제54418.3.1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젊은이들, 급진화하다

이들이 밀레니얼들이다.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경우가 많고 갚아야 할 학자 융자금이 엄청나다. 게다가 런던 집값이 천문학적이라서 병원까지 유료화되면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것이다. 어느 특정 조직에 가입해 의식화된 거라기보다는 부득불 생활형 좌파가 된 아이들이다.

밀레니얼들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젠더 불평등 등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의 밀레니얼들도 전혀 예외는 아니다. 한데 다수의 국내 진보 조직들은 1980년대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위계질서와 조직보위위주의 논리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학술세미나 참석차 잠깐 런던으로 갔다 온 일이 있었다. 다른 참석자들과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대학 건물로 돌아가려 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시위대의 구호를 자세히 들어보니 영국 공공의료체제를 무력화하여 은근슬쩍 사유화시키려는 움직임들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영국 현 우파 정권의 공공의료를 포함한 복지정책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고 시위자들의 공분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는데, 일단 첫눈에 놀란 것은 시위대의 연령대였다. 내 앞의 길을 막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였다. 나중에 대학에 도착하여 그쪽 친구들에게 확인해보니 그날 시위에 10대 후반들도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시위 열기가 대단히 반가웠는데, 한 현지 동료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더 재미있었다.

 

이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밀레니얼들이다.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경우가 많고 고등교육이 유료화된 시기에 대학에 다니느라 갚아야 할 학자 융자금이 엄청나다. 게다가 런던 집값이 천문학적이라서 병원까지 유료화되면 이들은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것이다. 어느 특정 조직에 가입해 의식화된 거라기보다는 부득불 생활형 좌파가 된 아이들이다.

 

물론 세대만으로 특정 연령집단의 대표적인 사고의 틀이나 행동패턴을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거주지부터 계급까지, 각종 변수들이 많다. 예컨대 최근까지 해마다 대다수의 실질소득이 계속 오르곤 해왔던, 유럽에서 경제적 상황이 가장 양호한 편에 속하는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젊은층의 급진화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투표 경향은 대체로 그 부모 세대와 차이가 없다. 반대로 신자유주의로부터 훨씬 더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영국의 경우, 18~24투표 초년생들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노동당의 코빈을 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부상했다. 계급 소속의 영향도 자명하다. 비교적 양극화가 덜 진행된 노르웨이라 해도, 이미 투표권이 있는 고교 3학년 학생들의 투표 경향은 투표자의 계급적 배경에 따라 분명하게 갈리곤 한다. 작년 총선에서 오슬로의 비교적 가난하고 이민자들이 많은 동부의 한 고교에서 40%의 재학생 투표자들이 적색당(공산당)을 찍는 신기록을 세웠지만, 부유한 학부모의 자녀만 다니는 소수의 사립고교의 경우는 적색당 지지율이 0%일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격차가 덜 큰 북구 사회라 해도 아이들은 대개 10대 중반쯤 되면 자신들의 계급적 소속과 이해관계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런데 상류·중상층을 제외한 산업화된 세계의 밀레니얼들의 상황과 성향을 분석해보면 중대한 세대적 특성들을 분명히 읽어낼 수 있다. 첫째, 밀레니얼들은 대개 평등 지향성이 강하며 수직적 관계를 대단히 불편하게 여긴다. 동성 결혼이나 대마초 합법화, 더 많은 이민에 보통 찬성하는 한편, 성추행을 비롯하여 불평등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 권리침해에 매우 민감하다.

 

둘째, 이전 세대보다 학력이 훨씬 좋은 밀레니얼들은, 신자유주의 광풍이 부는 지금 같은 시대에 이전 세대만큼 잘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밀레니얼들이 가장 급진적으로 보이는 샌더스 후보에게 몰린 근원적 이유는, 그들의 평생 실질임금이 부모 세대에 비해 20%나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데 동시에 미국의 밀레니얼들이 갖고 있는 학자금 융자, 즉 대학 시절에 진 부채의 총액은 약 37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한국 1년 국내총생산의 약 4분의 1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다. 대다수의 밀레니얼들이 평생 저임금으로 살면서 부채 상환에 허덕이며 내 집 마련에 커다란 어려움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세대가 급진화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셋째, 밀레니얼들은 더 이상 체제를 신뢰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 적대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아예 회의적이다. 프랑스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21%나 되고 이탈리아에서는 35%나 되는 상황, 즉 젊은이들이 빚이 많은데도 비정규직 직장을 얻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는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연구소가 재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20대의 과반수는 자본주의를 믿지 않으며 차라리 (재분배 경제와 완전고용 보장 등으로 이해되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영국에서 밀레니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1968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어서 2차대전 전후의 세계사상 두번째로 사회주의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가 됐다. 한데 1968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들은 이념형이라기보다는, 나의 런던 동료의 판단대로 생활형 좌파에 가깝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 어떤 바람직한 미래도 발견하지 못해서 자본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88만원 세대’, ‘3포세대’, ‘민달팽이 세대’(자기 껍질 없는 민달팽이처럼 자기 집이 없어 고시원이나 전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 등은 바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으로 미래를 빼앗긴 한국형 밀레니얼들이다. 저임금·()부채·불안정노동과 주택 마련·육아의 어려움,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제도권에 대한 불신을 한국 밀레니얼들이 해외 밀레니얼들과 그대로 공유한다. 흙수저보다 차라리 금수저들이 더 많이 가는 서울대의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도 79%나 되는 응답자들이 양극화 해소를 지향하는 반면, ‘경제 성장을 선호하는 쪽은 20%에 불과하다. ‘고용 안정화를 원하는 것이 78%라면 노동유연성 확대는 불과 21%. 구미권 젊은이들과의 차이라면 아직도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한국에 존재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잔인함을 약간 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 해체의 속도로 봐서는 이 차이도 머지않아 곧 상대화될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다수의 한국 밀레니얼들이 구미권과 달리 사회주의 내지 사민주의, 그렇지 않으면 급진적 진보 등을 표방하는 조직에 유입되지 않고 있는가? 물론 교육과 매체 등을 통해서 젊은이들에게도 전수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레드 콤플렉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훨씬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다 다수 젊은이들이 아예 연애할 여유도 없을 만큼 고강도의 학습과 아르바이트, 장시간 고난도 노동에 시달려 정치에 참여해볼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그건 다 맞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국내 진보 조직들의 사회·문화적 보수성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밀레니얼들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젠더 불평등 등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의 밀레니얼들도 전혀 예외는 아니다. 한데 다수의 국내 진보 조직들은 1980년대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위계질서와 조직보위위주의 논리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비밀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알바노조를 좌우했던 비선 조직에 대한 최근의 폭로를 보면 이런 경향들은 특정 이념성향과 거의 무관하다. ‘통일 제일주의도 아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나 자율주의 내지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조직도 그 안에서는 자율이나 사회적 민주주의와 전혀 무관한, 보스()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의 논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성추행 등과 같은 일상적 인권 문제에 무감각할 수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면 한국의 급진 진보운동부터 밀레니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환골탈태해야 한다. 급진 조직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페미니즘 등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상 밀레니얼들이 원하는 민주적이며 개방적인 사회주의의 모습을 그들에게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옳은 이론보다는 옳은 실천이다. 18.2.27

 

종교, 악의 평범성

대형 교회들의 세습은 종교가 구원 클럽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에 대한 순종의 이름으로 권력 독점을 신성화하는 종교는 권력의 탐욕과 마찬가지다.

10만명의 등록 교인이 있고 교회 연 예산이 350억원에 달한다는 한 대형 교회에서 원로 목사가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사건이 지난해 11월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에서 교회 세습이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닌데, 유독 이 교회의 부자 세습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은 그 교회가 지닌 다층적 권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아들 목사는 계속되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노골적 사유화인 세습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교회라는 서사를 반복 사용하며 세습이 사적 이득이 아닌 오직 신을 위한 일이라는 왜곡된 해석을 제시했다.

 

담임 목사 취임식의 정점은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는 안수식이었다. 이 안수 행위를 통해 세습 행위는 신성한종교 예식으로 전이된다. 그 사적 관계가 공적 관계로 전이되는 기이한 부자(父子)간의 예식은, 기독교를 아버지-하나님아들-예수로 구성되는 부자의 종교로 규정하는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제적인 해석과 맞닿는다. 하늘의 아버지(하나님)’아들(예수)’에게 모든 신성한 전권을 내려준 것처럼, 땅의 아버지목사가 아들목사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반()종교적 세습이 신성한 종교적 행위로 전이되는 세탁 과정이 이루어진다.

 

종교는 외딴섬에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순수하게 종교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종교의 구성원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한 사회를 이루는 모든 영역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종교는 그 종교가 위치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한 교회의 세습이라는 미시적 정황을 그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거시적 정황과 연계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세습 사건의 키워드는 권력 욕망, 비판적 사유의 부재, 물음표의 박탈, 종교의 사유화, 위계적 권위주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의 부재 등이다. 거시적 맥락에서 보자면, 한 대형 교회의 세습 사건은 한국 사회가 지닌 뿌리 깊고 다층적인 문제들의 축소판이다.

 

유대인 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끔찍한 반인륜 범죄에 가담한 아이히만이 매우 평범한 모습임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무수한 평범한 이들, 그 사람들이 거대한 악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나온다. 그래서 악이란 어떤 악마적 품성을 지닌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종교권력이 집중되어 기업화된 대형 교회 부자 세습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부자 목사, 그리고 그 사건에 아멘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너무나 평범한 이들일지 모른다. 다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와 라는 물음표다. 종교에 대한 왜곡된 이해, 위계주의적 가치관, 다층적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의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다.

 

종교 사유화와 혐오 정치에 비판적 저항으로 성숙해져야

대형 교회들의 세습은 종교가 구원 클럽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원을 담보로 해서 권력의 중심에 선 종교 지도자나 단체는 자신들의 이득과 권력 확장을 신 사랑으로 옷 입힌다. 정치 현장에서 국가 사랑이 개별인들의 권력 확장의 욕구를 가장할 때 쓰이는 것과 같다. 신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이름으로 권력 독점을 신성화하는 종교, 그리고 국가 사랑의 이름으로 권력 남용의 부당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치는 권력의 탐욕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맹목적 만이 아니라, 비판적 아니요들을 통해서 성숙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종교는 아멘만이 아니라, 종교의 사유화와 다양한 혐오 정치에 아니요라는 비판적 저항을 통해서만 성숙해질 수 있다. 정치와 종교라는 쌍둥이 권력집단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더욱 긴급하게 요청되는 시대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시사인 18.2.8

 

'손석희 없는 JTBC', 누가 원하나

'손석희 추락'에 신난 보수 언론...무차별 의혹 제기로 '신뢰받는 언론인' 흡집내기

손석희 JTBC 사장이 지난 24<뉴스룸> 오프닝에서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해명하고 있는 모습. JTBC

 

손석희 JTBC 사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며칠째 그에 대한 가십성 뉴스가 포털 사이트에 도배되고, 경쟁사인 TV조선채널A 등도 손 사장에 대한 이미지 흠집내기식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경찰에 출두하면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언론은 다시 집중보도를 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보도하든, 어떻게 보도하든 그것은 각 언론사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지만 미디어 소비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뉴스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어차피 수사가 시작된 사안인 만큼 조금만 기다리면 진위가 가려진다. 차량 동승자 여부와 누가 탔는지 등을 놓고 갖가지 추측성 보도를 내놓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상관없는 언론의 상업적 행위에 불과하다. 손 사장을 둘러싼 보도의 내용은 저급한 수준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이미지 타격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손 앵커는 이미 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 JTBC를 영향력 1위 언론사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비난과 질투, 공격은 일상이 됐다. 그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를 이끌며 사실상 KBS, MBC 공영방송사를 제치고 종합편성채널 JTBC를 대표적인 공정방송으로 재정립시켰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역사적 사건마다 국민 다수의 채널 선택은 공영방송이 아닌 JTBC였다. 특히 JTBC가 보도한 최순실의 태블릿 PC’는 국정농단의 스모킹 건 역할을 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실상 파면으로 이끌었다. 초대형 사건은 방송사에서 취재보다 보도가 더 어렵다는 것을 언론인들은 안다. 그만큼 외부 압력이 심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홍석현 당시 JTBC 회장에게 압력이 가했다는 것을 홍 전회장이 직접 고백하지 않았던가. 홍 전 회장에게 압력이 왔을 정도면 손 앵커에게도 분명히 압력과 회유가 들어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신뢰는 얻었지만 원한을 갖는 사람도 늘어났다.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도 시청자의 호응을 얻은 대표적인 보도다. 언론이 삼성공화국에서 숨죽이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번 손석희 사장 의혹을 두고 삼성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말을 듣지 않는 손석희를 흔들기 위해 이런 내용을 흘렸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이념 갈등이 심한 한국에선 뉴스 보도가 때로는 어느 한 쪽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보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손석희 사장에게 가해지고 있는 무차별 공격이 합리적인 것인지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해 보인다. 그동안 공영방송사 앵커를 거쳐 권력의 품으로 뛰어간 언론인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앵커를 자신의 사사로운 영달의 수단으로 삼았던 언론인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언론인의 역할을 오랫동안 묵묵히 수행했던 손석희 사장에게 너무 높은 도덕적 가치, 기준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손 사장이 받고 있는 의혹이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사적인 영역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일부 언론이 무차별적인 의혹 보도를 내놓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손석희 없는 JTBC가 조중동이나 또 다른 TV조선, 채널A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손석희 사장 이미지 타격에 혈안이 된 언론 보도를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앵커는 대중의 지지와 신뢰 속에서 비로소 존재감을 확인한다. 서지현 검사가 자신에게 가해진 성추행과 인사상 불이익을 하소연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손석희 사장이 앵커로 있는 JTBC 였다. 현직 검사가 자신의 법익조차 보호할 수 없어 방송사를 찾아 울먹이며 국민을 향해 검사 간부와 검찰을 향해 정의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손석희라는 믿을만한 앵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미투운동을 이끈 공이 서 검사에게 있다면, 서 검사가 믿고 용기를 낸 손석희 사장의 공헌도 있는 것이다.

 

아직 확실치 않은 과오로 손석희 사장이 언론인으로 쌓아온 공을 모두 가릴 수는 없다. 미디어의 본분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PD저널/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8. 1.31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결혼이라는 이름의 시장?

민족도 알고 보면 적대적인 모순 관계의 지주와 소작농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듯이, ‘자유연애도 전혀 사회경제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적했듯이 말이 자유연애지 실제로는 유산·유식층이 유유상종하여 끼리끼리 사귀는 게 일반적이었다.

국제적 매매혼뿐인가? 내국인 사이의 결혼도 자유연애의 이상과 거의 무관한 경제적 거래로 이루어지는 것이 이제 다반사다. 한국에는 2500개 이상의 결혼정보업체들이 현재 성업 중이며, 한국만큼 결혼업체를 통해서 결혼이 많이 이루어지는 사회도 드물다.

근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상상이라는 단어를 잘 쓴다. 대중적으로 옛날부터 있어온 것처럼 알려진 수많은 근대적 개념·제도들은, 사실 근대인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다. 가장 흔한 사례라면 상상의 공동체로 명명되는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이다. 아득한 고대부터 있어온 집단적 소속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조선시대 사대부와 노비들이 서로를 같은 민족에 속한 동등한 구성원이라고 정말로 여겼을까? 사실 조선인에 의해서 민족이라는 네이션(nation)의 일본식 번역어가 최초로 쓰인 것도 1898, 즉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민족뿐만 아니고 가족’·‘사회등도 마찬가지다.

 

민족’·‘사회와 함께 근대의 도래를 상징했던 또 하나의 신조어는 연애내지 자유연애였다. 부모나 문중이 자녀의 혼약을 맺어주었던 전통사회 상류층의 관습과 달리 젊은 남녀들이 배우자를 스스로 찾고, 얼마간의 교제 기간을 거쳐 자유롭게 혼인을 맺을 수 있다는 상상은 매력적이며 요즘 말로는 했다.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할 줄 아는 독립적인 개인이 결국 독립 국가, 강한 민족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다소 민족주의적, 자강론적 상상도 거기에 깃들어 있었다. 문제는 딱 하나였다.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포함돼 있을 것 같은 민족도 알고 보면 적대적인 모순 관계의 지주와 소작농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듯이, ‘자유연애도 전혀 사회경제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미 192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흔히 지적했듯이 말이 자유연애지 실제로는 유산·유식층이 유유상종하여 끼리끼리 사귀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유연애는 계급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했다.

 

조선뿐인가? 어느 사회에서나 결혼·동거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결혼율이 지난 반세기 동안 거의 2배 가까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평균 남성 소득에 비해 여성의 소득이 대폭 상승하여 지금 약 93% 정도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만큼 꼭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도 바뀐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하층에서 결혼이 아닌 사실혼이 더 흔한 이유도, 중산층의 평균 결혼 연령이 20대 후반으로 늦어진 것도 경제적 문제와 직결된다. 남자가 실직당하거나 감옥에 갈 경우 결혼이 아닌 동거를 청산하여 다른 파트너를 찾는 것이 여성들한테는 더 쉬운 선택이며,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되면 중산층이 이미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첫 직장을 얻은 뒤이기에 직장과 소득이 확실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게 이 나이 때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달콤한 자유연애밑바닥에 각종의 매우 현실적인 고려들이 깔려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로서는 불가피한 사정일 뿐이다.

 

결혼시장같은 용어는 사회학자들이 사회 분석의 차원에서 흔히 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이 상품화되듯이, 남녀의 결혼이 흔히 내포하는 경제적 부양과 가사노동의 교환도 엄격히 이야기하면 거래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으로 바라본 현실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작 다수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결혼 내지 동거 관계의 당사자들은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사랑같은 개인적 감정을 공동생활의 전제조건으로 보려고 한다. 상품 거래 위주의 무정한 세계에서는 그래도 가족이라도 좀 달랐으면 하는 희망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감정이 없는 경우에는 인생의 각종 난관들을 같이 통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인 남녀가 사적인 공간을 같이 쓰면서 함께 지내는 것은 실은 서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는 이상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으로 여성에게 독립성이 모자라고 사회가 이혼녀를 심히 차별했던 옛날에야 서로 같이 있기가 싫어져도 억지로라도 같이 살았지만, 여성의 학력과 직업능력이 이제 남성과 다를 게 없는 오늘날에는 러시아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사회에서도 평균 혼인 지속 기간은 약 10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평균 혼인 지속 기간은 14년이 되지만, 그만큼 사교육을 포함해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두 성인의 공동생활이 쉽지 않다는 건, 러시아든 한국이든 마찬가지다. 한데 사랑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 이상 지옥의 문이 될 수 있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가면 갈수록 자유연애보다 자유구매를 더 방불케 된다.

 

“(키르기스스탄 여성들은) 중앙아시아 여성 중 가장 많이 몽골리안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생김새가 한국 여성과 같은 사람도 많다. 60%는 완전 몽골리안이고, 20%는 백인과 몽골리안의 혼혈이다. 10%는 완전 러시아 백인이고 10%는 이슬람과 몽골리안의 혼혈이다. 학력 수준은 높은 편이며 영어는 다들 중간 정도의 수준이며 2세의 외모나 교육 때문에 국제결혼을 망설이는 분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사회규범은 남성지배적 사회이며 상호 의존적 대가족 제도이고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연장자나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 국민성은 보수적이며 수동적이고 야망이 적으며 자족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성격에다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고 항상 좋은 말씨로서 가능한 한 대결을 회피한다.”

 

위의 글은 19세기 초반 미국 남부 노예시장의 노예매매 광고문을 연상케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생산, 유통된 것이다. 한 국제결혼 중개 업체의 사이트에서 키르기스스탄 여성들의 특징을 고객인 한국인 남성들에게 설명(내지 광고)하는 문단이다. 이런 유의 텍스트들을 보면 보수적인 남성들의 욕망을 여실히 읽어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백인이 멋이 있으니까 약간의 백인 피가 섞여 있으면 좋긴 해도 아이 외모 때문에 골치 아플 수도 있어서 일단 주로 몽골리안 혈통에 속하는 게 맞는 것이고, 학력과 영어 구사력이 높을수록 좋긴 하지만 똑똑하면서도 남편과 시어머니, 웃어른들을 깍듯이 모시는 거야말로 부덕(婦德) 중 최고라는 말일 것이다.

 

지독한 가부장주의의 악취를 맡은 듯한 느낌이지만, 여기에서 이 가부장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혼을 구매로 여기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사고다. 부국 한국의 남성은 돈과 한국 여권을 얻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빈국 키르기스스탄 여성의 성과 출산능력, 그리고 가사노동에다가 친절과 같은 감정노동까지도 산다. ‘결혼시장은 이제 사회학적인 추상적 개념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매매혼이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국제적 장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광고문들이 암시하는 남녀관계의 형태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여성에게 가정생활의 행복은커녕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해줄 수 있을까?

 

국제적 매매혼뿐인가? 내국인 사이의 결혼도 자유연애의 이상과 거의 무관한 경제적 거래로 이루어지는 것이 이제 다반사다. 한국에는 2500개 이상의 결혼정보업체들이 현재 성업 중이며, 한국만큼 결혼업체를 통해서 결혼이 많이 이루어지는 사회도 드물다. 업체에서 커플 매칭을 할 때 재력과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하는) 학력, 그리고 (부모와 자신의 재력과 학력이 얻어준) 직장 등은 남성의 주된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결국 결혼은 남자의 (광의의) 사회경제적 자본과 여성의 외모·상징자본 사이의 교환행위쯤 될 것이다.

 

이 교환행위 자체도 결코 싸지 않다. 주택자금을 포함해서 평균 결혼비용은 2억원을 넘는다.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위주로 이루어지는 결합은 행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행복지수가 세계적으로 하위권(143개국 중 118)에 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내밀한 사생활까지 에 잠식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은 아닐까? 가정이 돈이 아닌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야말로 사람 살 만한 세상일 것이다. ‘자유연애는 근대적 환상이라 해도, ‘을 넘어 사랑에 근거를 두는 더불어살이가 가능해질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18.1.30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년

남의 불행 덕에 기름진 삶을 누리게 되고 오만해지면 그 불행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문제 해결을 외면하듯이,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진실과 정의의 거울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응시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정부 차원의 사과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에 머물러 있다.

 

<한겨레21> 최근호(1196)“1968 꽝남 대학살특집을 실었다. 표지 사진이 섬뜩하다. 반세기 전 한국군의 총과 수류탄에 어머니와 어린 누이들을 비롯해 가족 19명을 한꺼번에 잃은 69살 레탄응이씨다. <한겨레21>은 한베평화재단과 공동기획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68 꽝남! 꽝남!” 기사를 연재한다. 이번호엔 ‘1968 꽝남대학살 지도와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를 원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꽝남 순례길 1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1999년에 <한겨레21> 베트남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안해요 베트남시리즈를 연재했던 구수정 박사(현재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에 따르면,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80여건에 달하며 꽝남성에서만 4천여명, 5개 성에서 9천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고경태 <한겨레> 기자는 기록하려는 열망으로 시작했다고 서문에서 밝힌 책 <1968212>(베트남 퐁니·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에서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젊은 여성을 발가벗겨 놓고 유방을 도려내 죽였다는 소문에 관해 기록한 뒤 이렇게 썼다.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19805월 광주항쟁을 12년 남겨둔 때였다. 1968212일의 베트남은 제주와 광주의 중간에 놓였다. 그날 오후 2시께, 퐁니·퐁넛촌에서는 제주 4·3 사건의 시간이 재현되었다. 5월 광주의 시간이 흘렀다. 19살 처녀 응우옌티탄은 옷이 벗겨진 채 논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두 가슴은 난도질당해 피가 흘렀다. 왼쪽 팔도 마찬가지였다. 20년 전 제주에 들어온 토벌대원들처럼, 12년 뒤 광주에 투입될 공수부대원들처럼, 마을에 들어온 해병대원들은 포악했다. 과거의 토벌대원들과, 미래의 공수부대원들과, 오늘의 해병대원들은 생김새가 닮았고 같은 언어를 썼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최대 5만 병력을 베트남 전장에 파견했다. 미국 이외 파병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스페인, 타이, 필리핀, 대만 전체 병력의 3배에 이르렀던 한국군은 전쟁기간 합해 병력 32만여명이 베트남 땅을 밟았다. 한반도와 베트남은 중국의 오랜 영향 아래 한자문화권이 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닮은 점이 많다. 19세기 서세동점과 함께 식민지가 되었고 일제 패망으로 기대했던 민족해방은 각각 38도선과 17도선의 분단으로 돌아왔다. 강대국 사이 냉전의 볼모가 되어 동족끼리 전쟁을 치른 것까지 닮았다. 두 전쟁 모두 미국이 개입했는데, 한국전쟁이 승자 없는 전쟁으로 분단상태가 지속되었다면 베트남은 통일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호찌민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베트남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항쟁정신과 이념의 차이를 눅여준 마을공동체 의식 등을 말할 수 있겠는데, 베트남에 있는 밀림이 한반도에 없는 대신 베트남에 없는 혹독한 겨울이 한반도에 있다는 자연조건의 차이가 가장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백년의 급진>으로 한국에 소개된 중국의 원톄쥔은 세계를 식민종주국인 유럽, 식민화된 대륙인 미주와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의 절반, 그리고 원주민 대륙인 아시아의 셋으로 나눈다.(<녹색평론> 20181·2월호) 아시아의 같은 원주민 사이이면서 원한관계가 없는 베트남의 땅을 한국군은 왜 군홧발로 밟았을까? 지금은 70살을 넘겼지만 반세기 전 팔팔했던 젊은이들은 부산항을 떠난 수송선이 동남중국해를 지날 때 시꺼먼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 중 5천여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1만여명은 부상했으며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가 2만명을 넘는다. ‘추악한 전쟁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발탁한 로버트 맥나마라는 베트남 군사개입을 추진, 확대했으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 그는 1995년에 펴낸 회고록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잘못했고, 끔찍하게 잘못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할 빚을 안고 있다.” 한국에선 아직 이런 발언을 찾기 어렵다.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조차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자유세계 수호를 위한 전쟁으로 계속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촛불 시민의 힘으로 감옥에 보낸 오늘도, 베트남 전쟁에 관한 한, 박정희 정신은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참전 최고의 수혜자는 박정희였다. 1975430일 베트남이 통일된 날의 3주 전 한국에서는 인혁당 재건위 여덟 분이 처형당했다. 유신체제는 공고했고 긴급조치 위반자는 고문받고 투옥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68121일 북한은 박정희를 제거할 목적으로 김신조 등 특수부대원들을 내려보냈다. 북베트남의 681월 뗏(구정) 공세에 맞춰 전선을 확장할 목적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1·21 사태는 오히려 박정희 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주민등록법 시행, 예비군 창설, 고교와 대학 교련 실시로 국민 통제, 학원 병영화가 착착 실현되었다.

 

전쟁은 사랑의 적입니다!” 2000년부터 꽝남성 등 민간인 학살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지원활동을 펴온 베트남평화의료연대’(평연)의 송필경 원장(치과의사)<왜 호찌민인가>에서 베트남의 국민시인 타인타오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 남자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인 17~18세가 되면 입대했는데 생존율이 10%도 채 되지 않아 이성을 만나지도 못한 채 산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에겐 모든 전쟁(중일전쟁, 2차대전, 한국전쟁)이 그의 욕망 실현을 위한 기회였다. 베트남전쟁도 마찬가지였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로 재건의 기회를 얻었듯이, 베트남전쟁 특수와 뒤이은 중동 건설 경기로 박정희는 잘 살아 보세!” 구호 속에 물질을 담을 수 있었다. 남북한 경제와 생활수준은 70년대를 지나면서 역전되었고 박정희는 종신 대통령이 될 예정이었다.

 

남의 불행 덕에 기름진 삶을 누리게 되고 오만해지면 그 불행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문제 해결을 외면하듯이,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진실과 정의의 거울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응시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정부 차원의 사과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에 머물러 있다. 1985년 종전 40주년을 맞아 독일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40년 전에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우리는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를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고통의 깊이만큼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걸까, 작년 9, 1300회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길원옥 두 할머니는 한국 군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베평화재단(www.kovietpeace.org)은 청와대 앞에서 한국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1인시위와 함께 만만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의 전쟁, ‘인의 희생, ‘인의 연대. 4월에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시민평화법정도 열 계획이다. 부디 많은 시민들이 인 대열에 참여하기를./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18. 1.18

 

민주주의가 밥이 되려면

민주화의 전환점이었던 1987년은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노동자 대투쟁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고,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실현되었다.

많은 이들이 영화 <1987>을 보며 30년 전 민주화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다.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사람 중심의 경제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확립된 경제체제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라 할 수 있다. 1997년 위기 이후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제언에 따라 기업과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 정리해고와 파견근로 등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금융 개방을 실행했다. 하지만 부채비율의 급격한 축소와 수익성을 강조한 구조조정은 기업·은행을 보수적으로 만들어 투자를 둔화시키고 가계대출만 늘렸다. 또한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해져 노동소득 분배율이 1997년 약 77%에서 2010년 약 68%로 급락했으며, 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시장 자유화를 추구한 구조조정은 아무래도 잘못된 수술이었고 그 결과는 투자와 성장의 정체와 불평등이었다. 이러한 경제구조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명 하에 민주 정부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관료들은 위기에 관한 주류적 시각을 따랐고, 재벌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환영하며 구조조정을 받아들였고, 진보적인 이들도 외부의 힘에 의한 재벌 개혁을 기대했던 듯하다. 이후 보수 정부 10년은 감세와 규제 완화로 대기업을 지원하고 빚으로 부동산을 부양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낙수효과는 없었고 저성장과 불평등의 악순환이 심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케인스주의를 표방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실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7년은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7월 이후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 설립과 임금 인상으로 이어져 노동의 몫이 1987년 약 73%에서 1996년 약 79%까지 높아지고 내수가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투자와 생산성도 증가하여,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실현된 시기였다.

 

새로운 2017년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1987년의 성과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첫째, 1987년 이후 민주주의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더욱 발전시키고, 그에 기초하여 자본의 전횡을 통제하고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1997년 위기도 민주화 이후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90년대 들어 정부의 투자 조정이 약화되고 해외 단기 차입 규제가 완화되어 위기의 배경이 되었다. 이제 1997년 체제가 맹신했던 자유화 대신 민주적인 국가 개입에 기초한 경제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혁신을 촉진하는 산업정책, 생산적 투자를 촉진하는 금융제도,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복지국가 등 여러 영역에서 정부의 이러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파업 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동원하여 사용자 측과 맞서고 있다.

 

2017년 체제 만들기 위해 1987년과 1997년을 뒤돌아보아야

둘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과 몫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았지만, 이제 대기업 노조는 자신의 임금 인상만 추구하며 자본과 담합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재벌 기업을 먼저 비판해야 하겠지만,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대기업 노조의 공감과 연대의 부족은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세계 최고인 현실과 관련이 있다. 노조도 없는 90% 하위층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이고, 증세와 복지의 확대로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셋째, 2017년 체제는 재벌이나 부동산 문제 등 1987년 이후 계속 심화되어온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맞서야 한다.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와 금융구조는 1997년 위기의 배경이 되었지만, 이후에도 재벌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고 소수 재벌의 힘은 더욱 강화되었다. 부동산에 기초한 부의 집중 심화는 민주화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는 역사를 반성하고 넘어서기 위한 노력 혹은 싸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는 2017년 체제를 만들기 위해 1987년과 1997년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시사인 53918.1.16

 

전쟁과 평화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위험과 재앙으로 점철된 기록자체라고 볼 수 있다.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려는 본래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늘 시달려 왔는데 그중에도 전쟁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가장 참혹한 재난이었다. 이 시각에도 이러한 재난은 시리아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끝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외국언론에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다루는 기사나 논평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런 까닭에 평소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동료나 친지들도 한반도에 정말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다. 어떻든 걱정스러운 상황이기에 나는 국내와 해외언론의 동향을 더 열심히 챙겨 보게 된다.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대해 국내와 해외의 일반적 평가나 반응이 서로 조금 엇갈리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국내보다 위기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전쟁위험과는 거리가 먼 서울시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반대로 전쟁위험이 크다고 보는 서방 측 언론은 위험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호랑이가 아직 우리 안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후자는 호랑이가 이미 우리에서 빠져나와 마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아예 없다거나 아니면 작다거나 또는 상당히 크다고 여기는 판단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위험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우선 사회성원 사이에 퍼진 공포감, 불확실성과 무지에 근거한 집단적 반응으로 본다. 구성주의적 갈등이론도 권위를 행사하는 언론, 학계, 정치와 경제엘리트 등이 어떤 사태를 위험으로 규정하고 소통을 통해 이를 정치화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모두 다 위험의 주관성을 강조한다. 가령 심장병환자의 위중 정도나 기업경영에 나타나는 위험 정도를 상당히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위험(risk)은 큰 암석이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바닷가에 있는 절벽(rhiza) 밑을 항해하는 배의 위기적 상황을 묘사하는 고대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하고, 위험(危險)의 위()자도 원래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과 그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형상화하였다. 두 단어 모두 완결되지 못한, 극도로 불안정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호랑이가 우리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나 호랑이가 이미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판단도 위험이 지니고 있는 미완의 긴장성을 지나치고 있다. 위험을 단순히 안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여기고 있기에 이의 부재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우리 삶의 불가피한 요소라고 본다면 차라리 호랑이를 가두어 둔 우리가 정말 튼튼한지에 대하여 먼저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럴 때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주장처럼 단순히 전쟁이 없다는 의미로서 이해되는 부정적인평화는 물론 온전한 평화체제를 적극적으로 확립하는 긍정적인평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인 난기류는 자기이해에 따라 과대평가될 수도 있고, 또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관습화된 믿음과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는 위에 지적한 긍정적인 평화는커녕, 부정적인 평화도 기대될 수 없다. “너희들이 삶을 걸지 않으면 너희들의 삶은 얻어질 수 없다는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발렌슈타인>의 유명한 대사도 위험이 오히려 새로운 자유를 촉발한다는 역설을 지적하고 있다. 일상 속에 안주하려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연속을 일시에 혁파하고 부정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강한 긍정이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키는 힘이다. 이런 까닭에 위험은 모험이나 결단 또는 운명적인 기회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우리는 한반도에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진 두 국가를 세운 지 70년을 맞는다. 냉전시대의 최초의 혈전이 남긴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겪은 지도 이미 65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휴전체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최면에 걸린 안전과 사이비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 정치사회적인 위기에 직면해서는 4·19의거, 5월 광주항쟁, 6월항쟁 그리고 작년에는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중요한 계기들이 긍적적인 평화는 물론 부정적인 평화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두 번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크고 작은 남북의 만남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창출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온 한반도 안팎의 세력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북핵 문제가 촉발시킨 위험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상유지에 충격을 주고 새로운 변화를 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쇄빙선이 얼음에 갇혀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할 수 없을 때는 선체 안에 적재한 많은 물을 좌우로 강하게 흔들어 생길 때 얻어진 힘으로 얼음을 깨고 전진한다.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현상유지라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충격을 주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까닭에 위험에 관해 지금까지 타성에 젖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를 미지근한 물 속에 놓고 점차적으로 수온을 높이면 개구리는 그 속에서 편안하게 죽는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길목에 있는 성문의 현판에 쓰여진 단어 순간은 지루한 시간을 이어온 고리를 단번에 끊는 화두였다. 한반도의 위험이 증폭되는 요즘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적 동력은 결코 소진되지 않았다. 촛불혁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나 민생과 개헌 문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옥죄어 왔던 근본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체제의 결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촛불혁명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힘있는 계기로 승화되는 소식을 그래서 더욱더 기대하게 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경향 18.1.15




To Know Him Is to Love Him (The Teddy Bears)(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