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436호 16.1.29-정치 포르노’의 시대
미디어오늘 16.2.17-65년만의 짧은 만남, 할머니는 왜 백두산에 올랐나
한겨레 16.2.23-친일은 왜 단죄해야 하는가
경향 16.2.24-에너지 권력이 문제다
시사인 442호 16.3.2-언론이 만드는 ‘무뢰한 혹은 영웅’
경향 16.3.9-‘카나리아’를 죽이는 세상
시사인 449호 16.4.25-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경향 16.5.25-개혁으로 포장된 ‘규제 완화’
시사인 455호 16.6.10-2017년,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
경향 16.7.6-러브록과 히로세
경향 16.7.20-자본주의·탄소, 둘 다 문제다
한겨레 16.8.9-대한민국, 주권이 없는 국가
경향 16.8.17-기후 정의’를 깨닫는 시간
한겨레 16.8.18-폭염 속 단상
시사인 467호 16.9.20-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다
미디어오늘 16.9.20-송건호의 자세, 송희영의 권세
한겨레 16.11.1-대한민국, 사유화된다
한겨레 16.12.27- 광장, 역사의 원동력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광장, 역사의 원동력
아무리 훌륭한 제도 야당 정치인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재벌공화국의 게임룰을 그것만으로 바꿀 수 없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이란 재벌 지배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대선과 대통령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변화는 광장이 이끄는 것이다.
촛불의 압박은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저항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광장으로부터의 압박만이 사드 배치와 같은 자살적 종미 실책을 막을 수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가져다줄 수 있다. 광장의 구호가 청와대에까지 잘 들려야 청와대의 주인이 민심을 그나마 고려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확실히 사회를 통합해주는 하나의 기제가 된 것 같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한국인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화제는 바로 ‘박근혜 사태’로 돌리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급의식까지 바로 대중적으로 성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대부분에게 박근혜는 최악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려 했던 재벌 권력의 대표자라기보다는 그저 인격적 결함 등으로 실패하게 된 대통령이다. 그래도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권과 유착하여 돈을 주면서 저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사실, 즉 국가 공공권력이 기업들에 의해서 사유화됐다는 점이 대다수에게 문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박정희 신화에 이어 삼성 신화, 수출 대기업의 신화도 무너져야 이 나라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국외에서 만나는 한국인들과 정치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로서는 한 가지 어려움이 늘 생긴다. 상대방들에게 ‘다음 대선’과 여러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초미의 관심사지만, 나는 솔직히 이 부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물론 박근혜같이 아예 국정을 맡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참사지만, 대체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책의 핵심은 별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특히 대북정책처럼 정권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바뀌는 부분들도 있다. 한데 종미(從美, 대미 추종)·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기본노선은, 1990년대 중반의 김영삼 시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야 사이에 정권이 두 번이나 교체됐는데도 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금도 야당 인사 중에서는 노무현 시대를 황금기처럼 언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인간이나 정치인으로서의 품격 차원에서는 노무현과 박근혜를 비교할 수 없다. ‘급’이 다른 것이다. 한데 구체적인 정책을 비교하다 보면 대북관계나 역사 관련 시책 등 상징성이 강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 기본노선은 과연 그렇게까지 달랐을까 싶다. 예를 들어 사드 배치와 관련된 결정을 박근혜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고 있지만, 대북정책 이외에는 노무현 정권 역시 거의 맹목적 종미에 가까운 자세를 취했다. 이제는 거의 망각되고 말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군부대의 규모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컸다. 한국은 3600명이나 되는 병사를 범죄적인 침략전쟁의 현장으로 보냈지만,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한 일본은 600명만 보냈다. 종미 정책은 국외뿐만 아니고 국내에서도 다대한 피해를 끼쳤다. 미군 기지가 이전한다고 하여 대추리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저항하는 이들을 초강경 진압하느라고 경찰도 아닌 군인을 3천명이나 동원한 일은, 불과 10년 전에, “민주 대통령 노무현” 집권기에 있었던 것이다. 만약 사드 배치 문제가 10년 전에 발생했다면 노무현 정권이라고 해서 미국의 압력에 제대로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
“민주 대통령 노무현”의 자본과 노동 관련 정책도 놀랍도록 보수적이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챙겨준 대표적인 정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한국 시장을 좀더 긴밀하게 해외시장에 종속시킨 각종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을 자주 꼽는다. 그러나 사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6년부터 노무현 정권은 100만달러 범위 내에서 국내 기업·개인들의 투자 목적 해외 부동산 구입을 허용하는 등 외환의 국외 반출을 상당 부분 자율화했다. 즉, 한국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벌어들인 돈이 해외로 흘러가 거기에서 비생산적 부문에 투자되는 것을 허용해준 것이다.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회에 전혀 도움되지 않고 지배층의 돈주머니만 살찌우는 비생산적 투자는 정권에 의해 제대로 규제되지 않았다. 그 전이나 후의 다른 정권에 비해 약간 더 사회정의 지향적인 부동산 정책을 썼다지만, 전국 집값은 정권 임기 중에 36%나 올랐고 난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정권 초기에 약 130곳이던 골프장은 정권 후기에 접어들어 약 270개까지 늘어난 것이다. 물론 투기와 난개발을 직접 나서서 지원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정책과의 차별성도 어느 정도 보이긴 했지만, 잉여 자금이 언젠가 무너질 부동산 시장의 피라미드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용인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상 큰 차이가 없다.
자본 친화적 정책의 이면은 바로 반노동 정책이다. 박근혜 정권은 민주 국가에서 전례 없는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으로 세계적 악명을 얻었지만, 노무현 정권도 노동 투사 구속을 유별나게 쉽게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임기 중에 감옥에 잡혀들어간 노동자는 거의 1100명에 가까워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 두 배나 됐다. 박근혜 정권은 경찰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살인으로 온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무리한 초강경 진압은 노무현 시절에도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하중근(1962~2006) 열사를 기억하는가?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던 그는, 평화집회에 참석했다가 진압 과정에서 방패로 뒷머리 우측 부근을 가격당해 쓰러진 뒤에 경찰들로부터 어떤 구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결국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뒤 뇌사 상태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백남기 살인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지만, 하중근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하중근 열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노무현 시절의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의 수를 거의 감소시키지 못하고, 그들의 권익을 전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들처럼 노무현 시절에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를 당해도 국가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했던 비정규직은 수두룩했다.
노무현 정권의 종미, 친자본, 반노동 정책을 장황하게 열거한 의도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제도 야당 정치인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재벌공화국의 게임룰을 그것만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 돼도 재벌들을 위해 맞춤형 정책 선물을 퍼부어주고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진압을 시킨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이란 재벌 지배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대선과 대통령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변화는 광장이 이끄는 것이다. 광장으로부터의 압력은, 보수적 정권으로 하여금 민중에 다소 이로운 정책을 추진하게끔 강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노태우 정부는 분명히 반민주적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다. 그런 성격임에도 노태우 시절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국민의료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고 국민연금제가 처음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바로 거리로부터의 지속적 압력, 민주노조 건설과 파업이 자유로워진 공장들로부터의 압력이었다. 정통성이 문제시되는 군부정권이 거리에서 표출되는 여론에 특히 취약할 수 있지만, 정상적 절차를 거쳐 출범한 정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국에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정권은 김대중 정부였지만, 바로 김대중 시절에 획기적인 복지제도 확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비록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 중에서는 40% 정도만 수혜자가 됐지만 기초생활보장제라는 최초의 생존권 보장 제도가 바로 그때 만들어졌다. 그만큼 1996~97년의 노동계 총파업 등 노동자들의 결사적 저항은 김대중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지향적 지도층에 압박을 가한 것이었다.
지금 촛불의 압박은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저항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광장으로부터의 압박만이 사드 배치와 같은 자살적 종미 실책을 막을 수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가져다줄 수 있다. 광장의 시위대 구호가 청와대에까지 잘 들려야 청와대의 주인이 민심을 그나마 고려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그 주인이 누가 되든 간에 말이다./16.12.27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대한민국, 사유화된다
대한민국은 재벌 왕국이긴 하지만, 국가의 경제적 역할, 경제에 대한 개입 범위 등은 여전히 무시 못할 수준이다. ‘커넥션’과 돈은, 기업에 의한 그 힘의 사유화를 뜻한다. 물론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대다수의 피통치자들이다. ‘기업 봐주기’ 대가로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이 기업들로부터 ‘사설 세금’(?)을 거두는 것은, 이런 구조에서는 그저 자연스럽게 보이기만 한다.
자본이라는 것도 서로 경쟁하는 수백개의 재벌·중견 기업들이다. 많은 경우에는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상호 충돌해 권력자들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로비를 벌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야말로 세상의 ‘최순실들’이 갖고 있는 재화, 즉 권력에의 사적 접근은, 정말 황금의 값어치가 된다.
요즘 ‘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자꾸 기시감이 든다. 이미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이다. 정권 비선의 딸이 부정 입학을 했다? 이미 1957년에 이승만의 양자이자 그 최측근인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의 서울대 법대 부정 편입학 사건이 온 나라의 화젯거리가 된 일은 있었다. 그때도 정권 실세의 아들이 정치인·관료 위에서 군림했으며, 그때도 정권 쪽의 부정 편입학 요구에 교수와 총장이 손을 들어 타협하는 한편 학생들이 맹휴 등 투쟁을 벌인 것이었다. 대통령이나 그 최측근, 친인척의 발호는 대한민국 정치체제의 고정된 패턴으로 보이기만 한다. 나는 지금도 1997년에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이 아들 김현철의 비리에 대해서 공개사과를 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던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가 “제 아들 관리도 못하는 저놈은, 이게 무슨 어른이냐?”라고 침을 뱉어내듯이 욕한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데, 김영삼의 평생 라이벌이자 후임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3명이나 다 비리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점까지 생각해보면, 이는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봐야 한다.
‘공복 정신’이니 ‘노블레스 오블리주’(신분이 귀한 만큼 의무를 져야 한다)니 등등을 들먹이면서 환상을 갖지 말자.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가장 극단적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법이 아닌 ‘통념’의 차원에서는- 성이 폭넓게 매매되고 불전 내지 성금을 많이 내면 극락왕생 내지 천당행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부자가 자신의 부하나 서비스업 노동자에게 모욕을 가하거나 폭행을 해도, 적당한 합의금만 내주면 사실상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회다. 즉, 인간의 존엄성도 공공연하게 매매된다. 성도, 종교 신앙도, 인간의 자존감도 다 돈을 매개로 해서 실천되거나 매매될 수 있다면, 권력, 또는 권력자에의 개인적 접근이 각종 비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순진히 믿을 수 있을까? 박근혜씨의 경우에는 개인적 무능, 특히 공과 사 구별 능력의 태부족이 한국 현대사상 기록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박근혜씨보다 조금 더 정상적인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그 친인척과 측근들이 발호를 도모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권력, 또는 권력에의 사적 접근이 가장 값진 재화인 사회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이 그 재화를 돈으로 바꿀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다. 왜 김영삼 정권의 ‘소통령’ 김현철이 한보 등 재벌로부터 돈을 이렇게 쉽게 상납받을 수 있었는가? 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특수 신분’인 그 아들 김홍걸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및 아파트 건설 승인 청탁 대가로 36억원이나 사업자로부터 뜯어낼 수 있었는가? 왜 고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에게도, 현 정권의 실세 중의 한 명인 김기춘에게도 이런저런 청탁을 한 것으로 수차례에 걸쳐 보도됐는가? 왜 솔로몬저축은행과 코오롱은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에게 수억원이나 상납해야 했는가? 그리고 결국에 왜 최순실에게 재벌들이 800억원이나 주었는가?
여태까지 친척 비리가 없었던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대통령의 자녀나 형제 내지 측근을 통해서 재벌들이 돈을 건네 ‘문제 해결’을 의뢰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공인된 메커니즘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권력에의 사적 접근이란 이렇게도 비싸게 거래되는 하나의 재화로 부상했는가? 개발독재 시절 같은 경우에는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개발은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개발 자금은 관치금융 시스템을 통해 재벌들에 국가적으로 조달됐기에, 국가와의 관계는 당연히 기업인에게는 사활의 문제 그 자체였다. 이런 개발 시스템에서 부정부패가 구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밝힌 바 있다. 한데,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산다. 관치금융 등은, 금융시장이 이미 상당 부분 외국 자본에 장악돼 있는 상태에서는 그저 과거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더군다나 정권교체도 어느 정도 정례화돼 있기에 정권 실세에의 상납이 결국 밝혀져 비록 솜방망이긴 하지만 적어도 형식적 처벌은 받을 위험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왜 최순실에게 재벌로부터 엄청난 금액이 이렇게도 쉽게 흘러들어갈 수 있었는가?
여기에서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몇 가지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은 재벌 왕국이긴 하지만, 국가의 경제적 역할, 그리고 경제에 대한 개입 범위 등은 여전히 무시 못할 수준이다. 토건을 비롯해 각종 공공프로젝트 사업자 선정도 기업들이 겨냥하게 돼 있는데, 각종 인허가와 관련해 국가의 힘 역시 막강하다. ‘커넥션’과 돈은, 기업에 의한 이 힘의 사유화를 뜻한다. 물론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대다수의 피통치자들이다. 세월호 참사로 이어진, 노후 선박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해준 이명박 정권의 조처를 기억하는가? 평민들이 목숨을 걸고 배를 타는 세상이 됐지만, 관련 기업들로서는 환하게 웃을 일이 아닌가? 이런 ‘기업 봐주기’ 대가로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이 기업들로부터 ‘사설 세금’(?)을 거두는 것은, 이런 구조에서는 그저 자연스럽게 보이기만 한다.
둘째, 경제 개입 가능성이 높은 국가 권력을 기업이 사유화하는 것을 막을 만한 장치들은 매우 불충분하다. 원칙상 검찰청 등은 그런 장치가 돼야 하지만, 지난 20여년의 역사를 보면 사법부에 대한 기업들의 영향력 확보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검사들이 재벌의 돈을 받는 등 공공권력을 돈과 맞바꾸는 일은 비일비재해도,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1999년) 때 검사 25명의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사법처리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삼성 X파일’ 사건(2005년) 때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의원은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떡값 검사’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윤상림 게이트(2005년) 때도 ‘대가성이 없다’고 하여 사건에 연루된 판검사들이 아예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으며, 스폰서 검사 사건(2010년) 당시에는 비록 일부 검사가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사법처리는 면했다. 국가의 사유화를 막아야 하는 사람들마저도 각종 기업인들의 장학생으로 전락한다면 과연 이런 국가의 공공성은 어느 정도일까? 원내 주류 야당도 대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게 돼 있다는 점도, 언론들도 대기업 광고로 먹고산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기업인들이 돈을 주고 권력에의 사적 접근이라는 재화를 사고자 한다면, 이를 막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정말로 지난한 일이다.
셋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자본의 주문대로 정책을 찍어내 집행하는 기업들의 행정도구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국가’도 ‘자본’도 그저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실 속의 국가 운영 주체란 서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주류 여야 정객의 패거리들이다. 부단히 싸워야 하는 만큼 이들 각자에게도 ‘스폰서’가 필요하다. 동시에 자본이라는 것도 서로 경쟁하는 수백개의 재벌·중견 기업들이다. 이들의 정책 주문 중에서는 공통된 것도 적지 않다. 각종 자유무역협정부터 민영화 정책, 노동운동 탄압까지, 저들의 대부분은 적극 추진한다. 한데 많은 경우에는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상호 충돌해 권력자들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로비를 벌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야말로 세상의 ‘최순실들’이 갖고 있는 재화, 즉 권력에의 사적 접근은, 정말 황금의 값어치가 된다.
박근혜씨의 대통령 자격 부족은 독보적이지만, 이미 행정부와 사법부가 기업의 주문을 받아주는 꼭두각시가 된 상황에서 그 어느 대통령 밑에서도 ‘최순실’이 둥지를 틀어 행정자원과 금전의 교환을 주관할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항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 비리 공화국은 영구적일 것이다. /16.11.1
송건호의 자세, 송희영의 권세
숱한 ‘송희영’이 지금도 언론사마다 활개치고 있다
조선일보 고위직을 청와대가 벼른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앞뒤 짚어보니 송희영 주필이 분명해 씁쓸했다. 더러 그의 칼럼에선 ‘기자정신’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이름까지 거론해 공격할 때는 청와대의 ‘보복’이 더 문제라고 판단해 동정심마저 일었다.
하지만 씁쓸한 동정심은 한낱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가 편집국장 시절에 저지른 만행이 ‘증언대’에 올라서다. 조선일보 전 노조위원장이 전한 ‘고발’은 충격이다.
2005년 12월 편집국장 송희영은 그해 조선일보의 광고 상황이 예상보다 좋아 돈이 있다면서 “10년차 이상인 편집국원 전체를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강행했다. 기자들이 “해고 사유라도 알려 달라”면서 국장실을 찾았을 때 송희영은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찾아온 후배기자들”에게 무안을 주며 ‘스윙’을 계속 한 이 자가 과연 기자일까? 편집국장실에서 저는 ‘스윙 연습’을 하며 후배기자들을 해고하는 ‘기레기’야 말로 진즉에 기자직을 떠났어야 옳지 않은가.
송희영, 그 이름을 청암 송건호와 나란히 견준다면 결례를 넘어 무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편집국장’이란 무엇인가를 실감 못할 언론인들을 위해 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1975년 동아일보 사주가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는 기자들을 대량 해직할 때다. 편집국장 송건호가 사장실로 들어갔다. 송 국장은 사장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울면서 재고를 간청했으나” 사장은 그동안 보여준 ‘친밀감’과 전혀 달리 “냉랭했다.”
청암은 사장실을 나와 농성하던 기자들 몇몇을 국장실로 모아놓고 “내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 신문사를 떠난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송건호는 그 순간을 “언론계 생활의 마지막이 될 작별임을 생각해서 눈물이 자꾸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하는 내 이야기를 듣던 그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고 회고했다.
젊은 언론인들은 그 울음을 이해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언론을 천직으로 삼은 기자가 중간에 타의든 자의든 떠날 때는 울컥하게 마련이다. 나 또한 언제나 경건하게 옷깃 여미며 올라갔던 신문사 계단을 내려갈 때 “언론계 생활의 마지막”을 직감하자 곧장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청암과 동아투위 기자들이 모두 함께 울었던 편집국의 풍경은 30년이 지나 편집국장이 기자들의 목을 자르며 ‘스윙’하는 살풍경이 되었다. 언론계 선후배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가.
새삼 톺아보니 송희영만이 아니었다. 권력이 사장을 임명하는 방송사들로 시야를 넓히면, 송희영 못지않은 ‘나쁜 선배’들이 곳곳에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해직당한 방송인들의 ‘목’도 모두 선배들의 ‘칼’에 잘렸다.
왜 그럴까. 기자가 기자를 살천스레 자르는 모든 만행에는 제 자리 보전이나 감투를 쓰려는 작태가 숨어있다. 물론, 기자들도 ‘자리’와 ‘감투’를 욕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의 ‘감투’는 후배 기자들이 진실과 정의를 소신껏 보도해나가도록 보호해줄 때 의미가 있다.
청암이 병상에서 고투할 때 훗날 ‘송건호전집’을 출간한 아들이 쓴 글은 울림을 준다. 청암은 아들에게 평소 역사의 진실이나 사회의 논리에 앞서 인생의 올바른 자세가 앞서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인생의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결코 역사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며 오늘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한다.” 아들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내가 겪은 청암은 “지극히 소박”했고, “말과 행동에 전혀 꾸밈이 없”었다. 자리 욕심은 더욱 없었다. 모든 기자가 송건호의 자세를 지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송희영의 권세와 그 추한 몰락을 거울로 삼을 필요는 있다. 숱한 ‘송희영’이 지금도 언론사마다, 아니 먹물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기에 더 그렇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16.9.20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객관적 오류, 편향적인 사고와 현실 인식, 천박한 역사 인식으로 가득하다. 자화자찬이 대부분이어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와의 오찬 메뉴도 문제가 되었다. 생소한 호화 메뉴가 시민들의 눈총 대상이었지만 코끼리 상아처럼 거래가 금지된 상어 지느러미를 드셨다니 그 무감각이 놀라울 뿐이다. 모피 코트를 입고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켜지 못하는 시민들 처지에서 볼 때 대통령의 식단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광복절 경축사는 대통령에게는 취임사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객관적 오류, 편향적인 사고와 현실 인식, 천박한 역사 인식으로 가득하다(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하얼빈에서 뤼순 감옥으로 수정되어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 ‘위안부’ 할머니들, 특히 취업하지 못해 고통받는 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 한마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자화자찬으로 가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을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 증오”라는 표현으로 국민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날인데도 일본 관련 내용은 단 한 문장에 불과하다. 산적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 생각이 옳으니 아무 말 말고 따라오고, 싫으면 대안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대안 제시 요구는 청와대가 최근에 개발한 논리인 것 같다. 대통령의 뜻과 다른 사람은 좌파, 외부세력,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이 나라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국민은 대통령의 훈계를 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훈계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훈계하고 야단치듯이 지적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반복되는 박 대통령의 국민 비난과 고압적인 발언은 국민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는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니까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량이 많은 것과 정치의 출발점인 여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별개이다.
공무원들은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대통령 앞에서는 수첩 들고 받아 적는 모습이 북한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다. 적은 내용을 소중히 관리하고 정책 수립과 집행에 활용하는지, 과연 대통령은 그렇게 많고 다양한 정책들을 꿰고 있어서 지시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대통령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말처럼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넘어지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정책이 순식간에 결정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8월15일 건국을 얘기하니까 새누리당에서는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과 북은 1948년과 1949년에 각각 건국한 별개의 나라인 셈이다. 상하이 임시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면 북한 지역을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규정한 헌법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점을 지적해도 꿈쩍 않던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통령의 검토 발언 몇 시간 만에 개선안을 발표했다. 경북 성주의 성산포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최적이라더니 대통령의 다른 후보지 검토 발언 이후 국방부는 다른 곳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정책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국가 운영 시스템의 효율성과 투명성, 민주주의 성숙도가 선진국 판단의 기준이다. 전·현직 검사장이 피고인이 되어 있고, 부장판사도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이, 일부이지만 아직 우리의 사법 현실이다. 고위 공직 취임 예정자의 비위 사실을 조사하는 민정수석이 대통령 소속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를 받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반대자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심리적 기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지 않는 심리는 가장 반민주적 사고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내면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나라는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사인 467호 16.9.20
폭염 속 단상
참으로 놀라운 일은 그렇게 헬조선이 있음에도 또한 없다는 것이다. 사회 현실 속에 분명 있지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그것을 느끼지 않거나 느낄 줄 모르는 비대칭성, 어쩌면 이것이 가장 무서운 헬조선다운 헬조선의 면모일지 모른다.
요리문화 발달의 조건으로 ‘지체 높은 분의 입’과 ‘풍부한 식재료’의 두 가지를 드는데, 동양의 중국과 서양의 프랑스에서 요리문화가 발달한 것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절대권력자인 황제 치하의 중국이 광활한 땅에서 식재료가 풍부했듯이, 프랑스 또한 중앙집권의 절대군주제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일찍 자리잡은데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안에 둔 넓은 땅에서 나온 식재료가 풍부하여 요리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국내로 좁혀서 전주 지방의 요리문화 발달도 이 두 가지 조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랜 동안 언론매체에서 만난 ‘기후변화’라는 말이 디스토피아 미래상이 아니라 눈앞 현실로 다가온 듯 폭염이 지속되는 때에 뜬금없이 요리문화 얘기를 꺼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송로버섯 얘기가 흘러나온 탓이다. 프랑스의 페리고르 지방에서 많이 나오고 ‘검은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송로버섯은 거위 간, 철갑상어알(캐비아)과 함께 최고급 요리 재료로 알려져 있는데, 최음 효과가 있어서인지 나폴레옹 1세와 마리루이즈 황후의 식탁에 자주 올랐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니 21세기 자유무역 시대에 나라의 가장 높은 분께서 가장 총애하는 신료와 함께 그걸 즐겼다는데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설령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봐 에어컨을 틀지 못한 채 어디서 이 지옥 같은 찜통더위를 피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라도 그 정도의 일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으로선 온당치 않은 일일 수 있다.
다만 2014년 4월16일이 뇌리에 각인된 탓인지, 고급 식재료에 대한 미감 능력은 있어도 세월호 참사를 당한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공감 능력은 없는지 묻게 하면서, 떡갈나무나 개암나무 숲의 지표면 아래 5~10센티미터에서 자란다는 그 송로버섯을 캐는 데 하필이면 개나 돼지의 후각을 이용한다는 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속내 한구석을 계속 할퀴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왜 하필 개와 돼지인가? 교육부 고위 관료의 말처럼 배만 채우면 되는 개돼지는 보물을 찾아도 다만 냄새나 맡을 뿐이고 주인에게 바치라는 뜻이 다가와서일까?
실상 동양이든 서양이든 민중은 그저 개와 돼지처럼 배만 채우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17세기는 간빙기 속 이상저온 기후 때문에 동서양에서 공히 흉년이 잦았던 세기였다. 그때 일반 민중의 삶의 비참함은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두 글자의 이름을 갖곤 했다. 루이 14세가 절대군주로 군림하던 프랑스의 17세기도 그랬던지 1680년께 앙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주민들이 평소에는 먹지 않던 고사리의 뿌리와 순으로 빵을 만들어 허기를 채워야 했던 때의 얘기 한토막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의 참상을 보다 못한 그랑데라는 이름의 마을 신부가 베르사유궁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태양왕 루이 14세를 알현한 신부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이걸 먹고 있습니다”라면서 고사리빵을 왕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왕은 꾸역꾸역 먹어치우고는 이렇게 말했더란다. “짐이 맛있게 먹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라.” 어안이 벙벙해진 신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왕이 맛있게 먹었다는데…. 타박타박 힘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마을에 도착해보니 왕이 보낸 구호곡물이 먼저 도착해 있더라는 얘기…. 어떤 이는 고사리빵을 맛있다는 듯 먹은 뒤 구호물을 보낸 루이 14세에게서 발터 베냐민이 말한 아우라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일반 민중이 개와 돼지처럼 배만 채우면 되던 시절, 높으신 분들의 심성 안에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비참함에 대해 서양에는 기독교 전통 아래 ‘긍휼’이라는 게 있었고 동양에는 공맹사상 아래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었다. 지체 높은 분들 스스로는 추위와 배고픔을 겪지 않았어도 공감 능력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추위와 배고픔이 많이 사라진 만큼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와 함께 긍휼과 측은지심도 엷어졌다. 물론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을 쓴 빅토르 위고의 “온정, 시혜에 관해 사람들은 받는 쪽이 아닌 주는 쪽에서만 생각한다”는 말이나, <주홍글씨>의 너새니얼 호손의 “온정과 오만은 쌍둥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듯,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의 온정과 시혜가 필요한 상황, 그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적 온정과 시혜의 영역에서 공적 분배, 공적 권리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3권 등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권리를 신장해왔다. 이를테면, 비참하거나 고단한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엷어진 그만큼 공적 분배와 권리가 확장되어야 했고 노동자의 권리 또한 신장되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감 능력은 사라졌는데 공적 분배와 권리 부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인 채로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가 지켜지는 대신 하위 법률에 의해 왜곡, 변질, 배반되어 관철된다면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헬조선’의 그것에서 멀지 않은 게 아닐까. 오늘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임금 체불과 저임금, 손배 가압류와 블랙리스트는 과거의 추위와 배고픔인데, 또 달라진 건 높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사회 구성원의 공감 능력이 사라지거나 엷어졌다는 점이다.
최근 울산과학대의 청소노동자 9명은 한 명당 8200만원의 압류 처분을 받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학교 밖으로 내쫓은 울산과학대 당국자와 2014년 6월부터 장기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1인당 8200만원의 압류 처분을 내린 사법부는 그 숫자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셈해보기나 했을까? 헬조선은 그 숫자에 있고, 2015년에 하루 평균 5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하는 통계 숫자에 여실히 있다.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에 있으며, 오늘로 318일째를 맞는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 농성’이 있는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 있으며, “팀원 중 한 명이 상을 당해 팀원 전체가 하루 일을 쉬고 조문을 하고 왔더니 업체에서 이제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요”라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밑바닥인 조선소 물량팀에게 있다. 또 장래를 설계할 수 없는 흙수저 출신 청년들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그렇게 헬조선이 있음에도 또한 없다는 것이다. 사회 현실 속에 분명 있지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그것을 느끼지 않거나 느낄 줄 모르는 비대칭성, 어쩌면 이것이 가장 무서운 헬조선다운 헬조선의 면모일지 모른다.
폭염이 지속되는 거리에 나서니 모두 내부 열기를 바깥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차로를 메운 자동차들이 내부 열기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아파트와 사무실도 내부 열기를 에어컨 실외기를 통해 바깥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사적 공간의 쾌적함이 태양의 열기로 가득한 공적 공간을 더욱 찜통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에어컨을 최대한 삼가기로 한 것은 전기료 폭탄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발기인 한겨레 16.8.18
‘기후 정의’를 깨닫는 시간
올여름 폭염과 누진세 논란은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그중 첫 번째는 ‘더위 앞에 장사 없다’는 깨달음이다.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잘도 나던 우리 식구들도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절약도 좋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푸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던 사내 녀석들도 바깥에서 막 들어와 웃통을 벗어젖히고 숨을 헐떡거리던 참이었다. 기온이 폭염주의보 발령기준인 섭씨 33도를 넘어야 에어컨을 켠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그건 에어컨 구입을 합리화하는 심리적 방패막이였는지도 모른다.
둘째, 날씨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폭우, 태풍, 한파처럼 폭염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 가혹하게 공격한다. 쪽방촌 좁은 골목에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한 평도 안 되는 방들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낮이든 밤이든 한증막과 다를 바 없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강남, 송파, 서초 등 부유 자치구들이 가장 덜 덥고, 쪽방촌이 산재해 있는 종로, 용산, 영등포구 등이 가장 덥다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볼트시뮬레이션의 조사 결과는, ‘기후 부정의(不正義)’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기후 부정의는 온난화에 더 책임이 큰 지역이나 개인들이 온난화 피해는 더 적게 받는 현상을 말한다.
셋째, 폭염 속에서 우리가 깨달은 사실은 전기는 시민들을 차별해 왔다는 것이었다. 누진제가 무서워 에어컨을 쉽게 켤 수 없었던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은 산업용 전기와 가정용 전기의 차별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 소비량에서 산업용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5%가 넘는다. 그런데도 요금 부담은 약 50%에 그치고 있다. 가정용은 정반대다. 비중은 14%인데 전기요금 부담 비율은 17% 정도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대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당들이 누진제 개선을 약속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누진제’가 아니라 ‘차별’에 있다는 진실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후변화가 환경문제라는 생각을 더 확실하게 버리기로 했다. 기후변화는 홍수, 가뭄, 태풍, 폭염과 같은 극한 기상현상의 발생 횟수와 세기, 지속기간을 증가시킨다. 기후변화를 환경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기온이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물리적인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가 자연에서 사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인권’의 문제이고 ‘불평등’의 문제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미 겪고 있는 박탈, 배제, 차별과 같은 ‘사회적 부정의’를 증폭시킨다. 기후변화 피해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배출하는 가난한 10억명에게 집중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비대칭적 영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기후 정의의 위배는 국가 차원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나라들이 탄소예산을 써버린 대가로 부자나라들이 걸어온 것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빈곤 퇴치와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기후변화를 ‘사회 정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것은 시민단체들이다. 선진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꺼려 왔다.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기후 정의’의 개념과 실현 방식에 견해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기후 정의 논의가 외국에서 수입된 담론 수준에 머물다가 약화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폭염 속에서 기후 정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16.8.17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대한민국, 주권이 없는 국가
일제 강점기 내내 우파 민족주의자의 건국 강령과 좌파들의 건국 계획은 몇 가지 사항을 공유했다. 완전한 주권을 가진 나라를 만들고자 했기에 신간회부터 건국준비위원회까지 거의 20년이나 되는 좌우합작 시도들의 역사도 있었다. 주권이라는 것은, 의식 있는 조선인에게는 당연히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식돼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국익이 있다면 이는 바로 공익, 즉 모두들의 생명, 평화, 행복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국익 차원에서 본다면 사드 배치만큼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생명을 해칠 가능성이 큰 유해시설이며, 중국 상대 포위망의 하나의 거점으로 한국의 위치를 고착시킨다.
“나라 위에 나라가 없고, 나라 아래 나라가 없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쓴 유명한 문장이다. 비록 조선은 약소국이었지만, 국제법(‘민국공법’) 본위의 세계에서 조선도 다른 나라처럼 완전한 독립을 가진 주권국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유길준을 포함한 그 당시 많은 조선인들의 희망이었다. 사실, 1894년 5월에 청일전쟁을 개시하려는 일본군이 상륙하여 ‘주권’이 빈말 되기 이전에도 1880년대 말~1890년대 초의 조선 주권은 현실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조선의 지방관이 흉년으로 인하여 방곡령을 선포해도 미곡 장사를 방해받았다는 일본 상인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고, 일본 어선들이 조선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해도, 그 수입의 1~2%쯤 될까 말까 하는 최저 세율로만 세금을 매기고 치외법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일본 범법자들을 처벌할 수도 없었다. 한데 감 내라 밤 내라는 열강 공사들의 호령에 속수무책이던 시절의 제한적 주권마저도 1894년과 1904년 일본군 상륙으로 무너졌고, 유길준 같은 먹물들은 “국제법 책 만 권은 대포 한 문에 못 미친다”고 한탄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우파 민족주의자의 건국 강령과 좌파들의 건국 계획은 몇 가지 사항을 공유했다. 예컨대 -지금으로서는 급진성의 극치로 보이겠지만- 우파 민족주의자마저도 주요 공업 시설의 국유화를 새 나라 건설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데 이외의 가장 핵심적인 공통의 구호는 물론 “조선의 완전 독립, 일본군의 완전 철수”였다. 양쪽이 완전한 주권을 가진 나라를 만들고자 했기에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신간회부터 건국준비위원회까지 거의 20년이나 되는 좌우합작 시도들의 역사도 있었다. 주권이라는 것은, 의식 있는 조선인에게는 당연히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식돼 있었다. 이는 그 어떤 비이성적인 “민족주의”의 문제도 아니었다. 자본주의 자체에 적대적이었던 공산주의자들마저도, 자국 유치 산업을 보호하고 자본을 육성할 만한 주권 국가가 없는 경우에 기형적인 종속경제만이 가능하다고 그 강령에서 자주 쓰곤 했다. 그러나 특히 1930년대에 들어 그들은 무엇보다는 중국 침략을 감행하는 일제가 조선인까지 끌어들여 총알받이로 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래서 그들의 강령에서 조선 주권의 회복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국제 반전 연대 등은 나란히 명기되곤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는 바와 달리 민중혁명이 아닌 또 다른 외세들이 일제를 패망시켰으며, 그렇게 해서 얻은 해방 아닌 해방에 바로 분단과 전쟁이 따랐다. 한국 전쟁 시기에 미군 등 유엔군에 의존했던 남한도, 중국군과 소련 무기에 의존했던 북한도 어느 정도 그 주권을 상대화하는 외세 간섭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주권의 문제에 있어서 남북한의 길은 갈리고 말았다. 북한은 1950년대 말부터 중·소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양쪽에 대한 의존성을 상대화해 1960년대 초반에 이르러 세계 무대에서 제3세계의 여러 운동들을 후원하는 하나의 비교적 독립적인 행위자로 역할할 수 있었다. 비록 일파, 일인 독재 권력의 강화와 보조를 맞추어서 획득된 주권화긴 하지만, 북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근대의 하나의 값진 성취물일 것이다. 1990년대 초 이후의 각종 경제적 곤란 속에서도 북한 정권이 여전히 그 정통성을 잃지 않고 대부분 주민들에게 충성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담론적 이유는, 바로 주권에 대한 근대적 열망의 누적이 아닌가 싶다. 주권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고난의 행군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 역시 주권이 오랫동안 유린당해온 근현대사의 산물이다. 한데 남한은 전혀 다른 외교적 궤도를 따랐다. 비록 이제 북한과 비교 못 할 정도로 부강해졌지만, 대미종속의 정도는 가난했던 1950~60년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사실 거의 그대로다. 이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야말로, 대한민국에 사실상 주권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우파가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국익’인데, 보통 저들이 국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들의 집단 사익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의 국익이 있다면 이는 바로 공익, 즉 모두들의 생명, 평화, 행복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국익 차원에서 본다면 사드 배치만큼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생명을 해칠 가능성이 큰 유해시설이며, 이 시설의 배치는 중국 상대 포위망의 하나의 거점으로 한국의 위치를 고착시킨다. 나아가서 가상적의 공격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무력화하기에 군사력 균형에 기반한 지역 평화를 크게 해치는 시설이다. 한국을 하나의 잠재적 전장으로 만들 이런 시설이 한국 땅에 있는 이상, 한국 주민들의 집단적 행복추구권은 그저 무의미한 빈말이 된다. 일부 보수 매체마저도 사드 배치가 한국 경제에 생명 같은 한-중 경협을 해칠 우려를 표명하지만, 이 문제는 ‘경제’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은 대륙 침공을 꿈꿀지도 모를 외세의 병참기지가 된다. 경제뿐만 아니고 모든 차원에서 그 침공의 잠재적인 타깃이 될 나라들로부터 고립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사드에 대한 반대는 거의 식민지 시대의 좌우합작처럼 포괄적이고 거국적이다. 중국 대상 교역과 투자로 먹고사는 기업인들은 물론이고 일부 외교 관료들까지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주 같은 피해지역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주민들도 반대에 나섰다. 그런데도 펜타곤의 ‘요청’대로 사드 배치가 강행되는 배경에, 바로 대한민국 주권의 제한성이 있다고 본다. 군부나 청와대로서는 미국의 ‘요청’에 ‘아니요’라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특기해야 할 것은, 이 문제는 한국의 명목상의 최고권력자가 누구인가와 거의 무관하다는 것이다. 나는 박근혜의 정치 스타일이나 정책을 좋아할 일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박근혜는 여태까지 -주로 재벌들의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중국과의 파트너십 공고화에 계속 공을 들여왔다. 미국의 만류를 무릅쓰고 2015년에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한 것만 해도, 그녀가 챙겨주는 재벌들에 중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에는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는 다소 보기 드물게- 러시아 제재를 가동하지 않아 사실상 중립에 가까운 자세로 일관했다는 것은, 재벌들과 재벌 정부가 가능만 하다면 안보 차원에서 미국에 종속돼도 경제 본위주의적 입장에서 열강 사이의 균형적 실리외교를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박근혜의 대륙 이웃들과의 파트너십 전략 이상으로 노무현 정권의 중국 외교는 더더욱 더 적극적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전에 한-중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내부적인 검토가 먼저 있었으며, “동북아 균형자” 같은 발언들은 중국 쪽에 한국의 상대적 자주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심었다. 한데 노무현은 -지지층 붕괴를 뻔히 각오하면서도- 미국의 ‘요청’대로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으며, 박근혜는 -지배층 안에서조차도 합의되지 않은- 사드 배치를 미국의 ‘요청’대로 추진한다. 거역 못할 이 ‘요청’의 진정한 성격이 무엇인지 과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도 미국의 ‘요청’ 앞에서 이렇게 무력해지는 나라들은 보기가 드물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고 할 캐나다도 이라크 파병을 능히 거절했으며,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국인 터키도 이라크 침략의 동참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침략을 위한 자국 영토 이용도 미군에 거절했다. 이 정도의 주권도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은, 과연 자국민과 자국 영토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1930년대처럼 주권회복과 전쟁반대를 동시에 외쳐야 할 시점이 다시 온 것이다./ 16.8.9
자본주의·탄소, 둘 다 문제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이자 반세계화 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을 처음 본 것은 7년 전 겨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였다. 당시 그곳에서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기후총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하나는 유엔과 정부 대표단의 공식 협상무대인 당사국총회, 다른 하나는 세계 시민들이 마련한 대안적 기후총회 ‘클리마 포럼’. 클라인이 초대된 곳은 후자였다. 잿빛 외투를 입고 수천명 앞에 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코펜하겐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다.”
클라인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번역돼 나왔다. ‘자본주의 대 기후’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책은 논쟁적이다. 읽다보면 기후변화가 삶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기회임을 꿰뚫어보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반면 이념적 급진성을 못 따라가는 실천전략과 디테일 부족이 주는 답답함도 있다. 누군가 이 책의 소감을 묻는다면 ‘비판적 동의’라고 대답할 것 같다.
동의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냉소주의다. 클라인은 “유엔 연례 기후회의는 진지한 협상 공간이라기보다 거액의 비용을 소모하는 고탄소 경제시대의 집단 치료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단언한다. 기후변화의 절박성을 고려하면 유엔의 협상 속도가 빙하 녹는 속도보다 느리다는 시민단체들의 비난은 정당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비판이 유엔 무용론으로까지 번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유엔이라는 우산 바깥에서 국가이기주의에 흠뻑 젖은 나라들이 벌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기후 재앙을 오히려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클라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 필요한 급진적인 변화이다. 전환의 물리적 측면, 즉 더러운 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나 승용차에서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은 그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해법들이 시행되지 못하도록 봉쇄해온 권력과 이데올로기 장벽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클라인은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라고 결론내리면서도 사회주의보다는 공공부문 복원과 ‘관리된 역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관리된 역성장은 성장률을 낮추거나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만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발전방식이자 ‘맹목적인 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질서 있는 후퇴’를 말한다. 클라인의 생각에 따르면, 역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친환경 소비’가 아니라 ‘더 적은 소비’다. 더 적은 소비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이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장거리 운송수단을 통해 수입된 식품 구매를 줄이고, 내구성 강한 상품을 구입하고, 집 평수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집이 홀라당 타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끄기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문제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도 좋은 양자택일의 구도로 치환하면서 생긴다. 탄소와 자본주의, 자본주의와 기후, 친환경 소비와 더 적은 소비, 점진적인 태도와 급진적인 접근의 대비는 문제의 본질을 쉽게 이해하게 돕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자본주의 문제면서 동시에 탄소의 문제다. 기후변화에는 인간 욕망이나 기술 진보 등 자본주의 울타리 바깥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친환경 소비의 가능성을 봉쇄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더 적은 소비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국민 기본소득 보장, 무역법률 개정, 원주민 권리 인정 등 책에 담긴 급진적인 제안들은 모두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클라인 스스로 말한 것처럼 급진적인 방식을 택한다 해서 더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16.7.20
러브록과 히로세
환경생태 운동가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견해는 완전한 긍정에서 완전한 부정에 이르기까지 폭이 매우 넓다. 완전한 긍정의 대표 격은 영국의 녹색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다. 그는 인류문명을 멸망시킬 국면에 도달한 기후변화를 막는 길은 원자력발전소를 수천개 건설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완전한 부정의 대표 격이라 할 만한 사람은 일본의 반원전 저술가 히로세 다카시다. 그는 기후변화론이 원자력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두 사람 모두 인류의 미래를 깊게 걱정한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한 사람은 원자력을 구세주로, 또 한 사람은 원자력을 최대의 악으로 본다는 면에서 정반대지만 공통점은 또 있다. 오직 한 가지 사안에 붙들려 있다는 것이다. 러브록은 기후변화를 막는 것만이 최선이고, 히로세에게는 원자력발전을 없애는 것이 최대 과제이다. 그러므로 러브록에게는 원자력발전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면 위험하더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히로세에게는 기후변화론이 원자력발전의 부흥을 가져온다면 반드시 부정해야 할 것이 되는 것이다.
근대의 주요 성과 중 하나는 자연현상에 대해 성찰적 접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자연현상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자연적 사건 앞에서 풍문이나 믿음에 쉽게 끌려갔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발달은 이러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성찰적인 거리두기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학적인 원인규명이 가능한 사건들에 대해거리를 두고 다각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대응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러브록이나 히로세의 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과학자나 저술가도 성찰적 거리두기에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미세먼지 발생에 디젤차와 고등어구이도 한몫한다는 발표나 그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최근의 대표적인 예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비슷한 예에 속한다.
미세먼지는 사실 발전소나 자동차 같은 근대적 성취의 부산물이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두려움도 근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삶의 조건과 수명이 크게 향상되고 늘어났기 때문에 두려움도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세먼지를 바라보는 방식도 근대가 가능하게 해준 성찰적인 것이어야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자동차와 아파트 창문을 꼭꼭 닫아놓는 것이 좋은지, 그렇더라도 환기를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봐야 하고, 고등어를 구울 때만 미세먼지가 나오는지 다른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때는 그렇지 않은지, 채소를 볶거나 튀길 때는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도로에서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더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창문을 꼭꼭 닫아놓을 경우 실내 공기질이 미세먼지가 많은 외부공기와 비교해서 어떨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한국의 주택, 사무실, 학교의 공기질은 실내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사람들이 숨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미세먼지가 많더라도 바깥공기로 환기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위험이 닥치거나 닥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 즉각 반응한다. 근대 이전에는 이런 반응이 올바른 대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사태 앞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종종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시대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백명이 사망하고, 고등어 판매상이 도산 지경이 된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보다 성찰적 접근 능력이 더 높은 사람들의 책임이 막중할 터인데, 이들도 즉각적 반응이라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경향 16.7.6
2017년,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
경제 전체가 세월호처럼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데,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나라에서 경제위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낙관에 낙관을 더해도 앞으로 남은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낸 시간의 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 가장 절망했던가? 내 경우엔, 그리고 아마도 우리 세대에겐 1980년이다. 36년 전 이즈음, 나는 최근에 돌아가신 외삼촌 집에 ‘숨어’ 있었다. 광주에서 수천명이 죽고, 1만명의 체포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던 흉흉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절망이다. 또다시 “국가가 무엇인가, 이런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국가는 20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직접 죽이거나(광주), 죽음을 방조했다(세월호). 1980년의 사진은 몇 년이 지나서야 지하에서 퍼져 나갔지만, 이번엔 TV 화면으로 생중계됐다. 전자는 18년의 군사독재를 연장하려 했기 때문에, 후자는 20년에 걸친 규제 완화 때문에 발생했다. 교황 말씀대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다.
세월호의 침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습기 살균제다. 환경부, 산업부, 보건복지부는 단계마다 막을 수 있었지만 규제 완화의 기치 아래 오히려 방조했다. 현재 밝혀진 사망자 수 266명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사용자가 몇백만명에 이르고, 더구나 주로 환자나 젖먹이, 노인을 대상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죽음, ‘강남역 살인사건’은 다시 한번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여성 억압이라는 고질에 현재의 사회경제 상황이 덧붙여져 일어났다. 현재의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더 큰 규모로, 양상을 달리해서 재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만큼이나 오랜 시간, 지난 36년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1인당 총생산액으로 보면 1980년 1703달러(명목)에서 2015년 2만7213달러로 늘었으니 우리는 물질적으로 16배나 풍요로워졌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적의 사례다.
하지만 행복, 나아가 희망도 그렇게 불어났을까? ‘헬조선’과 ‘흙수저’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36년 전의 나를 비교해보면 오히려 희망은 16분의 1로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엔 절망했지만 머지않아(길어도 10년 내에)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7년 뒤, 세상은 한번 뒤집어졌다.
앞으로 그럴 수 있을까?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다. 중늙은이의 눈이라 비관적일까, 아니 객관적인 수치만 봐도 단기적으로는 훨씬 더 나빠질 것이다. 지난 8년간 그랬듯, 지금 하향 수정되고 있는 경제성장률(2.6~3.0%)은 결국 1% 중·후반대로 판명날 것이다. 조선과 해운 산업, 즉 세계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이 바야흐로 내수산업까지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에 분통 터뜨려 알리바이 만드는 대통령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대수술을 해야 하는 구조조정은 지극히 어렵다. 누구나 흔쾌하게 동의하는 답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러려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2년째 밀실에서 수군대기만 하는 채권단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엉뚱하게 ‘양적완화’라는 이름을 붙여 쓸데없는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얼마나, 어떻게 자금을 조성할 것인지 국회에서 결정해야 한다(어차피 먼저 재정을 투입하고, 이후에 국채를 발행해야 하며 어떤 방식을 택하든 법을 개정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나아가 전체 경제로 확산될 실업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서 경제 회복으로 나아갈지가 구조조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의 전제는 각 산업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전문화한다거나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서 조선 산업의 새 단계를 열겠다는 식의 그림 말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 인프라 투자는 실업 극복과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국회에 분통을 터뜨려서 알리바이 만드는 데 여념이 없던 대통령은 또다시 외유에 나섰다. 장두노미(머리는 숨겼으나 꼬리가 드러나 있다)와 혼용무도(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만큼 이 정부를 잘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 다행히 우리는 절망 속에서 언제나 일어섰다. 지난 4월의 총선은 예고되어 있던 박 대통령의 파시즘을 막았다. 2017년, 다시 한번 나라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시사인 455호 16.6.10
개혁으로 포장된 ‘규제 완화’
“규제 개혁, 미래를 위한 생존전략입니다.” 얼마 전부터 거리 전광판마다 일제히 등장한 글귀다. 왠지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규제 개혁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의도와 생존전략이라는 낱말이 주는 위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규제 개혁이라는 말은 중립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시시비비 대상에서 비켜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외치는 규제 개혁은 반쪽짜리다. 규제 강화는 없고 오직 규제 철폐만 있다. ‘규제는 쳐부술 원수이자 암덩어리’이고,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릴 것’이라던 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만일 정부가 규제 개혁을 생존전략으로 인식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생존이 ‘돈벌이’만 뜻하는 게 아니라면, 규제 개혁이 가장 합리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곳은 생명안전 분야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미세먼지 공포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렇다. 이 두 가지 사태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국민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암덩어리는 규제가 아니라 규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규제 완화’였음이 드러난다.
어찌됐든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구제를 주문하고 미세먼지와 관련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이 사태의 심각성과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처럼 정치적 생색내기나 헛다리짚기가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난으로 기록될 것이다. 피해 규모와 범위가 이탈리아의 세베소 사건이나 스위스의 산도즈 사고, 더 나아가 미국의 러브캐널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망자만 266명에 달하는 이 사건을 국제사회는 ‘한국판 미나마타 참사’로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핵심은 책임 규명, 피해자 구제, 재발방지책 마련 세 가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검찰이 수사 범위를 넓혀 공무원들까지 수사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명단은 이미 나와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피해자 판정과 배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잠재적 피해자 수가 약 800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억울한 사람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특히 3·4등급 피해자들의 구제 여부는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재발방지책 마련은 분리돼 있는 공산품 안전관리와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통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환경재난 관점에서 보면 미세먼지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천식과 급성 심정지로 인한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지 오래다. 국내외에서 나온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내뿜는 초미세먼지만으로도 한 해 최소 1000명 이상이 조기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유차 등 다른 배출원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사망자 수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는 피해가 확인된 이상 회피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미세먼지 공습은 피하려야 피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더더욱 배출원에 대책을 집중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금지한 것처럼 ‘소리 없는 살인자’들의 손발을 묶어 가능한 한 빠르게 퇴출시켜야 한다. 최대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소와 경유차는 그대로 두고 고등어구이로 초점을 흐리는 얄팍한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미세먼지가 상징하는 복합위기는 이렇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민 생명과 기업 이윤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는 나라인가./ 안병옥|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경향 16.5.25
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잘하면 이번 선거 결과가 한국 경제의 회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기 부추기기·규제 완화밖에 모르고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야 경제가 산다는 대통령의 아집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아마도 선거 얘기를 써야 하는 정치 쪽 필자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리라. 그분들이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하겠지만 가장 확실한 사실 하나는 이번 선거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박 대통령은 말마다 ‘국회 탓’이요, ‘야당 탓’이었다. 경제에 대한 진단도 그때그때 달랐다. 국회 탓에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가, 외국에 나가거나 자신의 취임 3주년 때는 정부의 올바른 정책 덕에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총선 하루 전인 4월12일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 한다”라며 노골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의 뜻을 표명했다. 국민은 수도권에서 벚꽃잎처럼 붉은색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림으로 답했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수출은 1년 넘게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두 자릿수로 줄어들던 수출이 ‘신차 효과’로 3월에는 8% 감소에 그쳤다는 게 자랑일 정도다. 한국 수출의 절반가량을 소화하던 아시아 시장이 단기간에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각 경제주체 역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라’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가계부채를 한껏 부풀렸다. 지난해 말에 1200조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증가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를 늘릴 간 큰 사람은 없다. 기업 부채 역시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 기업의 총부채(은행 대출+비은행 대출+회사채+기타 채무)는 2015년 1분기 말에 2347조원을 기록했다. GDP 대비 150%에 이르는 기업 부채를 지닌 나라는 신흥국 중에는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구조조정’ 대상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수출과 소비가 모두 최악이고 기업의 재정 상황마저 좋지 않다면 설비투자가 늘어날 리 없다. 작년에는 5%대의 기업 투자가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올해에는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일 것이다. 이제 최후의 소비자·투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가 남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정권 8년 만에 국가 채무도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2009년 300조원을 돌파한 국가 채무는 지난해 590조5000억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올해에는 정부 예측으로도 GDP의 40%를 돌파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국 경제를 기사회생시킬 수도 있다. 경제정책이라곤 투기 부추기기와 규제 완화밖에 모르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해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야, 즉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야 경제가 산다는 대통령의 아집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주목해야 할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새로운 정책 기조로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웠다. 두 당을 합쳐야 과반이 안 되지만 국민의당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최경환 전 부총리도 취임할 때는 임금이 올라야 한다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치가 시장의 1차 분배에 직접 개입할 방법은 별로 없다. 하여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은 주체의 세력화와 사회적 합의다.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 영세 자영업자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노동조합에게는 산업별 또는 지역별 단체교섭권, 하청기업에게는 하청단가의 단체협상권, 자영업자들에게는 단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뉴딜의 핵심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확대한 와그너법이었다. 스웨덴의 노동조합총연맹(LO)과 사회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론의 1960년대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정책(또는 임금정책)을 성공시켰다. 연대임금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책(렌-마이드너 플랜)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와 비교하면 지금 한국은 훨씬 유리하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했기에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했지만 지금은 임금(노동분배율)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다만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폭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보다 훨씬 낮아야 할 것이다. 임금과 고용, 그리고 생산성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는 빈사 상태에 몰린 한국의 대기업이 살아날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은 시장 분배에 정치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마침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시도 중인 최고임금제 도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새롭게 구성된 20대 국회가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궁금한 질문으로 글을 맺는다. “지금 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시사인 449호 16.4.25
‘카나리아’를 죽이는 세상
다이앤 포시. 르완다에서 산악고릴라의 생태를 연구하며 밀렵 근절운동을 벌인 동물학자. 198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캠프 숙소에서 살해당했다. 손도끼로 얼굴을 난자당한 끔찍한 죽음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조지 애덤슨. ‘사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운동가이자 작가. 아내 조이와 함께 펴낸 책 <본 프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돼 영화 <야성의 엘자>로 만들어졌다. 1989년 8월20일 케냐 코라 국립공원 캠프 인근에서 소말리아 산적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치코 멘데스. 고무 수액 채취노동자 출신 환경운동가이며 브라질 아마존 보호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1989년 12월22일 그가 고소하려 했던 축산업자에 의해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그해 브라질에서 살해된 운동가 가운데 19번째 희생자였다.
켄 사로위와. 나이지리아 오고니족 출신으로 작가이자 인권·환경운동가. 석유 다국적기업 로열더치셸과 정부에 맞서 토양오염과 수질오염 실태를 폭로했다. 8명의 활동가와 함께 체포됐는데, 변호사도 없이 진행된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11월10일 교수형당했다.
제인 팁슨. 영국 남서부 데본 출신의 여성 동물복지운동가. 카리브제도 세인트 루시아에 살면서 오랫동안 고래보호운동을 펼쳤다. 관광용 돌고래전시관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2003년 9월17일 새벽 살인청부업자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도로시 스탱 수녀. 브라질에서 아마존 파괴에 항거하는 환경운동과 원주민 자활운동을 펼친 아마존의 성녀. 2005년 2월12일 대농장주와 벌목꾼들이 원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자, 이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길에 두 명의 사내에게 살해됐다.
게리 오르테가. 필리핀 팔라완의 수의과 의사이자 라디오 진행자. 팔라완 광산 개발 저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1년 1월24일 광산개발금지법 제정 10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려고 마닐라로 향하다 괴한이 발사한 총탄을 머리에 맞고 숨을 거두었다.
추트 우띠. 보호지역 숲에서 이루어지는 불법벌목과 이를 묵인하는 군부에 맞서 싸운 캄보디아의 환경운동가. 2012년 4월26일 신문기자 2명을 코콩 보호지역 숲으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퍼윈 라멘. 파키스탄의 여성 사회운동가. 카라치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 확보를 위해 헌신했다. 2013년 3월13일 무장괴한 네 명에게 살해당했다.
제이로 모라. 코스타리카 동물구조대 단원. 2013년 5월30일 밤 장수거북 알들의 도난을 막기 위해 해변을 순찰하다 복면 괴한들에게 납치·살해됐다.
베르타 카세레스.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이자 원주민 인권운동가. 자연과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수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2016년 3월3일 라에스페란사에 있는 자택에 침입한 무장 괴한들의 총격으로 살해됐다. 그녀의 죽음은 힐러리 클린턴이 이끄는 미국 국무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했던 2009년 군부쿠데타의 유산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은 환경과 인권을 지키다 살해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피살된 환경운동가 수는 기록된 것만 991명이라고 한다. 살인자들은 처벌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든 생명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면 호명되지 않았다 해서 죽음의 무게까지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슬픔과 분노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 환경운동가들의 숙명은 유독가스가 꽉 찼음을 말해주는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경향 16.3.9
언론이 만드는 ‘무뢰한 혹은 영웅’
팩트TV와 국회방송은 필리버스터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며 테러방지법의 쟁점을 보여주었다. 주류 언론이 부재했기 때문에 오히려 필리버스터 과정이 여과 없이 드러날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로 인해 요 며칠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100여 명의 야당 의원이 공히 4시간 이상을 감당해야 테러방지법 2월 회기 통과를 막아낼 수 있고, 여당과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3월 회기를 막아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상당하다. 가장 큰 파장은 야당의 분열과 무능력에 분노하던 지지층의 결집이다. 젊고 능력 있는 정치인의 존재를 알린 김광진 의원의 첫 토론에서부터 모두가 주저하던 첫날 밤을 헌신성으로 채워넣은 은수미 의원의 밤샘 토론에 이르기까지 야당 의원들의 결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보수 신문과 종편에 의해 매도되었던 바로 그 종북주의자, 운동권, 무능력자들의 현주소라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분명하다. 각각 몇 시간씩 토론이 이어지는 힘든 과정 속에서도 핵심 쟁점들을 찬찬히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전문성으로 다져진 그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한심한 과격분자에 싸움꾼 패거리로 매도되기만 했던 그들의 애로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팩트TV와 국회방송의 힘이 컸다. 편집 없이 계속된 실시간 방송은 테러방지법의 쟁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우리 국민의 체질을 고려하면, 테러방지법이 ‘국정원 권한 강화법’이라는 정도는 이해하고도 남았으리라 보인다.
국회 안에서 누가 막말을 하고 누가 무례를 범하는지 날것으로 보여준 것도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여당의 일방주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보여주는, 말 그대로 생방송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류 언론에 제대로 실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겠나. 필리버스터의 현장은 이처럼 언론에 의해 무뢰한도, 영웅도 될 수 있는 드라마틱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역으로 보수 정권이 언론 장악에 온 힘을 기울여온 이유를 설명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종편의 도입, KBS·MBC의 지배구조 보수화는 오로지 정부·여당과 대통령의 관점에서 국회를 재단하고 논평하는 방송 시스템을 합법적으로 구축해온 과정이다. 그 결과 야당은 이제껏 정쟁과 무능력에 빠진, 민생 외면의 존재로 왜곡되어왔다. 그런 그들의 다른 면모가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여과 없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담아내고 해석하는 주류 언론의 부재 때문이다. 이처럼 주류 언론의 부재가 오히려 공정성을 담보하는 결정적 장치라는 사실은 기레기 논쟁으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이다.
청정 지역으로 여겨지던 E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이루어진 EBS 감사 선임 소식은 매우 유감이다. 이는 마지막 청정 지역으로 여겨지던 EBS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EBS 감사로 선임된 인사는 교학사 교과서의 보급을 적극 옹호하고 뉴라이트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동아일보> 출신 인사다. 이 때문에 이명희 사장 후보가 선임되지 못한 데 대한 대응 인사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신임 우종범 사장 선임 이후 넉 달이나 지연되다 갑자기 진행된 인사라는 점, 방송 전문성도 교육 전문성도 갖추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은 그동안의 감사 선임 사례에 비추어볼 때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EBS 라디오에서 시작된 <코리안 미러클>이라는 낯선 다큐 드라마는 교체된 이사회와 사장의 행보를 주시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책을 읽는 라디오, 외국어 교육방송을 표방하는 EBS 라디오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낮과 밤, 일요일까지 본방·재방·삼방을 거듭한다. EBS와 KDI(한국개발연구원)가 공동 제작했다는 이 드라마는 무려 100부작에 이르는데, ‘절대 빈곤과 싸워야 했던 시절, 오늘의 경제대국 대한민국 경제 70년을 조명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에피소드에는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무지한 관료들 사이에서 오로지 한 사람의 지도자만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아무도 고속도로를 모를 때 고속도로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유일한 인물임이 강조된다.
이는 시민사회단체가 그토록 우려했던, EBS를 활용한 현대사 교육의 출발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방송이 대통령이 원하는 현대사의 전달 창구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보수 정부하에서는 우려가 우려로 끝나지 않고 끝내 현실로 나타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모두가 언론 감시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시사인 442호 16.3.2
에너지 권력이 문제다
미국의 에너지 석학 에머리 로빈스가 쓴 책 <불의 재창조>(reinventing fire)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등장한다. “상상해 보라. 모든 공포에서 해방된 에너지를. 기후변화, 기름유출 사고, 광부들의 죽음, 매캐한 공기, 황무지로 변한 땅, 야생동식물 멸종, 에너지 빈곤, 석유 전쟁, 폭압, 테러리스트,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고갈되거나 차단되지 않는, 그리하여 누구든지 영원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하고 접근 가능한 그런 에너지를.” 로빈스가 말하는 에너지는 아래에서 파낸 과거의 불과 달리, 위에서 흐르며 어디서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새로운 불, 바로 햇빛과 바람이다. 새로운 불에는 효율을 개선해 아낀 에너지도 포함된다.
로빈스의 책이 주목을 받던 2011년, 에너지정책 분야의 한 저명 학술지에는 2030년까지 세계 에너지의 100%를 바람, 물, 햇빛만으로 공급할 수 있음을 논증한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논문 저자 스탠퍼드대학 마크 제이콥슨 교수는 장단점이 다른 재생에너지들을 연계해서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석탄과 원자력 없이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그가 발표한 새 논문은 보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담고 있다. 미국에서 100% 재생에너지 이용은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연간 약 6000억달러의 의료비용과 3조3000억달러의 지구온난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경제성 면에서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 금액을 환산하면 미국인 1인당 매년 약 8300달러에 상당하는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100% 재생에너지’ 시나리오의 원조는 유럽이다. 1975년 사이언스지에 이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벤트 쇠렌센이었다. 독일에서는 2010년 다큐멘터리영화 <4차 혁명>이 개봉되면서 ‘100% 재생에너지 사회’ 개념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는 무함마드 유누스, 헤르만 셰어 같은 저명인사들이 등장해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역설한다. 영화 <4차 혁명>은 태양광 사업가, 예술서적 출판업자, 발도르프 학교 종사자 등 150여명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년 말 타결된 파리협정은 ‘100% 재생에너지 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새로 설치되는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석탄, 천연가스, 석유를 모두 합친 양을 앞질렀으며 이 추세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부터, 이미 승자와 패자는 가려진 상태였다. 2030년이 되면 재생에너지 설비가 화석연료 신규 설비용량의 4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생에너지는 이미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 재생에너지 기업의 연간 매출은 1300억유로를 넘어섰고 매년 300억유로에 상당하는 화석연료 수입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 일자리는 약 100만개,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스페인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3억2600만t이다. 유럽에서 1인당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세계 평균의 3배까지 증가한 데는 ‘시민 중심’과 ‘공동체 기반’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흔들림 없이 추구해온 덕이 컸다.
유럽에서 에너지 권력은 거대 에너지기업에서 시민들이 모인 개미군단으로 이동한 지 오래다. 2015년 독일의 에너지협동조합 수는 800여개, 유럽 전역에서는 2400개가 넘는다. 150여개 지역과 도시가 참여하는 독일의 ‘100% 재생에너지 동맹’은 에너지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시민 에너지’ 개념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00% 재생에너지 사회’의 장애물은 기술과 경제성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의 결핍, 다시 말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산업의 로비를 뚫고 에너지 권력을 시민에게 되돌려주고자 하는 정치세력의 부재에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다시 에너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유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경향 16.2.24
친일은 왜 단죄해야 하는가
‘친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행위다.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경우를 보라. 식민지 시대 부역자들이 그대로 권력을 이어받은 사회가 아니라면 자국민을 식민지 백성처럼 대하는 일은 가능하겠는가?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민족정기’가 아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권력과 폭력이 거의 동의어가 된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 폭력화의 한 주범인 친일파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결국 사회 전반의 탈폭력화의 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친일 문제를 거론하려 하면 민족주의자로 오해받기가 쉽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친일에 대한 단죄는 바로 민족주의적 논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한데 친일을 단죄하자면 굳이 ‘민족’이라는 프레임을 위주로 논리를 전개할 필요는 사실상 없다. 일제 강점기의 정치적 지배 관계는 “이민족 지배”라는 차원에서는 물론 ‘민족’을 궁극적으로 비켜갈 수 없지만 ‘친일’의 ‘일’은 ‘민족’으로서의 일본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 ‘민족’의 언어나 문화에 정통하고, 일본 동지들과 연대한다는 것은 결코 정치적 의미의 ‘친일’로 이어질 필연성은 없었다.
김천해(1898~?)를 기억하는가? 울산 출신의 승려이자 계몽운동가로서 1921년에 도쿄로 건너간 그는 거기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나아가서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일본 공산당으로 흡수되고 나서는 일본 공산당의 중앙위원이 됐다. 일제 시절에 도합 12년이나 감옥에서 보냈는데도 끝까지 전향을 거부한 김천해는 수많은 일본인 동지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일본어나 일본 문화에 조예가 깊었다. 한데 일본인들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그를, 과연 누가 ‘친일파’라 부르겠는가? 일본어로 쓴 소설로 일제 시절 차별받는 조선인들의 이중적 정체성이나 ‘동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의 내면화 과정을 뛰어나게 묘사한 김사량(1914~1950)은 과연 ‘친일파’인가? ‘친일’의 ‘일’은 결국 ‘일본’이라기보다는 ‘일제’를 가리킨다. ‘친일파’는 정확히 말하면, 일제식민당국이라는 정통성 없는 권력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거래”를 자발적으로 진행한, 특히 이미 광의의 지배자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점하려 하는 피식민 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그들의 행위는, ‘민족적 배신’이라기보다는 “무법적 권력에 대한 부역”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계급사회의 권력은 늘 내재적으로 폭력적이다. 예컨대 계급지배관계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 절차 따위가 없을 때가 많다. 최근에 새로이 각광받은 <게공선>으로 유명한 일본의 프로문학자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를 기억하는가? 공산당원인 그는, <1928년 3월15일>이라는 소설(1928년)에서 경찰들의 고문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공교롭게도 본인도 결국 검거당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공산당원이나 아나키스트 등 체제의 적극적 반대자에 대해서 체제는 종종 고문이라는 노골적인 폭력으로 대응했다. 한데 보통의 경우에는 일본 ‘내지’, 즉 자국 내에서는 일제 당국자들이 고문 등 극단적 폭력의 사용을 자제했다. 근대적 권력은 아무리 내재적으로 폭력적이라 해도, 그래도 ‘국민’ 다수의 동의를 기반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자국 내에서는 법·절차를 내세우게 돼 있다. ‘국민 국가’란 으레 그런 것이다.
한데 자국 내에서는 아무리 ‘자제’한다 해도 식민지나 점령지에서는 근대 국민 국가의 폭력성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식민지의 인민들은 ‘국민’이 아니거나 ‘2등 국민’이었기 때문에 자국 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식민지에서는 거리낌 없이 해도 된다. 일본 ‘내지’에서는 급진적 활동가가 아닌 경우 고문은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피의자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폭력적 수사는 그냥 다반사였다. 공산주의자이긴커녕 열렬한 반공주의자이자 거물 친일파 윤치호의 사촌동생이기도 한-나중에 이승만의 측근이 되었고 박정희 시절에는 서울시장과 공화당 의장까지 지낸-윤치영(1898~1996)마저도 온건한 유지급 인물들의 단체인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1938년에 투옥됐을 때에 상당한 수준의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만약 ‘내지인’, 즉 일본인이라면 고문을 당했을 리가 없다. 한데 식민지에서라면, 일본인 형사에게는 가장 부유하고 보수적인 조선인 명망가마저도 그저 일개 폭력의 대상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친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행위다. ‘민족’을 떠나서 이런 행위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곳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부역행위를 하다 보면 본인도 결국 타자들을 향해서 그 노골적인 폭력을 대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친일행위는 국내적으로도 토착사회 위에서 군림하는 폭력조직인 식민당국의 일원이 되고 폭력 종범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국제적으로도 일제의 가해행위에 가담하여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컨대 박정희의 괴뢰 만주국 보병 제8사단 복무와 (아마도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한 것으로 추측되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토벌’ 참가는 ‘민족 배신’ 차원을 넘어 나중에 동경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전쟁범죄인 일제의 중국 침략에 가담한 행위였다. 사실 상당수의 친일파들이 피침략 국가에서는 ‘악질적 침략 종범’의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나중에 문교부 장관과 여러 대학의 총장을 지내고 박정희의 ‘역사 교사’로 이름을 날린 사학자 이선근(1905~1983)은 만주국에서 일군에 군량미를 납부하는 안가농장을 관리했던 시절에 중국인에 대한 가혹한 태도로 중국 농민 사이에 악명을 떨쳤다. 친일파들의 이와 같은 중국 침략 가담은, 결국 나중에 연변의 조선인들을 보는 중국 사회 일각의 시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등 오랫동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게 된다.
‘민족 배신’이라기보다는, 국내외적 권력형 폭력에의 가담이야말로 ‘친일파 문제’의 핵심이다.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되찾는’ 일이라기보다는, 폭력 사회에서 정상 사회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친일파가 초기부터 사실상 권력을 그대로 승계해온 대한민국의 명백한 특징은, 식민지적 폭력성이 그대로 이어져 오히려 확산된 것이었다. 조선인이라면 아무나 무조건 고문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친일경찰 출신들이나, 중국 등지에서 현지인을 학살하는 일에 익숙해진 일군 장교 출신들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도 자국민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다. 광복 70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파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아마도 광복 100주년이 돼도 계속 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절대적 보호 아래서 반공의 ‘보루’가 되어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친일파들이 구사해온 식민지적 대민통치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경우를 보라. 그를 조준해서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의 행위를, 마땅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로 규정해야 한다. 정상 사회에서 경찰의 업무는 ‘질서 유지’라면, 그 어떤 폭력행위도 하지 않았던 백남기 농민에게 일부러 죽이려 하듯 물대포를 쏜 것은 ‘자국민과의 전쟁’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이 권력형 범죄행각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도 책임자 처벌도 없다. 일부 지배층을 제외한 나머지 자국민들을 말을 잘 들으면 단순한 통치 대상으로, 말을 약간이라도 듣지 않으려 하면 제압해야 할 적으로 파악하는 듯한 통치방식은, 과연 어디에서 파생된 것인가? 식민지 시대 부역자들이 그대로 권력을 이어받은 사회가 아니라면 자국민을 식민지 백성처럼 대하는 일은 가능하겠는가?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고 억압적 느낌이 강한 ‘민족정기’가 아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권력과 폭력이 거의 동의어가 된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성인 사회의 만연된 폭력이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주먹이 곧 정의라고 배워버리고 만다. 한국 사회 폭력화의 한 주범인 친일파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결국 사회 전반의 탈폭력화의 한 출발점이 될 것을,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열망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16.2.23
65년만의 짧은 만남, 할머니는 왜 백두산에 올랐나
이순규 할머니의 애절한 눈물, 분단의 비극으로 넘길 수 있나
“2차 대전의 연인 극적 재회.”
2016년 2월, 영국의 88세 여성과 미국의 93세 ‘참전용사’의 재회를 보도하며 내세운 표제들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공영방송이 앞 다퉈 보도할 정도로 ‘세기의 연인’은 세계적 화제였다.
군인 토머스는 1944년 런던에서 모리스를 만나 연인이 되었지만 상륙작전에 투입됐고 종전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다른 이와 결혼했다. 모리스는 남편과 호주로 이주해 30년을 살다가 이혼했고, 토머스는 10년 전에 아내와 사별했다. 모리스는 아들에게 인터넷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들은 고령의 토머스가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했다는 지역신문 기사를 찾아냈다. 두 사람이 자녀들 도움으로 화상 채팅을 한 사연이 인터넷으로 알려지자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다. 토머스가 호주로 갈 돈이 모아졌고 항공사는 항공권을 제공했다. 재회한 남녀는 포옹한 뒤 입맞춤을 했다. 더 이어진 기사를 최소한으로 줄인 이유는 참담해서다. 두 연인이 화제가 된 날, 한 방송사가 86세 이순규 님(이하 존칭생략)이 백두산에 오른 사실을 화면에 담았다. 지난 가을, 전쟁으로 신혼 7개월에 남편과 헤어져 65년 만에 재회한 분이다.
“열흘만 훈련받고 올게”라던 남편을 기다리며 열아홉 살 신부는 임신한 아들을 낳아 키웠고, 삯바느질로 시댁 대식구를 건사했다. 두 사람이 80대로 상봉한 현장에 아버지를 처음 보러 60대 아들이 함께 했다.
▲ 지난 2015년 10월20일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순규 할머니(85,왼쪽)가 북측에서 온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를 보고 수줍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겨우 12시간을 만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순규는 지아비와 약속했듯이 보름달 뜨면 집 밖으로 나와 ‘늙은 아들’과 함께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이 사무쳐 가장 가까운 곳이라도 간다며 백두산을 찾았다. 충북 청주에서 중국을 거쳐 구천리를 지나온 이순규는 천지에 올라 영하 20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신랑”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상봉장에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난다며 훔쳤다.
이순규와 모리스. 두 80대 후반 여성이 지나온 생은 어떤가. 모리스는 다른 이와 30년을 살았다. 이순규는 열아홉 ‘청상’으로 홀로 살았다. 65년 만에 만난 남편과 짧은 상봉 뒤 지금까지 못 만나고 있다. 이순규의 백두산 길에는 네티즌의 모금도, 항공사의 항공편 제공도 들리지 않았다. 천지에서 남편을 부르는 애절한 외침을 보도한 신문은 없다. 모리스와 대조적이지 않은가.
물론, 지난 가을 상봉 때 이미 보도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차분히 짚어보자. 모리스와 토마스의 해후에 열광한 지구촌 사람들은 이순규의 비극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과연 그들은 이해조차 할 수 있을까. 첫 상봉 때만 호기심 가득해 보도한 뒤 까맣게 잊은 채 모리스의 연애를 앞 다퉈 보도한 한국 언론을 어떻게 여길까.
그렇다. ‘헬 조선’은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리스는 부각하고 이순규의 그리움은 모르쇠한 언론은 지금 이 순간도 남북관계를 파탄 낸 권력에 장단 맞추고 있다. 김정은의 조급한 핵실험과 미사일을 옹호할 뜻은 전혀 없다. 하지만‘통일 대박’을 노래하던 박근혜는 이순규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개성공단을 없앤 박근혜는 또 어떻게 다가왔을까.
남북관계가 ‘박정희 시대’로 되돌아가고 이산가족 재상봉이 사실상 닫힌 오늘,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남과 북에서 지난 60여년 권력을 누린 자들은 이산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창구 하나 만들어놓지 못할 만큼 바빴던가. 혹은 뻔뻔했던가.
어찌 권력자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 수많은 ‘이순규’의 애절한 눈물을 너무 쉽게 ‘분단의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넘겨왔고 지금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순규의 길, 청상의 순애로 평생을 살아간 여성들 앞에 용서를 구한다. 이 ‘헬 조선’에서 언론인으로 참 편히 살아온 내 삶이 부끄러운 오늘이다. / 손석춘 언론인 /미디어오늘 16.2.17
정치 포르노’의 시대
종편의 킬러 콘텐츠는 시사 토크에 집중된다. 이들에게 다가올 총선은 대목 중의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 방송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미디어법 개정 논의의 주요 쟁점은 보수 신문의 방송 진출이 우리 사회에 미칠 후유증에 관한 것이었다. 미디어법 통과를 반대했던 대다수 학자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신문·방송 겸영이 여론시장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수 신문들의 방송 진출로 인해 방송의 보수화가 가속화되고, 결국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30년 장기 집권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종편(종합편성채널) 5년차를 맞이한 지금, 이러한 종편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JTBC의 이례적 행보를 제외하면 말이다. 종편의 출현 이후 우리 사회의 여론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방송 프로그램의 보수화와 쏠림 현상은 거의 위협적인 수준이다. 종편으로 인해 심화된 방송사 간 경쟁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논의와 서비스를 대거 축소시켰으며, 재허가권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의견이 절대다수를 점유하도록 만들고 있다.
더구나 뻔한 규모의 방송 광고시장에 4개의 종편이 한꺼번에 들어옴으로써 야기된 시청률 경쟁도 문제다. 종편은 정부·여당을 비호하고 보수적 지지 기반을 확산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뿐 아니라, 방송사를 유지 존속시키기 위한 경제적 필요를 반영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책임하고도 공격적인 정치 토크의 범람은 그 자체가 정치적 존립 이유이자 시청률을 담보하는 생존 수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종편의 킬러 콘텐츠는 시사 토크에 집중된다. 이는 제작비가 저렴할 뿐 아니라 존재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종편식 정치 포르노라고도 부른다. 정치를 맥락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재가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감각적인 재미가 있다. 그리하여 종편은 이미 지상파 다음으로 시청률이 높은 채널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시청률은 급등한다. 물론 극도의 자극성이라는 장치를 제외하면 시사 토크가 가지는 미덕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지독한 편파성에 기반한 콘텐츠라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누가 권력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 중 하나라고 동의해줄 수 있겠나. 장담하건대, 정부·여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비호하고 옹호하는 매체 특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종편은 여전히 시한부 매체일 뿐이다.
이처럼 시사 토크를 주 종목으로 하는 종편 채널들에게 이번 총선은 대목 중의 대목이 될 것이다. 실제로 2012년 총선은 종편이 약진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여과 없는 막말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데 기여했다. 선거 특집 프로그램은 새누리당의 독무대였으며, 대놓고 새누리당 후보를 홍보하는 매체로 기능했다.
‘가장 편파적인 종편 프로그램’ 퇴출운동을 해볼 수는 없을까
당시 총선방송심의위원회가 이러한 편파성을 문제 삼자 돌아온 답변은 ‘야당의 출연 거부로 인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2012년 총선 이후 야당 인사 혹은 진보적 인사들이 일부 출연하고 있으나, 불공정한 게임의 룰에 그대로 승복한다는 점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 방송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은 계속될 것이다.
ⓒ연합뉴스 2014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언론노조와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종편국민감시단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조중동 종편 봐주기 심사 규탄·재승인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3.10
더구나 분열과 탈당, 상호 비방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야당 상황은 종편을 살찌우고 정치 혐오를 극대화하는 먹을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내부 분열 속에서 지겹도록 정쟁을 거듭하는 야당을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정부·여당을 편들기 위해 야당의 약점만을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접근은 심각한 문제다. 보육 예산,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정부·여당의 실책이 연일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균형 있게 논의하지 않는 그 자체가 이미 방송매체로서의 함량 미달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중립으로 자신의 위치를 포장해왔던 방송 패널이 여당에 찾아가 공천해달라고 줄을 서는 현실, 야당의 시각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패널은 다수의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바보가 되는 현실, 진행자들의 편파성이 심각하게 드러나는 현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원 없이는 공정성 논란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등을 고려하면 종편의 편파성을 최소한이나마 견제할 수 있는 시민 감시기능을 서둘러 작동시키는 게 절실하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들이 뽑은 가장 편파적인 종편 프로그램 퇴출운동을 하는 건 어떤가.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시사인 436호 16.1.29
Love Potion No.9 (Searcher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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