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불가능한 사회
나는 오슬로국립대학교에서 ‘한국 종교와 철학’ 수업을 한 지 벌써 12년이나 되었다. 그 수업을 하면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요즘 한국 철학의 주된 화두를 이야기해달라”와 같은 학생들의 질문이다. 그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의 현재적 현실을 화두로 삼는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웬만한 유럽 국가 이상으로 헤겔과 칸트 전문가들이 많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겪어온 권위주의적 ‘근대화’와 오로지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주는 ‘기업국가’ 형성,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의 원자화와 개인의 고립, 세계 최악의 자살률 등은 거의 철학의 화두가 되지 못한 듯하다. ‘씨알 철학’으로 인간을 말살하는 ‘근대’에 맞선 함석헌이나 학벌사회에서 개인다운 개인의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김상봉과 같은 예외들이 있지만, 우리 철학은 현실과 한참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부가 전교조에 요구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동료를 배신하라’는 것이었다. 시국선언에 본인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서명했거나 학생 인권을 지키다가 교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버리면 실리를 놓고 교섭할 수 있게 해준다는 어법이었다. 바로 나 본인의 양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보통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들이 취하는 정책들의 철학적 함의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최근 정책만 봐도 정말 철학자야말로 먼저 나서서 분석해야 할 부분이 있는 듯하다. 예컨대 해직자들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바꾸지 않으려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격하시킨 노조탄압책을 보자. 정부가-해고자를 당연히 조합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하면서까지-전교조에 요구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동료를 배신하라’는 것이었다. 시국선언에 본인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서명했거나 학생 인권을 지키다가 교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버리면 실리를 놓고 교섭할 수 있게 해준다, 곧 명분을 버리면 이득을 안겨주겠다는 어법이었다.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가 곤란에 처하게 된 동료를 버린다는 것은 바로 나 본인의 양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부가 학생들에게 양심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에게 원한 것은 바로 스스로가 양심을 포기했다는 선언이었다.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징계들을 남발하면서 양심을 짓밟는 탄압을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계속해 나갈 셈이다.
박근혜 개인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은 8년 전에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에서 그가 내뱉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곧 사학법이 개정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가 사학들을 접수해나갈 것이다.” 이것이었다. ‘제거 대상’이 될 반대자를 ‘해충’에 빗대는 것은 유대인들을 ‘해충’이라고 불렀던 파시스트들에게 배웠겠지만, 누가 봐도 그의 ‘전교조 공포증’(?)은 과장되기 짝이 없다. 전교조의 전국 평균 가입률은 20% 정도이며, 보수적인 교총에 비해 인적 규모는 거의 3배나 적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자면, 전교조와 흡사한 진보적 성격의 일본교직원조합의 전국 가입률은 약 28%이며, 미국 같은 경우에는 교육 부문 전체에서의 조합 가입률은 35%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들먹이지만, 복지의 모범국인 스웨덴은 교사 사회의 노조 가입률이 80%를 넘는다. 그러니까 전교조는 “사학들을 접수할” 정도의 힘을 보유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는 다른 나라들의 교원 조합에 비해 힘이 약하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박근혜가 문재인 후보를 향해서 “이념 교육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교조”와 “유대관계”가 있다고 추궁했지만, 내가 만난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지형은 박근혜 추종세력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했다. 소수는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보였지만, 다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내비치곤 했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박근혜가 광적인 증오심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전교조를 그토록 증오하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용어 중의 하나이며,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계속 나오는 용어는 바로 ‘조직’이다. ‘조직생활’, ‘조직문화’, ‘조직의 요구’…. 그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바로 개개인의 몰개체화를 의미하며, ‘양심’의 반대편에 선다.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양심’의 문제다. 조합의 힘이나 조합원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 무관하게, 한국 교직사회에서 전교조는 ‘양심’을 대표한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한국적 교육체제의 특징인 고질적인 사학 비리에 맞서왔고, 또 촌지와 같은 악질적 관행의 근절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들 중에서는 상당수는 체벌과 같은, 병영사회의 학교들에서 체질화된 억압과 하급자의 인격말살에 저항해오거나 비판적이었다. 또 그들은 수업하면서 교과서에서 나온 이야기에다 감히(?) 자신의 의견까지 표현하려 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개체가 필요할 때에 전체에 맞설 수 있고, 맞서는 과정에서 다른 개체들과 연대할 수 있고, 또 행동이나 생각의 차원에서 늘 전체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보여 줘온 것이다. 바로 그러기에-그들의 ‘이념’이 온건 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그들은 체제의 차원에서 위험천만한 조직이다. 이 체제가 그 특성상 병리적인 전체와 다른 그 어떤 개체의 움직임도, 힘과 돈에 대한 숭배와 다른 그 어떤 개체의 생각도 용인할 여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와 개인의 양심은 사실상 양립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한국에서 약간이라도 ‘출세’하자면 어디까지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지난 10월14일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다. 삼성의 임원세미나 자료로 판단되는 이 문건에서 그 임원들의 가장 중요한 급선무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문제 인력 밀착관리 강화 및 감축”이다. “문제 인력”은 과연 누구인가? 삼성어(語)에서 일반적인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이들은 ‘친사’(어용) 노조가 아닌 진짜 노조를 설립하려는, 자신들의 당연한-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다 보장된-권리를 주장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회사의 충견이 해야 할 일은? 일차적으로는 수시로 감시하면서 “유사시 징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외에는 물론 “비노조 교육”, 곧 노동자들에게 어떤 자율적 조직이나 권리주장이 불필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세뇌 등도 회사 ‘마름’들의 몫일 것이다. 헌법이나 노동 관련 법률로 보든 단순한 인간 상식으로 보든 이와 같은 행동은 파렴치한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와 같은 명령들을 충실히 실행하려는 ‘인력’들은 도대체 어떤 인격 교육을 받았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날 양심의 가책을 어떤 방식으로 원천 봉쇄시키는가? 그들에게 보편적 가치에 의거한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으로서의 ‘양심’이란 존재하는가? 일제 말기 ‘순량한 황민’들과 유형적으로 다를 게 없는 이와 같은 인간들을 대량생산하는 데에 모든 ‘방해요소’를 제거시키는 것은 바로 전교조 탄압의 진정한 이유는 아니었을까?
인간 ‘양심’의 감성적 기반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타자 고통에 대한 즉흥적인,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동감 같은 것이다. 삼성과 같은 이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는, “양심이라는 허상”(히틀러)을 뒷받침하는 이와 같은 감성을 둔화시키는 것은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기에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잔혹성과 냉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문건의 텍스트에서는 수십명의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앞으로 또 수십, 수백명의 희생자를 낼지도 모를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사고 문제는 단지 “이슈화”가 되어서 ‘회사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줄 수 있는 ‘악재’ 정도로 다루어진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동감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전교조가 그 자리를 비운 학교들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문건들을 읽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자신의 ‘성공’과 돈만을 의식할 줄 아는 냉혈한들을 키우려는 게 아닌가?
전교조를 그토록 증오하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용어 중의 하나이며,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계속 나오는 용어는 바로 ‘조직’이다. ‘조직생활’, ‘조직문화’, ‘조직의 요구’…. 철학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바로 개개인의 몰(沒)개체화를 의미하며, ‘양심’의 반대편에 선다. ‘양심’이 개인 각자의 보편적 가치에 의거한 자율적 판단을 의미하는가 하면 ‘조직’은 ‘전체’를 가장한 자본이나 국가의 특수이익, 그리고 그 이익에 수지계산을 맞춘 각자의 ‘실익’에 의거한 명령이나 강압적 분위기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연 전체주의적 색깔이 농후한 ‘조직’만이 있고 ‘양심’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13.12.29
나라꼴, 언론꼴, 국민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합니다. “나라꼴이…”로 시작하는 우스개가 골골샅샅 넘실댑니다. 무릇 나라의 품격은 언론의 품격과 이어집니다. 이형을 비롯해 언론 현장을 지며리 지켜가는 언론인들에게 미안합니다만, 오늘의 나라꼴과 언론꼴은 누가 먼저일까를 다툴 정도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국가정보기관들의 대선 개입이 별 일 아니라고 언구럭부리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을 비롯한 윤똑똑이 언론인들의 글을 읽다보면, 솔직히 그들의 이성이 의심스럽습니다. 과연 그들을 ‘저널리스트’로 부를 수 있을까 회의마저 듭니다.
이형. 2012년 12월19일 대선을 앞뒤로 조선일보 보도를 톺아보면, 역설이지만 어수선한 상황이 말끔히 정리됩니다.
▲ 작년 대선 직후 나온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선거직후 이 신문은 ‘전문가 분석’을 통해 ‘5060의 불안’이 승패를 갈랐다며 “근거 없는 국정원 공격이 역풍 불러” 제목아래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선거 막판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 여직원의 불법선거운동 논란은 5060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정을 운영해본 민주당이 확실한 근거도 없이 여직원을 감금하고 국정원·경찰 등 국가기관을 공격한 것이 굉장한 역풍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3개월치 대선 트위터 분석’ 기사에서 트위터를 비롯한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는 2030 이하 세대에게 친근하고, ‘친야’ 성향이 뚜렷한 것으로 평가돼왔지만, 18대 대선 기간 SNS에서 벌어진 박근혜―문재인의 양자 대결은 “일반적 예측을 벗어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을 긍정적 이미지와 적극 연결시켜 ‘후광 효과’를 누린 반면, 문재인 후보 진영은 ‘노무현 정부 실정에 대한 공동책임’ 같은 부정적 이미지에 휩싸이면서 최종 승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지요.
박근혜와 박정희를 동시에 언급한 트윗도 긍정적 내용이 267건에 3만8603회 리트윗을 기록하면서 62.6%였는데, 문재인-노무현을 동시 언급한 트윗에서는 부정적 내용이 90.1%를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분석 자료를 낸 전문기관 담당자의 말을 인용해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책임’ ‘NLL(북방한계선) 포기’ ‘실패한 참여정부 2인자’ 같은 부정적 이슈를 적극 확산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국정원이 개입한 이슈들입니다.
압권은 “막판 트위터 점유율, 박 52.3% 문 47.7%… 실제 득표율과 비슷/ 선거 트윗, 총선 때의 3배 육박” 제하의 기사입니다. 12월 마지막 18일간 점유율이 대선 최종 득표율인 박 후보 51.6%, 문 후보 48.0%에 ‘놀라울 정도로 근접한 수치’라고 분석했지요.
▲ 작년 대선 직후 나온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어떤가요. 제가 조선일보를 샅샅이 되짚은 이유는 그렇게 분석한 신문이 정작 ‘근거없는 국정원 공격의 역풍’에 근거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트윗에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생뚱맞은 보도와 논평을 쏟아내고 있어서입니다.
대선 투표일 바로 직전에 조선일보는 이회창 인터뷰 기사에서 ‘병풍사건’을 새삼 부각한 뒤 이씨가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조작 의혹’과 SNS상의 각종 흑색선전”을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찰 노릇”이라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형.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찰 노릇 아닌가요. 알다시피 박근혜-문재인 마지막 TV 토론이 끝난 한밤중에 경찰청은 기습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명백한 진실 호도였지요. 정반대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날, 박근혜 후보는 수도권 유세에 집중하며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사건에 혐의 없음이라고 발표했다”면서 “증거 하나 내놓지 못하면서 국정원 못 믿겠다, 경찰도 못 믿겠다, 선관위도 못 믿겠다고 하면 도대체 누구를 믿는단 말이냐”고 공격했지요. “이런 구태 정치를 여러분의 투표로 끝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형. 민주공화국의 국민인 우리는 정말이지 누구를 믿는단 말입니까? 조선일보는 투표일 하루 전날, 마지막 ‘확인 사살’에 나서지요. “야, ‘국정원 댓글’ 증거 없으면 깨끗이 사과하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아냥거리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짚어봅시다. 조선일보의 대선 분석 보도와 주장을 뒤엎는 사실들이 두루 확인된 지금, 이 신문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독자들 앞에 ‘깨끗이 사과’해야 마땅할 섟에 모르쇠이거나 ‘종북 딱지놀음’에 한창입니다. 과연 이 신문이 언론일까요? 짐작했듯이 조선일보만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그 밥에 그 나물이었지요. 저들의 종편 방송은 한 술 더 떴고요.
소나무의 참모습은 한겨울에 드러난다고 했던가요. 실제로 겨울은 숲에 가려있던 산의 뼈대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한겨울의 공화국에서 우리는 나라꼴을, 언론꼴을 또렷이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가요. 국민꼴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한 헌법 제1조를 우리가 변기통에 던지지 않았다면, 이제 곰곰 성찰할 때입니다. 부정선거 의혹의 진상규명은커녕 진상은폐에 눈 빨간 저들에게 우리 무엇을 해야 옳을까요./ 손석춘 언론인·건국대 교수 /미디어오늘 13.12.12
돈, 돈, 돈… 100% 돈
테니스장을 갈아엎고 텃밭을 일궜다. 자동차도 없앴다. 차고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동네 청년에게 빌려줬다. 텃밭 한구석에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인분을 모았다. 리어카로 4㎞를 왕복하며 말똥, 소똥, 닭똥을 구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도구는 가급적 멀리했다. 출퇴근은 역까지 걸어 기차를 이용했다. 그러기를 1년. 텃밭농사와 ‘독립적 삶’이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다음, 사원들에게 권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연봉 6할에 주당 휴일 4일의 생활’(책 제목이기도 하다)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보기술(IT) 기업 어시스트 이야기다. 직원이 800명에 달하는 이 회사는 종신고용제다. 불경기가 돼도 사원을 해고하지 않는다. 경기가 나빠지면 급료를 낮추고 노동시간을 줄인다. 이 회사 사장은 “경영자의 의무는 주주를 위해 이익을 올리는 게 아니다. 사원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사원들에게 텃밭, 목공, 재봉 등의 기술을 익혀 소비중독에서 벗어나라고 당부한다. 그래야 주당 4일을 쉬어도 자율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회사’의 사장은 빌 토튼이다. 토튼 사장은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1969년 남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 업무차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1972년 패키지 소프트웨어 판매회사 어시스트를 창립했고, 2006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빌 토튼의 책이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됐다.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김종철 역, 녹색평론사). 이 책 또한 파격적이다. 돈이면 돈이지 ‘100% 돈’이라니?
돈이란 무엇인가. 돈은 누가 만드는가. 토튼의 문제제기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돈 때문에 죽고 사는 ‘돈에 미친’ 사회에서 우리는 정작 돈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래서 돈의 기원이나 은행의 탄생, 금융 시스템에 대해 대부분 문외한이다. 돈은 화폐 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보다 시중의 민간은행에서 더 많이 만들어낸다. 돈은 신용창조, 즉 대출을 통해 생겨난다. 토튼은 돈을 ‘지갑 돈’과 ‘통장 돈’으로 구분한다. 지갑 돈이 중앙은행에서 찍어내는 현찰이고, 통장 돈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다. 실제 지갑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통화량의 30%가 넘지 않는다.
문제는 민간은행이 만들어내는 통장 돈이다. 어떤 사람이 100만원을 예금했다고 하자. 만일 법정 준비율이 10%라면 10만원만 남기고 나머지 90만원을 대출한다. 은행은 90만원을 A에게 대출하고 그 중 10%인 9만원을 준비금으로 남겨둔다. 은행은 다시 81만원을 B에게 대출한다. 이런 식으로 은행은 100만원으로 약 1000만원의 ‘통장 돈’을 만들어낸다. 토튼은 이렇게 만들어진 돈이 금융시장을 카지노 판으로 돌변시켰고, 개인과 국가의 채무를 늘렸다고 비판한다.
2007년 외국통화 거래액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27배에 달한다. 토튼은 주식시장, 선물거래, 금융파생상품 등이 카지노 판을 눈덩이처럼 키웠다고 지적한다. 기업을 도와주던 은행도 덩달아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스스로 돈을 만들지 않고 민간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이다. 토튼의 처방전은 정부가 스스로 화폐, 즉 100% 돈을 발행하는 것이다. 100% 돈은 법정 준비율 100%를 말한다. 통장 돈과 은행 금고에 있는 실제 돈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100%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토튼에 의하면 국가 채무와 세금이 감소되고, 민간 채무도 크게 줄어든다. 카지노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경제의 불공정이 사라진다. 경제가 안정화되고 결과적으로 생태 환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 하는 근본 이유 중 하나가 부채와 이자 때문이다. 기업은 빚을 갚기 위해 불요불급한 제품도 끊임없이 만들어 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구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파괴된다. 100% 돈이야말로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가는 첩경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국가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100% 돈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 시스템을 장악한 세력의 입김이 워낙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복합 위기의 본질, 즉 경제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 국민이 은행제도나 화폐제도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된다면, 당장 내일 아침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경향 13.12.4
뱀을 만나야 한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개울물은 아직 흐른다. ‘흐르는 물’마저 결빙될 때 비로소 겨울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골의 공기는 푸르고 차다. 서둘러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 내 시골의 월동준비는 별 게 아니다. 땔감을 모으는 일 정도다. 백태를 지난주에 베어 털었고, 마늘도 심고 짚으로 덮었으니 이젠 부지런히 땔감을 모아야 한다. 사실 땔감은 수년 전부터 연중 시나브로 모아둔 양이 적잖으니 올해 필요한 땔감은 불쏘시개다.
땔감은 대략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불이 처음 닿을 최초의 불쏘시개, 그 다음 그 불이 옮아붙을 짧고 가느다란 나무들, 그런 뒤에 마침내 활활 타오를 굵은 장작이 그것이다. 불쏘시개는 땅속 물을 끌어올리는 일과 비견해 말할라치면 마중물 같은 것이다.
최상의 불쏘시개는 뭐라 해도 마른 솔잎이다. 그것을 내 고향에서는 ‘소갈비’라 불렀다. 소(牛)의 갈비뼈와 솔(松)이 떨군 잎이 왜 같이 발음되는지 모르지만 내가 결정한 일은 아니므로 구분해 쓸 도리밖에 없다. 소갈비는 불이 잘 붙는 데다 화력도 좋다. 타고 남은 알불도 서로 엉켜 쉽게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무가 닿았을 때 발휘될 점화력도 뛰어나다.
지난 주말에는 붉은 포대를 준비한 뒤, 연구소 사람들과 같이 소갈비를 그러모으러 산으로 올라갔다. 한 해 일을 다 마친 가을산은 고요했다. 마을 뒷산에는 소나무가 많지 않아 우리는 잣나무 아래에서도 소갈비를 모았다. 침엽수가 떨군 가느다란 잎은 소나무든 잣나무든 불쏘시개로는 대차 없다. 경사면의 소갈비들은 두껍게 쌓이지 않았다. 바람이 낮은 구릉으로 소갈비를 실어 날랐기 때문이다. 소갈비가 두툼하게 쌓여 발목이 쑥쑥 빠지는 곳은 반드시 그 주변의 가장 낮은 곳이었다. 바람이 소갈비를 물의 속성과 같이 만든 경우다. 자연은 무엇 하나 낭비하지 않는다지만 게으르지도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쇠스랑으로 소갈비를 그러모으다가 나중에는 양손으로 그러모았다. 쇠스랑은 손끝의 감각만 못해서 작년에 쌓여 썩어가는 부엽토마저 긁어냈기 때문이다. 활엽수 부엽토와 달리 침엽수 부엽토는 거름으로는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거나말거나 조금만 손을 움직이면 올해 떨어진 소갈비를 수북하게 그러모을 수 있었다. 그 가벼움에 비해 금세 부풀어 오르는 부피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숲속 바닥을 두 손으로 부지런히 긁어대다가 문득 뱀 생각이 났다. 아직 동면 자리를 찾지 못한 뱀이 놀라서 내 손가락이라도 물라치면, 아뿔싸!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뱀 생각이 한번 들자 소갈비를 그러모으는 손놀림의 속도가 일순 팍 죽어버린다. 속도가 발기상태였다면 뱀 생각은 찬물인 셈이었다. “뱀 조심하라”고 외쳤는데, 동료들은 이미 조심하고 있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들이었다.
나는 다행히 금년에 뱀을 만나지 못했다. 마을 입구의 길바닥에서는 로드킬을 당한 뱀껍질이 찢어진 양철조각처럼 햇빛에 빛나는 것을 두어 번 봤지만, 큰길에서 벗어난 연구소 앞의 100m 남짓 ‘민들레길’에서는 단 한 마리도 살아 있는 놈을 만나지 못했다.
시골살이 아홉 해째, 매년 나는 예닐곱 마리의 뱀과 마주치곤 했다. 이 골짜기의 뱀은 거의 다 까치독사다. 뱀은 어느 곳에나 출몰했으므로 모든 장소가 뱀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곳이었다. 심지어 집 안으로 들어온 놈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홉 해 내내 긴장하고 살아야 했다. 금년에도 물론 긴장했다. 긴장만이 오로지 뱀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책이었다. 본래 그들의 서식지였으므로 그들의 잦은 출현은 조금도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뱀과 맞닥뜨리지 않고 겨울로 들어가다니. 이것은 과연 경하할 만한 일인가? 뱀을 만나지 않고 보낸 한 해가 결코 잘 보낸 한 해 같지만은 않다. 뱀을 만나지 못하고 보낸 내 한 해는 딱 그만큼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므로, 나는 결국 뱀의 부재로 인해 딱 그만큼 쇠약해진 게 틀림없다. 뱀이 사라진 산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 확신을 해괴한 궤변이라 할지 모르지만, 이 쇠약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내 표현력의 부족이지 그렇다고 나와 산의 손실감이 덮어질 일은 아니다.
다음주에 소갈비를 그러모으러 우리는 다시 한 번 산에 오르기로 했다. 그때에는 아직 동면에 들어가지 못한 게으름뱅이 독사 한 마리쯤 꼭 만나고 싶다.
최성각 |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경향 13.11.13
차라리 아버지가 행복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통 연락이 없던 동창 녀석이 문자를 보내왔다. 겨울이 코앞에 닥치자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가 더 심란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나라가 이 모양인데’라는 구절을 간투사처럼 남발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라가 이 모양인데’가 요즘 유행어였다. 친구의 문자는 이렇게 끝났다. 연탄부터 한 300장 들여놓고 김장도 많이 담가놓아라. 나라가 이 모양인데-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월동 준비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는데, 연탄과 김장이란 단어가 불쑥 1970년대 초반을 호출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던 시골 초등학생이었다. 그 무렵 겨울은 땔감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겨우내 땔 나무를 해놓고, 김장독을 묻어놓고 나면 서리가 내렸다.
아버지는 가을걷이를 끝내자마자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랐다. 어느 해에는 시오리가 넘는 먼 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일주일은 산을 오가며 나무를 베고, 사나흘은 나뭇단을 집으로 져날라야 했다. 아버지는 추수를 끝낸 것보다 나뭇단이 지붕보다 높이 올라간 것을 더 대견스러워하는 듯했다. 입 밖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겨울나기 준비를 마쳤을 때 가장 뿌듯한 표정이었다.
아버지의 고단한, 그래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월동 준비는 연탄을 때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배추를 100포기 이상 절였지만, 아버지는 연탄 200장을 들여놓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버지는 조금 의기소침해진 것 같았다. 70대로 접어들어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땔감을 돈으로 해결하면서 가장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아쉬움이 역력해 보였다. 연탄아궁이로 바뀌면서 아버지는 고집 센 농부에서 늙은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농부의 아들인 나는 더 무기력한 소비자였다. 솔가지와 장작을 때는 방에서 태어난 나는 연탄보일러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석유와 전기가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도시에서 중년을 통과하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에너지와 식량에 관한 한 인류사·인류학적 존재였다. 나무에서 연탄으로, 연탄에서 석유(원자력)로 전환되는 사태를 한 생애 안에서 경험하고 있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키운 농작물을 먹고 자라다가, 이제는 전적으로 공장에서, 그것도 오대양 육대주에서 생산한 음식물(공산품)을 사먹고 있다.
기계, 교통, 정보통신, 금융통화 등 삶의 방식 전체로 확대하면, 나는 말 그대로 최초의 인류다. 그런데 이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에 견주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 평생 농부였던 아버지는 땅과 하늘 사이에서 겸손하고 당당했다. 하지만 나는 아스팔트와 스카이라인 사이에서 때로 오만해질 뿐, 떳떳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현격한 차이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다. 아버지는 품위 있는 농부였다. 하지만 그 아들의 삶은 품위로부터 멀어져 있다. 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경제가 지각변동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칼 폴라니를 원용하자면, 아버지는 아직 시장이 사회보다 작았던 세상을 살았고, 아들은 반대로 사회나 문화보다 시장이 훨씬 막강한 세상을 살고 있다. 사회와 시장, 인간과 경제가 역전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아들은 품위로부터 동떨어진 왜소한 인간, 즉 무력한 소비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근본 이유는 경제에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무지막지한 경제. 이 ‘나쁜 경제’가 시동을 건 시기가 연탄과 김장으로 겨울을 나던 1970년대, 유신 때다. 그동안 소득과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반세기도 채 안돼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적 인간으로 변신했다. 대신 경제적 인간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거나 삶의 품위를 애써 외면해야 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던 바다 건너 슬로건은 절반만 옳다. 반인간·반생태적 경제를 건강한 사회의 통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민주주의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꿔 말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이른바 대선 불복과 헌법 불복 사이, 정치와 민생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동면에 들어가려 한다.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민주주의의 잔등을 바라보며, 품위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하고 야비한 겨울이 진주하고 있다. 아주 낯선 낯익은 겨울이.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 13.11.6
조갑제씨가 ‘종북’이 되는 세상
종북 딱지 붙이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국회의원과 언론마저 이에 앞장서고 있다. 자칫 정당하지 않은 종북 딱지 붙이기에 우리 스스로가 통제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북 딱지 붙이기가 기승을 부린다. ‘종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도 변화무쌍해 단순히 ‘북한을 추종하는’ 정도의 뜻만으로는 그 참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누구에 의해선가 종북 딱지가 붙여진 이름 몇몇을 살펴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미화·김제동·윤도현, 그리고 김제동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경규와 한혜진, 김제동과 친한 이효리, 김제동이 쇼케이스 사회를 본 조용필, 국정원 댓글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던 채동욱, 그리고 정관용, 손석희….
지난 9월2일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 2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종북의 기준이 뭐냐?”라는 검찰과 재판장의 질문에 침묵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인터넷 댓글 활동의 목표가 종북 척결이라고 주장해온 심리전단 책임자가 종북의 기준에 대한 답조차 내놓지 못했다”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기준 없음’은 오히려 ‘모든 것이 기준’이라는 역설로 거듭날 수 있음을 기자들이 ‘깜박’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리(?)로라도 풀어야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종북’ ‘내 맘에 안 들면 종북’이라는 맞춤형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이경규·한혜진·조용필씨 등에게 붙여진 종북 딱지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설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믿을 수 없다’는 글을 쓴 보수 논객 조갑제씨마저 종북 좌파로 분류되어 처단 대상에 오르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의 침묵은 종북 딱지는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만능 키’와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러한 행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나 언론마저 종북 딱지 붙이기에 앞장서는 건 큰일이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10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남재준 원장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다. …종북·친북 세력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이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지 않으면 졸지에 종북·친북 세력이 되어버리는 꼴이다. 송 의원의 발언은 특히 국민 상당수를 종북 또는 친북으로 몰아가며 대대적인 편가르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중대하다.
언론의 경우도 점입가경이다. 5월6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종북은 말 그대로 북의 김씨 권력에 추종하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대변하는 자들”이라면서, 종북 세력 5인방으로 한국진보연대·민주언론시민연합·우리법연구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통합진보당을 콕 찍어 거론했다.
7월30일 방송된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에서는 출연자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최근의 시국선언과 관련해 “종북 세력들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아마 저런 단말마적인 시국선언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다뿐이지 정의구현사제단의 본질은 바뀐 게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북 좌파다”라는 식의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분열과 대결만 있는 제압의 이데올로기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든 언론의 보도·논평·해설이든, 그가 또는 그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에는 여러 가치가 담겨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특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규약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비록 해당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있는 특유한 ‘사회적 산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 구성원들이 당연시하고 공유하는 가치 체계에 부합할 때 비로소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당하지 않은 종북 딱지 붙이기처럼, 어떤 생산물 속에 오로지 분열과 대결을 통한 제압의 이데올로기만 진하게 침전되어 있다면, 그래서 서로 알리고 알아야 할 사상(事象)이 오도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예측하고 통제해야 할 사상에 우리 스스로가 통제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종북 딱지 붙이기가 아무리 정치적으로나, 충성 독자를 늘리는 데나,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전가의 보도처럼 함부로 휘두를 일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낙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시사인 318호 13.10.25
나를 고문하는 밀양의 ‘계삼이’
비 그친 뒤의 시골 가을 벌판은 형언키 어렵게 아름답다. 방금 쓰러뜨린 깻단과 이미 베기 시작한 볏단 위에 내린 이슬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쓰러진 것들이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순전히 아침햇살 때문이다. 요란했던 개울은 조용해졌고, 본래 ‘깊이’와 상관없이 깊어졌다.
샘밭의 단골 철물점에 연통을 구하러 갔더니만 장터 입구에서부터 고음의 밴드소리가 꽝꽝 울려퍼지는데, 이게 뭔 소리인가, 면민 노래자랑이 벌어졌구나. 농협 앞 공터에 차려진 무대에서는 40대의 뚱뚱한 여인네가 한복 속의 허리를 조금씩 흔들며 노래를 풀어놓고 있었으니, ‘성주풀이’였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무대 앞에는 그런 곳에서 늘 눈에 띄는, 쿵짝쿵짝 반주소리만으로도 흥에 겨워 단조로운 춤사위를 펼치는 이웃들 몇몇의 애잔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귀에 익은 이 흥겨운 노랫가락에 흥이 나지를 않는가. 밀양 사는 ‘이계삼’ 때문이다. 이태 전만 해도 교단에서 좋은 선생 노릇 하려고 애쓰던 이 후배님께서 지금 송전탑 재앙 때문에 단식 중이다. ‘바보’ 같은 계삼이 생각 때문에 나는 근래, 앉으나서나 심기가 불편했다.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끌어안는 그와 같은 유(類)들을 바보라고 부르지 않고 달리 어찌 부를 것인가. 단식하는 후배와 밀양 생각은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아 마당에 끌어들인 개울물을 퍼올릴 두레박을 만들 때에도, 불쏘시개로 쓸 밤송이를 주울 때에도, 고추나 무청을 말릴 때에도, 셔츠를 빨 때에도, 지난 수해 때 흘러간 방죽에 돌을 괼 때에도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먹는 일을 끊고 그 행위로써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자기훼손을 담보로 한 극단의 선택이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단식행위로 인해 닫힌 귀를 열었던 적은 없으므로 단식행위는 생명을 담보로 한 언어가 묵살되는 반생명의 시대에 대한 고발의 의미도 포함하게 됐다.
천치같은 계삼이는 뭘 요구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이 나라는 지금처럼 흥청망청 살기 위해 원전 비중을 끝없이 높일 작정인가, 그토록 안전하다고 호언하던 원전이 짓는 순간부터 망국적이고 반생명적 시설이라는 것을 아무리 감추고 끝없이 속여도 갈팡질팡하는 일본의 모습이 안 보인단 말인가, 묻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이 나라의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비중을 줄인다면 한전이 시방 밀어붙이는 밀양 송전선로 건설 또한 재고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소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슬픔과 분노에 떨게 하는 일은 거기 누대에 걸쳐 터 박고 살아오던 이들이 받은 모욕감일 것이다. 그토록 절실하게 지어야 할 것이라면 짓기 전에 어디 제대로 이야기나 한번 나눠보자는 주민들의 당연하고도 소박한 요구가 지난 8년여 동안 얼마나 처참하게 무시되고 조롱받았던가.
송전탑 건설 재개 소식을 알리는 뉴스에서는 지도까지 동원해 왜 ‘유독’ 이 마을만 국책사업에 제동을 거는 것인지 참으로 짜증난다는 어조였고, 교활하고 잔인한 보수 매체는 또다시 ‘외부세력’ 타령이다. 그 토할 것 같은 경계와 배제의 화살은 내 집단은 한없이 선량한 ‘우리 편’이고 국책사업에 반기를 드는 다른 집단은 필경 빨갱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노리면서 구사되고 있다. 총리는 “이것이 국책사업이다”라고 못박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 것인가. 일찍이 내 처절하게 겪은 바 있는, 덤핑 낙찰된 대형 소각장 건설도, 시화호 개발도, 희대의 새만금 메우기도, 망국의 4대강 죽이기도 모두 거룩한 국책사업이었다. 그 모두, 애초의 발상이나 전개과정이나 결과적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한 대형 범죄들로 판명되지 않았는가. ‘국가’가 더 이상 범죄자들의 치부 도구로 활용되어선 안된다. 오늘 밀양의 싸움이 우리나라 에너지기본계획이 수정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모욕할 게 아니라 되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장터를 떠나는데, 무덤에 묻힌 영웅호걸과 절세가인에 대한 타령이 다시금 가을 하늘에 울려퍼진다. 단식하는 계삼아, 참으로 힘든 부탁인 줄 내 알지만, 이제 그만 단식을 풀거라.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라’고 하니, 그럴수록 이 험한 세월 견디고 또 이겨내서 함께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최성각 |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경향 13.10.16
대재난을 응시하라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지리산 실상사 공양간(식당)에 붙어 있는 게송이다. 수행자들은 하루 세 번 저 경구와 마주하며 음식을 몸안으로 모신다. 저 게송처럼 모든 종교는 음식 앞에서 감사하라고 권고한다. 모든 음식은 하늘이 내린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라는 큰 가르침이다.
하지만 나는 식탁에서 기도를 올리지 못한다. 이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가 묻기 시작하면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식감이나 영양 성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농약과 비료, 중금속, 각종 첨가물 등을 떠올리면 음식에 손을 대기가 불안하다.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물이 바다 건너에서 들어오고, 적지 않은 육류와 생선이 국내외 ‘공장’에서 생산된다. 식재료가 ‘공산품’이 된 지 오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하루 300t씩 바다로 유출된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더욱 난감해졌다. 대기는 2~3주에 한 번씩 지구를 돌고, 동일본 대지진 때 쓸려나간 생활쓰레기가 북미 대륙 서쪽 해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성물질이 대기와 해양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현재 수준으로 대응한다면, 앞으로 40년간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것이라고 한다.
지진학자들은 일본 열도에서 대지진이 연달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인 50여개 원전이 제2, 제3의 후쿠시마가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와 중국 황해안에 밀집해 있는 원전도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관리 소홀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용후 핵연료봉 처리 문제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떠올리면, 우리는 방사능에 포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몇 달, 암울한 상상에 시달렸다. 인류가 핵에 대해 현재와 같은 인식과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리하여 자연재해로 인해 원전이 무너지고, 하늘과 땅, 강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된다면, 그리하여 ‘살기 위해서는 먹지 않아야 한다’는 지독한 역설에 직면한다면, 그리하여 인류에게서 미래가 제거된다면…. 저 묵시록적 상황에서 인류는 과연 어떻게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물론 대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달리 방사능 오염에 따른 비극은 일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사성물질의 영원에 가까운 반감기를 떠올리면, 비극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해서 더욱 참혹할 것이다.
지구의 전부, 문명의 전 과정이 올라오는 식탁에서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다가 ‘지푸라기’ 하나를 발견했다. 레베카 솔닛의 탐사보고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 솔닛은 대지진, 대공습, 테러 등 재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지를 입체적으로 관찰한다. 소수 권력자나 대중매체는 재난 속에서 인간은 야만으로 돌변한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지옥 속에서 ‘꽃’을 피워낸다. 이타주의, 연대, 즉흥성, 창의성이 어우러진 자율적 공동체를 조직한다는 것이다. 솔닛은 “재난은 지옥을 통과해 도달하는 낙원”이라고 말한다.
재난은 기존 질서와 가치, 제도를 일거에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새로 태어난 시민을 들어서게 한다. 지배 엘리트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 반면, 시민들은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희열과 자긍심을 느낀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광주 5월의 며칠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대도시 한복판 등이 바로 재난의 공동체였다.
솔닛의 ‘지옥 속의 유토피아’는 그것이 예고 없이 형성되고, 또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솔닛은 멕시코 남동부 산악지대에서 재난 공동체의 영구화 시도를 발견한다. 멕시코 오지 사파티스타 마을 입구에는 이런 푯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민중이 통치하고, 정부가 복종한다.” 대재앙이 우리 앞에 있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다. 100% 안전한 원전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재난 공동체가 ‘마지막 비상구’ 중 하나일 것이다. 지옥에서 인간 본성을 다시 만나고, 국가의 맨얼굴과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 13.10.9
극우와 보수 ‘초록은 동색’
지난 9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총선이 있었다. 두 나라 모두 녹색당은 표를 잃었고, 독일에서는 극우정당이 거의 표를 얻지 못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20%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며 크게 세를 불렸다.
나는 두 나라에서 모두 살아보았는데, 독일보다는 오스트리아에서 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군복 입고 군화 신은 신나치들과 종종 마주치고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언론에서 자주 접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보다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것이 내가 두 나라에서 살면서 받은 인상이다.
그러면 왜 오스트리아에서 극우가 그토록 많은 표를 얻는 것일까? 독일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사회는 안정되어 있다. 유로 위기도 극복해 경제 상황도 나쁘지 않다. 실업률은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작은 나라이기에 독일에 비해 주목을 덜 받지만 국민들에게 독일보다 더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극우가 높은 지지를 받은 이유가 나는 두 나라 극우의 폭력성 차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독일의 극우는 외양이나 행동에서 모두 극우다움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외국인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살해하기까지 한다. 2000년부터 거의 10년에 걸쳐 9명의 외국인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극우조직도 있다. 지금 재판을 받고 있지만 주모자는 반성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터키 사람들이 살던 연립주택에 불을 질러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사건도 여러 번 일어났다. 반면에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의 폭력이 인구 대비 비율로 봐도 독일보다 훨씬 적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두 나라의 과거청산 수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치 범죄의 주범국 독일에서는 높은 수준의 청산이 이루어졌지만, 오스트리아는 자신을 나치 범죄의 최초 희생자 또는 기껏해야 종범으로 내세우면서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임레 케르테스가 이야기하듯이 나치 범죄의 책임을 모두 독일로 미루면서 교묘하게 과거청산을 덮는 쪽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 결과 극우가 독일에서는 고립되면서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사회 속에 섞여들어갈 수 있었기에 폭력성이 제어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극우정당에 대해 큰 저항감이 없다. 호감 가는 모습의 젊은 당대표가 선거운동을 하면 오스트리아 청년들은 물론 외국인 2세 젊은이들까지 상당수가 지지표를 던진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적인 극우가 개인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사회 전체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인 반면, 그런 사회에서도 ‘부드러운’ 극우는 알게 모르게 사회를 잠식해갈 수 있고, 과거에 대한 해석방식과 반성의 정도에 따라 현재의 정치사회적 지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과거에 대한 해석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반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독재와 민주, 극우와 보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기 어려운 뒤죽박죽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극우는 고립되어 있지 않고 사회 속에 널리 퍼져 있다. 극우성 발언이 집권당 정치인들 입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교과서 저자까지도 공개적으로 극우임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겉으로는 폭력적인 극우와 ‘점잖은’ 보수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실은 서로 의존한다. 폭력성향 극우의 위협적 행동에 대해 ‘점잖은’ 보수 쪽에서 비판이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와 보수가 연립정치를 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보수와 극우가 하나로 뭉쳐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와 달리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에는 극우가 자기 존재의 정당화 도구로 삼는 북한이 버티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극우가 날뛰어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에게 독일과 오스트리아 중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 지금 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오스트리아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멀리 본다면 지금은 조금 위험하지만 극우 정치집단을 고립시킬 줄 아는 독일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 13.10.2
뉴라이트들의 역사: 출세주의와 굴종의 교과서!
내 앞에 별로 두껍지 않은 복사본 한 부가 놓여 있다. 6년 전,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도서관에서 복사한 이승만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전시 중립 개념>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이승만이 1910년에 학위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대한제국이 강점당했는데, 요즘의 석사 논문 분량(도합 115쪽)인 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코리아’라는 국명을 찾는 것은 허사다. 이승만은 러-일 전쟁 때 고종의 전시 중립 선언이 결국 일본의 강압으로 무효화된 것을 6년 후인 1910년까지 생생히 잘 기억했을 터인데, 그의 출신 국가는 문턱 높은 프린스턴대학의 연구 대상에 오르기에는 그에게 참으로 하찮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 대한 서술은 찬양조다. “미국의 독립선언은 만국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무역의 자유를 장려하고, 특히 전시 중립의 권리와 의무 등과 관련하여 국제법의 원칙들을 확장시킬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렸다.”(14쪽) 참, “만국의 평화를 증진시키는 미국”, 이건 아부치고도 좀 심한 게 아닌가? 이승만이 이 글귀를 적었던 1910년에는, 1899년부터 미국에 강점당한 필리핀에서는 아직도 빨치산들이 정복자들과의 혈전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국제사정에 유독 밝았던 이승만이 이를 모를 리가 있었을까?
젊은 날의 이승만에게는 필리핀의 빨치산뿐만 아니라 조국의 빨치산들도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강점에 적극 협조한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를 1908년에 저격한 장인환·전명운, 두 독립운동가를 위한 법정 통역을 거절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이승만에게는 필리핀의 빨치산뿐만 아니라 조국의 빨치산들도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강점에 적극 협조한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를 1908년에 저격한 장인환(1876~1930), 전명운(1884~1947) 두 독립운동가를 위한 법정 통역을 거절한 바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핑계일 뿐이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기독교 평화주의자였다면 왜 그 학위 논문에서는 예컨대 미국의 플로리다 세미놀족에 대한 침략전쟁을 “필요한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묘사했을까?(46~47쪽) 사실인즉 그게 루스벨트 대통령과 친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백인을 사살한 두 ‘유색인종’은 그저 부담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는 그러한 ‘테러리스트’가 연상되지 않는 ‘명예백인’이 되고 싶었으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1909년의 안중근(1879~1910)의 의거마저도 비판적으로 봤다. ‘코리아는 테러리스트들의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미국 신문을 채우면 자신과 같은 젊은 기회주의자들의 주류 사회 편입이 어려워진다, 이것이었다.
기회주의 정신과 함께 그 당시 미국에서의 이승만에게 보였던 또 한 가지 특징은 출세를 위한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놀라운 수완이었다. 예컨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석과 참고문헌을 보면, 영어 저서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심지어 이탈리아어(!) 저서까지도 눈에 띈다. 이승만은 옥중(1899~1904)에서 영어 공부에 열중했으며, 미국에서의 길지도 못한 유학생활에서 늘 아르바이트 등에 시달리면서 난삽하기 짝이 없는 국제법 저서를 프랑스어로 쉽게 읽을 정도로 프랑스어를 스스로 공부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조지워싱턴대학(학사)이나 하버드대학(석사) 등에서의 이승만의 성적표를 보면, 프랑스어를 공부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기존의 영어 개설서를 대충대충 베껴가면서, 본인이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책까지 참고문헌에 집어넣는 날림공부로 동포 사이에 ‘박사님’으로서의 권위를 얻으려고 했다고 결론을 내야 할 듯하다. 물론 오늘도 출세 일념으로 구미 유학 장도에 오르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니 굳이 이승만이 특별했다고 보기 힘들다. 특별했다면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그 오기 정도였을까?
이 비범한 기회주의자가 나중에 여러 가지 인연과 계기들의 조합으로 아예 미국의 군사보호령으로서의 남한의 대통령에까지 올랐으니 보수적 사학은 그를 철저하게 ‘재탄생’시키게 된다. ‘교학사 교과서’ 부류의 뉴라이트 계통의 서적들을 보면 알듯이, 그의 젊은 날의 곡학아세, 백인사회에 대한 아부적 태도, 적극적 독립운동에 대한 적대감 등은 간데없고, 오로지 ‘애국의 화신, 대한민국의 국부’만 남은 것이다. 북한에서의 김일성 못지않게, 그는 ‘민족의 태양’쯤으로 거듭난다. 실은 1950년대에 그에게 아부하는 지식인과 언론들은 그를 바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야 1950년대는 황금기였지만, 일반인에게는 이승만 치하가 영화 <오발탄>에서 묘사된 것 같은 궁핍과 절망감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들은 다수의 역사 기억의 지형도까지 무리하게 무시하면서 이승만과 같은 수준의 인물을 거의 북한식이다 싶을 정도로 신격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수의 한국인에게 뻔하게도 오점이라고 인식되지 않을 수 없는 박정희 등의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고,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감옥으로밖에 안 보일, 경찰이 자로 치마 길이를 재던 유신시절을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봐도 무리의 극치인데 사실 뉴라이트 식의 역사왜곡에는 아주 철저한 논리가 관철돼 있다.
기존 한국사 교과서라 하더라도 국가와 자본주의 본위로 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건국과 성공’은 기존 교과서에서도 역사 서사 전체의 당연해 보이는 귀결이다. 그렇다면 왜 뉴라이트 집단이 교학사 교과서를 내놓는 등 역사교육의 국가주의적·자본주의적 편향을 더 심화시키려 하는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뉴라이트들로서는 기존 교과서에서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의 반제국주의적·반항적 집단심성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일제 등 외세의 침략에 대한 피해의식이 아직도 강한 한국인으로서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될 프린스턴대학의 총장 윌슨 등의 미국 유력자들에게 아부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는 도미 시절의 이승만, 만주군 시절의 박정희보다는, 이승만이 경멸한 장인환이나 안중근이 훨씬 더 존경스럽다. 그들이 ‘살인자’라서라기보다는, 장기투옥이나 사형을 각오하면서 단행한 그들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살신성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승만보다 4·19 때 총탄에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승만 독재의 악몽을 끝내려는 일념으로, 자신만이 아닌 모두들의 행복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은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애타적 정신이 담긴 집단행동 말고 외세에의 굴종과 독재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을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다수의 한국인이 경험적으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퀘이커 함석헌은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주의자였지만, 한국 지식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베트남 파병을 반대하고 제자들의 병역거부를 지지했는데, 그가 과연 뉴라이트들에게 평가를 받을 일이 있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집단의식을 ‘교정’하려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운동의 뼈대다. 그들은 ‘민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그 어떤 대타적이며 반항적인 연대의식도 부정하고, 원자화된 개인들의 체제 순응과 출세를 위한 분투를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상으로 삼는다. 반제 민족투쟁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이나 여성해방 투쟁, 반전투쟁도 똑같이 무용지물로 취급한다. 퀘이커 함석헌(1901~1989)은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주의자였지만, 한국 지식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베트남 파병을 반대하고 제자들의 병역거부를 지지했는데, 그가 과연 뉴라이트들에게 평가를 받을 일이 있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일제든 대한민국이든 부당한 국가권력과 계속 대립해왔지만, 뉴라이트의 이상은 국가와 자본의 틀 안에서 ‘합리적인’ 출세와 치부를 꿈꾸는 자본가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들에게는 ‘민족’뿐만 아니라 가정 이외의 모든 집단 내지 타자들은 단지 이용 대상에 불과하다. 단, 그의 부를 지켜주고 그의 성공을 보장해줄 국가에는 그들은 철저하게 순종한다. 유신시대의 전체주의 국가라 해도 상관없다. 이 국가의 맨 꼭대기에 히로히토가 있든 노망이 든 ‘박사님’이 있든 상관없다. 외세든 무엇이든 노동자를 착취할 ‘자유’를 빼앗을지도 모를 빨갱이만 막아주면 다 된다!
이와 같은 ‘역사’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적 세뇌는 과연 한국인들에게 먹혀들 것인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세운 체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성공’은커녕 이제 단순한 생존도 보장하지 못하며, 가면 갈수록 그 한계를 노출한다. 그 체제가 위기에 빠져들면서 뉴라이트의 ‘역사학’도 동반 침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13.10.1
‘폭력’의 기억, 폭력의 망각
지난달 울산에서 일어난 희망버스 참가자와 현대자동차 사쪽이 고용한 용역 사이의 충돌이 최근 인구에 회자됐다. 대법원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판결을 무시하고 충돌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100여명을 다치게 한 사쪽에는 무한한 관용(?)을 보여주는 국가는, 반대로 시위자와 시위 계획자의 경우엔 4명을 구속하기로 하고 약 50여명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국가도 회사의 노골적인 불법보다 노동자들의 ‘폭력적’ 발버둥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면, 보수 미디어들은 아예 시위자들에 대한 언론재판을 진행한다. “죽봉을 든 시위꾼”은 얌전한 축에 속하는 표현이고, 대개는 참가자들이 밤새도록 술만 들이마시고 오로지 물리적 공격을 하기 위해 울산에 찾아온 폭도쯤으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보도들은 희망버스 울산행의 이유, 곧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행위 등에 대해 거의 제대로 언급하지도 않는다. 그래야 “뚜렷한 목적도 없이, 잘못된 특정 이념 때문인지 계속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폭도”의 이미지를 조성하기가 더 쉬운가 보다.
지배자들의 폭력이 은폐되는 가운데 저항을 시도한 하위자의 일부 폭력 행위만을 균형감각 없이 부각하여 저항 그 자체를 무조건 ‘폭력’으로 모는 것은 사실 극우 정권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수법이다. 예컨대 우리의 상식으로는 파시스트 독일이야말로 폭력 그 자체의 화신이지만, 파시스트들의 프로파간다에서는 놀랍게도 파시스트 자신들이 ‘유대인 볼셰비키 폭력’의 희생자(!)로 서술되곤 했다. 실은 파시스트의 프로파간다 수법은 오늘날 조중동과 다를 게 없었다. 반대쪽이 어쩌다가 저지른 한 국지적 사건을 무한대로 침소봉대하여 ‘빨갱이들의 폭력성’에만 주의를 집중시키는 수법이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9년 4월30일 뮌헨에서 일어난 ‘인질’ 10명 총살 사건에 관해 사회적으로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온건 공산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 등과 함께 만든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의 붉은군대가 자발적으로 즉석 재판을 하여 총살한 10명의 반대편 포로는 실은 ‘인질’이라고 할 수 없었다. 둘은 공화국을 진압하려고 했던 관군 포로였으며, 나머지는 나중에 파시스트 정당으로 발전하게 된 극우민족주의적 툴레협회의 주요 회원이었다. 툴레협회의 회원과 전 회원들이 이미 혁명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 적이 있으며 앞으로 관군과 내통하여 붉은군대에 불의의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혁명가들이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 관군에 의한 노동자 학살 소식에 흥분한 붉은군대가 아무리 판단력을 잃은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 해도, 정식 재판 없는 총살 그 자체는 당연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한데 혁명가 쪽의 ‘적색테러’ 규모가 10명의 반대자였다면, 관군과 뮌헨 내 반혁명 세력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살생을 했을까? 관의 공식 통계만 봐도 소비에트 공화국이 진압되었던 1919년 5월1일에서 8일 동안 뮌헨에서 관군의 손에 577명이 죽었는데, 그중에서 ‘신분 불분명’으로 처리된 42명은 아마도 혁명과 아주 무관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군사재판이 총살형을 내린 186명 중 다수는 그 어떤 폭력행위와도 무관했던 좌파적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 백색테러의 광란은 나중에 파시스트들이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약간이라도 가시적으로 남아 있었던가?
물론 전혀 아니었다. 백색테러는 “유대인 볼셰비키에 대한 진압과 질서회복”의 이름으로 간단하게 정당화되거나 아예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 대신 “10명의 희생자를 학살한 유대인 볼셰비키의 잔혹성”(물론 실제로 총살당한 사람들 중에 유대인은 1명도 없었다)만이 강조되고, ‘10명의 인질’은 숭배 대상에 올랐다. ‘10명의 인질 학살’에 대한 책 등이 계속 출판되고, 그들을 기념하는 대중궐기대회들은 1930년대 말까지 정기적으로 소집되었다. 책·정간물·대회연설들은 목청을 높여 “유대인 볼셰비키들의 무비의 폭력성”을 질타했다. 이미 죽음의 수용소들을 운영하고 있었던 독일에서 말이다.
남한의 공식 담론에서는 북한은 늘 ‘도발자’, 곧 폭력 행위자로 나타나고 남한의 역할은 묵시적으로 ‘방어’로 규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남한은 과연 ‘희생자’이기만 했던가? 요즘 NLL에 대해 말이 많지만 실은 1953년 당시 미군이 그 선을 그었을 때 주된 목적은 남한 해군의 대북 도발 방지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국가의 폭력을 숨기거나 정당화하고 내·외부 타자들의 ‘폭력성’만을 그 어떤 균형도 잡지 않고 무조건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공식 담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노동자나 시위자 등의 ‘내부의 적’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주된 ‘외부의 적’인 북한에 대해서 아주 그렇다. 남한의 공식 담론에서는 북한은 늘 ‘도발자’, 곧 폭력 행위자로 나타나고 남한의 역할은 묵시적으로 ‘방어’로 규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남한은 과연 ‘희생자’이기만 했던가? 요즘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말이 많지만 실은 1953년 당시 미군이 그 선을 그었을 때에 주된 목적은 남한 해군의 대북 도발 방지였다. 그때만 해도 ‘북진 통일’은 이승만의 공식 이념이었기에 남침보다 북침이 더 걱정될 만한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대규모 북침은 없었지만, 북한에 대한 소규모 도발, 곧 공작원 파견은 계속됐다. 크게 축소된 것으로 보이는 공식 통계를 봐도 1953~1972년에 남한이 양성해 올려보낸 북파 요원은 약 1만3000명이었고, 그중 7519명이 임무 수행 중 전사했다. 반대로, 알려져 있는 북한의 남파 공작원 수는 1953~1999년 6446명이며, 그중 1644명이 사살됐다. 그러니까 정보수집부터 파괴·살인까지 다양한 임무를 띤 무장 공작원들을, 1972년 이후의 공작원 북파를 인정하지 않는 제한된 통계만 봐도 남한이 북한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보냈다. 우리는 정말 ‘방어자’이기만 한 것일까? 그리고 7519명의 북파 공작원이 전사했다면, 그들이 수행한 공작 등에 희생된 북한인은 과연 몇 천 명일까? ‘북한 도발’에 비분강개하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폭력에 희생된 ‘그쪽’ 사람들의 유족에게 사죄·보상이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외부의 적’에 의한 폭력은 기억해도 대한민국이 저질러온 폭력에 대한 기억은 늘 지우려고 한다.
‘내부의 적’에 대한 태도도 그 본질상 같다. 물론 광주민주항쟁이나 1987년 6월 시위들의 ‘폭력성’은 온건 보수 매체들도 함부로 들먹이지 않는다. 저항의 방법이 무엇이었든 억압자들의 폭력성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는 것을 다들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의 시위들에 대해서는, 보수 매체들이 보통 그 원인이나 요구사항을 묻지도 않은 채 그저 “폭력 시위”라고 매도한다. 예컨대 1996년의 연세대 사태 때 의경 한명이 돌에 맞아 죽고 수십명이 골절이나 뇌진탕 등 중상을 입은 것은 안타깝고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전장을 방불케 하는 폭력 시위 현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친북 단체 한총련의 폭력성”만을 질타했던 보수 매체들은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절대 던지지 않았다. 한총련이 연세대에서 열었던 통일대축전을 왜 불허·봉쇄하고,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의경들을 마구잡이로 모아 무조건 초강경 진압 일변도로 대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이다. 과연 당시 위기에 빠진 김영삼 정권은 “친북 폭력 시위자”들에게 부상당한 의경들의 모습을 전국에 과시함으로써 학생운동권에 대한 파괴로 보수층 사이에 ‘점수’를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수십명의 시위자들도 안구 파열이나 골절 내지 그 이상의 중상을 입었지만, 그 부분은 물론 미디어에 크게 노출되지 않았다. ‘저들’은 ‘폭도’이고 ‘우리’는 오로지 ‘질서’만 지키기 때문이다.
히틀러 시대든 오늘이든 ‘우리’ 국가의 폭력성을 철저히 은폐한 채 내·외부의 ‘적’만을 ‘폭력 행위자’로 묘사하고, 지배·억압의 일상을 ‘폭력 행위자’들이 악의적으로 파괴하려고 하는, 당연하고도 모두에게 좋은 ‘질서’로 선전하는 것은 ‘갑’들의 상투적인 담론전략이다.
히틀러 시대든 오늘이든 ‘우리’ 국가의 폭력성을 철저히 은폐한 채 내·외부의 ‘적’만을 ‘폭력 행위자’로 묘사하고, 지배·억압의 일상을 ‘폭력 행위자’들이 악의적으로 파괴하려고 하는, 당연하고도 모두에게 좋은 ‘질서’로 선전하는 것은 ‘갑’들의 상투적인 담론전략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아무리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해도 그 판결을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가 이행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의 ‘질서’는 정말 ‘을’들에게 좋은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13.8.6
한-미 동맹이라는 덫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1929년의 유럽. 세계 공황, 독일 경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 이탈리아 파시즘의 공고화, 이탈리아를 모방하려는 극우 정권들의 포르투갈 등지에서의 출범…. 10년 뒤인 1939년에 어떤 일이 터질지 아무도 아직 감을 잡지 못했지만, 불안과 공포가 1929년의 유럽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불안한 세계에 메가톤급 센세이션이 터졌다. 평화주의자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1889~1938)가 독일 공군이 국제조약들을 위반하여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 곧 독일군이 공군을 이용하는 침략 전쟁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평화에 대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그전에도 이와 같은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이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나치 독일 지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주된 근거는 침략 전쟁 준비와 실행이었는데, 오늘날 미국 지도자들도 그 전철을 동요 없이 밟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노든의 폭로로 그들이 전세계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혹은 이제 사실로 드러났다.
오시에츠키의 고발에 대한 ‘민주적’ 바이마르 공화국 당국의 대응은 강경했다. 실제 감옥에서 7개월 정도만 복역해 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오시에츠키가 재판에서 ‘반역, 간첩 혐의’로 일단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당국의 조약 위반 사실을 고발한 양심가는 당국자에게 ‘반역자’이었던 만큼 수많은 세계인들에게는 영웅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버트런드 러셀 등을 비롯한 수십만명의 각국 시민들이 오시에츠키 옹호 캠페인에 동참했고, 급기야 그는 193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그러나 그때 독일은 이미 나치들의 차지가 되고, 오시에츠키는 수용소의 수인이 되고 말았다. 나치들의 천하에서 오시에츠키는 상을 받으러 출국조차 하지 못한 채 무리한 강제 노동과 질병으로 요절했고, 그에게 상을 준 노벨 위원들은 1940년 히틀러의 노르웨이 침략 이후에 특별히 처벌을 받은 만큼 그의 ‘반역’에 대한 복수는 완벽(?)했다.
2013년의 세계. 세계 공황, 구미권의 얼어붙은 경제, 특히 남유럽 등지에서 더 이상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으려는 정권들의 점차적 권위주의화…. 아직도 표피적으로 태평성세, ‘글로벌 시대’의 지속이지만, 미국의 주도로 세계 군비는 이미 냉전 말기의 수준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 무력 갈등은 아직 머나먼 것으로 보이지만, 시리아 같은 곳에서 이미 러시아와 이란이 무장시킨 세속적인 정권과 미국과 그 지역적 군사보호령들(사우디 등)이 무장시킨, 주로 종교 근본주의적 성격의 반군이 최악의 내전이자 국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다시피 하는 이 세계에 메가톤급 센세이션이 터졌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미국 컴퓨터 기술자가 중앙정보국(CIA)의 요원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더는 양심상 용인할 수 없어, 미국 정부의 정보기관들이 정보 보호에 관한 국제법을 모조리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격 폭로했다. 그가 폭로한 행위, 예컨대 수억명 세계 시민들의 전자 검색 내용이나 전자우편, 통화 감시부터 시작해서 중국 국내 네트워크 해킹, 수억개 전자 메시지 훔쳐보기까지의 행위는 사실상 일종의 ‘인터넷상의 전쟁 행위’로서, 미국의 라이벌이 되는 나라(특히 중국)에 대한 실전 준비 차원이라고 해석될 여지도 크다. 나치 독일 지도자들이 전후에 유죄 판결을 받은 주된 근거는 침략 전쟁 준비와 실행이었는데, 오늘날 미국 지도자들도 그 전철을 동요 없이 밟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들이 전세계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혹은 이제 사실로 드러났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를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과연 계속해서 잠재적 침략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영세중립 등의 가능성들을 꼭 배제해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한반도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꼭 심각하게 생각해볼 대목이다.
스노든의 고발에 대한 ‘민주적’ 미국 당국의 대응은 초강경이었다. 미국 당국자들이 스노든을 ‘반역자’라며 고발 조처를 취하고 그가 더는 ‘도망’다니지 못하게 그의 여권을 폐기했다. 미국 대통령이나 외무 관계자들은 스노든을 도와주려는 불법 감시 피해 국가들을 상대로 “범인을 넘겨주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여느 학교 ‘왕따’ 가해 학생 못지않게 ‘무자비한 복수’를 기약한다. 스노든이 붙잡힌다면? 지금 재판중인 또 한 명의 양심적 고발자인 브래들리 매닝은 어쩌면 20년형을 받을 기능성이 있는데, 당국의 ‘복수’ 욕망의 정도로 봐서는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일단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지만, 나치들의 감시 속에서, 끝내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해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죽은 오시에츠키가 떠오른다. 한데, 스노든에 대한 옹호 캠페인은 이미 거의 오시에츠키 방어를 위한 국제 운동과 비슷한 규모가 됐다.
기시감이 들 정도라고나 할까? ‘오시에츠키 사건’과 ‘스노든 사건’이 우연히 닮았다기보다는, 어떤 구조적인 유사성을 보이는 게 문제다. 세계 공황 속 경제난과 열강 대립 격화의 가능성들, 세계대전에서 패배했거나 지난 10여년 동안 (이라크 등지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어 국제적 영향력이 감퇴한 군사주의적 국가의 전쟁 준비 행위에 대한 양심적 고발, 고발자를 ‘반역자’로 모는 당국자들의 태도, 요동치는 세계여론…. 한 가지 아이러니한 차이라면, 거의 80년 전에 노벨위원회가 노벨평화상을 오시에츠키에게 준 반면, 지금 그 평화상을 이미 받아놓은 것은 바로 스노든을 마녀사냥하는 주범 오바마다. 슬픈 아이러니지만, 그만큼 ‘평화’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이해가 달라진 셈이다. 물론 80년 전의 노르웨이는 독일의 동맹국이 아닌 것과 달리 오늘날의 노르웨이는 나토 가입국, 곧 미국과 군사적으로 한패가 된 나라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맹국이다. 곧, 스노든이 고발한 ‘글로벌 빅브러더질’로 얻은 정보의 일부분, 예컨대 대북 관련 정보 등을 한국의 ‘기관’들도 어쩌면 얻을 수도 있단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고발은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이 고발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우리에게 한-미 동맹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내 보수주의자들은 한-미 동맹을 ‘평화의 보장’이라고 홍보한다. 실은 어쩌면 과거에는 그런 측면도 있었다고 솔직히 인정해주어야 한다. 미국 당국자들이 한국 당국자보다 더 평화 지향적이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냉전적 질서 속에서 조폭 보스와 일개 졸개의 전략적 사고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1968년 1·21사태(북한의 청와대 습격 시도) 이후 박정희는 한때 대북 침공까지 고려했지만, 미국은 이와 같은 망상적 이야기를 애초부터 일축했다. 북한과 소련이 엄연히 동맹국이었던 상황에서 ‘대북 침공’은 3차 세계대전을 뜻하고, 아직 성장 드라이브 중인 미국이 굳이 이와 같은 무리수 없이도 중국이나 소련과 같은 라이벌들을 점차 포섭하거나 무력화시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국제 냉전이 끝나고 미국으로서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나서 역할은 돌연히 전도됐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에 이제 한국이 아닌 미국은 영변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검토했고, 그 반대로 김영삼 대통령이 ‘대북 전쟁 가능성’을 들먹였던 클린턴을 견제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김영삼의 설득보다도 북한을 침공할 경우에는 수십만명의 미군이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계산이 클린턴의 전쟁 열의를 억제한 셈인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북-미 관계보다 문제가 훨씬 더 크다. 미국의 불법 정보 수집 행위의 가장 큰 피해국 중의 하나는 바로 중국이며, 미국의 제1호 가상 적도 바로 중국이다. 미국의 성장 드라이브가 고장난 지 이미 오래됐으며, 이와 달리 ‘시장’의 일부 폐단을 면할 수 있는 중국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경제는 아직도 고속성장 중이며, 아마도 2016년을 전후로 해서 미국을 추월할 상황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몇 년 뒤에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중국은 당연히 그 어떤 전쟁도 바랄 일은 없지만, 미국으로서는 중국보다 월등히 강한 부문이라고는 군사 부문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위협은 어느 쪽에서 나오는지 불문가지의 일이 아닌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를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계속해서 잠재적 침략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영세중립 등의 가능성들을 꼭 배제해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한반도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꼭 심각하게 생각해볼 대목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13.7.9
5·18 왜곡은 범죄행위
독일 형법은 나치 피해자를 모욕하는 사람에게 형사처분을 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개하는 우리는 어떤가. 5·18을 폄훼하는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본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과 종군위안부 관련 망언에 분노하는 것이 이제 우리의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이를 겪으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제멋대로 왜곡해 건드리는 일본 일각에 대해 화가 나는 한편으로, 과연 우리는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후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 최근에만 해도 여러 사례가 속출했다. 아직도 그날의 참혹함이 생생하고 희생자 유가족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이제 몇몇 극우 인사들의 주장을 넘어 방송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이 없어서 추징금을 낼 수 없다는 5·18 폭력 진압의 주모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식들은 조세피난처에 비밀계좌를 가진 거부의 반열에 들어섰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단이 합창을 할 수는 있지만 참석자들이 제창해서는 안 된다는 희한한 주장을 한다.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지역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거리낌 없이 배설하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독일을 보자. 나치의 끔찍한 범죄행위를 경험하고, 우리와 비슷하게 분단을 겪은 독일 정치권은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후세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조치들을 취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독일 형법(제130조)이 규정한 국민선동죄다.
이는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나치 찬양과 나치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언행을 금지하는 데에 입법 목적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부 국민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는 행위, 일부 국민을 모욕 또는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에 의해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 일부 국민,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집단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이들에 대한 폭력적·자의적 조치를 촉구하는 행위”를 할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또한 “일부 국민 또는 집단을 모욕 또는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에 의하여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문서를 반포하거나 공연히 전시·게시·상영하는 행위, 이러한 내용의 표현물을 방송·미디어 또는 전신을 통해 반포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나치 시대에 일어난 범행을 공공연하게 또는 집회에서 승인·부인·고무한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치 시대의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승인하거나 찬양하거나 정당화함으로써 피해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방법으로 공공의 평안을 교란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독일이 이러한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형사처분을 하는 것은 역사적 교훈에서 말미암은 것이며, 일본과는 국가의 품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후 독일의 이러한 노력은 나치의 국가였다는 과거를 딛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국가로 재탄생하도록 한 배경이다.
정치권이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개하지만 정녕 우리 역시 그들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간의 존엄성을 가슴 깊이 인정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신념이 강화되었는지, 과거 군부독재에 의해 희생된 가족의 슬픔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의 감정을 가졌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며칠 전 정홍원 국무총리가 일베 사이트 관련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반사회적 글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밝힌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고 짓밟는 주장을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세대 어린 학생들이 혹여 왜곡된 역사인식과 희화화된 민주주의 관념을 갖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경제발전만이 아니다.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온 치열한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 역시 경제발전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역사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오히려 폄훼하고 깎아내리는 행태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할 뿐이다. 지역 차별적 발언이나 악의적인 역사 왜곡은 통합이 절실한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보아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시사인 301호 13.6.27
메르켈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점
박근혜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둘 다 여성이며 나이와 전공 분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인사 정책은 다르다. 메르켈 총리는 정신적 동반자였던 최측근 인사를 과감히 교체했다.
난 2월 독일의 아네테 샤반 연방교육장관이 30여 년 전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이 대학 심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학위를 박탈당하고 교육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후임에는 동독 출신 수학 교수가 장관에 임명됐다. 2011년 3월에는 30대 젊은 나이에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높던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 2007년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취득한 법학박사 학위논문이 표절이었다는 대학 조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박사학위가 취소되고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다. 두 장관 모두 메르켈 총리의 최측근 인사로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메르켈 총리는 표절논란이 일던 초기에는 이들을 옹호했지만 결국 여론의 비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김혜수·김미화·김미경씨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학위논문 표절이 논란이 되자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그만두거나 학위를 반납(학위반납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하는 등 나름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논문표절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학벌주의·간판주의, 요즘 표현으로는 스펙 중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이들에게 직업상 학위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왜 이런 불필요한 일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 논문 표절 불거져도 사퇴 안 해
논문 표절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학계는 물론이고 정치·경제·문화·스포츠·종교계 등 포함되지 않은 영역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문대성 의원(전 새누리당)이나 최근 물러난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학위논문 표절을 인정했고,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도 남아공의 한 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논문 표절은 그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위 수여를 남발하는 한국 대학의 영업적 행태도 문제이고, 논문 검증을 꼼꼼하게 하지 않거나 아니면 모른 체 눈감아버리는 논문 지도 교수의 책임도 크다. 대학 당국도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을 신속하게 하지 않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있다. 학위 취소는 거의 없다. 표절 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내용이 아니라 문장 표현까지 그대로 옮겨오면서 각주만 달면 표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학술논문 역시 표현 자체에 독창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논문을 표절한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고, 취득한 학위로 인해 그동안 보직 등에서 부당한 혜택을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인물 가운데 논문 표절이 여러 건 제기되었다. 당사자들이 표절 사실을 인정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문제로 사퇴하지는 않았다. 논문 표절은 이제 병역 특혜와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과 함께 사과만 하면 통과되는 검증항목이 된 것 같다. 점점 강화되어야 할 인사청문회 기준이 오히려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쓰고 안 쓰고는 인사권자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 기준이 중요하다. 친소관계나 개인적 충성심 여하만으로 정부 인사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공적인 관계에서는 그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물러난 샤반 독일 교육장관은 재임 시절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던 인물이었고 메르켈 총리와의 각별한 인간관계는 같은 당 소속이라는 동지애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알려졌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장관 교체를 단행했다.
메르켈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하자면 여성이라는 점, 메르켈 총리는 당시 동독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했고 박 대통령은 전자공학을 전공해 같은 자연과학도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나이도 박 대통령이 두 살밖에 많지 않아서 비슷하다. 그러나 인사정책은 다른 것 같다. 자연과학도의 냉정한 평가와 판단이 고위직 인사에서 고려되지 않고 다른 요소가 우선적으로 고려된다면 인사 실패는 재임기간 내내 시한폭탄처럼 잠복해서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에서는 인사 검증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새로운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그 직책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 직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직책을 기대하면서 입을 다물 것이다. 과연 누가 ‘아니 되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사인 290호 13.4.9
독재자? 차베스는 박정희와 다르다
차베스의 죽음 이후 국내 언론은 피상적인 접근에 머물고 있다. 차베스의 통치에 독재적 요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의 사회주의는 민중의 자기통치, 즉 ‘래디컬 데모크라시’였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결국 숨을 거두었다. 암이라는 게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베네수엘라 안팎의 수많은 정적들도 도저히 꺾을 수 없었던 58세의 정력적인 정치가를 암이 무자비하게 쓰러뜨려버렸다.
차베스의 죽음이 알려지자 세계의 주요 언론은 지난 14년 동안 차베스가 걸어온 정치적 삶과 그 의의를 추도사·해설·논평을 통해 부산하게 조명하고 있다.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확연히 갈라지지만, 그럼에도 왜소한 기술관료 정치가 압도하고 있는 오늘의 일반적 세계 정치 무대에서 예외적인 거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개의 언론이 공감한다. 한국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건방진 말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국내 언론의 기사는 대체로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라틴아메리카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신을 근거로 기사를 급조한 탓일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이 의존하는 게 대개는 세계의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료라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진보 매체라고 해서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 결과 다소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들의 논지는 거의 한결같다. 즉, 차베스는 오랜 세월 계속돼온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과두지배 체제를 깨고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공로는 크지만, 14년 동안 정치적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봉쇄해온 독재자였다는 것이다.
물론 차베스의 통치에 독재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가로서의 차베스의 공죄를 가린답시고 이런 식으로 요약해버리면, 그가 추구한 ‘볼리바르 혁명’의 진실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이런 요약으로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즉, 차베스가 마치 박정희와 닮은 존재가 아니냐는 오해 말이다.
하지만 ‘독재’라고 해도 차베스의 독재는 박정희의 그것과는 전혀 질이 다른 것이었다. 박정희는 대기업 중심의 철저히 물량적 경제발전에 집중하며 국민 개개인의 인격과 자존심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이에 비해 차베스의 관심은 철두철미 가난한 사람, 소외된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에 있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세월 민중의 노예화를 강요해온 수탈체제와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투쟁은 국내외의 막강한 기득권 세력과의 격렬한 대립을 불가피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라면 차베스가 미국 정부를 비롯한 국내외의 자본가·투자자·언론·대학 등 막강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가열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근원적 욕구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밥만 먹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른바 엘리트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착각이다. 민중에게는 밥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각기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기 인생의 주체로 살고자 하는 깊은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차베스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동체 평의회 통해 민주주의 체험한 베네수엘라 사람들
그 단적인 증거가 ‘공동체 평의회(communal councils)’라는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 시스템이다. 차베스 집권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확대된 이 시스템은 기존 지역행정기관이라는 관료 시스템과는 별도로, 도시에서는 200~400세대, 농촌에서는 20세대 정도를 1개 단위로 주민들이 모여 자기 동네와 관련된 문제들을 자유롭게 토의·결정하며, 필요하면 정부에 예산지원을 요청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풀뿌리 의회이다.
이 ‘평의회’에서는 학식·재산·연령·성별에 관계없이 15세 이상의 모든 주민이 평등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특기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 베네수엘라에는 그동안 정치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난생처음 자기인생의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자신의 목표가 ‘21세기적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평의회’를 염두에 둔다면, 차베스가 겨냥한 ‘사회주의’란 결국 민중의 자기통치, 즉 래디컬 데모크라시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차베스를 통해서 모처럼 ‘민주주의’를 체험한 민중을 다시 노예시절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87호 13.3.22
영양실조 세 자매’의 검정고시도…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발견된 자매 얘기를 들으며 사람들은 복지의 확충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다. 증여의 원리에 입각한 상호부조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 도시에서 세 자매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중 둘은 발작 증세를 보이고,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반찬이라고는 고추장밖에 없는 밥이나 라면을 먹으며 냉골의 지하 월세방에서 몇 년을 그렇게 지냈다는 것이다. 떠돌이 노동자인 아버지가 얼마간의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그중 절반도 아이들 손에 전달되지 않았고, 그 결과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십대 소녀들이 겪은 이 비참한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은, 맏이가 중학교를 다니지 못한 두 동생에게 검정고시를 위한 공부를 꾸준히 시켜왔다는 점이다. 우편물과 광고지, 혹은 거리에서 주워온 폐지를 가지고 학습장을 만들어서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향학열을 운위하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간접으로 암시하는 이야기라고 해야 옳다. 본시 인간다운 생존·생활의 근원적 토대는 어디까지나 사람들끼리 상호부조 하는 관계망이다.
그런데 이 세 자매가 극한적인 영양실조 상황에서도 이웃들의 도움에 기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상호부조라는 개념 자체가 이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극도로 위축되어왔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검정고시’ 이야기는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동료들과의 우정이나 인간관계에는 아무 관심 없이 오로지 개인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스펙’ 쌓기에 열중해 있는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세 자매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국가적인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보완을 이야기한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복지국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사람끼리의 자발적 상호부조, 능동적인 자립과 협동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좋은 통치일지라도 국가의 논리로는 개개인의 인간다운 생존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십대 소녀들이 차디찬 지하방에서 극한적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임기말의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에 ‘국격’이 높아졌다고 자랑하고, 유력한 여당 대통령 후보는 ‘국민의 행복’에 관해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저열한 정치의 단면만이 아니라 국가의 근본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희극적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늘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재난 상황에서는 기민(棄民) 정책으로 일관하는 게 국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국가 혹은 국익의 논리에는 본질적으로 파시즘적 요소가 잠재돼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 안 된다.
실제로 장구한 세월 동안 풀뿌리 민중이 생존을 영위하며 삶을 향유해온 주된 방식은 국가의 틀도, 시장의 논리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게 상품화된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보완책으로 흔히 복지국가 시스템을 구상하지만, 대개 그 이상은 상상하지 못한다. 이 상상력의 빈곤은 오랫동안 민초들의 생을 뒷받침해왔던 상부상조의 정신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공동체를 잃어버린 탓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한, 굶어 죽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역시 공동체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한, 외로이 굶주려 죽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체란 화폐의 원리가 아니라 증여의 원리에 의해 유지되는 생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절망의 땅이라는 아프리카에서도 대부분의 공동체는 다마(dama), 즉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고받는 전통적 증여경제의 틀 속에서 생명을 보호·유지하고 있다.
하기는 어떤 사회든 증여의 원리가 완전히 사멸될 수는 없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기 차에 남을 태워주고, 다시 만날 기회가 없는 택시 기사나 상점 종업원에게 팁을 주기도 하고, 이웃집 앞에 쌓인 눈까지 치워주는 사람이 없지 않다. 최근 ‘월가 점령’ 사태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래버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근저에는 예외 없이 상호협력의 ‘코뮤니즘적’ 관계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는 자본주의조차도 이 바탕 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하고, “자본주의란 코뮤니즘을 관리하는 하나의 (참혹한)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원초적 증여의 원리에 입각한 상호부조의 관계를 ‘민주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일수록 더 그렇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82호 13.2.20
모래 위에 지은 집
최근 인수위에서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하는 대신 국민연금을 삭감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염려스럽다. 한국 사회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 강력한 재분배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
모래 위에 지은 집. 한국 사회는 부채 사회다. 트리클다운(낙수효과)의 신화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빚에 기대어 주거와 학업을 해결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빠르고 간편한 대출을 권하는 사회에서 빚은 자가증식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부는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소득 증가 없이도 돈을 빌려 집을 사라고, 펀드 투자를 하라고, 카드를 발급받으라고 부추겼다. 고용 불안정에 벌이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대출은 쉬웠고, 비용은 나중에 치르라는 유혹이 일시적인 자산 붐을 일으켰다. 물론 그 와중에 금융자본은 빚을 상품으로 만들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허리가 휘도록 빚을 진 사람들 위에 있는, 그들만의 호황이었다. 그러나 거품은 터졌고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한국 사회는 불안 사회다. 졸업하면 취업이 막막하다. 아프거나 은퇴하면 가난해진다. 아이를 가지면 해고와 육아 걱정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고단하게 일하는 동안에도 일자리는 불안정하다. 질병·은퇴·출산 등에 대한 사회보장은 아직도 취약하다. 대부업체가 호황인 이유다. 기업에게 정리해고는 너무 쉽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자 당위인 양 취급된다. 그래서 20대부터 빚더미에 짓눌린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생존이냐 낙오냐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희망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자살률이 높다. 이것이 1998년 이후 한국 사회가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 감세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어온 결과이다.
이렇게 불평등과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는 과연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파이가 커지면 돌아오는 몫도 커진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부채 상환을 미뤄 폭발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그 여파는 더욱 클 것이다. 부채 사회가 파괴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맨얼굴을 우리는 이미 본 바 있다. 유일한 대안은 한국 사회의 진로를 돌리는 것, 즉, 적극적인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으로 한국 사회를 바꿔내는 것이다. 핵심은 소득 분배의 문제가 도덕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의 유지와 모두의 재앙을 막는 것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분배의 개선에 요구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유연한 일자리’에서 적절한 임금과 고용안정을 의미하는 ‘괜찮은 일자리’로의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둘째, 조세 정의의 확보와 증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낮아진 법인세를 되돌리고,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정의를 되살리는 것이 그 시작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적극적인 재분배다. 일례로 박 당선자가 공약했던 기초노령연금의 두 배 인상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제도 바꾸면서 재정 투입은 그대로?
그런 면에서 최근 인수위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로 인상하되 기초노령연금의 선별성을 강화한다’ ‘국민연금 급여를 삭감한다, 혹은 연금의 재분배 요소를 폐지한다’ 따위 방안이 흘러나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미 2007년에 대수술을 한 국민연금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틀과 연금급여의 적절성을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하는 대신 국민연금을 삭감하는 조삼모사는 차기 정권이 복지재정 확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이리라. 이른바 맞춤형 복지도 마찬가지다. 주거·의료·교육 등 복지급여 종류를 확대하고,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수급자 범위를 넓히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제도의 틀을 바꾸되 투입하는 재정에 별다른 증가가 없다면 이는 가장 빈곤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재분배의 범위와 틀을 바꾸되 막상 재분배에 투여하는 재정은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는 한국 사회를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수 없다. 잔뜩 메마른 한국 사회에서 적극적인 분배는 파괴를 막기 위한 마중물이다. 국가가 복지국가의 구실을 떠맡고, 적극적으로 재분배에 나설 때에야 한국 사회는 부채 사회, 불안 사회에서 벗어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새 정권이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한다. 그러나 의구심에서 그치지 마시길. 의심하는 만큼 감시하고, 요구하고, 압박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파괴적인 결과를 막고자 한다면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재분배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 지금 다른 어떤 길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 시사인 281호 13.2.15
경제민주화의 해법, 협동조합
주식회사 대신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 주체로 확대될 때, 성장 없이도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인간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도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끝난 것은 결국 야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처럼 여야가 공통하게 제기한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야당이 날카롭게 쟁점화하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선거가 갖는 의의의 하나는 그 기간에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활발한 토의의 대상이 됨으로써 민중의 식견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더 성숙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번 대선은 낙제였다. 그 책임의 절반 이상은 도전자다운 용기와 적극성을 보여주지 못한 야당에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지난 4월 총선 때부터 ‘경제민주화’가 새로이 부각된 것은 현재의 극심한 사회적 격차 때문이었다. 심각한 고용불안, 높은 청년실업률, 끊임없는 실질소득의 감소, 엄청난 가계부채 등은 그 확실한 증상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자본주의 경제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이미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청년실업 문제만 하더라도 거의 재앙 수준이다. 지금 젊은 세대는 이대로 간다면 대부분 평생 단 한 번도 정규직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채 늙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무리하게 경제성장을 강요하는 주범, 주식회사
문제는 이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 있느냐이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경제적 모순에 대한 처방은 늘 경제성장이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성장으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완화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메커니즘이 앞으로도 통할까.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중심 화두가 된 것은 이미 이 사회에서도 경제성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광범한 인식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핵심 가치가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아직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냉정한 파악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본질은, 간단히 말하면, 지구의 생물물리학적 한계가 더 이상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성장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모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리한 성장이 추구되는 것은, 계속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시대의 전형적인 경제활동 주체, 즉 ‘주식회사’가 여전히 지배적인 세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가 진짜가 되려면, 재벌의 폭군적 권력을 통제하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주식회사 체제 자체의 구조적 폭력성을 직시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주식회사란 한마디로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는 파괴적인 논리가 시스템의 원리로 되어 있는 기구다. 다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지상명령이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기업경영 따위는 애당초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는 노동운동과 공적 권력을 통해서 기업이 윤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방법, 또 하나는 주식회사 체제 바깥에서의 인간적인 비즈니스 방식을 찾고, 그것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희망의 신호는 협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 운동은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 대신 지배적인 경제활동 주체로 확대될 때, 더 이상 성장이 안 되는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협동조합 중심의 경제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 경쟁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연대와 협동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란 본래 이윤 추구가 목적인 이상, 경제성장이 계속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게다가 1주1표의 시스템인 까닭에 대자본가의 전횡을 피할 수 없다. 반면에 협동조합은 경제성장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 또한 협동조합 특유의 1인1표의 운영원리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완전히 부합한다. 그러니까 협동조합은 단지 민중의 경제적 욕구 충족뿐만 아니라 민주적 자치능력의 향상에 기여하는 소중한 틀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시련과 고통은 결코 더 많은 경제발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 실천이다. 경제위기를 계속 성장논리로 대응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강화된 파시즘 체제로 나타날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78호 13.1.18
다시 일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멘붕’에 빠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 시민들이 학교·회사·마을에서 의제들을 찾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2007년 12월 겨울, 대선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에서, 그깟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뭐가 그리 달라지겠소!” 자칭 ‘실용주의자’에게 나라를 맡겨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판임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촛불시위를 경과하면서 정치적 반대파가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힘 좀 쓰는 자리는 측근들로 채워졌다. 그동안 힘들게 얻어낸 민주주의와 법치 질서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1987년보다 더 큰 규모의 시국선언이 뒤따랐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그 와중에 민간인 사찰이 자행되고 있었다.
다시 5년 후, 이번에는 반드시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에게 큰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최소한, 후퇴한 민주주의는 복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지인들의 모임에 나가봤다. 다들 2007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멘붕(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들을 앞에 두고 감히 “뭐가 그리 달라지겠소”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속내는 2007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식 리더십과 정치 노선은 퇴행적이라고 생각하고,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충격적이기까지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제2의 유신시대를 열 것이라는 가정은 과도하다. 경제민주화가 ‘줄푸세’를 계승한 것이라는 해설은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당선자의 핵심 공약이 부족하나마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오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겨우 3.6%를 더 얻은 후보가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대통령제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라면,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아야 정상이다. 통치권자의 정치이념에 따른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그 진폭은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패배한 진영의 충격도 딱 그만큼이어야 한다. 물론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진폭을 경험하게 해준 이명박 정부를 잊을 수가 없지만, 이번에는 설마 그 정도는 아니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희망 섞인 전망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멘붕에서 벗어나고 다른 행동을 모색해야 한다. 벌써 5년 후를 기약하자는 분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5년 후에 원하는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것보다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멘붕에 빠지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선거로 통치 권력을 교체하는 ‘큰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에서 자치와 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학교·회사·마을·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존엄하고 자율적인 삶을 위한 의제들을 찾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합법적인 국가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얻겠지만, 아렌트(H. Arendt)에 따르면 ‘폭력’과 구분되는 ‘권력’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나온다. 이 능력을 강화하고 실천에 나서는 직접 행동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선거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길
아렌트는 이렇게 일상에서 시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율적인 자치 권력을 창출하는 정치를 ‘혁명의 잃어버린 보물’이라고 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 보물들이 널려 있다. 학교나 동네에서 소소한 자치모임을 해보는 것, 공동 육아, 동네 도서관, 생활협동조합 등에서 협력적 행동을 실천해보는 것,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에 기부하거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 동네 신문이나 공동체 라디오 등 작은 미디어를 만들어보는 것, 학교운영위원회나 노동조합 등을 통해 학교와 직장에서의 자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 지역 주민과 함께 기초의회 감시활동을 해보거나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멘붕을 치유한답시고 술자리에서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다. 일상에서 시민의 권력이 강화되면, 통치권자가 누구이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선거에서의 승리와 패배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점차 해방되어야 한다. 어쩌면 일상의 작은 정치에서 시민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작금의 ‘멘붕’의 원인인 ‘큰 정치’를 바꾸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조교수) 시사인 277호 13.1.6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Albert Hammond)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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