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꽃 설날에 피었다. 어머니 계신 본가 해안사 아래 적산가옥에서 였다.
그뭄날 아버지 어너니 계신 본가로 큰 아들 데리고 가다 본 저물녁 풍경
아내는 하루종알 전을 붙이고 제수준비를 하느라 쉴틈이 없다. 언제나 한결같은 흐름은 아내가 이것저것 기본적인 준비를 해두면 엄머니가 나머지 준비를 밤늦도록 한다. 헌데 올해는 어머니 편두통이 심해 나물 무치는 일을 아버지가 대신 했다. 어머니는 옆에서 나물에 들어갈 참기름이며 간장의 양을 말해주시고 아버지가 우적우적 무치는 모습 담았다. 그렇게 그뭄밤이 지나고 큰 아들은 목욕갔다 새벽녁에야 들어 왔다. 잠시 눈을 붙이는가 싶었는데 날이 밝았다.
1남3녀의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고 명절이면 늘 아들네만 남는다. 아내와 아이들 차례로 세배를 올렸다. 그리고 뒤이어 삼촌과 사촌들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 먼길을 마다 않고 왔다. 이어지는 세배드리기와 세배돈 주기는 모두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아버지는 미리 세배돈을 준비해서 누구 얼마 누구 얼마 분배를 해두셨다. 올해 가장 세배돈을 두둑히 받은 사람은 우리집 막내였다. 처가집 외삼촌들과 외할매가 준것까지 포함한다면 제법 목돈이 될 수준이었다. 특별히 배려한 것은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명절 세배돈은 은근이 부담이 된다. 가장 낮은 단위인 1만원 이라도 줘야 할 조카들이 많다 보니 그렇다. 그럼에도 크게 아깝지 않은 것은 자주 못보기 때문이고 혈족이기 때문이다
제주(祭主)는 아직 아버지인데, 언젠가 내가 저 위치에서 큰아들로부터 술을 받을 것이다.
옛날 고향에서 명절을 맞아 설 차례를 지낼 때는 마당에 멍석을 깔아 지냈다. 사람이 많아서 였다. 대청에서 밀려나 멍석에도 두 줄 가량 섰다. 발이 시렸다. 그렇게 많던 일가들이 이제 다 자기가 터잡은 곳에서 지내다보니 차례참여는 직계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아버지의 사촌과 나의 오촌은 빼고 제사를 모신 직계 남자들만 한 컷했다. 올해 각집안에 내려 미션은 이렇게 사진을 찍은 다음 밴드에 올리는 것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飮福)을 하는 동안 잠시 주변을 산책했다.
성암사가 불사를 일으켜 절집을 크게 확충했다. 놀라운 변화다. 조계종 소속의 성암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전·용왕당·설법전·종무소 등이 있었는데 주지 응현스님의 등장 이후 세가 늘었고, 거기에는 경남불교대학이 큰 역할 을 한 것으로 추즉한다. 1999년 성암사(聖巖寺)에서 성암사(惺庵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창건에 따른 여러 설이 전하긴 하지만 본격적 사찰의 기능은 1970년대부터 였다. 현재 이 절에 어머니와 아내가 신도로 활동 중이다.
절 앞에서 내려다 본 시가 삼성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어떤 풍광이었을까 바람이 둘어오는것도 나가는 것도 막고 선 형국이다.
진남로 232번길인데 갈미봉 자락 저 구릉을 뚧고 지나는 터널이 계획되어 있다고 들었다. 대연5동 어느 곳이 맞은 출구가 될 것이다. 그럴 필요가 있나. 글쎄
오후 들어 김해 한림 처가로 향했다.
고니 두 가족이 먼저 와 있었다.
큰처남댁이 갑작스런 몸살로 병원을 다녀오는 바램에 큰처남네가 급히 귀가하고 또 언제나 처럼 작은 처남네와 장인장모 우리식구만 남았다. 같은 시간 첫째와 막내 여동생네가 본가로 왔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찍 잠이 들어 일찍 잠에서 깼다. 그리고 마을 둘러보기에 앞서 화포천을 보았다. 고니와 오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도 마찮가지지만 집장사하는 인간들이 이곳에서도 설친다.
어저귀와 도꼬마리
소리쟁이, 미국가막살이, 달맞이꽃
You're The one- The Vogues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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