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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23 경향 장도리
RO도 없고 음모도 없는데 선동은 징역 9년, 논리가 꼬이네 1.22 미디어오늘
[분석] 누더기가 된 검찰 공소제기 감싸는 이율배반적 판결… 정치적 타협 산물, 표현의 자유 위축
결국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는 없었다. 대법원이 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과 변호인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2심 선고를 확정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내란과 관련한 구체적인 행위가 없었음을 사법부가 최종 확인했다는 의미가 크다. 역대 내란사건이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되면 최초의 내란사건으로 기록될 예정이었지만 사법부는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죄는 없다고 재확인한 것이다.
특히 내란음모 혐의의 핵심 근거인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내란사건이 정치적 공세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도 예상된다.
검찰은 13차례 진행된 공판에서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RO의 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란음모 목적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가진 RO가 있기 때문에 내란음모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다. 공소사실 대부분도 RO의 실체를 입증하기 위한 내용으로 돼 있다. 박근혜 정부가 청구한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서도 "핵심세력인 RO의 내란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도 통합진보당 해산시키면서 사실상 RO의 실체를 근거로 내세웠다. 2심 재판부는 하지만 '진보당=RO', '총책=이석기'라는 등식을 깨버렸다. 내란음모죄가 성립되려면 내란 음모에 합의할만한 내용과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RO가 없기 때문에 총책도 없고 내란음모 지시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심 선고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검찰의 공소제기를 뿌리째 흔들어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욕을 안긴 것이고 검찰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결정도 입지가 좁아졌다. 헌재는 “회합을 주도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서의 지위 및 이 사건에 대한 피청구인(진보당)의 전당적 옹호 및 비호 태도 등을 종합하면 이 회합은 피청구인의 활동으로 귀속된다”면서 RO에 의한 내란 음모 사건은 진보당의 활동으로 볼 수 있고 구체적인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RO 조직이라는 것을 인정치 않았고 따라서 국헌 문란의 구체적인 위험성도 없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이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법리적 모순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애초 대법원 선고는 2심 선고를 뒤집어 모두 무죄를 선고하거나 내란음모까지 모두 유죄로 선고하는 판결, 그리고 2심 선고를 확정 판결하는 3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대법원이 내란음모까지 유죄로 선고했다면 역사상 최초로 사법부가 내란의 실체를 인정해 죄를 묻고 지하혁명조직 RO를 내란음모 조직으로 봤던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이고 급속도로 공안정국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대로 대법원이 내란음모와 내란선동까지 무죄로 선고해 파기환송시켰다면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고, 종북몰이가 정치적 공세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2심 선고 결과를 확정한 것이다.
지난해 2심 선고 당시에도 진보 쪽에서는 내란음모도 없었는데 어떻게 발언만 가지고 선동죄를 물을 수 있느냐'는 반발이 나왔고, 역으로 보수 쪽에서는 내란 선동은 내란을 계획하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에 내란음모 혐의도 유죄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심 선고를 확정 판결하면서 결과적으로 보수-진보가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싸움을 구경하는 셈이 됐다. 사법부가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줘 비난을 뒤집어쓰기 보다는 양쪽 진영이 싸울 수 있도록 판을 벌어주는 식으로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사회도 대법원 판결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타협의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쏟아지는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2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이석기의 유죄판결이 1987년 이전의 군사독재 정권에서 만들어진 매우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근거해 내려졌다는데 주목하고 있다"며 "이 판결이 대한민국의 국제인권조약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와 매우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온 한국의 국제적 명성과 모순되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도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진보당 해산과 예정된 대법원 선고 등을 언급하면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국가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비례적이고 필수적인 경우에 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정치적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내란선동 혐의 유죄 판결은 법리적 모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내란선동 혐의도 내란음모와 마찬가지로 범죄를 실행되기 전 실질적 위험성이 존재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석기 전 의원의 구체적인 위험한 행위는 드러난 적이 없다. 더구나 내란음모가 다수에 의한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선동은 말그대로 단독으로 한 행위이기 때문에 내란음모 행위보다 선동의 행위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성을 가져야 하는데 재판부는 이를 입증할 만한 내용을 밝히지 못했다. 내란음모는 무죄로 선고하면서 어떻게 선동만을 따로 떼내어 죄를 물을 수 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성규 전 진보당 대변인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보당을 해산시켰던 결정적 근거가 모두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내란음모가 없었는데 내란선동은 있었다는 이율배반적인 판단은 그대로 남았다"며 "대법원에서조차 정권에 대한 눈치보기 판결이 그대로 이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이 향후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급속히 위축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다.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부의 문제가 많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순간 내란 선동에 걸리는 상황이 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엄청난 제약을 가져오는 법 질서”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내란 선동죄는 대법원 판례가 없었는데 이런 상태에서 곧바로 내란으로 가는 위험이 없더라도 선동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내란으로 나아갈 가능성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법 이론상 음모죄이든 선동죄이든 실질적 위험성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음모혐의가 부정되면 선동죄도 없는 건인데 교묘하게 분리를 시켜놓은 것”이라며 “지난해 5월 10일 모임은 누가 봐도 내란에 이르는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유죄를 하기엔 대법원이 부담스러웠을테고 선동죄마저도 무죄로 하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음모죄와 선동죄 요건을 비틀어서 마침 판례도 없기 때문에 선동죄에 유죄를 선고해 정치적 타협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모는 무죄, 선동은 유죄, 서슬퍼런 ‘종북 매카시즘’ 1.22 미디어오늘
대법원 판결에 여야 모두 “존중”… 변호인단 “종북 매카시즘 쓰나미 헌재와 대법원 쓰러뜨려”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대법원의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판결에 대해 여야 모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이유는 각기 달랐다. 진보당 측은 “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옥죄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법원은 22일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최종심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란선동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도 확정됐다. (관련 기사 : <대법원,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 확정>)
이번 판결을 두고 새누리당은 “사필귀정”이라고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비록 증거부족을 이유로 절반의 단죄에 그쳤지만, 내란을 선동한 세력에 대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린 것은 사필귀정”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체계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어서 안도한다”고 밝혔다.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유는 새누리당과 달랐다. 한정애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이번 판결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적인 ‘종북’ 공안몰이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판단된다.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로 확정된 점을 주목한다”며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는 그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판결을 강조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내란음모는 무죄’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동시에 새정치연합은 헌법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사자인 통합진보당 측은 내란선동을 유죄로 판단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당 변호인단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정권 위기 돌파를 목적으로 시작한 ‘종북’ 매카시즘의 쓰나미가 헌재를 집어 삼키더니 대법원마저도 무너뜨렸다. 그동안 내란선동죄를 꺼내 휘두른 역대 대통령은 박정희, 박근혜 2명 뿐”이라며 “이미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인 내란선동죄 유죄로 선고했다. 죽은 법이 산 사람을 잡은 격”이라고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이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국가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판결임이 분명하다”며 “오늘 대법원 판결문으로 말미암아 공안통치 부활하는데 날개를 달아주는 격으로 되리라는 심각한 우려 또한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이석기 전 의원의 항소심 선고 이후 이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 씨가 눈물을 흘리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노컷뉴스
연예인의 은밀한 대화 공개, 여러분 즐거우십니까? 1.20 미디어 오늘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우리도 갑자기 ‘공인’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배우 이병헌과 그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진 이아무개씨 둘 사이에 오간 카카오톡 대화가 재구성되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클라라와 폴라리스 회장 사이에 오간 대화가 한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해당 기사는 포털을 통해 폭발적인, 그야말로 ‘광클’을 기록했다. 하지만 재미의 극단은 위험하다.
이를 보도한 매체는 알 권리와 공인(公人)이라는 개념을 주목했을 것이다. 연예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알권리 차원에서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가 일정하게 공개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오’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공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公開)된 의미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유형의 주장을 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그런 광의의 주장은 모순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공인(公人)이라고 한다면, 기준 자체가 모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말만큼 부정확한 표현도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 많이 오르내리고, 영화 흥행의 주인공이라 해서 공인이라면, 공인의 기준은 대중적 인기에 좌우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대중적 인기가 사라진다면 공인이 아닌 걸까.
특이하게도 언론이 연예인들에게 공인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때는 대개 부정적인 사건과 결부된다. 연예인에게 공인이라는 단어는 보통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었거나 그들의 약점을 활용할 때 사용된다. 약점의 활용이라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사생활을 상품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알 권리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연예인과 관련해 알 권리라는 달콤한 말이 정말 이렇게 통용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국민의 알권리는 국민과 정부의 관계에서 출발한 것이다. 스타들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알권리의 출발은 국민주권주의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 사안이나 공적인 일을 담당하는, 즉 국민에게 행정과 정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나 사람에 대해서 국민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들이 담당하는 ‘공적인 행위’가 모두 알 권리에 해당한다. 이를 대리하는 것이 언론기관이기도 하다.
▲ 지난 19일 연예보도매체 ‘디스패치’에 공개된 클라라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이 회장이 나눈 SNS 문자 메세지. 사진=디스패치
단지 연예인처럼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 건 근거가 미약하다. 공인이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권리와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존재이다. 연예인들에게 확정적으로 그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그들을 둘러싼 논쟁은 관음증적 욕망의 충족에 불과하다. 이병헌이나 클라라의 카톡 내용을 공개한 언론은 섹슈얼리티의 상품화란 목적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병헌의 주장이 옳은지 그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진 이아무개의 주장이 맞는지, 아니면 클라라가 거짓말을 하는지 소속사 회장 주장이 맞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법원에서 가릴 문제다.
물론 잘못한 사람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기가 있어 유명하더라도 연예인들은 일반 시민과 같은 개인들이라는 점이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오간 개인들의 대화가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법으로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9조(비밀 등의 보호)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 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 도용 또는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했다. 또한 제71조는 이에 대한 벌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49조를 위반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타인의 비밀을 타인들에게 밖으로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대목이다. 또한 제66조(비밀유지 등)에서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직무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72조도 벌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66조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정보를 다룬 내부자의 도움으로 정보 내용이 누설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제49조와 제66조는 개인의 정보를 알려주거나 누설하는 자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대화내용을 공개하는 것 모두 이를 위반하는 것이다.
연예인을 둘러싼 내밀한 대화를 무분별하게 공개한 매체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 해당 매체는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법리나 인권·사회적 가치를 살펴봐도 문제가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당사자의 승인을 받고, 공개했어야 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허락하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미란다 원칙에 따르더라도 재판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은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법정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SNS상의 대화를 공개한 디스패치에는 이런 고민들이 없어 보인다. 법정에서도 불법적인 증거 수집 방법은 증거능력을 소멸시킨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이유는 어떤 명분과 목적을 위해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일이 비단 연예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스마트 모바일시대에 누구라도 근거 없는 기준으로 갑자기 ‘공인’이 되어버린 채 알권리라는 칼날에 난자당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그들의 대화 내용을 접하며 관음증 욕망을 충족할 때가 아니다. 그럴수록 ‘대화공개 장사’는 더욱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저성장시대 희망 찾기]
‘성장 열매’를 복지에 투입하면 경제 효율·사회 형평 ‘일거양득’1.11 경향
5) 북유럽의 경우
▲ 고소득층 소득세율 약 60%… 고부담·고복지 체제 틀 갖춰
성장 외면한 복지와는 거리… 철저한 자유시장 경제모델
감세·재정지출 줄이더라도 사회복지 ‘큰 틀’ 안 허물어
“평균적인 재능과 소득수준을 가진 사람으로 세계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누구든 북유럽에서 태어나기를 원할 것이다.”
지난해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유럽 경제모델의 성공비결에 대해 분석한 특집기사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는 경제성장에 매달려 극단적 불평등을 낳은 영미식 자본주의와 남부 유럽의 경제파탄을 목격했다. 그 이후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북유럽의 경제모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성장과 분배를 두 축으로 한 북유럽 경제모델
북유럽 경제모델은 최저수준의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다르다. 성장과 복지를 두 축으로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 불리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덴마크 정도가 북유럽 복지국가로 한데 묶이곤 하지만, 이들 국가의 경제발전 과정과 산업구조는 각각 다르다. 예컨대 노르웨이는 1960년대 북해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산유국 반열에 올라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보편적 복지를 실행에 옮겼다. 스웨덴은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가 경제를 이끈다. 핀란드는 노키아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들 나라가 북유럽 복지국가로 묶이는 것은 세금을 많이 걷어 교육과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을 국가가 해결하는 ‘고부담·고복지 체제’의 틀을 갖추고 있어서다. 이들 국가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은 60%에 가깝다. 2013년 현재 조세부담률은 덴마크 48.6%, 핀란드 44.0%, 스웨덴 42.8%, 노르웨이 4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4.1%)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북유럽 국가들이 성장을 외면하고 복지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률이 전제돼야 한다. 되레 북유럽 경제모델은 철저한 자유시장 경제모델을 따르고 있다.
인구가 적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북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자유무역을 추구해왔다. 노동시장도 유연하다. 덴마크에서는 기업들이 경영상 필요에 의해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대신 임금의 90%에 이르는 실업수당을 정부가 지급한다. 노동자들은 실업상태에서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 ‘성장을 위한 성장’에 집착하지 않고 재정부문 개혁
북유럽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도 ‘성장을 위한 성장’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성과를 복지재정에 투입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일도 없다. 스웨덴은 자동차 제조업체 사브가 파산하고, 볼보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공공부문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 경제위기를 겪었던 북유럽 국가들은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부터 흑자재정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유지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했고, 고령화사회를 대비해 연금지급액을 낮췄다. 덴마크도 연금 수령시기를 늦추고, 실업수당 지급기한을 줄였다. 북유럽 국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재정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사·정 사회협약’을 통한 갈등요인의 해소, 정부 행정의 투명성 유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북유럽 국가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경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보도했다. 북유럽 국가의 복지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북유럽 국가들이 세금을 낮추거나 재정지출을 줄일 때면 일각에선 “복지병을 우려해 경제성장으로 눈을 돌렸다”고 반색했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 체제의 큰 틀을 허문 적이 없다.
예컨대 2006년 우파정권 집권 후 스웨덴은 실업수당 제도를 손질했다. 실업수당을 없애지 않고 임금의 80%에 이르던 실업수당을 70%로 줄이고 수당을 받으려면 노동시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만들었다. 재정지출을 줄였지만 보편적 복지의 큰 틀을 깬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전히 북유럽 국가들의 GDP 대비 공공지출 비중은 50%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일자리 가운데 30%는 공공부문이 창출하고 있다. OECD 평균의 두 배다.
그럼에도 최근 북유럽 국가의 ‘감세 드라이브’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핀란드는 법인세율을 24.5%에서 20%로 낮췄고, 노르웨이는 상속세를 폐지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지난해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연 강연에서 노르웨이의 감세 정책에 대해 “투자유치를 위한 과도한 국가간 경쟁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성장시대 희망 찾기]
문턱 낮춘 진료 “동네 주치의”… 수익 대부분 지역주민과 나눠 1.8 경향
(4) 대안기업 - 사회적협동조합… 서울의료협동조합을 찾다
▲ “식생활 개선 먼저 권장… 건강보험 적용 치료부터”
입소문 타고 손님들 북적… 소모임에 공간·비용 지원
“협동조합, 국가가 못하는 복지서비스 대신하는 기능”
서울 영등포구 대림사거리에 위치한 연주황색 3층 건물 1층엔 서울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서울의료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한의원이 있다. 지난달 26일 찾은 한의원에는 6명의 손님들이 신문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의 한의사가 일하고 있는데, 예약을 해도 30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간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의원이 붐비는 비결은 뭘까.
“한의원이나 치과에 갈 때면 비싼 한약 값과 진료비가 가장 부담이 되지요. 서울의료협동조합은 식생활 개선을 먼저 권장하고, 가능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지역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지요.”(서울의료협동조합 허은구 팀장)
“‘동네 주치의’가 되려고 합니다. 의사들이 7년 넘게 근무하고 있어 주민들이 2~3년 만에 찾아와도 어떤 부위가 아팠던 분인지 기억하니 그걸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아요.”(정미숙 사무국장)
성장과 이윤에 대한 집착 없이 지역주민과의 공생을 목표로 내건 서울 영등포구 서울의료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26일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의료협동조합에는 매달 40가구가량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의료협동조합은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대부분의 기업처럼 매출액을 높이고 이윤을 늘리기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문턱 낮은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윤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의원 외에도 길 건너 건물에 있는 치과를 운영하고, 조합 직원인 요양보호사들이 장기요양보험 대상 가정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의료협동조합은 2007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치과를 설립했다. 아직 2억원가량의 대출금이 남아 있긴 하지만 또 다른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금보다 큰 건물을 매입해 치과와 한의원을 옮기고, 남은 공간에는 노인요양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빚을 갚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수익 늘리기는 하지 않는다. 지난해 한의원과 치과에서 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환자 수에 비하면 낮은 매출액이다. 의사 3명과 직원 30여명의 인건비와 임차료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합 사업비로 쓴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질병예방 보건교육을 하고, 아이들에게 독감 예방주사를 놔준다. 조합원들의 취미생활 소모임을 지원하고, 김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쓰고 남은 수익은 매출의 1%(1300만원)에 불과하다. 수익금은 모두 빚 갚는 데 썼다.
서울의료협동조합에는 한 달에 40가구가량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려면 최소 5만원(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등은 1만원)을 출자해야 한다. 현재 영등포구와 동작구를 중심으로 2150가구가 가입했다. 조합원이 아니라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데, 조합원에게는 비보험 진료비 10%를 깎아준다.
허은구 팀장은 일반 회사에 다니다 2년 전부터 서울의료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 회사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일도 해야 했고, 불합리한 점을 얘기하면 불이익이 돌아왔지요. 서울의료협동조합은 말단인 저도 똑같이 의견을 제시하는 민주적인 분위기예요. 조합의 목표도 제 삶의 지향과 맞고요.”
서울의료협동조합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조합원이 5명 이상 모이면 소모임을 만들고 공간과 비용을 지원받는다. 조합원들은 최근 사무실 옆에 ‘거기’(巨氣·기를 크게 한다는 뜻)라는 공간을 꾸몄다. 이곳에선 요가와 댄스, 퀼트, 태극권, 캐리커처 배우기 등 강좌가 열린다.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 김명희씨(40)는 2년 전 피부가 건조한 아이들을 위해 천연비누·샴푸 등을 만드는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조합을 알게 됐다. 요즘은 큰딸(7) 친구 엄마들과 함께 발레 강좌를 열었다. 학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조합에선 발레 바를 설치해줬다. 김씨는 “아이들이 발레를 배우는 동안 엄마들은 조합에서 반찬 소모임을 한다”며 “아이들 키우느라 4년 전에 직장을 그만뒀는데 조합 활동을 통해 활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의료협동조합이 영등포구 말고도 마포·은평·노원·성동 등 5개 구에 결성돼 있다. 허 팀장은 “시·군·구마다 하나씩 생기면 좋겠다”며 “의료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동종 회사끼리 경쟁하기보다 서로 돕고 지원하는 것이 일반 기업과는 다른 협동조합의 특징이다.
서울의료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협동조합은 지난해 10월 현재 198곳이 설립됐다. 지난해 말까지 새로 생긴 곳이 89곳에 이른다. 학교 매점을 운영하는 곳, 탈북 주민과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 방과후 축구교실을 여는 곳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협동조합의 오래된 미래, 선구자들>의 저자인 윤형근 한살림 성남용인생협 상무는 “협동조합은 인간 삶을 우선시하는 살림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하는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 맞설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이라며 “그중에서도 사회적 협동조합은 저성장 시대에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복지서비스를 대신하는 기능도 한다”고 설명했다.
저성장시대 희망 찾기]‘두루’ ‘수원시민화폐’… 지역화폐를 아시나요 1.8
ㆍ용역 팔면 구할 수 있는 화폐… 상품·서비스 구입 때 사용
ㆍ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
대전 대덕구에 사는 ㄱ씨는 지난달 말 마을 의료협동조합에 승합차를 빌려주고 현금 6만원과 4만‘두루’를 받았다. ㄱ씨는 중고 가전제품을 구입하거나 이웃이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 장난감을 구입할 때 현금이 아닌 두루를 사용한다. 같은 마을의 ㄴ씨도 고장난 이웃집 컴퓨터를 수리해주고 7만두루를 받았다.
경북 상주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ㄷ씨는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가격의 일부를 두루로 받았다. 최근 대전 대덕구 민들레 의료협동조합 치과를 찾은 ㄷ씨는 치과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면서 두루를 사용했다.
대전에서 지역화폐로 사용되는 ‘두루’. 한밭레츠 제공
두루는 대전의 지역화폐 시민단체인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화폐이다. 2000년 대전지역 70여가구를 시작으로 현재 상주와 충남 금산 지역 농민 등 657가구가 회원 간의 거래에서 두루를 사용한다. 마을의 의료협동조합, 약국, 카센터, 사진관, 커피전문점, 음식점, 수학학원 등 20여개 가맹점에서도 두루 사용이 가능하다. 상품 구입 때 가격의 20~30%를 두루로 내고, 중고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는 전액 두루를 사용한다. 2013년 기준으로 1만7308건, 총 3억8000만원어치의 거래가 이뤄졌고 이 중 55%가 원화가 아닌, 두루로 거래됐다.
지역화폐는 대기업,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적 고성장에서 벗어나 마을기업과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고 장난감, 컴퓨터 수리용역, 약값, 임플란트 비용 등을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두루로 결제하면서 서울이나 수도권 등으로 빠져나갈 돈들이 지역에 남게 됐다.
두루 거래가 많아질수록 구성원 간의 사회적 관계가 공고해졌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활동도 늘었다. 요가 품앗이, 수학공부 품앗이, 공동 육아 등 품앗이 활동으로 구성원 간 신뢰가 쌓이면서 지역화폐 거래는 더욱 활성화됐다.
국내에 도입된 지역화폐는 50여개에 이른다. 대부분 민간 주도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수원에서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수원시민화폐’를 3개월간 시범운영했고, 강원도는 올해부터 지역화폐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저성장, 탈성장 시대를 언급하면서 대안 중의 하나로 지역화폐를 권고한다”며 “지역화폐 생태계를 다양하게 구축하면 저성장으로 인한 충격을 덜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저성장시대 희망 찾기]
성적은 올려도 성취 동기는 올리지 못한 경쟁 풍토… 이젠 그만 1.4 경향
3) 성장주의 교육 탈피
▲ 성적·학력 높아져도 개인·사회 역량은 제자리
“경쟁이 성취동기 자극 신자유주의 주장은 허구… 되레 성취동기 저하돼”
▲ 자발적 학습동기 유발해 학생·교사 함께 만드는 수업
시흥 장곡중학교 실험 눈길
성장주의는 수십년간 한국의 교육을 지탱해온 한 축이었다. 점수와 학력이 높아지면 개인도, 사회도 성장할 것이란 논리가 지배했다. 그러나 성적·학력의 허상은 점차 깨져가고 있다. 옆자리 친구보다 점수가 높아도, 이웃나라보다 학력이 우수해도 개인과 사회의 역량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3년마다 진행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피사)에서 최상위권을 놓쳐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평가 결과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2년 보고서’를 보면 학교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60%에 그쳤다. 조사 대상 65개국 중 꼴찌였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3년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여론조사’에서 초·중·고교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49점에 머물러 1년 새 0.41점이 떨어졌다.
성장주의에 매몰된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며 상위 1%를 향해 질주시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가 아닌 경쟁자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소수의 승리자를 위해 다수의 패배자를 만드는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즐거움과 희망이 가득 차야 할 교육현장이 아이도, 부모도 절망과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경기 시흥 장곡중 3학년 학생들이 모둠활동을 하며 수학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장곡중은 한 달에 두 번씩 수업공개·연구회를 갖는다. | 장곡중학교 제공
■ 성장주의에 매몰된 한국 교육 패러다임 바꿔야
영국 등 유럽 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한 12개국은 OECD의 지원을 받아 급변하는 사회환경에서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데세코(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cie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데세코 보고서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핵심능력을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도구를 상호적으로 활용하기’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집단과 상호작용’ 등 3가지 범주로 정의했다. OECD는 “능력이란 지식이나 기술을 응용하는 데 필요한 전략이나 습관, 이에 적합한 정서와 태도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는 데세코 프로젝트를 토대로 교육과정을 바꿨다. 한국도 국책 연구기관에서 진행한 연구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강조해야 할 10가지 핵심역량으로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 정보처리능력, 대인관계능력, 자기관리능력, 기초학습능력, 시민의식, 국제사회문화이해, 진로개발능력 등을 꼽았다.
이광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과정본부장은 “미래사회에서는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배움이 중요하다”며 “교사들은 교과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목표와 교수방법, 평가방식 등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라는 괴물>의 저자인 권재원 교사(서울 풍성중)는 “피사 2012 보고서에선 수준별 수업이 경쟁을 통해 성취동기를 자극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학생들의 성취동기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적으로는 동아시아의 경쟁적 풍토가 학업성취도를 높이겠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이들을 쉴 새 없이 괴롭히면서도 효율은 떨어지는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더불어 행복한 배움 공동체 지향해야
일등부터 꼴등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즐거워하는 학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는 학교, 줄세우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학교….
경기 시흥에 있는 장곡중학교는 전국에서 한 해 2000여명의 교육 관계자들이 연수를 오는 곳이다. 농촌과 도시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장곡중은 2009년 교사 80% 이상의 지지로 혁신학교로 지정되며 변화가 시작됐다. 교사들이 머리를 맞댄 첫 번째 과제는 아이들의 자발적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삶의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쪽으로 수업내용을 바꾸는 것이었다. 모든 교사가 수업 연구회를 통해 새 교과과정을 만들었다. 교과서는 참고용일 뿐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별도로 만들었다. 학생들의 책상도 ‘ㄷ자’ 모양으로 배치해 4명씩 모둠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수업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모둠수업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모르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집단지성’을 발현시키는 수업이다. 이렇게 3년을 지낸 아이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발표력·표현력·설득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현숙 장곡중 수석교사는 “우리 학교에서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들도 고교에 진학하면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적극적으로 잘 이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아이들이 수업에 푹 빠져 기대 이상으로 총체적인 역량이 향상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곡중의 수업혁신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년간 장곡중 사례를 연구해 국제학회에서 발표한 서울대 교육학과 연구팀은 “장곡중의 수업은 수준이 높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모두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교사가 창의적으로 제작한 장곡중 활동지에 번호만 붙이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로 내놔도 될 정도”라고 평가했다.
장곡중 학생들은 “수업이 시험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업을 잘 들으면 내 삶이 나아질 것 같아 열심히 듣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말 속에 학교 교육의 지향점이 함축돼 있다.
저성장시대 희망찾기]
“소유·낭비 줄여야 살죠”… 함께하고 나누는 ‘공유 경제’ 확산 1.1 경향
2) 생존전략의 변화
▲ ‘더치페이’ ‘공구’ 보편화… 집·차도 공동 소유 늘어
‘강요된 알뜰’의 부작용… 가족·친구 교류는 감소
경기 고양시에서 18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임원배씨(54)는 저성장시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임씨는 “손님들이 예전에는 2개 사던 것을 이제는 1개만 산다”며 “서민들은 돈을 쓰지 않는 걸 저성장시대를 사는 생존전략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 소득이 늘지 않으면서 식료품 구입부터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주부 이모씨(53)는 “식비를 비롯해 모든 것을 다 줄여가며 살고 있다”며 “예전에는 식료품을 많이 구입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남으면 버렸지만 이제는 딱 먹을 만큼만 산다”고 했다.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은 저성장시대의 보편적인 생활상이 됐다.
구모씨(31)는 평소 체크카드와 현금 2만~3만원만 갖고 다닌다. 구씨는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돈을 얼마나 썼는지 잘 모르지만 현금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뽑을 때마다 잔액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월급을 받으면 전기료·카드대금·시민단체 후원금 등을 우선 내고, 남은 금액에서 30만원을 다른 통장으로 계좌이체한 후 가급적 쓰지 않는다. 그는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모여 직접 만든 비빔밥을 나눠 먹고 있다. 자취경력 2년째부터 9년째까지 다양한 1인 가구 청년들이다. 하루 두 번 밥을 사먹으면 한 달 밥값이 30만원을 넘는다. 35만~40만원 하는 방값에 관리비, 교통비, 휴대폰 요금을 제외하면 남는 월급으로 생활하기 힘들다. 이날 메뉴는 비빔밥. 재료비로 1만3000원이 들어 각자 2000원씩 냈다. 집밥 모임은 1인 가구 외로운 청년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모임이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일상화된 더치페이·중고매매·인터넷 나눔강의
저성장시대를 사는 20~30대들은 밥값을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가 일상화됐다. 더치페이를 놓고 “정이 없다” “구두쇠 같다”고 평가하는 것은 옛말이다. 중소기업에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김모씨(27·여)는 “내가 얻어먹으면 상대방한테 뭔가를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당연히 더치페이를 한다”며 “데이트 비용도 수입이 많은 남자친구가 조금 더 내긴 하지만 나도 많이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최모씨(34)는 “돈을 내기 전에 서로 눈치보는 게 싫어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다 계산했는데 타격이 크더라”며 “더치페이를 하자는 말을 꺼내기 힘든 모임은 점점 가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옷은 어떤 코디에도 맞춰 입을 수 있는 기본 디자인이 많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조 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에서 구입한다. 김씨는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구입해본 적이 없다”며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기본적인 소득이 낮아 (새 물건을) 살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구씨도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이 많은 중저가 매장에서 옷을 산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고매매’도 늘고 있다. 취업준비생 서모씨(26·여)는 공부에 필요한 책들은 거의 중고로 산다. 그는 “책값은 계속 오르는데 용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중고서점 서너 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다. 새 책을 사더라도 책에 필기하지 않거나 문제를 다른 노트에 옮겨 풀면서 깨끗하게 사용한 뒤 되팔기도 한다. 서씨는 최근에는 운동화나 다리미, 고데기도 중고매매를 하고 있다.
각종 시험준비생들 사이에선 ‘인터넷강의 나눔’도 활발하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공무원시험 수강료 부담을 여러 명이 나누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아이디(ID)로 여러 명이 함께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강의 업체들이 이를 단속하자 최근에는 빨리 강의를 들은 뒤 다른 사람에게 아이디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나눔이 이뤄진다.
■ 옅어지는 소유에 대한 집착… 셰어하우스·카셰어링 확산 추세
그동안 ‘소유’의 개념이 강했던 집과 차도 여러 명이 공유하는 추세다.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와 같은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는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셰어하우스(공동 주거)를 하면서 비싼 월세를 함께 부담하는 20~30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함께 타는 ‘카셰어링’ 사례도 늘고 있다. 차를 구입하는 비용은 물론 주차비·기름값·보험료 등을 감당하기가 힘든 사람들이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카셰어링 사업을 하는 업체는 ‘그린카’ 하나였지만 이제는 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최씨는 “자동차를 사면 할부금과 보험료, 기름값, 세금 등으로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내야 한다”며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 차를 빌리거나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 줄어드는 가족·친구들과의 교류
가족이나 친구와의 교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저성장시대의 ‘그늘’이다. 부조금이 부담스러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발길을 끊는 것이다. 임씨는 “가족끼리 외식하는 횟수가 줄었고, 부모님 용돈도 두 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지역에서 12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정상덕씨(52)는 “그동안 가게 매출이 늘어왔는데 지난해에는 마이너스”라며 “가족끼리 밥을 먹거나 동창 모임에 나갈 여유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은 해외보다는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싼 돈을 들여 관광객이 붐비는 해외여행지를 다녀오느니, 국내의 알짜 여행지를 찾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전반적으로 소득이 줄어 여행이 ‘사치’가 된 이들도 있다.
주부 이씨는 “남편이 퇴직한 뒤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며 “친구들 모임에서 여행을 간다며 5만~10만원 곗돈을 내라고 했는데 돈이 아까워 가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1990년대 후반엔 한 달에 한 번씩 쉬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도 다녀왔지만 그 이후에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저성장시대 희망 찾기]
교사 대신 농장 택한 부부, 출세=행복공식 버리자 절대 행복이 찾아왔다
정의준씨(35·사진 왼쪽)는 3년 전까지 기간제 교사였다. “비정규직의 삶이 다 그렇겠지만, 수업을 잘 못하면 언제든 잘릴 수 있었어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고, 행복은 돈이라고 생각했죠.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재능 있고 멋지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 싶어 열등감도 들었지요.”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삶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혼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내는 같은 학교에 있던 정규직 교사였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어릴 때부터 꿈이 농부였대요. 2011년에 결혼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참 좋더라고요. 아내가 ‘여기서 감귤 농사 짓고 살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하대요. 원래 복잡하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라 ‘오케이’했어요.”
1년 뒤인 2012년 봄방학 때 실행에 옮겼다. 학교 일을 정리하고 제주에서 3305㎡(1000평)가량 되는 감귤 과수원을 시작했다. 교사 부부는 농장 부부로 바뀌었다. 농사일은 고되고 수입은 적었다. 그런데도 정씨는 “100배 이상 더 행복해졌다. 로또 맞았다”고 했다. “여기서 살고 있는 자체가 좋아요. 정신적으로 힘든 고통에 비하면 몸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돈 쓸 일도 그리 많지 않아요. 봄 되면 나물 캐고, 바다에서 해산물 끌어다 먹어도 되고요. 정 없으면 옆집 가서 반찬 좀 달라고 해도 돼요(웃음).”
그가 느낀 것은 ‘절대 행복’이었다. “도시에 살면 친구가 마티즈 탈 때 나는 에쿠스 타면 더 행복하다고 여기는 상대적 행복 같아요. 손에는 항상 흙이 묻어 있고. 비교할 일도 없이 그냥 행복해요. 그래서 절대적인 행복이라고 하죠.”
유엔의 ‘2013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41위다. 국내총생산(GDP)이 13위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다. 영국의 여론조사업체 입소스모리가 2013년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행복한가?’라고 질문한 것에 한국인은 64%만 ‘그렇다’고 답해 19위를 기록했다. 인도와 중국은 각각 81%, 75%로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은 놀라운 국가다. 아시아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한편으로 너무 치열한 삶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한 것 같다. 일은 좀 줄이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늘려야 한다. 건강을 해치고 가족과 멀어지면 나중에 후회한다. 많은 돈을 벌어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지그메 틴레이 전 부탄 총리가 지난해 10월 방한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부탄은 1인당 GDP가 2000달러 수준에 불과하지만 행복지수에서 매번 상위권에 오른다.
정씨는 “‘생각의 차이’가 행복을 만든다”고 했다. “민박업을 하려고 융자를 받아 건축을 시작했는데 더뎌지는 바람에 목표했던 여름 시즌 영업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때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냥 ‘모르겠다’고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모두가 제주에 내려와 감귤 농사를 지을 수는 없죠. 그래도 집착하지 말고 ‘오늘 아니면 내일 하지’라는 식으로 마음을 바꿔나가보면, 좀 낫지 않을까요.”
저성장시대 희망찾기]
여유가 불러온 변화… 회식은 줄고, 봉사는 늘고, 가정은 소통 1.1 경향
ㆍ노동시간을 줄여라
항만은 쉬는 날 없이 밤낮으로 돌아간다. 부산신항 국제터미널 직원들도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일했고,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58시간에 이르렀다. 항만 상황에 따라 쉬는 날도 매번 달라졌다. 운영팀에 근무하는 ㄱ씨는 “7살짜리 아들한테 아빠는 ‘뻥쟁이’였다”며 “약속을 했다가도 갑자기 배가 들어오면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그의 삶은 달라졌다. 회사가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2조 2교대’ 근무제에서 ‘3조 2교대’로 바꾸면서 노동시간이 확 줄었다. 근무제 변경으로 일요일을 포함하면 주당 3일을 쉴 수 있게 됐다. “시간 여유가 생기니 등산이나 낚시도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됐고, 예전에는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못했던 축구도 직원들끼리 가끔 합니다. 아들한테도 떳떳하고요. ‘이제 아빠도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다’고 하죠.” 노동시간 단축은 항만에서 일하는 외주업체 직원들에게도 모두 적용돼 500여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충남 당진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인지에이엠티는 2011년 공정 개선을 통해 노동시간을 30분가량 단축시켰다. 그래도 주당 12.5시간의 연장노동을 해야 했다. 임금 삭감 없이 교대제를 개편해봤지만 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중단했다. 그래서 청소나 생산량 기록 작업 등 자투리 시간을 모아 다시 30분의 노동시간을 줄였다. 줄어드는 임금은 시급과 상여금 인상으로 보전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수요일을 ‘잔업 없는 날’로 운영하고 주말 특근은 최소화했다. 이 회사 품질관리팀의 정영기씨(40)는 “6살짜리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출근하고, 잠들고 난 뒤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결 나아졌다”면서 “업무에 필요한 외국어 공부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간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다. 권태희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 등이 지난해 말 펴낸 보고서를 보면 노동인구의 42%가량이 ‘시간 빈곤’ 상태에 있다. 노동 외에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태부족한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지난해 3~4월 ‘주간 연속 2교대제 전환 뒤 삶의 질이 향상됐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50%의 응답자가 ‘매우 그렇다’ 혹은 ‘대체로 그렇다’고 답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의) 퇴근시간 변화로 회식이 줄고 노사 공동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집 수리 등 봉사활동이 늘었다. 노조는 황토집 짓기와 도시농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증가해 가정 내 불통과 소외를 극복할 기회가 생기고 젊은 근로자들은 남편의 육아 참여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가야 할 길은 명확하고 공감대도 큰 셈이다.
[‘국가혁신’ 8개 부처 업무보고]
“1시간 내 해상 재난 현장 도착”… 현실 무시한 가이드라인 1.21 경향
ㆍ안전·혁신 분야
▲ 현장대응보다 ‘보고’ 강화… 소방·해경 처우개선 외면
정부조직 대진단 벌여 유사 조직 통폐합·감축
이미 나온 ‘도돌이표’ 정책
정부가 정부조직 통폐합이나 퇴출에 나서기로 했다. 해상 사고에는 늦어도 1시간 이내에 현장구조가 이뤄지도록 대응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는 정부가 해산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21일 ‘정부·안전혁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육지에서는 30분, 바다에서는 1시간 내에 특수구조대가 재난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2017년까지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최초 신고를 받고 2시간30분이 지난 뒤 현장에 도착해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대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행자부·법무부·국민안전처 등 8개 부처의 정부혁신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119특수구조대는 올해 충청·강원과 호남 권역에 각각 신설해 4곳으로 늘린다. 남해에 이어 동해와 서해에도 해양구조대를 새로 설치한다.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안전규제 체계도 갖춰진다. 원전 사이버공격 같은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이버보안 인력이 3명뿐인 원자력통제기술원에 30명 수준의 전담조직도 마련된다.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는 ‘정부조직 대진단’을 벌여 중요성이 감소한 조직은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줄이기로 했다. 적자 운영 등 부실 지방공기업은 퇴출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이날 반국가단체·이적단체로 규정된 집단을 정부가 해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세월호 참사 후 출범한 국민안전처가 이날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은 현장대응 능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보고기능’을 강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점이 노후된 대응 장비를 확충하고 소방과 해경의 처우개선이 아닌 ‘재난교육’에 찍힌 까닭이다.
현장 소방관과 해경들은 “앞으로 보고서 쓰고, 학생들 재난교육에 동원돼 대응능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 불보듯하다”고 지적했다. 119특수구조대 4곳을 신설하고 해양구조대를 설치해 ‘30분~1시간’을 구축하겠다는 내용도 뜯어보면 현장 목소리와는 배치된다. 국가직 소방공무원인 119중앙구조본부 245명(정원 283명)으로 전국을 커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상사고 역시 빠른 구명정이 1시간 이내 이동 가능한 거리는 40㎞(25노트)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구조헬기의 비행궤적 특성상 1대 이상은 투입이 불가능하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정부 혁신 방안 역시 그간의 자료를 짜깁기한 수준이었다. 정부조직 전반에 대한 조직진단을 실시, 유사 중복 기능을 통폐합하고 정부기능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내용은 이미 나온 ‘도돌이표’ 정책이다. 공무원 채용이 훨씬 많아 ‘무늬만 개방형’이라는 지적이 있었던 개방형 직위도 경력개방형으로 개편한다고 밝혔지만 구조적인 개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관피아법도 후퇴가 예상된다. 정부는 민관 유착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밝히면서도 ‘단서 조항’을 달았다. 전문성 활용을 위한 재취업은 허용하기로 결정해 ‘무늬만 관피아법’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법을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계속되는 한 국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혁신’ 8개 부처 업무보고]
“보안법 개정해 이적단체 해산” 더 강력해진 ‘반공 드라이브’
ㆍ법무 분야
법무부가 ‘국가안보 위해세력 척결’을 올해 주요 정책방향으로 설정했다. 공안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이적단체 해산이 가능하도록 국가보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가 ‘반공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2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5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국가혁신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는 법질서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 헌법가치 부정세력을 뿌리 뽑아 국가혁신의 대전제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지난해에 내세웠던 ‘법치에 기반을 둔 비정상의 정상화’ ‘협업을 통한 국민생활 안전 확보’ ‘현장 중심의 국민 맞춤형 법률서비스’ 등에 비해 ‘타깃’이 명확해지고 어조도 강경해졌다.
지난해 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법무부는 이번에는 반국가단체·이적단체 등으로 타격 대상 범위를 넓혔다.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으로 사실상 북한을 지칭한다. ‘이적단체’는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단체를 뜻한다. 법원이 친북 성향의 활동을 한다고 판단한 단체에 대해 곧바로 해산 및 재산환수 등의 절차에 돌입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발의돼 있다. 법무부는 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되 다른 방안들도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법원이 이적단체라고 판단한 단체들이 주요 해산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적단체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도록 제재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도입을 추진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활동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법무부는 ‘친북 사이트’ 등을 통한 선동이나 유언비어 유포를 조기에 차단하는 동시에 민간 온라인·모바일 기업과도 공안수사에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법무부는 “이적단체들이 온라인 선전 활동을 하고 있어 제재가 필요하다”며 “민간업체들과 안보분야 수사에서 협력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업체와의 수사협력 확대는 지난해에 카카오톡 대화 내용 감청을 둘러싸고 일었던 인터넷 검열 논란을 재점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법무부는 아울러 대공수사를 하는 검사와 수사관의 전문성을 높이고 과학수사인력을 공안부서에 배치키로 했다. 또한 교육부와 협의해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헌법가치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고 법질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유치원 및 일선학교에 배포하기로 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시범실시한 ‘불법시위 삼진아웃제’도 확대된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행위로 최근 5년 동안 2번 이상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았으면 약식기소가 아닌 정식재판에 넘긴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불법시위나 파업이 종료한 경우에도 불법행위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보당 해산결정 후 우려됐던 ‘공안몰이’가 현실화한 것이란 걱정이 든다”면서 “법무부의 일련의 정책방향은 사회 분위기를 공안 정국으로 몰아넣어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의 활동과 국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갈팡질팡’ 투자처 못 찾는 부동자금 150조원, 코스닥·금 시장·MMF·CMA로 1.22경향
“짧게, 짭짤하게… 돈 굴릴 곳 없나요”
▲ 작년 11월 시중 통화 2079조원… 단기 금융상품 잔액 역대 최고
‘홀로 상승’ 코스닥 돈 빌려 투자… 저성장·저금리에 ‘자금 단기화’
‘지금 시중자금들은 대기하거나, 투기하거나.’
코스피지수의 지지부진, 국제유가 급락 등으로 확실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기자금이 불어나는 한편으로 빚을 내 코스닥시장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면서 시장과열이 우려되고 있다. 변동성이 커지자 금 투자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는 흐름이다.
우선 투자 대기자금으로 분류되는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MMF에 올해 들어서만 17조4606억원이 들어왔다. MMF 설정액은 지난해 말 제일모직 공모주 청약 등으로 82조원까지 줄었으나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 20일 기준 99조8284억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대기자금으로 분류되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CMA 잔액은 20일 기준 46조622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872억원 증가했다. 지난 14일에는 47조2275억원으로 처음 47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약 150조원의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대기 중인 셈이다.
오온수 현대증권 연구원은 “단기성 자금이 증가하는 것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그리스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가운데 유가 하락과 원자재와 관련한 신흥국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 풀린 단기자금까지 합하면 숫자가 더 커진다. 시중에 풀린 돈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2079조30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통화량(M2)이 지난해 11월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해 4년3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난 것만 보더라도 대표적이다. 이는 현금과 요구불예금(M1),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MMF 등 언제든 현금화해 사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포괄하는 것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의미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 상태에 놓이면서 예·적금에 장기간 넣는 것보다 단기 상품 위주로 잔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기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해 11월 886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1월 이후 13조9000억원이 늘어났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자 올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코스닥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올 들어서만 7% 가까이 상승했다. 상승장에 올라타려는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대거 빌려 주식을 사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코스닥시장의 신용잔액은 2조7406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8% 증가했고 이미 유가증권시장의 신용잔액을 추월했다.
‘금테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금시장에서의 지난달 금 거래량은 200㎏이 넘는다. 골드바 판매량도 2013년 700㎏대에서 지난해 1383㎏을 기록해 1년 사이 두 배가량 늘었다. 저금리 시대에 불확실한 금융 투자보다는 안전자산을 택하겠다는 심리다. 지난해 금 시세가 다소 하락하자 다시 오를 것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금 단기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성장·저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있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며 “다만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상품으로 자금 유입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젊은층 ‘내집 포기’ 갈수록 늘어
ㆍ국토부, 2014년 주거실태조사
ㆍ“불필요” 인식 빠르게 확산… 자가보유율은 양극화 심화
지난 2년 새 소득 하위 80%는 자가보유율(자기 집을 가진 가구의 비율)이 떨어졌지만, 상위 20%는 오히려 늘어났다. 젊은층에서는 부모 세대와 달리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22일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2014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자가보유율은 58%로 2년 전보다 소폭(0.4%포인트) 감소했다. 자가보유율은 2006년 61%에서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득 계층별로 방향이 엇갈렸다. 소득 상위 20%의 고소득층(월소득 400만원 초과)은 오히려 자가보유율(78%)이 2년 전에 비해 5%포인트 늘었다.
반면 소득 하위 40%의 저소득층(월소득 200만원 미만)은 자가보유율이 53%에서 50%로 떨어졌다. 중간 소득층(월소득 200만원 이상 400만원 이하)도 자가보유율이 56.8%에서 56.4%로 소폭 하락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저소득층이 집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중간 소득층도 주택 구입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간 소득층은 집을 구입해서 임대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그 집에 사는 비율이 2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 투자가 아니라 실제 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는 일이 늘었다는 뜻이다.
이번 조사에서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컸다. 65세 이상은 87%가 내 집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45세 이상 54세 미만에선 77%, 34세 미만에선 71%로 뚝 떨어졌다. 집값 상승을 경험한 노년층은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만,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30대 이하에선 주택 구입을 포기하거나 집을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전·월세 가구 중 월세의 비율은 2012년 50.5%에서 지난해 55%로 급증했다. 전세가 빠르게 월세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도 입증된 것이다.
주거의 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1인당 주거면적은 매해 조금씩 늘어나다 지난해(33.1㎡) 처음으로 10평(33㎡)을 넘었다. 가족 수가 줄고 1인 가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은 268만가구(2006년)에서 128만가구(2012년)→100만가구(2014년)로 줄어들고 있다.
표심’ 때문에?···‘주먹구구 연말정산’ 5월 소급적용 추진 1.22
“담뱃세 인상, 공무원연금 개혁, 연말정산 폭탄까지 터지면 선거를 어떻게 치르나”.
새누리당과 정부가 세수부족상황에 눈을 감은 채 결국 표밭을 지키려 연말정산 5월 소급적용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놨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1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소득세 연말정산 논란과 관련한 긴급 당정회의에 앞서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19일까지만 해도 “복잡한 세법개정 내용을 국민에게 잘 이해시켜야 한다”며 청와대·정부와 보조를 맞췄지만 새느리당 의원들이 아우성을 못 이겨 결국 백기투항 했다. 최근 논란이 된 연말정산 제도는, 다자녀 가구와 독신자 등에 대한 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보완책을 마련해 올 연말정산 환급액부터 소급 적용을 추진키로 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오는 5월 중 연말정산 소급 환급액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정부가 다자녀·연금 공제 확대 방침을 밝힌 뒤에도 파장이 지속되자 초강수를 꺼낸 셈이다. 그러나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의 필요성이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없는 땜질 처방인데다 법의 소급적용이라는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은 이날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현재 자녀 2명까지는 1인당 15만원, 3명부터는 20만원인 자녀세액공제 수준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또 종전 출생·입양공제(100만원)가 자녀세액공제로 통합됨에 따라 폐지된 자녀 출생·입양에 대한 세액공제를 신설키로 했다.
독신 근로자의 경우 다가구 근로자보다 특별공제 적용 여지가 적다는 점을 감안해 현재 12만원인 표준세액공제액을 높여줄 방침이다. 또 노후 보장을 지원하기 위해 12%로 돼 있는 연금저축·퇴직연금에 대한 세액공제율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들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공제 확대 수준은 3월 말까지 연말정산 결과를 분석해 결정하기로 했다. 올 연말정산으로 인한 추가납부액에 대해선 분할 납부를 허용키로 했다.
이날 보완책은 연말정산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게 된 다자녀, 독신가구 등에 대한 공제를 원상복구해 환급액을 늘려주는데에 초점을 맞췄다. 당초 정부가 세 부담이 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연봉 5500만원 이하에서도 세 부담이 늘어난 사례가 속출하고 법인세로 구멍난 세수를 직장인 증세로 메운다는 비난이 들끓자 일부 공제항목의 원상복구와 함께 유례없는 소급적용 카드를 꺼낸 것이다. 올 연말정산 소급적용에 대해 기재부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부정적이었지만 “국민 이기는 장사 없다”(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여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는 기류여서 4월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단순히 자녀공제를 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증세의 순서나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던 게 근본적 원인인데 정부·여당이 공제 몇개를 부활하는 문제로 격하시켰다”며 “소급적용까지 하면서 급하게 바꿀게 아니라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들 "총체적 난국…대통령 책임" 1.20 프레시안
서울대 교수들이 22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마디로 지금 한국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며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과 청와대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소위 '문고리 3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면서 "최소한의 소신을 지키다가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이미 물러난 진영, 유진룡 두 전직 장관을 제외한다면 정홍원 국무총리 이하 모든 국무위원들도 국정을 힘있게 이끌기는커녕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를 직시하고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전면적 개편을 당장 실행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를 정상화시키고 민주 정치를 복원해야 하며, 더 나아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대선공약을 실천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것만이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현 정권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국민들을 도탄으로부터 건질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1)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전면 개각을 단행하라, 2)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3)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선공약을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시국선언문 전문.
청와대와 정부의 전면적인 쇄신만이 국가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새해가 밝은지 채 한 달도 넘기지 못한 지금, 온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실망을 넘어서서 불안과 절망을 느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악몽과 같았던 작년이 되풀이되는 듯한 일을 겪고 있다. 의정부의 큰불은 정부의 허술한 안전 관리 시스템과 구멍 뚫린 규제를 드러내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제2롯데월드의 계속되는 부실논란, LG 디스플레이 공장의 질소 가스 누출 인명사고 등은 재벌과 당국의 안이함 탓에 올해도 귀한 인명이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될 것임을 예고한다. 남부럽지 않은 사회 경력을 지닌 한 가정의 가장이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를 이유로 아내와 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죄 없는 10대 소녀의 목숨까지 빼앗는 끔찍한 인질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수의 어린이집에서 되풀이되는 아동학대는 눈에 띄지만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험악한 사회 분위기를 실감하게 하며,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들의 현실이 적나라하다.
이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처한 구조적 문제의 표출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을 독재정권 아래에서 신음했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60년 당시 자산지니계수와 중위소득층 비율로 볼 때 한국은 식민지 경험을 한 신생국 중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제의 강점, 분단과 한국전쟁 탓에 거의 모두가 헐벗고 가난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지개혁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한국사회는 토지소유 및 소득의 양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평등했고, 이는 교육을 비롯한 각자의 노력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한껏 끌어올려 ‘다이내믹 코리아’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의 역사적 배경이며,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살아있던 시기가 ‘박정희 시대’의 성공과 겹쳐짐으로써 ‘박정희 향수’라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산업화를 공히 이루어냈다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여러 지표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온 국민이 공유하지 못하고 소수가 독점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최상위 1% 혹은 10%의 소득 비중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은 1990년 중반 이후로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선진국 최악의 불평등 국가인 미국에 근접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노인 빈곤률, 비정규직 비중, 영세소기업 비중 등이 모두 1위이며, 조세부담률 및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들은 격심한 사회적 양극화와 계급구조의 고착화라는 현실을 고발한다. 노동소득분배율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복지 불모’의 무한경쟁 속에서 국민 절대다수의 삶은 피폐해지고 수많은 ‘미생’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치닫는다. 당연한 귀결로서 내수시장의 위축과 성장잠재력의 저하가 불가피하며, 사회적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성장 동력의 기반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마저 무너뜨리는 현실이다. 우리는 국내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이 부당한 방식으로 부의 세습을 꾀하는 가운데 법조계, 언론계 등에 대한 로비를 통해 사회 기강을 심각하게 훼손시켜왔음을 잘 알고 있다. 삼성은 세습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시 상장과 매각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 또 다른 재벌 한진그룹 일가의 한 사람이 저지른 ‘땅콩회항’ 사건은 경영능력의 검증 없이 부의 세습을 넘어 경영권까지 세습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듯 재벌은 수십 년간 국민과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성장한 대기업집단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면서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세습왕조를 구축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본의 독재에 직면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법조계 및 언론계만이 아니라 정관계,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학계 등을 전방위적으로 ‘머슴’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 결과 주체적 시민의식은 현대판 신분제의 굴종적 의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침몰에서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당당하고 떳떳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사회를 휩쓰는 극심한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지식인 사회부터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지식인 집단의 성찰적 능력은 공동체가 미처 예상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일에 대해 사전에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대학은 지식공동체 아닌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대학다운 공공의 비판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 또한 엄정한 사실보도를 통해 힘있는 자들을 견제하며 제대로 된 여론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정치권력과 자본의 비위를 거스를 줄 모르는 한낱 영리기업으로 위축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법조계가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강자의 이익을 대변함을 웅변하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및 지역구 의원직 박탈 결정은 스스로 헌법을 어기는 자기부정행위에 다름없다. 검찰의 지극히 정치적이고 편파적인 행태는 덧붙일 것도 없다.
실로 우려스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정부이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서울시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 윤 일병 사망 사고, 대북전단 살포 파동,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무기한 연기, 가계부채 1천조 시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사건 등이 지난 2014년의 주요 뉴스들이다. 그리고 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의 비리 규모는 수십조를 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과연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는가. 무책임한 국정 운영의 와중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미래 설계는 완전히 망각되고 있다. 그 결과 ‘통일대박’은커녕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현 집권층은 ‘종북몰이’와 극우단체의 기막힌 행태가 가져오는 정치적 이익을 근시안적으로 즐기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 한국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과 청와대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소위 ‘문고리 3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최소한의 소신을 지키다가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이미 물러난 진영, 유진룡 두 전직 장관을 제외한다면 정홍원 국무총리 이하 모든 국무위원들도 국정을 힘있게 이끌기는커녕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는 형국이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를 직시하고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전면적 개편을 당장 실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를 정상화시키고 민주 정치를 복원해야 하며, 더 나아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대선공약을 실천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것만이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현 정권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국민들을 도탄으로부터 건질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술렁이는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며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1.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전면 개각을 단행하라.
2. 박근혜 정부는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3. 박근혜 정부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선공약을 실행하라.
2015. 1. 22.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교수 일동
미친X 때문에"…조현아 '갑질' 생생 증언 카톡 1.21 프레시안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첫 공판장에서 '유일한 1등석 동승객'이 실시간으로 지인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가 검찰에 의해 공개됐다. 이 승객은 '어떤 승객(당시 조현아 씨가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것을 몰랐던 상태)'의 난동을 현장에서 겪으면서 지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음은 검찰 측이 법정 내 TV 모니터에 띄운 화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다.
"야, 미쳤나봐 어떡해. 비행기 출발 안 했는데 뒤에 미친X이야."
"승무원한테 뭐 달라했는데 안줬나봐. 계속 소리지르고, 사무장 와서 완전 개난리다."
"헐 내리래 무조건 내리래. 사무장 짐 들고 내리래."
"헐 진짜 붙인다(게이트로 비행기를 붙인다는 뜻), 정말 붙여. 내가 보기엔 그리 큰 잘못 아닌데 살다살다 이런 경우 첨 봐."
"도대체 저 여자 때문에 도대체 몇 사람이 피해 보는 거야."
객관적으로 바라본 동승객의 적나라한 카톡으로도 다시 한 번 확인된 '슈퍼 갑질'의 주인공 조현아 씨는 이날 공판에서 자기 입으로는 한마디도 '사과'의 뜻을 표현하지 않았다. 조 씨의 변호인들은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중형을 피하기 힘든 '항로변경죄'를 빠져나가기 위해 '항로'는 공중에 떠있는 길을 의미하는 '항공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항로변경죄'의 항로는 항공기의 문을 닫고 출발하고, 도착지에서 문을 열기 전까지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법 취지도 그렇다는 것이 유력한 상태다.
사람들은 왜 '연말정산'에 분노하나? 1.20 프레시안
'13월의 보너스'로 불렸던 연말정산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2013년 말 이뤄진 세제 개편의 내용이 이번에 처음 적용되면서 '13월의 세금폭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여당은 연 소득 5500만 원 이상은 '증세' 효과가 있지만, 연 소득 3500만 원에서 5500만 원 사이의 세금은 이전과 변하지 않고, 3500만 원 이하는 오히려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실제 연말정산이 시작되니, 연 소득 5500만 원 미만의 사람들도 2013년에 비해 세금을 더 내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은 "서민 증세"라며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진보' 성향의 전문가들도 현재의 소득세법 개정 방향이 옳다고 밝히는 등 전선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분노하는 것일까?
연말정산, 진짜 '서민 세금폭탄'인가?
연말정산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야당이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친기업·친부자'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재정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두둔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인 오건호 박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건호 박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핵심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건 기존의 역진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세금 절감 방식을 하후상박적으로 재조정한 것이기 때문에 전향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세법 개정으로) 두 가지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공제의 역진성을 바로잡아 중상위 계층 이상자부터 소득세를 누진적으로 더 내게 했고, 이 과정에서 연간 9000억 원 정도 증세가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바뀐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와 진짜 서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는 방향이라는 얘기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도 "입만 열면 '부자감세 철회'를 외치던 사람들이 부자감세를 철회하여 상위 계층 세금이 늘자 '서민증세'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헌호 소장은 "이게 서민 증세면 MB 정부의 소득세 감세도 부자감세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
"세수 추계는 정확하지 않고, '연중 원천징수 줄여 경기 활성화' 정책도 안이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격하게 분노하는 것일까? 처음 논란은 정부의 세수 추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데서 시작됐다. 정부 주장과 달리 저소득 근로자도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다자녀가구, 미혼 가구의 경우 연 소득이 적은데도 세금이 2013년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납세자연맹은 "다른 공제가 없는 연봉 2360만 원에서 3800만 원 사이의 미혼 직장인은 최고 17만 원이 증세되고, 작년에 자녀가 출생한 연봉 5000만 원의 직장인은 31만 원 증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 있거나 부양가족공제를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도 외벌이보다 증세가 많이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이 단체는 덧붙였다.
▲납세자연맹이 지난해 8월 정부의 세수추계 오류 검증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주장과 이 단체의 예측이 다른 이유는 기획재정부 시뮬레이션이 소득계층별 평균값 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20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오류를 사실상 인정했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획재정부는 평균값만 보고 연 5000만 원 수입의 가구는 평균 5만 원이 늘어난다고 발표했지만, 개별 가구로 보면 20만 원이 느는 가구도 있을 수 있다"며 "국민들의 조세 감정을 생각한다면 (이런 내용을) 미리미리 정부에서 설명했다면 조금은 더 저항이 줄어들 수 있었을텐데 지금 세제 행정이 너무 투박한 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연중 원천징수를 적게 하고 연말정산에서 안 걷었던 세금을 다 징수하도록 바꾼 것도 '체감 증세' 효과의 한 원인이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근거로 이같은 정책을 도입했지만, "안이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연중 원천징수를 적게해 그 돈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정책을 추진한 경제관료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꼬집었다.
담뱃세 오르고 주민세·자동차세·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인상 예정…'체감 증세' 근거 있다
'체감 증세' 효과가 나타나는 또다른 원인은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 외에도 담뱃세, 공공요금 등이 연초에 인상됐거나 인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2000원 담뱃세가 인상된 데 이어, 정부는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도 추진 중이다.
공공요금 인상도 눈 앞에 닥쳐 있다. 서울시와 인천시, 대구시 등이 지하철과 버스 요금 인상을 검토 중이다. 상하수도 요금도 인상 움직임이 있고 정부는 고속도로통행료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공공요금의 인상은 당연히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바뀐 근로소득세법은 '부자 증세'의 측면이 크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세금은 단순히 근로소득세만이 아니기 때문에 분노가 확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석현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도 이런 점을 감안해 "1월 담뱃세 인상, 2월 연말정산 폭탄, 3-4월 이사철에는 전월세폭등이 예정돼 있다"며 "여기에 주민세, 자동차세까지 올린다고 하니 정부는 서민의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당초 정책을 내던진 것이냐"고 비판했다.
정부여당 비난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득세법도 담뱃세 인상도 다 합의해줘 놓고…
정부 여당을 비난하는 새정치민주연합도 사실 분노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담뱃세 인상부터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두 '동의'해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야당 간사인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일 "예산하고 부수되기 때문에 12월 31일 타결되지 않으면 이른바 '국정 마비'가 예상돼 어쩔 수 없이 합의해준 것"이라며 "정부가 다수로 밀어붙이니까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해서도 홍 의원은 "국회법을 이용해 저희와 상의도 없이 그냥 담뱃세 인상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국회를 보이콧 하더라도 정부 여당쪽의 주장이 반영된 정부 예산안이 자동 부의되는 국회 선진화법 조항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단 얘기다. 그러나 그 문제의 국회법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법이다. 스스로 통과시킨 법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우스운 모양새인 것이다. 담뱃세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면, 양보의 댓가로 얻어내는 것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기력했다. 스스로 담뱃세 인상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법인세 인상' 요구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홍헌호 소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은) 담뱃세 인상으로 5조 원 이상의 재원이 확보된다면 이 중에서 최소한 1조~2조 원은 저소득층 서민들 복지재원이 되도록 여야 합의를 이끌어 냈어야 한다"며 "그러나 지방정부 전시행정과 의료계 요구가 중요했던 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담뱃세 인상을 양보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연말정산은 1000 사람의 피요, 기업에 깎아준 세금은 만 백성의 기름"(김경협 의원)이라며 비난 목소리를 높이며, 뒤늦게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소란을 떨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는 않아 보인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 없어… 자정기능 상실 -세계일보
[침묵하는 사회] (1) 울리지 않는 경보음
한국 사회가 ‘침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둑에서 물이 찔끔찔끔 새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모르는 체하는 사이에 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다. 책임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이 회피하는 사이에 가정이, 정부가, 사회가 균열을 키워가고 있다.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땅콩 회항’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이제는 이 늪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잘못된 것이 잘못되었다고 호통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입 닫는 데 익숙해진 한국 사회가 침묵의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공공부문을 비롯한 각 조직은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정기능을 상실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바로잡지 못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이 ‘조직침묵’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묵 폐해의 ‘교과서’ 박근혜정부
취재팀의 설문조사에서 국민은 정치권과 정부 등 공공부문의 침묵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한국 사회에서 공공부문 침묵의 대표 주자는 박근혜정부다. 정부는 침묵 폐해의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입을 봉하는 조직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지난해 11월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뒤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했다. 이 발언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청와대 내부나 여당에서는 아무런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 분위기가 대통령에게 직언하기 어렵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은 정권 출범 이후부터 계속됐다. 대통령이 사소한 것까지 모두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국정운영을 하면서 장관 등이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챙기려고 하고 중간 관리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지 않아 문제가 생겨도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기 내 ‘경보음’ 울려도 무시
공공부문에서부터 민간까지 침묵이 만연한 한국 사회를 그나마 지탱하는 것 중 하나가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공익제보자다. 공익제보자들은 불의를 폭로해 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다. 그러나 이들의 용기 있는 ‘경보음’은 무시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받기 일쑤다.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의 김용환 대표는 적십자혈액원 직원으로 일하던 2003년 혈액원의 부실한 혈액 관리 실태를 방송국에 제보했다. 김 대표의 제보로 수혈과 감염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는 역학 조사가 진행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방송국에 실태를 알린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내부에서 서너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무시했다.
혈액원에서는 그의 말을 개인 불만 정도로 취급했다. 문제를 정부와 예산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혈액사업 최고책임자를 면담했을 때는 “당신이 맡고 있는 업무나 잘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조직이 개선의지도 없고 자정능력도 없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방송국의 문을 두드렸다.
김 대표는 “내부고발을 하면 ‘자기 불만’ 혹은 ‘인사 불만’으로 생각하거나 갈등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며 “(내부고발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매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조직침묵’에 빠진 한국 사회
한국 사회의 여러 조직 중 핵심조직인 정부가 침묵의 폐해를 드러내고, 사회 곳곳에서 바른 말을 막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조직침묵’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조직침묵(Organizational Silence)이란 2000년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울프 모리슨이 만든 개념으로 ‘업무나 조직을 개선할 수 있는 의견·정보·아이디어 등을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현상’이다.
조직침묵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적 특성이 결합해 서구에 비해 조직침묵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군사문화와 상명하복 문화가 유입돼 위에서 소위 ‘까라면 까야 하는’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할 말을 하지 않고 삼킬 것을 은연중에 강요받는다.
고대유 경희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적 조직침묵’이란 조직 구성원이 상황에 체념 또는 순응하거나 상관·동료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의견이나 이의제기를 회피하는 현상”이라며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권위주의 문화, 공적 업무는 가족의 일을 처리하듯이 하는 가족주의·온정주의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한국 사람은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가까이 내가 의견을 제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학습하며 자라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조직 내부 토의·숙의 민주주의 뿌리 내려야”
[침묵하는 사회] ‘말하지 못하는 사회’ 탈출 하려면
“다른 의견 수용할 수 있는 태도 갖추고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로 시스템 개선”
초등학생들이 서로 손을 들고 질문하려는 것과 달리 고등학생만 되어도 질문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선 이들은 은연중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스스로 입을 닫는다.
‘침묵’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의 병폐가 속속 드러나면서 ‘말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균관대 강영진 갈등해결연구센터장은 21일 ‘침묵사회’ 탈출을 위해 ‘내부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국가 차원의 독재체제를 타파했듯이 더 작은 단위의 조직들도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 센터장은 최근에 일어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이나 ‘땅콩회항’ 사건 등은 조직 내부에 여전히 봉건주의, 독재체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강 센터장은 민주주의 확립의 핵심으로 ‘법치주의’를 꼽았다. 그는 “‘내부 고발자’ 문제도 내부의 법치가 실종돼 외부로 부당함을 알리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며 “격식이 잡힌 회의 형태든, 자유로운 소통의 형태든 내부적인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의사 결정에 이르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도 ‘소통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세계일보의 ‘침묵사회’ 시리즈 보도를 통해 집단적인 압력으로 인해 개인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 낱낱이 드러났다”며 “서로 찬반, 옳고 그름을 논하는 ‘토론’의 형태가 아닌 협의를 목적으로 하는 ‘토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를 뿌리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각 조직이 목표 설정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고 설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교육’의 경우 궁극적인 목적이 지식의 결과에 있는지, 과정에 있는지 등에 따라 소통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는 다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상 토론 수업을 해보면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아예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이나 의견표명을 하는 것을 장려하려면 표현이 수용되는 문화가 전제돼야 한다”며 “토론 주도자, 정치인, 정책결정자 등이 의사 결정을 하기 전 여론을 반영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침묵하는 사회] “조직 병폐 말 안한다” 88%… 위기 신호 작동 멈춰 1.22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땅콩회항… 못본 척하는 세태 화 불러
눈감은 양심… 위기 불감증 키운다
땅콩회항’사건과 ‘정윤회 문건’사건은 관리자의 침묵이 화를 키웠다는 점에서 닮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돌리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지만 회사 내부에서 그의 행위가 잘못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핵심간부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사무장의 잘못’으로 각색하기에 바빴다.
청와대는 지난해 최소 두 차례 이상 문건유출에 대해 외부의 신호를 받았지만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입을 봉하기에 바빴다.
이렇듯 두 조직은 책임자급이 나서서 직위를 걸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호미와 가래를 모두 동원해도 막기 어려운 조직 전체의 위기에 봉착했다. 조직을 위기에 빠트리는 ‘침묵 현상’은 대한항공과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3%가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알게 됐을 때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고 답한 비율은 11.7%에 불과했다. 우리 주변이 잘못을 알아도 말하지 않고, 불의를 봐도 눈을 감는 ‘입 닫은 자들의 사회’가 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마지막 경보음조차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침묵현상을 깨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에 따르면 그냥 넘어간 이유에 대해 42.1%는 ‘말을 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25.6%는 ‘내 말 때문에 조직 내 갈등이 생겨서 감정만 상하고 스트레스가 쌓일까봐’라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어 13.8%는 ‘윗사람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9.4%는 ‘튀는 사람 혹은 분란유발자 등으로 인식돼 왕따를 당할까봐’라고 답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체념적 태도와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방어적 태도가 구성원들을 침묵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의견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2.4%가 ‘그렇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23.3%)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조직의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괜히 갈등만 일으킨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은 공공부문의 침묵을 가장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불의나 잘못에 침묵하는 행태가 가장 심각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47.7%가 ‘정치권’을 꼽았다. 이어 정부·공기업(27.9%), 기업(10.6%), 시민사회(9%) 순이었다. 정부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여당과 정부 내에서 대통령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대유 경희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침묵현상은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조직이 집단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막아 구성원들이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이 같은 현상이 공공부문에서 나타나면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국사회에 만연한 침묵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괜히 참견했다 나만 손해" 의인이 사라진다
[침묵하는 사회] (3) 불의를 참는 사람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난 10일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의정부 화재 현장에는 이승선(51)씨도 있었다. 그는 화재가 난 도시형생활주택 거주민이 아니었지만 출근길 우연히 화재를 목격한 뒤 현장에 뛰어들어가 동아줄로 10명의 생명을 구했다. 그의 살신성인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고, 한 독지가는 30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거절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을 도왔는데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그런 위기가 닥치면 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의인' 이승선 씨의 구조 장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이씨처럼 타인을 위해 희생하거나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의인들은 어두운 사회를 비추는 한줄기 ‘빛’이지만, 현대 사회는 의인이 드물다. 위험한 상황이나 불의를 목격했을 때 ‘침묵’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위험해져서”, “귀찮아질까봐”…침묵하는 사람들
대학생 윤모(25)씨는 얼마 전 교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게시글을 보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해당 글에는 ‘길에서 성추행이나 강도를 당하는 사람을 봤을 때 도와줬다간 큰일 날 수 있으니 도와주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댓글들 역시 ‘괜히 말려들어 피해를 입으면 나만 손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현명하다’ 등 글쓴이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윤씨는 “나 역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렇게 ‘무조건 도와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나 혹은 내 가족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아무도 안 도와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피인식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세계일보 취재팀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전국 25∼60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담배 피우는 청소년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못 본 척 넘어간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85.3%(597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불의나 타인의 위험에 침묵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넘어갔던 이유로는 ‘개입했다가 위험에 빠질까봐’란 응답이 43.0%(257명)로 가장 높았고, ‘개입했다가 경찰 조사 등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란 응답은 23.3%(139명)였다. 반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란 응답은 7.9%(47명), ‘내가 안 나서도 다른 사람이 나설 것 같아서’란 응답은 4.4%(26명)에 불과했다. 타인의 위험이나 불의를 목격했을 때, 자신과 아예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이들이 도와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자신이 위험에 빠질까봐 모르는 척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길에서 싸움이 나는 등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말리기보다는 그저 구경하면서 동영상만 찍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에서는 ‘길거리 싸움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영상 속 시민들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휴대전화를 들고 촬영을 하거나 부추기는 모습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신고라도 해주면 다행인데 신고할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이 많다”며 “사건 조사를 위해 목격자들에게 진술을 요청했을 때 ‘상관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7)씨는 지난해 난감한 일을 당했다. 한 남성이 지적장애 여성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저지하다 폭행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주변에는 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경찰에 나서서 진술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씨는 “피해 여성이 명확하게 진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목격자가 필요했지만 다들 처음에는 나 몰라라 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어도 개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의인에 대한 합리적 보상, 공동체 의식 강화 필요
이 같은 ‘침묵’에는 실제 사례들이 영향을 미친 면도 많다. 청소년에게 훈계를 하거나 타인의 사건에 개입했다가 피해를 당한 사례들이 잇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의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안산 단원고 학생 등 20여명을 구한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49)씨는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생계마저 막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 두려워 타인의 위험을 못 본 척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자신이 피해의 당사자가 됐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의인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 보장되고, 공동체 의식이 회복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일종의 학습효과다. 선의의 손길을 뻗쳤을 때 돌아오는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를 많이 접하다 보니 ‘참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란 인식이 생긴 것”이라며 “의인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 체계가 전제되고,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타인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시간이나 노력을 들여 개입하려는 의지가 줄어든 것”이라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너진 저널리즘,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1.6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 저널리즘의 미래① '기레기' 수명연장, 사회적 합의 얻을 수 있을까
1963년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삼양라면 한 봉지 가격이 10원이었다. 그 무렵 조선일보 구독료는 월 100원이었다. 50여년이 지난 2015년 1월, 삼양라면은 한 봉지에 750원까지 올랐고 조선일보 구독료는 1만5000원으로 올랐다. 라면 값이 75배 오르는 동안 신문 구독료는 150배 올랐는데 지면이 4면에서 48면 이상으로 늘어났으니 지면 기준으로는 겨우 12배 오르는 데 그친 셈이다. 그야말로 라면 냄비 받침 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라면 판매는 계속 늘어 2013년 기준으로 연간 36억3000만개, 한 사람이 74.1개 꼴로 먹는다. 신문 구독은 계속 줄어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구독률이 2002년 52.9%에서 2013년 20.4%까지 떨어졌다. 열독률도 같은 기간 82.1%에서 33.8%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로 가면 2022년이면 구독률이 0%가 될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컨설팅 업체 퓨처익스플로레이션네트워크는 한국에서 2026년에 종이신문이 사라질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신문은 사실상 가격 없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라면 값이 75배 오르는 동안 신문 값은 12배 오르는 데 그쳤다. 사진은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의 초기 신문 광고.
방송 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이 가구 기준으로 2002년 535시간에서 2012년에는 501시간으로 줄었다. 개인 기준으로는 223시간에서 190시간으로 줄었다. 그나마 유료방송 채널 비중이 늘어나면서 개인 기준으로 지상파와 지상파 계열 PP(프로그램 사업자) 채널의 시청시간을 더해도 점유율이 77.1%에서 64.7%까지 줄어든 상태다. 가까운 시일 안에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오히려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은 7% 미만으로 떨어졌고 통신사들이 IPTV 결합상품에 마케팅을 집중하면서 방송의 통신 종속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료방송 가입자는 중복 가입을 포함, 침투율이 이미 140%를 넘어선 상황이고 본방 사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VOD(주문형 비디오)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공짜 콘텐츠+광고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콘텐츠 시장이 새롭게 열리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이야기고 뉴스 콘텐츠는 갈수록 밀려나고 있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부터 앞장서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줄이고 있고 종합편성채널의 선정적인 대담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바일이 주류 콘텐츠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포털 사이트의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뉴스가 파편화되고 지상파 방송사들의 영향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종이신문 열독률 및 구독률 추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이 모든 통계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언론은 이미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난 10여년 동안 모든 지표가 반의 반 토막 수준으로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문 닫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그동안 언론사들은 콘텐츠를 공짜로 뿌리면서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왔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는 세계적으로 언론 산업이 겪는 공통의 화두지만 한국 언론은 특히 변화에 둔감한 모습이다.
지상파 방송 시청률 추이 ⓒAGB닐슨미디어
한때 신문사들은 서비스 구독을 남발하면서 구독자를 늘려왔다. 자전거를 나눠주기도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까지 뿌려가면서 독자 확장에 나섰는데 그것도 이제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됐다. 더 이상 발행부수가 광고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조중동부터 앞장서서 지국에 내려 보내는 무가부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발행부수 1만부를 줄이면 인쇄비와 지대를 월 7억원 가까이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의 경우 2012년에 발행부수 대비 유료부수 비중이 71.0%였는데 2013년에는 78.0%로 늘어났다. 유료부수가 줄어드는 이상으로 무가부수를 줄였다는 이야기다. 급기야 일부 신문사들은 일부 인쇄 공장을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11월 대구 인쇄 공장을 내다 팔았고 동아일보는 일찌감치 지난 2012년 서울 오금동 공장을 폐쇄했다. 한국일보도 경기도 성남과 경남 창원의 인쇄소와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몇 년째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재송신 수수료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콘텐츠 경쟁력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때 막강한 슈퍼갑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수많은 PP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 사업자에서 플랫폼 사업자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입지가 더욱 비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콘텐츠를 팔지 못하고 광고를 파는 기형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필연적으로 광고주와의 유착을 부르고 콘텐츠의 왜곡을 불러온다. 방송 뉴스에서는 이미 경제 기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얄팍한 재테크와 가십성 생활 정보가 넘쳐날 뿐이다. 신문 보도에서도 기업 소식은 많지만 자본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권력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직접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광고주를 비판하기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문제는 이제는 그나마 광고주와의 유착도 올드 미디어의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데 있다. 방송광고와 신문광고는 모두 급감하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방송광고는 2012년 4조1940억원에서 2013년에는 4조2273억원, 지난해는 4조2281억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신문광고는 2012년 1조7178억원에서 2013년에는 1조6227억원으로, 지난해에는 1조4468억원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콘텐츠를 공짜로 뿌리고 광고로 돈을 버는 전통적인 미디어 비즈니스의 수익모델이 무너지면서 저널리즘의 물적 토대가 붕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이치열 기자 truth710@
광고가 줄어들었지만 드러나지 않는 협찬이나 후원은 늘어나고 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은 “광고 집행 금액 대비 협찬과 후원 비중이 60% 수준까지 늘어났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협찬과 후원 지출이 일반 광고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성적이고 변칙적인 광고가 늘어나면서 언론과 광고주의 유착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언론과 광고주가 길항관계에서 공생관계로, 그리고 그 무게중심이 광고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광고·홍보 전문 잡지 더피알 강미혜 기자는 “기업 홍보실에서 집행하는 광고는 광고 효과는 보지 않고 언론사와 관계 유지 차원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최근 추세를 보면 홍보실에서 집행하는 광고가 줄어들고 마케팅 파트에서 집행하는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보험성으로 광고를 배정하곤 했지만 이제는 두들겨 맞을 건 맞더라도 철저하게 광고 효과 중심으로 집행한다”는 이야기다.
YTN 생생경제를 진행하는 김윤경 이투데이 기획취재팀장은 “뉴스 소비자들이 쉽고 자극적이고 생활에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정보만을 원할 것이란 편견도 있지만 광고주를 신경 쓰면서 아예 광고주를 자극하지 않을 정보를 전달하려다 보니 스스로 비판을 거세하고 연성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삼성 광고를 게재하는 모순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가면 상황은 더욱 끔찍하다. 여전히 상당수 언론사들이 뉴스 트래픽의 3분의 2 이상을 네이버에 의존하면서 비뇨기과나 성형외과 등의 온갖 지저분한 배너광고로 수익을 낸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중심의 가십성 어뷰징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정작 중요한 기사를 가리고 그나마 남아있던 신뢰를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포털 저널리즘의 늪에서 어느 언론사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윤승일 한겨레 출판기획담당 부국장은 “전통적인 수익모델이 붕괴하면서 언론사들은 눈앞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부국장은 “콘텐츠 산업도 소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주류 언론은 여전히 과거의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저널리즘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대형 광고주들은 이제 조지는 걸 별로 안 두려워한다”면서 “언론이 알아서 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는데 급한 일에 쫓겨 중요한 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디지털 혁신과 소셜 네트워크에서 가능성을 찾는 움직임도 있지만 좋은 콘텐츠가 수익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콘텐츠 생태계의 전면적인 개편 없이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뉴스 산업의 수익 모델은 이미 작동 불능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막연하지만 결국 해법은 저널리즘 고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 결국 저널리즘의 복원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독자들을 내쫓았던 구태의연한 뉴스 관행을 극복하고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언론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널리즘의 붕괴를 언론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시장 논리에 맡겨두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언론사들만 살아남게 된다”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에 기레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혐오를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몰락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공영성이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언론사들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정치권력에서 완벽하게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해 공정하게 뉴스 콘텐츠를 평가하고 적절하게 인센티브를 부여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언론사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요하다면 기업 후원을 독려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너 관련 기사는 1억 주고라도 빼야” 1.21 미디어오늘
무리한 광고·협찬 요구엔 기자들도 ‘경악’…본지, 한국 언론사들의 광고·협찬을 부르는 기사 유형 5가지 분석
“언론이 예전엔 대기업만 뜯었다면 이젠 어려워지니까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도 뜯고 심지어 사회적 기업까지 안 가리고 뜯더라. 내가 아는 모 선배는 장애인을 고용해 제과점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홍보성 기사를 쓰고 회사에서 돈을 받아냈다는 얘기를 하면서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느냐’고 자조했다. 언론사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땐 정말 경악했다.”(전 A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대도시마다 혁신기업이라고 정부 지원받는 곳이 있다. 매출액이 50억도 안 되는 중소기업이어서 홍보비도 따로 없다. 그런데 이 기업 대표가 한 유력 케이블 경제방송의 광고 회유에 혀를 내두르더라. 방송에 3번 정도 나가면 나중에 코스닥 상장됐을 때 재미 좀 볼 거라며 광고비를 요구했다는데 이런 경우가 사실 비일비재하다.”(B경제방송 산업부 기자)
이현아(가명) 전 A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는 운이 좋게도 회사로부터 노골적인 기업 광고나 협찬을 위한 기사 요구는 거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고·협찬은 연차가 낮은 기자들보다 차장급 이상 기자들의 압박이 훨씬 큰 편이다. 하지만 경제지 등 산업부를 출입하는 기자 상당수는 ‘영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전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창업이 시대적 화두다 보니 지자체에서 밀어주면 조금씩 규모화 된 곳이 생겨나는 건 사실인데, 기사가 날 만한 곳이면 기사가 나간 후 광고국에서 전화가 간다”며 “문제는 내가 기사를 광고 목적이 아니라 미담 사례로 소개하려고 썼는데 회사가 나도 모르게 기사로 영업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
이 전 기자는 “내가 썼던 기사를 기업 요청으로 내리면서 광고와 바꾸었는데, 나중에 알았다”며 “어느 정도 연차가 올라가면 이런 것을 예상하면서 돈이 안 되겠다 싶으면 접는 기사도 많다”고 말했다.
평기자들도 회사가 주최·주관하는 행사 협찬에 동원되기도 한다. 주요 경제지들과 인터넷 매체에서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각종 포럼이나 시상식의 주요 참석자를 초청하는 일은 각 출입처 기자들 몫이다. (관련기사 :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저널리즘의 미래③ 생존과 저널리즘의 위태로운 줄타기)
C경제신문 경제부 기자는 “회사에서 매년 큰 규모의 시상식을 개최하는데 정부 관계자를 초청하는 일은 출입처 기자들이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한다”며 “정부나 기업에서 오는 사람들의 경우 참석만 하는 게 아니라 협찬도 당연히 따라오기 때문에 기자들도 회사의 요구를 관례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D인터넷매체에서 금융부처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기업도 정부에서 누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자기들이 행사에 보내는 임직원 ‘급’과 협찬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사적으로 협찬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며 “여러 계열사를 가진 금융그룹의 경우 협찬비도 맞춰서 각각 오기 때문에 출입처와 협상하는 기자들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이 같은 언론사 행사에 기업이 부담하는 협찬금은 평균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단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기업 입장에서 언론사 협찬은 매체 영향력이나 광고 가치와 상관없이 집행하는 것이어서 광고 효과는 못 보고 언론에 보험을 드는 성격의 지출”이라며 “언론사별로 거의 대동소이한 행사나 시상식이 너무 많고 기업 브랜드 가치나 성격과 관련 없는 협찬 요구도 많은데 한번 시작하면 세금 걷듯이 오다 보니 기업에선 매우 곤혹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기업 홍보실 입장에서는 언론사의 협찬 요구만큼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것이 기업 회장이나 대표 등 오너(owner)와 관련한 기사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 임원은 “오너 관련 기사는 무조건 광고 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며 “오너도 신문을 보는 데 그걸 그냥 두면 난리난다. 더군다나 오너 일가와 관련해 핵심적인 내용이면 억(億)을 주고라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의 또 다른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도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에 오너 이름이 들어가면 상당히 부담스럽고 기사와 상관이 아주 없지 않을 때도 제목을 그런 식으로 뽑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지고 기다리거나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 올렸다고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기사 내용이 아예 악성이면 기자에게 전화해서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설명하고, 해석의 문제일 경우 어떤 의도로 썼는지 물어 본다”며 “요즘은 회사 사정상 무대응하기보다 굳이 안 휘둘리고 설명하는 선에서 보고하고 끝내지만 경영진의 마인드에 따라 홍보팀장이 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 홍보실 담당자들과 광고주들에 따르면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포털 검색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하기도 한다. 광고비를 쥐고 있거나 위기대응 체계가 잡혀있는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포털에 부정적으로 노출되면 타격을 받는 중견기업은 이들 매체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한 중견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사명을 검색했을 때 네이버에 노출되면 CEO가 바로 신경을 쓰니까 포털에 하나만 올라와도 부담스럽고 모니터링을 자주 해야 한다”며 “만약 정부 시책을 따라가는 데 사각지대에 있거나 평탄하게 잘 운영되던 회사의 회장과 관련한 부정적 내용의 기사가 포털에 올라오면 홍보 담당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혁 상무는 “모든 언론을 일일이 대응하지 못할뿐더러 포털에 기사는 내렸는데 SNS나 기자 블로그에는 그대로 남아있거나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매체도 있다”며 “포털도 제휴 평가 기준을 강화해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 부당하게 광고나 협찬을 요청하거나 어뷰징을 일삼는 문제 있는 언론은 과감히 퇴출해야 언론 환경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 상무는 “기업들도 언론 대응 원칙을 세우고 악의적 기사에는 아예 대응하지 말도록 주문하고 있다”며 “광고주들도 오프라인 신문으로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보는 독자층을 고려한 현실적인 신문광고 단가를 연구 중이고, 비정상적인 협찬이 아닌 브랜드 노출 중심의 광고로 가야 한다는 데 중지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고·협찬을 부르는 기사 유형 5가지
① 오너(owner·사주) 이름(사진)을 반드시 노출
언론이 기업 홍보실을 압박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다. 주로 해당 기업에 부정적인 기사 내용이나 제목에 기업 오너 이름이 포함되면 오너나 기업 임원들에게서 홍보실로 직접적인 압박이 들어온다. 실제로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에 오너 이름이 들어가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기사 제목이 아니더라도 기사 내용 중 오너 사진이 들어간다거나 오너 리더십, 오너 일가 등과 관련된 언급만 해도 기업 입장에선 언론사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
② 기업 관련 부정적 기사 반복적 우려먹기
쉽게 말해 이미 맞아서 아픈 곳이지만 언론이 보도를 계속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기업 입장에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광고나 협찬으로 ‘입막음’ 할 수밖에 없다. 과거 다른 매체에서 나갔던 부정적 내용의 기사를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베껴 쓰거나 자매지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해 기업을 계속 압박하기도 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아님 말고’식 추측성 보도나 아직 기업비리와 관련해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범죄 집단’인 것처럼 단정 짓는 기사도 있다.
③ 털어서 먼지내거나 정권에 밉보이게 낙인찍기
해당 업계 또는 기사를 쓸 당시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기업을 비판하는 식이다. 국세청 세무조사와 직결되는 탈세 의혹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과징금을 받을 수 있는 담합 관련 기사, 금융감독원에서 문제 삼을 만한 내용 등을 찾아내 기업을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 전문지 중 일부는 특정 업체나 제품에 부정적인 기사를 계속 쓰면서 관계부처·기관에 직접 민원을 넣기도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 등 정부가 역점을 둔 국정과제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기업 CEO를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는 기사 중 하나다.
④ 경영관련 데이터 왜곡해 깎아내리기
기업에 비판적인 데이터만을 취사선택해 보도하는 기사 형태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기사는 표면적으론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 등 경영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치 비교를 통해 객관적인 기사 형식을 보인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이나 전망보다는 부진한 실적을 부각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있다.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고도 고배당 잔치를 했다거나 임직원 고액연봉 관련 기사에서 종종 발견된다. 경쟁업체의 부정적 분석이나 전망을 ‘업계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장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⑤ 광고형 (특집)기사
기업 이름과 브랜드를 노출하는 정상적인 신문광고비 집행이 아닌 협찬 성격의 집행비가 증가하면서 언론의 기업 홍보성 기사는 이미 관행처럼 굳어졌다. 실제 중앙일간지를 포함한 많은 신문이 별지 섹션을 두고 ‘광고형 기사’로 지면을 채워나가고 있다. 통상 신문사 광고국이 광고주와 광고 계약을 맺는 식이라면 광고형 특집 기사는 편집국에서 기업에 직접 협찬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선 이런 기사로 광고 효과를 볼 때도 있지만 요청하는 매체와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홍보성 기사는 신문윤리에 어긋나고 신문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 ③ “광고 효과 급감, 조선·동아에 주는 광고는 보험용”… 대포 광고에서 유령 광고 시대로
#사례 1. “‘○○과 함께하는 ◎◎◎’ 제목이 달린 기사들이 있다. 지면에는 어김없이 광고주 로고나 이름이 실린다. 언론은 이런 기사를 협찬 기사 혹은 기획 기사라고 부른다. 언론사에서 미리 기획성 지면을 마련해 가지고 온다. 우리가 할 일은 한가지다.” (전 공무원 A씨.)
#사례 2. “특정한 맥락 없이 광고주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감’을 잡는다. 그리고 그 매체의 영향력을 가늠한 후 매체에 접근한다. 이런 기사는 백이면 백, 들어맞는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 홍보팀 B씨.)
두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광고 홍보성 기사라는 점이다. A씨나 B씨는 모두 이런 사례에 대해 광고비를 책정해 해결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광고주를 협박하거나 칭찬하고 광고를 받아내는 형식이다. 경제지 C기자는 “기획기사는 광고를 매번 실어줄 수 없어서 광고를 한 번에 몰아주는 기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광고성이다.
인터넷 언론사 D기자는 “열심히 쓴 기사를 두고 데스크에서 기사를 출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주로 ‘나중에 쓰자’, ‘문제가 더 커지면 쓰자’고 하는데 그런 경우 대부분은 회사의 주요 광고주였다”고 말했다.
‘사례1’이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사의 쏠쏠한 광고 수입이 된다면 ‘사례2’는 신생 매체들이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광고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홍보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원인 모를 비판’이 쏟아져 신생 매체의 비판은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광역시·도급 관공서 공무원이던 A씨는 “예산 편성에 손댈 수 있는 소위 힘 있는 공무원을 통해 기획안을 넣어야 하는 만큼 매체 영향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기존 언론에서도 영향력 있는 매체가 하면 관심을 보이지만 신생 매체에서 협박성 기사를 쓰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둔다”며 “대변인실에서 1일 구독 매체가 70~80개인데 모든 매체를 일일이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는 노보인 한소리를 통해 편집국이 삼성 기업주에 대한 기사와 노사 관계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맥락을 짚었다. 한소리 지면 일부.
언론도 반작용을 한다. 언론계에는 ‘광고를 꼭 받아낼 수 있는’ 기사 유형이 있다. △오너 이름 노출 △기업 관련 부정적 기사 반복적으로 우려먹기 △경영관련 데이터 왜곡해 깎아내리기 △광고형 특집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사회적 기업에까지 기사로 영업하는 기자들)
언론과 광고주는 ‘견제와 감시’의 긴장을 잃어버린 관계로 타락했다. 매체 다양화와 함께 미디어 디바이스 환경에 따른 광고 경쟁 악화가 언론과 광고주의 부적절한 밀회 관계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뉴미디어 등장·매체 다변화 …추락하는 광고 시장
언론계는 배고프다. 매체가 늘고 광고시장이 다변화하면서 개별 언론사의 광고 영업 수입이 현저히 떨어졌다. 2014년 말 발표한 제일기획 광고연감에 따르면 방송 매체는 전년 대비 2013년 -1.0% 2014년(추정치) -1.6%로 떨어졌고 인쇄 매체는 하락폭이 더욱 커 2013년 -7.0%, 2014년 -6.3%로 곤두박질쳤다.
인터넷은 2013년 2.5% 증가였으나 2014년 -6.0%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됐다. 모바일만 각각 119%, 65.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모바일 광고 규모 자체가 작아 방송·인쇄·인터넷 매체의 감소분을 상쇄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양승진 CBS 기획조정실 매체정책부장은 “인터넷과 모바일이 뜨면서 뉴미디어 광고 시장이 열리고 경기 후퇴와 경제 정체 상황, 비시장적 원리로 돌아가는 방송광고 시장의 폐해 등 다양한 원인이 광고시장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양승진 매체정책부장은 “광고 시장 전체의 침체는 프로그램 질적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양 부장은 “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민주화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 눈치 보기에서는 일정정도 벗어났지만 금권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광고 수주 경쟁에 내몰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언론과 광고주의 밀착
언론사가 광고주와 밀착하는 경우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편집국장을 지낸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석사 논문에서 “광고주의 편집권 침해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인식에 이견이 없었다”며 “현재 열악한 언론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비관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미 다수 언론사가 편집국 출신을 광고국장으로 임명한다.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0여년 이상 광고국장직을 지켜온 이들은 광고국이 아닌 편집국 출신이었다.
2004년 1월 발령 받은 김영모 문화일보 광고국장, 2006년 1월 광고국 국장대우로 승진한 김광현 조선일보 AD본부장(현 이사대우)은 편집국 기자 출신으로 현직을 지키고 있다.
경제지 기자 A씨는 “신문사 내에서도 경영직군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광고국을 거치는 것이 순리이기도 하지만 기자와 광고주의 밀접한 관계를 이용하기 위한 의도도 숨겨져 있다”며 “우리 회사도 편집국 출신을 광고국으로 보내자고 해야 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협찬비와 광고 수주가 주 목적인 주요 언론의 특집 섹션. 언론과 광고주는 이런 광고와 협찬비 등을 매개로 일상적으로 서로를 관리한다.
홍보대행업체 관계자인 B씨는 “요즘은 기자 출신 광고국장이 많다”며 “이들과 이전에 쌓인 관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들이 언제 편집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니 광고나 협찬을 집행하는데 눈치를 전혀 안 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편집국과 광고국이 밀착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경제지 기자 A씨는 “광고국에서 전년 동월 광고 통계를 가지고 ‘○○ 기업 실적이 안 좋다, 신경 좀 써 달라’고 하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실제 경제·산업팀 기자들이 회사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20~30% 가량 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일상화된 언론 ‘관리’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도 나온다. 광고주는 꾸준한 광고로 언론을 관리하고 언론사는 이런 광고를 이유로 해당 광고주의 치명적 약점을 살짝 비켜가 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언론과 업계에서 일상화 돼 있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국내 10개 일간지 전·현직 편집국장을 인터뷰한 석사논문에 따르면 전·현직 편집국장은 “대기업으로부터 기사 조정을 요구하는 전화를 자주 받았다.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고 사실상 무시하기 어렵다”, “기사를 톤다운 해달라는 협조 요청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충재 논설위원은 “(편집국장들이) 광고주의 압력과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묘사했다”며 “신문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광고주 압력의 강도가 세지고 지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 C씨는 “평상시 관계를 잘 맺어놔야 기사를 톤다운 시키거나 빼거나 할 수 있다”며 “업계에서 광고는 점점 만일을 대비한 ‘보험’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선·동아일보의 광고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광고비를 줄일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라며 “광고비용 대비 효과가 비례하지 않아도 매체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포 광고’ 시대에서 ‘유령광고’ 시대로
광고 수급이 어려울 때 언론은 종종 ‘대포광고’를 낸다. ‘대포광고’는 무료광고다. 광고면을 비워둘 수 없는 언론이 기업 광고를 무료로 싣지만 광고를 실은 후 광고주에게 광고비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유령광고’ 시대다. 광고업계에서는 대략 5~6년 전부터 이런 관행이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 C씨는 “광고 효과가 없더라도 광고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협찬’으로 진행한다”며 “지면이나 온라인 홈페이지에 광고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광고를 집행한 것으로 갈음해 언론에 광고비를 지급한다”고 말했다.
광고 판매 확인 방법은 세금영수증과 광고가 실린 지면을 확인하던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유령광고’는 세금영수증만 확인하고 광고 배치된 면 확인은 생략한다. 이런 협찬 광고를 진행한 적이 있다는 온라인 쇼핑몰업체 홍보팀 D씨는 “한정된 광고비를 쪼개 지급했는데 비슷한 급의 다른 매체에서도 ‘광고를 달라’고 달려들면 감당할 수 없게 돼 노출 효과 없는 협찬 광고를 진행했다”며 “말 그대로 만일을 위한 보험용으로 광고 효과가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보다 다른 매체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용히 끝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협찬광고 규모가 상당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광고이다 보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업계에서도 감을 잡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경제지는 기업편?
언론사가 알아서 기업의 홍보처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 경제지들은 일제히 기업인 사면·가석방을 주장했다. 한 경제지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기업인 사면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당 특별취재팀에 속했던 E 기자는 “해당 기획 예상 출고 시점은 지난해 11월 말~12월 초였으나 취재팀에 차출된 기자들의 ‘창피하다’는 반발이 이어지면서 한 달여 가량 기사 출고가 밀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 기자는 “기자들은 논조를 맞춰 줄테니 기자 이름만 빼달라고 해 ‘특별취재팀’으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E 기자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기사가 나가면 내부에서는 광고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 마련이지만 경영진은 오히려 ‘경제지가 기업 편을 들여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듯 밀어 붙인다”며 “기업 입맛에 좋은 기사가 곧 국민 경제에 좋은 기사가 아니라는 인식 전환을 해야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10여년 째 언론의 1등 광고주인 삼성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논문에서 “각 신문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삼성”이라며 “다른 대기업과 달리 삼성은 신문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편집국장이 받아들이는 압력의 정도는 비교가 안될 만큼 컸다”고 평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는 지난해 6월 25일 발행한 노보 한소리에서 “‘무리한 비교’라는 욕먹을 각오로 쓴다”며 한겨레의 5월 26일치 <“혼수상태 이건희 회장 ‘이승엽 홈런’에 눈 번쩍”> 기사와, 5월 19일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 사망 사건 기사(16면)에 대한 한겨레 지면배치를 비판했다.
한겨레지부는 “누구도 발제하지 않았지만 종합면까지 나간 ‘이건희 눈 번쩍’ 기사와 신중하고 엄밀한 검토를 거친 끝에 ‘약소했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기사는 ‘삼성-기업’ 보도와 ‘삼성-노동’ 보도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겨레지부도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언론사와 광고주 건강한 긴장관계 회복해야
광고주는 광고를 줄일 수 없다. 종합편성채널 등 매체가 늘어나고 미디어환경이 방송·신문에서 인터넷을 거쳐 모바일로 넘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광고비가 분산되는 효과를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언론이 저널리즘이라는 본질을 버리고 영리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도록 방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훈기 뉴시스 노조위원장은 “현실적으로 경영이 악화되고 수익률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광고성 기사’를 아예 안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신 공정보도위원회 등을 강화해 기사-광고 맞바꾸기나 기사 삭제 등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할 내부 견제 장치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신문 산업이 하향산업으로 전락하고 있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신문 산업을 지켜내기 위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올해 언론노조도 중점을 두고 지원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치명적인 포털 중독, 값싼 트래픽과 맞바꾼 저널리즘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②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자생적 수익 기반 붕괴, 포털의 기계적 중립에 이슈 실종·왜곡도 심각
세계에서 구글이 장악하지 못한 몇 안 되는 나라, 한국에서 네이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인터넷 이용 인구 3500만 명 가운데 2500만 명 이상이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첫 화면을 네이버로 설정해 놓고 있다. 네이버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이 하루 10억 건에 육박하고 검색 질의 점유율은 75%를 웃돈다. 2001년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네이버가 첫 화면 편집을 바꿀 때마다 언론사 트래픽이 요동을 쳤고 희비가 엇갈렸다.
네이버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독점 논란은 숙명과도 같다. 네이버가 첫 화면 뉴스를 직접 선정해 편집하던 시절에는 수천만 명이 같은 기사를 읽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아무리 공정하게 편집한다고 해도 네이버가 뉴스를 내보낼 때마다 여론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서 끊임없이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네이버는 공정성 보다는 기계적 중립에 치중했고 민감한 이슈를 외면하거나 여론을 왜곡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2006년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은 손을 봐야 한다”는 진성호 전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 이후 네이버는 계속해서 첫 화면에서 뉴스의 집중도를 분산시켜 왔다. 2009년 뉴스캐스트를 도입해 언론사들에게 첫 화면을 내줬다가 제목 낚시와 선정적인 썸네일 이미지로 뒤범벅이 되자 급기야 2012년에는 첫 화면에서 아예 뉴스를 없애 버리기에 이른다. 뉴스스탠드 도입 이후 네이버의 뉴스 소비 총량이 크게 줄었고 언론사 트래픽도 반의 반 토막이 났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02년까지는 개별 언론사들의 독자적인 웹사이트 트래픽 비중이 높았으나 이후에는 포털로 집중화됐다”면서 “포털 사업자들이 자원 배분에 취약했고 언론사들도 콘텐츠 투자 보다는 비용 절감에 주력하면서 성장 동력을 잃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언론이 포털에 기생해 연명하는 구조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언론사들의 공동의 적이면서 동시에 슈퍼 갑으로 군림해 왔다. 언론사들은 네이버의 독점을 비판하면서도 네이버에서 넘어오는 온라인 트래픽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일치단결해서 네이버를 공격하는 것 같다가도 계약을 체결할 때는 뿔뿔이 흩어져 전재료 인상에 목을 맨다. 네이버는 찔끔찔끔 전재료를 올려주면서 언론사들을 달래왔다. 애초에 경쟁 시장이 아니라 전재료 문제는 전적으로 네이버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오늘의 취재 결과 네이버가 언론사들에 지급하는 전재료가 2012년 기준으로 연간 130억 원 수준, 다음과 네이트를 합쳐 300억원 수준이었으나 조중동 등이 네이버를 비판하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쏟아내면서 지난해 계약 갱신 과정에서 네이버의 전재료가 크게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두 배 이상 전재료를 올려 받은 곳도 있고 일부 언론사들은 협찬이나 후원 형태로 받는 금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중동 등 일부 언론사들은 한때 온라인에서는 포털에 권력을 넘겨줬지만 모바일에서는 주도권을 끌고 가겠다며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한국신문협회 차원에서 네이버 등과 단체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 일부 언론사들이 이탈하면서 연대의 틀이 무너진 상황이다. 한때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모바일에서도 네이버 앱을 켜고 인터넷을 시작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사 관계자는 “네이버에 뉴스를 헐값에 팔아넘겨 독자들을 뺏겼다는 게 그동안 언론사들의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있으니 헐값이라고 하기도 어렵게 됐다”면서 “과연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언론사 관계자는 “그건 메이저 언론사의 경우고 마이너 언론사들은 여전히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아예 진입 자체가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포털 관계자는 “언론사가 포털에 기사를 공급한 대가로 돈을 받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면서 “과거 신문사들이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신문을 뿌리면서 광고로 돈을 벌었던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광고주에게 하듯 포털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 언론사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치르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데 한국 언론사들은 단순히 포털에서 받는 걸 늘리겠다는 전략으로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저널리즘의 위기는 언론이 시장의 위기와 신뢰의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해 생긴 것”이라면서 “외국은 뉴스룸 통합을 못해서 안달인데 한국은 디지털 뉴스룸을 분리시켜 놓고 나몰라라 외면하면서 트래픽 장사만 요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디지털 전략을 고민하는 조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면서 “트래픽이 아닌 다른 솔루션, 이를 테면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재현 아시아경제 뉴미디어본부 본부장은 “검색 어뷰징으로 트래픽을 올려 얻는 수익의 절대적인 금액이 많지는 않다”면서 “기본적으로 온라인 광고시장이 점점 크고 있는데도 그 중에서 언론의 몫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 본부장은 “과거 언론은 광고 효과와 무관하게 기업에 가서 고압적으로 광고를 얻어내곤 했는데 이런 관습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포털로부터 많은 돈을 받느냐가 관건이 돼 버렸다”고 덧붙였다.
”종이신문에 이미 나간 기사를 그대로 포털에 보내니 공짜로 돈을 번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독자들도 포털 뉴스에 익숙해졌다. 아차라고 싶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 됐다. 지금 상황을 보자. 네이버나 다음에 조선일보 뉴스가 빠져도 독자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네이버와 다음에 달라붙어서 남들은 1000만원 받을 때 우리는 2000만원 받는 전략이 현재 언론의 최선의 선택이다.“ 백 본부장의 이야기다.
전중연 텐아시아 대표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당장 탈 포털은 상상하기도 어렵다”면서 “가십성 어뷰징 기사가 만든 트래픽과 질 높은 ‘헤비한’ 콘텐츠가 만든 트래픽이 수익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독자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면 소수의 열성 팬덤 만으로 자생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포털에 없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꾸준히 축적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 되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포털을 벗어나자는 논의가 이미 의미 없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도 많다. 포털에서 탈퇴한다고 해서 포털에 집중된 트래픽이 언론사 사이트로 옮겨오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언론사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조중동 등이 네이버의 대안을 고민하면서도 네이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포털과 공생하면서 언론사 사이트의 독자적인 트래픽 유입 경로를 확보하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언론사들의 잘못된 믿음 가운데 하나는 네이버 때문에 저널리즘이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광고 시장의 무게 중심이 인터넷으로 이동하는 건 포털의 잘못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종이신문과 방송의 광고 효과보다 인터넷의 광고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광고주 뿐만 아니라 독자와 시청자가 종이신문과 방송 뉴스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강 연구원은 “광고주 입장에서 트래픽이 광고 채널의 선택 기준이 될 경우 광고주가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이 아닌 개별 뉴스 사이트를 선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면서 “포털에서 게재하지 않는 비뇨기과와 성형외과 정도가 뉴스 사이트를 찾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트래픽 유도를 목적으로 종이신문에서는 결코 담아내지 않던 선정적인 뉴스를 생산한다면 이는 스스로 뉴스 서비스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최근 출간한 ‘혁신 저널리즘’에서 “종이신문과 방송 뉴스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도달되는 하나의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최소공배수를 추구해야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이해와 서로 다른 취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다른 제품이 존재한다”면서 “최소 공배수만 생산하는 미디어 제품을 유지할 경우 종이신문과 방송 뉴스가 경쟁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전통적인 뉴스 시스템이 해체되고 하이브리드한 연결망이 등장하면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언론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언론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신뢰가 추락하는 가운데 소수의 엘리트 신문과 다수의 ‘루저’ 신문으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좋은 신문과 나쁜 신문에 대한 소비자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온라인 저널리즘은 그간 진영논리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진영논리 극복이 우선되지 않고는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올리기 힘들고 수요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황 교수는 “진영논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다소 약화시킬 필요는 있다”면서 “정파성에 종속되는 저널리즘이 근본적으로 위기를 초래한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사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높지만 포털 책임론도 나온다.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네이버를 단순한 영리 기업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최진순 한국경제 디지털전략부 기자는 “네이버는 저널리즘의 황폐화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면서 “네이버와 언론사의 갈등은 좁게 보면 뉴스 유통시장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지만 여론 영향력 독점에서 보면 공적 책임에서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환경과 매체의 경쟁구조가 변화하는 등 주로 외적 요인에 의해 네이버 중심 소비 흐름에 균열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언론사가 얼마나 이 흐름에 능동적 혁신을 하느냐가 그 시간을 줄이고 편중의 경향성을 완화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네이버가 언론사 트래픽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언론사 차원의 혁신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락선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 회장은 “제목 낚시나 검색 어뷰징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지만 네이버의 부실한 검색 결과의 책임을 언론사들에게 떠넘기는 성격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가 최근 클러스터링 기법을 도입해 비슷한 기사를 묶어서 노출하고 있긴 하지만 원천적으로 어뷰징을 차단하는 해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비슷한 기사 수백 개를 나열할 게 아니라 가장 정확한 기사를 골라서 노출하는 게 포털의 책무라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읽는데 네이버가 뉴스를 편집하는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네이버는 연합뉴스 기사를 의도적으로 전면에 배치하면서 민감한 사안의 쟁점을 희석하는 편집을 하고 있다”면서 “좀 더 투명한 편집 원칙을 제시하거나 공정하게 편집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구글 뉴스처럼 알고리즘 방식을 도입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한 사회의 뉴스를 한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태생적으로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소한의 질서를 만들고 반칙 행위를 단호하게 규제하고 양질의 저널리즘을 지원하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포털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면 포털 입장에서도 저널리즘의 추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원 요원의 허망한 양심선언
[권범철의 털미네이터] 1.21 여덟 번째 미디어오늘
.... 계속
유가 급락, 역발상 투자 기회 1.22 시사저널
원유 파생결합증권(DLS) 등에 젊은 직장인 가입 늘어
지난해 여름만 해도 기름값에 주목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국제 원유가격은 3년 넘게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상황이 바뀐 건 그 이후부터다. 중동산 두바이유,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가리지 않고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지금은 배럴당 40달러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3~4월 이후 최저 가격이다.
저유가 시기를 투자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기름값이 더는 하락하기 어려운 만큼 원유 파생결합증권(DLS) 등 관련 상품이 저금리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거액 자산가보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려는 직장인들이 이 같은 ‘역발상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 일러스트 최길수
“지금이 바닥” vs “더 떨어진다”
요즘처럼 원유 값이 가파르게 떨어진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이 종전 대비 두 배 정도 원유 생산량을 늘린 데다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증산에 나선 게 결정적인 원인이다. 1985~86년 약 5개월 만에 원유 가격이 60% 넘게 하락한 적이 있지만 30년 전의 얘기다.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브렌트유의 올해 평균 가격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80달러에서 42달러로 대폭 낮췄다. 미국 원유 재고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달러화 강세가 점쳐진다는 이유에서다. 유가는 세계 경제 및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자재다. 1978년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가 빈사 상태에 빠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반대로 1980년대 들어 기름값이 바닥을 기자 국가 수익의 약 70%를 원유에 의존했던 소련은 연방이 해체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원유 DLS 투자자들은 울상이다. 줄줄이 손실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올 들어 손실이 발생한 원유 DLS의 발행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유 DLS가 집중 발행된 건 2012년께다. 유가가 배럴당 90~110달러를 오르내릴 때다. 만기 때 기름값이 발행 당시에 비해 50% 이상 떨어지면 그만큼 손실이 확정되는 구조다. 중도 해지하더라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만기 전까지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등하면 원금을 지킬 수 있지만 상당수 원유 DLS의 만기는 올 2월부터 속속 돌아올 예정이다.
기름값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관련 업계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지금은 좀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탈(脫)석유화 쪽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역시 “수요가 회복돼 유가가 바닥을 다지고 오르더라도 배럴당 100달러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김종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WTI 등의 거래 가격은 사우디아라비아·미국·캐나다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이미 생산 원가 이하로 진입했다”며 “향후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연중 배럴당 70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름값이 단기간에 가파르게 하락하자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충분히 떨어진 만큼 오를 일만 남았다는 판단이다.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거액 자산가보다 젊은 직장인들 위주로 원유 관련 상품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역발상 원유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
대표적인 상품은 원유 분할 매수 랩(wrap)이다. 원유 값이 떨어질 때마다 증권사 전문가들이 일정액씩 분할해 매수해주는 게 특징이다. 해외의 원유 선물을 직접 매수하기보다 국내외에 상장된 원유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예컨대 원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45~50달러 이상이면 전체 자산의 절반을 원유 선물 ETF에 투자하고, 이후 배럴당 2.5~5달러 떨어질 때마다 일정 비율로 추가 매수하는 것이다. 수수료는 위탁 금액의 연 1~2%다. 6개월만 투자하면 수수료를 절반만 낸다. 별도 중도 해지 수수료는 없다. 최저 가입액이 1000만원 정도다.
일부 분할 매수 랩은 안전장치도 갖췄다. 5~10%의 수익을 달성하면 자동으로 ETF를 매도해 수익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만 해외 원유 선물 ETF에 투자하는 상품의 경우 외환 노출형이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원자재와 달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원유 가격이 오르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수익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원유 선물 ETF에 직접 투자하는 사람도 급증세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일평균 1만주 안팎이던 ‘타이거 원유 선물 ETF’ 거래량은 1월 들어 150만주가량으로 폭증했다. 원유 선물 ETF를 직접 분할 매수하면 분할 매수 랩을 살 때에 비해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ETF 수수료는 0.7% 정도다.
해외 원유 관련 종목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레버리지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은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거래하는 ‘톱10’ 종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예컨대 S&P원유지수의 등락을 3배만큼 추종하는 ‘벨로시티셰어스 3X 롱 원유ETN’엔 저가 매수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 주식의 지난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 90%에 달하는 만큼 추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란 쪽에 ‘베팅’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 뚝 끊기다시피 했던 원유 DLS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쿠폰 수익률은 연 6~8%로, 시중은행 예금보다 3~4배 높다. 원금이 보장되는 원유 DLB(파생결합사채)도 인기다. 만기 때 유가 상승률이 50% 이하이면 최고 연 25%까지 수익을 준다. 김희주 KDB대우증권 이사는 “유가가 단기 급락한 만큼 지금 시점에서 반등을 노리고 일부 자금을 투자할 만하다”면서도 “원유는 가격 변동성이 큰 고위험 상품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단한 ‘미생’들, ‘삼시세끼’라도 먹자 시사저널 14.12.25
<변호인>부터 <미생>까지 올해 대중문화 트렌드 분석
2014년은 1000만 관객 영화 <변호인> 열풍과 함께 시작됐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으레 나타나는 액션이나 대형 볼거리도 없는 이 소품 드라마에 국민적 성원이 쏟아졌다. 국민은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중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극히 상식적인 대사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는 대사도 많이 회자됐다. 상식이 무너진 사회라는 뜻이다.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돼야 하는 일들은 막혀 있다. 사람들은 상식의 복원을 꿈꾸고 국민을 보호해주는 지도자를 갈구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조를 그린 영화 <역린>이 개봉됐다. 이 작품은 현빈의 ‘화난’ 등 근육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지나치게 많은 중심 인물로 방만한 스토리가 펼쳐져 지도자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흥행도 적당한 선에서 그쳤다. TV에선 한민족의 지도자상을 제시하겠다며 <기황후>가 4월까지 방영됐지만, 왜 고려 말 민족 반역자를 이제 와서 민족 지도자로 윤색하느냐란 비난 속에 특별히 부각되진 못했다.
<미생> ⓒ tvN 제공
마침내 지도자가 나타나다
올봄에는 우리 현실을 그린 장르 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쓰리데이즈>는 대통령을 제외한 한국 지도층 전체가 짜고, 자기들 이익을 위해 국가를 배신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조를 그린 조선 사극에 나타나는 노론의 행태와 똑같은 구조였다. <골든 크로스>도 경제 권력자가 마피아 집단을 형성해 사익을 추구하며 국가 금융 시스템을 농단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신의 선물>은 대통령 측근들이 작당해 형사 사건을 은폐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결정타는 MBC의 <개과천선>이다. 이 작품은 로펌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로펌과 재벌, 금융자본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엉켜 서로의 이익을 지켜주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에서 서민은 소외됐다. 이런 현실 묘사에 종편도 <밀회>로 가세했다. 이 작품은 연상연하 멜로 설정에 재벌가와 예술대학교의 천박한 실상을 얹었다. 재벌가는 귀족의 천국이고 예술대는 마피아의 천국이었다. 이 작품이 방영될 즈음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교수 선임 관련 스캔들이 터져 작품의 사실적 느낌을 더욱 강화시켜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제대로 된 지도자를 그려줬다. 바로 올 상반기 전체를 관통한 정통 대하 사극 <정도전>이다. 고려 말 기득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귀족 집단에 맞서 청년 선비인 정도전이 혁명을 꾀한다는 이야기다. 시청자는 귀족 집단의 대표인 이인임에 대한 현실적 묘사에 감탄하고, 서민의 지도자인 정도전의 이상적 모습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던 차에 세월호 사건이 터진다. 선장과 선원이 침몰해가는 배와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이 나라를 침몰해가는 배로 여기고, 버려진 승객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유병언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배후로 부각됐는데, 그런 사람을 재벌급으로 키워준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더 커졌다.
그리고 김보성 ‘으~리’ 신드롬이 터진다. 어차피 현실의 지도자는 정도전은커녕 이인임만도 못한 ‘소인배’들 천지라고 사람들은 여겼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각박한 세상에 믿고 기댈 데가 없는 현실.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을 때 사람들은 사적 신뢰에 기대게 마련이다. 결국 의리다. 여름에 지도자의 끝판왕이 등장한다. 바로 <명량>의 이순신 장군이다. 기황후 같은 가짜 영웅이 아닌 진짜 ‘성웅’이다. 한국 사회는 1760만 관객몰이라는 집단 병리적 관람으로 성웅의 재림을 맞이했다.
<삼시세끼> ⓒ tvN 제공
2014년 위안이 통했다
현실에선 브라질월드컵에 이은 홍명보 의리 축구 사태가 벌어졌다. 하다못해 축구 국가대표팀 구성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된 현실. 공적 신뢰의 전면 붕괴다. 이런 상황에선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다. 돈의 절대화다. 만수르 신드롬이 터졌다.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영웅시되더니 <개그콘서트>에 관련 코너가 등장하고 한국 네티즌이 만수르 SNS로 몰려가 구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만수르는 2014 네이버 PC 인기 검색어 상승 차트에서 사람으로선 1위(전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이스버킷 신드롬을 통해 해외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비정상회담>에서 외국인이 들려주는 해외 사례도 인기를 모았다. 우리 현실에 대한 염증이 커질수록 외국의 넉넉한 삶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북유럽의 풍족함이 화제로 떠올라 ‘스칸디~’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케이블TV가 각박한 현실을 그대로 그린 드라마 <미생>을 제작해 하반기를 강타했다. 모두가 미생이고, 모두가 ‘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려 이 시대 서민의 심금을 울렸다. 연말에 터진 ‘땅콩 회항’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이 어떤 위상인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모두가 동경하는 항공기 승무원조차도 갑 앞에선 천민일 뿐이었다. 서울시향에선 대표와 예술감독이 서로 갑질을 했다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고, 대한민국 최고 권부에서도 전·현직 비서와 전직 장관, 대통령 가족 등이 난전에 돌입했다. 1년 내내 일베 관련 방송 사고, 김치녀 신드롬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일베 가족’은 마침내 연말에 사제 폭탄 테러라는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렀다. 심지어 이런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총체적 난국이다.
어차피 현실이 이렇게 각박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장이라면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통해서나마 휴식·위안을 찾았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안 하는 예능인 <삼시세끼>가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농촌에서 밥 지어 먹고, 농사짓고, 동물 돌보는 게 다인 프로그램이다.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육아 예능과 ‘먹방’도 1년 내내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유강(유재석·강호동)천하’가 붕괴됐다. 연말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사태가 터진다. 노부부의 삶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가 흥행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금 한국인이 휴식과 따뜻한 위안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를 웅변해준다.
노래출처: 詩 하늘 통신 다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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