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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26~1.31

by 이성근 2015. 1. 31.

 

1.26 경향-1.25 내일

 

 

1.26 국민-내일

 

 

1.26 한겨레-1.27 경향

 

 

1.27 내일-시사인

 

 

1.27 한겨레-한국

 

 

 1.28 시사저널-경향

 

 

 1.28 국민-내일

 

 

 1.28 한겨레-한국

 

 

 1.29 경향-국민

 

 

 1.29 내일-한겨레

 

 

1.29 한국-1.30경향

 

 

 1.30 국민-내일

 

 

 1.30 한겨레-한국

 

 

  1.26~30 경향 장도리

 

서민 쥐어짜는 건보료, 누군가에겐 '테크' 1.30 노컷뉴스

허점 노려 '가짜 직장인' 급증피부양자 등록도 모순투성이

 

#1. 빌딩 주인인 A씨는 '가짜 근로자' 한 명을 채용해 사업장을 꾸려 건강보험료 직장가입자가 됐다. 지역가입자일 때 월 54만원씩 내던 건보료는 67천원으로 확 줄었다.

 

#2. 재산과 소득이 많아 월 215만원씩 건보료를 내야 했던 B씨는 아들 회사의 직장가입자로 등록, 건보료를 39천원으로 줄였다.

 

30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A씨나 B씨처럼 허위로 직장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지난 2013년 상반기에만 145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각종 부과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가입자 신분을 벗어나 직장가입자로 '꼼수 편입'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허위 취득을 통해 덜 낸 건보료만도 38억원에 이른다. 2008~20136년치만 따져도 6103명의 허위취득자가 건보료 215억여원을 마치 '()테크'처럼 줄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입사동기였다가 지난해 나란히 정년퇴직한 C씨와 D씨의 경우도 현행 제도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건보료를 내왔고, 연금 액수나 재산 수준도 엇비슷하지만 C씨가 내는 건보료는 0, D씨는 매월 15만원가량의 건보료를 내고 있다.C씨가 공무원인 장남의 피부양자로 등록한 반면, 자영업자인 아들과 전업주부인 딸을 둔 D씨에겐 자동차와 보유 재산, 연금 소득 등을 종합한 평가 소득이 산정됐기 때문이다.C씨처럼 건보료 부담이 없는 피부양자는 지난해 6월말 현재 20545천명이나 된다. 지난 2003년의 16029천명보다 28.2%나 급증한 규모다. 같은 기간 건보 전체 가입자는 6.5% 증가에 그쳤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현행 제도대로라면 피부양자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돌연 중단시킨 개편안이 시행됐더라면, 종합과세소득 2천만원이 넘는 피부양자 193천명은 지역가입자로 바뀌어 매월 13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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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종합과세소득 2천만원 이상인 고소득 직장인 역시 추가 징수 명단에 올라, 23만명 가까운 '부자' 직장인들이 연간 1816억원을 더 내야 했지만 '없던 일'이 돼버렸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성명을 통해 "개편안은 큰 틀에서 전향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갑작스런 백지화는 황당한 정책 후퇴이며 정치적 셈법에만 치우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복지부는 개편 중단의 후폭풍이 커지자, 일단 연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올해 상반기중 낮춰주기로 했다.

 

각종 평가소득 항목 가운데 '생계형' 저가 재산인 전·월세에서 현재 500만원인 공제 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월세는 아예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체 지역가입자 7589천 세대 가운데 연소득 500만원 이하 세대는 77.7%5996천 세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 4024천 세대는 아예 소득이 없다

 

 

'증세없는 복지' 불가능 65% vs 가능 27% 1.30 노컷뉴스

 

온기 사라지는 산업 엔진저성장 늪에 빠지나 130 한국

작년 생산 증가율 역대 최저 1.1%광공업 생산지수는 '제로 성장'

 

기업 체감 경기도 회복 기미 없어 "저유가외엔 1분기 회복 유인 없어"

         

지난해 농어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생산 증가율은 불과 1.1%.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특히 제조업을 포함하는 광공업 생산의 경우 증가율이 0%에 머물며 제자리 걸음을 했다. 산업 엔진이 식어가면서 우리 경제가 이미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암울한 진단이 나온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412월 및 연간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 산업생산은 2013년 대비 1.1% 성장하는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 침체가 두드러졌던 2008(2.3%) 2009(1.5%)보다도 낮은 2000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이에 대해 산업생산 증가율은 국내총생산(GDP)에 선행하기 때문에, 지난해 경제성장률 잠정치(3.3%)가 확정 단계에서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 경기가 확실하게 저성장 기조에 들어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경기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는 광공업 생산지수는 전년과 동일한 107.7에 머물렀다. 전혀 성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0.1%)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제로 성장이다. 공장이 얼마나 가동되는지를 보여주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지난해 76.0%로 전년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산업생산 증가율 하락은 수출 감소 때문이라면서 수출이 계속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전 경기 회복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출 증대로 기업소득이 늘고, 그에 따라 임금 고용이 증가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와 투자로 파급되는 게 전형적인 사이클인데, 수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전 분야가 부진했다고 평가했다.

 

 

실물경제의 둔화 속에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제조업 업황 BSI73으로 지난달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484였던 BSI지수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579로 하락한 뒤 9개월 째 70선에 주저앉아 있다. BSI는 기업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기준치인 100이상이면 경기를 좋게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것이고, 그 보다 낮으면 나쁘게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월별 추이로 보면 다소 개선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12월 광공업생산은 전달보다 3.0% 늘어났고, 소매판매(2.2% 증가)와 설비투자(1.7% 증가) 등의 지표도 비교적 괜찮았다. 지난해 1199.8(100 밑이면 통상 불황을 의미)로 떨어졌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지난달 0.3포인트 상승한 100.14개월 만에 반등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1분기에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를 중심으로 회복세가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낙관론을 펴기엔 회복세가 너무 미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12월의 좋아진 수치는 자동차 파업 중단, 담뱃세 인상에 따른 연말 소비 급증 등에 따른 일시적 효과로 보인다면서 아직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불확실한 저유가 외에는 올해 1분기에 경기가 좋아질 유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으면 종북? 시사인 3851.30

종북이 테러를 이겼다. 지난해 12월 토크 콘서트 중 벌어진 테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은 한국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고, 한 사람은 구속됐다. 수사 당국은 이 두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었다.

 

미국 시민이 한국에서 강제 퇴거를 당했다. 한국 시민은 구속됐다. 두 사람은 모두 테러의 피해자였다. 지난해 1210일 고등학생이 인화물질을 던진 전북 익산의 토크 콘서트에서다(<시사IN> 380소년은 왜 폭탄을 던졌나참조).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는 언급하지 않고 둘의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고 규정했다. 이 발언 이후 수사 당국은 테러 피해자를 국가보안법으로 걸었다.

 

강제 퇴거를 당한 미국 시민은 재미동포 신은미씨(54). 신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 네 번, 검찰 조사 한 번을 받았다. 검찰은 신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뒤 법무부에 강제 퇴거 명령을 요청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110일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다. 신씨는 5년간 입국이 금지된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든 강제 출국 판단의 근거 중에는 신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보법 위반은 수사 당국인 검찰의 판단일 뿐 법원의 판단이 아니다. 검찰이 내린 기소유예처분은 혐의는 있지만 기소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신씨의 변호를 맡은 김종귀 변호사는 행정 당국이 기소유예 처분을 곧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본 것은 무죄추정 원칙으로 볼 때 맞지 않다. 기소유예 처분에는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 강제 퇴거에 대해선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110일 공항에서 지인들과 작별인사 중 눈물을 보였다.

 

기소유예를 근거로 추방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정당한지도 논란거리지만, 당장에 기소유예 처분 자체도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문제 삼은 신씨의 토크 콘서트 발언은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핸드폰이 이미 250만이 넘어 평양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봤다” “4대강 사업을 전혀 안 해서 강을 보러 오는 관광상품도 있다” “사람들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도수를 높이라 해서 노동자들이 마시는 술이 맛있어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감 있는 지도자가 아니구나 느꼈다” “제게 편지를 하신 새터민 70~80%가 고향이 받아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여자들끼리 술을 마신다” “평양에 고급스러운 식당과 쇼핑몰이 생겼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검찰은 신씨의 발언이 실제 사실과 다르거나 혹은 일부에 국한되거나 의도적으로 연출된 북한 사회의 상황을 북한 사회 일반의 상황인 것처럼 전달함으로써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와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했다라고 봤다.

 

이 외에 검찰은 신씨가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른 사실도 문제로 삼았다. 검찰은 이 노래를 1989년 김정일이 자신을 찬양하기 위해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지시해 만든 노래라고 했다. 그런데 2007년 나온 통일 음반 <동인>에는 가수 바이브가 부른 이 노래가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바이브 외에 이선규, 금강산가극단 등도 부른 이 노래는 음원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구할 수 있다.

 

검찰은 신씨를 기소하지 않은 이유로 신씨가 미국 시민권자이고, 황선씨가 주도한 행사에 이용된 측면이 있는 데다, 북한의 세습 독재에는 비판적 진술을 한 점 등을 들었다. 김종귀 변호사는 신씨의 경우 무죄가 예상되고 미국 국적이라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기소유예와 강제 출국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경찰이 황선씨와 관련해 지난해 1211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황선씨 구속 사유, 따져보면 재탕

토크 콘서트 발언 외에 논란을 부른 게 하나 있다. 신씨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네잎클로바 펴냄)이다. 이 책은 201211월 발행된 이후 4쇄를 찍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책을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했다. 당시 심사를 위임받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이 책을 반공 이념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져 있던 사람이 북한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이기에 설득력과 공감을 갖는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지난해 1231일 우수문학도서 목록에서 제외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재단에서 조치를 요청해 다음 날 관련 기관이 회의로 결정했다. 철회에 관한 규정은 없었지만 토크 콘서트에서 파생된 사회적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우수문학 선정 자체가 논란이 되면서, 소외 계층에 도서를 보급한다는 사업 취지가 훼손됐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월 말까지 전국의 작은 도서관, 복지·교정 시설 등에 보급된 책 1200권을 회수할 예정이다. 정작 검찰은 책 내용에서는 국보법 위반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신씨의 변호인 측은 우수문학도서 선정 철회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구속된 한국 시민은 황선씨(41). 200쪽이 넘는 구속영장 청구서 중 토크 콘서트 관련 부분은 9쪽이다. 김종귀 변호사는 “5시간 가까이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토크 콘서트 관련 판사 질문은 대동강 맥주를 왜 맛있다고 했느냐하나였다라고 말했다. 주된 구속 사유는 이적단체 행사 참가와 이적표현물 제작·취득·소지·반포 등이었다. 내용을 따져보면 재탕혐의가 짙다.

 

검찰이 문제 삼는 이적단체는 실천연대다. 황씨가 이 단체 새정치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이적 동조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황씨가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이 단체의 대의원대회에 참가하거나 사회를 봤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단체는 2010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공소시효가 7년으로 2016년에 끝난다. 실천연대 사건 변호를 맡은 설창일 변호사는 핵심 간부 4명이 항소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에서 상근자도 아니었던 황씨를 지금 이 시점에 구속하는 것은 국보법의 자의적 적용을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말했다.

 

익산에서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인 1211일 경찰은 황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2, 노트 1, 다이어리 1, USB 2개를 가져갔다. 압수한 물품 중 <고난 속에서도 웃음은 넘쳐>가 북한 평양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1998년 밀입북한 황선씨와 김대원씨가 남한으로 돌아와 감옥에서 쓴 글을, 북한에서 책으로 엮어 냈다. 검찰은 이를 이적표현물 소지로 걸었다. 황선씨 측은 이 책을 2005년 방북 때 선물로 받았고, 통일부가 검열했으나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황씨는 자신의 글만 모아 1999년 한국에서 <어머니, 여기도 조국입니다>를 출간했고, 3개월을 이미 복역한 바 있다.

 

검찰은 황씨가 남편 윤기진씨의 옥중 편지를 타이핑해 인터넷에 올린 것도 이적표현물 반포로 보았다. 윤씨가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안인데, 다시 영장 청구의 근거로 썼다.

 

검찰은 황선씨가 쓴 시도 문제 삼았다.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보고 쓴 국회는 총해산하라는 문구가 포함된 시 이라크 파병 독려를 격문으로 비난한 시 제주 4·3항쟁 추모 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시 등이 포함됐다.

 

검찰은 ’ ‘지금민변 변호사들을 수사할까? 1.29 시사인

위증 교사한 변호사, 국가보안법 위반 변호사, 파렴치한 수임 비리 변호사. 검찰의 칼끝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겨눠졌다. 이번에는 각종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변호사들이 타깃이다수사 시작은 지난해 10월 전후였다. 서울고검 송무부가 단서를 잡았다. 서울고검 송무부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소송을 맡아 정부를 대리하거나 지휘한다. 이태복 전 장관 등 학림사건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을 살피다, 박상훈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오른 것을 발견했다. 박 변호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과거사위원회는 20096, 학림사건에 대해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검 송무부는 박 변호사가 과거사위원회 결정으로 파생된 사건을 맡은 것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았다.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조사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박 변호사를 소환조사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서는 박 변호사 사례와 비슷한 3~4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 뒤 소환조사를 받은 변호사는 없었다.

 

3개월 뒤, 서울중앙지검은 조사부 사건을 법조 비리 전담 부서가 있는 특수부로 넘겼다. 특수4부로 이관하면서 사건은 커졌다. 대상자도 늘었다. 박상훈 변호사 외에도 김형태·김준곤·이명춘 변호사 등 7명이 1차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6명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다. 검찰 수사 타깃이 민변이라는 말이 나왔다.

 

 

연합뉴스 120일 과거사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위원회 활동 변호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검찰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두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010~20046), 과거사위원회(200512~201012)에서 활동한 변호사들이 이후 관련 사건을 맡음으로써 수임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변호사법에는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3113).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검찰은 국가위원회 소속 위원은 공무원에 해당되어 기소에는 무리가 없다고 본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 타깃은 민변이고 박상훈 변호사는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상훈 변호사는 민변 소속이 아니다. 노동법 전문가인 그는 삼성백혈병 산재 소송을 승소로 이끈 주인공이다. 검찰이 박 변호사에게 혐의를 둔 사건은 두 가지다. 동아일보사가 제기한 소송과 학림사건 피해자들이 낸 소송이다. 과거사위원회는 2008<동아일보>가 기자들을 대량 해직시킨 동아투위 사건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다. 피해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화해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동아일보사는 정부를 상대로 권고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과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동시에 냈다. 이때 박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해 변호했다. 이 소송 역시 정부 상대 소송이니만큼 서울고검의 지휘를 받았다. 당시 서울고검도 박 변호사 선임을 묵시적으로 양해한 셈이다. 서울고검이 당시에는 양해한 사건에 대해 뒤늦게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림사건이다. 이태복 전 장관 등이 과거사위 결정을 근거로 재심 청구를 했다. 대법원은 2012년 무죄를 확정했다. 이 전 장관 등 피해자와 가족들은 이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은 박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화우가 맡았다. 화우는 2012년 공익 소송을 전담하는 공익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한센병 소송과 학림사건을 공익위원회가 맡아 진행했다. 언론에는 사회공헌 활동이라며 미담성 기사로 소개되었다.

 

박 변호사는 공익위원회 활동 차원에서 변호인에 이름을 올렸다. 착수금은 받지 않았고 성공 보수는 약정했는데, 성공 보수도 공익위원회에 넘기기로 했다. 박 변호사는 공익소송의 경우 소송비용을 받아야 하느냐 논란이 있는데, 최종심에서 승소할 경우 다음 공익소송을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소액을 받아 위원회에 넘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를 받자, 두 사건 모두 사임계를 냈다. 박 변호사는 좋은 취지로 맡아 진행했는데 검찰이 문제삼으니 사임했다. 공익 차원에서 변호사 활동을 접고 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까지 확대 적용해서 처벌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왜 지금 수사를 하는지 시점을 눈여겨봐야

검찰이 주로 살펴보는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손해배상 소송이다.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인혁당)19754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18시간 만에 도예종씨 등 8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민변 창립 멤버였던 김형태 변호사가 이 소송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1994년부터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1998년부터 인혁당 재건위 진상 규명 활동에 들어갔다. ‘사형수간첩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살아온 이들에게 명예회복을 하자며 처음으로 손을 내민 단체가 천주교 인권위원회였다.

 

 

연합뉴스 민변 소속의 김형태 변호사(왼쪽)는 인혁당 사건 소송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위원으로 활동하며 A4 용지 37000장에 달하는 인혁당 관련 사료를 군사법원에서 찾아냈다. 그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내부 문제로 20021월 상임위원직을 사퇴했다. 김 변호사가 떠난 뒤 그해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재건위는 박정희 정권의 조작사건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유족들이 이를 근거로 재심 청구 소송을 냈고, 천주교 인권위원회 때부터 인혁당 사건 진상 규명에 나선 김형태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겼다.

 

보통 과거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위원회 결정이 곧바로 손배 소송의 승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위원회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아야 손배 승소 가능성이 높다. 형사사건 재심과 민사소송을 김 변호사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모두 진행했다. 2007년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후 유가족들은 340여억 원을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냈고 모두 승소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경우 대개 수임료는 10~15% 남짓 받는데 1%만 받고 나머지는 공익재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제안에 유족들이 흔쾌히 응했다. 그래서 4·9통일평화재단이 만들어졌다.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김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덕수와 천주교 인권위원회로 흘러간 돈까지 들여다보았다. 김 변호사는 덕수-천주교 인권위-재단으로 출연된 증빙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길게는 10년 전 사건, 그것도 공공연히 수임 관계가 기사화되어 알려진 사건까지 검찰은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박주민 민변 사무차장은 왜 하필 지금 수사를 하는지 시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수사는 민변 다잡기용이다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일련의 민변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례적으로 민변 변호사 징계를 대한변협에 청구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와 관련해 권영국 변호사 등 5명을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하며 이들을 포함해 기소도 하지 않은 장경욱 변호사와 김인숙 변호사까지 징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시사IN> 375방귀 뀐 검찰이 성내고 있군참조). 검찰은 장 변호사와 김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거짓 진술과 묵비권 행사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한변협은 두 변호사에 대한 징계 요청을 기각했다. 변호인이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할 권리, 잘못된 진술을 번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건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충실한 활동으로 보았다.

 

수임한 사건과 징계 신청이 무관치 않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징계 신청을 한 것은 두 사람이 맡은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두 변호사는 유우성 사건과 북한 직파 간첩 홍 아무개씨 사건 모두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냈다. 특히 장 변호사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간첩 조작 사건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징계 신청에 이어 검찰은 장경욱 변호사를 콕 집어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해 12, 장 변호사가 201311월 참석한 독일 포츠담 세미나를 문제 삼았다. 이 세미나에 이시홍 독일 주재 북한 대사 등 북한 인사 7명이 참석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두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수사 중이다. 민변은 이번 과거사 수임 사건 수사 역시 이런 일련의 흠집내기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위증 교사한 변호사’ ‘국가보안법 위반 변호사에 이어 파렴치한 수임 비리 변호사프레임까지 검찰이 덧씌우려 한다는 분석이다. 검찰과 민변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가슴 한가운데 맺힌 증오 종북 시사저널 [1319] 1.30

주요 보수단체 성명·논평 의미연결망 분석해보니 가르는 논리 두드러져

시사저널은 주요 보수 성향 단체 중 활동이 활발한 축에 속하는 국민행동본부·대한민국어버이연합·자유청년연합이 최근 2년간 발표한 성명·논평을 모두 수집해 소셜 분석 솔루션 업체인 트리움에 의미연결망 분석을 의뢰했다. 28만여 개 글자, 6만여 개 단어, 200자 원고지 1800여 장에 해당하는 방대한 자료가 분석 대상이 됐다.

의미연결망 분석은 특정 발언·대화·글 등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해 해당 발화자·필자의 논리 및 담론 구조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분석 대상이 된 세 단체의 성명·논평 중에는 다른 보수단체들과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 다수 포함돼 있는 만큼 행동하는 보수전반의 논리·담론 지형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정문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옛 통합진보당의 기자회견을 비판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키워드 언급 빈도 단순 분석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는 대한민국

우선 키워드 언급 빈도부터 확인해보자. 보수단체의 성명·논평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대한민국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두 번째다. 2013년까지 이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에 보수단체들이 적극 개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다음은 북한’ ‘종북’ ‘통합진보당’(통진당) 순이다(<자료1> 참고).

 

키워드 언급 빈도를 단순 집계한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최근 2년간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사건과 이슈 중 보수단체의 프레임은 안보 및 이념 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특정 단체의 성명·논평은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이다. 이를 감안하면 보수단체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방점이 안보 및 이념 쪽에 찍혀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둘째, 가장 많이 언급된 핵심 키워드들이 각각 긍정적·부정적 성격으로 대립 전선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분석을 진행한 이종대 트리움 이사는 “1, 2위인 대한민국과 국정원이 이들 단체가 상정하고 있는 내집단(in-group)이고 3, 4, 5위인 북한·종북·통합진보당(7위 새정치민주연합 포함)이 이들 단체가 상정하고 있는 외집단(out-group)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셋째,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가 대한민국인 점이 눈길을 끈다. 보수단체들이 내놓는 성명·논평 중에는 종북·통진당 등 부정적 입장을 지닌 대상을 향한 비난·규탄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긍정적 키워드인 대한민국이었다. 이는 보수단체 특유의 담론 전개 방식과 관련된다. 성명·논평에서 부정적 키워드를 언급할 때 긍정적 키워드를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파괴하고 북한식 생지옥을 건설하려는 역적 모의’(20141224일 국민행동본부 성명) 같은 식이다. ‘긍정적 키워드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부정적 키워드를 제시하는 식으로 담론을 끌고 나가면서 긍정적 키워드의 자리에 대한민국을 호출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선형 의미망 통한 맥락 분석

 

피아가 명확히 구분된 세계관

이상의 특징들은 각 키워드 사이의 의미망을 배열해보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심화 의미망을 살펴보기에 앞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 30여 개를 활용해 선형으로 단순화된 의미망을 구성해봤다. 언급 빈도가 가장 높았던 보수단체들의 핵심 키워드 5개와 연결성이 큰 세부 키워드를 각각 4~5개씩 배치했다(<자료2> 참조). 이를 통해 보수단체의 성명·논평에서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종대 이사가 핵심 키워드와 세부 키워드를 붙여 구성한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주요 맥락은 다음과 같다.

국정원무력화하고 난도질하는 검찰수사를 진행하게 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종북세력의 숙주결합하고 있어 색출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헌법’ ‘가치반역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나아가 공산화되고 침몰하게 되기 때문에, ‘핵개발하는 북한’ ‘김정은추종하는 통합진보당’ ‘일당등의 비호 세력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돼야 한다는 식이다.

 

이종대 이사는 핵심 키워드들과 세부 키워드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담론을 형성하는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피아에 대한 명확한 구분에서 논리가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단순화하면 종북’()-‘대한민국’()의 대립 구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적과 나, 부정적 대상과 긍정적 대상을 분명히 가르는 것이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논리적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심화 의미망 통한 심층 분석

 

모든 것의 중심에 종북이 있다

이번에는 심화 의미망이다. 키워드 수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좀 더 입체적으로 의미연결망을 구성해봤다. 앞서의 작업이 핵심 키워드를 추출해 이것이 어떤 맥락으로 보수단체의 담론을 형성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면, 심화 의미망을 통해서는 이를 떠받치는 논리 및 의식의 흐름이 좀 더 정교하게 드러난다(<자료3> 참조).

키워드들이 서로 연결되며 형성한 의미망이 자못 흥미롭다. 5개 핵심 키워드는 가로와 세로 두 개의 축을 구성하며 모양을 갖췄다. 세로축에는 보수단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대한민국국정원, 가로축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북한통합진보당이 각각 놓였다. 그리고 두 축을 가운데서 연결하는 의미망의 허브는, 다름 아닌 종북이다. 빈도만으로는 4번째에 불과했던 종북이 심화 의미망을 구성해보니 가장 중심이 되는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다.

 

앞서 이종대 이사는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핵심 맥락을 종북’()-‘대한민국’()의 대립 구도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다 언급 키워드인 대한민국과 의미망에서의 중심 키워드인 종북, 담론은 대한민국()이 아닌 종북발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종북을 제외한 4개의 핵심 키워드는 국가·정당·국가기관 등 실재하는 대상이다. ‘종북은 다르다. 뜻만 풀면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담론 영역에서는 그렇게 지목된 상대를 배제하고 밀어내는 부정적 평가가 더해진, 감정적이며 가치 중심적인 단어다. 이렇듯 감정적 키워드인 종북은 보수단체 전체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고 다른 핵심 키워드들과의 의미망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보수단체들은 종북이라는 증오·배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정원을 옹호하고, ‘북한통합진보당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셈이다.

 

부정적 핵심 키워드들이 이어진 세로축이 비대칭을 이룬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통합진보당과 관련되는 세부 키워드들은 여타의 키워드들과 거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오로지 북한과 연결되며 의미망 오른쪽으로 삐져나와 있다. ‘통합진보당대한민국혹은 종북과의 관련성 등은 성명·논평에서 담론으로 거의 구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종대 이사는 “‘종북이라는 키워드를 기점으로 모든 담론이 북한으로 수렴하고, ‘통진당에 대한 공격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과 맞서는 종북에 대한 증오의 에너지를 토대로, 보수단체의 공격은 북한을 매개해 통합진보당을 향해 집중된다.

 

애국 시민’, 그들의 그을린 사랑

그들은 스스로를 애국 진영’ ‘애국 시민이라 칭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리는 이들을 용납할 수 없다. 국가의 안보를 해치는 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가슴속 한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적의 이름은 종북이다. 그렇게 사랑은 증오로 번역되고, 특정 세력을 향한 극단적 배척을 추동하는 엔진으로 작동한다. 분노의 불길로 일그러진 그을린 사랑을, 과연 우리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종북 사냥배후에 공안 대부김기춘 있다?

보수단체들 마구잡이식 고발정부의 공안몰이 별동대 역할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2014430.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전주영씨는 인터넷 카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약칭 엄마다’)를 개설했다. 엄마로서 어린 학생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음에 내몰린 현실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뜻을 같이한 엄마들과 함께 서울 강남역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를 가졌다. 20개월 된 아이를 맡겨둘 곳이 없어 데리고 나갔다. 다른 회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2열로 줄지어 걸으며 침묵시위를 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고, 아기 띠를 매고 온 엄마도 있고, 혼자 나온 엄마도 있었다. 원활한 이동을 위해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대열 맨 앞에 섰다.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유모차 부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1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서울 서초역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갖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며칠 뒤인 514일 전씨는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들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들 단체는 그에게 아동학대죄라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웠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시위 현장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것이다. 그해 10월 전씨는 둘째를 임신한 몸을 이끌고 검찰에 출석했다.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당당히 조사를 받았다.

 

해가 바뀐 지난 122일 기자와 만난 전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이용하지 말라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너희는 이제 나오지 말라는 협박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보수단체의 협박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평범한 엄마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언론이 주목하고 정치권이 관심 갖는 게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검찰 수사 결과가 혐의 없음으로 나오면 자신을 고발한 보수단체들을 무고죄로 고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들 멋대로 고발장을 남발하는 보수단체들이 앞으로 마구잡이식 고발을 못하도록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보수단체 고발·경 수사수순

서울시청 광장을 군복 물결로 도배하던 아스팔트 보수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로 몰려들고 있다. 손에는 태극기 대신 고발장을 움켜쥐었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행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수단체들은 전씨가 정말 아동학대를 했다고 믿고 고발한 것일까. 이보다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박근혜정부에 묻는 엄마들이 못마땅해서가 아닐까.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엄마들의 시위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전씨를 고발한 자유청년연합의 장기정 대표는 이 고발 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로서 고발은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만, 그 이후는 검찰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아동학대를 저지른 범죄자 엄마를 법의 준엄한 심판대에 올리려 했다면 검찰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근래 들어 보수단체들의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옥외 집회 중심에서 법적 대응 쪽으로 보수단체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지만,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 고발 혐의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여기에다 유력 정치인부터 일반 시민까지 그 대상도 넓어졌다. 주목되는 부분은 서로 다른 고발이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에서 이슈로 다루면 보수단체에서 고발을 하고 사정 당국에서 수사에 들어간다.’ 물론 과거에도 보수단체가 고발해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하는 행태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2014430일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유모차를 끌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안전한 사회를 촉구하는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안통 김기춘 비서실장 있어 통진당 해산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갈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공안 정국이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보수단체들의 고발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권은 해를 거듭할수록 공안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력의 핵심 요소를 공안이 다 장악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검찰의 경우 업무 전반이 공안 중심으로 흘러간 지 오래다. MB(이명박) 정부에서 검사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현 정권은 유난히 공안을 좋아하는 정권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공안을 강조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공안 이슈는 보수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정권 입장에서는 당장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 ‘공안몰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가 이를 잘 말해준다. 벌써부터 우익 성향이 강한 보수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해산을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취재 중 만난 다수의 보수단체 유력 인사들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꼽고 있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공안검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는 순간 희망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56쪽 인터뷰 기사 참조).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도 기자에게 공안통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으니까 통진당이 해산되고 전교조 문제까지 처리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공안 정국은 이른바 종북몰이를 통해 극대화됐다. 일부 보수단체가 종북 사냥꾼을 자처하며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달리기식 고발이 펼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발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안 돼 수사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수단체에서 정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단체들이 공안 당국과 사전에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온 한 변호사는 보수단체들의 고발이 종북몰이와 맞물리면서 심해졌다사전 조율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짝짜꿍이 잘 맞는 것은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안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보수단체 대표는 검찰이나 경찰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그걸 조율한다는 게 말이 되나. 사전에 조율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뒤가 구려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했다. 20년 가까이 보수단체에서 활동한 한 유력 인사는 예전에 우리가 집회를 하면 24시간도 안 돼 경찰에서 소환 통보가 왔다. 그런데 우리가 고발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소환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소 함부로 못하게 무고죄 폭넓게 적용해야

이미 이름이 알려진 보수단체들보다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이 고발을 주도해나가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다수의 보수단체가 고발한 사건을 맡은 한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고발 단체 대표들에게 회원이 몇 명인지를 묻자 ‘10여 명 된다’ ‘8명 정도다같은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이들 단체가 제출한 고발장도 거의 똑같다. 제목만 살짝 바꿨다. 누군가 이들 단체를 도와주거나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근래 몇 년 사이 활동 경험이 많은 유력 보수단체 밑에서 별동대 역할을 하는 청년단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단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탈북자단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청년단체를 결성해 활동 중인 유명 보수단체 측은 아스팔트(집회·시위)는 우리가 뛰고 젊은 친구들은 계몽 활동이나 법정 싸움을 맡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고발을 남발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정 보수단체의 경우 고발을 정치권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손을 쓰지 못하던 영역을 파고드는 보수단체들도 있다. 블루유니온은 미국 내 한인 여성 커뮤니티인 미시USA’를 국보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미시USA’는 세월호 참사 후 뉴욕타임스에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됐다. 권유미 블루유니온 대표는 미국에서 반한 시위를 하는 이적단체 구성원 30명을 선별해 법무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보수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권 대표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상태다.

 

대다수 시민단체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정부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를 대신해 무리하게 고발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활동해온 한 보수단체 간부는 모금 계좌야 있지만 성금이 잘 들어오는 곳은 별로 없다. MB 때는 정부 지원을 많이들 받았다. 사업 공모로 지원받아 이행을 안 해도 그냥 쌈짓돈으로 쓰고 그랬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들어서 많이 끊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보수단체들의 종북 사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스팔트 보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행동본부는 올해 목표로 종북 잔당 소탕’ ‘종북 쓰레기 청소등을 내놓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종북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단체가 누구를 고발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지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소를 함부로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과잉 상태다. 무분별한 고소를 방지하기 위해 무고죄를 더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고 검찰도 고소 각하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도 표방하는 사람은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들

통합진보당 해산 주도한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

201412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정당 해산 사태는 106개월 전 한 보수단체가 법무부에 제출한 청원서로부터 출발했다. 1995년 대령연합회를 결성하고 2002년 국민행동본부를 출범시킨 서정갑 본부장. 보수 진영의 집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아스팔트 우파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623일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법무부에 청원했다.

 

정권이 교체된 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두 차례 더 청원서를 제출했고,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201348일 또다시 법무부에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청원했다. 네 번째 만에 그의 바람이 이뤄졌다. 박근혜정부의 법무부가 그해 115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정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판결이 내려졌다. 해가 바뀐 2015122일 서울 강남 국민행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서 본부장은 공안검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발탁되는 순간 희망이 있다고 봤다그 희망이 적중한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최준필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청원서를 받아들이는 정부 입장이 달랐는데.

노무현 정부 때는 하루아침에 기각됐다. 다음 날 기각 통보가 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두 차례 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와 네 번째 제출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이 감동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왜 답변이 없었다고 보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대를 참 많이 했다. 그런데 이분이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갈팡질팡했다. 중도 노선을 표방했는데 눈치를 본 거다. 박근혜정부에서는 공안검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는 순간 우리는 희망이 있다고 봤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우 공안검사의 대부가 아니냐. 그래서 희망을 가졌는데 그 희망이 적중했다.”

 

정당 해산은 너무한 것 아니냐, 국민이 판단할 부분 아니냐, 이런 비판들이 있는데.

민주국가니까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우리는 휴전선을 두고 (남북한) 양쪽 군대가 첨예하게 맞서 있다. 우리 국군 장병들이 엄동설한에 전선을 지키고 있고 지금도 전사자들이 나온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을 전복하겠다는 것 아니냐. 국가 주요 시설을 파괴한다는 계획까지 다 나왔는데, 그런 정당을 해산하는 것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뒤를 한번 조사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결을 냈는데도 여기에 대해서 뒷말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자들 아니냐.”

올해는 종북 쓰레기 청소의 해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당원들까지 고발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정당에 일단 한번 속했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번 다 조사를 해야 한다. 조사해서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계획까지 있는 정당인 줄은 몰랐다, 이런 사람들은 법적으로 구제해야 한다. 무조건 일괄적으로 형무소 보내라는 게 아니고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조사를 해야 한다. 아직도 조사를 안 하고 있다면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근래 들어 검찰이나 경찰이 보수단체에서 고발을 하면 수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권력이 죽은 것 아니냐 이 말이다. 신은미나 황선 같은 경우 종북 토크쇼를 그렇게 전국을 돌며 하는데도 고등학생이 그걸 저지하기 전까지는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 안 한 것 아니냐. 검찰이나 경찰 내부에도 종북이 있다고 봐야 된다. 정부 각 부서에 있는 종북 세력 대못들을 뽑아내지 않으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못한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통진당을 해산시킨 의지로 종북 세력의 잔당들을 전부 뿌리 뽑아내야 한다. 종북의 잔재가 있는 한 사회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너무 공안 정국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상당한 착각이고 너무나 우매하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인 나라다.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세력이 국회까지 들어간 상황이다. 이번에 헌법재판소 판결문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판결문을 읽어보고 그런 얘기를 하라는 거다. 공안 정국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간첩이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니면 그게 공안 정국이 아닌 건가.”

 

검찰과 경찰이 지금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건가.

못하고 있다. 판결이 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나. 통진당 RO(지하혁명조직)에 가담한 인원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는데. 그거 지금 조사하는지 안 하는지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수사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손도 안 대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건가.

판결이 났으면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전부 잡아들여야 된다. 조사해서 풀어줄 사람 빨리 풀어주고. 조사가 안 끝나니까 정말 순수하게 당원으로 가입했다가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되는 거다. 빨리 조사해서 풀어줄 것은 풀어줘야 되는 것 아니냐. 안 해주니까 이 사람들이 오히려 죄인 그룹에 끼어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 국민행동본부의 목표로 종북 잔당 소탕’ ‘종북 쓰레기 청소등을 밝혔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조선일보에 고려대 총학회장 운동권 출신이 자기 고백을 한 기사가 실렸다. 통진당은 해산됐지만 잔당들이 엄청난 숫자로 사회 각계각층에 뿌리내려 있다. 이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사회 혼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중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기사를 보고도 통진당이 해산됐다고 그만하고 열중쉬어 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통진당 해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국민행동본부가 올 한 해를 종북 쓰레기 청소의 해로 규정한 거다. 그 일환의 하나로 검찰이나 경찰에서 빨리 잔당들을 소탕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인터뷰 도중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 소식이 전해졌다. 대법원은 내란선동은 유죄, 내란음모는 무죄라는 항소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RO의 실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서 본부장은 대법원 판결에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중도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

남북이 교전 상태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중립을 지키겠다, 그건 매국노하고 똑같은 것 아니냐. 이완용보다 더 나쁜 놈이다. 아예 김정은의 공산주의를 지지한다고 하든가,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남든가 해야지. 여기에 무슨 중도가 있을 수 있나. 그래서 중도를 표방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다.”

 

 

종북몰이는 세계의 비웃음 살 바보 같은 짓

이념 갈등으로 얼룩진 민족사 그려온 조정래 작가

<태백산맥> 출간은 한국 현대사의 심장을 관통한 문학적·사회적 사건이었다. 한국전쟁 전후의 비극적 시공간을 향해, 분단 조국의 치명적 금기를 향해 조정래 작가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당대의 자유·반공주의자는 물론 좌익공산·사회주의자들의 사상과 행적까지 소설을 통해 생동감 있게 되살아났다. 제약 없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그려낸 <태백산맥>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수백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조정래 작가 역시 공안몰이의 희생자였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미화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여 년간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지난 121<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 벌교읍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이날 조 작가는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한 애독자들에게 감사패를 전하는 행사에 참석한 후 인근의 태백산맥기념비를 돌아봤다. 그와 동행하며 공안 정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이념 갈등이 거세지고 있는 현 시국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시사저널 최준필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 한반도가 어떻게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까지 좀처럼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 관계를 보면 어떤 느낌인가.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심히 넘기면 안 된다. 계속 화합하고 협력하며 전진해야 하는데,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가 정체하거나 퇴보하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남북 갈등 국면이 지속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충분히 화해하고 화합할 수 있다. 서로 한 발짝씩만 물러서면 될 일이다. 남북한 갈등이 커지는 것은 양측이 모두 책임져야 할 문제다.

 

최근에는 종북이라는 키워드를 둘러싸고 남남 갈등이 심각하다. 공안 정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창피스러운 일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도 그렇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극한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비문화적이며 반민족적인 행위다. 세계 시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만한 바보 같은 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 역시 발표 당시부터 20년 이상 이적 표현물 논란에 시달렸다.

-대한민국은 반공국가로 탄생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갖고 있다. 그런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게 용납이 안 된 것이다. 나는 그들을 악마나 짐승처럼 그려선 안 된다고, 그건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적 입장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계속 자기들만이 옳고 내가 편파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백산맥>의 수많은 독자가 보기엔 그런 평가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좌익을 미화하고 우익을 폄하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았는데.

-1994년 보수 성향 단체들이 작성한 고소장이 책 한 권 분량이다. 500개 항목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빨갱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를 반박하는 객관적 자료를 일일이 준비해 제출해야 했다. 이후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작가가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달픈 것인지를 입증한 꼴이다.

 

극우 성향 인물들로부터 받은 전화·편지 등의 협박이 신변에 위협을 느낄 수준이었다고 들었다.

-당시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유서를 두 통이나 썼겠나. 그러나 분단 상황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썼기에 감수해야 할 통과의례라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분단을 문학적으로 극복하는 일을 하면서 어쩌면 당연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고발한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지만, 그들의 입장만큼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것 또한 분단 상황이 만든 비극의 일부니까.

창작의 자유를 옥죄는 틀이 되지는 않았나.

-(창작에) 엄청난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 꺾이면 이미 작가가 아니다. 에밀 졸라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이를 극복하며 글을 써왔다. 그런 고난에 처한 작가라면 누구라도 견뎌 이겨내야 문학의 승리가 이뤄질 것이다.

 

최근 보수 성향의 고등학생이 황산 테러를 일으키는 등 극단적 폭력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회가 덜 성숙해서 발생한 일이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성을 지닌 사회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 공세의 일환으로 상대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고소·고발이 빈번한 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상황과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비판이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 흥행을 계기로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대한 정치적 해석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편의 영화에 정치적 이념을 갖다 붙이는 건 너무 촌스럽고 악의적이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감독 스스로도 안타까워하지 않나. 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난과 삶의 아픔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 않나. 그 진심을 봐야 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 예술가의 진심을 왜곡하고 자기 편의로 이용하고 있다. 순수를 모독하지 말라. 예술은 예술일 뿐이다.

 

산업화 시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대하소설 <한강>을 통해 당시를 조명한 바 있는데.

-한국의 산업화는 세계적인 기적이다. 불과 40여 년 사이에 10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됐다. 거기에 30년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까지 이뤘지 않나.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런 성과에 대한 자존감을 갖고 우리 현대사를 돌아볼 때 기적을 만든 게 과연 누구인가, 이게 <한강>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였다. 특정 정권이나 정치집단이 아니라 그 시절 함께 고통을 짊어진 국민이 바로 주인공이라는 얘길 한 것이다. 이름 없는 산업화의 주역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인공으로 내세워 쓴, 작가의 양심에 비춰볼 때 가장 객관적으로 쓰고자 했던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등 최근작에서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 및 나아갈 길을 집중 조명했다. 정부·여당이 수시로 강조하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정권이 경제를 끌고 갈 수 있었던 시기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 수준일 때 이미 끝났다. 산업화 초기에는 국가가 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의 양적 성장은 경제인들이 주도해야 할 몫이다. 정치는 정치 본연의 일을 해야 한다. 좋은 정치란 바로 민생을 잘 살피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현재 정부·당의 정책 방향이 잘못 가고 있다는 뜻인가.

-재벌을 지원해 경제를 살린다? 절대 (뜻대로) 안 된다. 부자 감세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부자 증세, 서민 감세로 민생부터 돌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양적 지표에 현혹돼선 안 된다. 원래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발전해나갈수록 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산업화 시기의 높은 경제성장률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결코 속지 말아야 한다.

 

항상 우리 현대사 혹은 당대의 현실 문제에 밀착된 작품을 써왔다. 구상 중인 차기작의 소재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교육을 다룬다. 오는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동안 집중해 두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다.

분단의 상흔으로 얼룩졌던 역사, 극한의 좌우 대립이 남긴 상처가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분단된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민족사 앞에서 죄인이다. 조국이 분단된 과정에는 남북 모두의 책임이 있었다. 다만 그 경중이 있을 뿐이다. 그 책임의식을 모두가 잊어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이를 잊어버리고, 분단과 갈등의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기만 한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부디 이성을 회복하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래야 양보하고 대화할 수 있다.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공안몰이의 표적 된 <태백산맥>

<태백산맥>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공안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도 함께 샀다. 여순사건 및 4·3사건, 빨치산들의 활동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미화했다는 이적성 논란에 시달렸다. 8·9·10권까지 출간이 마무리된 1987년 당시와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히던 1990년 당시 검찰 내부에서 사법 처리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4년 결국 일이 터졌다. 북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서울 불바다발언이 나오는 등 사회 전반에 안보 불안이 고조되던 시기다. 보수 성향의 8개 단체가 <태백산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이 조정래 작가와 책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 등을 기소한 것이다. 조 작가가 소환된 것은 물론 <태백산맥>을 쓰는 과정에서 만난 취재원까지 조사 대상이 됐다. 문단 및 사회 각계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이문열 작가는 “<태백산맥>은 한국전쟁에 대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금기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라며 발표한 지 8년이나 지난 작품에 갑자기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정래 작가는 매일 감시를 당하는 듯한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 집필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종지부가 찍혔다. 검찰이 대한민국의 존립 및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공격적 이적 표현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비상식의 사회]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은 안녕한가? 02.03주간경향 1112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온통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학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 경제 시스템, 국가 시스템 등등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고도의 IT 기술까지 합세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는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융합체가 되었다.

탑승을 마치고 계류장을 떠나 활주로로 무거운 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6분이 지났을까, 날개 부근인지 어딘지에서 끽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비행기가 멈췄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끽끽거리며 뭔가를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10여분. 그때서야 기내방송이 나왔다. 기계에 가벼운 문제가 생겼는데 고쳐서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란다. 그러면서 끽끽대기를 또 10여분, 비행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930분 인천을 출발해서 광저우로 가는 중국 ㅇㅇ항공,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인인데 의외로 조용했고 표정은 느긋했다. 중국인 특유의 여유로움인지 중국 항공기의 잦은 연발 등으로 인한 습성화인지,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의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기내 분위기를 염려했는지 음료수와 견과류(땅콩)가 제공되었다. 결국은 계류장으로 돌아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기내는 잠시 술렁거렸으나 이내 가라앉고, 나는 갑자기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른 고쳐서 떠난다던 비행기는 끽끽대는 외마디소리만 지를 뿐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승객들은 이러다가 어느 순간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 비행기는 이륙하겠습니다라는 기장의 방송과 함께 출발하기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 갇힌 우리가 방송을 기다리는 것 말고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부실국가 시스템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진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서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 올라가 농성 중인 C&M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 김기남 기자

 

시스템 고장으로 비행기 출발 지연

드디어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시스템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이 좀 더 걸리겠다는 말과 함께 먼저 점심 제공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불안해하던 승객들은 밥을 준다는 말에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하는 눈치였다. 아침부터 이 비행기라는 거대한 쇠통 속에 들어오기 위해 설치느라 촐촐한 참에 비행기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밥을 준다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감방보다 더 견고한 거대한 쇠통 속에 있었고, 그 쇠통은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더 복잡한 어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는 고장난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제공된 음료수와 땅콩도, 그리고 지금 주겠다는 점심도, 이륙과 상관없이 이 거대한 쇠통 속에서의 시간 경과에 따른 매뉴얼의 작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는 그냥 몸을 맡기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온통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학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 경제 시스템, 국가 시스템 등등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고도의 IT 기술까지 합세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는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융합체가 되었다. 그리고 앞다투어 그것을 강화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미래라고 믿고, 거기서 뒤처지면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것은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인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잘 만들고 운용할 지도자를 원한다. 시스템의 쇠통 속에 갇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권위가 넘치는 기장의 목소리를 기다리게 되고,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그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기내식까지 먹은 우리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승객 대부분은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하며 애써 느긋했고, 일부는 불안을 참느라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몇몇은 용감하게 안내원을 붙들고 짜증도 내고 호소도 해 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비행기 문을 열게 해서 억지로 나간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깥에는 이 비행기보다 더 크고 더 복잡한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스템에 우리가 새롭게 입력될 공간은 없었다. 우리가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표를 사는 데도 몇 달 전, 혹은 최소 며칠 전까지는 예약을 해야 했고, 지금 당장은 이 공항의 어느 비행기도 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카트만두까지 가는 우리 일행은 광저우 공항에서 갈아타도록 예약이 돼 있는데, 더 늦어져서 환승을 못하면 2주간의 네팔에서의 우리 계획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이미 약속돼 있는 모든 일정을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권위 있는 기장의 기내방송이 울려퍼졌다. 우리는 긴장하며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론 제발 좋은 소식이기만 기대했다.

 

넘쳐나는 부실국가 시스템의 피해자

승객 여러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이륙 직전 시스템상의 조그만 문제가 발생하여 즉각 시정조치를 하고 출발하려 했으나, 연속되는 시스템의 연관관계로 인해 전반적 재점검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확인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므로 부득이 승객들이 내리신 후 확인 점검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내려서 공항에서 대기해 주시면, 신속하게 시스템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승객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기장은 시스템이란 말을 몇 번이나 써 가며, 우리가 알 듯 말 듯한 내용을 유창해 보이는 영어로 말하는 바람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여성 안내원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통역방송을 하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모호하기만 했다. 다만 이 큰 비행기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하늘을 난다는 사실과, 이 시스템에 조그마한 문제만 생겨도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튼 우리는 무거운 보따리들을 들고 쫓겨나듯 비행기를 내려야 했다.

 

거대한 공항 로비는 황량했다. 최신식 건물에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배치된 공간들, 화려한 상점들, 어디론가 가리키고 있는 수많은 표지판들, 그 사이를 따라 흐르는 좀비 같은 군상들. 기장이 그렇게 강조하던 그 시스템이 거기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공항 콘크리트 바닥에 엉거주춤 앉아서 비행기가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스템 속에 있는가? 그 시스템은 얼마나 안전하고 튼튼한가? 그 시스템의 운용자는 믿을 만한가?

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은 어떤가? 이 엄청난 빈부 격차, 절반이 넘은 비정규직, 감면해 준 부자들의 세금 때문에 연말정산에서 서민들이 맞아야 하는 세금 폭탄, 생색내기 자원외교의 이름으로 낭비된 수십조원의 혈세, 엉터리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국토와 강에 흘려보내고 모래밭에 묻어버린 엄청난 돈, 빈곤에 쫓겨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한 세 모녀, ‘가만히 있어라해놓고 수장해 버린 세월호 304명의 꽃다운 생명, 철탑에 굴뚝에 선전탑에 오르고 또 오르는 쫓겨난 노동자들. 거리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부실국가 시스템의 피해자들이 넘치고 있다. 우리는 고장난 비행기에서 쫓겨나 공항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나라 잃은 유민들처럼 울고 있었다.<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

 

증오의 한국사회, 진단 2015

친일파 속성 그대로인 사이비엘리트집단 한겨레21 104314.12.29

헌법재판소 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역사학자 기고문2014년 봄 큰

충격 앞에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해가 저물 무렵 헌법재판소의 추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회복에 아무런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141219일 헌재 재판관 9명이 정당해 산심판을 선고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 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이 60대로 접어들며 조그만 두 가지를 달고 살게 됐다. 당뇨와 목 디스크다. 증세를 깨닫고 처음에는 어떻게 고치나?’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서 더불어 살 생각으로 돌아섰다. 그러는 동안 건강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란 것을 병 없는 상태로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생각으로는 너무 절대적인 관념이었던 것 같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완벽한 건강 상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현실 속의 어느 개체도 따져보면 무슨 문제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 아닌가. 각자가 자기 문제를 짊어지고도 자기 역할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상대적 기준으로 건강을 생각하게 됐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완벽한 건강 상태란

내 몸의 건강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사회의 건강에 대한 생각도 다시 짚어보게 됐다. 새삼스러운 생각도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사회의 질병을 걱정하고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기도 하다. 정말 큰 의사는 천하의 질병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한 옛날 어느 명의(名醫)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사실이 2014년을 지내는 동안 분명해졌다.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사회가 무너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넘쳐나고 있다. 걱정이 크고 깊은데도, 치유를 위한 노력은 혼란스럽다. 집권세력은 종북척결로 ‘100% 대한민국을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병을 도지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선무당 사람 잡는 짓을 말려야겠는데, 똑같이 목청만 높여서는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 목청 큰 놈 이기는 줄만 알고 더 목청을 높일 테니 사회가 더 어지러워지기만 하겠다. 치료에 나서기 전에 진단을 확실히 하고 자신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무당에게 홀려 있는 구경꾼을 돌려세울 수 있다.

 

의사의 진단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병력(病歷)이다. 나타난 증세만 살펴서는 관찰이나 판단이 어려운 문제를 병력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 사회의 질병은 개체의 질병보다 복합적인 현상이므로 그 진단에서 병력의 비중이 더욱 크다. 어느 사회에서나 역사의 탐구가 중요한 활동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 식민통치자들이 제국주의 사관을 강요하고 대한민국 독재정권이 현대사 연구와 교육을 가로막은 이유도 그렇다. 이 사회의 문제점과 과제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 식민통치와 독재정치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한국 사회는 의사 얼굴도 못 보는 환자 신세였다. 1987년의 민주화로 그 신세에서 겨우 벗어나게 되었고, 그 뒤 현대사 연구의 급속한 발전은 사회의 절실한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사회의 병력이 많이 밝혀지게 됐다. 병력을 모를 때는 가난하나만을 문제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빈곤 문제도 하나의 큰 병에서 파생된 여러 증세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제적 부() 외의 다른 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단의 혼란을 아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집권세력의 선무당질을 도와주는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경제적 부에만 가치를 두고 자본주의 문명만을 유일한 문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독재정치는 물론 식민통치까지도 근대화의 기준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이다. 뉴라이트 역사관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정책 노선을 뒷받침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너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당한 세력을 과시하는 것은 사람들의 믿음을 살 만한 확실한 진단이 따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진단과 처방이 보인다면 어설픈 푸닥거리에 사람들이 꼬일 리가 없다.

 

개항기 이래 고장 상태의 면역체계

나는 조선 망국 100주년을 맞으며 망국의 의미가 아직도 이 사회에서 충분히 새겨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를 썼다. 그 뒤에는 1945년의 해방을 맞고도 민족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해방일기>를 썼다. 그리고 금년에는 냉전 종식 뒤에도 민족 문제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반성하며 <냉전 이후>를 썼다. 그 일련의 작업을 통해 얻은 판단은 우리 민족사회가 개항기에 걸린 큰 병에서 지금까지도 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5년간의 작업을 통해 내가 진단한 질병에 이름을 붙이라면 근대병’(近代病)이라 하겠다. 1860~70년대 개항기에 서양 근대 문명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처음에는 감기 증상처럼 시작했다. 그러다가 1880~90년대에 걸쳐 밖에서는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가 무너지고 안에서는 전통 질서가 해체되면서 열병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20세기 내내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이며 이 사회를 휘어잡고 있었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병의 기본 증세는 면역력 결핍이다.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외부의 물질을 흡수한다. 흡수하는 물질 중에는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도 있다. 그 위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내는 능력이 면역력이다. 한 사회가 외부의 영향을 받을 때 그 내재적 기본 질서를 지켜 구성원들이 큰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능력을 면역력에 비유할 수 있다.

 

면역력 중에는 모든 생명체가 타고나는 자연면역력(innate immunity)도 있지만 복잡한 환경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을 통해 획득하는 적응면역력(adaptive immunity)이다. 1천 년간 한민족은 주로 중국 문명과의 접촉을 통해 적응면역력을 키워왔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닥친 근대 문명의 충격은 종래의 경험 범위를 벗어나는 너무나 이질적이고도 강한 것이었다. 이 충격 앞에서 면역체계 자체가 큰 손상을 입었다.

 

면역력 부족으로 인한 가장 일반적인 증상은 가치관의 혼란이다. 가치체계는 사회질서의 뼈대다. 개항기 이후 이 가치체계가 해체되는 한편 근대 문명의 가치체계가 제대로 이식되지도 못했다. 근대적 가치관이 일부 들어왔지만 안정된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집권세력이 민주제도 교묘하게 이용

가치관의 혼란을 제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엘리트 계층의 향배다. 어느 사회에나 힘을 많이 가지는 엘리트 계층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계층은 사회질서의 방어에 앞장서는 것이 정상이다. 기존 질서의 수호가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통치 세력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기존 질서를 등지고 사익(私益)만을 추구하는 친일파를 육성했다. 남한에서는 해방과 건국을 거치면서도 친일파의 자세를 이어받은 집단이 사회의 주도권을 오늘날까지 지켜오고 있다. 이 집단은 지금도 외부 세력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평화를 등질 정도로 극심한 외세 의존성을 보이고 있다.

2014년이 많은 국민을 절망감에 빠트린 것은 면역력 결핍의 확인 때문이다. 4월에 겪은 참극 앞에서 뭔가 크게 잘못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각계각층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그런데 사회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인 국가는 연말을 앞둔 헌법재판소의 추태를 통해 이 사회의 회복을 위한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910년에 잃어버렸던 국가를 이 사회는 아직까지도 온전하게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엘리트집단(힘만 갖고 도덕성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은 사회 내에서의 상대적 우위에 도취해서 사회의 문제점과 과제를 외면한다. 친일파의 속성 그대로다. 1987년까지는 독재권력의 그늘에 숨어 있던 그들이 지난 30년 동안 국가기능을 장악하고 언론의 힘까지도 대부분을 수중에 넣으며 문민독재 체제를 구축해왔다. 식민통치 아래서는 민족독립에, 군사독재 아래서는 민주화에 희망을 걸어왔던 이 사회가 지금 상황에서는 어디 희망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민주화가 미흡한 데 문제가 있다며 더욱 철저한 민주화만을 다짐하기에는 집권세력의 민주제도 이용 방법이 너무나 교묘하다.

 

지금 이 사회의 문제의 뿌리가 150년 전 개항기부터 뻗어 내려온 것이라고 본다면 그동안 떠올려온 처방이 타당한 것이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 천황 아닌 한국인 대통령이 권력을 맡는 민족해방이 충분한 해결책이었는가? 11표의 다수결로 권력의 소재를 결정하는 민주화가 만족스러운 길이었는가?

 

민족독립도 민주화도 필요한 처방이기는 했지만 충분한 처방은 못 되었다. 당장의 증상을 다스리기 위한 대증(對症)요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근대병의 근본적 치료 없이는 목전의 증상이 가라앉아도 같은 병에서 파생되는 다른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면역력 회복을 통한 근본적 치료를 위해서는 가치관의 전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집권세력의 경제지상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나 인권처럼 그럴싸하게 보이는 가치들 중에도 지나친 절대화로 인해 가치체계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다.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근대적 가치에는 모두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나는 본다.

 

인간사회 조직 원리를 전면 재편할 과제가

이런 반성의 기준으로 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우선 생각한다. 자연의 속박을 부정하는 것이 근대 문명의 한 가지 특징이다. 그래서 천부인권을 말할 때 만물의 영장, 자연의 지배자로서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오만은 인류 발생 이래 특이한 현상이었다.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숱한 선현들의 노력으로도 어쩌지 못했던 문제를 이제 와서 우리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벅찬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근대병을 우리만 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증세에는 차이가 있어도 모든 인류사회가 이 병을 앓아왔다.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이제 충분히 확산돼 여러 사회의 노력이 합쳐질 수 있는 단계를 바라보게 되었다.인류 차원에서 근대병의 대표적 증세는 자연과의 조화를 거부하는 오만이었다. 그런 오만한 이념을 가진 사회는 길게 못 가고 망해버리게 마련이다. 근대 문명이 300년이나 지속된 것은 획기적인 기술 발전 덕분이었다. 이제 그 약효가 다 떨어져 환경과 자원 문제가 코앞에 닥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연의 속박을 부정하던 근대적 상황 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인간사회의 조직 원리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과제가 인류 앞에 닥쳐 있다. 우리 사회의 고유한 증세들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인류사회의 자기치유 노력에 동참하는 자세를 갖춤으로써 이 사회가 고통과 치욕의 역사를 벗어나기 바란다. 김기협 역사학자

 

증오의 한국사회, 진단 2015

문화·정신적 수준이 저질스러워졌다한겨레21 10462015.01.22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정당체계강의이념이라는 단어에 신물을 내는 정치인들, 헌재 정당해산 결정문은 정당해산 자체는 차치하고 정신적·심리적 자유를 억제하는 게 문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어떤 민주주의인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등을 집필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이며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최 교수는 최근 정치발전소에서 주최하는 정치 철학이 있는 민주주의 강의 시즌2’를 시작했다. <한겨레21>은 모두 4번으로 나눠 진행되는 강의 가운데 112일 열린 첫 강의 정당체계: 극단적 양당제 vs 온건 다당제 내지 다원적 정당체계를 듣고 최 교수의 양해를 얻어 이를 요약해 싣는다. 2015년 한국 사회 진단 네 번째 순서다. 최 교수는 이 강의에서 한국의 정당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의 한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한국의 정당체계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당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는 최 교수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었으나 긴 강의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다소 수정된 부분이 있음을 알린다. _편집자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모습. 최 교수는 독일의 정당체계와 같이 사회의 다원적 요구를 고루 반영할 수 있는 정당체계를 한국 사회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일 기자

 

오늘 강의 주제는 정당이다. 이 강의의 주제는 독일 정당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정당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정당정치가 지속적으로 퇴행해왔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야권의 정당 제도화의 실패가 중심 원인이었고, 야권의 정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전체 정당체계가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의 다 열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

독일의 민주주의 역사에는 정당체계 변화의 중요한 지점이 있는데 민주주의가 첫 번째 사이클에서 두 번째 사이클로 단절적인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이클은 바이마르공화국 때다. 이때는 완벽하게 개방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 아래서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든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이런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극우정당이나 공산당, 나치당 등이 득세하게 돼 결국 체제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후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하면서 과거 민주주의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되풀이하면 안 되겠다는 공통의 합의가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독일은 옛 바이마르 정당들을 재건하는 대신 새로운 정당을 창건했고, 결국 온건 다당제라는 새로운 정당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독일은 바이마르공화국에 비견될 만큼 완전히 개방된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중심 정당이 안정적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도 공산당과 네오나치당 등 급진적 정당들이 존재하나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다 열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첫 번째 사이클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이란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어떤 돌파구나 단절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연속적인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도 첫 사이클의 패턴(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정당체계)을 되풀이하고 있다. 계속 이렇게만 할 수는 없다. 통일에서부터 경제, 정당체계, 경쟁패턴, 이데올로기 양극화까지 계속 되풀이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것을 통해 좋은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나의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체계는 냉전과 권위주의의 경험으로 인해 이데올로기적 폭이 좁다. 특히 중간부터 왼쪽에는 정당이 없고 오른쪽에만 있는 체계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은 지금도 (이데올로기적 폭이) 좁은데 그것을 또다시 인위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아주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결정이었다. 이데올로기를 통제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주 크다고밖에는 얘기할 수 없다.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더 구체적인 견해는 포털 네이버 열린연단에 기고한 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민주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대변할 정당 없는 사회적 약자들

한국은 1990년대 말에 신자유주의적 경제 원리와 가치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정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보통은 이 정도로 큰 외부적 충격이 오면 정당체계가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독일 정당체계의 경우 어떤 사회적 충격이 왔을 때 유연한 변화가 일어나고 그다음에 또 안정되는, 충격과 변화가 유연하게 돌아가면서 정당체계가 전체적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적 폭은 최대치로 넓어지고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다양한 정당에 의해) 다 표출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정당을 통해 자기 이익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다. 왼쪽의 요구들이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는 잠재적 정당에 대한 요구가 크다. 이것이 제3당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때로는 안철수 현상처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에 의한 인풋 기능(계층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기능)이 약화되면서 대표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실패하게 된다. 결국 한국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일반투표제적 민주주의. 일반투표제적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라는 최고 행정수반을 한번 뽑고 나면, 이후에는 정당을 매개하지 않고 건너뛰어서 권위를 직접적으로 대표(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책임성이 아주 애매해진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된 뒤 대통령은 비판에 직면했을 때 국민이 나를 뽑았는데 무슨 소리냐. 나는 전체 이익을 대표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정치적 책임에 대한 관념이나 실제 책임을 지는 정도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당이 매개가 되어야 책임도 물을 수 있고 인풋도 확대될 수 있다.

 

한국 정당은 스스로 사회적 기반을 확대·강화시켜야 하지만 이보다는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까에만 관심이 있다. 정당이 하늘만 보고 땅을 보지 않는 것이다. 정당이 공중에 매달린 형국이다. 이 때문에 밑에서부터 정치적 기반이 조직적으로 모아져 선거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집권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정당이 전부 대선에만 신경 쓰는 등 전도된 정당체계를 갖게 되면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새누리당과 개혁적이라고 일컫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념적으로는 모두 보수의 스펙트럼 안에 몰려 있어서 이념적 거리는 매우 좁다. 두 당의 차이는 사람들의 기분 차이, 두 당이 내거는 지지 기반이나 레토릭의 차이일 뿐 정책 내용으로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이념의 거리는 굉장히 좁은 반면,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치면 세계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적대적이다. MB, 반박근혜 등 원한에 가득 차서 서로를 저주하는 이념적인 온갖 레토릭이 여기에 다 들어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모순된 현상이 공존하는 상태가 한국 정당체계의 특징적 현상이다.

 

온건 다당제의 유연성과 장점

또한 한국 정당은 대중정당을 표방할 뿐 이념·가치·비전 등으로 차이를 갖는 정당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진보적 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우리는 이념이라는 글자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이념이 무엇인가. 이념은 여러 정책 분야, 기능적 분야에서 일관적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념이라고 해서 공산주의를 하자는 건 아닌데 이념이라고만 하면 정당에서는 그건 아니올시다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 방향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하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것부터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을 문제 삼는 것도 이런 (이데올로기적 폐쇄성) 부분이다. 결정문을 읽어보면 통합진보당 부근에 간 모든 정당이 불그스름하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가이런 느낌을 갖게 한다. 정신적·이데올로기적·심리적·지적·문화적 자유를 억제하는 게 이번 재판의 가장 큰 문제다.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정신적 수준을 너무 저질스럽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 발전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제도적으로는 양당제보다는 온건 다당제가 좋다. 이 점은 독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대립적 이념을 둘러싼 갈등은 양극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두 당이 타협과 컨센서스를 형성하기 어렵다. 온건 다당제가 되면 큰 두 정당 사이에 작은 정당이 들어가서 한쪽 편을 들어주면서 두 당의 장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추축 정당(중심축이 되는 정당·피벗 정당)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요즘 유럽의 공통적 특징은 단일 이슈 중심의 틈새 정당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틈새 정당에도 장단점이 있지만 이들은 큰 정당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이슈를 커버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온건 다당제가 상당히 큰 유연성과 장점을 갖는다. 한국의 경우 보수는 충분히 대표되고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좌편에 위치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좌편에 속하는 정당이 유념해야 할 점은 최소주의적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자유주의에서 사민주의 사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좌편이 대개 레토릭이나 언어 담론에서 최대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당장 혁명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작동 가치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통 진보파들은 이성적으로 디자인된 걸 추구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안 되면 혁명적 방법으로라도 추진하면 사회가 바뀔 것 같다고 보는 성향이 많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적 사고와는 잘 매치되지 않는다. 다원적 이익집단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인정하고 그것을 잘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 합리적 목표와 수단을 동원하는 리더십의 기능, 그리고 당내에 존재하는 다원적 이익을 존중해서 잘 아우르는 능력, 이 둘이 합쳐져 변증법적으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정치 발전에서 정치인,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독일의 정치와 정당정치를 보며 실감한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는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제도를 통해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겸비한 지도자를 이야기했다. 신념윤리 없이도 책임윤리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신념윤리 없이 책임윤리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념이나 가치 없이 정치공학만 머릿속에 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주화 이후 진보파가 많이 양산됐는데 이 진보파들 사이에서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임윤리를 가졌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 조직을 잘 만들어서 좋은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닐 덕목으로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자신의 이념을 한번 가지면 변하지 말고 세상이 뭐라든 그걸 해야 한다.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다보면 사이클이 맞을 때가 반드시 온다. 이런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추구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증오의 한국사회, 진단 2015

1야당, 고쳐야 할 병든 소’” 한겨레21 10472015.01.28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박재동 화백 인터뷰불필요한 증오가 많은 우리 사회, 지난하고 깊은 토론 문화가 필요해

더 나은 삶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자고 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말이다.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박재동(62) 화백에겐 나이보다 많은 꿈이 있다. “선생님 그림에는 인간도 삶도 역사도 없어요!”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고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제자가 던진 한마디에 예술관이 바뀌었다. 초현실적 세계를 응시하던 눈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8년간 죽도록만평을 그렸다.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뤘다고 생각한 1996년 신문사를 떠나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로 들어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장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교수님보단 선배으로 불리는 게 좋다. “누구를 가르치는 건, 영원한 제자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원해서다. 제자들을 질투하며 살고 싶다. 존경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고 싶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아픈 현장과 호흡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는 박 화백의 모습이 생경하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 1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박 화백을 만났다.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다섯 번째 인터뷰다.

 

민주화로 가는 큰길에서 잠시 뒤로

단원고 학생들 얼굴은 개인의 사연을 미리 알고 그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먼저 그리기 때문에 아이들 사연은 몰라. 사진이 많은 이야기를 해줘. (기자 얼굴을 응시하며) 얼굴에서 느낌이 오잖아. 이건 생매장이다. 너무 원통해서 그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살려보고 싶었어. 국민과 아이들을 한번 만나게 해보자. 그러는 동안에는 다시 사는 거야. 내가 캐리커처를 많이 그리니까 아이들을 그려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어. 그릴 때마다 원통해. ‘아이고 이놈이 죽으면 안 됐는데.’ 처음엔 얼굴을 보는 것만 해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친해졌어. 이제 죽은 거 같지 않아. 그게 새로운 삶일지도 몰라. 모르는 애였다가 이제 아는 애가 된 거니까. 시위 현장에 가면 그 전에는 유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는 애 엄마가 됐어. 만화가들이 함께 일반인 희생자들을 그리는 작업을 하려고 해.

 

2014년은 선배에게 어떤 해였나요.

-힘든 해였다.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쌍용차 노동자 대법원 선고도 있었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경제가 힘들고 하니까 국민이 인간적인 삶, 의로운 사회보다는 경제를 택한 거야. 이명박·박근혜 집권 10년은 수험료를 내는 기간이라 생각해. 이러한 정권이 10년 이상 가기 힘들 것 같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정희의 여운으로 된 거거든. 김기춘처럼 유신시대 사람들이 집권하고 있어.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그 사람들이 정권을 유지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를 굳히려고 하는 만큼 사람들 마음속엔 불만이 싹틀 수밖에 없어. 요즘 사람들은 학력이 높고, 자존심이 옛날과 달라. 옛날엔 고무신 하나, 막걸리 한 병에 표를 찍었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몰랐지. 그럴 땐 독재가 가능했지. ‘땅콩 회항사건을 보면, 부사장은 덮어놓고 잘못했습니다하는 직원을 바란 거야. 요새 애들은 안 그래. 아주 섬세한 곳에서 자기가 누릴 권리를 체득하고 있어. 그래서 전체적으로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어. 민주화로 가는 큰길에서 잠시 뒤로 간 거야. 계속 거꾸로 갈 수는 없어.

 

현실정치에서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제구실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병든 소라고 봐. 폐기해야 될 소는 아니고, 병든 소이기 때문에 고쳐야 해. 제대로 개혁해야 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지들끼리 공천을 하다, 지지 않아도 되는 선거에 참패를 했어. 공천 과정에서 이 사람 후보로 내서는 안 된다는 바깥의 상식적인 목소리를 들어야 당이 사는 거야. 새누리당 정책과 대체로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야당이 남북관계·교육·노동·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사람들 가슴에 와닿는 비전을 3년 동안 진심을 가지고 꾸준히 만들어야 해. 대선 목전에 부랴부랴 꾸리지 말라 이거야. 정말 열심히 현실을 공부해야 한다. 겉으로 하는 척만 해선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 신당 창당 추진은 그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어. 분열 걱정도 되지만, 1야당을 개혁시키는 자극제가 될 수 있고.

 

민주화-산업화 세력 간 증오 푸는 게 숙제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에 대한 합의 실패를 이유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폐기해버렸습니다. 선거 당시 멘토를 해주셨던 박원순 시장, 1야당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민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박원순 시장은 아껴야 하는 인재라고 생각해. 만약 성소수자 인권을 뭉갠다면 정중하고 준엄하게 이야기를 해줘야 돼. 전체적으로 시정을 잘한다고 보는데, 좋은 아이디어라도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빠뜨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 사회엔 감정적 대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문재인 후보 멘토였지만 경선 과정엔 관여하지 않았어. 같은 민주화 세력이라도 어떤 캠프에 몸을 담그는 순간 다른 쪽으로부터 적이 돼. 감정적으로 미워하게 된다고. 우리 사회에는 불필요한 증오가 너무 많아. 감정이 너무 상했어. 그리고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간 극단적인 증오를 푸는 게 숙제야. 서로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데, 저쪽엔 이란 게 있을 수 없다는 식이야. 전쟁처럼 상대를 더 미워할수록 정당성을 얻고 있어. 그게 가슴이 아파. 과거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너무 탄압했어. 박정희가 대통령을 두 번 할 때까지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어. 그러다 유신으로 명실공히 독재자가 된 거지. 이걸 비판하고 공격하지 않을 수 없잖아. 박근혜가 당선 전에 아버지 시대에 고초를 겪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해 어느 정도 기대를 했어. 그러나 당선 뒤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박살내고. 먼저 손을 내미는 건 힘이 있는 쪽에서 해야 하거든. 언젠가는 되겠지. 남북관계도 풀어야 하고. 우리같이 나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겠지.

 

정치적 입장이 확연히 다르지만 교류하는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그게 쉽지 않아. 내 안에도 불필요한 증오가 있는 거야. 이런 걸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내 무기는 그림이라 아주 유리해. 그림을 그려주다보면 내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지. 미워하게 된 뿌리를 짚어봐야 해. <조선일보><동아일보>가 독재정권에 반대하니, 박정희가 그런 기사를 쓰는 언론인을 탄압했어. 기업을 협박해서 광고를 못 주게 하고. 탄압이 더 세니까 결국 언론사 내부에서도 갈리는 거지. 독재정권과 맞선 사람은 회사에서 나오게 되고. 남은 사람은 어떻겠어? 자괴감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다보면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극렬 좌익세력으로 몰아버리고 싶은 생각도 생기지 않겠어? 사실 둘 다 독재정권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봐야 해.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나? 작은 일에 용감하고 큰일에 비겁한 게 사람이고 우리야. 그걸 용기 없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몰면 안 돼.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용기 있고 훌륭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보통 사람이라고 봐야 해.

 

증오를 푸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 사실을 있는 대로 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해. 박정희에게도 명암이 있는데, 두 가지 모두에 대해 토론해야지. 토론은 굉장히 힘든 거야, 진영 논리가 있어서. 한쪽에선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칭찬하면 안 돼. 한쪽에선 박정희의 장점을 말하면 안 돼. 박정희 기념관을 나에게 지으라고 한다면 한쪽엔 박정희 찬양 부스, 또 한쪽엔 박정희로부터 입은 피해를 마음껏 발언하는 장 두 개를 다 만들고 싶어. 국민은 그걸 보면서 판단하는 거지. 하나의 시대니까.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갑질

 

박 화백은 꿈이 많다. 그중 하나는 루저가 없는 세상이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즐거우면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용일 기자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무릎 꿇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해 논란이 됐습니다. 요즘 청년들을 못마땅해하는 윗세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애들한테 배워야지, 뭘 가르쳐. 어른들이 그렇게 키웠는데.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갑질이야. 어른들이 폐나 안 끼쳤으면 좋겠어. 애들은 애들대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왜 가만히 있나,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해. 의견 조율하는 것도 나을 거야. 우리 세대는 큰 목소리로 싸웠지. 요즘 애들은 논리적이고. 우리는 민주화든 산업화든 무엇인가를 이뤄야 하는 야성의 시대를 살았지. 앞에 벌판이 있었는데 요새는 꽉 찼어. 새로운 벌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급하면 다 하게 돼 있어. 도저히 못 살면 살길을 찾게 돼 있어. 다만 시대를 잘 보면서 꿈을 꿔야지. 젊은 사람뿐 아니라 우리도 아름다운 꿈을 꿔야지. 꿈꾸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그런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 더 좋고. 이효리 같은 애들 얼마나 멋져? 그렇게까지 못하더라도 사회가 한발 나아가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면 좋지. 선거 때 투표 잘하고.

 

투표하지 않는 것 역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시 우리보다 낫다니까. ‘어떻게 투표를 안 할 수 있어이런 당위성보다는 자기 생각이 서 있는 거지. 약간 얄밉기도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고 민주적인 아이를 기르는 게 정말 중요해. 시키는 대로 하다 못해서 제기랄이러면서 사는 게 아니라 작든 크든 내 할 일을 하고, 경쟁보다 협력하고. 자기 삶에서 주인이 되는 아이들은 영원히 민주주의를 지키게 돼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 중학생들이 졸업할 때 밀가루를 덮어쓰고 교복 찢고 그러는 게 뉴스에 나와.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너무 화가 나. 학교가 더러우니까 교복을 찢는 거야. 학창 시절이 행복했는데 교복을 찢겠어? 꿈을 어릴 때부터 찾아줘야 해. 세계 어린이 만화가 대회를 열었는데, 어린이를 꿈나무라 하지 말라고 했어. 어린이도 만화가다. 만화가인데 어릴 뿐이야. 꿈나무라 하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는 거야. 지금 해라. 지금 영화감독 해라. 지금 선생 해라. 장사도 해서 망해도 보고. 그래야 꿈을 찾을 수 있지. 학교에 가서도 치킨을 어떻게 만들까, 신문을 어떻게 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 얼마나 재밌겠어. 치킨을 만들 양념이 있어. 가격은 싼데 약간 해로워. 이걸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토론하면서 도덕을 배우고. 치킨의 역사를 배우고, 영양학도 배우고. 내가 길을 찾으면 내가 하는 일이 최고야. 딴 게 안 부러워.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고, 학교를 졸업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갈 데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지 말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산전수전 다 겪어서 각자가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가르쳐야지.

 

루저가 없는, 갑을이 없는 세상을

입시 위주의 교육이 바뀌길 꿈꾸는 사람이 많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교육제도를 놓고 국민 대토론회를 100일 동안 했어. 우리도 1년 동안 매주 교육 문제로 국민 대토론을 했으면 좋겠어. 교육행정가, 기업인, 입법자, 시민, 학부모, 학생이 다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무엇이 고민인지. 좋은 사례도 많이 보고. 프랑스식으로 갈 것인가 미국식으로 갈 것인가. 사회가 바뀌려면 지난하고 깊은 토론 문화가 필요해.

 

만화 사전 검열 등 문화 콘텐츠 규제 정책에 반대하셨습니다. 청소년 게임 규제 정책에 대해서도 우려하셨는데요.

-옛날에 만화를 사회악이라고 했다. 지금 게임이 그래. 게임에 대해선 중독 논란도 있어. 사실 우리 예술가들은 항상 사람들을 중독시키려는 사람이야. 나를 중독시키지 못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나? 우리는 중독과 중독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그 팽팽함을 즐기면서 살지. 청소년이 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 폐해와 걱정을 이해해. 그런데 당사자인 청소년한테 물어는 봤냐 이거지. 환자한테 증상을 물어야지. 괜찮냐, 견딜 만하냐, 좀 낫냐 이런 질문도 없이 약을 처방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야. 게임을 하는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어디까지 중독인지, 법으로 제재해야 할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봐.

 

선배에겐 지금 어떤 꿈이 있으신가요.

꿈이 너무너무 많아. 한 가지만 말하라면 루저가 없는 세상이야. 다른 말로는 갑을이 없는 세상. 우리는 너무 많은 루저를 양산하고 있어. 수학 잘하는 놈이 몇 명이나 되겠어. 나머지는 다 루저야. 미술 교육을 12년이나 받았는데, 남는 건 난 그림에 소질이 없네그거 하나야. 그림 못 그리면 즐길 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도 몇 명 안 돼. 길에서 떡볶이를 파는 아주머니들 중에는 대통령 안 부러워이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는 못 배웠어, 못났어하며 자존감이 낮아. 너 공부 안 하면 떡볶이 장사 하는 거야, 갑이 돼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이잖아. 오토바이 배달이든 무엇이든, 그 일이 즐거우면 존중받는 사회.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거야. 그러려면 다른 구조, 다른 토양을 만들어야 해. 그런 꿈을 가지면 이뤄질 수도 있고, 그런 꿈이 없으면 되는 대로 사는 거지.

 

사는 낙으로 살아요, ‘띠용

3시간30분가량 대화가 쉼없이 이어졌다. 애초 박 화백은 인터뷰를 할지 말지 망설였다. “청년들이 우리 우째야 합니꺼 묻는다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알아서 살아라 하고 싶어. 너무 무책임한 건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다, 최근에 지었다는 시 한 수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제주에서 사는 후배와 통화를 했어.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물었더니 그냥 살아 있는 거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대. 그래서 내가 시를 지었어. 제목은 띠용이야.”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너 요즘 무슨 낙으로 사냐/ 사는 낙으로 살아요/ 띠용

 

저는 몰래 당원입니다 한겨레21 10472015.01.30

당원활동 밝히면 취업과 승진에서 암묵적인 차별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정치혐오증사회의 초상

 

지난해 1219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다양성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10년 넘게 활동하며 현재 국회의원 5명을 둔 정당이 한순간에 대한민국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으로 전락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10만 명의 진보당 당원들에게 찍힐 낙인 효과를 우려했지만 한 명의 힘은 미미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향해 종북 세력이라며 마음껏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시선을 좀더 확장해 주변을 둘러보자. 사회적 낙인은 과연 통합진보당에만 해당하는 얘기일까. 한국 사회에서 당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일일까. <한겨레21>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된 대한민국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이런 사회가 어떤 문제점을 일으키는지 분석했다. _편집자

 

정치 혐오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려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행여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 참여에 따르는 비용이 커질수록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류우종 기자

 

#1. 대학생 시절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으로 활동했던 나재형(30·가명·직장인)씨는 정당 경험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구직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별다른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력서에 정당 활동 내역을 적은 게 면접 때마다 문제가 됐다. 한 기업의 면접에서는 당 소속을 묻기에 민주당임을 밝혔으나 표정이 굳어진 면접관으로부터 다른 곳에 가서 좋은 인재 되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 뒤 비슷한 면접 과정을 몇 번 거친 나씨는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때 그 시간을 (당에서 활동하며) 허비한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2. 새누리당 당원 박상민(37·가명·직장인)씨도 최근 당 활동을 이유로 껄끄러운 일을 겪었다. 당내 조직에서 직책을 맡게 된 박씨가 이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자 이를 본 거래처 직원이 나는 당신이 왜 그런 당에 가입해서 직책까지 맡아가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당적을 갖는 것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굳이 숨기지 않았던 박씨는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정치적 주제에 대해 말을 아끼게 된 것이다. 박씨는 혹시라도 나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회사 임원으로 오게 되면 또 모르는 거 아닌가. 공연한 의견 충돌을 빚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가끔 또래 지인들로부터도 그렇게 안 보이는데 왜 그런 활동을 하냐는 말을 듣는다.

 

#3. 과거 민주당에서 선거운동 등 활발한 당원 활동을 했던 고아람(28·가명·직장인)씨는 한 방송사의 입사 시험에 최종 합격한 뒤에도 당원 활동 내용을 적은 이력서를 두 번이나 고쳐야 했다. 인사담당자는 윗선에 최종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서류에 이런 게 적혀 있으면 곤란하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야당 성향인 게 문제가 됐나 싶어 민주당이라는 말을 정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인사담당자로부터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고씨는 정당에서 활동했던 시간 전체를 이력서에서 들어냈다. 그는 꼭 민주당이어서가 아니라 아예 정당 활동 기록 자체를 기업이나 언론사에서 꺼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현재 탈당한 상태다.

 

조직 생활 적응 힘들다는 편견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상징적 사건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러 정당 당원들의 위축감은 뿌리가 깊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등 반정치적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특정한 당의 당원이 되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당적을 가진 사람은 조직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다는 편견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런 인식 때문에 앞의 사례에서 보듯 당원임을 밝히는 것이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진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편견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한 기회를 갖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선입견 때문에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이익이나 부정적 반응이 누적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작아진다. 당적을 가진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함을 몸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불이익을 당하기 전에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욕구를 거세해버린다.

 

#4. 노동당원인 정수혁(26·가명·대학생)씨는 가방에 달고 다니던 당 배지를 최근에 모두 떼어버렸다. 자신을 신기하게 혹은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다. 취업 스터디원으로부터 입사 시험 때 그런 게 다 확인된다더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불편함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그는 이제 곧 취업을 하면 (당적으로 인해) 승진 등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지금 스스로 정치적 성향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5. 이수민(24·가명·대학생)씨는 지난해 여름까지 그 당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기웃거렸다고 말했다. 입당 권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이미 그 당에 종북낙인이 찍혀 있던 터에 주변 사람들이 안 좋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모임에 나가는 횟수를 점차 줄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 역시 그건 좀 아니었나보다싶다. 이씨가 말하는 그 당은 통합진보당이다. 그는 당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그 당에서 발을 뺀 뒤 다른 진보정당에도 관심이 갔지만 입당할 생각은 없다. “제가 동의하든 안 하든 헌재에서 위법한 정당이라고 판결한 거잖아요. 만약 그때 발을 빼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안 좋게 봤겠죠. 취업에 제약도 있었을 테고. 자꾸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하게 돼요.”

 

지난 1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수능대책특별위원회가 개최한 대학입시 개혁, 수험생이 던지는 돌직구 간담회에 참석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위쪽).

 

 

지난 1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가 개최한 청년 복지 찾기프로젝트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뒤로 새누리당 청년 당원들의 모습이 보인다(아래쪽). 뉴시스

 

자기 검열이 쌓이면 사람들 사이에는 애초에 정치적 견해를 갖지 않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인간은 유적(類的) 동물이다. 독립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정당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또 실제로 정당 활동이 불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나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독려, 한국에선 숨기기 바빠

이런 왜곡된 인식의 근원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유권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한국 정당들의 행태에 1차적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불신, 국회에 대한 불신이 낳은 참사다. 여야가 극단의 정치에 빠져 극단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당원이라고 하면 일단 편견을 갖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과연 진짜 당원이라는 게 존재할까. 자발성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려는 사람보다는 선거 때마다 기계적으로 동원되는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한국 정당의 후진적 행태는 정치혐오증을 낳는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정치가 실용적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협잡꾼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왜곡된 정치 의식의 원인이다. 서복경 교수는 오랜 권위주의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에선 순응적 국민형이 바람직한 유권자형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한마디라도 더 하는 국민은 국가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런 담론을 바꿔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노조 같은 시민의 일상적 결사체조차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당이라는 정치결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큰 결의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공인경(33·국회의원실 근무)씨는 귀국한 뒤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분위기에 적잖이 놀랐다. 그는 미국에서 정당의 의원실이나 선거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한 대학생들이 추천서를 받아 정치나 사회, 법과 관련된 분야에 취업하는 데 혜택을 누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하지만 공씨는 한국에서 정부기관 소속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당원 활동을 했던 것이 알려진 뒤 상사로부터 찍히면 불이익을 받으니 당 활동을 절대 드러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독일 의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공씨는 독일의 경우 정당에서 열심히 활동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등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였는데 한국은 정말 다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은 프랑스·네덜란드·독일 정당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가입 등 정치 참여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해, 정치인과 정치의 역할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정당 일체감형성할 만한 정당 없어

미국·영국·독일 등은 특정 공무원 혹은 특정 정치 활동에 대한 제한 규정은 있지만 정당 가입 자체는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아예 금지돼 있다. 지난해 327일 헌법재판소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현행 정당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에 대해서도 정당 가입 금지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정당원이 참여할 수 있는지는 각 지역 교육청별로 다르지만 대부분의 교육청이 정당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립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를 보면,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로 학부모위원 및 지역위원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은 정당 가입률을 비교해봐도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전체 유권자 가운데 정당에 가입된 유권자의 비율은 12.6%(2013년 기준)로 독일(3%), 핀란드(9.6%), 네덜란드(2.5%)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이 수치는 착시현상에 가깝다. 단순히 정당에 가입한 것을 넘어 실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비율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특정 정당에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 수는 전체 유권자의 1.4%(2013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두 거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각각 전체 당원의 7.3%15.4%만이 당비를 납부한다. 나머지 당원은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서복경 교수는 유럽 국가나 미국 등에서는 당비를 납부하고 실제로 공천권도 행사하는 사람만을 당원이라고 본다. 당원 산정의 기준이 다르다. 단순한 당원 수가 아닌,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수를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당 가입률이 낮다는 것보다 유권자가 정당 일체감을 형성할 만한 정당이 한국에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굳이 정당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나는 무슨 정당, 너는 무슨 정당하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당을 바로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정당정치가 건강하게 뿌리내린 사회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유권자 사이에는 정당이 사회 구성원의 다원적 요구를 반영해 정책화하고 갈등을 줄이는 제도적 통로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런 정당을 가져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힘 빼기 왜 이렇게 권력에 관심이 많냐

한국 사회에 정당 가입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정치혐오증이 계속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권력을 견제할 수단인 정당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결국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에게 자기 멋대로 사회를 주무를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박상훈 대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언급하는 일은 기득권층에게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민주주의의 힘을 빼놓는 방법이 바로 너는 왜 이렇게 권력에 관심이 많냐고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제한다고 지적했다. 정당이나 노조 등 결사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당파적이라는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결국 사회에 다원적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을 가로막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다원적 목소리가 표출되지 못하면 사회는 점점 더 양극으로 치닫고 불안이 심화된다. 정연정 교수는 정당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투표 등 국민의 정치 참여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정치 무용론도 확산될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낮아지고 민주적 기구들에 대한 수요도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약육강식의 시장 논리가 사회를 점유하면서 사회적 불안정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일본처럼 한국 사회가 점차 우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판에 가지 않고,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가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리는 것이다. (보수정당의 독재가 고착화된) 일본이 가장 나쁜 경우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지 못하면서 변화가 불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릴 구제할 만능인가, 자연파괴의 부메랑인가1.30 프레시안

[함께 사는 길]‧① 대규모 토목사업

1935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완공된 후버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후버댐은 미국의 애리조나와 네바다 주 사이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 협곡에 세워진 아치형 댐이다. 후버댐의 높이는 221미터이고 저수용량은 320억 톤으로 우리나라 소양강댐보다 약 100미터 높고 저수용량은 11배 많은 엄청난 규모이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토목사업을 대규모로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업이 후버댐 건설이었다. 후버댐은 미국 자존심의 상징이었고 자연을 인간의 기술로 정복할 수 있다는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했다. 이후 전 세계 하천에서는 경쟁적으로 댐 건설의 광풍이 불었다.

 

우리나라 역시 1972년 소양강댐 준공을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댐 건설을 시작하였다. 현재 약 18000개의 크고 작은 댐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댐은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만능인가 아니면 자연파괴의 부메랑인가. 수자원공사 소양강댐 관리단

 

국토부의 댐 추진 방식

2012년도에 발표한 댐건설장기계획을 살펴보면 14개 댐에 대한 규모, 필요성, 기대효과 등 댐 건설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없다. 댐 건설 위치를 개략적으로 설정하고 댐 규모, 필요성 등은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토부의 입맛에 맞도록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리산댐의 용도가 애초 용수공급에서 용유담 수몰문제가 불거지자 홍수조절로 바뀌었다.

 

최근 홍준표 경남지사가 용수공급을 위하여 지리산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현재 이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다. 댐건설장기계획은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법정계획인데 장기계획에서 제시한 댐들은 그 용도조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계획에 댐 이름만 포함되면 온갖 협박과 회유 그리고 다양한 꼼수로 댐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현재 국토부의 댐 추진 방식이다.

 

또한 국토부는 댐을 건설할 때는 홍수조절효과를 부풀리고 건설된 후에는 홍수조절효과를 줄이는 절차를 거쳐 또 다른 댐 건설 계획을 수립한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승인을 위한 법제상 귀찮은 장애물로 취급된다. 또한, 댐의 환경파괴는 경미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저감 가능하며 댐건설 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환경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으로 기술한다.

최근 들어 수자원공사는 천문학적 혈세를 투입하여 댐 부근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추진, 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여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 국토부는 향후 대책으로 어김없이 댐건설계획을 들고 나오는데, 댐은 그 부정적 요소는 사라지고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해결책으로 치장된다.

 

 

함께 사는 길

 

그동안 국토부가 추진했던 주요 댐에 대한 예측사업비와 실측사업비를 비교해보면 대부분 댐은 평균적으로 예측사업비보다 4배 많은 사업비로 건설됐다. 전두환 때 만들어진 합천댐의 경우 예측사업비보다 17배의 예산이 투입됐다. 우리나라 댐 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럼에도 댐 건설 사업이 법적 타당성을 갖고 추진되는 이유는 댐 건설 공무원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수자원개발과와 수자원공사 수자원개발처가 존재하는 이상 해당부서는 댐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나아가 댐 건설을 확대하는 것이 이들 조직의 주어진 사명이다. 한번 만들어진 공무원조직은 현상유지 수준을 넘어서 확대하려는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조작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댐 건설과 그로 인한 예산낭비, 환경파괴와 생활터전 상실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댐 건설을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을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국토부와 수자원공사가 일부 분야에서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댐 건설 아닌 댐 철거 중

미국과 유럽에서는 댐으로 홍수를 방어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생태계의 파편화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더 심하다는 인식이 댐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미 연방개척국장은 199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댐의 시절은 끝났다(The era of dams is over)"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 세계 댐 건설을 지원하던 세계은행(World Bank)도 최근 댐의 부정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댐 건설을 위한 예산지원을 대폭 줄였고, 수력발전 댐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깨끗한 물법(Clean Water Act) 404조를 보면 하천에 댐을 건설하려면 '피할 수 없는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댐 건설사업이 승인된다. 또한 유럽연합의 물 관리 기본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은 댐 건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댐 철거에 바탕을 둔 생태계가 살아있는 하천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하천이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천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미국에서는 650개 이상의 댐이 철거되었고 일본에서도 326개의 댐과 보가 철거되었다. 철거의 이유는 댐의 노후화와 유지관리의 어려움이었지만 최근에는 생태계 회복 또는 하천복원 차원에서 댐을 철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보도자료(2010. 3. 31.)에서 '·일에서 철거되는 보·댐은 본래 기능 상실한 것들'이라며 애써 댐 철거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4대강 사업이 시작될 무렵인 2008년 환경부·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작성한 '기능을 상실한 보 철거를 통한 하천생태통로 복원 및 수질개선효과'를 살펴보면, 보고서 제목 그 자체가 결론이고 또한 '하천복원의 취지에 맞고 하천본래의 모습에 가까운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존 보에 어도를 조성하거나 보 형태의 개량보다는 보의 완전철거에 의한 하천복원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양구군에서 발표한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양구지역 피해산정(2012)'에 따르면 소양강댐이 건설된 이후 42년 동안 양구군 주민들이 입은 피해액이 3조 원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다수의 댐들이 철거되고 있다. 우리도 댐 건설이 아닌 불필요한 댐의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함께 사는 길(이성수)

 

홍수와 더불어 사는 사회

댐으로 조성된 새로운 담수는 주요 생태계 중 가장 황폐한 곳으로 전락했다. 댐은 강과 그를 둘러싼 유역의 생명체들이 엮어놓은 복잡한 사슬을 해체하고 수변생태계를 파편화하기 때문이다. 댐은 현재 세계 담수 어종 9000여 종 중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20퍼센트의 어종을 만들어낸 주요 요인이다. 이 비율은 댐이 밀집된 나라일수록 높다. 또한 댐은 자연의 역동성(홍수와 가뭄)을 사라지게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댐은 오히려 자연하천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연하천은 작은 유량과 큰 유량이 계속 반복하는 역동성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댐으로부터 토사유출이 차단되어 댐 하류에 어류서식처가 감소하는 것 역시 하천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강제 이주자들이 댐 건설 과정에서 댐 반대운동으로 심신이 지쳤거나 고향이 수장된다는 정신적 상실감에 시달리게 하는 사회적 문제도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하천관리 패러다임에 주목할 시점이다. 먼저 홍수와 더불어 사는 사회(Society Living with Flood)를 만들어야 한다. 완전한 홍수방어는 인간의 기술로는 가능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하천에게 본래의 물길을 돌려주고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인식을 하천관리의 철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등으로 갈수록 커지는 홍수를 막기 위해 댐과 제방과 같은 구조물적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래 하천이 가지고 있던 모습을 현실의 제한성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복원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천변저류지 설치, 하천 폭 확대, 홍수터 편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2006년 낙동강유역종합치수계획에 따르면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천변저류지 20개소를 만들어 홍수조절(5500만 톤)과 생태계복원을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천변저류지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추진했던 저지대 거주지를 높은 곳으로 이주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하천변 저지대는 사람이 살기에 적절하지 못한 하천의 공간인데 2006년 태풍 에위니아가 몰고 온 홍수 때 저지대에 살던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능을 다한 댐과 보를 철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하천 복원의 길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담론으로 이행하기에는 아직 우리사회가 댐 철거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 등 하천관리 선진국에서는 댐 철거를 하천정책의 중요한 핵심사항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늦었지만 불필요한 댐의 철거를 새로운 담론으로 확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댐은 하천개발사에서 빛나는 성과물인가 아니면 자연 파괴의 부메랑인가. 적어도 댐으로 만들어진 저수지는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강의 본질은 흐른다는 것이고 저수지의 본질은 그것이 고여 있다는 것이다.

 

 

한눈에 보는 '댐네이션' 대한민국

[함께 사는 길]‧②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주요 현황

 

홍수 예방? 붕괴 피해 걱정할 판

[함께 사는 길]‧③ 14개의 댐을 더 짓겠다고?

우리나라는 전국 각지에 2만 개에 가까운 댐과 저수지가 있다. 이 가운데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 기준에 따라 대형 댐(높이 10~15미터, 길이 500미터, 저수용량 100만 톤 이상 등)으로 분류되는 댐은 1200여 개에 달한다. 4대강 사업의 16개 보 중에 세종보를 제외한 15개의 보가 대형댐에 속하기도 한다. 이는 개수에 있어서 세계 7위이며, 국토 면적에 대비한 댐 밀도는 단연 세계 1위이다. 더 이상 댐을 지을 곳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댐은 정말 필요한가

이렇게나 댐을 많이 지었지만 홍수피해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홍수 피해액은 수백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와 댐 마피아들은 댐이야말로 홍수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여전히 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댐의 효용성이 줄어들자 이제는 이상기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억지주장까지 하고 있다. 지금의 100, 200년 빈도가 아닌 1000년 빈도, 혹은 1만 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1000, 1만 년 빈도의 대홍수를 인간의 기술로 제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특대홍수(?)가 나면 대피하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댐은 홍수예방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우리나라 강은 모래가 많아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댐에 쌓이게 되는데 그에 따라 댐의 담수 능력도 떨어지고 댐의 수명도 짧아진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수명을 다한 노후 댐들이 적지 않은데 홍수 예방은커녕 오히려 붕괴로 인한 피해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내성천이 빚어낸 무섬마을 모래밭과 외나무다리. 댐반대국민행동

 

댐 개발논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물이 부족하니 댐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물 부족 논리다. 우리나라는 물이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물을 많이 쓰는 산업구조에서 물을 적게 쓰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농업용수는 지하수를 사용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들의 물 소비 또한 줄고 있다. 이미 2006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고 밝혔고, ‘물 부족논리와 주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시민사회와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국민들도 좀 더 수질이 양호한 물을 필요로 할 뿐이다. 물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적다.

 

OECDUN에 따르면 하천 취수율이 20~40퍼센트 수준은 하천환경에 큰 위협을 주고 40퍼센트 이상에서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하천 취수율은 평균 40퍼센트를 넘고 있으며 60퍼센트를 넘는 강도 많다.

 

이미 우리나라의 댐과 저수지의 저수능력은 수요에 비해 초과상태다. 수많은 취수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가동률은 절반밖에 안 된다. 또 누수율이 높아 노후된 상수도 시설을 교체만 해도 댐 시설 등 공급시설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물이 부족하면 물을 적게 쓰고 다시 쓰거나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댐과 저수지 등 시설공급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관속에 들어갔다 다시 나온 '댐 망령'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댐 건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더 이상 짓고자 해도 댐을 지을 강과 하천도 없을뿐더러 댐에 의한 피해가 알려지고, 반발에 부딪혀 댐 건설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2000년 영월 동강댐이 백지화되고, 한탄강댐은 10년 넘게 표류했다. 정부가 2002년 댐건설장기계획(2002~2011)을 통해 10개가 넘는 댐 예정지를 발표했지만 크게 논란을 빚고 거의 대부분이 무산됐다. 급기야 건설교통부(현재의 국토교통부)는 댐과 제방 축조 위주의 수자원종합계획을 바꾸기 시작했고 이에 근거해 2006년에 수립한 댐건설장기계획(2007~2011)에서는 댐 건설 예정지를 고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댐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토건기업 출신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권은 22조 원의 국민혈세를 들여 4대강에 16개의 댐()을 쌓고, 강바닥을 모조리 퍼내는 4대강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대선을 이틀 앞둔 20121217, 대형댐 6개와 중소형댐 8개를 포함한 '댐건설장기계획'을 확정했다. 밀실에서 사회적합의도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이 계획은 다음 정권에게 댐 건설 즉, 토건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환경부가 즉각 '댐건설장기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을 통해 개발 불가 혹은 댐이 아닌 대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고 환경단체와 지역주민 그리고 전문가들도 불필요한 댐건설계획을 철회하라고 반발했지만 국토교통부는 현재 지리산댐, 영양댐, 달산댐과 중소규모 댐인 원주천댐, 봉화댐, 김천 대덕댐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함께 사는 길

 

필요 없는 14개 댐에 35000억 원 혈세만 낭비

14개의 댐을 건설하는데 35000억 원이라는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댐 계획은 타당성이 없다. 정부는 낙동강 홍수조절을 위해 경남 함양의 지리산댐(문정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경북 영양댐은 경산공단에 공업용수 공급, 경북 영덕의 달산댐은 포항시의 공업용수, 충남 청양 지천댐은 청양홍성예산에 물 공급, 전남 구례의 피아골댐(내서천댐)은 여수와 광양의 물 공급, 강원 평창 오대천댐은 한강의 홍수예방 등이 정부가 밝힌 댐 건설의 목적이다그 외의 8개 중소형댐(낙동강의 봉화댐, 감천댐과 한강의 원주천댐, 만경강의 산흥댐 등 지자체가 건의한 댐. 정부지원이 90퍼센트)은 대부분 하천유지용수 공급과 재해방지를 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도를 볼 줄 알거나 기초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부의 댐 계획이 필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리산의 댐 계획(높이 141미터, 길이 846미터, 저수용량 1억 톤, 예산 1조 원)은 계속해서 목적이 바뀌어왔다. 처음엔 식수댐으로 추진하다가 경제성이 없고 타당성을 잃자 그 목적을 홍수조절댐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작 경남 서남권과 함양지역에서조차 지리산댐을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홍준표 경남지사는 부산지역에 용수공급을 해야 한다며 식수댐 추진을 들고 나왔다. 식수댐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지만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홍수조절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말대로 홍수조절댐이라도 지리산댐은 불필요하다. 하류의 남강댐으로도 낙동강 홍수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리산 댐은 필요가 없으며 계획은 폐기해야 한다.

 

댐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지리산 계곡. 댐반대국민행동

경북 영양의 댐 계획(높이 76미터, 길이 480미터, 저수용량 5200만 톤, 예산 3139억 원)은 지척에 유량이 풍부한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180킬로미터 상류에서부터 경산공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한다는 것이어서 말도 안 되는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다. 계획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달산의 댐 계획(높이 52미터, 길이 587미터, 저수용량 4500만 톤, 예산 3971억 원)은 옥계 유원지를 수장시키며, 포항공단의 용수공급은 과장되어 있어 타당성을 잃고 있다. 포항지역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의 고향이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며 '형님댐'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국토부는 요지부동이다.

 

미호종개로 유명한 청양 지천의 댐 계획은 대청댐과 보령댐을 통한 대안을 먼저 마련하는 게 필요하며, 피아골의 댐 계획의 경우에도 섬진강 대안이 있으므로 불필요하다. 오대천의 댐 계획 목적은 한강의 홍수조절용인데 실제로 홍수 조절 능력은 1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

 

내성천에 지어지고 있는 영주댐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의 수량과 수질을 관리하기 위한 예비용 성격이어서 목적이 불분명하다. 영주댐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영주댐으로 인해 모래가 더 이상 내성천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막혀 모래 강인 내성천을 망가트리고 있다. 내성천의 모래는 내성천뿐만 아니라 식수원이기도 한 낙동강의 수질 개선과 낙동강의 재자연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영주댐 완공은 중단돼야 한다.

 

'댐 마피아'와 댐 개발 조직 개혁하자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댐 계획은 홍수예방과 용수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문화재를 훼손하고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며 3조 원 이상의 예산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사업이다.

 

주춤했던 댐 건설이 다시 추진되는 데에는 이 과정에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댐을 지어서 이익을 보는 곳은 대규모 건설 회사들이다. 그리고 댐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수자원공사를 위시한 각종 개발공사들, 토건사업을 벌려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수자원정책국/수자원개발과) 등 건설관료들과 개발공사들, 그리고 지역 토건업자들, 개발사업으로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인, 댐 사업과 관련해 각종 용역에 참여하는 학자들, 광고 수주로 이익을 얻는 언론 등이 그들이다. 이들 댐 마피아들은 홍수와 가뭄에 대한 국민의 상식을 적극 활용해 댐 건설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세력과 기구들을 개혁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댐 건설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토건예산이 GDP2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개발시대를 달리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환경측면에서는 세계 130위권, 삶의 질과 복지수준을 볼 수 있는 사회측면에서는 40위권으로 후진국이면서 말이다. 4대강 사업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이젠 토건에서 사람, 돈보다 생명이다. 온 국민이 댐 반대를 외치자! 강을 흐르게 하자고 하자.

 

낙동강 회룡포. 영주댐 건설 후 모래공급이 줄어들면서 회룡포 모래사장에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자 굴착기를 동원해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함께 사는 길 이성수

 

‘175억 재산’ MB도 달랑 2만원건보료 재테크이 지경인데1.30 한겨레

정부, 1% 고소득층 반발 무서워 건보료 개편백지화

무소신 행정600만 저소득층 보험료 인하도 무산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겨레 자료 사진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해 임금 이외 추가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와 피부양자의 건보료 부담이 늘면, 그분들은 불만이 클 수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이 지난 28일 밝힌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선언의 이유다.

 

애초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은 45만명 안팎의 고소득층한테 건보료를 더 거둬 600여만명의 저소득층 보험료를 낮추는 내용이다. 피부양자 제도를 활용해 무임승차해온 부유층, 월급 이외의 이자·임대소득이 많은 일부 고소득층한테 건보료를 제대로 걷자는 취지다.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밝힌 건보료 무임승차자(건강보험 피부양자)는 지난해 6월 말 현재 2054만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40%가량이다. 10년 새 450만명이 늘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기획단)은 이들 중 종합과세 소득이 2000만원을 넘는 피부양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193000명가량에게 보험료(3034억원)를 걷을 수 있게 된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운영위원장은 기획단이 마련한 개편안대로 추진할 경우 보험료가 느는 사람은 2000만원 초과 종합소득이 있는 근로자 26만명과 역시 2000만원 초과 종합소득이 있는 피부양자 19만명을 합쳐 45만명 안팎으로, 전체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3500만명의 1.3%”라며 이들이 무서워 건강보험료 개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논란이 있다며 개편안의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논의를 심화시켜가면 될 일이라고 짚었다. 그런데도 문 장관은 고소득층의 반발이 우려된다며 부과체계 개편을 백지화했다. 문 장관이 지목한 임금 이외 추가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와 피부양자는 어떤 식으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허점을 활용해 왔을까?

 

창업해 직장가입자로 신분세탁

MB, 자기건물안 청소업체 대표 맡아 2007년 재산 175억인데 건보료 2만원

10억 예금부자의 무임승차

금융소득 연 3900여만원이지만 4000만원 안넘어 피부양자 

수십억 재산가의 위장 취업

아들 주유소에 취직, 월급 60만원  30만원 넘던 건보료, 1만원대로

 

가장 일반적인 수법이 피부양자 제도를 활용한 무임승차다. 최아무개씨(60)는 지난해 5월까지 건보료로 한달에 382620원을 냈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과세표준액만 55000만원(시가 7억원 상당)짜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은행예금 등 약 10억원에 가까운 금융자산도 있다. 은행에 묻어둔 예금에서 매달 300여만원의 이자가 나오고 따로 월 100만원의 연금도 꼬박꼬박 받는다. 그런데도 최씨는 지난해 6월 이후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현행 피부양자 인정요건은 금융소득 4000만원 이하, 연금소득 4000만원 이하(1년 기준), 재산세 과세표준액 9억원 이하. 최씨는 같은 해 5월 자신의 2013년 금융소득이 3961만원으로 전년(4191만원)보다 약간 줄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근거로 “2013년 금융소득이 4000만원에 미치지 못하니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피부양자로 등록해달라고 요구했다. 건보공단은 그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이아무개(75)씨는 20056월 아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취직했다. 당시 받은 월급은 60만원, 이를 기준으로 매겨진 건보료는 약 17000원이다. 여성인데다 칠순이 넘는 이씨가 주유소에 취직한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건보공단이 실태를 파악해보니 이씨는 약 20억원(과세표준액 기준)짜리 부동산과 한해 3800만원에 이르는 임대소득 등을 갖고 있었다. 지역가입자 신분이었다면 매달 약 38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던 이씨는, 직장가입자한테는 임금소득만으로 건보료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알고 주유소에 위장 취업한 것이다.

 

많은 재무설계사가 부유층을 상대로 권하는 합법적건보료 줄이기 수법도 있다. 일종의 위장 창업이다. 대표적 사례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에 영포빌딩 등 건물 3채 등을 보유했던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건물 안에 대명기업이라는 임대관리업체를 차려 대표를 맡았다. 지역가입자였다면 수백억원대 부동산과 임대소득 탓에 한달에 200만원대 건보료를 냈어야 할 이 전 대통령은, 업체 대표를 맡으며 직장가입자로 전환돼 건보료는 단숨에 2만원 안팎으로 줄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중단을 규탄하며 재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30위장취업은 탈세이지만 아예 업체를 차려 건보료를 줄이는 것은 합법적인 절세에 해당한다직장가입자한테는 임금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니 이런 사례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군 1만명 시대, 별들은 성범죄자가 되었다 130 한겨레

 

성추행 및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한 여군 오아무개 대위 추모제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헌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군사 엘리트와 성추행

우리나라 군 엘리트 장교단의 상태가 심각하다. 일선 부대의 지휘관으로 부임한 육사 출신 장교들이 부하를 상대로 한 성범죄와 추문의 당사자가 되면서부터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대표적인 군 실세로 손꼽히던 특전사령관 중장(육사 36)이 공관에서 여군 하사를 성추행해서 보직 해임되고 전역했다. 기가 막힌 건 중장의 부인이 직장 내 성폭력을 교육하는 상담 전문가였다는 점이다. 사건이 벌어지자 중장은 우울증 증세가 있는 여군 하사를 부인에게 상담을 받게 하기 위해 공관으로 불러들였다고 변명을 했다. 부인이 없을 때만 공관으로 여군 하사를 불러들인 이상한 상담이었다. 2014년 동기생 중 선두 그룹이던 17사단장 소장(육사 40)이 집무실에서 수차례 여군 하사를 성추행한 게 발각되어 긴급체포됐다. 이때도 소장은 이미 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된 여군 하사를 위로하기 위해 집무실로 불러들였다고 변명했다. 그것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는 것은 여군 하사가 법원에 제출한 사단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기록으로 입증되었다. 게다가 성추행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여성을 이런 분야에 비전문가인 사단장이 뭘 위로했다는 것일까? 사단에는 중사 이상 간부가 1000명이다. 그런데 여군 하사 한 명을 다섯 차례나 불러 위로하는 사단장의 지나친 친절이 인상적이다.

 

헌병 병과의 황당한 음모론까지 나와

올해에는 전방 1군단 예하 기갑부대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지휘관으로 부임한 대령(육사 47)이 여군 하사에게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여기서도 변명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것이지만 피해자 휴대전화에 남겨진 여단장의 메시지는 상급자가 부하에게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관계를 가질 것을 압박하는 내용이다. 이 압박에 부하가 굴복한 것이 그에게는 상호 합의였다. 게다가 이 사건은 다른 장교가 여군을 성추행하여 군 수사기관이 이를 수사하다가 여단장까지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된 일종의 인지수사의 결과였다.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법한 이 사건에 대해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상당 기간 철저한 조사로 사건을 준비했다며 범죄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연이은 사건에서 가해자인 고급 지휘관들은 항상 이런 사건이 터지면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한다. 막상 재판이 열리면 자신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거나, 지휘관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다음으로는 육사 선후배들이 일제히 가해자를 비호하는 데 가세한다. 최근 군 안팎에서는 잘나가던 엘리트 장교들이 체포되거나 징계받는 데 대해 집단으로 저항하는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필자가 접촉한 대다수의 육사 출신 전·현직 장교들은 가해자의 입장을 동정하며 여군의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도 안 되면 수사기관의 표적수사라는 음모론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장성 진급자가 나오지 않은 헌병 병과가 작전의 엘리트 장교들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도 확산돼 있다. 심지어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쏟아낸다. 심지어 일부 장교들은 한 장관이 여성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엘리트 장교를 제물로 삼는 것이냐며 노골적으로 막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성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묻는 필자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전방에서 외로워서”, “너무 부하를 사랑해서”, “전방에서 너무 무료해서라며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한다. 29일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병영문화특위)에서 예비역 중장 출신인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일을 열심히 하느라고 외박을 못 나간 엘리트 지휘관이 하사 아가씨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 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섹스 문제가 있는) 전방 지휘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노골적으로 같은 육사 후배 장교를 편드는 발언이다. 이것이 지금 이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육사 출신다운 발언이다.

 

군대는 충성하는 집단이다. 경례에 충성 구호를 붙이고 충성 회식, 충성 축구, 충성 테니스로 집단의 단결을 과시한다. 술자리에선 지휘관에게 충성주가 바쳐진다. 부하들이 앞을 다투어 충성을 과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하급자들이 지휘관의 추천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군 조직에서는 상급 지휘관에게 한번 찍히기라도 하면 군대 생활에 애로사항이 꽃피게되고 상위 계급으로의 진출도 어려워진다. 지휘관을 즐겁게 하기 위해 술자리에선 지휘관 옆에는 항상 미모의 여군이 자리 잡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관행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지휘관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부하들은 자신의 확장된 육신이자 식민지로 전락한다. 어느 순간 알딸딸한 느낌과 함께 도덕적 감수성이 서서히 마비되는 단계가 온다. 부하의 충성이 마치 자신에 대한 무한복종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영민하고 정의롭던 청년 장교가 지휘관이 되고 나서는 갑자기 이상한 일탈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외 식당이나 공관에서의 비공식적인 회식 자리에 여군을 불러 내 술시중을 들게 하는 일, 부하 부인에게 성추행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잘나가던 소장·중장 잇달아 낙마

사건 터질 때마다 앞뒤 안맞는 변명

무죄 입증될 거라 호언장담하거나

지휘관의 정상적 활동이라 주장

오히려 여군 행실에 책임을 전가

성범죄 신고여군들 많아지며

은폐 사건들이 드러나는 양상

바야흐로 군에서 여성들에 의한

문화혁명 진행중이라 할 만한데

군 지휘관은 적응을 못하고 있다

 

그림 이우만 화백

부하 지휘를 넘어 소유하려는가

문제는 누구도 이것을 제지하거나 말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적인 지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보는 게 그간 군 지휘권에 대한 많은 군 엘리트들의 인식이었다. 군대는 지휘관을 중심으로 전투행동을 조직한다. 전시에 지휘관이 돌격하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돌격해야 한다. 여기에 어떤 예외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군 조직이라면 지휘관에 대한 절대복종이야말로 전투력의 핵심이라고 본다. 이런 지휘관 중심의 문화가 엄정한 기강으로 포장되고 합리화된다. 그러나 지휘관의 절대적 권위가 적용될 때 공적 영역과 반대의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임무 수행상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어느새 부하의 사적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여기서 군 지휘관은 부하를 지휘하는 수준을 넘어 소유하려고 한다. 여군을 상대로 한 범죄는 전방에서 지휘관이 외박을 못 나간 사정 때문이 아니라 부하는 내 것이라는 엘리트 장교단의 인간관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군에 여군 정책이 본격화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선 야전부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단 사령부 예하 단위부대에는 여군을 거의 배치하지 않았다.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몰라 상급 부대에 배치하고 직접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여군이라는 보급품회식 이후엔 잘 돌려보내라는 말이 당시 유행할 정도로 군에서 여군의 인격은 무시되고 있었다. 여군 전용 화장실이나 휴게실, 숙소가 갖춰지지 않았던 야전에 여군을 배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여군에 대해서는 군인으로서의 사용가치가 종료된 것으로 보고 전역시켰다. 그래서 199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군 연대장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 면면을 보면 전부가 독신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넘어 이제는 여군 1만명 시대를 맞이하자 이제는 군 전체에 성 문제가 커다란 화두로 등장했다. 이제는 여군을 위한 임신복이 나올 정도로 여군에 대한 배려가 확산됐고 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성차별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제왕적 권위에 익숙한 일부 군 지휘관들이 변화된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약자로서의 여성, 특히 군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초급 장교와 부사관 계층에 대한 사적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사고를 친다. 얼마 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상관의 성관계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오아무개 대위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도 가해자는 오히려 당당했다. ? 군대는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여군을 상대로 한 군내 내 성폭행 범죄는 20103건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16건으로 5배 늘었다. 그러나 작년에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여군 1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않겠다며 그 이유로 집단 따돌림’(35.3%)가해자 및 상관의 보복’(47%) ‘부대 전출’(17.7%) 등의 불이익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이은 사건을 통해 군에서도 인권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지휘관의 성범죄를 외부에 말하고 신고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은폐되곤 했던 사건이 서서히 드러나는 양상이다. 그것도 피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진술과 증거 제시로 그 범죄적 양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바야흐로 군에서 여성들에 의한 문화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전통적 사고에 길들여진 군 지휘관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 김대중 화백

사회와 분리된 그 도덕적 우월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의 엘리트 장교들은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만족감이 매우 높은 집단이다. 필자가 전·현직 예비역 장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다수는 우리가 일반 국민보다 애국심의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 아니냐며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낸다. 이들에게 있어 양심과 도덕의 문제는 군의 엘리트 장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해결되어 있다. 따라서 성범죄에 연루된 일부 장교들의 일탈은 개인적 문제이고 행실이 나쁜 여군의 꼬임에 넘어간 단순한 실수일 뿐이지 자신들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반론은 일반 사회의 성범죄는 더 심각하지 않으냐군대만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이제껏 이야기해온 신성한 국가안보란 자신들에 대한 도덕적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이데올로기로 발전한다. 그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 전문집단이라는 직업의식을 초월하여 스스로를 특권으로 인식하는 하나의 도그마에 스스로를 감금시켜버렸다. 이렇게 갇힌 의식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장병들에게도 경악스러움 그 자체이지만 정작 그 자신들만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작년에 윤 일병 사건이 터지고 언론이 군을 일제히 질타하자 예비역 장성들 모임인 성우회의 한 간부는 군을 와해시키려는 음모가 있다고 했고, 아예 신문 광고를 내 군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국민 여러분은 군에 대한 회초리를 거두라고 적반하장으로 훈계하였다. 한 예비역 중장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은 군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군에 다녀오지도 않은 사람이 군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냐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육사 출신들이 똘똘 뭉쳐 군에 대한 도덕적 도전을 분쇄하고 육사 공동체의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이런 정서에 영향을 받는 엘리트 장교단이라면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을 수 없다. 오히려 자기혁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집단 사고에 빠져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이것은 군 정신을 대표하는 장교단의 직업정신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덕과 정의의 표상인 한국군 장교들의 군인다움, 즉 군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직업군인의 덕목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책임성, 단체성, 규율성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직업군인의 덕목이 사회 공동체의 가치와 부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군사 엘리트들은 사회에는 사회의 도덕이 있고 군대에는 군대의 도덕이 있다며 스스로를 사회와 분리한다. 이렇게 사회와 고립된 하나의 섬과 같은 폐쇄적 공동체가 된 군은 개인의 가치,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서서히 떨어져나가고 있다. 너무나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군은 과거의 군의 이미지를 군의 본질이라고 강변한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지배와 소유의 관념에 익숙한 군사 엘리트들은 사회와 공생하지 않고 사회에 기생하게 된다. 그 결과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군 전체의 위상이 추락하여 군 존립의 핵심인 국민의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의 가치까지 침해함으로써 군이 존재하는 목적까지 잠식하게 된다. 적어도 엘리트 장교들이라면 이 점을 인식하고 군의 미래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데, 막상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감성적 불만을 앞세우는 우리 장교단에 대해 국민은 불안한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광복 70주년 기획 5-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권력 유착·노동 착취로 손쉬운 성장기업가 정신, 아직 멀었다 1.30 경향

 

5) 경제 - 경성방직에서 삼성 스마트폰까지

일제와 결탁한 조선 자본가들 해방 후 태생적 습성못 버려정권 협력 대가로 지원 받아

외환위기 후 시장지상주의로 국가권력 의존 벗어났지만에 의존한 경영 여전

힘든 일은 하청업체가 하고 수익은 대기업이 챙기는 구조일감 몰아주는 정부 책임 커

대기업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기보다 손쉽게 돈 버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중소기업이 고생해서 기술 개발을 하면 비슷한 특허를 내거나 대규모 유통망을 앞세워 기술을 헐값에 가로채는 일도 비일비재하고요. 그러다보니 중소기업도 자체 기술 개발보다 인맥을 만들어 대기업에 줄을 대려고만 하는 거죠.”

경기 안산에서 10년째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대표(48)기업가 정신을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대기업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시각장애인용 고주파 유도기 국산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대기업들이 건전한 기업가 정신보다 갑질 횡포에 익숙해진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공공기관이 세부 공정별로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과 직접 계약해도 되는데 책임 소재 때문에 안전한대기업에 일감을 몰아주고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를 하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재하도급이 이뤄질 때마다 공사비는 20~30%씩 떨어지고 하도급 구조 아래쪽 업체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낮은 가격의 자재·물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은 감독과 페이퍼워크(서류작업)만 할 뿐 정작 힘든 일은 하청업체에서 다 한다하지만 수익은 대기업이 가장 많이 가져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에 의정부에 있는 대기업이 불러서 안산에서 1시간30분 넘게 차를 타고 간 적이 있다면서 하루 종일 문 밖에 기다리게 하더니 고작 10분 만나서 정부에 제출할 서류작업을 지시하고는 돌아가라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일제강점기 서울 영등포 경성방직 공장에서 여공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높다란 담으로 둘러싸인 방직공장은 여공들에게 감옥에 비유되곤 했다. 1960~1970년대 한강의 기적의 이면에는 일제 때부터 굳어진 저임금과 노동력에 대한 행정적 통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서울시 제공

 

이처럼 관()과 유착해 손쉽게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대기업 행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대표적인 한국학 연구자인 카터 J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는 1991년 경성방직의 성장사를 분석한 <제국의 후예>에서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을 꾀한 박정희 정권 시절과 일제 때 조선총독부 권력을 등에 업은 조선 자본가들 간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서 진행된 근 20년간의 급속한 공업화 과정을 돌아보면 식민지 시기 역사 유산의 기시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19105일 오후. 서울의 요릿집 명월관에서 열린 경성방직 창립 주주총회엔 130명의 주주들(혹은 대리인들)이 참석했다. 지주 자본가인 고창 김씨 집안이 면방직 공업 자본가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25만엔의 납입자본과 100대의 직기로 시작한 경방은 19451050만엔의 납입자본금과 1080대의 직기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만주에도 비슷한 규모의 공장이 있었고 오사카, 베이징, 중국 중앙 내륙에도 사무소를 운영했다. 이 같은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경방과 총독부가 설립한 식산은행 간 인적 연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방 초대 사장인 박영효는 식산은행 이사회의 창립 일원이었고, 김연수는 식산은행 자회사인 조선신탁주식회사 감사로 참여했다. 저렴한 노동력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1926년과 1931년 경방에서 파업이 벌어졌지만 일제 경찰력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1944년 경성방직에 입사한 민석기옹(91)의 증언은 당시 감옥생활과 같은 공장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땐 회사에선 열여섯~스무 살 사이의 여자를 시골에 가서 전부 뽑아 왔다고. 아침 6시에 식당 가서 (아침밥) 먹죠. 무조건 아침 6시부터 저녁 6. 아주 혹사시켰지. 그때 잘 먹지도 못한 애들을 말이야.”(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집 <영등포 공장지대의 25>)

 

일제와 협력하며 성장을 꾀한 조선 자본가는 경방뿐만이 아니다. 오미일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에서 민영휘 일가의 축재 과정에 주목했다. 양민을 수탈해 재산을 모아 반도 유일의 부호로 불린 민영휘는 1915년 한일은행장이 되면서 경제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3남 민규식은 1933년 가족 재산 관리와 증식을 목적으로 영보합명회사를, 2남 민대식은 1935년 계성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영보합명은 일제 국책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간척과 토지개량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10년 만에 자산을 4배 가까이 불렸다. 오 교수는 민씨 일가가 특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제 경제정책에 부응해 시기별로 토지 개량과 산미증식, 군수기업 경영과 투자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에 관과 결탁해 성장한 한국 자본가들의 경험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물론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자본가의 연속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선을 긋는 시각도 있다. 오 교수는 식민지 시기 경제활동이 해방 이후까지 연계된 경성방직은 특수한 사례라며 특히 중화학공업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몫이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 연속성이 단절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관과의 유착 속에서 형성된 퇴행적 자본가의 모습을 과거의 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한국 재벌과 무책임의 경제’>에서 식민지의 종속적 자본가로서 국가기구에 대한 유착과 부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국가기구를 동원한 폭력적 노동쟁의 억압은 국내 재벌들의 무책임에 각인된 태생적 습성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시기별로 보면 해방 이후 일제가 물러간 뒤 국내 기업들이 손쉽게 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은 헐값에 이뤄진 적산(일제 재산) 불하였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재벌이 단순히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준 대가로 특혜적 외환과 수입 허가를 얻는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 하지만 1950년대 말부터 미국의 원조가 줄면서 원조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게 됐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재벌은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에 협력하는 대가로 외자를 배정받고 저리의 정책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게 된다.

에커트 교수는 “1960년대 급속히 공업을 키우는 경제계획을 발진하기로 결정했을 때, 박정희 정권은 노련한 기업가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그 중 많은 기업가들이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의 급속한 공업 성장 속에서 단련된 자들이었다고 했다. 일제 이후에도 재벌은 오랫동안 정치권력의 입맛을 맞춰주고 순응함으로써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까지 유지돼온 관과 대기업의 이 같은 종속적 유착관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1990년대 말 찾아온 외환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지상주의가 득세하면서 재벌은 정부의 하위 파트너가 아니라 되레 정부를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기업이 국가권력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건전한 경쟁보다 힘에 의존한 식민지 시절 기업 경영의 부정적 유산은 아직도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2012년 불거진 재벌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재벌 3세들이 계열사 간 지원성 거래를 통해 안전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기업가 정신 실종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자본주의 기업 성장 논리의 문제점과 비정규직 문제>에서 삼성전자의 성장을 끌고 온 TV,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경우 삼성전자가 스스로 개척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인사팀의 한 실무자도 외국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6개월 만에 원제품의 성능을 120% 개량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확보가 삼성의 가장 큰 도전적 과제라고 털어놨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삼성을 카피캣(모방자)’이라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전 세계 연간 특허순위 3~4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출원 특허의 대다수는 제품 특허가 아닌 생산공정 관련 특허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도 한국 기업이 원천기술을 독점한 일본 기업과 맞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힘은 중학교만 나온 노동자도 30분만 교육받으면 완벽하게 제품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생산기술을 표준·단순화시킨 데 있다고 말했다.

 

해방 후 70, ‘재벌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기업들의 덩치와 권력은 커졌지만 저임 노동력에 기초한 손쉬운 성장에 대한 유혹과 습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애덤 스미스의 공정한 경쟁과 케인스가 말한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은 아직 우리 재벌에 요원한 과제인 셈이다.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노동으로 충성일제 황국근로관, 슈퍼 갑질·노동자 억압의 뿌리 1.16 경향

(3) 노동 - 강제 징용에서 땅콩 회항까지

가부장적 노사관계로 사용자에 대한 복종 강요

박정희 정권 조국근대화론도 나라가 잘돼야기업이 잘돼야

노동자의 희생 당연시

신입사원에 산업전사강조 기업들 일제 유산못 버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달 말 검찰에 출두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노예 대하듯 노동자에게 복종을 강요해 물의를 빚은 땅콩 회항사건에도 황국근로관의 잔영이 남아 있다.

 

일제 말기인 19448월 강제징용돼 일본 고베시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군함을 만드는 일에 동원됐던 한동석옹(91)조선소 노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옹은 귀가 어두워 간간이 서면으로 문답을 주고받았지만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70년 전 일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했다.

 

징집영장을 받고 종로구청에 가니 앞마당에 사람들이 집결해 있더라. (구청 직원이) ‘너희는 군대 대신 공장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가와사키중공업에 갔는데 종업원 5만명 중 조선 사람이 5000~6000명이야. 파이프와 목재를 얼기설기 엮어서 6~7층짜리 작업대를 만든 뒤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는데 발을 헛디디면 즉사야. 위에서 떨어뜨린 해머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고.”

 

지난해 11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의 하창민 비정규직 지회장은 한옹의 말을 전해주자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작업방식이 일제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가 적재물에 맞아 즉사해도 죽기 살기로 납기일은 맞춰야 하니까 마포 걸레로 바닥의 핏자국만 닦고 일은 계속한다우리는 노동이 아니라 수출이라는 이름의 전쟁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는 산재 은폐를 조사하기 위해 울산시에 가 보면 병원, 경찰, 근로감독관, 주변 상인들 모두 기업에 피해가 돌아가면 안되고 노동자가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법보다 기업 논리에 좌우되는 기업왕국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기업왕국이데올로기의 기원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저임노동력에 기초한 조국근대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근대적 계약이 아니라 의 관계로 받아들이고 노동자들을 명령과 복종에 순응하게 만든 근원적인 뿌리는 일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전쟁 말기 홋카이도 탄광에 강제징용당한 조선인 노동자. 일제는 황국근로관을 강요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실시된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으로 토지를 잃고 농촌에서 쫓겨난 유랑민들이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북쪽의 광산이나 공장에 취업한 식민지 조선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노동계약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일제는 36년간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규정한 공장법(노동법)을 일본 본토에서만 적용했을 뿐 식민지 조선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최저임금, 최대 노동시간, 해고제한을 규정한 공장법을 실시하려 했지만 당시 조선에 진출한 일본 자본가들이 시기상조론을 들어 반대했다. 1920년 회사령이 폐지되면서 면방직 공장에 주로 취업한 조선 노동자들 중 대부분은 담으로 둘러싸인 기숙사에 수용돼 일상생활까지 통제당했다. 기숙사와 공장을 오가는 생활 속에 조선 노동자들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 질서에 익숙해졌지만 계약관계에 기초한 정상적 노사관계나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었다. 일제가 조선인들은 게으르고 책임의식이 없다며 주로 가부장적 노사관계에 기초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는 우리 대기업들이 노사관계를 계약관계보다 가족관계라고 강조하는 것은 일본이 전시체제로 돌입하기 전 가부장적 공동체문화를 기업까지 확산시킨 경영가족주의를 아무런 반성 없이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가족경영주의 모델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을 군수품 제조에 필요한 물자와 마찬가지로 관 주도의 조직적인 동원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면서다. 1943년 이후는 기업을 군대식으로 재편하고 연성훈련소를 만들어 노동을 통해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황국근로관을 조선 노동자들에게도 강요했다. 1945년 종전 이후 황국근로관의 짙은 그림자를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서 지우는 작업은 일본과 조선 양쪽 모두의 과제였던 셈이다. 하지만 미군정하에서 한국과 일본은 노사관계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이 교수는 미군은 일본에서 극우세력의 부활을 막기 위해 헌법 개정보다 노동조합법을 먼저 만들고 뉴딜식 노동개혁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체계적으로 진행한 반면 조선에서는 극우집단인 대한노총을 앞세워 좌익계 노조인 전평을 조직적으로 탄압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일본은 기업별 노조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후 근대적 노사관계가 비교적 일찍 뿌리내린 반면 한국에서는 1970~1980년대까지 노조를 빨갱이취급하거나 금기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 지도자대회에서 수상자와 악수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황국근로관과 조국근대화론은 노동 기본권을 억압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였다.

 

해방 직후 영등포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김영환옹(90)의 증언은 노조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분단을 거치면서 일반 노동자들에게 내면화된 과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해방 직후 영등포 전평은 대단했지. 큰 광장에 모아 놓고 노동자 해방을 이야기하는데 여공들도 전부 거기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동원시키면 남산이 하얗게 되었다니까. (그런데) 그 결과는 거기 가입했던 사람들을 6·25 때 피란을 가는데 시흥·안양 골짜기로 끌고 가서 전부 총살시켜버렸어요. 대한민국 국군들이.”(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집 <영등포 공장지대의 25>) 근대적 노동계약의 중심이 돼야 할 노동조합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제대로 노동자들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가운데 일제의 황국근로관이 본격적으로 부활한 것은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조국근대화론을 내세우면서다.

 

한남대 곽건홍 교수는 <한국에서의 노동통제 이데올로기 비교연구>(2002)에서 “1940년대 일제 전시 파시즘체제하의 황국근로관과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론의 유사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봉사를 강요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한국에서 노사협조주의 이데올로기는 일제강점기부터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됐다“1970년대 박정희는 종업원을 내가족같이, 공장을 내집같이’ ‘국가가 있고 나도 있다는 논리로 저임금과 노동자 억압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했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송강직 교수는 대법원이 기업이 잘되어야 노동자에게도 유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경영권을 노동기본권보다 우선시하며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판단한 배경에는 회사 간부를 지휘관으로, 노동자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병으로 인식한 황국근로관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78년 동일방직에서는 여성 노조 지도부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어용 노조원들이 똥물을 투척했다. 유신시대 대표적인 여성노동 잔혹사로 통한다.

 

 

박정희 정권이 국가 주도의 노사협조 이데올로기와 전 국민을 총력전으로 몰아넣기 위해 시작했던 공장 새마을운동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이후로는 임금 인상 자제를 통한 물가안정과 경쟁력 회복 캠페인으로 이어졌고 노동보다 근로라는 표현이 노동자들 의식을 지배했다.

한신대 노중기 교수는 “‘근로라는 말은 일제가 좌파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도입한 표현으로 해방과 동시에 거의 사라졌다면서 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태우 정부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지금은 오히려 노동이 이상한 말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국가와 기업을 일체화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사용자에 대한 복종을 강제한 가부장적 기업문화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황국근로관의 유산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대자동차그룹 신입사원 연수에서는 최근까지 어김없이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달린 유니폼이 지급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13년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은 신입사원들에게 <박정희 평전>을 나눠주며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 신입사원들에게 수출전선에서 국가대표로서 애국심을 강조하거나 박정희를 근대화의 국부로 떠받드는 모습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제가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과 산업전사로서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노 교수는 “1987년과 1990년대 이후 민주노조 성장 과정에서 반노동담론이 많이 완화됐는데 고용 불안이 심각한 사회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태같은 낡은 노동담론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친일 잔재·반공주의에 사상의 자유질식남은 건 대결·혐오 1.23 경향

(4) 정치 - 황국신민사상에서 정당해산결정까지

해방 후 정권 잡은 친일파, 정치 혐오·역사 무관심 조장 다원주의 뿌리 못 내려

문창극 식민은 하나님 뜻이인호 친일 청산, 소련 지령보수 인사 발언의 본류는 친일

새 희망 제시 못하고 분열·파벌로 점철된 야권 한국정치 퇴행 책임 커

#1 “대한민국 민주화는 좌파의 소유물이 돼버렸다. 한 가정으로 말하면 가장이 돈도 벌고 가족들에게 잘해주니까 자식이 민주화란 이름으로 아버지를 들이받고 뺨을 치는 격이다. 공권력이 회복돼야 한다. 66년 만에 서북청년단을 재건한 이유다.” (60대 서북청년단 이창우 총재)

#2 “구직하면서 가치관이 달라졌다.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해보니까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겠더라. 진보세력은 마치 시장경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새누리당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합리적 보수로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다.” (30일간베스트저장소활동 윤모 노무사)

 

#3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당대회를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관심도 없다. 당 대표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 같다. 국민들에겐 관심 없고 권력놀음하느라 자기들만의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다. 제대로 된 정책이나 공약도 보이지 않고 인물도 없다” (40대 서울시민 김모씨)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로 재판받는 조선인들. 일제 치안유지법은 일왕제를 부인하는 일체의 사상을 탄압하는 기구였다(위 사진).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19일 헌정사상 최초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고 있다. 치안유지법이 국가보안법으로 이름만 바꾸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대표적 사건으로 평가된다(아래).

 

올해가 해방 70주년이지만 한국의 정치는 아직도 일제 식민지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국가를 부모에 비유하는 낡은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보수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고 억압적인 지배질서에 순응하거나 체념하는 젊은 세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역동적인 정치참여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제가 황국신민사상을 내세워 맹목적인 충성을 강조하고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가는 상황이 됐는데도 독립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던 1940년 태평양전쟁 말기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다양성과 자발적 참여에 의해 움직여야 할 정치는 갈수록 좌우 이념대결과 진영 논리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퇴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 사태는 우리 정치에 잠재된 식민권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보당 해산 결정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존립을 지킨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상 국가권력이 정권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세력을 제거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일부를 비국민으로 낙인찍고 정당의 자격을 박탈한 사건이다. 국민의 자격 여부를 국가권력이 결정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일제의 황국신민사상과 근본적으로 궤를 같이한다.

 

제국주의 일본은 황국신민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낙인찍은 뒤 국민들에게서 배제시켰다. 우리 정치가 일제 식민권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해방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사상의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제 때 치안유지법이 해방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이름을 바꿔 시민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면서 우리 정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짓눌려왔다. 이 탓에 일당독재나 양당 대결 구도를 뛰어넘어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경험하지 못했다.

동국대 한상범 명예교수는 <사상·양심의 자유 짓밟아온 일제 치안유지법의 잔재>(1993)에서 “1945년 이후 남북분단과 냉전시대의 개막으로 남과 북 어느 곳에서도 사상의 다원주의가 실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되었다고 하는 몇 개월 동안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로부터 국수주의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다원주의적 공존시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공백기의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해방 후 다원주의적 사상이 우리 정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기원을 이승만 정권이 반공주의를 지배질서의 구축 기반으로 삼은 데서 찾는다. 일제가 치안유지법을 통해 일왕제를 부정하는 일체의 사상을 반국가 사범으로 처벌한 방식과 동일하게 이승만 정권은 일제 친일 관료들을 영입해 반공이 곧 애국이라는 사상을 강요하며 정부 반대파를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 반공주의가 일제 치안유지법과 얼마나 흡사한가는 (이승만 정권 시절) 사회안전법이나 전향제도를 비롯한 고문과 각종 탄압 수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일제 탄압체제의 못된 기술을 그대로 승계하고 개발한 것이 반공주의라고 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자유민주주의반공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그것은 일체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던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 반공 이데올로기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후 우리 정치가 한발 더 식민권력의 그림자 속으로 퇴행한 것은 1960~1970년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의존한 박정희 정권의 등장이다.

 

 

한신대 노중기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동원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담론과 법적통제는 일제의 황국신민사상과 맞닿아 있다박 전 대통령은 국가 전체적으로 충효사상을 강조하면서 본인 스스로 어버이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도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이상·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질서는 자신이 젊은 시절 일본군 장교로서 경험한 일제의 전시총동원체제였고 유신체제는 1938년 일제의 전시총동원체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책 중엔 1930~1940년대 일본 파시즘을 본뜬 것이 매우 많다. ‘유신이란 단어는 일제의 메이지 유신, 쇼와 유신에서 따왔다. 새마을운동 또한 일제의 농촌진흥운동에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국민들이 일장기 앞에서 암송하던 황국신민 서사에서 유래됐다. 일제 말 전시총동원체제에서 조선인을 감시하기 위해 매월 한번씩 개최하던 애국반반상회로 이어졌다.

 

해방 후 친일세력이 청산되지 못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의해 식민권력이 수명을 연장한 데는 분열과 파벌로 점철된 야권도 기여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세계독립운동사 가운데서도 한국의 야권은 가장 많은 파벌을 가지고 있었다며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의 여운형,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남조선노동당의 박헌영으로 갈라졌던 사실을 짚었다. 임 소장은 광복 70년이 되도록 정신을 못 차린 게 야권이라며 분열을 거듭하는 야권의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도 식민 조선 시절이나 해방 후 정권을 잡은 친일파들은 독립운동하는 놈들도 다 똑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퍼뜨리며 국민들 사이에 정치혐오와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했다아직까지 정치혐오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퇴행적 주장에 맞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퇴행을 야권 분열로만 돌리기보다 소수의 정치엘리트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치참여가 이뤄지지 않은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들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인이나 주권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혐오증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데는 식민지 시절 일제에 의한 일상적인 억압과 통제의 유산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책임의식이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하고자 노력했다. 해방 후 집권세력이 정치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도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전면적 자유를 누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 일제 식민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던 발언이 드러나 사퇴한 문창극씨 사례는 보수인사들의 의식에 자리 잡은 식민권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과 1996년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경험은 신민에 의한 정치가 시민에 의한 정치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간 경기침체와 함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잃어버린 10으로만 인식되면서 우리 정치에는 낡은 담론이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창극씨 총리 후보자 지명에 이어 지난해 임명된 이인호 KBS 이사장은 친일파 청산 주장에 대해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었다고 강의했다. 이외에도 김명수(교육부 장관 후보), 박효종(방송통신위원장) 등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한 인사들이 정부 주요 관직에 중용되거나 지명되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는 지난해 6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관이 정상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식민지에서 해방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친일세력은 늘 본류였다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잠시 도전을 받았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미 의존·다양성 불허 한국정치, 원조는 노론

병합 기여한 64조선 귀족작위일제와 결탁 식민권력 형성

광복 후엔 친미파 변신식민지 근대화론 등 지배계급 논리 활개

대미 의존적이고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정치는 과거 성리학적 질서에 의존한 채 다른 사상을 일절 허용치 않은 조선후기 노론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론이 일제와 결탁해 한일병합을 주도한 뒤 지금까지 지배세력을 형성하며 한국정치에 식민권력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은 재야 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2009<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서 처음 제기했다. 같은 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도 노론 연구를 통해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일제의 사이토 문서에 포함된 조선귀족약력1910년 일제 조선연구회에서 발간한 조선귀족열전에 따르면 일제는 한일병합 2개월 후인 191010월 조선인 76명에게 일본 귀족과 유사한 작위 및 은사금을 수여했다. 병합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작위를 받은 76명 중 64명이 노론이었다. 나머지는 소론 7, 북인 2, 남인 1, 중인 2명이다.

 

한가람연구소에 따르면 노론은 임금을 독살하고 신분제 강화를 통해 백성을 노예로 만들었다. 1910년 한일병합 당시 일제와 결탁해 매국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을사5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은 노론의 마지막 당수로 알려져 있다.

조선을 황제국인 중국의 제후국으로 인식했던 노론의 시대사상이 중국을 일본으로 대체했다는 주장이다. 노론 세력은 광복 후에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해체되면서 청산의 화살을 피한 채 친미파로 변신해 권력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친일파의 논리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포장돼 아직도 활개 치고 있다는 게 이주한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노론이 당시 집권세력이었기 때문에 귀족 대부분은 노론일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어쩔 수 없었다는 숙명론은 식민사관과 닿아 있는 역사관이라며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친일논란도 같은 선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발 더 나가 세월호 사태의 근본원인에도 식민사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제시대에 합병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지배계급 논리가 경제성장이 우선이다는 식의 물질주의 가치관과 철학으로 자리잡았다식민사관이 옷만 갈아입은 채 여전히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땅 위의 삶에 자를 대고 긋는 폭력적 재개발, 그 안에 조선총독부의 얼굴이 있다 1.2 경향

1) - 1934 조선시가지 계획에서 뉴타운까지

일제의 폭력적 실행력·미국식 도시설계 결합된 도시 계획을 말한다

2009년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고 서울 북아현동 낡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유영숙씨(53)는 하루 종일 인근 공사장의 건설기계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유씨의 셋집은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에 속해 있어 언제 헐릴지 모르는 상태다. 이미 지구 일부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시작됐다. 유씨는 “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강원 춘천에서 30여년 전 상경한 유씨 부부에게 서울은 좀처럼 을 내주지 않았다. 1991년 길음동, 2007년 순화동의 정든 터전에서 밀려난 것도 모두 재개발이 원인이었다. 재개발은 집 근처에 조그만 가게를 얻어 음식점을 운영한 유씨 부부에게서 생계수단까지 한꺼번에 앗아가 버렸다. 급기야 순화동 가게 철거 후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던 남편은 용산 철거민과 공동투쟁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유씨는 재개발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유씨의 비극은 1990년대 달동네에 대한 재개발 광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조선 땅을 폭력적으로 재편한 일제 조선총독부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대별로 폭력적인 도시개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울 아현재정비촉진지구의 자 형태의 가옥들이 2009년 당시 뉴타운사업 개발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시가지 계획령에 따라 토지구획정리를 하면서 생겨난 작은 필지들 위에는 주로 자 형태 가옥이 들어섰다. 조선총독부가 시가지를 개발하기 전인 1910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쫓겨난 토막민들이 모여 살았던 이곳은 해방 후 달동네로 불렸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하고, 시가지 확장과 도시 정화에 나섰다. 일제는 해방 전까지 경성(서울)에서 모두 10개 지구 1854에 걸쳐 구획정리사업을 벌였다. 만주 침략전쟁을 앞두고 전쟁 수행을 위한 거점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김주야 박사(도시건축사)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구획정리는 일본과는 다르게 토지 소유자에 의한 시행이 아닌 행정에 의한 집행을 전제로 한 것이 큰 특징이라며 관 주도의 자를 대고 긋는 방식의 도시개발 원형을 일제강점기에서 찾고 있다. 동시에 일제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해방 후 도심 슬럼가와 외곽의 달동네를 만들어내는 원인이기도 했다. 폭력적인 공공용지 수용방식이 문제였다.

 

김 박사는 공공용지 확보 등을 위해 토지를 공출받는 비율(감보율)1930년대까지 일본에선 10%대를 유지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감보율이 25%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높은 감보율로 33(10) 내외의 작은 필지가 30%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작은 필지엔 집장사들이 생겨나 자 형태의 작고 열악한 도시형 한옥들이 들어섰고 이들 지역이 슬럼화되면서 오늘날 재개발로 이어졌다. 현재 유씨가 살고 있는 북아현지구 역시 일제강점기 소규모 토지구획의 흔적이 지금껏 남은 곳이다.

 

비슷한 시기 오늘날 달동네의 기원을 이룬 토막촌도 생겨났다. 1910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농토를 잃고 도시로 모여든 농민들은 일정한 직업 없이 변두리 공유지에 흙으로 지은 움막(토막)에 살았다. 경성부는 위생과 미관을 이유로 토막촌을 여러 차례 철거했지만 토막민의 수는 오히려 늘어갔다. 경성부가 이들을 주로 산지 등 공유지로 수용하면서 달동네의 기원이 됐다. 재개발이 끝난 아현재정비촉진지구가 그 경우다.

해방 이후에도 관 주도의 일제 도시계획 방식은 그대로 재현됐다.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식민지 유산과 현대 한국 도시 변동’(2011)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 도시구획정리가 무허가 빈민 주택에 대한 강제철거 방식으로 이뤄진 것은 식민지기 관행이 그 연원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사업인 영동구획정리사업이다. 고속도로 용지 확보를 위해 1400에 이르는 토지가 구획정리 대상이 됐다. 김 교수는 토지구획정리를 악용하여 공공용지를 저렴하게 취득하는 식민권력의 횡포는 경부·경인고속도로 용지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도 계속됐다고 말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구획정리 규모가 클수록 개인 재산권은 소홀히 다뤄질 수밖에 없다“400만평의 영동구획정리사업은 개발독재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서울 영동(강남)지구 개발사업 기공식은 일제강점기 관 주도로 자를 대고 선을 긋는 폭력적인 도시계획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또 일제강점기 토막민이 있었다면, 1960~1970년대엔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철거민이 대거 생겨났다.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동부>에서 서울시는 1971년에만 판자촌 철거민 13만여명을 가구당 불과 20평 남짓의 땅만 분양해 광주대단지로 이주시켰는데 그것이 지금의 성남이라고 설명했다.

토지구획정리 방식의 도시계획은 1980년대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택지개발촉진법으로 변형됐다. 택지개발촉진법은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민심 호도용으로 추진했던 주택 500만호 건설의 수단이었다. 토지구획정리가 지주들로부터 공공용지를 공출받는 사업방식이라면 택지개발촉진법은 국가·지자체·토지개발·주택공사가 지주들로부터 토지 취득을 쉽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로써 서울과 수도권에서 대규모 주택단지의 계획·건설이 가능해졌고 아파트단지가 목동·상계동을 넘어 분당·일산·평촌·산본 등으로 뻗어나갔지만 부작용이 생겨났다.

 

개발 규모가 크다보니 자연파괴도 심각했고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버려지는 사람들도 나온 것이다. 19834월 목동지구 뚝방동네주민들의 항의가 시발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 강제이주정책으로 쫓겨와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한 사람들이었다. 사당·상계지구에서도 비슷한 항의가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일방적 도시행정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수도권 신도시 개발 바람이 잦아들 때쯤 이른바 뉴타운사업이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처음 추진됐다. 뉴타운 사업은 강북 낙후 문제 해결을 명목으로 추진됐지만 서울의 저층 단독주택과 노후 아파트가 다시 투기 광풍에 휩싸이는 계기가 됐다.

 

2002년 왕십리·은평·길음 등 세 곳을 시작으로 몇 년 새 뉴타운지구가 수십곳으로 빠르게 늘었다. 대부분 66~99(20~30만평)에서 최대 330(100만평)에 이르기까지 면적도 상당히 넓었다. 한때 서울시 전체 면적의 10%, 서울시 인구의 15%가 뉴타운지구에 속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뉴타운 바람은 거셌다. 여전히 도시계획이 거대 규모와 속도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시개발의 고질적 문제들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원주민 이주 문제, 전면적인 철거·개발 방식이 재현된 것이다. 2009년엔 뉴타운지구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10.9%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폭력적 도시개발에 대한 반성은 외부 위기가 계기가 됐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자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 전략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대규모 개발사업 대신 소규모·단계적 개발을 추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일제강점기부터 고질화된 전면 철거와 속도전에 대한 뒤늦은 반성인 셈이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우리의 재개발은 일제강점기의 폭력적 실행력에 미국식 도시설계가 얹힌 방식이라며 우리 사회가 일본도 미국도 아니라면 다수 동의라는 명목으로 경제약자의 도시생존권을 징발하는 방식의 도시계획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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