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터줏대감 2015년 3차 조사가 있었다. 처음 설정은 기장 일원을 돌고 강서 일부까지를 포함한 설정이었으나 짧아진 가을해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기장 일원만 소화하는데도 하루 해가 저물었다. 송정 바다가 변했다. 레저문화의 보급으로 서핑 교습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마치 큰 까마귀처럼 보였다.
첫 방문지는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옆 죽도였다. 어느 자료에 보니 기장 일광초등학교 교내에 후박나무가 노거수로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길에서 활동할 때 죽도에서 봐둔 나무가 후박나무였음을 떠올렸고 확인이 필요했다.
송정 죽도의 식물상은 해송과 후박나무 군락 중심이다. 다정큼 나무가 입구에 조금 보이고 동백 나무 등이 주요 나무다.
곰솔의 경우 가슴둘레 2m 이상이 6~7주 가량 있었고 그 중 생육상태가 우량해 보이는 것을 대상목으로 정했다.
근원부 2.9m 가슴둘레 2.31m 수고 13m 수관폭 동서 12m 남북 13m
토양굳기는 양호한 편이나 사람의 답압 등의 요인으로 추정되는 원인에 의해 뿌리의 노출이 있었다.
수형과 수세는 주변 나무들과 경쟁하는라 가지를 크게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원래 죽도에서는 후박나무만 생각하고 왔었는데 마침 그럴듯한 나무가 있어측정해 보았다. 솔직히 가슴둘레 2m 대의 소나무는 조금만 신경써 보면 도처에 보이는데 수령이 관견이다. 그렇다고 널부러진 것은 아니다.
죽도의 후박나무는 약 30 여주가 군락으로 자란다. 그중 가장 굵어 보아는 후박나무를 선택하여 신상털기에 들어 갔다. 가슴둘레 1.48 m 수고 11 m 동서 11.2 m 남북 13.6m
주변 후박나무들의 자람새를 살펴 보았다. 몇 그루를 빼고 대부분 가지 기부의 높이가 낮았디. 0.73cm, 0.55 , 0.50, 1.05. 0.38, 0.54, 0.73 등 부산지역에서 후박나무가 자연식생으로 자라는 곳은 이기대, 태종대, 안남공원, 몰운대 등이다. 그러나 있을 법도 한 대경목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기장해안로 변 롯데몰, 롯데몰 동부산점은 지하 2층 지상 4층에 땅 면적 12만8794㎡ 국내 최대 아울렛이라고 선전된 것이지만 여러 가지 비리문제가 터졌고 극심한 교통정체를 우려하여 개장승인을 보류해달라던 지역경찰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개장된 곳이다.
일대의 변화는 할말이 없다. 동부산권관광단지 조성이 얼마나 지역경제에 기여할 지는 모르겠디만
1927년 일광 보통학교로 시작된 일광초등학교는 2015년까지 87회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4번국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이화로 변에 학교가 있다.
개교 87년 적지 않은 세월이다. 식재되어 있는 나무들은 다른 지역 초등학교 또 역사가 오래된 학교 중에서도 드믄 사례였다.
일광초등학교는 인조잔디구장을 돌면서 예의주시되는 나무들이 있다.
학교 정문 옆 왼쪽편 담장 밖에 팽나무와 상수리가 있다. 주차장 부지에 있는 팽나무는 노거수 대상에는 좀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수형이 좋았다. 기부의 높이가 약 3.5m 로서 통싱적으로 봐 왔던 오래된 팽나무와는 평지 지형이라서 그런지 자람이 곧게 된 수형이었다. 가슴둘레 2.61m 수관폭 16.9m 남북 17.4m 수고 11m
학교의 후문인 듯한 곳에 오구나무가 있다. 가지 기부 0.8 m 하야 근원부를 측정한 결과 1.8m 수고 10m 수관폭은 동서 12.4m 남북 11.2m 였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 태청궁에 수령 200년의 오구나무가 있다고 한다. 원래 원산지가 중국산으로 우리나라에는 1930년대 도입되었다. 부산에서는 수영사적공원 가는 길에 주민자치센터 앞 마당에 제법 굵은 친구가 있다.
돌길의 낙엽 (石徑葉 석경엽) - 신위(申緯)
背石茅菴一徑迴 (배석모암일경회)
바위등지고 암자로 가는 꼬불꼬불한 길 하나
山寒烏桕染紅催 (산한오구염홍최)
오구나무는 산속 추위에 바삐 단풍이 드네
夕陽翳翳鞵鳴葉 (석양예예혜명엽)
저녁 해 저무는데 낙엽밟는 소리
有箇詩人覓句來 (유개시인멱구래)
어떤 시인이 시를 찾아 여기 오시는가
- 警修堂全藁冊二十一 > 北轅集[二] > 次韻荷裳十葉詩
1769(영조 45)∼1845(헌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화가·서예가)
신위가 살았던 때가 조선후기의 영조에서 헌종 시기인데 얼추 200년 전이다. 그런데 도입시기가 1930대 라고 했다. 신위가 산속에서 보았던 단풍든 오구나무는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다 . 오구나무의 단풍도 꽤 볼만하다. 같은 장소의 단풍든 오구나무를 퍼 왔다.(네이브 블로그 숲의 하모니)
어쨌든 거수의 오구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일광초등학교를 조사 대상지에 포함시킨 것은 지난 2003년 부산시 자연환경조사 목록에 주엽나무와 후박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밝히지면 당시 조사된 노거수 자원들의 상당수가 사라지고 없다. 강서나 북구의 경우가 심하다. 택지로 개발되거나 공단으로 개발되면서 상당량의 노거수가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해 조시때 학교나 관광서 주변 노거수들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라다 보니 일광초등학교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대상목을 새롭게 추가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노릇은 대상목들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학교측가 사전 사후에 관련 정황, 예컨데 나무의 식재시기라든가 관리현황을 추적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일광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입구에 자리한 후박나무 얼추 수령 100년이 다됐다. 송정 죽도의 후박나무 군락과 비교해 본다.
가지기부 1.3 m 가슴둘레 1.75 m 수고 8.2m 수관 동서 11.6 m
나무 주변 화단에 어린 싹들이 자리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학교 뒷편에 있는 팽나무였다. 동네 당산나무라고만 되어 있었다.
허리둘레 3.2m 수고 8.8m 수관 동서 12.8 m 남북 14.4 m
근원부에 외과 수술을 받은 흔적 있고, 상부의 가지가 학교 건물에 닿아 있었다.
이식이 된건지 그자리를 지켜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자리한 주엽나무의 경우 밑둥만 살아 있는데다 그의 절반 가량 만 거목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 역시 200년 수령인데
근원부 3.7m 수고 5.3m 직경 0.98m 수관 동서 6.9m 남북 7.3m 으로 측정됐다.
질긴디 질긴 생명이다. 어린가지에서 주엽나무의 본 모습을 본다
일광의 주엽나무 또한 적지 않은 수령이지만 현재 모습은 참혹하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독락당(獨樂堂) 회재(晦齋) 이언적이 거처한 고택(보물 제 413호)에 있는 수령 445년(1962년 천연기념물 115호 지정) 주엽나무(가슴둘레 4.6m 수고 6.5m 수관 동서 7.9m 남북5.2m)
일광초등학교에는 벚나무도 주목할 만하다
학교 담장 넘어 주차장에 있는 상수나무외 팽나무
팽나무의 경우 가슴둘레 2.61m 수고 11 m 수관 동서 16.9m 남북 17.4 m
서식 토양은 다소 건조한 편이다.
그래도 보기에는 참 좋다
오구나무의 수피
팽나무의 수피
지의류가 곳곳에 나무 줄기 중 하단부에 뿌리 내리고 있다.
오구나무의 원줄기를 표현하기 위해 성인 어른 둘이 섰다.
달음산을 배경으로 다음 대상목을 찾아 나섰다.
일광면 원리
지난해 시간적 여유가 없어 발굴 대상목록에 뽑아 놓고도 지나친 나무다. 위성에서 표기된 곳은 원리의 상리와 하리다. 상리마을은 달음산과 월음산 산록 말단부에 위치한다. 옛이름이 각단이며 원리 본 마을의 위쪽에 있다하여 상리라 불렀다 원리(院里)는 일광면의 북쪽 중앙부에 위치해 북으로는 정관면 예림리와 장안읍 좌천리, 서로는 용천리, 남으로는 청광리와 신평리, 동으로는 문중리와 문동리가 접하고 있다. 원리의 중앙으로 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가 관통하며, 동쪽 경계를 따라 기장 대로와 동해 남부선 철도가 지나간다. 자연 마을로 광산 마을, 상리 마을, 원당 마을, 하리 마을이 있다.
원리는 원동(院洞)이라고도 불렀다. 지명의 의미상 공해[官廳]의 하나인 원(院)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9년 원리를 경계로 울산군에 편입되면서 고을 간 경계 지점이 되면서 관원들의 숙박을 위한 원이 설치되는 관행으로 보아 이곳에 원이 설치되어 지명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료에 이곳에 원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아 지명 유래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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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상리 당산나무다. 가슴둘레 3.78m 수고 14m 수관 동서 25.8m 남북 26m 수관이 엄청나다
가상이 우렁차다
생육상태 양호하고 더불어 기분좋다 . 1987년 건립한 제당은 면적 7.9㎡[2.4평]의 슬래브 지붕에 여닫이문으로 된 건물이며, 좌향은 동남향이다. 제당의 오른쪽 벽에 방풍벽을 세우고, 그 밑에 제수를 놓는 제단이 있다. 제단은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 벽에 오른쪽부터 ‘배씨지신위(裵氏之神位)’, ‘양씨지신위(梁氏之神位)’, ‘허씨지신위(許氏之神位)’라고 쓴 나무 위패[가로 7.5㎝, 세로 26㎝]가 위패함 속에 들어 있다.
근원부 주변에 기와장과 사기조각 수북하다
이런 나무 만나면 기분이 좋다
원리에 당산목이 한 그루 더 있다.
하리 할배 당산이다. 제당[당집]은 1966년에 건립한 것이다. 제당의 건물 면적은 5.6㎡[1.7평, 앞면 225㎝, 옆면 257㎝]이며, 건물 방향은 서북향이다. 슬레이트 맞배지붕에 벽은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물이고, 문은 여닫이 외짝으로 된 함석 문이다. 제단은 직사각형 시멘트 제단[앞면 184㎝, 옆면 73㎝, 높이 42㎝]이며, 제단 앞에 시멘트로 만든 향로대[가로 20㎝, 세로 19㎝, 높이 22.5㎝]가 있다. ‘원하구리사주신지위(院下區里社主神之位)’라 쓴 나무 위패[가로 6㎝, 세로 39㎝, 두께 2㎝]가 제단 위 벽에 부착한 위패함에 세워져 있다.
당산나무는 곰솔이다.
가슴둘레 2.5m 수고 8m 수관폭 동서 10.6m
들 가운데 우뚝하여 눈에 띈다.
저 다리를 건너 돌아나오는 길에 쑥부쟁이 콘크리트 도로 틈새에 피었다. 아직 바퀴에 짓밟히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전에 기억으로 좌광천 중하류를 찾았으나 기분 잡쳤다.
하천정비 공사가 너무 심했다.
원형의 상실에 더하여 지나치게 치수 중심의 배수에만 하천 기능이 다하도록 했다. 시절이 언제인데 구태의연한 하천정비가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아무리 국지성 호우가 쏟아져 범람의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혀를 차고 기막혀 했던 현장이다.
기장군 일원의 땅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헌데 지역민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있다.
좌광천 하류부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공단이며 산업단지가 들어선다 하여 새로은 도로 개설과 하천 정비가 같이 이루어 지고 있었는데 과연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길에 은사시나무 아직 살아 있었다.
가슴둘레 3.35m 수고 19m 동서 수관폭 20.8m
현장에 나오면 이런 거수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여 질 때가 많다. 노거수 대열에 까우기에는 속성수고 도입시기가 오래지 않아서 흔히 하는 말로 노거수 감으로는 안친다는 것이다. 오래살지는 못해도 키가 큰 거수로는 이런 나무류는 드물다.
가끔은 헷갈릴 때가 많다 . 잎이며 수피가 ...전체적으로 수형을 더하여 보긴 한다만 워낙 잎의 변종이 많다 보니 ㅡㅡ
은백양 은사시
이태리포플러 양버들
좌광천 옆에 선 나무는 은사시 나무였다. 달려 있는 나뭇잎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수피로 접근할려치면 머리가 아파진다. 일테면 은사시 나무도 한창 젊은때면 회백색 줄기에다이아몬드 무늬가 가득하면 단박에 은사시 나무라고 쉽게 일아 보는데 수고가 20m 쯤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태리포플러 양버들 미루나무
쉽지 않다 결국 자주 보고 눈에 익히는 수 밖에
조사자들의 키와 나무의 키를 비교해 보면
좌광천의 하류가 싱거운 꼴로 변했다. 한때 이 물길을 따라 참으로 사람 위로 받는 길을 만들려교 꽤나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 덧 없다. 한때 기장군은 이 좌광천에 연어 치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http://blog.daum.net/bgtkfem/431
기장의 지도가 또 한번 바뀔 것이다.
부산시가 2017년 말 준공 계획으로 기장군 일광면 삼성·이천·횡계리 일대에 9천654세대, 인구 2만 5천여 명 규모의 신도시 개발을 본격화한다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2005년 12월 국토교통부로부터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 받았으나 7년여 만에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손을 들었다. 사업이 무산 위기에 처하자 부산시는 지난해 3월 택지개발사업에서 도시개발사업으로 변경했다. 시행자도 부산도시공사로 바뀌었다. 총 사업비는 5천869억 원이며, 전체 면적은 123만 8천930㎡이다. 주거지역이 59만 5천여㎡, 상업용지가 4만 6천여㎡이고 나머지는 도로·철도·공원 등 기반시설이 조성된다. 2014년말 기준으로 기장군 인구는 13만 2천507명쯤 된다고 한다. 인구는 급증 추세다. 따라서 대중교통수단의 확충이 필요한데 인구가 증가한다면서 온천지에 도로공사다.
기장 땅 곳곳이 파혜쳐 지고 있다.
월내로 가는길 고스락 식당 주변
월내에서 만나려고 했던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장안천의 하류 월내천도 온통 뒤집혀 있었다.
기룡리 조사 대상 첫 나무는 보호수 옆 느티나무였다.
원풍경이 보고 싶었다.
천변 느티나무는 가슴둘레 3.1m 수고 10m 수관 동서 21.5 m 남북 24.4m
이웃한 팽나무 보호수와 더물어 기룡리의 보물이다. 기룡마을 농산물 직판장 뒷편이다.
수형도 크게 나쁘지 않다.
보호수 No 2-16-2 팽나무 1982.11.10 지정 둘레 4.7m 수고 22m 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측해보니 수고 22는 아니었다.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10m였다.
한편 이 팽나무에 대한 정보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에 의하면 높이 20m, 둘레 4.4m, 뿌리 바로 위 둘레 4.4m, 수관 폭(樹冠幅)[나무줄기와 잎이 많이 달려 있는 줄기의 윗부분의 너비]은 20×9m이다. 이끼류와 담쟁이덩굴이 달라붙어 자라고 있다. 로 소개하고 있다.
노거수도 생목이기 자람의 변화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고의 변화가 이렇게 들쭉날쭉해서는 곤란하다.
직래장터를 개설한 것은 잘 한 것 같다. 일행도 여기서 도토리 묵이며 엽채류를 구매했다.
기룡마을 옛 전경이 지금보다 휠씬 평화롭다. 삶은 편해지고 나아졌는지는 몰라도 도처에 일어난 개발은 원형의 상실로허전함을 지울 길 없다. 물론 시골이라고 문명의 혜택이며 편의를 추구하지 말란 법이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방인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가지다를 충족하면서 마을은 지속될 수 있음에도 너무 쉬운 답만 찾아 가기에 우리는 삽시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보호수 No 2-16-2 팽나무의 2014년 겨울 모습이다. 육안으로 살펴도 수고 20m는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 안내판에 자주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기룡리 마을안쪽으로 들어 가 보았다. 기룡(寄龍) 마을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의 의미이다. ‘용 룡(龍)’ 자는 ‘미리’로서 머리의 의미로 두 글자를 합하면 큰 머리를 뜻한다. 장안천 변의 마을 이름은 모두 용(龍) 자와 건(乾) 자가 들어가는데, 이에 기룡은 장안천 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백일홍이 텃밭과 길을 경계하며 그 뒤에 팽나무와 개서어나무가 그림처럼 서 있다.
장안읍 기룡2길 68에 전주이씨 기장 입향조 14대손 이길부씨의 증조부가 식재했다고 한다. 이길부씨는 올해 75살이다. 나무의 수령이 윤곽이 잡히기는 하나 그렇게 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노인의 말대로라면 150~130 인데 130년이 그나마 근접할 듯하다. 기룡 마을은 경주 이씨(慶州李氏) 알평 후손(謁平後孫) 11세손 이재덕(李在德)이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부터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경주 이씨 원성군파 기룡 문중 재실,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조 이한(李翰)의 43세손 이길부(李吉夫)의 재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달해 후손(達瀣後孫) 8세손 김석만(金石滿)의 재실, 충주 지씨(忠州池氏) 기룡종문회의 재실 등이 있고, 이외에도 순흥 안씨(順興安氏) 자미 후손(子美後孫) 4세손 안평준(安平俊), 영천 이씨(永川李氏) 문학 후손(文學後孫) 5세손 이진우(李鎭佑), 밀양 박씨(密陽朴氏) 언부 후손(彦孚後孫) 4세손 박영호(朴永浩)가 정착하여 대를 이어 거주하고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개서어나무의 경우 가슴둘레 2.45m 수고 12.5m 수관폭 동서 23.9 m 남북 19.6m 의 외형을 지녔다.
바로 옆의 팽나무는 가슴둘레 2.86 m 수고 14m 수관 동서 21.5m 남북 17.4m을 기록했다.
두 나무의 생육환경은 이웃한 마당의 끝자락에 단을 세워 식재된 형태고 북서쪽 농사에 필요한 잡동사니가 조금 쌓여 있을 뿐 양호한 편이었다.
오히려 이노인이 밭작물에 그늘이 생긴다고 나무의 존재에 대해 다소 불만을 기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조상이 심었던 것이라 더이상의 말이 없다.
마을은 모두 16가구가 산다. 뒤산을 배경으로 집집마다 돌담이 정겹다.
가을해가 짧지만 이런 골목구경 놓칠 수 없다.
나무가 있음으로해서 마을의 화기가 돌고 정감있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 두 그루를 밭에서 일하던 아흔살 할머니가 부부나무라고 일러 주었다.
소나무는 기장 도예촌야구장과 경계부에 섰는데 철책을 넘어야 갈 수 있어 포기 했다.
돌아서 나오는 길 장안초등학교 북서쪽 담벼락 끝에 있는 300살 보호수 팽나무를 만나고 간다.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에 따르면 기룡리 300번지 소재 팽나무는 높이 18m이고 줄기가 두 가지로 갈라져 있으며, 둘레는 각각 5.7m와 1.7m이다. 뿌리 바로 위 둘레는 7.2m, 수관 폭은 25×23m이다. 이끼류가 나무를 40% 정도 뒤덮고 있으며, 가시성이 뛰어나다. 이정찬 외 1명이 소유자로 되어 있으며 면 보호수 제2-16-2-2호로 지정
보호수 안내판에는 수고 20m로 되어 있었다.
가지가 손상 당한 흔적이 보이긴 했으나 역시나 실측하니 10m로 나왔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웃한 장안로 75-16은 빈집이었지만 오래 전에 사용하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농기구들이 있어 눈요기를 하였다.
구르마(소달구지)며 함석지붕 잇된 기와집의 처마 그리고 정지문
기룡리에서 나오며 용소리로 이동했다. 지난해 저물녁에 본 팽나무를 밝은데서 보기위함이었다.
용소천의 상류부까지 약 3.2km 제법 골이 깊었다.
예전에 사람들이 밭을 일구어 먹을 법한 땅들이 묵정밭이 되어 있다.
소나무에 생긴 상처는 어렵던 시절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발 150~200m 골짜기 깊은 곳까지 길은 나 있다. 또 거기에 뭔가 삶터를 일구려는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겉흙이 두텁지는 않다.
다시 용소천을 타고 내려 온다.
직강화 된 하천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리라 아니 그 보단 이렇게 파 뒤비고 갈아 엎어야 먹고 사는 토건족 때문이리라
그야말로 장탄식이다 . 유로 길이 4㎞, 유역 면적 7.58㎢인 용소천(龍沼川)은 장안천의 지류로 용소리와 반룡리를 통과해 흐른다. 용소천의 상류부에 속한 1.3㎞의 일부 구간은 듬방골천으로 불리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생태 하천으로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 상류 곳곳에 작은 폭포가 소(沼)를 이루고 있고,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용담(龍潭)[깊게 파인 물웅덩이]이 있다. 용소천의 발원지는 불광산(佛光山)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삼각산(三角山)[472m]과 석은덤산[542.9m]이 자리한 고지대이다. 북쪽 삼각산에서 흘러든 지류와 남서쪽 석은덤산에서 흘러든 지류가 합류해 남동쪽의 계곡을 따라 흐르며 용소 마을 앞으로 흘러간다. 용소 마을의 남쪽을 지나 남동으로 흘러간 하천은 용소교를 지나 방모산의 서쪽을 통과해 남서쪽에서 흘러드는 덕산천과 합류한다. 덕산천과 합류한 용소천은 방모산의 북쪽을 통과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며 반룡리에서 장안천(長安川)에 합류한다. 하천의 상류부는 고산 지대로 계곡이 깊어 하천 양안의 경지 면적은 협소한 편이다.
숲의 구성은 그런대로 괜찮다. 개서어나무, 굴참나무, 비목나무, 생강나무 등이 소나무림과 혼재되어 있다.
용소천 보호수가 우람하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00년의 팽나무다
안내판에는 예의 나무둘레 3.5m 수고 20m라 되어 있다. 확인차 재어 보니 가슴둘레 3.85m 수고 14m 수관폭 24.5m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나무도 나이가 들어가년 키가 주는 것일까. 가슴둘레는 15cm 늘었다.
한편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에 따르면 용소리 63번지 소재 팽나무는 높이 18m, 둘레 3.9m, 뿌리 바로 위 둘레는 4.1m, 수관 폭은 18×18m이다. 멀리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아 가까이 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수형이 아름다우며 생육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면 보호수 제2-16-2-1호로 지정되었으며, 용소영농조합법인이 관리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존재해 줌이 더 없이 고마운 노거수인데 뒤죽박죽은 문제인 것 같다. 민관 합동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계곡의 물빛도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추정컨데 골짜기 안 까지 파고 든 사람의 집에서 배출되는 세제와 농약의 영향인 듯하다
하천 바닥에 예전에 보이지 않던 녹조가 두껍게 피었다. 흐르는 물 바로 떠 먹던 시절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물과 하천의 변화가 지금 세상살이의 바로 지표인듯 하다
용소천이 14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의 소나무, 다행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섰지만 콘크리트 옹벽에 겨우 줄기를 박고 서 있다. 예전에 이 길에서 골짜기 안을 바라다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졌었다. 골안을 배경으로 저녁연기 피어오른 마을이 무논에 어리고 불빛이 하나 둘 늘어 마침내 어둠에 묻힐 때까지 바라다 보았다.
오늘은 그 저녁 풍경대신 서편 비구름 머금은 저물녁으로 대신해 본다.
People Are Strange / The Do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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