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에서/오래된 미래

가덕도에서

by 이성근 2015. 10. 19.

 

 

휴일을 반납하고 조사를 위해  가족들의 도움을 요청한 날이다. 발굴 조사에 아내는 차를 몰고 기록하는 한편 막내 아들이 줄을 잡았다.  강서 가덕을 우선 대상지로 삼고 가락 을 경유하는 코스로 하여 일정을 세웠지만 역시나 계절적 한계를 넘기 어려웠다.

 

1872 군현지도  천성진도 (규장각)

코스는 가덕도 내 천성 > 대항 > 외양포 였다. 그리고 시산이 남는다면 계획한 대로 녹산 > 가락 순이었지만 가락에서 마감해야 했다

 

첫 방문지는 천성에서 였다

 

가덕에는 일제의 잔재가 그나마 많이 남아 있다.

 

우리식으로 표현 한다면초소 정도 인데 원형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일본군 초소랄까   그 옆에 자라는  소나무 굳이 재어 보지않았다

 

이 즈음 가덕도는 온통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었다  

 

대항으로  갔디. 전부터 만나고 싶은 대항 당산나무를 민나기 위해서 였다.

 

대항 당산에는 팽나무 4그루와 이팝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런데 어떤 개발바람 때문인지 주변은 도로개설로 인해 잠재적 위협을 안고 있었다.

 

가덕해안로 189  팽나무 가슴둘레 3.35m  수관 동서m 13.5 남북 20.5 m  수고

 

대항(大項) 마을은 행정동인 천가동 10통 지역이다. 가덕도 남쪽에 있는 가장 큰 목에 해당하는 마을로, 큰 목이라는 데서 한자로 기록하여 대항이라고 한다. 마을 중앙으로 흐르는 천을 중심으로 연대봉 쪽으로 아침 해가 먼저 비치는 곳을 양달이라 하고, 그 반대편을 음달이라 한다.

 

대항 당산은 높이 100cm정도의 직사각형 돌담장으로 이루어 져 있고 서향의 제당이 있다. 최근 이에 다하여 제당 아래 주차장을 만들면서 제당 앞 부분을 데크를 깔고 철재 팬스를 쳤다.

 

당산은 400년 전 마을이 형성될 때 돌무더기 제당으로 세웠다가 1920년대에 제당을 세웠고, 지금의 기와 우진각지붕에 블륵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제당은 1968년 건립했다고 한다. 당산운영 기금은 마을 공동어장의 수익금으로 한다고 하는데, 매년 양력 3월에 산신·여서낭과 고인이 된 어로장에게 감사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숭어들이 고사를 지낸다.

 

가장 큰 팽나무의 수고며 흉고를 측정하고 물러서니 모기에게 수 차레 뜯긴 후 였다.

 

그랬건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이런 등치의 고목을 만났다는 것이 

솔직히 나 같은 사람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 보니 적어도 이 부산 바닥 해안선이며, 산줄가, 그 사이 흐르는 계곡 계류와 하천을 넘어 이 노거수꺼지 두루 넘나 들며  만났다 . 그 지식의 깊고 낮음을 떠나 참 고마운 날이 아닐 수 없다

 

이팝나무 근원부 3.04m  수고 11.5m  수관폭 동서 9.4m  남북 11 m

 

대항 당산 나무 옆에는 전혀 생각지도못한 나무가 있었다

 

이 이팝나무를 누가 조사했눈지는 모루지만 참 딱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외눈박이 전문가들   마을 당제를 조사 한답시고 온통 엉터리였다.

 

가덕의  연대봉, 한때 저  연대봉에 얼마나 섰든가

 

가덕의미래는 어떤 방향이아야 하는가   변화는 거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조잡하거나 값어치 떨어지는 방식은 제발 사양한다.

 

 

 

외양포로 향했다

 

외항포 고개  소나무   근원부  3.6 가슴둘레 2.8 수고 16 동서 15.4 외 4그루

 

고개에 자리지키고 선 나무들 너무 고맙다

 

아마도 이 시대에도 변두리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고개에서 마을을 굽어 보자니 몇 그루 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적산(敵産)이라는 단어가 오늘도 마을 전체를 규정하는 곳이 외양포다.  원래 대항 보다 큰 마을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는 기구하다. 마을 곳곳에 일본군의 흔적이 도체 남아 있다. 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셋방살이를 강요 당해야 했고 지금도 그 역사는 유지되고 있다.

하여 "...좋기는? 한번 살아보라매. 불하를 해주야 될 낀데 안 해주니까 이라고 안 사나. 여 땅들이 이적지 다 진해 통제부(해군사령부) 땅인 기라. 그라이까네 집도 몬 고치고 살도록 하제. 비 새니까 겨우 지붕 새로 하는 것만 뭐라 안 카고." (한국일보 2013.11.13. 부산가덕도 외항포 중 )

 

가덕 해안로  1313-1 살구나무  수령 약 70년 근원부 2.2m   수고 7m  수관폭 동서 8.7m  남북 8.85m

 

집에와서 나무의 정체를 확인 하는 동정 작업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꽃이 없으면 수피나 줄기 잎만으로 동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막상 나무를 만나고 나면  획일적 관점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살구나무의 경우 이정도 수령이라면 금정산에도 비슷한 개체가  있다. 허나 흔치는 않다

 

집 주인은 이 나무를 일러 참복숭아 나무라 했든가

 

건너편 푸조나무를 연이어 만났다.

 

가덕해안로 1325번길 33  푸조나무   가슴둘레 4m  수고 14m  동서 16.3m  남북 17m

 

나무의 생육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미 동공이 진향중이고

 

그럼에도 봄이 오면 이 푸조나무 내  언제 그랬냐는듯 연초록 잎새로 마을을 지킨다.

 

수관폭이며 흉고 직경을 재기 위해 본의 아니게 따라 나선 막내가 바쁜 하루 였다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

 

포구 양쪽으로 펼처진 산줄기들 거기에 내가 찾는 노거수들이 지천에 깔였다

 

아직은 여름의 기운 완강히 남아 있어 침투는 올 겨울로 미룬다

 

 

 

눈여겨 볼 대목은 외양포 일원에 입조한 성씨들의 무덤가에 뿌리 내린  노거수들이다.

 

일대의 입향조로 기억되는 가문이 양천허씨 집안이다.  그들의 선산 주변에 식재된 나무들은 거목으로 마을과 선영을 지키고 있다.

 

한눈에 봐다 보통 크기의 나무가 아니란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산 자락 군데군데 그 시절 사내들인양 소나무처럼 우뚯 솟아 있는 모습 예사롭지 않았다

 

가덕해안로 1321-6 양천허씨 묘 소나무 수고  근원부 4.36m  가슴둘레 3.5m   수관폭 동서 21.4 m 남북 19.7 m

 

이런 덩치의 나무,  만나기가 쉬운 것은 아니기애 한참이나 바라보다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그나저나 왜 기존의 조사자들은 이런 거목을 못 보았을까 이정도라면 이 정도라면

 

 

 

 

 

양천허씨 묘, 그 숲에서 바라다 본 경치가 일품이다.

 

 

 

다시 고개개길 미쳐 헤아리지 못한 몇 그루 장송들이  팔을 뻗어 발길 한번 더 멈추게 했다.

 

대항을 넘어 천성으로 향한다. 필시 몇 그루 만날 것이다.  마을 생성의 역사 때문이다

 

가는 길 마을 골목 안에 마나는 익숙한 풍경을 만나 잠시 고향 집 생각했다

 

옛 천성초등학교 , 이 학교 역시 몇 해 전 폐고 했고 시방은 민석 체험 박믈관으로 바뀌었다.

 

록봉 어린이민속교육박물관

 

천성 분교는 약 7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여 주변 식재목의 경우 명함을 내미는 나무들을 미루어 짐작허니  얼추수령 70년~80 년 나이 때다 

 

수양버들이 한가롭다

 

천성(天城) 마을은 조선중종(中宗) 때 천성진(天城鎭)을 설치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1908년 두 면이 천성면과 가덕면을 병합하면서 첫 글자를 따 천가면(天加面)으로 하였는데, 이후 천가동(天加洞)이 되었다.

 

천성 마을은 마을 가운데 일자로 나 있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나뉘는데, 서쪽에 형성된 마을이 서중 마을[천가동 8]로 천성동의 중심이 되고, 남쪽에 형성된 마을은 남중 마을[천가동 9]이라 한다. 또 천성 만호진의 성문지를 중심으로 서문 마을, 남문 마을로도 불린다.  이 마을에서 만난 노거수는 팽나무외 푸조였다

 

가덕해안로 751번길 59   팽나무 가슴둘레 2.95m  가지기부 1.7m  수고 7m  수관폭 동서 9.7m  남북 13.3m

 

원래는 흙무더기 노출된 언덕 가장자리였다고 한다.  

 

마침 일요일이라  집의 큰 아들이 나와 식재 배경과 일대의 마을 이야기를 들 을 수 있었다. 흉고를 재어 본다

 

바닥 근원부는 맨 땅에 노출 정도가 심하다.

 

천성의 결과를 공유한다

 

팽나무 주인이 예전에 살았던 집이다ㅣ

 

흙벽에 기와나 볏집 아닌 슬레이트 지붕으로 마치 고향집  같아 무지 반가웠다.  저 토담집에 서린 역사가 또 굼금하다.  

 

 가덕해안로 751번길 63  푸조나무 수고 12 m 가슴둘레 3.3m    수관폭 동서  18m

 

조릿대들이 성가시게 가지를 펼치고 있지만

 

더욱이 이 집 주인 양반은 나무의 존재가 피곤하다 했다.

 

사람이 산다면 이런 모습 아니었을 것이다. 이 집의 푸조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그 옆집에는 감을 따느라 장대 높이 달았다

 

그리고 유자가 한참 익어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마을이 곱다 예쁘고 이런 마을 참 만나기 싶지 않다.

 

돌아서 나오는 길 스쳐 지나다 차에서 내려 확인한다

 

천성 저수지 방면 보문사 굿당 가는 길 서천로와 서촌로 42번 갈림길 175m 지점 

 

시천로 42번길 1227 소나무

 

수고 11m  가슴둘레 2.7 m  수관폭 동서 13.7m  남북 20m

 

이 소나무 또한 무덤지기로 심었을 듯하다. 용케 견디어 낸 새월이다

 

안타깝게도 관련한 자료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거수 발견의 재미와 기쁨은 이렇듯 의도하지 않운  장소에서 대상목울 만나는  일이다

 

수고14m    가슴둘레  2.39m  수관폭 동서 19.2   남북 19 m

 

붉는 수피의 소나무 일대에 우뚝하고 선명하다

 

 

 

 

 

 

 

가덕에서 나와 녹산 범방에서 몇 그루의 나무를 본다

 

옮겨 식재된 이식목이;다. 대관절 어디서 왔을까

 

예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일대는 또 다른 상전벽해가 되리라

 

가락으로 향한다 해가 벌써 서편에 기울었다

 

강서구 가락동 신기마을 가락대로 1433번길 7  멀구슬나무 수고 7m  가슴둘레 2.8 m  가지기부 1.9 m 동서m 수관폭 14m  남북 13m

 

신기 마을은 행정동인 가락동 14통 지역으로, 서낙동강변의 낮은 구릉성 산지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새터로 불렀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신기(新基)’가 되었다. 서쪽으로 봉림 마을, 동쪽으로 죽림 마을과 접하며 서낙동강이 흐른다. 마을 남쪽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일찍부터 진양 하씨(晋陽河氏)가 정착해 거주한 집성촌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김해 평야의 수만 섬 벼를 도정하던 조선식량영단(朝鮮食糧營團)[1943년 전시 군량 확보를 목적으로 양곡을 착취하기 위해 창설되었음] 자리에는 현재 금화곡물주식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시 마을은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에 속하였다

 

 

 

다만 서식환경이 열악하지만 이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조건을 수용한 듯 잎 무성하고 열매조차 무성하다

 

 

 

가락을 비롯아여 가덕 조사는 별도로 수행하리라

 

해 진다

 

혹시나 싶어 마을 끝까지 가 봤지만 만나지 모샜다 

 

 

 

 

 

 

 

가락 어떤 곳을 지나다  예쁜 수형의 팽나무를 보았지만 주인의 단호한 거부로인해 겉 모습만 읽고 돌아서야 했다  본디 자신들의 나무가 이니었음에  시유화 되면서 발 들이지 못한 지역이 되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그 줜 년의 태도에

 

어쩔거나 돌어서 올려다 본 하늘

 

그나마 남아 있는 김해들이 붉어 왔다.

 

 

 


Screamin' Jay Hawkins- I Put A Spell on You (1965)

At Home with Screamin' Jay Hawkins (Album)

Rolling Stone Magazine's 32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