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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2015 무화과 나들이 -거제 학동과 외도에서

by 이성근 2015. 5. 10.

 

1년에 한번 있는  고교 동기동창 부부 동반 1박2일 모임이 거제 학동에서 있었다. 거제 중앙로를 따라 구천호를 경유 그물기고개를 넘어 학동에 도착했다.  학동 몽돌밭은 거제 8경 중의 하나다.

친구들은 마산과 울산에 산다.  거가대교를 넘어면 거제라서 우리집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몰돌 밭 사이로 흘러드는 소하천은 노자산에서 발원한 학동천이며,  그외  조방골에서 2개의 물길과 대방골 1개 소하천이 바다로 유입된다. 그 외 고천과 수산쪽에서도 작은 소하천이 존재한다. 수질은 양호했다. 아직 이렇다할 큰 오염원은 없다.

마을은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대거 유입됨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을내 남아 있는 옛 집,  담장 너머가 궁금하여 문쪽으로 갔지만 큰 개 한 마리 인기척에 자다 말고 일어나 짓는 바람에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ㅁ 자 형태로 행랑채와 사랑채가 있었다.

우물이 있었고 주민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하고 있었다.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 노자산(老子山·557m)이다 연해 있는 산이 가라산으로  고려시대 송변현(松邊縣)이 있었던 곳으로 다대, 다포, 대포, , 부춘의 넓은 들이 있다. 거제도 남동쪽 사면을  에워싸고 있다.  천연기념물 233호의 동백군림과 팔색조의 서식지이다. 뿐만 아니라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의 희귀목이 자생한다. 합천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판 나무가 거제도에서 나는 자작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노자산· 가라산을 비롯한 거제의 5대 산에서 나는 박달나무, 자작(白樺)나무를 잘라서 바다로 이동하여 강화도로 옮겨 만들었다고 한다 

학동마을의 변화

2006년과 2010년 그리고 2015년 얼추 10년이 경과하면서 마을이 지도가 바뀌고 있다.

일행이 1박을 했던 불루베리 펜션, 주인이 친절했다.   그 말을 할려고  이 그림을 넣은 것은 아니다.  바로 바다가 보이는 길끝의 팽나무 때문이다. 비록 1박을 하긴 했지만  이 건물들이 없었다면 또 아니면 저 팽나무가 보이는 가로 환경을 만든다면 학동의 또 다른 명소가 될텐데 하는 아쉬움 지울 수 없었다.  

학동  팽나무는 수령 100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비록 오른쪽 큰 가지 하나가 제거된 상태이긴  했지만 생육 상태는 양호했다.

나무 아래 평상이 있는 것을 보면 주민들의 쉼터 기능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터에 팬션이 들어선다고 하니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해안가에는 곰솔이 열지어 있었다.  이 또한 눈여겨 볼 자원이다.  

숙소에 짐을 부리고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해무로 인해 신선대에서 바라 본 해금강의 풍광이 다소 빛이 바랬다.

기온이 높아 신선대를 포기했다.  차라리 바람의 언덕 대신 신선대로 갔다면 더 좋았을 텐데 ...

종만의 늦둥이 딸을 앉고 기념촬영을 했다.  30년 지기들이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몰려든 행락객으,로 인해 도로는 주차장이 되었다.  바람의 언덕은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도장포 어촌마을 북쪽 바닷가 언덕이다. TV드라마 이브의 화원(2003 SBS), 회전목마(2004 MBC)가 방영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바람의 언덕'이란 이름은 이 언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작명한 것이다. 이곳의 옛 이름은 띠가 덮힌 언덕이라 하여 띠밭늪이라고 한다.

경수 내외

강규내외

한희정 여사와 딸

우리집 김여사

 

우리집  막둥이

아지매들이 한 컷 했다. (이순연, 김여사, 이수임, 한희정)

 

 

이 시간까지 성찬이 도착하지 않아 우리끼리 한컷 했다.

바람의 언덕  솔직히 이 언덕에 대해 감흥이 없다.  매력적이지도 않고 ... 탁 트인 전망 말고 게다가 방파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람이 모인다고 그들의 편의를 위해 아님 그야말로 자연재해로부터  도장포를 보호하기 위해...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덧된 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바람의 언덕이  조잡해진다.  네들란드 풍차가 들어선 것 누구의 발상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다만 눈요기 일 뿐인 저 시설이 바람의 언덕을 상징하는 시설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차라리 이곳의 원래 이름인 띠밭에 주목하여 띠밭을 복원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저 풍차를 풍력발전의 개념이 투영된다면 해 본다.

이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인조잔디를 깔았다. 

얼쩡거리며 장난치는 두 아지매

우리집 막내,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완강히 저항했다.  하지만  막상 따라 나서고 나서는 오길 잘했다고 했다. 심지어 내년 모임에도 따라 올거라고 했다.

우리집 김여사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남편의 30년 지기들인데다  이 친구들이 김여사의 친구들과도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식 뒷풀이 때  재미나게  보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여서 같이 어울려 밥 먹고 자고 술마셔도 무방한  .... 아무튼

아지매들이 찬거리를 다듬고 있다.  성찬이 이때쯤 도착하여 합류했다.

종만이 통영에서 사 온 가리비와 전복 등을 다듬고 있다.

그리고 참돔 회를 썰고 있다.

숫불 위에 가리비가 익고 안주가 장만된 다음 본격적인 술 자리가 벌어졌다.  강규가 소주 한 박스와 양주 두 병 맥주 등을 준비했는데 귀가할 때 모두동이 났다.

어른 열에 아이 둘 1차 술자리가 끝나고 2차는 노래방이었다.

노래 잘 안부르는 김여사도 한곡했다. 막내가 신이 났다.

이렇게 어울려 춤도 추고 논다는 것이 참 오랫만이다.

술 자리는 숙소로 돌아 온 다음에도 밤 늦도록 이어졌고 나는 짐짓 술이 취한 척 자불었다.

아침에 다시 본 노자산.  2박 3일의 일정이었다면 나는 분명 저 숲으로 갔을 것이다.

노자산의 주요 식생으로는 왕개서나무, 개서나무, 개비자나무, 초피나무, 산초나무,고로쇠나무, 만주고로쇠나무, 배초향, 천남성, 측백나무, 층층나무, 후박나무, 단풍박쥐

나무, 두릅나무, 비술나무, 뽀리뱅이, 국수나무, 노각나무, 미역줄나무, 졸방제비꽃, 아비꽃대, 까치박달, 이삭여뀌,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청미레덩굴, 노린재나무, 굴피나무, 산딸기나무, 생강나무, 좁은단풍, 족제비싸리, 모시, 거북꼬리, 나도밤나무, 벗나무, 팔손이나무, 돈나무, 새머루, 개머루, 가새잎개머루, 설설고사리, 가새잎뽕나무, 참회나무, 치자나무, 배롱나무, 주름조개풀, 편백,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리기다소나무, 까치수염, 영산홍, 말오줌대, 당종려, 가시여뀌, 수유, 사람주나무, 덜꿩나무, 우산나물, 합다리, 참단풍, 광대싸리, 산거울, 다래나무,느티나무, 계뇨등, 등나무, 뽀리뱅이, 달피나무, 일엽초, 고사리, 고비, 꼬리고사리, 고비, 왕버들, 갯버들, 갈대, 오리새, 비비추, 오리방풀, , 단풍마, 조뱅이, 지칭개,쥐꼬리새, 대사초, 귀리, 개밀, 달뿌리풀, 주름조개풀, 길뚝사초, 솔방울고랭이, 닭의장, 여로, 오리나무, 한삼덩굴, 까치수염, 맥문동, 개승마, 기린초, 용담, 새모래덩굴,광대나물, 그령, 수크령, , 개솔새, 억새, 실새, 김의털, 등나무, 노루귀, 바위채송, 바위솔, 쑥부쟁이, 구절초, 석곡, 패랭이꽃, 밀사초, 보리사초, 독새풀, 방동산이,도깨비바늘, 둥굴레, 자리공, 박주가리, 매꽃, 쇠물푸레, 솔나물, 배풍등, 번행초, 알방동산이, 진달레, 산철쭉, 팥배나무, 두매고들빼기 등이 자란다고 했다.

학동 곰솔림  대부분의 곰솔들이 거대한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장면은 아니었을 것이다.   추측 해 본다.  산책로를 개설하거나 주변 숙박시설이 들어오면서 혹은 태풍의 내습때 유실했거나 ... 

아침 나절 일대를 들러 보았다. 

 

마을 뒷편에서 바라본 학동마을, 펜션들 사이로  팽나무가 빛난다.

외도로 가기 위해 도장포를 다시 찾았다.

 도장포는 갈곶리 갈개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핵동만의 안바다로 파도가 잔잔하여 대한 해협을 지나가는 배들이 쉬어가는 곳이므로 옛날 원나라와 일본 등을 무역하는 도자기 배의 창고가 있었다 하여 도장포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한다. 마을은 언덕에 경사를 따라 발달 해있다. 현재 96가구 220명이 살고 있다.

외도로 가는 배 시간이 남아 마을을 둘러 보았다.  수령이 꽤 되어 봄직한 동백나무가 마을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까마귀쪽나무도 많이 보였다. 

도장포 마을숲은 지난 2003년 제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외도 행 배는 거제 다대포항과 구조라에서도 출항한다, 세월호 이후 선박안전 사고에 대한 구명조끼 착용법 등이 필수가 되었다.

 

출항 전 한컷

다소 바람이 있던 이날 바다는 조금 거칠게 다가 왔다.  거제 해금강

1971년 대한민국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보통 북한 금강산의 해금강과 구분을 하기 위해 거제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해금강 마을 남쪽 약 500m 해상에 있다. 두 개의 큰 섬이 맞닿아 있는데 원 이름은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갈도(葛島). 십자동굴, 사자바위, 환상적인 일출과 월출로 유명한 일월봉 등이 있다.

 

 

너무 재미있어 했던 막내

배는 해금강을 뒤로 하고 외도로 향한다.

갈곶도와 서이말등대 사이에 위치한 외도는 거제에서도 상록 활엽수림이 잘 보전되어 오던 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섬 주위의 경사면지대를 제외한 중앙의 평평한 곳은 관광식물원으로 개발되어, 하루에도 수백수천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유명한관광지로 되었다.

 

외도는 과거에 바위만 무성한 황폐한 무인도에 가까운 섬이었다. 육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전기시설도 통신시설도 없었다. 광복 직후에는 8가구만이 살고 있었는데, 배로만 갈 수 있는 접근성이 떨어진 곳인 데다가 광복 후 초기에는 변변한 정박시설조차 없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경사진 밭에 고구마를 심거나 돌미역을 채취하거나 고기잡이를 하며 생활을 하였다. 기상이 악화되는 날이면, 10여일간 교통이 두절되어 곤란을 당하기 일쑤였다.

 

19697월 이창호는 이 근처로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하룻밤 민박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73년까지 3년에 걸쳐 섬 전체를 사들이게 된다. 이 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순천이었는데, 부부는 이 섬의 자연에 매료되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는다.

1970년대 초반부터 이 섬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고구마밭에 감귤나무 3천 그루와 편백 방품림 8천 그루를 심어 놓고 농장을 조성하였는데, 여러 차례 실패를 겪고 농장 대신 식물원을 구상하여 30년 넘게 가꾸면서 다듬어졌다. 1990년에는 건설부로부터 외도 문화시설을 지정받았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1992년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외도문화시설 공원사업허가를 인가했으며, 외도에 문화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94325일 주식회사 외도자연농원을 설립하고, 1995415일 외도해상농원을 개원하였다.

 

2001년 문화관광부 지정 식물원으로 외도조경식물원이 등록되었고, 2002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회를 제작하고 방영하였지만, 200331일 이창호 회장이 세상을 떠난다. 2008년에 1 방문객 100만을 돌파했다.(위키백과)

외도 주말 탐방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들에 떠밀려 이동했다. 탐방시간은 고작 2시간  배삯 16,000 + 입장료 8,000원 치고는 박했다. 그렇다고 평일에 올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   

 

 

 

 

 

Spartium 콩과(포르투칼) 우리나라의 머랑 닮았는데 생각이 안난다 ㅡㅡ

 

 

 

 

 

 

 

 

 

 

 

 

 

 

 

 

 

 

 

 

 

 

 

 

 

계단식 녹색 쉼터

가이즈까 향나무로 조성한 쉼터

선착장을 만드는데 6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했다.  매시간 유람선이 사람을 실어 날랐다.   

외도는 순전히  사진 찍기용 방문이었다. 해서 아쉬웠다.

 

귀가길 해물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집에서 맛본  죽순나물과 가지무침이 맛나 담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