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종택에서 1박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밤새 빨아 널었던 빨래를 걷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자연과 조화로운 농암종택을 칭송했습니다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그 조화를 어줍잖은 관광의 이름으로 상품화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흠들입니다. 이미 농암의 별다인 애일당은 서쪽 영지산 기슭으로 옮겨졌고, 영천이씨 종택인 긍구당과 농암을 모신 분강서원은 이곳 은혜리에 이건되었습니다.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였습니다. 그것은 도산서원도 마찮가지입니다.
강물이 휘어돌듯 저 역시 낙동강이 일부인 것 처럼 떠나온 길을 보니 농암종택이 은사시나무 손 흔들듯 배웅을 합니다. 농암 이현보를 기억하게 하게 하는 것은 어부가입니다, 그것을 요즘 풍으로 옮기면
이러한 가운데(사람의 생활 중에서) 근심이 없는 것은 어부의 삶이로다. / 조각배를 넓은 바다에 띄워 두고서 / 인간 세상을 모두 잊었으니 날이 가는 줄을 알겠는가?
아래를 굽어 보니 깊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고, 주위를 돌아보니 겹겹이 둘러 싼 푸른 산이로구나. / 열 길이나 되는 붉은 먼지(어지러운 세상사)로 얼마나 가려져 있는가? / 강촌에 달이 밝게 비추니 마음에 아무 근심이 없구나.
푸른 연잎에다 밥을 싸고 푸른 버들가지에 잡은 물고기를 꿰어, / 갈대꽃이 우거진 떨기에 배를 매어두니, / 이런 일반적인 맑은 재미를 어느 사람이 알 것인가.
산머리에는 한가로운 구름이 일고 물 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네. / 아무런 사심없이 다정한 것으로는 이 두 가지뿐이로다. / 한평생의 근심 걱정을 잊어 버리고 너희들과 더불어 놀리라.
서울 쪽을 향해 돌아보니 궁궐이 여기서 천 리 밖에 있구나. / 고깃배에 누워 있어도 나라 일을 잊을 틈이 있겠는가? / 두어라 내가 근심하지 않아도 세상을 구제할 현인이 없겠느냐?
퇴계길ㆍ예던길이라고 단천교까지 약3km 퇴계가 거닐던 길입니다.
조용한 진군입니다.
학소대입니다.
아 여기에 먹황새들이 왔었구나 잠시 혼자말로 읖조림니다. 참 예전에는 지천으로 보였는데, 이 나라의 산과 강이 병이 들다 보니 흔한게 귀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해 람사회의 하면서 중국으로 선물받았다는 따오기 역시 참으로 흔한 새 였습니다만 이 땅에서는 멸종된 새입니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직 명함을 내밀 정도로 서식하고 있습니다.
단천교를 지남니다.
단사마을을 지남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낙동강의 본 모습이 볼 수 있는 곳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살이며 물길도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안동댐은 일대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버린 채 속수무책 가라앉혀 버렸습니다.
수박밭을 만났습니다. 모래성분이 많은 땅이라 수박이 자라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안동땅에 수박을 재배한다는 사실이 좀 의외라고나 할까요
작은 전지가위를 든 할머니 한 분이 사진을 찍지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도산서원 지나 강을 건너 섬촌 들을 가로질러 선착창으로 향합니다.
가뭄으로 안동호의 바닥이 드러난지 오래입니다.
많은 비가 오면 저 바닥에는 물이 들 것입니다.
이 다리가 주진교인지 예안교인지 ...
아무튼 여기서 안동댐까지 배를 타고 이동합니다.
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댐입니다. 총저수량은 9억2천6백만톤(혹은 12억4천8백만톤 이라고도 함) 이 이긴 하나, 평소 홍수 등을 대비하여 평상시 저수량의 50% 이상을 가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댐의 기능상 큰 비가 내리면 댐 스스로가 살기 위해서라도 물을 방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더하여 댐 하류 지천들이 쏟아내는 골자기의 물들이 일제히 본류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 본류에는 임하댐 물도 더해집니다. 그 물의 세력이 거침없이 남하할 때 영남의 낙동강은 황토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가장 상류의 황지천 지류는 소도천과 철암천이 있고 그것이 봉화로 연결되어 송정리천, 석포리천, 현동천, 덕신천, 재산천, 운곡천, 범진천, 도천천,내성천, 가례천, 낙화암천, 행개천,도일천의 물을 모아 퇴계종택과 도산서원을 휘돌아 안동댐으로 흘러 듭니다. 더하여 주왕산 쪽 영양, 청송 계통의 물이 임하댐으로 흘러들어 고였다 낙동가에 더해집니다.
그러나 안동댐은 비참했습니다. 그 비참은 가뭄에 드러난 댐주변의 산자락들이기도 하고, 댐이 만들어 지면서 수몰된 마을과 이 지역의 역사입니다. 6개면 51개 마을 및 안동시의 51개 동.리가 수몰됐고, 총 3천1백34세대, 2만6백 여명이 고향을 잃었던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3년전 1976년의 일입니다. 이웃한 임하댐 역시 안동시와 영양군 6개면 35개 마을을 수몰시키며 1천7백74세대 9천백39명을 강제 이주시킨바 있습니다. 1992년 5월의 일입니다. 홍수를 방지하고 전기를생산할 요량으로 다목적 댐이긴 하지만 댐 건설 이후 열거할 수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가 드러났고 그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마치 낙동강 하구둑이 들어서기 전과 후의 변화처럼... 결국 물은 흐르게 두어야 할 일입니다. 수자원 확보니, 홍수방지, 전력생산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합니다. 모두가 강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사람의 관점, 도시화의 관점, 개발의 관점에서 도모된 실패입니다.
선박을 통해 안동호를 이용하는 주민을 위해 세워둔 이정표가 낯이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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