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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19.4.1~11 文정부의 세 가지 '오판

by 이성근 2019. 4. 11.

맹공 퍼붓는 조선일보‏…청와대 대응 역부족 PD저널 19.4.11


눈뜨면 터지는 연예인 범죄에 가려진 이름  PD저널 19.4.10

통계, 거짓말 그리고 정치 경향 2019 4.11

지금 도덕적이고 겸손한가 경향 19.4.8

한국의 혐오정치: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한겨레 2019.4.9.


정부의 세 가지 '오판' 프레시안 19 4.9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공인일까

조선일보 방 사장일가의 패륜, 한국 언론의 수치 19.3.8 경향

집권세력 '+α' 없으면 탄핵 이전으로 돌아간다 프레시안 19.4.5

허수아비 공격하는 최장집의 관제민족주의론한겨레 2019.4.4.

양비론에 기생하는 정치 한국 19.4.4.

황교안 지지율의 허실 한국 19.4.4

문재인 정부의 ‘4경향 19.4.4.

공정한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 경향 2019 4.3

홍길동의 출현을 기다리는 심리 경향 19.4.3

김의겸의 각자도생’ 19. 4.2 경향

인생을 건 부동산 투기 경향 19.4.1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역사인식의 뿌리 한겨레 19.4.1

문재인 정부 인사 무엇이 문제일까 한겨레 19.4.1



맹공 퍼붓는 조선일보‏…청와대 대응 역부족

, ‘대통령 산불 당일 음주' 가짜뉴스 강력대응 방침...유튜브 통해 가짜뉴스무차별 확산

<조선일보>가 박근혜 정부 시절과 대조적으로 청와대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자연 재해, 개인의 죽음도 청와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공격에는 <조선일보>, TV조선, <조선일보> 언론인이 진행하는 유튜브 등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청와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여기에는 합법, 불법, 탈법의 경계도 무의미하다.

 

이에 반해 청와대의 대응은 점잖다보다는 무능해 보인다. 고작 한다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이 출입기자와 논쟁하거나 해명하는 식이었다. 상대는 십자포화를 퍼붓는데, 빈약한 방패 하나 들고 맞서는 형국이다.

 

청와대가 힙겹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 민심을 다잡아둘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또 미디어 환경 변화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대다수의 미디어 소비자들은 매체의 이름보다 제목과 내용을 보고 뉴스를 선택한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나 오보를 다른 매체가 팩트체크 등을 통해 바로잡는 노력도 있었다. 과거에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다른 신문사들의 교과서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언론이 언론을 감시견제하는 건강한 구조가 비교적 형성된 모습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해 지지율 덕을 보던 시절은 지났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에 비유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던 TV조선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한 화력을 올해부터 더욱 높이고 있다.

 

야당보다 더 무서운 언론권력의 실체에 직면한 청와대의 대응도 부산해졌다. 청와대는 이제야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가짜뉴스에 대해 묵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 9문재인 대통령이 강원 산불화재가 있었던 지난 4일 저녁 신문의 날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장과 술을 마셨다는 등 터무니없는 가짜뉴스가 시중에 떠돌았다이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는가 해서 대응하지 않았으나 일부 정치인들이 면책특권에 기대 정치적으로 악용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 부대변인은 최초 거짓말을 유포한 진성호 방송신의한수에 대해 청와대는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로 강력 대응할 것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출신 전위대인 진성호 방송과 신의한수는 지난 6일 나란히 유튜브 방송에서 문 대통령 음모론을 내보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강력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가 강력 대응을 예고한 보수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 지난 10일 영상 갈무리.

 

<조선일보>는 비슷한 시각, 주영훈 대통령 경호처장이 청와대 직원에게 자신의 관사 가사도우미 일을 시켰다는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 역시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야당을 비롯한 태극기부대에는 복음같은 뉴스로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한 법적 검토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강력한 대응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명예회복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적대응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다. 언론 보도의 특성상 한번 보도되면 나중에 오보로 드러나고 정정보도를 받아내더라도 원상회복은 어렵다. 그래서 선진국은 보도 전에 충분히 주의의무를 갖도록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무거운 사회적법적 책임을 묻는다.

 

우리 언론은 자신들의 불법, 탈법에 대해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언론 자유 침해를 내세우며 방어하고 있다. 야당 위에 조선일보가 진두지휘하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가짜뉴스, 오보 등을 의혹으로 포장해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모습은 스스로 언론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행태다.

 

청와대의 무기력한 대책은 언론의 공격 앞에 개인 인격권 수호를 포기한 모습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동원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얼마나 제한적이며 그 판결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검토해 방송통신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이 대안 마련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공격만큼이나 방어도 철저하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조선일보>'2009<조선일보>가 경찰 수사 당시 경찰에 외압을 가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MBC <PD수첩> <미디어오늘>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냈다. 언론의 자유는 자신이 공격받을 때만 내세우는 상투적 수단이 아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PD저널 19.4.11

 

눈뜨면 터지는 연예인 범죄에 가려진 이름

버닝썬 유착 의혹’ ‘김학의장자연 사건수사 지지부진...포털엔 줄줄이 연예인 수사 소식만

버닝썬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클럽 내 마약 유통과 불법 영상 유포, 경찰과 클럽과의 유착비리 등의 이슈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올라왔다. 이와 맞물려 유야무야 묻힐 분위기였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범죄 의혹과 장자연 사건재조사도 탄력을 받는 듯 했다.

 

MBC <PD수첩>이 때마침 <조선일보> 일가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면서 권력층에 대한 공분이 모아졌다. 대통령까지 이 사건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언급했을 즈음에는, 사이다처럼 진실이 밝혀질 날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폭로들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지 두어 달 쯤 된 지금, 판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더뎌 보인다. 김학의 전 차관은 출국을 기도하다 붙잡히기까지 했는데, 그 후 수사에 속도를 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장자연 사건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는 배우 윤지오 씨는 위급 상황에도 9시간동안 경찰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 동안 <조선일보> 일가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 지면에서 스멀스멀 자취를 감췄다.이 모든 것이 지지부진한 와중에 활발하게 업데이트되는 소식이 있다. 언론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승리를 파헤치나 싶더니, 그의 친구 정준영이 단톡방에 불법 영상을 유포했다는 소식을 앞다퉈 톱뉴스로 내보냈다. 뒤이어 그 단톡방에 어떤 연예인이 있는지 맞혀보라는 식의 보도가 며칠 내내 이어졌다.

 

정준영의 또다른 단톡방에 있던 연예인들이 내기골프를 했다는 소식이 지상파 9시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한 방송인이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보도로 포털사이트가 도배되어 있고, 댓글창은 마약을 투약했다는 또 다른 연예인 A씨의 신상을 파헤치느라 바쁘다.

 

갑자기 세월호 참사가 있던 즈음의 편집실이 생각난다. 당시 어떤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서브 PD였는데, 프로그램 방송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당연히 그 주 예능 프로그램들은 모두 스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방송 전날 갑자기 방송 송출을 강행하라는 지시가 편집실로 내려왔다. 풍악을 울리는 음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면 방송을 내도 괜찮다는 것이 이유였다.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뉴스는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을 때였다. 프로그램 메인PD 선배와 나는 강력히 반대했지만, ‘불통으로 점철되었던 시절이었다. 결국 최대한 웃음기를 걷어내고 웃음 효과도 제거한, 기이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방송 후 프로그램과 제작진은 당연히 네티즌들의 악플 폭탄을 받았지만, 세월호 뉴스로 가득 차있던 포털사이트 뉴스면은, 예능 프로그램 기사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는 데 성공했다.

 

예능 프로그램, 연예인은 대중이 가장 쉽고 친근하게 화제에 올릴 수 있는 존재다. 정치경제 뉴스보다 대중들의 반응 속도가 빠른 것이 연예 뉴스다. 정말 심각한 국가적 이슈가 터져도 톱 연예인의 열애설이 불거지면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세월호 참사 당시 완성된 방송 테이프를 주조정실로 보내면서 참담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이용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때만큼은 내가 웃긴 프로그램을 만드는 예능PD가 아닌,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눈들을 잠시나마 돌리는 데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재미없게 나가면 창피할까봐 끝까지 만듦새를 이리저리 매만지던 기분은 아직도 묘하게 남아있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들이 그 때의 상황처럼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하루에 한명씩 나오는 것 같은 연예인의 이름에 김학의, 방용훈, 버닝썬 그 밖에 진짜 밝혀야할 진실들이 자꾸 가려진다는 느낌이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예인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끌벅적한 연예뉴스가 만들고 있는 연막이 예능PD인 나도 오늘따라 너무나 답답하다.

허항 MBC PD /PD저널 19.4.10



통계, 거짓말 그리고 정치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영국의 보수당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렇게 알려진 것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금연이라며 자신은 매일 담배를 끊는다고 너스레를 떨던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의 말인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이 말은 진실을 왜곡하려는 정치인들과 사이비 학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게 통계라는 점을 경고하는 경구이다. 통계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논거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집단들에 의해 악의적인 왜곡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통계 자체는 숫자에 불과하니 참과 거짓을 논할 대상이 아니지만 그 숫자 속에 담겨있는 정보는 순수하고 깨끗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숫자로부터 올바른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숫자들에 끼어 있는 먼지들을 먼저 털어내야 한다.

 

작년에 가계동향조사의 분기별 자료가 발표되면서 소득분배지표가 악화되었는지의 여부를 놓고 진행된 논란만큼 우리나라에서 통계를 둘러싸고 왜곡과 거짓말이 요란스럽게 진행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통계청은 작년에 분기별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총소득이 2017년 동 분기에 대비하여 7.0~17.7% 줄어들었다고 발표하였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마뜩잖아하던 보수성향의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일제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며 당시 경제정책을 총괄하던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바 있다.

 

나는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8월에 이것은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안임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작년 829일자로 경향신문에 기고한 어설픈 통계조작의 음모론이라는 칼럼에서 나는 발표된 자료만을 가지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스럽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인데, 첫 번째는 2016~2018년 사이에 표본수와 표본구성에서 큰 변동이 생겼고, 두 번째는 2017년과 2018년 사이에는 표본을 추출하는 인구센서스도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신문기고뿐 아니라 국회토론회에서의 발표와 라디오 및 TV의 많은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인들, 이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사이비 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였다.

 

올해 3월 말 개최된 한국재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강창희 중앙대학교 교수와 나는 공동연구논문에서 2018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나타난 소득분배 악화 현상이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우리는 지난해 1분위 가구의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2017년과 2018년 사이에 모집단과 표본이 변경되면서 나타난 변동진정한 변동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진정한 변동1990년대 중반 이래 구조적이면서도 추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 및 양극화의 심화에 의한 변동부문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시행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의한 변동부문을 함께 포함한다.

 

이중차분법이라는 통계학적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분위별 실질소득의 진정한 변동을 분석한 결과, 7.6% 감소한 것으로 발표되었던 작년 2분기의 1분위 총소득은 20172분기와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발표에서 7.0% 줄어든 것으로 나왔던 지난해 3분기 1분위 소득 역시 2017년 동기대비 0.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4분기 소득의 경우에는 1분위 평균 (실질) 소득의 진정한 변동이 마이너스 10.2% 정도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2017년도 4분기의 1분위 평균 소득이 다른 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20184분기의 1분위 소득 감소를 2018년 정책들의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아울러 우리는 20191분기에는 20181분기와 비교할 때 최소 마이너스 1%에서 최대 2% 정도의 진정한 1분위 총소득의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물론 우리가 사용한 추정방법은 몇 가지 가정에 의존하며 이들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우리 논문의 추정치는 진정한 소득변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통계를 왜곡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엄밀한 연구방법을 통해 소득분포의 진정한 변동 양상이 규명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 2019 3.11

 

지금 도덕적이고 겸손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인사와 관련한 술회가 없다. 시스템 인사를 정립시킨 참여정부는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별도의 인사 실록을 퇴임 전부터 준비했다. 뒤늦게 2013년 나온 밀실에서 광장으로 참여정부의 인사혁명이라는 수식이 붙은 <대통령의 인사>(박남춘 대표 집필)가 그것이다.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 속에서만 인사를 했다. 추천(인사수석), 검증(민정수석), 결정(인사추천위원회) 단계마다 보완·견제 시스템도 촘촘히 가동했다. 추천 단계에서 자문위를 두어 지역·영역별 인재를 발굴해 추천하고, 외부인사까지 참여하는 검증자문위를 두고 공직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자문했다.

 

시스템 인사의 위력은 결과로 증명된다.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숫자, 낙마율이 가장 낮은 정부가 노무현 정부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경우도 제일 적다. 청문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인사의 비율도 가장 낮다. 야당도 적격이라고 동의한 인사가 많았다는 얘기다. 낙마와 임명 강행을 포함한 인사 논란비율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역대 가장 인사검증을 깐깐히 했던 정부가 참여정부인데, 그 민정수석이 저다. 인사검증에 관한 방대한 매뉴얼을 마련해 놓고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매뉴얼만 따랐다면.”(2017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

 

그 매뉴얼에 충실했을 문재인 청와대의 인사 성적은 낮은 수준이다. 2년 동안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인사가 8명이다. 각기 11명씩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아직적지만, 참여정부에 비해선 벌써 곱절 이상이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10명에 이른다(이명박 정부 17, 박근혜 정부 10, 노무현 정부 3). 지독한 야당을 상대한 탓도 있지만, 대통령의 인사에 독하지 않았던 야당은 없다.

 

같은 시스템 인사인데 왜 이럴까. 우선 인재 발굴의 치열함이 수반되지 않고, 검증 잣대가 무디어지면 아무리 완비된 시스템일지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여태껏 낙마한 인사들의 흠결은 대부분 청와대가 알고도넘어간 것들이다. 결국은 낙마를 불러온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검증 단계에서 놓친 게아니라 문제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심대한 일이다. 어쩌면 내재화되고 있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택 3채 보유에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전세금을 올려 유학 중인 아들에게 포르셰를 사준 것이 무슨 문제였겠느냐는 동떨어진 인식이 발현됐을 터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재개발지 건물 투기도 위법은 없는 노후대책으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덕성이 흔들리면 개혁의 당위와 국정 동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된다.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힘은 국민 지지밖에 없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높은 도덕성이다.”(20186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또 하나, 수차례 인사 사고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과한 적도 없다. 책임의 실종이 인사 실패의 반복을 불러왔다. 2명이 낙마하고 대통령의 입이 도덕성 문제로 물러났는데도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잘못한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가 신뢰를 떨어뜨린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인사권은 책임을 동반한다. 2005년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낙마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을 경질했다.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한 문책일 뿐이지 실제 잘못은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은 관상용 액자로만 걸려 있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 압승 뒤에 두려운 마음으로 참모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유능과 도덕성, 겸손함이다. 경제·민생에서 입증될 유능함은 인내와 시간을 요하지만, 도덕성과 겸손은 다르다. 4·3 보선 결과에 담긴 불편한 진실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천박한 수구로 내닫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유권자들이 마음 놓고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촛불정부가 도덕적 우위와 겸손함을 의심받게 되면, ‘그놈이 그놈들이란 냉소와 체념이 나라를 덮게 된다.

 

상투적이나 절실한 진단, ‘초심을 돌아보자.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울림을 던진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이런 다짐도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 양권모 논설실장 경향 19.4.8


한국의 혐오정치: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

대한민국은 지금 장기적 위기 상황이다.

여태까지 한국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는 성장이 덮어주곤 했다. 실업급여는 길어봐야 240일밖에 나오지 않고 각종 복지제도는 다 형편없어도, 성장률이 높아 고용창출 효과가 있기만 하면 참을 만한 세상으로 보였다. 그런데 성장은 멈추고 말았다. 앞으로 장기적으로는 1~2%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세업자들의 도산이 계속 이어지고 청년실업이 사회적 참사의 규모로 커져가는 상황에서는 복지국가 건설부터가 절박한데, 우리들의 재벌 공화국에서는 정권을 누가 장악한들 복지국가 건설에 필수적인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는 힘들다. 성장은 이미 끝났고 복지국가는 아직 시작도 안 된 상황은 다수에게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는 헬조선과 같은 유행어들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만성적 위기의 요체다.

 

위기가 오면 좌우 양방향으로 특히 젊은층의 급진화가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프랑스를 보라. 좌파적 경향의 노란 조끼시위자들이 부자들의 단골 초호화 식당에 의도적으로 방화하는 등 좌파적 급진화가 가시적인 한편, 유권자들의 약 4분의 1은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을 지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점차 비슷한 궤도를 밟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민주의 후보인 심상정에게 20대 유권자들이 여러 세대 중에서는 가장 높은 12.7%의 투표율을 보였다. 프랑스에서야 심상정 후보의 노선은 좌파도 아닌 중도로 평가를 받겠지만, 사민주의 정치마저도 억압받고 배제되어온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과다. ·고등학생들도 최근의 촛불항쟁까지 계속해서 거리에서 저항의 주체로 그 존재를 과시해왔다. ,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인 한국에서도 적어도 일부분은 왼쪽으로 급진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걱정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왼쪽으로의 급진화보다 오히려 오른쪽으로의 급진화가 더 가시적이다. 일본이나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게 한국 인터넷에서도 특히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혐오정치가 만연해 있다. 남성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허용하지 않는 신자유주의는 남성들에게서 가정 부양의 책임자라는 그들의 전통적인 젠더 역할을 박탈하여 그들을 상징적으로 거세한다.

 

물론 여성에 대한 불안 노동 강요는 훨씬 더 심각하여, 남녀 할 것 없이 같이 연대해서 신자유주의와 싸워야 할 판이다. 그런데 돈을 벌어주는 사람으로서의 기존의 특권을 상당 부분 상실해 연애나 결혼 시장에서의 매력포인트를 상실한 많은 남성들은 연대의 길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쉬운 약자 탓하기’, 즉 억압 이양의 길을 택한다. 그들이 주도하여 한국 인터넷을 혐오의 도가니로 만든 것이다.

 

젊은층의 새로운 넷 우익이 특별히 혐오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이 강해서가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의 입지가 비교적 약하다. 한국 여성들 중에서는 약 절반, 남성들 중에서는 약 10분의 1만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한다.

 

반면에 노르웨이 같으면 대다수의 남녀(전체의 75~80% 정도)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거부는 소수의 몫이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페미니스트가 소수자다. 여성이 평균 남성 임금의 64%만 받는 대한민국과 달리 노르웨이 여성들이 남성 임금의 약 87% 정도 받아 훨씬 덜 차별받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일부 남성들에게는 최근에 소수자들이 가두시위 등을 벌이며 가시화되는 것이야말로 불안 유발 요인이 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남성들이 부인이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만 맡고 밖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남편이 가정 부양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1950년대의 황금기로 돌아가고 싶어 하듯이, 일부 한국 남자들도 심적으로 남성은 가장으로, 그리고 그 배우자가 소리 없는 부양 대상자로 각각 성역할이 나뉘곤 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의 전후 황금기도 한국의 개발 시대도 어차피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시대에 남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자만이 아니고 주위의 약자들과 연대할 줄 아는 공감능력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는 넷 우익의 언어폭력에 의한 일차적인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밖에서는 무엇보다도 중국과 중국인들이 한국 혐오정치의 대상이 된다. 반북 혐오도 만만치 않지만, 가면 갈수록 과거의 반북 콤플렉스가 반중국 콤플렉스로 대체되어 가는 느낌이다.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확실히 보이고 경제건설 우선 노선을 명확히 선언한 마당에 더는 북한 위협따위를 들먹여봐야 다수에게 그다지 실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현재로서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국임에 틀림없다. ‘중국 패권주의란 분명히 실체가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오히려 중국의 반박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중 갈등이 첨예화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한국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동의는 한국 정부의 오류가 아닐 수 없었다. -중 갈등에서 미국 편에 전적으로 가담하는 인상을 주면 거센 반발을 예상해야 한다. 중국 패권주의 문제의 해결은, 미국 패권주의 편에 서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과 북한의 지속적인 관계 개선과 한반도 두 국가의 자주성 강화에 달려 있다.

 

남북한이 통일로 가면 갈수록 중국 패권주의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중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야 당연히 필요하지만, 중국을 계속 자극하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패권주의 비판은 결코 개별적 중국인에 대한 악마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중국인의 악마화는 결국 국내에 사는 50만명의 중국 국적 조선족 등 여러 소수 집단에 차별의 심화로 작용할 뿐이다.

 

국내의 넷 우익 정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지난해 제주에 온 500명도 안 되는 예멘 난민을 둘러싼 혐오세력들의 광풍을 한번 보라. 한국보다 인구가 다섯배나 적은 스웨덴에 2015년에 약 16만명의 난민 지위 신청자들이 쇄도해도, 한국에서 벌어진 예멘 난민을 둘러싼 광풍 같은 현상은 그 당시 스웨덴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난민과 중국,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를 키워드로 해서 온·오프라인 혐오세력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오른쪽으로의 급진화를 예방하자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연대를 통한 위기 대응이다. 남자와 여자, 국내인과 거주 외국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신자유주의의 야만에 함께 대응해야 오늘의 헬조선보다 더 바람직한 사회에서 우리가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한겨레 2019.4.9.



 

정부의 세 가지 '오판'

21대 총선까지 남은 1, 촛불 시민의 마지막 충고

20대 국회의 마지막 재보선이 끝났다. 정의당은 작년 7월 노회찬 의원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환호했고, 자유한국당은 애써 패배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으며, 다른 정당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어쨌든 결과는 이미 나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읽어내는' 작업은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없다. 본래 선거 결과란 여러 사회 집단과 흐름, 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료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제 다른 선거 없이 내년 이맘때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 결과는 각 정당이 총선을 준비하며 해독해야 할 소중한 자료다.

 

이 점에서 어떤 정당이든 이 결과에서 '성취'보다는 '위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나는 굳이 정부-여당이 이번 선거의 패배자라 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후보에 표를 던져 정권에 항의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쇄도하는 바람에 경남의 두 선거구가 재보선 치고는 사뭇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해석이야말로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 패배를 피할 마지막 기회의 문이 될 것이다.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 기조를 결정한 3대 전략적 판단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지자도 아니면서 정부-여당의 선거 결과 해독을 놓고 훈수 두는 게 좀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 이후 첫 총선임을 생각하면, 어색해보이더라도 개입을 안 하기 어렵다.

 

촛불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고, 이 두 선거에서는 촛불 연합이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총선만 남았다. 총선에서도 촛불 연합의 힘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새 국회를 구성하는 수순만 남았다.

 

한데 만약 이 선거에서 지난 두 선거와 영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촛불 항쟁의 의미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여당이 과연 촛불 민심의 올곧은 대변자인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이지만, 그 반대편이 촛불 항쟁을 원천 부정하는 세력임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여당 지지자가 아니어도 촛불 시민으로서 뭔가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조기 대선으로 집권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본다. 3대 전략적 판단이 지난 2년간 국정 운영의 주된 흐름과 테두리를 결정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바로 이 판단들이 심각한 오판이라는 선고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커다란 패배가 기다린다는 마지막 경고다. 그럼 3대 전략적 판단이란 무엇인가?

 

첫째, 현 국회 구도에서는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는 쪽이 낫다는 판단이다  

조기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한 채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다들 궁금해 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3년이나 남은 차기 총선까지 새 정부가 선택할 국정 운영 기조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당시는 촛불 항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아 개혁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반면 국회는 촛불 이전에 실시된 총선의 산물이어서,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였다. , 정부-여당의 입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도였다. 새 정부는 이 딜레마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가?

 

말들이 많았다. 여당이 협상과 연합의 정치에 적극 나서서 정의당, 국민의당에다 바른정당까지 더한 원내 촛불 최대 연합을 결성해야 개혁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조언이 가장 많았다. 더 나아가 자유한국당까지도 진지한 협상 대상으로 삼아 견인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왼쪽으로는 정의당을 포함하는 연립정부가 시도될 수 있다고 넘겨짚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실제 보여준 선택은 너무나 단순했다. 정부-여당은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한 개혁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다들 어려우리라 예상한 국회 정치를 그냥 포기해버렸다. 촛불 이후 민심과 촛불 이전 선출 국회 사이의 어긋남을 해결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그저 우회해버린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현 정부 개혁 정책의 상징처럼 된 사연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부-여당이 사회 개혁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신호탄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꺼내든 것은 소득 주도 성장에 끼칠 영향에 관한 무슨 심오한 고민이나 구상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이 주된 이유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개헌 시도가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의 개혁 전략(그런 게 있었다면)이 결코 진지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에 제출하는 거의 첫 번째 안건으로 개헌안을 내밀었다. 과반 동의를 얻으면 되는 법안 통과도 쉽지 않은 국회인 줄 빤히 알면서 의결 정족수가 2/3 이상인 개헌안부터 냈다. 정말 통과를 염두에 둔 개헌 시도였을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이런 행태의 밑바탕에는 20대 국회의 남은 임기를 어떻게 넘길지에 관한 정부-여당의 분명한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판단이다. 이 국회에서는 개혁을 성사시킬 수도 없고, 무리하게 이를 추진할 이유도 별로 없다. 섣불리 실험을 벌이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치중하며 21대 총선을 맞는 게 낫다. 정치보다는 행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보내더라도 21대 총선은 분명 조기대선과 지방선거에 뒤이은 또 다른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심판 선거가 될 것이다.

 

3년이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현실 관리 중심의 국정 기조로 이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정부-여당은 지금 그 2년차 성적을 받아들고 있다.

 

둘째 판단은 한반도 평화 실현이 중심 과제이고 이것만 잘 되면 국내 정치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전쟁 위험을 걷어내고 북미 대화 국면을 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기대 이상의 행보였다. 그래서 2018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개혁은 고사하고 퇴행이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그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는 그만큼 중대했다.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문제는 그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우리는 더욱더 실감하는 중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평화 노력에는 처음부터 어떤 그림자도 있었다. 그것은 평화 노력을 뒷받침할 국내 기반이 여전히 기대만큼 굳건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과 미국이 주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남한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미 협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을 운명이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대화 지속을 강력히 압박할 국내 여론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평화의 대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짐이 이미 있었다. 가령 평창 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이 있었다.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하지만 공정성 문제, 청년 문제 등이 불거지던 촛불 직후 한국 사회에서 이 시도는 전혀 예상 못한 방향의 논란으로 비화됐다. 흔들리지 않는 평화 국면의 구축이 국내 사회 개혁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런 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가 경제"라거나 "평화가 민생"이라는 식의 구호만 반복했다. 여기에는 정부-여당의 또 다른 중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한반도 평화 협상이 착착 진행되는 한, 국내 정치는 그 종속 변수일 뿐이라는 판단이다. 남북미 대화의 기대가 가장 높았던 시점에 실시된 작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이런 판단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미 대화는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로 하락한 근본 이유는 결국 이것이다. 이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과연 무엇으로 반전을 시도할 것인가? 오로지 북한과 미국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가?

 

지난 2년간을 지배한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잘못됐다

마지막으로 검토할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더불어민주당의 장기 집권 전략과 직결돼 있다. 그것은 위 두 판단을 바탕으로 정국을 운영하면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층 상당수를 흡수해 한국 사회의 장기 집권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당 일각에서는 "20년 집권"이니 "100년 집권"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가올 총선을 지극히 낙관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재연하는 총선 결과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식이다.

 

승리의 기본 전제는 바로 위의 두 전략적 판단, 즉 찬반 격론을 불러올 수 있는 개혁 조치는 되도록 피하고 한반도 평화 협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껏 새누리당 계열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으로 흡수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의 여론조사에서는 실제 그런 양상이 일부 나타났다. 50%에 치달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의 구심력 와해와 일부 유입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개혁 조치에는 미온적이던 정부-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억제하는 반동 개혁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통해 진보층 일부의 지지를 잃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으며, 그게 더 바람직하다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치 스펙트럼 내 중앙의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정당들에게는 왼쪽과 오른쪽의 잔여 공간만 남기는 정당 구도를 만들려 한다. 이것이 이른바 "20년 혹은 30년 장기 집권 정당"의 공간적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전략은 먹히고 있는가?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줄어드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점점 촛불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 구도가 복원되고 있다. 보수층은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되거나 심지어는 바른미래당을 선택하기보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현 정부 반대 민심이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는 한 마디로 촛불 항쟁의 효과가 무()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결론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2년간 일관되게 보여 온 모종의 전략적 지향과 행보는 실패하고 있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3대 전략적 판단은 오류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명확한 사실 때문이다.

 

첫째,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의 침체 국면이다. 주기적 불황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 아니면 장기 불황의 초입이라 해야 할지는 쟁점이지만, 아무튼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간은 호황 국면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심을 정부 반대편으로 이끄는 중력이 작동한다. 더구나 정부가 이 중력을 상쇄하는 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두 번째 이유가 뒤따라 나온다. 정치 세계에서 상황을 단지 고수하려는 세력은 수동적 입장에 머물게 되고 수동적 정치 세력에게는 실패가 예정돼 있을 뿐이다. 반면 가장 저열한 수준에서라도 뭔가 정치 행위를 지속하는 정치 세력은 단기간이나마 주도권을 쥐게 된다.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1, 반격에는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의 최종적 실패로 귀결되지 않게 막으려면 정부-여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해오던 바의 정반대로 하면 된다. 관리 정부에서 개혁 정부로 돌아서면 된다. 북미 협상만 바라보기보다는 국내 개혁을 병행하면 된다.

 

우선 뒤늦게나마 사회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일단은 복지 혜택을 늘리는 조치에 전념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자유한국당도 쉽게 반대할 수 없다. 가령 기초연금을 조기 인상해 현실화하거나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확충에 착수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장벽은 오직 경제 관료와 보수 언론의 균형재정 이데올로기를 돌파하지 못하는 정부-여당 자신의 소심함뿐이다.

 

또한 개혁 공세를 통해 적극적인 국회 정치를 펼쳐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사법 개혁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한 방안이 현재 지지부진하기는 하지만, 이는 앞으로 1년간 국회에서 반복돼야 할 세력 구도와 대립 전선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대화의 정치를 시도할 때는 지났다. 극우화한 자유한국당과 정면 대립하길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 연합을 밀고 나가야 한다.

 

, 자유한국당과 대치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혁 입법을 실제 관철해야 한다. 그러자면 원내 최대 연합을 구축할 수 있도록 개혁 내용을 최소 합의 수준에 맞추길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극우 세력을 합리적 여론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촛불 계승 연합이 '유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보다 먼저 결단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노동법 개악과 같이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려던 정책을 즉각 중단하는 일이다. 그런다고 보수층을 흡수하지도 못한다. 보수층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오히려 정부-여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 다시 관심과 지지를 표할 것이다. 이것이 촛불 국면에서 작동한 동학(動學) 아니었는가.

 

이제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딱 1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국정 운영 기조를 지속한다면, 쏜살같이 지나갈 시간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조를 과감히 추진한다면, 결코 부족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다. 충분히 반전이 가능하다. 10년 같은 1년이 될 수 있다.

 

정부-여당은 재보선 결과가 던지는 이 마지막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이 정권의 부침에 공동의 운명으로 엮여 있는 촛불 시민들이 던지는 마지막 충고이기도 하다. /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프레시안 19 4.9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공인일까

자유한국당의 표적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공인일까, 사인(私人)일까. 대통령이 공인이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는다고 그 가족도 당연히 공인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신변보호를 받는 증인도 공인으로 봐야 하지만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공인의 범위를 넓히려는 측에서는 그들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보다는 언론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기로 잡다한 사적 영역까지 감시와 검증의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간섭하고 싶어 한다. 특히 언론은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공인의 사생활도 취재보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공인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 혹시 제기될지도 모르는 명예훼손 소송의 방어막을 치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까지 공인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의 파수꾼(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야당은 후보자의 내밀한 영역인 병력이나 수술이력까지 들먹이며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것처럼 의혹을 터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지면을 장식했었다.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공인의 범주가 넓어야 좋다. 신랄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통한 여론형성 기능을 수행하려면 숨 쉴 공간이 넉넉해야 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간의 너비를 결정하는 공인 개념의 광폭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공인인가. 전통적으로는 사전적 의미를 중시하여 고위 공직자를 공인이라고 불렀다. 저명한 사람도 공인에 포함시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적 인물이라는 용어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 개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이나 마약, 성폭력 범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으레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지만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판례에서 사용하는 공적 인물이나 공인이라는 용어는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언어용법 또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연예인이나 뉴스 앵커 같은 유명인도 공인 내지 공적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공적 관심사에 관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 뉴스 가치가 있는 저명성이나 매체의 노출빈도에 근거하여 유명한 인물을 공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공직자와 같은 공인으로서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사생활 영역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인물의 범주를 넓히면 넓힐수록 표현의 자유는 확장되지만 공적 관심사나 유명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표지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소지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간혹 연예인이나 유명인 대해서는 과도한 언론의 자유가 발휘되지만, 정치적 책임과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할 공인에 대해서는 과잉의 명예보호가 되는 역전현상도 나타난다.

 

공인이란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고, 도덕적이고 정당한 공적 활동으로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존재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공공성을 갖춘 것이므로 알권리에 포함되며 언론보도를 통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공인 내지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나 일반인이 통상 인식하는 것처럼 공공의 관심사 또는 유명도를 기준으로 공적 인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더라도 그들에 관한 언론보도를 넓게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단계에서의 범죄혐의 보도도 마찬가지로 공인보다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를 준별해야 한다. 공직자인 공인의 경우에도 내밀한 사적 영역이나 비밀영역에 속하는 사항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적법하려면 극히 예외적으로 정보공개의 이익이 더 커야 한다.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여야 하고,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 표현 내용·방법 등이 적절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보도의 자유와 알권리가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방송인, 유명 스포츠 선수, 뉴스앵커 같은 유명인과 연예인은 공직자인 공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제한적인 공적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사적 공간이나 사생활을 공직자보다 더 넓게 보호하려 한다. 언론은 항상 알권리를 주장하지만 국민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대통령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인 대통령에 의해 공적 인물이 되었으므로 제한적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설사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경호를 받고 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공인은 아니므로 개인정보와 사생활은 공직자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선일보 방 사장일가의 패륜, 한국 언론의 수치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시킬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 ‘장자연 사건수사 때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조선일보> 편집국 간부한테 들었다는 말이다. 하도 거칠게 항의해서 심각한 협박을 느꼈다고도 했다.(이 간부는 발언 사실을 부인하지만 조 전 청장의 전언을 들은 사람은 <한겨레> 기자 등 여럿이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경찰의 피의자 방상훈조사는 조선일보사 회의실에서 35분 만에 간단히 끝났다. 그것도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들이 녹음기 켜놓고 사장님 옆을 지키고 있었다니 조사라기보다 받아쓰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조 전 청장 인터뷰가 나온 <문화방송> ‘피디수첩’(2018731일 방송)에는 눈길을 끄는 장면이 등장한다. 2015년 조선일보 창간 95주년 행사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맞는 방상훈 사장은 친구 대하듯 팔뚝을 쓰다듬으며 파안대소한다. 연상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친근감 표시치고는 좀 유별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984월 어느 날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가 조선일보 사장실을 찾아 21살 연하의 방 사장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던 사이라 며칠 전 행사장에서 만난 그에게 허물없이 하대를 했는데 조선일보가 연일 비난 기사를 실었다. 사연을 알고 난 참모들의 권유로 박 총재가 직접 사과 방문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방 사장이 인사를 받고도 가타부타 아무 소리도 않더라며 평생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고 그는 생전에 <한겨레>에 털어놓았다.(그의 녹취록은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소송 과정에서 법정에 제출됐다.)

반면 그 시절 한 고위언론인 모임에선 연장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방 사장이 말을 낮췄다가 봉변에 가까운 질책을 당한 적도 있다고 알려진다. 연령 불문하고 나는 하대해도 넌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심했던 모양이다. 아버지 대부터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으니 정치권력엔 임기가 있어도 언론권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장자연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의 실체가 10년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제삿날인데도 장씨가 불려간 술자리의 주인공은 방 사장의 차남 방정오 전 <티브이조선> 대표였다. 방 사장과 그 아들을 콕 집은 문건과 여러 정황, 아들과의 약속 시간을 적은 장씨의 다이어리까지 있었다는데도 검찰·경찰 모두 그를 절묘하게 피해갔다. ‘김학의 사건의 김 전 차관과 버닝썬 사건의 연예인들 모두 벼랑끝에 서 있지만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검찰이 재조사 중이지만 시효의 벽이 만만찮다. 수사 초기부터 아예 증거의 싹을 잘라버린 게 조 전 청장이 폭로한 심각한 위협과 무관할까.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조사단은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은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방 사장 아들은 방정오 전 대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라고 한다. 조선일보가 문건 속 방 사장이 다른 사람으로 확인됐다며 특정인을 지목했던 건 애초부터 인격살인에 가까웠다. 경영자인 사주가 편집에 관여해 가족의 비위를 감싸는 데 공공재인 언론을 동원한다면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도 방상훈 사장은 매주 한차례 편집국의 부장들까지 참여하는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고 한다. 발행·편집·인쇄인도 아닌 그가 논조에까지 관여한다면 편집권 침해소지가 크다.

 

스타를 꿈꾸던 젊은 여배우가 성착취를 고발하며 목숨을 끊었다. 방 사장 일가는 장자연 사건에 3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제삿날까지 불려나가 접대를 강요받았는데, 설사 당시엔 몰랐다 해도 지금쯤은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라도 느껴야 하는 것 아닐까. 엽기적 가족사가 공개되고 흉기 든 망측한 모습이 방송되는 등 가족들의 패륜적 행적이 잇따르는데도 피디를 을러대고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봉쇄 소송으로 일관하고 있다. 목소리까지 공개된 손녀딸 막말 사건에서만 겨우 사과했다.

 

한 언론학자는 모든 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고 했다. 이런 사주 일가 앞에서 죽음의 진실조차 대수롭지 않게 꼬리 감추는 현실, 그런 언론이 ‘1을 자처하는 상황 자체가 한국 언론과 시민의 수치다.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언론자유가 혹시라도 정치권력·자본권력 위에 언론권력의 자리를 만들어놓은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조선일보가 피디수첩에 이어 한겨레에도 소송을 건다니 좋은 기회다. 검찰이 이번엔 조선일보의 무고여부까지 제대로 밝혀보기 바란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19.3.8 경향

 

집권세력 '+α' 없으면 탄핵 이전으로 돌아간다

개혁 진영 전열 재정비 키워드

한국사회는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다원주의와 공동체주의와의 부조화가 정치 갈등과 맞물려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되는 게 없다. 정치는 말 할 것도 없고 사회·문화·경제·환경·사건 등에서 사회적 합의나 지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각 부문의 이해충돌은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관용과 배려, 연대와 협치를 떠올리는 것은 공허하고 사치스럽다.


주말 광화문 일각의 태극기 집회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극단적 언어들이 여과 없이 배설하듯 쏟아진다. 이에 편승이라도 하듯 한국당 지도부의 발언은 친일과 반공의 후예다운 과장과 역사부정으로 점철된다. 노동단체들의 요구에 정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이한 주장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무도하고 잔악하게 국민을 학살한 제주 4·3항쟁 71주년에도 정치권은 반듯한 담론 하나 제기하지 않는다. 마치 해방 정국의 혼란을 연상시킬 정도로 생각의 간극이 넓고 깊다

 

촛불집회 당시만 해도 부도덕한 정권을 부수고 압축 근대화 과정의 부조리를 혁파할 수 있다는 거대한 사회적 연대와 합의가 존재했다. 이를 사회 전반의 운동으로 승화시켜 형식적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개혁의 제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긍심과 기대도 있었다. 기득권의 반발은 적폐수사와 국정농락 단죄의 명분 앞에서 찻잔속의 태풍이었다.


정권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3년차라는 뉘앙스가 내리막길 정권 같지만 정권 출범 후 2년이 채 안 된 젊은 정권이다. 그러나 임기 말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혁은 공허한 울림으로 왜소해졌고, 진보적 의제를 담론화하지 못하는 정권과 수구와 반동으로 가득 찬 제1야당의 반역사성이 아우러져 보수층은 수구야당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경남 두 군데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여야가 외형적으로는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의 경고는 분명하다. 정부 2기 내각의 후보자들의 흠결에 '별 문제가 없다'고 밝힌 청와대의 인식에서 촛불 민심과의 괴리를 본다

 

경제지표의 부진과 청년실업의 가중, 불평등 심화를 보여주는 지표 등 경제실패는 개혁의 당위성마저 위협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개혁입법은 야당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선거제 개혁도 마찬가지다. 재보궐 선거에서 기세를 올린 한국당은 이념 편향과 극단적 우경화를 강화할 것이며 이는 증오와 대치의 정치를 결과하게 될 것이다

 

다시 개혁진영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범진보 진영의 대오를 정비해서 새로운 정치적 감수성을 현실과 접목시키지 못하면 강 대 강의 정치대결 구도는 확대 강화될 것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 핵심의 인식은 도덕적 우위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는 개혁의 당위와 동력의 약화를 결과하게 된다. 결국 탄핵을 반성하기는커녕 탄핵을 부정하는 제1야당과 민주당이 동일선상에서 정치적 쟁투를 벌이는 구도는 탄핵 이전의 구도에 다름 아니다. 이는 진보진영에게는 최악의 프레임이다. 그러나 이미 정치는 기존의 익숙한 정당이기주의의 틀에서 정치혐오의 언어들로 가득차고 있다.

 

정치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사회 혼란을 제어하지 못한다. 왕도는 없다. 평등, 공정, 정의의 진보담론을 공론화시킴으로서 혁신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국회에서의 대립구도가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수구야당은 극단적 이념 편향을 동원하여 혐오의 정치를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첫째, 진보진영과의 연대는 물론 통합까지 고민해야 한다. 바른미래당의 진보성향 의원들과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을 포괄하고, 정의당과의 연대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개혁입법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총선을 의식한 집권당내의 정치공학을 제어할 수 있는 리더십의 존재가 핵심이다.     둘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막연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영업과 도소매업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보다 디테일한 보완이 필요하다.    셋째, 개혁을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 집권 이후 이러한 모습은 현저히 약화됐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이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집권측이 기득권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명분과 당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시민의 개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결집할 수 없고 이는 결국 보수 대 진보의 전통적 이분법 속에서 외연확장의 실패를 의미한다.    정당의 쟁투와 선거승리를 위한 선거경쟁의 정치공학을 부인할 수는 없다. 현실정치라는 정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경쟁을 뛰어넘는 알파가 있어야 한다. '촛불'이 지향하는 바다. 지금 정권은 그런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러나 다시 모을 수 있다. 발상을 전환하여 상상 이상의 정치적 창의를 동원한다는 전제하에서다. 다시 수구야당이 득세할 때의 여러 상황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프레시안 19.4.5

 

허수아비 공격하는 최장집의 관제민족주의론

지난달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3·1운동 100돌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이 보수로 자처하는 신문들의 조명을 받았다. 이 논문이 문재인 정부의 친일 청산 노력을 관제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것이 친일·독재 세력에 유대감을 느끼는 이 신문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신문들의 역사인식의 저열함은 그것 자체로 문제이지만, 이런 인식을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내는 데 최장집 논문이 동기와 빌미를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논문은 과잉해석과 논리적 비약과 비학술적 과장으로 점철돼 있다. 평소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온 학자의 글답지 않게 선동적인 문구가 빈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논문의 여러 문제점 중 몇 가지만 짚어보면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3·1100돌 기념사에서 빨갱이란 말을 비판한 것을 염두에 두고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투쟁이며 수십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이념적 분열상을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이 주장은 전형적인 과장이다. 빨갱이라는 말이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면서 쓴 말이고, 해방 뒤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의 인권을 말살할 때도 이 말이 동원됐고, 지금도 남북 화해 흐름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 빨갱이라는 말은 우리 정치를 근원적으로 굴절시킨 배제와 억압의 언어다. ‘빨갱이 담론을 철거하지 않고는 우리 정치는 온전한 상태로 올라설 수 없다. 최장집 논문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켜온 문제의 뿌리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런 문제를 극복하자는 호소를 분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본말전도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둘째, 최장집 논문이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남북의 이념적 대결을 극복하자는 운동을 관제 민족주의라고 규정하는 것도 과도한 비판이다.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을 찾자면, 박정희 독재 시절의 국민 교육 헌장일 것이다. 박정희가 주창한 한국적 민주주의민주없는 가짜 민주주의였듯이, 박정희의 관제 민족주의도 민족 없는 사이비 민족주의였다. 박정희식 관제 민족주의에 맞서 당시 재야는 분단 극복을 지향하는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민족주의가 여전히 긍정적인 이념으로 살아 있다면, 휴전 이후에도 60여년 동안 저강도 전쟁상태에 놓인 이 한반도를 평화와 화해의 땅으로 만들자는 열망이 그 민족주의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노력을 관제 민족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셋째, “정치에서 역사청산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이 주장이 옳다면, 넬슨 만델라 집권 이후 남아공에서 벌어진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 청산 작업은 도대체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한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다. 인종차별의 역사를 청산하는 그 정치적 과정을 통해 화해가 가능하다는 만델라의 대의는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로 대표되는 배제와 억압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만들자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 역사 청산이 목표가 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며 정치의 의무이기도 하다.


넷째, 최장집 논문이 분단 극복 노력한반도의 통일은 민족의 지상과제고 통일을 실현하는 것 없는 미래는 아예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비학술적인 과장법이다. 이 논문이 비판한 일국으로의 통일은 지금의 분단 극복 세력의 주장이라기보다는 남북 화해에 반대해온 정치세력의 요구에 가깝다. 평화적 공존을 통한 점진적 통합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방식으로 통일을 기획한 세력의 언술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전쟁통일을 염두에 두었고,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권은 흡수통일을 꿈꾸지 않았던가.


최장집 논문은 현실을 정확하게 겨냥하지 못하고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실망스러운 글이다. 그런데도 그 글이 보수언론의 환영을 받은 것은 친일 잔재 극복과 남북 화해·협력 흐름을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반길 태세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 써먹기 좋은 재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로 학자의 행보가 더 위태로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한겨레 2019.4.4.

 

양비론에 기생하는 정치

여권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4·3보궐선거로 확인됐다. ‘3·8 개각으로 발탁된 장관후보자 7명 가운데 2명이 낙마한 엄중한 정국의 한복판에서 유권자들에겐 적어도 3명의 인물이 떠올랐을 법하다. 우선 흑석동 고가건물 투기 논란으로 옷을 벗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경남 창원성산에서 민주·정의당 단일후보 지원활동을 한 지인은 부인 탓하는 모습에 남자로서 모멸감을 느꼈다는 반응을 적지 않게 접했다고 한다. 아내가 한 일이어서 몰랐다는 변명에 지지층의 얼굴이 뜨거워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26억원짜리 건물을 사는데 몰랐다는 얘기가 통할까.

 

내 집 마련에 대한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 집 살 기회에 매번 반복되는 결정장애에 아내가 질려있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부인이 10억원을 대출받은 은행 지점장은 자신의 고교 후배였다. 지난 연말 김태우 특감반원 폭로에 문재인 정부엔 민간인사찰 DNA가 없다는 오만한 브리핑을 할 때부터 불안불안해 보였다. 최순실게이트 특종기자 출신이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를 입힌 셈이다.

 

자진사퇴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후보자 역시 여전히 만만찮은 화제를 낳고 있는 인물이다. 부동산과 전쟁을 불사한 현 정부의 주무장관 후보자로서 강남, 분당, 세종에 알짜배기 3를 보유했으니 투자의 달인으로 회자될 만하다. 그를 통해 최소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사회 잘나가는 엘리트관료의 실상, 그리고 여론을 추호도 걱정하지 않고 이런 인물을 밀어붙인 청와대의 오기다. 지지율만 믿는 건지, 청와대 인사 검증라인의 배포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일각에선 국회의원 40%가 다주택자라며 내로남불로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의회는 빈자부터 중산층, 자산가에 이르기까지 국민 여러 계층의 대표성을 띈 곳이다. 선거를 돌파해 표로 선택된 그룹이다. 이와 달리 청와대 공직자나 내각은 특정 정권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집단이어야 한다. 청와대 인사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최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이어받는 분위기다. “3채가 흠이냐” “3,500만원밖에 안되는 포르쉐가 문제냐고 쏟아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청문회를 지켜봤다면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의 모습에 공감하기도 힘들다. 윤한홍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측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게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일시와 병원자료를 요구해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후보자 망신주기로 난장판을 만든 장면이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4·3보선 기간 한국당이 쏟아낸 막말들을 보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만 해도 창원에서 돈받고 스스로 목숨끊은 분 정신을 이어받냐고 고() 노회찬 의원을 조롱했다. ‘5·18 망언이나 반민특위를 국민분열이라 떠드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은 진영이 바로 이들이란 사실을 다시 인식시켜 준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독설경쟁에 웬만한 충격은 무뎌질 정도다. 지금 야당 측은 버닝썬 수사를 부각시키고, 여당은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들추기에 집착하고 있다.

 

이쯤 되니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을 편들긴 힘들어진다. 여야 모두가 최악이라는 양비론 외엔 결말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독선과 아집에 빠져 촛불정부의 허구성만 드러내는 최근의 여권 인사들이 떠오르면 한국당 유력세력인 태극기부대가 생각나 말문이 막힌다. 어쩌면 양측은 속으로 양비론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취약점을 함께 약화시켜 적대적 공생구조를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종북좌파토착왜구가 충돌할수록 국민의 정치 무관심은 커지고 기존 기득권이 유지되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셈이다. 거대양당은 유권자 권리가 달린 선거제 개혁을 놓고도 공수처법안이니 뭐니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뭉개기로 카르텔을 형성한 느낌이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한국 19.4.4.

 

 

황교안 지지율의 허실

가뭄 끝 단비도 내리게 한 그의 기도발이 통한 것일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인기 상승세가 가파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여야 주요 정치인 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그는 21.2%를 얻어 20%대로 훌쩍 올라섰다. 지난해 12(13.5%) 이후 네 달 연속 상승하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제치고 2위를 탈환한 이낙연 총리(14.9%)와의 격차도 크게 벌렸다. 범보수무당층 대상 조사에서는 38.5%에 달하는 압도적 우세로 5% 안팎의 오세훈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보수 주자들을 크게 따돌렸다.

 

1월 한국당에 입당해 한 달여 만에 당권을 잡고 보수진영의 절대 대세로 자리 잡은 배경은 3가지 정도로 분석된다. 첫째는 대안 혹은 경쟁자 부재이고 둘째는 신상품 효과이며 셋째는 문재인 정부 피로증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인한 리더십 파탄과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새 상품에 대한 보수진영의 기대와 갈증이 극점에 이르렀고, 문 정부의 경제실정과 내로남불식 국정행태가 반복되면서 황교안 쏠림 현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전도사 황교안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를 보우하시는 하나님이 준 화환이다.

 

이런 황 대표로서는 43보선 결과가 무척 아쉬울 것이다. ‘황교안 키즈로 불리는 공안통 후배를 통영고성 보선에 투입해 낙승한 것은 좋았지만, 사실상 승패의 잣대인 창원성산에선 석패했으니 말이다. 그가 보선 지역에 보름 이상 상주하다시피 하며 쏟은 노력을 생각하면 여야가 단일화한 진보의 성지에서 거둔 초박빙의 결과라고 자위할 일이 아니다. 가성비가 높지 않으니 지방선거 때 등돌린 PK 민심을 되찾았다고 말하기도 찜찜하다.

 

황 대표는 지금껏 공안적 시각의 자유우파 통합만 외치고 황세모다운 모호함으로 일관했다. 독실한 신앙심으로 승승장구하며 꽃길을 걸어온 이미지만 있고 그에 걸맞은 리더십과 콘텐츠는 줄곧 빈칸이다. 고건 반기문 정운찬 등이 신상 효과를 업고 한때 반짝하다 제풀에 쓰러진 전례가 생각나는 이유다. “모두 욕하고 헐뜯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장점을 찾고 칭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한 한국당을 말하다 돌연 악마와 천사를 대비시키며 “(운동권 정권의) 썩은 뿌리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적의를 드러내는 그의 고공 지지율이 왠지 낯설다. 이유식 논설고문 한국 19.4.4

 

문재인 정부의 ‘4’.   

선거는 집권세력이 드물게 날것그대로의 민심을 만나는 통로다. 민심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권력도 선거만큼은 피해갈 수 없다.

 

4·3 보궐선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여권 지지층의 마음이다. 단순히 선거 결과로 나타난 패배가 아니다. 경남 통영·고성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받은 표는 47000여표다. 지난해 지방선거 지지 표심(46000여표)이 고스란히 투표장을 다시 찾은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지방선거(46700여표)의 반토막에 가까운 28400여표(60.8%)에 그쳤다. 여권 지지자들은 표심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평가를 한 것이다. 국정 실패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집권 3년차 봄을 지나고 있는 청와대 주변에선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4·3 보선 결과만큼 침울한 공기가 주변을 감돈다. 그간 국정 지지율 하락에도 하지 않던 토로다. “좀 도와달라는 호소도 함께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현 상태는 5개 정도의 이상증상으로 요약될 듯하다. 무엇보다 민생경제 성적표가 국정 전체를 짓누르고, 한반도 비핵화의 교착, 검찰·재벌 등 적폐 개혁 부진, 이로 인한 지지율 저하와 국정 자신감 하락이다. 그 결과는 ‘3년차 증후군으로 이야기되는 조급함과 무기력의 교차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퇴진을 이끌어낸 스튜어드십 코드 등 작은 변화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개혁정부의 숙명인 도덕성의 부메랑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모도원’(日暮途遠·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문다)의 형국이다.

 

하지만 위기를 곱씹어 보면 본질은 북·미 대화의 궤도 이탈도, 경제의 어려움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 내부의 기능부전징후가 심각하다   당장 용인(用人)’에서 이상징후가 도드라진다. 지난 주말 청와대 대변인과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모두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도덕성이 발목을 잡았다. 3채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올린 부동산 정책 주무장관, 아들에게 스포츠카를 사주려 전세금을 올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의 원칙과 검증이 작동하는지 의심받고 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실망감은 더 크다. “혁명이란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 이름이 바뀔 뿐이라는 미도리(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의 항변처럼 지지난 겨울의 진통이 그저 몇몇 자리 얼굴이 바뀌는 것으로 끝나는 허탈감이다. 이 경우 민심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근원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람 하나 마음대로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만 5년이었다. 이런저런 신세와 인연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든 정부에서 3년차는 시련이다. ‘흔들림의 시작이었다. 집권의 자신감과 참신한 기상은 사라지고 안일이 스며들며, 남은 시간들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에 이율배반이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의 고액 부동산 거래는 이미 정권 이후 각자도생의 번뇌가 청와대 공기를 짓누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에 정부 초반 국정의 발목을 잡은 트라우마들도 자리 잡기 시작하는 때다. 노무현 정부의 분열 정치논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촛불’,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무능이 그런 예들이다. 권력은 위기 본능에 깜짝 조치를 내놓지만 신박한 결과보다는 처참한 실패로 이어지는 게 통상이다. 권력이 이상조짐을 보이면 그 앞에서 풀처럼 가지런히 눕던 관료 정치의 독성도 머리를 삐죽삐죽 내밀 것이다. 권력 획득을 권위의 획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지지율의 껍데기가 걷힐 때 남는 것은 이처럼 스산하다.

 

실상 모든 개혁은 톱다운이다. 혁명과 달리 개혁은 리더십에 의해 통제되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개혁 리더십의 구성요소는 도덕성·실력·용기. 도덕성은 반개혁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출발점이고, 실력은 성과를 통해 개혁의 지지를 유지하는 힘이며, 변화를 위한 소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개혁 권력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련에 위축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던 집권 초 100로 돌아갔으면 한다. 그 시작점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용기일 터다. 당장 일그러진 인사의 책임은 오롯이 인사권자에게 있다. 선출직 권력인 대통령은 참모를 대신 벌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참모를 감싸는 것은 곧 스스로의 허물을 덮는 것이다. 제갈량은 울면서 분신과도 같았던 마속을 베었음(읍참마속·泣斬馬謖)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1년 뒤 4(21대 총선)’은 개혁정부 지지층에게 전혀 다른 시간이었으면 한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경향 19.4.4.

 

공정한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

시장의 자율에 맡기라는 자유방임은 기존 제도·경제질서를 전제한 자유를 의미하여 모순적 표현이다. 자유방임이 문제를 야기할 때 제도가 바뀌고 경제질서가 진화한다. 그래서 자유방임은 나쁜 제도와 나쁜 질서에 대해서는 방관적인 태도이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유방임의 나쁜 결과였고 기존 금융규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제3차 바젤협약과 같은 개혁을 낳았다. 이 위기의 불똥은 불평등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잘나가던 금융회사 임원들이 일반 직원의 수십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최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그리고 전체 부의 70% 가깝게 소유해도 되는가?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시 맨해튼 섬에 진을 친 대규모 시위대가 금융업 전반에 팽배한 도덕적 해이와 탐욕에 분노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경제학자들에게 불평등은 다소 당혹스러운 주제다. 불평등을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 연구하지만 이런 기술적 영역을 벗어나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얼마만큼의 불평등이 적당한지 등 규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답이 없거나 시원치 않다.

 

불평등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가 있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어 더 노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높은 대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더 혁신적인 기업에 더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이처럼 노력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공정하다는 것이 통용 윤리다. 물론 그 격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런 공정한 불평등이 아닌 나쁜 불평등이다.

 

나쁜 불평등이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과 인사가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부당한 차별과 청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항공 재벌가의 졸렬한 경영행태가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주식시장과 기업경영을 관할하는 제반 제도는 재벌가 인사특혜를 견제하는 데 무력했고 부적격자들이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무도한 질서가 자리 잡았다. 최근 도입된 기금관리규율, 스튜어드십코드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여 대한항공 재벌인사를 경영참여에서 배제한 것은 주목해야 할 변화다. 투명한 규율에 따라 부적격 경영을 견제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이를 두고 연금사회주의운운하는 선동적 파시즘이 난무하는 것은 재벌 친·인척의 부적격 경영 참여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대했는가를 방증한다. 매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정·관계 고위인사와 사회지도층 자제의 취업과 인사 부정 역시 나쁜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기회불평등은 가계의 지위, 인종, , 지역과 같이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배경 때문에 발생하는 나쁜 불평등이다. 양육, 교육, 건강 등 개인의 삶에 모든 선진국들이 개입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나쁜 불평등 때문에 삶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과 경제적 성취에 미치는 기회불평등을 상징한다. 이런 말이 유행할 만큼 기회불평등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교육제도가 계층 간 교육격차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교육격차는 경제적 기회불평등의 시발점이다. 여성이 겪는 기회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임금 격차와 경제활동 참가율에 대한 최근 자료는 여성이 가장 차별받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나쁜 불평등은 불공정·불완전 시장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의사결정이라는 투표로 시장가격과 분배를 결정한다. 차별 없고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이상적 시장은 이런 경제적 투표권을 국민 모두에 균등히 부여한다. 우리 시장은 이런 이상에서 크게 벗어나 상당수 국민들의 경제적 투표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경제력에 따라 투표권을 준다. 이렇게 배제된 국민들에게는 반시장적 굴레가 씌워지고 나쁜 불평등이 발생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투표권이 있는 이들을 위해 작동할 뿐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다양한 차별과 배제가 우리 시장에 만연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 차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 그리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비대칭적인 협상력이 이런 나쁜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나쁜 불평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이를 개선할 제도개혁이 뒤따라야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개혁안이 미비하면 비판받아 마땅하나 자유방임이란 방관적 태도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분배정의연구센터장 경향 2019 4.3

 

홍길동의 출현을 기다리는 심리

홍길동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역사적 실존 인물이다. 때는 연산군 6(1500), 도적의 우두머리 홍길동이 충청도 전역을 무대로 날뛰었다고 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한 영의정 한치형은 현지 사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강도 홍길동은 첨지 벼슬을 사칭하며 고위 관리의 복장을 하였습니다. 머리에는 옥으로 된 관자를 붙이고, 붉은 허리띠를 허리에 둘렀습니다. 그는 대낮에도 무장한 부하들을 거느린 채 관청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마음껏 물건을 가져가고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그를 관가에 고발하거나 체포하지 못하였습니다.”

 

백주 대낮에 홍길동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보란 듯이 관청에 들어가 재물을 탈취하였다. 충청도 일대의 관리들은 그런 그에게 감히 저항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홍길동을 마치 상관처럼 모시고 받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조정은 한동안 손을 쓰지 못하였다. 홍길동의 세력은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조정은 깊은 시름에 빠졌고, 비밀리에 여러 가지 수단이 강구되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강도 홍길동이 연산군 610, 관헌에 체포되었다. 상당 기간 엄한 취조가 진행된 것은 물론이었다. 조사 후 홍길동과 그 부하들은 법대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취조 과정에서 한 가지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무관으로 고위직에 있던 엄귀손이 홍길동 일당의 뒤를 봐주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엄귀손이 사실상의 우두머리라고 자백하였다. 이는 일파만파가 되었다.

 

요샛말로 엄귀손의 신상 털기가 시작되었다. 얼마 안 가서 엄귀손의 비리 사실이 전모를 드러냈다. 그동안 그는 여러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부정축재 역시 심각한 수준이었다. 엄귀손은 본래 가난한 무사였으나, 온갖 수단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았다. 서울과 지방에 화려한 집을 마련했고, 4000석가량 되는 곡식을 창고에 쌓아둔 벼락부자가 되어 있었다. 엄귀손은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전 재산은 몰수되었다.

 

홍길동을 처형한 뒤 충청도 일대에 거센 후폭풍이 불었다. 조정은 사건의 관련자들을 낱낱이 체포해 평안도를 비롯한 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때문에 평안도 일대에는 아직까지도 충청도를 본관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민족시인으로 손꼽힌 김소월도 공주 김씨다. 오산학교가 있는 정주지방에서는 홍주(홍성) 김씨가 이름을 날렸다.

 

사건이 종결되고 10여년이 지나도록 충청도 일대는 민심이 안정을 찾지 못했다. 많은 백성들은 조정의 처벌을 두려워하며 이웃한 전라도와 경기도로 떠나버렸다. 그 바람에 충청도에서는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심지어 토지조사(양전)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충청도 사람들에게 홍길동이란 이름은 저주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홍길동의 형적은 물론 이름까지도 망각의 땅에 깊이 파묻었다. 시간이 흐르자 홍길동이란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홍길동 사건의 여파로 고향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홍길동의 전설을 되뇌었다.

 

18세기의 실학자 이익은 홍길동을 평안도와 황해도(서도)에서 악명을 날린 도적이라고 하였다(<성호사설>). 누구보다 탁월한 역사가였던 이익조차 홍길동의 활동무대가 충청도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역사적 기억이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전해지기도 한다.

 

한국의 민중이 도적 홍길동을 그들의 영웅으로 되살려낸 것은 19세기 무렵이었다. 옛 소설 <홍길동전>이 대표적이다. 오래전부터 국문학계에서는 이 소설의 저자를 허균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19세기 민중의 집단창작이다. 그것이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도 허균이 죽고 나서 200년쯤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알다시피 <홍길동전>은 주인공을 폭정에서 민중을 구하는 의로운 영웅으로 묘사한다. 의적 활빈당을 이끌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탐관오리를 엄벌하는 홍길동은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19세기 말 여러 곳에서 암약하던 도적들조차 스스로를 활빈당이라 자처했을 정도로 홍길동의 인기가 높았다.

 

오랜 세월 동안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던 홍길동, 조선 후기의 민중은 바로 그 홍길동을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모하였다. 출구가 막힌 현실의 우울함을 이겨내고 싶은 민중의 바람이 새로운 홍길동을 만들어냈다.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희망이요,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홍길동 같은 영웅이 불쑥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의 삶이 한꺼번에 바뀔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그런 심리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심리상태를 스스로 청산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바뀔 만큼 세상이 만만하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짐을 진 채, 묵묵히 앞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경향 19.4.3

 

김의겸의 각자도생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기자 김의겸은 견결한 진보주의자였다. ‘함께 잘사는 길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런 김의겸도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택했다. 14억 재산으로도 안심하지 못했다. 은퇴 이후 인생을 서울 흑석동의 낡은 건물에 걸었다. ‘갓물주(God+건물주)’의 유혹에 대통령의 입이란 본업을 잊었다. 사퇴는 불가피했다.

한국은 부자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모두가 전전긍긍이다. 서민층은 물론 김의겸 부부 같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민의 평균 행복지수(10점 만점)5.895점이다. 조사 대상 156개국 중 5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무엇이 우리를 집단 불행 증후군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행복지수는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기준 GDP)과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내 삶을 선택할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등 6개 지표를 측정해 종합 산출된다. 한국민은 건강 기대수명(9)1인당 GDP(27), 관용(40)에선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사회적 지지(91), 부정부패(100), 선택의 자유(144)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회적 지지가 취약하다는 건, 연대 가능성이 낮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택의 자유가 좁다는 건, 개개인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의미다. 부정부패는 반칙과 불공정이 판치는 시스템을 드러낸다.

 

행복지수는 유의미하다.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각자도생은 백전백패임을 일러준다. 중산층이 불안과 질투를 동력삼아 피라미드를 한 층 두 층 오르는 동안 서민층은 바닥에서 신음해야 한다. 중산층이라고 꼭대기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압도적 자원을 보유한 ‘1%’는 이미 꼭대기를 차지한 채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서로 치고받고 상처 주며 피라미드를 기어오르는 각자도생의 무한 루프는 끊어야 한다. 피라미드를 깨부수고 항아리 구조로 바꿔야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없다. 정치의 몫이다.

 

구조를 바꾸려면? 담대한 상상력과 강한 추진력이 필수다.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상상력의 모범사례다. 29세로 역대 최연소 의원인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린 뉴딜로 워싱턴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그린 뉴딜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불균형까지 완화하자는 야심찬 계획이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타임지 인터뷰에서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말했다. 추진력의 모범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에게서 찾고 싶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테러가 발생한 지 72시간 만에 내각 차원의 총기규제 강화 방침을 이끌어냈다.

 

미 상원이 그린 뉴딜 결의안을 논의할 무렵, 한국 국회의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종교인의 퇴직소득세를 깎아주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혜택은 대부분 초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돌아간다. 한국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문재인 정부가 다음달 10일 출범 2년을 맞는다. 향후 3년간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가 깊고 넓음도 안다. 그럼에도 각자도생이라는 대세를 공존공생쪽으로 방향타만 돌려놓을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생부터 청와대 대변인까지 건물주를 꿈꾸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보유세를 강화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 부동산 불패 신화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동체의 신뢰 인프라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과감한 증세가 절실하고, 필요하다면 사회보험료 인상도 논의해야 한다. 각자도생을 방치하는 건 정치의 직무유기다.

 

두 달 전 왼쪽 손목을 접질렸다. 정형외과에선 1~2주 물리치료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손목 보호대를 차고, 물리치료도 꼬박꼬박 다녔다. 3주가 지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는 비급여 진료인 체외충격파 시술을 권했다. 효과는 좋은데 비싸다며 실손보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 건강보험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온 나는 실손보험에 들지 않았다. 17만원씩 내고, 네 번 시술받았다. 손목 상태는 상당히 나아졌다.

 

이제라도 실손보험에 들어야 할까? 버티고 싶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당당하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다./김민아 논설위원 19. 4.2 경향

 

인생을 건 부동산 투기

그는 공공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 중이다. 이미 자신의 지역에 대규모 임대아파트가 있는데도 서울 외곽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주택이 더 들어서는 건, 근처 주택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매우 불평등한 정책이라고 했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그는 2년 전까지 나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이웃사촌이었다. 나는 8년 전, 서울 하늘 아래서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 행운에 당첨되었다.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하는 삶을 청산하고 20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되니 이웃과도 친밀해졌다. 서울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이제는 안 느껴도 된다는 그와도 회포를 몇 번 풀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입주한 비슷한 평수의 옆 아파트의 가격이 6년 만에 2배가 뛰어올랐을 때, 그 옆의 아파트가 신규 입주 1년 만에 수억원이 올랐을 때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박탈감은 무리해서라도집을 사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에 전 재산만큼의 금액을 대출받아 내 집 마련을 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출금 갚기가 버겁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어떻게든 들어가서 몇 년만 버티면 집값은 무조건 오르니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움직였던 익숙한 말을 뱉는다. “다들 이렇게 살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바보였지.”

 

가진 돈의 곱절을 걸었으니 그는 더 불안해졌다. 집값 상승을 전제로 도박을 했으니 조바심은 커졌다. 아파트 앞에 장애인 복지관이 건설될 때, 그는 예전처럼 별생각 없이 건물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획이 뒤틀리고 있다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그는 대형 쇼핑몰 입주 예정지라고 소문났던 곳에 임대아파트 수천 가구가 조성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차별과 혐오를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주거의 공공성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큰일 날 상황을 선택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일부의 이야기일까? 아주 예전에는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부 투기꾼들의 속물근성 정도로 부동산 광풍을 순진하게 해석할 순 없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면서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공부하고 투자하는사람들이 많아졌다. 10억원을 가진 자가 20억원을 대출받아 건물을 사는 건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겠지만, 재산이 1억원이었던 사람이 2억원을 빌려 몇 년 후 5억원의 재산을 만드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고뇌하게끔 한다. 게다가 솔직히 운이 좋았던 사람이, 힘들었던 지난날의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 그저 열심히 노동만 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 수위는 높아진다. 결국 더 늦기 전에가족 모두의 협력으로 일생의 선택을 한 자들에게 집값 상승은 정의가 되고 행여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는 요인들이 등장하면 자신들이 불평등하다고 착각한다.

 

청와대의 그분도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다들 그러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많아진 사회를 과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임대사업자가 되겠다는 초등학생에게는 죄가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집 앞에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을, 공공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호재인지 악재인지 분별하려는 나쁜 습관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평생 이렇게 살기 싫어서도박을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자신이 분리되는 걸 마땅하다고 여긴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사회, 그래서 일부가 아닌 다수가 누군가의 평등을 미치도록 반대하는 모습이 해악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경향 19.4.1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역사인식의 뿌리

지난달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망언 수준을 넘어 역사에 대한 도발이다. 초선시절 일본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할 때만 해도 미숙한 역사인식으로 치부했는데, 이번 발언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독재와 부패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194966일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친일파들에 의한 반민특위의 해체를 꼽는다. 제헌국회는 1948922일 국권침탈기에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반역 행위를 했던 친일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반민특위가 구성되고, 국회는 독립운동가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데 이어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사무국 등이 구성됐다. 반민특위는 194918일 화신재벌 박흥식에 대한 검거를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반민특위는 최린·이종형·이승우·노덕술·박종양·김연수·문명기·최남선·이광수·배정자 등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세력, 특히 친일경찰 출신의 경찰간부들이 구속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내몰렸다. 친일경찰은 이승만에게 구명을 기대하는 한편 반민특위 해체 음모를 꾸몄다.

 

반민자 공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친일세력은 3·1혁명의 성지 탑골공원과 반민특위본부에까지 몰려와서 특위 해체를 주장하고 반민특위를 빨갱이 집단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62일에는 친일세력의 사주를 받은 유령단체들이 국회 앞에 몰려와 체포된 반민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민특위는 63일 시위자들이 특위본부를 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경찰에 경비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이를 외면하였다. 경찰의 방치 속에서 동원된 시위대는 특위본부를 포위하고 사무실까지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특위의 특경대는 친일경찰 출신인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가 6·3 반민특위 활동 저지 시위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한 데 이어 선동자 20여명을 연행하였다.

 

서울시경 산하 전 사법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 해산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직서를 내놓고 있던 65, 중부서장 윤기병 등은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음모를 꾸몄다. 66일 심야에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지와 웃어른의 양해를 받은 이들은 반민특위 습격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짰다. 행동책임자 윤기병은 새벽 일찍 중부경찰서 뒷마당에 전 서원을 비상소집하여 차출한 서원들을 스리쿼터에 태워 중구 남대문로의 특위본부로 출동시켰다. 윤기병이 직접 지휘한 습격대는 특위본부에 도착하여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특위 직원들과 각종 서류를 스리쿼터에 싣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반민특위 활동은 출범 6개월 만에 사실상 와해되고 다시 친일파 세상이 되었다. 2차대전 후 해방된 모든 나라에서 과거 청산이 이루어졌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좌절됐다. 친일세력이 그만큼 강고했던 것이고, 그 유전자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민특위 해체 와중에 두 가지 큰 사건이 병행되었다.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 부의장 김약수를 비롯 반민법 제정과 외군철수 등에 앞장섰던 의원 13명을 프락치혐의로 구속하고, 독립운동의 상징 백범 김구를 암살하였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날조 혐의가 짙고 백범 암살은 미 CIA요원 출신 현역육군소위 안두희의 신분으로 보아 배후를 알만하다.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세력이 부활하고 민족정기는 사장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독재에 시달리고 한번도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승만 독재는 5·16 쿠데타로, 박정희 독재는 전두환 쿠데타로, 전두환 독재는 3당 야합으로 이어져왔고, ‘이명박근혜적폐청산은 수구세력의 훼방으로 지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은 그때마다 과거보다 미래’ ‘개혁피로증을 내세워 국민을 현혹했다. 반민특위 해체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변주곡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한겨레 19.4.1

 

문재인 정부 인사 무엇이 문제일까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었다. 인사수석이 추천하고 민정수석이 검증하고 인사추천회의에서 최종 후보자를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 속에서만 인사를 했다. 드물게 대통령이 특정인을 후보군에 포함해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특정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도 인사추천회의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 노무현 대통령은 따랐다.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지낸 박남춘 인천시장이 2013년 대표 집필한 <대통령의 인사> 추천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도 시스템일 것이다. 조현옥 인사수석이 추천하면 조국 민정수석이 검증하고 노영민 비서실장이 위원장인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후보자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와 민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문재인 대통령이 시스템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이 갑자기 낮아진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야당과 언론은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 탓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시작은 김영삼 정부였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작되면서 서울시장, 법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보사부 장관이 날아갔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총리 후보자 2명이 잇따라 낙마했다.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참여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공직자들은 청렴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고 검증도 없었다. 모르고 지나갔을 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문민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정치권과 공직 사회 등 사회 지도층에 대해 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여론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일 수 있다. 낙마한 공직 후보자 인사는 다시 하면 된다. 검증 장치는 고치면 된다.

 

캠코더 인사라는 비판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티케이, 김영삼 정부는 피케이, 김대중 정부는 엠케이(목포·광주), 노무현 정부는 386 전성시대였다.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 에스라인’(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태평성대’(성균관대)였다.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보다 이념과 노선이 같은 사람을 기용하는 코드 인사가 훨씬 건강하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은 집권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삼고초려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본래 좀 소극적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재 발굴 시스템을 가동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인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참여정부는 가만히 앉아서 인재를 기다리지 않았다. 숨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발로 뛰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광역시·도를 강행군하면서 10번에 걸친 지역토론회를 개최했다. 지역별·영역별로 인사자문위원회를 두고 이들로부터도 추천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조현옥 조국 수석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기용한 사람들은 대략 세 부류인 것 같다. 부산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노무현 청와대 사람들, 그리고 민주당 사람들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인재풀을 넓혀야 한다. 그렇다고 이념과 노선이 다른 사람들을 쓰면 안 된다.

 

인재를 쓸 때 반드시 팀으로 써야 한다. 이른바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이 비슷한 인재들로서 팀을 이루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로 상이한 세계관이나 국정운영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쓰면 반드시 국정운영의 혼선과 혼란이 온다.”

 

김영삼 정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가 <대통령의 성공 조건>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맞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와 행정부 인사에서 많은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용인술을 보여줬다. 깊이 고민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때의 그 감동이 그립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한겨레 19.4.1


제2회 78 mbc 대학가요제  돌고돌아 가는길(노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