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유엔기념공원 일대 ‘세계 평화의 숲’ 들어선다
푸른색 덩어리가 내게 신비한 존재가 되기까지
미국이 이란·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
석유시대’ 붙드는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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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유엔기념공원 일대 ‘세계 평화의 숲’ 들어선다
부산 유엔기념공원 인근에 ‘세계 평화의 숲’이 1만㎡ 규모로 조성된다. 키가 큰 나무를 최소 150그루 이상 심어 시민들이 풍부한 녹음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市, 대천초등 사이 1만㎡ 부지에
내년 3월까지 150그루 이상 조성
부산시는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인근에 ‘세계 평화의 숲’을 조성한다고 17일 밝혔다. 유엔기념공원과 대천초등 사이 부지에 1만㎡ 규모(길이 200m, 폭 50m)의 숲이 들어서는 것이다. 현재 설계 작업이 진행 중이고, 내년 3월에는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올해 5월 부산시에 기부한 8억 원이 숲 조성 예산으로 투입된다.
세계 평화의 숲 조성은 나무 150~180그루를 심는 게 핵심이다. 현재 부산시는 목백합나무나 미국 향나무 등을 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목백합나무는 키가 약 20m까지 자라며 가을에 노란 단풍이 들고, 미국 향나무는 약 45m까지 자라고 붉은색 단풍이 드는 수종이다. 한국조경학회 조경 설계 기준 ‘하급’인 해당 부지의 토양 환경도 나무를 심기 전 개선할 계획이다. 부산시 공원운영과 이동흡 그린부산지원관은 “목백합나무나 미국 향나무 등은 배수가 불량한 토양 상황에도 적합하다”며 “울창한 숲이 생기는 데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들면 독특한 경관도 연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유엔기념공원의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지원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기념공원 인근에는 박물관, 문화회관, 공원 등 역사나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시설이 분포해 있다”며 “풍부한 녹음을 조성해 다양한 주변 시설과 연계된 명소로 만들고, 지역 주민들도 쉽게 이용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유엔기념공원 완충 지역 역할을 한 해당 부지는 특별한 시설 없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현재 남구청에서 산책로나 허브원, 장미원 등 일부 시설만 조성해 둔 상황이다.
부산시는 현재 남구 유엔기념공원 일대를 세계평화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황이다. 2025년까지 예산 3111억을 투입해 평화공원, 대연수목원,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 각종 시설 일대를 통합 정비할 방침이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푸른색 덩어리가 내게 신비한 존재가 되기까지
식물 기르기와 나
식물 하나엔 정교한 자연법칙
‘반려’란 단어보다 높은 차원
자연이 삭제된 도시에서
식물이 주는 즐거움이란
지금의 식물 기르기 트렌드가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우울감 해소와 같은 심리적 테라피를 강조한다면, 거기에는 일정 부분 내가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바깥의 유구한 자연과 이어진 존재라는 감각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더 많은 식물을 되도록 잘 기르는 ‘식물 금손’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반려 식물’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식물에 붙이기에 부적절한 말처럼 느껴진다. 거기에는 ‘식물이면 그냥 식물이지, 무슨 반려씩이나’ 하는, 트렌드로 소비되는 문화에 눈 흘기는 삐딱한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내게 식물은 동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짝이 되는 동무’ 정도로 치부하기엔 좀 더 높은 차원이랄까. 훨씬 더 넓은 차원이랄까.
아무튼 지금 식물은 ‘힙’하다. 식물이 ‘힙’의 범주에 들어온 것은 기억하는 한 내 생애 초유의 일이다.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식물’로 검색하면 2017~2019년에 나온 책들만 300여권에 이른다. 그중 상시적으로 나오던 어린이 책과 도감류의 책들을 빼고 최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식물 기르기 관련 에세이, 그린 인테리어와 가드닝, 보태니컬 아트 관련 책들만 따져도 수십권이다. 식물에 관한 사람들의 사랑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한순간 갑자기 터져 나온 것처럼 도처에 흘러넘치고 있다. 뭐, ‘고기 먹방’ 같은 게 트렌드인 것보다야 이편이 나을 것이다.
‘힙’의 범주에 들어온 식물
시류에 편승해 나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게는 식물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 식물도감들을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녀와 글을 쓰려면 산과 들에 흩어져 있던 나무나 꽃의 이름을 알아야만 했다. 나무 이름에 해박한 전문가와 함께 가면 행운이었지만 대체로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 그때마다 도감과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누리집을 뒤지며 그 이름을 알아내려 애써야만 했다. 불과 10년쯤 전인데 그때는 카메라만 갖다 대면 물체 정보를 알아서 식별해주는 ‘구글 렌즈’도, ‘모야모’와 같은 식물 이름 찾기 애플리케이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엔 아무리 도감을 뒤져도 꽃이나 풀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내가 본 식물들은 종종 그냥 미지의 상태로만 남아 있었다. 다만 그 이름들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식물이라는 세계에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글에 풀 이름 같은 거야 안 써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식물의 세계에 눈을 뜬 이후에는 점점 더 많은 것이 궁금해졌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길에서 본 식물들의 이름과 특성들을 알아갔고, 필요와 관계없이 도감을 사 모으며 나무와 풀들의 목록과 도감을 지은 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도감을 지은 이들은 대부분 나무를 좋아해서, 꽃에 미쳐서 스스로 전국 산하를 돌아다니며 수년 동안 사진을 찍고 정보를 수집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쓴 딱딱하고 촌스러운 서문 같은 것을 보면, “장식적인 사진과 그에 비해 거칠더라도 해당 식물의 특징이 잘 나타난 사진 중 택일해야 하면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결국 후자를 선택하곤 했다”와 같은 단순한 말들 뒤로 그들이 발로 밟고 눈으로 보았을 수많은 계절과 공간이 떠올랐다.
그전까지 그저 푸른색 덩어리에 불과했던 나무와 풀들은 이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생태와 생존 방식을 가진 신비한 존재였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상한 모듈 결합체였다.
그러는 동안 때로 까마득히 멀어져 있던 어린 시절의 식물과 관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찍어온 사진 속 식물의 잎맥과 꽃잎이 난 모양 같은 것을 도감과 비교하며 어느 순간 초등학생 시절 ‘자연관찰대회’라는 것에 나갔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 대회란 것은 그저 몇시간 동안 학생들을 어느 자연에 풀어놓고, 하나의 탐구 주제를 정해 그 식물에서 발견하고 관찰한 것들을 하나하나 번호를 매겨 그림으로 그리고 적어나가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귀여운 대회였다.
생각해보면, 식물 하나하나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 그때였다. 식물은 몸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인 동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겉보기에 제멋대로인 식물들은 자세히 보면 이파리 하나, 꽃술 하나에도 전체 자연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적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즐거웠다. 나는 자연이 삭제된 도시에서 사는 동안 그 즐거움을 깊숙한 곳에 구겨둔 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물 금손’이 되고픈 욕망
내가 지금 조금이라도 식물과 자연에 대한 공감의 감각을 갖고 있다면 이때 산으로 들로 걸어 다니고, 나무와 풀과 꽃들을 찾아보던 1년 남짓한 경험 덕분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본래 내게 존재했을 자연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내가 내 의지로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전에도 선물받은 몇가지 식물을 키워봤지만 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대부분 빠르게 죽어나갔다. 많은 이가 그렇듯 나도 별수 없이 식물을 죽이는 사람 쪽이었다. 때마다 꽃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식물을 하나둘 들여놓는 것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차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이것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사계절 변화에 따라 잎을 내고 꽃을 피우게 하리라 다짐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들의 특성을 익히고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일에 열렬히 집중했다. 그 일은 생각보다 놀랍고 즐거웠다. 일대일로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바깥의 식물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발견의 연속이었다. 물·햇빛·바람과 식물의 놀라운 직접적인 관계, 모든 식물은 내가 보지 않을 때만 잎을 틔우거나 꽃을 피운다는 사실. 즉, 식물은 정지해 있지만 실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사실, 모든 조건이 맞았을 때의 공포스러운 성장 속도.
그러나 식물을 기르는 기술은 아주 조금씩만 발전했다. 한때는 매화 분재를 들여놓고 봄이 되자 피어나는 꽃을 보기도 했고, 싹이 난 고구마를 심어 키워 작지만 고구마를 수확하기도 했다. 유행했던 모든 독특한 식물들-몬스테라, 아가베 아테누아타, 유칼립투스, 테이블야자, 마오리 소포라-도 내 집에 한동안 살았다. 그러나 곧 각기 다른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름시름 앓다가 1~2년 안에 죽어버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 내 집에는 몇 가지 식물들만 살아남아 있다. 벵골고무나무, 스킨답서스, 금전수, 수국,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나무 하나, 그리고 베란다의 기다란 화분에 아무렇게나 심어놓은 돌나물 정도다. 부끄럽게도 모두 생명력이 좋기로 소문난 것들뿐이다.
그러나 소박한 잡초 같은 그들은 내게 자연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며, 바깥의 자연으로 내 외연이 확장되는 것을 도와준다. 마치 아이를 키우면 세상의 모든 아이로, 고양이를 키우면 세상의 모든 고양이로 나의 공감 능력이 확장되듯이 말이다. 지금의 식물 기르기 트렌드가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우울감 해소와 같은 심리적 테라피를 강조한다면, 거기에는 일정 부분 내가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바깥의 유구한 자연과 이어진 존재라는 감각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더 많은 식물을 되도록 잘 기르는 ‘식물 금손’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다이나믹 닌자 /한겨레
미국이 이란·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
아람코 출범과 영미석유협정의 무산에서 분명해진 것은 국제 석유시장의 운영과 통제는 전적으로 석유카르텔의 몫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이나 영국 정부의 직접 통제는 허용될 수 없으며, 정부 역할은 석유카르텔의 시장 지배를 위한 정치군사적 지원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미국 석유메이저와 정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석유메이저는 첫째 석유를 미국 및 동맹국에 합리적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둘째 중동지역의 우방 국가들에 대한 재정 지원의 통로 역할을 하며, 셋째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소련의 남진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석유메이저는 거대한 독점 이윤을 보장받으며 미 국내법에 의한 반독점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계, 또는 관행이 확립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란의 석유 국유화다. 모사데크의 석유 국유화는 국제 석유카르텔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지만 이 도전을 막아내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카르텔의 위상과 역할이 증대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미국 정부가 마셜플랜을 통해 미 석유업계를 지원한 실상을 알아본다. 미국은 서유럽의 경제 부흥을 위해 1948년부터 4년간 160억 달러를 지원했는데 그중 10% 이상이 바로 미국 석유 구입이었다. 단일 지출 항목으로 최대였다.
미국은 당시까지 석탄 위주였던 유럽의 에너지 소비를 석유 위주로 바꾸려 했다.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값싼 석유의 소비처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강력한 단결력을 자랑해온 서유럽의 탄광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라는 풀이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마셜플랜 지원금의 10% 이상을 미국 석유 구매에 쓰도록 강제했으며 이에 따라 당시 서유럽 석유의 절반을 미국의 5대 석유 메이저가 공급했다.
전후 유럽 석유 시장을 지배한 미국 석유메이저는 1945년 배럴 당 1.05달러였던 석유 가격을 1948년 2.22달러로 2배 이상 올려 폭리를 취했다. 유럽 국가들은 귀중한 달러를 아끼기 위해 독자적인 정유공장을 설립하려 했으나 미국정부는 불허했다. 미국 석유업계의 강력한 로비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미 석유업계의 판촉 도우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 내 반독점 정서의 부활과 독점 규제의 좌절
앞에서 본 것처럼 2차 대전 발발 이후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미국 정부도 국제 석유시장에 대한 다양한 개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특히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중반 사이 석유카르텔과 정부 간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집단으로서의 석유카르텔이 미영 정부보다도 강력해진 것이다. '반공'과 '안보'를 이유로 정부의 시장 규제를 저지한 것이 비결이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에서는 거대 기업, 특히 석유메이저들의 독점행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의회와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양한 정부 기관에서 석유메이저의 담합과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형사 처벌까지 추진됐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반독점운동이 재연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독점 규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초기인 1953년경 무산되고 만다. 한국전쟁과 이란의 석유 국유화가 빌미였다. 냉전의 승리를 위해서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석유메이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승리한 것이다.
1946년부터 미국 경제가 침체하면서 기업 집중이 다시 일어났다. 1920년대에는 동종 업종 간의 인수 합병으로 10년간 약 1100개의 기업이 사라진 반면 2차 대전 이후에는 수평 합병이 특징이었다. 예컨대 진공청소기 회사가 살충제 회사를 흡수하는 식의 문어발식 확장이었다. 즉 자본력 있는 기업이 닥치는 대로 기업 사냥을 벌였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사라졌고 그만큼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은 높아졌다. 특히 대형 석유기업이 표적이었다.
석유기업은 전쟁 기간 떼돈을 벌었다. 군납 석유로 폭리를 취했는가 하면 제3국(스페인)을 통해 나치 독일에 석유를 공급했다. 뉴저지스탠다드는 독일 기업 I. G. 파르벤에 협력해 연합국의 합성고무 개발을 방해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마디로 적국에 부역한 것이다. 몰락한 중소기업과 진보주의자를 비롯해 노동조합, 여기에 중소 석유사업자들까지 가세해 석유메이저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법무부 반독점국, 연방 공정거래위원회(FTC), 상원 중소기업위원회 등에서 각기 독점행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 FTC가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The International Petroleum Cartel: 국제석유카르텔에 관한 공정위 보고서)가 가장 영향력이 컸다.
FTC는 1949년부터 미국 석유산업에 대해 조사했는데 자료 제출 명령 권한(수사권)이 있었기 때문에 석유산업의 깊은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크나캐리 협정과 레드라인 협정이 체결된 1928년부터 1952년까지 오랜 기간 석유카르텔의 작동방식을 추적했다.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안보 이유로 삭제됐을 정도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 우리가 석유카르텔의 작동방식을 대략이라도 알게 된 것은 FTC 보고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04년 아이다 타벨의 역작 '스탠다드석유회사의 역사'에 필적하는 탐사 보도의 기념비적 저작이었다. 타벨의 탐사 보도가 스탠다드 트러스트의 해체를 가져온 것처럼 FTC 보고서는 석유카르텔의 몰락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이 보고서는 석유메이저에게 대단히 위험한 보고서였다.
당시 트루먼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이 보고서의 공개를 원치 않았다. 석유카르텔의 담합을 묵인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상원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인 존 스파크먼 의원이 보고서를 언론에 유출하면서 철저 수사를 촉구했다. 대중들의 분노에 불을 지른 것이다. 보고서가 공개된 이상 독점행위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해 보였다.
트루먼 행정부는 둘로 갈라졌다. 국무부는 안보를 내세워 석유카르텔의 담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법무부는 공정을 앞세워 처벌을 주장했다. 결과는 국무부의 승리였다.
한국전쟁 이후 애치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카르텔 회원사들에게 국제 사회에 대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요청했다. 한국전쟁으로 석유 수요가 늘어난 반면 이란의 석유 수출이 봉쇄됐으므로(1951년 7월-1953년 8월) 공급을 대폭 늘려야 유가가 안정될 터였다.
핵심 동맹국인 서유럽의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유가 인상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애치슨의 행동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카르텔의 담합을 인정한 셈이다. 즉 반독점법 위반이다.
법무부는 이의를 제기했다. 법무부는 독점행위 조사를 통해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석유카르텔의 담합 행위를 형사 기소하기 위한 대배심 구성에 착수한 터였다. 이에 대해 애치슨은 국방부와 CIA까지 동원해 국가 안보를 위해 반독점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공정 경제를 위한 독점 규제보다는 국가 안보를 위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결국 트루먼은 애치슨의 요구에 굴복했다. 이로써 이란이 영국의 금수조치를 뚫을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란 석유에 대한 금수 조치는 석유카르텔의 담합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담합이 유지되는 한 금수 조치도 계속됐다. 이란은 미국이 "등 뒤에서 비수를 꽂았다"며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란이 아무리 싼 값에 석유를 내놓아도 구매자가 없었다. 미 국무부는 카르텔 멤버가 아닌 미국 중소 석유기업의 이란 석유 매입도 금지했다. 1952년 2월 이탈리아가 구매한 이란 석유는 예멘 근해에서 영군 해군에게 압수됐다. 이란 경제에 대한 목조르기가 완벽하게 이뤄진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퇴임 직전 석유카르텔에 대한 형사소송을 민사소송으로 전환시켰다. 형사 처벌을 포기한 것이다. 그는 국가안보회의(NSC) 결정이라고 변명했다. "안보적 이유 때문에 민사소송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오마 브래들리 합참 의장의 조언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석유메이저는 이란 사태의 마무리에 나서는 조건으로 이후 자신들에 대한 정부 규제를 확실하게 원천 봉쇄했다. 모사데크 축출 이후 이란을 다시 국제 석유시장에 복귀시키려면 결국 카르텔이 나서야 했다. 이는 사실상 담합 행위다. 미국의 석유메이저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대해 자신들이 뒷수습에 나서는 대신 이를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을 요구했다.
국방부와 CIA의 강력한 요구에 못 이긴 법무부는 마지못해 그러한 약속을 했으나 메이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확실한 약속을 요구했다. 결국 NSC는 석유산업의 소관 부서를 법무부가 아닌 국무부로 이관하는 결정을 내린다. 석유메이저의 완벽한 승리였다. '안보'의 이름으로 미국 석유메이저는 정부의 모든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란 사태의 뒷마무리는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의 아들인 허버트 후버 2세가 맡았다. 비록 모사데크는 축출됐으나 이란 국민의 거센 반영 감정 때문에 영국이란석유회사(AIOC)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란에 복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버 2세는 1953년 10월부터 영국, 이란을 오가며 중재를 진행했다. 이란 석유는 석유메이저들의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다.
지분 구성은 AIOC가 40%, 로열더치가 14%, 미국의 5개 석유메이저가 각 8%, 프랑스의 CFP가 6%였다(5대 미국 기업은 각자 1%를 갹출해 미국의 9개 중소기업에 배분했다. 반독점 세력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의 독점적 영역이었던 이란에 미국과 영국이 40%씩 동등하게 진출한 것이다. 어부지리라고나 할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 격이다.
이로써 미국은 이라크 석유의 23.75%와 사우디 석유를 100% 독점한 데 이어 이란의 40%까지 갖게 됐다. 1960년이 되면 엑슨, 셰브론, 모빌, 걸프, 텍사코 등 5개 미국 석유메이저가 중동 석유(확정 매장량 1640억 배럴)의 60%를 장악한다. 특히 1944년 미국의 4분의 3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됐던 중동 석유의 확정 매장량은 1950년 130%, 1960년 4배까지 늘어났다.
반면 이란은 원유 수입의 50%만을 갖게 됐다. 당초 영국이 제안했던 것이다. 카르텔은 여기에 AIOC 총 이윤의 20% 배당까지 제안했었지만 모사데크 제거 이후 이는 없던 일이 됐다. 이란 석유 국유화 사태의 최대 승자는 미국, 최대 패자는 이란이 된 셈이다.
이란, 이라크의 자원민족주의
2차 대전을 고비로 세계 석유산업의 중심은 미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서반구에서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 중동으로 넘어간다. 중동의 석유 매장량이 워낙 많은 데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어 석유 운송에 최적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석유 메이저들이 중동지역에 주목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자원민족주의다.
1938년 멕시코가 자국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했고 베네수엘라에서도 국유화 논의가 끓어올랐다. 베네수엘라는 2차 대전 동안 석유 수요 증가로 수입이 늘어나면서 국유화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1949년 석유메이저와 원유 수입의 50 대 50 배분에 합의한다. 산유국 중 최초였고, 최대치의 양보를 이끌어낸 셈이다.
이처럼 산유국들의 권리 요구가 거세지자 석유 메이저들은 중동에 눈을 돌린 것이다. 실제로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은 워낙 작은 나라인 데다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석유메이저들이 통제하기 쉬웠다. 또한 사우디는 미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었기에 미국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왕정, 또는 토후국이었다. 민주국가가 아닌 탓에 국민 여론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사우디와 함께 중동의 3대 산유국인 이란, 이라크는 사정이 달랐다. 영국의 오랜 지배와 착취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했다. 바로 이 두 나라가 중동의 자원민족주의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모사데크의 석유 국유화가 그 시발점이다.
이란의 경우, 1932년 영국은 대공황을 이유로 AIOC의 로열티를 전 해의 4분의 1로 일방 감축했다. 레자 샤는 공개적으로 회계장부를 불태우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상황에 따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군사 위협으로 샤를 굴복시켰다. 자본주의 국가들 간에는 그토록 신성시 되는 '계약 이행의 의무'가 제3세계 국가에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이라크는 1차 대전 이후 생겨난 신생 국가로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영국이 내세운 인물이 이라크 국왕이 됐다. 북부의 쿠르드족, 중부의 수니파, 남부 시아파 등으로 갈라진 이라크는 애당초 하나의 국가로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철권통치로 다스리면서 이라크의 국부를 최대한 착취했다.
1921년 남부 시아파가 반란을 일으키자 영국은 공중 폭격으로 주민 저항을 분쇄했다. 국내 치안을 위한 공습은 이것이 세계 최초다. 이후에도 영국은 조세 징수관을 파견하기 전에 공중 폭격을 감행했다. 현지 주민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한 조치다. 반란의 소문만 돌아도 폭격기를 보내 경작지를 불태워 버렸다. 단 한 푼이라도 쥐어짜내기 위한 야만적 조치였다. 이러한 영국의 공습 정책에 대해 당시 이라크 주재 미국 영사는 "야만적"이라고 비판했고, 영국 의회에서도 문제가 될 정도였다.
결국 이라크에서는 1958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국왕이 살해됐고 영국은 축출된다. 이후 이라크는 소련과 협력해 석유산업 자립화 정책을 펼치며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설과 1973년 1차 석유파동 등 자원민족주의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한편 1953년 8월 이후 미국의 맹방이었던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에 의해 반미로 180도 급선회한다. 그 여파는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년)을, 이란-이라크전쟁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1990년 8월), 이는 1차 이라크전쟁(1991년 2월)과 2차 이라크전쟁(2003년 3월)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석유 통제권을 둘러싼 미국과 산유국 간의 투쟁이 대중동전쟁이라는 참화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에 모사데크의 석유 국유화와 미국 비밀공작에 의한 모사데크 제거가 있다. 비밀공작은 단기적으로는 이란을 친미국가로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훨씬 더 심각한 역작용을 초래했다. 비밀공작이 이란을 극단적 반미국가로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이다. 이른바 '역풍(blowback)'이다/ 박인규 프레시안
석유시대’ 붙드는 SUV
미국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 가운데 가장 최근에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는 일명 ‘아쿠아 콜라’가 등장한다. 뭔가 독특한 액체인 듯하지만 사실은 그냥 ‘물’이다. 인류 문명이 완전히 파괴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 탓에 마실 물은 이 사회의 독재자인 ‘임모탄’에게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임모탄은 높은 절벽에 선 채 아쿠아 콜라를 방출하는 밸브를 잠그거나 풀어 갈증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통제한다. 주인공인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손아귀에서 탈주하며 운전한 전투 트럭에 실린 화물 역시 아쿠아 콜라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일부 다뤄지지만 멜 깁슨이 젊은 시절 주연을 맡은 <매드맥스> 초반 시리즈에는 물과 함께 석유를 찾아 헤매는 인간 군상이 더 세밀하게 그려진다. 대중교통 수단이 완전히 파괴되고 도처에 자신을 노리는 무법자들이 있으며, 생존을 위해 빠른 이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동차 연료인 석유는 매우 중요한 생존 수단이다. 오일쇼크 뒤 시작된 <매드맥스> 시리즈는 이처럼 인간 사회가 직면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약점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컨강 일대의 석유 채굴용 펌프 모습. IEA는 올해 연례 보고서에서 2030년대부터 세계 석유 수요가 정체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SUV의 인기가 지속될지 여부가 변수로 거론된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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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 기술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석유의 시대가 2030년대에 저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주 ‘2019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를 공식 발표하고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정책 계획을 참고해 산출한 석유 수요 증가율은 2025년 이후부터 둔화된 뒤 2030년대에 정체될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은 바로 승용차 동력의 변화이다. 승용차를 위한 석유 수요가 2020년대 후반에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석유 외에는 마땅히 대체할 연료가 없는 선박, 항공기나 다양한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석유화학 부문에서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하지만 이를 상쇄할 정도로 승용차에선 석유를 덜 쓰게 된다는 얘기다.
자동차는 지금이나 미래에나 인류의 중요한 이동수단일 테지만 이처럼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건 전기차 때문이다. 각국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전기차 200만대가 팔려 나갔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지급되고 배터리 가격 자체가 떨어진 게 중요한 이유로 판매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IEA, 전기차 등 승용차 동력 변화로 2030년대 석유 수요 감소세 전망했지만…
기름 더 먹는 ‘SUV’, 지난해 전 세계 판매량 39%까지 껑충
하지만 복병이 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IEA에 따르면 SUV는 2010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17%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39%까지 껑충 뛰었다. SUV에 대한 선호도 증가는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세계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SUV는 험지를 강력한 엔진의 힘으로 돌파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전기 모터로 동력 계통이 완전히 대체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소형 SUV에서는 전기가 사용되고 있지만 레저용을 겸한 대형 SUV일수록 이런 경향은 심하다. 일반적으로 SUV는 중형 승용차보다 기름을 25% 정도 더 먹는다.
미국 델라웨어주 도로 휴게소에 마련된 테슬라의 급속 차량 충전기. 전기차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00만대가 팔렸다(위 사진). 2010년 벨기에 에스티네스에 완공된 풍력발전단지. 11기의 터빈으로 5만5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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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매체 가디언은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의 발언을 인용해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의 두 번째 큰 이유가 SUV 차량이었다”고 지적했다. 만약 SUV에 대한 인기가 지속될 경우 2040년 석유 수요는 예상보다 1일 200만배럴이 추가돼 전기차 보급 확대 효과를 크게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보고서는 2040년에 풍력과 태양광 등 저탄소 에너지원이 전체 발전량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로 인해 나타나는 온실가스 증가분을 모두 상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지금보다 증가세는 둔화할 테지만 2040년 뒤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2040년은 많은 기후변화 연구 보고서가 지구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는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세기말 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최대 2도 이하로 묶는다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도 달성될지 요원한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SUV 인기 지속될 경우 2040년엔 전기차 보급 확대 효과 크게 잠식할 것”…
정부, 다양한 전기차 생산 유도·탄소 배출 줄이는 교통시스템 늘려야
보고서는 이런 여건 속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주도해야 하는 건 정부라고 적시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국내 여건과 관련해 “자동차 제조사들이 소비자 기호와 수요에 맞출 수 있는 더 다양한 전기차를 생산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며 “자전거 보급 확대 등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교통 시스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500년 가는 일회용컵, 보증금 얼마면 되니?
'거리 일회용컵' 대부분 재활용 안돼...컵 보증금제 부활 요구 커져
"국회에서 보증금제 법 개정안 제대로 논의해야"
11월6일 서울시는 환경·청소 분야 전문가·단체, 시·자치구 담당 공무원 등 100여 명이 참여한 ‘쓰레기통 설치 및 운영 개선방안 합동 토론회’를 열었다. 쓰레기통만을 주제로 대규모 토론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거리에 쓰레기통을 늘려달라는 시민들의 민원이 계속 제기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서울 시내버스 음식물 반입 금지 조치 뒤 정류장 주변에 버려지는 일회용 커피컵이 늘어나며 쓰레기통 추가 설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거리로 쏟아진 매장 안 일회용컵
그런데 쓰레기통만 추가 설치한다고 일회용컵 문제가 해결될까? 거리의 쓰레기통(재활용)에 버리더라도 음료가 남아 있고 재질이 다양한 일회용컵은 다른 재활용품과 뒤섞이면 지자체 선별장에서 분리수거가 잘 안 돼 재활용 대신 소각장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지난해 5월 환경부가 카페 매장 안 일회용컵(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해도 여전히 매장 밖에 버려지는(테이크아웃) 일회용컵(플라스틱·종이) 문제는 그대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산에 5초, 사용하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으로 요약되는 ‘플라스틱 재앙’을 막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먼 것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보증금제) 부활을 강하게 요구한다. 환경부도 2018년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보증금제 도입 계획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제도 도입은 미뤄지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 개정안(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계속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보증금제는 2003~2007년 환경부와 업체가 자율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한 차례 시행됐다. 소비자가 일회용컵을 매장에 돌려줄 경우 50~100원(음료 구매 가격에 포함)을 보증금으로 돌려주고, 소비자가 보증금을 받아가지 않을 경우 이 돈(미반환 보증금)은 환경보전지원금이나 환경장학금(환경미화원 자녀)으로 활용하는 게 제도의 뼈대였다.
카페·패스트푸드 매장은 돌려받은 컵을 모아 전문 재활용 업체로 보냈다. 제도가 시행되자 일회용컵이 매장으로 돌아오는 비율(2003년 23.8%, 2004년 31.6%, 2005년 33.6%, 2006년 38.9%, 2007년 36.7%)은 서서히 늘었다. 하지만 미반환 보증금을 업체들이 용도와 달리 자신들의 판촉·홍보비 등에 사용해 보증금 관리 투명성 논란이 불거졌다. 법적 근거 없이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과 불편을, 업체들에 컵 재활용 처리 의무를 지우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나왔다. 결국 2008년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규제 완화를 이유로 제도 폐지를 권고했고, 정부 출범 뒤(2008년 3월) 폐지됐다.
문제는 이후 커피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일회용컵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환경부 연구 용역 결과를 보면 2009년 약 191억 개이던 일회용컵 사용량은 2015년 약 257억 개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재활용되는 양은 10%가 안 되는 걸로 추정했다.
2018년 4월 쓰레기 대란을 겪은 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보증금제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플라스틱컵 사용 규제로 매장 안에서 플라스틱컵 사용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풍선효과’로 규제 대상이 아닌 종이컵의 사용량(코팅 처리돼 별도의 공정을 거쳐야 재활용 가능)이 늘었다. 테이크아웃으로 버려지는 컵은 집계가 안 되고 있다.
일회용컵 백가쟁명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8년 4월에 발의한 보증금제 법안은 과거 제도가 노출한 문제점을 보완했다.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일회용컵의 재질을 표준화하고, 매장은 회수된 일회용컵을 전문 재활용 업체로 보내 처리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환경부 등의 참여로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를 설치해 미반환 보증금을 통합 관리하도록 해 보증금 관리의 투명성도 높였다.
환경부도 전문가 포럼과 연구용역을 진행하며 제도를 설계해왔고, 2017년과 2018년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의견도 수렴했다. 2017년 조사(10월26일~11월4일 2005명)에서 보증금제 도입 찬성 의견은 89.9%였고, 컵을 반환하겠다는 의견은 69.2%로 집계됐다. 2018년 조사(11월2일~12월7일 3600명·200개 매장)에서도 찬성 의견은 85.6%, 컵 반환 의향은 68.9%였다. 다양한 여론을 수렴한 환경부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ㄱ매장에서 구매한 일회용컵을 ㄴ매장에 돌려줘도 보증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보증금 액수도 여론 수렴을 거친 뒤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법안은 2018년 9월10일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 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짧게 논의된 뒤 계류 중이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의원들은 보증금제 필요성이 제기된 사회적 변화나 쓰레기 재활용 문제라는 관점에서 법 개정안을 살펴보기보다 과도한 규제라거나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관점에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쓰레기 투기는) 컵에 책임 있는 거예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거예요? (…) 전체 일반 소비자 중에서 버스정류장이나 거리에 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전 국민을 규제합니까? 이것은 세상에 없는 법이야”(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일회용품 사용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요? 가능하면 자제해서 쓰자는 취지일 텐데 이런 식으로 (캠페인이 아니라) 규정을 둬가지고 하게 되면 효과가 있을까?”(설훈 민주당 의원), “그것만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들, 사람들이 생길 거란 말이에요. (…) 그게(일회용컵) 전부 다 오히려 비위생적이고…”(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등의 의견만 주고받다 시간에 쫓겨 다음 법안 논의로 넘어갔다.
보증금제 국회에서 논의해야
일회용컵 쓰레기의 증가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증금제가 국회에서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길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오염 원인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판매자와 소비자에게 쓰레기 발생 비용을 모두 부담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증금제 재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술·음료가 담긴 유리병 등에 적용된 빈 용기 보증금 제도가 98%(2018년)의 회수율을 보이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진국 의원은 “환경·폐기물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모든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만큼, 책임의식을 가지고 보증금제 도입에 접근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환노위 소속 한정애 민주당 의원과 여성환경연대·서울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도 11월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11월 중 예정된 환노위 법안 심사 소위에서 보증금제 재도입을 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12월10일 끝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마존 숲이 눈앞에서 불타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나무 타는 냄새가 주변에 그득했다. 지난 밤 불길이 할퀴고 간 산등성이는 검게 그을려 있다. 황망한 기분 탓에, 난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타잔과 치타는 이제 거리로 나앉게 되나?” 옆에서 화재 현장을 지켜보던 한 사람은 “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아뿔싸! 타잔을 동정할 일이 아니구나. 잘못하면 인류가 끝장날 수 있겠구나.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을 비볐다. 장면이 바뀌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서 비장한 어조로 연설을 하고 있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당신들은 영구적 경제성장이란 동화를 거론하며 오직 돈 타령만 하고 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는가(How dare you?).” 회의장에 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눈을 깜빡였다. 이번엔 영국 런던 시내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웨스트민스터 다리, 트래펄가 광장, 정부 주요 관공서 주변을 점거했다. 트래펄가 광장에는 ‘우리의 미래’라고 적힌 관을 실은 영구차가 자리를 잡았다. 운전자는 스스로를 자동차에 묶었고, 시위대는 차량 주위에 드러누위 스크럼을 짰다. 순식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환경운동단체 ‘멸종저항’ 회원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 27개국 6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라” “2025년까지 탄소배출 ‘순 제로’를 달성하라”고 외쳤다.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이들은 “감옥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시위대 한 명이 경찰에 끌려가며 눈을 흘기는 듯했다. “구경만 할 거야?”
고개를 돌리니, 서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다.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까지 연기가 미쳤다. 영화를 찍던 배우·감독·스태프들이 황급히 스튜디오를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산불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남쪽 방향에서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청정지역’이라는 호주의 하늘이 시커멓다. 대형산불이 호주를 덮쳤다고 한다. 어디선가 굵은 중저음의 호통이 들려온다. “다 이게 지구 온난화 때문이야. 식생이 메마르면서 산불이 잦아지는 것이라고!” 신의 경고인가.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유서 깊은 도시가 물에 잠겨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9세기 비잔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라는 산마르코 대성당도 잠겼다. 무릎까지 물이 들어찼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산마르코 광장을 힘겹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닷물에 휩쓸린 가구, 건물 잔해, 쓰레기 등으로 광장은 뒤범벅이 됐다. ‘유럽의 응접실’로 불렸던 이 광장의 안온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베네치아 시장은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기후변화의 여파다. 베네치아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한탄했다.
심란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눈 뜨니, 다시 유엔총회장이다. ‘무분별한 개발허가’로 아마존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연단에 보인다. 그는 아마존 열대우림 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를 두고 “주권침해”라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 공식 탈퇴를 선언하는 성명을 읽고 있다. 기후위기는 아랑곳없는 듯했다. 동맹국들에 방위비 ‘삥’이나 뜯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낙담해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 등을 도닥여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아마존 카야포 부족의 라오니 메투크티레 족장이라고 소개한다.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말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말씀을 청했다. 족장이 말했다. “우리는 숲과 자연을 통해 숨을 쉰다. 벌목과 파괴를 지속한다면 백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족장의 언어를 몰랐지만 또렷이 들렸다. 모골이 송연했다.
‘앗’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이불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새벽 4시. 다시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마존 할아버지의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뒤숭숭하다. 꿈인데, 꿈이 아닌 것 같다.
이용욱 국제부장 경향 2019.11.17
[르포] '아슬아슬' 출근길…"모든 길은 평등하지 않다"
서울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상계역까지 고작 세 정거장. 재현씨의 거주지에서 역까지의 거리, 역에서 직장까지의 거리를 합쳐도 비장애인 기준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이날 배재현(41세)씨의 집에서부터 직장까지 걸린 시간은 52분. 취재진이 동행한 재현씨의 출근길은 고단하고, 위태로웠다.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집을 나선 재현씨의 몸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다. 재현씨는 매일 아침 전동휠체어를 타고 역으로 간다. 휠체어를 탄 채로 오를 수 있는 마을버스가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아파트 단지 내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7분 만에 역에 도착하지만 재현씨는 20분 이상 휠체어를 타고 달려야 한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비탈지거나 움푹 파인 길은 위험하다. (사진=박고은 기자)
인도가 울퉁불퉁해 차로의 갓길을 이용하는 배재현씨. (사진=박고은 기자)
역으로 향하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비탈지다. 겨울에 바닥이 얼기라도 하면 휠체어가 헛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인도에는 보도블럭이 빠져 움푹 파인 지점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이런 지점을 전동휠체어가 피하지 못하면 사람뿐 아니라 휠체어까지 앞으로 고꾸라져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재현씨는 큰길이 아닌 곳에선 인도보다는 차로의 갓길을 이용한다.
재현씨는 "어떻게 된 게 한국에선 인도보다 차로가 더 평평하게 닦여있다. 길을 설계할 때 장애인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취재진이 동행한 날에도 사고가 날 뻔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목의 한 초등학교 앞. 재현씨는 모퉁이를 돌다 맞은편에서 돌진하는 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오는 비탈진 길을 신경 쓰다 정작 차가 달려오는 맞은편은 보지 못한 것이다.
전동휠체어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에 취약하다. 자칫 잘못하면 탑승자와 휠체어가 동시에 옆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탑승자는 앞보단 옆을 주시하게 된다. 재현씨를 비롯한 전동휠체어 탑승자들이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이유다.
재현씨는 "장애인의 출근길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편하게 출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하루 저를 따라다닌 기자님도 이제 길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모든 길은 평등하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출입구를 지나쳐 길을 돌아가는 배재현씨. (사진=박고은 기자)
다행히도 이날 지하철은 그리 북적거리지 않았다. 재현씨는 "직장을 상계동 쪽으로 옮긴 후 그나마 출근길이 나아졌다"며 "4호선 끝이라 사람들이 덜 붐비기 때문에 휠체어 탑승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1호선의 악몽'을 떠올렸다. 2013년 재현씨는 개봉역 부근에 있는 직장을 다녔다. 당시 재현씨는 출근 시간에만 꼬박 두 시간을 써야 했다.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환승하는 시간, 승강장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시간,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시간 등을 합치면 비장애인에 비해 시간이 배로 걸렸다.
더 큰 문제는 지하철 전동차 휠체어 전용칸에 사람이 가득 찼을 때다. 바쁜 출근 시간이면 사람들은 별 인식 없이 전동차에 오른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마련된 휠체어 전용칸도 예외는 아니다. 휠체어 전용공간은 전동차 한 대에 두 곳, 많으면 네 곳이다. 그런데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지하철을 몇 대나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재현씨에 따르면 출근 시간이 아닐 때도 캐리어나 자전거를 들고 탄 사람들이 휠체어 전용칸을 차지하고 있어 불편을 겪는 일이 많다.
재현씨는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르면 어떤 분들은 그냥 비켜주지만 어떤 분들은 말을 해도 안 비켜주는 경우가 있다. 아직은 휠체어 전용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현씨는 출근길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비장애인에게도 출근은 힘든 일이지만 장애인에게 출근은 매 순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다. 재현씨는 "장애인에게도 안전하게 출근할 권리가 있다. 출근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안전한 출근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란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CBS노컷뉴스 박고은 기자
제19호 태풍 하기비스 영향으로 日후쿠시마현 방사선 확산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지난달 13일 일본 나가노(長野)현 나가노시에서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차량기지의 열차들이 범람한 물에 잠긴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 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오염된 산림의 토사가 하천으로 흘러내려 방사능 오염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도쿄신문이 18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이 지난달 24~29일 기무라 신조 독협의과대 준교수(조교수)와 합동으로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시와 니혼마쓰 시 등의 산사태와 하천 범람 등으로 침수된 주택지 15곳에서 토사를 채취해 세슘 농도를 측정한 결과, 이같은 결과가 나와 피폭대책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나미소마 시 오다카 구의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서는 1kg 당 약 3천~5천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는 원전사고 이후 산속에서 높은 농도의 오염 토사가 유출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태풍이 통과한 직후인 지난달 14일 주민 시라히게 유키오씨가 채취한 토사에서 방사성 폐기물이 기준을 넘는 만 베크럴 이상의 세슘이 검출됐다.
하지만 이후 신문 합동조사팀이 채취할 때까지의 사이에 폭우가 내려 오염 토양의 일부가 강으로 흘러내려 세슘 농도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의 닛타 강 중·하류 지역에 홍수로 하천 부지에 쌓인 토사에서 460~2천 베크럴이 검출됐다.
이와 함께 니혼마쓰 시의 밭이나 모토미야 시의 주거지역에 쌓인 토사도 고농도는 아니지만 오염된 것은 분명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기무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산속에 쌓인 세슘이 다량의 비와 토사로 확산되면서 하류로 흘러내린 것으로 생각된다"며 "태풍으로 인해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핫스팟'의 위치가 바뀌었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현은 태풍 이후 4~8곳에 대해 방사선량의 측정 결과를 두 번 공표했으나 오염 상황은 태풍 전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후쿠시마현 방사선 감시실의 사카이 히로유키 실장은 "산림 속에 대해서는 오염 제거를 하지 않았고, 고농도의 토사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며 11월에 장소를 늘려 측정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CBS 노컷뉴스 임형섭 기자
아마존 숲, 1년 새 ‘서울의 16배’ 없어졌다
9762㎢, 10년 만에 ‘최대’
산불 늘고 정부 개발 장려
“복구 어려운 상황에 근접”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가 최근 1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들어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아마존 개발’을 적극 장려하면서 열대우림 파괴가 심해졌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와중에 이를 증명하는 데이터가 또 나온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환경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가 1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 사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면적이 9762㎢에 달했다. 서울 면적(605㎢)의 16배가 넘는다. 이전 기간(2017년 8월∼2018년 7월) 파괴 면적 7536㎢보다 29.5% 증가한 것으로, 2008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국립우주연구소가 파괴 면적을 관측한 1988년 이후 파괴 면적 증가율은 역대 세 번째로 높다.
앞서 지난 8월 ‘브라질 환경·재생가능 천연자원 연구소’는 올해 1~8월 발생한 산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다고 발표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 파괴가 급증하고 있다는 학계의 보고와 언론 보도에 대해 “거짓말” “과장보도”라고 반박했으나 INPE의 이번 발표로 또다시 비판에 직면했다.
브라질 사회환경연구소의 아드리아나 라모스 소장은 “대통령이 환경범죄를 옹호하고 불법을 조장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마존환경조사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국제관계에서 환경이 중요한 시대에 브라질은 스스로 별 볼일 없는 나라가 되고 있다”면서 “경제성장을 위해 불법 벌목을 봐줘야 한다는 것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20~25%가 벌목돼 파괴에 따른 피해 복구가 어려운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고 있어 아마존 열대우림의 상당 부분이 아프리카 대초원처럼 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 확대 등을 이유로 아마존 개발을 허용하겠다고 밝혀왔다. 그의 집권 후 불법벌목 벌금 감면 조치, 환경보호 구역 내 광산개발 허용 등이 이뤄졌다. 이달 초엔 아마존 열대우림과 중서부 판타나우 열대 늪지에서 10년 만에 사탕수수 경작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2012년부터 삼림 파괴 면적이 조금씩 늘었다는 점에서 보우소나루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배불뚝이 지구 정밀 측정해보니 북극 얼음 더 녹았다”
나사의 ‘그레이스 위성’ 시리즈 활용해
지구 편평률 고려한 얼음 상실량 재계산
기존 추정보다 많이 녹고 해수면도 상승
미국 나사의 기상위성(GOES-14)이 촬영한 지구 영상. 나사 제공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연구팀이 지구의 편평률을 정밀 측정해 극지방 얼음의 상실을 정밀하게 측정해보니 기존 추정치보다 얼음이 훨씬 많이 녹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사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회보>에 게재한 논문에서 “여러 가지 중력측정법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편평률의 변화를 정밀하게 관측해 극지방 해빙의 감소를 정확하게 측정한 결과 기존에 추정했던 것보다 해빙의 감소와 해수면의 상승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대서양의 빙상에서 매년 15.4기가톤의 얼음과 그린란드 빙상에서 매년 3.5기가톤의 얼음이 추가로 녹아 해수면이 연간 0.08㎜ 더 상승한다는 것을 계산해냈다.
지구는 둥근 공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구체는 아니다. 자전 때문에 양쪽 극 방향에 비해 적도 방향의 중간부분이 약간 더 뚱뚱하다. 극 방향의 편평한 정도를 편평률이라 하는데, 적도 반지름과 극 반지름의 차를 적도 반지름으로 나눈 값으로 나타낸다. 편평률 변화를 관측하는 것은 극지방의 얼음 상실을 추적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논문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브라이언트 루미스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빙상은 더 많은 얼음을 잃고 바다는 더 많은 물을 얻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것은 나사의 그레이스(GRACE) 위성 자료이다. 그레이스위성은 중력 측정과 기후 실험을 연구하기 위해 나사가 2002년 발사한 위성으로, 2017년 임무 기한이 끝나 후속 임무 수행을 위한 그레이스-포(GRACE-FO) 위성이 2018년에 발사됐다.
두가지 임무 수행을 위해 두 위성은 지구 지표 위를 통과할 때 서로의 궤적을 면밀하게 추적하도록 설계됐다. 지표 위나 지표 바로 아래에 있는 큰 물체들 곧 산이나 빙하, 대수층 등은 앞쪽을 지나는 인공위성을 중력으로 끌어당겨 속도를 살짝 증가시킨다. 뒤에 따라가는 두번째 인공위성과 연결된 전파는 살짝 늘어났다가 두번째 인공위성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변한다. 두 위성 사이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크기로 아래 물체들의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레이스와 그레이스-포의 편평률 측정은 다른 방법만큼 정확하지 않다. 루미스는 “그레이스가 중력 분야에서 잘 관측하지 못하는 유일한 분야가 편평률”이라고 말했다.
편평률의 변화는 위성 레이저 거리측정(SLR)이라는 다른 방법에 의해 잘 관측된다. 이 기술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상기지국에서 위성으로 레이저빔을 쏘아 위성에 설치된 특수 제작 거울에 의해 얼마나 빨리 반사돼 돌아오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에 미치는 중력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지구상 물체의 질량을 계산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더 작은 공간 규모에서 그레이스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에스엘아르는 편평률을 측정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루미스는 “그레이스 운영 초기부터 과학자들은 그레이스의 편평률 값을 좀더 정확한 에스엘아르 측정값으로 대체해왔다”며 “극지방 편평률의 정확한 계산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극지방 얼음의 상실을 예측하는 데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루미스 연구팀은 이전의 편평률 계산과 자신들이 알아낸 편평률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접근방법이 얼음 상실과 관련해 다른 측정방법과 일치하는 정밀한 결과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이중 하나가 ‘해수면 버짓’(Sea Level Budget) 곧 ‘해수면 변화를 일으키는 인자들의 총합’이다. 여기에는 해양의 열적 팽창(‘아르고’라는 무인관측기로 측정한 것), 에스엘아르의 도움을 받아 그레이스와 그레이스-포가 측정한 해양 전체 질량의 변화 등이 포함된다. 이 두 개의 측정값은 현재 제이슨-3(Jason-3) 위성과 같은 위성 레이더 고도계에 의해 측정된 전체 해양 해수면 높이의 변화값에 합산돼야 한다.
연구팀의 해빙 상실 측정의 개선 방식을 적용하면 ‘해수면 버짓’은 거의 ‘고갈’ 수준에 가까워졌다. 루미스는 “새로운 방식은 약간 통통한 지구의 정확한 ‘몸무게’를 측정할 수 있어 과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며 “아주 미세한 변화이지만 해수면 버짓의 고갈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아열대식물 ‘물고사리’ 제주 자생지 확인…한반도 유입 경로 의문 해소
제주에서 확인된 물고사리 자생지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아열대성 양치식물인 물고사리의 자생지가 제주에서 처음 확인됐다 멸종위기 2급종인 물고사리는 그동안 남부지역에서 일부 관찰돼 왔으나 한반도로 유입된 경로가 명확치 않았다. 제주지역이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됐을 뿐 제주도 안에서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 자생지 발견으로 유입 경로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 셈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제주도에서 물고사리 자생지 2곳과 6개 집단의 군락을 처음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물고사리는 전 세계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물속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뿔을 닮은 잎을 가진 소형 고사리로, 종자에 해당하는 포자를 물이나 철새의 이동을 통해 확산시켜 번식한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부산과 전남 순천·광양·구례 등 남부지역에 드물게 물고사리 자생지가 관찰돼 왔다. 하지만 아열대종인 물고사리의 한반도 유입 기착지로 추정되는 제주에서는 지금껏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아 유입 경로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제주도 내 물고사리 자생지 확인으로 종 분포에 관한 식물 지리학 분야의 오랜 의문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제주도가 아열대성 식물이 한반도로 유입되고 확장해 나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는 초기 정착지이자 기착지로서 식물 분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다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고사리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제주지역 물고사리 자생지를 조사한 최병기 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사는 “제주 물고사리 자생지는 식물 분포의 연결성을 보여주고 있고, 서식처 희귀성 측면에서도 주목 받아야 할 장소”라며 “제주도가 한반도로 확산되는 물고사리의 유전자 다양성을 위한 보급처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종 보존을 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부실 환경영향평가 제재수단 미흡…제2 대저대교 못막는다
3개 항목 거짓 작성 정황 드러난 대저대교 건설 등 환경영향평가
- 사업자가 평가비용 지급 구조
- 대행사 입장선 눈치 볼 수 밖에
- ‘개발 면죄부’ 전락했다는 오명
- 환경단체, 제도 개선 연대 결성
- “정부 수행·제3의 검증기관 필요”
최근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부산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의 3개 항목에서 거짓 정황(국제신문 지난 13일 자 6면 등 보도)이 포착됐다고 밝혀 파문이 인다. 유역청은 “대기질 소음 진동 등 3개 항목의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이 나왔다”고 밝혔지만 평가를 진행한 업체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에 환경단체가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 중 ‘생태계 부문’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 논란이 커진다.
유역청은 다음 달께 검토위원회를 열어 문제가 된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는 현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사업자에 유리한 구조여서, 제도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논란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낙동강하구지키기시민행동이 최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가 날조됐다”며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 면죄부?
환경영향평가법상 25만 ㎡ 이상의 도시개발, 30만 ㎡ 이상의 정비사업, 4㎞ 이상의 도로 신설 등 주로 대규모 건설사업을 할 땐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자(시행자)가 대행업체를 통해 진행한다. 개발사업자가 비용을 대행업체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다.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는 대행업체가 개발사업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개발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가 왜곡되거나 부실하게 진행됐을 때도 일절 책임지지 않는다. 개발사업자가 대행업체에 명백하게 그릇된 지시를 했을 경우를 제외하면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대행업체가 지게 된다. 환경영향평가에서 문제가 발견된다 해도 개발사업자는 대행업체에 보완 작성 지시를 내린다. 사실상 개발사업 백지화는 불가능한 셈이다.
전문가는 환경영향평가를 정부가 직접 수행하거나 제3의 검증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되 그 비용은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라 개발사업자의 부담금으로 충당하는 개념이다.
현재는 사업별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모두 국책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보고되고, 연구원이 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내려주는 방식이지만 ‘문제가 있어 평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견은 거의 없다. 그만큼 연구원의 검증이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전문가가 참여한 ‘거짓·부실검토위원회’라는 검증기구를 따로 만들었다. 해당 평가에 거짓이나 부실 등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가동된다. 이번 경우는 낙동강유역청 거짓·부실검토위의 첫 사례다. 하지만 이마저 부실 평가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고 환경단체는 입을 모은다.
녹색법률센터 신지형 변호사는 “미국이나 캐나다는 정부가 직접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네덜란드는 환경영향평가 검증 작업에 시민·전문가 수백 명이 참여한다”며 “우리나라도 환경영향평가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태 분야 검증 불가능
생태계 분야는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 대저대교 논란이 대표적이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총 5차례 맹꽁이 서식 조사를 진행해 ▷계획노선 인근 14개체 ▷북측 3개체 ▷남측 12개체가 발견됐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한 업체가 지난 5월 14일부터 7월 19일까지 진행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현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맹꽁이가 적게 발견돼 (대저대교) 계획 노선은 적정한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돼 있다.
환경영향평가 수행 업체가 ‘조사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검증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경영향평가 부실·거짓 검증 작업은 대행업체가 제출한 영수증과 사진을 찍은 시간을 토대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현지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시간에 다른 곳에서 찍힌 사진이나 영수증이 있다면 ‘거짓’의 정황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3개 항목도 ▷측정자의 이름이 잘못 기재됐고 ▷ 측정 시간에 숙박업소에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해 재검토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역청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전국 연대 결성
환경단체는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난개발저지 시민연대, 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연대’ 결성을 내년 1월을 목표로 추진한다. 숙의민주주의환경연구소 장용창 소장은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개발사업을 백지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며 “또 환경영향평가서를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용 김민정 기자
기후변화, 병주고 약주고...지난 10년 바람세기 세졌다
해양과 대기 순환 변화가 원인 분석
80년대 이래 줄던 풍속 10년간 증가
풍력발전 용량 37%까지 증가 가능
영국 연구팀 “적어도 10년 지속할 것”
전세계 풍속이 최근 10년 동안 증가해 풍력발전 용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구의 풍속이 몇 십년 동안 줄어들다 2010년 이후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영국 카디프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0일 “최근 10년 동안 전세계 풍속이 증가한 배경은 해양과 대기 순환 패턴의 변화”라고 분석하며 “이는 풍력 에너지 산업에 희소식”이라고 밝혔다. 연구팀 분석으로, 증가한 풍속으로 풍력발전기 1대당 에너지 생산이 37%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렸다.
1980년대 이래 과학자들은 세계적으로 풍속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지의 정적’(terrestrial stilling)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풍속의 감소는 작지 않아 세기말까지 지속돼 전지구 풍속이 21%까지 줄어들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은 풍력발전산업의 발전역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연구팀은 무엇이 풍속의 감소를 일으키는지에 의문이 품었다. 지구의 녹지화나 도시화가 지표 거칠기를 키워 풍속을 줄인다는 이론이 제시됐지만 연구팀은 지표 저항 이론만으로 풍속의 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세계 9000여 곳의 지상 관측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통계프로그램으로 분석해 2010년 이후에는 전지구적으로 풍속이 ‘의미 있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증가율은 2010년 이전에 감소율에 비해 3배나 됐다. 연구팀은 풍속 감소의 원인이 지표 저항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해양과 대기 순환 패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논문 공저자인 영국 카디프대의 애드리언 샤펠은 “해양 대기 순환에 의해 지표면이 가열되고 이것이 기압 경도를 생성해 바람이 분다”며 “이 순환의 변화가 풍속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지표면 거칠기에 의한 저항은 풍속 변화의 부차적 원인일 수 있지만 지표면 저항만으로 풍속에 변화가 발생할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물론 대규모 순환과 지표면 거칠기의 변화가 결합돼 풍속에 변화를 가져왔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은 미국의 풍력발전 잠재력 지수가 10년에 7% 증가한 점을 설명해준다. 물론 기술 혁신이 지수 증가에 기여한 부분이 있지만 지수 상승의 50%는 풍속 증가에 기인한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여하튼 풍속의 증가는 풍력발전산업에는 ‘희소식’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샤펠은 “대지 정적의 반전은 가까운 장래에 중위도 국가들의 대규모 고효율 풍력발전시스템의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고 <비비시>(BBC)에 말했다.
이런 추세가 다음 10년 동안에도 지속된다면 2024년에는 풍력발전기 1대당 발전량이 330만쪽으로 돌아설 수 있겠지만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낙동강은 스스로 회복하고 있었다
(맨위)2010년 4월 24일 오후 국내 최대 강 모래톱인 남지백사장이 준설되고 있다.
(두번째)2010년 8월 28일 준설이 끝난 후 작은 크기로 다시 돌아온 남지 백사장.
(세번째)함안보 수위를 2.41미터로 내린 18일 오후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남지 백사장.
(맨아래)낙동강이 흐름을 회복하면서 수질도 눈에 띄게 개선된 모습이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독일 녹색당 “여성 없는 토론, 스톱!”
지난주 전당대회에서 당헌 조항 개정
“여성 발언자 없는 회의 지속 여부
여성 투표로 결정”…여성 발언권 강화
트랜스젠더까지 ‘여성’ 개념도 개방
독일 녹색당의 남녀 2인 공동대표 중 여성 대표인 아날레나 바에르보크(38) 연방의회 의원이 지난 16일 빌레펠트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독일 녹색당 누리집 동영상 갈무리
독일 녹색당이 당내 토론에서 여성의 발언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당헌으로 확정했다. 녹색당은 지난 15~17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연 전당대회에서, 당내 토론회 발언자들의 성비가 ‘젠더 균형’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여성 당원들이 그 토론회의 지속 또는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당헌 규정을 개정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19일 보도했다.
녹색당은 그 전에도 당내 토론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번갈아 발언하도록 하고, 여성 발언자가 없을 경우엔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참석자가 그 회의의 지속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이번에 개정에선 “만일 여성 발언자가 더는 남아 있지 않으면 그 회의를 지속할지 여부를 ‘여성’ 당원들에게 물어야 한다”며 ‘여성’ 단어를 추가했다. 관련 투표권을 오직 여성 당원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여성 발언권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개정 당헌은 또 여성 대표자의 결석 땐 다른 여성만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정 개정을 제안한 라우라야네 부슈호프는 “발언자 명단의 ‘젠더 균형’은 여성의 토론 참여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하는데, (여성 발언자가 없을 경우) 회의 지속 여부를 남녀 전체 당원에게 묻는다면 양성 할당의 의미가 축소된다”며 “여성의 지위는 가부장적 구조에 실질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슈호프는 또 트랜스젠더(성전환) 여성이 투표권 행사에서 배제될 가능성과 관련해 “누가 ‘여성’인지를 결정할 때 이 조항이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며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해당 규정의 문구 수정 제안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독일 녹색당은 1980년 서독에서 창당된 뒤 1983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1990년 독일 통일 뒤 옛 동독의 민주화운동 정당연합인 ‘동맹 90’과 합당했다. 이때 공식 당명도 ‘동맹 90/더 그린스’로 바꿨으나, 지금도 ‘녹색당’이란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1986년에 당원의 50%를 여성에 할당하는 규정을 독일 정치권 최초로 도입했으며, 당의 여러 집행위원회에도 여성 50% 쿼터제를 추진할 만큼 젠더 평등에 앞장서 왔다.
녹색당은 1998년과 2002년 총선에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의 연립정부에 연거푸 참여해 약 7년간 집권당 경험을 쌓았다.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득표율 20.5%를 기록하며 집권당인 기민-기사련(28.9%)에 이어 2위에 올라서는 저력을 과시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日 홋카이도산 분유서 방사성 물질 '세슘 검출' 논란
일본 홋카이도산 분유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는 일본 기관의 조사 결과가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20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출신 김익중 전 동국대 의사는 오늘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와의 인터뷰에서 "홋카이도뿐만이 아니고 아마 일본 전체에서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그는 "일본 국토가 오염돼 있기 때문에 뭘 먹더라도 세슘을 소들이 먹는다. 당연히 우유에도 나오게 되고, (우유를) 말려서도 역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측정이 쉬운 세슘과 요오드만 측정했을 것"이라며 "분유에 세슘만 들어갔을 리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김 전 교수는 "아기들은 성인보다 20배 이상 방사능에 민감하다"면서 "어린아이들이 먹을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 전 교수는 "일본 언론이 우리만큼 자유롭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금지어가 돼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1년에도 일본 최대 식품회사 메이지가 판매한 분유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되어 40만 통의 분유를 긴급 수거한 적 있다.
당시 문제가 된 분유는 사이타마현 가스카베시 공장에서 만든 것으로 원료로 사용된 우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생산된 것이고 검출된 세슘의 양이 기준치인 1kg 200베크럴 이하였으나 유아용 분유라 파장이 컸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반려견도 뛰노는 ‘시민공원 풍경’ 보인다
시민공원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민공원에 ‘시립 1호 반려견 놀이터’가 추진된다. 주민 여론 수렴과 예산 확보가 관건이지만 부산시가 ‘반려견 키우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 만큼 이르면 내년 초 반려견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市, 시립 1호 반려견 놀이터
1순위 후보지로 시민공원 선정
내달 중 시의회 예산 심의 거쳐
이르면 내년 2월 조성 완료될 듯
부산시는 “최근 시민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동물복지위원회를 거쳐 반려견 놀이터 후보지 4곳을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올 8월 지자체, 학교기관 등의 공모 끝에 시민공원, 금강공원, 부산경상대 내 부지, 연산동 이마트 인근 부지 등 4곳의 후보지를 공모받았다. 시는 4곳 후보지를 대상으로 동물복지위원회를 열었고, 위원회 회의 결과 반려견 놀이터 추진 1순위 부지로 시민공원이 선정됐다. 시민공원 부지 내 반려견 놀이터는 현 주차장 부지 중 한 곳으로 면적은 1500㎡다. 시가 당초 공모기준으로 정했던 면적 1500㎡ 이하에 적합하고 시민공원의 특성상 접근성이 좋은 점이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는 2순위 후보지로 부산경상대 내 부지, 3순위로 금강공원 부지, 4순위로 올해 초 1차 공모에 지원한 구포가축시장 정비사업 부지를 선정했다. 당초 반려동물센터 조성과 함께 최우선으로 고려됐던 구포가축시장 부지는 면적이 180㎡가량이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부산시는 다음 달 중 의회 예산심의 등을 거쳐 예산을 확보한 뒤 시민공원을 최우선으로 반려견 놀이터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놀이터 조성에 1억 3000만 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 농축산유통과는 3곳의 놀이터 조성을 목표로 예산 4억 원을 신청했다. 시는 반려견 놀이터의 경우 주민, 시민 반대 의견이 존재하는 사안인 만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2월 놀이터 조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부산시는 올 3월 4일부터 4월 2일까지 인터넷 시정 청원사이트인 ‘OK1번가’를 통해 반려견 놀이터 조성에 관한 찬반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서 참여자 1063명 가운데 80%가 찬성 의견을 낸 뒤 본격적으로 부지 물색 절차가 진행됐다. 반려견 놀이터를 비롯해 반려동물 시설물은 매번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거나 조성이 연기돼 왔다. 올해 초 강서구 신호동에 전국 최초로 서부산권 동물복지센터(가칭)가 계획됐으나 주민 반대로 조성이 백지화됐다. 해운대구도 2015년부터 신도시 좌3동, 재송동 등지에 반려견 놀이터를 계획했으나 일대 교통난, 위생상 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됐다. 부산에서는 5월 개장해 운영 중인 기장군 반려견 놀이터가 유일하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민공원을 최우선으로 반려견 놀이터를 추진하겠다”며 “주민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이 남았지만 반려견 키우기 좋은 도시에 걸맞은 놀이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소나무재선충으로 죽음의 섬이된 남해안..방제작업 시급
한려해상국립공원 섬에도 유입돼
통영 가왕도 소나무 이미 다 죽어
소매물도·곤리도·화도 등으로 확산
"제때 방제하면 확산 막을 수 있어"
경남 통영시 가왕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작업을 2017년 상반기 이후 2년 동안 중단하면서, 섬 전체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에 몰살당했다.
소나무를 말려서 죽이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남해안 섬지역을 덮쳤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통영 가왕도 소나무숲을 이미 몰살시키고, 소매물도·곤리도·화도 등 주변 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남해안 섬지역을 덮친 소나무재선충병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일 경남 거제시 대포항에서 낚싯배 미래1호를 타고 가왕도에 들어갔다. 가왕도는 44만여㎡ 면적의 무인도로,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다. 방목하려고 풀어뒀으나 잡을 수 없어서 방치한 염소들만 살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가왕도는 소나무에게 ‘죽음의 섬’이었다. 살아있는 소나무를 단 한그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섬 전체에 소나무숲이 형성돼 있었으나, 모든 소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채 말라죽어 있었다. 동백 등 다른 나무는 푸르고 싱싱한데, 소나무만 몰살당한 상태였다.
소나무만 골라서 죽이는 소나무재선충이 휩쓸고 지나간 증거였다. 2017년 초까지 방제작업을 한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방제작업이 완벽하지 않았거나, 방제작업 이후 소나무재선충이 다시 섬을 덮쳐 소나무를 몰살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1호 선장은 “5년쯤 전부터 가왕도 소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는데, 2017년 갑자기 심해져서 지금처럼 됐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시 소매물도. 소나무재선충병이 유입돼 소나무가 말라죽어 가고 있다.
이번엔 거제 저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남쪽으로 50분 거리인 소매물도로 갔다. 소매물도는 예쁜 등대섬과 둘레길을 갖추고 있어서, 등산객과 낚시꾼 등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섬이다. 하지만 소매물도 소나무숲은 단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여기에도 소나무재선충병이 상륙한 것이다.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 보니, 이미 여러 차례 방제작업을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것이 확인돼 방제작업을 할 목적으로 붙여둔 노란색 표시를 그대로 달고 있는 소나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런 소나무 주변에는 어김없이 누렇게 말라죽어 가는 소나무가 더 있었다. 제때 방제작업을 하지 않아 소나무재선충이 주변 소나무로 퍼진 것이다.
현장을 확인한 박길동 산림기술사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초기에 제때 방제하면 주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짧게는 6개월 길어도 2년이면 숲 전체를 몰살시킨다. 서둘러 완벽하게 방제하지 않으면, 소매물도 소나무숲도 가왕도처럼 몰살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해안 섬들을 덮친 소나무재선충병의 심각성은 ‘경남 남해안 도서 소나무재선충병 실태조사 및 방제방안 마련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박길동 산림기술사와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림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8일부터 지난 2일까지 경남 거제와 통영의 섬들을 조사해 냈다. 조사대상 섬은 가왕도, 매물도, 소매물도, 화도, 한산도, 비진도, 곤리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있는 7개와 사량도, 하도, 두미도, 상노대도, 욕지도, 우도, 연화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밖에 있는 7개 등 모두 14개이다.
21일 보고서를 보면, 통영 가왕도는 2017년 상반기 방제작업 이후 2년 동안 방치되면서 섬 안의 모든 소나무류가 몰살당했고, 이제는 더이상 피해가 늘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소매물도는 85.4%, 화도는 74.6%, 곤리도는 44.4%의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서둘러 방제하지 않으면 1~3년 안에 몰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진도와 욕지도에도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발견됐다. 현재는 육지에 가까운 섬 중심으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인되지만, 바닷바람을 타고 이웃 섬으로 계속 퍼져나가 남해안 전체 섬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섬지역 방제작업은 육지의 산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지형이 가파르고 도로가 없어서, 대형 장비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방제작업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베어서 토막 낸 뒤, 두꺼운 비닐로 싸서 밀봉하고 약물을 집어넣어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죽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가파른 암반 지형에서는 작업도 어렵고 약물이 새나갈 가능성도 크다. 항공방제를 하려고 해도 섬 주변에 양식장이 많아서 곤란하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체계적인 관찰을 통해 발생 즉시 방제작업을 실시,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별도로 섬지역 소나무들을 대상으로 예방주사를 놓아서 소나무재선충병 유입을 차단할 것을 권고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소나무류는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25%를 차지하며, 특히 섬지역에선 70~80%를 차지한다. 소나무재선충병을 막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이 병에 걸리게 하는 선충의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뚫은 구멍이 보인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해송, 잣나무 등 소나무류를 골라서 죽인다. 솔잎을 먹고 사는 솔수염하늘소의 다리에 붙어사는 선충이 소나무의 수관을 막아서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아직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모두 말라죽는다. 국내에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일본에서 부산항을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2000년대 들어 방제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글· 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과포장된 ‘식물의 공기정화’ 효과…발단은?
미 연구진, 30년간 논문 재검토한 결과
실제와 다른 실험실 환경 한계 드러나
1989년 나사 실험 결과가 오해의 시작
효과 보려면 1제곱미터당 5개 있어야
보통의 경우엔 자연 환기가 더 효과적
드렉셀대 연구진이 화분식물의 실내 공기정화 효과의 신화를 파헤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드렉셀대 제공
식물은 우리에게 여러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식물의 녹색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업무의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엔 공기를 맑게 해준다는 공기정화 효과도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내 화초의 공기 정화 효과는 실제로는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제곱미터당 10~100개에 해당하는 많은 화초를 두지 않는 한 자연 환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이다.
미국 드렉셀대 연구진이 지난 30년간 발표된 12편의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실내 화초가 창문 두개를 여는 자연환기와 같은 공기 정화 효과를 내려면 1제곱미터당 5개의 화분을 둬야 한다. 예컨대 140제곱미터(약 42평) 집이나 사무실에서 같은 효과를 내려면 화초 680개가 있어야 한다. 사무실 공간을 사실상 거의 화초로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창과 출입문 또는 일반 건물의 공기조절시스템 이상의 공기질 개선 효과를 얻으려면 대략 제곱미터당 화분식물이 최대 100개는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드렉셀대의 건축환경공학부 교수 마이클 워링은 "식물은 훌륭하긴 하지만 공기 질에 뚜렷한 영향을 줄 정도로 실내 공기를 정화시켜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1989년 9월 발표된 미국항공우주국의 논문 ‘실내 조경식물의 오염물질 제거’ 논문 표지.
연구진에 따르면 식물의 공기정화 효과와 관련한 오해와 신화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이 1989년에 진행한 한 실험이 발단이 됐다. 당시 나사는 식물이 우주정거장에서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사이에 공기 중의 독성 오염물질이 최대 70%까지 제거됐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었다. 나사는 식물을 사방 1미터 길이가 채 안되는 밀폐된 방에 두고 실험했다. 연구진은 보통 이런 실험은 작은 밀폐 실험실에 한 그루의 식물을 넣은 뒤 한 종류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주입하고 몇시간 또는 며칠 동안 지켜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실험조건은 묻히고, 실험 결과만 부각되면서 식물의 공기정화 효과가 부풀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후속 연구들도 환경공학적 측면을 무시한 채 수행되면서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실제 생활에선 이런 실내 환경을 찾아볼 수 없다.
식물의 공기정화 효과는 실제 상황과는 판이한 실험실 환경에서 진행됐다. 드렉셀대 제공
연구진은 통상적인 건물의 실내 공기는 밀폐 실험실보다 수십배 빠른 속도로 외부의 공기와 교류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6개의 실험 결과에서 확보한 수치를 공기정화율(CADR=Clean Air Delivery Rate, 1분에 정화하는 공기량)로 변환해 이를 증명했다. 연구진은 그렇게 한 결과, 거의 모든 연구에서 식물이 공기 중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제거하는 속도는 식물이 없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워링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잘못 이해되고 전파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연구는 과학적 조사연구는 끊임없이 다시 검토하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도 일깨워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왜냐고?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실측데이터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노출과학과 환경역학 저널>(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 11월6일치 온라인판에 실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사람 나이론 42살’ 2살 강아지, ‘폭풍 성장’ 비밀 밝혀져
유전자 화학변화 토대 ‘노화 시계’로 환산…7살 넘으면 노년
래브라도 레트리버 품종의 강아지. 사람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 사람 나이로는 중년에 가까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개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려면 7을 곱하면 된다고 흔히 알려진다. 2살짜리 개는 사람의 14살, 10살이면 70살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공식의 문제는 곧 드러난다. 개는 10달이면 성숙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6살도 안 된 나이다. 14살 된 개가 100세 노인과 같은가.
사실 이 환산법은 개와 사람의 평균수명인 10년과 70년을 단순 비교한 것일 뿐이다. 분자 차원의 노화에 근거해 사람과 개의 나이를 환산하는 새로운 계산법이 나왔다. 트레이 아이디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유전학자 등은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인 ‘바이오리시브’ 11월 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후성유전학 시계’를 이용한 신개념의 나이 환산법을 밝혔다.
포유류는 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를 거쳐 사망에 이르는 생리적 단계를 공통으로 거친다. 종마다 그 기간이 다를 뿐이다. 사람은 유달리 유년기와 청년기가 길지만, 다른 동물은 대개 그 기간이 훨씬 짧다.
연구자들은 디엔에이(DNA)의 화학조성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바뀌어 나간다는 사실을 토대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특정 디엔에이 염기서열에 메틸화가 어느 정도나 일어났는지를 알면 생물의 나이를 분자 수준에서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은 나이가 4주∼16살 범위인 래브라도 레트리버 품종의 개 104마리를 대상으로 유전체(게놈)의 메틸화를 조사해 사람의 것과 비교했다. 그 결과 개의 노화 시계는 처음에는 사람보다 훨씬 빨리 째깍거리다 이후에는 더 천천히 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8살 난 래브라도 레트리버 개.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는 나이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분자 차원에서 밝혀진 새로운 환산 방법을 적용하면, 개의 유년기는 2∼6달 사이로 사람의 1∼12살에 해당한다. 성적으로 성숙해 성장을 마무리하는 청년기는 개의 경우 6달∼2살이지만 사람은 12∼25살이다.
개는 사람보다 훨씬 빨리 성숙해 2살이면 사람 나이 42살의 중년에 이른다. 개의 장년은 2∼7살로 사람의 25∼50살에 해당한다. 사람의 62살에 해당하는 개의 나이는 7살로, 이때부터 노년기에 접어든다. 래브라도 레트리버와 인류의 평균수명은 각각 12살, 70살이다.
분자 차원의 노화로 환산한 개와 사람의 나이. 첫 두 살까지 개의 성장이 사람보다 매우 빠른 것을 알 수 있다. 티나 왕 외 (2019) ‘바이오리시브’ 제공.
연구자들은 “개는 품종에 따라 수명도 다르고 후생유전학 나이도 달라진다”며 “이번 연구가 사람의 노화 이해와 건강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매트 캐벌레인 미국 워싱턴대 생물노인학자는 “개와 사람은 노화와 관련한 질병과 기능 쇠퇴가 비슷한데, 이번 연구로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자적 변화도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사이언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na Wang et al, Quantitative translation of dog-to-human aging by conserved remodeling of epigenetic networks, bioRxiv, Nov. 4, 2019; doi: http://dx.doi.org/10.1101/82919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일본 페트병 2만 톤 수입...분리·배출만 잘해도...
앞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페트병을 분리 배출하는 방안이 의무화됩니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 연간 2만여 톤의 폐페트병을 수입해 재생섬유 원료로 쓰는데 분리배출만 잘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자]페트병은 무색, 투명하고 이물질이 적을수록 고품질로, 재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고품질 페트병은 재생섬유의 원료로 의류업체 등에서 수요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재활용되는 폐페트병 24만 톤 가운데 고품질로 재생되는 양은 10%를 조금 넘는 2만9천 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일본 등에서 한해 2만2천 톤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페트병 재활용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김효정 /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 : 무색 페트병, 먹는 샘물 페트병을 별도로 분리 배출·수거 하는 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시범사업을 거쳐서…]
우선 내년 하반기 아파트 단지부터 페트병 분리 배출이 의무화됩니다. 그런 다음 내후년에는 전국 모든 단독주택까지 확대합니다. 또 당장 다음 달부터는 맥주병 같은 색깔이 있는 유색 페트병 사용이 금지됩니다.
라벨이 섞이면 페트병 품질이 떨어지는데 재활용 공정에서 라벨이 쉽게 분리되는 기술이 최근 개발된 것도 페트병 고품질화에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환경부는 이렇게 하면 고품질 페트병이 2022년에 10만 톤까지 늘어나 일본 수입 등을 충분히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YTN 황선욱입니다.
물과 열의 스트레스 커지며 식량안보 위협…위기 인식 못해 더 큰 위기
ㆍ거세지는 기후의 역습, 짙어지는 식량안보의 그늘
전 세계적 기후위기로 인해
작물수확 10년마다 2%씩 주는데
식량수요는 14%씩 늘어나면서
식량안보 여건 더욱더 취약해져
유엔에서는 2014년 이후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을 기후위기라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기후위기로 물과 열의 스트레스가 커져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식량 수요는 인구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는 기후위기로 작물 수확량이 이번 세기에 10년마다 2%씩 감소하는 반면, 식량 수요는 2050년까지 10년마다 14%씩 늘어나 식량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식량안보에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물 스트레스다. 기온 상승은 물을 더 증발시켜 공기가 더 습해지고 그 결과 폭우 발생이 더 잦아진다. 동시에 토양이 더 빨리 메마를 수 있어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이 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된다. 기후위기는 현재 습한 지역은 더 습하게, 건조한 지역은 더 건조하게 만든다.
전 세계 농작물의 80%는 비에서 물을 공급받는데 전 세계 강우 분포가 변화되고 있다.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먹는 쌀은 물 부족으로 생산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가뭄이 심한 시기에는 천수답에서 쌀 생산량이 17~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있는 2300만㏊의 천수답은 이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반복되는 가뭄은 천수답 쌀 생산 지역의 거의 80%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특히 남서부에서 가뭄이 더 자주 일어나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주요 작물의 약 10%는 재생 불가능한 지하수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지하수를 담고 있는 대수층은 재충전하는 양보다 사용하는 양이 더 많다. 태풍 강도 증가와 해수면 상승은 농지를 바닷물로 침수시킬 수 있다. 홍수는 도로, 농장, 잔디밭에서 하수, 비료 또는 오염물질을 운송하므로 더 많은 병원체와 오염물질이 음식으로 유입될 수 있다.
열 스트레스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 변화는 지역과 작물에 따라 다르다. 지구가열은 북유럽의 감자, 서아프리카의 쌀과 같은 특정 작물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일부 고위도 지역에서는 따뜻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작물을 새로 재배할 수 있다. 하지만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재배해왔던 농작물 생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상적인 재배 조건이 고위도 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해도 그곳 토양이 비옥하지 않으므로 온대 지방처럼 생산적인 농업을 할 수 없다.
지구가열은 작물 성장과 번식을 위한 최적 온도 범위를 벗어나게 한다. 이는 식물의 수분, 개화, 뿌리 발달과 성장을 방해할 수 있어 수확량이 줄어든다. 2011년 미국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에서 발간한 ‘기후안정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곡물 수확량이 현재 수준에서 5~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옥수수 생산량은 2017년 미국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줄이지 않아 지구 평균기온이 4도 상승하면 미국에서 절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인 기온 상승의 2도 이하 제한이 이뤄진다 해도 약 18% 감소할 수 있다. 또 세계 4대 옥수수 수출국(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이 동시에 10% 이상 생산이 줄어들 확률은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약 7%이고 4도 상승하면 86%로 올라간다.
잡초, 해충과 곰팡이가 기온 상승으로 넓게 퍼질 수 있다. 일찍 찾아오는 봄과 온화한 겨울에 더 많은 해충과 잡초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 변화된 기후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식물 질병과 해충은 방어 수단을 발전시킬 시간이 없는 작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더 빈번해지는 폭염으로 가축은 번식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더 취약해진다. 젖소는 열에 민감하므로 우유 생산이 감소할 수 있다. 가축의 기생충과 질병은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더 번성한다. 기생충과 동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화학물질과 동물용 의약품이 사용돼 이것이 먹이사슬에 들어갈 수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은 영양분, 토양 수분과 물 가용성과 같은 다른 조건이 따라준다면 작물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이 식물 성장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는 극심한 날씨, 가뭄 또는 열 스트레스로 상쇄된다.
기온상승에 따라 기아는 증폭되고
폭동, 전쟁, 난민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위기의 악순환 가속화
아시아는 최대 기근과 난민 예고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는 더 많은 물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식물 잎과 토양에서 더 많은 물이 증발한다. 식물은 물이 더 필요하지만 건조해진 토양에서 흡수할 수 있는 물이 적어져 물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식물은 물 손실을 막기 위해 잎 밑면의 기공이 열리는 시간을 줄인다. 이 기공으로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광합성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물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은 물을 찾기 위해 뿌리를 뻗는 데 더 많은 영양분을 사용한다. 이런 이유로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작물 수확량 증가로 이어질 수 없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수록 식물은 탄수화물량을 늘릴 수 있지만, 단백질·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을 희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540~960ppm에 이르면 보리, 밀, 감자와 쌀은 단백질 함량이 6~15%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곡물에 포함된 철, 아연, 칼슘, 마그네슘, 구리, 황, 인, 질소와 같은 주요 원소량이 감소할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 기공이 짧게 열려도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식물 안 물이 기공에서 대기로 덜 빠져나간다. 식물이 물을 더 천천히 잃을수록 토양에서 질소와 미네랄을 덜 흡수한다. 식물에서 질소가 비타민을 생산하는 데 중요하므로 농작물의 비타민 수치도 떨어질 수 있다.
전 세계 식량 공급은 옥수수·밀·쌀·콩의 거래에 의존한다. 처음 3가지 곡물은 세계 음식 에너지 섭취량의 60%를 차지한다. 콩은 가축 사료로 사용돼 전 세계 단백질 공급량의 65%를 담당한다. 국제 거래를 하는 곡물량은 미국, 브라질과 흑해 지역 등 소수 수출국에 집중되고 이 지역이 점점 더 많은 양을 담당하고 있다.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세계 식량 거래는 127% 증가하였고 그 성장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식량안보 여건은 더욱더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므로 한 지역의 기후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부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물 생산국의 수출제한 조치와 소비국의 수입확대 노력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다시 추가 수출제한과 수입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식량 확보 경쟁이 격화하고 식량자원 민족주의가 일어나 식량 수입국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과 정치·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6년부터 주요 곡물 생산국에 가뭄이 들면 전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 폭동과 정치 불안이 일어났다.
2010년 여름 러시아는 폭염, 가뭄과 이어서 일어나는 산불로 인해 밀 수확량의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세계에서 식량이 불안정한 지역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러시아로부터의 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러시아 정부는 밀 수출을 금지해 자국 식량을 먼저 보호했다. 북아프리카와 아랍 국가에서 빵 가격이 급등했다.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식량 가격 상승이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을 불러일으켜 정권을 바꾸는 시위인 ‘아랍의 봄’이 발생했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음식이 있는 부유한 곳으로 이주하는 난민이 된다. 부유한 나라는 난민을 안보 문제로 다룬다.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영국 브렉시트도 그 원인은 2010년 러시아 가뭄이었다. 이렇듯 전 세계 78억명을 먹여살리는 식량 네트워크는 안전하지 않다.
기후위기 영향을 요약한 지난 9월 ‘네이처’ 기사에 따르면 식량 생산 변화로 고통받게 될 사람은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할 때 3500만명, 2도 상승하면 3억6200만명, 3도 상승하면 18억1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온 상승에 따라 기아는 증폭하는 것이다. 인류는 굶주림과 침략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 역사적으로 침략을 선택해왔다. 영국 상원의원인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부족과 난민 발생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방성은 2003년 발간한 보고서 ‘돌발적인 기후변화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서 기후위기로 식량난, 식수난, 에너지난 등이 겹친 혼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이에 따른 강력한 ‘안보 태세’를 강조했다. 특히 “아시아는 심각한 식량과 물 부족 위기 때문에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2019년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 안보 전략가들이 ‘실존적 기후 관련 안보위기-시나리오 접근’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위기가 폭동, 전쟁, 난민으로 이어지는 안보위기의 악순환을 가속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기근과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한국은 과다인구로 식량 절대 부족
지금 당장 과감한 행동·결단 필요
우리나라는 과다 인구로 식량이 절대 부족하다. 기후위기에 국가 안보적 관점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지금처럼 다른 나라에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어렵게 될 수 있다. 미국과 호주가 전망한 아시아 대기근에서 식량자급률이 25%도 안되는 우리나라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과 호주는 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후위기가 자기 나라에 미칠 영향도 안보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위기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 위기를 국가 안보 수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해 더 큰 위기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변혁을 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붕괴할 것이다. 그 위기를 우리나라는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먼저 맞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결단과 행동이 요구되는 시기에 서 있다. 위험한 ‘사건’이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중으로 미룰 게 아니라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 경향
어떤 여행자 동물은 지구를 알려준다
23. 로버트 와일랜드, 혹등고래
수면 위로 솟구친 혹등고래. 여름철 북쪽 끝 알래스카 쪽에서 살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남쪽바다인 멕시코 인근 바다로 내려가 출산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또는 탐험에. 1997년, 미국 저널인 ‘라이프’(Life) 지에 지난 1000년의 인류사를 만들어낸 위인 100명이 실렸다. 라이프 지가 선정한 위인의 목록에 여행가는 단 둘뿐이었는데,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븐 바투타(1304~1368, 현 모로코왕국 탕헤르 출생)가 누구던가? 무려 30년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을 여행했던, 인류사에 길이 남을 순례자이자 탐험가가 바로 그였다.
여행가나 탐험가 중에서는 사람이나 문화, 풍속이 아니라 대자연이 궁금해 여장을 꾸린 이들도 있었다. 수심이 무려 10km가 넘는 마리아나 해구, 그 컴컴한 심해에 들어갔던 자크 피카르(Jacques Piccard), 지구의 남쪽 끝 대륙을 탐험하고 펭귄의 알을 가져왔던 앱슬리 체리 개러드(Apsley Cherry Garrard), 지구의 중심인 망망대해(High Seas)를 혈혈단신으로 가로질렀던 세라 아우튼(Sarah Outen). 이 행성의 풍경을 자기의 온 몸으로 느껴보려고 ‘떠났던’ 수많은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여행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간 아닌 다른 동물들도 사는 동안 자주 여행길에 오른다. 물론 이들에게 여행이란 ‘여행하는 삶’이거나 ‘삶을 위한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도 여행이란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옮겨가며 ‘노마드 애니멀(nomad animal)’로 살아가는데, 그런 동물 중에서도 내 관심을 끄는 이들은 지구라는 물리적 단위의 실체를 짐작케 해주는 녀석들이다. 지구의 상당 부분을 제 ‘영토(なわばり)’로 거느리며 사는 녀석들 말이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서야 사는 데 필요해서 오갈 뿐이겠지만, 어찌되었든 지구라는 ‘큰 물’에서 노는 동물들임에는 틀림이 없고, 거의 섬이나 진배없는 소국(小國)에 갇혀 사는 나 자신의 옹색한 처지를 이들의 삶에 비추어보자니 어떤 탄식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5000년 가까이 생존해 있는 캘리포니아의 어떤 나무는 지구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지구에 난 길을 5만 리 넘게 오가는 어떤 동물들은 지구의 공간을 살아간다. 이들은 그 실존 자체가 장쾌하다. 이들을 따라가면 지구라는 ‘집’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물 중에서는 북극제비갈매기가 가장 놀라운 종이지만, 바다 동물로 한정하자면 단연 돋보이는 동물이 있다. 다름 아닌 혹등고래다.
2019년, 자신의 첫 고래 벽화에 다시 작업을 하고 있는 로버트 와일랜드
혹등고래는 최장거리를 여행하는 바다 동물은 아니다. 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는데, 북동태평양 쪽 귀신 고래(영어로는 Gray Whale, 즉 회색 고래)가 그 주인공이다. 귀신고래는 크게 두 개의 개체군으로, 즉 북동태평양 개체군과 북서태평양 개체군으로 분류되며, 우리로서는 후자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여름철 북쪽 끝 알래스카 쪽에서 살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남쪽바다인 멕시코 인근 바다로 내려가 출산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몇 년 전, 이들이 오가는 거리가 2만200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록 보유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내게 지구의 바다를 상상토록 자극하는 동물은 귀신고래보다는 혹등고래인데, 바다 전역에서 거주하는데다 북반구와 남반구 양쪽에서 여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머리에 혹이 있어 혹등고래라 불리게 된 이 녀석들은, 가만 들여다보면 매력 덩어리다. 피부는 대개 검푸른 빛이어서 바다라는 배경에 썩 잘 어울리는 풍모인가 하면 ‘고래 뛰기(Breaching)’같은 퍼포먼스에도 능하다.
하와이 카우와이에 1991년에 설치된 벽화
관찰 기록에 따르면 200회를 계속 뛰기도 한다고 하니, 죽기 전에 한번쯤은 꼭 이들의 묘기를 보고 싶다. 게다가 수컷이 짝을 유혹할 때 부르는 노래는 그 가락이 오묘해 지상의 동물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가장 복잡한 형식을 띤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7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동물 중 가장 신비한 동물은 어떤 동물일까? 그 실존 자체가 곧 지구의 신비가 되는 존재자. 단언키 어렵지만,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최다득표 그룹에 속할 한 동물은 고래가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혹등고래를 꼽고 싶다.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와 차별성을 띠는 기관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 바다의 물길을 저어가는 거대한 노. 5미터 가까이 되는 가슴지느러미가 바로 그것이다. 녀석들의 노마드적 기질을 바로 이 상징적 기관이 넌지시 일러준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컨벤션 센터에 1992년 설치된 벽화.
가을이 오면 지상의 활엽수들은 잎을 떨구고 겨울눈을 준비하지만 바닷물 속의 혹등고래들은 자신들의 긴 가슴지느러미에게 일을 시킨다. 여름철 잘 지내던 남극 또는 북극 지역의 바다를 떠나 열대지역 바다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 따뜻한 바다 환경이 출산과 양육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겨울철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다가 봄이 깃들면 새 생명과 함께 다시금 남극 또는 북극 쪽을 향해 길을 떠난다.
고래의 신비는 과학이 풀어주지만, 그 신비를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어오게 하는 건 예술의 과업일 것이다. 고래에 관한 한 꼭 알아야 하는 예술가가 있다. 1981년부터 2008년까지 17개 국가, 79개 도시에 무려 100점의 고래 벽화를 그려 설치한 예술가 로버트 와일랜드(Robert Wyland)가 바로 그 사람이다.
뉴욕 나이아가라 아쿠아리움에 설치된 81번째 벽화. 대서양 혹등고래. 1998년 작품.
100번째 벽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 중국 예술가들, 3000명이 넘는 중국 어린이들과 공동으로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 프로젝트가 진정한 공공미술이었음을 방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미국 뉴욕주 나이아가라 아쿠아리움에 설치되어 있는 와일랜드의 81번째 작품은 실제 크기의 대서양 혹등고래를 우리의 눈에 보여준다. 겨우내 쿠바 근해에 살다 새 식구를 얻고는 따뜻한 봄철이 되자 아이슬란드 쪽을 향해 봄 여행길에 나선 어느 혹등고래 모녀. 이들의 여정을, 그 여정을 감싸고 있는 지구라는 모두의 집을 나는 잠시 눈을 뜬 채로 상상해본다. 내 상상 속 모녀는 지금쯤은(늦가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따뜻한 남녘 바다를 향해 가을 여행길에 올랐을 것이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한겨레
"쓰레기 불법 투기 조폭까지 가세, 바지선 빌려 버리기도"
'쓰레기 섬' 한국
단위 면적당 발생량 미국의 7배
전국 260곳에 120만t 쌓여 있어
폐기물 처리
수도권 매립장 없어 경북으로 옮겨
의성, 허용량 80배 넘어서 '대란'
쓰레기 문제 해법
전문 기구 통해 불법 투기 감시
지역민 설득해 처리 시설 늘려야
━
지난 6월 평택당진항만에서 10㎞ 떨어진 바다 위 3000t급 바지선에 불법 폐기물 800t이 방치된 사실이 해양경찰에 적발됐다. [중앙포토]
쓰레기가 넘쳐나는 시대다. 불법 폐기물이 산을 이룰 만큼 쌓인 ‘쓰레기 산’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잊을 만 하면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지난여름 경북 의성의 쓰레기 산은 외신에까지 크게 보도돼 국제적 망신을 샀다. 22일 환경부 등 정부 관계자는 의성 ‘쓰레기 산’ 현장을 점검하고 불법 적체된 폐기물 처리 계획을 다음 달 중 마련하기로 했다.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가 벌어져 가정마다 ‘쓰레기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국내에서 쓰레기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다. 홍 소장은 “쓰레기 소각장 가동률은 이미 100%를 넘어설 정도로 포화상태고 전국에는 불법으로 폐기물이 방치된 곳만 260곳이 넘는다”고 했다. 지난 20일 중앙SUNDAY는 ‘쓰레기 박사’ 홍 소장을 만나 국내 쓰레기 실태와 해법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Q : 한국은 쓰레기 발생량이 매우 많은 국가로 알고 있다.
A : “한국은 1인당 쓰레기 발생량이 미국의 60% 정도다. 하지만 단위 면적당으로 치면 우리가 미국의 7배나 된다. 우리나라는 ‘쓰레기 섬’이라고도 한다. 유럽은 국가 간 쓰레기 처리를 위해 육로 이동이 가능하다. 중국이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를 하고 있어 우리는 유럽처럼 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다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소각장 가동률 100% 넘어 포화 상태
지난 15일 경북 영천시 대창면의 한 공장형 창고에서 무단으로 버려진 산업폐기물들을 공장관계자가 보고 있다. [연합뉴스]
Q : 지난해 폐비닐 수거 거부를 시작으로 폐기물 대란이라는 말이 나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A :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장이나 매립시설이 발생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균형 때문이다.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의 경우 더는 매립장이 없어서 그나마 처리 용량에 여우가 있는 포항·구미·경주·고령 등 주로 경북 지역으로 폐기물을 옮겨 처리하는 상황이다. 장거리를 이동으로 비용도 올라가고, 제때 폐기물을 배출하지 못해 사업장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일도 생긴다. 불법 처리 업자가 싼 가격에 빨리 처리해주겠다고 하면 이들에게 맡기기도 한다.”
Q : 불법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이뤄지나.
A : "땅을 임대해 처리 용량을 초과해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은 기본이다. 부도난 공장이나 폐건물 내부에 쓰레기를 처리하기도 한다. 심지어 바지선을 빌린 뒤 해상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도망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불법 거래는 외상 없이 현금이 오간다. 지난해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조폭이 낀 폐기물 불법 처리업자들을 수사했는데 쓰레기 4만5000t을 빌린 땅에 처리하고 6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Q : 외신에까지 보도된 경북 의성 쓰레기 산은 어떻게 방치된 건가.
A : "업자가 처음에는 폐기물을 가져와 재활용 처리하겠다고 정식으로 영업 허가를 받은 곳이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재활용 공정을 돌리지 않고 돈을 받고 쓰레기를 무작정 받아 쌓기만 했다. 폐기물 허용 보관량을 80배나 초과할 정도로 쓰레기가 계속 쌓여 산이 된 것이다.”
Q :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었나.
A : "지자체는 2014년부터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17회)과 고발(7회) 조치 등을 하자 업자는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 등을 수차례 제기하며 맞섰다. 업자는 쓰레기를 계속 받았다. 2015년 의성 쓰레기 산을 찍은 사진을 봤는데 당시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4년이 지난 올해는 쓰레기 산이 두 개가 됐다. 18만t이나 되는 양이다. 지자체의 행정력은 무기력했다. 중앙정부는 사후수습에 급급하다.”
Q : 불법 방치 폐기물은 얼마나 되나.
A : "올해 초 환경부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260여 곳에 120만 t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 침출수가 흘러나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큰 문제다. 또 폐기물 내부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해 불이 나기도 하는데 유독가스가 주변 민가를 덮쳐 피해를 줄 때도 있다.”
Q :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A : "청와대까지 나서서 연내 빠른 처리를 주문했다고 하더라. 쓰레기 처리가 빨라지고 있지만, 속도전으로 마냥 밀어붙인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포항 지역의 불법 방치폐기물을 행정대집행으로 처리했다. 입찰을 따낸 업자가 처리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쓰레기를 자신의 사업장으로 가져가 쌓아 놓았다. 쓰레기가 이동한 것이다. 불법 투기는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불법 매립은 더 큰 문제다. 결국 쓰레기 문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거나 처리 시설을 늘리거나 둘 중 하나다. 발생량을 줄이는 것은 산업구조를 바꾸는 문제라 사실상 어렵다. 모든 행정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처리시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Q : 소각시설이나 매립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 결국 해당 지역의 반대 때문 아닌가.
A : "지자체가 관리 부담만 떠안고 이익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가 생기면 온갖 비난도 지자체가 받는다.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이익을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쪽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주민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 업자는 폐기물 매립 부담금을 낸다. 이게 다 국가로 들어가고 해당 지역에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매립 부담금의 30% 정도라도 지방 교부금의 형태 등 어떤 식으로든 지역에 내려보내 이익을 공유하자는 얘기다. 폐기물 처리 시설 감시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지자체 공무원에게만 맡기지 말고 전문 감시기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에 따른 행정 조치는 지자체가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또 충분한 정보 제공과 교육을 통한 주민 감시권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Q : 플라스틱 문제도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A : "코카콜라, 펩시, 유니레버, 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들이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의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25% 이상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완전한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만들기 위해 재생원료 사용비율을 대폭 높이는 식의 공격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재생원료를 공급하는 화학업체들에 ‘너희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고 적극적인 요구를 하는 추세다. 플라스틱 문제는 더는 환경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산업 재편이라는 국제적 패러다임의 전환 차원에서 봐야 한다. 환경부와 석유화학 업계가 TF를 만들어 이런 전환기에 걸맞은 공동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종이빨대도 오염 유발, 일회용 줄여야
Q :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시민의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쓰는 매장도 늘지 않았나.
A : "플라스틱보다 종이가 상대적으로 친환경이라 막 써도 좋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종이도 오염을 유발한다. 일회용 친환경은 없다. 쌀 빨대, 바이오 플라스틱 또는 다회용 빨대 등 다양한 대체품을 찾아야 하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고는 가급적이면 일회용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홍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꼭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고 했다. 각 가정에서 이뤄지는 분리배출 문제였다.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재활용품 분리 배출 시 오염물을 최대한 제거하는 ‘세척’에 신경을 써 달라는 당부였다. 다른 하나는 분리배출 방식이다. 플라스틱, 병, 캔 등 품목별 분리배출 통이 있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 지역은 선별장의 현장 선별 방식에 따라 배출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폐지와 스티로폼, 비닐은 따로, 나머지는 비닐봉지에 한꺼번에 담아 분리 배출하는 중분류 방식으로 해야 선별장에서 효율적으로 처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라이터나 칫솔, 빨대 등은 가정에선 플라스틱으로 분리해도 선별장에서 재활용품으로 분리되지 않고 쓰레기로 처리된다는 사실도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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