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가로수·잔디밭, 도시 폭염 1도 낮춰준다
한반도, 기후변화에 취약…남북협력 대응 중요”
공무원 72% 주민은 24%만 만족…산복도로 르네상스 중간평가 설문
멧돼지 부산 도심 출몰 루트 찾았다
지금은 바다의 권리를 이야기할 시간
남해서 5m 높이 줄사철나무 확인…"국내 가장 큰 규모" 추정
아기 노랑부리백로는 사흘만에 전남 해안서 필리핀까지 날아갔다
5년전 1000조 시장, 지금은 20조 시장?
산처럼 쌓인 돼지사체 4만마리…임진강이 핏물로 변했다
태풍·산불 잦으면 기준금리 인하?… ‘녹색금리 시대’ 온다
북극 해빙 감소로 바다동물 감염 바이러스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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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벽에 충돌한 멧새, 움직이지 못하다가…”
빌딩숲 가로수·잔디밭, 도시 폭염 1도 낮춰준다
기상과학원·한국외대 공동연구
광화문 일대에서 8월5~6일 관측
빌딩숲 낮엔 2도, 밤엔 1도 높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 8월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대의 열화상카메라 영상. 온도가 높은 곳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온도가 낮은 곳은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도심의 빌딩 숲은 폭염을 낮에는 2도가량 가중시키고, 밤에도 1도 이상 기온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로수나 잔디밭은 온도를 1도 가까이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기상과학원은 10일 “한국외국어대 대기환경연구센터와 함께 지난 8월5~6일 폭염 기간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빌딩숲 집중기상관측실험’을 진행한 결과 도로변 기온이 오후에 기상청 공식 관측기록보다 2.2도, 밤에 1.5도 이상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열화상카메라, 복사 및 난류 관측시스템, 자동기상관측시스템 등의 고정형 관측기기뿐만 아니라 이동형 관측기기를 이용해 광화문 일대 기온을 측정했다. 기상과학원 재해기상연구센터의 기상관측차량(MOVE4)은 주변 도로를 13번 운행하고, 한국외대 대기환경연구센터는 자체 제작한 보행자 맞춤형 모바일기상관측시스템으로 인도와 광장을 23번 왕복하며 기상 관측 자료를 모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열화상 카메라 영상.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열화상카메라 관측 자료 분석 결과 오전에는 광화문광장 서쪽에 있는 건물의 동쪽 면이 가열되기 시작하고 낮에는 광장과 도로가, 오후에는 동쪽에 있는 건물의 서쪽 면이 가열돼 평지와 다른 온도 분포를 보였다. 실험이 진행된 시기는 심한 폭염 기간으로 8월5일에는 경기도 안성 고삼에서 올해 가장 높은 기온(40.2도)이 기록되고, 6일에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기온이 기록됐다.
연구팀 관측에서 서울의 최고기온이 36.8도까지 치솟은 6일 오후 2시50분에 광화문 한국통신 건물 앞 도로변의 기온은 기상청 공식 기록보다 2.2도가량 더 높았다. 이 지역의 야간 기온도 기상청 기록보다 1.5~1.7도 더 높았다. 이동식 관측시스템 측정과 비교한 결과 폭염이 심할 때 가로수는 기온을 0.8도가량 낮추고, 잔디밭은 보도보다 0.7도가량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광화문광장의 역사물길도 한낮에 물이 데워지기 전까지는 냉각 효과를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반도, 기후변화에 취약…남북협력 대응 중요”
2015년 7월2일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들녘 모습. 100년 만에 닥친 가뭄으로 벌써 끝냈어야 할 모내기를 대부분 못한 채로 있다. 강화/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반도는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0.74도 상승한 데 비해 한국은 1.7도, 북한은 1.9도 상승했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 유지되는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대표농도경로 8.5·RCP8.5)가 진행되면 2100년께 한반도 기온은 4.7도(남한 4.4도, 북한 4.9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북한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하다. 권원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기후센터 원장은 7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관(과총회관)에서 열린 과총 주최의 ‘한반도 공동번영을 위한 남북과학기술 협력’ 포럼에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연이은 자연재해로 북한의 식량 생산 등 경제·생태환경 피해가 극심했다”며 “기상·기후변화 관련 남북의 교류·협력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간 재해로 800만t이던 식량 생산은 200만t으로 급감했으며, 2017년에도 500만t에 불과했다. 온실가스 배출도 재해 전 2억t에서 0.7억t으로 줄었다.
2013년부터 북한이탈주민 면담을 통해 북한의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홍수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갔다거나 산사태로 논농사와 가옥 등에 큰 피해를 보았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길거리에 토사가 흘러들어 걸어 다니기가 힘들다는 얘기도 한다”며 “식량난으로 다락밭·뙈기 밭을 만드는 등 산림훼손이 심해지고 다시 재해를 입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산림은 1960년대 1천만㏊에서 2010년대 중반 600만㏊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산림이 다른 용도로 바뀐 정도를 나타내는 산림전용지수가 인도, 알제리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또 기후변화 관련 국제기구인 ‘저먼워치’의 기후위험지수(2013년)에서 북한은 7위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은 59위였다. 2013년 이후에는 자료 부족으로 북한은 분석 대상에서 빠져 있다.
명 연구위원은 “북한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비롯한 환경, 농업, 에너지 등 사회 전반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고려한 한국과의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연계한 다자간 협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탄소무역’에 관심이 있다며 남북한 사이에도 탄소배출권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인천 송도에 유치된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에 북한이 제안서를 제출해 농업과 수자원 협력 사업을 지원받는 방안도 제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한의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안보 패러다임을 ‘절대안보’에서 ‘협력안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 실장은 “소련 해체 때 우크라이나 등 핵보유국들에 대해 협력적 위험감소(CTR)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전례를 참고해 상황이 다소 다른 북한의 경우 포괄적 시티아르 프로그램과 동시에 북한의 경제개발 계획에 맞춘 남북협력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동대문시장 규모의 대형 시장 9개를 포함해 404개의 공식 시장이 운영되는 등 사실상 시장경제 체제에 돌입했으며, 지역별 대규모 개발 계획 등 10개년 개발 계획이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해 남북 경제협력의 틀도 선순환 구조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5년 8월27일 폭우를 동반한 제15호 태풍 ‘고니’가 할퀴고 간 함경북도 나선시의 홍수 피해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영상 속에는 강풍과 폭우로 아파트의 외벽이 찢겨나가 내부가 드러나는 등 참혹한 나선시의 피해 상황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연합뉴스
특히 북한이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한 30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남북 협력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연평균 풍속이 높은 지역이 많은 점을 활용해 풍력발전으로 전력 수요의 15%를 감당하도록 하는 등 재생에너지로 2044년까지 500만킬로와트의 발전능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홍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풍력연구실 그룹장은 “소규모 용량의 풍력과 태양광 복합발전시스템을 시범 보급하는 사업을 먼저 추진하고 나진선봉지구나 개마고원 등에 대형 육상 풍력발전단지와 장산곶 등에 대형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 뒤 남북 접경지역에 대단위 육상풍력단지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닌 상호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가령 장산곶의 해상 풍력발전단지에서 평양까지 전력망을 설치해주고 직접 전기료를 받든지, 희토류 등 자원을 교환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영식 한국수자원공사 물관리기획처 부장은 “북한의 댐이 보유한 수자원은 369억㎥로, 남한 157억㎥의 두 배가 넘고, 1인당 이용 가능 수자원량이 남한의 1.5배에 이름에도 인프라가 부족해 가뭄·홍수 등 재해에 취약하고 먹는물 공급이 열악하다”며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있는 소규모 식수 위생 개선 지원이나 공유하천 협력을 재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북한의 황강댐과 한국의 군남댐, 북한의 임남댐과 한국의 평화의댐의 경우 수자원-에너지 맞교환 방식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말하자면 북한이 물을 보내주면 한국에서는 전력을 송전해주는 방식이다.
정선양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1987년 서독과 동독이 협정을 체결할 때 제시한 27개 협력 과제 가운데 3분의 1이 환경 등 과학적 이슈였다”며 “북한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방북 때 과학단지를 보여주는 등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점을 고려해 과학 관련 협력방안을 우선순위 상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공무원 72% 주민은 24%만 만족…산복도로 르네상스 중간평가 설문
도시재생이 시행된 지역의 주민들은 행정 기관의 ‘실적 쌓기용’ 하드웨어 건립 사업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산복도로 르네상스 중간평가’ 당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물리적 사업추진’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는 2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주민들의 36.4%는 도시재생 하드웨어 사업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는 도시재생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시행된 동구 초량동의 한 주민은 “‘산복도로 갤러리’와 같은 주민들에게 크게 필요하지도 않은 시설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주민들은 하드웨어 사업에 대해 “특정집단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며(24.3%), 이용하기 힘든 위치(20.6%)에 있고, 주민의견 반응 미흡(13.1%)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주민들보다 하드웨어 사업의 만족도를 더욱 낮게 평가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당시 참여한 한 교수는 “주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건물을 짓기보다, 주민들의 수요가 없는데도 실적을 내기 좋은 건물을 짓는데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대해 설문에 참여한 공무원 72%는 만족한다는 점수를 줬다. 부산지역의 한 구청 도시재생과 공무원은 “그동안 주민들이 모일 공간이 없었는데, 도시재생 사업으로 마을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한 전문가는 “행정과 주민들의 인식차이가 부산 도시재생 10년의 성과를 잘 말해주는듯 하다”고 말했다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멧돼지 부산 도심 출몰 루트 찾았다
4년간 신고지점 GIS 분석
- 초읍·금강공원·신라대
- 3곳 반경 5㎞ 이내에서
- 전체의 66%, 216건 신고
- 도심 향하는 주요 통로인 듯
최근 대거 출몰하는 멧돼지가 부산 도심으로 진입하는 주요 루트를 찾았다. 산림을 베어내고 만든 인공 구조물로 산과 도심 사이에 ‘구멍’이 뚫리면서, 이 틈새로 멧돼지가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문은 부산소방재난본부로부터 2016년 1월~2019년 10월 멧돼지 출현 신고 지점 327곳의 정확한 지번을 입수해 10일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최근 4년간 부산 도심을 습격한 멧돼지는 부산진구 초읍동(35건), 동래구 온천동과 금정구 장전동(32건), 사상구 괘법·감전·주례동(42건) 일원에서 압도적 출현 빈도를 나타냈다. 부산 지도에 신고 지점 밀집도를 그려보면, 이 3개 지역에 멧돼지 출현이 집중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멧돼지는 이들 지역에서 각각 부산어린이대공원(초읍동) 금강공원(온천동) 신라대학교(괘법동)를 중심에 두고 출현했다. 이 3곳이 백양산과 금정산에 구멍을 뚫어 멧돼지의 이동을 돕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백양산에서 어린이대공원 내부로 이어진 길을 이용해 도심으로 내려온 멧돼지는 공원 정문 주위에서 대거 발견됐다. 또 일부는 정문에서 직선으로 이어진 너른 도로(새싹로)를 따라 부산시민공원 인근으로까지 움직였다. 온천동과 장전동 경계 지점인 금강공원과 공원 앞 도로(우장춘로) 주변에서도 멧돼지 출몰이 잦았다. 금정산에서 금강공원 내부를 따라 내려온 멧돼지가 도심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짐작된다.
괘법·감전·주례동 일원에서는 산을 깎아 조성한 신라대 건물이 멧돼지에게 길을 열어준 것으로 판단된다. 4년간 신라대 안에서만 6차례 멧돼지가 목격된 것을 비롯해 학교 앞 도로(백양대로) 주위로 출현이 잇따랐다. 특히 4년간 어린이대공원 금강공원 신라대의 반경 5㎞ 내에서는 무려 216차례나 멧돼지가 목격됐다. 부산 전체 멧돼지 출현 신고의 3건 중 2건(66.1%)이 여기에서 이뤄졌다.
경상대 주선태(축산생명학과) 교수는 “개체 수가 급증해 경쟁에서 밀린 멧돼지가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일정 반경 내의 도심에 나타나는 것”이라며 “서식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범 신심범 기자 pearl@kookje.co.kr
지금은 바다의 권리를 이야기할 시간
22. 이누이트 세드나 조각상, 바다 동물, 바다
‘연승어업(延繩漁業, longline fishing)’을 하는 어선은 50~100㎞ 길이의 장대한 어망을 드리워 몇 시간에 걸쳐 대량으로 거둬들인다. 이 ‘지옥의 사자’에 걸린 이들은 몇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선상으로 올라와서도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타깃이 되는 물고기 외에도 새들과 포유류, 파충류를 무차별 살상한다.
질 미슐레는 자신의 책 ‘바다’에서 바다 동물들에게 우리가 가하는 고통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죽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이빨과 위장이 (우리가) 죽음을 필요로 하는 운명이라는 증거다.”(정진국 옮김, 새물결, 2010, 298쪽)
왜 아닐까. 죽음을 먹고 사는 삶, 즉 남의 사체에서 부-엔트로피를 섭취하며 정연성의 붕괴를 지연하는 삶이란 최첨단 문명의 한복판도 고스란히 관통하는 지구의 법칙이며, 인류는 그 최후의 순간에도 바다의 식량원만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고통이 아니다. 문제는 고통의 총량, 고통의 정도이다. 이른바 ‘연승어업(延繩漁業, longline fishing)’을 하는 어선은 50~100킬로미터 길이의 장대한 어망을 드리워 몇 시간에 걸쳐 대량으로 거둬들인다.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함께 한 과학자들의 한 연구는 21세기의 유령인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최소 46%가 어업 장비들(그물, 양동이, 로프 등)임을 확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지옥의 사자’에 걸린 이들은 몇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선상으로 올라와서도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 조업방식은 타깃이 되는 물고기 외에도 새들과 포유류, 파충류를 무차별 살상한다.
연승어업이 문제시된 지는 꽤 오래전부터이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인 최근까지도 이 조업방식은 산업형 어선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인 것으로 밝혀졌다.(내셔널 지오그래픽의 ‘Pristine Seas’ 프로젝트 연구진들의 연구를 보라.)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형 어선들은 바다를 폐기물 처리공간으로 취급해왔다. 동물권 단체 페타(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는 1회용 빨대 같은 플라스틱보다 어업 장비 폐기물이 바다와 바다 동물에 훨씬 더 큰 해악을 미친다고 역설하고 있다.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함께 한 과학자들의 한 연구는 21세기의 유령인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최소 46%가 어업 장비들(그물, 양동이, 로프 등)임을 확인했다. 1회용 빨대 폐기 운동에 열광할 힘이 당신에게 있다면 어업회사, 어부들에게 어업 장비를 바다에 버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다
바다 동물들로서는 어업 장비가 연승어업의 어망 못지않은 지옥의 사자인데, 이것에 걸려들면 곧바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걸려든 이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천천히 죽어가거나, 입안에 낀 장비 탓에 먹을 수가 없어 서서히 굶어 죽어간다. 사람은 누구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어찌한 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속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장시간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며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그토록 회피하려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은, 인간사회 바깥으로 (적어도 고통을 느끼는 모든 뭇 목숨까지) 확대되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자원의 신화’와 ‘무한의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으며, 이른바 ‘자원 매장소’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해서 우리의 삶과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연승어업이나 어업 장비 폐기물을 문제 삼지 않는 이의 시선으로 사태를 다시 보면, 고통이란 일개 식량자원에 대해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개념이며, 바다는 여전히 무한정한 자원의 매장소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이란 속초 청초호에 가서 양미리 축제를 즐기는 일뿐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지금 이 ‘자원의 신화’와 ‘무한의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으며, 이른바 ‘자원 매장소’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해서 우리의 삶과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우리의 머리 위와 식탁으로 돌아오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매년 빈번해지고 강력해지고 있는 태풍, 멸종에 대한 뉴스가 경종을 울리고 있고, 지금 우리에게 급선무가 있다면, 그건 양미리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 두 신화와 완전히 결별하는 일이다.
대체 저 신화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하나는 바다와 바다 동물의 권리를 법률로 보장함으로써 인간과 바다 사이의 ‘생태적 타협점’을 구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다에 관한 새로운 신화를 창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이 두 사업의 기반 사업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바다에도 권리가 있다
자연 또는 지구의 법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2010년을 전후하여 퍼지기 시작했지만, 바다의 법적 권리에 관해서는 겨우 몇 년 전에서야 논의가 활발해졌다. 일례로 지구법 센터(Earth Law Center)는 2017년 세계 수준에서 바다의 권리를 진전시키는 새 기획을 시작했는데, 현재 생물 종, 지역의 바다(예컨대 태평양), 각국의 영해가 아닌 전체 바다(High Seas)의 법적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바다에 관한 새로운 신화는 어떤가? 그런 게 꼭 필요한 걸까? 지구의 북쪽 끝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Innuit) 민족의 신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준다. 전하자면 이러하다. 지상만물을 만든 조물주 안구타(Anguta)가 딸을 낳았다. 이름을 세드나(Sedna) 또는 타카날룩(Takannaaluk)이라 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어느 날 세드나는 제 부모를 죽이려 한다. 이를 알아챈 안구타는 격분하여 세드나를 바다로 끌고 간다. 안구타는 타고 있던 카약 바깥으로 그녀를 밀어버리지만, 세드나는 기어코 카약의 옆면을 붙잡고 버틴다. 마지못해 안구타는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내 그녀를 떨쳐 버린다. 이렇게 하여 세드나는 저 ‘아래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잘린 손가락은 고래, 물범, 바다코끼리들이 되어 이누이트 족의 사냥감이 된다…….
세드나 조각상, 작자미상
이 신화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첫째, 고대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바다는 조물주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둘째, 이들에게 바다는 지구의 독자적 세력이자 알 수 없는 세계였다.(그래서 ‘아래 세상’이다) 셋째, 세드나의 신체 일부는 사냥해도 되지만, 오직 그것만이 허용된다고 이들은 믿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에, 이야기야말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기획해가려는 우리네 삶의 여정에 등불이다.(신이 등불이라면 그 신은 이야기를 통해 알려져야만 했다) 범접해서는 안 되는 강력한 힘의 주체로 바다를 인식했던 어느 변방의 옛이야기 한 점 또한 우리가 새롭게 빚어내야 하는 새로운 삶의 의미와 법의 원천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한겨레
남해서 5m 높이 줄사철나무 확인…"국내 가장 큰 규모" 추정
국립공원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인 경남 남해군 금산 정상부에서 대형 줄사철나무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며 산지 능선이나 바위 지대에 자라는 상록성 덩굴나무다. 주로 남해안 해안가에서 발견된다. 줄기 곳곳에서 뿌리가 땅속에 있지 않고 공기 중에 노출되는 `공기 뿌리`가 나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특징을 가진다. 사철나무와 닮은 모양이지만 가지에 있는 볼록한 검은 점으로 구분한다.
꽃은 5∼7월에 피고, 열매는 10∼12월에 붉게 익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이번에 확인된 줄사철나무는 해발 700m 기암괴석에 붙어 자생하고 있다.
둘레 28㎝, 높이 5m 규모다.
공원사무소는 이 줄사철나무는 진안 마이산 천연기념물 380호로 지정된 줄사철나무 군락지 개체보다 큰 것으로 추정했다. 박은희 해양자원과장은 "줄사철나무의 아름다운 경관·생태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아기 노랑부리백로는 사흘만에 전남 해안서 필리핀까지 날아갔다
겨울나기 이동경로 세계 최초로 확인
대만 거쳐 필리핀으로 2800여km 비행
국립문화재연구소 경로 추적 성과
두마리 몸에 첨단 위치장치 부착
희귀종 노랑부리백로가 날고있는 모습. <한겨레>자료사진
아직 한살도 안된 아기 노랑부리백로는 사흘만에 2800여km를 날았다. 한반도 서남단의 전라도 영광, 해남에서 날아올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필리핀까지의 하늘길을 반듯하게 비행했다. 가는 길에 하루만 쉬고 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겨울 보금자리를 찾아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은 지난 5월 전라남도 영광군 칠산도에서 태어난 천연기념물 여름철새 노랑부리백로 두 마리의 몸에 위치추적 장치를 붙여 추적한 끝에 이들이 원래 서식지인 전남 해남, 고창 개펄에서 동중국해를 지나 겨울 보금자리인 타이완, 필리핀으로 날아가는 이동경로를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고 11일 발표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위치추적 장치를 몸에 붙인 노랑부리백로를 놓아주고 있다.
위치추적 장치를 붙인 뒤 방사된 노랑부리백로.
겨울나기 안식처를 향한 노랑부리백로 두마리의 이동 경로 지도. 한반도 남쪽에서 대만을 거쳐 필리핀까지 2800km 넘는 거리를 날아갔다.
연구실은 앞서 지난 6월 27일 노랑부리백로 두마리의 몸에 첨단 위치추적장치(무게 22g)를 붙였고 그뒤부터 이들의 이동경로를 샅샅이 좇으며 기록해왔다. 한 개체(개체번호: nhc1902)는 10월 29일 전남 해남 인근 갯벌을 떠난 뒤 평균시속 54km 속도로 제주도 상공을 지나 약 1215km를 비행하면서 다음날인 30일 대만섬 북동쪽 신베이시 해안습지에 닿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한 개체(개체번호: nhc1904)는 10월 30일 전북 고창 연안 갯벌에서 출발해 평균시속 51km 속도로 약 1477km를 비행해 다음날인 31일 대만섬 남서쪽 타이난 지역에 도착해 하루를 머물며 쉬었다. 그리고 다시 1340km를 날아가 다음날인 11월 2일 겨울나기 최종 기착지인 필리핀 산토 토마스 강 하구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니까 이틀 정도 기간에 한반도 남단과 필리핀 사이 2817km를 주파한 셈이다. 자연문화재연구실의 강정훈 연구관은 “노랑부리백로의 이동경로 뿐 아니라 이동속도를 밝혀낸 것도 세계 최초의 성과다. 첨단 기기로 희귀조류 철새의 생태 정보를 구체적으로 밝혀냈기 때문에 국제 조류학계에 상당한 반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노랑부리백로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장치는 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했다. 지피에스(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이동통신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야생동물 위치추적기(WT-300)’로, 태양광 충전 방식을 써서 4시간에 한 번씩 새들의 경로를 알려줄 수 있다.
노랑부리백로는 전 세계에 2600~3400마리 정도만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여름철새다. 세계적으로 계속 숫자가 줄고있어 국제적인 보호대책이 절실한 희귀 조류다. 영광 칠산도 번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관리중이지만, 해풍과 3만여 마리에 이르는 괭이갈매기 번식으로 식물이 고사하고 토사가 유실되는 등 번식 여건이 열악해지고 있다고 한다.
노랑부리백로의 국내 번식지인 전남 영광 칠산도 전경.
연구소는 노랑부리백로 개체 보존을 위해 번식지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강정훈 연구관은“영광 칠산도 번식지뿐 아니라 노랑부리백로가 겨울을 나는 타이완이나 필리핀 월동지에 대해서도 효율적인 관리 보존 방안을 세우기 위해 다음달 중에 현지 관련 기관과 협력해 조사단을 꾸리고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랑부리백로의 이동경로에 대한 연구정보는 문화재청 누리집(www.cha.go.kr) 있는 ‘천연기념물 생태지도 서비스(http://gis-heritage.go.kr)’를 통해 검색할 수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5년전 1000조 시장, 지금은 20조 시장?
어느 산업이나 산업계의 시장 전망은 언제나 ‘장밋빛’이다. 많은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산업계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전망이 어두운 산업에 투자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부풀려진 경우가 많고, 한두 번 검토만 되었던 사업도 마치 진행 중인 것처럼 서술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들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서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나 공공 투자를 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핵산업계의 전망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탈원전 역설… 500조 원전건설 버리고 20조 해체산업 키운다는 정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국내 핵발전소 건설은 막히고, 산업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는데, 대안으로 육성하는 핵발전소 해체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규모가 작아 기존 산업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그동안 ‘기승전 탈원전 반대’를 외쳤던 기조를 생각해 볼 때, 내용 자체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다. 산업계가 죽어가니 핵발전소 건설을 지속해야 한다는 논리는 문재인 정부 내내 지겹게 들어왔던 내용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늘어남에 따라 전력업계에는 전력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망을 보강하는 등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때 대표적인 ‘경직성 전원’인 핵발전을 핵산업계 활성화를 위해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합당한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인 것은 얼마 전까지 ‘1천조’에 이른다고 보도했던 핵발전소 해체 시장이 어느 순간 ‘20조’로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2014년, 주간조선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전문가들의 말을 근거로 2050년까지 전 세계 핵발전소 해체 시장이 9800억달러(약 105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주간조선) 原電 하나 뜯는 데 6000억원… 황금알 낳는 원전 해체 시장 2050년엔 1000조원?] 근거로 삼은 9800억달러에는 상업용 원자로(2625억달러)보다 군사용 핵시설(6400억달러) 해체시장이 2배 이상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은 이런 언급없이 ‘1천조 원전 해체 시장’을 강조했다. 또 상업용 원자로 해체 실적도 없는 우리나라에 보안에 민감한 군사용 핵시설 해체를 맡길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조차 없었다.
이들 내용은 정치권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2015년 울산지역 정치인들은 ‘원전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원전해체센터)’를 유치한다며 결의대회를 개최하는가하면, 울산 시민 서명운동을 벌여 47만명이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부산 기장군과 경북 경주시에서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원전해체센터를 유치하는 대규모 운동을 벌였다. 그 때마다 ‘1천조 원전 해체 시장 선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표현이 난무했고, 언론과 핵산업계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계속 유포했다. 이게 불과 4~5년 전 일이다.
▲ 지난 2017년 3월6일 울산과학기술원에 원전해체핵심요소기술 원천기반 연구센터가 들어섰다. 사진=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이후 몇 년간 각 지자체는 원전해체센터 유치에 나섰고, 결국 올해 4월 원전해체센터 본원은 부산과 울산 경계에 설립하고, 경주에는 중수로해체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되었다. 사업이 현실화되자, ‘1천조 시장’ 같은 표현은 하나 둘 사라졌다. 거품이 빠지고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이제 ‘20조 시장’으로 사업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의문투성이다. 연구시설로 전체 시장을 독차지할 가능성도 없고, 연구시설이 지자체간 경쟁에 휩싸여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향후 방사성 물질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될 이들 해체연구센터가 또 다른 갈등을 낳게 될 지도 지켜봐야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허황된 수치를 거리낌 없이 배포하는 관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한 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핵발전소 해체산업이 이제는 ‘기승전 탈원전 반대’의 근거로 사용되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지키기 힘든 것인지 꼭 한 번 되묻고 싶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mediatoday
산처럼 쌓인 돼지사체 4만마리…임진강이 핏물로 변했다
10일 낮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임진강 상류 마거천. 상수원보호구역과 인접한 하천이 인근 살처분 돼지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핏빛으로 변한 모습. [사진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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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낮 12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초소 바깥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를 위해 예방적 살처분된 돼지를 가득 실은 25t 트럭 10여대가 줄지어 서 있다. 살처분 후 민통선 내에 마련된 매몰지로 운송되는 죽은 돼지를 실은 트럭들이다. 트럭 주변에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트럭 운전기사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민통선 초소를 통과해 300여m 들어가자 길가에 4∼5m 정도 높이로 산더미처럼 죽은 돼지 4만여 마리가 쌓여 있었다. 주변에선 포크레인이 연신 땅을 파고, 방역복 차림의 방역 요원들이 매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죽은 돼지 수만 마리를 임시로 쌓아 놓은 장소와 불과 50m 정도 거리의 마거천에는 매몰지에서 새어 나온 침출수로 인해 핏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이곳 하류 300m 구간 하천에서도 군데군데 핏물이 둥둥 떠 있고, 하천 곳곳은 허연 거품이 뒤덮고 있었다. 민통선 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난 9일부터 매몰지에 쌓아 놓은 살처분한 돼지 더미에서 핏물이 흘러들기 시작해 어제는 온 하천이 핏빛으로 온통 붉게 물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어젯밤 많은 비에 핏물 범벅 하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쓸려내려 가”
그는 “이곳에서 불과 1㎞ 하류에는 상수원보호구역인데 죽은 돼지에서 나온 핏물 등 침출수 범벅이 어젯밤 내린 많은 비에 하류로 대규모로 쓸려내려 갔으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민통선 일대를 뒤덮고 있는 역한 냄새 때문에 파농사도 짓지 못할 지경이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1일 낮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임진강 상류 마거천 인근에 마련된 살처분 돼지 매몰지.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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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안내한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이석우 공동대표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허술하게 진행되는 매몰 작업현장에서 대규모로 핏물 등 침출수가 인근 하천으로 흘러든 것은 재난에 가까운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곳에서 불과 1㎞ 하류는 연천군 주민과 군인 등 7만여 명에게 하루 총 5만t의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2.8㎢)인데 식수원이 오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 당국은 지금 당장 식수오염과 ASF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대책을 시행하고, 완벽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 낮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임진강 상류 마거천. 인근에 마련된 살처분 돼지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하천에 둥둥 떠 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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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물길 막고 펌핑 작업으로 침출수 모두 걷어냈다”
이에 대해 연천군 관계자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10일까지 관내 16만 마리의 돼지를 전량 예방적 차원에서 단기간에 살처분 및 매몰작업을 진행했다”며 “이러다 보니 매몰지 확보가 늦어져 민통선 내에 죽은 돼지를 일시 쌓아둔 상태에서 침출수가 인근 하천으로 유출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연천군은 지난 10일부터 침출수가 하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임시로 물길을 막은 상태에서 펌핑 작업을 통해 11일까지 이틀동안 침출수를 모두 걷어냈다”며 “민통선 내에 추가 매몰지를 확보해 12일까지 쌓여 있는 죽은 돼지 사체를 전량 매몰 처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연천군 맑은물관리사업소 연천통합취수장 관계자는 “침출수가 하천으로 유입된 상수원보호구역 상류 일대에 대한 수질검사에 착수했다”며 “앞으로 지속해서 매몰지 인근 하천에 대한 수질검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천군 전 농가의 돼지 16만 마리 예방적 차원에서 모두 없애
한편 연천군에서는 지난 9월 18일 백학면에 이어 지난달 9일 신서면 등 2개 양돈농장에서 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2일 74개 모든 양돈농가의 총 16만 마리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거나 수매해 없애기로 했다. 연천군 민통선 일대와 DMZ에서는 지난달 11일부터 31일까지 총 8건의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연천=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태풍·산불 잦으면 기준금리 인하?… ‘녹색금리 시대’ 온다
기후변화가 기준금리 끌어내릴 수도
기온 4℃ 오르면 2008년 금융위기의 3~4배 피해
글로벌 은행 화석연료 에너지 신규 투자 멈춰
국내 은행들은 화석연료 에너지에 23조원 투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후변화 회의가 열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국제연합(UN)에 공식 통보한 직후라 이목이 집중됐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FRB) 총재의 발언이 시작되자 회의장 분위기는 금세 무거워졌다. 데일리 총재는 “오늘은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주에서 85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1만4000여가구를 집어삼킨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라며 “기후변화가 얼마나 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야기하는지 통화정책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산림청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산불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덥고 건조한 기후가 나무를 시들게 만들었고, 마른 나무에 불이 쉽게 옮겨붙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산불로 보험사에 청구된 보험금만 114억 달러(약 13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기후변화가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흔드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른바 ‘녹색금리’의 시대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서라도 기후변화에 따른 민간의 피해 복구자금을 책임져 줘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권도 천문학적 ‘비용 폭탄’을 피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만 국내 은행들은 감소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에너지 사업 투자에 미련을 못 버린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회의에서 “기후변화가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기준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자연재해로 대규모 보험료가 발생하거나 전력 공급이 중단됐을 경우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감안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국가 재난’ 수준으로 커졌다. 연준 회의에서 인용된 논문에 따르면 2025년까지 기온이 지금보다 2도 이상 오르면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손실률은 향후 80년간 14%까지 올라간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경제성장률에 따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지구 기온이 4℃ 오르면 향후 80년간 23조 달러(약 2경6700조원)의 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발생한 경제적 비용의 3~4배에 달하는 수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미국 연준 뿐만 아니다. 글로벌 은행들도 미래의 ‘비용 폭탄’을 피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 친환경 단체 레인포레스트네트워크에 따르면 2015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30여개 글로벌 은행들이 석탄에너지 관련 신규투자를 중단했다.
기후변화 잠재적인 위험성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스턴 커먼자산운용사는 글로벌 은행 33개를 분석했더니 지난해 화석연료에너지 사업 투자 규모가 친환경 사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녹색채권 규모보다 9000억 달러(약 1050조원) 더 많았다. 심지어 녹색채권 규모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누적 규모였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엔 “아직도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어떨까. 장마리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운동가는 12일 “국내 은행들의 화석연료에너지 투자 규모는 약 23조원으로 아직도 녹색채권 발행 규모를 압도한다”고 꼬집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북극 해빙 감소로 바다동물 감염 바이러스 창궐
미국 연구팀 북태평양~북대서양 조사
해빙 감소와 바이러스 확산 상관 확인
온난화로 해빙 줄면 서식활동 범위 커져
떨어져 있던 군집 접촉 늘며 병원체 전파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감소하면서 바다표범 등 해양 포유류들의 바이러스 감염이 확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북극 해빙(바다얼음)이 감소하면서 물개 등 바다동물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북태평양에서 수집한 바다 포유동물들 자료를 통해 북극 해빙이 감소하면서 ‘물개 전염성 급성염증 바이러스’(PDV)가 북태평양과 북대서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네이처>가 발간하는 온라인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렸다. 바다동물의 피디브이 감염증은 홍역과 관련이 있는데 피부질환, 기침, 폐렴, 발작 등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다.
과학자들은 해빙이 감소함에 따라 병원체 확산이 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극 해빙의 감소는 지난 40여년 동안 기후변화로 인한 가장 뚜렷한 현상의 하나로 꼽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마다 12%의 해빙이 감소하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IPCC의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에서 “9월의 북극 해빙 감소는 적어도 최근 1000천년 동안에 전례가 없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극 해빙이 얇아지면서 얼음층의 수명도 짧아져 1979~2018년에 5년 이상된 얼음의 비율이 90% 가까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북극 해빙이 녹으면서 큰바다사자처럼 서로 떨어져 있던 포유류들이 접촉하는 일이 생겼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과학자들은 2002년 북대서양에서 항구 바다표범의 대규모 폐사를 일으킨 ‘피디브이’ 감염의 확산에 북극 해빙 감소가 배경으로 작용했는지 조사해왔다. 하지만 2004년 알래스카의 북해 해달한테서 피디브이가 검출될 때까지 북태평양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양한 장소에서 2500여 마리의 바다 포유류에서 혈액과 콧물을 채취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나 생바이러스 등 검체를 수집했다. 또한 비표를 한 동물들의 위성 데이터로 위치를 기록했다. 이들 데이터는 해빙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2002년 기록적인 해빙 감소는 2003~2004년 북태평양에서 큰바다사자의 대규모 피디브이 감염으로 이어져 조사 대상의 30% 가량이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피디브이 감염은 이후 줄어들었지만 2008년 개빙구역(open water : 떠다니는 부빙이 수면의 10분의 1 이하인 상태)이 출현하면서 2009년에 다시 급증했다.
논문 교신저자인 데이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트레이시 골드스타인 박사는 “해빙의 상실은 바다 야생동물들이 새로운 서식지를 찾게 만들고 물리적 장벽을 제거해 바다동물들이 이동할 길을 열어준다”며 “동물들이 이동해 다른 종의 동물과 접촉하면 새로운 감염병을 옮길 기회가 많아지고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표범 같은 동물들은 이동을 하거나 번식하기 위해 얼음이 필요하다. 얼음이 사라지면 이들은 서식지를 옮겨야 한다. 또 북극이 따뜻해지면 바다표범이 잡아먹는 물고기들이 좀더 깊고 차가운 곳으로 이동해가기 때문에 바다표범들은 이들을 잡으러 더 멀리 이동해야 한다. 골드스타인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바다표범들은 건강에 영향을 받아 체중이 감소하고 질병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음 위의 얼룩큰점박이 바다표범.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연구팀은 북극의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고 병원체의 확산 기회가 더 많아져 많은 동물종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스타인은 “얼음에 의존해 생존하던 동물들은 북극 해빙이 감소하면서 이미 멸종 위기에 접어들었다. 피디브이와 같은 전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면 멸종이 가속할 것이다. 인류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동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북극 지방의 주민들은 동물들과 그들의 서식지가 사라지면 생계에 위협을 받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북극 지방의 환경과 동물, 주민들의 상황이 계속 열악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녹슨 쇳물 걷어낸 자리에 ‘구겐하임 빌바오’…문화가 흐른다
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⑤문화도시로 부활, 스페인 빌바오항
쇠락한 철강도시를 시민 품으로 돌려
폐업 잇따르고 대홍수 겹쳐 슬럼화돼
시, 수질개선에 1조7천억원 과감 투자
30년동안 ‘문화예술도시’ 탈바꿈 작업
구겐하임미술관이 방문객 모으며 활기
인구 40만명 ‘부자도시’의 위상 되찾아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옆의 산책로. 원래 이곳은 낡은 부두였다.
“썰렁하고 우울했던 도시 전체가 쾌적해지고 방문자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이베리아반도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빌바오항 상류 부두 산책로에서 만난 후안 호세(72)는 “날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 지역경제도 살고 교통도 편리해졌다. 덩달아 철강·조선업종에서 첨단 지식업종으로 산업생태계까지 변하는 것 같아서 빌바오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지난 9월말 사흘 동안 둘러본 빌바오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달리 생기가 넘쳤다. 산악지역의 인구 40여만명 도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빌바오 국제공항은 유럽 전역을 오가는 비행기들로 혼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넘쳤다.
빌바오시는 스페인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무력투쟁까지 벌였던 바스크 자치지방의 3개 주 가운데 하나인 비스카야주의 주도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빌바오시는 중세시대 철이 발견되면서 철의 도시가 됐다. 산업혁명기 빌바오에서 만든 철강제품은 유럽 전역으로 수출됐다. 도시에 일자리는 넘쳐 났고 사람과 돈이 몰리면서 금융업이 발달했다. 철구조물을 사용하는 조선업도 호황을 누렸다. 빌바오시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유럽에서도 손에 꼽을 부자도시가 됐다.
1970년대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빌바오항 하류(왼쪽)와 현 빌바오항(오른쪽).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제공
일등공신은 북대서양 비스케이만 들머리의 빌바오항이었다. 빌바오 곳곳에서 채굴한 철광석과 제련소를 거쳐서 만든 철강제품 등은 빌바오항을 통해 수출됐다. 비스케이만에서 유입되는 북대서양의 바닷물은 네르비온강과 만나 하류인 빌바오 시내까지 10㎞ 이상 흐르는데 네르비온강변 왼쪽에 줄지어 들어선 제련소와 조선소의 부두엔 철강제품과 선박 기자재를 실은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부두 주변은 크레인 등 중장비들과 부두·공장노동자들로 북적였고 시민은 접근하지 못했다
위기가 찾아왔다. 1980년대부터 철강·조선업체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의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이 강력한 경쟁자였다고 한다. 휴·폐업이 잇따라 실업률은 20~30%까지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다. 설상가상 1983년 대홍수까지 발생해 도시는 물바다가 됐다. 철강·조선업체들이 떠난 자리는 쓰레기장과 우범지역으로 전락했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스페인 북부 스페인 빌바오항 상류에 정박중인 대형 크루즈선 주변에 요트들이 다니고 있다.
빌바오시는 1990년대부터 도시 재생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빌바오시와 주정부, 시민단체는 도시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공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하기로 결심했다.
시작은 네르비온강이었다. 빌바오시 재생의 중·장기계획을 만드는 싱크탱크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대표 알폰소 마르티네즈 시아라는 “강변 수질개선부터 시작했다. 빌바오시 제련소와 조선소에서 흘러나오는 시뻘건 쇳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차단했고 강바닥의 썩은 퇴적물을 걷어냈다. 1990년대부터 30년가량 1조7천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제련소와 조선업체는 외곽으로 옮기고 네르비온강변의 부둣길을 따라 3㎞의 산책길과 1.2㎞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거장의 예술작품을 곳곳에 설치했고 미술관·콘서트홀·박물관·공원 등을 만들었다.
접근성도 높였다. 누구나 친수공간으로 변모한 네르비온강변에 쉽게 다가서도록 1950년대 철수했던 트램을 다시 운행했다. 주변 도시 주민들이 30분 안에 시내를 찾을 수 있도록 지하철을 확충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구겐하임미술관 옆에 트램이 달리고 있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네르비온강 때문에 단절했던 윗동네와 아랫동네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곳곳에 다리를 만들었다. 어린이놀이터를 만들고 국제공항도 새로 단장해 도시철도를 타고 20분 안에 도심에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네르비온강변을 찾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들이 생겼고 해 질 녘이면 가족들이 버스킹 공연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린이놀이터에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장노동자들만 이용했던 도심의 강변이 주민 품에 안긴 것이다.
옛 컨테이너 야적장과 제련소 터에 들어선 구겐하임미술관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1997년 10월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구겐하임미술관을 네르비온강변에 완공하자 100만명 이상이 찾았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완공 5년 만에 3000억원의 건축비를 회수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상류에 있는 비즈카야다리(세계문화유산). 북대서양 북부의 비스케이만의 바닷물이 이곳을 통과해서 시내까지 흐른다.
구겐하임미술관은 파급효과를 낳았다. 발길이 뜸했던 다른 미술관 등의 방문객이 늘어났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10년 만에 호텔수가 10배 이상 늘었고 일자리 4000개가 창출됐다”고 했다. 구겐하임미술관 근처 레스토랑의 주인은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미술관을 개관할 때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서 아직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빌바오항 재생 성공으로 도시 전체가 되살아나면서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30만명까지 줄었던 인구가 40만명을 회복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로 스페인 평균 3만달러를 훨씬 상회한다. 스페인 최고 부자도시 위상을 되찾은 것이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하류 야외 해양박물관은 크레인과 선박 등 예전의 선박시설들이 전시되고 있다.
빌바오시는 빌바오항 재생을 추진하면서 철강·선박도시의 전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콘서트홀이 대표적이다. 실제 제련소 터에 세운 콘서트홀은 철구조물이었다. 빌바오시가 철강도시였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야외 해양박물관은 빌바오항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야외 마당은 대형 크레인, 도크, 닻, 퇴역한 선박 등이 손님을 맞는다. 해양박물관 안내원은 “이곳에 1900년 첫 번째 도크가 만들어져 수많은 시민과 선주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이 열렸다”고 말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뒤로 주택이 밀집됐다. 김광수 기자
빌바오항 하류 네르비온강변의 재생은 2개의 조직이 주도했다. 지방정부와 스페인 정부, 지방의회가 함께 설립한 재개발추진기구 ‘빌바오 리아 2000’과 민·관 협력기구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다. 두 조직 모두 1992년 출범했다. 빌바오 리아 2000은 실행기구다. 공공개발을 한 뒤 지분과 사용권을 민간에게 넘기고 발생한 수익금은 재개발사업에 다시 투자한다.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에서 30은 빌바오시 주변 도시 30곳을 의미한다. 빌바오시 발전만 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 30곳과 상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메트로폴리 30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800여명이나 된다. 건축·설계·환경 등 모든 분야에 몸담은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관계자들이다. 거대한 집단지성인 이들은 정기 또는 수시로 만나 도시 재생의 계획을 세운다. 합의된 의견은 빌바오시에 전달하고 빌바오시는 이를 반영해서 집행한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구겐하임미술관. 보는 방향에 따라 선박과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공기관이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날 수가 있는데 빌바오 리아 2000과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갈등은 없다고 한다. 빌바오 메트로폴리스 30에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고 이견이 해소될 때까지 끊임없이 소통하기 때문이다. 빌바오시는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면 세계적인 작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전략을 펴고 있다. 또 빌바오시 산하에 ‘인터내셔날’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유명한 작가 전시회와 음악회 등을 수시로 열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가 되려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문화가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게 빌바오시의 설명이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하류 빌바오 시내에 자리한 구겐하임미술관은 원래 컨테이너 야적장 등이 있던 자리였다. 둥근 고층 건물이 스페인 전기회사이고 이 건물 앞에 대학 도서관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위쪽으로 걸어가면 철구조물로 만든 콘서트홀과 해양 야외박물관(크레인)이 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하류 빌바오 시내에 자리한 구겐하임미술관은 원래 컨테이너 야적장 등이 있던 자리였다. 둥근 고층 건물이 스페인 전기회사이고 이 건물 앞에 대학 도서관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위쪽으로 걸어가면 철구조물로 만든 콘서트홀과 해양 야외박물관(크레인)이 있다. 빌바오시의 독특한 정치·경제적 상황도 빌바오항 재생의 성공에 한몫했다. 빌바오시는 바스크 지방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는데 중앙정부가 독립운동을 무마하려고 빌바오시민이 내는 세금의 15%만 거둔다고 한다. 나머지 85%는 빌바오시가 집행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빌바오시가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이유다.
빌바오시 지방정부와 시의회의 갈등이 거의 없는 것도 강점이다. 독립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스크 정당 후보들이 시장과 시의원에 계속 무더기 당선되기 때문이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1위를 한 정당이 바뀌면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 있지만 빌바오시는 사람만 바뀌고 정당은 그대로여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트램 철로 옆의 자전거도로.
고비도 있었다. 빌바오시가 1988년 구겐하임미술관 등을 지어서 문화예술도시로 변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실업률이 치솟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고용을 유발하는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고 뜬금없이 미술관을 유치하겠다고 하니 반발은 당연했다. 이에 당시 빌바오시장이 “미술관을 완공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1990년 착공에 들어갔다. 만약 당시 빌바오시장이 표를 의식하고 구겐하임미술관 건립계획을 포기했다면 오늘의 빌바오시가 가능했을까.
빌바오시는 이제 2035년을 바라보고 있다. 전통 제조업의 비중을 더 낮추고 유럽 5대 도시 도약이 목표다. 고용·국내총생산·교육·노인부양·건강 등 5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미래 도시를 만들려고 한다. 2단계 재생계획은 이미 착수했다. 중류지역 50㏊에 대규모 공원과 체육시설 등을 갖춘 친환경 주거·업무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맡겨 기본계획을 만들었고 현재 낡은 공장을 차례로 철거하고 터를 닦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알폰소 마르티네즈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대표는 “어떤 투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성장이 멈춘다. 이를 예측하고 또 다른 성장을 모색하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네르비온강변의 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빌바오시는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항구를 내 집 마당처럼 이용하지 않으면 외지 관광객도 찾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관광객 유치에만 목적을 두고 항만재생을 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빌바오항 중류는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제련소와 조선소들이 있던 자리와 옛 부두에는 산책로 등으로 새로 꾸며진다.
빌바오/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옛 창고 위의 콘서트홀…독일의 과거·미래 ‘완벽한 하모니’
국외-⑤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북유럽 아이콘 ‘엘베필하모니 홀’
고풍스러운 창고거리 원형 살리며
11개 구역 ‘도시 속의 도시’ 신구 조화
독창적 랜드마크들도 답사객 불러
“젊은층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
녹지율 25% 등 시민 접근성 높이고
주거단지마다 ‘공공 비율 30%’ 갖춰
800개 기업 유치 등 장기계획도 순항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베필하모니 전망대에 오르면 엘베강과 원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9월 말 찾아간 독일 함부르크의 엘베 필하모니 홀(이하 엘피)엔 생기가 넘쳤다. 강변의 입구부터 항구 풍경을 감상하거나 건물 구조를 구경하려는 인파가 줄을 이었다. 행렬에 끼어 360도 파노라마 전망통로에 올라서자 원도심의 성당 지붕과 항구에 정박한 범선, 옛 수로와 하펜시티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은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셀카를 찍느라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웠다.
2년 전 문을 연 엘피는 전위적 건축미와 최고의 공연물 덕분에 하루 1만5000명이 찾는 북유럽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0년 동안 8억4900만유로(1조1200억원)를 투자한 랜드마크를 공공 공간으로 개방한 덕분이다.
엘피는 외견상 높이 110m의 복층 구조로 마치 위로 뚫린 개미집을 떠올리게 한다. 하부는 1960년대 붉은 벽돌 수만개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높이 37m의 옛 코코아창고가 떠받치고 있다. 상부엔 태양과 강물을 반사하는 곡선형 유리패널 1100개를 물결 모양으로 이어붙인 73m짜리 콘서트홀을 올려놓았다. 이곳엔 2100석의 공연장을 비롯해 호텔 식당 카페 빌라 등이 함께 들어섰다. 하펜시티 유한책임공사 수잔 뷜러(Susanne B毫ler) 홍보실장은 “엘피가 함부르크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관광 필수코스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공연마다 예약이 몰려 입장권을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랜드마크인 엘베필하모니 콘서트홀. 37m 높이에 설치한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가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다.
함부르크는 북해로 흐르는 엘베강 하구 110㎞ 지점에 있는 내륙항구다. 1200년 전 성곽을 쌓으며 도시를 열었고, 중세 때 한자동맹의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유럽 전역을 수운으로 연결하는 이점을 살려 무역·해운·상업이 발달했으나 1842년 대화재와 1940년대 2차대전으로 시련을 맞기도 했다. 전후 복구 단계에서 180만명의 독일 제2 도시자,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주로 발돋움했다.
붐볐던 함부르크항은 1960년대 들면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쇠퇴에 직면했다. 기선을 위한 옛 항구의 부두와 창고는 컨테이너의 상용화로 쓸모없이 버려졌다. 교역품이 광물이나 곡물에서 공산품 위주로 달라지며 변화의 물결 앞에 서게 됐다.
위기를 감지한 함부르크시는 옛 항구인 하펜시티를 ‘도시 속의 도시’로 만드는 항만재생을 추진했다. 먼저 도시의 역사를 기억할 공간부터 선정했다. 먼저 항구 들머리의 고풍스러운 옛 창고거리(Speicherstadt·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를 보전목록에 넣었다. 좁다란 운하 양쪽에는 1885~1927년 커피 홍차 담배 등을 보관하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었던 창고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항구의 정취를 간직한 고딕 양식의 5~6층짜리 창고들은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1879년 지은 곡물창고를 개축해 만든 국제해양박물관
함부르크시는 창고거리 바깥의 보세구역을 항만재생의 대상지로 삼았다. 1997년 전통적인 원도심에 어우러진 자유롭고 개방적인 새도심을 만들겠다며 하펜시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마스터플랜을 세웠고, 2010년 이를 구체화한 수정안을 냈다. 2025년까지 1만5000명이 사는 주거지 7000곳을 건설하고, 기업 800곳을 유치해 일자리 4만5000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옛 항만지역은 위치와 기능에 따라 11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과 개방성을 높인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토지 용도를 건물 32%, 공원·녹지 등 공공용지 24%, 교통시설 23%, 사유지 개방시설 14%, 사유지 폐쇄시설 7% 등으로 설정한 것을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의 비율이 38%로 올라가면서 활력을 더했다.
함부르크 원도심과 하펜시티 공중사진 함부르크시 제공
이 사업에는 민간투자 100억 유로, 공공투자 30억 유로 등 모두 130억 유로(16조9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함부르크시는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하펜시티 유한책임공사는 집행을 맡았다. 이 공사는 도시계획·토목·건축·환경·조경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50여명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추진 중이다.
항만구역 안에 있는 옛 건물들도 외관을 살리고 내부를 개축해 활용 중이다. 1879년 지어진 곡물창고 3동은 선박의 모형·사진·영상 등을 전시하는 국제해양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난방과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소는 하펜시티의 조성 과정과 미래 계획을 알려주는 방문자센터로 쓰이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새도시 전체를 500분의 1로 축소해 제작한 모형을 설치하고 답사와 견학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옛 세관 건물은 통관과 검역의 변천사를 정리한 독일세관박물관으로 새단장을 했다.
함부르크 시청 주변 원도심과 옛 항만 하펜시티의 도시계획 개념도 함부르크시 제공
함부르크시는 건물을 신축할 때 마스터플랜에 따라 세부 조건을 달았고, 설계공모를 요구했다. 구역마다 특성이 유지되도록 시유지를 매각하면서 외관·재료·색깔·조명 등 조건을 달아 동의를 받았다. 옛 창고거리 부근엔 신축 높이를 7층 이하로 제한해 스카이라인을 망치지 않도록 했다. 녹지공원을 만들면서도 위치가 철로 주변으로 정해지자 몇 차례 회의 끝에 주거지 안쪽으로 이전해 소음을 줄이기도 했다. 독창성을 살리려는 개별 건물들의 설계공모는 도시의 품격을 높였다. 세계적 건축가인 치퍼필드와 테헤라니 등이 걸작을 내놓으면서 공모마다 응모작이 몰렸다. 55m 높이의 비대칭 마르코폴로 타워와 투명한 재료로 에워싼 유니레버 본사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수한 건축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녹지율 25%와 산책로 10.5㎞ 등 녹색환경은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본부가 있는 도시에 어울리는 자랑거리로 꼽힌다.
1885~1927년 커피 담배 등을 보관하기 위해 함부르크 옛 항만에 붉은 벽돌로 줄지어 지은 창고거리 슈파이셔슈타트
김용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함부르크지사장은 “장기 계획과 집중투자가 성공 비결로 보인다. 하펜시티는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젊은층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구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업·업무·주거단지뿐 아니라 문화공간과 교육기관 등이 두루 갖춰진 공간”이라고 전했다.
함부르크시는 하펜시티가 애초 설정한 목표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2008~2009년 금융 위기로 개발사가 빠져나가는 등 시련도 있었으나 사업의 진행은 대체로 순조로운 편이다. 이미 물류사인 쿤앤나겔(Kuhne & Nagel), 제조사인 유니레버(Unilever), 언론사인 슈피겔(Spiegel) 등이 이전했고, 200여개의 스타트업 디지털 기업이 뒤를 따랐다. 2012년 지하철이 들어오고, 2013년 하펜시티 대학이 개교하면서 주민 수와 일자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시는 사업 일정대로 2022년 대형 크루즈 터미널을 열고, 2025년 높이 235m짜리 엘프 타워를 완공할 계획이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마르코폴로 타워와 유니레버 사옥
함부르크/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자연경관 조화 이룬 ‘보행자 천국’…시드니 항구 명물로
국외-④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달링하버
수변공간을 오롯이 보행자에게만 허용
주정부 “시민에 돌려주자” 내걸고 추진
관광객 몰리며 연간 수익만 8천억원대
컨벤션 지구 지정한 뒤 민자 적극 수용
‘마이스 산업 중심지’ 재도약으로 부흥
달링하버 전경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이곳에서 하버브리지 방향으로 약 3㎞ 남짓 걷다 보면, ‘달링하버((Darling Harbour)’가 나온다. 알파벳 ‘U’자 형태로 형성된 옛 무역항의 낡은 항만시설을 활용해 연간 2700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해양 위락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지난 9월25일 정오쯤, 찾은 달링하버의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 여러 척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넓은 정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변공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평일 낮인데도 해안을 따라 조깅하는 시민과 홀로 도시락을 먹거나 산책하는 직장인들로 분주했다.
시드니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달링하버
바닷물이 닿는 부두에서 불과 20∼30m 떨어진 코클베이 워프(Cockle Bay wharf))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바,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야외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나 차를 즐겼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갈매기떼가 종종 식탁으로 날아들곤 했지만, 이마저도 자연과 공존하는 일상으로 보였다. 잔디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버스킹을 펼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낡은 횟집과 수산물 거래시장으로 채워진 우리나라의 부둣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의류와 먹거리 등이 상점이 밀집한 대규모 쇼핑단지도 있었다. 중국 관광객 웨이장(30대 여성)씨는 “시드니의 물가는 정말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자주 방문하게 된다. 낮과 또 다른 달링하버의 야경, 그 아름다운 풍광에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고 말했다.
옛 부두시설에 들어선 상점가 앞 산책로에서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
목제로 된 접안시설 위에 있던 빈 창고나 냉동공장 등을 개조한 고급 상점이나 식당, 숙박시설, 주택도 눈에 들어왔다. 여러 겹의 녹방지 칠이 돼 있는 옛 철골 시설물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1820년대부터 정박장과 냉동공장, 창고 등이 들어서면서 시드니의 물류중심지로 성장한 달링하버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달링하버는 다른 교통수단의 발전과 주변에 현대식 신항 등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1984년 결국 무역항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됐다.
관광도시 시드니의 이미지를 망치는 흉물로 전락한 이 낡은 항만은 뉴사우스웨일스(NSW·이하 주정부) 주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이에 주정부는 ‘150여년 통제된 달링하버를 시드니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슬로건 아래 ‘달링하버법’을 제정해 항만 재개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할 당링항만청(현 시드니항만연안공사·이하 연안공사)도 만들어 공공건설과 연안 관리 권한까지 넘겨줬다. 연안공사는 기존 항만시설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택해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개발 방향을 설정했다. 달링하버가 뉴사우스웨일즈의 금융·무역·상업중심지구와 연결돼 있지만, 업무용 빌딩 등 고층 건물 위주의 개발을 지양하고 친수공간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이는 주정부가 달링하버 부두에 깔린 철로를 걷어내고, 60만㎡ 규모의 개발용지를 확보해 사업비 부담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드니 달링하버 아쿠아리움 내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펭권마을 보트 체험.
맛·멋·여가 모두 갖춘 ‘관광 명소’로 탈바꿈
프로젝트 추진 4년 만인 1988년 5월 수족관과 해양박물관 등의 일부 시설만 갖추고 공식적으로 달링하버를 개장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컨벤션시설 등이 들어서고, 민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엘지(LG) 아이멕스 영화관을 비롯해 고급 호텔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형 크루즈와 요트, 유람선 등 90여척이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과 계류장을 만들었다. 수상택시 마리나시설도 마련했다. 수변공간에는 세계 3대 수족관 중 하나인 ‘씨라이프’(Sea Life)과 국립해양박물관, 동물원, 쇼핑센터, 전시컨벤션센터도 지었다.
높이 15m, 길이 140m의 거대한 파도 치는 물결 모양을 형상화한 수족관은 단층의 소박한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지하 5층까지 연결돼 5천종 이상의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실내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하며 펭권마을을 관람할 수 있는 체험과 수중터널 상어 관람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수족관 쪽은 설명했다. 국립해양박물관 앞 정박장에는 잠수함과 함정 등도 전시돼 있다.
달링하버 주변에는 뉴사우스웨일즈 내 유일한 카지노(슬롯머신 1500개 규모)를 비롯해 수십개의 고급 호텔도 즐비하다. 국제컨벤션센터(ICC 시드니) 주변에는 1만5000여석의 공연시설과 전시시설을 갖춘 엔터테인먼트센터도 들어서 국제 마이스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2016년 12월 재개장한 국제컨벤션센터는 2017년 한해에만 1000개 이상의 행사를 유치해 100만명이 다녀갔을 정도다. 달링하버에는 호주 관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관광객을 위한 중국식 정원도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200여㎡ 떨어진 곳에는 차이나타운과 중국식 대규모 상점도 있다. 달랑하버 항만 재개발에만 23억8천만 호주달러(1조9천억원 상당)가 투입됐다.
수변공간 보행자 전용구역 설정이 ‘신의 한 수’ 달링하버-바랑가루-하버브리지-서큘라키-오페라하우스-울루물루 수변 14㎞를 잇는 차 없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이 산책로는 연안공사가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황폐해진 연안을 세계 최대 규모의 보행자 전용구역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달링하버 개발의 핵심이었다.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
“자연재해 없는 지리적 환경과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의 역사가 낡은 항만을 친수공간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주정부에서 수변공간을 오롯이 보행자에게만 열어줬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달링하버 끝자락에 있는 파라마공원에서 낚시를 즐기던 시드니 주민 제미 앤더슨(47·jemmy anderson)씨의 말이다. 남태평양 완슨스베이에서 시드니 도심으로 이어지는 파라마타강을 따라 수십개의 만(bay)이 산호 돌기처럼 뻗어있다. 시드니 항구의 이런 구조가 일종의 ’자연적 방파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달링하버 인근에 조성된 차이나타운.
천혜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달링하버 재개발은 주정부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주정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달링하버에는 연간 27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관광객이 이곳에서 소비한 비용이 연간 10억 호주달러(8066억원 상당)에 이른다. 아울러 주정부 관광부문에서 1만2600개의 전업 일자를 일자리를 만들었다. 세계 5대 축제 중 하나인 달링하버 새해불꽃놀이축제, 호주의 날 축제, 재즈축제, 크리스마스 축제, 한인축제 등 다양한 행사 개최로 관광객 유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항만 재개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공식 개장한 지 30년이 넘어 노후하기 시작한 달링하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1988년 7월 운행을 시작한 시드니 모노레일은 시설 노후화로 2013년 6월 말부터 운행을 종료하고, 폐선됐다. 시드니 중심업무지구와 달링하버, 차이나타운을 연결하는 3.6㎞ 구간의 철로는 철거하고, 역사만 남겨뒀다. 3층 규모의 하버사이드 쇼핑센터 역시 시설 노후화와 일부 공실도 발생하는 등 상권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다. 주정부는 2014년부터 달링하버 일대를 컨벤션 지구로 개발 계획을 바꿨다. 다만, 추가 재원 투자 대신 민간 투자 유치로 눈을 돌렸다. 민간 투자를 늘리기 위해 그동안 불허했던 고층 빌딩 건축도 이때부터 허용하기 시작했다.
달링하버의 끝자락 바랑가루에는 60층 높이의 크라운카지노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던 엘지(LG) 아이맥스 영화관은 철거되고, 그 자리엔 25층짜리 유리 외벽의 독특한 호텔이 내년이면 문을 연다. 아파트와 소매 공간이 복합된 ‘달링스퀘어’와 고층 호텔들도 들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달링하버와 하버브리지 사이에 있는 월시베이의 재래부두와 야적장, 물류창고 시설 20만㎡도, 숙박 및 주거, 상업, 문화공간으로 재개발 중이다. 5개의 부두 중 3곳은 이미 개발을 마쳐,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달링하버 야간 풍경.
고층 빌딩과 화려한 조명으로 변해가는 달링하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정부는 그러나 달링하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민간과 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민간의 적절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만 재개발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과도한 재정 투입보다 민간 부문의 투자와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주정부 기획산업환경부(수석장관: 짐 베츠 Jim Betts)의 대변인인은 “공공을 위해 더 좋고 더 기능적인 장소를 만들고, 지역경제와 정부에도 도움되는 투자를 이끄는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링하버 끝자락에 있는 바랑가루에는 60층자리 카지노가 건설 중이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덴마크 잇는 연륙교…젊어진 말뫼, 북유럽 앵커도시로
국외③ 스웨덴 말뫼 서부항 재개발 사업
말뫼시 6개월간 항만재생 끝장토론으로
조선소 터에 친환경 정보·복지 ‘미래도시’
평균 나이 29.5살…‘1인 기업’ 창업 활발
‘재정 균등화 제도’ 덕택 사업 성공 가능
스웨덴 말뫼(왼쪽)와 덴마크 코펜하겐(오른쪽)을 잇는 외레순대교. 2000년 7월1일 외레순대교가 개통되면서 두 도시는 30분 안에 오갈 수 있는 이웃이 됐다. 말뫼시 제공
2002년 9월25일 스웨덴 항구도시인 말뫼시의 서부항(베스트라 함넨)에 있던 코쿰스조선소의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1500t급 크레인이 배에 실려 한국의 현대중공업으로 떠났다. 1987년 코쿰스조선소가 망하면서 10년 이상 매물로 나와 있던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린 것이다. 이 크레인은 현대중공업에서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불렸다. 한국 언론은 이날의 일을 ‘말뫼의 눈물’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달 25일 말뫼를 찾았다. 하지만 스웨덴의 관문인 스톡홀름공항을 거쳐 말뫼로 가지 않고, 바다 건너 이웃나라인 덴마크의 코펜하겐공항을 거쳐서 갔다. 말뫼와 코펜하겐은 외레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2000년 7월1일 두 도시를 연결하는 외레순대교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외레순대교는 길이 7845m의 2층 다리로, 2층은 자동차 전용 4차로이고, 1층은 복선 철로이다. 2층은 자동차 전용 4차로이고, 1층은 복선 철로이다. 두 도시를 오가는 기차는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나머지 시간대는 20분마다 운행한다.
코펜하겐공항역에서 말뫼행 열차가 출발하고 6분이 지나자, 외교부·소방청·통신사의 안내문자가 잇달아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6분 만에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12분이 더 지나자 목적지인 말뫼 중앙역에 도착했다. 코펜하겐공항역에서 말뫼 중앙역까지 열차 일반석 요금은 우리돈 1만6000원에 불과했다.
국경을 넘었지만, 물품 검사 등 출입국 절차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열차 승차권 검사도 하지 않았다. 열차는 승객들로 가득 차서, 절반가량은 붐비는 지하철처럼 좌석 없이 서서 가야 했다. 만약 스톡홀름공항에서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말뫼로 갔다면, 비용은 10배 이상 비싸고, 시간은 4배 이상 걸렸을 것이다.
스웨덴 말뫼 서부항에 있던 코쿰스조선소의 1950년대 전성기 때 모습. 말뫼시 제공
말뫼에 도착해서 옛 조선소 지역을 샅샅이 훑었지만 ‘말뫼의 눈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코쿰스조선소와 협력업체 건물들로 즐비했던 말뫼 서부항은 친환경 새도시로 변했고, 옛 조선소 작업장 건물이 아직 남아 있는 곳에선 중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옛 조선소 도크는 요트 계류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본 고스너 스웨덴 문화교육사 대표는 “말뫼 코쿰스조선소의 크레인이 한국에 팔려갔다는 것은 어른들만 기억할 뿐 젊은이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말뫼는 덴마크 북부와 스웨덴 남부를 아우르는 외레순 지역의 중심도시가 돼 있었다.
1870년 코쿰스조선소가 말뫼 서부항에 문을 열면서 말뫼시는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 두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코쿰스조선소는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설비 축소와 인력 감축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소용없었다. 스웨덴 정부는 1979년 코쿰스조선소를 국유화하고, 인력 30%를 추가 감축했다. 공적자금 349억크로나(4조4천억원)도 투입했다. 하지만 회생에 실패하며 1986년 말 부도를 냈고 1987년 초 결국 사업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
말뫼시의 새로운 일자리에 고급인력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는 말뫼대학 내부 모습. 카페처럼 꾸며놓은 복도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거나 토론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스웨덴 정부는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막기 위해 조선소 자리에 사브 자동차 공장을 유치했다. 그러나 1992년 지엠(GM)이 사브를 인수합병하면서 사브 공장을 폐쇄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말뫼시 일자리의 25%가 사라지면서 말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명이 실직했다. 말뫼시는 재정 파탄 위기로 내몰렸다.
1994년 말뫼시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끝장 토론을 6개월 동안 진행했다. 이 결과 ‘전통 제조업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지식·정보·관광 서비스 등 신흥 산업을 적극 유치·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정책을 결정하고 이끌었던 일마르 레팔루 전 말뫼시장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잘하고 있구나’라는 믿음과 ‘이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말뫼시는 1996년 조선소가 있던 서부항 30만㎡ 터에 친환경 정보·복지 ‘미래도시’ 건설에 나섰고 2001년 완공과 동시에 이곳에서 유럽주택박람회를 열어 유럽 전체를 상대로 분양했다. 2002년엔 코쿰스조선소 터 전부를 매입해 주거·업무·상업·교육 기능을 모두 갖춘 친환경 새도시 확장에 나섰다. 서부항 신도시는 지역 내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에너지 자급도시로 건설됐다.
2000년 개통한 외레순대교는 말뫼 발전을 가속시킨 계기였다. 지난해 외레순대교 이용자는 하루 평균 1만4500명으로 93%가 출퇴근 직장인이었다. 말뫼와 코펜하겐 사이에 2030년 해저터널을 뚫고 지하철까지 개통하면, 두 도시는 15분 거리로 단축된다. 2005년엔 서부항 새도시의 상징물로 터닝 토르소를 세웠다. 높이 190m 54층짜리 아파트로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시계방향으로 90도 비틀어진 특이한 형태로 서부항 새도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일부 남아 있는 옛 코쿰스조선소 공장 모습. 말뫼시 서부항 새도시는 2030년 완공된다. 최상원 기자
새도시는 2030년 완공 예정인데, 이 지역 인구는 이미 2만명을 넘었다. 또 최근 10년 동안 말뫼 전체에 2만6천여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이 가운데 2만여개가 서부항 새도시에서 생겨났다. 이들 중 생산업 종사자는 7%에 불과하다. 전체 일자리의 42%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1인 기업이다.
말뫼시는 새로운 일자리에 고급인력을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1998년 7월1일 말뫼대학을 열었다. 또 2002년부터 예비사업가들의 기술개발과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인큐베이터인 밍크(Minc)와 함께 미디어 이볼루션 시티, 메데온 사이언스 파크 등을 잇따라 열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말뫼시 인구는 5만명가량 늘어서 올해 7월31일 현재 34만1999명을 기록했다. 조선업 호황기보다 8만명 이상 많은 것이다.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이대는 20~30대와 이들이 낳는 5살 이하 아이들이다. 덕택에 말뫼시는 평균나이 29.5살의 젊은 도시가 됐다.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말뫼 서부항 새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안드레아스 쇤스트룀 말뫼시 부시장은 “조선소 크레인은 더이상 말뫼의 상징이 아니다. 이제 말뫼는 터닝 토르소와 외레순대교라는 새로운 상징을 갖췄다. 말뫼는 매우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 전체의 앵커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웨덴 말뫼의 새로운 상징이 된 터닝 토르소. 최상원 기자
파산 위기에까지 몰렸던 말뫼시가 대규모 재개발사업을 과감히 벌여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눈여겨볼 것은 ‘도시 재정 균등화 제도’다. 이 제도는 지방세 수입이 많은 도시가 지방세 수입이 적은 도시를 지원해 재정 균등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잘사는 도시의 지원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중앙정부가 지원한다. 잘사는 도시의 돈으로 못사는 도시를 돕는 것이라서 ‘로빈 후드 제도’라고도 부른다. 세금 수입은 도시 규모와 성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도시별로 주민들이 누리는 혜택까지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말뫼시는 이 보조금을 재개발사업에 투자했다. 말뫼시는 아직도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지난해엔 50억크로나(약 6158억원)를 받았다. 이는 지난해 말뫼시 총수입의 20%를 넘는 액수다. 재개발을 통해 말뫼시가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면서, 최근에는 보조금 받는 것을 중단할 때가 됐다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
로타 한손 말뫼시 홍보담당관은 “도시 재정 균등화 제도는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살기 위한 것이다. 만약 말뫼시가 이 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아 여전히 어려운 상태라면, 말뫼는 물론 국가 전체가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말뫼시가 아직은 이 제도의 도움을 받지만, 머지않아 다른 도시를 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뫼/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풍산 특혜’ 해법 못 찾는 국방부…센텀2 개발 ‘고-스톱’ 기로
# 답변 제출 못 한 국방부- 풍산부지 땅값 치솟아 특혜 논란- 감사원, 이전·환수방안 요구에도 - 국방부 의견서 제출 기한 어겨# 시 연내 GB해제 가능하나- 산단 조성 지지부진하면서- 입주 희망 로봇 기업 이탈 조짐 - 군 합의돼야 도시계획위 속개- 시 “선 GB해제, 후 이전 기대”부산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급물살을 타느냐, 좌초 위기에 빠지냐’의 중대한 분수령에 서 있다. 국방부가 ‘사업 예정지에 포함된 풍산의 구체적인 이전 계획과 토지 시세 차익 환수 방안을 마련하라’는 감사원의 지적(국제신문 지난 9월 23일 자 2면 보도) 에 대한 의견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내 산단 내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던 부산시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2일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이달 초까지 방위사업체인 풍산 이전 계획과 부지 환수 방안 등의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감사원에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최근 감사원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에는 기간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의견서 제출 기한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감사원은 지난 9월 국방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981년 국방부가 풍산과 맺은 국유재산 매매계약서는 ‘군수산업 목적을 폐지했을 때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며 “풍산이 애초 목적(군수산업)대로 땅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국방부가 매매계약을 해제하지 않은 채 해당 땅을 제3자에게 매각한다면 특혜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시는 2015년 6월 풍산과 센텀2지구 개발사업 추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풍산부지 88만여 ㎡는 사업시행자인 부산도시공사가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풍산 부지 매각가격은 4895억 원으로 추산된다. 1981년 국방부가 풍산에 토지를 매각한 금액(192억여 원)의 25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 때문에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는 특혜 개발이라고 주장한다.국방부가 특혜 개발 논란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시의 센텀2지구 개발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단지 내 그린벨트 해제 안건의 심의가 보류된 뒤 1년째 속개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 감사라는 악재까지 겹쳐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시와 부산도시공사는 “풍산은 대체 부지로 이전한 뒤에도 군수산업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감사원의 요구 사항은 충족할 것”이라며 “국방부가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그린벨트 해제 뒤 시의 산단 수립 계획이 추진될 때 풍산의 이전을 검토하자’는 내용의 의견서를 감사원에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시와 풍산 측은 지난달 국방부를 찾아 ‘선 그린벨트 해제 후 이전 계획’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국방부가 이런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면 연내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속개해 센텀2지구의 그린벨트 해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의 기대와는 달리 국방부가 풍산 측에 대체 부지를 포함한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먼저 요구하거나 의견서 제출을 무기한 지연할 경우, 사실상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정보통신기술, 융합부품소재, 영상 콘텐츠 , 첨단신해양산업 등을 유치해 부산의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미래 첨단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의 청사진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벌써 센텀2지구에 입주를 희망한 부산로봇조합 소속 기업의 대거 이탈 조짐도 나타난다. 로봇조합 측은 “30여 곳의 관련 기업 중 8개사가 대체 부지를 찾고 있다”며 “풍산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지부터 선개발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봇조합은 선개발이 진행되면 인근 근로자와 지역민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윤일 시 일자리경제실장은 “국방부와 지속해서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인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방부 의견서가 제출되는 대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속개해 2021년 센텀2지구 개발사업 착공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동아대 오세경(도시계획공학) 교수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센텀2지구 개발사업 안건 자체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되기 쉽지 않다”며 “국방부와 시, 부산도시공사, 풍산 등 4자가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장호정 기자 lighthouse@kookje.co.kr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 일부 항목 날조 정황 포착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 판단
- 소음·진동 등 3개 항목 부실 의혹
- 평가 진행한 용역업체는 부인
- 환경부, 내달 한 번 더 검토키로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전문위원회를 열어 거짓·부실 작성 의혹을 받은 대저대교(식만~사상 도로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결과 일부 항목을 거짓으로 작성한 정황을 포착했다. 낙동강환경청은 “전문위원회가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결과 소음과 진동, 대기질 등 3개 항목에 거짓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12일 밝혔다. 낙동강환경유역청은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한 용역업체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 2차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빠르면 다음 달 중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낙동강환경청은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가 거짓·부실 작성됐다는 의혹을 환경단체가 제기하자 지난 7일 강서구청에서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열었다. 환경단체는 8개 대항목, 44개 소항목에서 거짓·부실 작성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전문위원회는 대부분 문제가 없고, 단 3개 소항목만 거짓 작성된 정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결과에 환경단체는 “거짓·부실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던 항목 대부분이 문제없음으로 결론 났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중록 낙동강하구지키기 전국시민행동 위원장은 “가장 큰 갈등 사안이자 조작한 게 분명한 생태계 조사 부분을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8월부터 경찰이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수사를 시작했다가 낙동강환경청이 검토한 결과를 보겠다며 일시 중단했는데 경찰에 수사 재개를 강력하게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전문위원회 2차 검토에서 3개 항목이 거짓 작성됐다는 최종 결론이 나오면 낙동강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열어 해당 사안을 재검토한다. 반대로 문제없음 결론이 나면 부산시는 대저대교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 변경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낙동강환경청은 이번 전문위원회 검토 결과를 곧장 공개하지 않아 ‘부산시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이에 대해 낙동강환경청 관계자는 “전문위 검토가 이뤄진 날 청장 부재로 결재가 미뤄져 공개하지 못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대저대교는 강서구 식만동과 사상구 삼락동을 잇는 8.24㎞ 길이의 도로다. 지난 7월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했는데 환경단체가 거짓·부실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업 추진이 늦춰졌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환경을 입는다, 지속가능 패션 ‘나우’
나우는 ‘2019 가을·겨울 시즌’을 맞아 폐기된 페트병 83개로 만든 플리스 재킷과 조끼, 자투리 천을 재활용해 만든 ‘돗자리인(in)가방’, 물과 염료 사용량을 줄인 염색 기법으로 만든 ‘오스틴 캡’ 등을 선보였다. 나우 제공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속가능’에도 관심이 높다. 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지속가능 패션’ ‘에코 패션’ ‘친환경 패션’ 등을 내세워 환경문제에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패션의 블루오션을 열어가고 있다. 국내 브랜드로는 2012년 론칭한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3년차 재고를 재료로 다시 활용하면서 자원순환 개념을 도입한 첫 브랜드다. 최근 베를린, 런던, 파리 등에 잇달아 팝업스토어를 열어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스타일리시하게 코디할 수 있을까? 착한 옷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스타일리시한 것과 거리가 멀고 접근성이 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우’(NAU)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나우는 지속가능한 옷을 기치로 내걸고 2007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론칭한 브랜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민 없이 입을 수 있고 1년 뒤, 5년과 50년 뒤에도 멋있어 보이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는 점이 나우만의 자랑이어서 스타일리시한 코디가 가능하다. 특히 리사이클(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미니멀한 기능주의 디자인이어서 환경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소비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다.
포틀랜드 감성 고스란히 녹여
나우의 지속가능 콘셉트는 어디에서 왔을까.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친화적인 삶과 예술적 낭만이 가득한 도시로 유명하다.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과 예술적 감성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힙스터의 고향으로 불린다. 최근 미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혔다. 나우는 자연과 더불어 여유롭고 소박한 일상을 즐기며 사는 이들을 타깃으로, 포틀랜드인의 감각과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나우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폴리네시안 언어로 ‘웰컴! 컴인’(Welcome! Come in)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동물, 인종과 종교,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와 함께한다는 뜻을 지녔다. 출퇴근복은 물론 도시인의 일반복으로도 손색없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나, 기능성도 갖춰 바이크나 트레킹 등 도심 속 다양한 활동을 할 때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최적화된 제품이 강점이다. 이처럼 나우는 패션성과 기능성에 자연주의적 철학을 가미한 자연친화적 생활복을 추구한다. 북미, 유럽, 일본에서는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창립자인 마크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삶이 다양한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수 있는 실용성은 기본이고, 제대로 옳은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디자인 역시 지속가능하면서도 세월이 흘러도 세련된 옷을 만들려고 한다.”
환경보호 소재 사용과 개발
나우는 파타고니아, 로우알파인 등 10여 년간 다양한 아웃도어 의류업계 경험을 한 총괄디렉터 마크 갤브레이스를 중심으로 (친환경 소재) 제품개발 디렉터 지미 베인브리지, 나이키와 랄프로렌에서 경험을 쌓은 디자인 디렉터 피터 캘런이 브랜드 론칭 때부터 현재까지 의기투합해 세련된 나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환경보호 소재의 사용과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유기농으로 재배된 면과 페트병에서 추출한 재생 폴리에스터 등 친환경 소재만을 사용한다. 살충제·제초제·성장촉진제 등 화학물질의 제한적 사용, 농장의 아동노동 금지, 공정무역 등 환경과 농가 모두 지속가능하는 생산방식을 고려한다. 양모 제품 역시 뮬징(구더기가 생기는 걸 방지하려고 양의 엉덩이 부분을 강제로 도려내는 것)하지 않은 울 원사를 써서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염색은 식물에서 채취한 염료와 최소한의 물을 쓰는 방식을 활용해 염색 폐수와 유독성 화학물로 일어나는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지미 베인브리지는 “나우의 식물성 염료 염색은 기존 화학염료 염색과 비교해 물을 90%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70% 낮추며, 염색 과정과 에너지를 줄여 생산비용을 50% 절약한다”고 밝혔다.
나우는 ‘지속가능한 옷’을 기치로 내걸고 2007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론칭했다. 어느 상황에서든 두루 입을 수 있고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나우 제공
2016년 국내 진출 20개 매장
국내에는 2016년 첫선을 보였다.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신세계백화점 등에 입점했고 온라인 편집숍을 포함해 2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 소재 사용에다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색상, 여기에 방수와 발수 등 아웃도어 기능까지 갖춰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옷뿐만이 아니라 가방, 모자, 텀블러 등도 인기다. 특히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는 폐기된 페트병 83개로 만든 플리스 재킷과 조끼, 쓰고 남은 원단을 재활용해 만든 ‘돗자리인(in)가방’, 물과 염료 사용량을 줄인 ‘가먼트다잉’ 염색 기법을 적용한 ‘오스틴 캡’ 등이 주목받고 있다.
나우는 여러 의미 있는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차별이나 편견 없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자'는 문화적 다양성 메시지를 담은 ‘위 웰컴’(We Welcome) 캠페인과 재활용 가치를 알리고 실천을 유도하는 ‘#리사이클미’(#Recycle Me)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방향성을 탐구하는 지역 다큐멘터리잡지 <나우매거진>도 해마다 펴내고 있다. 지금까지 포틀랜드(1호), 타이베이(2호), 베를린(3호) 편을 출간했고, 최근 4호 텔아비브 편을 내놓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슈퍼 피해 허리케인 100년 전에 비해 3배 많아져
덴마크연구팀 1900~2018년 허리케인 분석
재산 손실을 피해 면적으로 환산해 비교해
대형 피해 허리케인 빈도 330% 증가 밝혀
피해 규모가 큰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가 100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덴마크 연구팀이 대형 피해를 발생시키는 슈퍼 허리케인이 오늘날 100년 전에 비해 3배 더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리케인 피해를 새로운 방법으로 분석한 연구팀은 허리케인 발생 빈도의 증가가 `명료'하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의 허리케인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려는 이전의 시도들은 종종 논쟁적인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대형 열대성 저기압에 의한 피해의 증가는 지구 온난화와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열대성 저기압의 하나인 허리케인은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의 하나로 꼽힌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한 피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1250억달러(145조원)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 액수로 보면 2005년 카트리나가 역대 1위이지만, 연구팀의 피해 면적 환산 방식으로 전환한 피해 규모로는 2017년 하비가 1위이다. <PNAS> 제공
과학자들이 부닥친 문제는 서로 다른 지역들에서 벌어진 태풍 피해를 어떻게 비교할 것인지였다. 지난 세기 재정적 피해의 증가가 허리케인의 경로상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사실 때문인지 등.
선행 연구는 피해의 증가가 부와 관련돼 있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허리케인 발생 빈도와 연관돼 있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팀은 경제적 손실 대신에 보험업계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18년까지 240개 이상의 허리케인에 의해 파괴된 땅의 면적을 분석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2017년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어마를 조사했다. 허리케인 상륙지점 인근 1만제곱킬로미터 안에 110만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인당 재산은 19만4천달러로, 1만제곱킬로미터 안의 총 재산은 2150억달러(250조원)로 추계됐다.
면적 환산 피해 규모로 1900~2018년 허리케인들을 나열해보면 최근 발생 빈도가 3배로 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PNAS> 제공
허리케인이 발생시킨 피해액 500억달러(58조원)는 이 지역 전 재산의 23%에 해당한다. 역으로 1만제곱킬로미터의 23%인 2300제곱킬로미터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의 허리케인 피해에 대해 유사한 방식으로 추산함으로써 연구팀은 피해에 관한 좀더 사실적인 비교를 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대형 피해를 발생시키는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가 100년 사이에 3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원인이 기온 상승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우리 분석 자료는 새로운 피해 증가 경향이 지구 온난화에 의한 극한 폭풍에서 감지되는 변화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분석 방법이 견고해 커지는 허리케인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난 9월 허리케인 도리안이 플로리다를 강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구를 이끈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아슬라크 그린쉬테드는 "발생 빈도를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은 아주 강력하다"며 "허리케인 발생 빈도 증가는 연구팀 자료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들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1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환경평가 날조 정황' 서부산 대저대교 연내 착공 무산
부산시의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서에 일부 날조 정황이 확인(〈부산일보〉 11월 12일 자 2면 등 보도)되면서 시가 서부산 교통 완화 정책으로 내세운 대저대교 연내 착공 계획이 무산됐다. 시는 10여 년 전부터 일대 정체 현상, 교통난 등 해결을 위해 4000억 원 규모의 대저대교(부산 강서구 식만동(식만JCT)~사상구 삼락동(사상공단)) 건설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평가서 날조 논란으로 기존 착공 계획이 틀어져 시 교통 정책에도 큰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환경평가서 ‘날조 정황’ 확인
환경질 등 추가 검증 절차 생겨
건설 계획 전면 재조정 불가피
부산시, 체계적 검토 절차 없이
업체 조사 내용 ‘문제없다’ 결론
13일 부산시는 “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으로 작성됐다는 논란으로 추가 검증 절차가 생겨 대저대교 연내 착공 계획이 좌초됐다. 대저대교 건설 계획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환경영향평가는 착공에 앞서 해당 공사가 인근 환경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하는 절차다.
환경영향평가 절차 협의 기관인 낙동강유역환경청(유역청)에 따르면 시가 제출한 평가서 44개 항목 중 환경질(대기, 수질, 지하수질, 소음·진동 등) 분야의 3개 항목에서 날조 정황이 확인됐다. 이는 지난 7일 열렸던 환경부 ‘거짓·부실 검토전문위원회(검토전문위)’의 검증 과정에서 드러났다. 유역청은 날조 정황의 최종 판단을 위해 전문검토위를 재구성, 3개 항목에 대한 진위를 가린 후 환경영향평가협의회로 사안을 넘길 계획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평가서 내용 중 단 하나의 항목이라도 ‘거짓·부실’ 사실이 드러나면 시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는 효력을 잃게 돼 재조사가 불가피하다.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등 전문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이 날조 정황을 짚은 만큼 추후 절차에서도 1차 검증 결과를 따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저대교는 강서구 식만동과 사상구 삼락동을 연결하는 다리로, 사업 추진 8년 만에 건설이 가시화 된 것이다.부산일보DB
환경단체 측의 의혹 제기로 올 7월 평가서 날조 논란이 뒤늦게 불거졌지만, 시는 올 2월 유역청에 평가서를 제출하기 이전 체계적인 검토 절차도 없이 ‘문제없다’는 결론을 냈던 것으로 확인돼 안이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는 지난해 초 6억 원가량을 투입해 평가대행업체 두 곳과 계약을 맺었다. 이 두 업체는 조사 항목을 환경질과 생태계 두 분야로 나눠 다시 두 곳의 연구소에 측정 재대행 하청을 맡겼다.
시는 업체가 조사한 내용을 파악·검토해야 했음에도 올 2월 유역청에 평가서를 제출하기 이전까지도 용역 업체들로부터 보고회 등 단 한 차례의 정식 결과 보고도 받지 않았다. 평가서 내용만 약 1400쪽에 달하는 등 자료가 방대하고 시가 용역 업체 조사 과정에 개입을 하면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상 시는 평가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시 관계자는 “용역 업체의 조사 과정 중 내용을 철저히 확인 못 했던 점은 인정한다”며 “자료 검토와 자문단 논의를 거치긴 했으나, 시는 당시 평가서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날조 논란으로 착공 계획이 연기되면서 시는 보상비 증액 등 피해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정확한 액수로 추산되고 있지는 않지만, 착공이 늦어지면서 보상비 등 건설 업체와의 계약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는 대저대교가 건설되면 2025년 기준 일평균 차량 통행량이 6만 1793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서부산 일대 교통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저대교 건설이 꼽히지만, 날조 논란으로 건설 계획이 전면 조정될 예정이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어린 물고기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 ‘죽음의 띠’
잔잔한 띠 모양 수역은 물고기 양육장
먹이와 함께 주변 120배 플라스틱 모여
갓 태어난 물고기가 몰려 사는 해안의 띠 모양 수역에는 먹이인 플랑크톤과 함께 미세플라스틱도 몰려든다. 전 세계 어업에 경종을 울리는 현상이다. 데이비드 리트쉬바거 제공.
알에서 깨어난 어린 물고기들이 몰리는 띠 모양의 잔잔한 수역이 연안에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먹이가 많은 이곳엔 미세플라스틱도 주변보다 100배 이상 밀집해 어린 물고기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미슨 고브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어류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하와이 서쪽 연안 1000㎢ 수역에서 플랑크톤 채집과 원격탐사 기술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13일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대부분의 바닷물고기 알은 바다 표면에서 깨어나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자란 뒤 자신의 서식지로 이동한다. 연구자들은 매우 취약하고 중요한 치어의 첫 양육장이 전 세계 해안에 띠 모양으로 분포하는 잔잔한 수역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표층 슬릭(slick)’이라 불리는 이 수역은 기름 오염 때 기다란 기름띠(유막) 형태로 드러나는 곳이다.
띠 모양의 잔잔한 수역에 플랑크톤(작은 점)과 미세플라스틱(푸른색 물체), 어린 물고기가 모이는 모습. 제미슨 고브 외 (2019) PNAS 제공.
주 저자인 고브 박사는 “표층 슬릭은 해저지형이 해안 가까이에서 가팔라지면서 표층 아래에서 내부파도가 형성하는 수렴대”라며 “이곳에 플랑크톤이 모이기 때문에 어린 물고기의 중요한 양육장이 된다”고 하와이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조사 결과 띠 수역에는 주변 바다보다 식물플랑크톤 밀도가 1.7배, 동물플랑크톤은 3.7배, 치어는 8.1배 높았다. 연구에 참여한 조너선 휘트니 미 해양대기국 해양생태학자는 “여기 몰리는 치어는 나중에 얕은 산호초, 먼바다, 그리고 심해에 서식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어종”이라며 “잔잔한 띠 수역은 먹이가 풍족한 바다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어서 어린 고기의 발달과 생존에 핵심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날치, 황새치 등 대부분의 바닷물고기 치어가 표층 슬릭에 몰려든다. 조너선 휘트니, 미 해양대기국 제공.
문제는 먹이와 어린 물고기가 몰리는 이 수역에 미세플라스틱도 모여든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이 수역에서는 100∼200m 떨어진 바다 표면에서보다 플라스틱이 126배나 많았다. 이는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해역’(▶관련 기사: 태평양 '플라스틱 바다'와 우리 삶은 연결돼 있다)에서보다 플라스틱 농도가 8배 높은 수치였고, 실제로 플라스틱의 수는 물고기보다 7배나 많았다.
플라스틱은 대부분 1㎜ 미만 크기였는데, 이는 어린 물고기가 선호하는 먹이 크기와 일치했다. 실제로 10% 가까운 물고기의 뱃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주변 바다보다 2.3배 큰 비율이다.
고브 박사는 “어린 물고기는 생태계가 기능하는 토대이고 장차 어른 고기 집단이 어떻게 될지를 가름한다. 치어가 생활사 가운데 가장 취약하고 영양분이 생존에 꼭 필요할 때 독성물질이 들어있는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그것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생물다양성과 어업 생산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남획에 더해 치어의 플라스틱 섭취를 위협 목록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생태계 규모에서 중요한 치어 양육장”으로 밝혀진 해안의 잔잔한 띠 수역은 하와이 서부 연안에서 면적으로는 8.3%를 차지했지만, 치어의 42.3%, 플라스틱의 91.8%가 몰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amison M. Gove et al, Prey-size plastics are invading larval fish nurseries,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907496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대형 은행나무를 찾은 시민들이 가을 끝자락을 만끽하고 있다.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는 높이 34.5m, 최대 둘레 14.5m에 이르며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가량 넓게 퍼져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돼 있다. 연합뉴스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식재된 은행나무 세그루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끝없는 전쟁'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인한 피해
2013년 1차방제 54만6000그루를 시작으로 2차 방제 51만4000그루, 3차 48만5000그루, 4차 28만9000그루, 5차 23만3000그루, 6차 14만3000그루 등 7년간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해 제거한 나무는 220여만 그루에 달한다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말라리아보다 무서운 가난…‘모기장’으로 물고기 잡는 아프리카
“가볍고 질기고 공짜”…세계 30개 최빈국서 새끼 고기까지 씨 말려
해변의 해초밭에서 모기장의 양 끝을 잡고 끌어 새끼 물고기를 잡는 모잠비크 팔마 만 주민들. 벤야민 존스 등 (2019) ‘암비오’ 제공.
비정부기구 등에서 거의 무료로 모기장을 대량 보급하자 최빈국 주민들은 새로운 ‘자원’을 원래 용도 말고도 농작물 덮개나 결혼식 예복 재료로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는 새 용도는 그물이었다. 가볍고, 질기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모기장으로 누구나 비싼 어구인 그물이나 카누 없이도 다음 끼니의 반찬거리나 푼돈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해마다 50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보급량이 연간 1억5000만개에 이르는 모기장은, 이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최빈국을 중심으로 세계 30여 나라에서 손톱만 한 물고기 새끼까지 씨를 말리는 어구로 쓰이고 있다.
이런 행태가 말라리아로 인한 건강 위협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가난한 주민들의 먹거리 기반인 바다 생태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벤야민 존스 스웨덴 스톡홀름대 생태학자 등은 과학저널 ‘암비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동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벌어지는 모기장을 이용한 어획 실태를 분석했다.
모기장 그물에 걸린 새끼 물고기. 한 번 그물질에 길이 2㎝의 치어 수백 마리가 걸린다. 벤야민 존스 제공.
모잠비크 북부의 팔마 만에서 연구자들이 현지조사했더니, 모기장을 이용한 어획에는 2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여성과 아이들이 하는 소규모 후릿그물로, 해초가 깔린 얕은 해안에서 그물 양 끝을 끌어 걸린 작은 물고기를 잡는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규모가 큰 쓰레그물(저인망)로 기존 그물 가운데 촘촘한 모기장을 설치해 2명 이상이 걸어서 또는 카누를 타고 해초 초원을 끌어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문제는 모기장의 그물코가 3㎜ 이하여서 새끼 물고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는다는 데 있다. 존스 박사는 “모기장을 그물로 쓰는 것은 가뜩이나 남획이 벌어지는 연안 생태계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주민들이 모기장으로 잡아내는 물고기의 절반 이상은 어린 고기였다. 모기장으로는 아주 작은 고기까지 걸리기 때문에 모기장을 한 번 끌 때마다 잡는 물고기의 양은 전통어구를 이용해 하루 잡는 양(하루 2.4㎏)의 절반 이상인 1.4㎏이었다. 한 번 그물질에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걸리는데, 대부분 길이 2㎝ 미만이었다.
그물눈이 촘촘한 모기장을 덧대 만든 쓰레그물을 해초 초원 위로 끌어 작은 물고기를 잡는 모잠비크 어민들. 벤야민 존스 등 (2019) ‘암비오’ 제공.
이처럼 어린 물고기를 잡아내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없애는 셈이다. 잡힌 어린 고기의 4분의 3은 어른 고기로 자란다면 상업적으로 중요한 종이었다. 공저자인 리처드 운스워스 영국 스완지대 박사는 “모기장 어획은 결국 식량 부족, 가난 심화, 그리고 생태계 기능 상실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팔마 만의 물고기는 “(모기장 어구를 이용한) 남획으로 붕괴 직전”이라고 연구자들은 경고했다. 모기장 어획에서 잡힌 어종은 39종이었지만 이곳에서 100㎞ 떨어진 보호구역 해초 숲에서는 249종이 발견됐다.
얕은 바다에 해초가 무성하게 자라 ‘수중초원’을 이룬 곳은 생물 다양성과 생산력이 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어린 물고기의 양육장인 해초림은 모기장을 이용한 바닥 쓸기 어획에 적합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모기장 그물에 걸린 새끼 독가시치. 벤야민 존스 제공.
그렇다면 어민들이 모기장을 그물로 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연구자들은 “가난한 어민에게 규제 강화는 아무런 실효가 없을 것”이라며 “왜 모기장으로 고기를 잡게 됐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해양과학자, 사회과학자, 보건 전문가 그리고 지역의 어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상향식 접근방법이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규제와 함께 지원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njamin L. Jones, Richard K. F. Unsworth, The perverse fisheries consequences of mosquito net malaria prophylaxis in East Africa, Ambio, https://doi.org/10.1007/s13280-019-0128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에너지전환, 물에서 찾는다│② 수열에너지] 안정적이고 에너지절감 효과 '톡톡'
하천수도 재생에너지로 인정 … "정부 주도로 초기 시장 키워야"
녹색과 녹색의 갈등. 에너지전환에 대한 사회적 갈망은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환경을 생각한 육상태양광과 풍력발전이 도리어 산림훼손을 일으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새로운 대안으로 '물'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합물관리'로 수량과 수질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됨에 따라 에너지전환과 환경보존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넓어졌다
"롯데월드타워는 수열, 지열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수열에너지가 상대적으로 타 에너지원보다 열효율이 안정적이고 유지관리비 절감 효과가 뛰어난 편입니다. 종전에 있던 상수도관을 활용해 설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건설비 부담도 덜었죠."
6일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와 롯데물산 관계자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지하에 있는 수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6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만난 롯데물산 관계자의 말이다. 지상 123층, 지하 6층 규모의 롯데월드타워는 전체 냉방부하의 10%를 수열에너지로 충당한다. 수열원 히트펌프를 사용함으로써 동일 용량의 흡수식 냉온수기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약 36% 줄였다는 게 롯데물산 측의 설명이다. 이산화탄소(CO₂) 등 온실가스 배출량도 38% 정도 감축했다.
수열에너지란 물의 열을 히트펌프를 사용해 변환시켜 얻는 에너지를 말한다. 물의 온도에너지를 직접 또는 열펌프로 회수해 건물 냉난방과 급탕에 이용한다. 물의 온도에너지를 이용해 냉방시 건물 내의 열을 수자원으로 방출하고 난방시에는 수자원으로부터 열을 취득해 실내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수열에너지 범위 확대, 시장 기대감 커져 = 최근 수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 1일부터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상 수열에너지 범위를 종전 해수에서 하천수까지 확대함에 따라 시장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 지원이나 세제 지원 등 정부 지원 대상이 되면 건축물을 중심으로 수열에너지 설치 확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어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집단에너지사업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집단에너지 공급대상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로서 수열을 사용할 경우 열 생산 시설 설치 및 변경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며 "아직 공단 등 집행 기관에서 세부 규정을 변경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예전보다 보급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인 공공건물을 신축, 증축 또는 개축할 때 사용 예상 에너지양의 30%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또한 2020년부터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수열에너지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고단열, 고기밀 등의 각종 패시브적 기술과 고효율 설비 기술을 적용해 건축물의 에너지소요량을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통해 열 또는 전기에너지를 생산 공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소득세나 법인세를 공제해 주는 등 혜택도 다양하다.
◆캐나다 등에서 활성화, 유지관리비도 절약 = 사실 하천수를 활용한 수열에너지는 캐나다 일본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는 활성화한지 오래다. 캐나다 엔웨이브(Enwave)사의 '딥 레이크 워터 쿨링 시스템(Deep Lake Water Cooling System)'은 연평균 4℃의 온타리오 호수 심층 원수를 정수장에서 정수처리 열에너지로 냉방에 활용한 뒤 식수로 공급하고 있다. 약 150개 빌딩이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의 에너지인 7만5000RT를 생산한다. 종전 냉방시설에 비해 전력사용량을 최대 90% 줄였다는 게 강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수자원공사가 롯데물산과 공동으로 롯데월드타워에 수도권 광역상수도를 활용한 수열에너지 공급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수열원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이 시설의 경우 냉각탑 6기를 없애 면적 절감은 물론 약 1억9000만원의 유지관리비를 줄였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미 2006년부터 주안댐을 시작으로 전국 13개 사업장에 2.4MW의 수온 차를 활용한 냉난방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도심에서 얻는 비고갈성 에너지원 = 수열에너지는 환경적으로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온실가스 저감 효과와 더불어 종전 건물 옥상 냉각탑을 열교환기로 대체함으로써 도심 열섬현상도 줄일 수 있다. 소음방지 효과는 덤이다. 수열에너지는 냉난방 수요가 많은 대도시 인근 지역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비고갈성 에너지자원인 셈이다. 특히 광역상수도 원수를 활용한 수열에너지는 사회기반시설을 활용하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대규모 수열에너지 개발이 가능하다.
최근 환경부도 수열에너지 사업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열산업 육성방안 연구' 용역을 12월까지 진행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국가시범도시인 부산에코델타시티 스마트시티와 강원도 수열에너지 클러스터에 수열에너지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종전 광역상수도 인프라를 활용한 수열에너지 공급을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윤 린 한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수열에너지의 경우 규모가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 처음부터 주도하기는 힘들다"며 "사업 초기에는 정부 주도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물이 하나의 열원으로 사용되는 만큼 '물 값'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도 필요하다"며 "스마트시티, 에코타운 등 도시 건설 단계부터 수열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방음벽에 충돌한 멧새, 움직이지 못하다가…”
연 800만마리 희생·격자무늬 시트지로 예방 가능
‘네이처링’ 앱 통해 누구나 제보 가능…데이터 축적 동참을
지난 9일 경기 수원 영통과 동탄2지구에서 투명 방음벽 주변을 살펴보던 이들은 연달아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방음벽을 인식하지 못하고 날다가 부딪쳐 추락한 후 죽음에 이른 새들의 사체와 새들이 방음벽에 부딪친 흔적들이 숙련된 조사자가 아니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이 시민들과 함께 실시한 이날 조사에 참여한 시민 허수안씨는 “조사 중 유리창에 충돌한 충격으로 움직이지 못하던 노랑턱멧새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며 “많은 새들이 이렇게 죽어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경기 수원 영통과 동탄2지구에서 실시된 유리창 충돌 조류 조사에 참가한 국립생태원 연구진과 시민들이 이날 확인해 수거한 조류 폐사체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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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이 이날 전국의 많은 투명 방음벽 중에서도 이 지역을 선정해 시민들과 함께 조사에 나선 것은 해당 지역 방음벽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수의 조류 폐사체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관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인 ‘네이처링’에도 이 지역 관찰 정보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이날 조사에서는 모두 78마리의 조류 폐사체가 확인됐다. 약 5시간 동안 20여명이 3개 조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였다. 가장 많은 사체가 발견된 종은 멧비둘기로 11건, 박새가 4건, 진박새와 딱새, 호랑지빠귀가 각각 3건 등이었다. 이 밖에 오색딱따구리와 노랑턱멧새 등이 각각 2마리, 쑥새와 물까치 등의 사체가 각각 1마리씩 확인됐다. 조사에는 개인 참가자 7명과 중앙대 학생, 화성환경운동연합, 네이처링 관계자, 조류 충돌방지 필름을 만드는 업체인 한국썬팅필름협동조합 등이 동참했다.
지난 9일 경기 수원 영통, 동탄2지구에서 국립생태원 연구진과 시민들이 확인한 조류 폐사체들. 유리창, 투명 방음벽 등에 충돌해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부터 박새, 흰배멧새, 멋쟁이새.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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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사 결과를 포함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수집한 조류 폐사 정보는 네이처링의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지난해 7월 네이처링에 개설한 이 카테고리에는 14일 현재 모두 546명이 관찰한 6433건의 조류 충돌 관찰 기록이 올라와 있다. 폐사한 조류를 관찰한 사람은 누구나 이 앱을 통해 조류 폐사 사진과 위치 정보 등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다. 소수의 연구자들만으로는 모으기 힘든 전국의 조류 폐사 데이터가 시민과학을 통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국내에서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폐사하는 조류가 연간 80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경우 연간 3억5000만마리에서 9억9000만마리, 캐나다에서는 연간 2500만마리가 충돌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모솔새, 박새(세번째 사진), 오색딱따구리.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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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조류 유리창 충돌의 심각성이 인식되고, 충돌방지용 필름이나 시트지 등을 유리창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돌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새들의 유리창 충돌을 줄이기 위한 활동에 동참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학생들은 조류 충돌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던 유리창에 격자무늬 시트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사고 예방활동에 동참했다. 이 학교 생태학동아리 ‘잡다’가 중심이 된 학생들은 좁은 틈을 통과하려는 새들의 습성을 고려해 세로 5㎝, 가로 10㎝ 크기의 격자무늬로 시트지를 자르고 유리창에 붙였다. 학생들은 66개에 달하는 유리에 붙일 시트지를 자르는 데에만 26시간이 걸렸다고 소개했다.
국립생태원 최단비 전문위원은 “아직도 수많은 새들이 유리에 부딪쳐 죽어가는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제 막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When Will I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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