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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1.16~20

by 이성근 2020. 11. 15.

 

 

폭주하는 포퓰리즘, “당신의 정치적 증오는 돈이 됩니다

김건희의 충격적 과거! 조만간 윤석열 곁을 떠나겠네!”, “‘추미애 불륜설!’ 경찰 전격 수사!”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의 제목이다. 11월 초 기준 각각 약 180만회, 101만회씩 조회됐다. 영상 내용은 제목과 큰 관계가 없는 기존 보도나 소문에 대한 평가다. 그럼에도 유튜버의 말을 듣다 보면 슬금슬금 화가 난다. 10분 내외의 짧은 영상 안에 증오를 유도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유튜버는 어느새 광고와 함께 사라진다. 이들에게 포퓰리즘적 발언은 그저 인기의 수단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관한 의혹 제기 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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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포퓰리즘의 탄생

1인 미디어의 확산은 전통적인 포퓰리즘의 정의를 확장시켰다. 새로운 변화에 따라 포함되어야 할 개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속성은 존재한다. 국민에 대한 호소와 엘리트에 대한 공격성이다. 네덜란드 정치학자 카스 머드는 포퓰리즘을 사회가 순수한 민중부패한 엘리트로 나뉘고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본래 포퓰리즘은 보통 사람을 최우선하는 대중 사회 운동이었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정치 엘리트들이 인기에 영합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나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대중영합적인 포퓰러리즘이다. 문제는 한국적 포퓰리즘이 지식인·선동가들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공격성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자칭 보수는 진보 엘리트를, 자칭 진보는 보수 엘리트를 공격하며 갈라졌다. 편파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낼수록 인기는 올라간다.

 

한국적 포퓰리즘은 국민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제도와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며 더욱 확산됐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는 돈벌이의 기회가 됐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양극으로 갈라진 사람들을 더 강하게 선동한다. 이를 위해 때론 가짜뉴스도 동원했다. 일부 정치 유튜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통계를 분석하는 사이트 플레이보드는 유튜버가 구독자로부터 받은 돈인 슈퍼챗의 액수와 그 순위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올 110일 슈퍼챗 집계를 시작한 이후 국내에서 슈퍼챗을 가장 많이 받은 10개 중 9개가 정치·시사 방송이었다. 1위를 차지한 가로세로연구소는 누적 수익 10억원을 돌파하며 전 세계 기준 4위에 올라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관한 의혹 제기 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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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치 유튜버는 자신의 계좌를 공개하며 후원도 따로 받는다. 막말·허위정보 게재로 유튜브 측이 광고를 제한하는 노란 딱지를 붙여도 포퓰리즘은 계속해서 돈이 되는 구조다. 인기도 따른다. 코로나19 역학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보수를 표방하며 지지세력을 끌어모았다. 그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특정 정당의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문제가 되는 정치 유튜버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자신들이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며 국가 내 모든 문제는 정치권의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정권교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또 기존 국가 제도들이 모두 기득권 유지에 이용된다고 본다. 정부, 사법제도, 경제기관까지 모두 개혁대상이다. 자신들을 제외한 국내 언론, 학계는 모두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출처가 불분명한 외국 기사나 인터넷 글을 인용한다.

 

이들은 정치를 단순화해 마치 선과 악의 대결로 만든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악마이며 타도대상이 된다. 언론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공격하고,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리면 신상을 공개한다. 일단 선동이 시작되면 정치권도 이에 발을 맞춘다. 국민의 의사가 확인됐다며 언론·사법기관에 대한 장악 시도를 한다.

 

적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역시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국가적 어려움, 개인적 불만을 해결하는 데 비애국적 기득권 세력이라는 낙인이 이용된다. 경제침체, 실업, 양극화, 차별 등의 문제는 모두 이들 탓이다. 정치권, 1인 미디어가 합심해 반대자에 대한 증오를 계속해서 심는다. 결과적으로 한쪽이 우세해 모든 적이 제거되면 그때는 권위주의 독재 시대도 열 수 있다.

한국유튜브 동영상 슈퍼챗 순위 / 플레이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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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적 포퓰리즘

국내 정치를 대상으로 했던 포퓰리즘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세계로 확장됐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부정선거를 고백했다는 영상과 이에 대한 해석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졌다. 해당 영상은 지난달 24일 바이든이 미국의 한 팟캐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으로 우리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부정선거 조직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것이다. 마치 부정선거를 인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부정선거에 대응하는 조직부정선거 조직으로 잘못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세계 지도자들이 미국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확신한다는 영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부 유튜버들이 같은 성향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왜곡된 영상을 퍼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직장인 김성주씨(32)는 최근 부모님과 미국 대통령선거를 이야기하다 깜짝 놀랐다. 김씨의 어머니가 바이든을 두고 치매환자가 대통령에 당선돼 큰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모님이 유튜버의 말을 뉴스나 정부 발표 수준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유튜버가 정치 이슈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시비가 확실하지 않고, 공적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다 보니 유튜버들이 이 틈을 파고들었다양극화된 지지층들이 좋아할 만한 말만 하며 사회를 진영 대결로 몰아간다고 지적했다.

 

각국의 민주주의 현황을 평가하는 프리덤하우스의 2018년 연차보고서 제목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2019년 연차보고서 제목 역시 민주주의의 후퇴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는지, 민주주의의 위기가 포퓰리즘을 불러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회를 적과 동지로 구분된 생존을 건 투쟁 장소로 바꾸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를 틈타 누군가는 당신의 정치적 증오를 돈벌이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혼란의 윤석열 여론조사, 언론은 잘못없나

대선 후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여론 조사아닌 조성’?

미디어의 과장된 해석이 여론 왜곡보도의 기본 지켜야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윤석열 검찰총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윤 총장이 1위를 했다는 조사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는 결과가 나와 정치권과 언론을 뒤흔들었다. 조사 방식이 극단적 차이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대권 후보를 띄우는 방식, 이를 키우는 언론 책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총장이 1위를 한 조사와 3위로 나타난 조사들은 여론조사 방식과 설계, 기관 모두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1위 조사의 경우 여야 3명씩 6명에 대한 객관식, 3위 조사는 제시된 선택지가 많았거나 주관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우선 윤석열 1조사는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진행해 11일 공표했다. 여권 후보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를, 야권은 윤석열 검찰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의원(전 자유한국당 대표)을 제시했다. ‘귀하가 지지하는 후보는 누구인가물었더니 윤석열 24.7% 이낙연 22.2% 이재명 18.4% 등으로 집계됐다. (117~9일 전국 만18세 이상 1022, 유선 전화면접 23%·무선ARS 77%, 95% 신뢰수준 ±3.1%p)

 

한길리서치는 앞선 조사에서 여·야 각각 3위까지 총 6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10월 정기조사에서 야권 후보 지지도는 윤석열(11.4%), 안철수(10.4%), 홍준표(9.4%), 오세훈(5.1%), 유승민(8.1%), 원희룡(3.7%), 황교안(3.6%) 순이었으며 기타 10.5%, 없음 33.5%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 3인을 고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실제 대권 의지를 드러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제외됐고, 결과적으로 국민의힘 소속 후보들이 모두 빠지면서 극단적인 쏠림 효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1010~13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 유선전화면접 21%·무선ARS 79%, 95% 신뢰수준 ±3.1%p)

1111일 공표된 쿠키뉴스·한길리서치 '여야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결과(), 1113일 공표된 CBS·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결과. 세부사항 본문 참조

 

선택지를 다양화하거나 제약 없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13일 한국갤럽 정기조사는 다음번 대통령감으로는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주관식 질문으로 이뤄졌다. ‘없음·응답거절42%인 가운데 이낙연 19% 이재명 19% 윤석열 11% 등으로 집계됐다. 같은 날 CBS가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는 이낙연 21.1% 이재명 20.9% 윤석열 11.1% 순이다. 이낙연·이재명·윤석열·홍준표·안철수·오세훈·유승민·원희룡·심상정·김경수·김종인·황교안·정세균 등 13인의 후보를 제시한 결과로 지지후보 없음23.3%.

 

한국갤럽(자체의뢰): 1110~12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1, 휴대전화 RDD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RDD 1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 KSOI·CBS: 1110~12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9, 유선 19.9%·무선 80.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3.1%

 

대선 후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여론 조사아닌 조성’?

윤석열 총장 본인은 여러차례 나를 여론조사에서 빼 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야권에서 윤 총장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지울 수 없다. 여권에서도 윤 총장을 정치인으로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윤 총장을 향해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사퇴하고 정치하라했고,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본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되레 유력 후보군이 없는 야권에서 윤 총장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윤 총장의 첫 대권주자 등판은 올해 1월 세계일보가 의뢰한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다. 1226~28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7명 대상 조사에서 이낙연 32.2% 윤석열 10.8% 황교안 10.1% 순의 결과가 나왔다. 야권 대표 주자였던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세계일보는 미디어오늘에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꼽은 답변이 나온 바, 그 부분에 대한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윤 총장을 예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어떤 이유에서든 차기 대선후보군 여론조사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윤석열 총장 본인을 위해서나 검찰을 위해서나 검찰개혁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윤석열 총장이 대선후보군으로 굳어진다면 정치적 혼란은 물론이고 정치검찰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윤 총장도 당시 세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와 관련해 본인을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131일자 세계일보 5면 기사.

 

올해 6월 오마이뉴스·리얼미터가 윤 총장을 처음 포함시킨 이래 윤 총장은 꾸준히 대권주자 선호·지지도 조사 3위권 안팎에 올랐다. 그 사이 갈등구도에 있는 윤 총장과 추 장관의 직무 지지도 조사에서도 윤 총장이 우세를 보였다. 그러다 1022일 국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이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면서 그의 정치권 진출 가능성이 더 활발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리서치앤리서치: 20191226~28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7명 대상, 유선 15%·무선85% RDD, 95% 신뢰수준 ±3.1%p / 오마이뉴스·리얼미터: 2020622~26일 전국 만18세 이상 2537명 대상, 무선전화면접(10%) 및 무선70%·유선20%자동응답 혼용, 무선80%·유선20% 임의전화걸기, 95% 신뢰수준 ±3.1%p)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13일 통화에서 최근 1년 반 동안 검찰이 정치를 덮는지, 정치가 검찰을 덮는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윤 총장을 대권후보로 보는 여론조사는) 여론을 추동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후보군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최소한의 원칙을 견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예컨대 과거 대선에 출마했던 인물들 가운데 현역 정치인으로 남아있는 경우, 정치적 행보가 대권에 염두를 둔 것으로 보이는 경우,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대권에 두각을 나타낼 만한 경쟁력이 있는 정치인 등이다.

 

미디어의 과장된 해석이 여론 왜곡보도의 기본 지켜야

실질적 대권주자가 아닌 인물이 유력 후보로 소환되는 여론조성은 되레 혼란을 조장한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해 차기 대권주자 1, 2위로 줄곧 소환됐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있다. 유 이사장은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지난해 언론사들의 신년 여론조사를 기점으로 범여권 유력 주자에 올랐다. 지난해 12MBC는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유 이사장이 대권주자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조사결과는 유시민 10.5% 황교안 10.1% 이낙연 8.9% 순으로 집계됐다. (20181227~28일 전국 성인 1009명 대상, 유선24%·무선76% RDD, 95%신뢰수준 ±3.1%p)

 

MBC 외에도 여러 언론사와 기관의 여론조사가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유시민 대세론, 유 이사장이 조만간 정계진출 입장을 밝힐 거라는 보도로 이어졌다. 유 이사장은 당시 일부 언론이 가만 있는 저를 자꾸 괴롭힌다고 호소한 데 이어 “(대선 출마) 하지도 않을 사람을 넣으면 여론 왜곡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물론 여론조사 후보로 누구를 넣느냐는 규제의 영역이 아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본인을 대권 조사에서 제외하게 해달라는 유 이사장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윤 총장을 포함한 대권주사 조사에 대해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설문구성을 편파적으로 하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만 누구를 넣고 빼는 것에 대해선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12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박찬진 사무차장)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 유권자에게 전달할지는 언론의 책임이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미디어의 과장된 해석이 여론의 왜곡을 자아냈다고 비판했다. 여론조사의 오류 뒤에 숨기보다 잘못된 보도를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13일 미디어오늘에 이른바 윤석열 현상은 일종의 판타지일 수 있다. 일부 미디어가 이를 증폭시킨 당사자로 보인다대선 여론조사 데이터에 대해 미디어가 보다 엄격한 해석을 했다면 빚어지지 않았을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언론은 대선 여론조사에 대해 드라마틱한 해석의 유혹에 빠지기보다는 객관적, 실증적 접근에 힘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기본에 충실한 보도를 당부했다. 오차범위 내의 후보군에 선두를 가려선 안 되고, 전혀 다른 여론조사를 중계하기보다 해당 기관의 데이터 추세를 분석할 것 등이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은 여론조사는 과학성이 생명이다. 미디어는 대표성과 신뢰성이 의심되는 여론조사를 기획하거나 의뢰하지 않는다미디어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정확성, 객관성, 신뢰성을 충족한 과학적 해석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안 대표는 언론이 독자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항상 반성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윤석열 총장,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윤석열 신드롬과 검찰 정치

'이틀 천하'였다. '윤석열 대망론'을 부추기던 언론들이 '충청 대망론'까지 쏘아 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던 이른바 '윤석열 신드롬' 말이다.

 

11일 한길리서치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쿠키뉴스 의뢰)가 발단이었다. 윤 총장이 지지율 24.7%1위에 올랐다. 1, 2위를 다투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22.2%)와 이재명 경기도지사(18.4%)를 최초로 꺾었다. 윤 총장은 물론 '야권 후보'로 분류됐다. (7~9일 전국 거주 18세 이상 남녀 1022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조사방식으로 진행, 응답률 3.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그러자, 국민의힘이 즉각 반응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윤 총장이 지금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야당 정치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추미애 장관이 (정치 안 하겠다는) 윤 총장을 자꾸 정치로 밀어 넣고 있다"고 탓했다.

 

애초 "옷 벗고 정치권에 들어와 싸워라"(김종민 의원)라는 여당의 분위기와 달리 보수야당은 한 마디로 '갈팡질팡'이었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윤석열 옹호'에 나섰던 국민의힘은 복잡한 셈법을 굴리는 중이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자신이 구상 중인 "혁신 플랫폼을 같이 하자"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헌데, 단 이틀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13일 한국갤럽(11%)CBS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공동 조사(11.1%)에서 윤석열 총장은 3위를 기록했다. '21'을 형성하던 기존 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반토막', '널뛰기', '추락'이란 제목의 언론보도가 잇따르며 한길리서치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갤럽 조사 :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KSOI 조사 : 10~111009명 대상,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p 응답률 12.7%.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확인하면 된다.)

 

여론조사 1위의 함정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무선 전화 비율 등 조사 방법의 차이를 지적했다. 한국갤럽의 경우 이전과 같이 조사자가 직접 대선주자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이와 비교해 야권 주자 중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을 뺀 여야 6자 후보 구도였던 한길리서치 조사가 윤 총장에 대한 중도보수층의 쏠림 현상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한길리서치 측은 14'쿠키뉴스'를 통해 "선거는 구도가 반영된다. 6자 구도 지지율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며 신뢰성 의혹을 반박했다.

 

사실 윤 총장의 1위 여부보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지표다. 안철수, 홍준표 등 보수야권 주자 지지율은 윤 총장을 제외하곤 미미한 수치였고, 이를 합산해도 범여권 주자를 위협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단 이틀 만에 반전을 끌어낸 '윤석열 신드롬'의 실체가 과장됐고, 기존 '21' 구도를 확인한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신드롬'을 통해 기존 구도를 흔들려는 누군가의 '일장춘몽'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윤 총장은 자신이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처음 포함됐던 올 초만 해도, 대검찰청을 통해 "이름을 빼 달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대검이 그런 요청을 했다는 언론보도는 지난 8월이 마지막이었다. 12MBC"검찰과 여론조사기관에 다 확인해 봤는데, 지난 8월 이후 (윤 총장으로부터) 이름을 빼달라는 요청은 더 이상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 사이 윤 총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라 할 만했다. 지난달 22일 국정감사 당시 "퇴임 후 사회와 국민께 봉사할 것"이라던 발언은 정치입문 가능성을 생각하게 할 만한 발언이었다. 이후 윤 총장은 느긋하게 전국을 돌며 일선 검사와의 대화 일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치인으로, 대선주자로 호명되는 여론조사와 언론보도를 즐기는 듯 보일 지경이다. 이게 과연, 윤 총장에게 약일까, 독일까.

 

윤석열 신드롬과 검찰정치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 고건,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신드롬' 직후, 줄줄이 소환된 '올드보이'들의 면면이다. 일부 언론이 '윤석열 신드롬' 을 거론하자, 과거 대선에서 '신드롬'의 주인공이었거나 여론조사 상 돌풍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소환되며 윤 총장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3후보 잔혹사'라고 불릴 만큼 제3의 인물이 끝까지 완주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특정 정당에서 강하게 영입 했을 경우에나 대세론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서로 자기 당 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라 앞선 경우들과는 좀 다른 양상입니다." (12MBC <뉴스데스크> '정치적 참견 시점')

 

"여론조사기관은 객관성과 전문성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이 중요합니다.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반드시 엄격하게 검증한 다음에 보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두 기관의 책임입니다." (13YTN <뉴스가 있는 저녁> '변상욱의 앵커 리포트')

 

이중 정주영, 고건, 안철수, 반기문의 예를 든 MBC'대선 포기'란 결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변상욱 앵커는 "여론조사라는 게 자칫 이렇게 여론을 엉뚱하게 전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 여론을 호도하려는 조사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제대로 검증하는 언론 보도가 더 중요하고 그 차이를 가려내야 한다는 고언이었다.

 

'3후보 잔혹사'의 경우처럼, 대선정국에서 새 인물을 띄우는 언론의 속성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실제 여론과의 차이는 결국 마지막 레이스까지 가 봐야 확인된다. 그 과정에서 종종 여론조사와 언론보도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윤 총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의 경우, 윤 총장 본인이 강하게 거부하면 그만이다. '윤석열 신드롬'의 정체가 신빙성이 있든 없든, 윤 총장 본인이 선을 그으면 될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언론의 보도 행태다.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가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것도, 아내의 회사가 검찰의 압수수색과 수사 대상에 오르내리는 것도 사상 초유다. 이 자체만으로 '조국 일가족처럼 수사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표창장 위조' 기소만으로 조 전 장관의 도덕성 운운하며 사퇴를 요구했던 보수야당을 향해 '기준이 왜 이렇게 다른가'란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굳건하다. 이 역시 우호적인 언론 덕택이다. 현직 검찰총장의 일가족이 수사를 받아도,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발언을 일삼아도, 그 직후 '대선행보'라 비판받는 '검사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일선 검사들이 소란을 피워도 요지부동이요, 이를 그저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중계할 뿐이다.

 

진영논리는 둘째 치더라도, '윤석열 검찰''살아있는 권력 감시'란 주장에 매몰된 언론도 부지기수다. MB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재수감돼도, 김학의 전 차관이 실형을 받아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정치검찰'을 비판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검찰정치'를 부추기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급기야, 한 일간지는 "윤 총장의 검찰관에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다"면서도 "우직하고 안쓰러운. 모두 여의도 정가에서 탐낼 법한 정치적 자산"이라 치켜세웠다. 10일자 <국민일보><사나이 윤석열의 매력>이란 칼럼을 보자.

 

개인적으로 윤 총장의 '싸나이 리더십'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정치인 윤석열의 등판 여부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선거는 공동체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고, 대통령이 전인격으로 표상하는 덕목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요체 같은 거다. 사나이 윤석열의 매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찾아 헤매는 자질인 걸까. 간만에 대선이 기다려진다."

 

윤 총장을 "(영화) <베테랑> 속 열혈형사"처럼 "예스러운 남자의 매력이 넘친다""'사나이'보다는 '싸나이'가 어울리는, 소신과 의리의 화신"이라 묘사한 이 칼럼이야말로 일부 언론이 부추기는 '윤석열 신드롬'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안쓰럽게도 지극히 선거공학적인 발상이요, 일부 언론의 '조삼모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일 뿐이다. 불과 1년 전, 어느 보수언론이 취임 전 윤 총장을 '조폭'에 비유한 사실도 있지 않나(20197,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조직을 사랑한 윤석열, 조폭과 뭐가 다른가>). 1년 동안 달라진 건 '사나이 윤석열'의 정치행보 뿐이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의혹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0.11.12 연합뉴스

 

"이제 검찰은 '정치'는 물론 '정책'에도 개입하고 있다. 조직 수장에 대한 비판 및 MB 부실 수사, 김학의 부실 수사, 라임·옵티머스 부실 수사 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일어나자, 바로 반격한 것이다.

 

내년 재보궐선거 전까지 실무담당 공무원부터 시작하여 궁극에는 장관까지 관련자를 계속 소환하고 조사내용을 언론에 흘린 후 기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과정에서 문서 폐기 등 몇몇 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사를 통해 탈원전정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8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페이스북 글 중에서)

 

이렇게, '윤석열 신드롬'을 부추기는 언론들이 먼저 할 일은 윤 총장의 '월성 1호기' 수사가 왜 문제인지,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국민들이 알기 쉽게 '따박따박' 분석하는 것 아니었을까.(이에 대해선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윤 총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윤석열 총장이 월성1호기 수사 멈춰야 하는 이유 http://omn.kr/1qhia)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 구성원들 전체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결단을 내릴 때다. 하성태(woodyh) / 오마이뉴스

 

“5년 뒤면 천만 노인시대인데 아직도 죽음 외면하고 준비 안해

초고령 대한민국 신중년 시대

3부 고령화 정책, 대안과 해법

웰다잉 시민운동나선 원혜영 전 의원 인터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공동기획한 초고령 대한민국, 신중년 시대시리즈 3부 두번째 순서로 웰다잉(Well-Dying)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는 원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한테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는 사망자가 출생자 수보다 많은, 사상 첫 인구 자연감소가 확실시되는 해다. 원 전 의원은 불과 5년 뒤면 천만 노인 시대를 맞는다. 고령자를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시점에 굳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겪거나 슬퍼할 죽음에 대해 더이상 쉬쉬하거나 부정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이번 주제로 잡았다. 원 전 의원은 고령화사회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한 죽음은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 준비할 때 삶의 가치를 더 높이고 사회적 낭비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 정치 마감, 웰다잉 전도사로기본법안 대표 발의 등 운동 앞장

웰다잉의 핵심은 자기결정권고령자를 돌봄 대상 아닌 삶의 주체로

연명치료·화장·장기기증 등 스스로 정리하며 존엄하게 죽음 맞이해야

 

왜 죽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언제나 죽는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개인적으로 불행이고 사회적으로 부담이다. 인간의 출생 역사에서 태어난 사람이 죽는 사람보다 늘 많았는데 이게 바뀌는 역사 이래 첫 경험을 하고 있다. 5년 뒤면 인구 천만명이 노인인구로 편입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그러나 사회체제나 문화는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고령사회 대책이 필요하고 발전시켜야겠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재정을 투입해 도우려고만 해선 안 된다. 노인은 돌봄의 대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인생의 마무리에 대해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그걸 생각하고 실천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과 갈등도 완화시키자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고단한 삶에 치여 사는 분들이 많은데?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보전해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선 한해 평균 30만명이 사망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두려움 속에 있을 말기 환자들과 고생하는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도 사회도 고민이 필요하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단순히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물질적·정신적 유산의 정리까지 스스로 준비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장기기증을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고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화장으로 장례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최종현 에스케이(SK)그룹 회장 등 본보기로 삼을 만한 실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정계에서 물러난 뒤 사단법인 웰다잉시민운동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웰다잉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잘 살기도 힘든데 왜 잘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냐고? ‘자기결정권이 문제의 핵심이다.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하는 것. 우리 문화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 금기였다. 사망이 임박한 순간까지도 당사자나 가족까지 애써 모르는 척한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나와 나의 가족의 죽음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차원을 넘어 장례·장묘 문화를 개선하고 유산 기부 등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준비하는 게 최선인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을지 말지, 화장할지 말지, 장례에서의 허례허식을 어떻게 할지의 문제다. 장기기증의 문제도 있다. 이런 것들이 건강과 신체의 문제라면 유언장을 써서 내가 평생 모은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재산, , 인간관계를 스스로 정리하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도 사회도 죽음을 삶과 떼어놓고 멀리하거나 외면해왔다. 예컨대, 미국은 유언장을 쓰는 비율이 50%가 넘는다. 우리는 통계도 없다. 대략 0.5%로 추정한다. 과장해 말하면 유언장을 아무도 안 쓴다. 죽음은 보편적 현상이다. 몇백년 뒤에 죽을지 몇십년 뒤에 죽을지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은 죽는데 아무도 삶의 마무리에 대한 준비를 안 한다.”

 

죽음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준비가 서툰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인간은 과학기술이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까지 넘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노쇠해서 자연의 법칙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분까지 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가족과 격리된 상태에서 장시간 의료기기의 불빛을 보다 죽는 게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에서도 2000년대 초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50%대였다. 이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난 이후 지금은 병원 사망 비율이 20%대로 내려갔다. 우리 사회는 아직 병원에서 죽는 비율이 76%.”

 

의료기술 발달은 고무적이나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되는데?

“20082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아무개 할머니의 가족은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병원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다.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할머니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병원 쪽은 법적 근거가 없어 의사가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가족은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자의 자기결정권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6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되고 2018년에 발효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회 토론과 세미나를 거치면서 이 문제를 들여다봤다. 2015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했고 이듬해인 2016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현재 70만명 이상이 자기 결정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했다. 일단 등록하면 병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웰다잉 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의 진전이 있나?

관련 입법을 계기로 웰다잉에 관한 논의를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므로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몇년 전 국립암센터에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게 있다. ‘당신이 말기암 환자라면 통보받기를 원하는가?’를 물었더니, 환자들의 96%알려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시한부 통보를 환자에게 76%만 해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엄청난 격차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무하게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막상 당사자는 알고 싶어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법 대신 생활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미국 사람들이 유언장을 쓰는 게 부자라서가 아니다. 우리도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드러내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이 여전한데?

천만 노인 시대, 백만 치매 시대라고 하는데, 경제적 효과를 한번 생각해보자. 매해 10만명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안 받는다고 치자. 치료비가 천만원씩 들어간다고 하면 1조원 규모다. 20만명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면 2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은 35천명이라고 한다. 지난해 450명의 뇌사자가 장기기증을 했는데, 장기이식 대기자에 비해 현저히 적다. 웰다잉에는 장기기증과 장례절차, 치매 성년 후견인 등을 미리 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특히 장기기증은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인데 잘 안된다. 행정적으로 주민등록증에 표기하는 것 등을 통해서도 확산시킬 수 있다. 유언장 작성과 유산 기부의 문제도 있다. 법과 제도적 뒷받침을 잘해서 하나하나가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활동 방향과 계획은?

우리 사회는 열심히 일해 크든 작든 부를 형성한 세대가 이제 노년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시니어로 진입하는 중이다. 그분들이 자기 삶의 마무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웰다잉 운동이 필요하다. 유언장 작성도 절대 늦지 않았다. 사회갈등 해소나 통합에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 낯선 소리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생의 마무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자기주도적으로 결정하게 함으로써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가족의 부담도 줄이고 사회적 낭비와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제도·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한 사회의 존엄성 확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웰다잉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길 기대한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 / 정리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원혜영과 남승우의 아름다운 은퇴

비교하면 욕심 끝없어나이 들어 안 물러나는 건 헛짓

국회의장 유력에도 은퇴한 원혜영

국회의장 하면 또 대통령 바랄지도

한번도 당선 안 된 사람 많은데

시장까지 일곱차례, 뭘 더 바라요

 

더 긴 것과 비교하면 욕심 끝없어

언제든 시민으로 돌아갈 때 대비해

내려놓기 연습을 맘속으로 했죠

 

전문경영인을 후계자 만든 남승우

자녀에게 돈 물려주는 건 몰라도

경영권 세습하는 건 촌놈이죠

이재용도 약속 지킬 수밖에 없어

 

글로벌 기업은 65살 은퇴가 당연

기업의 업무량과 성격이 바뀌어

늙어서는 제대로 대응 못해요

국회의원과 부천시장 등 30년 동안 7선의 선출직 공직생활을 지내고 은퇴한 원혜영 전 의원(오른쪽)2년 전 전문경영인에게 풀무원의 경영권을 물려준 남승우 풀무원재단 상임고문이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풀무원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대개의 우정은 아름답다. 그것이 정의 등 사회적 가치에 바탕을 둔 우정임에야. 원혜영 전 의원과 남승우 풀무원재단 고문은 고교 때 만났다. 민주화운동가와 산업일꾼으로 각자 걷는 길은 달랐지만, 공정과 정의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5선을 지낸 원 전 의원은 기부와 깨끗한 정치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며, 식품기업 풀무원을 이끌었던 남 고문은 윤리경영의 대표적 실천가로 평가받는다. 30대 초반에 동업하면서 새겼던 풀무원 정신이 삶의 바탕이 됐다. 두 사람은 각자가 이룬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남 고문은 2년 전 전문경영인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줬으며, 원 전 의원은 국회의장직이 눈앞에 있음에도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끝자락마저 아름다운 삶이다. 남 고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일체 언론을 만나지 않았지만, 50년 지기를 위해 기꺼이 찬조출연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풀무원재단 사무실에서 두 사람에 대한 1차 인터뷰를 했으며, 의원 임기 종료 하루 전인 2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원 의원을 별도로 만났다.

 

어서 와. 국회의원 임기가 열흘밖에 안 남았네.”

비가 그치니까 하늘이 깨끗해. 도시 공기가 매일 이래야 하는데.”

오랜 친구는 말을 건너뛰어도 대화가 부드럽다. 2년 전 기업 경영에서 은퇴한 남승우(68) 풀무원재단 고문이 정계은퇴를 앞둔 50년 지기 원혜영(68·이하 호칭 생략) 의원을 반갑게 맞았다.

품격 있는 의원들이 별로 없는데 그나마 원 의원조차 사라지면 더 없어진다고 아쉽다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의 은퇴에 대해 다들 훌륭하다고 해요. 정말 잘한 거죠.”(남승우, 이하 남)

남 사장이 2년 전에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극받은 면이 있어요. 한다더니 진짜 은퇴하는구나 했죠, 그때.”(원혜영, 이하 원)

 

30여년 동안 정계와 재계에서 활동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정점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원혜영은 최다선 의원(6)이 될 수 있는 21대 국회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평소 의정활동이나 유권자들의 평가, 지역구(부천시 정) 특성 등을 고려할 때 당선은 확실했다. 게다가 차기 국회의장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정치인이었다.

국회의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얼마나 아쉽냐고 많이 얘기하는데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국회의장을 하면 대통령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할 것이고, 한국 대통령을 하면 미국 대통령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거예요.(웃음) 자꾸 나보다 더 긴 것과 비교하면 끝이 없어요. 4년 전 선거 때 나와 맞붙은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 후보가 내건 공식 현수막의 문구가 누구는 일곱번(부천시장 재선 포함) 하고 누구는 한번도 못합니까였어요.(웃음) 그 사람 처지에서 보면 저 사람은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일곱번이나 하냐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처럼 한번도 당선이 안 돼 평생 애를 쓴 사람이 훨씬 많은데 더 이상 뭘 더 바라겠어요.”()

나보다 더 큰 것이나 긴 것과 비교하면 끝이 없어요. 일곱번이나 선출직 공무원을 했는데 더 이상 뭘 더 바라겠어요?” 원혜영 전 의원이 지난달 19일 서울 수서동 풀무원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아들에게 물려주려면 가족기업 해야

정치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보통 내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할 일이 더 남았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는 사실 201219대 총선이 끝난 뒤에 늦어도 20대 국회로 끝마치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어요.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하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죠. 내가 대표한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선거에 안 떨어지고 그만둘 기회가 있는데 왜 기어코 떨어지고 그만둡니까.(웃음) 제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아내가 제일 재밌어했어요. 저보다 남 사장의 경우 훨씬 결단하기가 어렵죠. 사업하는 사람은 망하거나 죽거나 또는 죽기에 가까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잖아요.”()

2년 전인 20181월 남승우는 풀무원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대주주(51.84%). 은퇴할 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대주주의 건강 등 신상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12녀의 혈육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이효율)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예전에는 중간에 물러나는 게 이상한 사람이고 안 물러나는 게 당연한 거였어요. 왕이나 기업의 창업주는 죽을 때까지 했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업무량이나 업무 성격을 보면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짓입니다. 늙어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글로벌 기업에서는 전부 65살에 물러납니다.”()

현재 풀무원에서는 최고경영자 임기가 끝나면 대주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 자신의 후계자를 뽑아서 시이오 후보추천위원회에 올리게 된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작동 방식이다. 남승우가 퇴임 전 확립한 시스템이다.

 

전문경영인을 후계자로 뽑은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외국의 공개 상장기업을 보면 안 그러는 게 이상합니다. 물론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아버지 자리를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보편적이었어요.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이 됐거든요. 그래서 외국도 처음에는 자식들한테 물려주다가 지금은 가족기업 빼고는 아무도 아들한테 안 물려줍니다. 아들한테 물려주려면 패밀리 비즈니스 하면 돼요. 상장해서 퍼블릭이 된 기업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퍼블릭 기업이 된 뒤에 글로비스를 만들고, 에버랜드를 통해 괴상한 짓을 하다가 회사 임원들이 범죄에 연루되는 것을 우리가 다 봤잖아요. 돈을 물려주는 것이야 문제없지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것은 촌놈입니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아들에게 경영권을 안 물려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삼성이 변하면 다른 회사도 따라가겠죠.”

삼성은 이건희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이라는 불법행위를 했으며, 현대차는 정몽구정의선으로의 3세 승계를 위해 글로비스를 만들어 내부거래를 해왔다. 남 고문의 아들(남성윤)풀무원 관계사 중 하나인 올가홀푸드의 대주주(94.95%)여서 승계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려면 글로비스나 에버랜드처럼 내부거래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올가홀푸드가 풀무원 지분을 전혀 안 갖고 있고요. 원 의원이 39년 전에 시작했던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에 뿌리를 둔 회사라는 상징성 때문에 매년 적자를 보면서도 유지해왔어요. 그런데 그동안 자본금 174억원을 다 까먹고, 제가 개인적으로 보증을 서서 빌린 차입금으로 겨우 운영하고 있는데 곧 정리가 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은 촌놈이죠. 외국의 상장기업은 모두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줍니다.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될 겁니다.” 남승우 풀무원재단 고문이 지난달 19일 서울 수서동 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꼴찌 하다가 서울법대 합격한 남승우

원혜영과 남승우의 만남은 10대 중반인 고교(경복고) 때 시작됐다. 1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을 했지만, 둘은 노는 물이 달랐다. 가난한 이웃들과 공동체생활을 하며 컸던 원혜영은 모범생에 속했다. 우열반으로 나뉘어 있을 때 원혜영은 열반(연고대반)의 반장(3학년)을 맡았으며, 성적도 반에서 상위권이었다. 신문과 시사잡지를 섭렵했던 원혜영은 박정희의 3선 개헌(1969)에 반대하는 서울시내 고교의 연합시위를 준비하다가 발각되기도 하는 등 일찍부터 정치의식이 강했다. 반면에 중산층 출신의 남승우는 학교보다 만화방을 더 자주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날라리과였다. 조건부로 3학년에 겨우 가진급했을 정도로 성적은 꼴찌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그는 3학년 2학기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한 데 이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해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의 대학시절은 더 달랐다. 재수 끝에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입학(1971)한 원혜영은 교양과정부(1학년) 학생회장을 맡아 교련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강제징집과 두번의 구속, 세번의 제적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반면 남승우는 대학에서도 공부 대신 여행과 연애 등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졸업할 즈음부터 뒤늦게 사법시험에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하자, 1978년 당시 재계 순위 2~3위였던 현대건설에 취업했다. 건설 붐이 한창이던 중동에 1년 동안 파견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직장에서도 잘나갔다.

민주투사와 산업일꾼으로 제 갈 길을 걷던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난 것은 1980년 초겨울이었다.

 

최규하의 체육관 대통령 선출을 막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기 위해 벌였던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위장결혼식사건(197911)으로 수배당해 장기 도피 생활을 할 때였어요. 서울 신촌 부근을 지나다가 우연히 승우를 만났죠. ‘다음에 한잔하자고 인사성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이 친구가 다음에 하자는 것은 보지 말자는 소리다하며 인근 술집으로 데려갔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데모를 싫어했어요.(웃음) 이상돈 의원이 법대 동기인데 2학년 때 학생회의 학년 대의원으로 추천하길래 그마저 거부했을 정도였죠. 군대도 보안사에서 근무했고요. 그러나 민주화운동 하는 친구들한테 미안하고 빚진 마음은 늘 있었어요. 그래서 고생하는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끼 먹이고 싶었겠죠.”()

그와 만난 지 얼마 안 돼 원혜영은 생계를 위해 사업에 나서야 했다. 1년여 전에 결혼한 아내 안정숙마저 기자(당시 <한국일보>)로 일하다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탄압 과정에서 해직당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는 아버지 원경선(2013년 작고)이 경기도 양주에서 운영하던 풀무원 농원에서 나오는 유기농산물을 가져다 파는 가게(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19815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열었다. 국산콩으로 두부와 콩나물도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제공한다는 기업 철학을 처음부터 분명히 세웠다. 서른살 때였다.

하지만 유기농산물은 수급이 불규칙한데다 원재료 값으로 인해 두부와 콩나물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3배나 비싸다 보니 사업이 어려웠다. 긴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던 그는 언제든 찾아오라던 남승우를 떠올렸다. 남승우는 원혜영에게 기꺼이 돈을 빌려줬을 뿐 아니라 사업이 안정적이려면 제조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아내가 부천 집에서 콩나물을 직접 키우는 등 온 가족이 달라붙었지만, 경험 없이 뛰어든 일이어서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승우의 조언도 있고 해서 당시 유행하던 현미효소를 유기농으로 시도해서 1982년 개발에 성공했어요. 이때 승우는 첫 투자까지 했죠. 그래서 두부와 콩나물을 중심으로 하는 풀무원 유기식품과 별도로, 현미효소에 집중하는 풀무원 건강식품이란 회사를 만들었어요. 풀무원 유기식품은 제 개인회사였고, 건강식품은 저랑 승우가 공동대표를 맡았어요.”()

 

두 사람은 고교 때 같은 반 친구

원혜영은 민주화운동에 매진

남승우는 연애·놀기 등에 열중

1980년 우연한 운명적 만남 뒤

풀무원 창업과 계승의 우정

 

, “대세보다 옳은 정치한길

겸손한 여의도 신사자리매김

, “이웃사랑 생명존중정신으로

기업의 윤리경영 모범 만들어

 

원혜영은 종류가 다른 사람이죠

그러나 효소식품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로 인해 당시 엄청난 붐이 일었던 효소식품 시장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총판과 대리점까지 다 모집해 놓았는데 언론 보도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난리가 났어요. 제가 당시 1억원을 빌려서 일단 부도를 막았어요. 한달에 40만원인 제 월급을 모아서 그 돈을 갚으려면 한푼도 쓰지 않아도 20년이 넘게 걸리겠더라고요. 또 낮에는 사무실에 나가 회사 일을 하고, 밤에는 효소 사업 일을 하는 이중생활을 더 지속할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19841월 현대건설에 사표를 내고, 풀무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원대한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코너에 몰려서 그랬죠. 대부분의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수영장 옆을 지나다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셈이죠. 그럴 때 포기하고 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헤엄부터 배우면서 헤쳐나가는 거죠.”()

평탄한 직장생활을 두고 앞날이 불확실한 사업에 뛰어든 남승우는 방문판매에 관한 책을 쌓아놓고 마케팅 공부부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주부 등으로 구성된 판매원 조직을 만들어 유기농 현미효소 시장을 다시 살려냈으며, 그해 가을에는 빚도 완전히 털어냈다. 걸출한 경영자를 만나 풀무원이 이내 자리를 잡아가자, 원혜영은 자신이 탄생시킨 기업을 도리어 떠났다.

 

남 사장이 와서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원래 하던 민주화운동으로 돌아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오랫동안 동지였던 김근태 선배도 저한테 빨리 돌아오라고 몇번 요청하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남 사장한테 유기식품과 건강식품을 통합해서 실질적인 오너를 네가 맡아서 운영하라고 줄기차게 설득했죠. 1984년 말에 그렇게 하기로 합의하고, 대신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 2년간 더 남아 있어 달라는 요청을 제가 수용해서 86년 말까지 풀무원에서 일했죠.”()

1981년 서른살의 청년 원혜영이 만든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에서 시작한 풀무원은 1982년 유기농 현미효소를 개발함으로써 사업의 영역을 한 차원 높였다. 당시 현미효소의 시제품을 시음하는 모습. 오른쪽 끝은 당시 현대건설 구매과 직원이던 남승우 풀무원재단 고문, 그 옆은 원혜영 전 의원. 풀무원 제공

1986년 새로운 두부공장을 세운 뒤 풀무원식품직판장에서 직원들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뒤편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원혜영 전 의원, 그 옆 검은색 양복 차림이 남승우 풀무원재단 고문. 풀무원 제공

 

원혜영이 떠난 1987년 풀무원은 연 매출이 1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미래 전망도 밝았다. 반면 민주화에 대한 전망은 전혀 안 보일 때였다. 게다가 그는 2명의 어린 아들을 둔 36살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원혜영은 상표권만 빼고 모든 지분을 남승우에게 넘겼다. 1996년 상표권을 일정 지분으로 되돌려받으려 했으나, 세금 문제 등 상황이 복잡하자 원혜영은 20억원 전액을 들여 장학재단(부천육영재단)을 만들었다.

특별하게 고민하고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가족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줬고요. 친구 덕분에 제 꿈이었던 민주화운동으로 복귀하는 날을 앞당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풀무원에서 손 떼는 느낌은 시원섭섭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시원섭섭했다고 하는 거지 실은 전혀 아니에요. 그때도 자기 꿈과 생각이 확실했거든요. 원 의원은 보통사람과는 영 다른 사람이에요. 나중에 장학사업 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지금도 다르잖아요. 아버지인 원경선 원장님을 꼭 닮은 사람이거든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원경선은 해방 이후 잠시 토목업에 종사하기도 했지만, 1949년 사업을 접고 농부의 길을 택했다.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의 미개간지 1만여평을 사서 논밭을 일궜다. 나중에 풀무원 농원이라고 이름 붙인 이곳은 원경선 가족의 삶터이기에 앞서 전쟁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의 터전이었다. 원경선은 1974년 우연히 일본 잡지 <애농>(愛農)을 보고, 생명과 지구 환경을 살리는 유기농에 눈떴다. 1976년 그는 부천을 떠나 경기도 양주군으로 풀무원 농원을 옮겨 한국에서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 국제기아대책기구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생을 마칠 때까지 평화주의를 실천했다. 이러한 이웃사랑 생명존중이라는 원경선의 정신은 풀무원의 브랜드 정신이 됐다. 원경선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혜영이 대학 1학년 때 시위에 앞장서자, 지도교수가 부천 집으로 찾아가 이러다가 아들이 제적되거나 감옥에 갈 수 있다면서 단속을 주문했다. ‘아들이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면 말리겠지만, 정의로운 일을 하는데 어떻게 말리겠느냐. 오셨으니 딸기나 드시고 가라고 했다는 일화는 원경선의 인물됨을 잘 보여준다.

 

영광의 정치인 시절은 부천시장 때

풀무원을 떠난 원혜영은 박원순, 서중석, 이이화, 임헌영 등이 중심이 된 재야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19871월 초 합류해 계간지인 <역사비평> 발행을 맡았다.

정치를 하려고 풀무원을 관둔 게 아니었어요. 민주화운동을 하러 나왔는데 6월항쟁으로 합법적인 정치 공간이 열렸던 거죠. 그때도 바로 정치를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당시 민주화를 바라던 시민들은 양김(김대중·김영삼)이 힘을 합쳐서 민주정부를 수립하기를 원했죠. 저 역시 단일화를 촉구하는 일에 참여했고, 그것이 깨진 뒤인 198813대 총선 때 정치에 참여하게 됐죠. 단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와이에스(김영삼)나 디제이(김대중) 쪽으로 많이 흡수돼 갔지만, 제정구, 유인태, , 김부겸 등은 외롭고 현실적으로는 가장 전망이 없는 독자노선을 택했어요. 양김을 극복하는 새정치를 내걸고 기호 5번인 한겨레민주당을 만들어 출마했지만, 당연히 떨어졌죠.”

 

첫 출마 때 원경선은 아들에게 돈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원혜영은 돈을 벌려면 잘되는 사업을 하지 왜 정치를 하겠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하나님 기준은 몰라도 인간의 기준으로는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정부패에 자신이 없으면 애초부터 안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뒤돌아보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상식적인 기준에서는 바르게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원혜영은 199214대 총선 때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 중구에서 당선돼 여의도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그해 말 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했던 김대중이 1995년 복귀하면서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나가자, 원혜영은 이를 반대하면서 민주당에 남았고 이듬해 총선에서 다시 떨어졌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믿음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목적이지 국회의원이 목적이 아니었다. 낙선은 했지만 대세를 따르지 않고 대의를 지킴으로써 내 방식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있었다.”(<아버지, 참 좋았다>, 원혜영)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원혜영 국회의원 정치마무리 기념출판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하나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오른쪽부터),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원 의원, 우상호 의원이 토크쇼를 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원혜영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의 국민회의에 다시 합류한 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부천시장(1998~2003)을 거쳐 17대 총선(2004)부터 내리 4선을 했다. 당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원내대표를 지냈으며, 매너 좋은 의원들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을 세차례나 받았다. 이번 21대 총선 때는 민주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은 부천시장 때였어요. 하기만 하면 퍼스트무버이고 뉴프런티어였어요. 그야말로 펄펄 날았어요. 버스 도착시간 안내시스템(BIS)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부천을 만화의 메카로 만드는 등 문화도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죠. 국회로 다시 와서는 정치적인 이슈로 싸우기보다는 어떡하면 일하는 국회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몸싸움 없는 국회를 구현하기 위한 국회선진화법(20125)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그 일환이었죠. 자랑스러운 성과 중 하나입니다.”

 

5선 의원에 주요 당직과 국회직을 두루 지내면서도 원혜영은 늘 소탈하고 겸손한 것으로 유명하다. 재벌가의 갑질이 사회문제가 됐던 20184월 그의 전직 비서관이 갑의 역습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원혜영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수행비서 대신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저녁 약속 장소에 가면서 의원이 직접 운전을 하고 비서인 자신은 뒷좌석에 앉아 갔던 일, 지방 출장을 갔다가 3만원짜리 허름한 모텔방 하나에서 의원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침대는 자기에게 내준 일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저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이거든요. 제가 길을 더 잘 알기에 운전을 했고, 적당한 호텔이 없어서 모텔에 들었고, 남자 둘이 방 두개를 쓸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거죠. 침대를 양보했다지만, 그런 침대가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다만, 내려놓기 연습이랄까 그런 것은 늘 마음속에 있었죠. 국회의원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하는 거다, 좋은 사무실과 보좌진은 국가와 사회가 잠깐 빌려준 거다, 그러니까 4년 계약직을 그만두고 시민으로 돌아갈 때 허전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잘못된 거다라는 생각을 했죠. 물론 인품 있는 정치인이 되어야지, 그러려면 즐기고 누리는 것을 참아야지 하면서 도 닦듯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맞았어요. 어릴 때 가족의 범위가 확장된 환경에서 자란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원경선의 불호령이 다진 윤리경영

원혜영이 떠난 뒤 남승우가 홀로 풀무원을 키웠다. 그가 풀무원을 인수한다고 하자, 어머니는 법대 나온 녀석이 콩나물 장사가 뭐냐. 차라리 메리야스 장사를 하라며 반대했다. 남승우는 신라호텔과 여인숙이 모두 숙박업이듯 콩나물·두부 장사도 라면회사와 같은 식품업이라고 설득했다. 실제로 그는 김치와 고추장, 생수 등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 결과 풀무원의 매출은 30여년 만에 200배 이상 커졌다. 원경선이 낳고 원혜영이 다듬은 풀무원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계승 발전시키면서 이룬 성과였다.

“1989년쯤 고추장 사업에 진출할 때였어요. 창사 이후 풀무원의 원칙은 쌀과 채소는 유기농만 사용하고, 잡곡은 국산을 쓴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고추장 원료인 고추를 유기농으로 키우는 농가가 거의 없어 할 수 없이 국산 고추를 사용해야 했어요. 원경선 원장님한테 보고를 했더니 할 수 없지. 대신 풀무원 이름은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광고를 냈죠. 제품명으로 명가 고추장이라고 쓰고, 작은 글씨로 풀무원 식품이라는 회사 이름을 표기했죠. 원장님이 그걸 알고는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 당장 풀무원 이름을 빼라고 불호령을 내렸어요. 그때 원장님한테 찍혀서 제가 몇년 동안 신뢰를 회복하느라 고생했어요.(웃음) 그러나 풀무원 정신을 다잡는 좋은 계기가 됐죠.”

풀무원의 정신이자 뿌리인 원경선 원장(가운데)2009525일 남승우 당시 대표(왼쪽), 원혜영 의원과 함께 충북 괴산에 위치한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 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 풀무원 제공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 위기도 몇차례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초인 2009년 중국산 유기농 콩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관세를 포탈했다는 혐의는 고비였다. 시민운동가의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탄압 의혹 등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소비자 신뢰가 중요한 풀무원으로서는 결과가 중요했다. 관세청과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 끝에 380억원의 세금 추징을 했다. 풀무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소송 끝에 2014년 무혐의 판정과 함께 추징금을 전액 돌려받았다. 풀무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12년째 소비자중심경영’(CCM) 인증을 받았으며,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선정하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13년 연속 선정됐다.

풀무원의 제일 큰 자산은 이름이에요. 이름에서 원경선 정신이 나오거든요. 그것을 잘 지키려면 윤리적이지 않으면 안 돼요. 윤리경영이란 간단합니다. 투명하고 공정하면 됩니다. 우린 비자금이란 걸 모르고, 시이오 차량의 운행일지까지도 세세하게 다 기록합니다.”

 

남승우는 풀무원재단에 매일 출근해 여러 분야의 책 읽기에 하루 네댓 시간을 투자한다.

학교 때 공부를 안 했으니 뒤늦게라도 보충해야죠.(웃음) 다음 세대인 아이들을 상대로 한 바른 먹거리 교육, 평화 교육에 관심을 쏟으려고 해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2016)에 앞장섰던 원혜영은 앞으로 웰다잉 운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5년 뒤면 우리나라는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20%가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이런 사회가 건강하려면 노인들이 자기 삶의 마무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생활문화가 절실합니다. 인생의 막을 내리기 전 20~30년은 인생의 자투리가 아니라, 인생의 당당한 한 막이거든요. 새로운 일을 하려니 마음이 설렙니다. 생활의 리듬을 잘 간직하면서 여유있고 보람있게 지내야죠.”

 

원혜영에게 사무실과 차에 대해 물어봤다.

사무실이 왜 필요해요. 그럴 돈도 없고요. 여기(국회도서관) 의원열람실은 전직들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요. 앞으로 여기 자주 와서 책 읽고 공부하려고 해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겠지만, 적당한 크기의 차를 샀어요. 당연히 제가 몰고 다니죠.”

원혜영과 남승우는 지인 몇사람과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생 2막도 1막처럼 따로 또 같이가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3번이나 뽑아줬는데"..일산의 눈물

김현미 장관, 일산 집값 5억 발언에 주민들 반발.."낮은 집 값 광고하나"

서울 집값 못따라가는 일산..3기 신도시 발표에 자산가치 하락 우려 커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과거 지역구였던 일산 주민과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장관 취임 이후 3기 신도시를 발표해 지역구 집값을 떨어뜨리는 데 앞장섰다는 지탄을 받고 있는 데다 일산에서 5억원 이하의 주택을 살 때만 지원하는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발언한 탓에 일산을 싼 동네로 낙인찍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주민들 반발낮은 집값 광고하나

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디딤돌 대출 기준과 관련해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과 논쟁을 벌였다.

 

김 의원은 서울 아파트 가격의 중위가격이 10억원에 육박한다는 점 등을 들며 국토부가 정한 디딤돌 대출 기준(5억원 이하)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10억원 이하 아파트도 있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이 “5억원짜리 아파트도 있냐고 재차 지적하자 김 장관은 있다. 수도권에도 있다면서 저희 집 정도는 디딤돌 대출로 살 수 있다고 답했다.

 

이후 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에 김 장관이 집을 산 2014년에 5억원을 넘었던데다 최근 호가와 실거래가 모두 디딤돌 대출 기준인 ‘5억원을 훌쩍 상회하는 만큼 본인 집 가격도 제대로 파악 못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장관은 일산 하이파크시티전용면적 146.61을 보유하고 있는데, 같은 면적의 아파트는 지난 92557900만원에 매매됐다. 김 장관이 재산공개를 위해 정부에 신고한 가격도 5억원 이상이다. 관보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 아파트 가격을 53083만원으로 신고했다.

 

일산 하이파크시티 아파트 주민연합회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입주민들은 카페 매니저가 올린 성명에서 본인 소유 아파트의 정확한 시세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부정확한 가격을 언급했다수도권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기 신도시 체면구긴 일산올해 공시가 5.29% 오히려 하락

일산 주민들이 김 장관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서울과 격차가 커진 집값 때문이다. 일산은 김 장관이 20대 국회까지 3선을 지낸 지역구지만 김 장관이 3기 신도시를 발표하며 집값 하락을 가속화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올해 들어 5.99% 상승했다. 서울은 무려 14.75% 뛰었다. 반면 일산은 5.29% 떨어졌다. 같은 1기 신도시 중 하나인 분당이 7.31% 오른 것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다.

 

이는 최근 아파트 가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과 1기 신도시의 가구당 평균매매가격을 살펴보면 116일 기준 서울은 106346만원이다. 반면 일산은 44490만원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일산은 92189만원, 평촌은 55315만원으로 나타났다.

 

일산은 노태우 정부가 집값 안정,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서울 근교에 건설한 신도시 중 하나다. 1기 신도시는 경기도 성남 분당 고양 일산 군포 산본 부천 중동 안양 평촌 등 5곳이다.

 

그동안 일산은 다른 신도시들에 비해 서울과의 교통 여건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여기에 1기 신도시와 서울 사이에 3기 신도시까지 생긴다면 교통 열위에 있는 일산 집값이 급격하게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일산은 빈약한 교통망, 전무한 기업유치 등 일자리 부족으로 자산 가치 하락을 겪어왔다창릉 3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자산 가치 추가 하락도 예상돼 주민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우려는 일산 주민과 김 장관의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 김 장관은 지난 1월 지역구 일부 주민들이 창릉 신도시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고양시가 망쳐졌다(망가졌다)’고 항의하자 안 망쳐졌다면서 그동안 동네 물이 많이 나빠졌네, 그렇죠?”라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주민들이 지역의 창릉 3기 신도시 정책을 두고 항의한 맥락인데, 이에 주무부처 장관인 김현미 장관이 조롱 섞인 말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김현미 장관은 총선 불출마를 이미 밝힌 상황이었다.

 

3기 신도시 발표에 반발하는 일산신도시 주민들을 달랠 대책으로 인천 지하철 2호선, 복선 전철 계획 등을 발표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모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존에 추진 중인 대책인데다 성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한 일산 주민은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서울 출퇴근이 어려워 집값이 오르지 않고 있는데, 서울이 아닌 인천과 묶으려 한다일산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데일리 | 신수정

 

민주노총 주말 도심 집회에 엇갈린 평가

아침신문 솎아보기

민주노총은 14일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전국노동자대회와 전국민중대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산발적으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를 두고 신문의 평가는 엇갈렸다. 경향신문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속에 열린 전국노동자대회가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99명 이하 인원을 유지하며 방역 지침을 지켰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참가자들은 체온을 측정하고 출입명부를 작성한 후 집회 장소에 입장했다. 마스크는 물론 주최측이 지급한 얼굴 가리개를 착용하고 띄엄띄엄 배치된 의자에 앉았다고 설명했다.

16일 경향신문 기사.

 

보수신문들은 전반적으로 이날 집회 방역 지침 위반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은 가운데 동아일보가 펜스 바깥 수십명 거리두기 없이 구호... 집회후 뒤풀이 식사기사를 내고 집회 과정에서 방역 지침을 위반한 사례를 조명했다. 동아일보는 집회현장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지침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펜스 밖 상황은 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외부에 밀집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식당에선 참가자 10여명이 모여 술을 마셨으며, 또 다른 식당에선 전현직 간부 등 16명이 함께 모이기도 했다고 했다.

다수 보수신문들은 민주노총의 방역지침 위반 여부와 별개로 코로나19 국면에서 집회를 강행한 민주노총과 집회를 허용한 정부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방역 당국은 물론 청와대, 여당, 지자체, 경찰의 대응은 이전 보수단체 집회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진영논리에 따라 방역 원칙이 오락가락하고 이중잣대를 들이대 국민을 편가르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끝내 48곳 쪼개기 집회, 전국감염 불 붙이나기사를 내고 펜스와 차벽을 동원해 원천 봉쇄했던 한글날 집회에 비해 느슨한 대응이라는 지적을 전했다.

 

 

쪽방촌 도시재생에도 스며든 투기세력

철거민 수용 계획 58년된 아파트한 달 새 매매량 폭증, 집값 배로

동구 매입 중단 시작부터 제동

 

부산 동구 좌천동 쪽방촌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부동산 투기세력의 개입으로 시작부터 제동이 걸렸다. 카페촌으로 변해 버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처럼 도시재생사업이 부동산 투기에 악용(국제신문 지난달 30일자 1·3면 보도)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매매량과 집값이 급등한 부산 동구 수정동 수정아파트 일대 전경. 김종진 기자

 

동구는 쪽방촌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철거민 임시 거주지로 계획된 수정동 수정아파트 매입을 전면 중단했다고 15일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사로 참여하는 이 사업은 1300억 원을 들여 좌천동 쪽방촌 등 주거취약지 17000를 철거한 뒤 공공주택 425채를 공급하는 게 골자다. 살던 집이 헐리는 주민을 위해 구가 인근 아파트 등 100가구를 사들여 임시 거처로 제공한다. 구는 철거민 임시 거주지로 수정아파트를 한 채당 3300~3500만 원으로 50채를 매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0여 채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매입을 포기하고 대체 부지를 물색하기로 했다. 최근 한 달 새 가격이 배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수정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587만 원이다. 그런데 재생사업이 발표된 지난달부터 매매량과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지난달 이뤄진 거래는 24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21)보다 많다. 이달 보름 동안에도 13곳이 팔렸다. 가격도 지난 9월 기준 평균 3467만 원이던 집값이 지난달 5868만 원으로 뛰었고, 이번 달 평균가는 6896만 원으로 더 올랐다. 최대 8300만 원까지 거래된다.

 

도시재생 사업이 발표되면서 투기 세력이 들어왔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진단이다.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투기 세력이 도시재생과 북항재개발 이슈를 섞어 재건축이 기대된다는 식으로 작전을 하는 것 같다면서 수정아파트는 17개동 사이에 주택들이 드문드문 위치해 사실상 재건축이 어렵다고 말했다. 1962년 지어진 수정아파트는 주민 공동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공동주택이다. 부산연구원 오재환 부산학연구센터장은 “1억 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 전매제한 등 법적 규제를 가하긴 어렵다. 도시재생사업은 계획 단계에서 예정 부지를 먼저 확보한 뒤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국제신문 신심범 기자

 

백신 딜레마라는 허상에 갇힌 사람들

백신 반대론은 과학이 내린 최선의 결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천동설 신봉자에 비교될 만하다. 우리는 이로부터 위험 커뮤니케이션 규칙 몇 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일깨운 통찰을 떠올려야 한다.

1021,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국가접종 후 사망 사례가 9건 접수되었다고 밝혔다. 다음 날,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백신 접종 후 사망보도를 1면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특히 세 매체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기사 제목은 엿새간 10명 사망, 독감백신 쇼크였다. 중앙일보독감백신 사망 10, 정은경은 접종 계속”’이었다. 한국일보‘9명 사망에도정부 백신 탓 아냐접종 계속이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 되어가고 있고,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1026, 질병청은 이날도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를 집계해 발표했다. 닷새 만에 숫자는 여섯 배 넘게 늘어 모두 56건에 이르렀다. 언론의 반응도 여섯 배 더 커졌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뚜렷이 뒷걸음질쳤다.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자 숫자는 의미 있는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1026일까지 예방접종을 한 사람은 1468만명이다. 해마다 10월에 사망하는 숫자는 평균 25000명쯤 된다. 이러면 접종 후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통계적 기적에 해당한다(독감 백신 접종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해설서 기사 참조). 1022일 이후로 백신 접종 후 사망 기사가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는, 백신 부작용 사망으로 볼 근거가 나오지 않아서다.

 

독감은 증상만으로는 코로나19와 구별하기 어렵다. 독감이 유행하면 열이 나는 환자가 급증할 것인데, 병원은 예년처럼 독감 치료를 해서 돌려보낼 수가 없다. 환자의 코로나19 진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동네 의원은 발열 환자 접수를 거부할 수도 있다. 매년 3000명이 독감으로, 또는 독감이 원인이 된 폐렴 등 다른 질병으로 사망한다. 올해 독감이 유행하면 의료 공급이 딸려서 이 숫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보건 당국은 올해 독감 유행 차단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백신 쇼크보도는 이 살얼음판에 던지는 자갈 같은 효과를 냈다.

 

독감 백신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아나필락시스가 있다. 면역반응으로 일어나는 급격한 알레르기성 쇼크로, 독감 백신뿐만 아니라 여러 주사제나 약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길랭·바레증후군도 주요 부작용이다. 신경이 손상되어 근육마비 증상을 보인다. 두 부작용은 백신 접종자 100만명당 한 명꼴로, 극히 드물게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사망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아나필락시스는 급성 쇼크 반응이지만 의료진이 조치하면 바로 회복할 수 있다. 백신 접종 후 30분쯤 의료기관에 머물라고 권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길랭·바레증후군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회복하며, 급성 호흡곤란이나 심장마비 사망 사례가 환자 중 2~3%.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과, 거기서 다시 사망에 이를 확률까지 고려하면 백신 접종 후 사망 가능성은 사실상 무시할 수 있다.

 

2009년에 독감 백신을 맞은 65세 여성이 이 길랭·바레증후군과 같은 계열의 밀러·피셔증후군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1년 동안 독감 백신 부작용 사망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사례다. 횡단보도에서 죽는 보행자가 연평균 373명이지만, 횡단보도 통행금지 주장이 분출하는 일은 없다. 숫자는 하도 자명해서, 이쯤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2009년에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이종구 교수(서울대 의과대학)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과학적 근거를 보여줘도 여전히 백신과 방역을 불신하는 사람이 있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설득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지동설 대신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니까(시사IN684백신 출시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할까참조).”

 

그래서 오히려,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부터다. 왜 백신 반대론은 시대와 문화권을 넘나들며 주기적으로 등장하는가? 왜 과학적 근거와 자명한 숫자는 어떤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독감 바이러스보다 독감 백신을 더 심각한 위협으로 느끼는가? 그러니까, 누가 왜 천동설을 믿는가? 백신을 두려워하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무엇이 있다면, 유력한 용의자는 우리 자신의 직관이다. 우리 뇌에 세팅된 직관은 생존에 도움이 되라고 진화했지, 자연의 질서나 과학을 이해하라고 진화하지는 않았다. 백신의 안전성 평가와 같은 문제를 풀 때, 직관은 못 믿을 안내자다.

1022일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백신 접종 후 사망보도를 1면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경계선을 지키려 하는 직관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안예모)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2006년에 설립한 안예모는 한국의 대표적인 안티 백신단체다. 독감 백신 뉴스가 폭증한 이후 안예모 홈페이지에는 백신 쇼크유의 공포 조장 기사들이 계속 스크랩되고, 자체 브리핑도 발행한다. 1023일에 올라온 브리핑에는 감염병이 무서워 안전한지 검증이 안 된 백신을 먼저 들이미는 것은 순서가 아닙니다라고 쓰여 있다.

 

안예모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녀 예방접종 거부 부모를 연구한 논문이, 2013년 한국아동간호학회 학회지에 실렸다(차혜경·하은호, ‘자녀 예방접종 거부 부모의 주관성:Q 방법론적 접근’). 논문은 예방접종 거부 부모들이 백신 효과보다 부작용을 더 염려하는 태도’ ‘백신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해롭다는 태도’ ‘검증되지 않은 유해물질을 아이 몸속에 주입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태도등을 공유한다고 썼다. 특히 예방접종 불신이 강한 그룹에서는 아이의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예방접종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 ‘인위적 예방접종자연스러운 면역력중 양자택일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방접종은 인간의 몸이라는 자연의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는 인위적 개입이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에 역행한다. 자연의 경계선 안에 이미 갖추고 있는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이 훨씬 나은 대안이다. 가장 강경한 예방접종 반대파의 세계관에는 경계선을 지키고자 하는 직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는 한때 회원수가 6만명에 달했다. 안아키는 천연과 인공의 이분법을 극단까지 밀고 가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심리학자인 폴 로진은 이 경계선 직관을 연구했다. 현대 의료 지식이 없는 원시 인류에게는 감염병을 피하는 직관이 필요했다. 유용한 방법은 오염원과 자기 신체 사이의 경계선에 예민해지는 것이었다. 오염된 무언가가 신체의 경계선을 넘어오려 하면 우리는 역겨움을 느낀다. 역겨움은 몸의 경계선에 직접 닿는 미각이나 후각으로 더 잘 느껴진다. 이게 혐오 반응의 진화적 뿌리라고 로진은 본다(다른 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이 경계선을 지키려는 직관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의 경계선을 넘어오는 외부의 무언가를 일단 경계한다.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독감백신 무료 접종이 시작된 1019일 한국건강관리협회 건물 앞에 독감 예방접종을 받으려는 시민들이 서 있다.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직관

안예모나 안아키와 같은 이들의 강한 경계선 직관을 좀 희석하면, 정치적으로 만만치 않은 버전의 백신 반대론에 부딪히게 된다. 자기책임과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집단면역 효과를 얻으려면 의무 접종에 가깝게 밀어붙여야 하는 백신이 있다. 홍역은 집단면역 도달까지 95% 접종이 필요하다.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자기결정권을 내세워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국가는 접종을 강제할 수 있을까?

 

오늘날 양심적 거부자라는 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는 책 면역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쓴다. “양심적 거부자는 원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국은 1853년에 모든 아기에게 백신 접종을 법으로 강제했고, 한 세대 이상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부모들은 자신이 그저 귀찮아서 백신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위해 거부한다며 스스로를 양심적 거부자라고 불렀다. 1898년에 영국 정부는 접종 면제 사유에 양심적 거부를 추가했다.

 

1905년에는 공중보건 영역에서 기념비적인 판결이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나온다. ‘제이콥슨 대 매사추세츠사건이다. 천연두에 시달리던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백신을 거부하는 주민에게 벌금 5달러(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100달러, 11만원)를 물렸다. 이 벌금을 맞은 주민 제닝 제이콥슨은 사건을 연방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그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이 경우에는 백신을 맞지 않을 자유)를 주정부가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연방 대법원은 주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중보건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개인의 자유도 제약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그럼에도 제이콥슨의 도전은 후대에 울림을 주며 살아남았다. 국가가 공중보건을 위해 자유를 일부 제약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제약이 가장 개인적인 신체 안으로 침투하는 것까지도 용인해야 할 정도인가?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백신 반대 폭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의무 접종을 법으로 만든 적이 없다.

 

면역에 관하여에서 율라 비스는 과학적으로 백신과 집단면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면서도, 개인의 권리와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마냥 무시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녀는 윤리학 교수인 동생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혼란에서 빠져나온다.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은 자기 혼자의 소유가 아니야. 우리 몸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지. 우리 몸의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에 의존하고 있어. 요컨대 독립성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다는 거야.”

AFP PHOTO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회 앞에서 830일 학부모들이 독감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직관

백신의 위험을 실제보다 무겁게 보는 방법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위험의 크기 자체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앞에서 만나본 안예모부모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좀 더 미묘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식이다. “부작용이 접종자 100만명에 한 번 나타난다고 치자. 정부 목표대로 3000만명에 독감 백신을 접종한다면, 100만명을 접종하는 룰렛을 서른 번 돌리는 셈이다. 그러면 부작용에 당첨되는 사람이 30명은 나온다. 누가 이런 게임을 하고 싶을까?” 확률이 얼마가 되었든 어쨌거나 ‘0’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룰렛을 돌리고 싶은 생각은 사라진다.

 

더 나아가, “공중보건을 위해 ‘30명의 당첨자를 만드는 게 용인되는 일인가. 백신 부작용으로 2009년에 사망한 65세 여성은 공중보건을 위해 목숨을 빼앗긴 것인가라는 질문도 사람들을 윤리적 딜레마로 빠뜨린다. 백신 접종 후 사망 소식이 한창 들끓던 1022, 한 인문학 연구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 해도 더 빨리 (접종을) 중지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의심할 만한 일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시기별로 따져 물어야 할 죽음을 두고 노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사람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우리의 보건복지 책임자였다니.” 다음 날 이 연구자는 자신이 백신 반대론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감정에 더 깊숙이 민감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연구자의 숭고한 요구를 만족시켰다가 집단면역 형성에 실패하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도덕적 직관은 꽤 강력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도구나 부수적 피해로 간주하면 안 된다는 것은 설득력 있는 도덕 원칙이다. 왜 그럴까. 조슈아 그린은 뇌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학자다. 그는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도덕 직관이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알아내어,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도덕철학을 전개해 나간다. 그의 주무기는 전차 딜레마라는 유명한 사고 실험이다.

시사IN 이정현

 

그림 1을 보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아래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다. 철로에는 인부 다섯 명이 작업 중이다. 이대로 가면 모두 죽는다. 그런데 전차를 다른 노선으로 돌릴 레버가 당신 앞에 있다. 다른 노선에도 인부 한 명이 작업 중이다. 당신이 레버를 올리면 죽을 인부 다섯 명은 살지만, 살 인부 한 명이 대신 죽는다. 레버를 올리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인되는가? 실험을 해보면 응답자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한다.

 

전차 딜레마를 변형한 육교 딜레마도 있다(그림 2). 기본 구조는 같다. 고장 난 전차가 달려오고, 이대로 가면 인부 다섯 명이 죽는다. 그런데 이제 당신은 육교 위에 있고, 바로 옆에는 아주 무거운 등짐을 진 인부가 있다. 당신은 몸집이 작아서 뛰어내려도 전차를 멈출 수 없고, 인부의 등짐을 들 힘도 없다. 전차를 멈출 유일한 방법은 등짐째로 인부를 밀어 떨어트려 전차를 막는 것이다. 육교 위 인부는 죽고 철로 위 인부들은 산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용인되는가? 이때는 아니라는 응답자가 다수다.

 

뇌영상을 촬영하며 실험을 반복한 조슈아 그린은 흥미로운 결론에 이른다. 우리 뇌에는 도덕 문제를 처리하는 모듈이 두 개다. 하나는 자동적·정서적·직관적 모듈(자동모드)이고, 또 하나는 통제되고 의식적이고 느린 모듈(수동모드)이다.

 

수동모드는 공리주의자다. 딜레마 구조가 어쨌든 수동모드는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쪽을 택한다. 육교 위에서도 기꺼이 등짐 진 인부를 밀어 떨어뜨린다. 하지만 자동모드는 다르다. 어떤 다른 이의 희생이 불가피한 부작용일 때(레버 올리기)는 비교적 잠잠하지만, 어떤 목적을 이루겠다고 다른 이를 공격하여 해를 끼치려 할 때(육교에서 떠밀기)는 화들짝 놀라 수동모드를 뜯어말린다. 자동모드는 직관적 칸트주의자다. 그는 모든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린은 인간이 협력하며 살아가기 위해 이 자동모드가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더 크고 서로 잘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동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직관이 필요했다.

 

백신 딜레마라는 게 있을까? 백신 접종은 실제로는 딜레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쪽 철로에는 3000명이 묶여 있고 반대쪽 철로에는 한 명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더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레버를 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과 유난한 자동모드 도덕 직관이 결합하면, 이때는 백신 접종이 육교 딜레마처럼 작동한다. 분명히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도 부작용의 희생자가 마치 육교 위의 인부처럼 느껴진다. 이 자동모드 상태에서는, “백신은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다라는 말은 이렇게 바뀌어 들린다. “육교 위 인부를 밀어서 떨어뜨려라!”

 

직관들에 말 걸기

백신 반대론은 현 수준의 과학이 내린 최선의 결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천동설 신봉자에 비교될 만하다. 하지만 이 천동설의 구성 성분은 단순한 무지와 반()지성주의보다는 좀 더 복잡했다. 경계선을 지키고자 하는 직관, 독립성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직관, 그리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도덕 직관이 기묘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직관이 먼저다. 백신 반대라는 판단은 직관 다음에 오고, 타당하지 않은 그 판단을 정당화하려고 백신 접종자가 죽었으면 백신 때문에 죽은 것이다” “공짜 백신은 관리가 안 됐다” “중국산 백신이 대거 수입됐다와 같은 기묘한 논거가 달라붙는다.

 

이로부터 위험 커뮤니케이션 규칙 몇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과학을 말하되 과학자처럼 말하지는 말 것. 확실할 때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화법은 과학 원리에 충실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말 자체가 불안을 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백신 사망 논란이 불타오르던 1021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사망 사례 9건 중 두 건은 아나필락시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7건은 아나필락시스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고, 나머지 두 건은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결국 두 건도 아나필락시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경계선 직관의 필터를 거치면, 이 말은 백신 부작용이 발생했을 수 있다로 들린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2명 아나필락시스 쇼크 가능성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수많은 언론이 그 제목을 그대로 받아갔다.

 

둘째, 백신 효용을 말하되 육교 위의 살인자처럼 말하지는 말 것. 부작용으로 생기는 희생보다 백신으로 살리는 목숨이 많다는 식의 단순 비교 메시지는 위험하다. 부작용 희생자가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수단으로 취급된다는 느낌을 주면 우리의 도덕 직관은 칸트주의적 분노를 쏟아낸다. 실제로 백신은 불가피한 희생을 횡단보도 사고만큼도 요구하지 않는 반면 죽을 생명을 유효하게 살리므로 효용과 부작용은 아예 다른 차원에 있다.

 

셋째, 백신 반대론자를 포기하지 말 것. 미국에서 나온 연구를 보면, 백신 반대자들 중에서도 강한 확신을 가진 백신 거부자는 고작 2%. 백신을 불안해하는 직관은 꽤 보편적이지만, 모두가 그 직관에만 의존해 과학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직관과 과학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도착하면 확신형 음모론은 고립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라는, 코로나19가 일깨운 통찰을 강조할 것. 백신은 나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집단면역을 형성하여 공동체를 보호한다. 나의 건강은 나 자신의 노력만큼이나 동료 시민들에게도 달려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코로나19 시대는 극적으로 알렸다.

 

2019년에 세계보건기구(WHO)인류 건강에 대한 10대 위협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백신을 미심쩍어하는 태도(vaccine hesitancy)’가 포함됐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홍역 집단감염이 발병해 보건 당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백신 음모론 때문에 홍역 집단면역이 붕괴한 사건이었다. 백신 반대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중대한 글로벌 보건 위협이었고, 코로나19 이후에도 잠재된 위협이다.

 

한국은 백신 음모론의 청정지대였고, 여전히 백신 신뢰도와 예방접종률이 높은 나라다. 백신 반대운동이 주류로 올라설 징후는 아직 없다. 이번 독감 백신 파동은 잘못된 정보로 촉발된 단발성 해프닝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백신이라는 메커니즘에 잠재된 위험의 구조를 고스란히 시연해 보였다. 한국은 이 해프닝을 백신 반대운동에 대한 예방접종으로 만드는 과제를 받았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

 

방송 뉴스가 나경원 아들 특혜 의혹을 다루지 않는 이유

[민언련 방송 모니터] MBC·JTBC 의제 유지 돋보여... MBN 정쟁으로 해석

20199월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아들 김 모 씨의 고교시절 논문 제1저자 등재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나 원내대표가 윤형진 서울대학교 교수에게 직접 부탁해 아들을 인턴으로 참여시킨 과정에 특혜와 연구규정 위반 등의 의혹이 있다고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나 원내대표를 고발했습니다.

 

올해 612일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김 씨가 논문 제1저자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문제가 없고, 4저자에 이름을 올린 연구 발표문은 연구윤리 위반이라며 저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반면 검찰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았고, 914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 수사의 미진함을 지적한 뒤 수사팀이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1022일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을 공개해 재차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19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나경원 전 의원 아들 논문 관련 의혹 쟁점을 정리하고,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관련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미국 고교 재학 중 연구참여 : 4가지 의혹 쟁점

나경원 전 의원 아들 김 모 씨가 논문의 저자로 등재된 과정과 배경, 관련 의혹이 어떤 내용인지부터 정리했습니다. 먼저 논란이 된 논문에 김 씨가 참여한 과정을 짚어보겠습니다. 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2014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여름방학을 이용해 윤형진 교수 연구실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인턴기간 중 김 씨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윤 교수가 지도한 두 건의 연구에 참여해 포스터 형식의 논문 저자로 등재됐습니다. 이 중 자신의 몸에 실험을 한 결과로 김 씨는 20153, 고등학생만 참가할 수 있는 미국의 한 과학경진대회에 출품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해 8월 서울대는 김 씨가 미국 과학경진대회에서 출품한 것과 같은 제목의 포스터 광전용적맥파와 심탄동도를 활용한 심박출량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A Research on the Feasibility of Cardiac Output Estimation Using Photoplethysmogram and Ballistocardiogram)”를 국제 학술회의 IEEE EMBC(전기전자기술자협회 의생체공학컨퍼런스)에 발표했습니다.

 

김 씨는 이 포스터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윤형진 교수와 다른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 2명은 후순위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같은 학술회의에서는 ()실험실 환경에서 심폐건강의 측정에 대한 예비적 연구(Preliminary study for the estimation of cardiopulmonary fitness in non-laboratory setting)” 포스터도 발표됐습니다. 김 씨는 이 포스터에서 윤형진 교수 등에 이어 제4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김 씨는 학회에서 포스터가 발표된 이듬해 미국 예일대학교 화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 씨가 포스터에 저자로 등재된 과정과 예일대 진학과정에서 저자로 등재된 포스터를 활용했는지, 포스터가 정당한 방법으로 작성됐는지가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2019911일 나경원 전 의원 아들 연구 포스터논란 보도한 JTBC ‘뉴스룸

 

의혹 01. 서울대 4주 인턴 특혜성

김 씨의 포스터가 논란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제1저자 등재 과정에 어머니 나경원 전 의원이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김 씨의 지도교수였던 윤형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CBS 노컷뉴스 <단독-나경원 아들 논문논란교신저자 나 의원 부탁으로”>(2019910)와 인터뷰에서 앞서 김OO 학생이 미국 뉴햄프셔에서 개최되는 과학경진대회에 참여하고 싶은데, 이를 위한 연구를 도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평소 친분이 있던 나경원 의원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CBS노컷뉴스는 윤 교수와 나 전 의원은 서울대학교 82학번 동기생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김 씨가 윤 교수 연구팀에 인턴으로 합류한 배경에는 윤 교수와 대학동기로 친분 있는 어머니, 나 전 의원이 있었습니다. 교수와 친분 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인턴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입니다. 이른바 엄마찬스라는 용어와 함께 인턴활동 자체가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의혹 02. 과학경진대회 규정 미준수

김 씨의 포스터와 관련한 두 번째 의혹은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승인 여부입니다.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승인(IRB)은 연구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로써 김 씨가 참여한 과학경진대회 규정에서 요구한 조건입니다. 김 씨가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승인 없이 진행한 연구로 과학경진대회에 입상했다면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KBS <나경원 아들 고교 때 연구 1저자논란>(2019910)김 씨가 제1저자로 등재돼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연구가 서울대병원의 IRB ,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KBS <단독-“경진대회 규정 위반입상 취소 대상”>(2019916)는 당시 김 씨가 참가한 과학경진대회 규정에 대회에 참가한 학생은 IRB 등 필요한 승인을 받는 등 연구의 모든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주최 측에 문의한 결과 인체를 대상으로 한 모든 연구는 IRB의 사전 검토와 승인을 받아야 하며, 위반 시 입상이 취소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규정 위반이 확인될 경우 김 씨의 입상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도한 것입니다.

2019916IRB 미승인에 대한 과학경진대회 주최측 입장을 보도한 KBS ‘뉴스9’

 

의혹 03. 연구 무임승차

김 씨의 포스터와 관련한 세 번째 의혹은 제4저자로 등재된 포스터 기여 여부입니다. 김 씨가 포스터에 실질적 참여 없이 이름을 등재했다는 의혹입니다.

 

KBS <단독-나경원 아들 4저자연구 무임승차의혹>(2019926)은 김 씨가 포스터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인턴 지도교수였던 윤형진 교수는 KBS본인이 뭐 주도적으로 했던 건 아니고, 데이터 분석하고 처리하고 하는 데 도와주고 그래서 그냥 초록 나갈 때 포스터 나갈 때 그냥 이름 하나같이 넣었어요라며 김 씨가 제4저자로 등재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KBS는 윤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이 포스터에 있는 데이터는 최대 산소소모량의 측정치와 예측치간 일치도 분석그래프단 하나뿐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포스터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린 윤 모 박사가 해당 포스터가 발표되기 1년 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을 확인했더니 데이터와 수치까지 정확히 같은 그래프가 등장했습니다.

 

KBS는 황은성 서울시립대 생명공학과 교수에게 포스터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고, 황 교수는 분명히 이 연구에서 그대로 와서 실린 데이터”, “사실 이 포스터 내용은 (윤 모 박사의) 학위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를 갖고 포스터를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KBS이 논문은 20145월 이미 1차 심사에 들어갔고, 201478일 종합심사까지 마쳤다며 김 씨가 오기 두 달 전 1차 심사에 제출할 만큼 논문이 완성돼 있었고, 김 씨가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종합심사마저 끝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MBC <“포스터 곳곳 반칙 행적나경원 아들 ‘4저자의 비밀>(20191118)은 논문 기여 여부 의혹에 다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김 씨가 제4저자로 등재된 논문은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가 2014년 하반기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프로젝트연구로 만들어졌는데, 프로젝트에는 참여 연구원은 국적 제한은 없지만 반드시 국내에 있는 기관 근무자여야 하고, 과제 착수 시 국내 소재 기관에 상근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 씨를 제외한 저자 5명 중 “2명은 서울대 교수들이고, 3명은 서울대 소속 박사급 연구원들이었습니다.

연구 당시 미국 고등학교 재학 중으로 국내 연구기관에 상근할 수 없는 김 씨가 어떻게 저자로 등재된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의혹 04. 예일대 입시 활용 여부

앞서 언급한 모든 의혹을 관통하는 마지막 의혹은 김 씨가 과학경시대회 입상 이력 혹은 포스터 저자 등재 사실을 예일대학교 입시에 활용했는지 여부입니다. 나경원 전 의원 측은 KBS 등 언론이 입시활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실험실을 빌려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뿐이고, 경시대회에는 포스터가 아닌 실험결과를 제출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정치보복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가 입상 이력이나 포스터 저자 등재 사실을 입시에 사용하지 않은 경우 개별 사안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입시에 사용했다면 입시 비리라는 또 다른 의혹제기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나 전 의원 아들 김 씨의 포스터와 관련해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검증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동시에 검찰 수사와 정치권 발언 등 다양한 이슈가 있던 만큼 언론이라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보도에 나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2019910일부터 20201023일까지 나경원 아들 서울대 인턴 특혜 의혹관련 저녁종합뉴스 보도건수. =민주언론시민연합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기간별 이슈 보도량을 확인한 결과 MBC가 가장 적극적인 보도를 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MBC6건의 보도로 JTBC와 함께 가장 많이 보도한 방송사였습니다. MBC는 나경원 전 의원 아들 포스터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99, 2건의 관련 보도 후 11월에는 추가 보도로 제4저자 등재 포스터 기여 여부 의혹을 제기했고, 올해 6월과 10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심사결과와 관련해서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방송사 저녁종합뉴스는 20199월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KBSSBSTV조선채널A는 이후 관련 내용을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루지 않았고, 그나마 JTBC가 지난 10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이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되자 관련보도 3건을 내보냈습니다. KBS는 유의미한 보도가 온라인판에서 나왔음에도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루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눈에 띄는 방송사는 MBN이었는데요. MBN은 의혹이 불거진 20199월에는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심사결과가 나온 6월에 단 1건의 보도만 진행했습니다. 의혹에 대한 전달 없이 서울대학교 진상조사 결과 발표만 전달한 것입니다.

 

MBN, 특혜 의혹 침묵 vs 서울대 문제없음보도

나경원 전 의원 아들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199MBN7개 방송사 중 유일하게 관련 내용을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반면 올해 6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나 전 의원 아들 김 씨가 제1저자로 등재된 포스터에 문제 없음결정을 내리자 보도를 실었습니다.

 

MBN <나경원 아들 논문 논란서울대 문제 없어”>(613일 민지숙 기자)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작된 자녀 논문 특혜 논란으로 시작해 민주당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아들도 고교시절 서울대 윤 모 교수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며 김 씨의 포스터 저자 등재 관련 의혹을 정쟁의 결과로 표현했습니다.

 

MBN은 김 씨가 제1저자로 등재된 포스터에 대해 서울대가 “‘논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만, 4저자로 등재된 논문은 단순 데이터 검증만을 도왔다며 경미한 연구윤리 위반으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씨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의학 논문은 지난해 9월 연구부정행위로 판단해 취소 처리됐다는 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MBN 보도만 본다면 김 씨의 포스터 저자 등재 관련 의혹은 정쟁의 결과였을 뿐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613일 서울대 문제 없음결정만 부각해서 보도한 MBN ‘종합뉴스

 

MBN이 전달하지 않은 내용 있다

반면 같은 내용을 보도한 MBC <‘4저자 발표문은 부당실험실 논란 ‘1저자 발표문은 인정>(613일 이재욱 기자)의 경우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결정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MBC는 서울대가 김 씨가 제4저자로 등재된 포스터에 저자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MBN 보도에서 언급된 경미한 위반에 대해서는 김 씨가 이름을 올릴 만큼 연구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발표문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만큼 경미한 연구윤리 위반’”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익명의 서울대 관계자는 MBC사안 자체가 경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4저자는 부당하다고 결론이 나온 거는 맞다고 밝혔습니다.

 

MBC“1저자(발표문)는 확실하게 그 학생(나경원 전 의원 아들)이 주도적으로 했다는 증거들이 있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라는 익명의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관계자 발언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서울대가 나경원 전 의원의 부탁으로 서울대 실험실을 빌려 수행했다는 연구결과가 반영된 발표문의 소속을 서울대 대학원으로 적은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며 실험실 대여 여부 타당성 등에 대한 쟁점이 남아 있다고 짚었습니다.

 

MBC 보도까지 종합해본다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제4저자로 등재된 포스터에 대해서는 명백한 문제라고 판단했고, 1저자로 등재된 포스터는 연구기여를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MBC의 설명처럼 나 전 의원의 부탁으로 실험실을 빌려 수행된 연구결과를 서울대 대학원 소속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명쾌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MBN은 주요 쟁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나 전 의원 아들의 포스터 저자 등재 의혹을 정쟁 결과로만 묘사하고, 전혀 문제가 없는 듯 설명해 시청자에게 혼돈을 유발한 것입니다.

 

TV조선채널A, 나경원 측 해명 부각

일부 사실만 소개하며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의 포스터 저자 등재 의혹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MBN과 달리 TV조선채널A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시점부터 나경원 전 의원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했습니다.

 

TV조선 <아들 1저자논란실험실 사용만 부탁”>(2019910)은 인턴 특혜 의혹에 대해 “(서울대 윤형진 교수에게) 실험실 사용을 부탁한 것”, “학회지에 올라간 논문이 아니라 실험 결과를 경시대회에 출품했던 것”, “고등학생도 연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나 전 의원 측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채널A <나경원 아들 ‘1저자논란서울대병원 심의>(2019911)도 나 전 의원 주장을 전달했고, “고등학생이 서울대 실험실을 사용한 것이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는 점도 소개했습니다. 이어 나 전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김 씨의 성적표를 보여주며 나 원내대표는 아들의 고등학교 우등 성적표를 공개하며 실력대로 입학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한 뒤 나 원내대표는 사실과 달리 보도한 일부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손해배상도 청구할 계획이라는 것까지 언급했습니다.

2019911일 나경원 전 의원 아들 성적표 보여준 채널A ‘뉴스A’

 

물론 의혹을 받는 당사자에게 반론권을 보장하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이 상세히 의혹을 실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면, TV조선채널A는 특혜 의혹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나 전 의원과 윤형진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급급한 보도를 했습니다. 의혹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 당사자 입장을 충실하게 실어준 셈입니다. 특히 조국 전 장관 자녀 의혹 관련 불공정이슈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두 방송사와 대조적입니다.

 

MBC, ‘고교생 논문 논란불공정 이슈 제기

반면 가장 많이 보도한 MBC는 의제 유지와 심층취재에서 돋보였습니다. MBC는 관련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도했고, 앞서 언급한 4저자기여 논란 등에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녁종합뉴스 <뉴스데스크>에서는 비슷한 시기 고교생 논문 저자 문제를 입시 불공정이슈로 해석한 <고교생 논문 저자, 어떻게 만들어지나?>를 기획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종합뉴스에서 관련 보도를 다루고, 탐사보도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심층보도를 이어간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조국과 다르다는 나경원아들 황금 스펙의 비밀>(20191118), <“나경원 의원 아들 학술 포스터, 표절 여부 등 조사한다”>(113), (217) 등 세 차례에 걸쳐 서울대와 김 씨의 연구 포스터를 게재한 IEEE, 예일대 등을 취재했습니다. 특히 IEEEMBC와 인터뷰에서 표절 의혹에 대해 재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김 씨의 연구 포스터 의혹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MBC는 올해 10월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이 다시 등장하자 <“표절 의심되는데검토 안 해서울대 조사 부실 결론>(1015일 강연섭 기자)에서 서울대 조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MBC는 서울대가 제4저자로 등재된 포스터에 대해 김 씨가 저자가 될 정도의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김 씨의 연구참여 실적은 일부 인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서울대는 김 씨가 이 포스터가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된 2저자 윤 모 박사의 기존 논문에서 데이터 검증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참여 실적을 인정했지만 김 씨의 서울대 연구실 출입은 이미 논문 심사가 끝난 뒤였기 때문에 참여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특혜 의혹 드러난 서울대 국감보도 적어

MBC 보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의 포스터 저자 등재 의혹은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동영 의원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결정문을 공개했고,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신입생 A씨의 2015년도 IEEE EMBC 관련 지출내역을 공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씨 대신 서울대 대학원 신입생 A씨가 포스터 발표를 대신했고, A씨는 저자 자격이 인정되는 않는 인물이었으며, 정부 산하기관 지원금으로 밀라노학회에 참여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등장했지만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에서는 이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등장한 정보를 저녁종합뉴스에서 전달한 방송사는 MBCJTBC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JTBC <나경원 엄마 역할해명에엄마 찬스비난 가열>(1019일 박소연 기자), MBC <‘공동저자라 괜찮다더니결정문 보니 무자격”>(1023일 고은상 기자)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결과 김 씨 대신 학회에서 발표한 서울대 대학원생이 무자격 저자였고, 밀라노행 출장비 3백여만 원은 정부 산하 기관의 지원을 받은 것을 지적했습니다.

1023일 나경원 아들 의혹과 관련 서울대 의대 제3자의 개입 알린 MBC ‘뉴스데스크

 

KBS는 온라인판 <단독-나경원 아들 1저자학회 대리발표나랏돈으로 밀라노행”>(1023일 이화진 기자)에서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신입생 A씨의 2015년도 IEEE EMBC 관련 지출내역을 공개했습니다. 김 씨를 대신해서 밀라노학회에 참석한 신입생 A씨가 부당 저자였으며, 그 경비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연구비로 처리가 됐다는 내용으로 MBC, JTBC 보도와 일치했습니다. 유의미한 내용이 담긴 보도였으나 KBS는 저녁종합뉴스에서 관련 보도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 나경원 아들 의혹 보도가 있었던 2019910~16, 1118~24, 2020612~18, 20201015~23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절반 넘는 시민들 우리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

노동자보다 근로자라는 말 친숙

79.9%직업별 존중 차이 있다

 

노조 설립·단체협상 대체로 공감

파업 공감 비율 상대적으로 낮아

 

산업재해 위험성 큰 업무의 경우

정규직 채용 필요응답이 65.5%

 

시민의 절반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민들은 노동자라는 단어보다 근로자를 더 많이 접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7일 경향신문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시민 1000명을 상대로 공공의창·우리리서치와 공동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을 얼마나 존중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존중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2.3%존중한다’(45.0%)는 응답보다 높았다.

 

근로자와 노동자 중 평소 주로 접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는 근로자라는 응답이 71.3%였다. ‘노동자 동질감을 물은 항목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49.9%동질감을 느낀다’(33.8%)보다 16.1%포인트 높았다.

 

노동조합에 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55.6%부정적으로 생각한다’(30.5%)보다 25.1%포인트 높았다. 긍정적 인식은 18~20(64.1%), 학생 직업군(61.7%)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연령별로 60대는 49.6%가 노조에 긍정적으로 인식한 반면 18~20대는 64.1%였다.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을 알고 있다는 비율이 63.4%였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다. 노조 설립과 단체협상에 공감하는 사람은 각각 77.8%, 79.5%인 데 비해, 파업 행동에 공감하는 비율은 55.5%에 그쳤다. 일례로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내세우는 파업을 하더라도 생활에 불편을 미치면 공감할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38.9%로 집계됐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사람들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노동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시민의 권리도 누리고 싶어한다파업이 당장의 경제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얼마나 유익한지 제도권 교육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업 경영여건에 상관없이 항상 필요한 업무 종사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47.8%비정규직을 채용해도 괜찮다’(40.2%)보다 높았다.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 내세운 공약이다. 산업재해 위험이 커서 노동자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업무의 경우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65.5%, 비정규직 채용도 괜찮다는 응답이 22.3%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시민들 생각은 달랐다. 지식노동·육체노동·감정노동 등 노동의 종류에 따른 직업별 인격 존중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79.9%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하 교수는 사람들이 경쟁을 통해 성취한 가치를 강조한 사회에서 자라나다보니 비정규직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형벌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직업 대우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시장 비정규직화에 동의하는 것에 대해 하 교수는 차별이 존재한다고는 인식하지만, 차별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차별받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무노조 경영을 한 삼성에 만약 노조가 있었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묻는 항목에는 노조가 있었어도 지금처럼 성장했을 것이다노조가 있었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답변이 각각 43.2%41.6%로 비슷했다. ‘성장했을 것이라는 대답은 30~40대와 학생 직업군, 노동조합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응답자에서 높게 나타났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이 노동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기대된다’(45.3%)염려된다’(44.7%)가 비슷한 비율을 나타냈다. 현시대에 전태일의 분신 같은 항거가 다시 일어날 경우 공감한다는 응답이 77.8%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16.9%)보다 높았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진단키트, 백신, 치료제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60% 인구집단 면역까지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았다. 의료·방역의 양적 확대도 중요하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질적 전환이 핵심일 수 있다. 봉쇄에서 완화로 전략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 113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117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5단계 체계로 개편된다.

 

한국은 9개월이 넘도록 통제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특별한 국가 중 하나다. 검사(testing)·추적(tracing)·격리(isolation)에 역량을 집중 투입한 이른바 K방역 덕분이다. 통제에 성공했다는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경험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풀이도 된다. 지난 1026일 한국의 신규 확진자 수는 119명이었다. 같은 날 프랑스는 52010명이 확진되었다. 437배의 차이를 과연 우리는 제대로 감각하거나 이해할 수 있을까?

 

세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팬데믹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거칠게 분류하면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아래 그림 1참조). 그룹 1은 확산이 철저히 통제된 국가들이다.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감염 발생은 시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 규모가 방역 당국의 통제를 넘지는 않았다. 사망 그래프도 발생 곡선을 비교적 정직하게 뒤따른다.

 

그룹 2는 유행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억제되지 않는 나라들이다. 사망도 조절되지 않고 줄곧 비슷한 분율로 기록되어왔다.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러시아 같은 대륙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가장 걱정스러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룹 3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유럽에서 주로 관찰되는 패턴이다. 지난 3월 첫 파도를 맞은 뒤 록다운(lockdown) 같은 적극적인 통제정책으로 유행이 조절되었다가 두 번째 파도를 다시 맞고 있다. 발생 규모는 2차 유행인 최근 더 커지고 있지만 사망 통계는 비교적 조절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철 소강 기간에 고위험군(노인·기저질환자 등)과 고위험 시설(의료기관·요양시설 등)을 보호하는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두 피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틈새

물론 국가 사이의 그래프를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 우열의 문제도 아니다. 유형 분류를 통해 얻어야 할 통찰은 단지 이런 것이다. 한국은 아직 도입부일 수 있다는 것, 다가올 겨울 그리고 내년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앞서 통과한 국가의 경험을 묻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성공담이든 실패의 교훈이든.

지금 우리는 팬데믹 대양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까? 그래프 X(가로)을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 Y(세로)을 사망률로 두고 주요 국가별로 점을 찍어보면 그림 2와 같다(1029일 세계보건기구 WHO 통계).

 

이번에는 가로축의 숫자를 100만명당 60만명까지 늘려보았다. 그림 3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가 최소 60%의 인구집단이 면역을 획득했을 때라고 가정할 때, 그림 3에 찍힌 국가별 좌표들은 아직 도입부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진단검사로 확진된 사람들만 통계에 포함되기 때문에 발생률은 과소하게, 사망률은 과대하게 표시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인류의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았다.

 

우리는 이제껏 대략 그래프 X축을 면역 획득의 시간, Y축을 사회가 입는 피해로 이해해왔다. 그 피해란 대개 확진자 수의 증가, 사망자 발생과 같은 방역·의료적 손해다. 그렇다면 이런 방역 비용을 제외한,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여러 사회경제적 손해는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진정한 난제가 시작된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원의 어르신 한 명이 코로나19로 생명을 잃는 건 얼마만큼의 손해이고, 응급실 서비스 이용 장벽이 높아지는 바람에 제때 치료받지 못해 심혈관 질환자가 생명을 잃는 건 얼마인가? 학교에 등교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손해는 어린이 한 명당 하루에 얼마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영업을 포기한 자영업자의 우울과 상심은 대체 얼마인가? 피해는 이렇게 측정하기 어렵고 비교하기는 더욱 어렵다.

팬데믹의 시간과 방역적 피해, 사회경제적 피해라는 이 세 가지 항에 대해 이제껏 우리가 대개 인식해온 형태는 아마 그림 4와 같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방역·의료적 피해와 사회경제적 피해는 서로 반대 방향의 힘이 작동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한데,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힘이 강하면 방역에 방해가 된다고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도식은 사실 틀렸다. 실제 구조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표현돼야 한다. 그림 5를 보자. Z축이 추가됐다. X축은 집단면역을 향해 흐르는 시간이다. 감염 확산도 백신 활용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 시간은 국가별로 다른 속도로 진행한다. Y축은 방역·의료적 피해를, Z축은 사회경제적 피해를 나타낸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정은 평평한 수면 위 항해가 아니라 위도와 경도 그리고 고도를 갖는 비행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전 세계는 제각기 다른 항로로 비행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두 피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틈새를 찾아야 한다. 기회는 선순환형 구조에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검사·추적·격리의 방역 활동을 수행하면 의료시스템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확보된 여유 시간에 중환자 병상 같은 치료 자원의 양을 늘리고 운영 효율을 높이면 봉쇄정책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그러면 일상에 좀 더 여유가 생기고 더 많은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정부와 시민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세련된 위험소통이 가능해지며, 그 결과 사회 결속력이 상승하면서 방역 활동의 강도와 범위를 상황에 맞춰 세밀하게 조절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 속에서 사회 전반의 유연성이 확보되고 어떤 정책을 시도해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역 활동과 사회경제적 활동은 이제 더 이상 반대 방향의 힘이 아니다. 이 둘이 각각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적절히 상호작용하면, 삼차원의 공간을 나선형태로 지날 수 있다(그림 6참조). 지속 가능한 방역이라는 난해한 질문의 실마리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방역·의료의 지속가능성 담론이 꼭 이어져야 하는 길은 확대가능성혹은 전환가능성이다. 지난여름 한국의 2차 유행 시 일일 최대 확진자 수는 827441명이었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했고 가정 대기자들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처럼 하루 5만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해도, 스웨덴처럼 2000명의 확진자가 매일 발생한다면 한국은 대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올해 초 강력한 방역정책으로 어렵게 시간을 벌어두었지만 그 여유시간의 준비가 미흡했다. 치료 자원 확보, 고위험 시설 보호대책 마련, 유행 폭증 시의 국가전략 수립, 장기 전망에 대한 소통 모두 부족했다.

 

경기도의 코로나19 병상 자원 예를 들어보자. 경기 지역은 병원도 많고 병상수도 적지 않다. 종합병원이 총 65, 병상수는 25256개다. 그런데 1029일 기준 경기도에 확보된 코로나19 격리 진료 병상은 총 675개뿐이다. 그중 90%를 지방 공공의료원 7곳이 제공한다. 지난 10개월 동안 5400명 이상의 누적 확진자 중 95%를 경기도의료원 산하 여섯 개 병원과 성남시의료원이 진료했다. 병원이 아무리 많다 한들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규모가 작고, 중환자 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공공병원 몇 곳 말고는 거의 찾기 힘든 것이 지금 우리의 실정이다.

AP Photo 1021일 캐나다 토론토의 한 식당. 야외에 마련된 비닐하우스 좌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시민.

 

지속가능성에서 전환가능성으로

그렇다면 한국 의료체계 안에서 양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질적으로 우월한 민간 의료기관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이 앞으로 지속 가능한 방역을 위해 필수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정부와 사회에 이 질문을 던졌지만 어떤 답변도 받은 기억이 없다. 공공병원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어 한국 코로나19 대응은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더 많은 진단검사, 더 많은 역학조사, 더 많은 중환자 병상 같은 양적 확대도 중요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질적 전환이 핵심이 될 수 있다. 봉쇄(containment)에서 완화(mitigation)로 전략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다가오는 겨울 어느 날, 너무 늘어난 감염자를 다른 국가들처럼 가정에서 관리하자고 한다면? 역학 추적조사는 이제 큰 의미가 없으니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자고 한다면? 접촉자들 중에서도 유증상자만 검사하고, 확진된다 해도 증세가 심한 환자들만 가려서 병원에 입원시키자고 한다면? 이제 음압 공조 없는 병실에서 진료하자고 한다면? 국제표준에 맞춰 D 레벨 방호복은 이제 그만 입자고 한다면? 끝없이 이어질 이런 질문들 앞에서 K방역은 다음 전략으로, 그다음 전략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을까? 전환이 의도대로 가능하지 않다면 그 사회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까?

 

우리는 이 재난을 벗어날 길을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 같은 의료·방역기술에서 찾으려는 오류를 쉽게 범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주연은 위기 소통, 민주주의, 분배정의 이런 것들이리라. 그런 점에서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하고 복지체계가 튼튼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감염 확산을 방관하면서 집단면역을 도모한다는 오해 속에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은 스웨덴을 지켜보며 가장 놀라웠던 일은 그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스웨덴 방역 당국은 지난봄 다른 유럽 국가들과 차별적이었던 정책이 두 가지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첫째, 국경 폐쇄를 하지 않은 것. 바이러스의 강한 전파력을 생각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부족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둘째, 공권력을 동원한 록다운은 가능한 한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 시민의 자율성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을 오래 유지할 수 없으며, 정부와 시민 사이 신뢰에 균열이 생기면 그 후로는 어떤 방역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랐다고 한다.

그 결과 스웨덴은 그림 7처럼 봄에 불길이 잡히는 속도가 늦었고 여름의 진화도 확실히 끝을 보지 못했지만, 동시에 가을에 새로운 불길이 번져도 여전히 피해(사망률)를 최소화하는 그래프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스웨덴 역시 신규 확진자 하루 2000명까지는 견디던 의료시스템이 하루 3000, 5000, 1만명까지 치솟을 경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면에서 입체로, 지속가능성에서 확대가능성 혹은 전환가능성으로, 기술에서 사회체제로, 질문은 점점 더 고차원이 되고 난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답일지 너무 힘들게 논쟁하지 말자. 인류가 처음 가는 길, 어차피 답 같은 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문을 발견해내는 지혜, 그리고 그 질문에 당당히 맞설 용기뿐이다.

 

재난의 시대, 시민들이 할 일은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슈퍼히어로를 그저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삶은 영화가 아니다. 팬데믹 시대에도 주인공은 역시 평범한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알아야 한다. 팬데믹의 바다란 대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손 들고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항로는 지금 어디를 향하는지.

|시사인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스가 떠받치는 일본 젊은층보수아닌 보신주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도쿄/AP 연합뉴스

 

10~20대 청년층에서 스가 요시히데 정부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가 정부 지지율은 젊은 세대에서 높고,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사회조사연구센터와 함께 지난 7일 벌인 전국 여론조사(응답 수 1040)에서 세대 간 차이를 분석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19일 보도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스가 정부 지지율은 18~29살이 80%로 전체 평균(57%)보다 23%포인트나 높았다. 30대는 66%, 4058%, 5054%, 6051%, 7048%, 80살 이상은 45%로 조사됐다.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18~29살이 59%로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았다. 전체 평균이 37%인 점을 고려하면 청년층이 자민당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이 신문은 1980년대 후반까지 자민당의 지지율은 젊은 세대일수록 낮았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양상은 현안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회원 6명에 대한 임명을 거부한 이른바 일본판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청년층(18~29)17%만이 문제라고 답했다. 80살 이상에서 49%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것과 견주면 차이가 크다.

 

가장 개혁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청년층에서 보수 정당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쓰모토 마사오 사회조사연구센터장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현상 유지 경향성이 있는 것 같다보수라기보다 보신이라고 본다. 정치적 의미에서 보수화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나카니시 신타로 간토학원대 교수(사회학)의식 조사를 해보면 젊은 세대는 일본의 장래를 밝게 생각하지 않는다이들에게 현상 유지라는 것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혔다. 청년층 정치 참여 캠페인 단체인 노 유스, 노 재팬’(NO YOUTH NO JAPAN)의 노조 모모코 대표는 다른 정당에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자민당을 선택하는 것 같다소극적 지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마이니치신문>지금의 청년들에겐 살면서 세상이 좋아진 적이 별로 없고 저출산·고령화로 앞으로 더 나쁠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세대보다 낮다. 지지율이 높다고 지금의 정치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문재인·노무현·이재명·박정희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6.2%), 김대중 전 대통령(3.3%), 이낙연 민주당 대표(1.8%), 유시민(1.7%), 홍준표(1.2%), 추미애(1.1%), 박주민(0.9%), 노회찬·박근혜·이명박(0.8%) 순이었다.

 

지난해인 2019년 조사에서는 1위가 문재인 대통령(13.2%), 2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12.6%), 3위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6.3%)이었다. 박정희(5.0%), 김대중(4.7%), 조국(3.6%), 이낙연(3.2%), 안철수(2.5%), 황교안(1.6%), 유승민(1.4%), 노회찬(0.9%), 김구·윤석열(0.8%) 등의 순이었다/이명선 기자 프레시안

 

 

경향 장도리 11.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