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과 보수 카르텔, 文 정부 개혁의지 있나”
[인터뷰] ‘안종필 자유언론상’ 김이택 한겨레 대기자… “기울어진 언론지형 바로잡기가 진짜 개혁”
표정 변화 없는 독설과 촌철살인이 보수신문에 작렬한다. 김이택 한겨레 대기자는 지난 7월 첫 선을 보인 한겨레 유튜브 ‘김이택의 저널어택’에서 검찰을 비호하는 보수신문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정략적 목적에 따라서 진실을 뒤틀고 왜곡하면서 저널리즘 운운하고 진실의 수호자를 자처할 수 있겠어요? 마음대로 프레임 짜고 본말을 뒤집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오만방자한 태도. 아마도 조중동 같은 유력 언론들이 스스로를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한겨레 유튜브 ‘김이택의 저널어택’ 1회)
김이택 기자는 1986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디뎠다. 한겨레가 창간한 1988년 한겨레에 입사한 베테랑 기자다. 2014년에는 편집국장에 임명됐고, 지금은 대기자로 활동한다. 김 기자는 사회부 차장이던 2001년 3월부터 두 달 동안 25차례 70건의 시리즈 기사를 기획, 보수언론을 집중 해부했다. 기획 제목은 ‘심층해부 언론권력’이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신문에 대한 감시에 천착한 그는 지난 10월 제32회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했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은 19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다 해직된 동아일보 언론인들이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기자들이 가장 영예롭게 받아들이는 기자상 가운데 하나다. 심사위는 김 기자에게 “팩트에 기반한 논리로 보수언론·세력 문제점을 누구보다 통렬하게 지적하는 등 언론개혁 이슈를 꾸준히 제기해온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에서 만난 김 기자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은 내게 너무 과분한 상”이라며 “언론 신뢰도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있다. 한겨레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언론 신뢰도가 꼴찌인 상황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도 염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유튜브가 지난 7월부터 제작하고 있는 ‘김이택의 저널어택’은 그 이름처럼 언론, 특히 보수신문과 종편을 감시한다. 이들이 어떤 프레임으로 사실 왜곡하고, 보수 지지자들을 선동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김 기자는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언론 지형’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20년 전 한겨레가 제기한 어젠다였던 ‘보수신문과 카르텔 개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를 보도하던 시기는 정부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나설 때였다. 김 기자는 “김대중 정부의 언론 정책은 박지원 비서실장(현 국가정보원장)으로 상징되는 ‘캐시앤 위스키’였다. 술과 밥, 촌지로 기자 로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며 “언론시민단체는 여기에 비판적이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와 조중동 관계에 문제 의식이 컸다”고 말했다.
김 기자 설명에 따르면, 당시 언론계는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김영삼 정부처럼 ‘칼로 물 베기’, ‘뒤로는 다 깎아주는 밀실 흥정’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를 받아들인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말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나 보수신문 저항에 부닥쳤다. 미디어면을 신설한 조선일보는 “한겨레·대한매일 등 5개, 97~99년 법인세 납부 0”, “한겨레·대한매일 무가지 비율 높다”, “대한매일·한겨레 앞다퉈 조선·동아 공격” 등 기사로 비판 언론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김대중 정부의 세무조사에 반발한 조선일보가 한겨레에도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며 “우리도 (조선일보 공격에) 준비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일보 태도는 적반하장이었다. 심층 기획 보도로 한국 언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한겨레 보도는 보수신문이 받는 특혜와 사주 권력, 그리고 불법과 비리를 겨냥했다. 조선·동아일보 반대에 세종로 앞 도로가 좁아졌고 지하철 노선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둔갑한 사례, 시유지를 무단으로 차지한 뒤 주차장 진입로로 썼던 코리아나호텔, 주변 임야를 무단으로 훼손한 방씨 일가 묘역 등의 보도였다.
그 가운데서도 김 기자가 꼽는 건 ‘보수신문과 친일’이었다. 김 기자는 “한겨레는 주요 일간지 가운데 최초로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렸던 기사(1940년)를 찾아 보도했다. 동아일보 사주 친일 문제를 지적한 보도는 소송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며 “두 신문이 친일 문제에 진정성 있게 사과한 걸 본 적 없다. 친일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비판했다.
김 기자의 현재 걱정과 문제의식은 ‘기울어진 언론 지형’이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더 악성이 됐다. 그때는 ‘안티조선운동’ 등 언론 지형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활발했다. 지금은 언론 지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소수에 가깝다. 현 정부나 언론시민사회는 서울신문·YTN 지분 매각, 수신료 인상, 가짜뉴스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이슈를 제기할 뿐 언론 지형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김 기자는 “기울어진 언론 지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언론의 민주주의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며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를 대조했다. 조중동 신문권력이 종편이라는 물적 토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이 교체되면 공영방송들의 보도·제작 자율성이 결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공영방송의 왜곡편파 보도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문재인 정부를 잇는 정권이 들어선대도 지금처럼 보수신문이 ‘1단짜리 기사를 1면 톱으로 세우는’ 왜곡·편파 보도를 이어간다면 각종 개혁은 정말 어려워질 것이다. 조중동이 종편이라는 물적 기반까지 공고히한 현재, 상대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취약하다. 정권이 바뀌어 KBS 사장이 교체되면 보도·제작 논조가 지금과 같겠나?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다. 가뜩이나 종편은 성장하는데 지상파들은 다 적자다. 물론, 미디어 환경 변화 영향도 있지만 종편 매출 상승에 비해 지상파는 뚝 떨어졌다. 지금도 구조조정입네, 사옥매각입네 하는데 이대로면 공공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틈을 수구 언론이 놓칠리 없다. 장기적으로 일본식 보수장기 집권기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런 차원의 고민을 현 정권과 청와대가 하고 있는지,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김 기자는 지난해 10월 칼럼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지검장 시절 보수언론 사주를 만난 사실을 비판하며 ‘조선일보’를 지목한 바 있다. 윤 총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만남 논란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보수사주 회동 건으로 윤 총장을 감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방 사장은 사장일 뿐이다. 법적 권한은 사실상 없는데도 여전히 사내 및 보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주 생각과 다른 논조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며 “윤 총장과 방 사장 만남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 발행인도, 편집인도 아닌데 왜 만났을까. 사적 목적이었다고 해도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김 기자는 남은 언론 생활을 지금처럼 ‘보수 카르텔’ 비판과 견제로 채울 전망이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부터 보수 기득권 체제가 우리사회 물적 기반과 담론시장을 장악해왔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득권 카르텔’”이라며 “조중동에 대한 비판이 관성적으로 비쳐지거나 받아들여질 수 있다. 조중동 비판에 보다 설득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관련 비평 콘텐츠도 독자들이 덜 지루하도록 다듬어야 한다. 누군가는 조중동 비판에 염증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신문권력을 중심으로 한 우리사회 보수 카르텔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
검사 실명 공개한 박훈 변호사 “XXX 조선일보야” 맹비난 왜?
김봉현에 입장 바뀐 조선일보 비난… “내가 김봉현 만나 뒤집었다”
박훈 변호사가 30일 ‘라임자산운영 사태’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술접대를 받았다는 검사 실명을 공개하며 조선일보를 맹비난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이 친구가 김봉현이 접대했다는 검사 중 한 명이다. 공익적 차원에서 깐다. 저 쓰레기가 날 어찌해보겠다면 그건 전쟁이길 바란다”면서 나아무개 수원지검 안산지청 부부장검사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검사 술접대 의혹은 김 전 회장이 지난 16일 밝힌 1차 옥중 입장문에서 시작됐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검찰 전관 출신 A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 3명에게 1000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3일 뒤 페이스북에 김 전 회장의 입장문을 공개하고 문건에 등장하는 인사들 실명을 공개한 바 있다.
▲ 10월30일 박훈 변호사 페이스북.
박 변호사는 30일 페이스북에선 조선일보도 비난했다. 박 변호사는 “X 같은 조선일보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일보를 겨냥해 “김봉현이 라임 전주, 몸통 주장하면서 강기정 등 청와대 폭로한 신성한 입이 사기꾼이 돼 있으니 얼마나 애통하겠느냐”고 비꼬았다.
박 변호사는 “내 친히 말하마. 김봉현은 내 금호고 8년 후배고 내가 9월21일 걔를 설득해 받아 내고 모든 것을 내가 뒤집었다. 내가 이 사태에 주범이다. XXX 조선일보야. 내가 주범이다”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사설에서 김 전 회장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주장을 인용해 “김(봉현)씨가 재판에서 직접 증언한 말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사설 제목은 “‘靑수석에 5천만원’ ‘터지면 다 죽어’ 정권 ‘펀드 게이트’ 열리나”였다.
이처럼 김 전 회장의 청와대 로비 주장엔 힘을 싣던 조선일보는 23일 사설에서 “사기꾼과 與·법무장관이 한 팀으로 일하는 대한민국”이라며 “(김봉현씨는) 법정에서 강(기정) 전 수석 상대 로비를 먼저 털어놓고선 며칠 뒤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사들이 조작했다고 한다. 횡설수설이다. 누군가 김씨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씨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
30년 흘러도 변하지 않는 문제... 검찰에 지금 필요한 건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재정비 없이 집단행동? 선후망각
일부 검사들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인사권 문제나 라임사건 수사지휘권 등에 맞서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사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마치 박근혜 정부의 최아무개씨 인사농단 느낌이 든다"(이복현 대전지검 검사),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검사들을 감찰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냐?"(최재만 춘천지검)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적지 않은 검사들이 이런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돌아볼 대상은 '검찰 밖'이 아니라 '검찰 안'이다. 라임사건으로 구속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입장문에서 검찰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또다시 제기됐다. 그래서 검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김봉현은 10월 16일 공개된 1차 입장문에 "2019년 7월경 A변호사와 검사 3명 술접대" "청담동 소재 룸살롱 1000만 상당"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검사 1명 얼마 후 라임 수사팀 합류"라고 한 다음 "특수부 검사들로 이루어졌고, 소위 말하는 윤석열 사단-삼성 특검 등 함께 근무"라고 덧붙였다.
김봉현은 체포 1개월 뒤인 지난 5월 말 서울 남부지검에서 겪은 일과 관련해 "2020. 5월말 서울 남부지검 도착 - 전에 술 접대 자리에 있던 검사가 수사 책임자였음"이라고 쓴 뒤 "A변호사 수원구치소 면회 와서 서울 남부지검 가면 아는 얼굴 봐도 못 본 척 하라고 함"이라고 썼다.
김봉현의 입장문에 거론된 일은 검찰개혁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의 일들이다. 검찰개혁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상황 속에서도 검사들이 구태의연한 술접대를 받은 게 사실이라면, 검찰개혁에 대한 해당 검사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그들을 방치하는 검찰 조직에 대해서도 의심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검사 스폰서 사건' 이전부터... 검찰의 고질적 문제
▲ 1992년 8월 10일 "동아일보" 9면에 실린 "법조계 실상과 과제"(30) 기사. 판검사들이 받는 접대 문화에 대한 취재 기사다.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동아일보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술접대·성접대로 201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사 스폰서 사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알코올 중독 이상의 '술접대 중독'에서 대한민국 검찰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6월항쟁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검사 술접대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항쟁 5년 뒤에 발행된 1992년 8월 10일 치 <동아일보>에 '법조계 실상과 과제' 시리즈의 30번째로 '판검사 물주 자원 향응 공세'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서두에서 "판검사와 룸살롱과 골프"라고 한 뒤 "표현은 좀 야릇하지만 세 가지의 상관관계는 오늘날 판검사들의 공사(公私) 생활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한다.
기사에는 P시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한 K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K변호사는 시국사건 변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여느 변호사에 비해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변호사에게도 '술값 좀 내라'는 연락이 조직폭력배도 아닌 검사한테서 주기적으로 왔다고 한다.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는 P검사가 검찰 정기인사 때만 되면 미안한 표정으로 '전출입하는 검사들과 회식을 해야 하는데'라며 난처한 표정을 짓곤 한다는 것. 이는 바로 술자리 스폰서가 돼 달라는 의미다. 그래서 P검사가 P시에 근무한 2년여 동안 모두 대여섯 차례 정도 고급 술집에서 술대접을 했다고 한다. 한번 접대에 든 비용은 대략 50~1백만 원 정도."
P검사한테만 2년여 동안 대여섯 차례 대접했고, 매회바다 50만~100만 원이 들었다. 2년여 동안 최저 250만 원에서 최고 600만 원의 술값이 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공장 지대인 서울 영등포에서 '시다'로 불리는 미숙련공의 초봉은 15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K가 P검사를 접대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다. P에게 들어간 술값은 미숙련 노동자가 1년 내지 4년간 받을 봉급이다. 시국사건을 주로 맡은 K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다.
P검사는 K변호사보다 돈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술값을 부담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K에게 부담을 씌운 이유가 있었다. P검사는 "남들 하는 것처럼 아무나 물주로 데려가면 공짜로 술대접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유착될 소지가 크고 남의 이목도 신경이 쓰인다"고 K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같은 법조인한테 얻어먹는 게 안전해서 K 당신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P검사가 그런 '용단'을 내리게 된 것은 검찰의 부조리에 대한 나름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선배 검사들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얻어먹는 모습이 개탄스러워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K에게만 부담을 씌웠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P검사는 K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이따금씩 선배 검사들을 따라 고급 룸살롱에 가보면 유흥업소 주인이나 사업가 등 물주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선배 검사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업소 사장이나 사업가들이 검사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거슬려서 자신은 그들이 아닌 동료 법조인에게 술값을 부담시키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검사 술접대로 인한 부조리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축적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검사 봉급이 술값 낼 정도에도 못 미쳤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술값을 스스로 내지 않고 남에게 부담시킨 것은 일부 검사들이 자기 봉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싼 술집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비싼 술집에 가는 것이 꼭 비싼 술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 사람을 원하기 때문인 경우가 잦다.
술접대가 낳는 부조리
▲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다. 한 건설업체 대표가 수십명의 검사들에게 금품, 향응을 접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사진은 2010년 4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 맨 오른쪽에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남인순 의원이 보인다. ⓒ 유성호
검사에 대한 술접대는 성접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말고도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검찰의 불법수사, 기소권 남용, 제식구 감싸기, 짜맞추기 수사, 정치 편향적 수사 같은 여타 부조리와는 결을 달리하는 또 다른 위험성이 술접대 문제에 들어 있다.
공직자의 일원인 검사는 고용주인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가 검사에게 봉급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검사가 열심히 직무를 수행하는 동기 중 하나도 이 같은 금전적 대가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검사가 국민과 정부가 아닌 제3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물질적 이익을 받거나 봉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게 되면, 검사는 자연스레 제3자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상당히 커진다. 국민뿐 아니라 제3자도 검사의 실질적 고용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검사 직무의 공정성을 위협할 만한 조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술을 얻어먹었지만 종속된 쪽은 내가 아니라 술값 낸 쪽'이라고 변명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훨씬 더 부조리한 일이다. 제3자한테 지속적으로 얻어먹고도 제3자를 지배한다면, 이 관계는 갈취 관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흔히 '조폭'이라고 부른다.
사실, 남한테 지속적으로 얻어먹고도 남을 지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부 검사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잘못된 느낌이기 쉽다. 자기한테 굽실거리며 술을 사고 용돈을 주는 물주를 보면서 검사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관계로부터 실질적 이익을 얻는 쪽은 검사가 아닌 물주인 경우가 많다. 물주는 자신이 제공하는 술값과 용돈 이상의 이익을 얻고 있을 수도 있다.
얼굴 인상은 사람의 살아온 길을 상당부분 반영한다. 주도(酒道)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렇다. 술을 대하는 자세는 한 인간에 관한 정보를 적지 않게 알려준다.
선후망각
상당수의 대한민국 검사들은 바로 이 문제에서 도덕적 흠결을 노출했다. 누구와 술을 마셔야 하는지,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누가 술값을 내야 하는지 등과 관련해 지탄 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다. '주도'를 모르는 검사들이 한둘이 아니란 이야기다.
일반적인 경우, 술값은 사회적으로 좀 더 혜택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내게 된다. 상당수 검사들은 '우리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자부심에 걸맞은 공직자가 되려면, 술값은 자기 스스로 내는 품위를 함양할 필요가 있다. 김봉현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1000만 원짜리 술을 얻어먹는다면, 사회를 이끌어갈 만한 품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김봉현 입장문으로 인해 한국 검찰의 고질적인 '품위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이 시점에서, 검찰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사안의 진상을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검찰은 자신들의 '주도'와 도덕성을 재정비하고 집단적인 자성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밖을 향해 집단행동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일의 선후를 망각한 일이다.
김종성(qqqkim2000) / 오마이뉴스
신음하는 지리산 (2)
지리산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깔겠다는 하동군의 발상에 일단의 이상징후가 생겼다. 지난 5개월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산림관광 상생조정기구가 회의를 열어 타협점을 모색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한 데 이어 조정위원으로 활동해온 한 환경단체 대표가 갑자기 사퇴를 선언함으로써 국면이 이상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당사자는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로 녹색연합과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과 함께 산악열차 건설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반대투쟁의 선봉 역을 자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다. 흘러나온 전언에 기대어 추론하자면 기재부가 '한걸음 모델'로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민간 건설업체와 자치단체가 협약을 맺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단계에서 자칫 들러리 악역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우가 작용했을 법하다.
18명의 조정위원 중 한 명이 사퇴했다 하여 회의가 중단되거나 기구 자체의 실행력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후 서울서 개최되는 6차 회의는 그대로 진행될 것임이 틀림없다. 나머지 환경단체 대표자들은 계속 참여 의사를 보여 약간의 파열음만 울렸을 뿐 전체 맥락은 끊어지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찻잔 속 태풍일지 추이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예삿일일 수는 없다. 표제 그대로 상생의 의미를 드높이자면 내부 공론화 명분을 살려 찬반양론을 만족시키는 최대공약수를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반대 진영 대표자가 진행과정의 공정성에 이의를 달아 중도 이탈을 결행한 지경인데 너 살고 나 살기가 아닌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일방통행이 비공개의 커튼 뒤에 숨어서야 할 일이 아니다. 만일에 나머지 환경단체 대표자들마저 사퇴 대열에 동참할 경우 그 조정기구는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재부가 환경 문제를 덜 중요하게 여긴 채 자치단체의 경제 논리를 지지하는 입장을 고집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행정만능주의는 통과 절차의 수단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되 주민 간, 또 관련 진영 간 갈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유관 부처인 환경부와의 사전 협의 과정도 거쳤는지, 거쳤다면 환경부의 의견은 무엇인지 이해난이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일을 두고도 아직까지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관광객을 유인하여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지론과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일반론이 맞서 합리적 타결점이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하물며 산악열차야 훨씬 더 무거운 주제다. 중심처인 형제봉과 청암면 일대가 국립공원 경내는 아니라 할지라도 지리산 산역 중 가장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터널이 뚫리고 모노레일과 케이블카로 연결되는 산악열차가 달리는 굽이굽이에 지리산의 신음이 울려 퍼질 것이다. 남겨둬야 될 만한 자연유산은 되도록 많이 남겨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재부와 하동군이 원점에서 재접근해 볼 만한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남도민일보 윤석년 논설고문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만 시끄러운 검사들... 조국의 돌직구
언론이 부추긴 '검란'과 '검사 사표' 국민청원
"변호사 출신으로 검찰을 잘 알고, 그래서 검찰개혁 카드를 들고나온 노무현을 좋아하는 검사들은 없었다(...). 특히 검찰로선 가장 예민한 때가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다. 물론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검찰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검찰 내에 세력들이 바뀐다. 그게 바로 라인이다."
영화 <더 킹> 속 조인성이 연기한 특수부 검사의 내레이션이다. 2009년 '논두렁 시계' 보도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떠오르게 만든다. 날이 갈수록 검찰개혁의 당위를 역설하는 교본으로 자리매김 중인 이 영화 속 주인공 검사는 지방 검찰청 형사부에서 근무하며 자장면 먹고 야근하면서 고생고생하다 우연한 기회에 전략수사부(특수부)로 영전한다.
그 이후로는 거침이 없다. 정치권력을 깨부수며 부와 권력을 얻은 대신 부정과 부패에 물들어 간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어느 쪽이 차기 대선을 잡느냐다. 무당을 찾아 굿판을 벌일 정도다. 허나 영화 속 검사들의 수사기법(?)은 현실을 빼다 박았다는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정우성, 조인성이 연기한 영화 속 특수부 검사들의 전략은 이렇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기본이다. 기득권, 고위층의 약점을 틀어잡고는, 자기 유불리에 따라 정권 유력 관계자들을 쥐고 흔든다. 정권재창출에 어떻게든 기여하고자, 혹은 정권교체를 위해 쟁여 놓은 약점과 정보를 적극 활용한다. 인지수사야말로 특수통 검사로서의 능력을 검증받는 바로미터다. 기소와 불기소를 선택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은 가족을 포함한 사익과 함께 검사동일체와 제 식구 감싸기로 대변되는 조직의 이익이다.
▲ 영화 <더 킹> 스틸 컷 ⓒ (주)NEW
아울러 범죄자의 증언도 조직의 이익과 영전을 위해 조작한다. 이슈를 이슈로 덮기 위해 기자도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언론 플레이를 적극 활용하고, 이 또한 수사 기법의 일환으로 평가 받는다. 검찰 조직에서 흥망성쇠를 경험한 주인공은 끝내 국회에 진출하고자 정치권에 손을 내민다. 이런 디테일을 흥미롭게 그린 <더 킹>을 두고 영화 개봉 당시 임은정 검사는 본인 페이스북에 이런 평을 남긴 바 있다.
부패한 정치검사들의 (혹 있다면) '이너써클'에는 제가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알 순 없지만, 저 지경은 아닐 텐데…. 그리 갸웃거리다가도 검찰 출신인 김기춘, 우병우 등을 떠올려보면,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비난받은 숱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뭐라 할 말이 없어 관객들과 같이 웃으면서도 씁쓸하네요.
<더 킹>과 정치검사들
<더 킹>의 개봉은 2017년 1월이었다. 맞다. 국정농단 사태가 나라를 뒤흔들던 그때였다. 당시 대표적인 정치검사의 이름은 김기춘, 우병우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흘렀다. 검찰총장 두 명이 퇴임했고, 지난해 8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한데 국민들에게 회자하는 대표 정치 검사들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영화 속 검사들의 행태는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러난 사실과 제기된 의혹만 놓고 봐도 이 정도다.
우선 라인 문화. 윤석열 라인, 한동훈 라인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지난해 윤 총장은 취임 직후 인사에서 특수통 검사들을 주요 보직에 등용했다. 반면 윤 총장 취임 전 위 기수 선배들은 줄줄이 사표를 냈다. 사문화됐다던 검사동일체 문화도 일부 검사들에겐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듯 보인다.
지난해 지도부를 포함해 야당 의원들이 줄줄이 기소된 패스트트랙 수사는 한없이 늦어진 반면 조국 일가족 수사에 이어 청와대 수사까지 일관성(?)을 보인 이 또한 "중요한 수사는 직접 지휘한다"던 윤 총장이었다. 나경원 전 의원이 자녀 관련 의혹 등으로 시민단체로부터 10번 넘게 고발될 동안 단 한 차례도 피고발인 조사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윤석열 검찰이었고.
마찬가지로 조국 인사청문회 정국 당시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 국회에서 까발린 의원들 다수가 검찰 출신 야당 의원들이었다. 인사청문회 당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소환조사 없는 무리한 기소 사실을 인지한 듯, 당시 조국 후보자에게 사퇴를 종용한 이들 역시 이들 야당 의원들이었고.
10년 전 검사 출신 김두식 교수는 <불멸의 신성가족>이라는 저서에서 변호사·검사·판사를 포함한 법조인들의 카르텔을 제목처럼 '불멸의 신성가족'이라 칭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검사들은 '검사 가족'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윤 총장은 이러한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수년 동안 수면 아래 잠겨있던 윤 총장 장모와 아내 관련 의혹 말이다.
'조국처럼 수사하란' 요구가 난무하게 한 것 또한 결과적으로 윤 총장 본인이라 할 수 있다. 총장 가족 사건을 일선 검사가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그 수사를 윤 총장 본인이 지휘해도 되겠느냐는 의문을 근거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합법적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검사 가족의 같은 뜻 다른 표현일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은 어떤가.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이자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는 구속 수감된 채널A 이동재 기자와 돈독한 사이임을 자랑하듯 한 달 동안 수십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검사는 특수부 시절 언론 플레이에 능하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이 한동훈 검사의 법무부 감찰을 놓고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맞서려고 검사장 회의까지 소집하는 열의를 보였다.
최근 정국을 뒤흔든 김봉현 전 라임 회장의 폭로전도 빼놓을 수 없다.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향응을 접대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여야 인사에 대한 '선택적 수사'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옵티머스 펀드 사건과 관련해선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 총장이 불기소 처분을 승인한 것을 두고 부실 수사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한데, 과연 이 모든 것이 특수통 검사들만의 문제이고 의혹일까. 연수원 동기가 변호인이라서, 후배 검사가 연루돼서 선택적 기소와 선택적 수사,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일선 검사들의 이름 역시 언론보도를 통해 적잖이 회자하고 있지 않은가. 일부 일선 검사들 역시 검사동일체, 제 식구 감싸기, 검찰 가족 문화에 길들여지고 특권의식과 검찰 무오류 신화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를 검사 본인들이 스스로 증명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부추긴 '검란', 조국의 돌직구
한쪽에선 '디지털 검란'이라며 부추긴다. 소셜 미디어에선 '키보드 연판장'이란 평가절하도 적잖다. 지난달 28일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이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연일 '검란'을 부추기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들은 하루하루 댓글을 단 검사들의 숫자를 세고, 댓글 내용을 실명 보도하며 추 장관과 일선 검사들과의 대립각을 경쟁하듯 부각하는 중이다.
추미애 장관이 페이스북에 이 검사에 대한 촌평을 남기자, 다음날(29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인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는 "장관님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은 어떤 것"이냐며 "저 역시 커밍아웃하겠다"라고 나섰다. 일부 언론은 최 검사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라는 사실만을 강조했다. 다음날 또 다른 부장검사 역시 추 장관의 인사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최모 씨(최순실) 인사 농단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하필, 김학의 전 차관이,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연이틀 7년 만에, 13년 만에 사법부로부터 단죄를 받던 시점이었다. 보다 못했는지, 30일 임은정 검사도 내부 게시판과 페이스북에 "우리 검찰로서는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며 장문의 글을 통해 자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일부 일선 검사들은 "정치 검찰" 운운하는 비판의 댓글을 달았다.
실제 서명한 연판장도 아닌 인터넷 댓글로 의견을 표명 중인 일부 검사들의 행태가 일반 국민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검사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거론하고 '(판사 출신이자) 정치인 출신 장관'을 비판하려면, 국정감사에 출석해 공직자 윤리 위반에 가까운 하극상 발언이나 정치적인 언행을 이어간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이 먼저여야 했다
▲ 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10.29 ⓒ 연합뉴스
어디 그뿐인가. 앞서 거론한 대로, 취임 이후 윤 총장의 행보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정치가 검찰을 덮은 것'이 아니라 '정치검사가 검찰을 덮은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검사들은 없었다"던 <더 킹> 속 대사처럼, 왜 하필 검찰개혁을 들고나온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만 검사들이 반기를 들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지 검사들이 스스로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국 전 장관이 1일 페이스북에 이에 대해 대신 답했다. 조 전 장관은 최근 조명된 이명박씨의 BBK 사건, 김학의 전 차관의 성폭력 사건, 성폭력 범죄 당사자인 진동균 검사에 대한 검찰의 과거 사직 처리를 열거한 뒤 검사들이 당시엔 왜 침묵했는지 묻고는 이런 자답을 남겼다.
이상의 사건에 대하여 시민들의 비판이 쌓이고 쌓여 진실이 드러나고 마침내 유죄판결이 난 지금, 자성의 글이나 당시 수사책임자 및 지휘라인에 대한 비판은 왜 하나도 없나요? 지금도 위 결정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나요? 검찰은 무오류의 조직이라는 신화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상의 세 사건 외에도 많은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다 밝혀야 합니다.
한편, 과거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또는 민정수석이 비공식적 방법으로 내린 수많은 수사지휘에 대해서는 반발하기는커녕 "대선배의 지도편달"이라며 공손히 받들었지요? 왜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교정하기 위해 공식적 지휘를 했을 때만 '검란'이 운운되는 것인가요?
돌이켜 보라. 윤 총장이 "쿨했다"고 표현한 MB 정부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 검란 보도가 있었는지를.
조 전 장관만이 아니었다.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논란에 대해 "검찰 출신이 법무부 장관할 때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지휘감독권 행사할 필요도 없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두고 조 전 장관은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 외, '선택적 순종'과 '선택적 반발'의 행태"라 표현했다. 일선 검사였던 <더 킹>의 조인성이 그랬다. 영전과 사익을 위해 조직문화에 순응했고, 부정과 부패를 눈감았으며, 그러한 침묵 자체가 (정치)검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언론이 '검란'의 주체라 띄우고 있는 검사들은 과연 이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 총장이 검찰을 정치로 덮어 망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정치검찰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정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감찰 중에 대전 방문해 정치하고, 그를 추종하는 정치검찰들이 언론을 이용해 오히려 검찰개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는 없이 오히려 정치인 총장을 위해 커밍아웃하는 검사들의 사표를 받아주십시오. 검찰개혁의 시작은 커밍아웃하는 검사들의 사표를 받는 일부터 시작입니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커밍아웃 검사 사표 받으십시오!'란 청원 내용이다. 채 사흘도 못 돼 청원 수가 32만 명을 넘었다(2일 오후 2시 현재 324,793명)했다.
이렇게 검찰 개혁에 공감하는 국민이 정치 검찰들의 퇴출을 요구하는 중이다. MB를, 김학의를 기소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국민 여론의 힘이었다. 법률에 의해 제한된, 현재 전체 검사의 수가 2200여 명이다. 이러한 여론 앞에, 고작 전체 검사 중 10분의 1이 게시글도 아닌 댓글을 단 것을 두고 '검란'이라 부치기는 언론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요, 의도가 의심되는 침소봉대라 할 수 있다. /하성태(woodyh) / 오마이뉴스
‘무능 정부에 더는 안 속아’…유럽서 격화되는 ‘2차 봉쇄 반대’ 시위
“첫 봉쇄 때 약속한 경제 지원 등 없어” 정부 실망에 거리로
각국서 폭력 충돌…매체들 “시민들 생존 위협 느껴 시위”
스페인선 투석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발표한 2차 봉쇄안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셀로나 |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피노 에스포지토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정부의 2차 봉쇄조치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갔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26일부터 11월 한 달 동안 오후 6시 이후 상점들의 영업을 제한하는 새 규제조치를 발표했다. 그가 시위에 나간 이유는 정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첫 제한 조치가 시행될 때만 해도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감염병 확산부터 막자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지원금은 나오지 않았고, 감염률은 치솟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힘든 11월을 보내야,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또 속지 않겠다”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두고 정부를 향한 불신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10월 말이나 11월부터 시행되는 2차 봉쇄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2021년 5월까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스페인에선 시위가 마드리드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말라가, 비토리아, 발렌시아, 부르고스 등 전국적으로 번졌고, 일부 시위대가 불을 지르는 등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탈리아에서도 시위대가 명품숍에 돌을 던지고,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충돌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지역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 이탈리아인의 75% 이상이 이번 겨울에 거리에서 더 많은 폭력과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유럽 언론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정부의 무능력을 실감한 시민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의 유명 언론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가디언에 “첫 봉쇄조치 때는 비상사태라는 것에 동의하고 연합했지만, 모아놓은 돈은 다 떨어지고 정부의 시스템은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사람들이 이제 속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전역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사람들은 어차피 경제적으로 파산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 중앙정부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스페인은 중앙정부가 봉쇄 범위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두고 지방정부와 줄곧 마찰을 빚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리스본,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밀라노 등 9개 도시 시장은 중앙정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유럽연합(EU)에 복구기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정치학자 데이브 시나르데는 가디언에 “코로나19가 각 나라별, 지역별 양극화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뤼셀타임스는 “유럽 지도자들의 대응이 각국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정부가 내놓는 조치를 효과는 없고 시민들만 괴롭게 하는 ‘처벌’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일 기준으로 유럽에선 27만9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지난주 전 세계 확진자 중 절반 이상이 유럽에서 발생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국민의힘 “‘성범죄보궐 선거’에 대한 입장 文대통령 밝혀야”
국민의힘 논평 쏟아내며 강경비판, 정의당 “책임정치 기대한 민주시민에 모욕”, 국민의당 “당원투표 뒤에 숨은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중대한 사유로 직을 잃어 재보궐선거를 할 경우 공천하지 않겠다’는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야당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2일 당원투표 결과 약 86%가 당헌개정에 찬성했다며 당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성일종 비대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성범죄 보궐선거’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며 “민주당 당헌에 나와 있고 문재인 대통령 혁신의 상징이었던 무공천 규정을 ‘혁신, 혁신’하면서 뭐하러 만드셨느냐”고 말했다. 그는 “당원투표는 뭐하러 하는 것이냐”며 “당원투표하면 통과될 것이라는 것 모르는 국민 있느냐”고 비판했다.
김미애 최고위원도 “문 대통령은 5년전 경남 고성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보궐 치르자 ‘새누리당이 책임지고 사과해야죠’라고 발언하며 수십억 (선거)비용이 국민 부담이라며 질타했다”며 이번 당헌개정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물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30일 허청회 부대변인의 “민주당의 ‘혁신 당헌’ 파기,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 지난달 31일 김예령 대변인의 “국민은 이낙연 대표의 답을 기다린다”와 “민주당의 서울·부산시장 공천은 3차 가해다”, “‘문재인 조항’, 대통령은 응답하라”, 2일 배준영 대변인의 “이제 민주당 후보에 대한 투표가 피해자에 대한 ‘4차 가해’다” 등의 논평을 쏟아내며 서울·부산시장 공천을 결정한 민주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이 1차가해와 이를 두둔한 2차가해에 이어 당헌을 개정하면서 공천을 결정하기로 한 것을 3차가해,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는 것을 4차가해로 규정했다.
정의당에서도 민주당의 ‘말바꾸기’를 비판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말바꾸기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당원들에게 책임을 미룬 민주당 지도부의 비겁한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투표율 26%, 투표권자의 3분의1이 되지 않은 상황으로 당규상 의결정족수도 차지 않았는데 의결 절차가 아니라 의지를 묻는 전당원투표이기에 괜찮다는 변명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잇따른 성비위 앞에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말했던 것은 그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라며 “민주당은 끝없는 2차 가해 속 피해자가 방치된 현실에 일말의 책임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오전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도 “정치적 손익만을 따져 손바닥 뒤집듯 쉽게 당의 헌법을 바꾸는 것을 당원 투표라는 미명으로 행하는 것이 어디 제 얼굴에만 침을 뱉는 것이겠습니까”라며 “정치에 대한 신뢰, 정당의 책임정치를 기대한 많은 민주시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역시 민주당을 비판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2일 “당원투표 뒤에 숨어버린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한다”는 논평에서 “민주당은 전임시장들의 성추행을 합리화 시킨 셈이자, 당헌으로부터 양심과 도덕을 삭제한 무도한 정당이 됐다”며 “민주당이 명분 삼고 있는 공당의 책임정치가 얼마나 근거 박약하며 비상식적인지 국민들의 단호한 심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차박' 붐에 해안가 점령한 캠핑카들…지자체 "제발 야영장에서" 호소
↑ 캠핑용 차량 주차장 장기 사용을 제한한다는 현수막이 설치된 강릉시 경포 호수공원에 캠핑카들이 주차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캠핑카들이 강원 동해안으로 몰리면서 지방자치단체가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강릉시 경포해변 인근의 호수공원 주차장은 캠핑카들이 줄지어 있어 주차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45살 시민 박모씨는 "피서철이 끝나면 떠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캠핑카들이 장기간 서 있다 보니 주차장 이용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된다"고 귀띔했습니다. 시민의 불만이 이어지자 강릉시는 캠핑용 차량은 공영 주차장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습니다.
또 주말에는 단속반을 편성해 장기간 주차 중인 캠핑카에 이동 조치해달라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속 활동에도 공영 주차장을 장기간 차지하는 캠핑카는 근절되지 않는 게 지자체의 고민입니다.
강릉시 경포 호수공원에 캠핑카들이 주차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강릉의 또 다른 해변은 피서철이 끝난 뒤 주차장을 폐쇄했지만, 백사장 가장자리를 따라 캠핑카들이 여전히 늘어서 있습니다. 해당 주민센터는 '야영(차박), 취사는 인근 야영장에서 즐겨 주세요. 제발'이라는 현수막까지 내걸고 협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강릉뿐만 아니라 동해시 등 경치 좋은 동해안 해변을 따라 캠핑카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지자체는 단속 근거가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캠핑카 차고지 증명제가 실시된 올해 3월 이전에 구매한 차량은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또 캠핑카들이 승합차나 화물차로 구분되다 보니 주차공간을 장기간 사용해도 강력하게 단속하기 어렵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천재를 꼽는다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면 키아라의 ‘Numb’을 멀리하라. 〈송창식 송북〉은 거장을 향한 말로의 기품 있는 헌사다.
송창식 송북〉은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송창식(사진)의 음악을 재해석한 앨범이다.
키아라 〈릴 키위(Lil Kiiwi)〉(2020)
첫 곡 ‘소 식(So Sick)’에서부터 창조적인 비트가 너울거린다. 그러면서도 멜로디는 지극히 대중적인데 ‘노골적’이라는 인상은 전혀 없다. 그러니까 “무조건 히트할 거야”라는 억지 기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주도하는 비트 메이킹, 팝적으로 빼어난 재능을 지녔음을 느끼게 하는 멜로디 등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곡이다. 기실 음반 수록곡 전부가 그렇다.
키아라(Kiiara)는 광고음악으로 먼저 유명해진 싱어송라이터다. ‘골드(Gold)’가 사과 회사(애플) 광고의 BGM으로 쓰여 주목받았고 2015년 빌보드 싱글차트 15위를 기록했다. 히트곡답게 ‘Gold’에는 키아라 음악의 유전자 정보 대부분이 새겨져 있다. 멜로디를 분절하거나 병합하고, 그 와중에 섬세한 비트 연출로 듣는 이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당시 애플워치 광고 타이틀은 ‘스타일’이었다. 과연, 이것은 키아라 음악의 정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 위를 키아라의 목소리가 관능미를 뿜어내며 흐른다. 그의 목소리 흡수력은 최고 수준이다. 발화하는 순간 내면에 “누구지?” 물음표를 세워주는 목소리라고 보면 정확하다. 비단 관능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기저에는 품격이 흐르고, 그리하여 자기만의 매혹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완성한다. 키아라의 음악은 보컬을 포함한 모든 소리의 총합, 즉 프로덕션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중 최고는 ‘넘(Numb)’에 위치한다. 경고부터 한다. 당신이 고3 수험생이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이 곡, 멀리하길 권한다. 나의 경우 곡의 반복되는 멜로디를 떨칠 길 없어 한동안 즐겁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준에 ‘Numb’의 단점은 딱 하나밖에 없다. 클린 버전이 발매되지 않았다는 거다. 침 튀겨가며 방송에서 소개하고 싶은데 이거 정말 방법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열과 성을 다해 쓴 이유다.
말로 〈송창식 송북〉(2020)
사람마다 판단은 다르겠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천재가 너무 많다. 조금만 잘한다 싶으면 천재, 국민가수 같은 수식이 자동으로 붙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과연 그럴까. 이것도 극단을 추구해야 겨우 주목받을 수 있는 시대상의 반영 아닐까. 오직 최상급만이 살아남는 나라다운 풍경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확실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게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만약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천재를 꼽는다면 누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거다. 내 대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송창식이다.
〈송창식 송북〉은 송창식의 위대한 음악을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재해석한 앨범이다. 의심의 여지없는 명곡들인지라 걱정이 앞섰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첫 곡 ‘가나다라’에서부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절정은 ‘토함산’에 위치한다. 근사한 코드 전환과 변주를 통해 재즈 편곡만이 해낼 수 있는 경지를 일궈냈다. ‘토함산’이 좀 낯설다면 송창식이 직접 참여한 ‘우리는’이나 ‘왜 불러’ ‘피리 부는 사나이’ ‘고래 사냥’ 같은 친숙한 곡을 먼저 들어보기 바란다. 거장을 향한 말로의 기품 있는 헌사에 당신도 슬그머니 동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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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은 액티브 펀드 매니저를 무시했다. 원숭이가 던진 다트 포트폴리오가 투자 전문가의 것보다 나았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최근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동학개미도 예외는 아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고기잡이가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아이슬란드.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전 세계를 넘나들던 외국자본은 이 북유럽의 섬나라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주식과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이 조그만 나라를 휩쓸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들이대며 대출 경쟁을 했고, 쉽게 돈을 빌린 국민들은 끝도 없이 오르는 자산시장에 투자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어부들은 더 이상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모두 금융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빅숏〉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또 다른 저서 〈부메랑〉에서 당시 “사람들이 모두 블랙·숄스 공식(옵션 가격을 산정하는 공식)을 배우고 있었다”라는 아이슬란드 수산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전한다. 지독한 증시 과열기의 한 풍경이다. 그 무렵 금융공학을 공부하던 아이슬란드 어부들을 이르는 별다른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동학개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팬데믹 선언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한 누적 순매수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참여가 늘어난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선언 직후 주가 폭락으로 인한 저가 매수 기회 발생. 둘째, 록다운으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늘어난 투자에 대한 관심. 셋째, 특히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로빈후드’ 등 온라인 거래 앱의 활성화.
개인투자자들은 펀드 등을 이용한 간접투자보다 자신이 직접 종목을 골라(stock picking) 투자하고 매입과 매도 시기(timing)를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투자 또는 액티브(active) 투자를 선호하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주로 단기차익을 노리고 단타 위주로 거래하며 위험을 무시하고 대박 수익률만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번엔 달라 보인다. 더 똑똑해졌다고 한다.
개인투자자들의 액티브 투자 전략은 성공적일 수 있을까? 경제학계에서는 꽤 오래 전에 제기되었던 문제다.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이 분야를 깊이 연구했던 바버(Brad Barber)와 오딘(Terrance Ode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액티브한 투자로 인해 엄청난 페널티를 물고 있었다. 가장 거래를 많이 하는 투자자들의 경우 수익률은 11.4%였는데 이는 시장수익률인 17.9%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였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종목의 75%를 매년 갈아치울 만큼 자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래 빈도가 높다 보니 거래비용이 상당했을 것은 당연하다. 논문은 성과가 저조한 이유를 잘못된 종목 선택이라기보다 잦은 거래로 거래비용이 늘어난 탓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거래량 증가로 인한 거래비용 상승은, 코스피지수를 쫓는 펀드나 인덱스 ETF(상장지수펀드. 거래소에서 보통주처럼 거래되는 펀드)를 사두고 오랫동안 투자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에서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계속된 연구에서 바버와 오딘 교수는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왜 그토록 액티브하게 자주 거래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이들은 투자자들의 자기 과신(overconfidence)에 주목했다. 자기 과신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남들이 알고 있는 정보보다 확실한 것이라고 믿는 심리적 편향을 말한다. 좋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 투자를 통해 이익을 실현해야 했던 것이다. 저자들은 자기 과신에 찬 투자자가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보다 거래를 더 많이 한다는 이 가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한 심리학 연구가 빛을 비춰주었다. 그 연구에 따르면 관련된 일이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자기 과신 편향의 정도가 남녀 간에 다르게 나타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예측 가능성이 낮거나, 피드백이 모호하며 더디고, 난이도가 높은 일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에게 자기 과신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가 바로 그런 분야였다.
그렇다면 주식 투자를 할 때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자기 과신이 클 것이다. 따라서 만약 남성이 여성보다 유의하게 더 자주 주식을 거래한다는 증거를 실질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자기 과신에 찬 투자자일수록 더 자주 거래한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기대한 대로였다. 남성 투자자는 여성 투자자보다 무려 45%나 더 자주 거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2.65%의 손실을 보고 있었는데 이는 여성 투자자들의 손실인 1.72%보다 월등히 큰 것이었다.
ⓒAP Photo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대표적인 가치투자자이자 장기투자자다.
시장을 이기는 투자는 없다
사실 이 같은 결과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주가가 정보를 빠르고 정확히 반영하는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에서는 사실상 ‘시장을 이기는’ 투자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시장에서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액티브 투자를 통해 시장수익률(예를 들어 코스피지수의 수익률)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꾸준히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주식 분석을 통해 투자할 주식들을 골라내거나 사고파는 타이밍을 조절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액티브 투자 전략은 헛된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굳이 시장을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시장을 따라가는 전략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해 패시브 전략이 훨씬 나은 투자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나 항공업, 자동차 주식 등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동학개미들은 최적과는 한참 거리가 먼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액티브 전략이 패시브 전략보다 열등하다면 동학개미들이 내고 있는 성과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많은 동학개미들이 액티브한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다지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누구에게든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성과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느냐다. 지속적으로 시장수익률 이상을 달성하는 투자자들을, 농구에서 백발백중의 슈팅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빗대어 ‘핫핸드(hot hand)’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런 투자자들이 존재하는지는 심리학계뿐 아니라 경제학계에서도 오래된 주제다. 김연아처럼 줄기차게 자신의 라이벌을 계속 이기는 선수가 주식시장에도 있을까? 만약 핫핸드들이 실제로 다수 존재한다면 이는 시장효율성에 대한 믿음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종목을 자주 교체해 투자하는 액티브 투자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대표적인 장기 투자자 워런 버핏은 2008년에 한 헤지펀드 매니저와 100만 달러짜리 내기를 걸었다. 자신이 선택한 패시브 펀드(버핏은 뱅가드 펀드 중 하나를 골랐다)가 향후 10년 동안 상대가 고른 복수의 액티브 펀드들 중 어떤 것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내면 이기는 내기였다. 10년 뒤인 2017년 12월, 버핏의 상대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패시브 펀드는 10년 동안 연평균 7.1%의 수익을 올렸으나 액티브 펀드의 경우 수익률이 평균 2.2%에 그쳤다. 핫핸드는 없었다. 버핏은, 여자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에 내기 판돈을 전액 기부했다.
1973년에 출판된 〈시장변화를 이기는 투자:랜덤워크(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의 서문에서 저자인 버턴 맬킬 교수는 한 가지 코믹한 예측을 언급했다. 눈 가린 원숭이로 하여금 경제지들의 주가 페이지를 향해 다트를 던지게 한 다음 다트에 찍힌 종목들에 투자하면 전문가들이 액티브하게 꾸린 포트폴리오(주식 등 금융자산들의 묶음)에 뒤지지 않는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들어낸 포트폴리오라도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그저 무작위로 주식을 선택해 만들어진(즉, 원숭이들이 다트를 던져 만든) 포트폴리오 이상의 성과는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포브스〉는 이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원숭이들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장수익률(전문가들이 만든 포트폴리오가 이길 수 없었던)을 지속적으로 앞섰다는 실증적 증거를 연구자들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핫핸드는 전문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마구잡이로 다트를 던지는 원숭이들이었던 셈이다. 연구 결과에 많은 의문점이 달리긴 했지만 당시엔 꽤 선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결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뮤얼슨 교수가 훨씬 이전인 1974년 어느 칼럼에 실었던 글의 내용과 통했다. 그는 액티브 펀드매니저들이 앞으로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썼다.
ⓒGoogle 갈무리 미국의 대표적인 전문 투자자문사인 뱅가드 그룹.
액티브한 핫핸드는 없었지만 패시브 펀드들의 성과는 눈부셨다. 지난해 1월 타계한 전설적인 투자자 존 보글은 투자회사인 뱅가드(Vanguard) 그룹을 설립하고 1975년 패시브 투자 전략을 따르는 인덱스 펀드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이 세계 최초 패시브 펀드의 인기는 형편없었다. 세상에 나온 지 5년이 지난 후까지도 겨우 1700만 달러의 자금이 설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뱅가드의 패시브 펀드들은 이후 수십 년간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뱅가드 그룹은 2020년 1월 말 기준, 전 세계를 무대로 1만7600명을 고용하고 400개 이상의 펀드를 통해 6조2000억 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초대형 글로벌 금융투자회사다.
아마도 장기적인 패시브 투자가 엄청난 성과를 낸다는 실증연구로 가장 유명한 책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가 쓴 〈장기투자 바이블(Stocks for the Long Run)〉일 것이다. 주식 관련 데이터가 존재하기 시작한 1802년부터 무려 200년 가까이 분석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패시브 전략을 고수했다면 금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경우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라는 실증적 증거들로 패시브 전략의 우수성을 밝혔다.
이 책이 보여준 결과는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지지되었다. 이를테면 펀드 평가사인 모닝스타(Morningstar)는 지난 20년 동안 겨우 5개 연도에서만 다수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이 시장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3월까지 1년 동안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상위 25%의 주식공모 펀드들을 추려낸 뒤 이들이 향후에도 계속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지 추적한 결과를 내보냈다. 이 펀드들 중 1년 뒤에도 성과가 상위 25%에 드는 펀드는 실망스럽게도 고작 4분의 1에 불과했다. 2년 뒤에는 겨우 4% 정도가, 3년 뒤에는 겨우 0.5%의 펀드가 상위 25%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성과가 아주 좋았던 펀드 1000개 중 이후 3년 동안 줄곧 좋은 성과를 유지하는 펀드는 겨우 5개에 불과했던 셈이다.
ⓒAP Photo 미국의 대표적인 전문 투자자문사인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인 존 보글은 ‘인덱스 펀드의 아버지’라 불린다.
‘초심자의 행운’에서 ‘몰입 상승 편향’까지
이처럼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도 핫핸드를 갖고 있지는 않다. 동학개미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전문적인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보다 더 핫한 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도 액티브 전략으로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자주 미래를 예측하는 데 실패하는 재무 금융 관련 어드바이스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는 이유는 뭘까? 몇 가지 이유 중 꽤 설득력 있는 것은 이렇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심리적 이유가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후회 회피(avoidance of regret)를 위해서다. 혼자 연구해서 투자해 실패하면 자기를 탓할 수밖에 없지만 컨설팅 후 실패하면 내가 아닌 컨설턴트 잘못이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서울대 인류학과 김수현 학생이 쓴 석사학위 논문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다. 이 똑똑한 학생은 개인투자자가 주식투자에 ‘중독’되는 과정을 ‘초심자의 행운’의 첫 단계(처음에 투자로 약간의 재미를 본다), ‘과신과 확신 편향’의 두 번째 단계(할 수 있다는 과신 또는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몰입 상승 편향(더 크게 벌기 위해 빚내서 투자한다)’에 의해 손실이 커지는 결과까지 모두 세 단계로 설명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성공을 위해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 매매를 실행한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며 주식투자에 ‘중독’되면 결국 ‘주식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내용이다. 끔찍한 얘기지만 석사논문이 급작스럽게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의 홍지연·김민기 두 연구위원이 각각 발표한 두 편의 보고서를 보면 동학개미들의 투자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위험요소 또한 적지 않은 듯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개인투자자들은 재무건전성과 재무성과가 악화된 기업의 주식을 기초 여건이 양호한 기업에 비해 더 많이 순매수했다. 그리고 주식투자를 위해 빌려준 돈인 신용공여 잔고는 6월 기준 11조5000억원 이상으로 지난 3월 6조50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개인투자자 순매수의 약 35%는 신용융자를 통한 매수, 즉 빚내서 실행한 투자였다. 이 같은 사실은 김민기 연구위원이 지적하듯 개인투자자들이 투자위험을 더 절실히 깨닫고 레버리지 활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주식투자에는 ‘불완전 판매’가 없다. 투자 결과는 손실이든 이익이든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동학개미들을 응원하는 마음 한편으로 떠오르는 증시 격언이 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키가 클수록 수익률이 높을 거라는 우스개가 아니다. 그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더라도 무리하지는 말라는 뻔한 얘기다. 수익은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익률의 향기에 묻혀 위험을 간과하면,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성과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인생은 팬데믹보다 훨씬 더 길다.
시사인/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사설] 언론윤리 팽개친 조선일보의 ‘박지선 유서’ 보도
박지선씨 어머니가 남긴 메모를 ‘단독 기사’ 표시를 달아 보도한 조선일보. 조선일보 누리집 캡처
언론은 자살 관련 보도를 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과도하게 보도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유가족의 슬픔을 배가하고, 모방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특히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은 더욱더 그렇다.
<조선일보>가 지난 3일 모녀가 함께 세상을 떠난 박지선씨 어머니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성 메모를 ‘단독 기사’ 표시를 달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현장에는 모친이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 1장짜리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며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몇몇 매체도 뒤따라 유서 내용을 기사화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유서는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보도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유가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며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고 되어 있다. 게다가 경찰은 지난 2일 “현장에서 박씨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를 발견했으나 유족 뜻에 따라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그런데도 이를 보도한 것은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도리에 어긋난다.
잘못된 자살 보도는 또 다른 죽음을 부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유명인의 자살을 언론이 집중 보도한 뒤 일정 기간 자살자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한국 언론은 자살 보도에도 속보와 특종 경쟁을 하며 죽음을 상업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자살 기사에 ‘자살 예방 핫라인 정보’를 다는 언론사가 늘어나는 등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이 유서 공개를 자제했는데 조선일보가 유독 ‘단독’을 붙여 보도한 것은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클릭 장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조선일보 누리집에는 이 기사를 비롯해 박씨 자살 관련 기사가 150개 가까이 올라와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윤리는 아예 휴지통에 처박은 듯하다.
조선일보의 유서 기사에 “이건 아니다. 가족을 둘이나 잃고 고통받을 유족을 생각해달라” “유족이 비공개를 원했는데 그걸 꼭 기사 써야겠냐” “에휴 또 다른 기자들이 겁나게 복붙해대겠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언론 스스로 신뢰를 추락시키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건지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커밍아웃’ ‘검란’으로 갈등 부각하고 집단반발로 과대포장
[민언련 종편 일일모니터] 검사 댓글 300개를 ‘검사 300명’으로 둔갑시킨 종편
종편의 문제발언 중 핵심을 뽑아 알려드리는 ‘종편 뭐하니?’입니다. 종편3사 시사대담 프로그램은 10월9일부터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집중하여 다뤄왔어요. ‘독감백신 논란’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사망’ 등 굵직한 사안이 있었지만, 종편3사의 관심은 국회 국정감사에 등장한 국회의원들의 라임‧옵티머스 사태 질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요.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답변, 그리고 양측의 갈등양상을 주로 전했어요.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본질은 뒷전에 두고 이른바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초점을 맞춘 거예요. 최근 보수성향 언론은 추 장관의 각종 권한 행사에 반발하는 일부 검사들의 소식을 전하며 ‘검찰이 일으키는 난’이라는 뜻인 ‘검란(檢亂)’을 사용해가며 보도하고 있어요. 종편3사도 이런 경향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요.
일부 검사들의 ‘추미애 비판글’, ‘검사 비판’ 청와대 국민청원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옵티머스의 대규모 펀드 환매중단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내부 대응문건이 발견되고, 라임자산운용 자금책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재판 증언이 나오면서 여권 인사들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어요. 그러던 중 김봉현 씨가 1, 2차에 걸쳐 자필 입장문을 언론에 보내고, 야권 인사들은 물론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인사들의 연관 의혹까지 나왔는데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0월19일 라임 사태 연관 의혹이 불거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수사결과만 보고받도록 수사지휘권 발동했어요. 사건 관련 인사가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검사윤리강령」 및 「검찰공무원 행동강령」을 바탕으로 한 것이죠. 10월22일에는 라임 사태와 관련해 검사들의 비위를 은폐하거나 야당 정치인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법무부와 대검찰청 감찰부의 합동 감찰을 지시했어요.
10월28일,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제주지방검찰청 이환우 검사가 글을 올렸어요.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과 감찰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검찰개혁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죠. ‘이환우 검사가 검찰개혁에 반발하고 있다’고 판단한 추 장관은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고 올리며 이환우 검사의 비위사실을 담은 기사를 공유했어요. 같은 날 춘천지방검찰청 최재만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추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나도 커밍아웃하겠다”고 밝혔어요. 이환우 검사와 최재만 검사 글에는 11월 1일까지 3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해요. 10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커밍아웃 검사 사표 받으십시오!”라는 청원이 올라왔어요. 검찰 내부통신망에 추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두 검사와 동조 댓글을 단 검사들을 비판하는 청원이에요.
커밍아웃’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종편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먼저 ‘커밍아웃’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어요. 추 장관과 추 장관을 비판하는 일부 검사, 이를 전하는 언론이 ‘커밍아웃’의 본래 의미를 생각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인데요.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가족, 친구 등 사회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행위를 말해요.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 오브 더 클로젯(coming out of the closet)’에서 유래되었죠. 최근엔 숨기고 있던 어떤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으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단어의 사회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요.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실천매뉴얼에서도 “‘커밍아웃’은 현재 동성애자가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성정체성을 밝히는 의미로 사용해야 하며, 범죄사실을 고백하는 표현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어요
▲ 10월29일부터 11월2일까지 종편3사 시사대담 프로그램별 ‘커밍아웃’ 사용횟수와 비판 여부. 표=민주언론시민연합
10월29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커밍아웃이 갖고 있는 본래의 뜻과 어긋날뿐더러 성소수자 운동을 훼손하는 하는 것”이라며 “추 장관과 검찰, 언론 모두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주의해달라”는 뜻을 밝혔어요. 이튿날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더 높은 인권감수성을 지녀야 할 위치에 있으며 용어 선택에 있어서 또한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죠.
종편3사 시사대담 프로그램이 검찰 내부통신망 글과 추 장관 대응을 전하기 시작한 10월29일부터 11월2일까지 ‘커밍아웃’을 사용한 횟수는 총 154회였어요. 특히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58회로 가장 많이 언급했어요. 10월30일 하루에만 42회나 사용했죠. ‘커밍아웃’이 본래 의미와 달리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은 11월2일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만 소개됐어요. 그러나 비판 목소리를 전하면서도 ‘관련 인사들이 해당 용어를 썼기 때문에 그대로 소개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이어갔어요.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입장과 정의당 논평을 전하며 용어 사용 문제를 지적하긴 했어요. 채널A 이재명 정치부 선임기자는 “글쎄요.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이 지금 굉장히 부적절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간에”라며 용어 사용을 이어갔어요. 진행자 김진 씨도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이라며 같은 태도를 보였어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 진행자 엄성섭 씨도 “인권단체에서 이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에 대해서 일부 반발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에 대해 그 의미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일부 지적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추미애 장관이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본인이 공개적으로 썼기 때문에 이 표현을 말씀드린다는 점을 좀 소개를 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라며 용어 사용 책임을 회피했어요.
특정 단어가 본래 의미와 달리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 순화하는 것도 언론의 몫이에요. 부적절하다면 쓰지 않는 것이 맞겠죠. ‘관련 인사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요. 또한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는 최근 불거진 사안의 경과와 본질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용어도 아니므로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검사 댓글 300여 개, ‘검사 300여 명’ ‘검란’으로 둔갑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와 춘천지검 최재만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추 장관 비판 글에는 11월2일 기준으로 각각 70여 개와 240여 개, 합쳐서 3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해요. 300여 개의 댓글을 각기 다른 검사들이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검사가 여러 번 작성한 건인지는 확실치 않아요. 또한 이 검사와 최 검사 뜻에 동조하고 반대하는 내용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죠. 그런데 보수성향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추 장관에 반발하는 검사들이 300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를 냈어요. 댓글 개수를 검사 수로 치환한 거죠. 급기야는 검찰이 추 장관을 상대로 난을 일으켰다는 뜻으로 ‘검란’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고요. 종편3사 시사대담 내용도 보수성향 언론의 보도태도와 다르지 않았어요.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11월2일)에서 진행자 김진 씨는 “(이환우 검사와 최재만 검사의 추 장관 비판글에) 실명 댓글이 300명을 넘어섰습니다”라며 “커밍아웃 검사들이 300명을 넘어섰다”고 말했어요. 추 장관을 비판하는 검사들이 300명을 넘어섰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언급했죠. 채널A 이재명 정치부 선임기자는 “(추 장관에 반발하는 검사가 300명 정도라면) 사실 그 안의 분위기는 더, 숫자는 더 많을 거다 이렇게 보는 게 정상적이겠죠. 실명을 공개한 숫자가 그 정도일 테니까, 지금 현재 분위기에 굉장히 문제가 있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검사가 더 많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어요.
▲ 11월2일, 300여 개 댓글을 300여 명 검사로 둔갑시킨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출연자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은 “2200여 명 중에 10% 이상 되는 검사들이 댓글을 달았으면 우리가 쉽게 말해 ‘검란’이라고 표현한 게 맞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어요. 같은 날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한 정혁진 변호사도 “검사정원법에 따르면 (2019년 기준) 2292명”인데 “10% 이상의 평검사들이 이렇게 댓글을 단 걸 보면 ‘법무부 장관이 과연 우리의 수장이 맞느냐’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라고 평가했어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 출연한 TV조선 홍연주 기자는 “검찰 관계자가 ‘평검사들이 대부분인 커밍아웃 검사가 300명이 넘는다면 유학을 갔거나 파견 갔거나 초임 검사를 제외하고 실제 일하는 평검사의 50%, 절반 정도가 동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조선일보 기사 내용을 그대로 전했어요.
전문가 “집단반발로 보기 어렵고 언론의 과대포장 문제”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은 ‘검사 2명의 추 장관 비판글에 동조인지 반대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댓글 300여 개가 달렸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종편3사 시사대담은 ‘300여 개 댓글’을 ‘300여 명 검사’로 판단한 뒤, ‘추 장관에 반발하는 검사가 전체의 10%를 넘었고 검란으로 볼 수 있다’고 단정하듯 전한 거예요.
그러나 전문가 의견은 달랐어요. 11월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검사 경력 10년5개월의 오원근 변호사가 출연했는데요. 오 변호사는 “지금 이야기되는 검란은 아마 평검사회의 등 검사들의 집단 반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저는 이런 의미의 검란도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어요. “(검찰 내부통신망에서) 본글과 댓글 갖는 의미는 다르다”는 것이 근거였어요. “(본글은)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반면, “댓글은 거기에 동의나 반대 정도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서 고민의 깊이가 다르다는 거예요. 또한 “(보수성향 언론의 주장대로 댓글 수를 전부 검사 수로 치환하더라도) 그 정도만 갖고 집단반발로 해석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너무 가볍게 볼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집단반발이 현실화할 것처럼 과대 포장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채널A, 예정된 윤석열 총장 일정에도 호들갑
한편,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11월2일)에서 진행자 김진 씨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월3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을 방문하여 초임 부장검사 30명을 대상으로 강연한다’는 소식을 언급하며 갖은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어요. “윤석열 검찰총장은 전국을 돌면서 검찰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모양새”라며 “많은 조간신문들은 윤석열 총장의 행보에 대해서 ‘마이웨이 행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죠. 그러더니 “이번 주에는 (윤석열 총장이) 이 사람(한동훈)을 만납니다. 내일 ‘한동훈 근무지’로”라고 말했어요.
▲ 11월2일, 윤석열-한동훈 짧은 인사에 과도한 의미 부여한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곧이어 윤 총장이 전국 지방검찰청 순회 중이던 지난 2월13일, 부산고검에 방문하여 당시 차장검사였던 한동훈 검사장과 악수 후 눈인사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느린 화면으로 보여줬어요. 김진 씨는 1초 남짓의 짧은 인사 장면을 보며 “굉장히 짧게 눈빛 교환”, “한동훈 검사장도 입 다물면서 뭔가 미소”, “찰나의 순간을 많은 조간신문들이 이 한 장을 주목했고, 윤 총장의 표정, 한 검사장의 저 어떤 눈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은 조간신문들이 보도”라는 설명도 덧붙였어요. 채널A 이재명 정치부 선임기자가 “(윤 총장이) 부산고검 (방문하던 당시를) 봤을 때는 (한동훈 검사장이) 당시에 차장검사였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이제 앞에서 어떻게 보면 고검장 다음에 차장검사니까 이제 영접을 한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김진 씨가 애써 의미를 부여한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의 만남이 ‘당연한 것’이라는 설명이었죠
김진 씨의 과도한 의미 부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윤 총장의 이런 어떤 뭐랄까요. 순회 만남? 이번엔 또 강의까지 한다는데, 대검에선 예정된 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 시국과 맞물려서 ‘굉장히 묘해 보인다’라는 관측도 많은데”라고 한 거예요. 반면,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그러니까 예정된 일정 맞겠죠. 그리고 이거는 말하자면 루틴하게(일상적으로) 원래 해왔던 것”이라고 말했어요. 대검찰청이 “(윤 총장의 법무연수원 방문과 강연은)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미 이전에 확정된 일정”이라고 밝혔는데도 진행자는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오히려 출연자가 사실관계에 맞는 발언을 한 거예요.
소모적 논쟁과 갈등 부각, 검찰개혁 본질은 실종
대다수 언론은 10월19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시작으로 국회 국정감사가 이뤄지는 내내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발언과 행보 하나하나를 전하며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부각했어요.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갈등을 부각하는 기사 위주로 보도할 게 아니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감찰권 행사가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취재하여 보도해야 해요. 추 장관의 권한 행사에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을 부각하는 보도를 이어나갈 이유도 없죠. 언론이 ‘커밍아웃’과 ‘검란’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며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을 부각하는 사이, 검찰개혁의 본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어요. 현 시점에서 검찰개혁을 위한 검사들의 인식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며, 일부 검사들의 반발을 대하는 법무부는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인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하지만, 이런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종편3사 시사대담 프로그램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주로 보수성향 종합일간지가 법무부과 검찰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근거로 ‘조간신문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고 전하기 바쁜 모습이에요. 직접 취재하고 검찰개혁의 본질을 살펴보려 애쓰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조간신문 기사를 그대로 퍼 나르고 거기에 출연자 몇몇의 의견을 붙여 내보내는 게 종편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역할은 아니라는 겁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10월29일~11월 2일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이것이정치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평일)<아침&매일경제>(평일)
민주언론시민연합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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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곳곳 시위·지지자 충돌·가짜뉴스…미국 내 시위·반발 움직임 장기화 예상
[미국 대선 대혼돈]
미국 대통령선거 개표가 예측 불가 접전을 벌이면서 미국 주요 도심 곳곳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지지자들끼리 충돌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다. 워싱턴 등에서 반트럼프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온라인에도 가짜 뉴스가 확산하는 혼란도 빚어졌다.
블룸버그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근처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는 1000여 명이 운집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이곳은 우리의 거리” “우리가 정의를 얻지 못하면 그들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저녁이 되면서 시위대 규모가 수천 명으로 불었으며 새벽이 되면서 대부분 귀가했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일부 시위자가 경찰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는 등 격렬한 모습도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위대 중 한 명이 백악관으로 행진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옷을 입은 여성에게 거리를 떠나라고 소리치고 폭행을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 투표소 앞에서 집회가 벌어졌고 경찰이 이를 불법으로 규정,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시위자 수 명이 체포되는 일도 생겼다. LA에서는 시위대 100여 명이 고속도로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주 시애틀과 뉴욕주 뉴욕시 등지에서 산발적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내 시위와 반발 움직임은 선거 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시 시위에서도 경찰은 폭력 사태로 확산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했다. 백악관 주변으로 2m가 넘는 철조망이 추가로 설치됐고 블록마다 경찰이 배치됐다. 경찰은 시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시위는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 선언을 할 경우를 대비해 집회를 벌였다. 장기화하면 내년 1월 대통령 취임식까지 장기 시위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투표 참여 방해 의도로 보이는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벌어졌다. 캔자스, 네브래스카 등지에 거주하는 “집에 있어야 할 때다. 안전하게 집에 있어라”는 내용의 전화가 수많은 미국인에게 걸려왔다. 온라인에는 가짜 뉴스도 난무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날 투표 보안이나 신뢰성 등을 계속 제기해 온 친트럼프 성향 매체의 계정을 중지시키기도 했다./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시민단체·노조 ‘보도자료’만 쓰는 시대 지났다
[유튜브 저널리즘⑧-1] “우리 누군지 잘 몰라” 시민단체·노조 유튜브로 직접 소통
서울시장 성추행 기자회견 6만 조회, 언론보다 빠른 정보 전달
열악한 환경·공익 추구 조건 까다롭지만 ‘소통’ 위해 고군분투
지난 7월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편집 없이 현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이 영상은 6만 조회수를 넘길 정도로 주목 받았다.
기승전 ‘유튜브’ 시대 시민단체도 유튜브에 뛰어들며 새로운 소통을 고민하고 있다.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를 통해 소통하는 시민단체·노조가 유튜브에 뛰어들면서 언론의 경쟁자가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2020 유튜브 저널리즘]
유튜브 도전하는 시민단체·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유튜브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언론사에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올리던 모니터 보고서를 ‘팟캐스트’로 선보였고, 이어 매체 환경 변화에 발 맞춰 ‘유튜브’에 옮겼다. 종편 막말 평론가 문제를 지적한 ‘퇴출이 필요한 종편 최악의 패널’ 영상은 88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서브채널인 ‘미디어 탈곡기’를 통해 미디어 비평 콘텐츠를 수시로 올리고 있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10월부터 지역언론 비평, 활동가 브이로그 등을 올리며 본격적인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 탈곡기' 갈무리.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딸인 최진주씨와 함께 ‘노으른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미디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모녀와 함께 이봉우 활동가가 출연해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뉴스를 설명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는 ‘유띵뉴스’가 대표 콘텐츠다. 모녀가 이슈에 대해 얘기하며 세대 간극을 좁히는 ‘모냐모녀 상담소’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인권센터는 ‘미픽’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 성소수자 유튜버 ‘채널 김철수’ 등 다양성 유튜버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유튜브 속 혐오표현 문제를 조명하는 콘텐츠도 제작한다. 정보인권 시민단체 진보넷은 ‘따오기’(따져보는 오늘의 기술이야기) 채널을 통해 정보인권 이슈에 대한 해설 영상을 올린다. 참여연대는 팟캐스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유튜브에도 파일을 올린다. 여성인권단체 가운데는 한국여성의전화가 기자회견, 캠페인 등을 유튜브에 적극적으로 올리고 있고, 환경단체인 서울환경연합은 환경 이슈를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로 주목 받았다
기자회견, 집회시위를 중심으로 목소리 내던 노동조합도 유튜브 활동에 나서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는 파리바게뜨 카페기사들이 가면을 쓰고 과도한 업무량 문제 등을 폭로하는 콘텐츠를 올렸다. 전교조는 토크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데 ‘그것이 알고싶다 전교조 사건’처럼 전교조에 대해 알리는 콘텐츠는 물론 ‘선생님이 들었던 상처되는 말’ 등 교사로서 고충을 토로하는 내용을 담는다.
▲ 전교조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 언론인권센터 '비건유튜버 초식마녀' 인터뷰
“인터넷 시대 이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아무리 우리가 운동하고 콘텐츠 만들어도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지, 무슨 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덩야핑 진보넷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동영상 시대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난해부터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영상이 주목받는 사회적 추세에 더해, 노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안은서 서울환경연합 미디어홍보팀 활동가는 “우리 활동을 회원들에게 알리거나, 토론회를 여는 식으로 소통했는데, 유튜브를 통해 더 많고 다양한 분들과 접촉할 수 있다”며 “국제단체처럼 큰 시민단체는 인지도가 높은데, 국내단체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인력, 재원이 부족해 홍보하기 힘들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알릴 회가 적다”고 했다.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도 “시민단체는 시민과 소통하는 역할이 중요한데, 전문가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시민과 접점이 적었다”고 했다.
유튜브에 나선 ‘노조’는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동시에 조합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노조에 파리바게트 청년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새 바람이 불었다. 뒤이어 IT 부문도 가입했다. 선전홍보 방식도 시대흐름을 따라야 하지만, 조직내부 문화도 그간 지속된 것에서 탈피해 밝은 이미지를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파리바게뜨 카페기사 이야기' 콘텐츠
‘단독’ 올리고, 시민 참여 유도하기도
진보넷 ‘따오기’ 채널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온 콘텐츠는 ‘잘 나가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연구중단을 선언한 이유’ 영상이다. 인공지능 개발자 조셉 레드몬(Joseph Redmon)이 돌연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사물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인공지능 기술이 군사 및 감시 기술에 활용되는 걸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 이슈는 ‘따오기’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SNS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해 영상으로 만들게 된 이슈였다.” 황규만 진보넷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한국은 IT기술은 발전했는데 문제제기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보니 해외 SNS나 외신들을 주기적으로 보게 됐다”며 “한국 언론은 해외에서 특정한 이슈가 한바탕 몰아치고 난 다음에 받아쓰는 식으로 한 박자 느리기에 이런 식으로 해외 이슈를 소개했을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기자회견’ 생중계 직후 문자후원이 1000건 넘게 들어왔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당시 장소를 못 구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사무실에서 하게 됐는데, 장소 특성상 기자들이 많이 들어오지 못했다”며 유튜브 기자회견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생중계를 하긴 했는데 전체가 나가진 않았고, 지상파 등에서는 편집돼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 '따오기' 유튜브 콘텐츠 ‘잘 나가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연구중단을 선언한 이유’ 갈무리.
서울환경연합은 ‘쓰레기 박사’ 콘텐츠를 통해 단체 인지도가 올랐다. 서울환경연합 집행위원인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쓰레기와 관련해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답변을 하는 내용이다. 안은서 활동가는 “‘환경’에 대해 얘기하면 거시적이고, 내 일상과 동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쓰레기 박사’처럼 검색해서 찾아볼 만큼 일상에서 중요하고 직접 실천할 수 잇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와닿았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대중 접점 늘리려 악조건 속 ‘고군분투’
시민단체·노조 유튜브 채널 다수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너무 가볍게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만 할 수도 없다. 이들 단체가 겪는 이중고다. 황규만 활동가는 “시민단체는 각 분야에 전문성이 있지만, 오히려 대중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유튜브를 해도 속칭 ‘설명충’이 되기 때문에 단점이 드러난다”고 했다. 신동민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은 “(노조 유튜브 채널은)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영상과 대중에게 소구하는 영상 사이에 어떻게 할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한다”며 “1인 미디어가 하는 것처럼 독자의 흥미를 따라간다면 조회수 장사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조 채널로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의 '노으른자' 유튜브 콘텐츠 촬영 현장.
인력과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은 “유튜브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시민단체가 여력이 없다. 자원활동가들이 오면서 이들 덕분에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은서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압박 때문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는 활동가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상 제작과 유튜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쉽지 않지만 유튜브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기자가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기자회견을 한다. 시민단체는 이슈를 알리기 위해 활동을 하는데, 유튜브는 이슈를 알리기에 좋은 도구다. 성명을 쓰는 일도 가치가 있지만, 유튜브를 통하면 더 쉽고 전달력 있게, 파급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가 시민에게 알리는 방식에 고민이 필요하다. 당장은 구독자가 없더라도 계속 버티면 언젠간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미국 대선에 뜨거운 관심보인 한국 시청자들
KBS 메인뉴스 시청률 13% 기록…지상파·종편 특집 편성해 미국대선 실시간으로 전해
미국 대통령 대선에 국내 시청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뉴스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4일 KBS ‘뉴스9’는 닐슨 코리아 기준 13%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8일 뉴스9 시청률 13.2% 기록 이후 최고 수치다. SBS ‘8뉴스’는 같은 날 시청률이 9%였다. 8뉴스 시청률은 근 한 달 동안 5~7%에 머물렀는데 이와 비교하면 미국 대선 보도는 높은 관심을 끌었다.
종합편성채널 가운데 JTBC ‘뉴스룸’이 평상시와 비교해 시청률이 상승했다. 뉴스룸은 최근 1~2% 시청률을 기록해 왔는데 지난 4일 3.7%를 기록했다. TV조선 ‘뉴스9’는 최근 4~7% 시청률을 기록해왔고, 4일에는 4.5%였다. 평소 시청률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치였다. MBN ‘종합뉴스’는 2.7%를 기록했다.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윤석열 때리기’ 몸집 키워주는 꼴
민주, 국회 국정감사·예산심사회의 막론하고 ‘윤석열 때리기’
정치권 진출 여지 남긴 윤석열, 여당 비판공세가 ‘몸집’ 키워
윤석열 검찰총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국회를 뒤흔들고 있다. 윤 총장을 비판하기 위한 정부·여당 발언은 되레 윤 총장의 존재감을 높였다. 윤 총장의 언론플레이를 여권이 도와주는 형국이다.
지난 5일 법무부 등 예산심사를 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윤 총장 비판에 열을 올렸다. 윤 총장이 3일 신임 부장검사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 발언은) 검찰이 열심히 해보자는 취지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는데 국회 입법에 대한 정면 도전일 수 있다.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는 법적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하도록 합의가 된 거다. 욕심이 나더라도 법을 따라줘야 한다”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검찰이 해왔는데 불신이 너무 커서 공수처라는 작지만 투명한 조직을 만들어 집중하겠다는 게 입법 합의”라고 말했다.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국민의힘의 정치적 고발에 ‘청부수사’를 하고 있다”며 “감사원에서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항이다. 감사원 결정도 뒤집겠다는 것이다. 검찰공화국인가” 목소리 높였다.
이어 법사위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이 합의를 깨지 않도록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총장에게 이해시키라”고 주문했다. 추 장관은 “의원님의 우려처럼 검찰 총장이 당연히 중앙행정기관장으로서 국회의 입법적인 명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말씀처럼 공수처 권한에 관한 것을 검찰이 나서겠다면 그것은 초법적 발상이 될 것”이라며 “저로서도 (의원께서) 여러 우려를 제시한다면 (검찰의) 최고 감독권자로서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 사건을 조작해서 수사하는 것, 표적수사, 과잉수사는 엄연히 구별되지 않느냐”며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수사기관 본령이다. 그걸 한다고 검찰개혁이 되는 게 아니라 (수사의) 시기, 대상, 방법, 혐의를 자의적으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수사하고 정치에 개입하니까 그걸 못하게 하자는 게 검찰개혁의 현실 아닌가”라고 윤 총장 발언을 비판했다.
검찰의 특수활동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의 질의에도 윤 총장을 소환했다. “윤석열 총장은 정치하겠다는 입장을 사실상 표명했다”며 “어디에 돈 쓰는지 확인 안 되는 돈을 마음대로 쓰면 정치자금으로 활용해도 전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가정한 것이다. 김용민 의원은 “예를 들어 검찰총장이 조선일보 사주 만나고 중앙일보 사주 만나서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앞으로 자기 잘 봐달라, 대선에 도전할 테니 기사 잘 써달라 해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추 장관이 “가정적이어서 답변을 드리기는 곤란하다”고 했지만, 김 의원은 연신 “본인이 정치하고 싶은 정당 관계자 만나서 ‘정치하고 싶다’ 밥사고 술사도 알 수 없는 거 아닌가”라는 예시를 들었다.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 역시 윤 총장 비판이 등장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지 말씀드리겠다”면서 대한민국 헌법 조항을 읊었다. “공무원은 헌법 7조에 따라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대목 등이다. 이어 검찰에 대한 통제 권한에 대해 “국민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이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임명된 장관에게 유임하는 것”이라면서 “민주주의 기본원리로 법무부장관이 기본적으로 검찰을 통제하고 있다. 그것은 주권재민 원리가 포함되는 것”이라 열변했다.
▲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박 의원이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한 발언은, 불과 몇년 전 민주당의 전폭적 지지를 부른 계기였다. 2013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윤 총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던 때의 일이다. 당시 윤 총장은 정갑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조직을 사랑하나,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 답했다. 정 의원이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묻자 “대단히 사랑한다” 답했다. 이후 윤 총장이 정의롭다는 여권 안팎의 호평이 이어졌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자신에게 ‘선택적 정의’라 비판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을 두고 “예전엔 저한테 안 그러지 않으셨느냐”고 응수한 바 있다.
애초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집권세력에 굽히지 않는 이미지로 대중에 알려졌다. 야당 시절부터 집권 초기까지 윤 총장에게 우호적이었던 여당이 ‘정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구도는 되레 윤 총장을 대권반열에 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달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총장이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하자, 김종민 의원은 “장관과 대통령 지휘를 거역하지 않는 총장이 되길 바란다”며 호통했다. 며칠 뒤 진행된 오마이뉴스·리얼미터의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선 윤 총장 선호도가 전월보다 6.7%p 오른 17.2%, 야권 1위로 나타났다. 1, 2위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바짝 따라잡았다. (95% 신뢰수준 ±1.9%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및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윤 총장은 여권이 불편해 할만한 말들을 흘리며 정치권에 진출할 여지도 교묘히 남기고 있다. 여론조사 등에서 ‘정치인 윤석열’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무릎 꿇고 투항하라’는 식의 여당 비판은 윤 총장을 대등한 견제 상대로 만드는 3박자를 완성시키고 있다. 국회, 정부, 검찰이 할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유창선 평론가는 “뉴스를 접하노라면 연일 추 장관을 필두로 여당 국회의원들 수십 명이 윤석열 때리기 총공세를 벌이는 모습이다. 집권세력의 체신이라는게 있지 한 사람 놓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해임하든, 탄핵하든, 자르라니까 정작 그러지는 못하고 저러면서 날새우고 있다. 당신들의 사활은 그런 일에 걸려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사활은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다. 그것이 슬프고 분하다”고 꼬집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전직 검사 “조직 보호 검찰 시각 기자들에게도 있어”
더불어민주당, ‘검찰과 언론’ 주제 세미나 개최
김기창 교수 “피의사실 보도가 알 권리? 장사할 권리일 뿐”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 “언론, 검찰 내부 문제 선택적 침묵”
박영흠 교수 “언론개혁 의지, 언론 혐오로 흐르는 것 우려”
연일 검찰과 날을 세우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5일 ‘검찰과 언론’이란 주제의 국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박주민·김남국·김용민 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2명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 13명이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 검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언론을 향한 날선 비판도 이어졌다.
공동 주최자 중 한 명인 경찰 출신 황운하 의원은 이날 “검찰과 언론의 뒷거래는 상식적인 국민의 판단과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이라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갖고 본분을 망각하고 무소불위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검찰조직 이익을 위해 여권이든 야권이든, 보수이든 진보든 무자비한 공격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 뒤 “잘못된 검찰권 행사의 폐해는 여론조작을 획책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왜곡된 보도와 맞물려 더욱 증폭된다. 피의사실이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검찰에 유리한 상황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김기창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특히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엄청난 양의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재판 시작 전부터 언론이 6개월 넘게 유죄라는 식의 보도를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상황에선 문명국가에서의 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 노골적으로 여론 재판해놓고 판사에게 재판하라고 했을 때, 판사가 무죄라고 판단하려면 그는 여론에 맞선 투사가 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 문제는 피의자 인권보다는 문명국가의 사법제도가 가져야 할 공정성 자체를 파괴하는 야만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다. 언론 입장에선 장사할 권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출입기자제도에 대해서도 “검사와 술 먹으며 권력의 부스러기를 먹기 위한 미개한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전직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도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보도 이후로도 언론 보도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하며 “기소 전 단계에서부터 융단폭격식 보도를 해서 여론 재판을 하고 나면 판사도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저울의 영점은 이미 떨려버린다”고 우려한 뒤 “언론은 검사의 논리에 동화되어 공판 단계에서도 검사에 유리한 보도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연주 변호사는 “언론은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사건에서 임은정·서지현·진혜원 검사에게 입장을 요구했다. 형사사건에 대해 현직 검사가 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결국 이들 검사를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려 했다. 검찰개혁에 서 있는 검사들에게 함정을 파 놓았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언론은 검찰 내부 문제는 선택적으로 침묵한다. 검사 성추행 논란이 불거져 사표를 내도 해당 검사가 내부 갈등으로 사표를 썼다고 보도한다. ‘그랜저 검사’ 문제는 금품수수보다 후배 검사에 압력을 넣어 부당한 기소가 이뤄지고 검찰권을 남용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걸 파고든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조직을 보호하는 검찰의 시각이 기자들에게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세미나 발제를 맡은 조성식 전 신동아 기자는 검찰과 언론의 공통점으로 △선민의식과 단죄의식 △정치 권력 견제 △정보 권력과 동업자 의식 △조직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꼽으며 “검찰개혁의 핵심은 힘을 빼는 것이고, 언론개혁의 핵심은 책임을 묻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개혁의 대안으로 오보에 대한 책임을 붇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출입기자단 폐지 등을 언급했다.
김기창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피의사실을 무제한으로 보도하면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불가피하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모두 고소·고발로 푼다. 고발장 들고 접수하는 모습이 정치의 일상이 되었다. 정치로 풀 문제조차 법률의 문제가 되어버린다”고 우려하며 “재판 전에 일방에게 유리하게 떠드는 사람은 누구든 처벌해야 한다. 1심 판결 전까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보도는 누가 하든 간에 처벌해야 한다”며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1심 판결 전까지는 피의사실 공표도 금지해야 한다”며 관련한 형법 개정을 주장했다
반면 경향신문 기자 출신의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취재·보도행위 봉쇄로 경도된 (언론개혁)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자를 기레기로 만드는 구조와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며 검언유착을 해소할 방안으로 검찰과 법원의 “투명한 정보공개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검언유착 원인은 수사 정보를 검찰만 갖고 있고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검찰의 수사 정보 독점을 깨면 언론과 검찰이 유착할 이유가 없다. 빨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박영흠 교수는 또한 “여전히 언론개혁에 대한 열의는 뜨거운데, 정교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며 “언론개혁 의지가 기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조롱으로 가거나, 언론이 민주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빼앗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언론 혐오에 가깝다”며 최근의 ‘좌표찍기’ 같은 흐름을 우려했다.
박영흠 교수는 “‘좌표찍기’ 방식은 사이다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개혁을 위해 효과적일지 회의적”이라며 “기자 개인에 대한 실명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기자를 향한 신상털기나 혐오는 실명 비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밝힌 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기자 실명 비판) 행위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좌표 찍기와 인신공격을 유도할 수 있어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뻗치기 취재에 회의적이지만 그렇다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파트 앞 공인 취재를 사생활 침해로 몰고 가는 것은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조선일보는 천박한 유명인 사망 보도, 제발 멈춰라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때마다 언론은 앞다퉈 관련 기사를 쏟아냅니다. 대다수 언론은 고인의 인격 혹은 고인의 소식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며 이른바 ‘단독보도’ ‘특종’ 터뜨리기에만 열을 올립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대표적입니다. 11월5일 21시 기준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는 개그맨 박지선 씨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기사가 196건이나 올라와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천박한 ‘클릭장사’
11월2일 개그맨 박지선 씨가 숨졌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박지선 씨 유가족이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박지선 씨 어머니의 메모 내용을 ‘단독’을 붙여 보도했습니다.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을 함부로 추측한 조선일보는 각종 기사에서 슬픔에 잠긴 고인의 지인들을 언급하고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 첨부했습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고인의 지인들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만 편집하고 이를 반복하여 보여주었는데요. 조선일보는 ‘클릭 수’에 혈안이 된 일부 유튜버들과 같았습니다. 고인과 유가족은 물론이고 고인의 지인에게도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또한 문제기사 4~5건을 홈페이지 상단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클릭 수’ 장사를 한 것이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그동안 조선일보가 박지선 씨 외에도 설리, 구하라 씨와 같은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하면서 언론으로서 파급력과 책임감을 염두에 둔 보도를 해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이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할 때, 특히 설리 씨 보도에서 잘못된 보도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구하라 씨 보도는 설리 씨 보도 이후 비교적 얼마 지나지 않은 42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설리 씨 보도로 숱한 질타를 받았기에 분명 달라진 태도를 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론은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언론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 다시 문제보도를 꺼내드는 것이 오히려 문제보도를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낳지 않을까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보도에 대한 언급 없이 언론의 반복되는 잘못을 비판하고 바로잡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부득이하게 다시금 문제보도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보고서가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하는 언론의 잘못을 비판하는 마지막 보고서이기를 바라봅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휴지조각인가
2019년 10월14일, 연예인 설리 씨가 숨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온라인판 기사 <속보-연예인 설리,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경찰 “극단적 선택한 듯”>(박소정 기자)에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3년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 대신 사망 사실을 알리는 표현을 선택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 ‘스스로 목숨 끊다’, ‘극단적 선택’, ‘목매 숨져’, ‘투신 사망’ 등과 같은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과 같이 객관적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을 사용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해당 기사는 제목에 “경찰 ‘극단적 선택한 듯’”이라고 버젓이 써놓았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5가지 원칙을 밝히며 강조한 것은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이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였습니다. 조선일보 보도는 이런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겁니다.
같은 날 온라인판 기사 <경찰 “고 설리 자택서 심경 담은 메모 발견”>(백윤미 기자)도 문제였습니다. 극단적 선택의 동기를 함부로 추측하는 기사였는데요. 조선일보는 “경찰은 설리의 집 안에서 설리가 사용하던 다이어리에 심경을 적은 메모를 발견했다. 유서로 보이는 이 메모는 작성 날짜는 따로 표시돼 있지 않지만 다이어리의 맨 마지막 장에 심경을 적어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메모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서술한 뒤, 곧바로 “경찰은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지 등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메모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는 경찰 입장을 밝힌 뒤에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지 추가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이은 겁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의 동기를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악의적인 구성의 기사였는데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04년 발표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동기에 대한 단편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도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죠.
악성댓글 처벌 강화하자며 악성댓글 기사화
10월15일,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악플 시달린 연예인 설리, 숨진 채 발견>(권상은‧김수경 기자)을 통해 설리 씨 소식을 알렸습니다. 부제목은 “매니저가 신고, 극단적 선택한 듯… 공개연애‧노출 등으로 수년간 구설”이었습니다.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말 그대로 제목에만 적용될 뿐, 부제목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조선일보는 기사 부제목에 버젓이 ‘극단적 선택한 듯’을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공개연애‧노출 등으로 수년간 구설’이라 쓴 뒤, 본문에서도 설리 씨 연예활동 이력을 언급하며 “열애를 공개한 뒤부터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논란을 불렀다”, “구설에 올랐다”고 서술했습니다. 대중과 언론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해 논란이 되지 않을 만한 사안임에도 설리 씨에게는 ‘논란’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곤 했는데요. 조선일보는 고인의 안타까운 선택 뒤에도 여전히 고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보도를 한 것입니다.
또한 설리 씨의 자택 위치까지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는데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고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거주지 노출 역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선일보 보도 앞에서는 보도기준마저 무색해졌습니다.
10월16일에는 지면기사 <악플 시달린 설리 추모글에… “너도 죽고 싶냐” 또 악플>(윤수정‧조유미 기자)을 통해 반복되는 악성댓글 문제를 비판하며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기사 시작부터 고인에게 모욕적인 연관검색어를 나열하고, 설리 씨와 설리 씨를 추모하는 지인 SNS에 달린 악성댓글을 전했습니다. 설리 씨를 향한 악성댓글을 그래픽 이미지로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악성댓글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데도 조선일보는 “설리 스스로 논란을 자초했다”는 악성댓글 작성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싣기도 했습니다. 기사 취지는 악성댓글을 비판하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전하려는 것이었지만, 기사 내용은 ‘악성 댓글’을 반복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다른 언론의 ‘타살설’ 그대로 인용
10월18일 온라인판 기사 <“설리 사망 하루 전 신선식품 주문… 우울증 사인 의심케 해”>(심민관 기자)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인이 의심스럽다’는 뉴데일리 보도를 그대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뉴데일리는 ‘극단적 선택 하루 전 새벽배송이 가능한 신선식품을 시키고 SNS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인이 의심스럽다’는 일부 누리꾼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일부 누리꾼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사실상 ‘타살설’을 주장한 것인데요. 그러나 해당 보도가 나오기 전인 10월 16일,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견을 밝혔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책임하게 다른 언론의 ‘타살설’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 2019년 10월26일 고인 언급하며 질환 정보 안내한 조선일보
10월26일 온라인판 기사 <헬스톡-설리 ‘극단적 선택’ 이르게 한 우울증…주변에 보내는 시그널은>(장윤서 기자)는 고인을 언급하며 질환 정보를 안내했습니다.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기사 제목에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동기를 함부로 추측하지 말며, 고인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도준칙을 모두 어긴 것입니다. 기사 제목과 본문 앞부분에서 유명인을 잠깐 언급한 뒤 질환 정보를 안내하는 방식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사 작성 이유는 단순합니다. 질환 정보만 담은 기사보다 유명인 이름까지 넣은 기사가 누리꾼의 선택을 더 쉽게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박지선 씨 모친의 메모를 유가족의 뜻에 반하여 보도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헬스조선은 <박지선 사망… 지병 ‘햇빛 알레르기’ 어떤 질환이길래>(11월3일, 이해나 기자)를, 여성조선은 <고 박지선 괴롭혔던 ‘햇빛 알레르기’ 증상은?>(11월3일, 이태연 기자)을 온라인판 기사로 냈습니다.
구하라 죽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조선일보
2019년 11월24일에는 연예인 구하라 씨가 숨졌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태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절친 설리 떠난 지 42일 만에…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표태준 기자)을 통해 구하라 씨 소식을 전했습니다. 부제목에서는 “경찰 ‘극단적인 선택 가능성’”이라며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구 씨는 올해 5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었다”며 극단적 선택의 방법을 암시하듯 서술하기도 했는데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에 관한 정보나 암시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도 “자살 방법, 자살 장면, 자살 지역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죠.
같은 날 온라인판 기사 <“망자 팔아 인스타 홍보하냐” “관종이네”…구하라는 끝까지 악플 시달렸다>(이정민‧민서연 기자)에서는 구하라 씨를 향한 악성댓글을 비판하며 위헌 판결을 받은 ‘인터넷 실명제’의 재도입 필요성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설리 씨 소식을 전할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구하라 씨에게 달렸던 악성댓글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입니다.
극단적 선택 동기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습니다. 10월26일,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구하라, 숨지기 전 처지 비관 메모 남겨>(표태준 기자)에서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 발언을 인용하여 “구하라 씨가 숨지기 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최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남긴 메모는 유서라고 보기엔 내용이 워낙 짧다”는 경찰 관계자 발언까지 인용하며 구하라 씨가 남긴 메모에 대해 보도한 겁니다.
‘언론도 문제’라는 조선일보, 스스로를 돌아봐야
▲ 2019년 11월26일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라고 비판한 조선일보
2019년 11월26일, 조선일보 지면에는 <만물상-너무 많은 ‘유명인 자살’>(한현우 논설위원)이란 칼럼이 실렸습니다. 해당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유명인의 자살을 두고 ‘안타깝다’는 뉴스만 경쟁하듯 쏟아내는 언론도 문제”라고 했는데요. 언론이 문제라고 비판하면서도 “(설리 씨와 구하라 씨) 둘 다 악성댓글에 시달렸고 사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하지만 공개된 유서가 없어 실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극단적 선택 동기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이어갔습니다. “(극단적 선택) 전날까지 멀쩡히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글을 올리던 젊은 연예인의 느닷없는 최후가 놀랍고 당혹스럽다”며 고인을 깎아내리는 듯한 서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던 조선일보는 박지선 씨에 대한 보도에서도 같은 문제를 반복했습니다.
천박하다 싶을 정도의 조선일보 문제 보도는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독과 특종을 좇는 언론과 그에 속한 기자의 특성상 잘못된 줄도 모르고 잘못된 보도를 내놓는 경우가 더러 있기에 마련된 것이 ‘자살보도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권고기준’이겠죠.
그러나 언론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단순히 ‘자살’이라는 표현만 기계처럼 걸러내고, 기사 끝에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안내하는 말을 붙일 뿐입니다. 다른 기준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봐도 될 수준인데요. 조선일보가 정말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보도에서 언론도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의 보도태도부터 되돌아보고 올바른 윤리의식을 정립해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0월14일~2020년11월 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설리’, ‘구하라’, ‘박지선’으로 검색하여 나온 조선일보 기사 전체
[민언련 신문 모니터]
10월 산재 사망자 71명... 택배노동자만 7명
글노동건강연대(laborhealth)/ 오마이뉴스
텅 빈 도쿄 근교 타운, 곧 닥칠 우리 미래
신도시 출퇴근, 상상초월 피로
기업이 선호할 만한 매력적인 도시 돼야
구글, 자포스 실험 눈여겨볼 만
과거 해묵은 신도시 구상에서 탈피해야
역사·상업·주거·디자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런던 킹스 크로스 지역. 19세기 철도 요충지인 이 지역은 2000년대 도시재생 사업인 ‘킹스 크로스 프로젝트’를 통해 활기 넘치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사진 최이규 제공
몇 해 전, 무척 오랜만에 만난 직장 선배와 저녁 자리를 가졌다. 공식적으로는 아이들 키우며 사는 이야기, 일과 정치 이야기를 했다. 비공식적 메뉴에는 물론 두루두루 남녀노소 지인의 근황과 뒷담화 안주가 빠질 수 없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으로 달리고, 서빙하는 직원이 눈치를 준다. ‘일어날 시간인데’ 생각하면서도 선배의 말을 끊질 못하겠다. 직원에겐 절망스럽게도, 어느새 대화는 학문적 설전으로 바뀌었다. 귀엽게도, 우리는 하는 일에 꽤 심각한 사명감을 공유하는 사이다. 불합리에 탄식하고, 부조리에 분해하며 좋은 사례에 대한 세미나 발표를 이어가다가 선배가 탁자를 탁 치며 일어섰다. “우리 집에 가자!”
캄캄한 강변도로를 달려 도착한 신도시의 고급 아파트. ‘눈치’는 직원에서 형수님으로 바뀐다. 아아…. 선배는 기어이 입가심 맥주 한 상을 내오게 하신다. 결국 세미나는 겨우 마무리되고, 나는 아이 방 작은 침대에 고꾸라져 버렸다. 두어 시간 잠들었을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뜬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출근 시간에 늦을 거라며. 그는 어느새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눈을 붙이기라도 하는 것인가!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어슴푸레한 새벽 논둑길을 달려 도착한 기차역과 이미 거기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무척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신도시의 출퇴근 라이프는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어제저녁 늦게까지 서울 시내에서 버틴 이유도 퇴근길 정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따지고 보면, 장시간 통근이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욕에서도 맨해튼 시내와 외곽 베드타운을 잇는 버스는 1시간, 때로는 그 이상 걸리기 일쑤다. 하지만, 정원 딸린 단독 주택들이 넓게 흩뿌려진 뉴욕의 교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신도시들은 초고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단지가 많아 실질적으로 자가용을 대체할 교통수단이 없다. 서구의 신도시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기차선로를 따라 선형으로 발달했지만, 대한민국의 신도시들은 갑자기 어느 순간 지정되고, 기존에 없던 도로나 지하철이 연장됨으로써 모체 도시와 연결을 꾀한다. 그 과정이 마냥 더디고, 순탄할 수 없기 때문에 신도시의 출퇴근 피로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공장 지대를 재생사업을 통해 독특한 상점 등이 들어선 곳으로 바꾼 뉴욕의 첼시 마켓. 사진 최이규 제공
앞으로 교통 인프라가 완비되고, 또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이런 판도는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문제는 반대 방향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신도시의 공동화 현상 말이다. 바로 50년 전, 우리나라 신도시가 모델로 삼았던 도쿄 외곽 타마 뉴타운의 상황은 지금 심각하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젊은 사람들의 유입은 급격히 줄어 아파트 단지에는 불 켜진 집이 드문드문하다. 장사가 잘되지 않다 보니, 입주자를 찾지 못해 비어있는 상가도 부지기수다. 서울 시내의 주택 수요를 생각한다면 아직 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미 비수도권 지역 신도시에서는 신축 아파트의 미분양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3기 신도시 공급 계획이 이미 발표된 마당에 여느 부동산 사무실에 걸려있는 똑같은 모양의 토지이용계획도가 반복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지하철역 주변에 치킨집, 피자집, 학원, 피시방 등이 촘촘하게 똬리 틀고, 그런 식의 상가가 한두 블록 점령하고, 나머지 지역은 전부 회색 아파트 단지가 연속되는 그런 그림 말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신도시의 근본적 문제는 소위 자족 기능의 결여다. 내 직장이 2시간 거리의 서울 시내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 있다면 출퇴근의 악몽 자체가 필요 없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족 용지로 마련한 땅에 기업들이 착착 입주해 준다면야 땅 짚고 헤엄치기지만, 왠지 그 땅들은 영 인기가 없다. 예외적으로는 분당 정자역 인근의 네이버와 판교에 들어선 아이티 회사 정도 되겠다. 세제 혜택과 치열한 유치 작전이 동원되기 때문에 어쩌면 기업을 데려오는 데 성공하는 신도시가 더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신도시의 설계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신도시가 자족 기능을 갖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도시 주민이 원하는 일자리가 소음과 악취, 폐수를 내뿜는 기업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엄청난 수의 기업은 트럭이 다니기도 힘든 산비탈과 계곡으로 들어가 그곳의 자연환경을 송두리째 망치고 있다. 지대가 싼 곳을 찾다 보니 기껏 마련해 둔 공업단지는 비고, 체계적인 도시 계획과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농촌 곳곳이 잠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신도시는 자족 기능 없이 지속하기 어렵다. 자족 기능은 주택이 먼저 생기고, 산업시설이 뒤따라가는 구조에서는 풀기가 어렵다. 신도시 주민이 선호하는 기업은 깨끗한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이다. 근본적으로 경쟁력 있는 일류 기업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유치가 아닌 유인 정책으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해, 도시 자체의 매력을 키움으로써 관이 나서서 유치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선호하는 ‘핫플’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수한 기업일수록 인재를 필요로한다.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창의적 고급 인력들이 원하고 바라는 곳은 단순하다. 걸어서 재밌는 도시다. 해외의 선두 기업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이용해 왔던 외곽의 널찍한 단독 캠퍼스를 버리고, 다운타운과 시티센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맨해튼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입주한 구글,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니 셰이가 실험 중인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뉴욕 맨해튼의 가장 힙한 지역인 미트 패킹 디스트릭트에 입주한 구글. 사진 최이규 제공
토니 셰이는 완전히 쇠락한 다운타운의 구 시청 건물을 자포스 본사로 쓰기 위해 접수한 뒤, 주변 도시 자체를 자포스의 기업 캠퍼스로 바꾸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상가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미국 곳곳에서 인기 있는 크고 작은 자영업체들을 유치해 도시 자체를 직원 식당, 회사 카페로 만들었다.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베가스테크펀드를 만들어 지원하며, 문화시설·학교·병원 등에 투자했다. 단순히 주거냐, 직장이냐 하는 이분법을 벗어나서 직원들이 살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정교한 24시간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어 다니면서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타운플랜이다. 컨테이너 파크, 트레일러 파크 등 모든 디테일에는 그의 강렬한 개성이 묻어있다. 그래서 때로는 그를 괴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토니 셰이의 고집스러운 자기 주관이다.
우리 신도시처럼 일산과 분당, 평촌과 김포가 잘 구별되지 않는 획일화된 아파트 경관, 보행이 어려운 대규모의 슈퍼 블록,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 자동차 없이는 불편해서 살 수 없는 환경에서는 꿈같은 소리다. 이런 곳에 멋지고, 힙하고, 잘 나가는 기업이 입주할 리 만무하다. 파주출판단지 같은 정반대의 난센스도 있다. 오후 6시가 지나면 단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정적 지대로 변한다. 직원들은 매일 자유로의 콩나물시루 버스에 시달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
혁신도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대규모 공기업들이 지방 거점 도시를 외면하고, 엉뚱한 들판에 세워지면서 애초의 균형 발전에 대한 의미와 의도가 반감됐다. 정치적 나눠 먹기의 혐의가 짙다. 도시에 들어선 경우에도 보존해야 할 숲과 농토를 뭉개고 들어서는 바람에 기껏 생명력을 유지하던 구도심을 공동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켜 왔다.
이제 해묵은 신도시 구상이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똑같은데 말로만 특별함을 외치지 말고, 진정 개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 때가 됐다. 3기 신도시, 그리고 기존 신도시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수천 세대, 수만 세대 밀도의 분산이 아니다. 그래서는 절대 서울의 선호 지역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고, 목표하는 밀도의 분산도 힘들다. 서울보다 더 매력적이고 촘촘한 도시 구조와 안전하고 활기찬 거리와 아름다운 오픈스페이스, 여가 공간을 통해 고급 인력과 앞서가는 기업이 선호하는 다층적이고 매력적 복합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다 같이 함께 천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저 도시처럼./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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