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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10.29 참사 추모 詩

by 이성근 2022. 11. 20.

사진 영화배우 김규리

그 이름 부른다 -이성근

세상의 희망 -안혜린

용서를 빈다, 대한민국이 희생시켰다 -정세훈

행복해야 할 젊음이 사라졌다- 김유철

슬픔 속 작은 기도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너만 없고 다 있다 -김수상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김의곤

 

 

Pearl (Instrumental)  Janis Joplin 

 

 

그 이름 부른다   -이성근

 

158명이 골목에서 비명횡사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하철 역사에 조화만 가득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국가애도기간을 걸었다.

영정사진도 위패도 없는 정부 지침 합동분향소에

유족이 걷어차고 내동댕이 친 대통령 조화가 엎어져 있었다.

영혼없는 검은 리본이 떠 다니고

변명과 책임전가 속에 말단 경찰 소방공무원이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권력을 향해 분노했다

멀리 있는 나는 유족의 손 잡고 위로할 일도 없이

정치권의 공방이나 지켜보며 썩은 뉴스만 읽었다

이렇게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명복도 빌지 못했는데

그 이름 조차 부르지 말라 했다

언제부터 그랬냐

그대는 동의하는가

 

급기야 천주교 정의사제단과 신생 온라인매체가

그 이름들을 호명하고 공개했다

참사 발생 2주가 넘어서였다

난데없이 유족동의 없이 그 이름을 공개했다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일견 그럴듯한 지적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가만있어라 던 세월호와 무엇이 다른가

뭐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캄캄한

압박의 그 순간이 비로소 전해졌다

살려 달라는 그 절규가 다시 들렸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청춘들이 어이없이 가버린 그 골목

한번도 가보지 못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나는 멀리서 그 이름 부른다.

 

 

세상의 희망 -안혜린

-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침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 착하고 여린 내 친구들은, / 급기야 배에 물이 차오를 때야 / 손톱이 빠져 없어지도록 / 살려 달라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 우리의 친구들은 그렇게 물속에 가라앉았고

 

많은 친구들을 물속 깊이 보내고 / 그렇게 친구들을 보내고 / 다시 일어설 기운이 없었던 우리는 / 우리의 꿈도 잠기고 /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들을 물속에 보내고 / 아직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 무엇을 할지를 모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 세상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우리들이 희망이라고 하기에 / 다시 살 수 밖에 없었고 / 앞만 보고 다시 달렸습니다

 

대학을 가야 했기에 / 대학을 왔고, / 학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 알바를 했고 / 취업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 옆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 그렇게 몇 년을 달렸습니다

 

그 날 우리가 이태원에 간 것은, / 우리에게도 공간이 필요했고 / 숨 쉴 틈이 필요했기에 / 잠시나마 기운을 얻으려고 한 것 뿐이었습니다 / 그 곳은 물 속이 아니어서 / 우리의 꿈이 침몰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우리는 살려 달라 외쳐야 했고, / 살려 달란 우리들의 외침에 / 세상은 답하지 않았고, / 잠시 그 날의 친구들이 떠올랐지만 /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기에 /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 다시 처절하게 살려 달라 외쳤고 / 세상은 다시 답하지 않았고 / 그 날의 수많은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 대답 없는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한 친구가 무너졌고 / 무너진 친구 위에 / 또 다른 친구들이 무너지고 / 한 명씩 한 명씩 그렇게 친구들이 무너졌습니다

 

차곡차곡 한 명씩 무너지면서 / 취업의 꿈도, 미래도 모두 무너지고 / 세상도 무너지고...

 

그 날 무너진 것은 / 우리의 몸뚱이가 아니라 / 우리의 젊은 생명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왔던 / 우리의 미래이고 /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던 / 세상을 믿고, 참고 달려왔던, / 그래도 믿고 있었던 세상이었고 미래였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면서 /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 우리가 희망이라고 하면서 / 우리를 지켜내지 못한, / 우리를 지키지 않은, /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이제서야, 8년전 4월 그때, / 우리는 왜 / 세상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 우리를 원망합니다 / 세상을 원망합니다

 

 

 

용서를 빈다, 대한민국이 희생시켰다  -정세훈

 

용서를 빈다, 대한민국이 희생시켰다.

 

서기 20221029일 오후 1015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앞

좁은 골목 내리막길 10만 인파에 밀려

압사 희생당한 156

대한민국 젊디젊은 아들 딸들아!

 

용서를 빈다.

대한민국 국민의

늙어가는 한 사람으로써

어미와 아비의 맘으로

용서를 빈다.

 

주장만 있고 의견과 토론을 무시하는

나만 옳고 상대는 옳지 않은

탓하고 헐뜯고 저주하고 편 가르고

독차지하고 누리고

책임감 없고 사명감 없는

정치와 자본이 득시글거리고,

이에 너도나도 철저히 편승하는

대한민국이 희생시켰다.

 

주체할 수 있는

눈으로 흘리는 눈물로가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목구멍으로 흘리는 눈물로

용서를 빈다.

 

멈출 수 있는

눈에서 나오는 눈물로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목구멍에서 나오는 눈물로

용서를 빈다.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눈으로 우는 눈물로가 아니라

소리내어 울 수 없는

목구멍으로 우는 눈물로

용서를 빈다.

 

아들 딸

자식이 죽었을 때

눈 대신 목구멍으로 우는

어미와 아비 맘으로

용서를 빈다

 

목구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하늘과 땅의 맘으로

용서를 빈다.

 

너무 슬퍼서 용서해 달라는 말 차마 못 하겠다.

너무 부끄러워 용서해 달라는 말 차마 못 하겠다.

너무 면목 없어 용서해 달라는 말 차마 못 하겠다.

너무 염치없어 용서해 달라는 말 차마 못 하겠다.

그저, 그저, 용서만 빈다.

 

서기 20221029일 오후 1015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앞

좁은 골목 내리막길 10만 인파에 밀려

압사 희생당한 156

대한민국 젊디젊은 자식들아!

 

 

 

행복해야 할 젊음이 사라졌다 -김유철

 

그날 저녁도 그랬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179로 들어설 때

행복은 곁에 있었고 마음은 즐거웠지

마스크 없는 금요일이었어

축제처럼 여겨지던 그날

3년 만에 골목에서 골목으로 웃음은 넘쳤어

 

무엇이 잘못된거야

도대체 무엇이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

우린 젊었을 뿐이라고 소리치고

우린 기뻤을 뿐이라고 아우성치고

우린 사랑했을 뿐이라고 발버둥치는 동안

 

또 국가는 없었어

112

119

목포 앞바다 세월호 메아리처럼

또 국가는 없었어

 

우리의 손은 허공을 부둥켜 잡았고

우리의 발은 무릎을 꿇었으며

우리의 가슴은 막히고 터졌어

 

막을 수 있었잖아

뻔히 예상한 일이잖아

젊음이란 이름이 그날 어디로 향하는지

너희가 신봉하는 도사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너희가 풍수지리로 찾아든 용산이기에

더 사람들을 잘 보호할 수 있는 거리였잖아

 

있어야 할 국가가 사라진 날

10대가 바다에서 죽고

20대가 땅바닥에서 죽고

그래 다음은 무엇이냐

도사들아, 개봉박두냐

 

행복해야할 젊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린 희망의 불씨를 꺼트린 것이다

 

 

슬픔 속 작은 기도-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향을 피워도 눈물뿐

꽃을 바쳐도 눈물뿐

우린 이제

어찌해야 하나요?

 

단풍이 곱게 물든

이 가을에

너무 큰 슬픔이 덮쳐

우린 마음놓고

울수도 없네요

 

어떡하니?

어떡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답은 없고

공허한 메아리뿐 !

 

숨을 못 쉬는 순간의

그 무게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고

두려웠을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어

그냥 그냥

두 주먹으로

가슴만 치고 있네요

 

한번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참히 깔려 죽은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여

 

이 땅에서 다신

이런 일 안 생기게

최선을 다할게요

그대들 못 다 이룬

꿈들을 조금씩

사랑으로

희망으로 싹 틔우고

꽃 피워서

 

그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할게요

 

멈추지 않는 눈물과

슬픔의 심연 속에

사랑을 고백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기도할게요

 

우리의 하얀 슬픔을

상복으로 입고서

안녕, 안녕이라고.

 

 

너만 없고 다 있다 -김수상

 

보이던 게 안 보인다

안 보인다, 보이던 것이 안 보인다

책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다 있는데

너만 안 보이고 다 있다

너만 없고 다 있다

 

보인다

생일날 니가 써준 이모티콘 가득한 편지가

보인다

웃고 있는 너의 사진이

보인다

너에게 소리 질렀던 잘못한 일들이

보인다

말없이 무거운 짐을 들어주던 너의 어깨가

 

따뜻한 밥이라도 같이 먹을 걸

동네 골목길이라도 같이 걸을 걸

니가 좋아하는 노래라도 같이 들을 걸

 

들린다

아악, 아 아악, 누르지 마세요.

아빠 살려주세요, 엄마 살려주세요.

깔려 죽을 것 같아요. 꺼내 주세요.

제발 빨리 출동해주세요.

숨이 막혀요. 제발 제 손을 잡아주세요.

 

공부만 하다 깔려 죽고

일만 하다 깔려 죽고

이제 겨우 취직했는데 깔려 죽고

이제 효도란 걸 좀 해보려다 깔려 죽고

꺼내 달라고 신고하다 깔려 죽고

죽고 죽고 죽고

 

내가 깔려 죽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내가 숨이 막혀 손을 내밀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이 울면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첨단 IT 강국이면 뭘 하나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면 뭘 하나

세계 속의 한류면 뭘 하나

나 하나 꺼내 주지 못하는데

 

깔려 죽은 나를 두고 서로 싸우는 나라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이제는 길에서 깔려 죽는 나라

참사라 해도 좋고 사망이라 해도 좋다

희생자라 해도 좋고 사망자라 해도 좋다

꽃을 돌이라고 해도 좋다

흰색을 검은색이라고 해도 좋다

내 아들 내 딸만 살려내라

잠만 처자빠져 자지 말고

금쪽같은 내 아들 내 딸 살려내라

 

안 보인다

어제까지 보이던 니가 안 보인다

없다, 없다, 없다,

너는 없는데 저것들은 다 있다

제발 대답 좀 해보라

몸은 어디로 가고 신발만 돌아온 나라여,

 

믿고 맡겼던 저것들도 아직까지 자리에 앉아있는데

너만 없고 다 있다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애도의 시간이라고?

애도? 애들도 다 알고 있다

진짜 애도는 추궁을 통해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임을

지금은 울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하는 시간

지금은 울면서 밝혀야 하는 시간

지금은 울면서 싸워야 하는 시간

진상을 밝히려다 진상이 된 나라여,

함께 지는 저 낙엽들에게 좀 배워라

이제 당신들이 대답할 차례다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김의곤

 

이태원173-7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도 놓지마라

꽃들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뒤로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 밤,

얼마나 원통했겠니 그 순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두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갗을 파고 들었을 네 손톱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304명 생때같은 아이들

하늘의 별로 떠나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너희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부끄러워

이젠 슬픔조차도 변명마저도 차마

드러내 보일 수가 없구나

그 골목에 아무것도 놓지마라!

허울 좋은 애도의 꽃도 놓지마라!

안전도 생명도 탐욕이 덮어버린 이 나라에

반성없는 어른들 끝없는 원망케 하라!

그리하여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참담한 부끄러움에 울고있는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