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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해파랑길에서 동해를 보다6-울진, 관동팔경의 끝에서

by 이성근 2013. 6. 13.

 

울진은 경북 동북단에 위치 한다. 이웃한 군은 봉화, 산척, 영덕이며 두 개의 읍과 8개면에 인구는 6만 쯤 된다. 동쪽은 구릉지 지역으로 300m 내외이며, 서쪽은 중산간 서부 일부에 1000m 이상의 산지가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해안의 경우 융기해안과 이수해안으로 소규모 하천의 하구를 중심으로 만입지형이 발달하며 석호가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하천은 감입곡류의 형태를 띠며 주변 해안의 구릉은 100~200m 수준이다.

 

울진으로 향하는 첫 걸음을 삼척시 원덕 호산해수욕장에서 시작한다. 현재 호산해수욕장은 생명이 다했다. 천연가스생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2013년 1단계 공사가 완성되면 14만 톤급 선박이 출입하는 항만이 생기고 가스 저장설비 14기가 들어 설 것이다. 삼척시는 이래저래 즐겁지만 주민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월천교를 건너자 솔섬이 보인다. 섬처럼 보이지만 섬은 아니다. 이름도 솔섬이 아니라 ‘속섬’이다.

 

                                                                                               마이클케나                                                                                                      임채욱

언제 솔씨 하나가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겠다만 시나브로 숲을 이루었다. 원래는 마을주민이 일구던 밭이었다. 여기에 소나무와 이태리포플러가 자리 잡고 살다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소나무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속섬이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케나에 의해 구출됐다. 그가 ‘pine tree'란 작품명으로 속섬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지구상에 퍼 날랐다. 안팎으로 여론이 일자 정부는 2010년 3월 속섬을 개발 대상지에서 뺐다. 허나 여전히 불안한 앞날이다. 때마침 사진작가 임채욱이 속섬의 미래를 시물레이션한 그림이 있다.

2km 남쪽 고포해변으로 이동한다. 36세대의 작은 마을이지만 옛부터 이곳에서 채취한 미역은 왕실 진상용이었을 만큼 질좋은 미역을 자랑하는 오래된 마을로서 5백년 묵은 향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웅변한다. 고포는 강원도의 맨 남쪽마을이자 경북의 최북단마을이다. 그 경계는 마을의 복개하천으로 각도는 18세대씩 주민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을주민이 격는 행정의 불편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갈령치로 오른다. 1km 정도 오르면 옛7번국도와 만나게 된다. 2km 정도 따라 내려서면 울진땅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나곡이다. 울진북로를 따라 남하한다. 아파트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덕구온천 분기점 917번 지방도삼거리를 지나면서 핵(核)단지의 냄새가 난다.

 

부구교를 건너자 울진핵발전소가 버티고 섰다. 달갑지 않은 지대다. 서둘러 이동한다. 후정교까지 5km를 산길 도로를 따라 투덜거리며 걷는다. 2.7km 이어진 죽변까지도 별 재미가 없다. 죽변 농협앞 삼거리에서 죽변등대로 향한다. 군부대를 지나 언덕을 내려서자 지금까지의 답답함이 날아간다. SBS 드라마셋트장 ‘폭풍속으로’ 무대다. 교회와 일식 건물 두 동이 벼랑 끝에 서 있다. 촬영 후에 철거하는 법이 없다. 새로운 볼거리로 이목을 끌지는 몰라도 드라마 하나 촬영했다고 명소가 되는 현실이 놀랍기도 하고 갑갑하다. 조릿대 오솔길을 지나 죽변등대로 향한다.

 

동해안에서 영일만 호미곶(장기곶)을 제외하고는 바다로 가장 많이 돌출된 이곳 등대 터는 신라시대 왜적을 막기위해 성을 쌓고 수군이 상주했던 곳이다. 근대에 이르러 일제는 러시아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등대를 만들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폭격으로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천년의 역사가 이곳에 면면(綿綿)하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불렸던 죽변의 옛지명은 용추곶(龍湫串)으로 승천을 꿈꾸던 용이 뜻을 이룬 곳이다. 뜻을 이루었다니 솔깃하다. 이무기도 아니고 용이라니 더욱 흥미롭다.

초평교를 건너 국보 제242호가 있는 봉평신라비사적공원으로 간다. 1988년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것으로 524년(법흥왕11) 만들어진 비다. 반란을 진압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와 율령 등을 새겼다. 울진군은 이를 기념하고 관광자원화 하기위해 전국에 있는 이름 난 비들을 실물크기로 복원하여 비석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만주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광개토왕릉비도 만날 수 있다. 색다른 맛이다.

봉평해변을 지나 곡해교를 건너자 바다는 비로소 왈칵 달려든다. 한바탕 뒹굴어 봄직한 해변이지만 7번국도 때문에 흥이 깨어진다. 울진대교를 건너 엑스포공원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 왕피천 대교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다리는 수산교다. 왕피천을 따라 하구 모퉁이를 돌면 망양정이다.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했던 망양정(望洋亭)은 알려진 유명세보다 조망이 시원치 않다.

 

원래 있던 자리는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인데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오래되고 낡았다 하여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다가 1860년(철종11)에 현재의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으로 이건한 다음 지난 1994년 재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숙종은 “맷부리들이 첩첩이 둘러 있고 놀란 파도 큰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면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리” 라며 한껏 분위기에 취해 이런 호방한 시를 남겼는데, 그 풍류를 다만 글로만 접하니 안타깝다. 허나 이곳의 진짜 볼거리는 왕피천 하구다. 동해와 왕피천의 내밀한 교섭 흔적이 강 하구 모래톱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유량이 풍부하여 연중 건천이 되지 않고 흐르는 하천은 울진군에서 왕피천이 유일하다 .이곳으로 연어가 찾아온다.

망양 해수욕장에서 망양휴게소 사이 920번 해안도로 10km는 바다와 길동무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낮게 몸을 낮춰 사는 주민들의 모습에 목이 메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도 풍경이다. 평해 월송정으로 가는 길, 망양2리를 지나면서 부터 잠시 해안을 벗어난다.

울진공항 해안 쪽 추난개교까지 10km를 지나면 구산항(邱山浦)이다. 마을 지형(地形)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 하여 구미(龜尾)라고도 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육지에서 울릉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항로였고, 수토사(搜討使)들이 이곳에서 순풍을 기다려 울릉도로 떠났다고 한다. 그들이 머물던 공간은 마을안쪽에 있는 '대풍헌(待風軒)으로 독도에 대한 조선조정의 관리의지를 명확히 드러내주는 현장이자 독도수호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바람을 기다릴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엿본다. 황보천 군무교를 건너면서부터 평해읍이다. 해가 뉘엿거릴 무렵 평해 월송정에 닿았다.

 

평해황씨종택과 평해중학교 사이 길로 들어서면 잘생김 송림이 나타난다. 달을 생각하고 갔는데, 현판의 한자가 '越松亭'(월송정)으로 되어 있다.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越松亭)은 고려시대 창건된 팔작지붕 주심포, 고상누각이다. 월송정 역시 부침이 많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연합군의 내습 목표가 된다하여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하기도 했다. 정자에 올라 겸재 정산의 월송정도를 떠올린다. 참으로 호사다. 다만 관동의 팔경 중 북쪽 고성의 삼일포(三日浦)와 통천의 총석정(叢石亭)을 보지 못함이 애석할 따름이다.

 

월송정에서 나와 월송리 농로를 가로질러 용정교를 건너간다. 후포 방파제까지 5km 울진대게로를 따라 남진한다. 거일2리는 대게의 원조마을이다. 마을의 형세가 알을 품은 게의 모습과 비슷하여 ‘기알(게알)이라 부르던 것이 거일리의 유래다. 쌀이 부족해 쌀밥은 먹지 못했지만 대게로 배를 채웠을 만큼 대게잡이가 활발했던 시절이 거일2리에 있었다. 그런데 지난 1999년 영덕군이 축산면 경정2리 차유마을에 원조비를 세운 것에 울진이 발끈했다. 이른바 대게 원조 논쟁이다.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법원의 판결이 싱겁다. 예컨대 영덕산은 영덕대게, 울진산은 울진대게라는 명칭을 쓰도록 했다. 최근 대게잡이는 포항 구룡포까지 합류했다. 대게는 보통 11월부터 잡는데 울진은 어족을 보호하고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12월부터 잡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게 생산량은 예전같지 않다. 대게철 동해안 웬만한 항 포구마다 좌판 가득 켜켜이 쌓여 있는 대게지만 왠지 명태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쌀은 남아도는데 어족은 눈에 띄게 격감하고 있다. 배부른 인간에게 바다가 등을 돌리고 있다. 바람의 고장 영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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