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盈德) 해파랑길은 바다와 해안길, 마을길, 숲길, 산길이 절묘하게 엮여 있다. 그 시작은 울진군 후포면 금음4리를 경계로 한다. 병곡면 금곡교를 건너 1.5km를 따라 내려서면 영덕군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백석포구가 작은 등대로서 포구의 존재를 드러낸다. 병곡휴게소를 얼마 지나지 않아 고래불해변이다.
여기서부터 영덕군이 자랑하는 불루로드인데 50km의 끝 지점이다. 뭐가 대수랴 ? 블루로드는 3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강구항에서 고불봉과 풍력발전단지를 거쳐 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A코스(17.5㎞)는 바다를 꿈꾸는 산길이다. B코스(15㎞)는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에 이르는 환상의 바닷길이다. C코스(17.5㎞)는 축산항을 출발해 대소산 봉수대와 목은 이색의 산책로, 괴시리 전통마을을 거쳐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문화 탐방로다.
고래불해수욕장은 병곡면 6개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8km 백사장이 길게 누워 있는 명사 이십리다. 목은 이색이 인근 상대산에 올랐다 고래가 많아 뻘(불)처럼 보였다고 하여 고래불이란 이름이 생겼다 한다. 문득 이색은 행복했겠다 싶다. 그 많은 고래는 어디가고 어쩌다 우리가 보는 고래는 좌초했거나 재수없게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다 급기야 죽어서 꼬랑댕이 크레인에 매단 경매중인 고래들이다. 진짜 고래가 보고 싶다. 동해 어디서나 물을 뿜어 올리며 동료들과 노래 부르는 고래를 보고 싶다.
그 바램을 가지고 고래불로를 따라 걷는다. 길은 백사장 길, 솔숲 길, 인도 세 가지이나 걸어 본 결과 이 구간에서는 그나마 인도가 피로도가 덜했다. 또 솔숲 방풍림길은 크고 작은 물길과 군부대 등으로 인해 연결성이 좋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고래불 해변 뒤편 매뚜기들 펄쩍펄쩍 뒤는 병곡면 거무역리 들에서는 허수아비들이 서기 시작했다. 의병장 신돌석장군을 비롯하여 각설이까지 별의별 군상들이 다 있어 재미도 있다. 실증이 나면 고래불로 나가면 된다.
고래불교를 건너면 영덕대게로가 강구까지 이어진다. 봉긋하게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상대산이다. 이색이 고래가 뛰노는 것을 봤다는 산이다. 송천이 휘감아 덕천해변과 대진해변 사이로 동해로 흘러든다. 대진 해수욕장은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 3부 ‘그해겨울’의 무대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한편 대진에서는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해 바다로 걸어 들어가 목숨을 다했다. 구한말~일제시대 영양군 청기면 출신 의병장이었던 김도현(1852~1910)이 그다. 나라가 무너지던 1910년, 그는 절명시를 남긴 뒤 영덕군 영해의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따라온 조카에게는 "결코 내 시신을 찾지 말라"고까지 일렀다고 한다. 동해를 바라보며 그를 기리는 비, 도해단(蹈海壇) 하나 외롭게 서 있다. '…아무런 방도가 없으니(百計無一方)/ 만 리 먼 바다가 보고파라(萬里欲觀海)'. 절명시의 한 구절이 폐부를 찌른다. 일렬횡대로 넘실대는 동해의 파도가 비장하게 다가온다. '도해(蹈海)'는 중국 진나라가 천하를 차지한다면 바다를 밟고 들어가 죽겠다고 했던 중국 제나라 노중련의 이야기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대진삼거리에서 영양 남씨 집성촌 괴시리로 빠진다. 호연지 연밭 사이를 가로질러 전통마을로 향한다. 마을 앞에는 동해안에서 보기 드믈게 넓직한 영해평야가 펄쳐져 있다. 남동쪽의 망일봉(望日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마을을 입(入)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지형에 맞추어 대부분의 가옥들이 서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와 토담 골목길을 중심으로 2~3백여년 된 '口'자형 구조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영남(嶺南) 반촌(班村)에서도 보기 드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괴시(槐市)란 지명은 고려말의 목은 이색(李穡)(1328~1396년)이 문장으로서 원(元)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과 풍경이 비슷해 지은 이름이다. 마을 뒤편엔 목은 전시관이 세워져 있다. 산쪽으로 '목은 등산로'가 연결되어 망월봉을 통해 봉화산으로도 빠질 수 있다. 산정에서 보는 동해와 축산 일원이 호탕하다.
영해 스므나골을 넘어 사진으로 내려선다. 사진은 나루가 실(悉)과 같이 길게 뻗어 있다하여 실나리, 변하여 시나리 또는 사진이라 하였다. 사진에서는 12번 지방도를 따라 동해를 만난다. 차도지만 걷기에는 큰무리가 없고 호젓하다. 축산항까지는 3.3km, 생김새가 소와 같아서 축산(丑山)이라 불렸다는 곳인데 옆에는 말미산이 있어 소와 말이 축산항을 지키는 셈이다. 축산항은 어촌문화를 잘 간직해 행정안전부 지정 '푸른 바다마을'로 청어가 대량으로 잡혀 들어오는 항구다. 청어를 해풍에 말린 것을 ‘과메기’라 하는데 요즘은 난류가 올라와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가끔 이곳에서 황새치가 정치망에 걸려 올라온다고 한다. 바다가 몸부림친다.
축산항에서는 몇 해 전서부터 봄가자미축제가 열린다. 단연 일미는 가자미물회인데 영덕에서는 일본식으로 미주구리회라고 하면 어디서 왔냐고 물을 정도다. 남금숙씨가 운영하는 밥집(실비식당 054-732-4042)에서 밥이며 찬을 남김없이 비웠다. 그렇게 거하게 점심을 먹고 죽도산을 오른다. 축산항 동쪽으로 죽도산(竹島山) 해안을 끼고 도는 데크 둘레길이 있다. 시누대 천지다. 이 대나무로 수백년에 걸쳐 영해부에서 화살을 만들고 나라에도 진상했다고 한다. 축산항이 오롯이 들어온다.
축산천 하구에서 보행자 전용다리를 건너 영덕 대게의 원조, 경정리 차유(車踰) 마을까지는 초병들이 근무하던 해안길이다. 영덕 불루로드에서 가장 점수를 많이 얻는 B코스다. 손바닥만한 해변들이 암반지대 사이사이 묻혀 있는 해안숲길을 나오면 경정리 차유마을이다. 차유마을 김수동 이장(66)은 "마을 앞바다에 대륙붕이 발달해 좋은 대게 서식환경을 갖췄지. 맛도 최고야. 딴 데 하고는 비교가 안돼요. 조상대대로 여기서 대게를 잡아왔으니 원조지"라며 한껏 자부심을 드러낸다.
경정3리에는 특이한 '오매향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자그마치 500년이다. 무성한 뿌리와 가지가 바위산을 휘감고 있다. 석리를 지나 오보, 대탄을 돌아 나오자 해맞이공원이다. 뒤편 산등성이에 들어선 풍력발전단지는 영덕의 새로운 관광명소다. 24기의 풍력발전기들이 만드는 '바람춤'이 장관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연간 9만6680㎿의 전력은 영덕 군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최근 신재생에너지관이 문을 열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영덕군에서 운영하는 이곳 캠핑장의 캡슐 하우스에서 일박을 했다. 휙휙~ 발전기는 밤새 돌아갔다. 바다는 밤새도록 꿈틀거리며 바람을 일으켰고, 새벽녘에 거대한 햇덩이를 뽑아 올리고서야 잠잠해졌다.
높지 않다는 뜻을 지닌 고불봉(高不峰, 235m)에 올라 사방을 조망한다. 낙동정맥과 일망무제의 동해, 그리고 걸어왔던 길과 걸어갈 길이 다 보인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모함으로 영덕에 유배된 고산 윤선도(1587~1671년)는 고불봉을 스스로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디에 쓰이려고 그렇게 구름 위 달 쫓아 홀로이 외롭게 솟았나(何用孤高比雲月)/ 아마 좋은 시절 만나 한번 쓰일 때는 저 혼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네(用時猶得獨擎天)'.
강구항으로 들어 선다. 강구(江口)는 강의 입이자 바다의 문이다. 오십천과 동해가 어우러져 물산이 풍부하다. 대게철(11월~이듬해 5월) 강구는 외지의 차와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삼사공원으로 향한다. 남호교를 건너 두시간 정도면 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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