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향호습지가 있는 향호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아들공원이 있는 우암교까지 1.4km 거리, 가까이 다가서자 해안가 바위들이 특이한 모습이다. 원래 마을의 전체적인 형국이 소처럼 생겼다고 하여 소돌(牛岩)이라 하는데 소돌의 상징은 아들바위공원에 있는 소바위이다. 검고 각진 바위의 모양이 거대하고 힘이 센 수소와 닮았다고 하나 실은 영화 스타워즈의 무대였던 터키의 카파도키아의 바위지대처럼 요상스럽다. 바위들은 마치 방사능에 노출되어 유전자가 변형된 괴물같다.
옛날 노부부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은 후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 역시 아들선호의 오래된 흔적이다. 해안로를 따라 손바닥만한 오리진항을 지나 주문진항으로 향한다. 1km 남짓한 거리에 주문진 등대가 있다.
연해 있는 마을은 등대마을이다. 주로 주황과 하늘색 계열의 지붕들이 다닥다닥 산동네를 이루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뱃사람들이다. 60~70년대의 흥청거림은 사라지고 궁핍이 골목마다 묻어났다. 등대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지만 주민의 어둡고 추운 곳은 밝혀주지 못하고 있었다.
방파제 회센타에서 시내 쪽으로 길을 튼다. 건어물가계가 줄지어 섰다. 직매장 옆 주문진항의 상징인 오징어 탑이 있다. 집어등을 주렁주렁 매단 오징어잡이 배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교항삼거리에서 신리하교를 건너간다. 주문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1km 남짓의 길고긴 방파제가 끝나는 지점이자 주문진항의 바다가 열리는 곳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든가. 신리천 하구역 영진해안을 비롯하여 인근 연곡해변까지 해안선은 들쭉날쭉이다. 덧댄 인공구조물 돌제가 해안의 침하를 가속화시켰다. 단조롭지만 거칠 것 없이 열린 동해의 비극은 도처에 널렸다. 하평해안 앞 해다리바위(물개:海狗) 가득했던 물개들의 울음도 지워진지 오래다. 길은 사천진해변과 항구가 있는 뒷섬해안길로 이어 진다.
다시 송림이 시작되는 들머리에서 양푼이 물회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1.4km의 송림을 지나 순포, 순굿해변을 지날 즈음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다. 난감해하다 일정을 포기할 수 없어 순전히 시각에 의지한 글쓰기로 기록을 대신한다. 디카나 카메라가 없던 시절 풍경이나 대상을 묘사했던 글과 그림에 경의를 표한다.
안현교를 건너면 경포해변이다. 해안으로의 접근은 데크길을 따라 경포도립공원구역으로 이어진다. 이름값을 하느라 다소 번잡하다. 방향을 틀어 3분 거리에 있는 경포호로 들어선다.
고려말 학자 이곡(李穀)이 1349년 8월에서 9월 약 스무날을 금강산을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방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쓴 동유기(東遊記)에 경포대를 일러 “...삼일포와 더불어 경치가 막상막하(莫上莫下)로서 명확하고 심원하기는 그 보다 낫다”며 경포의 경치를 극찬한 바 있다. 약 700년이 지난 지금의 경포대는 이곡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이 노래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조선 중종 때 세운 단층겹처마 팔작지붕 아래 걸린 현판 ‘제일강산(第一江山)’이 그 시대를 대변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의 3분의2가 농지며 시가화 되었다. 거기다 도로가 앞뒤 없이 깔림으로 인해 수제선 가까이 있던 그 운치 있던 누정들이 초라한 몰골로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효령대군의 11세 손이자 만석지기 대지주 이내번이 지은 선교장(船橋莊)으로 향한다. 옛날에는 배로 호수를 드나들었다. 집 앞까지 경포호였다. 현재 집터는 3만 여평. 큰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 10동의 건물이 있다. 선교유거(船橋幽居) 라는 현판이 달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일각문을 경계로 이 집의 핵심인 열화당을 비롯 99간 선교장의 내부를 돌아 볼 수 있다. 선교장이 오늘날 고택중의 고택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대에 걸쳐 보수와 증축이 이루어 졌지만 먼저 선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지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건물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한 듯 자연스럽다.
30분 거리에 있는 초당동 허초희(許楚姬)(1563~1589)의 생가로 간다.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27세에 요절한 난설헌은 대사헌 부제학을 지낸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이다.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였던 그녀는 15세에 혼인하였으나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로 인해 부부간. 고부간 불화 속에 지내다 자식조차도 어린 나이에 잃어버렸다. 그 공백을 시(詩)로서 살았지만 조선사회는 외설스럽다며 외면하다 못해 폄하했다. 요즘 말로하면 “어디 여자가 건방지게” 쯤이었다. 그녀는 세상과 이별하면서 “내 시를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겼다. 유고 중 일부를 동생 허균이 난설헌집으로 묶어 냈다. 여류시인으로 당대 최초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된 난설헌의 시집은 정작 조선에서는 외면과 폄하로 점철되었다.
강릉에는 비슷한 시기 신사임당과 율곡이 살았다. 지배이념에 충실했던 모자는 현모양처와 대유학자로 존경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5만원 권과 천원 권 지폐 속에 건재하다. 주류와 비주류의 삶은 이렇듯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배이념에 충실하면 세상은 편할까. 난설헌의 가계는 모두 불행했다. 가족 모두 객사하거나 역모로 몰려 능지처참 당했다. 이상세계를 그리며 홍길돈 전을 지은 교산(蟜山)허균은 광해군 연간에 역모죄로 사지를 찢긴 채 소금에 절여 전국에 나뉘어 전시되었다. 살던 집은 역적의 거처라 하여 허물고 우물은 메워버렸다. 하여 난설헌의 생가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근자에 생가터 주변에 기념관이 들어서고 시비가 줄줄이 섰지만 비참했던 그 생애의 흔적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불여세합(不與世合:세상과 어울리지 못함)의 길이다. 날이 저물었다. 강문해안으로 이동하면서 뒤돌아 본 솔숲에서 불빛 한 점 푸르게 피어올랐다.
강릉 2일째 강문해변에서 발걸음을 뗀다. 바우길 5구간으로 강릉에서 가장 긴 해안 방풍림이다. 송정과 안목 강릉항까지 이어진다. 남항진으로 이어지는 남대천 하구에 강릉의 새로운 명물, 솔바람다리에 섰다. 여기서도 강하구는 막힘이 없다. 길이 192m의 솔바람다리는 보행자 전용다리로 49억원을 들여 조성했고 최근 월출과 일출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남항진에서 안인진까지는 강릉공항이 있어 13km를 돌아서 가야 한다. 안인진 삼거리에서 ‘산우에 바닷길’ 8.3km를 탄다. 원래 ‘안보체험 등산로’였는데 사)바우길에서 이름을 바꾸자 고된 산길임에도 새롭고 정겹다. 동해가 새롭다. 해안선을 따라 철길과 도로가 나란히 달린다. 그 끝에 정동진이 있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간이역이 일약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난 것은 익히 알려진 바 대로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이지만 그 유명세로 인해 잡종해변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색하고 낯설었다. 해안의 끝에 거대한 몸집의 썬크루즈 리조트가 막 바다로 떠날 듯 서 있다.
정동천을 건너 3.3km의 고갯길을 넘는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다시 바다를 만난다. 심곡항이다. 골짜기에 파묻힌 항으로 전쟁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헌화길은 굽이친다. 드라이브코스로 이름난 길이다. 신라 성덕왕 때 절세미인 수로(水路)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가다 바닷가 천길벼랑에 핀 철쭉꽃을 따고 싶어 했다. 그때 소를 타고 가던 노인이 올라가 꽃을 꺽어 바치며 부른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다.
“ 검붉은 바위가에 /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고 불렀다하나 그 장소가 심곡~금진간 6km 중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헌데 소걸음처럼 걷던 길에 생생 질주하는 자동차와 헌화로는 어울리지 않는 컨셉이다. 그 길에 ‘합궁골’이 있다. 계곡의 지형이 여성의 음부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 남근석이 벌떡 서있는 모습이라니, 수로부인은 뭐라고 했을까. 한 떼의 파도가 몰려와 철썩 물보라를 일어킨다. 동해삼척으로 향한다.
(월간 함께사는 길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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