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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해파랑길에서 동해를 보다 3. -양양, 길을 묻다.

by 이성근 2013. 6. 13.

 

‘해오름의 고장’ 양양(襄陽)땅 들머리 첫포구 물치항을 밟는다. 양양의 상징 송이버섯등대가 인상적이다. 반면 물치는 도루묵을 지역 브랜드로 삼았다. 동해일원에서 두루 잡히는 흔한 어종이지만 물치가 도루묵을 축제의 테마로 삼는 바람에 도루묵은 시나브로 물치의 고기가 됐다. 도룩묵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 몽진(蒙塵)에서 연유한다. 그런데 도루묵이든 도로묵이든 선조가 먹었다는 목어(木魚)의 정체는 대체 뭘까? 추적하면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른다. 예컨대 선조가 백성과 한양을 버리고 허급지급 도망가 도착한 곳은 서해 평안도 의주행성 아니든가. 그럼에도 도루묵의 유래는 그렇게 구전되어 왔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연탄불에 고들고들 구워진 도루묵 맛을 보다 흔한 것과 귀한 것의 관계를 생각한다. 흔한 것이 대접받는 다는 것은 ‘넘쳐나 버려지는 시대’의 역설이자 비극이다. 씨가 마른 명태는 그 사례다. 문득 걷잡을 수 없이 공멸로 치닫는 이 시절을 불편했던 옛날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물치항을 벗어나 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해안은 비어있어 한결 시야가 트인다. 더불어 가슴까지 시원하다. 이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늘 그런 바램을 곧잘 뭉개버린다. 이 그림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려는 독버섯같은 건축물들이 그럴듯한 대목마다 우후죽순처럼 피어 눈을 아프게 한다. 도로개설로 발등을 잘린 언덕을 지나 후진항으로 향한다. 시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은 어수선 했다. 사람들은 그 상태를 발전이라 한다. 제 모습을 잃는 뒤틀린 발전이다. 낙산사가 있는 오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접근로가 없어 7번국도 갓길을 따라 1.7km 정도 이동한다. 낙산사 일주문이다. 널리 알려진 절집의 일주문 치고 인적이 뜸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외진길은 2005년 일대를 휩쓴 화마가 비켜간 곳으로 홍례문까지 솔숲길은 호젓하다.

 

낙산사는 ‘신라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7일간 재계를 올려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한 쌍의 대가 솟은 산꼭대기에 절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원래는 오봉산인데 절이 들어선 이후 ‘낙산(洛山)’이라 부른다. 관음보살이 항상 계신다는 인도의 ‘보타락가<potolaka>‘에 그 어원이 있다. 낙산사는 관음의 성지답게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그 관음상을 모신 전각들은 대부분 불길에 사라졌고, 산등성이는 민둥산이 되었다. 하필이면 4월5일 식목일 불이 났다. 정상부에는 16m 높이의 해수관음상이 서 있다. 해수관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을 일러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 했다. 내 꿈은 무엇이든가. 시나브로 꿈을 잊고 살았다.

 

의상대사의 간절한 기도 끝 관음보살이 나타나 뜻을 이룬 홍련암은 전국 3대 기도처라는 명성 때문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방문객들로 붐빈다. 기다렸다 마루에 난 그 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파도의 포말을 보고 싶었지만 아서라 말아라 였다. 의상대로 향한다. 송강 정철은 이곳에서 일출을 보겠다며 관동별곡을 노래했던 곳이다. 장엄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 그 장관은 다음으로 미룬다. 만약 낙산사에 의상대가 없었다면 참 거시기 할 것 같다. 그리고 관음송이 없었다면 의상대 또한 허한 풍경에 불과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늘향해 가지를 펼친 관음송의 존재는 가히 무가애고(無罫碍故: 걸림이 없으므로) 무유공포(無有恐怖: 두려움이 없는)였다.

 

 

낙산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경포해수욕장과 자웅을 겨룰 만큼 동해안에서는 알려진 해수욕장으로 양양의 21개 해수욕장 중 으뜸이다. 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남대천으로 향한다. 남대천은 청정 1급수 하천으로 별 다섯 개 특급이다.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동해로 흘러드는 비교적 짧은 하천이지만 골골 숨은 비경과 연어의 모천으로 이름났다. 봄이면 황어가, 여름이면 은어가, 그리고 늦가을 연어가 찾는 남대천에는 7종의 고유어종을 비롯 6종의 회유성 어족 등 총14과 34종의 어류가 살고 있다. 여기에 재첩까지 산다. 예전에 낙동강하구가 보여준 오래된 미래를 남대천은 보여주고 있다. 막히지 않고 오염되지 않아서 풍요로운 물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에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 아픔을 낙산사 의상기념관 앞 돌계단에 새겨진 ‘길에서 길을 묻다’로 화두 삼는다.

 

 

낙산대교를 건너 오산해수욕장까지는 3.9km. 오산봉을 경계로 해수욕장과 어항이 이웃해 있고 동명천은 해수욕장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채 오산항으로 빠졌다. 그리고 해수욕장은 급격한 침식과정에 있었다. 백사장의 기울기가 급격히 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전에 없었던 현상이라는 점이다.

 

수산항을 건너 뛴다. 고개 두 개를 넘자 동호해수욕장이다. 해안방풍림이 하조대까지 이어진다. 우측 구릉너머엔 그 유명한 양양국제공항이 있다. 2.7km의 활주로는 개점휴업이다. 하지만 그 너머 27홀 골프장은 성업중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실패한 국책사업은 오늘도 이름만 바꾼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국토의 살점을 뜯어 먹고 있다. 여운포 굴다리 입구에서 불편한 도로를 버리고 남쪽으로 난 길을 찾아 무작정 걸었다. 전방 하조대의 산줄기가 마치 머리를 푼 여인이 발끝을 동해로 향한 채 반듯하게 누워 있는 자세다. 저 여인이 일어나면 어떤 세상이 열릴까.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박물관-약 8000년 전의 신석기 유적지

 

하조대는 조선 개국 공신 하륜(河崙)과 조준(趙俊)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청유하였던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기암절벽 위 정자가 있는 절경으로 이름 나 있다. 거기 애국가 영상화면에 등장하는 소나무도 있어 저 마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하조대 마을을 빠져 나와 기사문항 가는 길, 만세고개를 넘는다. 양양지역 기미만세운동의 현장으로 만세운동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유적비를 세웠다. 고개를 넘어 가사문항의 고등어 모양의 활어센터가 눈길을 끈다. 포구길을 따라 해수욕장을 지나면 유명한 3.8휴게소다. 해방공간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38선이 그어진 자리다. 기념비에 적힌 황금찬의 ‘불망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 답답함은 유사시 도로를 차단하는 대전차 방어 굴다리를 앞에서 굳어 버렸다.

 

북부해수욕장을 지나 동산삼거리에서 동산항으로 마을을 관통한다. 작은 언덕을 넘자 바닥까지 휜희 보이는 물빛이지만 주변은 테트라포트며 방파제로 어수선하다. 죽도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서 둘레 1 km, 높이 53m의 나즈막한 언덕이 있다. 사철 소나무와 산죽이 울창하여 죽도라 부른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건너편이 휴휴암(休休庵)이다. 암자치고는 크고 화려하다. 범종각의 황금빛 종도 그렇거니와 곳곳에 돼지상이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의 불룩한 배가 사람의 손을 타 떼에 절었다. 배를 문지르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근래들어 새로 생긴 절집 어디서고 포대화상이 보인다는 것은 세속화의 바로미터다. 여기도 해수관음보살이 있는데 감로수병 대신 책을 들고 있어 지혜관음보살이라 했다. 순간 스치는 그림 한 장, 불구덩이라도 마다않는 입시철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씁쓸하다. 또 길을 묻는다.

 

 

 

남애항으로 향한다. 강원도 3대 미항으로 1940년대 일제가 동해안 키 크고 잘 생긴 소나무들을 반출하기 위해 조성했던 항이다. 원래 매화가 결실을 맺은 후 떨어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낙매(落梅)라 불리다가 남쪽바다라는 뜻으로 지금의 남애가 되었다. 일출이 뛰어난 여기서 배우 안성기를 주연으로 영화 ‘고래사냥’을 찍었다.

                                                                                                                         겨레여! 여기  이곳을  저 파도소리처럼 잊지말자

                                                                                                                         한때 민족의 사랑도 끊기었던 38선

                                                                                                                         하늘에 사무친 한을 국토통일 그날까지 (황금찬의 不忘記)

 

고향을 찾으러 떠난 세 젊은이의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는 개발 독재에 동의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채 낙오된 청춘들의 시선이기도 했다. 강릉의 경계인 지경해수욕장까지는 3km, 신나게 동해를 만나는 길이다. 파도가 떼를 지어 달려든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월간 함께사는 길 2011년 3월)

구름나그네 - 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