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미래를 걱정한다 04.8.15 국제신문
지난 7월 중순 환경운동연합은 해운대에서 금정산 고속철 관통반대 전국 회원대회를 열었다. 전야제 장소를 글로리콘도 앞 백사장으로 잡았지만 당국의 방침은 '불가'였다. 구청의 '백사장 보전' 행정 때문이었다. 결국 개최 하루 전 인근 송림공원에서 대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해운대구청의 이같은 자세는 나쁘다고 탓할 일이 못된다. 전에 없이 단호한 구청의 자세는 그만큼 '백사장의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백사장을 보전하려는 해운대구청의 방침이 근본적이지 못한 치명적 한계가 있음은 이번 기회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제신문의 '수중 탐사'에서도 드러났지만 지금 해운대 백사장은 하루가 다르게 원형을 상실하고 있다. 얼마 전 태풍 '민들레'의 영향으로 웨스틴조선비치호텔 앞은 뭔가에 뜯어 먹힌 듯 사라졌다. 결국 모래를 긴급 이식했지만 제 모습을 찾지는 못했다.사실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 유실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곤혹스럽다. 이미 모래 유실의 다양한 원인도 밝혀졌다. 그런데도 당국의 대응은 지극히 소모적이고 원시적인데다 반생태적이기까지 하니 참으로 문제다.
올 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해 해운대를 찾은 인파가 '사상 최대라는 통계에 구청 관계자들이 흐뭇해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해운대를 찾는 피서객이 언제까지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7번 국도를 따라 동해를 끼고 올라가면 한때 해운대만큼이나 이름난 해수욕장들이 백사장 유실에 따른 황폐화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곳이 적지 않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옛말이 된 그 곳은 관광특구로서 특급호텔과 고급 아파트만 가득한 해운대의 미래상일 수도 있다.
그 때도 다른 지역의 해양생태계를 교란시키는데 일조하면서 모래를 사다 넣는 비경제적 방식을 택할 것인가. 해운대가 전국 최대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이제 보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방법은 당연히 지금까지의 무분별한 개발이 키워온 '암을 제거하는 수술'이어야 한다. 환경 차원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의 균형을 깨어버린 원인은 다름 아니다. 먼저 지금도 경쟁적으로 들어서는 고층건물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더 늦기 전에 있어야 한다.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춘천천의 물길을 이전의 상태로 돌리는 것도 시급하다.
해안의 굴곡, 특히 모래로 구성된 해수욕장은 바람과 파도에 모습이 좌우된다. 당연히 주변 지형의 변화는 치명적이다. 유감스럽게도 해운대는 이러한 장애 요인을 제거하기보다 확대시켰다. 후손이 누릴 다양한 기회 요인을 선대가 오히려 빼앗는 것과 같다.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를 핑계로 미래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해운대 백사장의 존폐는 일차적으로 해운대의 미래와 직결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외국인에게 부산의 인상이 어떻게 그려지느냐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가까이는 400만 시민이 총력을 기울여 유치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비롯, 각종 국제회의에서 선보일 수밖에 없는 해운대의 풍광은 부산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공간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정으로 사실상 방치하고 있으니 부끄럽고 기가 막힌다. 더 이상 시민을 기만하는 천박한 경제논리 지상주의와 해운대를 거래해서는 안된다. 위기의 진단은 빠를수록 좋다. 병은 가능한 많이 알리고 치유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효과를 본다.
미국 조지아주 맨트로킹 자치구의 '사구(沙丘) 관련 조례'와 나아가 해안을 보전하려고 번창하던 도시의 일부를 소개시키는 극단적 조치로 복원이 진행중인 스페인 발렌시아의 사례는 오늘의 해운대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행정당국은 피서 인파에 고무되기 보다 머지않아 닥칠 해운대 해수욕장의 문제점에 대비하는 한발 앞선 '환경 행정'을 펼치기 바란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면 해운대의 명성은 교과서에서나 찾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시민회원국장
Blue Spanish Eyes (T'en Vas Pas) - Michael Fr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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