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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새로운 불평등, 전망 좋은 아파트에 유감있다.

by 이성근 2013. 6. 17.

 

계간 함께 가는 예술인 2004년 봄호

새로운 불평등, 전망 좋은 아파트에 유감있다

 

 

 

부산의 마지막 남은 자연공간들이 대규모 아파트건설로 사라지고 있다. 이미 난개발의 현장이 되어버린 해운대, 수영만, 민락동은 차지하고라도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던 오륙도 앞이며 다대포 아미산 6지구 등이 그 현장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런 곳에 고층 고급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의아해 하고 있다. 시민들은 상식을 져버린 건축허가 행정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행정의 답은 간단 명료 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어쩔 수 없다”. 대개 이런 공간은 경관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시민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던 곳이다. 그러한 특별성은 부산의 정체성과 직결됨에도 고려된 흔적은 없다.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에 대한관점이 없었기 때문이고 환경과 역사적 관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발업자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급급했다.

 

 

개탄스러운 일은 APEC며 각종 국제행사를 개최하여 도시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정작 지켜야할 공간에 대한 노력없이 세계도시를 역설하는데 있다. 자연성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해안선 하나 없이 산자락이란 산자락 은 죄다 고층아파트로 칠갑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도시 부산을 주창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요, 자본의 들러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대포 아미산 6지구는 특별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얼마 전부터는 아파트 광고 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의혹들은 하나도 제대로 규명된 바없는데, 숲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곳에 수천 세대의 고급아파트가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수요자들을 불러 모우고 있는 것이다. 정녕 아무 일이 없었단 말인가?

 

 

지난97년 이른바 부산판 수서사건으로 회자되면서 이루어진 다대 만덕 택지개발 특혜 의혹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다대포 아미산 6지구의 개발 특혜 의혹은 이후 대통령선거, 시장선거, 국정감사, 청와대 내사로 까지 이어질 만큼 개발에 얽힌 의혹 규명이 국민적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런 의혹 규명 과정이 이제는 세탁을 거쳐 개발을 합법화 시킨 통과의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답도 없는 그 사건을 들춰내어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침묵하라는 소리 또한 성립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개발 불가의 땅이 왜 개발이 가능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또 그것에 대해 명쾌하게 답해주지 못하면서 시나브로 유야무야시킨 관계당국의 자세에 의문표라도 달아 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보다 살기 좋은 곳에 살기를 희망하는 일은 누구나 원하는 바다. 그것은 욕망이기 까지 하다. 그러난 그 원하는 거주의 터전이 다대포 아미산처럼 황졸간에 원형과 의미를 상실하고 끝내는 개발이 가능한 땅이 되어버린다면 이후에도 도둑질을 하되 증거없이 들키지만 안으면 된다는 실로 고약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선례가 돈 것이다. 때문에 적어도 다대포6지구는 돈이면 그 어떤 곳이라도 개발을 통해 이익을 남기 겠다는 재벌의 반환경성이 노골화된 현장이요, 부패한 정치권이 개발업자와 야합하여 유린한 또 다른 한반도의 시작이자 마지막 공간이란 점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다대포 아미산이 유의미한 이유는백두산에서 뻗어져 내린 산줄기가 태백산을 거쳐 낙동정맥과 금정산맥을 거쳐 물운대로 이어지는 한반도 육상 생태계의 시작이자 끝인 동시에 , 해양이 열리는 곳이다. 뿐 아니라 낙동강이 일천 삼백 리를 흘러와 남해와 만나 또 다른 물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절경의 공간인 것이다.

 

 

뿐아니라 이공간의 역사적 상징성을 웅변하고 있는 응봉 봉수대 또한 기막힌 사연을 간직함으로써 더없이 소중한 역사교육의 공간인 것이다. 실제 응봉 봉수대는 근대적 통신시설이 발달하기 이전에 외세 특히 왜(倭)의 침략시 가장 먼저 국가적 위기를 알려내는 시설이었다.

 

그 절경과 역사적 상징이 자본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철저히 왜곡될 뿐 아니라, 공간이용의 불평등까지 강요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재벌의 돈벌이에 편승한 소수만 누린다는 것은 참으로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부산의 웬만한 절경, 전망 좋은 곳이 이런 식으로 거래되고 독점되고 있다는 현실은 통탄할 노릇이다. 

 

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이 절로 나옴은 비단 나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그 심정을 ‘성숙한’ 이라고 말하는 시민의식에 기대어 본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유감스럽게도 성숙한 시민의식은 전망 좋은 아파트 앞에서는 너무도 초라 해 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공간적 정체성이 경제성만을 우선하는 자본에 의해 굴복 당한 채 잡종화 되고 이 잡종성이 공간의 불평등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