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익명의 여인 지음, 염정용 옮김, 마티 펴냄 2018 11
독일어판 출판사 서문
1945년 4월 20일 - 1945년 6월 22일 일기
독일어판 출판사 후기
한국어판 출판사 후기
2차 세계 대전 1945년 주요 사건
출판사 서평
2차 세계 대전이 끝을 향해가던 1945년 봄,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된 베를린
한 여자가 이때의 베를린을 일기로 남기다
전쟁이 발발한 1939년 당시 베를린의 인구는 432만 명이었다. 전쟁이 계속된 6년간 피란과 참전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1945년에는 270만 명의 민간인만이 베를린에 남아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그중 200만 명이 여성이었다. 베를린은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되어 있었다.
한 여자가 이때의 베를린을 일기로 남겼다. 베를린 동쪽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이 눈에 보일 만큼 동부전선이 성큼 다가온 1945년 4월 20일부터 러시아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두고 협상하기 전인 6월 22일까지의 기록이었다.
일기에 따르면, 저자는 “창백한 금발의 여자”이자 “출판사 직원”(20쪽)이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후 전선으로 떠난 전 직장 동료의 다락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 책꽂이에서 노트를 발견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전쟁터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4월 27일 금요일, 러시아군이 길모퉁이를 돌아 들어오기 시작한 날, “그 일”이라는 불분명하게 지칭된 사건이 처음으로 일기에 등장한다. 앞으로 계속될 8주의 기록에서 거의 매일 등장하는 “그 일”은 ‘강간’을 뜻한다.
여자들의 안부 인사는 이제 “당신은 몇 번이나…?”(200쪽)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러시아 군인의 무차별한 성적 폭력을 비껴갈 수 있었던 여자는 거의 없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는 성폭력을 집단 경험으로 여긴다. 성폭력은 이제 사방천지에서 일어나며 심지어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181쪽). 그랬다. 독일 정부의 식량 배급이 끊기면서부터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러시아 군인과 일부러 동침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저자 또한 반복되는 강간을 막으려 생존 전략을 짠다.(84쪽) 저자가 러시아 장교와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할 때면 저자의 동거인이 된 한 중년 여성(일기 속 ‘미망인’)은 은근히 그녀의 ‘몸값’을 계산하기도 한다.(236쪽, 281쪽)
2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집단 강간은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 조사에 따르면, 독일 전체에서 최대 100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으며, 베를린에서만 9만 5천 명에서 11만 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이 일기는 ‘베를린 집단 강간 사건’의 일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자 전쟁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이 망가뜨린 삶을 응시하다
저자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 글을 썼다고 고백하지만, 후방에 남겨진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냉정한 눈으로 관찰하고 세세하게 적고 있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의미가 없어지고 생존자 공동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 독일인끼리도 약탈을 서슴지 않을 때의 절망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다가도 문득 용기가 솟아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기묘한 순간, 계속되는 굶주림과 먹을 것에 대한 강한 욕심,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 대한 불안, 강제노역, 거짓 선전을 일삼는 정부를 향한 분노… 전쟁 전에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던 지인을 찾아 황량해진 거리를 걷고 또 걸어 결국 만났을 때의 희열. 평시에는 인간이 느낄 수 없었던 생소한 감정이 이 일기에 녹아 있다.
침략국 독일이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던 아픔
독일인 피해자라는 복잡함
2차 세계 대전의 ‘독일인 피해자’라는 위치가 한 개인에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일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일 여성을 강간하려다 장교에게 제지당한 한 병사가 “독일 놈들은 우리 여자들을 어떻게 했나요?”라며 반발하는 것을 글쓴이는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독일군이 아이들을 찔러 죽이고, 아이의 발목을 잡고 머리를 벽에 내리쳐 박살 내버렸다”며 따지는 러시아 병사도 있었다. 그것은 ‘나치 친위대’의 소행일 것이며 자신들의 남편이 소속된 정규군은 그랬을 리 없다고 여자들은 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자신의 고통 앞에서, 그리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언제나 한 발 물러나 현실을 직시한다. “지금 우리의 정복자들은 정규군이든 나치 친위대든 그저 ‘독일인’으로 간주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독일인임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 나치에 잠깐 가담했던 자신,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던 자신을 회고하며, 일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역사의 무게를 받아들이려 애쓴다.
“모두가 유죄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홀로코스트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는 독일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이 일기를 쓴 여성과 같은 개개인의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위작 논란을 거쳐 비극의 증거로
이 일기는 처음에는 짧은 글, 약어, 암시, 단어, 단편적인 생각이 마구 뒤섞인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1945년 7월에 타자로 옮겨 적으면서 표현을 다듬고 나중에 관찰하고 생각한 점을 보완하며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회색의 군수 용지에 121쪽짜리 원고가 완성되었다. 종전 후 저자의 지인이었던 독일 작가 쿠르트 마렉(Kurt W. Marek)이 출간을 설득했고, 저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수락한다. 그렇게 1954년 미국에서 A Woman in Berlin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8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하지만 전후의 상처를 보듬을 여력이 없었던 독일에서는 2002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그사이에 이 일기의 작성자가 마르타 힐러스(Marta Hillers)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전쟁 기간에 사진 기자로 일하면서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50년대에 스위스인과 결혼해 이주한 후로는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 2001년에 9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몇 년 전, 그녀는 1945년에 작성한 원고를 다시 검토하고 몇 가지 사소한 교정을 보았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는 마지막 교정본을 바탕으로 출간된 독일어판을 번역한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로 2차 세계 대전의 비어 있는 페이지를 채우다
어느 날 일기에 글쓴이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내가 증인으로서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고 썼다. 역사의 증인이 되는 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할까.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고위 관료 중 유일하게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면하고 회고록을 남긴 히틀러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나,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성실한 청년이었을 뿐이라고 말한 괴벨스의 비서 브룬힐데 폼젤 이상으로, 자신의 몸이 전쟁터가 되었던 익명의 여성들 또한 그 시대의 증인이다.
그날 베를린은 여성의 지옥이었다 1213 시사인 제586호
1945년 4월20일, 나는 처음으로 일기를 쓴다. 재앙은 동부전선에서 접근해오고 있다. 러시아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베를린에는 민간인 약 270만명이 있었고, 그중 200만명이 여자였다. 서른 살의 전직 출판사 직원인 나는 빈으로 파견된 옛 직장 동료의 집에서 간신히 이 글을 쓴다. 사랑하는 게르트가 돌아온다면 아마도 이 노트를 읽게 되리라. 그가 아직 전사하지 않았다면.
지하 방공호에 대피한 이웃 가운데 아직도 그분(아돌프 히틀러)은 그리스도만큼 믿을 만하다고 장담하는 퇴역 소령이 있다. 그는 질서가 무너지거나 이웃이 패배를 인정하는 언사를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패전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면서 관료들이 가장 먼저 일손을 놓았다. 우리는 이제 통치를 받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폭격, 단수, 단전,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 동부로부터 들려오는 ‘그 일’에 관한 소문이다. 모두들 굶주렸지만 굶주림만은 낯설지 않다. 그동안 유류, 약품, 식량, 피복 등 모든 물품과 자원이 군인에게 먼저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인은 군인이 쓰고 남는 것을 쓸 때, 관료들은 분에 넘치게 살았다.
포성이 가까워지자, 매우 은밀한 정보통에게서 알아낸 특급 비밀이라는 이름의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러시아군과 불화가 생긴 미군, 영국군이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군을 다시 이 나라에서 몰아낼” 것이라는 소문은 분명 억지스러웠지만 인기가 있다.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공산주의를 똑같이 미워했고, 독일 중산층의 ‘레드 콤플렉스’는 그것을 반겼다. 러시아군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베를린 사람들은 서부전선에서 진군해오는 미군의 포로가 되기 위해 피란을 떠났다. 포로가 되기 위해 피란을 가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라니!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는 순식간에 공포로 둔갑했다.
베를린 함락 나흘 전, 시내에는 팬티 차림에 ‘배반자’라는 표지를 목에 건 군인의 시체가 전시되었다. 최전선은 우리 안에 있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이름이 강조된 공고문은 항복하려다가 발각된 사람에게 교수형과 총살형을 내리겠다고 위협했으나, 사람들은 공공연히 농담을 했다. “이보게, 그 누군가의 어머니가 사산을 했다면 우리가 얼마나 잘 지냈겠나.” 도시 전체가 폭탄 구덩이다. 먹을 것을 찾아 동네를 누비다가 떨어져나간 이웃의 팔다리를 자주 발견한다. 평소에 고상했던 여자들의 입에서 툭하면 “빌어먹을” “죽어 나자빠졌네”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우리까지 시달리고 싶지 않다”던 남자들
“여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튼 일종의 집단적인 환멸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여자들을 지배하던 남자들, 강한 남자를 찬미하는 나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나아가 ‘남성’이라는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남자들은 조국을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는 특권이 남자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전쟁에서는 우리 여자들도 그 특권에 가담한다.” 여자들이 쓰는 언어의 타락은 “곧 들이닥칠 굴욕적인 상황”에 대한 각오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일’에 관해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에 올리지 않는다. 식량 배급 체계가 무너지자 베를린 시민이 베를린을 약탈한다.
4월27일, 금요일 새벽. 러시아군이 베를린에 입성했다. 그들은 폐허를 이 잡듯 뒤져 여자를 겁탈한다. 러시아군 장교들은 ‘그 일’을 사병들에게 금지했지만, 전시 강간은 하급 병사만 하는 게 아니다. 독일 여성을 지켜주는 독일 남자는 없다. 구조를 위해 이웃집 문을 두드릴 때 풀지 않은 문의 안전고리 뒤에서 “우리까지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속삭이는 남자는 신사다. 러시아 병사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여자를 향해 어떤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제발 빨리 따라가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잖아요.” 나는 몰락하는 서구에 대한 주석을 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이 내 집을 마음대로 침탈하게 되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아주 빤한 결심. 다른 온갖 늑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마리 늑대를 불러들여야 해, 장교를. 가능한 계급이 높아야겠지.” 다행히도 러시아어를 약간 할 줄 아는 나는 장교에게 건넬 만한 문장과 어휘들을 연습한다. 전시에 나를 보호해줄 적군 장교를 스스로 찾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일 리 없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참 이상하지. 이제 곧 여자를 겁탈하거나 돈으로 살 거면서 꼭 로미오처럼 사랑을 고백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낭만적인 인정까지 받으려 한다. 중위에게서 나를 인계받은 소령은 내게 자신의 가족 사항을 알려주고, 수첩에서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는 그와 나 사이의 강제적인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로맨스(romance)로 바꿔보려고 한다.
나는 소령에게 차갑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태다. 결코 소령이 나를 강제로 범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에게 몸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욕망 때문인가? 말도 안 된다. 욕망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남자라면 지긋지긋하다. 내 평생에 자발적으로 그런 짓을 바라게 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베이컨, 버터, 설탕, 양초, 고기 통조림을 얻기 위해 이 짓을 하는가?” 마구잡이로 겁탈을 하던 상황이 차츰 수그러진 것은 도시에 식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고픈 여자들이 나처럼 주인이 정해져서 러시아군끼리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월16일, 게르트가 돌아왔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에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는 내가 무사히 살아 있는 것에 놀라고, 나로부터 극심한 굶주림에 대해 듣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 적힌 ‘Schdg.’가 ‘겁탈 (Schändung)’의 약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를 추궁했다. “너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암캐로 변해버렸어. 너희는 그 모든 가치 기준을 잃어버렸어.” 그는 나를 떠났다. 게르트, 그런데 너는 어디에 있었지? 거기서 뭘 했지? 러시아 장교가 사병들에게 ‘그 일’을 금지하는 훈시를 내렸을 때, 나는 훈시를 듣던 병사가 이렇게 반발하는 것을 들었어. “무슨 말입니까? 독일 놈들이 우리 여자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놈들이 내 누이들을….” 물을 긷는 펌프장에서 독일 여자들은 이런 말을 해. “우리 군인들도 그곳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야.” /장정일 (소설가)
패전국 여성의 몸은 전리품인가
이 책은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20세기 최악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 독일 국민이 쓴 전쟁 수기다. 1945년 4월, 러시아군은 베를린으로 진격했다. 2차 세계대전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베를린에서 시민들은 통신과 전기, 수도가 끊긴 상태로 고립됐다. 그 속에는 나치당원, 여전히 히틀러의 승리를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전쟁 발발 후 6년, 1945년 베를린은 인구 270만명 중 200만명이 여성인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격의 공포 속에 익명의 여성은 쉼없이 글을 쓴다.
이 책은 또한 모든 여성이 전쟁 상황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었거나, 오늘날도 겪고 있는 이야기다. 1945년 4월27일, 러시아군은 익명의 여성이 머물고 있는 지하 방공호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8주간 이어진 저자의 기록에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일’이 언급된다. ‘그 일’은 러시아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강간을 말한다. 베를린에서만 11만명, 독일 전역에서는 최대 100만명의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다.
전시 성폭력 문제는 국제전, 국지전, 내전, 무력분쟁 등 전쟁의 수준을 막론하고 세계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최근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이 있었다는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보고 공권력을 행사할 경우, 전쟁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전시 강간은 “군사적 응징 내지 보복의 수단”(수전 브라운밀러)으로 손쉽게 자행된다. 책에서 독일 여성을 강간하려다 장교에게 제지당한 어느 병사는 “독일 놈들이 우리 여자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되받는다. 전시 강간의 뿌리에는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다. 브라운밀러는 1975년작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오월의봄)에서 “전쟁은 평시에도 남성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멸시를 극대화해 폭발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2차 대전 당시 러시아군에 함락된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함락된 도시의 여자〉는 2008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막스 파르베르복 감독의 〈베를린의 여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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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금발의 여자”이자 “출판사 직원”이었던 저자는 공책 두 권과 메모지, 리넨 천을 씌운 장부 한 권에 자신의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알았던 저자는 러시아 군인들의 말을 주민들에게 옮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병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 주민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저자는 결심한다. “다른 온갖 늑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마리 늑대를 불러들여야”겠다고. 러시아 장교와 관계를 맺으면 적어도 밤마다 반복되는 강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전쟁통에 ‘생존 공동체’로 묶여버린 미망인과 파울리씨와 함께 나눠 먹을 빵과 감자, 고기도 얻을 수 있다.
그의 행동은 낡은 ‘피해자성’의 틀로 보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극한에 내몰린 이에게 달리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누군가 끼니를 넣어줄 때만을 기다리며 다락에서 숨어 지낼 만한 형편이 아닐 바에야 좀 더 영리한 생존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부 독일 여성들은 의식적으로 러시아 군인과 동침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전시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저자는 “지금 내가 이토록 비참한 것은 그 짓 자체 때문이 아니다. 내 의지에 반해 내 몸이 능욕당하고 있는데도 살기 위해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글로써 자신의 곤경을 똑바로 응시하고, 주위의 “비참한 무리들”을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오로지 생존의 욕망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민낯을 드러낸다. 러시아 병사들이 여성을 끌어내려고 하자 함께 피신해 있던 독일 남성은 “제발 빨리 따라가요, 당신이 우리 를 위험하게 만들잖아요!”라고 외친다.
한때 나치에 가담했고 공산주의에도 매료됐던 저자는 “지금 우리의 정복자들은 정규군이든 나치 친위대든 그저 ‘독일인’으로 간주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다”라며 비교적 정확한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모든 것이 두꺼운 장부들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죽음마저 꼼꼼하게 기록하다니, 그야말로 착실한 민족이다. 밤늦게 베토벤의 곡이 흘러나왔다. 잊고 있던 음악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나는 방송을 꺼버렸다. 지금은 들을 수가 없다.”
종전 후 “썩은 시체”가 된 베를린에서 그는 삶을 재건하려는 희망을 품지만, 일기는 6월22일자로 끝난다. 돌아온 남자친구 게르트는 일기에 반복해서 나오는 ‘Schdg’의 의미(독일어 ‘겁탈’의 앞글자를 딴 약어)를 묻고는 떠나버린다. ‘베를린 집단 강간’에 대한 기나긴 침묵을 암시하는 듯하다.
저자는 훗날 1911년생 기자 마르타 힐러스로 밝혀졌다. 1954년 미국에서 <A Woman in Berlin>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됐을 때도, 똑같은 책이 2003년에야 독일에서 나왔을 때도, 저자는 ‘익명’으로 남았다. 하지만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내가 증인으로서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그의 바람대로, 책은 시대의 한 단면을 증언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2004년 <베를린의 한 여인>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절판된 책을 같은 번역자가 새롭게 다듬어 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역자 박소영|오월의봄 |2018.02
원제 Against Our Will
저자 : 수전 브라운밀러 1935년 브루클린의 유대인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포그롬 및 홀로코스트로 유대인이 학살당해온 역사를 배운 것이 후일 인종차별과 성폭력 같은 약자 집단에게 쏟아지는 집단적 폭력에 맞서는 운동가가 된 계기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52년 코넬대학교에 진학했지만, 2년 만에 중퇴하고 잠시 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지망생으로 지내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듯 ‘고백 잡지’ 편집자로 저널리스트 경력을 시작해 1960년대에는 《뉴스위크》와 NBC TV 등 유수의 잡지와 방송에서 기사 작성자로 활동했다. 1964년 여름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가서 흑인의 실질적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한 ‘유권자 등록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는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의 일원으로서 활동했으며, 1975년에 나온 이 책은 이런 그의 인생 궤적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저서로 《셜리 치점 전기SHIRLEY CHISHOLM: A BIOGRAPHY》(1970), 《여성성FEMININITY》(1984), 가정폭력 및 아동 살해 사건 실화에 기초한 소설 《웨이벌리 플레이스WAVERLY PLACE》(1989), 《베트남 여행기SEEING VIETNAM: ENCOUNTERS OF THE ROAD AND HEART》(1994), 《우리 시대에는: 혁명 회고록IN OUR TIME: MEMOIR OF A REVOLUTION》(1990), 《뉴욕 꼭대기의 내 정원MY CITY HIGH RISE GARDEN》(2017) 등이 있다.
역자 : 박소영
2003~2008년 《여/성이론》 편집위원. 페미니즘 관점에서 생명과학기술과 일상의 정치를 살펴본 책인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2008)를 번역 및 편저했다. 성적 계급으로서 여성이 해방되려면 재생산 수단인 여성 자신의 몸과 재생산 기술 및 제도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여성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래디컬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주장을 화두 삼아, 양육 제도, 재생산 기술, 재생산 능력을 가진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 중 하나로서 젠더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목차
이 책을 쓰기까지4
서문12
1. 강간의 대중심리19
강간을 정치적으로 분석하기20
남성연대와 강간24
2. 태초에 법이 있었다27
성경 속 강간 이야기32
강간과 결혼 그리고 재산39
3. 전쟁과 강간51
제1차 세계대전66
제2차 세계대전78
방글라데시123
베트남전쟁134
4.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173
미국 독립혁명175
포그롬184
모르몬 박해190
흑인을 대상으로 삼은 폭도 폭력: KKK192
백인을 대상으로 삼은 폭도 폭력: 콩고201
5. 미국 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인디언과 노예제215
인디언216
노예제236
부록: 전문가들의 오류261
6. 통계로 본 강간범: 신화에서 과학으로267
짝패와 집단, 패거리286
과시적인 성적 모독 행위297
강간살인301
7. 인종 문제321
강간은 정치 범죄다322
인종 간 강간과 인종차별적 판결327
노예제 남부의 강간 콤플렉스332
린치와 강간342
스코츠버러 사건352
인종 간 강간 사건과 미국의 진보 운동360
윌리 맥기 사건367
에멧 틸 사건377
정치적 보복으로서 강간381
8. 권력과 성폭력393
감옥 강간: 동성 간 경험396
경찰 강간413
아동 성 학대417
9. 강간 영웅 신화435
여성 통제 수단으로서 강간438
강간을 남자다운 행동으로 찬양하기446
연쇄살인범 신화450
강간 영웅의 실체459
대중문화의 강간 미화465
강간 신화의 말로: 농담처럼 무마하기474
10.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479
강간 신화의 핵심 명제484
프로이트주의의 강간 이데올로기490
여성이 의식적으로 즐기는 강간 환상502
성녀: 좋은 여자는 죽은 여자다510
대중문화 속의 아름다운 피해자518
“금발의 전직 쇼걸, 호텔 스위트룸에서 살해당하다”523
여성 잡지: “그는 내가 그 짓을 하게 만들었어!”531
11. 강간 말하기541
12. 여성이 반격한다587
법, 남성 중심적 관념의 산물593
법 집행자 대다수가 남성인 현실605
미디어의 반여성 선전선동609
여성들의 첫 번째 반격620
남성들의 충고는 필요 없다622
반격! 이제 강간 이데올로기를 끝장내자626
감사의 말634
미주639
옮긴이의 말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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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여성의 목소리로 ‘강간’을 말하다
강간의 오랜 역사는 물론 남성 중심적으로 조직된 만연한 ‘강간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여성들의 현실에 몰두한 이 책은 미국은 물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한국은 2016년 10월의 문화계 성폭력 고발, 여성 검사의 내부 고발로 촉발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미투 운동(#MeToo) 등 여성들이 직접 나서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강간 말하기 대회’ 현장을 비롯해 ‘강간 재판’ 및 강간 관련 언론 보도 현장을 발로 뛴 경험에서 우러나온 브라운밀러의 진단은 따라서 최근의 사건들을 사유하는 데 강력한 도구를 마련해줄 것이다. 강간 범죄와 관련된 수많은 현장에서 그는 강간과 성폭력을 둘러싼 모든 제도와 담론이 철저히 남성 중심적으로 편향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대중들의 시선 역시 남성권력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경험 위에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강간을 한 개인의 범죄 행위로 국한하기보다, 강간이라는 여성혐오적 범죄가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처리되는 전 과정을 문제 삼음으로써 남성연대라는 거미줄이 얼마나 촘촘하게 쳐져 있는지를 폭로한다. 나아가 남성이 독점한 강간 정의를 여성운동의 관점으로 끌어오는 데 주력하고, 강간 문화가 팽배한 현실에 여성들이 어떻게 개입해 싸워나갈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자 한다. 피해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거나, 그들의 말을 거짓 증언으로 매도하는 오랜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이 시점에 절실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 p.25~26
일부일처제나 모성애, 사랑에 이끌리는 본능이 아니라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다는 공포야말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만든 최초의 원인이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대가로 한 짝짓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 p.28~29
전시 강간을 저지르는 남자들은 본래 평범한 이들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배타적으로 남자만 받아주는 집단의 일원이 되면서 평범치 않은 존재가 된다. 전투에서 승리한 집단은 민간인일 때는 꿈도 꿔보지 못한 힘을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은 남성에게만 허용된 힘이다. 이들에게는 여성이 없는 세계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이 된다. 상당수 군인이 군대에서 얻은 우월감을 여성에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남자에게 증명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 승리의 미명하에 총의 힘으로 남성에게 암묵적인 강간 면허를 부여한다. --- p.54~55
강간이란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의 적대 행위이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 후 기념 과정에서도 근육을 과시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남자답게 취해보는 난장판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때 적국 국민이 아닌 여성도 강간을 당한다.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손쉽고도 준비된 표적인 여성이 혐오스러운 압제자의 상징으로 선택되어 강간당하는 것이다. --- p.212
경찰 사건 기록부상의 강간범들은 이 사회의 모든 남성에게 충성하는 미르미돈으로 기능한다. 이들 역시 실체를 뚜렷이 볼 수 없게 만드는 신화 뒤에 숨어 익명성을 띠며, 그 덕에 효과적인 테러 수행자로 기능한다. 실제로 테러를 저질러 손을 더럽히는 자는 이 강간범들이지만, 이들이 단세포 짐승이 되어 가져다주는 지속적인 혜택은 이들보다 계급과 지위가 우월한 자들 앞으로 축적된다. --- p.320
모든 강간은 힘을 행사하는 행위이지만, 어떤 강간범은 신체적인 힘을 넘어서는 권력의 우위를 활용한다. 이런 부류의 강간범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제도적 환경을 이용하는 데 비해, 그런 환경에서 피해자는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인기 있는 영화배우나 운동선수, 록가수, 집단 내에서 존경받는 남성처럼 가해자가 일종의 문화적 우상인 경우, 이들이 지닌 우상의 후광은 물리적 폭력을 덜 써도 된다는 심리적 유리함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너무 늦은 시점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394
영화 제작자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제공할 뿐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남성인 영화 제작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관해 남성으로서 그들 고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한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소위 대중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영속화한다. 대중문화계 인물들은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강간범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인 청소년기 남성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 p.473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이런 식으로 정의된다. 예쁜 수동성. 기다려라, 그냥 기다리기만 해라, 완벽한 왕자님이 곧 오실 테니. 만약 문밖에 있는 것이 왕자가 아니라 크고 사악한 늑대라고 해도 여자로서 적절한 처신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늑대는 너보다 더 크고 더 힘이 세니까. 왜 맞서 싸우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소녀야. 힘세고 친절한 사냥꾼이 숲을 순찰하고 있으니까. --- p.482
외설적 즐거움의 이름으로는 그 어떤 ‘평등’한 포르노도, 기존의 포르노에 상응하는 여성 포르노도, 반전도 불가능하다. 포르노그래피는 강간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성적으로 접근할 대상으로만 환원하도록 설계된 남성의 발명품이다. 이것이 도덕주의나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관능을 추구하는 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포르노가 파는 주된 품목은 언제나 여성의 벌거벗은 몸, 여성의 노출된 가슴과 성기일 수밖에 없다. --- p.617
반격하라.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불균형을 바로잡고, 우리 자신과 남성들을 강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 모두가 여러 층위에서 함께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 p.632~633
나는 이 책을 통해 강간에 역사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제 우리가 함께 강간의 미래를 단호히 부인할 차례이다. --- p.633
태초에 강간이 있었다: 강간 문화의 뿌리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무엇보다도 브라운밀러는 이 책을 통해 강간이라는 범죄 행위를 역사화하려고 했다. 강간에 대한 기본 전제들을 의심한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남성-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이라는 해묵은 구도 자체를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이런 관념이 존재해왔고, 그런 전제에 기초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이 지금껏 끊임없이 시도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유구한 관념은 여성을 남성이 소유한 재산 즉 사물로 보는 관점과 맥을 같이 하며, 사실은 결혼이라는 부부 관계 계약의 초기 형태 역시 여기서 비롯되었다.
브라운밀러는 타고난 신체적 구조(삽입당할 수 있는 구조)로 언제든 남성에게 강간당할 수 있다는 공포야말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게 만든 최초의 원인이라고 본다. 강간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대가로 한 짝짓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을 강제로 납치해서 강간하는 행위가 제도화된 것이 곧 결혼이었으며, 남성들 간에는 여성을 약탈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해서 여성은 남성에게 최초의 영구적 취득물이자 첫 번째 부동산이 되었다. 소유권 개념을 비롯해 사유재산 개념 역시 이 초기의 ‘여성 종속’에 기원을 두고 있다. 남성이 강제로 자신의 영역에 배우자를 귀속시키고 후에 자손까지 귀속시킨 것이 소유권 개념의 시초이다. 계급 억압 이론을 발전시키고 ‘착취’ 같은 단어를 이끌어낸 마르크스 같은 대가조차 경제구조에 내재된 강간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런 관념은 사회적으로 ‘강간 문화’라는 위험한 토양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강간을 각종 선전선동에 활용하는 행태, 여성의 신체를 한낱 쾌락거리로 소비할 권리가 남성들에게 충분히 있고, 그것이 시민의 마땅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리버럴한 신념, 강간당한 여성에게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냐며 따져 묻는 제도와 행정 절차, 문란하게 행동해서 당했다며(소위 ‘그럴 만하다며’) 피해자의 과거 성 편력까지 들추려는 사법 시스템,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가 주의해야 한다며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적 담론,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게 돕는 교육의 부재, 아름다운 피해자에게만 집중하는 언론 등 이 모든 것이 철저히 남성권력이 주도하는 강간 문화에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전쟁과 혁명: 역사 아래 묻힌 여성들의 진실
“이것이 나의 무기, 이것이 나의 총 업무용 물건이자, 유흥용 물건이지”
여성을 남성이 소유하는 재산으로 취급함으로써 강간이라는 범죄를 일종의 절도죄로 여겼던 관행은 그야말로 강간을 강간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었던 여성들의 비극을 상기한다. 법이 발전하면서 이런 관행은 사라졌지만, 남성들이 그들만의 관점으로 강간 사건을 멋대로 휘두르고 때론 조작하기까지 하는 일은 새로운 형식으로 계속해서 발명되어왔다. 강간을 선전선동 수단으로 동원해 남성 집단의 승리/패배를 정당화하려는 행위들은 국가, 인종 간 벌어지는 각종 전쟁 또는 혁명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중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역사를 오로지 남성들만의 것으로 전유한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문제적이며, 남성연대가 휘두르는 폭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전시 강간을 기록하는 일은 여태껏 진지한 탐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 강간을 다루는 이 책의 3장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힌 브라운밀러의 언급은 자부심 그 이상의 감정을 드러낸다. 저자는 전쟁의 역사를 전시 강간 혹은 강간 프로파간다의 역사로 재구성함으로써 승패 아래 묻힌 여성들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다. 브라운밀러가 보기에 전쟁은 그 본질 자체가 ‘여성에 대한 멸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쟁과 군대의 이데올로기, 즉 군대에서 남성들이 독점하는 무기와 그것이 발휘하는 잔혹한 힘, 병사들 간의 결속, 명령 체계에 복종하는 남성적 훈육 과정 따위는 여성을 멸시하는 태도에 기반을 둔다. 여성은 중요한 세계와는 관련이 없고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존재라는 식의 폄하.
군대가 보증하는 남성 중심적 가치 체계와 그 안에서 싹트는 남성연대는 여성을 주변적 존재로 배제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여기에 좀 더 역사적 좌표를 부여해보면, 전시 강간은 여성을 순전히 소유물로만 취급했던 옛 방식이 세월이 흘러 훨씬 더 교묘한 가치 체계로 발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패전국의 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승리를 북돋는 행위이자 군인의 남성다움과 성공을 증명하는 증표라도 되는 듯, 여성의 몸에 접근하는 기회를 전쟁에서 주어지는 보상으로 이용하는 체계가 자라나온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밀러는 이것이 단순히 승전국이 휘두른 폭력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강간에 관련된 한,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좌든 우든, 혁명 세력이든 반동 세력이든, 식민국이든 피식민국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역사의 심판을 통해 구원을 받은 어떤 세력도 결코 강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제 1, 2차 세계대전은 의심의 여지없이 강간을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했으며, 심지어는 선전선동에서 강간이 지니는 가치를 주제로 쓰인 책도 있다. 1차 대전 당시 연합국 측은 국제 여론에서 독일군을 낙인 찍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강간을 내세웠는데, 이는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것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방식으로 ‘강간 이야기’를 꾸며내기에 이른다. 강간의 도가니였다고밖에 할 수 없는 2차 대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후 열린 전범 재판에서는 상대편에 대한 군사적 응징과 보복의 수단으로 강간을 이용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전쟁만이 아니다. 인종주의적이거나 정치적인 함의를 띤 봉기, 폭동, 혁명과 소규모 분쟁은 언제나 남성이 강간 욕망을 배출할 기회를 부여해왔다. 나아가 그런 역사적 사건들은 남성들의 강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까지 제공해준다. 이때도 역시나, 강간 사례들은 선전선동에 이용될 만한 가치가 있을 때만 ‘증언’의 형태로 보존된다.
강간과 성폭력, 권력을 쥔 자가 휘두르는 무기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삼은 강간과 성폭력이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반복되어왔다면, 도대체 그것을 가능케 한 동력은 무엇일까? 남성들은 여성에게 왜 이러한 범죄를 저질러온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로 브라운밀러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성기 구조가 다르다는, 즉 남성이 삽입을 하게 되고 그때 여성은 삽입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측면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적군의 여성에게 강간 이상의 불필요한 잔혹행위까지 일삼은 전시 군인들의 수많은 예화가 보여주듯, 강간이라는 폭력은 근본적으로 섹스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강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모욕행위를 저지르는 여러 강간범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강간은 일부 남성들이 정욕을 통제하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고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여성들을 정확히 목표로 삼아 저지르는 권력 범죄이다. 전쟁 혹은 혁명 후의 기념식에서 마치 여성이 혐오스러운 적군/압제자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선택되어 강간당하는 이유는 그저 여성들이 손쉽고도 준비된 표적이기 때문이다.
▲ <작전명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샤힌 아크타르 지음, 유숙열 옮김, 이프북스 펴냄) ⓒ이프북스
"전쟁이 끝나면 남자는 '영웅', 여자는 '매춘부'?"
"너는 우리의 국민이 화환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으로 생각해? 아니, 매리. 그런 일은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적이 없어. 전쟁이 끝나면 남자들은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여자들은 타락했다는 말을 들어. 그냥 봐봐, 그들은 우리를 창녀로 만들 거야."
<작전명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샤힌 아크타르 지음, 유숙열 옮김, 이프북스 펴냄)는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다큐 소설이다. '비랑가나'는 원래 '용감한 영웅'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전쟁 당시 파키스탄군에 억류됐던 여성들을 칭송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방글라데시 정치 지도자 세이크 무집이 연설에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대중적으로 쓰여졌다.
정치적 의미에서 비랑가나는 남성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추앙 받았으나, 현실에서 그녀들은 철저히 배제, 은폐됐다. "비랑가나라는 이름은 원한에 찬 벌레나 전염병 같아요. 마치 만지기만 해도 상처가 생기로 팔다리가 썩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말이에요."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1991년에 이르기까지 46년이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비랑가나는 가족들에게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 취급을 받았으며, 마을 공동체에서는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는 여성'으로 여겨졌다.
이 책의 주인공 매리엄은 전쟁 전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엘리트 여성이었으나, 비랑가나로 파키스탄군에게 잡혀 강간, 감금, 폭행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뒤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남성들은 독립투사였든, 전범이었든, 모두 자신들의 일상을 다시 구축할 수 있지만, 비랑가나들은 그럴 수 없었다. 매리엄과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을 받은 비랑가나 아누라다는 전쟁 후에도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라다라니'라는 이름의 성매매 여성으로 살다 죽었다.
비랑가나들에 대한 '공식적인 추앙'은 '비공식적인 멸시'가 추동한 것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정부 공식 통계로 9개월의 분쟁기간 동안 20만 명이 넘는 여성이 파키스탄 군인에게 강간당했다. 그리고 이들 중 2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임신했다. 그런데 무슬림 남편들은 전시 강간을 당한 자신의 부인을 다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남편과 가족들로부터 버림 받은 여성들이 사회 문제가 될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나서서 이 여성들을 국가 영웅으로 만들고 남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정부의 이런 전략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방글라데시는 또 전시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임신 중절 시기가 지난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했고, 이 아이들은 해외로 입양 보내졌다.
"그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소녀들은 울고 소리쳤어요. 때때로 우리는 아기들을 엄마한테서 떼내기 위해 엄마들에게 약을 주사해야 했어요. 이 아기들은 파키스탄 군인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만약 어떤 외국 국가가 제안한다면 우리는 그 아기들을 입양시킬 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대부분의 아기들이 캐나다로 갔어요. 또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로도 많이 갔어요."
'적군의 아이'를 출산한 여성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재활시설에 기거했다. "남편들에게 거부당하고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내쫒기고 아무런 장래 희망도 없는 이들 빈 자궁의 여자들이 세탁기를 돌리고 빵을 굽고 옷을 만들고 수를 놓아 손수건과 베개를 만들었다. 이것이 가난한 나라의 재활 프로젝트였다."
1971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전시 강간은 세계사적으로 두드러진 일은 아니다. '강간의 역사'를 집대성한 수전 브라운밀러는 그의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방글라데시가 점령당한 9개월간 인구 1인당 강간 발생 비율은, 1937년 난징시 점령 한달 동안의 강간 발생율보다 높지 않고, 제 1차 세계대전 첫 3개월간 독일군이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거침없이 진군하며 저지른 1인당 강간율보다 높지 않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소련의 모든 마을에서 여성이 겪은 범죄 숫자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쟁에서 통하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면 바로 이기는 편이 강간한다는 것이다.(...) 강간으로 여성을 제압하는 일이 승리를 측정하는 척도이자, 군인의 남성다움과 성공을 증명하는 징표인 동시에 군복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되었다. (...) 남자들은 '내 여자'가 강간당한 일을 사실상 자기가 겪는 피배의 고통으로 전유해온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강간을 통해 여성의 몸은 상징적인 전쟁터가 되며 승리자가 개선식을 벌이는 광징이 된다. 여성의 몸에 가하는 행위가 남자들끼리 주고 받는 메시지가 되는데, 한쪽에게는 승리의 산 증거이고 다른 쪽에게는 패배와 상실의 산 증거인 것이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수전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오월의 봄 펴냄)
한국의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의 옮긴이 유숙렬 이프북스 대표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우후죽순처럼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1971년 방글라데시에서 있었던 일들이 어떻게 비랑가나의 관점에서 역사로 새롭게 복원되는지 보여주는 이 책이 거의 50년 가까이 지난 2019년 한국에서 유효한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 19.1.12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
I'll Get Over You (Crystal Gayle)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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