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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by 이성근 2018. 12. 20.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

저자 아누 파르타넨|역자 노태복|원더박스 |2017.06.

원제 The Nordic Theory of Everything

 

저자 아누 파르타넨 ANU PARTANEN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미국 남자와 결혼해 뉴욕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핀란드에서 나고 자랐다. 헬싱키에서 노르딕 지역 최대 일간지 헬싱긴 사노마트를 비롯해 여러 매체의 기자 및 편집자로 일했다. 스탠퍼드 대학 특별연구원으로 포춘에서 객원 기자로 재직했고, 뉴욕 타임스애틀랜틱등 다양한 지면에 기고했다.

* 저자 홈페이지 HTTP://WWW.ANUPARTANEN.COM

 

목차                 

한국 독자들께 전하는 메시지

프롤로그 아메리칸 드림을 원한다면 핀란드로 가십시오.”

 

1장 미국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 | 불안의 역습 | 의존을 강제하는 나라

 

2장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

말괄량이 삐삐의 마법 | 세계에서 가장 개인적인 사회

 

3장 개인이 강해질수록 가족은 더 가까워진다

아이들부터 시작한다 | 아기 상자와 부메랑 자녀 | 빈곤 퇴치용 결혼? | 기저귀를 안 갈면 진짜 남자가 아니지 | 슈퍼맘은 사양합니다 | 휴가는 모두에게 좋은 것

 

4장 교육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교육 강국의 등장 | 탁월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 아이의 일은 노는 것 | 교사에게 투자하는 만큼 거둔다 | 진정한 승자는 경쟁하지 않는다 | 부유하고 동질적이고 특수해서라고? | 최고의 대학들은 미국에 있지만| 부모들에게도 평화를

 

5장 당신이 미국에서 암에 걸린다면

웰컴 투 부르키나파소 | 의료보험이 좌지우지하는 삶 | 세계 최고의 의료 선진국? | 병원에서 날아온 청구서 | 누가 공공 의료를 두려워하는가 | 선택할 자유의 미로 | 핀란드에 온 미국인 | 지구상에서 가장 늙기에 좋은 곳 | 아플 때 힘이 되는 국가

 

6장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

정부의 역할 | 이토록 비사회주의적복지 | ‘큰 정부에 관한 오래된 미움 | 세금의 대차대조 | 우리의,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7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칸 드림

두 도시 이야기 | 아버지에서 아들로 | 중산층의 미래

 

821세기 경영의 노르딕 모델

세금이 성공의 척도라면 | 기업 혁신도 결국엔 가화만사성 | 유연성과 안전성의 연결고리 | 비영리적 야심과 인간 정신

 

9장 특별하지 않기에 관하여

노르딕 쿨? 얀테의 법칙 | 특별해져야 행복할 수 있을까? | 낙관주의자 VS 비관주의자 | 우리는 언제 진실로 자유로운가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일생일대 사랑을 좇아 미국 시민으로 새 출발 했더니,

내가 방금 떠나온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세계적으로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북유럽 국가들은 온갖 국가별 비교 랭킹에서 꼭대기를 차지하며 전 세계의 새로운 롤 모델로 급부상했다. 특히 핀란드는 PISA 평가에서 연속해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교육 기적의 나라로 각광받았고, 아울러 국가 경쟁력 1’ ‘국가 투명성 1’ ‘국가 행복지수 1등 눈부신 성취를 보였다. 급기야 2012년 당시 영국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면 핀란드로 가십시오.”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모노클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2011, 세계경제포럼의 세계 경쟁력 보고서는 핀란드를 세계에서 네 번째로 경쟁력이 높은 나라로 선정했고, 이듬해에 이 등급은 세 번째로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과 삶의 균형 면에서 핀란드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좋은 나라라고 선언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2011 종합혁신지수(IUS)는 핀란드를 EU의 최상위 혁신 지도국 네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14)

 

이런 가운데 저자는 핀란드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적응하기 힘들고 온갖 불안이 엄습해온다. 북유럽을 사회주의 유모국가로 치부하고 복지를 혐오시하는 미국인들의 생각도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에게 미국 사회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는 오랜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민 개개인에게 자유와 독립이 아닌 사사로운 의존을 강요하는 나라로 보였다. 북유럽 나라들과 미국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노르딕 출신 이민자로서 미국에 살아보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살기 좋은 나라인지 여부와는 별도로, 사람들은(미국인이든 핀란드인이든) 21세기 초에 노르딕 국가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다는 것이 과거로 되돌아가는굉장히 특이한 - 특이하게 힘겨운 - 경험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르딕 출신 미국 이민자로서 나는 또 다른 특이한 점도 발견했다. 뭐냐면,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삶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관해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는 세계 롤 모델이 교체되는 시점에 양쪽에서 모두 살아본 저자가 두 지역의 사회 시스템과 속성이 어떻게 다르고 그에 따라 삶의 질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포착한 논픽션 에세이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미국 모델과 북유럽 모델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촉발시키면서 많은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저자가 책에서 주로 다루는 지역은 북유럽에서도 노르딕 5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다.

 

자유와 기회의 빛나는 등대였던 미국,

어쩌다 불건전한 의존을 강제하는 나라로 뒷걸음질했나

 

자유의 나라 미국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저자에게 미국은 선택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대다수의 국민들을 불건전한 의존으로 내모는 사회였다. 저자가 미국에 정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닥쳐온 생활의 위기는 바로 의료보험이었다.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 체계는 이미 악명 높다. 미국인 개인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이 의료비이기도 하다. 너무 비싼 보험료 탓에 사람들은 직장에서 지원하는 의료보험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 가족 전체가 매달린다. 이중의 의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부부가 갈라서면 암 환자는 고액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일순간 의료보험이 없어진다. 그 보험은 배우자의 고용주를 통해 제공되었으니까. 따라서 당사자들에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불행한 부부 생활이라도 무작정 지속된다. 그런 상황은 엄청난 트라우마를 키우는데, 그건 다만 누구나 고용주에게 총체적으로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55)

 

나는 미국 의료보험 체계가 사람들을 옥죄는 불건전성을 몸소 체험했다. 고용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에 말이다. 내가 당분간 그럴듯한 직장을 구할 가망이 별로 없다 보니, 많은 미국인이 하는 짓을 나도 하고 말았다. 남편에게 우리 둘 다 보장해주는 보험이 딸린 다른 직장을 찾아보면 어떠냐고 물었던 것이다. (205)

 

미국 법으로 직원 50명 미만인 회사는 출산휴가를 주지 않아도 되며 큰 회사는 3개월의 출산휴가를 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급이다. 따라서 출산 후 배우자 중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위기에 봉착하는데, 그건 대체로 여자다. 다시 말해, 남편은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려야 한다. 핀란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저자는 돈 잘 버는 남자에 집착하는 미국 여자들의 성향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다.

출산을 하고 나면 다음 문제는 교육이다. 미국은 교육에서도 불평등이 점점 커져 자녀는 부모의 열성과 인맥과 경제적 지원에 따라 앞날이 달라진다. ‘아메리칸 드림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의존적 관계는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른바 부메랑 자녀가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노년의 삶은 어떤가? 취약한 노인 복지 탓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제 아이들 돌보기에도 벅찬 중년의 성인 자녀에게 전가되고 있다. 독립적 삶을 살던 늙은 부모와 다 큰 자녀는 피차 갑작스러운 입장 전환에 당황스럽다. 저자가 본 미국 사회는 이렇듯 부담스러운 의존으로 점철된 가족을 기본 단위로 한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 중 하나인 가족이 불편하고 솔직하지 못한 무엇으로 변질된다.

 

아동이 빈곤에 빠질 가능성을 82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 지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바로 결혼입니다.”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의 연설 중)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말이다. 누가 결혼에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이 말의 요점은, 21세기 미국 가정의 경제적 물질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모든 현대 산업국가들이 한 일을 미국 정부는 결단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 유급 출산휴가와 같이 아이에게 타당한 지원이나 아이의 기본권을 보호할 다른 보편적 정책들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이런 미국식 사조에 따르자면, 돈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최상의 해법은 결혼이다. (102-3)

 

북유럽 사회에서 자라난 저자가 보기에, 미국은 매사가 그런 경향을 품고 있었다. , 부부 관계, 자녀와 부모 관계,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 그리고 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미국 사회는 개인에게 의존성을 강제한다. 한때 미국은 현대성의 주요 가치인 자유와 독립과 기회의 표상이었다. 21세기의 미국에서 이런 가치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가치들은 노르딕 국가에서 진정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북유럽 사회의 원동력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

모든 정책의 일관된 태도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정치, 경제, 교육과 사회문화 등 여러 측면이 조명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을 소개한다. 이른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다. 스웨덴 역사가 라르스 트래고드와 헨리크 베르그렌이 도출한 사랑에 관한 스웨덴 이론을 저자가 노르딕 지역 전체로 확장시켜 명명한 것으로, 핵심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이는 노르딕 사회의 중추적 특성이자 성공의 열쇠이기도 하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져온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이런 자유의 명시적인 목적은, 숨은 동기와 필요에서 벗어나 모든 인관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고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66-7)

 

이 원리는 노르딕 사회의 온갖 제도에 일관되게 적용된다. 최소 9개월 이상의 유급 출산휴가와 아빠 전용 출산휴가, 저렴하면서도 양질인 탁아 서비스, 기회와 평등을 보장하는 수준 높은 공교육,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 무상 대학 교육, 18세 이상의 독립을 지원하는 생활 보조금, 국영 의료 서비스와 전 국민 의료보험, 노인이 존엄을 지키며 늙어갈 수 있는 다양한 의료 및 생활 지원 혜택에 이르기까지. 흔히 북유럽의 이러한 정책들을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공동체강화 정책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저자는 노르딕 사회의 지향이야말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강화하는 데 있음을 설파한다. 심오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노르딕 사회가 정책과 제도로서 실현하는 개인(의 독립과 자유와 기회) 강화는 일부 시장자본주의 시각에 입각한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가족이 굳건해지고,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교육 기적을 이뤄내고, 나아가 기업과 국가경제까지 발전하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 외부 사람들에게 우울하고 내향적이고 불평불만 많다고 알려진 노르딕 사람들은 실제로는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 상위권마저 두루 차지한다. (2012UN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1위 덴마크, 2위 핀란드, 3위 노르웨이 순이었다.)

 

책속으로

이 책은 노르딕과 미국의 접근법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두 세계를 함께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건대, 근본적인 가치와 목표에서 미국은 노르딕 나라들과 유사한 열망을 종종 내비칩니다만,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판이했습니다. 노르딕 나라들이 결코 완벽하진 않지만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로 볼 때, 21세기의 도전 과제들을 해결할 매우 효과적이고 현실성 있는 방법을 얼마간 찾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 서문중에서

 

뉴스위크는 전 세계나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잡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단순할 수도 난해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하고 안전하고 꽤 풍족하고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삶을 살려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야 최상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그 조사는 한 나라의 복지 척도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범주 - 교육, 건강, 삶의 질, 경제력 및 정치적 환경 - 를 제시하고 이 척도에 따라 수백 개 나라를 비교했다. ()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바로 핀란드였다. 미국은 11위에 그쳤다. --- p.13

 

국가 경쟁력과 삶의 질 면에서 순위의 꼭대기에 오른 나라는 핀란드 혼자가 아니었다.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좋은 일은 노르딕 지역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핀란드와 비슷한 순위는 대체로 이웃 나라들이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어떤 척도에서 보자면 아이슬란드도 포함된다. 이 나라들을 스칸디나비아 국가라고 종종 일컫지만, 노르딕 국가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 --- p.15

 

2006년에 한 생명보험회사가 행한 연구 결과, 설문에 답한 미국인 여성 중 90퍼센트가 경제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으며 46퍼센트는 결국 노숙자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몰라 실제로 심각하게 두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46퍼센트의 여성 중 거의 절반은 연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이었다. () 미국인들이 무더기로 느끼는 불안감을 나도 느꼈던 셈이다. 차이라면, 그 두려움이 내겐 생경했지만 그들한테는 단지 일상이었다. 나는 뒤집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민자라서 불안했던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되어가느라 불안했던 것이라고. --- p.38-9

 

미국의 현실에서 결혼이란 일종의 금융 합병 행위로 인식되었다. 증거를 원한다면, 미국의 전형적인 소득신고서의 처음 몇 줄만 보면 된다. 미 국세청은 부부가 소득을 합산하여 하나의 단위로 소득신고서를 제출하면 혜택을 준다. 핀란드에서 미국과 같은 정책은 정부가 개인의 도덕에 개입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부의 자금을 한 묶음으로 긴밀히 결합시킴으로써 국세청이 권장하는 금융 합병은 배우자 간 경제적 의존을 한층 심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 p.50-51

 

결국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은 현대의 개인들이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믿음직한 철학인 셈이다. 구시대의 매우 부담스러웠던 여러 경제적 의무에서 해방되면 우리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관계를 순수한 인간적인 유대 위에 세울 수 있다. 또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관한 근본적인 철학이기도 하다. 이 이론은 노르딕 국가들에서 매우 다양한 정책 결정에 영감을 주었는데, 이 정책들은 중요한 단일 목표를 지향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독립과 자유와 기회를 보장한다는 목표이다. --- p.68

 

21세기 국가의 전반적인 목적은, 그 국민이 동의하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국민한테서 더 많은 권력을 뺏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일 것이다. , 자유와 독립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심화하고, 가장 타당한 형태의 개인적 자유에 최대한 합당한 물질적 토대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노르딕 사회계약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바로 개인주의에 대한 각별한 헌신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의 결과는 삶의 질뿐 아니라 경제의 역동성에 있어 노르딕 국가가 점하는 국제 순위에서 훤히 드러난다.--- p.70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을 위해 작성한 노르딕 웨이(Nordic way)라는 보고서에서 트래고드와 베르그렌은 이렇게 적고 있다. “가족은 노르딕 나라들에서 중심적인 사회 조직으로 남아 있는데, 또한 그 속에는 자율과 평등을 강조하는 도덕규범이 스며 있다. 이상적인 가족은, 노동을 하며 서로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성인들과 가급적 일찍부터 독립을 권유받는 자녀들로 구성된다. ‘가족 가치를 훼손시킨다기보다 오히려 이는 사회적 조직으로서 가족의 현대화로 해석할 수 있다.” --- p.74

 

오늘날 미국은 지금의 자유시장 체제를 주도한다는 면에서 초현대 사회이지만, 동시에 그 체제가 낳는 문제점들을 가족 및 기타 공동체에 떠넘긴다는 면에서 구태의연한 사회다. 노르딕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모순에 빠져 있는데, 이는 진보와 보수 사이 또는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사이의 모순이 아니며, 큰 정부 대 작은 정부에 관한 오래된 논쟁도 아니다. 바로 과거와 미래 사이의 모순이다. 미국 정부는 현대성의 옹호자인 척 모든 면에서 무례하고 그릇되게 우쭐댄다. --- p.75

 

노동자의 휴가 면에서 미국은 현대 국가들의 표준에서 매우 벗어나 있다. 노르딕 시민은 자신들의 휴가 제도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르는 반면에, 미국인은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대우를 받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18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4UN 보고서에 따르면,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지 않은 나라는 단 두 곳, 파푸아뉴기니와 미국이다. 미국은 유급 병가를 보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에도 속한다. 앙골라와 인도, 라이베리아와 함께. --- p.83

 

미국의 한부모 가정이 받는 혜택은 대다수 선진국과 비교하면 분명 안타까운 수준이다. 여성 단체인 리걸 모멘텀(Legal Momentum)이 소득이 높은 17개 국가의 미혼모를 조사했더니 미국은 상황이 최악이었다. 미국의 기이한 논리, 즉 한부모 가정의 문제가 과도한 정부 원조 탓이라는 논리가 맞는다면, 미혼으로 아이를 낳고 국가에 빌붙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노르딕 부모들이다. --- p.105

 

복지 여왕(마찬가지로 복지 왕)을 방지할 열쇠는, 한 사람의 혜택을 이전 급여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출산 전에 일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출산 수당은 월 600달러 정도이다(여기서 다시 세금을 뗀다). 추가로 집에서 1~2년간 아기를 돌보는 데 주어지는 수당은 더 적다. 설령 다른 추가 수당을 받을 자격이 있더라도, 그 정도의 액수 때문에 직장을 마냥 떠나 있을 사람은 별로 없다. 최소한의 혜택을 오래 받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 p.108

 

남성 역시 출산휴가를 이용하도록 장려하고자 노르딕 나라들은 특별히 아빠 전용 휴가라는 유급 휴가 제도를 시행했다. 만약 어머니가 직장에 복귀한 후라면 아버지는 이 특별 휴가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 가정은 이 휴가를 쓸 기회를 놓친다. () 덕분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 제도를 도입한 후 노르딕의 아버지들은 이전보다 출산휴가를 훨씬 더 많이 쓰게 되었고, 가정에 미친 영향도 막대하다.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 연구 결과, 어머니들뿐 아니라 아버지들이 출산휴가를 쓰자 남성이 양육에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가정의 역학 관계가 한층 나아졌다. 남성도 요리와 장보기 같은 집안일에 더 참여하고, 여성도 직업 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 노르딕 사회의 아빠 전용 휴가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정책들이 국가 차원에서 시행된다는 것 그리고 육아를 모든 남성이 동등하게 합법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노르딕 사회가 먼저 변화를 경험한바, 아이 아버지가 그 휴가를 쓰지 않으면 책정된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됨을 알고 나자 고용주와 동료들 역시 출산휴가를 선택한 남성의 결정을 훨씬 기꺼이 받아들였다. --- p.113-5

 

이직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고 싶어도 부부는 그 직장을 계속 다니는 걸로 합의를 봤다. 온 가족이 거기에 딸린 의료보험에 기댄 처지였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런 상태가 정말이지 분통 터졌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이나 꿈을 접고 그 배우자와 아이들은 그 사람의 희생에 기대어 살면, 정서적 의미에서 모두가 미묘하게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사랑으로 맺어져야 할 관계가 변질되는 것이야말로 노르딕 사회가 피하려는 것이다. --- p.205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용어는 복지에 의존하는(on welfare)’이라는 뜻이었다. , 가난하고 무직이며 사회의 짐이 된다는 의미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핀란드어에서 복지국가에 가장 가까운 용어는 (미리 경고하는데, 적어 놓으면 아주 괴상하게 보인다) hyvinvointivaltio(휘빈보인티발티오)이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풀자면 이 용어는 웰빙(well-being) 국가를 뜻한다. ‘복지에 의존하는을 뜻하는 말은 전혀 다른 표현으로 살려고 도움을 얻는이란 뜻의 핀란드어가 있다. (위의 용어보다 좀 더 웃긴데) saadatoimeentulotukea(사다 토이멘툴로투케아)이다. 2013년에 이러한 궁여지책의 혜택을 받은 핀란드인의 비율은 고작 7퍼센트이다. 미국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같은 해 미국에서 일종의 푸드 스탬프를 받은 사람의 비율은 두 배 이상인 15퍼센트이다. --- p.264

 

노르딕 중산층은 무임승차꾼이 아니다. 노르딕 시민들은 치르는 값만큼 복지를 누리는 것이다. 노르딕 나라들은 강한 공공 복지 체계 마련이 경제성장의 견인차임을 증명하고 있다

 

 

핀란드 저널리스트가 미국서 깨달은 역설

핀란드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누 파르타넨은 유력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녀는 하필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핀란드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알지만 그 남자는 핀란드 말을 못하니까.

 

이건 해볼 만한 거래처럼 보였다. 복지는 잘되어 있지만 춥고 따분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핀란드에서, 역동적이고 기회와 혁신이 널린 미국으로. 하지만 그녀는 이 거래가 꽤 이상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휴가를 제대로 주지 않고, 경쟁원리가 교육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괴상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아프면 중산층도 거의 파산을 한다.

 

파르타넨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미국식 자유주의를 그저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익숙한 구도 자체를 뒤집어버린다. 북유럽이 복지 시스템을 쌓아올린 것은 사람들이 국가에 의존해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와 독립과 기회라는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이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가족이든 회사든 마을공동체든 시민사회든 간에, 의존은 의존이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은 지독한 개인주의자들이 만들었다!

 

반대로 미국은 자유와 독립과 기회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내팽개치는 시스템이다. 교육을 할 때도, 의료보험을 구할 때도, 미국인들은 가족과 회사에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 시스템은 위험을 분산해주지 않고 개인이 감당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인은 의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미국식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의존의 덫에 걸리게 만들고, 북유럽식 사민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한 저널리스트가 도달한 기묘한 역설. 이 책을 특히 매력적으로 만들어준 힘이 여기서 나온다.

20181220() 587호 시사인 천관율 기자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저자 제현주|어크로스 |2014.12.

저자 제현주는 우리 시대 일의 의미를 화두로 새로운 일하기의 모델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세상이 '잉여짓'이라 부르는 일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임금노동의 영역 밖으로 일의 모델을 확장하려 모색 중이다. 그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구성원 모두가 주인인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꾸려 일과 재미를 함께 추구하는 실험을 벌이고 있다. KAIST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 컨설팅 업체 맥킨지,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경영 및 M&A, 투자 분야 전문가로 10년간 일했다. 직장을 떠난 뒤에는 롤링다이스 대표이자 사회적 경제 분야의 경영 컨설턴트, 번역가로 살고 있다.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역시 그의 중요한 ''이다. 저서로 3OK 자본주의의 역사, 순한 맛(전자책)이 있고, 역서로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경제학의 배신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아버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일에 관한 이야기

내리막 세상에서 하는 노마드 | 일은 노동이기만 해야 할까?

 

1부 표류하는 우리: 일의 배신

1 일일 뿐인데

길을 잃었다는 느낌 | 한곳에 머무를 수 없다 | 일과 나, 그 사이의 거리

2 우리가 일에 투사하는 욕망들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 욕망들 사이의 우선순위 | 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3 일은 언제나 기대를 배반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일은 직업보다 크다 | ‘좋아하는 일이 성립할 조건

4 가면이 필요한 순간들

위선 혹은 위악연기해야 한다면, 대본은 내가 쓴다

 

2부 지도를 다시 읽다: 일에서 원하는 것

5 당신의 욕망은 얼마인가

당신 숫자는 무엇인가필요와 욕구에는 가격표가 있다 | 돈의 구속력에서 한 뼘 놓여나기

6 돈 되는 일만 일일까

잉여짓은 왜 일이 아니란 말인가 | 시장의 가격표를 넘어서는 일하기

7 놀듯이 일하거나 일하듯이 놀거나

일과 놀이가 분리된 세상놀이 같은 일의 함정

8 자발성 없이는 재미도 없다

일의 네 가지 재미치열할 자유가 곧 느슨할 자유

 

3부 시대의 사막을 건너는 법: 내리막 세상의 일하기

9 하나의 직업이 나를 설명할 수 없다면

이력서가 내 삶의 역사 | 직업이 정체성이 되어줄 수 있을까

10 몇 시에 퇴근할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예측성과 통제력의 상실 | 시시포스는 어떻게 돌 굴리기를 견딜까

11 개미도 베짱이도 될 수 없다

버림받는 개미 즐거움이 강박이 된 베짱이 | 나를 위한 일의 윤리

12 연습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잠재력이라는 잣대관객 없이 일하기

 

4부 함께 가닿을 정착지: 행복한 일을 위한 플랫폼

13 누군가가 아니라 를 필요로 하는 곳

등가교환의 관계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 | 차이를 받아들이는 공동체

14 행복한 일터의 가능성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이 어디에서 왔는가 | 주인 되는 일

15 내리막 세상에서 함께일하기

중간만 가서는 남들만큼살 수 없다 | 새로운 일, 새로운 공동체

 

성실한 개미의 성공 신화는 끝났다.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하면 일에서 만족과 보상을 기대할 수 있던 시대와는 모든 조건이 달라졌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유연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편이 현명한 처세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단기적으로만 머물게 되는 직업은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하며, 일의 의미나 가치가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 가리라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되물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찾아나선 저자의 끈질긴 모색의 기록이다.

 

우리 시대 일의 의미를 화두로 협동조합 롤링다이스 활동을 비롯한 다채로운 실험을 계속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일의 윤리와 행복한 일하기의 새로운 조건을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내리막 세상에서 끊임없이 내 인생의 일을 찾아 헤매는 우리 시대 노마드들의 욕망과 좌절을 그려내며,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근본부터 재규정해나간다. 일과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사회의 주문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일과 관련한 다양한 욕망을 조화롭게 해소할 방법들을 현실적으로 모색한다. 우리 시대 일하기를 다각도로 성찰한 저자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다르게 일하며 살아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시에 퇴근할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10년 후라니

:장기적 계획이 불가능한 시대에 일하며 살아가는 법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오늘 저녁 몇 시에 퇴근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24시간조차 통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들에게 5, 1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우리의 일자리 자체가 장기적인 기획과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곳의 직장으로 30년씩 출근하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우리 세대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노마드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잠시 동안만 머물게 되는 직업에서 정체성을 쌓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자신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일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처음만나는 우리 시대 일에 관한 사유

:솔직하고 현실적인, ‘에 관한 객관적 응시

 

일에 관한 고민이 인생의 고민 중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도, 막상 일이 주는 괴로움을 정교하게 따져보기는 쉽지 않다. 쌓이는 피로를 해결하기도 벅찬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놓인 사회적 지평을 바라볼 여력을 갖기 어렵기 마련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의 문제를 세세하게 따져 물으며, 고민만 하면서 정작 문제를 막연하게 설정해왔던 우리의 생각을 일깨운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어떤 문제에 부딪혀 좌절을 겪는지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나선다.

밥벌이의 무거움이 일의 다른 욕망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놀이하듯 일할 수는 없을까? 일을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 삼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고민에 답하며 일하기를 조망할 수 있는 너른 시야를 제공한다.

 

월급이 필요하지만, 월급만으로는 일할 수 없다

:내리막 세상, 우리 시대 일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좌절

요즘 청년세대는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직업윤리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일이 꿈을 실현하는 장소여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라났다. 직업이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장기적인 저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 사회가 공급하는 일자리 중에서,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망, 흥미로운 일을 하며 창조성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싶은 욕망, 스스로 판을 짜서 능동적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을 전부 담아낼 선택지는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복잡다단한 욕망들을 되짚고 조율하려는 시도를 통해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고자 모색한다. 자신의 욕구를 면밀히 관찰하고, 욕망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따져보며, 가능한 현실적 조건을 찾아나갈 때에만 최적의 균형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잉여짓은 왜 이 아니란 말인가?

:일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들

저자는 일에 관한 기존의 협소한 규정 밖에서 자신의 활동을 로 삼고자 시도한 사람들에 주목한다. 스스로를 잉집장(잉여편집장)’이라 칭하며 독립 언론 활동을 펼치거나, 수익모델 없이 외신기사 번역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의 출현은 일에 관한 산업사회의 규정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낡아버렸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다양한 욕망을 일자리 규정 밖에서 실현해나가는 이들의 사례에서 우리 사회의 빈약한 선택지를 대체할 다른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징후의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일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당사자다. 각자 생업이 따로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을 벌이는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꾸려 전자책을 출간하는 수익 사업을 벌이기도, 다양한 조직의 인사들을 초빙해 사회적 경제’, ‘청년 노동과 같은 키워드로 오픈포럼을 치러내기도 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있다. 새로운 일하기의 모델을 모색 중인 저자의 실험에서도 일에 관한 확장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주인이 되어야 주인처럼 일할 수 있다

:일터의 작동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저자의 모색은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을 넘어 사회적, 공동체적 해법을 탐색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그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일터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억압적인 주문일 수 있다. 내 일의 결과가 나에게 귀속되지 않고, 내 일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일터에서 주인처럼 일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주인이 되어야 주인처럼 일할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 주인으로 일할 수 있는 다른선택지가 있다고 역설하며 일터의 작동방식을 스스로 결정한 다양한 사례들을 그 희망의 증거로 삼는다.

 

매출이 지상 과제가 아닌 기업’, ‘업무적인 역량을 넘어 그의 존재 자체를 중요시하는 일터는 여러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의 사례처럼 이미 조금씩 실현되어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일터가 늘어난다면, 노마드들이 긴 유랑을 끝내고 정착을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아버지는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을 예순 넘어 은퇴하실 때까지 죽 다니셨다.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처럼 그곳에서 30년 넘게 일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컨설팅이 평생 가져갈 나의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여러 모로 무리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내 일은 OO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내 커리어는 이 빈칸을 채우려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저 빈칸을 단호히 채우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 p. 6

 

괜찮은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조차 다음 자리를 고민한다. 대우가 좋아 선택한 직장은 일이 단조로워 괴롭다. 흥미로운 일에 끌려 옮긴 직장은 월급이 쥐꼬리다. 혹여 운이 좋아 그럭저럭 만족할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평생 고용을 기대할 곳은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일하기는 정박지를 향해 가는 항해라기보다는 끝없는 표류가 되고 만다. --- p. 8

 

일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운 좋은 몇을 빼놓고는 모두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답하겠지만, 그럼에도 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다.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에 육박하고 어떤 이유로든 한두 학기 휴학이 보편적인 요즘, 대개가 20대 후반에 접어들고서야 첫 직장에 안착한다. 초등학교부터, 심하게는 그보다 어려서부터 20대 후반이 되도록 좋은 직업또는 좋은 직장을 위해 달리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곳에서 최소한 일주일에 5,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그런 형편에 일은 일일 뿐이라는 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p. 23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쏟아 넣는 활동이라면 그 활동으로 돈벌이를 하면서도 동시에 보람과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누리길 바라는 것이 그리 부당한 기대는 아니다. 물론 돈과 보람과 즐거움 모두를 원하는 만큼 주는 일자리는 세상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셋 사이의 균형점을 고민해볼 수 있어야 한다. 얼마큼의 보람을 위해 얼마큼의 돈벌이를 포기할 수 있는지. 또 얼마큼의 돈벌이를 위해 얼마큼의 즐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 p. 88

 

직업으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드물어진다. 이제 한 번 선택한 직업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세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좋든 싫든 우리가 하는 일 혹은 했던 일로 규정된다. 다만 그 규정이 과거처럼 견고하게 고정된 것이 아닐 뿐이다. 액체처럼 유동하며 기꺼이 표류를 감싸 안아야 하는 오늘날에도 무슨 일 하세요?”란 말은 곧 누구세요?”라는 질문이다. “예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어떻게 살아왔나요?”라는 뜻이다. 좋든 싫든, 명함은 당신의 현재를 말하고 이력서는 당신 삶의 역사를 말한다. 당신 삶의 스토리는 늘 이렇게 일과 함께 전개된다.--- p. 154

 

바우만은 생산 중심 사회에서 소비 중심 사회로 옮겨가면서 소비자 미학이 노동 윤리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한다. 성실성의 규율을 내면화한 인간보다는 결코 한군데 머무르려 하지 않는 소비의 욕망을 품은 인간이 환영받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 탓에 노동, 더 정확히는 직업이 정체성의 중심축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점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일로 해결할 수 없는 자기 증명의 욕구를 소비에 투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갤럭시냐 아이폰이냐, 자라(ZARA)H&M이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한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하는 것을 사들인다 해도 스스로 무의미하게 여기는 노동을 하면서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 p. 186

 

직장의 소유권이 직원에게 있다면 직원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게 된다. 그나마 직장이 평생 고용을 약속하던 시절이라면 내 운명을 회사에 조금쯤 위탁해도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리스크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라면 스스로 주인으로 나서는 쪽이 낫지 않을까? 직접 주인으로 나선 이의 운명이 보통 기업 직원들의 운명보다 핑크빛이라는 법은 없다. 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었든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소유권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선택권이 있다. --- p. 247

 

그러나 나는 다른 돈 되는 숱한 일이 있어도 잉여짓에 손이 가는 마음에서, 연속되는 야근에 지쳐 주말이면 널브러져 있다가도 제 주머니를 털어 독립 잡지를 출간하고 몇몇이 모여 쿵덕쿵덕 재미를 좇는 모습에서 일하기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 모든 쓸데없어 보이는 일이 우리의 지친 일상을 끌고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믿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밥벌이에서 돌봄받지 못한 꿈이나 열정을 그냥 쓰레기통에 처넣지 않아도 괜찮은 곳을 스스로 마련하려 애쓴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믿는다. 그렇게 비축한 힘이 다른 어떤 가능성을 불러올지 상상하면 가슴이 뛰기도 한다. 묵묵히 성실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은 고성장 시대의 옛이야기로만 남은 지금, 그럼에도 우리가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우리에겐 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하다. --- p. 253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저자 도유진|남해의봄날 |2017.06

저자 도유진은 머무르는 모든 곳이 집이자 사무실로, 지금껏 한 달 이상 머무른 도시가 30개에서 40개 사이 어디쯤이다.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자유를 경험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누리는 사람들의 달라진 일과 삶,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고자 세계 25개 도시를 누비며 원격근무시행사의 경영진을 포함한 70 여 명의 디지털 노마드를 만났다. 그리고 그 2년여의 여정을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으로 정리했다.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에 대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원 웨이 티켓]은 전 세계 크루들과 원격 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포브스]를 비롯한 다양한 외신에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원 웨이 티켓]은 현재 제작을 마치고 공개를 앞두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는 일을 사랑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며 지금도 열심히 찍고, 쓰고, 또 누비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원 웨이 티켓

Part 1시공간을 뛰어넘은 새로운 삶의 방식,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노마드, 그게 뭔가요?

예고된 신인류, 디지털 노마드의 등장

IT 산업의 원격근무 도입

밀레니얼 세대, 삶의 질을 추구하다

그들은 왜 길을 떠났을까

변화하는 패러다임

디지털 노마드의 갈라파고스, 대한민국

 

Part 2국경 없는 회사들, 경계 없는 사람들

그 기업은 왜 원격근무를 시작했을까?

인재 채용의 히든카드를 쥐다, 오토매틱

최고의 글로벌 인재를 채용하는 법

이들이 온라인으로 협업하는 법

효율의 극대화를 실현하다, 베이스캠프

원격 근무를 통한 비용 절감

당신은 이미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개발자만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나요?

프리랜스 플랫폼계의 떠오르는 신흥강자, 톱탤

실리콘밸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다

가족을 위해 원격근무를 선택한 사람들

프리랜스 이코노미의 부상

원격근무로 만들어 나가는 팀워크, 버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팀 리트릿

비자 문제가 만들어 낸 원격근무 회사

대한민국에서 원격근무하는 사람들

 

혼자 또는 함께,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들

끝없는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

고향인 실리콘밸리를 떠나

동료들의 지원으로 원격근무를 실험하다

노마드의 삶은 관광객과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 몰입하는 삶

몰입과 번아웃

디지털 노마드와 미니멀리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친구들

고향과 가족을 떠나

관계 맺기의 어려움

은퇴까지 기다릴 필요 없잖아요

법조인도 노마드로 살 수 있어요

시간의 개념을 바꾸어 놓다

디지털 노마드가 즐겨찾기 하는 서비스

원격근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디지털 노마드는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까

소유가 아닌 공유, 협업공간

디지털 노마드들이 사랑하는 도시

따로 또 함께 하는 여행

노마드에게 열려 있는 도시들

디지털 노마드 O/X

 

Part 3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환상 너머, 디지털 노마드의 회색지대

환상과 꿈팔이

세금과 비자

젠트리피케이션과 신식민주의

당신이 태어난 곳이 당신을 규정한다는 불편한 진실

공감의 힘

에스토니아에서 미래를 엿보다

e-레지던시 프로그램

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 경쟁

한국, 변화의 시작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

조직 문화와 노동 환경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

 

에필로그 원격 협업으로 완성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책

일하고 살아갈 방식을 선택할 자유

 

책속으로

20151월부터 기획을 시작해 약 1년간 25개 도시에서 68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홀로, 또는 배우자나 가족, 마음이 맞는 커뮤니티와 함께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은 물론,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의 창업자와 CEO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새로운 변화를 뒷받침할 정책을 발 빠르게 내놓은 정부 기관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 p.14

 

과거에 비해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빠른 인터넷 망의 보급,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장비들, 온갖 자료와 서류를 온라인 상에서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이와 같은 정보 기술의 발달로 장소에 제약 받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고 일컫는다. --- p.19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반기든 반기지 않든 원격근무와 같은 을 둘러싼 급격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많은 전문가들이 일하는 방식은 물론 고용 형태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 p.36

 

베이스캠프는 원격근무가 불필요한 사무실 경비를 절감하는 효율 높은 경영 방법임을 강조한다. 창립 20년을 목전에 둔 지금, 베이스캠프는 동종 업계 기업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와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 p.62

 

세계 각지에서 지낸다고는 하지만, 배낭여행자처럼 계속 떠도는 것은 아니다. 몇 달 이상 한곳에 장기간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사람은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루의 많은 시간은 대부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가구와 생활용품 등이 잘 갖추어진 숙소에서 지내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요리도 하는 등 관광이 아닌 매일매일의 일상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러다 문밖을 나서면 늘 새로운 도시가 펼쳐진다. 여가 시간에 이렇게 지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있는데도 생활비 부담은 오히려 적다.--- p.109

 

협업공간 전문 매거진 [데스크매그]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 세계에 분포한 협업공간은 약 87백 개에 이르며 2017년 말까지 약 14천 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6년 한국에도 진출한 글로벌 협업공간 기업 위워크Wework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원격근무자들을 겨냥한 코패스Copass 같은 곳들도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시장을 점유하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 p.155

 

미디어에서 보여 주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달콤하다. 자유롭게 여행하는 방랑자, 해변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칵테일을 마시는 여유롭고 꿈만 같은 생활. 구글에서 한글로든 영어로든 디지털 노마드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이런 이미지들이다.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며 리서치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기묘한 위화감 역시 이런 콘텐츠들 탓이 컸다. 개중에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허황된 이미지를 양산하고 이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등장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 p.189

 

이전까지의 세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보다 다른 방식의 삶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란 곳, 학교를 졸업한 곳, 또는 회사의 사무실이 위치한 도시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세대가 아닐까? 삶의 무대를 2백 여 개가 넘는 국가 중 단 한 곳이 아닌 내 발길이 닿는 모든 곳으로 넓힐 수 있다. --- p.238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 유발 하라리|역자 전병근|김영사 |2018.09

원제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유발 하라리-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한 연구를 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사 강의가 알려지면서 급속히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MOOC 강의 인류의 간략한 역사는 전 세계 8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그의 수업을 듣고 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플론스키 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으로 몬카도 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되었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출간되어 700만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사피엔스는 보잘것없던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과거를 개관했고, 후속작 호모 데우스는 어떻게 인류가 결국에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추측하며 미래를 탐색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현재의 인류를 살펴본다. 우리 사피엔스 종의 커튼이 내려가고 완전히 다른 드라마가 시작되기 직전, 한 명의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 건네는 엄숙한 제언이다.

 

목차

서문

 

1부 기술적 도전

1장 환멸 | 2장 일 | 3장 자유 | 4장 평등

 

2부 정치적 도전

5장 공동체 | 6장 문명 | 7장 민족주의 | 8장 종교 | 9장 이민

 

3부 절망과 희망

10장 테러리즘 | 11장 전쟁 | 12장 겸허 | 13장 신 | 14장 세속주의

 

4부 진실

15장 무지 | 16장 정의 | 17장 포스트-트루스 | 18장 과학 소설

 

5부 회복력

19장 교육 | 20장 의미 | 21장 명상

 

한국 독자를 위한 77

감사의 말

찾아보기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태세다. 가짜 뉴스의 해악과 테러의 공포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고 있으며,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은 묵시록적인 예언을 낳고 있다. 민족과 종교, 인종주의에 갇혀 반목하고 있는 인류의 오늘은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21세기의 사피엔스가 직면한 지금, 여기에 대한 진단과 비전

 

AI가 빼앗아간 일자리는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범람하는 가짜 뉴스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후변화와 테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도널드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글과 페이스북은 디지털 독재 시대를 열 것인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끄는 유례없는 혁명기, 인류는 새로운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불어닥칠 변화는 너무나 심대해서 삶의 기본 구조마저 바꾸어놓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적 모델을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책속으로

 

기술 혁명은 앞으로 수십 년 내에 탄력을 받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힘든 시련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충성을 얻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무엇보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이슬람 혹은 다른 어떤 참신한 신조가 2050년 세계를 건설하려 한다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생명공학을 이해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유의미한 새로운 서사로 통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_1. 환멸

 

21세기의 전례 없는 기술적, 경제적 파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이런 모델들은 일자리보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많은 일자리들이 따분한 고역이고 구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아무도 현금출납원을 평생의 꿈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보호하는 일이다._2.

 

컴퓨터 알고리즘은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며, 감정이며 직감 같은 것도 없다. 따라서 위기의 순간에도 윤리적 지침을 인간보다 더 잘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단 우리가 윤리를 정확한 숫자와 통계로 코드화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만 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칸트와 밀과 롤스에게 코드를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이들이 안락한 연구실에서 신중하게 자율주행 차량을 프로그래밍 한다면,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주행할 때 입력된 도덕률을 그대로 따를 것이다. 사실상 모든 차들이 미하엘 슈마허와 임마누엘 칸트를 합친 운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_3. 자유

 

두 과정이 합쳐지면, AI의 부상과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의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 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중이 경제적 중요성과 정치적 힘을 잃으면서 국가는 이들의 건강과 교육, 복지에 투자할 동기를 적어도 일부는 잃을 수 있다.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럴 경우 대중의 미래는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좌우될 것이다.

그 결과 세계화는 세계의 통일로 가기보다 실제로는 종의 분화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인류가 다양한 생물학적 계층 혹은 심지어 다양한 종으로 분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계화는 수평적으로는 세계를 통일하고 국경을 없애지만, 동시에 수직적으로는 인류를 분할할 것이다._4. 평등

 

이전 세기에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인류가 지역 부족 범위를 훨씬 넘어가는 문제와 기회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전국적인 협력만이 해결을 기대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이르러 국가들은 과거 부족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개별 국가는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해결하기에 올바른 틀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전 지구 차원의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족 단위의 정치에 고착돼 있다. 이런 부조화 때문에 정치 체제가 우리의 주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인 정치를 위해 우리는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거나 우리의 정치를 지구화해야 한다. 생태계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의 탈지구화의 비용은 십중팔구 많이 들 것이기 때문에, 유일한 현실적 해법은 정치를 지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스럽고 비현실적인 비전이다. 그보다는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민족주의 감정은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_7. 민족주의

 

이런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국가는 결국 테러 극장에 자신들의 안보 극장으로 대응한다. 사실 테러에 맞서는 가장 효율적인 대응법은 우수한 정보와 비밀 작전을 동원해 테러를 지원하는 금융망을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시민이 티브이로 볼 수가 없다. 이미 시민들은 테러범들이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리는 드라마를 관람한 상태다. 국가로서는 그에 못지않게 극적인, 화염이 훨씬 더 짙은 대테러 드라마를 상영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 국가는 조용하고 효율성 있게 행동하는 대신 위력적인 대테러 작전의 폭풍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테러범은 자신의 염원을 달성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_10. 테러리즘

 

독단적이지 않은 세속주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겸손한 약속들을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에 작고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길 희망한다. 최저임금을 몇 달러라도 올리고 아동 사망률을 몇 퍼센트라도 낮추려는 식이다. 반면, 독단적인 이데올로기는 자기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습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루겠다고 서약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지도자는 너무나 거침없이 영원순수’, ‘구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어떤 법률을 시행하거나, 어떤 사원을 짓거나, 어떤 영토를 정복하면 일거에 전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_14. 세속주의

 

지금 세계에서 불의의 대부분은 개인의 선입견보다는 대규모의 구조적 편향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 수렵·채집인의 뇌는 그런 구조적 편향을 감지하도록 진화하지는 않았다. 그런 편향의 적어도 일부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연루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이 그 교훈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글로벌 이슈를 논할 때 나는 늘 다양한 소외 집단들보다 글로벌 엘리트들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위험에 빠진다. 글로벌 엘리트들은 대화를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관점은 놓칠 수가 없다. 반면에 소외된 집단들은 대개 말이 없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존재마저 잊기 쉽다. 이 모든 게 고의적인 악의가 아니라 순전한 무지에서 생기는 일이다._16. 정의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뉴스를 공짜로 얻는다면 당신은 상품이기 쉽다. 어떤 수상한 억만장자가 당신에게 이런 거래를 제시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당신에게 매월 30달러를 주겠다. 그 대신 당신은 내가 바라는 정치적, 상업적 편견을 당신 머릿속에 심을 수 있도록, 매일 한 시간 당신을 세뇌할 수 있게 해달라.” 이런 거래를 받아들이겠는가? 제정신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자 수상한 억만장자는 조금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 “매일 한 시간 내가 당신을 세뇌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 그 대신 이 서비스의 비용은 당신에게 물리지 않겠다.” 그러자 갑자기 수억 명의 사람들이 솔깃해 한다. 부디 그런 사례를 따라가지 않기를 바란다._17. 탈진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디뎌야 할 결정적인 걸음은, ‘자아야말로 우리 정신의 복잡한 메커니즘이 끊임없이 지어내고 업데이트하고 재작성하는 허구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정신 안에 스토리텔러가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한다. 마치 정부의 언론 담당자가 최신의 정치 파동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내 안의 내레이터는 반복해서 상황을 오해하고, 아주 드물게는 잘못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부가 국기와 상징물과 행진으로 국가의 신화를 구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안의 선전 기계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기억들과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들로 나만의 신화를 구축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진실과는 닮은 것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_20. 의미 --- 본문 중에서




And I Love You So (Perry Co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