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 저자 박찬효|책과함께 |2020.01
저자 : 박찬효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1960·1970년대 소설의 ‘고향’ 이미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대생·취업주부·전업주부·이혼녀 등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가 시기마다 변모해왔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부각된 ‘여성혐오’가 한국의 가족 이데올로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에 신문 기사,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재현된 가족의 존재성을 살펴봄으로써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한국사회의 가족’과 ‘여성혐오’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이 책을 썼다. 앞으로 다른 사람과 깊이 있게 사귀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지는 이 시대의 ‘관계 윤리’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
목차
들어가며
제1부 여성혐오 사회의 대두, 여성상위 시대의 오해
제1장 소멸하는 가부장제의 환상, 등장하는 워킹맘의 환상
‘검은 집’, 가부장제, 현실 공간과 환상 공간 | ‘여성혐오’의 사회, 주류적 남성성의 영토
제2장 가족제도의 재구축, 여성혐오의 변화
‘정상’ 가족, 여대생, 전업주부, 워킹맘, 이혼녀 | ‘내 안’의 여성혐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제2부 ‘전이’의 내러티브, 동정과 가십의 여성들 - 1950∼1960년대/1970년대
제1장 ‘원초적’ 존재로서의 아버지,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생득적인 아버지의 권위, 남성이라는 이유로 | 가족 간 살해 사건, 권위의 대상의 아버지와 계몽의 대상의 어머니
제2장 여대생, 정숙하지 못함의 대명사
계급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던 ‘아프레 걸’들 | ‘불의’한 치정 살인극의 주인공들 | 사회 금기를 깨뜨리는 ‘부량소녀’들
제3장 헌신하는 ‘만능 주부’, 허영 가득한 ‘일하는 여성’
주부에게 ‘여가’를 허하라 | 일하는 여성의 죽음에 내재된 교훈 | ‘여성상위 시대’와 ‘치맛바람’의 원형
제4장 비도덕적 가장에 의해 파괴되는 이혼(위기에 놓인)녀
이혼녀, 동정의 스토리텔링, “현대의 유행병”에 대한 경각심을 위한 | 이혼녀, 동정적 존재에서 균열적 존재로 | 축첩하는 아버지, 처와 첩의 기이한 동거
제3부 환상으로서의 여권신장, 노스탤지어로서의 가부장제 - 1980∼1990년대
제1장 유교적 아버지를 보좌하는 내조의 힘
‘노스탤지어’로서의 유교적 가족의 대두, ‘모범적 아버지’의 탄생 | 남성의 유아성, 출세 담론에 갇힌 아버지
제2장 ‘환상화’되는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여대생, 정숙하지 못함에서 철이 없음으로 | 전문직 여성의 스위트홈, 슈퍼우먼을 위한 찬사 | 청순가련한 여대생, 당당한 커리어 우먼
제3장 전업주부와 취업주부, 그녀들의 대립
“전업주부라서 행복해요” | “취업주부라서 편견 받아요” | 가부장제의 미화, 핵가족 전업주부의 교화
제4장 이혼녀, 범죄자의 형상을 한
‘나쁜’ 이혼녀의 탄생 | 모성이 제거된 이혼녀, 단란한 가족의 ‘공공의 적’인 | 이혼녀의 혐오 이미지 부각과 가부장의 도덕성 회복 메커니즘
제4부 남성성의 패러다임 전이, 가족의 재구성, 여성 간 여성혐오의 확산 - 2000년대 이후
제1장 ‘체질 전이’를 통한 남성성의 구축과 아버지의 재구성
폐기되는 가부장제, 밀려나는 ‘개저씨’들 | 구축되는 남성성과 사라지는 여성의 적, 저출생의 극복을 위한
제2장 21세기 여성혐오 현상의 출현, 남성들을 압도하는 파워걸들
성평등 지향 사회의 여학생, 엽기와 혐오의 주체로 떠오르는 | 알파걸과 골드미스 존재성의 전이, 가족이데올로기의 강화 |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우월한 여성들’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
제3장 전업주부 대 워킹맘의 갈등 조장
된장아줌마 혹은 김치녀가 된 주부들 | 전업주부와 워킹맘, ‘핵가족 유지’를 위한 성평등 | 아내의 자격에 나타난 전업주부의 혐오 이미지
제4장 이혼녀 혐오 이미지의 변화, 신현모양처 담론의 생성
모성과 아동을 관리하는 국가, 4인 핵가족의 유지를 위한 | ‘품격 있는’ 이혼녀의 윤리, ‘품위 있는’ 조강지처의 윤리 | ‘품위 있는 그녀’, ‘신현모양처’의 이혼 공식과 ‘욕망하는’ 여성의 처단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제1장 SKY캐슬 타운의 가족 판타지, 성찰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계도되는 모성
제2장 여성혐오,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고 여성 간 갈등을 조장하는
나오며
주
출판사 서평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전업주부와 워킹맘, 조강지처와 불륜녀/내연녀/이혼녀 등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과정, 발생 원인을 추적하다
여성혐오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은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다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여성혐오 논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상황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여성혐오가 어떤 기원과 경로를 거쳐 여성혐오라는 감정의 폭발 상태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연구가 남성/남성집단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현 시기 여성혐오의 주된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2000년대 이전에 더 굳건했다는 측면에서 여성혐오 현상의 발생 이유에 대한 세부적 언급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기별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가 어떻게 배치/재배치되면서 변모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할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족의 존재성과 여성혐오 현상을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여성혐오 현상은 최근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여성/여성집단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편된 결과다. 곧, 한국의 가부장제 질서가 어떻게 변모·유지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세 시기─전후 시기인 1950∼1960년대/1970년대, 산업화 시기인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시기인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2020)─로 나누어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혐오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대생’, ‘전업주부’와 ‘취업주부(워킹맘)’, ‘이혼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사(史)적으로 추적한다.” (8쪽)
한국 현대사 속 가족이데올로기의 변모에서 여성혐오의 근원을 찾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국가의 원초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내는 가족 ‘안방’ 극장의 거의 모든 일일/주말 연속극이 가장 많이 호명/표상하는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예컨대 어느 방송국의 2010년대 주말드라마 제목은 다음과 같다. 〈부탁해요, 엄마〉, 〈아버지가 이상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솔약국집 아들들〉, 〈며느리 전성시대〉, 〈가족끼리 왜 이래〉)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시기마다 여성/여성집단을 대상화하는 기준점이 되는 가족 제도/이데올로기에, 특히 ‘아버지’의 형상이 달라지는 지점에 주목해 여성/여성집단의 존재성이 배치·재배치되는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한 개인이 아버지로서 가족의 생계 부양 등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버지인 내가 원해서거나 아버지가 갖는 윤리적 당위성 때문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의도는 사회의 욕망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족이데올로기는 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 여대생, 취업주부, 전업주부, 내연녀/이혼녀 등의 위치는 그 속에서 배치·재배치된다. 여성/여성집단에 부여된 ‘혐오’도, 아버지의 ‘윤리’가 사회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지듯, 구성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책은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이나 성대립을 강조하기보다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데 가장 큰 미덕이 있다.
“한국의 많은 남성은 자신이 가부장의 권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남성이라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가족에 대한 경제력과 통솔권을 가진 아버지의 존재성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표상’이 아니라 특정 시대에 부여된 ‘역할’에 가깝다.” (26쪽)
미디어에 주조된 여성혐오의 스토리텔링,
미디어가 여성을 혐오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
〈“패륜의 남편에 실증 낫소”─500만 환 위자료 청구코 이혼소송〉, 〈여대생은 단화를 신으라─고대 ‘민족사상연’, 이대 앞서 이색 데모〉, 〈치맛바람…‘부각하’ ‘사모님’ 유한매담족은 천하기만 해〉, 〈스위트홈은 왜 깨지나─“이혼은 남자 책임이 많은가 봐요”〉, 〈(‘맘키즈 혐오사회’ 실태 보고서) 어쩌다 엄마와 아이는 대한민국 ‘동네북’이 됐나〉 등의 시기별 신문 기사.
〈침몰선〉, 〈슬픔은 강물처럼〉, 〈창부의 이력서〉, 〈부딪치는 육체들〉,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에세이),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82년생 김지영〉 등의 시기별 소설.
〈여성상위시대〉, 〈남자와 기생〉, 〈언니는 말괄량이〉, 〈치맛바람〉, 〈저 눈밭에 사슴이〉, 〈남자는 괴로워〉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등의 시기별 영화.
〈사랑이 뭐길래〉, 〈신데렐라〉, 〈아줌마〉, 〈아내의 자격〉, 〈굿와이프〉, 〈품위있는 그녀〉, 〈SKY캐슬〉 등의 시기별 드라마.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 시기에 추구된 가족이데올로기의 얼굴을 대중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문,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에 형상화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처럼 여성혐오 현상을 여성학 이론이나 페미니즘적 시각에만 기대는 게 아닌 일상의 구체적 실례를 통해 재현/고증해내는 데 책의 또 다른 미덕이 있다. 특히 책의 중심이 되는 신문 기사의 경우, 주 제목에 이어 세부 제목들까지 소개하고 있으며 시각자료로도 제공하고 있어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곧, 책은 문화사/문화연구의 측면도 놓치지 않고 있다.
■ 책의 내용
제1부 여성혐오 사회의 대두, 여성상위 시대의 오해
본격적 논의를 위한 여성혐오의 일반적 소개와 책의 구성 등에 대해 밝힌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은 모범적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확립에서 시작되었음과,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경제발전, 1997년 IMF 외환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재구축되었는지를 개략한다.
“한국사회에서 성담론은 가부장적 국가주의의 기획과 연동되었다. 1960년대 산업 전선에서 박차를 가해야 할 남성은 안락한 가정과 모성적 여성의 서비스로써 위로받아야 했으며,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했다. 동시에 국가적 기획이었던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은 양적·질적으로 적정 수준의 국민을 생산/재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한국사회는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그에 이은 경제 부흥기를 맞게 되면서 1990년대 이전까지는 남성이 책임감 있는 가부장과 국가의 전사(戰士)로서 갖추어야 할 의지, 믿음직스러움이라는 덕목이 비교적 일관되게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되면서 1900년대 아버지 중심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과는 다른 형태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이 등장했다.” (28쪽)
제2부 ‘전이’의 내러티브, 동정과 가십의 여성들─1950∼1960년대/1970년대
1950∼1960년대에는 남성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생득적(生得的)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 삼은 남성의 폭력·축첩 등으로 여성이 힘겹게 살아가는 상황이 지적되었다. 또한,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그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정신적으로 어렵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남성의 부도덕함이 공론화되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 일반 부녀자들이 혐오적 존재로 위치되기는 어려웠다. 바람 난 취업주부는 엄중하게 비판되고 계도되기보다 대중의 말초적 흥미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대상화되었다. 그러나 ‘여대생’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드문 상황에서 호기심과 질투심의 대상이 되어 혐오 집단으로 배치되었다. 아직 여성이 대학 졸업 후 사회적 성취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여대생은 사회 질서를 위반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대생은 바람 난 취업주부보다 더 정숙하지 못한 형상으로 형상화되었다. 동시에 1950∼1960년대/1970년대는 여성이 홀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라 주부는 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웠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여성은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1950∼1960년대/1970년대 미디어는 전이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회 금기를 위반한 여성의 불행한 종말을 자극적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보다 그녀들을 과감하게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대중이 소비할 수 있게 했다. 영화에 나오는 허랑방탕한 여성들 역시 일시적으로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다 사라진다. 1980∼1990년대처럼 타락한 여성들을 규율의 대상으로 취급하기보다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대중이 마음껏 즐기다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방탕한 여성들의 부정적 속성과 함께 여성을 종속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함께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상대적으로 1950∼1960년대/1970년대는 1980∼1990년대보다 한국이 남성 중심의 사회이고, 아버지의 잘못으로 가족이 힘겹게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했던 시기다.” (40쪽)
제3부 환상으로서의 여권신장, 노스탤지어로서의 가부장제─1980∼1990년대
1980∼1990년대에는 한국사회가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여성과 남성이 성평등 하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놓인 것 같은 분위기가 주조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가부장 권위의 추락과 여권신장에서 찾으려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무너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모범적’ 가부장을 중심으로 성별분업에 입각한 가족 질서가 강화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을 등한시하거나 성적으로 방종했던 아버지가 존재했던 과거를 가족 질서가 바로잡혔던 노스탤지어의 시공간으로 역전시키면서 가부장제가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시달리는 현재의 아버지는 위로의 대상이 되었고, 무너진 현재의 가부장제 질서는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80∼1990년대에는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가 가족의 정석이라는 사실이 ‘환상’임을 들출 수 있는 여성/여성집단에 혐오 이미지가 부여된다.
“첫째, 1950∼1960년대에는 기존의 정숙한 가족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금기 위반의 주인공이었던 여대생이 1980년대 이후에는 청순가련한 외모에 사치를 즐기고 애정을 구걸하는 존재로 주조된다. (…) 이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이르면 아이 키우는 일이 사회활동과 동등한 것으로 위치되어 ‘고학력 주부’가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포섭된다. 혐오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던 고학력 여성이 1990년대에 능력맘 ‘미시’로 존재성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둘째, 취업주부의 경우에는 자신의 성취감만을 위해 남편과 아이를 희생시키며 그 자녀들에게는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는 편견이 생긴다. 요컨대, 여성의 경제력을 통제하려는 전략이 치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셋째, 그동안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어왔던 이혼녀는 단란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으로 위치된다. 문란한 성적 타락자이자 모성이 제거되어 남편의 내연녀보다 못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158쪽)
제4부 남성성의 패러다임 전이, 가족의 재구성, 여성 간 여성혐오의 확산─2000년대 이후
오늘날 가족이데올로기의 화두는 20세기식 가부장제의 폐기와 출생률의 증가를 위한 평등한 부부관계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버지가 혼자 벌어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성별분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회는 그동안 부정적으로 간주되었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하게 만들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이를 꾀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미디어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권위가 약화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처럼 나타나면서, 남성 간 경쟁에서 져 굴욕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분노가 사회가 아닌 ‘여성’을 향하게 된 것이다. 남성의 새로운 경쟁자로서 군복무를 하지 않고 학점이 좋은 ‘젊은’ 여성과 전문 분야에서 남성만큼 두각을 나타내며 가정일까지 잘해내는 ‘워킹맘’이 부각되면서 남성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남성은 실질적으로는 ‘남성 간’ 경쟁에서 진 것이지만 ‘여성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활동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은 모범적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의 환상이 폐기되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새롭게 주조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영심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의 욕망을 보여주었던 골드미스와 전문직 고소득 여성은 이제 따뜻한 모성에 사회적 능력까지 갖춘 최고의 아내, 최고의 어머니로 격상되고 있다. 반면, 1980∼1990년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되었던 ‘중산층 전업주부’는 허영, 사치, 불륜, 도박을 하는 부정적 존재로 대상화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부정적 존재는 ‘취업주부’와 ‘이혼녀’였으나 갑작스럽게 이미지 전도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편으로, 미디어에서 전업주부와 취업주부가 대립되어 이미지화되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맘충’은 미디어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절하되고, 그동안 아내에게 부여되었던 자녀교육의 책임이 남편과 사회/국가로 분산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상황에 따라 1990년대처럼 남편보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불행의 대상으로, 혹은 현재처럼 능력 있는 여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317쪽)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미디어에서는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 판타지’가 끊임없이 만들어졌는데, 그 판타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구조화되었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이혼녀들(1950∼1960년대)은 어느 순간 악녀로 추락되었다가(1980∼1990년대), 갑자기 지향해야 할 가족윤리를 내재한 존재(2010년대)로 부상되기도 했다. 많은 여대생이 과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여대생들은 공부벌레인 동시에 미용과 결혼에만 관심 있는 사치스러운 허영녀(1980∼1990년대)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된장녀로 취급되던 젊은 여성들(2000년대 중반)은 갑자기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윤리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 혐오스러운 페미니스트(2010년대 중반)로 이미지화되기도 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내연녀에게 우위를 점하던 본처들(1950∼1960년대)은 한순간에 모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내연녀에게 본처의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1980∼1990년대). 이제는 본처가 남편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적이 되면 남편의 내연녀 정도는 거뜬히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가 된다(2010년대).
“한국사회에서 모성은 언제나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왔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성의 역할은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 교육받고 취직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지금,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을 ‘멸균’하는 능력까지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멸균 능력을 지닌 모성’은 20세기 후반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돌봄’의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495쪽)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말 살벌한 경쟁은 주로 남성 간에서 일어난다. 큰 재력을 가졌거나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갑 중의 갑’은 아직 남성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남성이 남성과 남성 간에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살벌함을 덜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성혐오가 성대립으로 파생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성혐오는 ‘남남 대립’을 은폐하기 위해 주조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2010년대 후반 이후는 여성 간 능력 경쟁과 여성 간 윤리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여여 갈등’의 문제가 커지게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도 ‘사회활동’을 하고 ‘이혼’에 대한 편견도 옅어지고 있으니 여권신장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여여 갈등으로 인해 여성 간 연대가 힘들어짐에 따라 성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503쪽)
책속으로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싶었다. 21세기인 오늘날 한국사회는 성평등한 사회인가? 한국사회에서 전후 이후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 시기는 있었는가? 한국사회는 전후부터 단계적으로 여권이 신장되었는가? 왜 혐오적으로 인식되는 여성/여성집단은 시기마다 달라지는가? 가족의 가치와 가족 구성원의 존재성은 고정된 것인가 구성되는 것인가? 저자로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위 질문들에 고민해보기를 소망한다. --- p.11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1980∼1990년대가 가부장의 권위라는 환상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한 시기라면 2000년대 이후는 사회적으로 그러한 메커니즘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남성성을 조정하고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서로 대립시키면서 새로운 가족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나간다. 실질적으로 오늘날 여성혐오의 원인은 ‘가부장제’의 ‘구조’ 자체라기보다는 ‘가족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수반되는 혼란은 특정 집단을 혐오적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다소 벗어날 수 있다는 데서 문제가 생겨난다. 그리고 집단 간 갈등은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고 심화된다. --- p.22
1950∼1960년대/1970년대에 혐오 대상으로 주목해야 할 존재는 바로 ‘여대생’이다. 이 시기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1980∼1990년대에 비해 드물었던 만큼, 여대생은 호기심과 질투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 여성의 신분 상승과 하락은 ‘결혼’과 밀접하게 결부되었기 때문에 여대생의 명석함과 사회적 능력은 인정받기 어려웠다. 여대생들이 대학 졸업 후 능력을 발휘해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아는 것이 많아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여대생들은 사회 질서를 위반할 수 있는 잠재적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이 점에서 여대생은 다른 부녀자와는 달리 사회 규범을 일탈하는 정숙하지 못함과 정신이상자의 형상으로 이미지화되는 사례가 많았다. 정숙하지 못한 대상으로 인식된 여대생은 혐오적 존재로 낙인찍혀 사회와 단절되었다. --- p.40∼41
한국사회에 2010년대 들어 나타난 여성혐오와 관련해 주부의 ‘여가’는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주제다. 1980∼1990년대 미디어에서 충분한 여가를 즐기는 주부의 면모는 여성의 지위와 행복을 드러내는 지표로 작용했다. 그래서 바쁘고 각박하게 사는 취업주부와 여유롭게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전업주부를 부정적/긍정적으로 존재시키는 면모도 나타났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여가를 누리는 전업주부가 ‘맘충’ 개념과 맞물리면서 부정적으로 간주된다. 사(史)적 측면에서 혐오적 여성의 배치와 재배치 현상이 가장 도드라지는 집단이 ‘전업주부’라는 점에서, 1950∼1960년대 미디어에서 주부의 여가를 어떻게 개념화·형상화하고 있는지 그 원형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p.87
1980∼1990년대에는 1950∼1960년대의 성적으로 방종하고 무섭게 여겨지는 ‘원초적 아버지’가 제거되고, 표면상으로 도덕적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질서가 세밀하게 구축된다. 그리고 여기에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대상은 혐오적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이 시기 새롭게 구축되는 가부장제의 의미, 여권신장이라는 환상, 여성이 자발적으로 가부장제에 편입되는 양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여성이 긍정적/부정적 대상으로 재배치되는 맥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아버지에게 부여되는 ‘윤리’와 여성에게 부여되는 ‘혐오’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58∼159
1980∼1990년대 중산층 전업주부는 외환위기 이후처럼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개념 없는 행동을 하거나 자기 아이만 지나치게 감싸 안는 ‘맘충’으로 형상화되지는 않는다. 이 시기에 전업주부는 자신의 여가를 잘 활용해 자아까지 실현하는 ‘능력 있는 어머니·아내’의 이미지가 강하다. 곧 1980∼1990년대 중산층 전업주부는 시간적·물질적으로 여유로운 사회의 교양인이자, 희생과 봉사로서 가정과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명예로운 집단이었다. 다만, 어머니로서 자녀의 교육에 열성적으로 관심을 갖는 상황은 2010년대에 이르러 혐오적으로 변질되어 전업주부의 긍정적 존재성을 뒤흔들게 된다. --- p.236
말해두건대, 현 한국사회의 여성혐오는 ‘친구 같은 아버지 중심의 4인 핵가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 p.318
이처럼, 국가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과 출생률 저하라는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여성혐오 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전업주부와 워킹맘 간 갈등이다. 앞으로 미디어는 전업주부에 대한 혐오와 워킹맘에 대한 찬사를 통해 여성 간 관계를 더욱더 분열시킬 것이다.--- p.435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앞으로 여성혐오의 양상은 남성과 여성 간 대립이 아닌 여성과 여성 간 갈등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격려되고, 이혼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개선되는 등의 사실만으로 여권신장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여성 간 모성 경쟁과 윤리 경쟁을 가속화하는 ‘더욱 교묘해지는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에 따라 여성 간 연대가 힘들어져 당면한 여성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제는 여성 간에 벌어지는 계층 간, 세대 간 갈등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 p.508
유구하고 치밀한 여성혐오의 역사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늘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시대별로 ‘집중타깃’이 달랐다. 1950~70년대에는 여대생 혐오가 만연했다. 1955년 어느 일간지는 “돈 없는 여자들은 정조를 팔아가면서라도 대학에 다녀야 된다고 말들 하지만, 요사이 여대생들은 풍기가 하도 나빠서 시집을 못 가게 될 날이 올가봐서 딸을 대학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1971년 9월27일치 <조선일보>에는 “사치풍조를 배격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이대 앞에서 성토하는 고대생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이 시기 신문과 드라마, 영화 속 여대생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문란하며 치정범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을 대중에 각인시킨 1969년 영화 ‘여성상위시대’ 신문광고. ‘여성은 남성하위 시대를 창조했다’고 선전했다(왼쪽). 1971년 9월 28일 이화여대 앞에서 사치 풍조를 규탄한다며‘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으라’고 쓴 유인물을 나눠주는 남자 대학생들을 다룬 신문 기사(오른쪽). /책과함께
1980~90년대 들어 여대생들은 청순가련한 존재(드라마 <마지막 승부>,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등)로 거듭난 반면, 취업주부와 이혼녀가 거센 공격을 받았다. 두 여성집단은 경제부흥기를 맞이한 한국사회가 권장하는 ‘단란한 가정’을 위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의 고된 삶을 치하하고 가족 내 위상을 드높이려는 흐름(영화 <남자는 괴로워> 등)이 뚜렷한 가운데, 내조의 미덕을 알지 못하고 “자아실현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힌”(방황하는 주부들, <동아일보> 1990년 5월3일치) 취업주부와 가정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깨어버린 이혼녀는 ‘공공의 적’이었다.
2010년대 들어 미디어 속 취업주부와 전업주부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된다. 사진은 전업주부와 워킹맘 사이 갈등의 징후가 잘 묘사된 2012년 드라마 <아내의 자격>, JTBC 화면 갈무리
1997년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전까지 줄곧 긍정적인 이미지였던 전업주부가 혐오대상으로 떠올랐다. 능력 있는 신세대 기혼여성을 가리키던 ‘미시’는 외환위기 시기에 “과소비의 대명사”, “외모를 지나치게 가꾸는 여성”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면서 가정을 유지하는 데 여성의 생활력과 경제력이 절실해진 2010년대 들어 미디어 속 취업주부와 전업주부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1990년대에 혐오적으로 위치되던 취업주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워킹맘으로, 행복한 가정의 안주인이었던 중산층 전업주부는 커피숍에 앉아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여유를 수다와 허영으로 낭비하는(드라마 <아내의 자격> 등)” ‘맘충’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의 저자 박찬효는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는 매 시기 가족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새로운 가족 이데올로기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라고 말한다.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가족 이데올로기가 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 여대생, 취업주부, 전업주부, 내연녀/이혼녀 등의 위치가 그 속에서 배치·재배치된다”는 것이다. 시대별로 여성혐오의 주요 대상이 달라진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종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촘촘히 분석한 책은 70년 미디어사를 꿰는 방대한 ‘페미니즘 미디어비평서’로도 손색없이 읽힌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2010년대 들어 미디어 속 취업주부와 전업주부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된다. 사진은 전업주부와 워킹맘 사이 갈등의 징후가 잘 묘사된 2012년 드라마 <아내의 자격>, JTBC 화면 갈무리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흐름을 살핀다. 사진은 가장 최근의 ‘가족 판타지’를 보여주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 JTBC 화면 갈무리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흐름을 살핀다. 사진은 가장 최근의 ‘가족 판타지’를 보여주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 JTBC화면 갈무리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아버지를 풍자한 1969년 영화 <남자와 기생>.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양공주, 자유부인, 위안부…한국의 ‘여성혐오’史
[페미니즘으로 보는 식민/분단/이주] 전후 냉전 질서와 남성연대 (허윤)
여성 상위와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시대
2015년 이후 한국사회의 키워드는 여성혐오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로 떠난 김군이나 ‘무뇌아적 페미니즘’을 염려하는 방송인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 여성혐오 발언은 계속되었다. 일상화된 언어폭력과 성희롱 등 한국사회의 여성혐오는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을 통해 폭발했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여성을 일반화, 집단화하여 표상하는 것은 신여성과 구여성, 자유부인과 현모양처 식의 이분법을 통해 계몽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던 기존의 여성혐오와 차이를 보인다. 여성은 더이상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취약성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역차별’론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해도 설득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선언에서부터 ‘#00_내_성폭력’을 거쳐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리부트’되었다.
1950년대 나오는 종합지, 대중지들은 대부분 표지가 여성이었다. 『아리랑』 1955년 4월호 표지.
1959년 잡지에도 ‘여존남비의 시대’ 언급
물론 여성혐오가 비단 2010년대의 현상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쓰기도 했던 작가 박종화는 1959년 여성잡지 『여원』에서 여성들이 남자 이상으로 활약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한국여자 중에는 지나간 역사적 인물 속에도 남자의 볼을 쥐어지를 만큼 훌륭한 여성이 많았지만 오늘날 우리 여성처럼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모두 남자 이상으로 활약을 하기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박종화, 「해방 후의 한국여성」, 『여원』, 1959.8.)
박종화는 여학생 수의 증가와 여성 가장의 경제활동 등을 통해 여성들이 “남자 이상으로 활약하는” ‘여존남비’의 시대가 왔다고 진단한다. 그의 지적처럼 해방 이후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해방기 여성들은 정당 활동, 정치 활동을 위해 거리에 나섰고, 1공화국에서는 여성 장관이 임명되기도 했다.
노동시장은 전쟁미망인들로 가득했다. 이와 같은 활약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여성‘상위’를 외치는 것은 사실상 여성이 상위에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제나 호명당하는 자는 호명하는 자보다 ‘하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여성은 축첩자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1960년 7월 전국 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의 축첩 반대 시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거래되는 여성과 강화되는 남성연대, ‘양공주’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은 부녀국을 설립하고 ‘매소부의 취체와 그 제도의 폐지, 불량부녀와 행려부녀자 보호’ 등 공창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공창제 폐지와 사창 단속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과 달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미군의 주둔이 영속화되면서 기지촌은 도리어 확장된다. 1954년 보건사회부 통계에 따르면, 접대부는 40여만 명으로 성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UN군을 상대로 하는 여성들이었다.
UN군과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부’ 여성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정조’와의 대비를 통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공론장은 양공주의 존재를 비난했지만, 기지촌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최정희의 『끝없는 낭만』(1956~1957)은 여학생과 미군 장교의 사랑을 통해 ‘양공주’ 문제에 접근하는 소설이다. 엘리트 여성인 이차래는 미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로 인해 ‘양공주’라고 손가락질을 당한다. 독립투사의 아들이자 차래의 정혼자였던 국군 장교 배곤은 건강한 남성청년으로, 차래에게 미군과 헤어지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버리라고 조언한다. “백색 피부 밑을 흐르는 그 아이의 피는 저 멀리 바다 건너 미국 민족들의 피”이고, “한국에 태여난 불행한 여성”인 차래는 다시 한국여성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양공주’에 대한 당시 한국사회의 혐오가 그대로 노출된다.
1) 소위 양부인이라는 건 해방의 부산물이라고 하고 나서 우리 사회가 아직 정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업여성 통계란에 팔십 파센트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상매는 어른처럼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여성들이 왜 이다지도 맥을 못추고 흘러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습니다.
2) “그래. 차래 너 용케 아는구나. 오빠가 미워한 것이 ‘캐리’가 아니야. 네 말과 같이 전쟁하러 온, 그래서 몇 만명의 한국 여성을 양갈볼 만들어 놓은 그 사람들이야. 그 외군들이란 말이다. 그러면서도 오빤 또 그 사람들을 나쁘다고만 생각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을 한다. 오빠가 어제저녁 여기서 화를 낸건 네가 곤의 약혼자라는 것, 그리구 내 친구라는 것, 좀 더 큰 의미에서 네가 한국의 ‘인데리’ 여성이라는 데서 일꺼다.”
차래의 친구인 상매와 그 오빠는 여성 직업 통계란의 80%가 미군 상대의 ‘양공주’라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를 한국여성들과 외국군인들의 탓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양공주’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이나 제도, 미군의 존재를 통해 질서 안정을 도모하는 국가의 구조나 세계사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군의 주둔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국군의 약혼자이자 인텔리 여성인 차래는 미군과 결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가 사이의 거래를 숨기고 정치경제적 구조를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환원한다.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고, 집단 내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민족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적대적 외부를 설정해야만 한다. 이들 주체 혹은 집단이 순결하기 위해서는 순결하지 못한 나머지를 적극적으로 배제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결의 책임은 여성들에게 주어진다. 여성이 재생산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명예의 전달자라는 상징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집단 상상력을 통해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에 따라 가족의 미래뿐만 아니라 민족의 미래와도 연관된다.(니라 유발-데이비스, 『젠더와 민족』, 박혜란 옮김, 그린비, 2012) 이에 따르면 혼혈아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재현의 짐을 훼손한 여성은 민족의 미래를 더럽힌 것이 된다. 따라서 다시 민족 안으로 포함되기 위해서는 비-순결의 표지인 혼혈아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이차래는 아들 토니를 보육원에 버리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하얀 눈과 오버랩된다. 양공주는 죽고, 민족국가는 눈처럼 순결한 새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인 남성들에 의해 도마 위에 오른 ‘자유부인’
195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주인공 오선영을 통해 ‘자유부인’이라는 유형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가게의 공금을 횡령하고, 대학생인 애인과 땐스홀에 출입한다. 파리양행으로 출근하는 것을 8.15해방보다 “참다운 민주해방”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오선영을 통해 연애와 섹슈얼리티는 민주와 자유의 본뜻을 훼손시키는 시대풍조의 표상으로 젠더화된다. 이에 내포 작가는 “자유와 방종이 혼동되어, 사회 질서가 그로 인하여 파괴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잠시 무시해도 좋으니, 여성 각자에게 지각이 생길 때까지는 아낙네들을 엄중히 단속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여성 ‘일반’에 대해 강한 혐오를 드러낸다. 즉 잘못된 자유, 민주는 오롯이 여성의 책임인 것이다.
영화 <자유부인>(1956년, 한형모 감독) 포스터
『자유부인』의 엄청난 성공은 서울신문을 통해 정비석의 소설을 읽었을 ‘지식인 남성’들의 열렬한 호응에 기대고 있다. 즉 1950년대 여성혐오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텍스트였던 것이다.
잡지 『여성계』 1955년 1월호는 ‘최신형 여성’을 기생충형, 모사형, 지식여성형, 귀부인형, 문화인형, 쁘르죠아형의 6종류로 나눈다. 이 글은 1950년대 여성의 허영이나 과시를 문제 삼으며 강한 혐오를 드러낸다. 특히 쁘르죠아형은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로서, 가사는 식모에게 맡겨두고, “민주주의와 남녀평등은 입버릇처럼 외우고 다니나 그실 민주주의가 뭔지 그 초보조차 깨닫지 못”한다며 이들을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최신형 여성’의 특성은 정비석이 지적한 ‘자유부인’과도 맞아떨어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문화적 취향을 갖추고 있으며,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여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때로 이 ‘자유부인’이 공산주의자로 치환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반공 검사로 유명한 오제도는 공산주의를 유혹하는 여성으로 재현한다.
근대적인 유행형을 허다히 생산하는 찬란한 20세기에 또 하나 사교계의 툭 티어난 명화 하나가 있으니 그가 바로 화제의 S양인 것입니다. (중략) 애교에 흘러넘치는 웃음과 제스취어, 이 근사한 전체에 어느 듯 옛 모습은 사라지고 많은 남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중략) 늘 자신의 태도를 명백히 하지 않는 운큼한 여성입니다. (중략) 될 수만 있다면은 온 세계의 뭇 남성들을 상대하고 싶은 것이 S양의 얄궃으면서도 솔직한 심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S양의 본명은 무엇일가? S양의 본명이 바로 ‘미쓰 소비에트’인 것입니다.(오제도, 『공산주의 ABC』, 남광문화사, 1952, 102~108쪽.)
S양은 20세기 사교계의 꽃으로, 실제로는 늙은 여성이지만 화려한 사교술과 애교 있는 태도를 갖추어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에게 열렬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청년도 있고, 호기심으로 그녀의 집을 찾는 사람도 있을 만큼 많은 남자들이 S양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오제도는 이 S양이 ‘미쓰 소비에트’임을 밝히며 공산주의를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영화 <운명의 손>(1958)에서도 등장한다. 바에서 일하는 마가렛은 양공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스파이다. 영화는 미국화되고 공산화된 이중적 신체를 빌어 공산주의=여성 섹슈얼리티의 공식을 입증한다. 실크 캐미솔을 입은 마가렛의 육체는 젊은 남성을 유혹하고, 그런 그녀를 처벌함으로써 국가는 다시 안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반공 청년에 대한 사랑으로 마가렛이 교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적 소비 주체는 공산주의자라는 또 하나의 외연을 갖게 되었다.
이는 1950년대 여성혐오가 포스트 식민, 반공 등의 냉전 질서의 누빔점임을 보여준다. 냉전 체제는 불안을 외부에서 오는 위험과 관련시켰고, 한국사회는 이 전염의 매개체를 ‘양공주’에게 덧씌운다. 섹슈얼리티가 반공 내셔널리즘과 만나 공산주의의 여성화, 서구화라는 형상을 획득한 것이다.
영화 <운명의 손>(1954년, 한형모 감독) 중 한 장면. 카바레 마담인 주인공이 간첩으로 등장한다.
사라진 여자들, 침묵하는 사회
1950년대 ‘대한민국’은 민족국가를 건설할 건강한 남성 국민을 아프레걸, 자유부인 등의 여성성을 통해 구성해나간다. 이로 인해 1950년대 한국 사회는 여성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한다.’ 순결한 민족을 재생산하는 것도 여성이고, 언제든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여성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때 말해지지 않은 여성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전시하면서, 일절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냉전 남한의 무의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말해지지 않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이다. 1950년대 공론장은 귀환한 ‘위안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는 전후 일본에서 조선인 ‘위안부’나 미군 ‘위안부’ ‘팡팡’이 빈번하게 소설화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패전에 임박한 일본군은 ‘위안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전선까지 배치되어 있던 조선인 ‘위안부’들이 귀환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거치는 경우도 많았으며, 본토에 배치된 여성들도 있었다. 이로 인해 조선인 ‘위안부’의 존재는 전후 일본 사회에도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안부’에 대한 초기 이해는 직업적 성판매 여성이라는 선에서 이루어졌으며, 식민 지배의 문제는 간과되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조선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에서 풀려나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더럽혀진 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수치스러움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공론장의 침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전쟁에서 돌아온 학병들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며 ‘민족의 아들’로 귀환하였으며, 이들이 ‘학병 서사’라 불리는 문학적 전환점을 이루었던 데 반해,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발기인인 윤정옥은 일제 말 어른들의 소문을 통해 일제의 ‘처녀 공출’에 대해 알고 있던 학생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후 사회가 안정되면 역사가들이 “끌려간 여성의 문제”를 연구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도 “사라진 여자들”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기에 자신이 나서게 되었다고 설명한다.(윤정옥·김수진, 「얘들, 어떻게 됐나? 내 나이 스물, 딱 고 나이라고: 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 전(前) 공동대표 윤정옥」, 『여성과 사회』 13호, 2001, 104~137쪽)
돌아오지 못한 여성들과 ‘애국적 무관심’: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는 냉전 체제가 만들어 놓은 한국-미국-일본의 공조 체계를 횡단하며 모순을 폭로한다. 민족국가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돌아온 ‘위안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위안부’가 국가의 판타지를 가로지르는 실재(the Real)였다.
나이토 치즈코는 ‘애국’ 담론에서 보지 않는 타자의 문제를 ‘애국적 무관심’이라고 지칭한다. 차별당하는 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재일, 한국, 북한, 중국 등 임의의 기호에 대한 공격의 근저에는 사실상 타자에 대한 무관심, 특히 자신이 놓여진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구조에 대한 무관심이 있다.(内藤千珠子, 『愛国的無関心: 「見えない他者」と物語の暴力』, 新曜社, 2015.)
이는 여성혐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는 여성혐오가 가리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구조에 대한 ‘무관심’이 있다. 사회는 혐오를 통해 “실제로 견뎌내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보다 잘 회피할 수 있게 된다.”(마사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조계원 옮김, 민음사, 2015, 180쪽.) 이는 국가적 위기의 상황마다 여성혐오가 ‘등장’하여 문제의 중핵을 가리고, 혐오할 대상을 제공하였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협상’이 ‘불가역적 합의’를 선언한 이후, 정부의 협상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대승적 차원’, ‘애국적 차원’에서 협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진행 과정에서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1950년대와 마찬가지이다. 한국-미국-일본의 연대를 위해 ‘위안부’ 문제는 합의를 통해 ‘처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애국심’은 누군가의 침묵, 혹은 희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민족국가 재건 시기, 공통감각으로서의 ‘여성혐오’
박종화가 여성상위 시대라고 말한 것과 달리, 탈식민과 민족국가 재건의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초남성성이다. 아쉬스 난디는 초남성성이 식민지 지배의 반동으로 지속적으로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식민지의 남성 주체들이 제국의 초남성성을 동경하게 되고 이는 이후 독립국가의 초남성화와 사회의 초여성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아쉬스 난디, 『친밀한 적』, 이옥순 옮김, 1993)
“딸이면 해방자”, “아들이거든 건국”이라는 이름 짓기가 등장하는 염상섭의 「해방의 아들」 속 출산 서사는 이러한 경향을 재현한다. 독립과 해방은 “아버지 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는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땅(북한)을 회복한다’는 민족적 대의에 부응할 아들을 낳는 서사로 이어진다.
한국전쟁 당시 발행된 육군 기관지 『전선문학』에 실린 정비석의 「남아출생」은 아들을 낳는 것이 곧 국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여길 만큼 싫어하던 소설가 현이 전선에 나가 있는 조카가 전사했다는 편지를 받고 “조카가 전사했다는 기별을 들은 지금에 자기에게 아들이 하나 생겼다는 것은, 소모된 국가의 국력을 그만치 보충한 것 같아서, 무한히 기뻤던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아들을 낳아 국가에 보태는 재생산이야말로 궁극적 차원의 생산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출산 서사가 도착하는 곳은 군인-청년의 남성성이다. 1950년대 발간된 모든 출판물에 게재된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강철같이 단결하며 백두산을 정복하자”는 “우리의 맹세”가 민족의 담지자로서의 군인-청년을 호명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1950년대 국가는 군인의 초남성성을 호명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이 초남성성은 미국이라는 강력한 아버지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이 ‘아들’과 ‘아버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 ‘위안부’는 계속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북진통일을 주창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호전성의 음화로, 불확실한 남성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희진, 「편재(遍在)하는 남성성, 편재(偏在)하는 남성성」,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2011). 1950년대 남한에서 건강한 남성은 전쟁에서 죽고, 젊은 남성들은 징병을 피하기 위해 호적을 위조하고 숨어 지낸다. 공산 괴뢰로부터 수복해야 할 땅은 있지만, 상이용사들은 생계문제로 자살하는 사회이다.
영화 <자유부인>(1956년, 한형모 감독) 중에서 스틸 컷.
이때 이 훼손당한 남성성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과잉된 여성성이다. 사회는 풍기단속 차원에서 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후의 혼란은 아프레걸, 자유부인이라는 말로 통칭되었으며, 이들은 국가재건의 질서를 훼손하는 여성들이자 사회의 악으로 명명되었다. 이러한 타자화 전략은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일선에서 싸우는 ‘오빠’의 세계가 건전하기 위해서 ‘후방’은 언제나 여성화되었던 것이다.
여성화된 후방에는 혐오와 수치심으로 가득하다. 조선은 해방되고 민족국가가 건설되었지만, 군 ‘위안부’는 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베트남군 ‘위안부’ 등의 형태로 반복해서 돌아온다. 일본군 출신의 한국 군인들은 한국전쟁 당시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위안부’와 위안소를 배치했다. 한국이 냉전 질서의 유지를 위해 미국 특수 위안시설을 운영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공론장은 여성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냉전 체제하에서 통치 도구로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소개: 허윤. 부경대 국문과 교수. 남성성을 중심으로 젠더문학/문화사를 공부하고 있다. 『그런 남자는 없다』(오월의봄, 2017),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 『을들의 당나귀귀』(후마니타스, 2019) 등의 공저, 『일탈』(게일 루빈, 현실문화, 2015) 등의 역서,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역락, 2018) 저서가 있다. 출처: https://blogilda.tistory.com/3648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2019. 9. 24
사족의 민낯, 유감동 사건
유감동(兪甘同)은 40여명의 남자와 간통을 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600여 년 전 세종 9년의 일이다. 처음엔 5명이던 간통남(奸夫)이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한 달이 넘도록 조정과 재야가 벌집 쑤신 듯했다. 그녀의 간부로는 대부분 관직에 있는 자들이었는데, 재상들도 있었다. 유감동 또한 높은 신분의 부녀로, 지금으로 치면 명예서울시장 정도인 검한성윤(檢漢城尹) 유귀수가 아버지고 평강 현감 최중기가 남편이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간통남의 이름이 줄줄이 끌려나오는데, 사흘 거리를 두고 새로운 명단이 추가 발표되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사족 부녀 유감동이 창기(倡妓)를 자처하며 수십 명의 상대남과 간통 행각을 벌인 이유가 궁금했다. 원래 ‘그런’ 여자가 아니었는데, 피병(避病) 길에서 납치되어 욕을 당한 것이 출발이었다는 둥,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둥, 감동이 스스로 남편을 버렸다는 둥 간통남의 숫자만큼이나 행각에 대한 이유도 복잡했다. 워낙 그 숫자가 많다보니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는데, 행실이 나빠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도 하고, 남편을 배신한 파렴치한이라고도 했다. 간통남의 새로운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국왕 세종은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감동의 진술에만 의존하게 되자 감찰 윤수미는 애정의 농도에 따라 그녀가 숨기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며 간부를 직접 조사하자면서 사건의 판을 키우려고 한다.
간부들의 죄는 몇 가지 조건에 의해 그 경중이 정해졌는데, 감동의 신분을 알고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사족 부녀인 줄 알고 간통한 것은 지배층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어 죄가 가중되었다. 반대로 간통녀 감동을 창기로 알고 간통한 경우 간부의 죄가 경감되었다. 이에 대부분의 간부는 감동이 창기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감동은 간부들의 진술을 일일이 바로잡았다. 최종 변론에서 진술을 번복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부모가 여러 번 사람을 보내 황치신·전수생·배상동 세 사람에 대해서는 ‘너의 신분’을 몰랐던 것으로 하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황치신은 정승 황희의 아들이고, 전수생과 배상동은 개국공신의 아들이다. 간통남을 구원하는 데 국가 권력이 개입한 것이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 한 달 후 유감동과 간부들의 형벌이 정해졌다. 감동은 남편을 배반한 죄, 거짓으로 창기라 일컬으며 사욕을 방자하게 행사한 죄, 음란한 행위로 인륜을 문란케 한 죄로 먼 지방으로 쫓겨났다. 간통남들은 여자의 신분을 알았는가를 기준으로, 이혼녀와의 간통은 곤장 80대, 창기와의 간통은 곤장 60대로 정해졌다. 관직자의 직첩은 회수되었다. 그런데 두세 번 해가 바뀌자 간통남들이 하나 둘 관직으로 복귀하는데, 곤장 80대를 맞은 황치신은 관찰사와 참판 등에 제수되었다. 고모부 이효례의 간통녀인 줄 알고도 간통하여 금수로 취급된 권격은 국왕 세종과 사돈이 되었고, 숙부의 간통녀인 줄 알면서 간통한 정효문은 중추원부사에 올랐다. 남녀윤리를 바로잡아 도덕국가를 제창하겠다는 원대한 선언은 결국 여성 한명을 쫓아내는 것으로 충분했을 만큼 가볍고 기만적인 것이었다.
여전히 궁금한 것은, 그녀의 진술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았을 남자들의 정체를 일일이 밝힌 감동의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간통남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입지는 불리해질 것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50년 후에 감동과 유사한 사례를 남긴 박어을우동은 그 부모가 간부들을 다 말하지 말고 수를 줄이라고 조언한다. 이혼녀 유감동의 ‘음행’은 사족사회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그로 인해 성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15세기 남성 국가의 위치가 드러났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음녀’ 감동에만 주목하지만, 간통남의 신원을 일일이 공개한 당시의 기록에서 소위 음행이 여자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덕이 없으면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굴던 권력자들의 실천도덕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사건은 조선의 지배이념인 도덕을 누가 가장 우습게 알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라져버린 감동과 달리,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요직으로 복귀하여 나라를 이끌었다는 그들의 발자취에서 익숙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감상인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20. 1.31
긴즈버그의 말 저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헬레나 헌트|역자 오현아|마음산책 |2020.01.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원제 Ruth Bader Ginsburg
RUTH BADER GINSBURG-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1933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코넬대학교에 입학하고 1954년 동문인 마틴 긴즈버그와 결혼한다. 이듬해에 딸 제인 긴즈버그가 태어난다. 1956년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는데, 뉴욕에 일자리를 구한 남편을 따라 다시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로 편입학한다. 로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당시 법조계에 만연했던 여성 차별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가, 교수의 추천으로 에드먼드 팔미에리 판사의 재판 연구원이 된다. 이후 컬럼비아대 로스쿨이 후원하는 스웨덴 민사소송 연구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스웨덴 사회의 분위기를 접하고 많은 영향을 받는다. 1972년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종신 재직권이 보장된 첫 여성 교수로 부임한다. 같은 해 긴즈버그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과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하면서 적극적으로 젠더 차별과 관련한 사건들을 재판에 부쳐서 변론한다. 이런 노력은 성을 역할로 구분 짓는 법적인 편견과 차별을 개선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80년 컬럼비아 특별재판구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고 1993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된다. 대법관으로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오버게펠 대 호지스 사건 등을 통해 젠더 평등과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의견을 꾸준히 개진한다. 일생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 증진에 힘써온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변호사협회의 서굿마셜상, 벤저민네이선카도조상 등을 수상하고 2015년에는 〈타임〉 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스웨덴 민사소송(CIVIL PROCEDURE IN SWEDEN)』 『성차별적 요소와 법(MATERIALS on SEX-BASED DISCRIMINATION AND THE LAW)』 『나 자신의 말 (MY OWN WORDS)』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헬레나 헌트
법
법과 헌법
변호사와 판사 그리고 법률 업무
대법원
여성과 법
시민의 자유 -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
미국의 권리와 가치
법 앞에 평등한 정의
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
여성의 권리
생식권
나의 인생
긴 생의 기억들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다른 영향들
삶의 교훈들
옮긴이의 말
해제 | 이다혜([씨네21] 기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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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출판사 서평
“올바른 동시에 단단한 의견을 내는 것이 한결같은 나의 목표다”
대법관의 신념과 태도가 담긴 사려 깊은 언어
정부의 다른 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법원에 대한 비판에 분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종신 임명직인 판사에게 합리적인 비판은 특히 중요하다. 겸손과 자기 의심이라는 건전한 태도를 판사석에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33쪽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부터 젠더 차별과 관련한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재판에 부쳐 승소로 이끌었고 최근 보수화된 미국 정세에 거침없이 반대 의견을 내 투사적인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중한 성격이고 법관으로서는 오랜 기간 중도적인 노선을 취해왔다. 그는 합의체 법정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려는 마음, 자신의 견해를 재고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며 “상대편의 체스 말을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는” 판사를 훌륭하다고 정의한다. 재판 연구원들이 작성한 법정 의견서 초고를 꼼꼼하게 교정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과한 여담이나 미사구, 산만한 비난’ 없이 정제되고 분명한 표현을 중시한다.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였던 故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우정도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긴즈버그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긴즈버그의 말』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법」에서 긴즈버그는 미국 헌법의 역사와 사법 체제를 돌아보고 법률가로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 법관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꺼내면서도 오늘날 달라진 여성 법관의 위상에 대해 기쁜 마음을 드러낸다. 2부 「시민의 자유」에는 여러 재판에서 긴즈버그가 냈던 의견서가 다수 실렸다. 이를테면 투표권 차별을 막는데 기여했던 선거권법을 위헌이라 판결한 대법원의 의견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산을 내던지는 격’이라 비판하고, 에드워즈 대 힐리 사건에서는 여성의 배심원단 참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규정했던 주 법이 성별의 부재로 배심원의 공동체 대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의견을 개진한다. 또한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수전 B. 앤서니,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세라 그림케, 폴리 머리 등을 언급하며 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를 돌아본다. 3부 「나의 인생」에서는 대법관 이전에 개인으로서 긴즈버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 살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평생 긴즈버그를 지지하고 보살핀 남편 마틴과 아이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고백한다. 이 외에도 대학교에서 유럽 문학을 배우고 글쓰기에 눈뜬 계기, 두 번의 암 투병을 지나고 얻었던 깨달음 등이 담겨 있다.
『긴즈버그의 말』에 실린 각종 사건의 ‘변론’과 대법관으로 일하며 쓴 ‘반대 의견서’의 문장들을 당신이 소리 내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목소리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을 바꾼 언어들을 말하고 들어 보기를 원한다. 한국은 미국만큼이나 더 나아져야 할 여지가 많은 나라이고, 이상하고 불평등한 듯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헷갈리던 개념을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 말은 힘이 세다. 법정에서 반대파를 설득하고 오늘의 세상을 어제보다 평등한 곳으로 바꿀 힘을 지닌 단련된 언어가 갖는 단단함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다. 이것이 언어가 지닐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다혜(〈씨네21〉 기자, 작가), 「해제」에서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긴 인생의 기억들
(하버드대 로스쿨) 원장이 신입 여학생들을 환영한다며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 …… 원장이 우리를 거실로 데리고 가더니 여학생들에게 한 명씩 돌아가며 남학생 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하버드대 로스쿨에 들어온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129쪽에서
1959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졸업하고 흠잡을 데 없는 이력을 가졌지만 긴즈버그는 계속해서 구직에 실패한다. 여성 법률가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당시 그는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기 때문에 자신을 고용하려 한 로펌이 한 군데도 없었다고 말한다. 럿거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리면 재계약을 못 할까 봐 큰 옷을 빌려 입고 숨겼던 일을 꺼낸다.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고 하는 그는 여성 인권 사업 등을 통해서 특히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힘쓴다. 이를테면 1974년 게덜디그 대 아이엘로 사건에서 임신에 근거한 차별은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맹비난하고, 출산이나 임신으로 일하기가 힘든 여성을 노동시장의 낙오자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이들에게 고용 보장과 소득 보존, 의료보험이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출산 여부는 여성의 선택으로, 법은 임신한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연방대법원이 보수적으로 기운 오늘날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평등을 향해 걸어온 그의 목소리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긴즈버그가 1970년대 주요 젠더 차별 사건을 도맡아 변론하고, 표현과 언론의 자유, 젠더 평등처럼 중요한 문제라면 타협 없이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사회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가의 사회적 역할을 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긴즈버그를 롤 모델로 삼아 삶의 방향을 새로 잡을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사회의 눈물’을 닦고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있다면 더욱 멋지겠다.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말했듯이 ‘너는 여자니까, 너는 남자니까’라는 말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말이다. 높낮이가 거의 없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이 여성 대법관이 전하는 메시지에 많은 사람이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책속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여자아이라면 의사건 변호사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자유롭게 하라. 남자아이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고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 역시 괜찮다. 페미니즘 개념은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17
현대의 모든 인권 관련 문서는 법 앞에 양성(兩性) 이 평등하다는 진술을 담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그렇지 않다. 내 딸과 외손녀, 그 후에 올 모든 딸들을 위해 나는 그 진술을 우리 정부의 근본 통치 수단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싶다.--- p.24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p.32
효율적인 판사는 …… 권위적으로 말하는 대신 설득하려고 노력 한다. 상호 동등한 정부 부서와 주 정부, 법원 동료들을 비난하는 대신 “온화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간다.--- p.34
과한 여담이나 미사여구 없이, 또 의견이 다른 동료들에 대한 산만한 비난 없이 올바른 동시에 단단한 의견을 내는 것이 한결같은 나의 목표다.--- p.42
나는 대단히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오백 명 남짓한 정원에 여학생이 아홉 명인 로스쿨에 입학했다. …… 우리는 교실에서 질문을 받으면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유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스스로도 그랬지만, 교수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로스쿨 여학생들이 다 그렇지요, 뭐.” 그래서 우리는 주목을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 여성들도 법률가로 성공할 모든 자질을 갖췄음을 남학생과 교수 들에게 일깨워주는걸 우리는 일종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p.51
우리 형제들이 베르겐·벨젠을 비롯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느꼈던 공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정의로운 사람에게 증오와 편견은 좋은 심심풀이도, 걸맞은 친구도 아님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p.64
1837년에 …… 유명한 노예 폐지론자이자 양성평등주의자인 세라 그림케(Sarah Grimke)는 …… 우아한 목소리가 아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p.82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여자가 말하면 다들 귀담아듣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자가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좀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나만 겪은 특별한 경험도 아니다. 고위직 여성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그들도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p.85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태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자리 잡게 된다. 그 태도는 1950년대 초반 어느 대학 도서관 열람석에 새겨진 낙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낙서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열심히 공부하라, 좋은 성적을 거둬라, 학위를 받아라, 결혼하라, 아이 셋을 낳아라, 죽어라, 그다음 땅에 묻혀라.” 첫 문장만 봐서는 이 글을 쓴 사람의 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두 번째 문장에 이르러서는 여성이 이 글을 썼다는 걸 모르기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쓴 젊은 여성을 비롯해 그녀 같은 수많은 다른 여성들이 너무도 민감하게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은 성별을 기능적 설명을 위한 약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법은 모(母)가 아닌 부모(父母)를 다루어야 한다. 주부가 아닌 가사 담당자를 다루어야 한다. 과부가 아닌 생존 배우자를 다루어야 한다.--- p.91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빈곤층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여성은 교육 수준과 경력이 비슷한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터는 출산 및 양육과 관련된 요구 사항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과 가정 폭력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도 강구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을 구성 하는 모든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는 쪽으로 계속 사회가 나아갈 것으로 나는 낙관한다.--- p.113
수많은 모욕이 가해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풍경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내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닐 때였다. [로리뷰] 발간에 참여하던 터라 라몬트도서관에 정기 간행물을 보러 갔다 …… 정문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못 들어가요.” “왜 못 들어간다는 거죠?” “여자니까요.”
--- p.131
(어머니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숙녀가 되어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라. “숙녀가 되라”는 것은 분노처럼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감정에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 p.147
우리 대부분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그러나 …… 편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사람들을 세뇌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나 자신을 중립적인 사람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p.148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여야 할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라.--- p.150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의 언어로 세상을 바꿨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왜 생활의 장에서 실천되지 못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관행으로 굳어진 뿌리 깊은 차별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 자신이 여성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특히 사회의 성차별적 관행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성공의 기록을 쌓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의 논리와 철학, 그리고 언어로 세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곳으로 바꿔나갔다. ---「해제」(이다혜([씨네21] 기자, 작가)) 중에서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저자 수전 팔루디|역자 황성원|arte |2017
저자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1959년생. 1981년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저널리스트로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해 왔다. 1991년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의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직원들을 취재해 그해 해석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백래시』는 팔루디의 데뷔작이다. 팔루디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 물결 아래 언론, 대중매체,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을 상대로 한 일관된 공격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러한 현상에 ‘백래시(반격)’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래시』는 출간과 동시에 평단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아 그해 논픽션 부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유에스에이 투데이≫ ‘지난 25년간 미국에 영향을 미친 책 25권’, ≪미즈≫ ‘세대를 초월한 논픽션 10권’에 선정되는 등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인용되고 있다.
팔루디는 이후로도 전통적인 남성성의 붕괴와 그로 인해 미국 남성들이 직면한 위기를 다룬 STIFFED: THE BETRAYAL OF THE AMERICAN MAN, 9.11 사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젠더화된’ 심리적 반응을 고찰한 THE TERROR DREAM: MYTH AND MISOGYNY IN AN INSECURE AMERICA 등을 썼다. 최근에는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후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된 아버지 스테파니 팔루디와의 관계를 다룬 논픽션 IN THE DARKROOM을 출간해 2016년 커커스리뷰 상을 받았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목차
한국어판 해제 역사가 된 기록,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선언_손희정
15주년 기념판 서문
1장 [프롤로그]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1부 신화와 회상
2장 [신화] 남자 품귀 현상과 불모의 자궁
3장 [역사] 반격의 과거와 현재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
4장 [미디어] 반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
5장 [영화] 치명적이고 치기어린 상상
6장 [TV] 10대 천사와 결혼하지 않은 마녀
7장 [패션] 인형 옷 입히기
8장 [미용] 미용 산업과 생명을 얻은 마네킹
3부 반동의 기원: 전달자, 선동가, 사상가
9장 [선전] 뉴라이트가 벌이는 원한의 정치
10장 [정치] 여자 사람 스미스 씨 워싱턴을 떠나다
11장 [사상] 반격의 수뇌부, 네오콘에서 네오펨까지
4장 반격의 결과물: 여성의 마음, 일터, 몸에 미친 영향
12장 [심리] 그건 모두 당신 마음속에 있어요
13장 [일터] 직장 여성에게 타격을 입히다
14장 [몸]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에필로그
미주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진부한 소동,
‘반격’의 전모를 기록하다
“반격의 주장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었다. 동등한 교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는 것이다.”_본문 가운데
1970년대 미국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이 가져다준 성취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성이 머물 곳은 집이라는 낡은 주장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참정권 운동을 전개한 이래 여성들이 더 완전한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가장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언론들도 앞다퉈 ‘성공한’ 여성들의 사진을 표지 기사에 실으며 “봐, 이 여자는 행복해. 그건 이 여자가 해방됐기 때문이야”라고 외쳐 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스럽지만, 어쨌든 호의적인 언론의 선전전은 완전히 태세를 전환한다. 그들은 “봐, 이 여자는 비참해, 그건 이 여자가 너무 해방되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똑같이 ‘성공한’ 여성의 사진에 다만, 우거지상을 그려 놓았다. “나이 많은 싱글 여성이 결혼할 확률은 길을 가다 테러를 당할 가능성보다 낮다”, “직장 여성들 사이에 ‘불임 유행병’이 번지고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이기적인 엄마들”, “여성은 성공의 대가로 관계를 희생시켰다” 등등 과거 해방의 선전꾼들이 오늘의 ‘반격의 나팔수’가 되어 한목소리로 “너희들은 이제 자유롭고 평등할지 몰라도 그 어느 때보다 비참해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처한 비참함의 원인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페미니즘을 지목했다. “페미니즘이라는 전염병이 여성들에게 스트레스, 불안, 우울 강박증, 중독, 그리고 극도의 피로감을 안기고 있다.”, “여성해방의 끔찍한 진실”, “페미니즘은 이제 충분하다!”
팔루디는 해방의 열기가 냉대와 경멸, 혐오의 공기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미국 사회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본다. 반격의 나팔수들이 호들갑스럽게 요리해 내놓은 메시지는 “여성들이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였고, 이들의 단골 메뉴는 일, 결혼, 그리고 모성이라는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미디어 삼부작이었으며, 이는 “뉴스 가판대에, 텔레비전 화면에, 영화에, 광고와 의사의 진료실에 그리고 학술지에” 실려 1980년대 미국 풍경이 되었다. 팔루디는 이 풍경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1848년 역사적인 세니커폴스 대회에서 여성의 권리 선언이 낭독되고 얼마 되지 않아 빅토리아식 도덕적 설교가 호전적인 입법부와 점잖은 학계에서 쏟아져 나왔고,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해 침묵을 강요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정부와 산업계는 한때 ‘산업의 역군’이라 칭송하던 여성들을 직장에서 몰아낼 궁리를 하느라 바빴다. 매 시기마다 “뇌와 자궁의 충돌”처럼 “과학 연구의 새로운 발견들에 왕년의 싸구려 도덕주의를 버무린” 유사한 언어들이 범람했다.
팔루디는 반격의 반복되는 습성을 언급하며 여성해방의 역사는 늘 “결코 목적에 닿지 못한 채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적 커브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커브가 그리는 “나선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간다.” 팔루디가 인용한 심리학자 진 베이커 밀러의 말에 따르면 반격은 “여성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보통 성취가 작을 때,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다. …… 마치 큰 변화를 앞두고 위협을 느낄 때 반격의 선두 주자들이 변화의 공포를 이용하는 것 같다.” 1980년대 팔루디가 포착한 그 공포는 언론이 배포하는 ‘트렌드 기사’에서 시작해서 텔레비전, 영화, 광고, 수술실을 경유해 여성의 일, 마음, 그리고 신체를 구속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반격의 서두: 독립을 위해 결혼을 포기한비참한 싱글 여성
“언론은 여성의 불행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도 있었으리라. 뉴라이트와 여성 혐오적인 백악관에서, 한기가 도는 재계와 고집스러운 사회·종교기관에서 …… 하지만 언론은 반격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대신 이를 유포하는 쪽을 택했다.”_본문 가운데
“‘남자 품귀 현상’ 때문에 여성의 결혼 가능성이 위험할 정도로 희박해졌다.” 1986년 한 지역 언론이 밸런타인데이 특집 기사로 다룬 소위 ‘결혼 궁핍 사태’는 곧 미국 대중문화의 모든 미디어들이 열광하는 뉴스가 됐다. 이 기사는 예일 대학의 사회학자 닐 베넷과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룸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여성의 결혼 패턴에 대한 미발표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베넷의 통계치는 사실상 모든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전국 뉴스 프로그램과 토크쇼, 시트콤과 영화, 자기 계발서, 각종 광고와 심지어 신년 카드에까지 오르내렸다. 알고 보니 이 통계는 간단한 인구 조사표만 살펴보아도 오류투성이였다. 어디에도 남자 품귀 현상을 가리키는 지표는 없었다. 오히려 더 폭넓은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5세에서 45세 사이 대졸 이상 학력 여성의 경우 사실상 혼인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잘못된 모델에 근거한 조사, 미숙한 통계 조작이 빚어낸 실수가 언론이 기댄 통념과 합작해 거대한 헛소동을 만든 셈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통계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베넷과 블룸, 그리고 언론은 ‘교육 지향’과 ‘출세 지향’의 여성들이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주장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정부는 미국 인구조사국 연구원이 하버드-예일 연구를 반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려 하자 노골적인 방해 공작을 펼쳤다.
팔루디는 연구 책임자인 베넷과 베넷에게 기사를 받아 쓴 기자들, 그리고 베넷의 통계 수치를 의심스럽게 바라본 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며, ‘반격의 서사시’라 할 만한 이 두꺼운 책의 서두를 완성한다. 어떻게 단순한 흥미 위주의 기사가 싱글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말라붙은 자궁”과 “자정을 향해 가는 생체 시계”로 표상하게 했는지, 그리고 ‘결혼 궁핍’과 ‘결혼 안 하는 싱글 여성의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까지 확장시켰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은 소름 돋도록 흥미진진하고, 섬뜩할 정도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의 생애 주기 전반에 걸친 통계의 범람, 사실에 토대하기보다 바람직한 행동을 지시하는 처방전으로 통계를 활용하는 언론, 정해진 길을 벗어날 경우 어떤 위험해 처하게 되는지 여성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소위 ‘전문가들’까지, “세련되면서도 진부하고, 얼핏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후진” 반격의 주장들을, 팔루디는 한편의 풍자화처럼 속도감 있게, 동시에 정밀하게 스케치한다.
조롱과 혐오의 대상,마침내 ‘짐’이 된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를 상대로 한 반격은 …… 그것이 사적인 색채를 띨 때, 한 여성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안에서 그녀의 관점을 바꿔 버릴 때, …… 결국 그녀 역시 자발적으로 이 반격에 동참하게 될 때 위력을 갖게 된다.”_본문 가운데
『백래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프롤로그를 포함한 1부는 팔루디가 이 책을 쓴 계기이기도 한 하버드-예일 대학의 결혼 연구로 포문을 열어 1980년대 반격의 풍경을 한 편에, 페미니즘과 함께한 반격의 유구한 역사를 다른 한 편에 배치한다. 2부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반격의 창시자와 유포자 들을 찾아 나선다. 대중문화를 점령하다시피 한 반격의 물결이 언론,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패션과 미용 산업을 잠식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는 2부에서는 소위 ‘트렌드 저널리즘’이 유포한 ‘남자 품귀 현상’, ‘말라붙은 자궁’, ‘고치 짓기’, 그리고 ‘엄마 트랙’ 같은 용어들이 어떻게 영화와 텔레비전의 여성 재현에 영향을 미치고 반격의 정서를 강화했는지 다룬다. 실제로 1970년대 스크린을 자유롭게 활보하던 독립적인 여성들은 1980년대에 이르면 지루한 노동에서 벗어나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외로운 싱글이거나 떽떽 거리는 마녀, 그도 아니면 잔인하게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하는 피해자로 그려진다. “여성은 여성과 각을 세우고” 여성의 정당한 분노는 “개인적 우울”로 축소되며, 여성의 삶은 “좋은 엄마는 이기고 독립적인 여성은 벌을 받는다는 도덕 이야기의 틀”에 갇혀 버린다. 극명한 예가 1987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위험한 정사]다. 팔루디는 “낯선 사람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말하고자 했던 초안에서 어떻게 1980년대의 전형적인 여성 혐오 영화가 탄생했는지를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영화사 사장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영화는 ‘집 안의 천사’가 ‘독립적인 여성’을 살해하며 끝을 맺는다. 10대 소녀와 결박당하거나 훼손된 여성 신체 이미지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광고업계의 관행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처럼 반격에 가담한 대중매체가 유포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성은 일과 결혼 둘 모두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일과 독립을 선택했을 때는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팔루디는 3부에서 이러한 반격의 메시지를 만들어 낸 진정한 요람, 반격의 이데올로그들을 찾아 나선다. 뉴라이트는 여성의 권리에 관한 전방위 공격에서 단연 선두 주자였다. 이들은 단순히 방어만 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비대중적인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 전략을 세웠다.
책속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 “그건 마치 큰 변화를 앞두고 위협을 느낄 때 반격의 선두 주자들이 변화의 공포를 이용하는 것 같다.”
……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나치’라 부르며 공격한 러시 림보가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토크쇼가 되었다. 미국라디오 -텔레비전업계여성협회American Women in Radio & Television가 1987년에는 여성을 긍정적으로 그린 광고에 상을 주지 못했다는 소식 같은 것도 있다. 수상 자격을 갖춘 광고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권리를 상대로 한 반격은 그것이 정치적인 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전혀 투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것이 사적인 색채를 띨 때, 한 여성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안에서 그녀의 관점을 바꿔 버릴 때, 그래서 그녀가 억압은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하게 될 때, 그리고 결국 그녀 역시 자발적으로 이 반격에 동참하게 될 때 반격은 가장 위력을 갖는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뜻은 ……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역량을 품고 있는” 여성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사실상 바뀌지 않았다. 한 세기 전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것 이전에 나는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진술이다.
페미니즘의 의제는 기초적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체성을 그 문화와 남성들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규정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임 유행병’의 원인을 찾던 미디어와 의료 기관 들은 그에 대한 해답은 부의 증가와 중간계급 여성 인구의 독립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직장 여성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페미니즘과 그로 인한 출세 지상주의가 중간계급 여성 사이에서 ‘불임의 자매애’를 양산했다고 몰아 세웠다.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 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 빗방울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 몇 방울도 폭우로 인식된다.
이 시대의 경제적 희생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절도범이 여성이라고 의심한다.
[반격의] 주장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었다. 동등한 교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는 것이다.
트렌드 저널리즘은 실제 보도가 아니라 반복의 힘을 통해 권위를 획득한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반복하면 그 어떤 것도 진실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의 미디어에서 선포한 트렌드는 나머지 미디어들이 재빨리 그 이야기를 퍼 나르면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새로운 종류의 프로그램에서는 젊은 여성 캐릭터를 상대로 한 공격의 잔인함이 사이코패스가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슬래셔 무비를 뺨칠 정도였다. 가령 〈레이디 블루Lady Blue〉에서는 수술용 메스로 무장한 10대 소년들이 여성 먹잇감의 장기를 적출하고, 〈우리 가족의 영광 Our Family Honor〉에서는 열일곱 살의 소녀가 코트 걸이에 베여 죽는다. 그리고 이 시즌에 공격을 당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은 입마개가 채워지거나 사건을 당해 실종된다.
1980년대 말 패션 광고에서는 구타당하고 묶여 있거나 시체 운반용 가방에 들어간 여성이 주 메뉴였다. 주요 백화점 창문에 서 있는 여성 마네킹들은 난데없이 가죽옷을 입은 남성에게 구타당한 피정복자로, 쓰레기통에 쑤셔 박힌 시체로 연출되고 있었다.
“내 작품은 페미니즘의 밋밋함에 대한 반동이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은 여성들을 구속하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포스트페미니즘 시대라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젠 여성이 다시 여성이 될 수 있어. 내 모든 소녀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거지.”
향수 광고 속의 여성들은 아기를 가진 어머니가 아니라 본인이 점점 아기가 되어 갔다. 향수 회사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여성성의 상징으로 사춘기 소녀들을 택했던 것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금발의 곱슬머리가 통통한 볼에 도발적으로 흘러내리는 어린 소녀 롤리타의 사진을 내세운 《보그》 광고에는 “향수는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설명이 딸려 있었다.
이런 언어 전략하에 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생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그건 내부의 문제였어요.” 그녀는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생각했죠. ‘어째서 이 모든 나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걸까?’ 그건 내가 그런 일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알코올중독자를 택한 거죠.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남자들을 택한 게 바로 우리란 말이에요.”
새로운 연공제 안에 대한 표결을 하기 위해 노조가 회의를 갖던 날, 아흔 명의 남성이 사무실 한쪽에, 열다섯 명의 여성이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남성이 한 명 한 명 일어서서 제안된 연공제 계획에 찬성 발언을 했다. “나한테는 부양할 가족이 있어요. 지금 빵 값이 얼만지 압니까?” 그다음엔 여성들이 일어서서 이 중 많은 수가 부양할 가족이 딸린 이혼 여성이라고 말했다. 전남편들은 양육비를 전혀 대지 않고 있었다. “이건 남자의 일이라고.” 한 남자는 이렇게 소리쳤다.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의 대변인들은 대중 앞에선 페미니스트들을 “영아 살해자”라고 불렀고, 이들 때문에 낙태율이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치솟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페미니스트들을 “창녀”, “레즈비언”이라고 불렀는데, 어쩌면 이런 욕설이 더 많은 것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에게는 살인보다 성적인 독립이 더 큰 범죄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아버지의 권위를 옹호하고자 하는 바람은 1980년대에 낙태를 중단해 달라며 제기된 많은 ‘아버지의 권리’ 소송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경우 원고는 보통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거나 최근에 이혼 신청을 한 아내와 다툼 중인 남편들이었다. --- 본문 중에서
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따라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반발을 뜻하는 말이다. 흑인 인권 운동, 페미니즘, 동성혼 법제화, 세금 정책, 총기 규제 등 사회‧정치적 움직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의견 개진에서부터 시위나 폭력과 같은 행동으로까지 자신의 반발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로 인해 기득권의 영향력 및 권력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백인 차별주의자들의 반발은 화이트 백래시(white backlash)라고 불렸으며, 2016년 치러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화이트 백래시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미국의 1980년대 신보수주의 흐름 아래 일어난 반(反)페미니즘 공격도 백래시의 일종으로 여겨진다.[네이버 지식백과]
누가 페미니즘을 공격하나
신보수주의의 반격 다룬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 한겨레 자료
1980~90년대에 걸쳐 한국의 페미니즘은 빠른 속도로 세를 확장했다. 대학에는 여학생이 증가했고 여성학과가 설치되었다. 문단에는 여성 비평가들이 등장했으며, 취직한 여성이 증가하기도 했다. 사회구조적 변화도 일었다.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특별법 등을 비롯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제하였으며, 여성부가 설치되어 여성 인권을 증진할 전담 행정기구를 만들었다. 모두가 더 나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반격이 시작됐다. 공론장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페미니즘의 시대는 가고 다양성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퍼졌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 ‘역차별’과 함께 여성혐오 시대가 도래했다. 여성의 대상화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재미있는 것’과 ‘남자다운 것’으로 유통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1991)는 이 선제공격에 관한 보고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격렬하게 진행된 미국의 제2의 물결은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진보를 이루었다. 하지만 레이건 정부와 함께 시작된 신보수주의는 약 20년간 미국 사회가 이룩한 진보에 대한 반격이었다. 저널리스트인 팔루디는 자신의 첫 번째 단행본을 통해 언론, 대중매체,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공격을 ‘백래시’(반격)라고 명명한다. 이후 이 용어는 사회학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백래시>는 출간된 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으며, 미국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에서 ‘세대를 초월한 논픽션 10권’에 선정되는 등 주목받았다.
사회 진출 여성 공격하던 미국 남성들
팔루디는 안티(Anti·반) 페미니즘의 반격을 살펴보기 위해 신화, 역사, 미디어, 정치, 심리 등 사회·문화 전반을 검토했다. 공론장은 사회에 진출했던 여성들이 오히려 불행해졌다면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생명은 소중하고 가족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말로, 여성의 삶을 출산과 양육, 가사로 한정지었다.
가장 첨예한 대결은 임신중단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여성들의 임신중단을 반대한 것은 백인 저소득층 젊은 남성들이었다. “이런 남성들은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을 위해 울음’을 터뜨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위치 변화를 겪으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변화를 독립적인 직장 여성들이 등장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팔루디는 경제구조의 전환으로 인해 크게 타격을 받은 생산직 노동자들과 아버지가 누렸던 상대적인 부를 거부당한 젊은 세대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에 열광했다고 지적한다. 젊은 남성들은 임신중단이 가능해짐으로써 여성들이 성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남성들은 여성들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9·11 이후에는 미국이 여성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테러에 공격당한 것이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는 남성성을 가족을 부양하고 국가를 지키는 것으로 설명하는 ‘전통’과 연결된다.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는 거의 사라졌고 ‘남성성’은 쇠락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규범은 강화되고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신화가 생산된다.
페미니즘 공론장 없는 한국
미디어가 유통하고 SNS가 확산시키는 안티 페미니즘의 신화는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대중화와 더불어 여성들의 문제의식이 벼려지고, ‘#○○_내_성폭력’과 미투 운동 등 성차별 문제를 사회의 근본 의제로 가져갔다. ‘성상납’ ‘남톡방’,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등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의 근간에 젠더가 있다는 고발이 활발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성평등이나 페미니즘 이슈를 제대로 논의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섣불리 페미니즘을 언급했다간 악플에 시달린다. 2010년대 최대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은 안티 페미니즘의 공격을 받았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는 것보다 더 빨리 안티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팔루디는 페미니즘이 손쉬운 타격 대상이라는 점을 꼽는다. ‘자연의 질서’와 ‘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이 모든 남성은 미국 여성운동이 기회만 주어지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하게도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건 바로 여성들이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곧바로 낙태 금지 여부를 각 주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발표한다. 자신의 지지층인 보수층에 주는 선물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계속된 백래시의 영향이기도 하다. 제2의 물결을 다룬 다큐멘터리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메리 도어 감독, 2014)에서 1970년대와 2010년대를 이어주는 것은 텍사스의 임신중단 금지 재판이다. 재판을 지켜보던 여성들은 과거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낸 결과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상황을 목도한다. 치열하게 싸웠고, 조금이나마 승리했던 기억 뒤로 거대한 백래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반복되는 반격, 오래된 미래는 바꿔나가야
이러한 상황에도 팔루디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여성들이 무대 위에 등장할 시간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평등을 향한 미래의 진군을 가로막는 새로운 장애물이 무엇이든, 새롭게 창조된 신화가, 새롭게 부과되는 징벌이 무엇이든, 어떤 기회가 사라지고 삶의 질이 어떤 식으로 하락하든 간에 그 누구도 미국 여성들로부터 대의의 정당함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뉴라이트의 보조 집단으로 등장한 우아한 여성들이 알려진 것보다 페미니즘 이슈에 친화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처음으로 연설문을 쓰고, 공청회에 나가서 발언했으며, 정치조직으로 활동했다. 가정에 있을 ‘여성만의 권리’를 주장하던 여성들은 이 권리를 말하기 위해 집 밖에 나섰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팔루디의 다짐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진보와 그에 대한 백래시는 반복되고 있다. 이 오래된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그뿐이다. 허윤 문학연구자·부경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 한겨레 20.1.21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진화하는 페미니즘 저자 권김현영|휴머니스트 |2019.10
권김현영-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다시 본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만, 그 눈은 그에게 고유한 자신으로 삶을 사는 굳건함, 아무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는 단단함,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을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하지만 분명한 점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삶을 계속하자고 다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다.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폭력에 맞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진화하는 영혼, 진화하는 페미니즘
1장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눈을 마주치고 난 후│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달리기 시합│부모 성을 함께 쓰는 이유│아빠가 나서야 해│그것은 선의가 아니다│여자답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모두의 생명에 대한 예의│모르는 게 없는 남자들│브리트니 스피어스, 그 여자에게 내려진 이중명령│누가 박경원을 추락시켰나│여자들의 우정을 그리는 방식
2장 우리는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하다니│알고자 하는 용기│토론이란 무엇인가│우리는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가족의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일│존엄한 취향│캡틴, 나의 캡틴│빚도 짐도 아닌│혁명과 부역│왜 여성 인권인가│“18세를 깔보지 마라”│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3장 피해와 가해의 디스토피아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역차별은 없다│모두 얼마 받고 있습니까│남한 영화의 북한 여성│가족 같은 분위기│피해와 가해의 디스토피아│무지의 특권에서 혁명적 정직성으로│짙은 안마│여자의 뇌, 남자의 뇌│개똥녀 괴롭히면서 즐거우셨나요│경찰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 날│정확히 호명하고 제대로 질문하기
4장 너무 쉬운 공감을 의심한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타인의 죽음이 내 삶에 들어올 때│타인의 고통에 내가 더 상처받을 때│타인의 고통을 듣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너무 쉬운 공감을 의심한다│몰랐을 리 없다│피해라는 날개와 발톱│“내 삶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양진호의 폭행 피해자는 알고 있었다│안희정과 재판부가 유죄다│성인지감수성과 두 개의 점│그녀는 당신의 남편에게 반하지 않았다│양현석과 YG 패밀리의 유산│장자연 사건 이후 잃어버린 10년
5장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동성애자는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말하기’의 의미투쟁│메갈리아와 미러링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페미니즘 실천은 웃어주지 않는 것에서부터│백래시 시대를 사는 법│어떤 과잉과 강박들―인터넷, 포르노, 남성섹슈얼리티│화학적 거세? 아무것도 거세하지 못한다│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주
글 출처
출판사 서평
1. “없어진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별이 있다는 목소리였다”
- 앎으로 싸우는 페니미스트, 권김현영의 목소리를 듣다
페미니즘이 다시 ‘부흥기’를 맞이한 2015년 이후, 수많은 여성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점가에서는 페미니즘 도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크고 작은 페미니즘 강연이 끊이지 않으며, 여성의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이 아무 배경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한 것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때로는 은밀하고 때로는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에 관해 꾸준히 발언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자와 함께 싸운 이들이 있었다. 페미니즘의 부흥은 바로 이렇게 과거에도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 중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이름이 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여성 문제를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통렬하게 비판해온 우리 사회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은 반드시 사상과 실천이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페미니즘을 연구하며 강의하고, 동료 페미니스트와 함께 기획해 책을 내고, 성폭력 피해자의 곁에서 가해자에 맞서 싸웠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논의된 1990년대~2000년대 초,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다’며 페미니즘이 진부한 이야기로 치부된 2010년 전후, 그리고 여성 대중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통해 고사 직전의 페미니즘을 되살려낸 현재까지 그는 언제나 여성 문제가 일어나는 ‘지금-여기’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 중 ‘진화하는 페미니즘’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엮은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얻은 귀한 성과다.
2. “까다롭고 예민한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질문하는 것”
- 페미니즘의 눈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
페미니스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렸을 때 달리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가슴이 흔들린다고 남자아이들이 놀릴까 봐 달리기를 즐길 수 없게 됐다.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사 남자 부사장과 화학과 남자 교수가 출현해 평소에는 본 적도 없는 생리대 구조와 착용 방법을 논의했다. 남성들이 모인 단톡방에는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공유된다. 이런 일들에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면 사람들은 단지 그가 너무 예민하고, 까다롭고, 피해의식이 강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이것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성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단순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응시하는 폭력적 시선, 여성의 경험을 무시하고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전문가’ 남성의 태도, 불법 행위마저 본능이라며 용인하는 남성문화의 문제라는 낯선 관점을 제공해주었다. 더불어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문화가 왜 문제인지, 그 속에서 여성이 어떤 차별과 폭력을 겪는지, 이를 어떻게 비판하고 바꿀지 말할 수 있는 목소리도 함께 주었다. 일상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의심하고, 그 이면에 숨은 사회적·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관해 글을 쓰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생각하기, 말하기, 쓰기의 일상적 전환이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흔들린다고 놀린다던 그 아이의 말이 생각났고 그전까지는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내 가슴이 세차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웃고 있는 아이들이 모두 가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가슴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손으로 티셔츠를 잡아 늘리는 사이 상대는 이미 결승점을 지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또래보다 큰 편인 가슴을 동여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달리기 자체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여자의 몸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할 때 겪는 어려움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당시 나를 멈추게 한 건 흔들리는 가슴이 아니라 가슴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이었다. 여성의 몸은 ‘아직도’ 전쟁터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성들이 점점 포기나 극복보다는 저항과 연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 「달리기 시합」 중에서(27~28쪽)
이 부분이 정말 가관이었는데, 방송사 남자 부사장과 화학과 남자 교수가 나와 생리대 유해성 관련 대담을 했다. 이분들이 한 이야기는 여성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화학과 교수는 조사를 위해 처음으로 일회용 생리대를 뜯어보았다며 생리대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것을 착용하는 방법을 질병관리본부가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는 ‘전문가 소견’을 발표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1년에 100번쯤 써보면 접착면이 어디인지, 날개는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생리대를 얼마 만에 교체해줘야 하는지 다 안다. (중략) 보건당국 관료들과 남자 전문가들은 왜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마이크를 잡은 걸까. 그저 마이크를 잡는 게 너무 익숙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착각한 나머지 생리대 착용 방법도 가르치려 드는 사태에 이른 것이 아닐까. 다시 강조컨대, 당신들이 이제야 알아낸 건 생리대를 사용해온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 「모르는 게 없는 남자들」 중에서(45~46쪽)
나도 그처럼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단지 알고자 하는 목적 하나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선택지 바깥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세상을 새롭게 발명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사람에 가장 가까운 이름은 바로 페미니스트였다.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8쪽)
3. “페미니즘은 변화한 여성의 궤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 2000년 이후 한국의 주요 젠더 이슈를 돌아보다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난 20년 한국 사회에서 논의된 주요한 여성 문제들은 무엇일까? 그사이 한국 여성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된장녀·개똥녀 논란, 장자연 씨 사건, 메갈리아 논쟁, 강남역 살인사건, 『82년생 김지영』 논란, 미투운동, 클럽 버닝썬 사태 등 이 책이 다루는 다양한 젠더 이슈는 2000년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동안 여성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다소 개선되었고, 페미니즘은 다시 여성의 삶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다. 동시에 어떤 논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됐고,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감각이 퇴보하기도 했으며, 페미니즘은 집단적 공격을 받는 백래시 시대를 맞았다. 과연 한국 페미니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때는 낯설었고 그다음에는 진부하다고 취급받던 권김현영의 목소리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항상 ‘지금-여기’의 여성을 치열하게 사유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페미니즘의 미래 또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늘 쓸모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여성을 둘러싼 현실은 지겨울 정도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으므로 페미니즘의 유용성을 인정받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피해 증거를 수집해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여성은 진화하지 않는 존재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여성의 삶은 어떤 사회혁명보다도 놀라운 수준으로 변화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변화한 여성의 궤적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지, 몇몇 예외적인 여성의 영웅담만을 기억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생각의 여정이 담겨 있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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