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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세습 중산층 사회 外

by 이성근 2020. 1. 16.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발행312|2020.01

저자 : 조귀동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1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한 글을 써왔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기업 활동이 노동시장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적자본 투자의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2020 한국의 논점(공저)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세습 중산층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90의 사회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2010년 이후 노동시장의 변화글의 구성

 

1장 문제는 노동시장

한 번 외부자는 영원한 외부자첫 일자리로 신분이 결정된다첫 번째 관문은 명문대 진학10퍼센트만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어느 때보다 극심한 경쟁을 경험하는 세대

 

2장 좁아진 중산층 진입의 문

달라진 취업시장줄어든 대기업 일자리내부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여성의 약진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진다

 

3장 가려진 20: 지방과 고졸

공부 잘하면 치인트, 못하면 복학왕지방대생과 고졸자라는 주변부지방의 현실, 질 좋은 일자리가 없다취업시장의 시골이 된 지방탈산업화 쓰나미는 시작됐다고졸은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미래가 없는 고졸 취업자근로빈곤 상태에 놓인 청년들

 

4장 세습 중산층의 등장

20대의 불평등은 30대와 어떻게 다른가다시 작동하는 명문고시스템중산층 자녀의 인생을 설계합니다중학교 때부터 드러나는 격차노오오오오력도 계층 따라 간다56년생 최순실의 자녀 vs. 65년생 조국의 자녀

 

5정상가족이라는 특권

결혼과 부동산에 나타난 계층 격차남성 5명 중 한 명은 노총각으로 40대를 맞이한다미혼을 강제당하는 하층 남성여성, ‘완벽한 결혼’ vs. ‘비혼도 괜찮아부동산=세대+계층세습 신분이 된 서울 거주-2주택 보유 중산층

 

6장 세습 중산층이 기원

60년대생은 무엇이 다른가60년대생 이야기대기업의 성장과 테크노크라트형 인력의 등장승리의 역사가 함께하는 60년대생의 근로 생애성장의 또 다른 과실: 금융, IT와 대공장 생산직학력-직업-경제적 지위의 결합

 

7장 계급의식의 형성

나는 주인공 될 수 없는 영화 같았다G세대와 N포 세대의 공존20대 남녀의 정치적 양극화? 그건 세습 중산층내부 이야기불공정·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계급 문제

8‘20대 남성 보수화라는 신화

‘20대 남성담론의 허실2016 ~ 201720보수 이탈분석지지 정당 없음의 등장젠더 갈등과 SNS 배후의 계급60대 건물주의 정당 vs. 50대 부장님의 정당

 

에필로그세습 중산층의 진화

세계 무대에서 펼쳐지는 명문대 졸업장 경쟁고도성장의 끝, 세습 자본주의의 시작저성장기에 더 치열해지는 교육 군비 경쟁 불가능한 프로젝트, 세대 간 양보문제는 ‘60년대생이 아니라 세습 중산층이다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오늘날 20대는 단일한 세대가 아니라,10퍼센트의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90퍼센트로 이루어진 초격차 세대다

 

2019, 어김없이 뜨거웠다. ‘알쏭달쏭한 90년대생(20)’에 관한 사회 차원의 관심과 탐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90년대생 마케팅에 대한 반발과 세대론 논쟁 등으로 화두가 옮겨가기도 했으나, ‘90년대생을 주어로 한 흐름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어엿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를 반증하듯,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90년대생은 또다시 소환되었다. 해당 사안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키워드 못지않게 집중 포격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불평등이슈였고, 그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은 세대가 그들이었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진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여기, 이 절실한 부름에 응답하며 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한층 심도 있게 20대의 불평등 문제를 꿰뚫는 책이 출간되었다. 기존의 분석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그들 특유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조명했다면, 이 책은 취업시장을 중심으로 불평등의 본질에 성큼 다가선다. 또한 세대로 묶어서 설명하던 그간의 크고 일괄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세습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10’‘90’으로 나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촘촘히 뜯어본다. 이러한 시도는 지금껏 이어져온 세대 담론과는 다른 관점과 접근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문제와 대안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모색할 기회를 선사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해 활발히 연구해온 저자가 치밀한 수집과 탄탄한 분석을 무기로 그려낸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80년대 학번-60년대생부모와 90년대생 자녀,세습 중산층을 파헤치다!

세습 중산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녀의 입시 및 장학금 의혹과 관련해, 가장 크게 분노를 표출한 집단은 이른바 명문대에 재학 중인 중산층 가정의 20대였다.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고,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명문대 바깥에 자리한 20대 대다수는 시종일관 침묵하며 남의 일이라는 무기력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조국 대전에서 중산층의 분노와 다수의 냉소로 20대가 양분된 현상은, 그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적·질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요컨대 오늘날 20대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생활세계에 놓였으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불평등 구조의 위계 서열에서 자리하는 위치는, 그들의 부모가 어떤 계층 또는 계급에 속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으로, 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인 ‘60년대생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60년대생은 특별한 세대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 소득, 직업, 자산, 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586세대는 대학(특히 명문대)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자산가격 급등에 힘입어 탄탄하고도 찬란한 세습 중산층의 1세대를 이루었다. 책은 이들 ‘80년대 학번-60년대생학번 없는 60년대생의 차이가 이전과 다르다고 서술한다. 직전의 학번 없는 50년대생이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여력이 있었다면 학번 없는 60년대생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일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번듯한 일자리의 대부분을 대졸자가 고스란히 차지한 까닭이다. ‘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이렇듯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IMF2000년대를 거치며 나머지 학번 없는 60년대생과 다중적인 격차를 점점 더 벌려 나갔다. 그리고 이들이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과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 90년대생 자녀 세대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면서 세습 중산층의 2세대가 만들어진다.

 

책은 세습 중산층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20대 문제의 핵심은 계층 또는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을 짚으며 그들 내부의 격차를 조심스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파헤친다. 최근 20대 문제를 살피면 이면에 젠더 갈등‘20대 남성 보수화를 중심으로 한 이슈가 많다. 책이 제시하는 숫자와 저자의 논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동시장 진입 기회, 불평등 강화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별이나 계층에 따라 정치·사회의식이 상이하다는 점을 토대로, 오늘날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초격차 세대라는 사실을 목도한다. 불평등 확대와 격차 고정 상황에서 겪는 경험의 이질성이 정치·사회의식에 영향을 미쳐 계급의식이라 부를 만한 세계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이러한 분석은 20대 문제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주요 이슈가 불거지게 된 동력을 알아보는 데는 충분하고도 분명한 근거가 된다.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에 공고하게 자리 잡은 ‘1090의 사회의 민낯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데 톡톡히 기여한다.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 10퍼센트만이 차지하는 번듯한 일자리

세습 중산층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고자, 저자는 20대의 취업(노동시장 진입) 과정과 취업 직후 생애주기에서 그들이 겪는 경험에 착안한다. 노동시장 진입은 직업적·계층적 지위를 결정하는 과정이면서, 이전에 이루어진 인적자본 투자의 결과물이다. 책은 노동시장을 크게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높은 고용 안정성)’‘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의 저임금-낮은 고용 안정성)’으로 나누고,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의 비중이 2010년 이후 10퍼센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차 노동시장, 요컨대 번듯한 일자리를 초임 월 300만 원 이상이라고 가정할 때 2017년을 기준으로 동갑내기들 중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72,000명만이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갔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세습 중산층의 1세대는 경제력만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번듯한 일자리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해서 세습 중산층의 2세대에게 물려주었고, 이렇게 굳어지는 격차 고정은 이후 결혼과 자산 축적 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는 것이 책이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은 각각 내부자(Insider)’외부자(Outsider)’로 치환했을 때,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한층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느 조직이건 한 번 아싸가 되면 인싸가 되기 어렵듯이, 노동시장에서도 한 번 외부자가 되면 내부자로 승급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2004~2006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근로자 가운데 3.5퍼센트가 1년 뒤 대기업으로 이직했는데, 2013~2015년이 되면 2.2퍼센트로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출신 학교는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 내부자와 외부자를 가르는 중요한 기로인 까닭이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극심한 차이는 중세 유럽 도시의 성 안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는 신분을 가리키는 용어가 나왔던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노동시장과 관련한 논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10년 이후 나타난 변화다. IT 기술의 도입과 확산에 따라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범용 사무직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문과를 중심으로 서울 4년제 대졸자의 취업 여건이 크게 악화했고, 그중에서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는 성별 비율에서 남성이 가파르게 감소했다.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고, 노동시장에서 성별에 따른 남성 우위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특히 중산층 배경을 가진 남성이 극도로 경쟁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상태는 이들 집단에서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젠더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기초를 이룬다. 책은 오늘날 20대가 이렇듯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이전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쟁 과정에서 성별, 계층별, 학력별, 거주 지역별로 누가 더 기회를 잃고 누가 선방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갈린다. 불평등한 20대의 현실에 숨어 있던 진짜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적은 것이 아니라 번듯한 일자리 창출이 적은 것이었다. 책이 제시하는 데이터를 따라가면, 상대적으로 2차 노동시장의 일자리 수나 여건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결혼과 부동산이 보여주는 정상가족이라는 특권

저자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는 게 2019년의 20대가 1999년 또는 2009년의 20대와 다른 점이라고 밝힌다.

 

책속으로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의 격차에 가깝다.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지적은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60년대생이 대학(특히 명문대)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자산 가격 급등에 힘입어 세습 중산층의 1세대를 이루었다면, 90년대생은 그들의 교육 투자로 만들어진 세습 중산층의 2세대다.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이 학력(정확히는 학벌)과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다.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는 게 2019년의 20대가 1999년 또는 2009년의 20대와 다른 점이다. 이렇게 심화된 격차 고정은 결혼, 주택 등 생애주기에서의 기회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혼과 주택 문제는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격차 심화의 결과이면서 그와 동시에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p.12

 

20대 가운데 노동시장의 내부자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번듯한또는 괜찮은decent’ 일자리를 초임 기준 월 300만 원 이상을 주는 일자리라고 한다면, 2017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 72,000명만이 내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일 연령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의 11.4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취업자(자영업자 포함) 가운데 1차 노동시장의 종사자라고 추정되는 비율인 16.5퍼센트보다 턱없이 낮은 수치다. 지금의 20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중산층이 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p.33

 

결국 2010년 이후 나타나는 대졸자 취업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번듯한 일자리또는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서울 4년제 대졸자의 취업시장 여건이 크게 악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의 수가 줄어들면서 그만큼 취업을 전후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내부자가 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첫 일자리에서 외부자로 밀릴 경우 내부자로 승급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공계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자의 경우 취업 사정 악화 정도가 덜해 보인다. 결국 문송합니다의 영향이 가장 크다. 앞에서 언급한 2010년 이후 대졸 취업자 수가 연 5만 개 이상 감소한 현상이 주로 인사·재무·마케팅·영업 등의 직군에서 나타났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반면 2차 노동시장 일자리의 경우 일자리의 은 별개로 치더라도 임금 등 이 나빠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p.64

 

지방대 출신과 고졸 이하는 오늘날 청년 담론에서 거론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거론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복학왕에 대한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공부를 못해서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갖는 열등한 지위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건 품성이 나쁘고 노력이 부족한 결과다. 이러한 사고에 대항하는 담론은 간판만 보고 뽑는 세태 때문에 능력 있는 지방대생들이 차별받고 있다정도가 전부다. 지방대 내부의 사람들은 지방대생이 20대 청년들의 치열한 공부 경쟁에서 이탈하는 이유를 두고, 그들이 예정된 패배를 맞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그들에 대해 공무원 시험도 도전은 해보지만 집중력 있게 돌파하기는 어렵다. 토익을 치르라고 권해도 해봐야 안 된다는 생각에 고득점을 올릴 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지인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구할 수 있는 열악한 일자리를 찾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들의행동은 원인이면서 동시에 패배의 경험에서 체득한 습속의 결과인 셈이다.--- p.93

 

교과 외 활동은 이른바 스펙을 만들기 위해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들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 입시에서 사회 계층에 따른 기회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있던 항목이다. 결국 성실성, 성취동기, 자존감 등 품성이라고 이야기되는 비인지적 능력 격차가 부모의 계층에 따라 발생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 투자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 p.144

 

20대의 계층 간 격차를 논하는 책에서 30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20대가 경험하는 격차는 단순히 대학 졸업장, 일자리 종류,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형성과 자산 축적이라는, ‘취업 이후의 삶을 판가름하는 사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30대 중후반이 직면하는 저 격차는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었을 때는 더욱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20~30대 초반의 양대 과제는 취업과 가족의 형성이다. 또 취업 이후에는 노년에 대비해 자산을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택을 마련하는 건 자산 축적뿐만 아니라 이후의 경제적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제 과거와 같은 중산층 핵가족모델에 맞춰서 취업, 결혼, 출산, 자산 축적 등의 생애주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번듯한 일자리부모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p.152

 

60년대생이 40~50년대생과 차이가 나는 건 거칠게 말해 노동시장에서의 경험이 달랐기 때문이다.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60년대생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먼저 1982년의 대학 졸업정원제 도입을 기점으로 대졸자가 급증하였다. 두 번째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중반 3저 호황 탓에 수출 대기업에서 이들 대졸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IMF 외환위기에서 생존한 수출 대기업이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면서 이들 몫의 소득이 늘어났다. 세 번째는 2000년대 산업 고도화 국면에서 IT·금융 등 새롭게 성장한 산업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할 기회를 대졸 학력에 대기업에서 10년 정도 일해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던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늘어난 소득은 그대로 자산 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서울 요지에 주택 1~2채를 가진 중산층과 나머지 계층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p.180

 

20대의 정치·사회·경제에 대한 의식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성별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성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은 보수적이고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게 아니다. 사회 계층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정치·사회·경제의식이 변화하는 양상이 다르다는 의미다. 20대의 세상을 보는 눈에는 30대보다 더 출신 계층에 따른 인식 격차가 존재한다. 30대에게도 출신 계층에 따른 인식 격차는 있었다. 하지만 20대에서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차이가 나는 양태도 달라졌다. 이러한 성별과 계층에 따른 의식 분화 양상을 20대가 과거보다 진보적이지 않다든가, 또는 보수화되었다는 서술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 p.226

 

‘20대 남성 보수화론의 보다 근본적인 결함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서술했던 것처럼,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뭉뚱그릴 수 없으며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계층 간 격차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 있다. ‘세습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존재하며 두 집단 내부에서도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세부 격차가 크다. 따라서 그것을 마치 공기처럼마시고 살아 가는 20대의 정치의식은 균질할 수 없는 것이다. --- p.244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 p.291

 

 

90년대생이 겪는 불평등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난해 9월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 및 주민들이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세대 담론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이들은 1990년대 태어난 20대다. 2019년 한 해를 집어 삼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오늘날 20대는 단일한 세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계층과 성별, 지역, 학력 등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하나의 세대 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단 같은 20대라 해도 10퍼센트의 중산층과 나머지 90퍼센트로 이뤄진 초격차 세대라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의 관점에서 조국 이슈에 가장 크게 분노했던 집단은 명문대에 재학 중인 중산층 가정의 20대였다. 반면 서울 명문대라는 소수 집단에 속하지 못한 20대 대다수는 침묵과 냉소로 일관했다. 이처럼 20대가 두 갈래로 나뉜 데에는 이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적질적 특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20대가 다층적으로 겪는 불평등의 근원은 대체로 부모의 계급계층 차이에서 출발한다. 흔히 ‘86세대라 불리는 80년대 학번 대졸자인 60년대생 부모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소득직업자산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세대이자 대학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대기업의 성장과 자산 증가,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의 수혜를 받았다. 86세대 중산층은 90년대생 자녀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면서 세습 중산층 2세대를 구축했다.

 

불평등의 시작은 교육이지만 결국 가장 큰 격차는 월급 300만원 이상의 번듯한 일자리유무에 따라 나뉜다. 대기업과 공무원, 공기업 등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중산층 가정의 20대 남성은 극도로 경쟁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저자는 각종 수치와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20대가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불평등의 실태를 조명하고, 부모의 지위가 어떻게 자녀의 학력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결고리를 밝혀낸다.

 

저자는 세대 간 불공정불평등을 논할 때 계층 세습을 빠뜨려선 안 되며, 절차의 불공정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 능력 배양에서의 불평등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해법은 시작부터 교육과 능력 배양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도록 제도를 바꾸는 한편 상위 10%가 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등 의무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세대론은 거짓, 중산층 세습이 진짜 문제다

지난해 한국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문제로 크게 들끓었다. '조국 사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 전 장관 부부에 특히 분노한 계층은 20대였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서울대, 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이 특히 분노를 드러냈다. 조부모와 부모가 일궈낸 재력,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의대에 입학한 동세대에게 명문대 학생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는 공정하지 않은 짓이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조국 사태가 낳은 또 하나의 풍경은, 극소수 명문 대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20대는 처음부터 이 문제에 철저히 냉소적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25일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이 발표한 <조국 이슈로 본 한국인의 공정성 인식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조국을 날린 건 20"가 아니다. 20대 대부분은 조국 전 장관을 강하게 거부하기보다는, 애초 한국 사회 엘리트에 무관심하거나, 냉소를 유지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여전히 이어지는 서초동 촛불집회에서도,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서도 20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1990년대생인 20대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 한편에서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 글로벌 세대(G세대)로 찬사 받는다. 영어에 능통하고 고착화한 민족주의 정서에서 자유로운 대신 글로벌 에티켓을 습득한,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다른 네트워크 세대라는 평가의 이면에는 결혼과 연애마저 포기한 'N포 세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펴냄)20대 내부의 불평등 문제에 집중한다. 극소수의 20대가 조국 사태에 분노한 반면, 절대 다수의 20대는 무기력증에 빠진 근본 원인으로 저자는 20대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점을 꼽았다.

 

책은 20대 문제의 핵심 이슈로 계급 재생산을 꼽는다. '대졸자 부모-번듯한 직장-서울 강남권 거주' 정도가 되어야만 이제 명찰을 달 수 있는 '중산층' 계급이 현 20대에게 세습되면서, 오늘날 20대는 초격차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20대는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도저히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초격차를 겪는 중이며, 이 같은 양상이 한국의 뉴노멀이 되어버렸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를 쉽게 지켜볼 수 있는 지점이 20대의 취업 과정이다. 노동시장, 취업시장은 한 개인의 사회적·직업적 지위를 결정하는 지점이다. 또한 개인이 그간 쌓아온 인적자본 투자의 결과가 매겨지는 지점이다. 책은 노동시장을 크게 대기업 정규직-고임금-고용 안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저임금-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2차 노동시장'으로 나눈다. 어느 곳에 귀속되느냐에 따라 사실상 한 사람의 생애가 결정된다. 한 번 2차 시장으로 내몰린 이가, 즉 외부자가 되어버린 이가 성공 진입로에 들어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통계가 입증한다.

 

책이 권혜자, 이혜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의 공동 보고서를 인용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재벌인 대기업 집단 계열사 정규직 취업자가 받는 월급은 305만 원인데 반해, 300인 이하 사업장인 중소기업 취업자가 받는 월급은 191만 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는 더 크게 나타난다. 재벌 계열사라도 비정규직으로 입사할 경우 받는 월급은 179만 원으로 떨어지고, '아무도 모르는'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이의 임금은 138만 원까지 하락한다(2015년 기준).

 

이 선은 출발점일 뿐이다. 대기업 정규직 취업자나 전문직 종사자, 고급 공무원 취업자의 임금은 오른다. 직장은 안정적이다. 업무 숙련도가 올라간다. 2차 시장에 내몰린 외부자는? 정확히 그 반대다. 삶의 질이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

 

책에 따르면 1차 시장에 진입하는 인원은 2017년 기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취업 과정에서 이미 절망을 맛본다. 살인적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을 총동원해야 한다. 세습 중산층 가정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 자본력을 총동원해 자식에게 투자한다. 이 결과물이 '능력'으로 포장된다. 결국 번듯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자는 세습 중산층 자녀다. 이 격차는 대물림하며 더 벌어진다. 그 단면을 보여준 게 조국 사태다. , 누가 더 많은 것을 세습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곧 20대 문제의 핵심이 되어버렸다.

 

20대 내부의 세습 중산층과 외부자간 격차 인식을 바탕으로 책은 다양한 층위의 현상을 풍부한 통계를 이용해 재정리한다. '20대 남성 보수화' 인식이 거짓이라는 지적과 20대 내부의 젠더 갈등은 세습 중산층 내부에서나 일어난다는 비판은 특히 읽을 만하다. 예를 들어, 20대 남성 상당수는 민주당은 물론 자유한국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특히 부부와 자녀가 공존하는 정상가족이 세습 중산층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렸다는 지적은 서늘하다.

 

세습 중산층 체제가 고착화한 근본 원인으로 책은 현 20대의 부모 세대인 586세대의 격차에 주목한다. 586세대는 대학 정원 확대, 경제 호황과 수출 대기업 고도 성장, IT 혁명기를 누리며 세습 중산층 1세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학번 없는 60년대생'은 이 같은 성공을 전혀 맛보지 못했다. 50년대생의 경우 학번이 없어도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맛봤으나, 소수의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 학번 없는 60년대생은 번듯한 일자리를 대졸자에게 빼앗겼다. 그 격차가 지금에 이르러 세습 중산층 내외부를 가르는 원인이 됐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이 숱한 잡음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저자는 고도성장이 끝난 지금 자녀 교육에 가진 모든 자본을 총동원해 중산층 계급을 세습하려는 한국 사회의 경향이 더 강화하는 현실을 짚어본 후,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586 양보론'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586을 악마화해 처낸들 이미 고착화한 세습 중산층이 사라지지 기 때문이다. 사회가 20대를 아무리 배려한들, 그렇게 생긴 번듯한 일자리는 세습 중산층 20대가 독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세습 중산층의 형성으로 20대가 내부자와 외부자로 갈라졌고, 그 경계가 명확하다는 점이지 세대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제시한 해답은 하나다. 기회의 평등 확보다. 단순히 입시제도 공정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아울러 사회가 보장할 최소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이를 위한 세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전한다. 경쟁에서 패한 이에게도 패자부활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실 이 같은 주장은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진보 진영에서는 꾸준히 거론돼 왔다. 주류 정치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에서 집중해야 할 건 이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선명화한 20대 내부의 문제와 '상위 10퍼센트'가 된 중산층 특권이 오늘날 20대에게서 두드러지는 사회 현상의 핵심 배경이라는 점을 명확화했다는 지점이다. 풍부한 통계와 기존 인식을 정교하게 벗겨나가는 과정에 주목할 만하다. 한국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 필요가 있다. / 이대희 기자 pressian


이제는 이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20대는 모두 분노한다... 누가 이남자인가

 

이남자’, 그러니까 ‘20대 남성 보수화론은 어쩌면 ‘88만 원 세대이후 20대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전염성 강한언어다. ‘일베에 모여들고, 여성을 비하하며, 정치적으로 진보진영을 역겨워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면 이남자는 분명 문제적 현상이다.

 

마땅히 진보적이어야 할 20대가 왜 60대처럼 보수적인가?” 혹은 조국 국면에서 왜 명문대생들은 검찰 개혁이란 거악 대신 입시 부정이라는 작은 흠결만 보는가라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이남자의 인식은 왜곡돼있다.

 

어떤 이는 반공 학교 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보수 정권의 의식화 때문이란 의미다. ‘아버지의 재산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여성정책 기조가 거세진 데 따른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불만이란 분석도 있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이 이남자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이 책 '서평'으로 '이남자' 문제를 조명해본다

 

이남자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 고도화에 따라 달라진 사회경제 구조가 있을 뿐

저자는 우선 ‘20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긴 했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 은 정치적 선동이나 임기제 정권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자체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 경제적 하부구조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90년대생의 인식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남자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남자는 없다. 20대라는 연령은 너무나 이질적인 소집단으로 분절되어 있다. 예컨대, 20대라는 코끼리가 있다면 이남자는 이 코끼리의 고작 다리 한쪽을 만진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탄생한 언어다. ‘성급한 결론에 불과하단 것이다.

 

90:10의 세습 중산층 사회가 만들어졌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사회 경제 환경의 변화다. 크게 보면 노동시장의 변화산업 고도화’, ‘여성의 사회경제 지위의 부상’, 그리고 ‘86세대가 형성한 사회경제 자본의 자녀세대 이전등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보면 고도화된 자본주의에서 세습노동시장변화라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게 한국이라는 사회적 조건에서 보면 여성 지위의 향상‘86세대의 성공과 중첩되며 일어났다. 그래서 부가 세습되고, 부모가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자녀세대도 좋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본다면,

 

고용시장 변화 : 20대 장기 미취업 남성의 증가라는 현상

질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 탈산업화 시대 성장의 한계와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있다. 경남지역은 조선과 자동차 등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도소매숙박업종 종사자만 늘었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인해 경영회계사무, 금융보험, 연구 관련 직종이 줄고, 음식서비스와 고령자 대상 보건의료 서비스 일자리가 늘었다. 숙련도를 기준으로 보면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고, 고숙련 일자리가 소폭, 저숙련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결론적으로 4년제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줄었다.

 

실업 통계를 보자. 통계청이 집계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상의 장기 미취업 청년(29세 이하, 6개월 이상)’201375만 명 수준에서 201780만 명, 201883만 명, 201988만 명으로 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실업자로 볼 수 있는데, 성별격차가 극명하다.

 

201375만 명일 때는 남자 26, 여자 49만이었지만, 같은 통계는 2019년 남자 40, 여자 48만으로 변한다. 여성의 장기 실업은 소폭 줄었는데, 남성의 장기실업은 14만 명 늘었다. 20대 실업 문제는 보다 세밀한 풍경에서 20대 남성 실업의 문제다.

 

왜 남성 만의 문제가 되었을까? 가장 단순하게는 여성 대졸자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대학 졸업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늘고 있다. 또 탈산업화 사회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높은 업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의 변화는 이렇게 정리된다.

 

교육을 통한 세습 : 부모세대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직업이 된다

서울대 입학 고등학교와 인원수의 집중도를 예로 든다. 점점 특정 학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특정 지역과 특수 목적 고교를 중심으로 명문학교가 다시 등장했다. 이제는 중학교부터 지역별 학력차가 극명하다.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투자로 인한 성적 격차이지만,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대학 입학에 유리한 이른바 스펙쌓기 격차도 된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과장이 있긴 하지만 자녀를 관리하는 것이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자본이란 세태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인적자본(교육) 투자로 연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경제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해 스펙쌓기에 유리한 사회연결망을 획득한다면 결국 고용시장으로 이어져 자녀 세대에서 경제자본 축적에 유리한 구조로 이어진다. (김희삼, p146)

 

90:10, 부를 대물림하는 10% 부모의 정체는 '86세대'

이 부모세대의 정체는 86세대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닌 이들 세대는 대졸자가 급증하고, 수출 대기업이 세계적 비상을 시작하고, IT 등 신성장 산업이 떠오르고, 이러한 상황에서 급증한 소득을 자산(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투하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을 갖추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이라는 행운의 가장 큰 수혜집단이 되었다.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이 되었다.

 

교육뿐만 아니라 자산을 통해서도 부를 이전한다. 이제 20대에게 부동산과 같은 자산 격차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출발선이며,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격차가 되었다.

 

20대는 이 부모로부터 세습된 조건과 사회고도화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동을 복합적으로 인식하며 '물려받은 불평등'의 문제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이남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90년대생의 세분화된 인식

이런 사회경제적 구조 아래 자라난 90년대생의 인식구조를 저자 남녀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또 조금씩 다른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구분해 이렇게 정리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으면 정치지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가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다룬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86세대론이 86세대의 포기와 양보를 통한 타협을 모색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이 교수를 비판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구조화할 방법을 찾는다. ‘86의 포기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기회의 평등을 제도화할 정책을 추진하자, 그를 위한 돈은 소득세 개편으로 확보하자, 상층 근로소득자들의 조세부담률이 너무 낮은데 높여야 한다는 논리구조다. 지금까지의 분석에 비해 이 내용이 풍부하진 않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적 예견도 한다는 점. 저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대 남성은 보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고 무당파가 많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 무당파의 인식은 이렇다.

 

그리고 저자는 무당이 되어 무당파들이 30대가 되는 2022년 대선이나 2024년 총선이 ‘20대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정치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예견한다. 두고 볼 일이다./서영민 기자seo0177@gmail.com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습이다

작년부터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를 '세대라는 틀로 설명하거나 진단하려는 시도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설명 방식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촛불 항쟁 이후 두텁게 형성됐던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20대 남성이 대거 이탈하는 징후가 보이면서였다. 그러다 조국 사태를 겪고 나서는 거의 모든 일간지와 주간지가 이 주제를 한 번 이상은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뜨거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세대보다는 여전히 '계급'이나 '계층'이 중요하다는 반론이 곧바로 제기됐다. 또한 20대 남성의 정부-여당 지지 철회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단순히 '우경화'로만 바라볼 수 있느냐는 이견도 잇따라 제출됐다. 모처럼 한국 사회 불평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갑자기 봇물처럼 터진 논의가 좀 어지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출간된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생각의힘, 2020)는 이런 산만한 논의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반가운 저작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20(90년대생)에게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불평등이, 그럼에도 왜 세대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계급-계층과 세대, 역사와 구조를 교차시킴으로써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미 <프레시안><세습 중산층 사회>의 이런 기여에 주목하는 서평 기사를 실은 바 있지만("세대론은 거짓, 중산층 세습이 진짜 문제다", 2020. 1. 18), 이에 더해 이 지면을 통해 이 책을 읽고 든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다.

 

<세습 중산층 사회>가 그리는 '세습 자본주의'의 총체적 모습

<세습 중산층 사회>는 지금의 20대가 한국 사회에서 유례없는 불평등을 체감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 전체가 앞 세대가 만들어놓은 불평등의 희생자가 됐다는 서사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이 책은 오히려 최근 각종 언론 특집 기사들을 통해 익숙해진 이러한 서사를 비판하고 해체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 불평등에 대한 보다 정교한 진단을 내놓는다.

 

20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20대가 다른 어떤 사회 집단보다 더 불평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면, 이는 20대가 이전 어느 세대보다 더 현격하게 양극화돼 있기 때문이다. 도식화한다면, 안정된 중산층의 삶이 보장된 10%G(글로벌)세대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안정된 삶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는 90%N(이른바 '3'의 무한 확대)세대로 나뉘어 있다. 과거에도 물론 세대 내 격차는 존재했지만, 문제는 격차가 유례없이 확대됐다는 것이고 이후 생애에서 역전을 꾀할만한 출구가 모두 닫혔다는 것이다.

 

아니,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세습 중산층 사회>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20대 내부의 격차가 실은 그들 부모 세대인 50(60년대생)의 격차를 고스란히 세습한 결과라는 점이다. 흔히 '86세대'라 지칭되는, 20대의 부모 세대는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기를 살았다. 이 과정에서 이 세대 중 일부는 대졸 학력을 취득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으로 장기근속하며 '똘똘한 한 채'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한 '상위 10% 중산층' 대열을 형성했다.

 

지금 이 중산층이 자녀 세대에게 자신의 지위를 세습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불과 10여 년 전에 사회에 진출한 30대와도 크게 비교될 정도로, 20대는 사회 진출 시점에 이미 부모의 지위(10%, 90%)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세습의 주된 통로는 집중적인 교육 투자를 통한 학력=학벌 자본 획득과 수도권 소재 부동산 상속이며, 이런 토대를 갖춘 이들이 이중 노동시장에서 일찌감치 '내부자(정규직-대기업/공공부문)'로 진출해 앞으로도 이를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이 책이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내놓은 병명이 '세습 중산층 사회'인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손에 든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저자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 불평등을 다룬 최근의 수많은 연구들이 이 책에 망라되어 있고, 저자는 이 모든 연구의 성취와 한계를 꼼꼼히 짚으면서 각각의 시야만으로는 그릴 수 없었던 전체상을 그려낸다. 세대를 주제어로 삼은 언론 특집이나 학술등재지에 논문 한 편으로 발표된 연구 결과에는 부분이나 파편으로만 존재하던 진실이 저자의 손길을 거치며 '세습 자본주의'라는 총체적인 모습에 가까워진다.

 

이런 예외적인 노력을 거치기 전의 대다수 분석이나 해명은 자칫 그릇되거나 헛된 정치적 시도로 이어지기 쉽다. 가령 '불평등의 세대'만을 지적하는 논의는 두 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나는 선의에서 비롯된 공허한 대안이다. 세대 간 불평등이 문제이니 기득권을 누리는 세대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정작 중요한 세습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젊은 세대 중 '10% G세대'에게만 없던 기회까지 더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세습 중산층 사회>도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세대 차원에서 양보를 하고, 기득권을 떼어내 아래 세대에 준다 할지라도 지금의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사회가 20대를 배려해 번듯한 일자리를 늘린다 할지라도, 그 기회는 대부분 세습 중산층의 자녀들이 차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양보는 그들 중 일부가 노동시장에서 몇 년 앞서 은퇴하고 그 대가로 그들의 자녀들이 노동시장에 안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세습 중산층의 첫 세대인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60년대생의 자녀들에게는 '합법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 290)

 

물론 이런 대안의 공허함도 요즘 정치권이 벌이는 쇼와 비교하면 공허하다 하기 뭣할 정도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청년들'을 위한답시고 젊은 변호사, 스타트업 기업 대표, TV에 몇 번 출연해 이름을 알린 인사들을 '인재'라며 영입하고 있다. 이런 행태야말로, 20대의 절대 다수가 그런 '인재'들이 뚫고 들어간 비좁은 출구를 딴 세상 이야기인 양 쳐다만 봐야 하는 게 문제의 본질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푸닥거리다.

 

그런가 하면 더 심각한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악의에 바탕을 둔 파괴적인 선동이다. 만악(萬惡)의 근원인 86세대에 맞서 젊은 세대가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담론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예외 없이 '민주주의''노동조합'처럼 새 세대가 자기 무기로 바꿔 사용해야 할 역사적 자산들을 오히려 적들의 무기로 몰며 파괴하라 다그친다. 아마도 21세기 한국형 파시즘의 맹아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다만 이를 추진할 극우 세력이 아직은 낡고 무능하기만 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모두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전체상을 시야에 담지 못하는, 혹은 애써 이를 회피하려는 논의의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오직 세습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형상을 대중에게 명확히 제시하려는 노력만이 이런 불길하고 심란한 흐름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습 중산층 사회>는 참으로 제 때에 우리에게 도착한 지적 성취이자 정치적 안내도(案內圖).

 

세습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 - 생태 전환과 평등 실현은 하나다

그럼 어떻게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벗어날 것인가? 저자는 교육을 중심으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함과 동시에 10%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대안]은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위의 책, 292)

 

세습 자본주의를 뒤집을 방안으로는 너무 소박하다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출발점으로는 정확하다 생각한다. 우선은 '10% 중산층'에게 더 많이 과세해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게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롭게 마련된 재정 기반을 세습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가령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 그 세수로 사회주택 부문을 확대함으로써 주거 구조를 개혁해야 하며, 법인세에 부가하는 형태로 고등교육세를 신설해 그만큼 늘어난 재정으로 평준화, 무상화의 방향에서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재정 기반이 확대되면, 산업-복지 정책을 위해 더 공격적으로 적자 재정을 운영할 여지 또한 그만큼 더 커진다. 세습 중산층 사회가 굳어지는 꼴을 두고 보지 않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중산층 지위 세습이 이뤄지는 최종 관문인 노동시장부터 손보려는 시도는 늘 미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도 지적하듯이, 임금 피크제나 직무급제 도입 시도는 애초 목표와는 상관없이 노동시장의 최대 약자에게만 더 큰 피해를 주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중 노동시장이야말로 세습 자본주의 체제의 중핵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유토피아'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왜 그러한가? <세습 중산층 사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중 노동시장을 비롯한 세습 자본주의의 모든 구조는 한국 사회가 박정희 시대의 돌진적 산업화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지구 자본주의에 적응하며 누적해온 역사적 선택들의 결과다. 그 경로의 끝에 지금 세습 자본주의가 서 있다. 세습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 경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 경로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실패'보다는 '성공'이라 평가받고 있으며, '10% 중산층'은 그 안에서 계속 자신들이 이기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슬프게도 이 경로는 안에서부터 뒤집어질 가능성이 없다. 그럴 가능성은 아마도 1980년대의 젊은 혁명가들이 꿈꾸던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이 기업별 민주노동조합의 현실에 추월당한 그때에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정규직이나 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는 논의는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사라진 기회(그런 게 있었다고 가정하면)를 향한 회한의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습 중산층 사회가 현재의 50-20대 간 세습을 넘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자포자기하기는 이르다. 세습 자본주의로 치닫고 만 기존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로가 안에서부터 뒤집어질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의 한 쪽 얼굴이라면, 다른 쪽 얼굴은 그 산업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초래한 위기들, 즉 기후 위기, 장기 침체, 패권 격돌 속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이제껏 인류의 어떤 문명도 피하지 못했던 쇠퇴와 몰락의 숙명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구 자본주의의 일부인 한국 자본주의 역시 이 공동 운명의 한 당사자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그린 뉴딜' 등의 이름으로 기후 위기에 맞서 생태적 전환을 촉구하는 외침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답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존 경로 안에서 기득권층의 사회적 책임을 압박하고 새로운 산업-복지 정책의 재정 회로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전환을 통해 기존 산업화와는 다른 역사의 경로를 열어나가는 것. 이것이 세습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우리 시대 변혁 전략의 큰 줄기가 아닐까. 또한 그렇기에 이제 생태 전환과 평등 실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목표일 것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프레시안 20.2.4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저자 헬렌 레이저|아날로그(글담) |2020.01

저자 : 헬렌 레이저 호주 멜버른 출신의 라디오 진행자 겸 저술가. 거침없는 입담과 필치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칼럼니스트로, 성소수자 권리운동,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ABC 라디오 멜버른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호주의 일간지 더 에이지시드니 모닝 헤럴드, 더 오스트레일리안을 비롯해 호주판 빅이슈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좌파주의를 다루는 팟캐스트 내커&더 배지를 운영 중이다.

 

역자 : 강은지 기자, 조사관, 활동가로 통일, 평화, 과거사 청산, 민주화, 기업의 인권 침해 등 국내외 다양한 인권 현장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국제인권법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현재는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시아로 간 삼성, 기업의 인권통합 경영을 위한 안내서, 기업활동과 인권의 적용, 평화의 식탁, 인권교육평가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스마트폰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에게 깔맞춤인 카를 마르크스 형님

 

1장 희대의 말썽쟁이 트럼프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을까?

 

미셸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키다

힐러리 클린턴은 왜 패배했는가

빈곤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

인종차별도 결국은 돈 문제다

물질이 먼저, 이상은 나중

 

2장 자본주의는 결국 실패할 거라니까! 마르크스도 그렇게 말했어!

 

모두가 착취당하고 있다

위대한 헨리 포드의 방식이 실패하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유전적 위험성

위대한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토요타는 어떻게 생산성을 높였나

20년 후 누가 우버를 이용할 것인가

 

3장 가진 자들이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식, 그게 바로 불평등 이데올로기야!

 

지배 질서의 노예를 만들다

편협한 신념이 지배 구조를 강화한다

호주 정부는 어떻게 원주민 통제를 정당화했나

가난한 밀레니얼에게서 부자를 보호하라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벗겨 내라

 

4장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따돌리고 있다고?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의 규칙

인간은 애플 클라우드의 데이터가 아니다

성공하는 자본주의자들의 비밀

자본주의가 기분장애를 부른다

언론은 자본주의의 개다

 

5장 왜 여성의 노동력은 더 저렴할까?

 

마르크스주의에 페미니즘은 없다

짜증 나는 이건 어때전술에 말려들지 마라

더 많이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돈을 많이 벌면 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성은 다중의 소수자성을 경험한다

모든 소수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

 

6장 가난한 밀레니얼이여, 단결하라!

 

자본주의의 종말을 기다리며

위대한 혁명 세력, 밀레니얼 세대

100퍼센트의 세계를 쟁취하라

 

에필로그더 많은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원하는 동지들에게

 

출판사 서평

노력한 만큼 돈을 번다는 자본주의는 죽었다!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사회주의적 통찰

 

밀레니얼 세대를 일컬어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라고들 한다. 이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거나 사회 초년생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밀레니얼들은 실업률이 계속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높은 고등교육을 받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대체 왜 이렇게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을까? 호주의 라디오 진행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헬렌 레이저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적 시각으로 우리 시대의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임시직과 계약직 일자리만이 증가하는 현상, 소수자 차별 문제 등을 살펴본다. 사회정치 문제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유행어, 비속어 등 밀레니얼 세대에게 친숙한 각종 을 사용해 풀어 설명해 준다.

 

왜 마르크스식 사회주의인가? 서구의 밀레니얼들이 사회주의에 열광하는 이유

저자 헬렌 레이저는 마르크스식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그 자체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의 기본 원리를 구성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돈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주의 이론, 가령 자본론등을 살펴보면 왜 밀레니얼 세대가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계속된 불평등과 가난에 지친 현 서구의 밀레니얼 세대 역시 사회주의에 열광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수호자나 다름없었던 서구에서 말이다. 더 이상 사회주의는 과거의 고리타분한 학문이나 사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는 환경보호성 평등처럼 힙한 유행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201910워싱턴포스트는 밀레니얼 세대의 70퍼센트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해질 때 실제로 우리 정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2016년 미국 대선을 사례로 살펴본다. 또한 2장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밀레니얼들이 처해 있는 현실, 즉 노동자들은 왜 점점 더 계약직, 임시직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지를 미국의 자동차 산업 모델의 발전을 통해 통찰한다. 3장에서는 이토록 극심한 양극화 상황에서 부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가난한 이들을 통제하고 현 체제를 유지해 나가는지, 호주의 원주민 통제 문제를 사례로 알아본다. 4장에서는 이제 사회에 진출한 사회 초년생들인 밀레니얼 세대들이 느끼는 노동 소외 문제를, 5장에서는 노동 시장에서 특히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 문제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왜 밀레니얼 세대가 해답이 될 수 있는지, 밀레니얼들이 지닌 사회문화적 유산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빈곤에 시달리던 이들의 마지막 선택

불평등이 심화될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었다. 모두가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으나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헬렌 레이저는 이 놀라운 현상을 사회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 통찰한다. 많은 정치인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명분에만 집착할 뿐, 정작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최저생계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소득에 대한 주제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사상적으로 옳다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가 거론조차 하지 않는 문제, 즉 미국인들의 경험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 번은 트위터에 미국의 흑인 유권자들에게 도대체 뭘 더 잃어야 하는가?’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중략) 이는 물질적 부에 관한 질문으로, 그 진짜 답은 우리 대부분은 이미 파산 상태고 힐러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러니 지갑 사정상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였다. 흑인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에 열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빈곤에 시달린 나머지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주사위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_37p

 

헬렌 레이저는 바로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문제를 꺼내 든다. 마르크스적 역사 인식에 따르면 물질적인 요소가 보다 상위의 가치, 즉 정신적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실제로 대중은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던 트럼프에게 표를 주었다. 그 결과 공공연히 소수자를 비하하며 노골적으로 친기업적 성향을 드러내던 트럼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왜 양질의 일자리는 없을까

임시직 선호 경제가 만연한 이유

 

현재 밀레니얼 세대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실은 바로 양질의 일자리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자리 시장에 나온 대부분의 일자리가 계약직, 임시직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디트로이트를 번성하게 만들었던 포드사의 대량생산 방식이 역사적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임시직 일자리만을 만들어 내는 토요타의 적시생산방식(Just in Time, JIT)으로 바뀌어 갔는지 살피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과거 경제적 호황기에 베이비부머 세대는 엄청난 풍요를 누렸다. 심지어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에서 흑인들이 조금이나마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뉴딜 정책이 이루어지던 바로 이 시대였다. 그러나 헬렌 레이저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잠시간은 풍요로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자본주의자가 성공하려면 사업을 키워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른 사업이 그들의 사업을 통째로 먹어치울 만큼 커질 테니까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작고 약한 것들은 크고 강한 것에게 잡아먹히면서 소수의 손에 자본이 집중된다. 자본이 중앙집중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윤 증가에 목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평형상태의 유지와 평등은 불가능하다. 결국 국가 경제가 포드주의 시절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건 다 쓴 튜브에 치약의 바다를 밀어 넣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포드주의를 만들어 낸 포드사에게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애써도 회사의 성장과 노동자들의 기회가 조화롭게 공존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_99p

 

1퍼센트의 1퍼센트가 모든 부를 독점하고 있는 사회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는가

 

헬렌 레이저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부를 8명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가진 자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을 가난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매커니즘, 즉 불평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밝힌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쇠사슬이나 중세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자위 금지 도구에 비유한다.

 

--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국부론에 담긴 사상은 곧 지배계급의 사상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사상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어떠한 신화화도 없었지만 노동자계급에게는 신화화된 이데올로기처럼 받아들여졌다. _159p

 

저자는 이처럼 가진 자들이 부를 공고히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를 언급하고,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이러한 고전적 경제주의가 조금씩 시들어 가고 있음을 밝힌다.

 

왜 현대의 밀레니얼들은 우울장애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밀레니얼 세대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유

 

헬렌 레이저는 현대의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기분 장애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많은 이들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와 같은 물질적 요소를 평가절하하고, 추상적인 행복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매우 중요하다며 삶을 애플 클라우드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리적인 삶의 방식이 우리의 문화와 그 밖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본주의가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우울장애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 우리는 포챈 유저들이 현실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현상과 그들의 물리적인 삶의 소비 방식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데 아무런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머저리 같은 짓을 지지하기 시작하자 왜 이 친구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지 설명하는, 다시 말해 왜 이들이 공동선에서 지독히도 소외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수많은 기사와 수백만 건의 짤방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부모 집 지하방에 기생해 산다는 분석이 만연하다. 포챈 유저들도 이에 대해 공공연히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대부분 남성이며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밝히는 이 집단은 한번도 여성의 손길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또 다른 이유로 내세운다. 그들은 소외되어 있다.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이들의 집합적 노동의 산물을 보면 이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_183~184p

 

왜 여성의 임금은 더 저렴한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여성의 삶을 고민하다

저임금 문제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여성에 대한 주제다. 이는 특히 젊은 밀레니얼들이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사회초년생이라는 점과 어우러져, 젊은 여성들은 다중의 소수자성을 경험하게 된다.

헬렌 레이저는 철저하게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여성들에 대한 논의를 더 특별하게 다룰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여성주의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다는 사실, 각각의 진영이 어떻게 주장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 주장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논한다.

 

-- 페미니즘 가운데서도 현재 가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불평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불평등은 성별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누구든 여러분 앞에서 능력주의를 거론하면 큰 소리로 비웃어 주길 바란다.)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 중에도 고통에 조금 더 민감한 이들이 있다. 이들을 좌파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들은 빈곤이 문제라고 인식은 하지만, 이 문제가 필연적으로 성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 같은 요소에 매여 있다고 이해한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은 가장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과 가장 여성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의 견해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빈곤이 필연적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_p211

 

그러나 헬렌 레이저는 능력주의의 신화를 비판한다. 그는 어떤 논리로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높은 능력을 지닌 이들은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야 하며,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등을 이룰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 시대의 유일한 혁명 세력, 가난한 밀레니얼이여, 단결하라!

지극히 암울한 미래를 앞두고, 저자는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유일한 혁명 세력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을 역설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개인의 다원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문화적, 경제적 불평등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순진하게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호황기에 성장해 그 과실을 충분히 누렸던 베이비부머 세대와 달리 극심한 빈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가? ‘대안 우파라는 이름이 붙은 극우주의자들이 득세해 차별과 분란을 조장하며 돈이 없으면 배울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라는 식의 논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세계에 만족하고 머물러야 할까? 호주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 헬렌 레이저는 밀레니얼의 눈높이에 맞춘 마르크스식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지금의 젊은 밀레니얼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Guy d Hardelot (1858 –1936) Parce que (Because) for voice & orchestra Arr, Lalo Schif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