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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장애학의 도전

by 이성근 2020. 1. 28.



장애학의 도전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저자 김도현|오월의봄 |2019.11

 

저자 : 김도현 1974년생으로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1996, 에바다복지회에서 발생한 비리 사태를 접하며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후,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노들장애인야학, 장애인이동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계간 함께 웃는 날등에서 활동하며 줄곧 그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장애인언론 비마이너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기도 하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칙 전문前文을 새로 고쳐 쓴 일, ‘야학 夜學야학 野學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한 일을 생의 큰 영광이자 보람 중 하나로 여긴다. 쓴 책으로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 2007),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장애학 함께 읽기(그린비, 2009)가 있으며,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그린비, 2011),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그린비, 2017), 철학, 장애를 논하다(그린비, 2019)를 우리말로 옮겼다. 2004년에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가 수여하는 제2회 정태수상을, 2009년에 김진균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4회 김진균상(사회운동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목차

책을 내며 6

 

1부 접속

1장 장애학, 지금 여기의 콜라보 미션 21

1. 장애학, 왜 필요한가 23

2. 장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30

 

2손상은 어떻게 장애가 되는가 47

1. 장애인이라는 범주를 의심하다 49

2.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59

3. 장애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다 78

 

2부 성찰

3장 우생학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87

1. 20세기 전반기를 휩쓴 우생학의 실체 94

2. 우생학, 새로운 간판을 내걸다 121

3. 우생학 파는 사회: 뒷문으로 이루어지는 우생학 139

 

4장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해방인가 또 다른 차별인가 161

1. 차별과 위계를 정당화하는 인간중심주의 163

2.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여전한 위계와 서열 168

3.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184

4. 에필로그: 철학()의 악몽 195

 

5장 장애인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199

: 장애 정치의 시선으로 프레이저의 정의론 읽기

1. 우리에게는 분배인정양자가 필요하다 204

2. 정체성 모델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217

3. 장애인, 참여에서 배제당하는 자 226

4. 인권의 정치, 정의의 경계를 다시 묻다 234

 

3부 전환

6장 당사자주의의 환상을 넘어 횡단의 정치로 253

: 장애인 당사자주의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1. 장애인 당사자주의란 무엇인가 258

2.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은 따로 떨어져 있는가 268

3. 횡단의 정치: 뿌리내리고 또 옮기기 276

4. 당사자주의는 운동의 이념이 아니다 284

보론 정체성, 해체할 것인가 횡단할 것인가 289

 

7장 자립과 의존의 이분법을 넘어 공생의 세계로 299

1. 정립: 부정한 몸들을 수선하다 303

2. 자립: 그 가능성과 함정 308

3. 연립: 홀로서기도 의존도 아닌, 함께 서기 315

 

4부 도전

8장 자기결정권, 나와 너 사이의 권리 333

: 연립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기결정권

1. 능력에 따라 누리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 338

2. 자기결정권, 혼자서 결정한 대로 할 수 있는 권리? 343

3. 자기결정권은 사회권이다 350

4. 누가 성년후견제도를 말하는가? 356

 

9장 모두를 위한 노동사회를 향해 361

1. 불인정 노동자로서의 장애인 366

2. 왜 이것은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 370

3.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투쟁 377

4. 노동시장을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387

 

참고문헌 403

찾아보기 414

 

출판사 서평

장애인의 몸이 문제인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가 문제인가?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등의 책을 통해 장애개인의 몸에 존재하는 손상이 아닌 사회적 산물로 볼 것을 강조한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이 10년 만에 새로운 저서로 돌아왔다. 김도현은 여러 저작과 번역서를 통해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면면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한편, 장애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열어주는 해외의 여러 이론들도 활발히 소개해왔다. 이번에 펴낸 새 책 장애학의 도전에서는 장애인을 비롯해 인간의 위계에서 가장 후미에 위치한 이들의 자리에서 사회를 바라보고자 했다.

 

변방의 시좌로 장애인과 소수자를 향한 편견 어린 사고를 낱낱이 파헤치는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장애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여전히 지배적인 우생학논리, 장애인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배제, 장애인의 자립·자기결정권·노동 등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하고도 논쟁적인 화두를 엮어낸 것이다. ‘장애인 차별 철폐외침이 계속되는 투쟁 현장과 연구 그 무엇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몰두해온 저자의 세심한 통찰을 따라가보자.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장애만드는 사회를 파헤치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을 몸에 일정한 손상을 입어 어떤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몸에 존재하는 손상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장애인을 인식하는 지배적인 방식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합당해 보이는 이 설명은 세계보건기구 WHO가 명시한 장애 정의(국제 손상?장애?핸디캡 분류, ICIDH).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장애학은 바로 이 매끄러운 논리에 틈을 낸다. 할 수 없음의 원인이 진정 개인의 몸에 존재하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일반 시내버스에 승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WHOICIDH 기준에 따르면, 이들이 해당 버스에 탈 수 없는 이유는 몸에 손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5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제정으로 국내에 저상버스가 배치됐고, 똑같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이제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동일한 손상을 지닌 사람이, ‘버스 타기라는 동일한 행위를 어떤 경우(일반 시내버스)에는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저상버스)에는 할 수 없다고 할 때, 과연 버스를 탈 수 없음의 원인이 개인의 몸에 존재하는 손상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동일한 손상을 지닌 사람으로 하여금 버스를 타거나 탈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개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상이 손상 그 자체를 넘어 ‘~할 수 없음이라는 장애로 번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때 장애학은 손상장애로 만드는 특정한 관계에 초점을 둔다. 그 관계란 바로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는 흑인이나 여성 같은 또 다른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 설정 역시 완전히 달라진다. 장애의 근본 원인을 손상으로 규정한다면, 그 해결책은 몸에 있는 손상을 뜯어고치는것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차별과 억압이 손상을 궁극적으로 장애로 만든다는 통찰을 공유한다면, 바로 그 차별과 억압의 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캐치프레이즈를 이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때다.

 

우생학이 지배한 인류의 20세기

인류 역사상 몸에 존재하는 특정한 이상이나 손상은 언제나 열등함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손상장애로 만들어온 역사는 그만큼 유구하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마저 정신적으로 불치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손수 죽일 수 있도록 사법제도와 의료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니 말이다(국가3). 무엇보다도, 인종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인간을 창조하려는 서구 사회의 오랜 욕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생학을 지탱하는 것은 곧 우등한 인간 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선택이 필요하다는 믿음이다. 지난 20세기는 그야말로 우생학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생존 경쟁에 따른 자연선택론을 정식화한 이후, 인간 사회를 진화론적 관점에 의거해 설명하려는 사회적 다윈주의가 영국에 확산되기 시작한다. 물론 경쟁도태의 논리 자체가 다윈이 살던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정신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좀 더 공정할 것이다. 미국은 우생학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시킨 나라로, ‘철강왕카네기의 카네기연구소, ‘석유왕록펠러의 록펠러재단, ‘씨리얼왕존 켈로그의 인종개량재단 등 대자본가들이 우생학의 재정적 후견인을 자처했다.

 

우생학의 선풍적인 인기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강제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새 단종수술을 당하게 된다. 1907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세계 최초로 단종법이 통과되고, 단종수술이 하나의 국가정책으로 확립된 이후, 단종법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나치 독일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종수술을 시행하고, 안락사라는 미명하에 장애인을 집단 학살하기까지 했다. 최상의 복지정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유럽 국가(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도 우생학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다. 무엇보다도 스웨덴은 전 세계 최초로 (민간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국가인종생물학연구소라는 우생학 연구 기관을 설립한 나라로, 다른 이웃 국가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단종법을 시행했다.

 

우생학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이제 그런 끔찍한 우생학적 폭력은 사라진 걸까? 놀랍게도 우리는 여전히 우생학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시대 변화에 부응해 인류유전학의료유전학이라는 간판을 내건 새로운 우생학적 시스템은 훨씬 더 교묘하게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꼭 단종수술이나 안락사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의 탄생 자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이상적인 기술들을 발전시킨 것이다. 산모 혈청 검사, 초음파 검사, 양수 검사 등 산부인과에서 흔히 실시되는 산전 검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검사들을 통해 태아의 장애 유무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장애를 가진 태아에 한해 선별적 낙태가 허용된다.

 

산전 검사는 표면적으로 예비 부모의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로서 정당화되며, 꽤나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산전 검사는 사실상 행선지가 정해진 기차표나 다름없다. 임신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산모 혈청 검사 같은 선별 검사는 이미 양수 검사 같은 진단 검사를 전제하며, 진단 검사는 다시 필연적으로 선별적 낙태를 전제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양수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을 지닌 태아를 임신한 것으로 진단된 여성들의 85퍼센트 이상이 낙태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산전 검사 및 검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유전 상담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치료할 수 없는 이상이라면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장애를 단순한 비극이 아닌 삶의 엄연한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경험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장애아의 낙태를 선택하도록 하는 사회적, 경제적 압력은 어떠한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미비한 사회에서 장애아를 낙태하는 부모들의 선택을 과연 진정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신자유주의적 통치 환경이 시장의 원리와 욕망을 내면화한 자기-경영적주체를 지속적으로 생성하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우생학을 바탕으로 한 유전학적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이제 노동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노동자가 지닌 적성 및 재능으로서의 능력자본이며, 능력자본에 따라 임금의 수준이 달라진다. 따라서 개인은 기업가의 마인드로 자기 자신을 운용해야만 한다. 자기개발서 탐독, ‘스펙 쌓기로 대표되는 자기 투자, 외모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형수술 및 피트니스가 모두 그런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유전적, 선천적 결함을 지닌 장애인은 출발선에서부터 취약한 존재가 된다.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비물질 노동의 중요성이 확대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과연 배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히려 남들보다 더 우수하고 결함이 없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우생주의적 욕망이 확대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건 아닐까? 이것만은 꼭 기억해두도록 하자.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전학적 서비스와 생명공학 상품은 얼마든지 우생주의를 가동할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하다

좀 더 시야를 넓히면,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문제 설정이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특정한 관점과 맞닿아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 즉 휴머니즘이야말로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를 강화하며, 따라서 장애 해방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세계관이라고 지적한다. 언뜻 우생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휴머니즘이 어째서 장애인을 억압하게 되는 걸까?

 

근대 서구 문화의 세계관이기도 한 휴머니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이 기준에 따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성을 지닌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로 양분되며, 세계 또한 인간계와 자연계로 쪼개진다. 언뜻 모든 인간평등한 이성적 존재로 호명하는 듯한 이 보편 명제는, 다른 한편으로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대우명제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매우 기만적이다. 다시 말해 이는 어떤 규범성과 정상성에 미달하는 다른 인간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

 

인간중심주의의 극복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인 피터 싱어 역시 끝내 생명의 가치에 위계를 설정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되풀이했다. 그는 인간이 동물들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행위들이 종차별주의에 따른 것이라며, ‘인간 동물이 아닌 인간 아닌 동물의 권리와 평등을 주창한 바 있다. 하지만 인간 아닌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며 일부 동물을 인격체의 세계로 편입시키자고 이야기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성언어능력을 근거로 내세운다. ‘인간 아닌 동물의 존재를 사유하기는 했지만, 특정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전제하는 그 위계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일부 동물이 인격체의 세계로 편입될 때 일부 인간은 반대로 비인격체의 세계로 추방된다. 동물보다 낮은 이성언어능력을 지닌 인간들 말이다. 결국 싱어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섰다고 보는 해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나이브하다. 오히려 그가 인간중심주의의 폭력적인 본질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17세기의 스피노자, 그리고 2011년 타계한 린 마굴리스 같은 학자가 선구적으로 통찰했듯, 인간은 다른 생명체 혹은 미생물들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다. 심지어 이들과의 공생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조차 없다.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혼자 힘으로 해내고 있다고 믿는 순간조차 우리는 타인 혹은 다른 개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관계성은 거대한 존재의 사슬이라는 진화의 관점을 취하는 순간 가려진다. 우리를 이루는 이 수많은 관계들을 인식하게 되면, 더 이상 여러 존재들을 가르는 위계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더 하등하거나 고등한 존재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와 다른 존재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역량은 증대될 수도, 감소할 수도 있다.

 

일례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활보)의 관계에 주목해보자. 활보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신체가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내는 새로운 활동이다. 집회 현장에서 강제로 연행당하며 경찰에게 전동휠체어를 빼앗긴 중증장애인들의 다음과 같은 외침은 또 어떤가. “이 자식들아, 그건 내 몸의 일부야!” 중증장애인과 전동휠체어의 만남이 어떤 역량의 증대를 가져오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새로 쓰는 자립과 의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무엇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의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비틀고 개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우리는 의존자립을 대척점에 두곤 한다. 중증장애인들에게 강력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던 자립생활운동역시 의존과 자립의 이분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전미자립생활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자립생활 개념 역시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타인의 개입 또는 보호를 최소화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이 정의의 핵심은 자기결정권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 결정모델은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을 비이성적인 존재로 치부하며 다시 한 번 이성중심주의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장애운동의 지향이 장애인을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이분법적 틀 자체를 해체하는 것에 있듯, 이제 우리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낙인과 억압의 기만성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은 자립적인 존재라고 맞설 것이 아니라 자립과 의존의 이분법 자체를 깨는 것, 인간이 그 자체로 의존적인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자립과 의존의 관계를 재구성하게 되면, 자기결정권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진다. 자기결정권이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모든 상황에서 어떤 주체가 혼자서 결정한 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혼자 결정하는 그런 삶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자기결정권은 결정을 내리는 여러 주체들이 서로 의존하며 여러 의견과 판단을 소통, 조율해가는 와중에 실현되는 권리이다.

 

물론 그전에 이성과 언어를 지닌 인간만이 판단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통념부터 깰 필요가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어차피 (소통이) 안 된다는 생각, 소통과 조율의 과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과정 자체를 생략하고 그 사람을 배제한다면, 그건 분명 자기결정권 침해다. 판단과 소통의 능력을, 표준적인 이성과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언어 표현에 국한해선 곤란하다.

 

책속으로

장애학의 시좌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위계에서 제일 후미에 위치한 이들의 자리에서, 혹은 이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의 자리에서 이 사회의 풍경을 본다는 말일 것입니다. 후미와 변방이라는 자리는, 단지 동일한 대상의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을 넘어, 선두와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두와 중심에서 본 세계와는 다른 세계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세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 p.12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이때 특정한 관계란 다름 아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 p.74~75

 

장애 문제 역시 장애인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에서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의 문제이다. 그래서 장애 문제의 한편에 장애인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비장애인이 있다.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도 더 단결하고 스스로 권리 의식을 높여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장애인이 바뀌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즉 비장애인은 장애 문제와 무관한 존재일 수 없다. --- p.82~83

 

우생주의적 욕망이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 - 경영적 주체들에게 내면화될 때, 신자유주의적 권력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전학적 서비스와 생명공학 상품을 통해 우생주의적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된다. 굳이 강압적 정책을 펴지 않더라도 말이다. --- p.152

 

이 사회가, 그리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나를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엄한 존재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인지장애인의 인간 존엄성을 끊임없이 회의하고 부정하는 이들 앞에, 인권의 정치가 제시할 수 있는 기본적인 답변은 바로 이것이다. --- p.249

 

자립/의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때 드러나는 새로운 가치가 바로 함께 어울려 섬’, 즉 연립聯立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홀로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서기로서의 연립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 p.330

 

자기결정권을 연립적 관점에서 올바로 이해할 때 핵심 요소는 판단소통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이성중심주의적인 사고, 즉 이성과 언어를 지닌 인간만이 판단하고 소통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판단하고 소통한다. 인간 아닌 동물은 물론이고 때로는 식물까지도 말이다.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본능적 판단이나 저차원의 교감에 불과하다고 격하되어왔을 뿐이다. --- p.345

 

좋은 시설이 장애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라는 명분 아래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좋은 성년후견제도도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시설과 성년후견제도를 필요악 必要惡이라고도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법은 법이 아니라 그냥 악일 뿐이듯 필요악도 그냥 악일 뿐이다. 악법과 필요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을 억압하는 사회다. --- p.359

 

 

손상장애로 만드는 사회

 

2016년 영국의 방송사 채널4에서 리우 패럴림픽 트레일러 영상으로 올린 'We’re the Superhumans' 영상.

 

몇 달 후면 도쿄 올림픽과 도쿄 패럴림픽이 열린다. 이맘때쯤 되면 방송사는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해진다. 특집 방송 제작하랴, 중계 편성하랴, 그래픽 제작하랴 다들 정신없이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려면 눈코 뜰 새가 없다. 잠시 회사를 떠나있다 돌아와서 분주한 사무실의 공기를 맡다 보니 4년 전 리우 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릴 무렵이 떠올랐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영상이 하나 있다.

 

2016년 영국의 방송사 채널4에서는 리우 패럴림픽 트레일러를 하나 만들었다. 트레일러의 제목은 . 영상은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었던 드러머 앨빈 로의 흥겨운 드럼 비트로 시작한다. 뒤이어 척추갈림증으로 휠체어에 앉은 가수 토니 디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에 맞춰 다양한 선수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애런 포더링험의 휠체어 스턴트 장면을 보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3분 정도의 짧은 이 패럴림픽 홍보 영상은 비단 대회에서 땀 흘리는 선수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들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운전을 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들은 각종 대회에 참여하는 모습과 위화감 없이 서로 포개어졌다. 후반부에 너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학교의 담당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도현의 저서 <장애학의 도전>은 이처럼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 구조가 장애의 원인임을 지적하는 책이다. 이 책은 수십 년 간 활동가이자 이론가로서, 그리고 비장애인으로서 장애 문제에 대해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고찰했던 결과물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손상이 아니라 차별이 장애를 만든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우직하게 독자들에게 밀어붙인다.

 

장애인은 보통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지만, 그들이 이렇게 무능력한 이들이 된 건 그들의 몸과 정신에 손상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행하게 할 역량을 제공해주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 더 문제다. 장애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서사에 눈물을 흘리고, 동정과 연민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전형적인 삶을 살아주길 요구하는 사회가 그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장애인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개념이다. 개별적인 장애인을 지칭하는 단어들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그들을 한데 묶어 무능력한이들로 분류해낸 건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임노동을 할 능력이 없는 이들은 국가에 의해 비정상으로 분류되었고, 그 일차적 대상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제거되거나 숨겨져야 할 존재들로서 여겨졌다.

 

하지만 장애인은 하나로 묶일 수 없다.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소통은 비장애인과의 소통보다 때로는 어렵다. 또한 한 사람은 장애인인 동시에 다양한 정체성을 지닐 수 있다. 그들의 개별적인 상황과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애인이라는 집단으로 부르는 것은 여전히 그들을 주변화 하는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답습하는 꼴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를 개인의 인식 변화나, 당사자 정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차별을 구조화하는 사회를 바꾸고,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정치의 공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분배-인정-정치의 세 차원에서 동시에 정의를 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공시민노동(활동)’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비장애인들은 자립과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주어진다는 것이고, 장애인들은 그것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묻는다. 왜 장애인은 기생하는 삶으로 그려지는가? 실은 모두가 서로의 부분인데도 말이다.

 

김도현 저서 '장애학의 도전'

저자는 아렌트의 활동개념에 준하는 노동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시민들이 일정한 수준의 급여를 보장하는 공적 일자리를 신청하고, 이를 시민들 스스로 심사하여 인정받는 공공시민노동(활동)체제를 통해 장애인들의 생존은 공공시민노동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생존이 기여가 될 수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는 생각보다 유동적이다. 사고로 인해 후천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얻을 수도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때는 장애로 여겨지지 않던 영역이 장애로 판정되기도 한다. 이 경계의 유동성을 인정한다면, 장애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사회 속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행위들에 동의를 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노동의 개념을 확장해 가며 노동과 생존을 같은 층위에 놓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노동 대신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최소한의 권리를 근거로 기본 소득을 요구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좀 더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정의로울지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여기까지 진전시키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가 손상 된다 보긴 어렵다.

 

장애를 불행하게 느끼는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 영상 속 장애인들처럼 모두가 의욕이 넘치거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살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장애가 구성된다 해도, 개인이 느끼는 불만과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장애인들 스스로 그 불만과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그들이 원할 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특혜가 아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다. 당사자-비당사자의 사이, 그리고 당사자-비당사자를 둘러싼 구조의 자리에서 저자는 장애해방의 가능성을 찾는다.

 

비장애인들은 사회 구조의 일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 동시에 사회 구조의 한 축으로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낼 권리가 여전히 있다. 주제넘지 않으면서도 당사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지 않을 방법은 가능한가? 그의 시도는 성공적인가? 나는 쉽게 판단하지 못했다. 그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탐색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실하지 못했고, 그만큼 글에서 내 부족함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좋은 서평들이 있음에도 무엇인가 말하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사람은 배워가는 과정을 통해 완전하진 않더라도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장애를 비하하는 데 여념이 없는 공당들도, 자신의 삶과 장애의 거리를 애써 벌리려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나처럼 여전히 일터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이들에게도 이 책이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PD저널/오학준 SBS PD

 

철학, 장애를 논하다 저자 크리스트야나 크리스티안센, 시모 베마스, 톰 셰익스피어|역자 김도현|그린비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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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크리스트야나 크리스티안센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교 사회사업학과 교수. 그녀의 학문적 배경은 심리학이며 공중위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연구 관심사는 장애학, 정신보건, 질적 방법론이다.

 

저자 : 시모 베마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STOCKHOLM UNIVERSITY) 특수교육학과 교수. 철학과 특수교육을 전공했으며, 그의 연구 관심사는 장애이론과 장애 윤리이다.

 

저자 : 톰 셰익스피어

생명윤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자. 그의 저서로는 장애학의 쟁점(DISABILITY RIGHTS AND WRONGS),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GENETIC POLITICS: FROM EUGENICS TO GENOME) 등이 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영국의 장애운동에 관여해 왔다.

 

 

목차

책머리에   

서장. 장애학과 철학의 피할 수 없는 동맹: 시모 베마스·크리스트야나 크리스티안센·톰 셰익스피어

 

1_ 형이상학

1. 사회정의와 장애: 스티븐 스미스   

서론 | 의료적 모델의 재해석 | 사회적 모델의 재해석 | 재능으로 간주되는 손상? | 정체성과 인간의 행위주체성 | 결론: 자아성, 장애, 사회정의

 

2. 장애의 정의들: 스티븐 에드워즈

서론 | 네 가지 견해 | 맺음말

 

3. 장애와 손상의 존재론: 시모 베마스·페카 메켈레

서론 | 신체를 위한 그리고 신체에 대한 탈근대적 성전(聖戰) | 세계의 고유한 특징과 관찰자-상대적인 특징 | 손상: 원초적 사실인가 제도적 사실인가? | ‘사회적 손상의 구성 | 존재론과 장애정치

 

4. 장애와 사고하는 몸: 재키 리치 스컬리

윤리학과 몸 | 사고하는 몸 | 상황을 파악하기 | 전언어적·비개념적 내용 | 신체도식 | 신경과학에서의 체현된 마음 | 체현된 언어 | 이례적인 몸의 위상

 

2_ 정치철학

5. 인격과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 헤이키 이케헤이모

서론 | 인격: 그것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 대인관계론적 인격, 인정, ‘우리라는 것의 본질 | 정신적 인격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서의 인정적 태도 | 인격과 장애 | 사회적 배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사회적 통합: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 맺음말

 

6. 장애와 자유: 리처드 헐

 

7. 장애, 재능 부재, 분배적 정의: 제롬 비켄바흐

서론 | 토니의 통찰에 놓여 있는 배경 | 사회정의는 무엇보다 평등에 관한 것이다 | 장애적 비평 | 한 가지 문제 | 손상과 재능 부재를 구별하기 | 인구학적 요소로서의 장애: 차이의 공고화 | 결론: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8. 젠더, 장애, 개인적 정체성: 투이야 타칼라

중심적 기준에 맞서 | 신체적 특징이 신체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야기하다 | 차별이 단결을 야기하다 | 외부적 억압으로부터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억압으로 | 희생자적 위치 | 결론적 단상

 

3_ 윤리학

9. 인공와우, 언어권, ‘열려 있는 미래: 패트릭 셰르밋

서론 | 소아 인공와우 이식에 대한 윤리적 논쟁 | ‘열려 있는 미래론과 농아동의 미래라는 문제 | ‘열려 있는 미래론과 언어권 | 맺음말

 

10. ‘농배아선택의 도덕적 경합성: 마티 헤이리

서론 | 생식 및 진단 기술과 그 활용 | 사례, 선택지, 입장 | 의료적 관점에 대한 도덕적 논거 | 사회적 관점에 대한 도덕적 논거 | 법적 허용에 대한 논거 | 상황의 불안정성 | 의료적 관점에 대한 도덕적 논거의 재고찰 | 사회적 관점에 대한 도덕적 논거의 재고찰 | 비지시적 절충을 향하여 | 비지시적 절충

 

11. 장애 관련 법률의 형성에서 의료 전문가의 역할: 린지 브라운

서론 | 판례 | 판례 탐구를 위한 이론적 틀 | 장애인의 삶의 질에 대한 의사들의 견해 | 판례법 분석: 네 가지 핵심 테마 | 결론

 

12. 다운증후군에 대한 산전 선별검사: 베르게 솔베르그

서론 | 자율성: 선별검사에 대한 주된 논변 | 은폐될 수 없는 의제: 설명을 개선하기 | 선별검사에 반대하는 논변들 | 인정투쟁 | 무엇을 없애고 있는가: 태아, 부담, 아니면 정체성? | 으뜸패로서의 자율성 | 윤리학과 선별검사: 장애라기보다는 임신에 관한 문제? | 선별검사,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13. 생명정치와 벌거벗은 생명: 도나 리브

서론 | 생명정치: 호모 사케르의 형상 | 장애의 정의 | 산전 진단 |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지닌 사람들의 강제 구금 | 낯선 이들과의 상호작용 | 논의 | 결론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 찾아보기 | 필자 소개

 

출판사 서평

장애란 무엇이며 누가 장애인인가?

철학의 시각에서 장애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

68혁명 이후 신사회운동의 부상이라는 흐름 속에서 본격화된 장애인 대중운동, 그리고 이러한 대중운동이 동력이 되어 영어권 국가들에서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장애학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과 학문들을 아우르고 횡단하는 학제적 연구 분야이며, 이와 같은 학제적 성격은 현재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장애 모델을 정립한 영국의 장애학에서 사회학이나 사회정책학의 영향력이 강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문학, 사회심리학, 교육학 등이 장애학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장애학의 성립 과정에서 철학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어떤 면에서는 방관자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물론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철학이 하나의 세계관이고 입장이라면, 장애학을 실천해 왔던 활동가들은 언제나 일정한 철학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명시적 타이틀을 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장애학과 연동해 이루어지는 모든 사유와 글쓰기 작업은 그 자체로 일정한 철학적 효과를 발생시켜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장애학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특히 페미니스트 철학자들, 윤리학자들, 탈근대주의 이론가들은 몸과 손상/장애를 주제로 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국적을 지닌 학자들이 모여, 철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학 전반의 시야에서 장애를 다룬 것은 바로 이 책 철학, 장애를 논하다가 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전개되는 장애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존 롤스에서부터 악셀 호네트와 조르조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에게도 낯익은 현대 철학자들의 이론 및 개념과 조우하게 된다.

 

형이상학, 정치철학, 윤리학적 이슈로서의 장애

1부 형이상학에서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장애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현상의 본질과 과학적 지식의 관계는 무엇인지가 논의된다. 1장은 기존의 의료적 장애모델과 사회적 장애모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면서, 인간의 행위주체성(agency)을 사상하지 않는 장애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2장에서는 장애의 정의(定義)에 연루되어 있는 의료적, 도덕적, 미적 가치들이 비판적으로 검토되며, 3장은 존 서얼이 발전시킨 원초적사실과 제도적사실의 구분에 기반을 두고 손상과 장애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4장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장애의 물질적 토대와 체현된 본질을 논하는데, ‘이례적인 몸이 누군가의 정체성과 자아감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새로우면서도 철저히 경험적인 지식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2부 정치철학에서는 자유, 평등, 정의 같은 개념들이 장애와 관련하여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하는지가 주요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5장은 호네트의 인정이론 접근법에 기초하여 대인관계론적 인격’(interpersonal personhood) 개념을 도입하고,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위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6장은 롤스의 정의론 및 소극적 자유 개념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장애를 인간의 자유와 정의(正義)에 대한 본질적 이슈로 확립하며, 7장은 손상과 재능 부재(non-talent)의 경계를 다각도로 고찰하면서 분배적 정의가 지닌 정치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리고 8장은 여성장애인양자 모두가 일종의 사회적 구성개념이자 억압의 산물임을 논하면서, 집단 정체성의 유의미성과 한계, 정체성 정치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있다.

 

3부 윤리학의 첫 두 장에서는 농()치료및 예방이라는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이슈가 다루어진다. 9장은 인공와우 시술을 옹호하는 소위 열려 있는 미래론을 농아동의 언어권이라는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으며, 10장은 농배아’(deaf embryo) 선택에 활용되는 생식 및 진단 기술과 유전상담의 윤리를 논의하고 비지시적 절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11장에서는 장애 관련 법률의 형성에서 의료적 담론의 영향력이 구체적인 판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이는 소위 삶의 질이나 최선의 이익평가가 어떤 식으로 의료 권력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2장은 장애와 관련된 가장 첨예한 이슈라 할 만한 산전 선별검사와 선별적 낙태를 다룬다. 선별검사를 정당화하는 자율성이라는 논거가 전반적으로 재검토되며, 장애를 중심으로 한 논의와 적절한 산모보건을 중심으로 한 논의를 결합할 경우 각각의 관점 내에 존재하는 비판적 잠재력이 강화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3장은 아감벤의 이론적 작업에 의지해 장애인의 사회적 배제를 논한다. 앞선 장애서 논의된 산전 선별검사 및 선별적 낙태와 더불어 정신장애인의 정신병원 수용, 낯선 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심리-정서적 장애차별주의가 호모 사케르예외상태라는 개념틀 속에서 독창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장애의 존재론부터 현재적 논쟁들까지 다루는 종합적인 책

비단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장애 그 자체에 관한 논의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인격체와 비인격체를 가르는 경계가 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책속으로

분명히, 표준에서 벗어난 신체적 이상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그 이상이 핸디캡으로 규정되는지 재능으로 규정되는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비정상적인 큰 키라는 신체적 이상이 비록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는 핸디캡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예컨대 기수나 발레리나가 되는 데 있어서는),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될지도 모른다.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정받고 매우 높은 보수가 지급되는 농구선수나 슈퍼모델이 되기 위한 경우라면 말이다. , 이러한 비정상적인 특성과 관련된 사회적 구성의 과정은, 비록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는 그 특성을 핸디캡으로 규정하지만, 적어도 일정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재능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 p.56

 

대개 사람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통증과 고통을 포함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경험에 대해 반응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며,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결국 그와 같은 반응과 배움이 모여 보다 풍부한 삶으로 이어지게 된다. 누구도 고통스러운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 수는 있지만, 반면에 완전히 고통이 없는 존재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타당하게 결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나의 좀 더 진전된 주장은 통증과 고통에 대한 이런 이해인간의 행위주체성과도 관련되어 있는, 지금까지 살펴본 의료적 모델이나 사회적 모델보다 인간의 경험에 대해 좀 더 미묘한 차이를 부여하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확실히, 손상을 지닌다는 것이 반드시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삶으로 이어진다는 장애에 대한 어떠한 환원주의적 해석도 차단해 준다.

--- p.63

 

미적 속성은 누군가의 판단은 온당하고 다른 이의 판단은 온당치 않다고 확신하는 것이 가능한 종류의 속성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예술계에 늘 의견의 불일치가 상존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이유이며, 그러한 예술계에서 비평가들은 특정한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해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판단은 진정한 논쟁에 대한 여지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사실의 문제(‘이 방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다’)에 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미학적 문제에서의 판단이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엥겔하르트가 제기한 단호한 주장은 거의 확실하게 그릇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래퍼의 조각상과 그것이 유발했던 엇갈린 반응은 나의 견해에 얼마간의 힘을 더해 준다.

--- p.93

 

하나의 대안적인 출발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가 태아에게 일정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해야만 한다고 여긴다는 사실일 것이다. 여성들이 낙태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 없이 요구만 하면 낙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여전히 여기에는 모종의 사적인정당화에 대한 암묵적 필요가 존재한다. 임신이 예기치 않게 잡힌 그리스 섬에서의 휴가와 부딪친다는 이유로 낙태를 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충분한 정당화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추정된) 부담이 일반적으로 태아에게 부여되어 있는 어떤 종류의 도덕적 가치를 능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어렴풋한 도덕성 관념은 낙태를 통해 장애를 예방하는 것에는 도덕적 비용이 수반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나는 그 도덕적 비용이 인격체의 살해임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정한 도덕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공통적 직관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 p.415~416

 

차별에 저항하라 저자 김도현|박종철출판사 |2007.04

 

목차

책을 내며

추천의 글 -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역사를 위하여 / 박경석

추천의 글 - 난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 박김영희

서장 - 역사는 기록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1장 장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시작(1987년 이전)

1. 실질적인 장애인 운동이 없었던 1960~1970년대

2. 대중적 장애인 운동의 맹아가 형성된 1980년대

2장 청년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태동(1987~1993)

1. 장애인의 고용과 생존권 보장을 위한 '양대 법안 투쟁'

2. 장애인 시설과 관련한 투쟁과 대응

3. 장애인 교육권의 법적 보장을 위한 투쟁

4. 울림터와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에 대하여

3장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과 좌절(1994~2000)

1.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악 저지 투쟁과 노동권 확보 투쟁

2. 장애인 노점상들의 죽음과 그에 이어지는 투쟁들

3. 에바다복지회 비리 재단 퇴진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

4. 전문 영역을 맡는 장애인 단체와 장애 여성 운동 단체의 등장

5. 장애인 연합 조직의 결성과 갈등

6.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에 대하여

4장 현장 대중 투쟁의 복원과 새로운 전망의 제시(2001년 이후)

1. 이동권의 확보를 위한 투쟁과 장애인이동권연대

2. 최옥란 열사의 최저 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투쟁과 이후의 연금법 제정 운동

3. 차별 없고 평등한 교육을 향한 장애인교육권연대의 투쟁

4.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5. 사회 복지 시설의 민주화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투쟁

6. 장애인자립생활운동과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투쟁

7.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4·20투쟁'

8. 그 밖의 투쟁과 활동들

9. 제도권 내 주류 장애인 단체의 새로운 양상들

1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비위원회에 대하여

5장 한국사회 장애인 운동의 현재와 향후 과제

1. 장애 문제와 장애인 운동, 그 비동시대성

2. 2006년 이후 한국의 장애인 운동이 대비해야 할 객관적 국면

3.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지속을 위한 기본적 과제

참고 문헌

장애인 운동 관련 주요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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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reme 外  - Angela Carra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