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저자(글) · 왕수민 번역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06월
Jeff Goodell-전 지구를 가로지르며 참혹한 기후 재앙의 현장을 전해온 최전선의 기후 저널리스트. 2001년 미국의 석탄 산업에 관한 탐사보도를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기후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어왔으며,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에너지 문제에 관한 전문 언론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구델은 《롤링스톤》, 《뉴욕타임스매거진》, 《뉴리퍼블릭》, 《와이어드》 등에 기고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해왔다. NPR, CNN, CNBC, ABC, Fox News 및 〈오프라 윈프리 쇼〉 등에 출연했고,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알래스카에 방문하여 나눈 기후위기와 정책에 관한 인터뷰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대서양협의회(Atlantic Council)의 선임연구원이며 2020년에는 역량이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수여되는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았다.
『폭염 살인』은 극한 더위가 인간의 신체와 일상,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하게 파헤친 기후 재난 탐사서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한 책으로 화제가 되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밖에 지은 책으로는 2019년 기상학회에서 수여하는 루이스 J. 배턴 저술상 수상작 『물이 몰려온다(The water will come)』를 비롯하여 『빅 콜(Big Coal)』, 『행성을 식히는 방법(How to Cool the Planet)』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낭만은 끝났다
모든 것을 질식시키다 │폭염 앞에 비로소 평등해질 세계 │여름의 낭만은 끝났다 │더 잦은 전쟁과 더 많은 죽음 │진화의 속도를 앞지르다
1장 일가족 참변
일가족 사망 현장 │오전 7시 44분, 섭씨 21도 : 하이킹 시작 │오전 10시 29분, 섭씨 38도 │열탈진이 왔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일 │오전 11시 56분, 섭씨 41.6도 : 인명 구조 요청 │열사병, 죽음의 연쇄 반응 │더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2장 열과 진화
포유류의 열 관리 전략 │최초의 인간 루시를 걷게 만든 것 │진화의 동력 │사바나 침팬지의 생존법 │땀 흘리는 자가 지배한다
3장 열섬
아스팔트, 콘크리트, 강철의 제국 │첸나이, 폭염 도시의 비극 │무더위 쉼터 │폭염에 갇힌 저소득층 아파트 │기온, 계급과 인종을 가르는 지표
4장 기후 이주
허리케인의 생존자들 │열에 의한 대이동과 생태계 교란 │적응할 수 있다는 착각 │전 지구적 기후 이주 │국경보다 더 삼엄한 장벽
5장 범죄 현장
극단적 폭염 │열의 이해 │럼퍼드의 발견과 열역학 법칙 │기후과학의 역사 │극단적 이변 원인 규명 과학
6장 마법의 계곡
옥수수가 사라지면 │식량 공황은 이제 시작이다 │마법의 계곡 │길어지는 농한기 │무너지는 옥수수 공화국 │더는 심을 작물이 없다 │열을 이기는 유전자 조작 식량
7장 해양 폭염
재앙을 몰고 다니는 블롭 │기후 체계를 움직이는 바다 │바다의 사막화 │산호초 백화현상
8장 땀의 경제
어느 이주 노동자의 죽음 │온열 질환과 사망 방지법 │더워도 쉴 수 없다 │흑인은 더위에 강하다? │고작 그늘과 물, 10분의 휴식
9장 세상 끝의 얼음
남극행 1일 차, 빙붕이 무너진다 │잠자는 코끼리 │드레이크 해협 진입 │5미터의 재앙 │어머니 자연의 분노 │훌륭한 연구 조교 │열은 세상 모든 것에 닿는다
10장 모기라는 매개체
모기를 매개로 한 질병 │전례 없는 팬데믹의 폭발 302│야생의 대탈출과 바이러스 종간 전파 │감염병의 온상 │진화하는 모기들 │살인 진드기
11장 값싼 냉기
킹 오브 쿨 │에어컨의 발명 │에어컨 경제, 그리고 매릴린 먼로 │에어컨, 미국 정치 판도를 뒤집다 │에어컨 의존의 악순환 │정전은 곧 죽음 │훌륭한 지혜를 잊어버리는 기술 | 에어컨의 안락함에 중독된 세계
12장 폭염 경보
운명을 바꾼 사진 한 장 │폭염의 이미지를 찾아 │보이지 않는 살인자를 수배하는 법 │폭염에 이름을 붙이다 │알리고 또 알려도 충분하지 않다
13장 행동 강령
그해, 파리의 여름 │리모델링하는 도시들 │더 이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도시 │더, 더 많은 나무들 │가난한 지역에는 나무가 없다 │도시 신진대사 개선 작업
14장 북극곰
북극곰과 마주치다 │굶주린 곰이라는 이미지 │최악의 시나리오 │지구 기후 조작 기술 │위험천만한 여행 │곧 녹아 없어질 세상 끝에서
에필로그 위대한 이야기
골딜록스 존 너머의 미래 │아주 오래된 미래 위에서
감사의 글/용어 해설/주
출판사 서평
■ “남극부터 파키스탄까지, 열국 열차를 타고 달궈진 지구를 돌아보는 듯한 충격”
폭주하는 더위의 참상을 미리 목도한 기후 저널리스트의 폭염 대탐사
2024년 5월, 멕시코 남부 연안에서 유카탄 검은짖는원숭이 83마리가 높은 나무에서 사과처럼 우수수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증세였다. 2021년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서는 아직 날 줄도 모르는 새끼 독수리 수십 마리가 불구덩이처럼 달궈진 둥지 위에서 투신했다. 묵시록의 한 장면 같은 죽음은 인간도 피할 수 없었다. 2019년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50만 명에 육박했다. 그중 자신이 ‘더워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년간 기후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은 폭염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폭염 살인(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은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던 2023년, 기후과학자들의 예측을 벗어나 폭주하던 더위를 예견이라도 한 듯 출간되며 미국 내 화제가 되었다. 저자는 수년간에 걸쳐 남극부터 시카고, 파키스탄부터 파리 등을 오가며 폭염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해왔다. 평균기온 섭씨 45도 생존불가지대에 살아가는 파키스탄 시민, 야외 노동 중 희생당한 멕시코인 노동자와 미국 옥수수 농장의 농부들, 그리고 수십 명의 기후과학자부터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까지 그들의 처참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일상과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기원과 실태를 정교한 필치로 그려낸 폭염 르포르타주다. “추락하는 새부터 허덕이는 물고기, 말라버린 작물, 쓰러지는 노동자, 졸도하는 도시 산책자”에 관한 그 생생한 묘사는 여전히 ‘폭염 불감증’ 상태인 우리에게 “영화 〈설국열차〉가 얼어버린 지구 위를 돌 듯 뜨겁게 달궈진 지구 위를 ‘열국 열차’를 타고 도는 듯한 충격”(김지수)을 안겨줄 것이다.
■ “폭염으로 인한 사망, 전 세계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 합계를 앞질렀다”
폭염 사망자 50만 시대, ‘폭염 불감증’에 걸린 우리를 향한 강력한 최후통첩
사람의 몸에서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면 열사병에 이르듯, 지구도 열사병을 앓는 중이다. 극한 더위를 가리키는 폭염(heat wave, 暴炎)은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제트기류의 흐름이 지구온난화로 예측 불가하게 꼬이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기후 재앙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폭염의 기습은 더 잦아지며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폭염이 일어날 확률은 산업화 시대 초기에 비해 150배나 높아졌고, 산불이 난 듯 치솟은 바다 온도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프롤로그). 2019년 기준 48만 9000명에 달하는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허리케인과 태풍, 수해 등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훨씬 웃돈다.
그럼에도 설마 자신이 더위로 죽기야 하겠냐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폭염 불감증’ 상태다. 질병관리청은 2023년 한국의 온열질환으로 인한 환자는 3.5배 증가했고, 사망자수는 32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간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산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더위’가 여름의 낭만이 아니라 지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 그 자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기와 해류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열 관리 시스템’이며 열역학의 원칙에 따라 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2022년 태평양 북서부 연안을 기습한 폭염으로 인해 하이킹을 떠난 일가족이 단 4시간 만에 죽음을 맞이했듯, 열을 내는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한계치인 습구온도 35도를 넘으면 고체온증을 겪다가 순식간에 열 경련과 열사병으로 치닫는다(1장).
열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abortion)이 늘어난다. 혐오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고 강조하며 우리의 폭염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
■ “에어컨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라”
미국 대선 판도를 바꾼 에어컨, 서늘한 기온은 계급과 집값을 나누는 새로운 지표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우리가 폭염 불감증에서 더욱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에너지 효율 관련 비영리단체 RMI에 따르면 전 세계에 설치된 에어컨은 10억대 이상으로 인구 7명 중 1명꼴로 에어컨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2050년이면 에어컨은 스마트폰보다 흔해진다. 에어컨의 인기는 무더운 기후로 외면 받던 미국 남부로 북부 인구를 대거 이주시킬 정도였는데, 1940~1980년대 사이에 민주당 텃밭이었던 선벨트 지역에 보수 성향의 은퇴자들이 물밀 듯 몰려들며 대선 판도를 뒤엎었다고 저자는 밝힌다(11장). 문제는 에어컨의 인기로 인해 폭발적으로 상승한 전력 수요는 대규모 정전을 야기하는 동시에,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가 폭염을 가속한다는 사실이다.
에어컨이 미국 대선 판도를 바꿨듯, 시원한 실내 온도는 폭염 시대에 계급과 집값, 인종을 나누는 새로운 지표가 된다. 저자의 증언에 따르면 포틀랜드 최악의 빈민가인 렌츠의 기온이 섭씨 51.1도를 찍었을 때 나무숲이 우거지고 평균 집값이 100만 달러에 달하는 주변 부유층 주거지의 기온은 37.2도에 불과했다. 2003년 8월, 약 2주간 파리에 급습한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1만 5,000명 중 상당수는 함석지붕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다락방에 홀로 거주하던 이들이었다. 당시 시 당국은 넘쳐나는 시체를 보관할 장소를 찾지 못해 식품 창고와 냉동 트럭까지 강제 징발해야 했다(8장). 극한 더위 속 열악한 야외 노동에 내몰리는 사람들 역시 폭염 시대의 계급론을 떠올리게 한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가족의 생존을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50도의 폭염이 덮친 인도의 도시 첸나이의 이야기는 한국의 상황을 반추하게 만든다(3장).
■ “대파 파동은 시작일 뿐, 식탁 위의 모든 것이 씨가 마른다”
식탁 물가 폭등부터 GDP 증발까지, 폭염 시대의 잔인한 나비효과
22대 총선의 승패를 가른 대통령의 875원 대파 발언은 치솟은 물가와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졌다. 1만 원에 육박하는 사과와 양배추, 무의 가격은 치솟는 식탁 물가를 실감하게 만든다. 탄소 발생의 주범이자 더위에 취약한 소와 돼지, 닭 등의 축산물은 제일 먼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2023년 식량 불안정에 처한 인구는 3억 4,500만 명에 달할 것이며 2050년에 이르면 인구 절반이 굶주리게 된다.(6장)
저자는 한때 풍요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매직 밸리(Magic Valley)’, 리오그란데 계곡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텍사스 옥수수 경작지를 찾아가 절망하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옥수수는 동물의 사료와 휘발유의 원료 등으로 쓰이는 옥수수 생산량의 감소는 에너지 생산 시설과 유통망의 마비를 의미하며, 이는 곧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다. 옥수수뿐 아니라 밀, 보리, 쌀 등의 식량 공황이 역사 속에서 전쟁과 내전, 혁명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폭염의 극단적인 나비효과 속에서 변하는 건 우리 식탁의 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받아든 폭염이라는 청구서에 자비는 없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기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GDP의 약 1퍼센트인 3000억 달러(약 4조 원)가 증발한다. 폭염 아래 야외 노동은 불가능하고, 설비의 고장 역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에서 극단적 더위로 인한 노동자의 생산성 저하는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불러왔고 이 손실액은 2050년 5,0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같은 생산 시설과 노동 생산성의 지속적인 감소 끝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생존마저 위협하는 마트의 ‘가격표’다.
■ “폭염을 피한 기후 이주의 시작, 코로나19는 순한 맛에 불과했다”
야생의 대탈출, ‘벚꽃 모기’와 진드기의 창궐까지 새로 쓰는 질병 알고리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도 벌어지고 있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약 20킬로미터씩 북상하고 있으며, 대서양대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160킬로미터, 산호마저도 매년 약 32킬로미터씩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남극의 붕괴를 처음 포착한 기후학자 존 머서(John Mercer)는 서남극의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5미터 상승하면 플로리다와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 이미 경고한 바 있다(9장). 인천, 부산 등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의 서막일 뿐, 폭염은 질병 알고리즘을 새로 쓰고 있다. 전염병 매개체들의 서식지가 북상하며 인간 서식지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콜린 칼슨(Colin Carlson)은 이를 ‘매혹적인 첫 만남’이라고 일컫는다. WHO는 2080년에 이르면 전 세계 인구의 60퍼센트가 대표적인 모기 매개 질병인 뎅기열에 감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드기 역시 매년 48킬로미터씩 북상하고 있는데, 사슴진드기가 옮기는 라임병 환자는 따르면 1990년대 말 이래 3배 증가했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에볼라바이러스와 광견병을 옮기는 박쥐도 마찬가지로 인간과 조우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히려 인류에게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19는 치사율이 75퍼센트에 이르지도, 눈과 장기에서 피를 쏟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10장).
■ “구워지든지, 도망치든지, 아니면 행동하든지”
폭염 브랜딩과 도시 리모델링, 그리고 폭염 살인의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한 기후 행동
기후위기 음모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는 사실이다. 화석 연료 기반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의 기온을 바꿀 수 있지만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2024년 현재 82%로 여전히 증가세다. 2023년 미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생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거대 석유회사 BP는 탄소배출량 35% 감소 약속을 철회했고, 엑손모빌은 바이오연료 생산 지원을 중단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화석연료 비중이 OECD 국가 상위권으로, 화석연료 투자 세계 2위 국가다.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인해 대한민국은 1인당 43만 원의 비용(IEEA)을 추가 지불해야 하지만, 문제는 폭염의 청구서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단적 이변 원인 규명 과학’을 창시한 지구물리학자 마일즈 앨런(Myles Allen)은 말한다. “머지않아 기후과학이 더 발전해 폭염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힐 수 있게 되면,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 수 있을 것”이라고.(5장)
저자는 진화사부터 산업구조, 질병 알고리즘, 기후과학을 망라하며 살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와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특히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스페인의 세비야는 폭염에 ‘소에(Zoe)’라는 이름을 붙이고 적극 알린 덕분에 과거 하루 14~15명에 달했던 폭염 사망 건을 막을 수 있었다.
불과 20년 뒤면 전 세계 인구 70%가 살게 될 도시의 모습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강철 그리고 실외기로 가득 찬 도시는 열을 가두는 찜통 그 자체다. 뉴욕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어 도시에 그늘을 만들었고, 세비야는 지하수로 기술을 활용해 도시를 식혔다. 전 세계 국가들이 폭염에 대비해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이때, 천만 도시 서울은 어떠한가? 과연 ‘폭염 살인’을 잘 대비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북극에 스키 여행을 떠났던 저자는 먹이를 찾아 인간의 거주지로 찾아든 북극곰과 직면하게 되었던 그 순간, ‘죽음 직전에 사형 집행이 연기된 죄인이 된 것 같았다’고 소회한다. 우리 모두가 이 폭염 살인의 공범자임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 그러나 저자는 『안네의 일기』처럼 우울한 묵시록에도 불구하고 절망은 이르다고 말한다. 2023년 출간 당시 저자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우리는 이대로 끝장인가요?”였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지구가 살 만한 별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팔을 걷어붙이고 싸워라.”
책 속으로
게리시, 정, 미주 그리고 오스키가 당한 참변은 단순히 그날 이 가족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야생에서 어설픈 결정을 내린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사건은 급속도로 온난화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울러 더위의 본성 자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우리 모두의 과오가 빚어낸 비극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런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첨단기술이 발전한 세상에 살고 있고, 따라서 자연의 난폭한 힘은 이미 다 길들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장 〈일가족 참변〉 중에서
우리 몸에서 털이 빠지고 에크린샘이 발달한 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다. 그 중요성은 연장과 불의사용에 견줄 정도다. (중략) 하지만 인간의 열 관리 전략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제껏 만 년 남짓 살아온 이른바 골딜록스 존의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재빠르게, 그러니까 진화의 선택이 따라잡기 힘들 만큼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이들 전략도 이제 한물간 유물이나 다름없다. -2장 〈열과 진화〉 중에서
피닉스에서 기온은 계층, 재산 그리고 종종 인종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피닉스에서 부자라는 것은 큰 집에 살면서 에어컨을 최대한 틀고 아주 차가운 마티니를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온이 무려 46℃에 육박했던 7월 어느 오후에 만난, 아이 넷을 키우는 46세의 싱글맘 레오노 후아레스처럼 궁핍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남부 피닉스에서 생활하면서 박봉을 쪼개 무더운 여름밤 한두 시간이라도 에어컨을 틀 수 있길 바란다는 뜻이다.-3장 〈열섬〉 중에서
푸트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산화탄소 같은 특정 종류의 가스가 열을 잘 붙잡아둔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폭염을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은 약간의 온난화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믿었다. (중략)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의 균형’ 덕분에 온난화로 인한 재앙은 불가능할 것이고, 설령 인간 산업의 ‘진보’ 때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인간에게는 전부 좋을 거라고 가정했다.-5장 〈범죄 현장〉 중에서
옥수수는 미국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산업적으로 반드시 비축돼 있어야 할 식량이다. 우선 우리가 아침에 먹는 시리얼부터 아이스크림까지 가공식품을 만들 때는 옥수수 시럽이 필요하다. 또한 옥수수는 가장 중요한 사료 원료다. 다시 말해 동물들이 엄청난 양의 옥수수를 먹어야 동물성 단백질이 생산된다. 맥도널드 햄버거는 사실상 맥도널드 콘버거인 것이다. 옥수수는 여러분을 맥도널드까지 가게 해주는 연료이기도 하다. 아이오와에서 재배되는 옥수수의 절반 이상은 결국 에탄올로 바뀌어서 휘발유와 함께 연료로 쓰인다. -6장 〈마법의 계곡〉 중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기 정화가 되고 햇빛이 누그러진 실내에서 일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집과 다리를 고치고 소포를 배달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1,500만 명이다.-8장 〈땀의 경제〉 중에서
텍사스에서는 기온이 0.5~1℃ 올라봐야 별로 체감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극에서 0.5~1℃의 변화는 물이 되느냐 얼음이 되느냐, 빙하가 안정을 유지하느냐 붕괴하느냐를 결정짓는다. 전 세계의 연안 도시에 자리 잡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0.5~1℃에 따라 해변에 근사한 풍경이 펼쳐지느냐 내 집 거실에 1미터의 물이 차오르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 남극에서처럼 더위가 우리 미래에 커다란 힘을 미치는 곳은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다. -9장 〈세계 끝의 얼음〉 중에서
전 세계의 에어컨 수요는 식을 줄 모른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1인용 에어컨만 해도 총 10억 대가 넘는다. 이 정도면 일곱 명 중 한 명은 에어컨을 가진 셈이다. 2050년 에어컨은 45억 대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휴대전화만큼이나 흔해지는 셈이다.-11장 〈값싼 냉기〉 중에서
2003년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폭염의 직접적 결과로 사망한 사람만 1만 5,000명이었다. 그중 파리 도심에서 살았던 사람들만 거의 1,000명에 달했다. 혼자 살거나 맨 꼭대기층의 다락방, 다락방식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집들에서는 함석지붕 아래에 열기가 쌓이면서 마치 오븐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사람을 말 그대로 통째로 익히기 때문이다. 폭염에 희생당한 시신을 전부 발견하기까지는 몇 주가 걸렸다. 시신이 발견된 아파트는 구석구석에 배인 시체 냄새를 빼느라 한동안은 동 전체를 비워야 했다.-13장 〈행동 강령〉 중에서
“열사병, 탈수로 인한 비극이었다”
▶ 하이킹중 사망 한인 일가족 사건 관련
▶ SF크로니클 조사보고서 입수해 보도
지난 8월 숨진 채 발견된 한인여성 일가족
지난 8월 시에라 국유림 하이킹 지역에서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된 한인여성 일가족의 사인은 열사병과 탈수증이었던 것으로 결론<본보 10월 23일자 보도> 내려졌으나 3일 SF크로니클은 입수한 77페이지 조사 보고서를 통해 전문가들의 분석 내용과 이들이 죽음을 맞게 된 비극을 재조명했다.
전문가들은 109도의 폭염에 가파른 경사로를 하이킹하는 것의 위험성과 일가족이 마실 물이 바닥난 상태였다는 것을 수사관들에게 지적했으며, 열사병으로 뇌와 장기 기능이 멈춘 것으로 보았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 산림청 자원봉사자는 일가족이 하이킹한 폭염 상황에는 성인 부부에게 320온스, 딸과 반려견에게 각각 16온스의 물이 필요했다면서 그러나 이 부부는 총 84온스의 물만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열사병 환자를 치료하는 모데스토의 한 의사는 열사병에 걸리면 몇시간내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수사관들에게 말했다면서 물 부족 및 휴대폰 서비스가 터지지 않아 구조를 요청할 수 없었던 상황 등으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세 가족과 그들의 개가 죽은 채 발견된 마리포사 마을의 북동쪽 외딴 협곡 지역. /사진제공=AP/뉴시스
한 구조대원 트레이너는 “방심하고 있다가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고 아이와 서로를 구하려다 숨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이가 먼저 위험해지자 부모들이 서둘러 언덕을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 한쪽은 아이와 애완동물을 돌보기 위해 남아있고 다른 한쪽은 구조를 요청하려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8월 17일 하이킹에 나선 한인여성 엘렌 정(31)씨와 남편 존 게시리(45), 1살된 딸, 반려견이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돼 수사당국은 두달간 사망 현장 인근의 강에서 확인된 녹조류의 독성 물질에 노출 사망, 등산로 인근 폐광에서 나온 유해가스에 중독 사망, 낙뢰로 인한 사망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으나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요가 강사이자 대학원생이었던 엘렌 정씨와 스냅챗 엔지니어인 존 게리시는 팬데믹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리포사로 이주해 이곳에서 4채의 주택 구입해 에어비앤비 임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일보 미주 <신영주 기자> 21.12.6
폭염 속 내 인생을 살리러 온 기후 파괴자, 에어컨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기후재난 시대 보급률 98%의 '필요악' 에어컨
가장 흔한 냉매가 이산화탄소 수천 배 악영향
적정온도 유지·선풍기 함께 쓰기 등 실천 중요
과학산업계는 "친환경 냉매 찾자"며 고군분투
지난해 5월 15일 서울 시내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에어컨 보급률이 손꼽히게 높은 편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91%), 미국(90%), 한국(86%) 순이었어요. 그 밖에 사우디아라비아는 63%, 중국 60%, 유럽 10%, 인도 5% 등이었습니다. 하상윤 기자
우리나라 집 100가구 중 98가구가 가지고 있는 가전제품.
기후위기 시대에 없이 살 수 없지만, 쓰면 쓸수록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필요악.
무엇인지 짐작 가시나요. 바로 에어컨입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전기밥솥(97%)과 전자레인지(96%)보다 높았어요. 1993년만 해도 보유율이 6%에 불과했지만, 한 세대 만에 가가호호 없는 집 없는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이죠.
해를 넘길수록 '역대 최고 기온', '역대급 폭염'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기후재난 시대에 에어컨 의존도는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매년 폭염 때면 에어컨을 발명한 미국의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를 신처럼 추앙하는 유머 게시글이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니까요.
냉방에 年 이산화탄소 19억 톤 배출, 전체 4%
폭염이 한창인 지난해 8월 7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개문(開門) 냉방'을 하고 있는 가게들 앞으로 시민들이 양산을 쓰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 분석에 따르면 문을 열어놓고 냉방을 할 경우 문을 닫았을 때보다 전력 소비량은 66% 늘고, 전기 요금은 33% 증가합니다. 자원 낭비인 것이죠. 상가 개문 냉방은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지만 실상 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최주연 기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후위기 시대 에어컨은 '내 인생을 살리러 온 기후 파괴자' 같은 존재예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비량이 큽니다. 시스템 에어컨의 시간당 전기 소비량은 1.1kWh(킬로와트시)로, 선풍기(강풍) 전기 소비량 35~55Wh(와트시)의 20~30배에 달합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오직 냉방을 위해 전 세계 전기 사용량의 10%가 사용되며 연간 국제 온실가스 배출량 4%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19억5,000만 톤이 배출됩니다. 특히 한국은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65.5%에 달해, 50%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문제가 있고요.
② 6대 온실가스 중 하나인 수소불화탄소(HFCs) 냉매도 문제예요. 에어컨은 액체 상태 냉매가 기화할 때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현상을 이용하죠.
그런데 현재 가장 흔한 3세대 HFCs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악영향(지구온난화지수·GWP)이 수천 배에서 최대 1만4,800배에 달해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냉매는 가전제품 생애주기 동안 조금씩 누출돼, 제품 폐기 단계에 이르면 초기 충전량의 80%가 배출됩니다. 스멀스멀 냉매가 공기에 유출돼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2016년 '키갈리 의정서'를 채택해 HFCs를 점차 줄이기로 했어요. 과거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CFCs) 사용을 금지한 몬트리올 의정서(1989)의 연장선입니다.
매일 1시간 덜 틀면 연간 탄소 배출 14㎏ 저감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올해 4월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가전코너에 에어컨과 선풍기가 진열돼 있습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이 주에 판매된 에어컨이 전년 동기 대비 약 50% 늘었다고 해요. 선풍기와 서큘레이터도 동기 대비 수요가 각각 2배, 2.5배 늘었고요.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예전에는 6~8월 한여름에나 틀던 에어컨을 4월, 5월부터 튼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뉴시스
③ 마지막 이유는 폭염과 에어컨 간 돌고 도는 악순환에 있어요. 기후재난으로 인한 폭염이 심해질수록 냉방 수요는 늘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면 기후위기는 더 심해집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8년 5월에 낸 '냉방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냉방 에너지 수요는 2016년 대비 3배 폭증할 전망입니다. 에어컨 찾기가 어렵던 유럽도 최근 '40도 폭염'이 연례행사처럼 되면서 수요가 늘었고,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도 소득 수준 향상에 더해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폭염' 탓에 에어컨 구매량이 늘고 있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어컨을 펑펑 썼다가는 당장 올여름 받을 '냉방비 폭탄' 전기요금 고지서만 문제가 아니라 5년 뒤, 10년 뒤, 30년 뒤 우리가 살고 있을 미래와 후대에 '기후재난 빚 폭탄'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에어컨 필터 청소만 깨끗하게 해줘도 작은 기후행동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묵은 에어컨 필터에 쌓인 이물질, 먼지, 곰팡이 등을 한 번 싹 청소하고 사용하면 기관지에 좋을 뿐만 아니라 냉방 효율이 올라가거든요. 에어컨 필터를 주기적으로 청소해주면 평균 3% 에너지 사용을 절감해 연간 약 1.2㎏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래서 에너지를 절약해 에어컨을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처음 켤 때 '강하게 저온으로' 틀었다가 이후 온도 올리기 △26~28도 실내 적정온도 유지하기 △선풍기·서큘레이터와 함께 사용하기(전기료 20% 절감) △필터 깨끗하게 청소하기(효율 제고) 등입니다. 애초 구매할 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는 것도 중요하겠고요.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에어컨을 하루 3시간, 연간 47일 정도 튼다고 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101㎏인데요. 매일 1시간만 사용을 줄여도 연간 배출량이 14㎏ 줄고, 이는 나무 2.1그루를 심는 효과에 맞먹어요. 냉방 온도를 평소보다 2도 높이면 5.3㎏, 에어컨 필터를 제때 청소만 해도 1.2㎏를 저감할 수 있고요.
친환경 냉방 기술도 중요하지만 "욕구 변해야“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2003년 7월 15일 에너지시민연대가 서울 중구 명동에서 개최한 '적정 실내온도 27도 지키기' 캠페인에서 참여 학생들이 펭귄과 북극곰 분장을 한 채 이상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 상황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자는 이 사진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 문제는 '극지방 빙하가 녹아요'라며 야생동물 서식지와 생물종 다양성을 걱정하는 정도의 문제였죠. 하지만 지금은 기후위기가 전 인류의 생존 문제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른 기후위기 해법이 그렇듯, 산업적·기술적 해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온실가스를 덜 내뿜고 에너지 효율도 좋은 에어컨 개발이 필요한 거죠. 한 예로 스타트업 '블루 프런티어'는 냉매 대신 소금 용액을 액체 제습제로 이용해, 기성 에어컨보다 전기 사용을 50~90% 줄인 에어컨을 개발 중입니다. 기후위기에 진심인 빌 게이츠가 이 회사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대요.
국내에서는 한국기계연구원이 지난해 암모니아, 물 같은 친환경 냉매를 에어컨이나 히트펌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화학적 방식의 냉매 압축 기술을 개발했어요. 연구팀을 이끈 김영 기계연 책임연구원은 "기존 기계식 압축기는 냉매 누설 가능성이 있는 반면, 전기화학적 방식은 무소음·무진동·오일프리라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암모니아를 쓰면 냉방장치 규모가 기존보다 커지게 돼서 건물 단위 냉방 장치 등 전체적인 시스템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기술이 언젠가 문제를 해결해주겠지'라며 안심하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올해 2월 발표된 웨스턴호주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 폭이 이미 기후변화 '티핑 포인트'인 1.5도를 넘어섰고, 수년 내로 2도마저 넘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와요.
그래서 에어컨 냉매의 악영향을 파고든 책 '일인분의 안락함'에서 작가인 에릭 딕 윌슨은 여름철 우리가 바라는 쾌적함, 안락함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본인도 과거에는 "27도 아파트에서도 살고, 일하고, 자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에어컨을 7월 중 가장 더운 이틀만 사용"하게 됐다면서요.
광범위한 집단적 사회 변화와 법(개정)이 없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기로 한 나의 개인적인 선택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광범위한 변화와 법(개정)이 개인적 욕구의 변화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일인분의 안락함' 574쪽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2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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