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저 | 김영사 | 2024년 06
저 : 변재원 아쿠아리움 진료 수의사와 동물병원 응급 수의사를 거쳐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 사단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반려 강아지 몬돌이의 심장병을 고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의사를 꿈꿨고, 군 복무 시절 잠수사 생활을 하다 바닷속 풍경에 매료되어 아쿠아리움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동물을 상품이나 전시품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동물원을 찾다가 지금의 청주동물원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동물도 사람도 행복한 동물원을 꿈꾸며 청주동물원에서 김정호, 홍성현 두 수의사와 함께 약 70종, 300마리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 아쿠아리움에서
해양 동물 수의사를 꿈꾸다 │ 카멜레온의 죽음 │ 꼬리 없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 │ 카메라 앞에 선 수달 │ 살아난 홍따오기 │ 물범의 임신 │ 아기 물범의 탄생 │ 바다코끼리의 치과 수술 │ 비버의 죽음 │ 눈병 걸린 바이칼물범 │ 작은발톱수달의 청진기 훈련 │ 재규어와의 인연
2장 청주동물원에서
너구리의 골절 수술 │ 탈출하는 동물 │ 동물원의 강아지 │ 사육 곰의 운명 │ 도도하지 않은 사자 │ 두 마리의 수컷 사자 │ 동물원 밖 야생동물 │ 독수리의 비행 │ 낙하하는 새
3장 동물원의 꿈
사육사였던 수의사 │ 동물 한 마리보다 중요한 것 │ 살리는 일만큼 중요한 일 │ 아픈 동물들의 동물원 │ 동물사와 야생동물 방사 훈련장 │ 사람도 위하는 동물원 │ 애도하는 방법 │ 동물원의 꿈 │ 다음에 올 수의사에게
에필로그 1
에필로그 2
출판사 리뷰
“길들인 것에는 언제나 책임이 있다”
길들여진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의 기쁨과 슬픔
시작은 어릴 적 가족이 된 반려 강아지 몬돌이의 심장병이었다. 동생 몬돌이를 살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수의사를 꿈꿨던 저자는 군 복무 시절 잠수사 생활을 하며 바닷속 자연에 매료되어 아쿠아리움의 해양 동물 수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꿈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동물을 그저 진열 상품 취급하는 국내 동물원·수족관 업계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첫 직장이었던 아쿠아리움을 떠났다. 동물을 치료하는 법을 6년간 배워 동물 소비를 조장하는 시설에서 일하려니 부침이 적지 않았다. 열악한 진료 환경에서 제 손으로 살리지 못해 ‘새 상품’으로 대체된 수십 구의 동물을 향한 죄책감과 회한도 깊었다.
아쿠아리움을 떠나 동물병원의 응급 수의사로 일하며 해외의 야생동물 보호시설로 시선을 돌리던 차였다. 불법 곰 농장의 사육 곰을 도축 직전에 구조했다는 청주동물원 소식을 우연히 기사로 접했다. 동물원·수족관에 비해 선진화된 국내 소동물 진료 환경에서 보통의 수의사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청주동물원 소식을 들으니 다시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인간에게 길들여져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의 더 나은 여생을 위해 노력하는 청주동물원에서 수의사 인생 2막을 열었다.
아쿠아리움의 신입 수의사 시절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로 꼬리를 잃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의 집을 지어주었던 기억, 국내 최초로 실내 사육장에서 태어난 아기 물범의 인공 포육을 위해 아빠 물범처럼 밤새 사육장에 누워 분유를 먹였던 일, 500킬로그램이 넘는 바다코끼리의 치과 수술을 위해 갈비뼈가 부러진 통증도 잊고 수술장을 지켰던 경험까지 기쁨과 보람, 안타까움과 후회 등 다양한 감정이 생생하게 담긴 그의 기록을 읽다 보면 동물과 교감하고 동물의 아픔에 동화되었던 저자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청주동물원에서의 생활은 갈비 사자 바람이를 구조해 진료하고 청주동물원의 터줏대감인 암컷 사자 도도와의 합사를 추진했던 긴장감 넘치는 하루하루, 대형 고양잇과로는 국내 최초로 자궁 절제술을 받고 회복한 도도의 배를 다시 열고 수술해야 했던 때의 걱정스런 마음, 나이가 들어 이제는 자연 방사를 고려하기 어려워진 독수리들을 돌보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고, 그 다정한 시선은 동물원 울타리를 넘어 동물원 밖의 야생동물에게까지 확장된다. 아쿠아리움에서의 기억과 경험을 채찍 삼아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야생동물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매분 매초 고민을 거듭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나도 모르게 청주동물원의 동물과 사람들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반려동물이 주로 찾는 동물병원이 아닌 동물원의 수의사이기에 필연적으로 환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고, 사랑받아서도 안 되는 서글픈 운명이지만 자신의 진료와 관리로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서 삶을 이어가기를, 인간을 향한 경계심과 야생성을 되찾아 자연으로의 방사를 고민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동물원으로 출근하는 변재원 수의사의 발걸음은 오늘도 기운차다.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들어 있다”
세상 모든 동물의 행복한 삶을 바라는 수의사의 꿈
‘동물 입장에서 동물원은 필요 없다.’ ‘야생동물은 소유 대상이 아니다.’ ‘좋은 동물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를 비롯한 청주동물원의 세 수의사와 동물보호단체, 환경부가 모두 인정한 대원칙들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동물원을 전부 없애는 건 다른 문제다. 원칙이 그렇다고 당장 모든 동물원을 없앤다면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져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5만여 마리의 동물은 어디로 가야 할까? 결국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동물을 위한 제대로 된 동물원’이다.
그 뜻에 따라 청주동물원의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수의사를 필두로 변재원 수의사, 홍성현 수의사, 십수 명의 사육사와 행정 담당자까지 전 직원이 열악했던 청주동물원의 개선을 위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외래종의 자연 감소를 위해 중성화 수술을 시작하고, 방사장을 리모델링했다. 더 나은 환경을 갖춘 시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동물 이소를 추진하는 한편 동물원에서 평생을 살다 죽음을 맞은 동물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청주동물원은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다음으로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는 데 이어 우리나라의 첫 거점동물원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제 외래 동물을 구입해다 가두고 관람과 전시를 중심으로 하는 동물원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변재원 수의사가 꿈꾸는 결말이다. 저자는 동물원이 사람의 놀이터가 아닌 동물의 놀이터가 되고, 아프고 병든 동물을 치료하는 병원이자 요양원, 인간에게 터전을 빼앗긴 토종 야생동물의 보호소가 되는 날까지 사람들이 동물원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갖고 부족한 점에는 비판과 질타를, 긍정적 변화에는 칭찬과 응원을 보내면서 그 꿈에 동참해 주기를 당부하며 책에 마침표를 찍는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원이 싫어진 사람이든, 나들이 철이면 즐겁게 동물원을 찾았던 사람이든 동물원 동물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고 깊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자신이 속한 세계의 소멸을 바라면서도 그 세계의 약한 존재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에는 그런 삶의 서글픈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책 속으로
청주동물원은 다치고 병든, 장애를 갖게 된 동물을 적어도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인식과 제도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곧 다른 동물 시설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아픈 존재에 대한 포용까지 배울 수 있는 공간, 이것이 오늘날 동물원의 또 다른 존재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태일이도 그런 시설의 넓은 공간에서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키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피해 내실에서 실컷 자면서 잘 지내다 가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p.38
수의사라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그 순간에 후회와 부끄러움이 남지 않는 처치를 했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면 앞으로는 그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맞았다면 진정 최선의 처치였는지 계속 되뇌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수많은 삶과 죽음을 통해 내 진료의 불완전함을 발견하고 개선해 전보다 나은 진료를 하는 것뿐이다. 자만이나 죄책감, 비애에 취하기보다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이 고마운 삶과 안타까운 죽음에 보답하는 길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p.47
다행히 최근 동물원·수족관법 제정으로 일정 수준의 환경을 갖춘 곳만이 동물원 개장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동물권 인식의 변화, 동물원 업계 관련자들의 노력 덕분에 마구잡이식으로 야생동물을 구입하는 분위기도 대체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야생동물 거래 이야기를 멀리서 들을 때마다 나는 비버의 죽음을 떠올린다. 내 손안에서 힘없이 꺼져간 숨을. 그토록 생생하게 손안에 남은 좌절감과 슬픔, 분노와 후회를.--- p.75
가끔 인공 포육을 받던 아기 잭을 떠올린다. 부디 찰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갑갑한 격리장보다는 엄마처럼 밤낮없이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육사들의 애정 어린 마음만을 기억해 주기를, 혹 먼 훗날이라도 세 번째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온 힘을 다해 치료해 줄 수 있기를, 그때까지 햇살과 바람 가득한 환경에서 재규어답게 지내기를, 동물원의 모든 동물이 자기답게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마련되기를 희망해 본다.--- p.94
관람객이 뜸한 날이면 야생동물 보호시설에 올라가 두 사자가 함께 엎드려 일광욕을 하는 느긋한 풍경을 바라본다. 기나긴 고생 끝에 마침내 편안한 일상을 되찾은 두 사자를 보고 있자면 분주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여유로워진다. 사자들의 한가한 나날이 오래 지속되기를, 두 사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오래 계속되기를 바란다--- p.144
그렇게 동물원을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쉼 없이 애쓰고 있다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이 명패의 이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추모관이 반성의 공간으로, 치유의 공간으로, 발전의 공간으로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동물원에 나이 많은 동물이 적지 않기에 추모관의 빈 벽에는 새로운 이름이 계속 걸릴 테지만, 그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동물원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p.206
돼지나 닭은 안 불쌍해?'라는 물음을 넘어서
하고 많은 권리 운동 중에 '동물권' 운동은 특히나 그 환경이 가혹한 면이 있다. 현 세계에서 재현되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부터 모순적인 데가 많다보니, 동물권을 인식하는 그 순간 많은 이들이 가장 처음 경험하는 건 자기모순일 때가 많다.
혹자는 그 모순을 아프게 조롱하기도 한다. '돼지나 닭은 안 불쌍해?' 가령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사랑이 동물권으로까지 연결될 때, 주로 그걸 비웃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흔히 듣곤 하는 이 말은 그에 담긴 악의와 무관하게 핵심을 관통하는 데가 있다.
비 인간 존재를 끝없이, '효율적'으로,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착취하는 인간사회의 소시민이 동물권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너도 똑같잖아' 하고 말하는 누군가의 비웃음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탈피할 수 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손 닿는 만큼만 노력하고자 해도, 나의 '손 닿는 만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적어도 '보신탕'은 먹지 않겠다는 다짐? 펫샵 불매? 혹은 동물전시 반대? 나를 포함해 공장식 축산에 불편함을 가지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비육식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동물복지 계란을 사 먹는 것으로 불편함을 덜어내는 것이 최선일까?
그 자기합리화마저도 지갑사정에 의해 쉽게 꺾여버릴 때면, '돼지나 닭'을 운운하며 동물권 논의에 파토를 놓는 이들의 목소리가, 사실 적어도 나보다 솔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고 마는 것이다. 위선도 선이라는 한 마디로 나의 위(僞)를 덮을 수 있나.
그러나 모순 속에도 진심은 있다. 수의사 변재원의 책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덜 비겁하고 더 용기 있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동물권 논의는 더디더라도 착실히 발전하고 있다.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언론의 시각은 탁월해졌다. 이제 동물권이라는 단어는 시민사회를 넘어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최근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는 청주동물원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국내 최초의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은 동물의 편의를 고민하고 구조동물을 보살핀다. 그들에게 '전시됨'을 강요하지 않아 '없는 동물원'으로 불린다. 대중에게는 갈 곳 없던 '갈비사자' 바람이가 찾은 안식처로 유명세를 탔다.
저자도 "동물을 상품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동물원을 찾다가" 이곳에 당도했다. 다만 청주동물원은 그가 찾은 고민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고민의 연장선이자 실천과 경험의 이어짐에 가깝다. "훗날 더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의사에게 손에 닿는 한 마리의 동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판'의 양상이고, 한국과 청주동물원은 겨우 그 판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에 섰을 뿐이니까.
책은 이를테면 비슷한 고민을 해오고 해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격려이자 응원과 같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모순을 고민하는 다른 모든 이들처럼, 손에 닿는 동물들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저자 또한 자책과 분노와 후회를 경험해왔다.
품 안에서 죽어간 비버가 '새 상품'으로 교체될 거라는 턱 없는 위로에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는 자기고백. 자해로 꼬리를 잃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태일이'를 필사의 노력으로 보호하고도, 태일이가 옮겨가는 시설에 대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대답을 듣게 될까 두려워" '좋은 데로 가겠지' 스르로를 위안하던 경험. 아쿠아리움의 바다코끼리를 치료하기 위해 그 동물의 '경제적 가치'가 인정돼야 했던 결정 구조.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모순적인 상황들과 '책임'에 대한 물음이 책에 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하고, 나아가며, 교감하고 마침내 그들의 평안을 바라는 작은 개인의 마음이 책에 담겼다. 그래서 책은 동물원 밖의 우리들이 몰랐던 '실상'을 더 세세하게 전달하는 고발의 성격을 넘어, 그 실상에도 불구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헤메이던 이들에게 실천에 기반한 연대감을 선사한다. 연대할 수 있다는 감각, 권리에 대한 모든 운동도 그 지점에서 시작하지 않나.
저자가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강아지 '몬돌이'를 위해 수의사를 꿈 꿨던 저자는 잠수사 생활 중 마주한 바닷속 풍경에 매료돼 아쿠아리움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동물 취급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당시부터 이어져온 그의 실천의 시작점은 역시나 선의와 호감이라는, 작다면 작은 개인의 마음이었다.
반려견 몬돌이를 향한 애정에서 시작된 그의 마음이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살리는 간절한 치료행위로, 동물원 자체는 물론 동물원 바깥의 동물들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인간이 인식하고 가져야만 하는 책임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하는 일련의 과정엔 '돼지나 닭'이 표상하는 누군가의 비웃음도 비집고 들 틈이 없다.
모순에 아파해 본 모든 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어떤 잘못과 실수를 해왔는지, 왜 현재로서는 동물원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공간인지, 현재의 동물원이 동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전하려 했다.
그래서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아직은 마음이 불편한 곳이더라도, 훗날에는 더 이상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이 내몰리지 않기를, 생명이 상품처럼 소모되지를 않기를, 그러다 마침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편안한 동물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한예섭 기자 | 프레시안
우동수비대 프로젝트
①조사 결과 발표! 2021년 동물원 동물은 행복했을까?
우동수비대는 올해 2월부터 9월까지 동물이 살기 좋은 집을 찾아 동물원 200여 개를 조사했습니다. 대원들이 우리나라에서 행복한 동물원을 찾는 동안, 기자는 좋은 동물원으로 손꼽히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미국 더 와일드 애니멀 생추어리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동네 동물원부터 미국 동물원과 생추어리까지, 동물원 동물이 행복할 방법을 찾아 나선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우동수비대 프로젝트 연재①]조사 결과 발표! 2021년 동물원 동물은 행복했을까?
[우동수비대 프로젝트 연재②]해외 취재 - 좋다고 소문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뭐가 다를까?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765739&memberNo=9406188
[우동수비대 프로젝트 연재③]해외 취재 - 나쁜 동물원이 문 닫으면 동물은 어디로 가나요? 집 잃은 동물의 집, 생추어리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834725&memberNo=9406188
우동수비대란?
우리동네 동물원 수비대(우동수비대)는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동물원 복지 조사를 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입니다. 2021년 2~5월 1기가, 7~9월 2기가 활동했습니다.
우동수비대, 동물원 70% 조사 완료!
우동수비대원의 첫 번째 임무는 알려지지 않은 동네 동물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카페처럼 정부와 전문가, 시민단체도 모르는 소규모 동물원들이 국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동수비대는 미등록 동물원 약 100개를 찾아 내고, 이를 통해 알아낸 총 345개 동물원 중 246개를 조사했습니다. 우동수비대 활동 내용을 소개합니다.
관리 사각지대 동물원, 150개 넘는다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몇 개 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이는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운영 중인 동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동물이 10종 혹은 50마리보다 적으면 동물원으로 등록하지 않아도 됩니다. 동물카페와 소규모 동물체험시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2021년 2월부터 9월까지 우동수비대 810개 팀은 집 가까운 곳에 미등록 동물원이 있는지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자료*에 없던 동물원 92개를 새로 찾아 2018년 이후 국내에 있었던 동물원은 최소 345개로 드러났습니다. 그중 69개가 3년 사이 폐업했지요. 정부에 등록된 동물원이 2020년 12월 기준 110개인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존재조차 모르는 동물원이 무려 150개를 넘는 셈입니다.
미등록 동물원은 물론, 정부에 등록된 동물원도 동물이 살기 좋은 곳인지는 모릅니다. 동물원을 등록할 때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사육 면적 외에 별다른 복지 상태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마승애 수의사가 복지 조사 방법을 개발하고 우동수비대 143개 팀이 246개 동물원을 조사했습니다.
*자료 : 어웨어 2018, 어웨어 2019, 환경부 2019
무엇을 얼마나 조사했을까?
우동수비대는 2021년 한 해 동안 전국 동물원의 동물 10종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를 17개 복지 항목을 기준으로 조사했습니다.
*자료 : 어웨어 2018, 어웨어 2019, 환경부 2019
우동수비대 동물원 조사 지도
우동수비대가 복지 조사를 완료한 동물원 비율을 지역별로 나타낸 지도입니다. 서울 지역 동물원을 100% 조사했으며, 경기권과 충청권 동물원도 80% 이상 조사했습니다.
[우동수비대원 생각 엿보기] 관람객이 동물원에 원하는 것? 환경과 보전 교육
우동수비대 2기에서 동물원을 방문한 8~13세 어린이의 응답 143개를 분석한 결과, 동물원이 멸종위기와 환경오염, 야생동물의 생태에 대해 알려주길 원한다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설문조사를 기획한 최태규 수의사는 “동물원에 윤리적 효과를 기대하는 정도가 1기보다 2기에서 강해졌다”며, “학습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바람과 달리, 동물원에서 환경오염과 멸종위기종 교육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각각 23%, 35%로 절반에 못 미쳤습니다. 최 수의사는 “국제적 경향대로 방문객은 동물원이 교육의 장이 되길 바라지만, 동물원은 동물을 구경하는 수십 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습니다.
OO은 동물원에서 행복했을까? 10종 동물 복지 현황
2021년 우리나라 동물원 동물은 행복했을까요? 조사 동물 10종의 복지 조사 결과를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조사 대상 동물 10종은 라쿤과 미어캣, 사막여우, 토끼, 프레리도그, 호랑이, 금강앵무, 설가타육지거북, 버마비단뱀입니다.
우동수비대 - 행복한 동물원 함께 만들어요!
어린이과학동아 시민과학프로젝트
zooreports.dongascience.com
2021년, 라쿤은 동물원에서 행복했을까?
조사 동물 10종 중 라쿤의 복지 상태를 한 장의 이미지로 보여드립니다. 라쿤에게 필요한 복지 환경 17가지와 각 복지 환경이 얼마나 갖춰져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쿤은 라쿤카페 등 미등록 동물원에 주로 살며, 10종 중 복지가 3번째로 나빴습니다. 위 링크에서 다른 동물들에게 필요한 복지 환경과 실제 상황도 한 장의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쿤의 수명을 단축시킨 집, 49개 중 47개
우동수비대의 복지 측정 문항은 17개 중 15개(88점) 이상을 만족해야 ‘동물이 제 수명을 살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마련됐습니다. 분석 결과, 동물사 49개 중 라쿤이 제 수명을 살 환경을 갖춘 곳은 단 두 곳뿐이었습니다. 라쿤이 제 수명을 살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원이 96%에 달한 겁니다.
복지가 가장 열악했던 동물 설가타육지거북, 그나마 나았던 호랑이
조사 대상 동물 10종 중 설가타육지거북의 환경이 가장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설가타육지거북은 제 수명을 살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사가 45개 중 45개로 100%에 달했으며, 복지 점수가 100점 만점에 45점에 불과했습니다. 설가타육지거북에게 가장 찾아볼 수 없던 환경은 '쉼터'였습니다. 동물사 45개 중 42개(93%)가 몸을 숨길 바위나 풀숲이 없어 거북이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복지 상태가 그나마 나았던 동물은 호랑이였습니다. 호랑이 역시 제 수명을 살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사는 13개 중 10개(77%)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으나, 평균적인 복지 점수는 100점 만점에 74점으로 10종 동물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 점수도 동물이 제 수명을 살 수 있다고 평가되는 점수인 88점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호랑이의 복지 상태가 다른 동물에 비해 나았던 이유는 호랑이가 대부분 공영동물원과 실외동물원에 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공영동물원과 실외동물원은 동물카페와 실내체험형 동물원에 비해 환경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2021년 동물원 종합 행복 지수 뜯어본다
마승애 수의사와 어과동은 2021년 동물원 복지 조사 결과를 두고 주목할 만한 점을 찾아봤습니다. 동물이 제 수명을 살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놀랍도록 많고, 앵무새 카페가 크게 늘어났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동물원 17개 복지 문항 조사 결과는?
전국 동물원 71.3%의 17개 복지 문항 조사 결과, 동물들에게 가장 보장되지 않는 복지 사항은 '풍부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동물이 정형행동 등 정신적 질환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려면 하루에 한 번 이상 풍부화 프로그램을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동물원의 동물사 379개 중 풍부화 프로그램을 충분히 제공하는 곳은 33개(9%)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순천만국가정원야생동물원의 신용희 사육팀장은 “사육사 수가 부족해 풍부화 프로그램을 매일 제공하기가 어렵다”면서도 “같은 풍부화용 물품에 먹이만 바꾸는 등 간단한 거라도 매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밖에 복지 실태는 아래 그래프와 같습니다.
*풍부화 프로그램 : 사냥을 하는 등 야생에서와 같은 행동을 하도록 돕는 프로그램.
동물이 제 수명 살 수 있는 집, 단 7%
동물사 379개 중 353개(93%)의 복지 점수가 88점을 넘지 않았습니다. 88점은 동물이 제 수명을 살 거라 추정되는 복지 점수의 마지노선이지만, 국내 동물원의 평균 점수는 53점에 머물렀습니다. 동물은 본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정신 질환을 겪고, 바닥이 시멘트면 발병 등 신체 질환을 겪습니다. 이는 수명에도 영향을 끼치지요. 복지 점수를 가장 심각하게 낮춘 것은 ‘풍부화 프로그램 여부’였습니다. 풍부화 프로그램을 매일 해 동물이 야생 본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동물사는 9%에 불과했습니다.
앵무새카페, 4년간 58개 급증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5월 라쿤을 ‘생태계위해우려생물’로 지정했습니다. 라쿤카페가 동물 학대와 인수공통감염병* 발생에 대한 우려를 받은 것을 의식한 결과였지요. 라쿤카페는 시멘트 바닥에서 라쿤을 키우며 관람객이 제한없이 라쿤을 만지고 먹일 수 있어 이같은 우려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조사 결과, 최근 앵무새카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과 2018년에 유명 프랜차이즈가 생기며 가맹점이 늘어나, 확인된 앵무새카페만 총 58개(폐업 8개 포함)에 달했습니다. 마승애 수의사는 “라쿤카페에서 앵무새카페로 흐름이 바뀐 것 같다”며, “앵무병과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발생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앵무병은 전염성이 강해 같은 공간에 있는 새끼리 금세 퍼지고, 분변과 비듬으로 사람에게도 감염됩니다. 어린이와 노약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앵무병으로 심각한 폐병을 겪어 치사율이 10%에 이르지요. 이를 예방하려면 엄격한 위생 관리가 필요하지만, 앵무새카페는 관람객이 식음료를 섭취할 때 병균이 옮을 수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28개 앵무새 카페를 조사한 결과, 체험 전후 손씻기조차 안내하지 않는 곳이 절반에 달했습니다.
*인수공통감염병 : 동물과 사람이 서로를 감염시킬 수 있는 전염병. 코로나19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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