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움직여도 가슴팍을 흐르는 땀이 한밤중에도 맺힌다. 여름이면 일상이 된 열대야 소식은 미세먼지처럼 기상 캐스터의 단골 소재가 됐다. 에어컨을 장착한 이 도시의 여름은 집이고 자동차고 하나같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겨울처럼 꽁꽁 싸맨 차림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닫고 폭염과 씨름한다. 자동차는 침을 질질 흘리며 매연을 뿜어댄다. 참으로 가관이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것은 필연이다.
녹지는 폭염 식혀 주는 천연에어컨
시민 모두 누리는 행복한 녹색복지
공원녹지 분야 강화 목소리 외면한
부산시 녹지행정은 시민 행복 역행
산이 많은 도시라지만 어느새 산줄기 곳곳이 잘려 생태적 섬으로 전락했다. 고층건물들이 거점 산지의 골짝마다 파고들어 산정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마을이던 곳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해안 역시 고층화 경쟁이 한창이다. 바람이 길을 잃는 게 당연하다.
두려운 일은 누차 강조한 바 2020년 7월 1일부로 효력을 발휘하는 공원일몰제가 야기할 원치 않은, 강요된 변화다. 눈치를 보며 숨죽여 지내던 지주들이 칼자루를 쥐게 되는 거다. 이들이 자본과 결합하고 권력과 어울린다면 최악의 그림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민선 7기 지방선거는 그간의 개발 일변도 시정에 제동을 걸기 위한 다양한 의제가 제기된 선거였다. 쟁점은 도시공원 일몰제 해소였지만, 끝내 공약 채택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거돈 시장이 임기 동안 4000억 원의 관련 예산을 반영하는 것으로 되었지만, 이어진 부산시의 조직개편 결과는 낙제점이다. 공원녹지 분야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행복건축주택국으로 했다가 안팎의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행복주택녹지국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녹색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택 개발 분야와 환경 분야가 함께 가는 방향이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절망했다. 시 관계자의 주장은 뒤집어 놓고 해석하면 시대정신의 왜곡이자 시민 기망이다. 과연 부산시는 지속가능발전(SDGs) 시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시정에 반영하고 있는가. 관련 분야 전문가나 환경단체와 토론이라도 했다면 소통 차원에서도 일말의 여지라도 남겼겠지만, 결과는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거 기간 시민들이 공원녹지 분야를 3급 국 수준으로 승격하라 주장한 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편제가 야기한 중심 없는 공원녹지 행정을 거부하겠다는 뜻인 동시에 공원녹지 분야가 강화돼야 궁극적으로 시민이 행복해진다는 시대적 요구였다. 보전과 재생이 주 업무인 공원녹지가 개발 중심의 주택·건축과 결합하는 조합은 관행화된 구시대의 연장과 다를 바 없다. 두 영역의 조합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시민적 상식인데도 기어코 그 길로 가겠다는 건 오거돈 시장 체제가 천명한 시민행복시대를 역행하는 무책임한 처사다. 나아가 당장 부산시가 풀어야 할 메가톤급 공원녹지 현안들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개발행정에 기댄 공원녹지 정책을 구사할 요량이라면 시민저항과 반대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 여름, 부산시는 도시를 시원하게 할 책무가 있다. 그것은 일몰제로 사라질 대규모 도시공원 산지의 보전에 더해 시내 곳곳을 녹색으로 재생하는 일이다. 원도심을 아파트 단지로 둔갑시키는 도시재생이 아니라 숲과 물이 숨 쉴 수 있는 터전을 회복시켜 길 잃은 바람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산다.
도시공원과 녹지는 폭염을 식혀 주는 천연에어컨이다. 1인당 생활권 도시 숲 1㎡를 확충하면 여름 한낮 온도를 1.15도 낮출 뿐 아니라 미세먼지와 소음을 흡수해 쾌적함도 더한다. 이른바 차별이 없는 녹색복지다. 어떤 세상을 살 것인가는 시민의 선택이다. 원하는 도시에 살 권리를 포기하면 지금처럼 각자가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짓밟아도 할 말은 없으며, 결과적으로 에어컨 온도에 의지하는 저급한 도시적 삶을 살 뿐이다. 이 여름 부산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018.7.20 부산일보 로컬터치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When A Man Loves A Woman - Percy Sledge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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