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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팬데믹 이후의 새 질서 4.15~4.30

by 이성근 2020. 5. 1.

자연도 움직이고 고르고 선택한다 경향 2020.04.15.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한겨레 2020.04.15.

태구민과 남북관계 통일신문 2020.04.17

미사일만 6000개 군사강국의 코로나 위기, '뭣이 중한디' 프레시안 2020.04.18.

미래통합당 참패, 보수언론의 책임과 성찰 한겨레 2020-04-20

주류의 교체, 그 무거움에 대하여 경향 2020.04.20.

안전-생명 국가의 새 틀을 짤 때다 한겨레 2020.04.21.

온건한 사회주의자 영국의 미래 열까 시사인 2020.04.21.

3조원 때문에?재난지원금과 180석의 무게 한겨레 2020-04-22

팬데믹 이후의 새 질서 국제신문 2020-04-23

한국판 뉴딜, 경제 성장이 아니라 '그린 뉴딜'이어야 프레시안 2020.04.24

정치는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프레시안 2020.04.24

북아일랜드가 한반도 '녹색평화' 위해 전하는 교훈 프레시안 2020.04.27

3조 혈세 들어간 한진·금호, 오너 일가는 코로나 위기 고통 분담했나 프레시안 2020.04.28.

코로나 이후의 생태적 계몽과 실천  경향 2020.04.28


역대급찜통더위 예고 경향 2020.04.30.

코로나가 가져온 새로운 에티켓경향 2020.04.30.

재난의 최전선과 뿌리로 가라 경향 2020.04.30.

 

자연도 움직이고 고르고 선택한다

독도에서 설악산과 소백산을 거느린 태백 준령을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호사가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없다.

 

직선거리가 가장 짧은 경북 울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200가 넘는다. 그 정도 떨어진 곳까지 보이려면 태백산맥이 아주 높거나 아니면 지구가 편평해야 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이 되었으니 문제는 태백 준령의 높이에 있다.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까닭은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히말라야 만년설을 찍은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도사람들이 일을 작파하고 모두 칩거하는 바람에 인도인들도 30년 만에 히말라야산맥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넋두리가 사족처럼 붙었다. 200떨어진 펀자브 사람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려면 히말라야산맥처럼 크고 높아야겠지만 한편 공기도 티 없이 맑아야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외웠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는 8848m였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그 산이 더 높아졌으리라 추측한다. 지금도 인도대륙이 일 년에 약 5속도로 유라시아를 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도대륙은 마다가스카르섬과 붙어 있었고 그전에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남극이 한데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곤드와나라고 불리는 초대륙이다. 버성긴 초대륙이 나뉘고 북상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남극은 거의 제자리에 머물렀고 나머지 대륙은 서서히 움직였지만 지각의 두께가 얇은 인도대륙은 일 년에 거의 20속도로 북상했다. 유럽과 미대륙이 일 년에 약 2씩 멀어지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얼마나 빠른 속도인가? 그렇긴 해도 이는 2000만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소행성 하나가 유카탄반도에 떨어지고 그 충격으로 해일과 화재가 지구를 강타하면서 공룡이 멸종했던 약 6500만년 전 인도는 이미 장도에 올랐었다. 5000만년 전쯤 형성된 히말라야산맥은 여전히 북진 중이다. 따라서 에베레스트산은 더 높아지겠지만 모난 돌이 정 맞듯 높을수록 침식 작용이 활발한 탓에 지금은 그 누구도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때는 적도 아래 있었던 대륙이 북상을 하게 되면서 현재 북반구는 지표면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공룡이 사라진 지구에 인간의 조상인 포유동물이 득세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도널드 프로세로는 공룡 이후의 세계를 기술하면서 기후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빙하기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지중해도 말랐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했고 지금은 얼음이 덮인 극지방도 악어가 노닐 만큼 따뜻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산운동에 따른 활발한 풍화작용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면서 점차 춥고 건조한 날이 이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식물계에 커다란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는 숲이 열리고 초본(草本)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에서 생활하던 인류의 조상도 땅을 딛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마 어느 순간에 직립보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구상에 활엽수가 등장한 것이다. 산맥을 타고 오르면서 비를 뿌린 건조한 바람이 산 너머 동네에 건기를 몰고 오는 일이 잦아졌다. 활엽수는 강수량이 줄어든 데 대한 적응의 결과였다. 물이 줄면 뿌리로 흡수할 지하수도 덩달아 줄어들기 때문에 설사 다른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식물은 광합성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식물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이렇게 체질 개선에 성공한 활엽수가 천천히 북상하면서 점차 차가운 지역에도 적응을 마치고, 잎의 표면적을 최대로 줄여 물 손실과 냉해를 줄인 침엽수의 활동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라. 봄은 지난해 떨어뜨린 잎을 새롭게 틔워내고 본격적으로 광합성을 맞이할 채비를 부산스레 차리고 있다. 꽃을 피우는 일도 그렇지만 잎을 피우고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므로 잎을 떨구는 일은 신중을 꾀해야 하는 전략이다. 사철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들은 겨울에도 기회만 닿는다면 광합성을 수행한다. 따라서 뿌리에서 잎까지 물을 운반하는 물관의 구조도 상록수와 활엽수에서 각기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록수도 가끔 오래된 잎을 떨어뜨리고 새 단장을 한다. 다만 활엽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남반구는 어떨까? 놀랍게도 거기엔 활엽수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 호주의 상징인 유칼립투스도 상록수이다. 태즈메이니아대학 데이비드 보먼 박사는 호주가 식물들의 성장에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말했다. 아웃백(outback)이라 불리는 호주 내륙 사막 건조지대조차 뇌우를 동반한 비가 자주 내린다. 따라서 북반구와 달리 식물이 잎을 떨어뜨릴 이유가 현저히 줄어든다. 게다가 한국 내륙 지방인 철원에서나 맞을 법한 혹독한 추위도 이들 해양성 기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호주 본토에서 남으로 약 200넘게 떨어진 태즈메이니아섬의 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시간은 일 년에 이틀이 채 되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무척 적다. 데우기는 어렵지만 쉽사리 식지도 않는 바닷물이 남반구에 풍부한 탓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선 활엽수가 자라 태즈메이니아를 물들인다. 북반구가 연둣빛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그 순간 태즈메이니아 너도밤나무는 비로소 가을을 맞이한다. 푸른 바닷물과 더불어 노란 너도밤나무 잎들이 손을 흔들 듯 일제히 산들바람에 펄럭인다. 416일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경향 2020.04.15.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당시 중국 쪽에서 시작된 페스트균이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이동·확산함으로써 유럽 인구의 태반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대규모 인명 소실로 유럽 중세 질서가 결정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농노와 하층민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자 중세 질서의 하부구조, 즉 농노제의 지속적인 유지는 크나큰 난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불같은 열정으로 신대륙을 탐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꽉 막힌 폐색 상황을 타개하려는 유럽인들의 필사적인 기도에서 비롯된 기획들이었다.

 

역병의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적 재난이다. 기원전 430, 스파르타를 상대로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 2년째, 아테네는 돌연히 전염병의 창궐에 휩싸였고, 그 때문에 결국 전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희생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 정체불명의 괴질 앞에서는 건강한 젊은 병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영웅적인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그 아들들도 괴질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 중에 지도자를 잃고, 대규모의 병력을 잃은 아테네 군대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단지 대규모의 병력 손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괴질이 창궐하여 가족, 친지,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느닷없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아테네인들의 인생관과 윤리관에 큰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절제의 기율을 팽개쳐버리고, 법을 우습게 여기고, 더 이상 신을 섬기지도 않고, 찰나적인 향락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고,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테네인들 사이의 이러한 풍속의 변화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튼튼한 민주주의가 성립하려면 무엇보다 자기절제라는 시민적 덕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 이는 그리스 출신의 20세기 철학자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였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려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성립 요건이라는 그의 통찰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독창적인 탐구의 성과였다. 그런데 바로 자기절제라는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무너짐으로써 아테네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쇠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정치적·사회적 혼란 끝에 마침내 마케도니아라는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 전체가 환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 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탓에 오직 사회적 거리두기만이 그나마 유용한 대응책일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의 익숙한 사회생활이 거의 전면적으로 작동 정지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른 개인적·사회적 피해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말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역사에서 전혀 낯선 종류의 경험이 아니다. 고대, 중세의 역병과 다른 게 있다면 감염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그 범위가 전 지구적이라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 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다. 오로지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무절제한 탐욕의 정신이 온 세상을 압도하는 바람에 야생생물들의 서식지를 포함한 생태계는 대대적으로 파괴되었고, 거기에 자본, 물자, 사람의 대량 이동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논리까지 합세하여 지금과 같은 파국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역병의 창궐이라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의 본질과 성격을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고대하며, 백신이나 치료제의 조기 개발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종래의 생활이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었는지 우리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뉴스에 의하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소비와 산업 활동이 일시적이나마 정지 내지는 둔화되자, 대기가 청명해지고, 소음이 잦아들고, 자연 만물이 모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이는 종래의 생활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확연한 증표가 아닌가. 그렇다면 길은 하나, 더 이상 생태계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인간다운 생존·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들 대다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신화, 즉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한 끊임없는 성장(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관념과 깨끗이 결별하는 게 진짜 급선무인 것이다.

 

온갖 징조로 봐서, 앞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역병은 빈발할 것임이 틀림없다(존스홉킨스대학의 보건연구팀에 의하면, 오늘날 신종 바이러스는 연간 200종이 넘게 출현하고, 그 대부분은 잠재적으로 팬데믹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들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백신과 치료제를 찾느라고 허둥댈 것인가.

 

물론 당장은 기술적 해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육체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손씻기도 아니다. , 장기적인 고립생활이 면역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한겨레 2020.04.15.

 

태구민과 남북관계

태구민(본명, 태영호)35천여 명의 탈북민 가운데서 대한민국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 첫 사례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 체제하에서 그의 당선에 대해 시비를 걸 수는 없다.(이후 법적인 처리문제가 나오면 그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태구민으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남남남북 갈등의 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진다.

 

당장 일각에서는 그의 신분에서 확인받듯이 남북관계 전문가로 활용해야 된다(탈북자면 다 남북관계 전문가인지라는 의문은 남지만)는 둥, 탈북자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반기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태구민의 당선이 오히려 탈북민 정책을 더 정치화 시킬 수 있는 그런 우려와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그것이다.

 

사례1.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탈북민 정당(남북통일당)이 만들어 진데서 확인받듯이 탈북민 사회가 지나치게 정치세력화에만 몰두하게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져 있다.

 

사례2. 미통당은 이번 4.15선거에서 지난해 탈북민 모자 사망, 북한 어민 송환 사건 당시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강제송환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어 불필요한 남북갈등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태구민의 국회의원 당선은 남북관계에 영향은 없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데 심대한 장애가 생긴 것은 맞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

 

이유 첫째, 태구민을 북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국가자금 횡령죄, 미성년 강간죄와 같은 중대 범죄자이다. 그런 범죄자가 남북관계를 함께 풀어가야 할 상대국가에서 그 면죄부에 해당되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분명 북이 반발할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태구민에 대해 지난 226<메아리>는 미래통합당이 태 당선인을 영입한 것에 대해 우리 공화국에서 국가자금 횡령죄, 미성년 강간죄와 같은 온갖 더러운 범죄를 다 저지르고 법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 도망친 천하의 속물, 도저히 인간 부류에 넣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이유 둘째, 첫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태영호의 당선은 탈북을 꿈꾸는 체제이탈자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그러면 결과적으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대한민국(정부)은 북 체제에 내정 간섭하는 그런 행위가 이뤄지게 된다.

 

이유 셋째, 둘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미통당이 태영호 등 탈북자 국회의원을 앞세워 남북관계를 정치이슈화 하려한다면, 이는 북의 입장에서 볼 때 중대한 범죄자를 내세워 자신들의 체제를 정면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북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북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 선전매체는 지난 2월 태 후보를 공천한 미래통합당을 향해 인간쓰레기를 북남 대결의 돌격대로 내몰려는 것은 민족의 통일 지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날을 세운 바 있다.(<뉴시스>, 2020.4.17.에서 재인용) <메아리>(2020.4.17.)는 태구민 후보가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것에 대해 17강남구는 부패와 마약, 도박의 소굴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는, 이참에 정상적인 체제이탈자들과 범죄자를 구분하는 탈북민 정책이 절실해졌다. , 이제까지의 탈북민 정책 제반 재검토를 통해 남북관계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해 들어가야 한다.

 

둘째는, 결과론적으로 태구민이 당선무효 처리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태구민의 발언과 의견, 정책제언 등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는 태구민 개인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남북관계 전문가, 북에 대한 고급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 등등)를 하지 말아야 하고, 동시적으로 그의 북 체제에 대한 비난과 험담을 통일부, 북 전문가, 언론 등에서 진실성 있게 검증해내어야 한다.

 

참고로 태구민은 망명(사실상 탈출) 당시 직함이 주영국 북한대사관 총영사였다. 그러면 대략 우리나라 외무공무원 직급으로 보자면 특1급에서부터 3급 직급까지의 범주에 해당된다. 절대 북 체제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고위급 직급이 아니다.

 

셋째는, 대북정책, 혹은 북 바로알기에 대해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과도하게 북 체제 이탈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들의 인식이 북으로부터 이탈해온 탈북자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북 체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반드시 이 가설이 참일 수만은 없다. 그럼으로 이참에 북 체제에 대한 이해 (접근)방식이 그들에 대한 증언이나 구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남북관계의 다양한 교류협력, 인적교류, 내재적 접근 등등 좀 더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 나아가 우리의 북 인식 발목을 잡고 있는 종북·반북의 시각에서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전환을 반드시 해내어야 한다. 180석 이상의 의석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다.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 통일신문 2020.04.17

 

미사일만 6000개 군사강국의 코로나 위기, '뭣이 중한디'

5조 원 이상 감액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

나는 앞선 글에서 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포함해 3년간 국방비를 정부 계획 대비 25조 원 가량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절약한 예산을 코로나19 사태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인류 사회 공헌에 사용하면서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대통령이 전세계에 '경제위기 대비 군비 10% 절감' 제안한다면?)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지난 30년간 700조 원에 가까운 국방비를 투입해 2020년에는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사일 전력의 급성장이다. 기실 미사일 시험발사는 북측보다 남측이 더 많이 해왔다.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정보 자산이 극히 취약한 북한이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툭하면 쏘는 데 우리는 뭐하나'라는 착시 현상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타난다. 한미연합전력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고성능 망원경'을 갖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안대'를 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국의 미사일 보유량도 급증해왔다. 지대지 등 각종 미사일의 합계가 6000개를 훨씬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북한을 압도하는 공군력과 해군력까지 감안하면 대북 억제력은 이미 확고히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첨단 무기 증강에 따라 주변국 위협에도 적절한 수준에서 억제 가능함은 물론이다. 이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온 국방비를 줄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민생을 구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현실에 기반한다.

 

정부 역시 2차 추가 경정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국방비를 일부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 규모가 9047억 원으로 급증하는 민생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국방예산은 50조 원이 넘는다. 나는 이 가운데 5조 원 가량은 족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국방비 동결이나 축소를 주장하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우리 병사들 월급 올려주느라 국방비가 늘어난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전체 국방비에서 사병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국방비의 4.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다. 이는 당초 계획대로 사병 급여를 인상해도, 아니 더 올려도 국방비 절약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무기 도입을 의미하는 방위력 개선비의 폭등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3년 간 방위력 개선비의 평균 증가율은 11%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간 평균 증가율 5.3%2배가 넘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WMD(대량살상무기) 대응 체계'로 이름을 바꾼 '한국형 3축 체계' 관련 예산이 급등해왔다. 201631814억 원 및 201738119억 원이었던 것이, 201843628억 원, 20195691억 원, 202062149억 원으로 폭등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무기를 사오면 이들 무기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유지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5조 원 규모의 감액은 그래서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올해 166900억 원으로 책정된 방위력 개선비에서 4조 원 정도, 138000억 원 규모의 전력유지비에서 1조 원 정도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군사력 건설 및 유지와 직결되는 예산을 255000억 원 가량 유지할 수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 정도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이다. 의지만 있으면 5조 원보다 훨씬 많이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공언처럼 방산 비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국방비의 낭비적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가령 박근혜 정부 때 공식화된 '3축 체계'의 비효율성은 현재 정부 및 여당의 인사들 가운데 일부도 지적한 바였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이름만 바꿔놓고 오히려 관련 예산은 엄청나게 올렸다.

 

이 와중에 생기는 문제가 바로 '중복투자'이다. 지대지 미사일이 늘어나면 공대지나 함대지의 미사일은 크게 늘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각종 미사일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미사일 전력증강은 공군력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는 효과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같이 늘린다. 유사시 북한의 기갑 전력을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갑 전력 관련 예산도 폭등해왔다. 이미 갖고 있는 무기와 장비를 잘 쓰겠다는 생각보다 '첨단 무기 증독증'에 걸린 군 수뇌부의 인식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로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올라선 반면에 IMF 환란보다 심각한 민생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묻는다. '뭣이 중헌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프레시안 2020.04.18.

 

미래통합당 참패, 보수언론의 책임과 성찰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미래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곳곳에서 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거대 여당도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그래픽_김승미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는 미래통합당의 역대급 참패는 중도층이 외면한 탓이 크다. 공천 실패에다 막판 패륜적 망언이 터져나오면서 중도층은 한 가닥 남은 미련마저 거둬들였을 것이다. <조선일보>강경 지지층에 휘둘려 중도층을 잃었다고 했으나 <한겨레>는 사설에서 그 강경파 중 하나가 조중동이라고 콕 짚었다. “모든 게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조선·중앙 등 보수언론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며 퇴행적 행태를 반복한 통합당 지도부 책임이라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지난 3년 보수언론들이 집착해온 반문재인 프레임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 언론들이 방역 모범 사례로 칭찬하고 국민 65%가 정부 대응을 보며 선진국임을 느꼈다”(19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는데도 방역 실패라고 억지를 부렸다. ‘시진핑 눈치 보느라 입국금지 안 했다는 조선·중앙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문재인 정권 심판구호로 선거를 치렀으니 그런 야당에 중도층이 표를 줄 리 만무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망언도 따지고 보면 보수언론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징하게 해 처먹는다에 이어 텐트 망언으로 제명 파동을 겪은 뒤에도 성금이 답지한다며 천안함 유족들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애초 세월호와 천안함의 유족 보상금 액수를 비교하며 문제로 참사 유족들을 조롱한 원조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 없다며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매도한 것도 모자라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세월호 또 우려먹겠다는 정권과 검찰, 해도 너무한다고 공격한 것도 조선일보다. 사실 차 후보 망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김진태·이종명 의원 등의 ‘5·18’ 망언도 <티브이(TV)조선><채널에이(A)>가 촉발한 북한 특수군 침투발언에 원죄가 있다. 지금도 극우 유튜브엔 비슷한 영상들이 숱하게 걸려 있다. 북핵 위기를 협상으로 풀려는 노력을 색깔론으로 방해한 것도 보수언론들이다. 조선일보가 천안함 폭침 주범 평창 온다한국과 유가족 능멸이라고 부추기자,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곧바로 통일대교 한복판에 자리를 깔았다.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겠다며 길을 막고 철야 농성을 벌였다.

 

스스로 인정하진 않겠으나 보수언론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부대의 불매운동 협박을 경험한 뒤 더욱 강경 보수로 치달았다. 광고 지면을 통째 선전장으로 내주며 아스팔트 우파에도 영합했다.

 

이번에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이런 식의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총선 국면에서 보수 통합을 독려하고 야당 대표 출마 지역구까지 찍어준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오죽하면 <미디어오늘>1면 머리기사로 참패한 조선일보라는 제목을 달았겠는가.

 

2016년 촛불 시민은 대통령을 탄핵했으나 국회는 이전 구도 그대로였다. 이번에 국회마저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건 촛불 정신을 완성시키라는 시민들의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촛불 시즌2’라 일러도 지나치지 않다.

 

70여년 지탱해온 수구 기득권 체제는 적대적 남북정책을 고수하며 분단구조에 기생해왔다. 경제적으론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 우선주의로 시장경제마저 제대로 포용하지 못했다.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기득권 논리를 전파하며 연결고리 구실을 해온 게 수구보수언론들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복지조차 사회주의” “포퓰리즘”’이라던 조선일보가 총선 이후 야당에 복지정책 보완과 기본소득제 검토를 주문하며, 사람도 노선도 행태도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으나 내부 성찰의 결과이길 바란다. 곳곳에서 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책임이 드러나기 전에 정치권이 나서서 몰아내려는 모양새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가족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하면 될 일이다. 거대 여당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다수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입법과 정책도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명하게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한겨레 2020-04-20

 

주류의 교체, 그 무거움에 대하여

선거는 세상을 팽팽히 당겼다가 놓는다. 180 103 6. 19876공화국 체제 출범 후 180석 거여(巨與)가 총선으로 등장한 건 처음이다. 보수야당이 지역구 100석을 얻지 못한 것도, 지역당·재벌당·진보정당 할 것 없이 제3정당이 한 자릿수로 끝난 것도 처음이다. 지역구 지도에 3개의 당색만 남은 것도 전례 없다. 수도권·충청에서 파랑(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한 핑크(미래통합당)16년 만에 영남과 용산·분당을 더한 강남 5에 다시 갇혔다. 노랑(정의당)은 원내 진출 16년 만에 고양의 외딴섬이 됐다. 민심이 무섭다!” 앞날이 두렵다!” 이긴 쪽도 진 쪽도 선대본부 해단식은 다 비장했다.

 

대한민국의 주류도 진보로 바뀌었다. 21대 총선 50대 득표율(출구조사)은 민주당 49.1%, 통합당 41.9%로 잡혔다. 4년 전 52 27로 보수 우세였던 표심이 역전된 것이다. 2040이 민주당에 기운 것은 2010년 지방선거부터다. 그게 민주당의 전국선거 4연승을 견인했고, 정확히 10년이 흘러 2020년 총선판을 ‘2050 60 이상으로 재편시켰다. 앞 세대보다 정치적 진보 색깔이 짙은 86세대는 내년부터 60대로 진입한다. 보수의 벽은 영남에서도 물렁해지고 있다. PK의 민주당 총선 후보들은 부산서 43.5%, 울산서 38.6%, 경남서 37.1%를 득표했다. 의석수는 7석으로 세 석 줄었지만 득표율은 4년 전보다 약진했다. 1990TK-PK-충청을 묶은 보수 3당합당의 여파는 이제 TK에서만 견고하다. 50대와 영남의 지각 변화는 보수야당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최후통첩일 게다. 세상에 저주를 퍼부어온 보수 논객과 극우 유튜버들, 유치원법을 막은 사학 한유총, 아스팔트를 지킨 기독교 전광훈 세력의 파급력도 뚝 떨어졌다. 보수 카르텔 저마다의 호감도·확장성 추락 탓이다. 2008년부터 7~8년 긴 침체·모색기를 겪은 진보가 그 정치적 바통을 보수에 넘겨준 셈이다. 반공보수와 개발독재(1961)-지역보수(1990)-토건보수(2008)-이념보수(2012)의 길이 끊긴 보수의 다음 그림이 궁금해진다. 경제보수일까. 젊은 보수일까.

 

주류는 교체됐는가. 이젠 거여가 답할 차례다. 선거에서 지지층은 서로 갈렸고, 중도는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여당을 더 찍었다. 그 한 표 한 표가 거여를 만들었다. 21세기에 나온 세 번의 거여는 끝이 좋지 않았다. 2008소고기 촛불에 덴 153석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으로 무너졌고, 2004년 국가보안법 내전으로 출발한 152석 열린우리당과 2012년 국정교과서 왜곡에 나선 152석 새누리당은 뒤따른 선거에서 졌다. 모두 오만·독선·불통으로 자멸했다. 거여를 물에 띄운 것도 뒤집은 것도 민심이었다. 4년도 안돼 그 무서움을 잊고 계영배에 넘친 물처럼 흘러내리길 반복했을 뿐이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정상을 따라 755의 블루리지 산악도로가 이어진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실업자들이 닦은 뉴딜의 유산이다. 경관이 빼어난 드라이브 길은 미 정치사에도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노동자·소수인종이 가세한 민주당의 뉴딜연합이 시작된 것이다. 사회적 약자·계층이 정치와 접목된 이 동맹체는 지역갈등 구조에 기반했던 공화당 우위 정치질서를 깼다. 그러곤 1969년 공화당의 닉슨 정부 출범까지 30년 넘게 미국 사회의 변화와 인권 신장을 추동했다. 1938년 스웨덴의 큰 복지국가 토대를 만든 살트세바덴 협약도 대공황 뒤 위기에 처한 노사정의 대화로 시작됐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코로나19 경제 파장을 대공황에 견주고, ILO(국제노동기구)는 전대미문의 실업을 경고했다. 국난 속에서 민생연대, 사회적 대타협, 유권자연합의 큰 그림은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총선 후 맞는 집권 2, 거여는 세 가지를 말했다. 이낙연은 모든 강물이 모이는 낮은 바다가 되겠다 했고, 이해찬은 모두 지켜보는 투명한 어항 속에 있음을 일깨웠다. 당선인들은 너나없이 일꾼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었다. 주류는 약속의 무거움을 지켜야 한다. 21대 국회 당선증이 배부되자마자 개헌과 보안법, 검찰총장 거취를 불 지피는 사람들이 있다. 거여의 교훈을 잊은 조급증이다. 블랙홀을 건드리는 망집(妄執)이다. 서둘러도 코로나 민생은 1년을 넘길 수 있다. 그 성적에 따라 주류는 다시 확장·반전의 교차점을 맞고, 그 너머에서 후년 춘삼월 대선이 시작될 테다. 여도 야도 한 번씩 반성한 게 진리다. 겸손한 권력만이 큰 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0.04.20.

 

안전-생명 국가의 새 틀을 짤 때다

개인이나 국가에게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재난 등을 계기로 운명처럼 오기도 한다. 지금 한국은 사회경제 질서를 재구조화할 큰 기회를 맞이했다. 문재인 정부의 효과적 대처, 수많은 의료인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의 결과이나, 코로나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한국의 국가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4·15 총선으로 집권 여당이 180석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의 기본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고,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정책의 틀을 새롭게 구축할 절호의 기회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직후,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외환위기 직후 성장주의·가족복지 사회체제의 변화를 시도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맞아 공공복지의 확대에서 난관에 부딪혔고, 1997년 외환위기는 재벌의존·노동배제의 정치경제 질서의 틀을 재구축할 수 있는 계기였으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 금융자본의 거대한 압력에 맞서서 주권국가의 정책을 구상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국가부도의 대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고, 4대 보험 체제를 나름대로 완성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민주화 이후 최초의 민주정부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사회정책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정책도 터진 둑 앞에 가래를 들이대는 정도로 방어적인 것이었고,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었다.

 

코로나 대재난으로 여러 서비스 산업이 붕괴 위기에 몰리고, 대량실업 사태가 이제 본격화하는 지금은 외환위기 당시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재난은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출 길이 막혔고, 한국만의 힘으로 이 경제 재난 상황을 돌파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 재정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방역 성공으로 한국의 일부 산업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유럽 등 복지국가들도 방역에서 큰 허점을 드러낸 상태이고 시장주의, 세계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자체가 도전을 받기 때문에 한국은 특정 국가를 모델로 삼기보다는 스스로 모델을 구축해야 할 위치에 놓였다.

 

대재난은 언제나 사회의 자기반성의 기회이며, 새 시스템을 구축할 좋은 기회다. 영국은 2차대전의 포연이 자욱하던 시점에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겠다는 복지국가의 비전(베버리지 보고서)을 세웠고, 미국의 루스벨트 역시 대공황과 2차대전의 참화로 경제가 총체적으로 붕괴한 시점에 복지체제의 틀을 만들었다. 지금의 코로나 대재난은 사실상의 전쟁이다. 며칠 전 미국 내 하루 사망자 수는 이라크 전쟁의 미국 군인 사망자에 맞먹을 정도였고, 무연고 시신들이 쓰레기로 취급되어 섬에 묻히고 있다. 지금 미국과 유럽이 반시장, 반자유주의적 국가개입 정책을 거침없이 내도 반론조차 펴는 시장주의자들이 없다.

 

지금의 코로나로 인한 인위적 재난은 인간의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에 기인한 것이지만, 가까이는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의료의 영리화와 공공성 실종이 초래한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프랑스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지출, 특히 공공의료지출 자체가 위험에 대한 안전판이 아니고, 의료의 공적 소유가 공공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공공지출에서 이들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는 한국이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협조, 투명성, 신뢰, 시민참여 등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금까지 방역에 성공한 것은 기존의 선진 복지국가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부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해고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심각한 노동양극화와 불안전 노동자층, 지난번 콜센터 사례에서 보았듯이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대량의 노동자층, 과도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우리 내부의 구조적 치부는 곧 폭탄이 되어 터질 것이다. 그렇다고 땜질 처방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이러한 문제를 바탕으로 큰 집을 짓기 위한 구상을 해야 한다.

 

조직 노동과 진보정당의 힘이 미미한 한국이 하루아침에 선진 복지국가가 되기는 어렵지만, 지금 국내외의 좋은 환경은 큰 정치 자본이다. 정부는 도시 중산층을 염두에 두고 교육투자·아파트투자·가족복지의 길을 유도해온 개발주의 시대의 정책 노선을 버리고, 자발적 연대, 시민참여의 민주적 공공성의 자치를 확산시켜야 하며, 노동친화적 공공복지를 구축해야 한다. ‘안전-생명 국가21세기 선진국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한겨레 2020.04.21.

 

온건한 사회주의자 영국의 미래 열까

아버지는 연장 제작공이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였지만 젊은 시절부터 중증 자가면역질환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임종 직전,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네 아버지도 민간병원으로는 모시지 않도록 해.” 44, 영국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56.2%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키어 스타머(58)의 어머니는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총선에서 스타머가 하원의원으로 첫 선출된 직후였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강고한 노동당원이다. 영국의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인 국가보건시스템(NHS)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아들이 성공한 법조인에 정치인이었지만, 부자들이나 가는, NHS 체계 밖의 민간병원에는 생명을 맡기려 들지 않았다.

 

키어라는 이름은, 노동당이 처음으로 배출한 의원인 키어 하디(1856~1915)로부터 따왔다. 그는 10대 학생 시절부터 지역의 젊은 사회주의자그룹을 주도했다. 법률대학원을 졸업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마거릿 대처 시대에는 운동권 변호사이자 월간 사회주의 대안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투쟁 현장에 법조계의 십자군으로 불리던 그가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 거물인 루퍼트 머독과 영국 인쇄노동자들의 충돌, 대처의 무자비한 광산노조 탄압, 영국 첩보기관인 MI5 내부고발자 사건 등이다. 스타머가 맥도널드로부터 고소당한 환경운동가들을 변론하는 과정은 영화감독 켄 로치에 의해 다큐멘터리 맥리벨:McLibel로 기록되었다.

 

과격한 운동권 변호사는 2000년대 중반 제도권으로 들어간다. 유력 시사지 뉴스테이츠먼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의 경찰위원회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사회변혁에서) 국가에 대항해 싸우기보다 국가와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를 배웠다”. 노동당 고든 브라운 총리 당시인 2008년에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면서 이전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법규와 어긋난 집회·시위를 처벌하고, 과잉 진압으로 인명을 해친 경찰관은 기소하지 않았다. 스타머는 사회주의적 법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동당에 흔한, 출세한 계급 배신자라는 비난도 듣는다.


2013, 검찰총장에서 퇴임한 그를 에드 밀리밴드 당시 노동당 대표가 발탁했다. 세상을 아는 온건 좌파라는 점이 매력이었을 터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의 참패로 제러미 코빈 당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스타머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스타머는 블레어파(시장자유주의를 중시하는 3의 길노선)와 중도 좌파는 물론이고 코빈파(급진 좌파)의 지지까지 얻어냈다. 코빈에 대한 충성심과 그 핵심 정책(주요 인프라 국유화, 공공투자, 긴축 반대 등)의 유지를 표명했다. 단지 선거용으로 사회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스타머는 나는 사회주의자다. 나를 추동하는 것은, 소득··건강·영향력 등 모든 측면에서 이 나라에 깊숙이 뿌리내린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보리스 존슨 정부의 파격적 재정정책에도 그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스타머의 슬로건은 또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였다이종태 기자 시사인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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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 때문에?재난지원금과 180석의 무게

21대 총선 투표일이 일주일 전이었다. 180석이라는 결과에 모두가 놀랐지만, 아마 집권당 지도부가 가장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예측을 하고 있었다 해도 기대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4400만 선거권자가 지켜보고 2900만 투표자가 참여했던 21대 총선 후 첫 고지서가 도착했다. 재난지원금이다.

당초 정부와 집권당은 70% 지급안에 합의했고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20대 국회 원내 제1당과 제2당이 한목소리로 100% 지급안을 주장했고,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 후 미래통합당이 입장을 바꿔 버렸고, 현재 집권당은 미래통합당과 70% 지급안을 고수하는 정부 양측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100% 지급안을 고수하지 말고 정부안을 수용하자는 집권당 내부에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사안은 코로나19 이후 정부 정책 패러다임이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가라는 측면과 ‘21대 총선 이후 정치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라는,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상이한 두 가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전자의 측면에서의 고민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는 문제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코로나19’ 이후 현금 직접 지원정책이 이미 시행되고 있고, 나라마다 전 국민 지원과 타격이 더 큰 부문에 대한 타깃화된 지원을 두고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계, 정치권, 경제관료, 언론 등에서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미증유의 사태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더 개방적이고 열린 논쟁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입장 역시 경청 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 정책대응에서 재난지원금은 사회안전망 정책, 조세정책, 금융정책 등의 종합적인 정책패키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며, 정부의 재정은 앞으로 전개될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관점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당장 100% 지급문제는 정책의 연속성이나 종합적 재정 운용 문제와는 분리되어 결정되어야 한다. 이건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재난 상황을 계속 이끌어가야 할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신뢰를 가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입장을 바꾼 무책임한 야당 때문에’ ‘입장을 고수하는 경제관료 때문에라는 핑계가 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1대 국회 집권당의 의석은 180석이지만 지금은 20대 국회이고, 현재 집권당 의석은 128석밖에 안 된다는 현실론 역시 통하지 않는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집권당은 선거 과정에서 약속을 했고’, 약속을 한 이상 청와대와 정부와 집권당은 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일주일 전 시민들의 선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급함절박함이었다. 대안 없는 제1야당이 정신 차리길 기다릴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집권당에 180석의 무게를 얹은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선거 끝나고 딴소리를 해도 시민들은 별로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기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권당에는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이는 기대가 얹혀 있다. 이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와대 따로, 경제부총리 따로, 집권당 따로, 혹은 집권당 내 의원들마다 언론에 대고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줄 만큼 인내가 충분하지 않다. 현재 정부안 70%에서 100%로 지급범위를 확대할 때 더 필요한 재정은 3조원이라 한다. 3조원을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든 세출을 조정해 조달하든 그건 알아서 하시라. 다만 500조가 넘는 정부재정 가운데 3조 때문에 약속이행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재난 와중에 66.2%의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한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20-04-22

 

팬데믹 이후의 새 질서

21세기가 20년째를 맞은 2020년의 새 희망을 노래한 게 엊그제 같은데 4개월이 훌쩍 지나고 있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고 있지만, 누구나 1년 중 3분의 1이라는 긴 시간을 혼돈 속에서 그냥 허송한 느낌이다. 방어할 틈도 없이 갑자기 툭 다가온 전염병 창궐 세상에서 공기처럼 익숙했던 생활 패턴과 사회 체제 등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생긴 현상일 게다. 바이러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간 죽이기가 다반사였던 일상도 세월이 흐르면 다 지난 일이 될 테다.

 

전 세계를 짓누르는 코로나19 사태는 나라 간 자유로운 출입도 막았다. 이웃처럼 가깝게 보였던 다른 나라와의 거리감이 고무줄처럼 확 늘어났다. 국경 봉쇄는 물론 뱃길이든 하늘길이든 빗장을 꽁꽁 걸어 잠글 수밖에 없는 21세기 풍속도는 지난 세기 세상 곳곳에서 터진 세계분쟁의 격동기에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전에는 전쟁 중이라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 걸고 막힌 국경을 넘나들었건만, 21세기에는 자본과 사람이 국경을 넘지 않고 각자도생의 세상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항공기는 날개가 꺾였다. 물류는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

 

공교육은 실험 중이다. 각급 학교 졸업식 현장이 사라진 데 이어 입학식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새 학기 개학은 연기에 또 연기를 거듭하다 못해 고등학교와 중학교 3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진행했다. 학교 문은 굳게 닫혔지만, 540만 명의 학생이 앞선 세대는 상상도 못했던 재택수업을 받고 있다. 봄소풍과 수학여행 등 전통의 학교생활 풍습이 물 건너 간 터라 미래세대가 평생 살면서 아로새길 소중한 추억거리를 날려버렸다. 학생과 교수 간 비대면 수업을 도입한 대학가의 20학번 새내기들은 입학 시즌 들뜬 캠퍼스 낭만을 누리지 못해 아쉽겠다. 그게 다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스포츠와 문화계는 현장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 스포츠 시장의 주요 경기가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수많은 관중과 갤러리들의 응원 열기와 함성으로 존재가치를 찾았던 스포츠의 소비 현장은 꽁꽁 얼어 붙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인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가 다음 달 5일 관중 없이 플레이볼을 선언하면서 뒤늦게 시즌 개막을 알렸다.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여자골프는 다음 달 1442KLPGA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올 시즌의 명맥을 잇기로 했다. 매년 톱니바퀴처럼 되풀이되던 스포츠 이벤트의 모든 게 헝클어졌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기꺼이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잠시 아쉬웠을 뿐이다. 4년 만에 열리게 된 일본 도쿄올림픽 연기를 따지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취소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

 

극장가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1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화제의 영화는 고사하고 개봉작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올해의 세계 영화시장 흐름을 가늠할 이탈리아 베니스와 프랑스 칸 등 세계 주요 영화제의 레드카펫은 온데간데없다. 모든 공연장의 무대와 객석에는 먼저가 잔뜩 쌓였다. 미술 전시장은 개점휴업 중이다. 문화산업의 빙하기가 따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덧 방 구석 문화 현장에 익숙해지고 있다. 온라인 실황중계 등 앞으로 문화 상품의 생산과 향유 형태의 혁기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배달 문화가 발전을 거듭하고 대형 매장이 문을 속속 닫는 등 소비 시장의 판매와 구매 시스템은 대폭 수술 중이다.

 

세상 흐름과 맞물려 수많은 업종과 직업의 흥망성쇠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 수업과 의료계 진료 형태의 지난 시절 시스템이 곧 구시대 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성급한 진단이 나온다. 사람 간의 비대면 거리두기가 사회 표준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연관 산업과 파생 업종이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받는 등 변화의 물결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다.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이 그동안 통용됐던 질서를 한순간에 뒤엎었다. 세상 질서는 새로운 형태로 교체되는 분위기다. 사상 최초로 온라인 개학을 경험한 540만 명의 학생은 옛 질서를 낯설어 할 때가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그들은 20세기 사람이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세대가 아닌가. 앞선 세기 발발했던 수많은 전쟁 이후에는 항상 세상 질서는 바뀌었다. 낯설었던 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누구나 새 체제에 적응했다.

 

2, 3차 팬데믹도 예고된 상황에서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21세기 새 물결의 정체를 따져보고 능동적으로 변화를 모색 중일 게 분명하다. 전쟁보다 무섭다는 전염병이 언제가는 오게 될 새 질서의 도래 시기를 예상보다 더 일찍 앞당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하자. 한 발 늦으면 도태된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 @kookje.co. 국제신문 2020-04-23

 

 

한국판 뉴딜, 경제 성장이 아니라 '그린 뉴딜'이어야

역성장에서 탈성장으로

코로나19 여파가 세계 경제 위기로 전염되고 있다. 전 세계가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대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금융위기, 경제 불황 등 복합적 대위기를 일컫는 '퍼펙트스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요 해외기관들도 세계 경제 위기를 경고하면서 올해 세계 경제가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큰 규모의 경제 개입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국내총생산(GDP)10%가 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고, 독일은 GDP5%에 해당하는 재정 확대와 이보다 5배 큰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발표했다. 상당수 유럽 정부가 고용유지를 위해 임금의 상당 부문을 직접 지원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포스트코로나 경제 체제가 진보적으로 전환하는 모멘텀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해외기관들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민간소비와 서비스업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고, 이에 민간소비 성장률은 6.4%, 서비스업 성장률은 2.0%로 떨어졌다. 2분기에도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3월부터는 민간소비와 직결되는 고용도 줄고 있다. 3월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195000명 감소해 고용률이 60% 선 아래로 떨어졌고, 이는 9년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정부가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기업 안정 대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위기대응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기간산업과 소상공인을 구하고 대량 실업 위기를 막기 위해 894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등 7대 업종에 40조 원을 지원해 286만 명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3개월간 50만 원씩 생계지원자금이 지원된다. 55만 개 공공 및 청년 일자리도 만들기로 했다. 논란이 되었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되 기부금 세액 공제 등을 통해 고소득층의 자발적 반납을 유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소득 하위 70% 지급을 고수했던 기획재정부도 지급 지연에 대한 비판이 일자 중재안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국난극복의 핵심 과제이고 가장 절박한 생존문제"라며 "이번 대책에 필요한 3차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과 관련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주기 바란다"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견지해나가겠다고 했다.

 

한국판 뉴딜(New Deal)이 어떤 규모와 내용일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이 무엇일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비대면 서비스산업 육성을 비롯한 '디지털 뉴딜',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SOC 뉴딜'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들이 과연 한국판 뉴딜의 전부일지, 경기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조만간 닥쳐올 기후위기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판 뉴딜은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되는 '그린뉴딜(Green New Deal)'이어야 한다.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에 대한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그린뉴딜 관점에서 에너지다소비 및 온실가스 다배출 기간산업의 전환 원칙을 논의하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판 뉴딜이 지향하는 바가 경제성장이 아니길 바란다. GDP 지표의 증가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GDP가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사회·경제적 불평등, 여가 및 건강 등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보적 경제학자들, 생태적 성향의 싱크탱크와 NGO들은 GDP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많은 비판을 해왔고, 이를 수용한 유엔과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과 주요 국가들이 무수히 많은 대안 지표들을 만들어 제시한 바 있다.

 

포스트코로나와 기후위기 시대에는 인류 삶의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산업을 축소하면 GDP가 감소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결이 곧 GDP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일자리의 증가가 곧 GDP 증가가 아닐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목표가 상충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에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도넛 경제학 그림 참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사회의 처리량을 줄이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과정(탈성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출처: 케이트 레이워스(홍기빈 역) <도넛경제학>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프레시안 2020.04.24

 

정치는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21대 총선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과제

21대 총선이 정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여러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선거였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지구적 보건위기 속에서도 한국이 비교적 안정적인 대응과 관리가 되고 있다는 점,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민생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정부 여당을 선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조차 어려운 당장의 위기는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 위기관리능력을 더 찾게 만든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압승이 단지 코로나19때문만은 아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미래통합당의 무능, ‘정의당 지지가 진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던 심상정 대표,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려다 거부당한 민중당·녹색당의 행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한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정치에서 진보개혁정치로 교체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마치 민주당이 새롭게 등장한 집권세력이라도 되는 양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효율성에 반응하는 사회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사라진다. 심화하는 불평등과 폭력 속에서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그만큼 작아진다. 시민사회운동, 인권운동은 선거정치에서 한 발 비껴나 언제까지 이런 관전평만 반복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21대 총선 결과다.

 

정책과 정치세력은 분리불가능하다

시민사회운동은 선거 시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참여를 해왔다. 대표적인 게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다. 주로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에 초점을 맞춰 선정한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낙선할 정도로 선거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를 일부 개정하기도 했다. 그 이후 매 총선시기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대기구가 꾸려졌고, 이번 선거에서도 ‘2020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이 각 정당의 정책평가와 낙선후보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200016대 총선 이후, 시민사회단체 선거대응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었다. 언론과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정책질의에 대한 정당과 후보자의 응답률은 떨어져만 갔다.

 

시민단체의 선거대응은 90년대 관권선거를 막기 위한 공명선거운동, 투표독려운동에서 출발해 낙선운동을 거쳐 정책평가활동 중심으로 변화 발전해왔다. 선거 시기 시민단체는 정치의 조직자가 아닌 감시자, 정보제공자, 평가자의 위치인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 선거대응에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중요한 원칙이 된다. 선거대응의 중심이 된 메니페스토운동, 정책평가활동 역시 공정성과 중립성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특정 정치세력, 정당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선거 시기 유권자들의 선택에서 정책이나 공약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유권자들은 선거용 공약에 더 이상 속지 않을뿐더러, 개별 정책과 공약을 넘어 지지할만한 정치세력인지를 판단하면서 각 정당에 투표한다. 혹자는 합리적인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진영논리만 강화된다고 하겠지만, 무릇 정책이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세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떠올린다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동안 민주당 계열 정당에 입당한 수많은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의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노동, 여성, 환경, 청년 당사자 또는 정책 전문가로서 운동의 과제를 개인적으로 실현하려고 했겠지만 보수정치세력인 민주당의 지향과 한계에 갇힐 뿐이었다. 정치는 결코 정책 성안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한 조직화, 세력화가 정치다. 얼마나 많은 법안들이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는가. 설령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실행과 집행 계획이 뒷받침되지 못해 사문화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시민단체의 선거대응활동이 인물중심의 낙선운동의 한계를 넘어 정책평가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여전히 선거에서 유의미한 행위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제도 정치는 정당의 몫?

시민단체의 선거대응활동과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더 일찍 민중운동, 사회운동은 후보출마와 정당창당을 통해 제도 정치에서의 세력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미 92년 대선부터 민중후보를 내왔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진보정치는 보수일색의 한국정치를 바꿔내는 중요 행위자가 되었다. 시민사회운동은 2000년을 즈음해 총선네트워크 방식의 권력감시운동과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으로 각각 선거정치에 임해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의 연계는 느슨해졌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핵심적 역할을 한 민주노총은 201219대 총선부터 유권자네트워크에 참여한다. 원내정당이 된 이후 진보정당은 선거중심정당이 되어갔고, 더 많은 의석 수 확보를 위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십여 년 동안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통해 현실 정치에 개입하고자 했던 사회운동은 총선네트워크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냉소적 관전자가 되어갔다.

 

지난 20여 년간의 결과로 제도 정치는 정당, 즉 사회운동과의 연계가 희미해진 정당의 역할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정책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적 문제를 쟁점화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정치적 요구와 세력화가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선거 시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기에 애매하게 선거대응기구가 꾸려진다. 직접 정당정치에 뛰어들거나 한 발 비껴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

 

제도 정치를 바꿀 운동과 정치를 조직하자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광장을 가득 채웠던 대중운동의 물결을 민주당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수렴해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저버렸다는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판이다. 촛불정신에서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와 연대의 힘을 발견했던 운동이 그 힘을 이어가기 위한 정치를 새롭게 조직해야 했다. 정치는 언제나 선거 그 이상이지만, 현실 정치권력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과제를 제도 정치만의 문제라며 외면할 일도 아니다.

 

‘2020 총선넷분노하자. 참여하자. 희망하자며 활동을 펼쳤다. 주요 활동 의제로 불평등 타파, 젠더 차별 혐오 근절, 기후위기 대응과 안전사회, 권력기관 개혁, 한반도 평화를 내걸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실현과제도 함께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의제를 내걸고 꾸준히 활동하고 정치를 조직해온 세력이 없었기에 총선넷의 활동은 정책 제안과 감시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공약과 정책만큼이나 그를 실현할 정치 세력이 중요하다면, 시민사회단체와 운동세력들이 정치세력화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선거와 같은 제도 정치를 정당들의 역할이자 몫으로만 미뤄둬서는 안 된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진보정당들 사이의 통합이나 연합 논의를 뛰어넘어 사회운동이 여러 진보정당들을 담아내는 틀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 정치, 절망의 정치에 분노한 이들이 매번 선거 때마다 권력위임을 강요당하고 절망에 내몰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 이후 국가의 역할을 새롭게 묻게 되는 지금, 누구나 전환을 말한다. 180석의 슈퍼여당이라는 결과를 보고 누군가는 개혁국회를 기대하지만, 정부 여당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조차 개혁은커녕 당장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기만을 바랄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를 만든 정치적 책임은 사라지고, 새로운 전환 사회에 대한 비전조차 없는 민주당이 개혁정치세력으로 불리면서 제도 정치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우리가 경험하기 시작한 경제와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기존 시스템의 기능저하, 작동불능을 의미한다. 정치는 이를 수습하려 하겠지만 민주당이 주도하는 제도정치는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사회 대전환은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정치세력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닌,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경제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운동’, 그리고 그 운동이 조직할 정치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21대 총선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운동에 남겨진 과제이다.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프레시안 2020.04.24

 

북아일랜드가 한반도 '녹색평화' 위해 전하는 교훈

한반도 '녹색 평화' 정착을 위한 환경-평화-안보 넥서스 접근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북아일랜드는 우리와 비슷한 분단, 분쟁, 평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48년에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남북이 갈라졌고, 1990년대까지 이어진 독립을 요구하는 아일랜드계 주민들과 영국 잔류를 지지하는 세력 간 유혈분쟁으로 사망자는 35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곳은 평화체제 정착에 있어서는 한반도보다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1998년에 '벨파스트/성 금요일 협정(Belfast/Good Friday Agreement)'을 체결한 이후 북아일랜드는 '유럽의 골칫거리'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평화구축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한반도 평화가 아직 깨지기 쉬운 꿈으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북아일랜드는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가? 필자는 북아일랜드에서 진행 중인 갈등관계를 넘어선 환경협력을 예시로 환경, 평화, 안보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며 '녹색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정치개혁, 안보개혁, 경제재건 등 여러 면에서 북아일랜드는 다른 분쟁 후 사회(post-conflict societies)에 비해 훨씬 안정적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했고,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행기 정의 및 과거사 문제, 사회적 트라우마, 공동체 간 분열, 평화체제에 반대하는 지하 무장조직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잔존하고 있으며, 환경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갈등이 자연환경과 자원갈등이 원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평화과정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평화협정 체결 이후 사회재건 과정에서는 경제개발을 이유로 환경문제 해결은 외면받았다. 북아일랜드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Northern Ireland) 대표 제임스 오어(James Orr)'북아일랜드 자연환경은 북아일랜드 평화과정의 잊혀진 희생자'라고 평했을 정도로 이곳의 환경오염은 영국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대표적인 환경오염 사례로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데리(Derry, 공식 명칭은 런던데리Londonderry)에서 발견된 약 150만 톤에 달하는 폐기물이 매립된 모부오이(Mobuoy) 지역 사건이 있다. 연루자들이 아직 재판 중에 있는 이 사건은 2012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지금까지도 북아일랜드 정부는 정화비용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매립지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북아일랜드 전체 인구는 180만 명 정도로 이 매립지 한 곳에서만 국민 1인당 약 1톤의 정화비용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셈이다. 2013년 이 사태의 원인을 조사한 보고서(Mills Report)는 이와 같은 불법 폐기물 범죄가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미약한 환경규제와 법집행기관의 직무유기 때문이라고 정리하였다. '환경오염은 국경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듯이 모부오이 지역에 매립된 폐기물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사이 국경에 걸쳐있는 지역 식수원을 위협하며 데리 지역 주민들은 물론 아일랜드 주민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후 걷잡을 수 없는 규모의 사태를 해결하고자 북아일랜드 환경청을 중심으로 민관협의체(Mobuoy Waste Stakeholders Group)가 발족했는데, 이 기구는 정부와 시민들, 그리고 서로 이질적인 공동체에 속한 주민들 간 환경협력을 통해 평화와 안보를 증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사실 데리는 20세기 북아일랜드 유혈분쟁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도시로, 북아일랜드 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근거지였으며, 1972년 아일랜드 주민들이 영국군에게 피살당한 '피의 일요일 (Bloody Sunday)'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1998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도 아일랜드계 주민들과 영국계 주민들의 거주지역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법 폐기물 매립지를 해결하기 위해서 환경청과 지역 환경단체는 물론 서로 대립관계에 놓여있던 아일랜드계 주민들, 영국계 주민들, 그리고 경찰 등 법집행기관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이 협의체에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일랜드 지역 주민단체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는 유혈충돌 등 갈등관계에 놓여있는 집단 사이에 협력과 이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환경협력에 기반한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이라는 이름으로 관련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평화구축 방식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서 평화체제 구축 또는 유지 둘 다를 위해 채택할 수 있으며, 북아일랜드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모부오이 민관협의체의 사례로 볼 수 있듯이 환경협력에는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평화로운 관계를 도모하고, 지역사회와 국가의 안보에 기여하는 사법기 등 여러 당사자들이 참여해야 더 포괄적으로 의제를 다룰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평화구축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환경-평화-안보 넥서스(environment, peace and security nexus)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넥서스 접근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평화 및 안보를 증진하는데 무조건적으로 낭만적이고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넥서스 접근은 참여주체들 간 문제 해결 목적과 방식의 차이를 피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도 있다. 모부오이 폐기물 사태의 경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라는 커다란 외부 충격에 직면한 상태이다. 아일랜드 섬 남북을 가로지르는 이 '아일랜드 국경(the Irish border)'은 아일랜드 식민역사, 북아일랜드 분쟁의 상징인 동시에 남북협력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202021일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지만 여전히 아일랜드 국경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며, 이는 성 금요일 평화협정에도 명시된 사안이어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유럽연합은 현 상태 유지를 주장하는 반면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국경통제를 주장하면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환경협력과 평화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국경은 지금처럼 계속해서 개방된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아일랜드 국경은 닫힐 위기에 놓여있다. 다만 자유로운 국경 이동이 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모부오이 폐기물 매립지 사례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조직의 활동도 그만큼 용이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러한 딜레마는 넥서스 관점을 채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완전히 해소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순진하게 들릴 수 있지만 딜레마를 해결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환경, 평화, 안보 넥서스의 어느 한 부분이 완전히 희생당하지 않도록 딜레마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접근할 때 환경보호와 평화구축, 안보증진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가능성이 높다.

 

딜레마를 푸는 하나의 방식으로는 권리 기반 접근(rights-based approach)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누구의 어떤 권리를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특정 소수자 또는 주변화된 집단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며, 권리담지자들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구조적 조건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고려한다. 모부오이 민관협의체의 경우 불법으로 매립된 폐기물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들의 요구와 자연생태계의 보전, 그리고 협력의 공간으로서 아일랜드 국경이 브렉시트라는 국경통제 계기로 인해 완전히 희생당하지 않도록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자연의 권리'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환경-평화-안보 넥서스 관점을 적용해서 만들어진 한반도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도 아일랜드 국경처럼 남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와 바다 수역이 있다. 이 공간은 지난 70년 동안 분단을 상징하는 국지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해온 안보의 최전선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러나 38선에 걸쳐있는 한반도의 자연유산도 전 세계적인 기후재앙으로 인한 악영향을 피해갈 수 없으며, 따라서 이곳을 보호하기 위한 남북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비무장지대 북쪽은 화전농업 인한 산림파괴가 심각하며, 대규모 자연재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산림보전 협력이 우선순위로 손꼽힌다. 자연환경 보전협력은 북핵문제가 상징하는 남북 분단을 둘러싼 갈등과 다소 거리를 두고 진행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북 당사자간 접촉이 늘어나고,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그린 데탕트'의 가능성도 내다볼 수도 있다. , '휴전선 남북한 환경협력'은 환경과 평화가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다만 안보를 둘러싼 딜레마도 존재한다. 비무장지대와 해상 수역을 따라서 남북 양측의 군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비군사적인 이동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환경협력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적극적인 환경협력을 꾀하는 과정에서 국경지대 공동경비 방안 등 안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온다. 결국 최적의 결과는 넥서스의 관점에서 환경단체, 정부, 군 등을 아우르는 환경협력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휴전선 일대의 안보를 함께 유지하는 한편 공동 산림보전 등 환경협력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철망으로 둘러싸인 비무장지대에 비해서 표시가 뚜렷하지 않은 남북한 해상경계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특히 서해안의 경우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이 언제라도 무력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8년에 남북한 정부는 북방한계선(NLL) 갈등의 해법으로 '서해안 평화수역'을 선언했지만, 국경의 지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북한 평화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평화수역 선언이 환경협력 촉진 등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협력을 필요로 하는 환경의제들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북한 해역을 통해 내려오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공동 대응 문제도 있고, 해상 생태축을 잇는 활동도 필요하다. 후자의 경우 시민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인데, 예를 들어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점박이물범 보호사업이 그러하다. 인천시 주민참여예산으로 지원을 받은 이 활동은 현재 백령도 점박이물범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멸종위기종인 이 물범들은 겨울 번식기에는 북한을 거쳐 러시아와 중국까지 올라갔다가 봄이 되면 남한까지 내려오는 습성을 보인다. 서해안 자연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이들의 멸종은 해양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점박이물범을 온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시민사회 활동을 지원하여 북한과는 물론 한반도를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를 망라하는 점박이물범 연구 및 생태계 보전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환경협력을 위해서는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경계를 평화로운 협력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치적인 합의와 안보에 대한 남북한 군대의 합의가 앞서 매듭지어져야 한다. 또한 한반도 백두대간 생태축 잇기 등 온전한 한반도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남북한 평화관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안보 측면에서 비무장지대 및 평화수역에서 무장충돌은 물론 군사안보 문제가 국경지대 협력을 위협하지 않도록 남북한 공동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남북 정부는 정부의 결정에 의해서만 협력의 여지가 열릴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지속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협력을 위한 정부 간 합의는 분명 남북협력의 물꼬를 트는 중대한 계기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에 녹색 평화의 씨앗을 심는 '아래로부터 협력관계'가 튼튼하게 다져질 때 '위로부터 남북관계'가 어려운 시기에도 갈등을 버틸 수 있는 완충지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환경협력을 통한 평화관계 및 안보 구축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더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백두대간의 권리, 서해안 멸종위기 동식물들의 권리 등 자연의 권리를 환경-평화-안보 넥서스에 결합하기 위하여 많은 토론과 실험적인 시도들이 필요하다. 한반도 협력에 있어 환경-평화-안보에 대한 통합적인 넥서스 접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 프레시안 2020.04.27

 

 

3조 혈세 들어간 한진·금호, 오너 일가는 코로나 위기 고통 분담했나

코로나와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 그리고 그들의 도덕적 해이

국제경영이라는 학문영역을 공부하다 보면 많은 기업의 성공이나 실패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항공사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산업은 일반적으로 환율과 같은 환경적 영향이 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항공 산업이 주로 해외와 유기적으로 관련된 업종이기에 타국 통화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이 수익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율이 계속적으로 하락한다고 가정해보자.

 

원화 강세 흐름이 지속되면 항공사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원화가 강세이면 똑같은 외화를 환전해도 더 적은 원화를 손에 쥐게 되기에 한국으로 여행을 오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감소하는 반면, 해외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역으로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엔저 현상(, 엔화 대비 원화의 강세)이 만연했던 2012년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3224억 원이었는데, 이즈음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 수는 매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율을 보이며 급감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원화 강세는 국내 여행객의 해외여행 수요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한 증권사의 분석에 따르면, /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내국인 출국자 증가에 따라 145억 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하며, 달러 매출과 비용의 차이에서 131억 원의 영업이익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럼 보다 더 최근 실적을 알아보기로 하자. 2019년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6.4%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2909억 원의 흑자를 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껏 논의한 환율은 여러 가지 예시의 하나일 뿐, 대한항공의 혹자 혹은 손실 발생에 기여하는 요소가 비단 환율만은 아닐 것이다. 무수히 많은 외부 영업환경들이 영향을 미치게 되며, 2019년을 생각해봐도 무역 분쟁,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그리고 홍콩사태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도 이러한 외부환경의 하나일 뿐이다.

 

만일 대한항공이 대한민국의 국적기라는 점에서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이익을 국가에 환원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제게 제정신을 갖고 하는 질문이냐고 질타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항공은 대한민국의 국적기이기 이전에 민간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손실 폭이 확대되어 유동성 문제를 겪는 경우는 어떠한가?

 

얼마 전 언론의 기사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항공에 1.2조 원, 아시아나 항공에 1.7조 원에 이르는 긴급 자금을 각각 투입한다는 뉴스를 접한 바 있다. 유동성 위기에 놓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이번 지원으로 현금을 확보함으로써 일단 한숨을 돌리고 급한 불은 끈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말 의아함을 감출 수 없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운영하는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그 책임은 온전히 경영을 잘못한 재벌총수와 주주의 몫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 기업(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오너 일가는 얼마나 많은 고통 분담을 함께 했는지 묻고 싶다. 대한항공이 이 지경이 되었을 때 과연 오너 일가는 사재를 출연하는 등 기업의 위기 극복을 촉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와 노력을 다했는가? 심지어 한술 더 떠 금호그룹 직원들과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지난해 희망퇴직 압박을 받았고, 얼마 전엔 사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급휴직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이 와중에 그룹 오너이자 전직 회장인 박삼구 회장은 64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보수를 받아 챙겼다고 한다. 엄청난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석유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정유 업계 또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고, 1.4조 원에 대한 세금 납부를 3개월 유예키로 해줬음에도, 납세 유예가 아닌 감면을 호소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우는 소리하면 젖 주고, 우는 소리 하면 젖 주고 해왔던 관행이 그들로 하여금 이익이 나면 이익은 자신들의 돈, 반면 손실이 과해지면 정부에서 어떻게 도와주겠지 하는 비윤리적인 기대를 하게끔 하는 이유가 된 것은 아닌지 총수 일가에게 묻고 싶다.

박병일 한국외대 교수 | 프레시안 2020.04.28.


   

코로나 이후의 생태적 계몽과 실천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120일이었다. 그로부터 100일 정도 지났다. 방역 모범국가로 일컬어질 만큼 우리 정부의 대처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많을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한 달 전 칼럼에서 나는 이 사태를 이중적 뉴노멀 사회의 도래로 명명한 바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라는 뉴노멀에 전염병의 불확실성이라는 또 하나의 뉴노멀이 중첩돼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경제와 전염병의 결합에 대해선 위험의 경제학이 요구되고, 허세로 드러난 글로벌 거버넌스를 대신해 국가의 귀환이 이뤄지며, 이 사태가 끝난 후 돌아갈 미래의 자리가 현재의 자리와 과거의 자리 사이에 놓인 3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해 봤다.

 

사회학자로서 어려운 일 중 하나는 현재진행형인 사태에 대한 중간 관찰과 향후 전망이다.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될까. 코로나19 사태는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사건사를 넘어선 국면사. 국면의 역사는 나날의 사건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사유 및 행위를 제한한다.

 

지난 2월 어느 날 지하철을 탔을 당시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승객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기침을 하자 놀람과 짜증과 두려움이 담긴 눈빛들이 쏟아졌다. 이 사태가 놓인 자리가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건드린 것은 바로 우리 생명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류의 심층이 개인과 사회라는 세상의 표층으로 올라오는 순간, 울리히 벡이 강조했듯, 안전이라는 가치가 다른 모든 것들을 단숨에 몰아내 버렸다.

 

코로나19 광풍이 이탈리아 등 서구사회를 강타하자 분석과 전망의 담론들이 쏟아졌다. 스웨덴식 집단면역 전략과 중국식 봉쇄 전략에 대한 발빠른 평가가 이뤄졌다. 올겨울 제2차 파고 가능성에 대한 두려운 예측이 이어졌다. 그리고 허구의 세계화, 포퓰리즘의 부상, 고용 뉴딜과 기본소득의 요청, ‘언택트사회와 문화의 도래, 자연과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코로나19 ‘이전이후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코로나 모멘텀이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기본적으로 의학적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존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의 특징은 경증상 상태에서 전염력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지구적으로 벌써 300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백신 개발이 문제 해결의 근본책일 터인데, 의학자들은 1~3년 정도의 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높은 전염성과 상당한 치사율이 낳고 있는 이 지구적 공포가 언제 종식될지는 그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앞선 신종플루 사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신종플루는 2009년 멕시코에서 발병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종식을 선언했지만, 동남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극심해 28만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분명한 사실은 이 가공할 바이러스들이 불시에 우리를 방문할 수 있고, 체계적인 대책들을 마련해놓지 않는다면 삶의 터전이 무기력한 무방비 도시처럼 일거에 황폐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릇 어떤 문제 해결이든 그 근본 원인의 성찰이 중요하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자연 파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여기에 물적, 인적 세계화가 결합하면서 순식간 지구화된 위험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국면사는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청한다.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다면, 자연 파괴가 계속되는 한 인류는 주기적인 바이러스 폭풍을 비켜갈 수 없다.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피해 최소화 전략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전방위적 뉴딜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당장 급박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무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지금 우리 인류가 마주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환경 파괴의 계몽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생태적 실천의 근본적인 처방이 이뤄지지 않는 한, 코로나 시대라는 이 국면의 역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0.04.28

 

역대급찜통더위 예고

 

미국 메인대학 기후변화연구센터가 작성한 세계 열지도

 

가정집 싱크대에 두었던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했다. 전철역 스크린도어 유리벽이 열기를 이기지 못해 박살났다. 모기도 말라죽어 확 줄었다. 집집마다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가 날아왔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6년 여름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은 이전까지 가장 더웠던 1994년과 엇비슷했다.

 

기록상 가장 더운 여름은 2018년이었다. 여름 최고기온 41, 평균기온 25.4, 폭염 일수 31.4, 열대야 일수 17.7. 모두 역대 1위를 갈아치우며 폭염 4관왕에 올랐다. 그해에는 대전 부근 경부선 철도 레일이 엿가락처럼 휘고, 전남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 아스팔트가 갈라지며 들떴다. 대구의 백화점에서는 외부 유리천장이 뜨거워져 이를 화재로 감지한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물벼락을 맞는 일도 벌어졌다. 전국 응급실에 신고된 온열 환자가 4000명을 넘었다. ‘초열대야’ ‘지옥불반도라는 말도 나왔다.

 

해가 갈수록 더워지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2016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더웠던 해로 기록됐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이 201613.6, 201913.5도였다. 연평균 기온이 높은 상위 10개 연도 중 7개가 2000년대 이후였다. 찜통더위가 반복되자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고 다니는 ‘11선풍기나 교차로·버스정류장의 그늘막·얼음 쉼터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더위를 피하고 이기는 게 머리 아픈 숙제가 됐다.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 기상학자들은 올여름이 역대 가장 무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황금연휴 동안 일부 지역에서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를 보인 게 그 징조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은 올해가 1880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을 74.7%로 예측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 멈춤도 지구를 식히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폭염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후재난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너무 빨리 더워지니 예측 따위가 소용없다고 했다. 올여름 역대급찜통더위를 용케 지내도 내년·내후년에 그 이상의 폭염이 닥칠 수 있다는 말이다. 뜨거운 게 아니라 오싹한 일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경향 2020.04.30.

 

 

코로나가 가져온 새로운 에티켓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코로나19가 엄습한 2020년을 전염의 시대로 규정했다. 한국도 전염의 시대. 집단감염이 수그러들었을 뿐,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 올겨울 2차 대유행까지 예고된 상태다. 집단면역은 형성되지 않았고,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은 요원하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울 무기는 없다. 도망치거나 함께 사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정부가 생활방역 수칙으로 제시한 생활 속 거리 두기 세부지침은 전염병 퇴치 방법이 아니다. ‘출구전략과도 거리가 있다. 인간과 코로나바이러스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기술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공동체를 해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병원과 직장, 지역사회 전체를 뒤흔든 슈퍼 전파자의 위력은 컸다. 감염바이러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을 마비시켰다. ‘전염의 시대에 예외는 없었다. 동네, 도시, 지역뿐 아니라 지구촌이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관계는 단절됐다. 사람들은 고립감, 우울증, 공포감에 떨면서도 타인에게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거리 두기와 언택트’(비대면)의 가치가 급부상했다. 코로나19는 이전과 다른 포스트 코로나를 선포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예절을 요구한다. 예절은 인간, 사회, 국가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태도와 가치이다. 3000년 전 주나라가 들어서자 <주례>가 만들어졌다. 주례는 국가 통치 질서, 인간관계를 규정한 도덕교과서이자 정치사상서다. 한나라 때는 <예기>가 만들어졌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사라진 전통의 질서, 가치 체계를 집대성한 예법서이다. <예기>는 유학을 국시로 내건 한 왕조를 뒷받침하면서 이후 2000년간 동양 질서의 표준이 되었다. <예기>는 자잘한 예절인 곡례3000가지나 된다고 적었다. 전통사회에도 지켜야 할 규범과 질서는 넘쳐났다.

 

1530년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어린이들의 예절에 관하여>를 썼다. 귀족 자제의 행동거지, 표정, 의복 등 일상 예절과 함께 인사하는 법, 앉는 법 등 에티켓을 다룬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18세기까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어 130판이나 찍었다. 에티켓 모음집이 오래도록 인기를 끈 것은 중세 해체기에 접어든 유럽 사회가 새로운 예절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가 제시한 일상의례, 생활방식은 뒷날 서양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술잔과 나이프는 오른쪽에, 빵은 왼쪽에 놓는다는 식사 에티켓도 이 책에 실려있다.

 

실학자 이덕무의 <사소절>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널리 읽힌 바른 생활지침서이다. 유학의 도덕교과서인 <소학>과 비슷하지만,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선비, 부녀자, 어린이가 지켜야 할 생활 에티켓을 모은 게 특징이다. 이 책에는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지 말라’ ‘복어국을 먹지 말라와 같은 개인 수칙이 들어있다. 18세기 말에 쓰인 <사소절>은 필사본, 활자본, 언해본으로 발간되어 20세기 초까지 읽혔다. 책이 호소력을 가진 것은 유교 이념을 탈피한 일상의 에티켓이 조선 해체기의 사회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가 예절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잘한 에티켓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간염이 확산되면서 공유문화가 사라졌다. 간염 예방을 위해 더 이상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면도기나 수건도 함께 쓰지 않는다. 감염병이 생활을 바꾼 사례다. 코로나19 이후 악수하는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렵게 됐다. 마스크 쓰기·손 씻기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전염의 시대의 새로운 일상이다. 방역당국이 권장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에는 아프면 집에서 쉬기, 변기 뚜껑을 닫고 물 내리기, 퇴근 후 일찍 귀가하기, 개인 접시에 음식 덜어먹기과 같은 다양한 수칙이 들어 있다. 산에서 야호소리를 외치지 말라는 권고도 있고, 장례식장에 30분 이상 머무르지 말라는 조항도 들어 있다. 대부분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에티켓들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에티켓 문화의 뉴노멀은 이미 시작됐다. 방역수칙만 준수해도 일상 예절의 대변동이 일어난다. 습여성성(習與性成)이다. 반복적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문화를 바꾼다. 에라스무스가 제시한 어린이 에티켓은 근대 서양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사소절은 전체를 중시하는 유교사회에서 개인 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서양 에티켓의 진화가 문명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코로나19 방역은 거창하지 않다. 거리 두기·손 씻기처럼 소박하다. 작은 실천이 새로운 에티켓 문명을 만들어간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경향 2020.04.30.

 

 

재난의 최전선과 뿌리로 가라

큰 병치레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럴 때, ‘은 타성에 젖은 삶을 깨우는 죽비다. 코로나19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항공기, 기차, 자동차의 움직임이 줄고 공장이 멈추자, 자연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은 가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는 히말라야 경관이 돌아왔다. 우리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이 변화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장을 한다고 자연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면, 바이러스 감염과 재난은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전환이 절박하다.

 

사회적 전환을 위해 정부와 여당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첫째, 재난의 최전선이다. 그리 가서, 들으라. 재난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거기에 답을 가져다주지 말고, 거기에서 답을 구하라. 답은 현장에 있다. 이번에 바이러스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취약 고리를 직면해야 한다. 특히 우리 노동인구의 절반이 되는 각종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야 한다. 재난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이 자기 체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재난의 뿌리다. 그리 가서, 보라. 지금까지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본이 어디서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해왔다. 세계화는 최소의 비용으로 인간과 자연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최적화된 긴밀한 연계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의 눈으로 보면 세계화는 세상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생태적 연결은 배타적 이윤을 주된 목표로 하는 긴밀한 연계와 그 성격이 판이하다. 모든 것을 잇고 있는 근원적 유대는 인간 서로에게 존엄과 평등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중과 돌봄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느슨한 연계. 우리가 만든 긴밀한 연계를 자연의 느슨한 연계에 부합하게 바꿔야 한다.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법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외쳐온 우리에게 코로나19천천히, 적절하게를 주문한다.

 

재난에 대비한 사회적 체력 강화에 먹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한때였지만, 우리도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었다. 그때 마스크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 몇몇 식량 수출국이 쌀 수출을 금지했던 일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 간 단절과 고립은 이번보다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기후변화도 세계의 농사에 중대한 위험 요소다. 다수의 악재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 들이닥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4차 산업이 급하다는 우리에게 코로나19농업이 급하다고 주문한다.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K방역으로 방역의 새 길을 열었다. 우리 정치는 ‘K전환이라는 새 길을 열 수 있을까? 정부와 거대여당의 실력을 기대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hyunchulsj@gmail.com 경향 2020.04.30.


Greenleaf - Alishan Mountain (2007)

Agents Of Ahriman (Alb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