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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5.3~15 한국판 뉴딜? 위기의 지구를 보라

by 이성근 2020. 5. 16.

 

명의 서 경향 2020.05.03.

자존감은 쾌감이 아니라 동력이다 경향 2020.05.04

참을 수 없는 기사의 가벼움 경향 2020.05.04

송악산 개발, 누가 정신 차려야 할까 경향 2020.05.05.

늙은 사회가 될 준비 경향 2020.05.05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한겨레 2020-05-07

이라크 침공 빼닮은 미국의 코로나19 중국 때리기 경향 2020-05-07

아베의 영속패전 한겨레 2020-05-07

50대의 선택, 국가의 효능감 한겨레 2020-05-07

자본의 천박함, 노동자의 절박함 mediatoday. 2020.05.09

한국판 뉴딜? 위기의 지구를 보라 경향 2020.05.10.

막오른 한국형 뉴딜과 정계개편 경향 2020.05.10.

미션 임파서블선거부정 경향 2020.05.10.

김대중·노무현에게 180석이 있었다면 경향 2020.05.11.

정치 브로커김종인의 살길 한겨레 2020-05-14

군 위안부 논쟁의 윤리를 생각한다 한겨레 2020-05-14

긴급재난지원금, 소비와 기부 사이 경향 2020-05-14

재난소득 기부의 힘 한겨레 2020-05-15

 

 

생명의 서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와 대면케 될지니”(‘생명의 서’). 20132월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바꾸려다 좌절하고 정직 4월 강제휴가에 들어갈 때, 읊조렸던 시구절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회성 항명인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과는 달리, 징계취소소송은 조직과의 장기전이라 보복이 두려웠지만, 고민 끝에 결행했습니다. 위법한 지시를 한 간부가 아니라, 법대로 한 검사가 징계받는 악선례를 남길 수 없으니까요. 척박한 검찰에 검사로서의 양심을 지켜줄 버팀목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5년에 걸친 징계취소소송 끝에 징계를 취소하긴 했는데, 검찰은 까딱 않더군요. 위법한 지시를 하고 징계권을 오남용한 간부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었습니다만, 대검은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며 징계를 거부했습니다. 지시가 위법하다는 판결도 검찰공화국 성벽을 감히 넘어서지 못합니다. 궁리를 거듭했지요. 무엇을 해야 하는가. 5개년 계획을 다시 수립했습니다. 위법한 지시를 한 간부, 지시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른 검사를 처벌한 선례를 만들어보기로. 상명하복에 주눅 든 검사의 용기를 받쳐줄 지지대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싶더군요.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시구절을 읊조리며 결기를 다졌습니다.

 

수사지휘권과 기소독점권은 검찰의 절대반지입니다. 수사하지 않으면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고, 증거가 있어도 못 본 척하면 그만이니, 검찰은 치외법권이지요. 예외적으로 법원이 기소를 명령하는 재정신청 제도가 있긴 한데, 기소명령을 이끌어낼 증거를 검찰은 찾지 않을 테고, 경찰은 검찰 방해로 찾을 수 없을 테니, 웬만해선 재정신청 해봐야 소용없지요. 하여, 저는 사실관계가 대부분 드러나, 증거가 아니라 법리가 주된 쟁점인 사례를 골라 고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검찰이 검사들의 공연한 범죄를 요란하게 덮어버린 사건 중 외력에 떠밀려 뒤늦게 기소한 사건들이 마침 있었지요.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서울남부지검 김모, 진모가, 시민단체 고발로 공문서 등을 위조한 부산지검 윤모가 뒤늦게 법정에 세워져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당시 사실관계를 다 조사하고도 징계와 형사처벌 없이 명예퇴직과 의원면직을 허락했음은 유죄판결 기록에서 드러났으니, 징계와 형사입건하지 않은 검찰 조치의 적법성 여부가 쟁점인 사안. 징계와 형사입건 기준은 법령과 행정규칙에 상세히 나와 있고, 전직 대법원장, 민정수석, 경찰, 교장 등 여타 직업군들의 유사사례를 처벌한 실무례가 쌓여있지요. 하늘이 검찰을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싶어 고발장을 작성하며 감사했습니다.

 

너무도 뻔한 사건이지만 무소불위 검찰이라, 20185월 전직 검찰총장 등을 고발하며 수사결과를 예상했었습니다. 속칭 정책미제로 검사실 캐비닛에 방치되어 있다가 공소시효 완성되기 직전 불기소할 테니 20204월쯤 재정신청할 거란 걸. 까마득하게 보이던 2년이 쏜살같이 지났네요. 지난달 말, 뉴스로 불기소 결정을 접했는데, 이유를 바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추한 민낯을 보고 싶지 않은, 내부자로서의 슬픈 방어기제지요. 결국 확인했고, 예상대로 고통스러웠습니다. 20136월 친고죄 폐지 후 무관용 원칙에 따라 성폭력사범들을 엄벌해온 검찰이 정작 내부 성폭력에 대하여는 친고죄 폐지는 피해자 보호 취지를 반영한 것일 뿐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의무적으로 형사입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우기고, “검찰 수뇌부가 피해자 의사 존중 원칙, 2차 피해 우려 등을 감안하여 가해자들의 형사입건 및 감찰을 하지 않은 것이니 정당하다등의 궤변으로 가득 찬 불기소 이유를 읽고 있자니, 검찰을 되살릴 수 있을지 아득하고 막막해집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20198월 울산으로 부임한 후 매달 우체국에 들러 참고자료를 발송했습니다. 수사의지 없는 검찰이라, 탐문수사와 법리 검토는 제 몫이지요. 결국 검찰이 불기소했기에, 지난주 계획했던 대로 우체국에 들러 검찰을 되살릴 생명의 서, 재정신청서를 띄웠습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새로이 펼쳐진 길,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경향 2020.05.03.

 

자존감은 쾌감이 아니라 동력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나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중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고 과학경시대회 수상자였던 나의 첫 시험 성적이 거의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모든 고민은 어떻게 해야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이 학교를 떠날 수 있을까였다. 나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율학습을 마치고 체육관에 갔다. 거기에는 탁구대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몇 주가 지나자 더 이상 날 상대할 선수가 없었다. 중학생 시절 동네 탁구장에서 두 달간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덕이었다. ‘어라, 학교 다닐 만한데’(체육고가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부터 내 고등학교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고(오는 것 같았고), 공부도 다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능력이 전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요즘처럼 국뽕이 차오른 적이 없다” “한국이 선진국인 것은 우리만 몰랐다고들 한다. 사실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한국은 2년 전에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에 가입했다. 우리는 196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범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다. 이 성취는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큰 기여를 했다.

 

BTS를 대표로 하는 K팝은 문화적 측면에서도 한국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BTS는 다른 K팝 스타들이 넘사벽이라고 생각했던 북미와 유럽 시장을 확실히 뚫었고 전 세계 아미(팬클럽 이름)들의 행동을 동기화했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며칠을 줄지어 기다리는 서양 친구들을 화면으로 목격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손흥민은 세계 축구계의 블루칩으로 맹활약 중이다. 우리 어른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19 사태는 또 다른 영역의 자존감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꽤 좋다. 엊그제 정세균 총리는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됐다고 선언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이 가진 세계적 표준은 단순히 방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브랜드K’가 세계를 이끌기 시작했다고 전망했다. 브랜드K는 이제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최고치다.

 

왜 우리는 대한민국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할까?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동에는 몇 가지 심리적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집단 내에서 음식물을 획득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아이를 양육하고 각종 위협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사회적 자본(사회적 네트워크)이 필요했다. 이에 소속감, 협력 의지, 충성심 등은 슬기로운 집단생활의 필수 심리로 진화했다.

 

둘째, 집단에 소속함으로써 불확실성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크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집단성이 높은 집단을 더 강하게 동일시한다. 인생에 불안감이 몰려올 때 교회를 찾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 팬클럽에 가입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의 자존감 상승을 잘 이해하려면 사회적 정체감 이론이 필요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은 자존감의 중요한 원천이다. 해외에서 한국 회사 제품의 광고를 보고 왠지 모를 뭉클함과 뿌듯함에 스스로 놀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지 한국 브랜드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세월호 참사, n번방 사건, 각종 산업재해와 같은 국가적 비극과 수치를 겪을 때 국민 개인의 자존감이 추락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K방역을 외치는 지금 한국인의 자존감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몇 년 전 실패한 바로 그 영역(방역)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기에 우리의 자존감은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존감을 당장이라도 추락시킬 위협 요인들은 건재하다. 가령, 작년 경향신문이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라는 특집기사에서 보도했듯이, 산업 현장에서 안전비용 절감 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가 하루 평균 3명이나 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다. 자살률도 1위다.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5회 우승)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인들이 브라질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K, K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뜬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갑자기 행복한 국가로 승화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자존감이 살짝 올라갈 뿐이다. 우리가 올려야 할 자존감의 영역은 우리 일상의 본질에 해당되는 부분이어야 한다. 삶의 현장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브랜드K’ 외침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우리 방역 시스템의 여태까지의 성공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줄 만하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과 같은 일상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탁월한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존감을 ‘K방역이라고 꼬리표를 달아주고 홍보하는 쪽에 힘쓰기보다는 남아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심리적 동력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보다 이번 방역 문제를 잘 풀었으니(우쭐), 이제 우리를 좌절케 하는 고질적 문제들을 다시 천착해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난데없는 탁구 실력으로 자존감을 회복했다. 이 자존감은 내게 학습 동기를 불어넣었고, 내 성적은 두 달 만에 전교 3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물론 그 이후의 성적은 비밀이다. 자존감은 단지 쾌감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동력이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경향 2020.05.04

 

참을 수 없는 기사의 가벼움

김정은은 건재했다. 쏟아진 오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유 있게 웃으며 활보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말로 오보에 불을 지른 미래통합당 태영호·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인은 가짜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김정은과 관련한 오보를 두고 인포데믹이란 말도 나왔다.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인포데믹은 디지털 시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속도를 타고 더 빠르게 확산된다.

 

미국 CNN 등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보도하자, 국내 언론도 빠르게 이를 복제하고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김정은 위독설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걸렸다. 포털사이트의 언론사 뉴스 채널마다 김정은 위독설이 주요한 자리에 배치됐다. 이쯤 되면 안 쓰는 곳이 바보가 되는 지경이다. ‘의혹만 제기하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마구 날아다닌다.

 

사실 이런 일들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 어떤 날엔 포털사이트에서 구독하는 언론사 채널에 걸린 기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할 때도 있다. 손쉽게 쓰고 소비되는 기사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압도적인 휘발성의 세계다.

 

속보 경쟁, 베껴 쓰기가 언론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킨다면, 기자에겐 자기소외와 몰개성화를 낳는다.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행위를 통해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한다.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지, 취재와 기사 작성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와 지식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별 기자를 차별화한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노동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조회수를 위한 속보 경쟁, 복제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기자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 남는 것은 곧 휘발돼 사라질 기사와 몰개성화된 기자들이다. ‘기레기란 명칭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어떤 곳은 인턴기자와 같은 비정규직에게 헐값에 전가한다. ‘온라인용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별도로 만드는 것은 언론사 내부에서 기자들을 계층화하고 차별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 신문과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여러모로 위기다. 위기 타개를 위해선 새로운 전략과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디지털 시대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시도들과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관성은 힘이 센 법이라, ‘구식 모객행위도 여전하다. 암울한 시장 환경에서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결국은 선택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사례가 영감을 줄 만하다. 버즈피드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이적한 벤 스미스는 지난 3월 칼럼을 통해 뉴욕타임스의 회생을 주목한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부상당한 거인이었지만 이젠 디지털 미디어의 공룡이 됐다. 스미스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매각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매각하고 오로지 콘텐츠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때 강력한 경쟁자였던 뉴미디어들을 삼키는 디지털 강자로 돌아왔다

이영경 모바일팀 경향 2020.05.04

 

 

송악산 개발, 누가 정신 차려야 할까

지난 4,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송악산 뉴오션타운개발 사업안을 부동의(不同意) 처리했다. 사업자 측이 환경영향평가 전문 기관의 재검토 의견을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뉴오션타운은 중국 자본인 신해원유한회사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주변에 총사업비 3700억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개와 캠핑장, 상업시설을 짓는 대규모 관광 사업이다(429일자 경향신문, “이 멋진 제주 송악산에 대규모 호텔 짓겠다고?” 기사 참조).

 

2003~2006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여러 차례 단식과 시위, 도롱뇽이 원고가 된 소송을 벌였던 지율 스님의 지난한 투쟁은 환경운동사의 논쟁으로 남았다. 그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31까지 내려간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리고 수도자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의 비타협적투쟁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송악산 기사를 보고 그의 투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통도사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천성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20014월 천성산을 파헤치는 공사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충격을 받았고 환경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나는 육지 사람이지만, 송악산 근처에서 6개월을 지낸 적이 있다. 평소에도 제주에 갈 때는 큰 돈(택시비)’을 들여 송악산에 꼭 간다. 올레 10코스의 일부인 산방산 아래의 산방연대(煙臺)-사계리 해안도로-송악산에 이르는 길은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 <페이스메이커>를 비롯, 각종 광고의 배경 화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너무나 아름답다. 사계리(沙溪里) 해변은, 글자 그대로, 모래사장에서 바다까지 거리가 길고 깨끗하다.

 

기본적으로 개발(파괴)은 인간이 자신을 자연에 포함시키지 않는, 자연에 대한 대상화이다. 나처럼 짧은 시간이나마 혹은 지율 스님처럼 늘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된 경험이 있다면, 호텔은 내 몸을 짓밟고 세워지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설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의 투쟁은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 아니다. 천성산, 내성천, 도롱뇽과 하나이기에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

 

모두가 뉴 노멀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개발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악산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도의회가 절차 문제로 제동을 걸었지만,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서귀포시 강정동이 미군기지 후보지로 지정되기 훨씬 전인 1988년 미국은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대체지로 송악산 군사기지를 지목했다. 일제 때나 지금이나 외세에게 제주는 중요한 곳이다. 여기에 자본이 결합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무능했다. 무지와 굴종으로 우왕좌왕하면서 자연(‘영토’)을 지키려는 주민을 탄압했다.

 

그간 환경영향평가와 주민투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최선의 방식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의하지 않는 주민에게 공권력을 동원했다. 코로나19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투표 결과는 무조건 민주주의일까.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오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가치의 문제다. 오히려 공청회나 투표는 문제의 책임을 주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일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다수결이 아니었듯 환경영향평가나 주민투표와 무관하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무조건 진리인가? 전문성, 공정성, 끊임없는 뇌물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그 결과가 개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영향평가에서 승인 결정이 났다고 해서, 백록담에 호텔을 지을 것인가. 이제 개발주의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K방역이 성공한 이유는 똑똑한 리더십과 공동체의 생사를 위해 시민들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송악산 개발은 한반도와 지구 이슈다. 주민들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처럼 글로벌 생태계 관점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

정희진 여성학자 경향 2020.05.05

 

]‘늙은 사회가 될 준비

2003년 유럽에 폭염이 닥쳤다. 유럽 전역에서 무더위에 사람들이 숨져 나갔고 그해 농사도 망쳤다.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쪽 상황이 심했다. 프랑스는 그중에서도 유독 피해가 컸다. 유럽 전체에서 7만명가량 숨졌는데 그중 프랑스의 사망자가 15000명에 이르렀다. 고령자가 대다수였다.

 

고립돼 홀로 지내던 노인들이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았다. 숨지고 한참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된 경우도 많았다. 가을로 접어들도록 가족을 찾지 못한 노인 시신이 50구가 넘었다. 정부는 노인들을 돌보지 않은 가족들에게 책임을 돌렸고, ‘35시간제를 이유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름휴가를 간 의사들 탓을 했다. 그러나 부실 대응과 보건시스템의 허점을 감출 수는 없었다. 휴가에서 일찍 복귀하지 않은 보건장관은 여론의 포화를 맞았고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코로나19 시대의 유럽, 아니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때의 프랑스 같다. 이 전염병에 따른 사망률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확산을 통제하는 데에는 정부의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결국 사망률은 노인들이 얼마나 숨졌느냐가 좌우하는 것 같다.

 

한국의 방역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어느 프랑스인이 주장했다는데 그의 나라에서는 두 달 전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자 노인들에게 집에 있으라고 지시했다. 중국 후베이성이 임상진단만으로 코로나19 감염자를 분류하자 통계가 엉망이라고 세계가 비난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노인요양시설 감염자 약 18000명과 사망자 530여명이 통계에서 누락된 게 드러났다. 정부가 뒤늦게 파악했으나 공식 통계에는 넣지 않는다고 해서 의문을 사더니, ‘알고 보니 숫자가 과장됐다고 해 다시 혼선을 빚었다.

 

세계 곳곳의 요양원에서

코로나19 ‘집단사망

전염병이 던진 고령화 고민

사회적 비용 취급받는 노인들

늙은 사회로 갈 준비 돼 있나

 

한국에서도 대구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있었으나 다행히 대형 참사는 막았다. 하지만 다른 곳들 사정은 심각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 부근의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감염이 퍼졌으며 한 요양원에서 180여명이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미국에서도 서부 워싱턴주의 요양시설에서부터 감염이 확산됐다. 뉴욕의 한 요양원에서는 100명 가까이 사망해 역시 당국이 수사 중이다. 스페인에서는 요양원 직원들이 달아나 감염자들이 방치된 주검으로 발견됐다.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퀘벡의 지인은 확진자가 하루 1000명씩 늘고 요양시설 노인들이 매일 80~100명씩 돌아가시는 날들이 벌써 2주째라고 했다.

 

어느 나쁜 요양원의 문제가 아니다. 폐렴은 원래 사망률이 10~30%에 이른다. 코로나19에 노인들이 더 취약한 것 자체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젊은나라들은 코로나19 발병이 더디거나 적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2003년의 사스는 정부의 투명성이 전염병 대응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줬으며 국제 공동방역망을 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멕시코의 양돈시설 주변에서 시작된 신종플루는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의 진화, 먹거리와 전염병의 문제를 고민하게 했다. 코로나19가 보여준 것은 고령화라는 현실이다. 한국의 사망률이 낮은 것은 ‘K방역덕분이지만, 아직 노인들의 시설 거주가 서구처럼 퍼지지 않은 까닭도 있지 않을까.

 

몇 해 전 폐지 줍는 노후캐리어 끌고 여행 가는 노후를 대비시킨 국민연금 광고가 논란을 빚었다. ‘65세 때 어떤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가 붙은 이 광고는 가난한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비난의 뉘앙스까지 담은 것처럼 보였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초반에 당국은 방역 차원에서 감염자들의 동선을 꽤 상세히 공개했다. 한 고령자의 동선이 알려지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전철표가 공짜이니 저렇게 돌아다닌다는 비난들이 쏟아졌다.

 

결국 노인 문제는 돈 문제로 치환되고, 노인은 사회적 비용취급을 받는다. 촛불과 태극기를 거치며 노인들은 정치적으로도 손가락질받는 대상이 됐다. 이런 갈등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노인 부양은 세대 갈등을 원천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인류는 계속 수명을 연장해왔고 이제 역사상 어느 때보다 오래 살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낯익은 바이러스의 조금 낯선 변종 하나에 세계가 뒤집어졌다. 우리 모두는 늙은 사회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바이러스가 묻고 있다.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경향 2020.05.05

 

]‘늙은 사회가 될 준비

40년 전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은 지금도 유효하다. 푸코가 교실 모습을 감옥에 비유했던 것처럼, 많은 비판론자는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묶어두고 지식을 주입하기에 딱 맞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범과 감시가 최적화된 공간통제와 시간통제를 통해 학생을 장악하며 반 편성, 시간표 편성, 출석점호 등은 그런 구조를 유지케 한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은 1인당 2가 안된다. 작년 법원은 교도소 수용거실 면적이 1인당 2보다 작은 것은 위법한 과밀수용이며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학교 전체로 보면 이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지만 학교생활의 시간통제로 인해 대부분 좁은 교실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이고 보면 이 비유가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저항했을 환경을 아이들이기 때문에 묵묵히 참아내고 있다.

 

그런데 왜 행복해야 할 학교가 규율과 감시 중심으로 편제되었을까? 여기에는 학교가 공장모형을 본떠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매우 유력하다. 교사들은 1교시, 2교시 등의 작업시간에 맞추어 1, 2반 등 분업장 안에서 획일적으로 수업한다. 연령별 표준에 맞추어 학습하며, 시험은 학생들의 능력을 생산품처럼 검사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효율성과 감시라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유령을 버리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학교를 단번에 해체해 버렸다. ‘거리 두기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두어 두던 물리적 통제는 중단되었고, 교사들이 가졌던 교육의 주도권은 단번에 학생들 손으로 넘어갔다. 오히려 민망하게도 교사들이 수업하는 비밀의 정원이 고스란히 학부모들에게 노출되는 부산물도 생겼다. 그 와중에도 학교는 카톡으로 출석을 부르고 교단에 서서 수업하는 등 여전히 오프라인수업 방식을 온라인수업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 점은 바로 온라인개학이 편안한 집과 공부하는 학교의 두 가지 다른 이미지를 교차하는 새로운 혼종성의 시공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학습은 반드시 1인당 2의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교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만이 아니며, 학교도 얼마든지 새로운 포맷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틈새를 보여주었다.

이제 곧 생활방역과 함께 온라인개학이 정상적인 개학으로 대체된다. 온라인개학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한국의 창의적 발상이었지만, 여전히 시민들 마음속에는 비정상적 개학으로 읽힌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지금까지의 학교는 과연 정상이었던 걸까? 온라인개학 속에 잠시 맛본 것들이 정상이었고 지금껏 아이들을 가두어 두었던 공간이 비정상이었던 건 아닐까?

 

학교는 학습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인간임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유가 부정된 공간은 인권이 침해된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업교실 외에도 휴식과 개별활동이 가능하도록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공간은 지자체가 함께하면 훨씬 넓어진다. 경기 화성시의 이음터는 한 가지 모델을 제공한다. 학교 부근에 지자체 학습공간을 짓고 낮에는 학교가 사용하고 방과 후에는 지역 성인들이 사용하도록 디자인한다. 예전에 제시된 또 다른 방안은 운동장을 변형하는 것이다. 군대 연병장을 연상시키는 운동장에 체육관을 포함한 복합 건물을 지어서 학생들의 다면적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학교가 지금처럼 전일제 단독공간에서 교사주도의 수업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관점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다. 팀프로젝트, 자기주도학습 혹은 공강까지도 시간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산업 4.0시대의 플랫폼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교도 플랫폼 학습체계가 돼야 할지 모른다. 강의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이미 상당한 수업에서 유튜브, EBS, 아이스크림 등 지식 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이 활용되고 있다. 수업의 20% 정도는 온라인수업을 병행할 수도 있다. 피터 센게는 20년 전 벌써 학교를 교수 중심이 아닌 시스템학습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권했다.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 통제로 학생들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다양한 혁신의 길이 보인다.

 

요컨대 교사가 주인인 교실수업형 학교 공간은 하루빨리 학생이 주인인 학습생활형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탈근대적 해방이 요구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경향 2020.05.05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나흘 후에 나는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들과 함께 합동분향소에 조문 갔었다. 희생자들의 신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아서 분향소는 갖추어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서 조문 온 사람들을 맞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만 울음을 듣고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고 뒹굴면서 울었다.

-불쌍하다 불쌍해.

-어쩔 거나 어쩔 거나.

언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온몸의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더 크게 울렸다.

그 울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어디로 향할는지 방향이 없는 울음이었다. 허공을 향해 우는 울음이었고 절벽에 대고 우는 울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티브이를 보니까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서 과거를 분석하고 현실을 진단하고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한국 사회는 모르는 것이 없다. 오래전부터 다들 알고 있다. 수많은 박사학위 논문, 연구보고서, 특집기사, 세미나, 공청회, 국무회의, 긴급대책회의, 총리 지시가 있었다. 이 산더미 같은 담론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것은 이미 의미 없는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김훈 한겨레 2020-05-07

 

이라크 침공 빼닮은 미국의 코로나19 중국 때리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공세를 보면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떠올렸다. 전개 상황이 너무나 닮았다. 이라크 침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와 그 배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려 언론과 손잡고 만든 합작품이다.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후세인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가짜뉴스를 언론에 흘렸다. 주류 언론조차 애국심 열기 속에서 특종경쟁에 사로잡혀 사실 확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서특필될 때마다 최고 당국자가 이를 확인해주면서 전쟁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기자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였다. 그는 이라크 망명인사 아흐메드 찰라비와 당국자들이 흘린 정보를 기사화해 부시 행정부 선전전의 선봉장이 됐다.

 

코로나19 중국 때리기의 선봉장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이다. 그는 지난 414우한 연구소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와 인간 전염 가능성으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새로운 세계적 대유행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는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전문, 익명의 행정부 관리들과 샤오창이라는 중국 반정부 인사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사 말미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고 썼다. 애초 연구소 유출설은 통일교가 운영하는 워싱턴타임스가 약 세 달 전인 126일 처음 보도했다. ‘우한 봉쇄사흘 뒤 나온 이 뉴스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트럼프조차 중국의 조치를 칭찬하는 등 코로나19는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WP 기사는 달랐다.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초기 대응 미숙으로 확진자·사망자 수가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호황이던 경제마저 침체로 접어들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과 맞물린 덕분이었다. 보수 폭스뉴스뿐 아니라 진보 뉴욕타임스, 버즈피드, MSNBC 등도 퍼날랐다. 사흘 뒤에는 트럼프 행정부까지 가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연구소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연구소가 바이러스 유포지라는 주장에 지지를 선언했다. 재선을 6개월 앞둔 트럼프로서는 코로나19 대응 미흡에 대한 국내 비판의 화살을 중국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중국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 심지어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과 합참의장조차 부인하고 있다. 중국 관련 유일한 사실은 최초 확진자 발생뿐이다. 중국이 확산을 은폐했다는 주장도 현재로서는 의혹이다. 그럼에도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미·중 갈등은 코로나19 이후 주도권을 잡으려는 패권 다툼이다. 그리고 미국의 쇠퇴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 특별보좌관인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장이다. 그는 코로나 위기에서 중국의 글로벌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선전전의 승리자라고 했다. 그는 영국의 세계 패권을 궁극적으로 쇠퇴하게 만든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수에즈 모멘트가 될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중국이 유일한 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언론인 딜립 히로는 미국이 공공보건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해 조기에 자택 대기를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할 경우 1946년 이래 보유해온 세계 지도력 트로피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승자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굴기의 충돌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지구촌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싱크탱크조차 미·중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무력출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2의 무역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지금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시대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도 주류 언론들이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묵묵히 진실을 파헤친 소수 언론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미국 주류 언론의 트럼프 저지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조찬제 논설위원 helpcho65@kyunghyang.com 경향 2020-05-07

 

아베의 영속패전

일본의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영속패전론>에서 일본이 패전을 부정함으로써 영원한 패전을 겪고 있다고 설명한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의 기지가 되어 철저하게 굴종하는 대신 식민 지배와 침략을 당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대한 사죄와 책임은 회피했다. 천황과 지도부가 침략전쟁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만들어진 무책임의 체계와 대미 종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속패전(永續敗戰)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라이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일본 정부가 보인 무책임한 행태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지금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아베 정부에서도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베 정부는 납득할 수 없는 소극적 검사로 감염 확산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판과 아베노마스크불량 파문 등 총체적 방역 실패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러면서도 아베 정부는 한국처럼 검사하면 의료 붕괴가 온다”, “한국의 드라이브스루 검사는 정확도가 낮다고 주장하며 한국의 방역 모델을 무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한국과 코로나 감염증 대응에 협력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

 

이에 대해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아베 정권의 핵심 지지층은 혐한·혐중적인 사람들이라 한국과 중국을 배우는 걸 굴욕이라 여긴다이 때문에 정부는 일본의 독자적인 감염 방지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는 힘과 미래를 예견하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일본은 눈앞의 위기 모면에 급급해 원숭이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 위기로 잠시 미뤄져 있지만, 한일 사이에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 수출규제 철회라는 과제가 있다. 201811월 일본 전범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후, 아베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보복성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것을 막은 아베 정부는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매각)하면 한국에 더욱 심각한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아베 정부는 과거사 책임을 회피하려고 혐한의 깃발을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했고, 코로나 위기에서도 한국의 방역 성과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제 한국의 4·15 총선과 아베 정부의 코로나 대응 실패에 따른 일본 민심의 변화가 새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총선의 민심은 친일을 단호하게 심판했다. 대표적 친일 정치인으로 꼽힌 나경원 의원을 낙선시켰고, 양승태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지연에 문제를 제기했던 이수진 판사,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상징하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등을 당선시켰다.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굴복시키려 했고, 한국 내에서 일본과 적당히 타협하라는 목소리가 친일 언론과 정치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총선을 통해 이를 거부하고, 원칙에 입각한 한일 외교를 분명하게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대응 실패로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의료·검사에 불안을 느낀다는 답변이 68%에 이른다. 아베 정부의 공기’(눈치)를 읽으며 한국을 무시하던 언론들도 이제는 한국의 대책은 인공지능(AI), 일본의 대책은 아날로그” “한국에 머리를 숙여서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대책을 배워야 한다고 보도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일 동맹으로 G2 시대를 헤쳐가려 했던 아베의 전략도 수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한반도와의 관계 조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본 외교의 과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전망한다. 한국에는 대일 외교에서 사라졌던 공간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중 신냉전의 파도가 밀어닥치는 지금 한일의 협력과 공조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일본에 역사·영토 문제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경제·사회·문화 등의 협력은 강화하는 그동안의 투트랙 원칙을 살리면서, 새로운 환경을 살피며 외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민간을 통한 협력도 모색해볼 만하다. ‘아베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한일 민간의 이해와 협력은 확대되어야 한다.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를 철회하고 70년 넘게 기다려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배상으로 과거의 책임과 직면하는 것이, 일본이 영속패전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임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방역 성과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것은 출발신호가 될 수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한겨레 2020-05-07

 

50대의 선택, 국가의 효능감

지난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차지라는 압도적 승리에는 50대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구조사에서 50대는 더불어민주당 49.1%, 미래통합당 41.9% 지지로 밝혀, 30·40대와 60대 이상 간 세대 대결 구도를 민주당 승리로 이끌었다. 총선 한 달 전까지도 50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부 여당에 역력히 비판적이었다. 이들이 왜 정부 여당 지지로 돌아섰을까?

 

선거에서 50대의 선택은 늘 승부를 판가름했다. 진보, 보수 양쪽 진영이 총결집했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을 이끈 건 50대였다. 이들은 전 세대 중 투표율도 가장 높았고 박 후보 지지율도 무려 62.5%(출구조사)였다. 보수적인’ 50대가 젊은 시절엔 민주진보파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1950년대생이 주축인 이들은 1987년에 넥타이 부대로 민주항쟁을 지원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캐스팅보트로 노무현 당선을 이끌었다.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효과의 표본 사례다.

 

2020년의 50대는 다르다. 이들의 중추는 86세대로 민주화의 집단경험을 공유하며, 역사적 세대의식이 가장 강한 세대다. 이들이 40대였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역대 어떤 40대보다 강력하게 민주진보 계열 후보를 지지했다. 50대가 되어서도 이 성향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성장기 또는 청년기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이후의 정치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세대효과를 대표하는 세대다.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중 어느 쪽이 더 강력한가는 선거 연구자들의 오래된 연구 주제인데, 19876월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의 응집력, 진보적 지향성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어왔다.

 

사실 연령효과와 세대효과가 이렇게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나이 들면 보수화되는 경향은 한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애주기상 50대는 가구주로서 자식과 부모 부양, 자기 노후 준비 등 부담이 태산이다. 부담은 가장 큰데, 질병과 실직 등 위기가 현실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불안에 대한 자구책으로 한국인들은 그동안 부동산 등 사적 자산 투자에 의존해왔다. 공적 복지를 사적 자산 복지로 대체해왔다. 50대가 세금에 부정적이고 부동산 가격에 민감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이들이 변화와 개혁보다 안정과 실용을 표방하는 정치 세력을 지지하고, 도덕성보다 당장의 현실 문제 해결 능력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온 이유다. ‘진보는 도덕성, 보수는 능력이라는 믿음이 강하던 시절, 50대가 보수로 기운 데는 이렇게 나름의 합리적이유가 있다.

 

지금의 50대는 다를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50대는 정부 여당에 분명히 비판적이었다. 갤럽의 33째주 정기조사에서 50대의 문재인 정부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50%로 긍정(43%)보다 높았다. 세금 거둬가고 부동산 시장은 규제하면서 경제문제 해결엔 무능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환점은 코로나19 방역이었다. 진보적 성격의 정부가 앞장서서 방역을 지휘하고 경제에 호흡을 불어넣는 등 긴박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좋은 정부의 효능감을 체험했다. 생명의 안전, 고용의 안전, 사회경제적 안전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각된 시간, 국가가 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든든함을 체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총선은 끝났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시간은 지금부터다. 일각에서는 30·40대라는 확실한 지지층에 50대까지 가세하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민주진보파가 우세하리라는 전망을 한다. 유권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대가 19.7%60대 이상(27.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보니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린다.

 

섣부른 승패 예측보다는 승리의 필요조건을 숙고할 때다. 관건은 코로나는 물론 삶의 위기마다 나와 가족, 사회를 지켜줄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양극화, 각자도생 경향이 심화되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으로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이 경향을 부채질했다. 부동산 등 사적 자산에 대한 욕망은 생존 욕망이기도 했다. 50대가 꽤 오래 이 흐름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마침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위한 정책과 담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진짜 국가를 느낄 시간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한겨레 2020-05-07

 

자본의 천박함, 노동자의 절박함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의 화재로 서른여덟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매제일을 돕겠다며 나선 동생, 함께 일하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 혼인신고 한 달 만에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남편. 서른여덟 명의 노동자 모두 가족과 친구들에게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은 기억되겠지만 사고 책임을 져야 할 업체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 20081월 이천시 호법면 냉동창고 화재로 마흔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지만, 소유회사가 어디였는지는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같은 해 12월 이천시 마장면 GS리테일 물류센터에 화재가 또 발생했지만 이제는 몇 명의 노동자가 죽었는지, 책임을 질 업체와 사주는 누구였는지 모른다. 20135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안성 냉장창고의 소유주가 20081월 화재가 났던 냉동창고의 소유주와 같은 업체였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대형 화재로 인한 참사는 늘 이렇게 잊힌다. 그러나 20081월 창고 소유주였던 ()코리아냉장과 그 모회사 코리아2000은 지금도 여전히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리아2000()코리아냉장을 비롯해 16개의 피투자회사와 사주와의 특수관계법인을 거느리고 201825억 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냈다. 200812월 이천시 마장면 물류센터의 실소유주 사모펀드 아센다스코리아는 당시 화재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된 후 지금도 여전히 부동산 M&A에 나서며 그때와 같이 공사관리와 감독을 하청업체에 위임하고 있다. 같은 창고의 임차업체로 기소된 로지스올인터내셔널은 몇 명의 책임자만 처벌을 받았고,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창고관리업체와 공사현장 책임자는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430일 오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자본은 이렇게 건재하지만, 일당 몇 만 원을 더 벌기 위해 친구와의 술자리까지 미루며 목숨을 잃은 노동자에게는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이천 물류센터의 화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의 현장 감식과 조사가 실시 중이고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이 예정됐지만, 안전관리 규정이나 해당 사업의 위법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참사 원인은 화재지만, 왜 그런 화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안전관리나 관련 규정 위반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관리 규제를 강화하고 처벌의 수위를 높여도 계속되는 작업장 안전사고는 더 많은 이익을 짜내기 위해 싼값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관리, 공사, 감리 등을 떠맡기는 자본의 천박함 때문이다. 자본의 천박함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하루에 몇 만원의 일당을 더 받으려는 노동자의 절박함을 이용한다. 생산력이나 기술 경쟁력의 제고가 아니라 저비용 다단계 구조로 노동자의 위험과 희생을 통해 이익을 낸 기업이라면 그 책임은 사주에게 있다.

 

그러나 대형 참사의 법적 책임과 처벌은 일부 관리자와 하청업체에게만 돌아간다. 한 차례 조사, 처벌, 배상 절차가 끝나면 인격화한 자본인 사주는 또다시 투자와 상장, 정부 지원과 협약 등으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는다. 20081월 화재가 발생한 창고의 소유주 일가는 지금도 여전히 특수관계자의 자리에 앉아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참사가 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히 있다. 절박함에 현장으로 뛰어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대가로 더 싼 비용을 들이면서 사모펀드, 은행, 2금융권까지 얽힌 복잡한 소유관계를 만들고 건설, 임차, 관리 등의 업무는 다단계 원하청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 수십 명의 미래는 사라졌지만 자본의 미래는 이렇게 보장된다.

 

이번 참사의 책임과 처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참사의 이유가 아니라 원인에만 눈길을 돌린다면 책임자 몇 명의 처벌로는 언제라도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안전규정을 무시한 현장의 작업 관행이 아니다. 노동자의 절박함으로 이익을 쌓는 자본이 문제라면, 이런 참사를 방치한 사주가 해당 업종에서 퇴출되도록 사업 면허를 박탈하는 조치가 더 강력한 처벌이다. 언제까지 이토록 천박한 자본의 행태를 합법이라는 이유로 방치해야 하는가.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 전문위원 mediatoday. 2020.05.09

 

한국판 뉴딜? 위기의 지구를 보라

문재인 정부는 지난주 코로나19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경제 혁신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의 3대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한국판 뉴딜, 그 어디에도 기후위기, ‘그린은 없었다.

 

올바른 처방은 재앙의 성격을 분명히 진단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코로나19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판 뉴딜을 보면, 이 정부가 진단한 재앙의 원인은 사람 사이의 대면 접촉이며, 처방은 비대면디지털 전환이다. 오프라인에서 서로 마주 보는 것이 문제였다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파리협약 선도국과 세계의 석학들이 물리적 백신보다 녹색 혁명’ ‘생태 백신을 처방한 것은 전 지구적 차원의 착취적 만남을 끝내자는 제안이다. 이제 살아남고 싶다면 서로 잘 만나는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와 고도성장에 고름이 찼고 응어리가 터졌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서식지 거리가 줄고 접촉이 늘었다. 자연을 착취하면서 야생동물 감염병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곧바로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잠식했다. 그러하기에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뉴딜은 경기 부양, 규제 완화, 기업 중심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일시적 경제 재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화석연료의 시대를 비로소 마감하고, 고도성장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 가능한 삶의 전환을 절실히 요청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몇 가지 갈림길에서 우리는, 인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창궐한 인수공통 감염병 팬데믹, 심각한 환경파괴,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삼중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은 무엇인가. 최근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전환의 관점으로 그린칼라 이코노미’ ‘그린 딜(Green Deal)’ ‘탈성장이 논의되고 있다. 화석연료의 폐기와 재생에너지 전환, 블루칼라 노동자의 녹색일자리 전환, 기업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와 생태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코로나19 재앙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는 천박한 성장주의도 경계한다. 세계는 하나(One World)이고 사람·동물·환경의 건강도 하나(One Health)라는 원칙을 채택한다.

 

한국판 뉴딜? 한국 정부는 이토록 무지하거나 혹은 무관심할 수 있는가. 재앙의 진단과 처방 모두 틀렸다. 공공보건, 사회적 약자와 생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희생자가 또 희생되는 구조를 생산했다. 기후위기와 감염병의 시대, 국가경영의 지향점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행정 각료들은 국정 지지율, 기업 이윤 대신에 위기의 지구를 보라. 밀실행정을 벗어나 전 지구적 흐름을 읽고,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의 가치에 집중하라/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경향 2020.05.10.

 

막오른 한국형 뉴딜과 정계개편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제 한국에서도 누구나 루스벨트의 뉴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민주주의자 행세를 할 때가 민주주의가 가장 위기에 빠졌을 때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뉴딜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3가지를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급진적생태 뉴딜주의자 루스벨트에게는 생태보전이 최대 목표이고 경제 회복은 2차 목표에 불과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토건과 성장주의 시대 기준으로만 보면 루스벨트는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열렬한 생태보전주의자였고 이를 위한 규제 강화론자였다. 오죽하면 경제 대공황의 한복판에서도 그의 국내 1순위 어젠다가 생태보전이었다. 그리고 그간 미국 학계에서 다소 저평가된 시민 환경 보전단등을 통해 7년간 300만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했다. 루스벨트보다 더 비타협적 생태 전사인 해롤드 이키스 핵심 참모는 수시로 본인의 사직을 내세워 루스벨트를 압박했다. 앞서간 생태철학자의 면모를 지닌 엘리노어 루스벨트와 이키스 등 백악관의 멋진 팀워크가 생태 친화적이면서도 경제적 풍요를 이룬 뉴딜을 성취해냈다.

 

지금 청와대와 민주당이 뉴딜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 담대한 목표와 결기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과 경제회복은 더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과 다가올 생태 파국 방지를 위한 수단이지 그 역이 아니다. ‘생명의 정치를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 그게 코로나19 사태의 교훈 아닌가? 자연을 가슴 속 깊이 사랑하는 문재인 대통령이기에 진정한 뉴딜의 정수를 제기하길 기대한다.

 

둘째, 진보 시대를 열어간 루스벨트는 사실은 이재명과 이낙연의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루스벨트는 이재명 지사와 같은 실용주의적 진보의 DNA가 강한 사람이다. 관념적 진보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작동하는 진보 말이다. 그리고 둘 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기득권에 정면 도전한 좋은 의미의 포퓰리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귀족적 출신답게 안정론자이기도 하다. 이낙연 의원 같은 탁월한 관리형 리더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잠시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다가 곧 균형 예산으로 돌아가 경기 불황을 노정해야 했던 그 소심한 루스벨트이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강자 사이의 극단적 불평등을 담대하게 재조정할 것이냐 아니면 일부 안전망의 확대 정도이냐 말이다.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민주당 내 실용적 진보주의자와 정의당 등이 주도하는 재난 뉴딜 다수 정치연합이 가능하고 이는 향후 최소 12년의 정치질서 전환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후자를 선택해도 어느 시점엔 또 다른 정계개편이 발생할 것이다. 루스벨트 뉴딜이 바로 그러했듯이 문재인 행정부의 성공은 진보 정치세력들과의 연합 및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에 달려있다.

 

셋째, 전환적 리더십의 루스벨트이지만 안타깝게도 뉴딜 성과의 발전적인 제도화에 대해서는 한계를 노정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흔히 뉴딜에 대한 찬사만 접했던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가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모든 시민들의 일자리, 품위 있는 삶, 주거, 교육, 건강 등의 존엄한 권리를 헌법에 보장하는 2권리장전캠페인에서 실패했다. 이후 레이건 보수주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제도화 기반이 취약한 뉴딜은 서서히 퇴조해갔다. 특히 정치 불안정성이 강한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재난 뉴딜 정치연합은 어떠한 한국형 권리장전을 구축할지 단계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루스벨트는 항상 성공한 건 아니다. 대법원 판사 숫자를 늘려 퇴행적 대법원 체제를 극복하고자 한 싸움에서 그는 패배했다. 하지만 예일대 애커만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판 촛불 시민들은 선거 대승을 비롯한 강력한 시민주권 행동으로 뉴딜을 구했다. 그토록 완강하게 뉴딜에 저항했던 수구적 대법원조차도 2차 뉴딜의 핵심 어젠다들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청와대와 정당, 법원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촛불 시민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이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이번에 다행히 당선된 훌륭한 생태주의 초선 의원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당적을 넘어 강력한 재난과 생태 뉴딜그룹을 만들어 기존의 지혜로운 정치가들 및 촛불 시민과 함께 비상조치 시대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촛불 혁명으로 2016년 시작된 정계개편의 막이 이제 서서히 오르려고 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경향 2020.05.10.

 

 

미션 임파서블선거부정

지난 4·15 총선의 결과를 놓고 한 달 가까이 선거부정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전투표함 바꿔치기와 득표수 전산조작이다. 선거사무와 선거소송에 여러 번 관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

 

우선 사전투표지를 구한다. 사전투표지는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발급기로 즉석에서 인쇄되는 데다 일련번호가 새겨진 QR코드가 있어서 위조는 불가능하다. 도리 없이 투표용지발급기와 투표지 원고, 각 지역구 선관위의 청인과 전국 사전투표소의 투표관리관 사인을 비밀리에 확보했다가 투표일 전에 대량으로 출력해서 은밀하게 보관하고, 거사에 앞서 각 선거구에 보내야 한다. 이 정도 일엔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무슨 수로든 동조자를 구한다.

 

투표지를 어설프게 위조했다간 곧 들통난다. 투표지는 개표장의 개함점검부와 심사부 소속 개표사무원들과 책임자가 차례로 보고, 이어 선관위 사무국장과 선관위원들이 후보자별 정당별 100장 묶음의 표다발을 이 잡듯 검사하고, 최후로 부장판사인 위원장이 세어본다. 이들로부터 미리 양해를 얻어 두는 게 좋다.

 

투표지를 위조했다고 다 된 게 아니다. 관외투표에서는 사전투표지가 회송용 봉투에 봉인되어 등기우편으로 각 지역선관위로 배달되고, 정당추천위원이 보는 앞에서 사전투표함에 투입된다. 그러니 먼저 관외투표를 한 사람이 몇 명인지를 알아내서 그 수에 맞추어 회송용 봉투를 만든다. 봉투엔 등기번호와 우체국 소인 따위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 하면 다 된다.

 

이제 위조 투표지를 진짜 투표지와 바꿔치거나 아예 투표함 자체를 바꿔칠 차례다. 그런데 투표함의 투표지 수와 명부상의 사전투표자 수가 일치해야 개표장에서 탄로가 나지 않을 것이니, 무엇보다 투표구별로 몇 명이 사전투표를 했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귀신도 모르게 선거인명부를 해킹하면 된다. 다음엔 후보자별로 적절한 득표수를 정해 투표지를 만든다. 내 편의 표가 너무 많으면 들통나기 쉽고 너무 적으면 고생한 보람이 없으니, 이 점 유념할 일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전투표함은 정당 추천위원이나 참관인이 서명한 특수봉인지로 봉인되어 있으니, 이들을 모두 매수하거나 서명을 감쪽같이 위조한다. 특수봉인지도 남몰래 확보한다. 사전투표함이 선관위 사무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에는 참관인들과 경찰관이 따라가고, 보관소에 넣은 후엔 자물쇠로 봉인한 곳에 정당 추천위원들이 서명한다. 보관소에서 사전투표함은 24시간 폐쇄회로(CC)TV로 감시되고 이것이 시·도 선관위와 중앙선관위에도 연결되어 있다. 개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도 어김없이 참관인들이 따라붙는다. 이러니 투표함이든 내용물이든, 바꿔치기엔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보인 기량 정도는 못 되더라도 고난도의 기술과 배짱이 필요하다. 톰 크루즈를 구해 보고, 안 되면 부득이 해당 선관위 직원의 협조를 얻는다. 이런 난관을 모두 극복해도, 투표함이나 보관소는 한번 개봉되면 그 흔적이 남게 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한다.

 

어느 보수 유튜버는 미래통합당이 74석을 도둑맞았다고 하고 다른 유튜버는 210만표 이상의 득표수가 바뀌었다고 하니, 투표함 바꿔치기 수법으로 그 정도 규모의 협잡질을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하책이다.

 

득표수 조작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이건 더 어렵겠다. 개표장에서 투표구별 득표수가 차례로 나오면 그때마다 위원장은 마이크에 대고 공표한 후 투표구별 개표상황표를 벽에 붙인다. 복사본도 기자들에게 나눠준다. 그 순간 참관인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진을 찍고 소속 정당에 전송하느라 바쁘다. 위원장은 개표상황표를 팩스와 전산망으로 상급선관위에 보고한다. 전국에서 보고되는 개표상황은 실시간으로 정당과 언론사에 공유된다. 어디에다 손을 써야 하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별 득표수와 당락은 지역구 선관위가 마지막 투표구 득표상황을 공표하는 순간 결판난다. 당선자 결정도 지역구 선관위의 권한사항이고 그 선관위가 한다. 본래부터 상급 선관위가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수 역시 각급 선관위에서 개표상황표에 따라 실시간으로 공표하므로 사후에 조작할 길이 없다. 설령 전산으로 결과를 조작하려 해도, 실물 투표지와 개표상황표가 따로 있어 대조가 가능하므로 조작 시도는 망상이다.

 

선거부정 음모론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거짓된 위안일 뿐이다. 선거부정을 운위하며 미국 백악관에 진상조사나 청원하고 포퓰리즘의 자위에 빠져 있는 한, 보수의 재건은 멀고도 멀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0.05.10.

 

김대중·노무현에게 180석이 있었다면

정치 9단인 줄만 알았더니 정책 9단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정책적 과제는 손대지 않은 게 없더라면서다. 20205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을 보면서 혹시나 노 전 대통령이 한 말이 있는지 찾아보면 반드시 뭐가 있더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크고 작은 진보 정책을 설계했고, 그렇게 국정에 뿌려진 씨앗들이 보수정부 9년간 묻혔다가 다시 싹을 틔우고 살이 붙고 있다고 본 것일 테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 10월에야 겨우 첫발을 뗀 매달 넷째주 토요휴무제2년 뒤 노무현 정부에서 5일 근무·수업으로 정착되고, 지금 52시간 근무제로 한발 더 나아갔다. 세 고비 다 시기상조라는 저항이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속 시작된 국민기초생활제는 수급액을 올리며 사각지대를 좁혀가고 있고,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도 진상규명-명예회복과 보상-대통령 사과-국가기념일 제정의 긴 여정을 밟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복지정책 저작권은 현재의 국민연금·의약분업·건강보험 체계를 완성한 김대중 정부에, 대미정책의 변곡점은 용산기지 공원화·전작권 전환·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국가인권위와 여성부를 세상에 내놓았다면,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사학법(개방형이사제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발판을 놨다. 여소야대나 내분, 제왕적 야당 총재와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격 속에서 임기 말까지 내디딘 정책들이다. 집권 4년차 김 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0%, ·FTA로 지지층 이반을 겪은 노 전 대통령은 23%일 때였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180석이 있었으면 무엇을 했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한 달 전 4·15 총선에서 180석 거여(巨與)가 출현한 후 밥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김대중 청와대의 마지막 대변인이었던 박선숙 의원에게 물었다. 바로 교육이라는 말이 나왔다. “평준화 교육이 산업화 시대에 맞다면 지식정보시대엔 창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숙원이었다고 했다. 평준화·수월성 대치를 넘어 근본적인 교육 틀과 학벌 없는 사회를 짜고 싶은 고졸 대통령이었지만, 착수도 못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어록과 회고를 담은 책 <진보의 미래><운명이다>엔 아프게 돌아본 두 가지가 나온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못한 것을 깊이 후회했고, 제일 가슴 아파한 것은 노동의 유연화였다. 고삐 풀린 비정규직 사회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자책이었다.

 

바야흐로, 처음 가는 길이다. 집권 4년차 문을 여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71%를 찍었다. 앞선 3년을 촛불로 출발했다면, 지금은 봉쇄 없이 코로나19 큰 불을 잡은 자부심·합심(合心경계심이 전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받치는 3각 축이다. 3주 후 180석 거여는 21대 국회 모든 상임위에서 절대적 과반수를 점한다. 지방정부와 교육감, 사법 권력도 진보가 대세다. 아스팔트 태극기부대에 휩싸였던 제1야당의 황교안 체제는 끝났다. 어느 시간까지는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국민 눈을 무서워할 야당복()도 더해질 수 있다. 코로나와 총선이 리셋한 세상, 그 운전대를 진보가 잡았다. 무엇도 할 수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절대 권력이다.

 

거여의 버킷리스트는 달라질까. 총선 직후 사방에서 권고한 겸손한 권력은 조심조심 지지율 관리나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를 헤쳐가면서, 다시 국정 키를 쥔 진보의 역정에서 곱씹을 것은 큰 개혁이다. 연금보험, 공공임대주택, 최저임금, 79% 최고한계소득세. 미국 사회보장제도 기틀이 만들어진 것은 90년 전의 대공황이다. 그 뉴딜 시책은 모두 100일 안에 나왔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오고, 그 출구는 언제나 약자들의 힘겨운 삶에서 먼저 열린다.

 

2020년의 대한민국도 다를 게 없다. 갈 길이 먼 전 국민 고용안전망, 넘어진 데서 또 넘어지는 재난안전망,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녹색 뉴딜, 또 절감한 공공의료, 백년지대계를 짤 국가교육위원회는 속도 있게 만들어가야 할 길이다. 버릴 것도 있다. 기업에 40조원을 부으면서 재난지원금 3조원 올리는 데 파르르 떠는 정부는 곤란하다. 국가와 기업만 빠져나오고 국민들은 피눈물 흘린 IMF 외환위기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의 삶을, 예산 배분의 관행을, 세상의 부조리를 바꾸는 게 사회·경제제도 개혁이다. 처음 가는 180석의 길, 진보의 미래도 거기에 있다 /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0.05.11.

 

정치 브로커김종인의 살길

그는 아직 버티고 있다. 총선 참패의 혼돈에 빠진 미래통합당이 428일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했지만, “나는 자연인이라며 확답을 안 한다. 석달짜리 임시직은 못 하겠다는 그의 밀당 신공에 통합당은 조만간 당선자 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를 위해 연말, 내년 4월 등 비대위원장 임기 연장에 관한 여러 옵션을 고심하고 있다. 당선자 총회에선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복당 문제도 함께 논의한다.

 

김 내정자의 비대위원장 수용과 홍 전 대표의 복당은 복잡하게 얽힌 미묘한 현안이다. 두 사람의 효용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당명조차 헷갈린 김종인 내정자도 총선 패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과 함께 자강이 필요하다는 반대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김병준, 전원책 등 그동안 비대위가 워낙 지리멸렬했던 탓에 그가 중구난방인 통합당을 수습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린다. 어차피 복당할 텐데, 당 밖에서 싸움을 걸며 혼돈을 야기하는 것보다 당 안에 묶어두는 게 현명하다는 이도 있다. 세력이 약화한 보수 야권이 단일대오를 갖춰야 하고, 홍준표·김태호·권성동·윤상현 4명의 무소속 당선자 가운데 홍 전 대표만 쏙 빼고 복당시킬 수 없다는 고민도 있다.

 

두 사람의 통합당 입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찬성” “홍준표 빠른 복당, 바람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본질적 고민은 두 사람이 화합하고, 당을 살리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냐는 것이다. 불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시너지는 고사하고 쌈박질로 날을 지새울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이미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시효가 끝났다” “김종인은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때 내가 뇌물 자백을 받았다며 격하게 대립한 그들의 앞날이 더 볼만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안이 없으니 피해 갈 방법도 마뜩잖다. 통합당의 현실이다. 피할 수 없다면 공존해야 한다. ‘불과 기름의 상생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김 내정자는 당의 가치 재정립을 위해, 홍 전 대표는 대선 도전을 향해 각자 갈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무엇보다 김 내정자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인물 물갈이에선 손을 떼고, 정책 물갈이로 당을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홍 전 대표와의 갈등도 2022년 대선의 밑그림을 서둘러 그리려다 촉발했다. 총선 직후 홍 전 대표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종인은 황교안이 엉망으로 만든 당을 20일 동안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했을 뿐, 공천에 개입한 적이 없다. 아무리 명장이라도 허약한 병졸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며 김 내정자를 옹호했다. 그런데 김 내정자가 먼저 홍 전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면 당이 망한다는 식으로 싸움을 걸었다. 대통령도 여당의 차기 주자를 정할 수 없는 게 냉혹한 정치 현실이다. 특정인을 배제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다. 대선 후보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차분히 결정할 일이다. 누군가를 낙점하려 하는 순간 저항은 시작된다.

 

김 내정자는 보수언론도 칭송하는 정책 실력으로 통합당을 바로 세우는 게 살길이다. 코로나19로 미증유의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총선 참패로 버림받은 보수의 혁신도 절실하다. <조선일보>조차 30·40세대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며 약자들 돕는 보수 우파적 가치를 세우라고 역설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모두 보수 우파가 만든 제도라고 상기시킨다. 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기틀을 놓은 게 김종인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송한 언론도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의 통합당이 코로나19로 의제화된 전국민 고용보험’ ‘전국민 기초연금’ ‘한국형 뉴딜등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는 정책을 선도하고 경제민주화와 보편 복지를 확대하는 정당으로 변모한다면 국민은 그들을 다시 볼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통합당과 정책 경쟁을 한다면 보수와 진보, 여와 야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보수정당의 가치를 바로 세울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환영할 일이지만 킹메이커는 허황한 꿈이다. 영혼 없이 이쪽저쪽 옮겨 다니는 정치 브로커의 이력만 한 줄 추가할 뿐이다.

신승근 논설위원 한겨레 2020-05-14

 

군 위안부 논쟁의 윤리를 생각한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님이 대구에서 단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 인권운동가로서 느끼는 자부심, 수요집회의 한계와 교육장 건립에 거는 희망, 정신대와 위안부 구분의 중요성, 후원금 사용 및 정보 공유 문제,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애증 등 응답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 당선자, 더불어시민당 등은 피해자 기억 문제와 공천 관련 배후설을 언급하며, 실명이 적힌 영수증까지 공개하였다. 보수 언론과 야당은, 피해자의 논쟁적인 문제 제기를 비리 문제로 축소시켰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택적 듣기 방식이다. “이용당했다는 호소, 피해자와 운동가의 관계에 대한 갈등을 보수 언론은 여당 흔들기에 이용한다. 운동단체는 고령자의 오해와 배후설로 폄훼하고, 진보 매체는 운동의 명분 약화를 걱정한다. 모두 팩트를 주장한다. 하지만 타인의 말, 특히 역사적 증언 듣기는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말을 선택하는, 당파적 행위다. 말에 대한 해석은 듣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구성된다.

 

이번 회견의 의미는 피해자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간의 군 위안부 운동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는 내가 여자의 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이리 설움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피해자의 절규를 들으려 하지 않고, 피해자다운 피해자만을 요구하는 ‘2차 가해, 진실 공방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

 

고 김복동님도 생전에 이러한 점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토로한 적이 있다. “맨날 했던 말, 하고 또 하고테레비고 신문이고 입이 아프도록 죽도록 말해 놓으면 그 말은 다 어디 가삐고 한두 마디 나오고 그저 김복동 위안부’, ‘위안부 김복동 할매이기 머, (내가) 위안부라고 선전하는 거밖에 더 되나 말이다. 안 그래?”(‘난 평생 정이라곤 줘본 적이 없어’, <한겨레> 2014222일치) 나는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촉발된 이용수님의 말이 고 김복동님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니다. 회견 내용은 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배경과 고정관념, 즉 사회운동을 둘러싼 논쟁의 곤란함과 반일 혹은 친일이라는 이분법을 깨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일본 우익을 핑계로 이 두 가지에 대한 개입을 미루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야, 남성과 여성, 여성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입장에 따라 피해자의 말은 선별되었다. “속을 만큼 속았다는 주장은 이 맥락 안에 있다. 이번 사태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특정 단체와 개인에게 떠넘기거나, 피해자와 운동가의 이해는 충돌한다는 식의 상대주의에 기대어 도망치지 말자. 정부에 등록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의 존재, 그들의 삶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운동의 대의가 훼손될까 우려하는 지적이 많다. 매우 중요한 얘기다. 다만, 사회운동은 지향하는 가치에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와 노력이지 그 자체로 시공을 초월한 올바름이 아니다. 일본을 의식한 운동의 대의를 앞세워,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성과 성장을 봉합하려는 것은 낡은 방식의 정치다.

말의 흔적은 사라지고, ‘친일세력 총공세’, ‘정의연 의혹 규명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만이 난무할 때 피해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은 말할 수 있을까. 존중받을 수 있을까.

정유진 전 도시샤대학 조교수(한일관계 전공)한겨레 2020-05-14

 

긴급재난지원금, 소비와 기부 사이

지난 4월 총선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18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확보하고도, 재벌개혁 조항은 쏙 빼고 피의자의 방어권만을 확립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이게 21대 국회가 열릴 두 달 후를 기다리지 못할 일인가? 더 나아가 국회가 본회의에서 한 번 부결시켰던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공정거래법 위반 중 계열사 누락 신고 부분 정도는 괜찮다며. 이로써 타 금융업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왜곡과 편법의 전통을 또다시 확립했다.

 

라임 사태가 검찰의 기소를 통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가 속이 시원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사건의 전모는 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 방안은 사태의 핵심을 비켜가고 말았다. 불법을 저지른 사모펀드에 대한 사후 시정조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자산운용업을 발전시키겠다는 허망한 욕심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금융위원회. 답이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역시 백척간두에 걸려 있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는 형태로 유체이탈 화법식 사과를 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은 고등법원 동료들이 기각하고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대법원은 정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칫하면 작년 8월의 감동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 사법부를 촛불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런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의 화두는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다. 신청 그 자체야 사전에 예고된 것이기에 화두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노골적으로 지원금 수령대신 기부를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단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수혜 대상을 하위 70%로 한정할 것인가, 전체 국민으로 확대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70%’안을, 여당은 전체 국민안을 지지했고, 결과는 여당의 뜻이 관철되어 전체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전체 국민에게 지급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발상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한 후 이를 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국민들이 이 돈을 소비할 것인지 기부할 것인지 알아서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 기부는 어느 틈에 강요되다시피 한 기부로 탈바꿈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잘못된 행렬에 앞장섰다. 지난 57일 언론에 드러내놓고 기부를 선택한 것이다. 그 뒤를 여당이 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 재난지원금 기부서약식을 한 것이다. 이제는 그 뒤를 민간 기업들이 따르고 있다. 12일에는 5대 그룹 임원들이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공무원과 금융권 사람들의 눈치 보는 소리가 하늘에 닿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왜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들에게 지급하는지에 대한 근본을 망각한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정부가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경기활성화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과정에서 내수 업종이 심각하게 위축되었으니 국민들에게 돈을 주고 소비를 장려해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실된 소득에 대한 공적 보전이다. 경기침체는 실업을 급증시켰고 설사 실업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많은 가구들이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이를 업종별로 세밀하게 구분할 수 없으니 전 국민을 상대로 소득보전을 해주자는 것이다.

 

둘 중 어떤 논리가 더 근본적인지는 몰라도 두 논리 모두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국민들이 이를 소비하는 것과 전혀 모순이 없다. 오히려 이를 장려하는 데 가깝다. 그러니까 돈을 저축으로 쌓아두지 못하게 사용 시한을 8월까지로 제한했던 것이 아닌가?

 

긴급재난지원금은 그 돈을 쓰라고 주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마치 소비는 악덕이고 기부가 미덕인 것 같은 이상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부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국민들에게 돈을 주는가? 그냥 정부가 그 재원을 몽땅 기부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할 때보다 정부가 그 돈을 기부를 통해 한곳으로 모으면 더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정부가 주어진 재원을 국민들의 소비결정보다 더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서 정부가 추진하면 그만이다. 재정적자가 걱정된다고? 그럼 돈을 더 걷으면 된다.

 

나는 이미 정부가 한시적 부유세 신설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회의원 180명은 그냥 정치적 위세만 떨치라고 국민들이 허락한 것이 아니다. 부자들에게 돈 걷어서 위기 극복하겠다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본회의가 부결시킨 인터넷전문은행법을 비틀어서 다시 통과시키는 것보다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민생입법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긴급재난지원금 60만원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월급에서 40만원 더해서 100만원 만들어 서울 시내 전통시장 중 가장 어려운 곳에 가서 열심히 소비했어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어야 한다. “국민 여러분, 우리 다 같이 힘써서 소비합시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8월까지 기다리지 마시고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랬다면 국민들은 본의 아니게 기부 처리된 지급 신청 되돌리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junsijun@gmail.com 경향 2020-05-14

 

재난소득 기부의 힘

온라인 양식을 만들어 재난소득(재난지원금) 기부운동을 벌인 지 한 달여 된다. 내가 어느 누리소통망에 전액 기부 의사를 밝혔더니 이를 보고 생협에서 일하는 후배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사회운동으로 벌여나가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시작된 것이다.

 

한 사람씩 참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내가 참여하는 농민단체나 명상단체, 인문학단체 등의 참여자가 많았다. 총선 전에 만들어진 농민기본소득 추진 전국본부사람들도 참여했다. 공식 의결기구를 통해 기부운동을 결의한 단체도 두 개 생겨났다. 내가 불쑥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산나물을 뜯던 때였다.

 

나야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해고될 위험이 있나, 아이들은 다 커서 자립했고, 농협에 빚도 없으니 날아들 독촉장도 없지 않은가. 산과 들에는 먹을 봄나물이 넘쳐나고 밭에는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술 담배도 않고 채식을 한다. 자동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니 돈 들 일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길어진 코로나 사태로 국민들은 한시가 급한데 정치권에서는 총선이 끝나고도 재난소득의 지급 대상과 총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면서 70% 국민만 주느냐 아니면 모든 국민에게 주느냐를 가지고 또 논란을 벌이는 모습이 답답하던 때였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이 불안과 경계에 빠지지 않고 같은 처지인 이웃과 나누면 믿음과 자긍심이 생긴다는 것이 기부 취지였다. 나눌수록 커지는 원리라고나 할까.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오래되었지만 중요한 실험이 있다.

 

하루에 도토리 10개를 먹으면 만족하는 다람쥐 10마리를 한곳에 모아 놓고 100개의 도토리를 주면 더 가지려고 싸움을 벌이지만 도토리를 200개나 1천개를 주면 싸우지 않고 10개씩만 먹고 만족해한다는 것이다. 불안과 경쟁이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실험이다.

 

재난소득 기부운동을 시작할 때 기대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무상급식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재난소득이 선례가 되면서 조만간 국민 기본소득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꿈이다. 일찍이 녹색당 농민특위와 농민 기본소득 전국본부에 몸을 담으면서 논쟁을 다 거친 것인데, 부자들에게도 재난소득을 주는 것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모두에게 주면 5분위 소득 격차가 줄어든다는 산술적 계산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 기본소득제(국민 배당금제)라는 철학의 바탕이 그렇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물론 일반 서민은 늘 재난 상태다. 양극화의 심화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청와대에 취업 상황판을 걸어놓고 매일 닦달을 해도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자는 늘게 되어 있다. 기계가 몸 노동을 대체한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서비스 분야와 감정노동, 창의적 노동까지 꿰차고 있다. 부자들은 주식과 부동산, 파생상품 투자로 가만히 앉아서 돈벼락을 맞는다.

 

인생 낙오자들이 생겨나 은둔형 인간이 되든지 아무나 폭력 분출의 잠재적 당사자가 된다. 경쟁에서 이겨 돈을 벌어도 불안과 불신에 기대어 새로운 경쟁의 동력을 만들어내야만 하니 참으로 인생이 고단하다. 현대 재난사회의 전형이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지구 유기체의 배당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민 기본소득제가 등장한 배경이다.

 

재난소득(재난지원금) 기부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 국민에게 재난소득을 주는 첫 고개를 넘어 국민 기본소득 경제체제로 가는 도화선이 되고자 한다. 단돈 천원의 기부도 좋다. 공동체를 살리고 미래세대를 살리는 운동이다.

전희식 농부·<똥꽃> 저자 한겨레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