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①길 잃은 신재생에너지 1115 business WATCH
자국 내 화석연료 개발 강화로 ‘에너지독립’
태양광·수력 등 신재생에너지源 사라질 수도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이 되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확장일로였던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위기감이 도는 반면 화석연료 사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국내 기업들도 시장 재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국내 정유·석유화학 사업과 태양광·배터리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알아본다. [편집자]
예상을 뒤엎고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우리나라도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국내 경제 분야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가운데 트럼프의 에너지정책도 주목해야할 분야 중 하나다. 미국은 석유소비량과 에너지 순수입량, 원유 및 석유제품 생산량 등 에너지 공급·소비의 대부분 영역에서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에너지정책 변화는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선진국들은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일각에선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가 내세웠던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이전보다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향후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화석연료로 에너지독립 확보
지금까지 미국을 이끌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청정에너지 확대 및 화석연료 축소 정책을 추진했다. 자국 내 원유·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고, 청정에너지 확대 및 차량 연비규제 등을 통해 석유소비를 감소시켜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핵심인 ‘에너지독립’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이 외치는 에너지독립은 전혀 다르다. 우선 공화당은 국내 석유와 천연가스 활용 극대화로 에너지독립을 추구한다. 미국 내 화석연료 개발 및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전통에너지(원유)는 물론 비전통에너지인 셰일자원 등이 풍부하다. 셰일자원 기술 발달을 통해 셰일혁명을 주도하며 국제 에너지시장에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오펙은 원유 공급량을 늘리며 유가를 끌어내렸다. 에너지시장에서 미국에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다.
트럼프는 국제 에너지시장을 주도하는 오펙이나 이란(트럼프는 이란을 적대국으로 판단)으로부터 원유 수입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것이 에너지독립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국내 화석에너지 탐사·개발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에너지자원의 원활한 생산을 제약하는 모든 행정규제 철폐를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최우선 에너지계획에서 모든 규제는 ‘미국 노동자에 미칠 이해득실’만 따져 고용 및 실질소득 측면에서 유리할 경우에만 규제를 승인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미국이 에너지자원 수출을 확대할 가능성도 크다. 트럼프는 미국 에너지 생산자들이 해외 시장에 국내서 생산된 자원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어야하고, 에너지 수출 터미널 건설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자원 수출은 고소득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이에 미국은 양자 및 다자 합의를 통해 자국 에너지를 수출할 신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다.
◇ 신재생에너지, 벽에 막히다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했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안인 청정전력계획 존폐 여부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청정전력계획은 2030년까지 미국 내 발전소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2005년 대비)를 기존 30%에서 32%로 높이고,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22%에서 28%로 높인다는 게 골자다.
공화당은 그동안 정부는 에너지 생산자 중 특정 에너지산업(신재생에너지)을 편애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청정전력계획에 반대해왔다. 석탄과 석유를 비롯해 원자력과 수력,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원 개발은 정부 보증금 지원 없이 자유 시장경제 원리를 따라 개발돼야 한다는 게 트럼프와 공화당의 생각이다. 청정전력계획은 석탄을 생산하는 주요 주(州) 등의 반발로 규제의 합법성 소송이 제기돼 심의 중으로 현재 효력 중지 상태다. 이 계획의 존폐는 미국 연방대법원 최종 판결에 따라 결정된다. 트럼프가 당선됐지만 법원에서 심의중인 제도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순 없다. 대신 환경과 관련된 여러 규제를 완화하거나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청정에너지나 에너지 효율 관련 산업 성장속도가 둔화 혹은 정체되고, 대신 석유 및 가스 소비와 생산이 증가해 국제 에너지시장에 변화가 유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유학식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우리나라 관련 산업은 직접적인 영향으로 성장이 둔화될 수 있어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②태양광·배터리, 누가 더 타격?
지구온난화 등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책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각종 지원과 혜택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도 급성장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태양광과 중대형 2차전지 등이 대표적이다. 태양광은 2000년대 후반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로 주춤했지만 최근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였으며, 중대형 배터리도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미래 핵심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의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관련 산업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이에 국내 태양광 및 배터리 생산 업체들도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 영향권에 들어갈 전망이다.
◇ 태양광, 기대에서 실망으로
당초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힐러리 클린턴은 에너지정책 2대 목표로 ▲임기 1기말까지 미국 전역에 태양광패널 5억개 설치 ▲향후 10년 이내 미국 전 가정에 청정전력이 공급되도록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등을 내세웠다. 이는 2020년 말까지 태양광 설비용량을 140GW(2012년대비 7배)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힐러리가 당선되면 미국에서 태양광 수요가 지금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특정 에너지자원에 대한 편애를 없애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자율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에너지보다 초기 설치 및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 현 시점에선 가격 경쟁력과 효용성 등에서 밀린다. 이런 이유로 각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비용 지원 및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가 태양광 등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거나 없앨 경우 관련 산업의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이에 국내 태양광 업체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향후 정책 방향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한화케미칼은 “내년 미국의 태양광 수요 위축 가능성을 예상하기엔 아직 이르다”면서도 “누가 에너지장관으로 취임하고,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OCI 관계자는 “트럼프의 보수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태양광 시장 규모가 작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폴리실리콘의 경우, 미국 수출 물량은 거의 없고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관련 사업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선 2017년 미국의 태양광 설치량은 전체 설치량의 15%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서의 설치 수요 호조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선 과도한 우려에 대해선 경계했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른 까닭이다. 백영찬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태양광 수요둔화 불확실성이 일부 있지만 과도한 우려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전기차 시대 늦어지는데..배터리는 어떡해
전기차 시장 역시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연비 규제가 강화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휘발유와 경유 등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오염원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가 그 대안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트럼프가 그동안 강화했던 연비규제를 완화할 수 있어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는 미국 내 매장된 석유를 적극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친 바 있는데, 이는 2025년이면 달성하기 힘든 연비규제로 내연기관 자동차가 경쟁력을 잃을 것이란 시장 흐름에 반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트럼프의 발언을 종합하면 친환경차에 대한 시장의 조급증이 한풀 꺾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기차에 있어 배터리는 심장과도 같다. 전기차 시대가 늦춰지면 배터리 업체의 성장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에 더해 신재생에너지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선 ESS가 필수다. 중대형 배터리는 전기차 뿐 아니라 ESS에서도 핵심 부품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은 올 들어 중국 정부의 규제 장벽으로 중국 현지에서의 전기차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은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며 실적 부진에 빠진 상태다. 미국에서의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시장 불확실성 확대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겐 또 다른 고민거리다. 국내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를 배척하는 트럼프의 정책은 극단적인 내용이 많아 실현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하지만 배터리 사업 관련 정책 불확실성이 추가됐다는 점은 부정적 요인이고, 향후 미국에서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혜택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녹색 산’ 지킨 버몬트 정신 1115 시사인
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 시는 전력의 100%가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된다. 친환경 정서, 깨어 있는 정치인, 주민자치를 보장하는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 시의 위누스키 원(Winooski one) 수력발전소 직원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댐 하류에서 물고기를 잡는다. 잡은 물고기는 트럭에 실어 댐 상류에 풀어준다. 산란기에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위해서다. 2014년 이 발전소를 사들인 벌링턴 시는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달성했다. 미국 최초다.
벌링턴 시는 미국 북동부에 있다. 버몬트 주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데도 인구는 4만2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버몬트 주립대학, IBM 지사가 있지만 미국 내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확연히 적다. 시청이 있는 벌링턴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5층에 불과하다. 외지인이 벌링턴에 찾아오는 것은 주로 자연환경 때문이다. 기온이 빨리 떨어져 단풍이 유명하고, 10월 말부터는 스키 관광객도 몰린다. 서쪽으로는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인 챔플레인 호를 맞대고 있어 절경을 이룬다.
미국 내 첫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가 버몬트 주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환경은 이 지방의 오래된 기치다. ‘버몬트(Vermont)’라는 이름부터 녹색(vert) 산(mont)이란 프랑스어에서 비롯했다. 버몬트 주는 총면적 85% 이상이 산림이다. ‘녹색 산의 주(Green Mountain State)’라는 별칭답게 벌링턴 시 어디에서나 사방을 둘러싼 산맥을 볼 수 있다. 평생 버몬트 주에서 살아온 데이비드 블리터스도프 올어스 리뉴어블스(AllEarth Renewa bles) 회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게 버몬트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블리터스도프 회장은 직접 풍차와 태양광발전 기구를 발명해 벌링턴 시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버몬트 주에 위치한 풍력발전소. 풍력발전은 벌링턴 시 사용 전력량의 22%를 책임진다.
100% 신·재생 에너지 달성의 화룡점정인 위누스키 원 수력발전소는 벌링턴 전력의 7.5%를 생산한다. 1992년 개인사업자가 설립할 당시 버몬트 주정부는 그에게 이색 설립인가 조건을 내걸었다. ‘발전소 건설로 피해를 볼 위누스키 강 물고기의 생태 보호 대책’이었다. 고심 끝에 발전소 측이 내놓은 해법이 ‘물고기 승강기(fish lift)’와 ‘댐 하류 산소 공급’이었다.
존 클록 발전소장은 직접 물고기 승강기를 작동해 보였다. 가로·세로 2m 정도인 검은색 철판이 물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클록 발전소장은 승강기 활용 방식을 설명했다. “철판 네 방향 중 하류 쪽 입구만 열어둔 뒤, 그쪽으로 물살을 내보낸다. 연어는 (물살을 거스르는) 특성상 계속 승강기 위에서만 헤엄을 친다. 이 물고기를 승강기로 끌어올려 트럭으로 이동시킨다. 댐 상류에 풀어주기 전 전자장치를 해둔다. 방류한 물고기들이 댐 상류에서 무사히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강 아래에는 터빈 3개를 비롯한 발전장치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하다.
벌링턴 에너지 정책의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 위누스키 원 발전소라면, 실제로 기여가 가장 큰 곳은 맥닐 발전소다. 1984년부터 가동된 맥닐 발전소는 벌링턴 전력의 44%를 홀로 생산한다. 맥닐 발전소는 화력발전소이지만 일반 화력발전소와는 다르다. 석탄이 아니라 ‘우드칩(나무조각)’을 쓰는 ‘바이오매스’ 방식이다. 우드칩은 석탄보다 대기오염을 적게 발생시키지만, 발전 효율이 낮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목재가 많이 필요하다. 발전소 설립 전 지역 환경단체들은 “맥닐 발전소가 버몬트 주의 산림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발전소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먼저 맥닐 발전소의 우드칩은 산업·가정 폐기물에서 나온다. 우드칩 95%를 벌목 잔여물, 불량 원목 제품에서 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화력발전만을 위한 용도로 벌목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버릴 나무를 쓴다는 뜻이다. 개인이 버리는 나무 제품도 우드칩의 재료다. 우드칩이 산처럼 쌓여 있는 발전소 앞마당 야적장 한쪽에는 시민들이 버린 각종 가구가 모여 있었다. 맥닐 발전소를 열면서 벌링턴 시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영구 폐쇄했다.
폐기물로 연료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우드칩을 연소하면서 대기오염이 발생하지 않을까? 요컨대 우드칩 발전은 재생에너지이되 ‘친환경 에너지’는 아닌 것 아닐까? 그러나 맥닐 발전소는 대기오염 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발전소는 공기 성분을 관리하는 여러 장비를 이용해 대기오염을 버몬트 주 기준치의 10분의 1, 연방 기준치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관리한다. 산림자원이 풍족한 벌링턴에서는 폐목재 또한 많이 발생한다. 데이브 맥도널 발전소 감독관은 “나무는 태우지 않아도 썩으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태워서 전력을 생산하는 편이 이익이다”라고 설명했다.
목재 운송에 따른 간접적 오염에도 신경 썼다. 맥닐 발전소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트럭 사용을 최소화하고, 목재의 75%는 철도로 운송한다. 열차는 하루에 단 한 번만 운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발전소 입구에는 1980년대 중반 지역 환경단체들의 맥닐 발전소 건설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맥도널 감독관은 “이 포스터가 ‘기우’임을 증명했다는 자부심이자 앞으로도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다”라고 밝혔다.
벌링턴의 다음 목표는 ‘넷제로’
미국 최초 100% 신·재생 에너지 달성에 기틀을 마련한 인물들이 있다. 올여름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첫 직함이 벌링턴 시장이었다. 1972년부터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몬트 주지사 선거에서 내리 4차례 낙선한 그는, 1981년 10표 차이로 벌링턴 시장이 되었다. 이후 1989년까지 8년간 샌더스 시장은 저소득층과 중소 상인들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샌더스 시장의 전력 부문 정책이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확대였다. 오늘날 벌링턴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하는 맥닐 발전소가 다름 아닌 샌더스 시대의 치적이다. 아직도 벌링턴 시청에는, 역대 시장 중 유일하게 넥타이를 매지 않은 샌더스 상원의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샌더스가 제시한 방향에 각론을 내놓은 후임자가 피터 클라벨이다. 클라벨은 샌더스 시장 재임 당시 공동체·경제개발 국장으로, 시정 실무를 조언했던 인물이다. 1989년부터 1993년,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총 15년 벌링턴 시장으로 일한 클라벨은 본격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전력 생산량이 떨어지는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려면 전력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02년 나온 슬로건이 ‘10%의 도전(10 percent challenge)’이다. 가정과 기업에서 전력 사용을 줄여 각자 온실가스를 최소 10%씩 줄이자는 캠페인이었다. 운동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벌링턴 시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펼쳤다. 시 외곽에 있던 시장을 도심으로 옮겨 자동차를 덜 타도록 했고, 전력 효율이 높은 전구를 시에서 구매해 싼값에 판매했다. 그 결과 16년 동안 버몬트 주 전체 전력 사용량이 15% 증가하는 동안 벌링턴 시는 오히려 1% 떨어졌다.
100% 신·재생 에너지란 성과가 비범한 시장들만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의사가 정책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한 미국 특유의 지방자치제 공이 크다. 핵심 제도는 ‘커미션(commission)’이라는 대의기관이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벌링턴 전력 커미션(Electric Commission)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장이 바뀌더라도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도록 압박해왔다. 벌링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벌링턴 전력국의 닐 런더빌 국장 역시 “(시청이 아니라) 전력 커미션이 100% 신·재생 에너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계속 이끌었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오늘날의 성과는 지역 특유의 친환경 정서, 깨어 있는 정치인, 주민자치를 보장하는 제도 삼박자의 결과물인 셈이다.
미국 경제지 <키플링어>는 2013년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 2위에 벌링턴을 꼽았다. 이 매체는 “‘녹색 산의 주’에서 녹색은 중요하다. 시장의 목표는 도시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가동하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벌링턴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전기뿐만 아니라 열·교통 분야 등을 포괄하는 ‘넷제로(net-zero)’다. 벌링턴의 넷제로 정책은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전부 활용해, 쓰는 에너지보다 얻는 에너지가 많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맥닐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곧장 가정 난방에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로 웨인버거 벌링턴 시장은 넷제로 목표 시점을 정해두지 않았다. “기한을 정해두고 임기 내에 밀어붙이거나,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언제 달성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달성할지다. 중요한 질문들을 먼저 던진 뒤 분석하고 있는 단계라고만 말하겠다.”
신·재생에너지 밀어붙인 풀뿌리 민주주의
지난 10월19일(현지 시각) 벌링턴 전력국에서 커미션(Commission) 월례회의가 열렸다. 커미션 위원들과 닐 런더빌 벌링턴 에너지국장이 참석했는데, 가브리엘 스테빈스 커미션 의장이 가운데에 앉았다. 위원들이 전력 관련 현안들을 질의하면 런더빌 에너지국장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역방송과 신문이 회의 과정을 취재했다. 시청은 월례회의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커미션은 한국에는 없는 특수한 대의기관이다. ‘주민 대표’라고 번역하기에는 막강한 권한을 설명하기 어렵고, ‘위원회’라고 번역하면 주민자치의 성격을 놓친다. 커미션의 위원들은 자원한 시민 5명으로 구성된다. 시의원들과 벌링턴 전력국 간부들이 지원자들을 심사한 뒤 시장이 최종 5명을 임명한다. 벌링턴에는 전력뿐만 아니라 교통, 소방 등 다양한 부서의 커미션이 있다. 버몬트 주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도 분야마다 커미션이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특성에 따라 커미션을 설치할 분야를 스스로 정한다. 더러는 보드(board)라는 기구를 두기도 하는데, 성격은 커미션과 다르지 않다.
ⓒ시사IN 조남진 벌링턴 전력 커미션은 시장이 바뀌더라도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다.
무급 봉사직인데도 경쟁은 치열하다. 단순 자문기관이 아니라 막강한 실권을 갖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나 시청이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하기 위해 밟는 첫 절차가 커미션 승인 요청이다. 가령 지역에 새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사업가는 커미션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시 의회의 심사조차 받을 수 없다. 커미션 승인 절차는 정경유착을 방지하며, 굵직한 사안에 대한 지역 여론을 탄력적으로 반영한다.
2000년대 초반 100% 신·재생 에너지 계획을 처음 제안한 게 벌링턴 전력 커미션이다. 이후 15년 동안 시장이 교체되는 가운데에도 커미션은 계획을 꾸준히 압박해왔다. 벌링턴이 다음 목표로 설정한 ‘넷제로’ 역시 커미션 회의에서 나왔다. 벌링턴 전력 커미션은 1년6개월 전 ‘넷제로’에 대한 설문조사를 주도했고, 압도적 찬성 의견을 근거로 시청에 건의했다.
스테빈스 의장은 커미션의 지위와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다. “커미션은 시청 아래에 있는 조직이 아니다. 벌링턴 시민들을 대표해 권력을 견제한다. 더 복잡하지만 일을 올바르게 만드는 곳이다. 민주주의란 게 그렇다.”
“태양·물·바람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벌링턴 전력국(Burlington Electric Department:BED)은 벌링턴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미국 최초로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달성한 벌링턴에서 BED의 위치는 단순히 시청 한 부서 수준을 뛰어넘는다. 닐 런더빌 벌링턴 에너지국장(사진)에게 100%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물었다.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 계획은 언제부터 추진됐나?
-2000년쯤 시작됐다. 2014년 9월 달성했으니 근 15년 걸렸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애를 먹었다. 가격과 기술, 에너지 조합이 문제가 됐다. 전기세가 많이 올라가지 않도록 포트폴리오를 짜야 했다. 이전에는 풍력이나 태양열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술 자체도 없었다. 에너지 조합은 설명하기 좀 복잡하다. 발전 방식들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가령 풍력은 친환경적이지만 바람이 종일 부는 것은 아니다. 비용과 환경,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맞추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벌링턴 시민들은 100% 신·재생 에너지 도입 후 전기세를 더 많이 내고 있나?
-이전보다 전기세가 더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한 탓은 아니다. 2008년 이후 8년 동안 인상률은 거의 일정하다.
여러 어려움이 있는데도 벌링턴 등 미국 각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이유가 있나?
-화석연료 시장의 극적 가격 변동을 목격해서다. 태양·물·바람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원료의 가격 변동이 예상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에 비해 전력 생산량이 줄지는 않았나?
-일반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예외다. 우드칩을 이용하는 맥닐 발전소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이다. 타 지역보다 먼저 100% 신·재생 에너지를 달성한 가장 큰 이유다.
발전소 가운데에는 벌링턴 밖에 있는 곳도 있다. 버몬트 주정부와 시청의 BED가 부딪친 경우는 없었나
-좋은 질문이다. 사실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46개에는 주정부가 시청 업무에 이의를 제기하는 체계가 없다. 나머지 4개에 속하는 버몬트 주에서 간혹 우리 결정에 의문을 표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버몬트 주 역시 친환경 정책을 표방하기에 서로 원만히 조율하는 편이다.
다음 계획은?
-넷제로(net-zero)다. 열과 교통 분야를 포괄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이다. 애초부터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cy) 극대화의 첫걸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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