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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스크랩 또는 퍼온글

“단 하나의 알약, 시럽 반 스푼에 삶이 바뀌었다”

by 이성근 2016. 9. 1.

 

 

지난 24일 오전(현지시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작은 도시 진치히에서 만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비앙카 포겔(55·왼쪽)과 비어깃 슬뢰서(55)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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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알약이었다. 비앙카 포겔(55)의 인생을 뒤바꾼 것은 탈리도마이드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 콘테르간 알약 한 개였다. 1960년 임신 3개월차인 포겔의 어머니가 이 약을 먹은 뒤 포겔은 남들보다 짧은 팔로 태어났다. 손이 어깨에 달린 아기를 보고 사람들은 당장 버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포겔이 기형아로 태어난 이유가 약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때문인지 몰랐고 약을 판매한 그뤼넨탈 회사도, 독일 정부도 사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안다. 포겔은 나는 화학물질의 부산물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오전(현지시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작은 도시 진치히에서 만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포겔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팔이 없기에 컵과 그릇을 입술로 물어서 옮기고, 발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그는 이젠 그런 방식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의 과정은 자신에게 트라우마라고 했다. “생긴 대로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2007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를 소재로 만든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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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겔의 어머니는 입덧이 심해 콘테르간 약을 먹었다. 당시 광고에선 “1000알을 먹어도 죽지 않는 수면제의 혁명이라고 했다.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임신부가 입덧을 한다고 하면 의사들도 정확한 처방 없이 이 약을 권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료 형태로도 팔렸다. 약의 복용법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꿀 바른 사탕처럼 팔렸다고 포겔은 당시를 설명했다.

 

역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인 비어깃 슬뢰서(55)의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슬뢰서의 어머니가 심한 입덧으로 힘들어하자 그의 아버지는 보다못해 당시 다섯 살인 슬뢰서의 언니가 먹던 음료형 콘테르간 약을 어머니에게 줬다. 어머니는 처음엔 안 먹겠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약을 먹었다. ‘반 스푼이었다. 슬뢰서의 아버지는 딸이 기형아로 태어난 게 자신이 권한 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뒤 벽에 머리를 박았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을 함유한 수면제 콘테르간.

 

19611127일 독일 신문사 디 벨트가 처음 약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며칠 뒤 독일 정부는 약 판매를 금지했다. “1년만 더 일찍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면 우리는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포겔은 한숨을 쉬었다. 1957년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콘테르간은 판매 직후 부작용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독일 정부는 빠르게 조치하지 못했다. 슬뢰서는 처음엔 피해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정부가 의혹을 무시하고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조금이라도 더 빨리 금지 처분을 했으면 피해자 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늦어져 최종적으로 금지 처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포겔은 거대한 화학산업계의 로비력이 강하고, 정부는 기업을 도와줬기 때문에 약에 대한 정보가 수면 아래로 숨고 올라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학물질 관리 제도의 문제도 있었다. 당시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독에서는 콘테르간 판매가 허가되지 않았다. 허술한 심사 과정을 거쳐 허가를 받은 서독에서만 1만명에 가까운 피해자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프랜시스 올덤 켈시라는 공무원이 이 약 허가를 검토하면서 사람에게는 수면제 효과를 내고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허가 제출 자료를 이상하게 여기고 허가를 내주지 않아 피해자가 17명에 그쳤다. 켈시는 미국을 구한 영웅으로 떠올라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와 그뤼넨탈 회사는 아직까지 콘테르간과 기형아 출산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그뤼넨탈사를 수사해서 기소하고, 피해자 부모들이 그뤼넨탈을 상대로 소송했지만 유명 변호사들을 선임해 대응한 그뤼넨탈에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제약회사가 반드시 검증토록 하지 못한 법의 맹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죄 판결이 났지만 그뤼넨탈사와 정부는 100만마르크씩 총 200만마르크를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기금으로 냈다. 20년치 연금을 지급하고 이후는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소송에서 진 피해자 부모들은 이 방안에 합의했고, 이후 더 이상 그뤼넨탈에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인터넷이 없어 정보도 제대로 알 수 없고 기형아 출산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다. 2012년 그뤼넨탈사가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사과한 것이 전부다. 포겔과 슬뢰서는 아직도 정부와 그뤼넨탈이 사고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슬뢰서가 말했다. “저한테는 매일 생활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안고 사는 거예요. 시장에만 가도 사람들과 부딪치는 게 무섭고, 제가 계산대 앞에 서면 사람들은 불쌍한 눈빛으로 제 물건을 대신 계산대에 올려주죠. 높은 데 있는 건 남편이 다 집어줘야 하고요. 문제는 절대 끝난 게 아니죠.”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던 슬뢰서는 어깨가 아파 일을 그만뒀다. 포겔도 몸이 좋지 않아 유치원 교사 일을 그만둘 계획이다. 포겔은 내가 좋아하는 승마도 계속하고 싶지만 몸이 아파서 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울고 있다고 말했다.

 

20138월에야 이들이 받는 연금 액수도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되는 수준으로 올랐다. 그 전까지는 팔다리가 모두 없고, 장기도 손상돼 거의 자발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 정도 심각단계 피해자가 한 달에 545유로(68만원) 정도를 받았고, 2013년 이후 7000유로(873만원)로 높아졌다. 치료비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포겔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콘테르간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연을 적어서 정부에 제출하고 정치인들에게도 요구했다이후 정부가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정부와 의회는 한 달 545유로로는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콘테르간 피해자 지원법을 개정해 연금 액수를 높였다고 했다. 현재 이 연금을 받고 있는 피해자는 2400명 정도다.

 

독일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일컬어 한국판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한다. 포겔은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기업은 제품을 팔려고만 하고, 정부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그래도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독일이 바뀐 점은 있습니다. 약의 허가를 매우 복잡하게 하도록 하고,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을 줄 수 있고, 복용법을 약품에 기재해주도록 제도적 개선을 했죠. 지속적으로 항의해서 연금 액수도 올렸고요.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갈 길이 멀어요.” 경향 16.9.1

 

독일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는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비극 또 일어날 수 있다

 

잘 몰랐습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 규정도 없었고.”

 

29~30일 열린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기업·학자·공무원들이 내놓은 답변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질 않는데 공전하는 청문회를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국정조사가 끝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경향신문 독한 사회-생활화학제품의 역습취재팀은 이 질문을 품고 지난 22~27일 독일을 찾았다.

 

화학·제약 산업이 발달한 독일에선 1950년대 후반 수면제 콘테르간을 복용한 임신부들이 갑자기 팔이나 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낳았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문제였다. 누구는 한 개의 알약, 누구는 반 스푼의 시럽이 발단이 됐다. 50대가 된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들은 지금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도록 하는 법 조항이 없어 제약회사는 처벌을 피해갔고, 유해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약품 허가를 내준 정부도 이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진 않는다. 앞서 있다는 유럽의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도 만들어지기까지는 이렇게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후 2013년 제정된 한국의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은 유럽의 리치(REACH) 제도를 원용했다. 그러나 모든 시판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기업이 입증하고 등록하도록 한 리치와 달리 화평법은 정부가 지정한 510개 화학물질과 신규 물질만 정보 등록을 의무화했다. 구멍 뚫린 반쪽법이다. 그나마 한국엔 24시간 피해 신고를 받고 응급조치 방식을 알려주며, 심각하면 국가 전체에 비상 신호를 보내는 독일의 중독센터같은 기관도 없다. “독일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안드레아스 스튀러 마인츠 중독센터장은 물론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더 빨리 발견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물망 위에 그물망을 수없이 얹어 걸러내야 하는 게 유해한 화학물질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잘못 쓰면 죽을 수도제품에 잘 보이게 써놓은 독일

 

지난 24(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마인츠에 있는 생활화학제품 유통회사 데엠(DM) 매장에서 산 모기기피제(왼쪽)와 액체형 데오드란트 제품 뚜껑에 민간기관 평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24일 오후 7(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마인츠에 있는 유명 생활화학제품 유통회사 데엠(DM) 매장으로 향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국과 독일의 제품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본 제품들엔 놀라운 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제품은 집의 위생을 위해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탈취제 제품 겉면엔 번듯이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이 제품을 살까?’ 하는 생각도 잠시, 뒷면을 빼곡히 채운 문구에선 일부러 잘못 사용하면 몸에 좋지 않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통풍이 되는 곳에서 사용하세요라고 경고하는 글도 보였다.

 

어떤 곰팡이 제거제엔 다른 제품과 같이 사용하지 마세요. 같이 사용할 경우 염소 가스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사용할 때는 장갑과 옷뿐 아니라 눈과 입, 얼굴을 보호할 수 있는 장구까지 착용하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참고해야 하는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엄격하게 주의사항을 제시하고 있었다. 소비자가 읽기 편리하게 동일한 형식과 픽토그램(그림문자)도 사용했다. 제품의 포장과 표시를 통일한 유럽연합 규제(CLP)를 적용받은 제품들이다.

 

제품마다 여러 인증마크스티커도 붙어있었다. 액체형 데오드란트 제품엔 ‘Oeko Test(외코 테스트)’ 스티커가, 모기 기피제 뚜껑엔 ‘Stiftung warentest(슈티프퉁 바렌테스트)’ 스티커가 보였다. 스티커엔 각각 1.0, 2.0과 같은 점수와 Gut(좋음), Sehr Gut(매우 좋음)라고 써있었다. 모두 민간기관의 평가 결과다. 기업이 돈 주고 인증을 의뢰하는 게 아니라,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시판 제품의 기능과 친환경성 등을 평가해 제품에 점수를 부여한다. 소비자들은 이 마크를 믿고 제품을 산다. 정부가 1차적으로 화학물질관리제도를 통해서 제품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다면, 신뢰성 있는 민간기관들이 2차 검증을 하는 것이다.

 

혼란은 막는다. 제품 이름에 ‘nature’라고 표기한 주방세제에는 ‘EU 에코라벨이라는 표시가 함께 나와있었다. EU 에코라벨은 유럽연합 국가들이 협의해 만든 인증제도로 소비자에게 친환경제품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인증 조건도 까다롭고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효기간인 3~5년이 지나기 전에 갱신해야 한다. 아무 제품에나 친환경딱지를 붙이는 한국 제품들과 다른 모습이다. 마트를 돌아보면서 내내 떠오른 것은 세균과 냄새는 무조건 없애야 행복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넘치도록 생활화학제품을 권하면서도 유해성은 제대로 알리지 않는한국의 민낯이었다. 16.9.1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