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시대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 저자 손세관|집 |2019.08
저자 : 손세관 동ㆍ서양의 도시와 주거문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손세관은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도시주거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부터 중앙대학교에서 가르쳤고, 이제는 명예교수로 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 소장을 지냈다. 좀더 나은 우리 주거환경의 밑거름을 마련하고자 20세기의 주거문화를 탐구하고 있다. 집합주택의 본질과 다양성을 살피고, 새로운 길을 찾는 작업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넓게 본 중국의 주택》2001, 《깊게 본 중국의 주택》2001,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2004, 《북경의 주택》2004, 《피렌체, 시민정신이 세운 르네상스의 성채》2007, 《베네치아, 동서가 공존하는 바다의 도시》2007, 《한국 주거의 사회사》2008, 공저, 《이십세기 집합주택》2016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새로운 주거문화를 찾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
오귀스트 페레, 파리 프랭클린 가 25번지 아파트, 1904
19세기 파리의 아파트
이성과 감성이 결합되어 탄생한 집
안토니 가우디, 밀라 주택, 1912
에이샴플라 지구
집합주택은 사회적 예술이다
미셸 더클레르크, 에이헌 하르트 집합주택, 1921
네덜란드 주택법
전원도시의 이념을 담은 도시 안 성채
미힐 브링크만, 스팡언 지구 집합주택, 1921
공중 가로의 변신
단순한 형태와 자유로운 공간구성, 근대적 주거의 표상
미스 반데어로에,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의 판상형 아파트, 1927
독일의 평지붕 논란
소외된 그들을 낙원에서 살게 하라
양떼가 풀을 뜯는 주거지, 프랑크푸르트에 펼쳐진 노동자의 낙원
에른스트 마이, 뢰머슈타트 주거단지, 1928
건축과 권력, 에른스트 마이 vs. 알베르트 슈페어
말굽형 ‘왕관’을 중앙에 둔 다채색의 전원도시
브루노 타우트, 마르틴 바그너, 브리츠 주거단지, 1927
왕관을 쓴 도시
도시 속 오아시스, 길을 향해 빛나는 백색의 미학
야코뷔스 요하네스 피터르 아우트, 키프훅 주거단지, 1930
베를라허의 도시 vs. 근대건축국제회의의 도시
판상의 아파트가 늘어선 첨단 주거단지
한스 샤로운 외 5인, 지멘스슈타트 주거단지, 1931
기능주의의 두 얼굴
거대한 블록 속에 담은 사회주의 이념
카를 엔, 카를 마르크스 호프, 1930
사회주의 주거모델, 돔 코뮤나
새로운 주거모델의 등장
이상적 주거공동체
르코르뷔지에, 위니테 다비타시옹, 1952
페사크의 집합주택
주거로 구현한 최초의 철과 유리의 마천루
미스 반데어로에,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860-880번지 아파트, 1951
콘크리트 고층아파트의 탄생
200개의 기둥으로 조성한 가난한 자들의 궁전
페르낭 푸이용, 클리마 드프랑스, 1957
프랑스의 그랑 앙상블
신개인주의 이념을 표출하는 곡선 표면의 고층아파트
알바르 알토, 노이에 파아 아파트, 1962
주거단지 로미오와 줄리엣
도시 맥락에 스며든 집합주택
호세 루이스 세르트, 피바디 테라스, 1964
혼합개발, 그리고 런던의 알톤 지구
집합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
20세기 최초의 저층·고밀 집합주택
아틀리에 파이브, 할렌 주거단지, 1961
뉴욕주 도시개발공사가 지은 저층?고밀 집합주택
도시에 구축한 산토리니의 구릉지 마을
모셰 사프디, 해비타트 67, 1967
집합주택 인터레이스
카펫 하우징
루이스 사워, 펜스 랜딩 스퀘어, 1970
뉴욕의 불도저, 로버트 모지스
길,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다
니브 브라운, 알렉산드라 로드 주거단지, 1978
신합리주의 건축, 길과 광장의 부활
시간이 만들어낸 특별한 집합체
마키 후미히코, 힐사이드 테라스, 1969년(제1기), 1992년(최종)
메타볼리즘 건축
역사, 문화, 도시의 존중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거지 만들기
랠프 어스킨, 비커 재개발 주거단지, 1982
고든 컬런의 ‘도시풍경’
역사성, 근대성, 지역성을 모두 품은 집합주택
알바루 시자, 말라게이라 지구, 1977년(1단계), 1998년(최종)
포르투의 집합주택 보사
노동자들의 궁전
리카르도 보필·타예르 데아르키텍투라, 아브락사스 집합주택, 1983
유형으로 접근한 갈라라테제 집합주택
블록을 지키는 집합주택
로브 크리어 외, 라우흐슈트라세 주거단지, 1985
키르히슈타이크펠트, 역사적 도시조직을 재현한 신도시
올림픽이 낳은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단지
우규승-건축연구소 일건(황일인, 김인석, 최관영), 서울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 1988
디자인 명품 주거단지
세기말, 미래의 주거상 찾기
도시에 만든 집의 수풀
핏 블롬, 큐브하우스, 1984
핏 블롬과 르코르뷔지에의 유작
구릉지 위에 구현한 건축의 자연화, 자연의 건축화
안도 다다오, 롯코 집합주택 1, 2, 3, 1983년(1기), 1993년(2기), 1999년(3기)
집합주택 ‘별’, 인공적 환경 속에 자연을 담다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공간화한 폐쇄된 공동체
야마모토 리켄, 호타쿠보 주거단지, 1991
일본 집합주택 변신의 주역들
판상형 아파트에 담은 집합주택의 미래상
장 누벨, 네모쉬 집합주택 I & II, 1987
금속으로 마감한 블록형 집합주택, ‘더 웨일’
현대 사회의 복합성을 수용한 집합주택
MVRDV, 집합주택 실로담, 2002
암스테르담 동부항만지역
실패한 20세기의 집합주택
책 끝에
출판사 서평
우리는 한때 서구가 경험한 ‘무지의 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20세기 주거문화에 담긴 빛과 그림자를 쳐다보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된다. _008쪽에서
좋은 집합주택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전국 거주실태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49.2%,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재고주택 유형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5%이다(2017년 통계청 발표 자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으며, 주택 유형 중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는 획일화되고 단절된 도시 풍경을 만드는 주범으로 꼽히곤 한다.
《집의 시대: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은 좋은 집합주택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한다. 인간의 실존에 바탕을 둔 주택, 겸손하고 진솔한 태도로 만든 주택, 자연과 사회의 한 부분으로 의도된 주택,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주택, 도시환경을 존중하는 주택. 좋은 집합주택이 무엇인가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집합주택들이 그 대략의 답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건물의 부동산적 가치에만 무게를 두는 우리네 아파트와는 거리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우리 주거문화 바로 세우기’를 위한 바탕 작업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짓고 있는 아파트단지는 르코르뷔지에를 위시한 근대주의자들의 이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것도 좋지만, 도시를 ‘예술품’으로 보면서 길과 주거블록을 존중하고 주동 하나하나를 ‘건축’으로 대하는 주거환경도 만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너무 한 방향으로만 달려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세종시만은 그렇게 건설했어야 한다고 한다.
기괴한 행정 청사를 중심에 두고 수십 층 높이의 고층 주거단지가 끝도 없이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수도를 만든다고 하면서 거칠고 비인간적인 환경을 마구잡이로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늘어가는 고층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보면서 나는 적어도 도시 이름에 ‘세종’을 붙이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_471쪽에서
집의 시대
“20세기는 ‘집의 시대’다.” 책의 첫 문장이다. 건축 역사를 살펴보면,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형식이 있는데 고대는 신전의 시대였고, 중세는 성당의 시대였으며, 르네상스 이후 19세기까지는 궁전의 시대였다. 근대 즉 20세기 건축의 주인공은 ‘주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건축의 최대 과제는 인간의 주거문제 해결이었다고 본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던 노동자들의 주거 수준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주거환경을 널리 퍼트려 보편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것. 20세기에 활동한 건축가들이 가장 많이 탐구한 대상은 주택, 그중에서도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집합주택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폐결핵을 ‘빈 질병’이라고 불렀다. 부자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다시피 한 세금정책으로 자금을 확보한 사민당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주택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1934년까지 빈에는 64,000호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도시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새로운 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비로소 주택 내부에 화장실이 있고 수돗물이 공급되는 집에 살게 되었다._143쪽에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정치지도자, 지식인들이 건축가들과 함께 나섰다. 정치, 사회, 기술, 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난 개혁의 기운이 주택에 스며든 것이다. 20세기에 지어진 집합주택 속에는 당시의 사회적 이념, 시대정신, 새로운 미학, 공간적 혁신, 수준 높은 기술 등 20세기 건축의 중요한 화두가 모두 녹아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건축가가 집합주택 계획을 통해서 20세기의 인간에 부합하는 주거 상을 정립하려고 했다. 따라서 20세기의 건축문화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집합주택을 들여다봐야 한다. 20세기 건축문화의 심장이 바로 집합주택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도시와 주거문화에 관해 꾸준히 탐구해온 저자 손세관 명예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했고, 건축가는 팀을 꾸려 기술을 제공했고, 주민은 노동력을 투여했다. 건축가들이 조직한 팀은 ‘타격대’로 불렸는데, 건축가, 엔지니어, 사회운동가, 법률가를 포함하는 팀이었다. 운동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고, 싼값에 비교적 양호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살 운동의 결과 포르투갈에는 수만 호가 넘는 새로운 주택이 건설되었다. _323쪽에서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 30
이 책은 20세기의 주거문화를 특별한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집합주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 ‘미시를 통한 거시’의 방법을 취한다. 중요한 사건이나 사례를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써 그 시대를 세세하게 읽고, 그 시대의 문화를 깊고 넓게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저자는 20세기에 지어진 ‘두드러진’ 집합주택 30 사례를 선정하고 그것을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 각각을 조명한다. 평면, 입면, 공간 같은 건축적 내용은 그리 세세히 살피지 않는다. 분명 ‘건축 분야의 책’이지만 딱히 건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저런 이슈를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건물이 들어선 시기의 사회적?문화적?도시적 상황, 건물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과 난관, 건축가의 의도와 계획개념, 그것이 담고 있는 이념과 역사적 가치, 건물에 대한 비평가 및 주민의 평가, 다른 건물에의 파급효과, 인류 주거문화에 끼친 영향 등에 더욱 무게를 둔다. 더불어 건축가들과 함께한 정치가, 개혁가, 또는 일을 맡긴 자본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빼지 않는다. 결국은 시대가 주거라는 화두를 놓고 했던 모색과 고뇌, 그리고 그 성취와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30 사례의 지역적 분포를 살펴보면, 유럽 21, 미국?캐나다 4, 일본 3, 한국 1, 아프리카 1, 그렇다.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각각 하나씩 선정된 것이 흥미롭다. 저자는 책에 소개된 집합주택에 대해 “집합주택을 단지 ‘건물’이 아닌 ‘건축’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그 모두가 20세기 인간 삶의 인문학적 증언이면서, 시대의 유산이자 인간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는 인류의 역사적 성취라고 말한다. 한때의 유행어를 잠시 빌려, ‘죽기 전에 꼭 성찰해야 할 집합주택’인 것이다.
알제 곳곳에 널린 판자촌은 물론 카스바와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클리마 드프랑스는 파라다이스로 묘사되어왔다. 프랑스 관리들은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여타 지역 주민들에 비해 체제에 훨씬 순종적일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1960년 12월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때 200 기둥의 주민 중 60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_195쪽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우리나라의 집합주택은 1988년 서울 방이동에 들어선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이다. 저자는 이 아파트단지에 대해 “우리가 어렵사리 만들어낸 문화재”라고 규정한다. 그런 사실을 주민들은 물론 서울시도 모르는 것 같다고 걱정한다. 문화재를 뭉개버리고 40~50층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만은 제발 보호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만약 이 단지의 재건축에 사인하는 시장이 있다면, 그는 문화시장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시장이 될 것이다.”
이 단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현상설계를 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을 대비해 지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가 유일했다. 그만큼 아파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낮았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가 시범적 성격이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단지가 완성된 이후 한국의 아파트는 급격한 고층 · 고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퇴보의 길로 들어섰다. 노태우 정부에서 주택 200만 호를 짓겠다면서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를 건설하고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_365쪽에서
실패한 20세기의 집합주택
30 사례의 ‘빛나는 집합주택’ 이외에 책의 말미에 ‘실패한 20세기의 집합주택’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20세기 주거문화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살피려는 의도다. 곳곳에 널린 실패한 주거환경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세 곳의 대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지어졌다가 1972년 파괴된 ‘프루이트 아이고 주거단지’, 1965년에 물량 위주로 계획한 나머지 거대하고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모습으로 계획되어 외면받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베일메르메이르 주거단지’, 건축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랑거리로 여겨졌지만 정작 주민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이었던 영국 셰필드의 두 주거단지 ‘파크 힐’과 ‘하이드 파크’. 사례마다 실패의 원인과 배경이 다르다. 어떤 사례는 정책의 실패가 최고의 원인, 어떤 사례는 물량 위주의 공급이 최고의 원인, 어떤 사례는 잘못된 설계가 치명적 원인이다. 그리고 아직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실패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를 얘기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주거환경을 놓고 저지른 ‘치명적인 실책’에 대한 이야기.
미국에는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와 유사한 실패 사례가 수백 곳에 퍼져 있다. 모두가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는 고층아파트이다. 결국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의 실패는 잘못된 정책이 낳은 당연한 실패로 보아야 한다. 사용자 즉 ‘인간’을 중심에 둔 정책이 아니었던 것이다._457쪽에서
20세기는 집에 관한 지침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경전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20세기의 주거문화를 바라보면, 시대가 추구한 이념, 열정, 성취도 흥미롭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대가 범한 크고 작은 실수가 아프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20세기의 주거문화를 모르는 우리는 과거 서구가 경험한 ‘무지의 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가는 주거환경에는 전통도, 문화도, 질서도, 깊이도 없다. 바로 우리가 20세기의 주거문화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20세기 주거문화에 담긴 빛과 그림자를 쳐다보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흉물 같은 아파트가 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도, 도시의 경관을 마구잡이로 황폐화시켜도 그저 그런가보다 한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조소하고 폄하해도 제대로 대응하고 반성할 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주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 대다수는 우주의 드라마가 연출되지 않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한다. 자각한 우리 후대의 정치가, 사회운동가, 계획가, 건축가, 주부들이 개혁의 기치를 들 것이다. 이 책이 우리 후세들이 이룰 새로운 주거문화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근대적 삶을 담는 그릇 ‘아파트’…포개어 놓은 상자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
“20세기는 ‘집의 시대’다.” <집의 시대> 첫 문장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집’, 그것도 ‘아파트’다. 저자는 20세기 건축의 주인공이 주택이라고 말한다. 20세기 건축의 최대 과제는 인간 주거 문제의 해결이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격히 악화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건축가, 정치지도자, 지식인들의 치열한 고민이 응축된 30개의 집합주택을 살펴본다. 전 세계의 아파트를 둘러보다보면 건물이 들어선 시기의 사회적·문화적·도시적 상황까지 살펴보게 된다.
새로운 시대 ‘집합주택’의 시작은 1904년 오귀스트 페레가 프랑스 파리 프랭클린가에 세운 25번지 아파트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다. 건물을 철근콘크리트로 구축하면서 육중한 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이 실현될 수 있었고, 아파트는 근대적 삶을 담는 그릇이 된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손을 거쳐 집합주택은 20세기의 주거 표준이 된다.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세워진 르 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에 대해 저자는 “인류가 콘크리트로 짓고 마감한 건물 중에서 가장 장중하며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집 안은 오늘날 아파트의 기본틀을 갖추고 있고, 집 바깥으로는 건물 주변의 녹지공간과 커뮤니티까지 현대적 아파트의 이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집합주택에선 1970년대 지어진 반포주공아파트나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의 모습이 겹쳐진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에 1927년 세운 판상형 아파트는 ‘계단실, 백색 표피, 돌출된 발코니, 평평한 지붕, 좌우대칭의 입면 구성, 같은 평면의 반복’ 등 전 세계 ‘아파트의 표준’을 제시했다. 1951년 미국 시카고에 세워진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860-880번지 아파트는 철과 유리로 지은 최초의 마천루이자, 집합주택의 틀을 바꾼 20세기 최고의 집합주택으로 꼽힌다. 70년 전 아파트의 세련된 외관에 21세기 서울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른거른다.
거장들의 선도적인 작업들을 따라가다보면 한국에 이른다. 저자가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 단지로 꼽는 곳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다. 설명을 읽다보면 그냥 지나쳤던 아파트 단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핵심은 아파트 단지로 ‘한국의 전통마을’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도 ‘한국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용적률이 137%에 불과해 300% 정도의 단지로 재건축을 하면 수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화재를 뭉개버리고 40~50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아파트 단지의 보호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책에선 아파트 위주의 설계, 고밀화·고층화, 단절된 아파트 단지 등 한국 아파트의 실패 이유를 언급하며, 주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그러면서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글로 끝을 맺는다. 파리를 서울로 바꿔도 어색함이 없다. “파리에는 집이 없다. 포개어 놓은 상자들 속에서 대도시의 주민들이 살아간다. … 우리들의 주거는 그 둘레에 공간도 없고 그 안에 수직성도 없다. 집에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 … 그리하여 집은 이젠 우주의 드라마를 알지 못한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이십세기 집합주택 근대 공동주거 백 년의 역사 저자 손세관|열화당 |2016.12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순수의 시대
제1장 새로운 주거문화의 전개
제2장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개혁의 바람
제3장 로테르담의 두 선구적 건축가
제4장 바이센호프 주택전시회와 새로운 주거환경의 모델
제5장 에른스트 마이와 ‘새로운 프랑크푸르트’ 만들기
제6장 베를린의 주거개혁과 전원풍의 주거단지들
제7장 사회주의 낙원 ‘붉은 빈’의 주거개혁
제2부 혼돈의 시대
제8장 근대적 주거문화의 폭발적 팽창
제9장 고층주택과 녹지에 대한 환상
제10장 르 코르뷔지에의 위대한 실험
제11장 새로운 이념의 범세계적 확산
제12장 실패한 주거환경
제13장 어둠 속의 여명, ‘다른’ 모습의 집합주택들
제3부 자각의 시대
제14장 인간을 존중하는 주거환경
제15장 저층·고밀 집합주택으로
제16장 역사와 문화로의 회귀 그리고 장소 만들기
제17장 도시조직에 유기적으로 순응하는 주거환경
제18장 일본, 집합주택의 다양화 시대를 열다
제19장 다시 네덜란드로
제4부 전망과 기대
제20장 집합주택의 미래
책끝에
주註
참고문헌
찾아보기
도판 제공
출판사 서평
새로운 우리 주거문화의 지표를 세우기 위하여
... 이 책은 저자가 1993년에 선보여 꾸준히 읽히고 있는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와 짝을 이루는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가 고대부터 이십세기에 이르는 도시주택과 집합주택의 여러 양상을 정리한 개론편이였다면,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이십세기 집합주택만을 주제로 삼아 더 구체적이고 폭넓은 논의를 전개시킨 총론편이라 할 수 있다.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종합적으로 다룬 저작물이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도 드문 상황에서 출간된 소중한 결실이다.
수십 층의 높이를 자랑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우리나라 전 국토를 점령하듯 끝없이 들어서고 있다. 동과 동 간의 간격이 가까워서 거주민의 사생활은 침해되기 일쑤이고, 아파트명이 없으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획일적인 모습이다. 유명 브랜드를 달고 고급화되면서부터는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통행을 막으며 노골적으로 차별하기까지 한다. 몰개성화에 비인간화까지 더해진 최악의 주거환경인 셈이다.
오늘의 우리가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저자는 공과(功過)가 공존하는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에는 “인간의 지성과 열정은 물론이고 치기와 광기까지도 담겨 있다”고 말하며, 이를 거울삼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우리의 주거문화를 깊이 반성하고, 하루빨리 우리에게 적절한 집합주택의 모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 주거환경의 미래상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아야 하고, 높이는 낮지만 밀도는 높으며, 사회적 결속에 도움이 되고, 고유의 문화를 이어 갈 수 있으며, 역사성이 반영되고 미래를 지향하는 환경을 담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집합주택 백 년의 기록
건축의 역사를 살펴보면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형식이 있었다. 고대는 신전(神殿)의 시대였고, 중세는 성당(聖堂)의 시대였으며, 르네상스 이후 십구세기까지는 궁전(宮殿)의 시대였다. 그리고 근대 즉 이십세기 건축의 주인공은 주택(住宅)이다. 근대건축은 인간의 주거 문제 해결과 주거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념과 방법론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했다. 근대건축의 이념이 생산, 기능, 기술의 합리성에 있다면, 그 목표는 인간의 주거 수준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주거환경을 보편적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십세기 건축가들에게 제일의 탐구대상은 주택, 그중에서도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거주하는 집합주택이었다.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노동자, 즉 서민을 위한 주거 형식이었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던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대의 집합주택으로, 이는 계몽적 지식인 및 정치지도자, 그리고 혁신적 건축가들의 합작품이었다. 이십세기의 집합주택에는 당시의 사회적 이념, 시대정신, 새로운 미학, 공간적 혁신, 수준 높은 기술 등 당대 건축의 중요한 화두가 모두 녹아 있다. 따라서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십세기 건축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수억 명의 삶을 변혁시켰다. 이 책에서는 이십세기 백 년 동안에 지어진 집합주택을 대상으로, 그 시대적 배경, 건축적 이념, 실제 건축물의 내용, 거주자의 삶,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두루 살핀다. 또한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주인공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었다. 그들은 집합주택을 최고의 작업 대상이라고 인식했으며,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이론과 이념을 만들고, 행동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생각, 도전과 실험, 실패와 성취, 그리고 자각에 대해서 두루 이야기했다. 물론 제도를 만들고, 자금을 끌어모아 그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운 정치가와 개혁가 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이 책이 다룬 표면적인 주제는 집합주택이지만, 그 이면에는 ‘근대성(modernity)’의 이념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는 또 다른 주제가 자리하고 있다. ‘근대’라는 새롭지만 뿌리 깊고, 분명하지만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흐름 속에서 삶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주거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바뀌어 갔는지가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주제이다. 결국 ‘근대성’의 이념에 대한 인간의 물리적 대응의 다양한 양상이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세 시대에 걸친 집합주택의 만화경(萬華鏡)
저자는 이십세기를 크게 세 시대로 나누었다. 1900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를 다룬 ‘제1부 순수의 시대’는 개혁가들과 건축가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주거환경의 상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인구는 증가했지만 주택 및 관련 시설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도시는 과밀화하고 슬럼화했다. 지하주거가 성행했고,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않은 간이숙소, 임대주택 등이 난립했다. 마구잡이로 지은 임대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공간, 채광, 환기 등 기본적인 주거조건은 물론이고, 식수, 화장실 등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위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주거환경의 개혁과 주택의 대량 건설은 필연적이었다. 절실한 요구에 대한 건축가들의 목표는 명확하고 순수했다. 오로지 서민들에게 값싸고 위생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재정, 선례의 부족, 사회적 혼란 등 모든 방해 요인을 극복해야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결실은 ‘역사상 최고’라고 규정될 만큼 오롯이 빛나는 것이었다.
1945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를 다룬 ‘제2부 혼돈의 시대’는 전쟁에 의한 대량 파괴, 인구의 폭발적 증가, 광대한 도심의 슬럼화 등 극심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었으며, 대상의 스케일도 컸다. 주거문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급진적이고 과감했으며, 주택 건설은 대량으로 급속하게 이어졌다. 당연히 과오와 실책이 잇달았다. 빠른 속도와 과다한 물량은 항상 실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에는 인류 주거환경의 모습을 크게 바꿔 버린 새로운 주거의 상(像)이 상당수 등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은 합리적인 가치를 가지는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주거환경의 모델이자 이십세기의 많은 개혁적 건축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했던 ‘이상적 공동사회’의 구체적 모델이었고,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미국에 계획한 고층아파트들은 ‘철과 유리’라는 매우 혁신적인 수단을 통해 새로운 집합주택의 상을 정립했다.
‘제3부 자각의 시대’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말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각국은 주택 공급의 방법론을 바꾸었다. 기존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그런 접근법으로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방향전환을 했다. 우선 주거환경에 대한 단순하고 결과 지향적이며 실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접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여러 주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좀 더 복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또한 합리성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서 특정 계층과 특정 프로젝트의 성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접근방식을 바꾸었다. 거주자의 입장과 장소의 특성, 지역, 문화, 역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거환경은 규모가 작아지고, 다양화하고, 개성적으로 변해 갔다. 동시에 주거환경을 도시와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며 ‘관계’와 ‘연속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주거문화의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개선되고 향상된 근대성의 시대’였다.
마지막으로 ‘제4부 전망과 기대’에서는 집합주택의 미래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에 인류의 집합주택은 어떤 모습과 내용을 가지는 것이 적절하고 바람직하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 열화당 미술 책방 6 저자 손세관|열화당 |2004.02
목차
머리말
1장 서론
2장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및 그리스 시대
3장 로마시대
4장 중세
5장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6장 산업혁명과 도시화 시대
7장 20세기의 상황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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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캐나다의 주거학자 쉐나워(N. Schoenauer)가 쓴 「주거의 6,000년(6,000 Years of Housing)」을 접하면서 도시주거의 형식적 변화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서양 도시주거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서구화한 우리 주거환경의 형식적 원류를 추적하는 일의 일부이며, 우리 주거환경의 과거를 추적하는 것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도시주거형성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주거의 유형적 변화와 다양성을 다룬 것으로 그동안 건축학분야에서 소외되어 온 주제인 문화적인 측면에서 주거의 유형적 다양성을 탐구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고대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및 그리스시대 그리고 로마시대, 중세,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산업혁명과 도시화 시대,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상황까지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서양 도시주거의 유형적 변화환경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시대적 구분을 다섯 단계로 나누었는데 우선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기점으로 그리스를 거쳐서 로마 공화정시기에 이르는 중정형 주택 시기를 꼽았는데 서양의 지리적 범위가 지중해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연중 온화한 기온 때문에 중정을 중심으로 한 공간구성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보았다.
제2기는 로마 제국 시대에 형성된 초기 집합주택 시기로 제국의 세력이 확장되고 많은 인구가 수도 로마를 비롯한 도시로 집중됨으로써 주요 도시에 고밀화가 진행됨에 따라 선형의 집합주택과 중정형의 집합주택으로 양분되면서 독자적인 주거문화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선례를 제공하게 된 시기로 보았다.
제3기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형성된 세장형 주택 시기로 라틴문화권과 게르만문화권 모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장방형의 블록과 여기에 적용된 필지의 모양에 기인하게 되는 시기로 보았다.
제4기는 17세기부터 산업혁명의 전개 이전까지의 중기 집합주택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직주겸용의 주거형식에서 전용주택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주거의 집합화와 적층화가 가속화되었다. 또한 대지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2, 3필지의 대지가 통합되면서 평면적으로 확장되었고, 각 층을 독립적으로 임대할 수 있는 아파트가 등장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시기는 근대적인 도시주택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제5기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소위 근대건축이 전개되는 20세기로서, 대규모 주거환경이 형성된 후기 집합주택 시기로 주거에 대한 사회적 요구 확대와 서민의 주거환경에 주목하면서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통한 대량생산으로서 일률적인 대규모 집합주택이 해답이 되던 시기까지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의 도시에서의 주거환경 변화가 진행된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기 이전에 원형으로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주거형식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형성되었던 중정형 주택으로 보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고, 도시주거의 유형적 변화에 작용하는 첫 번째 요인을 도시화의 전개에 따른 주거환경의 고밀화 현상이라고 기술하면서 하나의 주거유형이 당시 토지이용의 극대화 요구에 부응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새로운 주거유형이 파생되었으며, 기존의 대지 조건이 집합화와 고층화에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게 되면 대지가 서로 통합되면서 건축의 재구조화가 진행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도시환경의 성격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요인 등에 의해서 도시의 전체 형상이 크게 변화하고, 이어서 토지이용의 패턴, 블록의 형상, 가로 패턴의 변화 등이 수반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의 하나로 근대 이후 새로운 도시계획 기법과 슈퍼블록의 등장, 고층고밀 주거가 확산된 것도 결국 도시환경의 성격 변화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는 주거에 대한 개념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시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가 주거의 유형적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우로 설명하고 있다.
네 번째는 제도의 법규의 영향으로 제정 로마 이후 도시의 주거형식을 규제한고 제한하는 건축법규가 시행되어 오면서 법규는 한 사회의 주거형식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기술한다.
다섯 번째는 재료 및 공법의 변화를 들고 있는데 한 시대의 주거형식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당시의 재료 및 공법이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고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는 같은 시대 공공건축의 양식적 변화의 영향으로 주로 상류귀족계층의 주택에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체 주거환경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거형식의 변화는 그것이 점진적인 것이든 또는 혁신적인 것이든 모두 과거의 형식과 경험에 의존해 오고 있으며, 결국 오늘날의 발전되고 세련된 주거환경도 그리스와 로마시대 이후 축적되어 온 과거의 경험과 형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인간의 주거환경은 역사 속에 뿌리를 두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재생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도시에 남아 있거나 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나간 주거의 모습을 추적해 보고 그것을 통해 오늘날의 주거환경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으로 주거환경의 과거의 모습들과 그것이 나오게 된 필연적인 배경들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주거환경의 성격을 예견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도시주거형성의 역사|작성자 혜진네집
한국 주거의 사회사 저자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외 |돌베개 |2008.08
전남일-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독일 아헨공과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등이 있다.|||연세대학교 주거환경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울산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등이 있다.|||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노후용 공동생활주택』(공저), 『서양의 주택과 실내의 양식』(공저), 『한국 주거의 사회사』(공저), 『한국 주거의 미시사』(공저) 등이 있다.|||1954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건축학 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중앙대학교 건축학부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일본 규슈(九州)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대학원 시절부터 도시조직과 주거환경의 상호관계 및 동서양의 주거문화에 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오면서, 연구활동과 도시설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저서로는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1993), 『북경의 주택』(1995), 『넓게 본 중국의 주택』 (2001), 『깊게 본 중국의 주택』(2001), 『피렌체-시민정신이 세운 르네상스의 성채』(2007), 『베네치아-東西가 공존하는 바다의 도시』(2007)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 한국 근현대 주거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제1부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 - 구한말의 개화기
1.개항기 서양식 주거의 유입
2.한옥의 변모
3.서민 주거와 개량론
제2부 다양한 주거문화의 전개 - 일제감정기
1.일본의 조선 식민지화와 도시 공간의 재편성
2.주거문화의 충돌
3.새로운 문화와 주택개량론
4.조선인,그들의 고된 삶
5.주택의 집합적 생산
제3부 단절 그리고 복구 - 한국전쟁과 전후기
1.광복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의 주택
2.전쟁과 그 직후의 도시 환경
3.전후 복구와 주택 공급 정책
제4부 이상과 현실 - 경제개발기
1.조국 근대화의 물결
2.아파트,아파트,또 아파트
3.단독주택의 다양한 시도
4.사회문제로서의 주거
5.개발 시대의 그림자
제5부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 1980년대 중반 이후
1.아파트로 뒤덮인 대한민국
2.변화하는 아파트
3.아파트 홍수 속의 신선한 시도
4.변화하는 주거문화
5.미래주거를 위한 행보
결론 - 한국 근현대 주거가 말해주는 것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시대의 흐름 속에서 파악한 한국의 주거
주거란 인간이 그 속에서 생활하며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주거환경과 인간의 삶의 방식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경제적인 사건들과 사회의 굴곡들도 주거환경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그 구조와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한국의 주거문화는 개항 이래 서양의 것을 받아들인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후로도 한국전쟁, 전후기의 복구와 개발, 경제개발기의 산업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급격한 사회 변혁으로 삶의 터전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근현대 시기 한국의 주거환경은 이러한 격동의 역사를 따라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왔다. 따라서 불량 주거지의 난립이나 주택 부족 현상, 주생활의 빈부격차 등 주거에 나타난 갈등과 모순도 시대적 상황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사회사적 관점으로 씌어졌다는 것은, 주거를 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주거환경의 변화 과정을 역사적인 인과관계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리, 서술했기 때문이다.
집장수 집, 판자촌, 달동네, 다세대·다가구 주택, 아파트 숲,
한국의 주거문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 책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의 주거환경에는 지난 세월의 역사적 역동성과 혼란스러웠던 사회적 현상들이 그대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경험한 복합적인 상황이 주거환경에 반영되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택의 물량 확보를 위한 양적 성장 위주의 정책, 주거환경에서의 극명한 계층 분리 현상, 전통 문화의 단절, 아파트 일색의 도시 주거지, 고질적인 불량 주거지 문제 등이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을 언급하며 우리의 왜곡된 주거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1. 외래문화와 전통문화 사이에서의 갈등과 수용
개항을 통해 외래의 주거문화가 침투하면서 전통적인 주거문화는 점점 변질되거나 정체성을 상실해 갔다. 우리의 주거문화가 스스로 성숙해 가는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외래의 것이 들어왔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것에 동화되었던 것이다. 외래의 주거문화를 수용할 때 지리적?기후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모든 지역에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 과거에 한국적 상황과 맞지 않는 주택 개량으로 갈등을 겪은 사례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일본식 주택은 조선의 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았고, 개항 초기 서양식 주택을 그대로 모방하여 집을 지었지만 조선인들의 생활방식에 맞지 않아 다시 재래식 집을 지어 거처했다는 사례 역시 주목할 만하다.
“늘어가는 일본식 주택은 보온과 난방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 조선은 일본보다 습기가 많지도 않았고 겨울에는 일본보다 추워서 일본식 주택은 방한에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추운 겨울은 부분 난방을 그대로 사용했던 일본인에게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순수한 일본식 주택에서 사는 일본인 중에는 겨울에 집을 버리고 온돌방을 찾아가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한다.” ―p.98.
“집은 멋있게 지어 놓았지만 문제는 그 안에서의 생활이었다. 하루아침에 생활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양식과 일본식 주택을 무조건 모방했던 문화주택이 주는 불편함, 조선의 기후에 맞지 않는 점 등 문제들이 점차 불거져 나왔다. …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서양식 주택이 우리의 생활에 접목되기 힘들다는 인식이 퍼져 갔고 맹목적인 모방에 대한 비판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서양식 주택의 모방은 점차 중단되었다.” ―p.107.
2. 물량 확보에 급급한 주택 정책
우리의 주거환경이 형성된 과정은 ‘삶의 질’보다는 ‘주택의 물량 확보’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도시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만성적인 주택 부족난에 시달렸으며, 급격한 도시화와 경제개발을 엮은 1960년대 이후에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해서 집중되었고, 비정상적인 인구의 집중화로 인해 주택 정책은 양적 부족을 해결하려는 데에만 급급했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절박함에 따라 그때그때 임시방편적인 정책으로 주택을 공급하다 보니, 환경의 질을 생각하면서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1956년에는 답십리에 29.7m2형 흙벽돌집 303호가 지어졌는데, 대지는 평균 132~165m2(40~50평) 정도였다. 하지만 1950년대에 조성된 이들 집단주택지는 공공시설이 전무한 상태로 겨우 주택만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단지 조성이란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택지 조성이었을 뿐 공원?도로?학교 등 인간의 주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 관련 시설을 포함한 종합적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재건주택은 주택지로서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실한 시공으로 입주자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신문 지상에는 지은 지 1년도 되지 못해 굴뚝이 무너져 내리거나 담이 무너져 입주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고, 그때까지 지어진 850호 중 200호가 벽이 무너지거나 비가 새 말썽을 일으켰다는 등의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p.174.
3. 정치적 배경과 경제적 논리에 의한 성장
서울의 강남 개발이나 재개발?재건축의 시행, 신도시 개발 등은 모두 정치적인 배경을 두고 시행되었으며, 이와 함께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려는 자본의 논리가 큰 힘으로 작용했다. 물량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여 수립된 정부의 정책은 건설업체의 수익 추구 논리와 결합하면서 비정상적인 주거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정부는 공적 공간과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정책의 중심을 공공환경보다는 사적 공간의 양적 확대에 두었고, 이는 주거환경의 질적 저하를 불러왔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과 부합하여 주택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주거관이 널리 퍼지게 했다.
“정부가 추진했던 서울의 강남 개발은 주거지 공간 구조의 재편성은 물론 이와 함께 주거 이동을 통한 인구 분산을 유도했으나, 실제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강남의 주택건설이나 강남으로의 주거 이동은 극히 부진했다. 그러나 정부는 당근과 채찍에 해당하는 갖가지 정책을 사용하여 이를 밀어붙였다. 우선 강북의 인구를 억제하고 택지 개발을 전면 금지한 대신 강남에는 세제 혜택과 함께 개발을 촉진시켰다. 또한 강북과 강남을 잇는 다리를 만들고 명문 중?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켜 문화시설을 신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으로 강남 지역은 이른바 중산층의 거주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1970년대 말에 발표된 ‘남서울 개발계획안’은 서울 시민의 강남 이동을 본격화했다.” ―p.212.
4. 아파트로 뒤덮인 대한민국
서구에서는 노동자 집합주택으로 시작되었던 아파트가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주거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 초반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아파트 건설은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확산되어 그동안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주거 유형을 몰아내고 양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서울에 있는 총 주택수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고, 매년 새로 건설되는 주택의 대부분이 아파트인 상황이 되었다. 이는 주택의 양적 확대와 개발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안이한 정책이 가져온 왜곡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경제개발이 최고의 사회적 목표였던 이 시기에는 ‘빨리빨리’,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사 문화적 정서까지 팽배했었고, 이러한 정서는 주택 문제의 접근 방법에서도 통했다. 즉, 모든 것을 실적과 물량 위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당시에 얼마나 빨리 아파트가 지어졌는지, 자고 나면 아파트가 벌떡벌떡 세워진다고 하여 ‘벌떡 아파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개항의 한성(지금의 서울)의 주거지
갈현동에 건설된 국민주택 단지
주택공사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공급한 반포아파트 단지 - 1970년대
전형적인 한국의 초가
책속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주택 정책에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과 대립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치안과 국방 그리고 기본적인 법령 체계를 갖추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바쁜 정부는 주택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정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주택영단'이란 이름을 '대한주택영단'이라고 개명하고 이를 관장하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주택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던 여건이었기 때문에 주택문제의 해결책으로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미군정이 접수했던 적산가옥을 다시 시민들이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즉 이는 미군정이 3년간 일본인의 적산가옥을 불법적으로 점유했던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50년경 적산가옥의 관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입안했고, 해당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던 연고자에게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155쪽, '제3부 단절 그리고 복구-한국전쟁과 전후기'에서)
주거는 한 문화의 총체적 모습을 담아내는 물리적 용기인 동시에 인간의 삶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산물이다. 각각의 문화는 고유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고유한 특성이 존재한다. 또한 한 문화권에서 생성된 주거환경은 시간을 두고 역사를 통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변화 과정을 파악해낼 수 있으며, 또한 그 문화의 내면꺼지도 읽을 수 있다. 이는 한 문화권의 주거 역사를 통해 그 사회구성원들의 태고와 가치, 그들의 생활과 이념, 제도 등 모든 영역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0
한국의 근대적 주거환경은 이른바 '근대화' 혹은 '경제성장'이라는 이데돌로기적 가치 아래 정치적인 힘과 경제적인 역학관계에 의해서 진행된 기형적 구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이후 도시를 뒤덮은 아파트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주거가 아닌 시급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량 공급된 주거 양식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 주거환경의 변천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주거환경의 형성에 작용한 여러 힘들을 추적해 가면서 기술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복합적인 힘들이 초래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들을 모두 기술하고, 그 결과 형성된 물리적 환경의 특성을 정리하는 것이 한국 근대 주거환경의 역사를 보는 필수적 방법일 것이다. 13
미시사는 개개인의 일상적인 생활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동화를 역사적으로 다룸으로써 인간의 삶을 보다 세밀한 눈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16
1910년에 이르면 당시 서울의 인구수는 약 28만 명이었는데, 그중 약 3만5천 명이 일본인일 정도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84
한국 건축물 평균수명은 왜 짧나
ㆍ내력벽 구조라 노후 배관·배선 등 교체에 어려움… 설비 수명 짧아 조기 재건축 선택
“살기는 괜찮아. 바깥이 허름해서 그렇지. 안은 수리를 하고 사니 불편한 건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꼭대기 사람들은 힘들지.”
지난 8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최보옥씨는 집의 벽을 두드리며 “짱짱하잖아. 기둥이 튼튼해”라고 말을 보탰다. 최씨는 이 집을 약 30년 전에 샀지만 실제 입주해 살게 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하철 2·5호선이 지나는 충정로역에 인접해 교통이 좋아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세를 들어 많이 살고 있다. 집주인으로 사는 사람들은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충정아파트의 모습. 1932년 준공된 충정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서울시는 문화시설로 보존할 계획이다.(사진 왼쪽)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시설로 보존되는 충정아파트와 인근에 새로 지어질 주상복합 건물의 조감도. /주영재 기자|서울시 제공
충정아파트는 1932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다. 평균수명이 30~40년에 불과한 보통의 한국 아파트와 달리 장수를 누리고 있다.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70년대 후반 도로 확장을 위해 두 차례 아파트의 앞동이 잘려나갔다. 외교사절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내기 위해 잘라낸 것이다. 현재는 충정로로 불리지만 과거엔 ‘귀빈로’로 불렸던 이 길의 중앙선까지 원래 충정아파트의 공간이었다.
충정아파트는 5개층으로 가운데 중앙 공간(중정)이 있는 구조이다. 중정의 한쪽 벽엔 과거 중앙난방을 하기 위해 지하실에서 석탄을 땐 흔적인 굴뚝이 옥상 위까지 쭉 뻗어 있다.
충정아파트의 ‘장수 비결’
지은 지 80년이 넘은지라 페인트칠은 곳곳이 비늘처럼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하지만 벽에 금이 간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부동산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건물을 돌아보니 지하에서 5대의 펌프가 물을 쉼없이 퍼내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설 때 살짝 느꼈던 곰팡이 냄새의 주범이었다. 건물을 무너뜨리지는 않아도, 고쳐야 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충정아파트 주민들은 사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집을 고쳐 써왔다. 최씨도 처음 들어올 때 집안에 있던 연탄 아궁이를 떼어내고 바닥을 새로 깔았다. 최씨가 살던 이전에는 중앙난방을 없애고 개별 연탄보일러를 때는 방식으로 고쳤을 것이다. 녹물이 나오지 않으니 필시 배관도 교체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보존하기로 결정하고 올해 5월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충정아파트를 리모델링해 문화시설로 보존하는 대신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바로 옆에 세워지는 두 동의 주상복합 건물로 이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충정아파트 집주인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대신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바닥면적의 비율)을 높여줘 충분히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득하고 있다.
충정아파트가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최씨가 ‘짱짱하다’고 말한 기둥에 있었다. 건물은 크게 기둥 구조와 벽식 구조로 나뉜다. 기둥 없이 내력벽이 위층 수평구조(슬래브)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가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벽식 구조’다. 공동주택이든 단독이든 지금의 거의 모든 주택은 벽식 구조를 택하고 있다. 기둥식은 수평 기둥인 보가 있으면 ‘라멘’ 구조, 보가 없이 슬래브와 기둥만으로 이뤄져 있으면 ‘무량판’ 구조로 분류된다. 기둥식은 사무용 건물이 주로 택하고 있다.
건물의 수명을 늘리기에는 기둥식이 훨씬 유리하다. 건물의 하중을 내력벽이 아닌 기둥으로 받치고 있어 노후한 배관과 배선을 그때그때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거의 모든 국내 공동주택은 설비가 구조체에 묻혀 있어서 재건축이 아니고선 교체가 불가능하다. 대규모 리모델링으로 교체할 수도 있지만 높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재건축을 택하게 된다.
김수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충정아파트의 경우 기둥방식으로 지어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설비도 바꿀 수 있다”며 “충정아파트는 연탄아궁이에서 보일러로 바꿔도 구조를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길이 나면서 앞동이 잘려 나가는 변화를 겪었지만 구조체 자체의 안정성에 문제가 없었고, 기본 유지·관리만 잘하면 장기간 사용에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수암 연구위원은 “구조체의 내구성과 공간의 가변성, 설비의 수리 용이성 이 세 개가 조합이 잘되면 건축물의 수명은 얼마든 늘어날 수 있다”며 “기둥식으로 지을 때 비용이 더 든다는 거부감이 공동주택을 내력벽 방식으로 짓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100년 이상 장수명 주택 가능할까
지금의 공동주택 건축물은 구조체보다 설비에 의해 수명이 좌우된다. 수명이 15~20년 정도인 배관과 배선 등을 교체할 필요성 때문에 구조체가 문제 없어도 철거가 되는 것이다. 영국 건축물의 평균수명이 130년, 미국이 75년, 프랑스가 80년인 데 비해 한국의 건축물이 ‘조로’ 혹은 ‘조기사망’하는 이유다.
강지연 SH공사 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배관을 콘크리트 안에 묻어 버리니 수리가 불가능하고 가족 구성원이 바뀌어도 집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수명 주택’을 만들기 위해 설비와 배관을 콘크리트 안에 묻지 않고 바깥으로 노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는 절충적인 방식으로 배관과 배선을 넣은 관을 또 다른 관에 넣는 이중관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이 방식을 쓰면 배관을 벽체에 넣어 리모델링 공사를 할 때 쉽게 제거할 수 있다.
강지연 연구원은 “공용배관은 바깥에 노출하고, 세대 안에서는 구조체에 묻지 않고 천장에 이중배관을 만든 후 모르타르 마감을 한다”며 “미관상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벽체도 사용자가 쉽게 옮길 수 있는 가변 벽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배관·배선 설비를 넣는 기술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한국 공동주택의 ‘조로’를 재촉하는 것은 개발이익이라고 강조했다. 대개의 재개발이나 재건축, 리모델링 등이 최저 입찰로 싼 가격에 지어서 개발이익을 노리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분위기에서 비용이 더 드는 기둥식으로 장수명 주택을 짓기란 쉽지 않다. 주거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한국만의 특성도 작용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30년 정도 되어서 건물이 노후화되고 주차문제도 심각해지는 데다 새로 짓는 주택들이 첨단 ‘스마트홈’으로 바뀌는 걸 보면 노후주택에 사는 주민 입장에서도 주택 가치가 올라갈 것이 거의 확실한 재건축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업기간이 긴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경우 거의 구조체만 남기고 대부분을 다 새로 하는 수준이라 비용이 많이 든다. 많을 경우 신축비용의 최대 80%에 달할 정도이다. 서울 중구 약수동의 남산타운 아파트의 리모델링이 지지부진한 것도 사업성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타운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30~40평형은 구조만 바뀌는 거지 (면적이) 더 느는 것도 아니고 26평만 복도식에서 계단식으로 바뀌고 화장실이 추가되면서 평수가 3.6평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라며 “반면 분담금은 평형별로 7000만~1억3000만원에 달해 차라리 그 돈을 더해 같은 평수의 새 집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100만가구 빈집, 어찌해야 하나
ㆍ쉽게 불나고 무너져 내리고 범죄에 악용… 피해는 고스란히 이웃에
지난 8월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원도심 골목에 있는 빈집을 찾았다. 문 앞에 서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집 안이 훤히 보였다. 잡초가 웃자라 발디딜 틈이 없었다. 세간살이는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한낮인데도 섬뜩함이 느껴져 선뜻 발을 들이지 못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빈집 모습. / 반기웅 기자
이런 빈집은 전국 126만가구(통계청 KOSIS·2017년 11월 기준)나 된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도 흔하다. 다가구주택 1동을 한 채로 보고 건물 내 빈집은 빈집으로 산정하지 않는 통계청의 셈법을 감안하면 실제 빈집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36만5466가구였던 빈집은 20년 만에 3.5배나 증가했다. 빈집이 일상 속 풍경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빈집 변기·정화조 터져 오물 투성이
집은 사유재산이지만 ‘빈집’이 되면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 된다. 방치된 빈집은 쉽게 불이 나고 무너져 내린다. 범죄에도 악용된다. 빈집은 인근 지역 범죄율을 19% 증가시키고(Journal of Urban Economics·2015) 빈집이 2.8가구 증가할 때마다 지역 범죄율은 6.7% 증가한다.(Journal Housing Studies·2006) 2010년 여중생을 납치해 살해한 성폭력 전과자 김길태도 빈집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빈집으로 도주해 수사망을 피했다.
이런 빈집의 폐해는 누가 떠안을까. 빈집을 방치한 집주인은 안전사고와 범죄에서 자유롭다. 관리 소홀로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빈집을 방치한 주인에게 벌금과 세금을 부과해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국내에서 빈집 주인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빈집 문제 공론화 과정에서도 집주인은 어디까지나 제3자에 불과하다. 빈집으로 인한 피해는 근처에 거주하는 이웃이 떠안는다. 범죄와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은 이사 갈 여력이 없는 이웃들의 몫이다. 빈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이들이 부담해야 한다. 깨져버린 빈집 유리창 파편이 개인에게 날아가 박히고 있다.
김정희씨(가명·66)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지하 1층 2호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다세대주택 지하방이었지만 1990년 당시 새 건물에 내 집 한 칸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김씨는 30년간 한 곳에 살았지만 맞은편 1호 집 주인은 누군지 모른다. 이제껏 지하 1호는 세입자들이 들어와 살았다. 30년 세월 동안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3년 전 마지막 세입자가 나간 뒤로 지하 1호에는 사람이 들지 않았다. 사고는 2017년 7월에 발생했다. 지하 1호 세입자가 나간 뒤 처음 맞은 여름이었다. 장마철에 지하에 빗물이 들이닥쳤는데 지하 1호의 변기가 터졌다. 거기서 나온 오물과 구정물이 김씨가 사는 지하 2호까지 흘러왔다. 지하 1호 집주인을 구청에서 수소문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연결이 끊겼다. 연락한 전화번호가 지하 1호 주인의 것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김씨와 가족들은 사비를 들여 청소를 했고 비가 올 때마다 빈집에서 흘러나온 오물을 치웠다. 이듬해 여름에는 아예 정화조가 터졌다. 같은 동에 사는 입주민(5가구) 모두가 물난리를 겪었고 119구조대까지 출동해 수습작업에 나서는 난리를 치렀다. 경찰 입회하에 잠겨 있던 지하 1호 문을 열었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 지하 1호 변기 속은 썩지 않은 물티슈로 가득했다. 공사비용은 각 가구가 나눠 냈다. 지자체 지원금을 제외하고 계산하니 각 세대당 50만원씩 부담한 꼴이었다. 김씨 형편에 50만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번에도 지하 1호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소송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비싼 소송비가 부담돼 포기했다.
지자체 재생사업, 다세대 주택은 제외
김씨가 입은 빈집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오물 난리를 겪은 뒤 김씨와 함께 사는 손자 2명은 알레르기 질환을 앓게 됐다. 장판과 벽지에 오물이 스며든 탓이다. 공사를 한 뒤 지하 1호 문을 열어뒀더니 이번에는 노숙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낯선 이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김씨 가족들은 저녁 7시 이후에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 김씨는 “왜 우리가 빈집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돈이 있으면 이사를 갈 텐데 그럴 형편이 안 돼 그냥 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빈집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세대주택 외경(위) 빈집 내부(아래) / 반기웅 기자
의문이 남는다. 집주인은 누구길래 집을 방치해 놓고 연락을 피하는 걸까. 집주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왜 버려 두었는지 이유는 추정할 수 있다. 단서는 김씨가 거주하는 지역의 재개발사업 역사에 있다. 다세대주택 빈집은 주로 재개발·재건축 등 과거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지역에 몰려 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지역도 2009년 주택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재개발사업 지정 전에 소문이 돌았는데 서울 등지에서 외지인이 몰려들어 빌라와 낡은 집들을 사들였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시세차익을 올리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재개발사업은 조합 설립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고 결국 지난해 6월 정비구역은 모두 해제됐다. 해당 지역 주민 임길자씨(가명·69)는 “여기 빌라도 그렇고 동네 다른 집들도 외부 부동산 사람들이 많이 샀다”며 “이제 재개발 안 한다니까 관리하기 귀찮고 돈 들여서 고쳐야 할 것 같으니 그냥 버려둔 것”이라고 말했다.
다세대주택 주민들이 늘어난 빈집으로 인해 겪는 피해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이들 주택은 단독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시 미관을 해치는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피해를 가늠할 수 없다. 도시 내 전체 빈집 가운데 다세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6%(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2015년 기준)로 단독주택 6.9%보다 높다. 도시 내 빈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택 유형은 아파트(65.8%)다. 하지만 미분양 물량이 포함된 수치임을 감안할 때 다세대주택 빈집 비중은 작지 않은 수치다.
눈에 띄지 않는 다세대주택의 빈집은 번번히 정비 대상 리스트에서 밀려난다. 정부·지자체가 마련한 빈집정비계획을 보면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준주택처럼 가구 구성원이 장기간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은 모두 정비 대상이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단독주택에 초점이 맞춰져 시행된다. 빈집 정비와 관련한 법안인 ‘농어촌정비법’ ‘건축법’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공통적으로 빈집 정비를 위한 방법으로 모두 철거를 규정하고 있는데, 다세대주택의 경우 한 건물 내 특정 빈집을 택해 철거작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들 정비법 가운데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빈집을 철거하지 않더라도 수리·개축·증축 등을 통해 정비할 수 있도록 대안을 넣었지만 다세대주택은 정비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도시 미관상 개선 효과가 높은 단독주택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지자체는 방치된 빈집을 매입해 리모델링·신축 정비작업을 거쳐 시장에 재공급하는 이른바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다세대주택 빈집은 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2년까지 빈집 1000호를 사들이고, 임대주택 4000호를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의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 역시 사업 대상은 단독주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빈집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권이 필요한데 다세대는 건물 전체를 매입해야 해서 쉽지 않다”며 “사업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매입이 수월한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캐나다·프랑스처럼 빈집세 도입 필요
현재 빈집 정비사업은 사업성을 갖춘 소수의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다. ‘보여주기식’ 빈집 정비사업을 벗어나려면 대상 범위를 넓혀 정비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기엔 선결과제가 산더미다. 당장 무엇을 빈집으로 봐야 하는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통계청에서 정의하는 빈집과 주택 정비 측면에서 활용하는 법률상 빈집, 빈집과 관련된 개별 조례에서의 빈집이 모두 달라 기준에 따라 현황이 달라진다. 정책 대상이 불분명하다보니 장기적인 빈집 관리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빈집은 지역과 발생 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먼저 무엇을 빈집으로 볼 것인지를 분명히 정해야 각 유형에 걸맞은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빈집 소유주에게 관리 책임을 묻고 사회적 비용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 마련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빈집이 지역사회 등 공공성을 해치는 만큼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방법이 빈집에 세금이나 벌금을 매기는 ‘빈집세’다. 실제로 영국은 이미 빈집 방치기간에 따라 빈집에 세금을 물리는 ‘빈집세(Empty Homes Premium)’를 도입했다.
캐나다 밴쿠버는 2017년부터 빈집세를 도입했다. 1년 중 6개월(180일) 이상 비어 있는 집에 대해 해당연도 주택 공시가격의 1%를 빈집세로 납부하도록 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밴쿠버 시당국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빈집 수는 922건으로 2018년 3월 기준 1085건에 비해 15% 감소했다. 프랑스도 2년간 거주기간이 30일 이내인 집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 정기황 문화도시연구소 소장은 “빈집세는 집을 교환가치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용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만을 보장하고 공공성을 외면해서는 빈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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