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김승진 옮김 민음사 | 2019.08
저자 : 리처드 리브스 세계적인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경제학 분야 선임 연구원. 1969년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워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2012년 영국 부총리 산하 전략국장을 역임했고 런던에 있는 정치 싱크 탱크 데모스(DEMOS)와 공공 정책 연구소(IPPR)에서 활동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2016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017년 이 책에서 펼친 연구를 비롯해 계층과 불평등 연구로 《폴리티코》에서 선정한 ‘미국의 사상가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미래 중산층 협의체 소장 및 아동 가족 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다.
목차
1. 문제는 상위 20퍼센트다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 | 꽉 막힌 계층 간 이동성 | 기울어진 일자리 시장 | 불공정한 기회 사재기 전략 | 변화는 상위 20퍼센트에게 달려 있다
2. 20 VS 80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상위 20퍼센트는 점점 더 부유해진다 | 고학력은 지위의 상징 | 같은 수준에서 배우자를 고른다 | 이웃도 끼리끼리 | 건강이 곧 자산 | 상위 20퍼센트의 인생은 살 만하다
3. 양육 격차가 특권을 만든다
계획된 출산은 성공의 첫걸음 | 어느 부모가 더 헌신적일까 | 다 같은 학교가 아니다 | 중상류층 자녀에게는 명문대의 교문이 더 넓다 | 꽤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
4. 유리 바닥 위의 사람들
상대적 계층 이동성에 주목하라 | 계층의 하향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
5. 고소득 일자리는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능력제 사회라는 디스토피아 | 능력 본위의 한계 | 불평등한 고등 교육 시스템 | 제대로 경쟁할 기회가 필요하다
6. 기회 사재기라는 전략
부모는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 | 기회 사재기란 무엇인가 |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 | 인맥과 연줄이 더 중요한 인턴 제도 | 계급 차별이라는 문화적 걸림돌 | 작은 양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
7. 변화를 위한 제안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줄이자 | 가정 방문 프로그램을 늘려 육아의 질을 높이자 | 더 훌륭한 교사들이 일할 수 있게 하자 | 대학 학자금 조달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자 |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자 | 동문 자녀 우대를 없애자 | 인턴 기회를 개방하자 | 역진적 조세 보조 폐지로 자금을 마련하자
8. 2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고함
주
감사의 말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편리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20 VS 80’이라는 불평등의 구조를 인지하고, 논의의 초점을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에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주로 설명하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결코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중산층이 세계적 경제 침체 속에서 점차 해체되고 있다면, 이 책에서 포착하는 중상류층의 행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유사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모습은 매우 익숙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은 이와 같은 맥락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과 같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도 상위 20퍼센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명한 수치와 논거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 또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위한 ‘기회 사재기’ 전략
80퍼센트를 위한 나라는 없다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다.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달리 성공의 기회는 평등하기는커녕 상위 20퍼센트가 사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의해 현실이 된다. 이렇듯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한다.
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을 일컫고자 저자가 제시한 용어로, 저자는 경직된 하향 이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위해 유리 바닥을 깔아 주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불평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 사재기와 이러한 사재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나는 평일에는 불평등 문제를 비난하고
주말과 저녁에는 불평등 강화에 일조해!”
계급에 대한 중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통렬하게 해부하다
고학력을 갖추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상류층은 표면적으로는 불평등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최상위층인 슈퍼 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것 역시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앞다투어 재벌과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입으로 뱉는 말과는 달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자녀들에게 특권을 물려주려는 위선적인 모습 또한 자주 목격된다. 정치인과 학자 들의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이력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20 VS 80의 사회』의 사례들이 기시감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한편 이 책에서 계급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밝히는 저자의 솔직한 태도가 눈에 띈다. 저자는 스스로가 상위 20퍼센트, 중상류층에 속한다고 고백하며 ‘우리(상위 20퍼센트)’의 반성을 촉구한다. 당사자로서 스스로의 책임을 쏙 빼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과는 사뭇 다르다. 저자는 중상류층의 양심과 도덕적인 책무를 강조하며 책에서 제안하는 여러 정책과 조치가 실현되려면 중상류층 스스로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주장에 머물지 않고 하위 80퍼센트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차별점이 미국 출간 당시 언론에서 크게 주목받은(《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이유이며, 또한 이 책의 출간 이후 저자가 미국의 중요한 지식인으로 인정받은(《폴리티코》 선정 미국의 사상가 50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책에서 펼치는 핵심적인 주장을 요약해서 전달한다. 2장부터 6장까지는 교육, 양육 격차, 계층 이동성, 취업 기회, 대입과 인턴 제도 등 불평등의 실태와 이것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차례로 다룬다. 7장과 8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변화를 위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을 당부한다.
계층 이동성에 대한 리처드 리브스의 신간을 읽노라면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지며 영감이 떠오른다. 엄정성과 유머를 두루 갖춘 이 책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어떻게 의도치 않게 (많은 경우 좋은 의도에서) 능력보다 배경이 더 중요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 보여 준다. 계층 이동성이라는 주제를 열정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가 탄탄한 근거 자료를 토대로 집필했으며, 실천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구태 정치의 시대에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 ―데이비드 레니, 《이코노미스트》
경고: 당신이 어떤 견해를 지녔든 간에 리브스의 책은 당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생각 중 몇 가지에 도전할 것이다. 리브스는 아무런 해로운 의도가 없는 행동들, 심지어는 상당히 존중받을 만한 행동들이 어떻게 계급 간 위계를 고착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이 책은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 더 치열하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자극제다. ―E. J. 디온 주니어, 『우파는 어쩌다가 잘못되었을까』, 『분열된 정치적 심장』 저자
적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좋은 부모를 잘 골라 태어날 만큼 똑똑했던 우리, 그리고 이제는 포스트 산업 사회 미국에서 계층 사다리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중상류층 말이다. 세부적으로는 나와 견해가 다른 대목들도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핵심을 짚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시민적 문화를 소중히 여긴다면, 또 미래 세대를 위해 그 문화를 보존하고자 한다면, 현재 그 문화가 처해 있는 문제에 우리 중상류층이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인식해야 하고 그 인식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리브스는 이러한 주장을 매우 뛰어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찰스 머리, 미국 기업 연구소 연구원
책속으로
불평등 담론은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퍼센트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이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인 우리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 p.16~17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 p.23
부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상위 20퍼센트의 가구가 평균적으로 소유한 부는 1983년에서 2013년 사이에 83퍼센트 증가했다.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부의 증가 폭이 훨씬 미미했고, 부가 줄어들기도 했다. --- p.47
좁히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격차는 여행, 책, 가정 교사 등 ‘자녀의 풍성한 경험을 위한 지출’의 격차다. 그레그 던컨과 리처드 머네인에 따르면, 이러한 지출은 상위 20퍼센트 가구가 하위 20퍼센트 가구보다 열 배나 많다. --- p.71
부모의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 두 가지 모두 자녀가 커서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을 갖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이 과정은 다음 세대로도 계속 이어진다. 부도 그렇다. 부유한 집안은 자녀, 손주 대대로 계속 부유할 테지만 이 세습은 직접적인 상속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교육을 통해서, 즉 유산보다는 학위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 p.101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 p.112
소득이 높은 우리 중상류층은 주택 시장을 통해 그 소득을 부로 바꿀 수 있고 여기에 조세 제도가 큰 도움을 준다. 그다음에는 그렇게 얻은 부를 기를 쓰고 지키려 한다. 특히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이용해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 우리의 집값을 떨어뜨리지 못하게, 아니 우리 동네의 좋은 점을 조금이라도 훼손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러한 배제의 과정은 심지어 대중의 비판에 직면하지조차 않는다. --- p.158
30세 미만 여성의 임신 중 60퍼센트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젊은 여성들(특히 20대 여성들) 사이에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이 많은 것은 빈곤, 불평등, 공공 지출, 주거, 의료 등에 심각한 함의를 가진다. 하지만 내가 주로 우려하는 것은 기회의 격차, 특히 인적 자본 형성에서 발생하는 계급 간 불균등이다. --- p.186
‘20대80’ 법칙은 전체 인구 중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론.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 유형을 연구하던 중에 발견한 부의 불균형 현상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1848~1923)가 처음 주창했다. 이후 20대80 법칙은 1997년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이 쓴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이론에 따르면, 세계화 시대에서는 전 세계 인구 중 20%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반면 대다수인 나머지 80%는 사실상 20%에 빌붙어 살아가야 한다. 즉, 빈곤층 80%와 부유층 20%로 사회가 양분된다는 설명이다.
다 1% 탓?…20%의 ‘위선’을 벗기다
<20 VS 80의 사회> 영문판 책의 표지. 원제는 ‘DREAM HOARDERS’였다. ‘꿈의 사재기꾼들’ 정도의 의미로 미국 사회 20%인 중상류층이 대입·부동산·인턴제도 등을 중심으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았다. 표지 속 거꾸로 뒤집힌 집은 주택공급 제한으로 만든 ‘좋은 동네’에 ‘좋은 학교’들이 자리 잡게 하고, 그 결과 집값은 더 올라 저소득층 진입을 제한하는 왜곡된 현실을 상징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있지만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
1%와 99%의 대결 구도 내세운
기존의 불평등 프레임 벗어나
중상류층의 ‘특권적 위치’ 비판
상위 20%, 최상류층 ‘들락날락’
불평등 단층선 ‘20’에서 그어져
최전선은 교육이라는 성벽
부와 권력은 그 안에서 대물림
부동산 투기·입시 부정…
‘스카이 캐슬’이 꼬집었듯이
한국 사회의 현실도 판박이다
“‘1 대 99’가 아니라 ‘20 대 80’이 문제다.”
국가 경제는 늘 조금이라도 성장하는데 왜 사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질까. 정권마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외치는데 왜 부는 점점 더 편중되는 것일까. 정말 상위 ‘1%’의 탐욕과 독식이 원인일까.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슈퍼리치 1%만이 아닌 우리 사회 빈부의 불평등선을 가르는 주체는 상위 20%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1% 대 99%’의 대결구도가 아닌 상위 20%의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문제를 살펴본 책이다. 미국 사회의 이야기인데도 책을 읽다보면 TV 드라마 <스카이캐슬>부터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까지 한국 사회의 현실이 겹쳐진다.이 책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529 대학 저축 플랜’ 개혁이 실패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리처드 리브스.
부유층 가구가 주로 혜택을 입은 이 제도는 자녀의 대학 학비 용도로 돈을 붓는 장기저축 상품이다. 개혁안은 저축 플랜의 세제 혜택을 없애고, 그 재원을 공정한 세액공제 시스템을 확충하는 데 쓰는 합리적 내용이었다. 개혁안은 미국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의 반발로 무산됐는데, 그들 지역구는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진보성향 계층이 주로 사는 곳이었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고, 당락을 좌우할 만큼 숫자도 많은” 소득 상위 20%의 중상류층이 개혁을 무산시킨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등 불평등 담론은 흔히 상위 1%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20%의 중상류층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타지 않았다고, 실제로는 상당히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1979년에서 2013년 사이 미국 상위 20% 가구 소득 총합은 4조달러 늘었는데, 하위 80%는 3조달러 정도 늘었다. 4조달러 중 3분의 1을 상위 1%가 가져가긴 했다. 그렇긴 해도 바로 아래의 19%가 가져간 소득 증가분도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상위 20%도 최상류층을 공격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계급을 경계로 불평등의 단층선이 그어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가 자신들 아래 80%와 격차를 벌리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이다.
1%와 20%는 분리된 존재도 아니다. 최상류층은 상위 20%가 ‘들락날락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미국 통계조사에서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가구는 매년 인구의 2% 언저리였는데, 살면서 이 급간에 1년이라도 속한 사람이 인구의 20%나 되며, 이러한 ‘일시적 최상류층’ 대부분은 평생 20% 속에 머문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위 1%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 중 잘나가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마크 저커버그(하버드대, 의사 부모) 같은 신흥사업가들의 배경만 떠올려도 어느 정도 수긍가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부동산은 <20 VS 80의 사회>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회 사재기’ 수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간소득 가구가 서울 상위 20%에 해당하는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33.3년을 모아야 한다. 부동산이 계층 이동을 막는 진입장벽이 된 것이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단지.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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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20%가 그어놓은 불평등의 최전선은 ‘교육’이다. 저자는 중상류층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25살까지 교육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지키는 성벽이 높아진다고 진단한다.
중상류층의 고소득은 고학력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상위 20%는 준비된 자녀 계획으로 시작해 육아와 학교부터 구별된 길을 가게 된다. 수천달러의 교육컨설팅을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고, 소득 수준이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동류 짝짓기’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구 간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자산 상위 2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 중 절반(44%)은 성인이 돼서도 상위 20%에 속하며, 학력의 경우도 부모 학력 상위 2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의 절반(46%)이 그와 비슷한 학력을 갖는다.
저자는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인용한다. “운동장은 평평한지 몰라도, 어떤 아이들은 밤과 주말에 미리 연습해 경기에 대비한다… 능력의 피라미드는 부와 문화 자본의 피라미드를 반영하게 되었다.” 그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중상류층이 누리는 지위는 ‘기회의 사재기’를 통해서도 얻어진다. 책에서 강조하는 이 개념은 중상류층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한 채 자녀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사재기는 크게 대학 입학, 부동산, 인턴 제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작가는 주택 공급을 제한하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가 중상류층이 그들만의 주거지를 유지하도록 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좋은’ 동네에는 역시 좋은 학교들이 자리 잡고, 그 동네 집값은 더욱 오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진입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고, 다른 계층과의 사회적 분리로도 이어진다. “비싼 집값을 통해 자녀에게 좋은 학교에 다닐 기회”를 사주는 것이다.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도 중상류층이 누리는 특혜다. 동문 자녀 우대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프린스턴대의 경우 동문 자녀면 미국 수능 SAT에서 총점의 10%를 더 얻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부모의 배경이나 직업, 인맥이 다양한 경로로 대입 수시전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수능 점수도 높다는 상관관계는 이미 알려졌다. 중상류층 자녀들은 정시로나 수시로나 앞서가는 셈이다.
중상류층 자녀가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도 기회 사재기는 작동된다. 바로 인턴이다.
중상류층 자녀들은 자라면서부터 ‘수준 있는’ 일자리들을 보고 듣게 되고, 좋은 인턴 자리를 얻는 데는 인맥이나 배경이 작용한다. 진보적이었던 오바마 시절 백악관에서도 명문대 출신, 상류층의 아들·딸들이 인턴으로 일했고, 진보적 성향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도 그들 자녀를 뉴욕시 인턴으로 들이기 위해 ‘이해관계 충돌 심사위원회’가 ‘특별 면제’를 내려줬다. 애초 공공기관이나 국제기구 무급 인턴은 가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도전조차 어렵다.
저자는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죽지 않았다. 살아있지만 중상류층인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는 있다. 그런데 개천물이 말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 대 80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다.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재벌과 부자들을 앞다퉈 비판하지만, 말과는 달리 자신들 이익을 챙기고 자녀들에게 특권을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입시 부정 등으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책에선 미국 연간 가구 소득 11만2000달러 이상을 상위 20% 선으로 제시한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의 소득분위 자료에선 9분위의 월소득 인정액 하한선이 약 904만원이었고, 10분위는 약 1356만원이었다. 가구 연소득으로 1억원 언저리면 상위 20%인 셈이다.
‘범강남’이나 ‘마용성’에 사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이나 고소득 직장인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20%가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당사자들로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학 입시에서 자녀들을 조금 밀어주는 것, 인턴 자리를 잡아 전문직의 세계를 맛보게 돕는 것, 주택 밀도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식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책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워싱턴 인근의 부유한 동네에 산다. 역시 20%에 속하는 저자는 ‘우리가’ 이기심을 희생해야 하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선 미국 상황에 맞춘 제언들을 하면서 중상류층의 ‘각성’을 촉구한다.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선 “꿈을 사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고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연줄을 통해 알음알음 서로의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준다. 집값을 떨어뜨릴 만한 부동산 정책에 거세게 저항한다. 자신의 현재 지위는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확신한다. 야구 경기로 치면 “삼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삼루타를 친 줄”로 생각한다….
왠지 기시감이 들지만, 미국 사회 이야기다. 가장 부유한 ‘상위 1%’의 행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1%가 불평등을 확대하고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상위 1%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99%’ 속에 숨는다. 대부분 자신이 특권을 누리며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니, 모른 체한다.
<20 VS 80의 사회>는 바로 이런 집단에 속한 지은이의 ‘반성문’으로 볼 수 있다. 저자인 리처드 리브스(50)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다. “영국에 팽배한 상류 계급의 우월 의식과 계급 구분을 늘 싫어해” 미국 시민이 된 그는 “새 조국의 계급 구조가 내가 떠나온 옛 조국보다 오히려 더 견고하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낙심했다”고 한다. 그는 워싱턴에 인접한 메릴랜드주의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다. 책의 원제는 ‘꿈 사재기꾼들’(Dream Hoarders)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야기여서 “우리”라는 표현이 많다.
중상류층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길을 간다
이들은 ‘중상류층’이다. 가구 소득 기준 상위 20%(연간소득 11만2000달러·1억3500만원)에 해당하는 집단으로 고학력·고소득·전문직 일자리를 가진, 이른바 ‘먹물들’이다. 책은 이들의 위선과 불공정을 까발리며 고등 교육 등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고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행태를 고발한다. 미국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한국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중산층’이라는 말이 상위 계층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편리한 허구”라고 지적한다. 많은 불평등 담론이 상위 1%에 초점을 맞추면서 “20%의 책임을 쏙 빼놓는다”고 비판한다.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려면 ‘중상류층-나머지’라는 구도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상위 20%와 나머지 80% 사이의 격차는 미국의 경제와 사회 모두에서 드러나는 ‘대격차’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저자는 집단별 소득 추이 등 자료를 통해 이를 보여준다. 상위 20% 가운데 최상위 1%를 제외한 19%가 미국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추산도 있다.
중상류층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길을 간다. “인적 자본 육성에서의 격차는 태내에서부터 시작한다. ‘태교를 위한 모차르트’를 틀어 주었느냐 아니냐 때문이라기보다는 산모의 건강과 건강 관리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으며, 좋은 동네에 살고, 인근의 좋은 학교에 다닌다. “좁히기 어려운 격차는 여행, 책, 가정교사 등 ‘자녀의 풍성한 경험을 위한 지출’의 격차다.” 이런 지출은 상위 20% 가구가 하위 20% 가구보다 10배나 많다고 한다.
중상류층 자녀는 ‘대학 입학 컨설턴트’를 고용해 ‘좋은 대학’에 간다. 유명 작가한테 큰돈을 주고 ‘자기소개서’ 쓰는 법도 배운다. “대학에 합격하느냐 못 하느냐를 예측하게 해 주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추상적인 성취나 지능에 대한 지표가 아니라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이다.”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아닌 석·박사 학위가 중상류층의 표지가 됐다.
고등 교육이 불평등을 부채질한다
중상류층의 지위는 효과적으로 세습된다. “고소득은 가난의 대물림만큼, 혹은 가난의 대물림보다 더 경직적으로 대물림된다.” 중상류층 자녀가 어른이 돼 중상류층이 될 확률이 하위층 자녀가 하위층이 될 확률보다 더 높다. 상위 2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 중 44%가 성인이 됐을 때도 상위 20%에 속했고, 부모의 학력이 상위 20%인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의 46%가 커서도 그와 비슷한 학력을 획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부유한 집안은 자녀, 손주 대대로 계속 부유할 테지만 이 세습은 직접적인 상속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교육을 통해서 즉 유산보다는 학위를 통해 이뤄진다.” 교육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고 중상류층은 교육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고등 교육이 불평등을 부채질하는 꼴이다. 미국은 돈으로 대학 졸업장을 사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38) 백악관 선임고문은 아버지가 하버드대학에 250만달러를 기부하고 얼마 뒤 하버드에 입학했다. 쿠슈너가 다닌 고등학교의 한 행정 담당자는 “학교 행정실 누구도 그가 실력으로 하버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상류층이 누리는 이익 중에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얻는 것들도 있다. 지은이는 이를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라고 부른다. “중상류층이 실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승자가 될 때 발생한다.” 한정된, 가치 있는 기회에 다른 이들의 접근을 불공정하게 막는 것이다. 기회 사재기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들로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알음알음으로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 등 세 가지를 꼽는다.
부유한 사람들의 동네, 학교, 집값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토지 용도 규제로 미국 부동산 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고 한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동네에 들어와 집값을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토지 용도 규제는 진보 성향의 도시들에서 오히려 더 배타적이다.” 시애틀은 주거지의 3분의 2가 단독 주택 지구인데, 시장이 고층 건물 주택을 허용하는 규제 개혁을 제안했으나 저항에 부닥쳐 무산되기도 했다.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로는 미국 대학들의 ‘동문 자녀 우대’ 정책이 꼽힌다. 부모 중 한 명이 그 대학 출신이면 자녀가 우대를 받는다.
‘유리 바닥’을 깨 하향 이동성을 높여야
미국에서 인턴 경험은 대학 졸업자를 채용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인이다. 인턴 자리는 인맥과 연줄을 통해 서로 혜택을 주는 식으로 분배된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뉴욕 시장을 지낼 때 뉴욕 시청 인턴으로 딸이 채용됐다. 뉴욕 시청의 ‘이해 충돌 심사위원회’는 그의 딸이 채용되도록 ‘특별 면제’를 해줬다. 2014년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 때도 더블라지오의 딸과 아들이 인턴에 채용되도록 특별 면제를 해줬다. “아마 개인적으로 우리는 내 아이나 지인의 아이가 좋은 인턴 자리를 잡도록 돕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우 진보적인 인사들도 그렇게 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를 못 느끼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은 시장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기회 사재기는 ‘운동장’을 기울이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중상류층 자녀의 ‘계층의 하향 이동’ 위험을 막아주는 ‘유리 바닥’이라고 부른다. 유리 바닥은 누군가에게는 ‘유리 천장’이 된다. 그래서 지은이는 독특하게 ‘계층의 상향 이동성’이 아닌 ‘계층의 하향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사회학자인 시모어 밀러는 “높은 계층의 아들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가, 평범한 계층의 똑똑한 아들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언정 높은 계층의 아들들은 특권을 계속 유지하는 사회보다 더 열린 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아들들’을 ‘아들과 딸들’로 바꾸면, 오늘날 타당성이 더 크다고 한다.
저자는 기회 사재기를 막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행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조처들도 제시한다. 물론, 출발점은 중상류층인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의 친구처럼 “나는 평일에는 불평등 문제를 비난하고, 주말과 저녁에는 불평등 강화에 일조해”라고 한탄만 해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기회를 사재기하는 계급의 탄생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건드린 감수성은 돈이 아니라 계급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블루칼라 분위기를 내뿜었고 그 문화에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그럼으로써 사랑을 받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부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유감이 없었다. 사실 그들은 부자들을 존경했다. 그들의 적은 부자가 아니라 중상류층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기자, 교수, 경영자, 관료들, 이름에 PhD, Dr, MD 같은 알파벳이 붙는 사람들, 그러니까 당신이나 나 같은 먹물들 말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경제학 분야 선임 연구원인 리처드 리브스는 "아무런 해로운 의도가 없는 행동들, 심지어는 상당히 존중받을 만한 행동들이 어떻게 계급 간 위계를 고착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E.J. 디온 주니어)"고 강조한다.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386 세대의 계급화'가 그러하듯 문제는 계급이다.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법무부 장관 임명 즈음한 발표문 또한 유사한 맥락이다.
계급은 돈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학력, 태도, 거주지 등으로도 규정된다. 경제 수준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로버트 퍼트넘이 저서 <우리 아이들>에서 경고했듯이, 오늘날 한국이 이미 그러하듯, 미국에도 "계급 아파르트헤이트가 생겨나고 있다."
상류층의 계급 영속화를 일으키는 요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는 것이다. 중상류층들은 지금의 지위를 열린 경쟁을 통해서만 얻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기회를 사재기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기회 사재기'라는 표현은 사회학자 찰스 틸리에게서 따왔다. 틸리는 대작 <지속되는 불평등>에서 집단 간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두 가지 요인을 지적했는데, 하나가 착취, 다른 하나가 기회 사재기다.
기회 사재기 메커니즘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둘째는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셋째는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다. 우리 사회에서 둘째의 일부분, 셋째의 거의 전부가 기회 사재기에 해당할 것이다.
기회를 사재기하는 집단의 특성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자원에 대해 계속해서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신화와 제도들을 만들고 접근권을 사재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 바로 이 순간을 명중한 책.
최재천 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프레시안 19.9.16
Something (Beatles)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