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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그 사람

전몽각 -윤미네 집, 아버지

by 이성근 2021. 8. 18.

 

참 감동적이다.  한 가족이 이렇게 살아 왔고 아버지가 그것을 틈틈히 담아 왔다.  나도 한때 그러했지만 그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전몽각의 아내 이문강의 젊은 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한 가장 헌신적 디딤돌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의 만남이 이어져 오늘의 얼굴들이 보이기까지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윤미 엄마 이문강  기록 이란 건 어떤 의미에건 놀랍다 

윤미네 집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저자 전몽각|포토넷 |2010.01

전몽각-1931년 평북 용천 출생. 1959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건설연구소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사무소에 근무하였고 이후에 잠시 한국도로공사에서 근무하다 1972년부터 성균관대학교에서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5년에는 성균관대학교 부총장에 재임하였다. 저서로는 사진집 [윤미네 집](1990), [서울 1996-1999](1999)를 비롯하여 수필집인 [일월호반에서](1991), [토목공학잡기](1996) 등이 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던 그때에는 나의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가는 줄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갔다. 사진 찍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나는 아마추어로서의 서툰 솜씨와 사진이란 표현매체로서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런대로 그들의 분위기라도 '기록'하여 훗날 한 권의 사진집을 만들어 '윤미네 집'의 작은 전기로 남기고 싶었다. (4)

 

"우리 식구 모두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고, 워낙 꾸밈없는 일상의 모습을 [윤미네 집]에서 보이다 보니 겸연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어요. 집에서 아무렇게나 하고 편안하게 있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쳐 나만의 공간을 들켜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조금 궁상스러운 모습들조차 모두 푸근하게 느껴졌어요.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손뜨개한 스웨터, 기운 자국이 있는 내복, 정돈되지 않은 집안에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엄마와 삼 남매가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또 가족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꾸밈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160)

 

이제 그 사진들은 살아있는 가족이 당신을 추억할 수 있는 기록이 되었다. 비록 선생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더라도 당신의 마음이 지나갔던 순간, 머물렀던 자리, 그 소중한 시간들이 오롯이 남아있는 기록들이다. 복간된 [윤미네 집]에 이십여 년 전과 달리 사진 속 아내와 아이들보다 카메라 너머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163)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매 순간 가슴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윤미네 집]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 저마다의 사랑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166)

 

부녀간의 정이 가득한 소박한 사진집

기가 태어난다. 피붙이를 마주한 젊은 아비는 뛰는 가슴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새침한 소녀로 자라 교복을 입고, 대학합격 발표가 난 날 교정에서 행복하게 웃다가 졸업을 한다. 사진집 [윤미네 집]1964년 큰딸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는 날까지 아버지 전몽각이 26년간 찍은 사진을 모은 책이다.

 

카메라가 집안의 대단한 보물이던 시절, 흑백의 가족사진은 얼마나 귀한 존재였던가. 주인공 윤미의 아버지 전몽각은 직업으로 사진을 찍는 이는 아니었지만 참 열렬하게 찍었다. 소박한 살림,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담겼을 뿐인데도 어떤 패션화보나 스타의 프로필보다 눈길을 잡아둔다. 촬영시기와 간단한 사연을 소개한 색인,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함께 읽으면 안 그래도 사랑스러운 사진들이 얼마나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이 남다른 아버지는 예비사위와의 데이트 장면까지 찍으러 나섰다가 머쓱해져서는 두 시간인가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결혼식 날 신부입장도 손수 촬영하고 싶다는 욕심에 광각렌즈로 파인더 없이 찍겠다 계획했었다는 얘기를 털어놓는다.

 

책 머리에는 "(사진을 정리해보니) 플래시나 트라이포드를 사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이것은 아마추어의 좋지 않은 습관일지 모르겠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어떤 독자도 게으름을 탓하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누구나 쉽게 찍고 포토샵으로 보정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포토북이라는 것도 뚝딱 만들 수 있는 요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윤미네 집]의 사진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넘겨보게 된다. 어느새 마음 한쪽이 천천히 데워지는 느낌이다.

 

품을 떠난 딸을 그리는 부정으로 1990년 처음 책으로 묶인 [윤미네 집]2009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딸의 애틋함을 더해 복간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인 것이 분명하지만 60년대 마포 나루터, 70년대 아이들이 얼음 미끄럼을 타는 북한산 계곡 사진 같은 것을 보면 지난 시절 사회상을 담은 귀한 자료로 다루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잘 찍은 사진이란 뭘까. 정답이 없는 질문에 이 책은 부정할 수 없는 어떤 답을 보여준다.

: 네이브 블로그 밤낮 2011.07.15.

 

전몽각의 <윤미네 집>1990년에 동명의 사진집으로 처음 출간된 연작 사진으로, 한 가정의 아버지가 첫 딸이 태어나는 날부터 장성해서 결혼을 하는 날까지 가족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전몽각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가르쳤던 교수였고, 젊은 시절 사진을 취미로 익혔던, 말하자면 열혈 사진애호가의 원조이다. 그는 가족사진 찍는 일을 평생 지속했고, 작고하기 직전에는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인 아내를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사진집 <윤미네 집>은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제 짝과 함께 유학을 떠난 딸아이가 그리운 나머지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버린 아버지가 26년간 찍어온 아이의 사진을 정리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윤미가 없는 윤미네집..., 지금까지 모두들 우리집을 윤미네 집이라고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들 사진 찍는 일도 마무리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26년 동안 찍어둔 필름뭉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도 뜨지 않은 갓난아기, 젖을 빠는 모습, 할아버지 댁 나들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 조그만 집에 세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 엄마와 아이들이 뒹구는 때, 집 근처 야산에서 잠자리 나비를 쫓는 모습, 초등학교 처음 들어갈 때, 온 가족이 자전거 하이킹 다닐 때, 심통 부리는 아이의 모습, 대학 합격 발표가 있던 날, 혼인날을 받아둔 딸의 모습 등을 찍은 사진은 아버지 눈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는 한결같이 딸의 곁을 지켜주었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순간들을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사진은 과거를 살아 숨쉬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내가 본 내 가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자랑이요, 기쁨이었다. 아이들의 일사생활은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롭고 독특하여 아무리 섬세한 예술가일지라도 연출로는 불가능한 그런 자체 표현을 수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카메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 아이들만의 언어와 자기표현에 마음을 기울였다. 아이는 태어날 땐 온전히 부모에게 의탁한 존재지만, 장성해 가면서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나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자리를 잡는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흔히 갈등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가족애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냥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지켜보면서 존중하는 태도가 없으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진은 아버지가 딸을 지켜보는 도구였으며, 성장을 격려하는 응원이었고,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는 위로였다. 전몽각은 이 사진을 찍고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서 가장으로, 아버지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신의 삶에 온전히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윤미네 가족이거나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사진들에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우리에게 모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억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며 떠나온 부모님의 따스한 품, 그리고 다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내리사랑이 <윤미네 집>을 보면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진은 아주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한 순간의 장면을 고정시키지만, 보는 사람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만나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 사진이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찍는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은 훗날 가족사의 중요한 장면에 대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젠가 낯모르는 누군가에게 가족애를 일깨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근사하지 않은가?

작성자 : 네이브 블로그 울돌목 2014. 1. 11.

 

사진을 사랑했던 생활인, 고 전몽각 선생의 사진

불과 1,000권 남짓 제작되었던 책, 그것도 국내에서 한대받는 사진작품집이 20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용히 생명을 이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느 중견 사진가는 자신의 강의에서 가장 소중한 교재로 윤미네 집을 첫손에 꼽았다. 한 청년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출가시키고, 손자손녀를 맞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삶을 마감하는 한 인생의 흔적이 윤미네 집에는 아름답게 담겨있다.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나누어 먹고, 좁은 방 한간에서 모로 누워 잠을 청해도, 간혹 비치는 고단한 표정에까지 윤미네 집에는 늘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전몽각은 193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대학 4학년 때 받은 장학금으로 카메라를 마련한 이래 그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사진 좋아하던 이들과 함께 모여 해외의 사진 경향에 대해 토론하고 촬영하면서 훌륭한 사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가 몸담았던 현대사진연구회는 한국현대사진의 산실이었는데, 이 모임은 1955년 이해문, 이형록, 정범태, 손규문, 한영수, 안종칠 등이 모여 창립한 신선회가 3번의 전시를 끝으로 해체되면서 1960년 싸롱 아루스와 함께 탄생하였다. 새로운 시각을 표방하던 신선회는 사실의 기록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할 수 있다는 리얼리즘에 기반을 두고, 당시 주류를 이루던 아름다운 화면 만들기를 벗어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 선구적인 사진단체였다. 전몽각 외에도 박영숙, 주명덕, 황규태 등 현재까지 한국의 현대사진을 이끌어온 원로작가들과 조천용 등 일간신문의 데스크를 담당했던 굵직한 보도사진가들이 현대사진연구회를 거쳤다.

 

그가 사진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인 1957, 경복궁미술관에서는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이 열렸다. 1955년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의 기획으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선을 보였던 이 전시는 273명 사진가의 500점이 넘는 사진들로 구성된 대형 기획전으로, 생김이나 환경은 달라도 인류는 모두 한 가족이라는 보편성을 호소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국전쟁 후 인구 200만명이 채 안되던 서울에서 10만이 넘는 인파가 이 전시에 몰렸다.

 

작품 연구를 위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한국의 1960년대, 사진가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각문화시대를 열었던 룩크Look, 라이프Life 등과 같은 화보잡지는 좋은 교재였는데,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거친 서구에서는 60년대와 70년대 '가족'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여러 잡지에서 이를 주제로 다루었다. '가족Family, Ridge press book, 1965'(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와 사진가 켄 하이만Ken Heyman이 함께 작업한 작품집) 같은 인상적인 단행본들도 여럿 출간되었다.

현대사진연구회에 몸담으며 얻은 현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 인간가족전을 통한 사진의 힘에 대한 인식, 서구의 화보잡지 등을 접하며 얻은 가족 주제의 가치 공유가 막 가정을 일구던 젊은 전몽각에게 이후 윤미네 집을 엮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토목공학자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대학 교수로 제자들을 키워내는 가운데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그가 생활인으로 살며 사진가로서 가족에 대한 애정을 담아 펴낸 윤미네 집은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사회에 어떻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귀한 안내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최재균 _ 포토넷 대표 / 교보문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 담은 사진이 문학이 되는 순간

얼굴은 보는 것이지만 표정은 읽는 것이다. , , 입은 정물이지만 눈빛과 입꼬리는 풍경이 되는 이유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표정에 새겨진 그 사람의 마음속 풍경을 읽고 상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물을 담은 사진들은 종종 좋은 문학이 된다. 1990년 출간된 책 윤미네 집은 토목공학자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전몽각의 사진집이다. 부제는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이다. 인물 사진집이지만 사랑을 담아낸 문학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아이였던 딸은 제 엄마와 형제들과 꼬집고 뒹굴며 자랐다. 땀에 젖은 작은 머리통을 고단하게 누이고, 양은냄비에 끓인 밥을 힘차게 먹으며 어른이 됐다. 그렇게 26년의 시간이 흘러 윤미씨는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 남은 집은 윤미 없는 윤미네가 되었다. 전씨는 이국땅으로 떠난 딸을 생각하며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그제야 수십 년 찍어온 아이들 사진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1964년부터 1989년까지 딸 윤미와 아내 이문강, 윤호·윤석 두 아들을 찍은 사진들은 1990년에 사진집 윤미네 집으로 묶였다. 사진전을 준비하며 윤미네 집초판 약 1000부를 출간했다. 입소문이 났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었다. 헌책방을 뒤지며 윤미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진 동호회 게시판에는 책을 구할 방법이 없는지 묻는 글이 올라왔다. 거칠고 투박한 사진들이었지만 독자들의 구애는 20년간 끊이지 않았다. 2010년에 복간된 윤미네 집은 두 달 새 3쇄까지 찍으며 사진작품집으론 전례없이 주목받았다.

 

사랑이란 아마도 좋은 것일 테다. 뭇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명하는 일은 까다롭고 어려워 주로 실패한다. 전몽각은 어지러운 말을 지웠다. 그는 애틋한 이들을 오래 바라보다 지순한 마음을 사진으로 담았다. 윤미네 집은 오래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말없이 증언한다. 윤미 없는 윤미네 집은 여전히 아랫목이 따뜻하다. 시사인 김다은 기자

 

[전몽각 사진전] 네이버 온라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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