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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그 사람

박찬호 사진가 신당과 ‘귀(歸)’

by 이성근 2021. 2. 16.

박찬호 사진가 신당

한국신화 원천 신당’ 50곳 찾아 만신’ 70명 촬영했죠

십수년간 죽음에 관한 의미를 좇아 사진작업을 잇고 있는 사진가 박찬호(50)씨가 올해 1월 우리 신화의 공간인 신당과 신관(무당)을 찍은 사진집 <신당>(나미브)을 출간하고 서울의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같은 이름의 사진전을 열었다. 이 사진전은 자리를 옮겨 43일부터 27일까지 부산 예술지구 P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나 쉽지 않은 작업주제인 죽음과 신당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극복하려고 들었던 카메라가 한국 신화의 원천인 신당으로 향하게 된 겁니다.”

그는 2003년에 딸의 돌사진을 찍으려고 처음 카메라를 장만했지만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다. 몸과 마음이 아팠고 하던 사업도 벼랑 끝까지 밀리는 등, 모든 게 맞물려 앞이 캄캄하던 2007년 무렵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우연히 아는 선배를 따라 안동에 가서 노인들이 갓을 쓰고 제사를 지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사진도 몇장 눌러봤다. 박씨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제사 같은 것에 관심이 가는 걸까?” 그때부터 박씨는 전통장례, 다비식, 굿 등 죽음과 추모의 장소는 어디든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제주 신천리본향당 강복녀 심방.(박찬호 <신당> )

 

모든 종류의 죽음에 관한 제의를 찍고 다녔지만 여전히 내가 왜 이걸 찍는지 몰랐어요. 종교학 관련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어요. 카렌 암스트롱의 책들이 내 사진작업에 깊이를 제공했죠.” 박씨는 그 무렵, 초기부터 찍은 사진을 다시 한 장씩 꼼꼼하게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제의가 열리는 곳이라면 산, 바닷가, , 성황당 할 것 없이 어딜 가든 매번 찍어둔 것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제의작업이라면 그 동네의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것은 한 두 컷이면 될 뿐, 나중에 쓰임새도 별로 없는데 장소와 사람만 다를 뿐, 전국 각 지역에서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사진을 부득부득 찍어온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거죠. 내가 10살 때 말기 암 환자들이 모인 병실에서 암투병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지냈는데 결국 3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밤마다 들리는 누군가의 비명이 죽음보다 무서웠어요. 그 아픔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한 거죠.”

 

모친을 잃은 뒤에도 박씨의 몸에는 아픔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계속 죽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 내용을 담은 돌아올 귀작업이 2018<뉴욕타임스>에 인터뷰와 함께 소개되었고 이듬해 첫 사진집 가 출간되었다.

이번 사진집 <신당>과 그 전 작업의 차이요? <>는 순수하게 나를 찾는 작업이었어요. 나무 하나, 돌 하나, 절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안에서 나를 봤는데 <신당>은 객관적으로 나를 빼고 기록의 형식으로 남긴 것입니다.”

 

어머니 잃은 아픔 이기려고

30대 중반에 카메라 들어

주로 죽음과 추모 장면 담아

이어 두번째 사진집 출간

4월에 부산에서 신당사진전도

재개발로 신당 사라져 안타까워

 

사진집 <신당>에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 있는 신당 50여곳에서 유형학적 형식으로 만신(곳에 따라 법사, 심방, 당주, 무녀...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70명을 찍었다. 이들 중에는 보유자와 전수조교도 있다.

 

굿을 하는 장면은 그들의 동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번 <신당>작업의 핵심은 장소입니다. 바위, 나무, 성황당, 바닷가 등의 장소는 한국 신화와 설화의 소중한 터전입니다. 마을마다 (복을) 비는 내용과 대상이 다르니 만신의 이름이나 복장, 무가가 다르죠. 그래서 더 소중해요. 근대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많은 신당이 사라졌는데 이번 책엔 남아있는 마을당 중 중요한 곳은 거의 포함했어요. 책에 실린 몇 곳은 최근 3년새 사라졌고 곧 사라질 곳도 많아요. 도심 신당은 재개발과정에서 그냥 밀어버린다고 해요. 유럽과 중국에만 신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도 천지창조를 비롯한 많은 신화가 있는데 그 원천인 신당이 없어지고 만신의 대가 끊어지면 전통문화도 사라지니 안타깝습니다

<신당>에 실린 충남 황도붕기도당 고 김금화 만신.

<신당>에 실린 부산 상리당산의 이미영 만신.

 

무당이 굿을 할 땐 무가를 부른다. 이 무가의 가사, 사설에 신화의 내용이 들어있다. 세습무의 경우 대물림하며 무가를 익히는 것인데 전수자가 없어지면 함께 사라진다. 민속학자들이 이를 채록하고 문서화한다. 박씨의 작업을 지켜본 민속학자 조성제 박사가 그동안 조사해온 마을 신당과 마을제의 내용에 박씨의 사진을 함께 실어 연말께 소논문 형태의 학술자료로 발간할 예정이란다.

여기 만신들이 서 있거나 앉아있는 공간은 1년에 딱 한 번 마을제가 열리는 날에만 외부에 공개됩니다. 당연히 해당 만신들 또한 마을제를 하는 날이 아니면 갈 수가 없죠. 그러다 보니 이번 사진촬영을 위해 장소섭외가 아주 힘들었죠. 몇십년 만에 처음 문을 열어준 곳도 여럿입니다.”

작가는 사진집을 한 장씩 넘기며 신당과 그 장소에서 버티고 있는 만신을 하나씩 소개했다. 어느 순간 박씨의 목소리가 신이 난 듯, 신들린 듯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사실 굿이나 신당을 촬영할 때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종종 듣곤 했어요. 내가 흔들거리면서, 흥얼거리면서 촬영하는 모습이 마치 신들린 것 같다고요. 글쎄,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 데 뭐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닙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올가을 미국에서 박씨의 작업이 포토 에세이집 형식으로 미국 버지니아의 출판사 알파 시스터즈에서 나올 예정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죽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며 오랜 세월 계승되어 온 한국의 신당과 그 신당을 지키는 만신들을 유형학적으로 기록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이별의 흔적, 돌아올 귀()- 박찬호 사진가

 

/조 아(JOA)

박찬호의 개인전 <Return>은 서울에서는 2019430일부터 512일까지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며 오프닝은 430일 오후 6시에 있다. 작가토크는 511일 오후 3시에 갤러리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80점의 흑백사진이 담긴 사진집 <Return-rnl(歸)>도 만나 볼 수 있다. 지방 순회전은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524일부터 67일까지, 광주, 갤러리 혜움에서는 615일부터 628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박찬호는 한국의 제의와 그것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며 오랜 세월 계승되어 온 한국의 신당과 그 신당을 지키는 만신들을 유형학적으로 기록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박찬호 작가는 어느 사석에서 이번에 전시하게 된 <Return>작업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죽음을 찍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죽어 저승에 가서 사진을 찍은 다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그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가는 방법은 아는데 돌아오는 방법을 몰라 선택한 것이 사람이 죽은 곳,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수많은 제의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흔적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했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죽음그 이후의 시간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제의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의미를 나름 찾아 볼 밖에. 그런데 박찬호의 사진을 보면 단순히 죽음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겪고 있는 이별의 순간을 담는다는 것이 어쩌면 더 적합한 표현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제의를 담고 있는 그의 사진은 슬프고, 또 슬프며, 아프고, 또 아프다. 온통 어둡고 하얀, 흑백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미고, 마음이 아린 그런 사진이다. 그는 어째서 이처럼 가슴 아픈 사진들을 십여 년이나 담고 있는 것일까?

작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기 암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실에서 어머니를 3년이나 홀로 간호했다. 야속하게도 어머니는 어린 아들인 박찬호 작가를 홀로 두고 돌아가셨고,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사진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박찬호 작가는 어렸을 때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커서도 쉬 사라지지 않았다. ‘죽음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첫 촬영은 안동 광산 김씨의 향재에서 시작해 유교식 제의와 무속 제의들을 사진에 담았다. 최근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죽음관을 담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지만 작업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라져 가는 한국 제의들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그러면서 지역적인 종갓집 제의에서부터 신성한 장소에서 비밀리에 거행되는 의식(儀式)도 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마을제와 전국의 당제’, 스님의 다비식등 전국의 다양한 제의들로 점차 제의의 범위를 넓혀갔다. 피사체의 대상도 인물 중심과 장소성이 짙게 들어오는가 하면 제의에 사용되는 각종 소품들도 하나의 오브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Return>은 필름과 디지털 작업을 병행한 흑백사진이다. 니콘 FM2와 캐논 EOS-3, 5D Mark II 카메라와, 소니 알파 A7R III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 어느 중간의 위치에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 중간은 빛과 어둠의 사이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인 어둠에서 태어나 빛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흑백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흑백필름 특유의 묵직한 암부의 거친 입자, 살짝 과장 되는 원근감과 정형화 되지 않는 프레임 방식은 이를 잘 드러낸다. 프레임 안에서 정직한 수평 보다는 삐딱하게 배치되어 불안감이 고조되거나, 죽은 망자의 쓸쓸함이나 허망함 등을 도출 시킨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기묘한 빛 또한 어느 망자의 넋이나 혼을 상징하듯 아련하다. 간간이 이승이 아닌, 저승을 상기시키거나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을 내포하는 은유적 접근은 과히 일품이다.

그는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아 헤맸지만, 사후에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죽지 않고 우리가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억이라 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겨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옛 부터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했다. 이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박찬호가 말하고자 하는 돌아올 귀()’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바로 누군가의 기억으로 우리 자신이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이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생전에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작업을 지속 하다보면 이러한 생각이 또 바뀔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현재 그가 내린 죽음에 대한 의미론을 여기에 두고 있으며, 이것이 <Return>작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고독한 긴 여정의 기록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선은 죽음 너머의 세상을 향해 있으며 누군가에게 기억의 모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도록 이끌기에 앞으로의 작업이 더욱 기대되는 사진가이다.

<Return>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우리는 '죽었다'는 말을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길래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국의 전통적이고 다양한 제의와 오브제를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 The Returnd>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배경은 뭔가.

-제 나이 40이 될 무렵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무렵 저는 사진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카메라는 제가 집을 나설 수 있는 유일한 핑계였으며 이유였다. 도대체 나는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제 고통의 근원이 마음속 깊이 침잠되어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업을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난 많은 이들로부터 직접들은 삶의 사연들은 '나는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가?' 라는 질문이 '우리는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게된 계기였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오랜 시간 전해져온 제의와 그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 했다.

죽은 사람이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을 담는 작업이라 섭외나, 촬영 모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진 속 대상이나 장소들이 다양한데 어떻게 진행 되었나.

-몇 백년을 이어 내려왔으며 불과 이십여년까지도 일상이었던 수많은 제의들 (유교식, 무속식, 불교식제의)과 전통장례 모습들은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부분이 멸절되었다..

저는 현재까지 치러지고 있는 마을제들을 찾기 위해 많은 문헌과 도서관과 문화원의 기록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곳 마을들을 찾아 아직도 마을제의를 하고 있는지 여쭤보면 10곳 중의 9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제의의 유무를 찾았고, 허락을 받아 촬영을 진행하였다.

또한 전통장례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전국의 선소리꾼들을 찾아 다녔다. 거의 대부분의 곳들은 상여문화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일부 지역에서만 간헐적으로 상여가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 지역 선소리꾼과 장의사를 찾아가 친구의 연을 맺었다. 상을 당한 집에서 상여를 나가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밤새 내려가 유족에게 허락을 구한 후 촬영을 하곤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허락을 받지 못한 적도 많았다.

 

촬영에 사용된 장비는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들이 있었을 텐데 무엇 때문인가.

-이번 작업에서 필름 작업은 대부분 캐논 EOS3로 작업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캐논 디지털 카메라와 렌즈가 호환가능 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저에겐 아주 큰 장점이다. 캐논 5D mark2를 사용하였다.

 

촬영 과정에서 특별히 주안점을 두거나, 작가만의 촬영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단순한 제의의 기록뿐만이 아닌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현장에서 그 순간 느꼈던 감정과 깨달음을 사진에 담으려 했다. 그 공간들엔 (떠난자의 회한과 남은자의 슬픔 신목과 대지에 깃든 신령스러움)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부유하는 듯 느껴지곤 했다. 그 모든 것이 공간에 존재 있음이 문득 느껴지는 순간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진에 담으려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회(관객)에 해 줄 역할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되는가.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한 행복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으나 우리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군주제, 입헌군주제,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 어떤 사회적 제도도 정치적 이념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한 처음의 단계는 고통의 근원인 아픈 상처를 마주하여 치유하는 것이다. 누군가 저와 같은 고통을 겪은 이가 있다면 제 작업은 상처를 대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면한 상처를 이겨 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사진 인화나 갤러리 디스플레이 방식, 그리고 출판에서 중점을 둔 요소들이 있을 텐데 어떤 점들인가.

-디스플레이 방식은 변화가 별로 없는 전통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을 선호한다. 차분한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 한다.

 

출판에서는 제의를 통한 죽음과 윤회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내러티브에 중점을 줘서 편집하였다.

 

한국의 전통 제례(祭禮)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그동안 많이 담아 왔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수남 사진가를 들 수 있는데 기존의 사진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되는가.

-일단 김수남 선생님과는 촬영 시기가 다르다. (웃음) 많은 분들이 공적이며 또한 기록적인 부분에서 훌륭한 작업들을 해 왔다. 나의 경우는 사적인 질문과 개인적인 사건에서부터 출발한 작업이다. 그러한 사유로 기록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표현적인 부분에서 사적개입이 많이 된 사진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부분이 어쩌면 나만의 차별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84월 뉴욕 타임즈에 이번 작품들 중 몇 점이 실린 것으로 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몇 점이나 실리게 되었는가.

-휴스턴 포토페스트에서 뉴욕 타임즈 사진부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제 작업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고 저의 이야기를 뉴욕 타임즈에 소개하고 싶으나 다른 동료와 데스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차후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해어졌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뉴욕 타임즈의 다른 기자에게 연락이 왔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뉴욕 타임즈에는 인터뷰 내용과 함께 14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 중 이번 류가헌 전시에는 총 26점의 작품 중 4점이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작품이다. 사진집에는 총 80점의 작품 중 12점이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박찬호 작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혹시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사진을 전공하지 않고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로써 후배 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사진을 독학으로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아쉬운 부분은 시작되었다. 책만을 통한 독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없이 혼자 탐독과 사유를 통해 깨달아 나가야 하는 점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비전공자이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로써의 장점 또한 있다. 작품판매에 생계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표현의 관습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으며 긴 호흡으로 작업에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진을 위한 사진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사진은 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쫓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사진을 쫓는다고 반드시 좋은 사진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관심을 깊이 있게 몰두하고 찾아가다 보면 사진은 그 흔적처럼 따라올 것이며 진정성과 깊이감 역시 자연스럽게 담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길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인 포토페스트나 해외의 오픈 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추천한다. 낭중지추라 했다. 좋은 작업은 어떠한 계기로든 알려지게 되어 있다. 문턱이 높아도 좌절하지 않고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뉴욕 타임즈의 사진부장이 저에게 인터뷰를 끝내고 "미스터 박. 내가 말한 이 화가들은 미대를 나오지 않은 화가다. 제 생각에 당신은 반드시 사진을 해야 한다. 사진과를 나오지 않았어도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신이 사진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다." 이 말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작가로써 볼 때,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페러다임에서 가장 심각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갈수록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의 작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하는 작업은 심유함이 부족해 질수 밖에 없다. 그 긴 호흡으로 작업을 하기에 쉽지 않은 가혹한 현실 또한 우리가 함께 고민 해봐야 할 문제이다.

 

앞으로의 사진 작업 방향이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 오랜 시간 계승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제를 지내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당과 그 신당을 지키는 제관 그리고 무녀들을 유형학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인 '신당'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작가적인 관심사를 넘어 마지막일지도 모를 현재를 기록해야하는 저의 의무이기도 하다. 내년 봄까지 신당작업을 마칠 예정이며 이어서 또 다른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인 ''에 관한 저의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나려 한다.

 

출처 : 포토저널(http://www.photoj.co.kr)2019.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