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뉴스타파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by 이성근 2019. 6. 2.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이 기획의 일환으로 앞으로 2회에 걸쳐 한 유력 정치인의 30년 정치인생, 특히 그의 인맥과 혼맥을 토대로 한 재산형성과정을 보도합니다. 이를 통해 ‘자본과 권력이 어울린 민국 100년의 그늘진 한국현대사’를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김무성 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1.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1
2.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2. “김무성과 이재용의 재산 축적, 시작이 같았다”
-편집자주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1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6선의 거물 정치인이자 백억 원 넘는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이다. 김 의원의 화려한 정치 이력,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그의 집안 내력과 떼어 놓고 보기는 힘들다.

 

김무성 의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민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거친 뒤 1996년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것을 포함해 내리 6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원내총무와 당대표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근혜 정권 때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거물 정치인답게 그는 고비고비마다 정치사에 획을 긋는 역할을 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었고, 박근혜 탄핵에도 앞장섰다. 현재의 바른미래당(구 바른정당)을 만든 산파였고,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갈 때도 맨 앞줄에 섰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보수 지지층 결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려한 가족사‘199317억 원재산이 ‘2018130억 원으로

김무성 의원은 본인의 정치인생 만큼이나 화려한 가족사로도 주목받아 왔다.

김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시대부터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승승장구한 인물이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전남방직 등을 설립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김용주의 이름이 국민들 사이에서 각인된 건 그가 성공한 기업인이어서가 아니라,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지난 20159, 뉴스타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의 친일 행적을 입증해 주는 각종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 김용주가 징병을 독려하는 등의 발언을 여러차례 했고, 일제 전투기 헌납 기명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자료는 평소 김무성 의원이 주장했던 부친인 해촌 김용주는 일제가 학살을 계획한 3000명 요시찰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거나 일제 말기에 가족을 모두 피신시키고 본인도 이름을 바꾼 채 몇 달간 도피생활을 했다는 등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지금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의 아버지라는 코너를 만들어 놓고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 의원의 친누나인 김문희 씨는 현재 용문중고등학교와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용문학원의 이사장이다. 현영원(2006년 사망) 전 현대상선 회장과 결혼해 4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둘째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김 의원의 친형인 김창성 씨는 부친인 김용주에게서 전남방직을 물려받아 회장을 지냈고, 역시 부친에 이어 경총 회장을 지냈다.

 

김무성 의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민정비서관으로 첫 재산신고를 했다. 모두 175400여만 원이었다.

 

1990년대에 김 의원의 재산은 두 번에 걸쳐 크게 증가한다. 1994년 한 해에만 재산이 2배 가량 늘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다시 3배 가량 늘어 100억 원에 근접했다. 이후 그의 재산은 많게는 150억 원, 적게는 90억 원대를 오르내리며 25년간 이어졌다. 올해 2월 김무성 의원이 마지막으로 신고한 재산은 130억여 원이었다. 그의 재산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뉴스타파는 김 의원의 주식이 2배 가량 늘어난 1994, 3배 가량 증가한 1995년 재산신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각각 1, 2부로 나눠 보도할 예정이다.

 

김무성, 1994년 가족기업 주식 79200주로 21억 원 넘는 시세차익

1993년 당시 김무성 의원이 신고한 재산 175400여만 원 중 164900여만 원이 본인 명의 재산이었다. 세부항목을 보면, 경기도 고양시 소재 부동산 3(전답, 34000여만 원)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부동산 1(빌라, 65400여만 원), 그리고 새한상호신용금고(이하 새한금고)라는 회사의 주식 등이었다.

 

취재진은 먼저 경기도 고양시 소재 부동산의 과거 폐쇄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봤다. 김 의원이 만 20세였던 1971년에 본인 명의로 취득한 걸로 나와 있다. 당시 그가 경제력이 없는 대학생(한양대 경영학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물려받은 재산으로 추정된다.

 

1994, 김무성의 재산이 두 배 가량 늘어난 배경에는 새한금고 주식 79200주가 있었다. 1995년 초 내무부 차관 시절 김 의원이 신고한 재산 내역에는 액면가 5000원인 새한금고 주식 79200주를 주당 31554원에 팔아 21억 원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19952월 신고된 김무성 의원의 재산내역. 액면가 5000원인 새한상호신용금고 주식 79200주를 주당 31554원에 팔아 21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기재돼 있다.

 

새한금고는 1994년 신고한 재산신고 내역에도 등장한다. “새한금고가 무상증자를 실시해 김 의원의 보유 주식이 52800주에서 79200주로 50%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199331일 경향신문에는 “1급인 김무성 비서관이 새한금고의 무상증자로 재산이 12800만원 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김무성, 청와대 비서관 시절 가족기업 임원 재직...공무원법 위반 의혹

김무성 의원에게 무상증자와 21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안겨준 새한금고는 어떤 회사일까. 취재진은 1995년 이전의 언론보도와 이 회사의 과거 등기부등본 등을 단서로 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김 의원의 부친 김용주가 운영하던 전남방직이 상호신용금고 3개를 인수한다는 기사(19781019일 매일경제)와 함께, 전남방직이 가지고 있는 새한상호신용금고의 자본금이 35000만원이라는 등의 기사(1979913일 매일경제)가 확인됐다.

 

이 회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에선 김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와 친형인 김창성 전 전방 회장이 1978년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고, 19928월에는 김무성 의원과 김 의원의 둘째형 김한성 씨, 친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언론보도와 과거 등기부등본으로 볼 때, 새한금고는 한마디로 김무성 의원 일가의 가족기업이었다.

 

1978, 김무성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 씨와 친형 김창성 씨가 새한금고의 이사로 취임했다. 19928월에는 김무성 의원과 친형 김한성 씨, 친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역시 새한금고 이사로 취임했다.

 

19928월 이사에 취임했던 김무성 의원 3남매는 2년 뒤인 1994226일 동시에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이사 사임 당시 김 의원은 별정직공무원 1급에 해당하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공무원법(64)공무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비록 25년 전의 일이지만, 김 의원이 공무원법을 위반하면서 가족기업의 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 19942, 김 의원 일가가 같은 날 가족기업새한금고의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1994222일자 매일경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교원공제회가 전방(전남방직) 계열의 새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소재한 새한금고는 지난 73년에 설립됐으며, 자본금 1015800만원에 여수신은 각각 800억 원대에 이르는 중형금고이다.

-1994222일 매일경제

 

결국, 가족기업을 매각하면서 김무성 의원 일가가 자연스레 경영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교원공제회가 사들인 새한금고는 이후 여러번 이름을 바꾼 뒤, 현재 더케이저축은행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무성 가족기업 주당 31554원에 매각...비슷한 규모 기업의 6

김무성 일가가 새한금고를 매각할 당시, 우리나라 금융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신용금고 매각이 줄을 이었다. 대아금고, 한신금고 같은 곳이다. 당시 주인이 바뀐 신용금고 중 상당수는 김무성 일가가 가지고 있던 기업보다 규모가 크고 우량한 신용금고였다.

 

그런데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 신용금고의 매각금액은 주당 6000원대에서 많아야 1만원대에 불과했다. 새한금고보다 여수신 규모가 2배 가까이 큰 한신금고가 주당 6800원에 매각된 것으로 확인된다.

 

무역업체 고려흥진은 ()경보가 갖고 있는 대아상호신용금고 주식 26%(30만주)48억 원에 인수키로(주당 16000) 결정, 대아금고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11일 발표.

-1994312일 동아일보

 

제일생명은 한신금고 주식매입대금으로 당초 신용관리기금이 제시한 최저가인 50억 원(주당 5000)보다 18억 원이 높은 68억 원(주당 6800)에 응찰했다.

-199482일 매일경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무성 일가는 가족기업인 새한금고를 31554원에 팔았다. 액면가 5000원의 6배가 넘는 금액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거래된 상호신용금고 주식보다 작게는 3, 많게는 5배 가량 높은 가격이었다. 매각금액 책정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취재진은 당시 매각금액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등을 묻기 위해 새한금고를 인수했던 교직원공제회에 연락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교직원공제회 측은 “25년 전의 일이라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기억하는 직원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교직원공제회 측은 2011년 발행한 한국교직원공제회 40년사(이하 40년사)’를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40년사에는 새한금고 매입 당시의 기록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교직원공제회가 제2금융권 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새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

 

2001년 교원나라상호신용금고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적혀 있었고, “1994126,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회가 상호신용금고 인수 계획안 및 운전자금 전용안을 의결했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사장과 교육부장관이 지명하는 3, 대의원 중에서 선출된 3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되는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회가 이사장과 감사에 대한 선출권, 각종 사업에 대한 의결권을 갖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운영위원회가 사실상 교직원공제회의 최고의결기관이라는 내용이었다.

 

김무성 가족기업 매각 당시 친누나 김문희가 매수자측 핵심 임원

그렇다면 새한금고를 인수할 당시의 운영위원은 누구였을까. 취재진은 ‘40년사에 기록된, 김무성 일가가 소유했던 새한금고를 인수할 당시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 명단을 확인해 봤다.

 

그런데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이 확인됐다. 바로 김무성 의원의 친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었다. 김 이사장의 재직 기간은 19923월부터 19947월까지로 나와 있었다.

 

김무성 의원 일가가 소유했던 새한금고는 19942월 교직원공제회에 매각됐다. 매각 당시 김 의원의 친누나인 김문희 씨는 매수 당사자인 교직원 공제회 최고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 7인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결국 교직원공제회가 새한금고를 매입할 당시, 김무성 의원과 함께 새한금고의 등기이사였던 친누나 김문희 씨가 금고 매수인 측인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동생인 김무성 의원이 새한금고 발행주식의 약 10%에 해당하는 8만주의 주식을 보유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문희 씨 역시 비슷한 규모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매각과정, 매각금액 결정 등과 관련된 의혹은 더욱 커진다.

 

취재진은 해명을 듣기 위해 먼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측에 연락하고 질의서를 보냈다. “누구의 소개나 추천으로 새한금고를 교직원공제회에 매각했는지”, “본인 소유 회사를 자신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던 교직원공제회에 팔아 넘긴 것이 이해충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매각금액이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문희 이사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대신 용문고등학교장이 전화로 김 이사장의 입장을 전했다.

 

이사장님의 연세가 올해 92세다. 건강이 안 좋아 요양중이고 치매로 인해 기억력도 좋지 못하다. 취재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용문고등학교 교장

 

김무성, “가족기업 매각에 관여 안 했다. 친누나 일은 몰랐다주장

뉴스타파는 김무성 의원에게도 질의서를 보냈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 공무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영리기업 이사를 맡은 이유”, “새한금고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친누나인 김문희 씨가 매수주체인 교직원공제회의 최고의결권자인 사실을 알았는지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김무성 의원 측은 질의서를 받고 며칠 뒤 서면답변을 보내왔다. 공무원법 위반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새한금고 이사로 활동하며 영리행위를 한 바 없고, 친누나와 관련된 문제는 몰랐다는 내용이었다.

 

김무성 의원은 새한상호신용금고의 무보수, 비상근이사로 영리행위와 관련이 없다.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매각과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새한상호신용금고 매각 당시 친누나인 김문희 이사장이 교직원공제회 운영위원이었던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김문희 이사장은 매각전인 1993715일 운영위원에서 중도사임했다.

-김무성 의원 측 서면 답변

 

뉴스타파 한상진


이재용과 김무성의 재산축적, 시작이 같았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치인과 기업인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에스원 주식을 선대에서 물려받아 재산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재용은 부친에게 상속받은 돈으로 에스원 주식을 사들여 그룹승계의 종잣돈을 만들었다. 김무성은 장인에게 받은 에스원 주식을 기반으로 1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축적했다. 에스원은 한마디로 이재용의 삼성그룹 상속과 김무성 재산축적의 시작점이었다. 뉴스타파는 두 사람의 닮은꼴 재산형성 과정을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 김무성 케이스의 두번째 기사에 담는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27일 보도한 김무성 케이스’ 1부에서 김무성 의원이 친일파인 부친에게 물려받은 가족기업의 주식을 팔아 1994년 당시 21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었고, 고위직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가족기업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공무원법을 위반했으며, 가족기업 매각 당시 김 의원의 친누나가 매수자 측의 핵심임원이었다는 사실 등을 보도한 바 있다.

 

 


1990년 대 초중반, 김무성 의원의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던 199317억여 원이던 재산이 3년 만에 100억 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특히 1995년에서 96년 상반기 사이에만 전년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 김 의원의 부인이 가지고 있던 삼성그룹 계열사 한국안전시스템(현 삼성에스원, 이하 에스원) 주식 때문이었다. 액면가 5000원인 에스원 주식이 상장되면서 주당 30만 원이 됐고, 이로 인해 635000여만 원의 장부상 시세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김 의원은 19967월 신고한 재산내역에 이렇게 적었다.

배우자의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한국안전시스템의 주식이 상장됨으로 인하여 액면가에서 상장시가로 신고됨으로써 가격상승이 있음.-김무성 의원 재산신고 내역(19967)

 

김무성 의원 부부는 이후 10년간 여러번에 걸쳐 에스원 주식 수만주를 거래하고, 유무상 증자와 액면분할에 참여하며 재산을 불렸다. 그리고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에스원 주식 30만 주 가량을 액면가(500)의 거의 100배 가까운 가격에 전량 매도했다.

 

김무성, 1994년과 1995년 재산신고 때 누락단순 착오해명

김무성 의원이 장인에게 받은 에스원 주식을 처음 신고한 건 1993년이었다. 부인 최양옥 씨 명의로 이 회사 주식 8975(총 발행량의 2.24%)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94, 상장을 앞두고 있던 에스원은 3번의 유무상 증자를 실시했다. 김 의원 부인은 증자에 모두 참여해 주식수를 21000여주로 늘렸다. 하지만 김 의원은 1994년과 1995년 재산신고 당시 증가한 주식 수와 그 이유를 신고하지 않았다. 재산변동사항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이다.

 

등록의무자는 매년 11일부터 1231일까지 사이에 발생한 재산상의 변동사항을 다음 해 1월중 등록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공직자윤리법 제6(변동사항신고)

 

뉴스타파는 김무성 의원 측에 질의서를 보내 재산신고 누락 이유 등을 물었다. 김 의원은 서면답변을 통해 재산신고 누락을 시인했다. 다만 단순 착오일 뿐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김무성 장인 최치환, 80년대까지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승승장구

김무성 의원 부인에게 에스원 주식을 물려준, 김 의원의 장인은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활동했던 고 최치환 전 국회의원이다.

 



1923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최치환은 일제시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해 만주국 군인이 됐고, 해방 이후 경찰에 투신했다. 1949년 제주 4.3항쟁 당시 군경이 중심이 된 토벌대의 작전참모를 지낸 뒤, 곧바로 지리산지구 전투경찰대 총사령관을 맡아 소위 좌익소탕에도 앞장섰다.

 

34살의 나이에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서울시 경찰국장이 된 그는 이승만 정부의 첫 청와대 정보비서관, 공보실장(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남해에서만 5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65년에는 공화당 원내부총무도 지냈다. 41살이던 1964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올라 7년간 회장을 맡았으며, 1970년에는 대한민국 경우회 회장이 돼 4번 연임했다.

 

1971년 경향신문 사장이 된 최치환은 이후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에스원의 창립이사를 거쳐 대표를 지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에는 삼성그룹 상임고문, 삼성반도체 사장이 됐다. 1987년 사망한 뒤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남해대교 인근 노량마을에 세워져 있는 금암최치환 유적비’. 유적비의 뒷면에는 최치환의 약력과 함께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와 관련된 업적이 기록돼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의원의 장인인 금암 최치환

 

최치환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던 경남 남해에는 최치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남해대교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노량마을 초입에는 금암최치환유적비가 있고, 프로야구단과 축구단의 전지훈령장으로 유명한 남해스포츠파크에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증한 최치환의 흉상이 서 있다. 남해문화원 마당에도 최치환의 공적을 기록한 기념물이 우리 고장을 빛낸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설치돼 있다.

 

2015, 최치환기념사업회는 금암 최치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발간사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썼다. 김무성 의원도 최치환 의원이 제 장인이십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쓴 글에서 나는 5번의 총선에서 돌아가신 장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적었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뉴스타파에 보낸 글에서 장인인 최치환을 이렇게 평가했다.

 

최치환 선생은 건국 초기의 경찰공무원으로 나라를 지키는 최일선에서 직접 뛰셨던 분임.

건국 초 혼란기에 좌익 공산주의 세력이 무장봉기에 나선 것이 여순반란사건과 제주4.3사건이었는데, 당시 열악한 장비와 병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을 받아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대한 막으면서 경찰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내셨음.

또 북한군의 점령지였던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서 무공을 세워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냈으며, 그 공로로 경찰로서는 이례적으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음.-김무성 의원 답변서(2019524)

 

그런데 김무성 의원 부부가 장인인 최치환에게 받은, 김무성 의원의 재산축적에 발판이 됐던 회사 에스원은 공교롭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산형성, 그리고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출발점이었던 바로 그 기업이었다.

 

김무성 의원 부부는 장인인 최치환 전 의원에게 상속받은 에스원 주식으로 수십억 원을 벌었다. 이재용은 부친에게 증여받은 돈으로 에스원 주식을 사들인 뒤, 상장 직후 팔아 큰 돈을 벌었다. 이재용은 이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삼성그룹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김무성과 이재용, 에스원 상장차익으로 똑같이 초기재산 형성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가 시작된 건 1995년이다. 당시 27살이었던 이재용은 부친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60억 원을 증여받았고, 그 돈으로 삼성그룹의 비상장계열사였던 에스원 주식 12만주(8.46%)와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를 사들였다. 이재용의 에스원 주식 매입가는 15000원 수준이었다.

 

이재용이 주식을 매입한 직후인 19961, 에스원은 증시에 상장됐다. 상장 당시 공모가는 15000. 하지만 에스원 주가는 상장과 함께 폭등했다. 상장 첫날부터 19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스원 주가는 이후로도 꾸준히 올라 같은 해 7월에는 38만 원을 돌파했다.

 

주가가 폭등하자 이재용은 보유하던 에스원 주식을 팔아치웠다. 시세차익은 약 300억 원. 비슷한 시기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벌어들인 것까지 합하면, 이재용이 이 시기 거둔 시세차익은 모두 563억 원에 달했다. 이재용은 이 중 450억 원으로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 발행한 사모전환사채(CB)를 구입했다. 삼성그룹 3세인 이재용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을 처음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이재용이 비상장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챙긴 사실이 알려지자, 몇몇 언론은 이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는 지난 199410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39억원을 증여받아 중앙개발과 최모씨로부터 에스원(전 한국안전시스템) 주식 121880주를 23억 원에 매입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은 5일 증여 당시에 16억 원을 증여세로 납부, 증여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재용씨가 23억 원에 매입한 에스원 주식 121880(총지분의 8.46%)는 주가가 급등, 4일 현재 모두 376억 원에 달해 재용씨는 353억 원의 평가익을 올렸다.-동아일보 (199666)

 

겉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김무성 의원과 이재용 부회장. 화려한 선대를 둔 이 두 2세가 에스원의 주식을 이용해 만들어낸, 빼다 박은 듯 닮아있는 재산축적 과정은 대한민국 지배계급이 어떻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작은 에스원”...25년 전 시작된 이재용의 삼성 승계

2015년 벌어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이 삼성 경영권을 승계받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 합병으로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합병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삼성은 합병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이재용이 대주주(23.24%)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삼성전자 주식을 4%나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의 가치는 축소했다.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제일모직 가치를 비상식적으로 부풀리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삼성그룹은 심지어 박근혜 청와대를 동원해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댔다.

 

제일모직 사건이 있기 17년 전, 이재용은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매입했다.주 당 6만원 가까웠던 주식이 이재용에게만 7150원에 넘겨졌다. 비슷한 시기 이재용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도 헐값에 매입했는데, 당시 매입가 7700원은 에버랜드 주식 평가금액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이건희와 이재용 부자는 고발됐고, 특검수사까지 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수혜자인 이재용은 무죄, 아버지인 이건희도 집행유예 5년에 그쳤다. ‘법 위의 삼성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바로 그 판결이었다.

 

이재용, 에스원 동원 돈벌이로 증여세 191억 절감

1995, 이재용의 에스원 주식 매수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첫단추였다. 이재용은 비상장이던 에스원 주식을 매수, 상장 직후 팔아 300억 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하지만 세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이재용이 낸 세금은 부친인 이건희에게 60억 원을 증여받으면서 냈던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였다.

 

비상장계열사를 동원한 재산이전과 후계상속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이재용이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보던 199610, 한겨레는 이재용이 190억 원 가량의 세금을 절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가 이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받아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등 삼성그룹의 비상장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절감한 증여세는 얼마나 될까...

윤종훈 회계사는 25일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가 주최한 상속세법 개정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191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19961026일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한상진

 

           

정훈희(너무나 사랑했기에)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