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일본 이사하야 (諫早) 갯벌, 농게와 짱뚱어의 생존권 소송

by 이성근 2013. 6. 17.

 

일본 이사하야 (諫早) 갯벌, 농게와 짱뚱어의 생존권 소송

월간 환경운동 99.3

 

                         다께보를 이용해 짱뚱어를 잡는 모습(1975) 가시마시

 

안전모를 쓴 관리들이 도열했다.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2백93개의 철강판들이 허연 물보라를 일으키며 도미노 무너지듯 일제히 만(灣)을 갈랐다. 순식간이었다. 이 모습은 텔레비젼을 통해 일본전역으로 방영됐다. 1997년 4월 14일 나가사키현의 아리아케해(有明海) 이사하야만에서였다. 이날 <일본습지네트위크> 공동대표 야마시타 히로부미(山下弘文) 씨는 이날의 만행을 ‘세기의 우행(愚行)’이라고 분노했다. 우행의 책임자였던 농림수산부와 나가사키현 지사 등은 “염원이 이루어졌다”며 기뻐했지만 물길이 막힌 지 6개월만에 이시하야의 갯벌은 흉칙한 해골로 변했다.

 

1백20명의 국회의원들이 이사하야만을 생각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전국 각지로부터 노란 손수건이 보내져 왔다. 이사하야만이 되살아나길 염원하는 글귀로 채워진 노란 손수건의 행렬은 만을 가로지른 강판처럼 아직도 나부끼고 있다. 현재 이를 주도했던 좰이사하야만 갯벌긴급구제본부좱(이하: 구제본부)에 의해 이사하야 갯벌에 살던 대표적인 생물들의 생존권리를 대변하여 「이사하야만 자연권리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구제본부의 야마시타 대표는 이 운동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북 2백50개 수문을 열어서 조수를 끌어들여 갯벌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수문을 열지 않겠다고 한다. 수문을 열 경우 이곳뿐만 아니라 주민이 반대하는 일본 각지의 댐공사와 건설산업 전부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공공사업이 도미노식으로 전부 재조정돼야 하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국가 공공사업은 전면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는 좋은 테마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정부가 결정한 공공사업을 국민이 반대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사하야만 갯벌구제운동은 그러한 전통을 깬 유례 없는 일이었다. 개발을 둘러싼 앞 뒤 과정은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일련의 갯벌보전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그대로 새만금에 적용될 수도 있고 조금 다른 형태로 낙동강 하구에 접목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환경련에서는 이같은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고 일부 사안은 이미 진행중에 있다.

 

 

일본 야조회(野鳥會) 나가사키현 지부의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도요·물떼새류의 최대 개체수는 1만3천마리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갯벌을 포함한 만의 주변지역까지 아우르면, 지금까지 기록된 조류는 2백32종 이상이다. 일본에서 기록된 야생조류의 3분의 1을 넘는 수치다. 이처럼 많은 새들이 모이는 것은 갯벌이 넓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하야만은 일본에서도 굴지의 넓이와 풍부함을 자랑하는 갯벌이다. 여기에 아리아케해(海)라고 하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사하야만의 갯벌은 이사하야뿐만이 아니라 아리아케해 전체의 어류 산란장, 치어의 양육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혹자는 이 갯벌을 ‘아리아케해의 자궁’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갯벌의 기능이 그러하듯 이사하야의 갯벌 또한 뛰어난 정화작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제 호수 제방으로 갇혀버린 이사하야만은 갯벌이 가지고 있던 천연의 정화기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서식하던 생물들조차 사라졌다. 그리하여 조정지에서는 기준치의 수배에 달하는 수질오염이 확인되었다. 죽음이 시작된 것이다.

 

이사하야만의 간척은 약 6백년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인력에 의한 소규모로서 농업이나 어업이 가능한 ‘현명한 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간척은 ‘갯벌죽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초의 거대 간척이 계획된 것은 1952년 ‘나가사키 대간척’이라는 것으로 이사하야만 전역 약 1만ha를 막아서 6천7백ha를 간척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쌀의 생산 증가에 따른 농지감소정책이 진행되면서 1970년 중지되었다.

중지된 간척사업은 「남부지역개발계획」에 의해 1982년 시작됐다. 즉각적인 지연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1983년 농수성이 계획을 축소하여 「방재 종합간척사업」을 발표한 후 정치적인 필요성 때문에 부활했다. 부활과 동시에 방재종합간척사업은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으로 명칭이 변경되더니 시나브로 1997년 4월 바다 사형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환경종합평가로는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예측되고 있다. 철새들은 아리아케해의 이사하야로 이동할 것이 예상되며 조정지의 수질도 주변 도시의 수질개선책에 의해 환경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농수성은 주장하고 있다. 덧붙여 농수성은 이시하야 갯벌이 아리아케해의 갯벌 중 7%에 지나지 않고 간척에 의해 멸종되는 종은 없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WWF(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가 97년 9월 이사하야만 갯벌에서 도요·물떼새의 이동을 조사한 결과 약 3분의 1이 감소했다. 지금까지 양호했던 채식장(採食場)으로서의 갯벌 윗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다른 갯벌로 이동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사하야로 날아왔던 수만큼의 철새들은 다른 간석지가 충족시켜 줄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게 된 조정지의 수질은 몇번에 걸쳐 환경기준을 넘어섰다는 것인데 농수성과 환경청은 만 폐쇄 직후의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라고 했다.

 

이사하야만과 유사한 조건으로 간척된 오까야마현의 아도호(兒島湖)에서도 수질악화가 진행되고 있다. 매년 수질 개선을 위한 대책예산이 사용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WWF는 구제본부 동경사무소와 <이사하야만을생각하는 의원모임>과 협력하여, 농수성에 “간척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를 확실히 밝혀 줄 것을 촉구했지만 아직까지도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1997년부터 일본의 매스컴들은 이사하야 간척사업의 타당성과 찬반여부를 따졌다. 당시 농수성의 입장은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은 조수와 홍수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기존의 간척지가 가진 배수불량의 문제를 해소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수성이 간척사업의 목적으로 내세운 ‘방재(防災)효과’는 5월 13일과 14일 연이어 이사하야를 강타한 1백51밀리의 비에 의해 터무니없는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농수성은 “이사하야 대수해 당시의 5백88밀리의 강우에도 문제없었다”고 호언했지만(후일 농수성 대신은 “잘못 알았습니다”라는 정정보도를 낸 바 있다), 이틀간 내린 비로 인해 만을 둘러싼 상당수 지역이 침수되었다. 그럼에도 농수성은 피해를 “약간 물이 스며든 정도”이며, 침수지역도 소수의 일부지역이라고 발표했다. 그뿐 아니라 약속했던 간척지의 ‘자연배수’ 등이 전연 실효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간척공사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농수성 대신은 허풍을 떨었다.

 

구제본부는 “이 간척사업으로 사망 및 행방불명자 5백39명을 낸 소화 32년(1958년)의 대수해같은 재난을 방지하기는 어렵다. 이 수해는 혼묘우천(本明川)이 이사하야 시내로 범람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따라서 하구부를 간척해도 시내 수해 방지는 되지 않는다. 조수가 높아지는 것에 대한 대책은 기존의 제방을 더 높이는 쪽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농수성은 “이사하야 간척사업은 1천8백40ha에 달하는 고생산성의 농지를 조성하고 나가사키현의 농업을 진흥시켜 일본의 식량자급률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제본부는 “간척사업은 공공사업이다. 바꾸어 말해 세금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결국 투자에 걸맞는 효과가 없다면 세금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투자액을 볼 때, 1989년의 공사개시 시점에서 1천3백50억 엔이었던 사업비가 공사난항으로 인해 1996년에는 2천3백70억엔으로 늘어났다. 호수 제방의 기초공사만으로 1천4백30억엔이 사용되었고, 내부제방과 간척지 공사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1998년 농수성 담당자는 “총경비가 얼마나 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나가사키현의 부담액도 증가할 전망이다. 도근(島根)대학의 보모(保母) 교수는 “현의 상환액 중 건설이자가 붙어 있지 않는 점, 설정한 농지분양가격을 추진하기 위한 보조금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의 부담액은 2백37억엔에서 1천80억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투자효과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농지는 나가사키현에서 2년 사이에 이사하야만 간척면적과 동일한 면적이 감소되어 없어지고 있다. 때문에 구제본부를 비롯한 보존운동측은 고액의 사업비를 사용한 새로운 농지조성은 부적절한 사업, 시행해서는 안 되는 사업으로 보고 있다.

 

 

방재효과가 의심되고 농업전망도 보이지 않는 계획에 대해 일본습지연대회의나 구제본부, WWF 등은 호수의 제방을 없애고 원래의 갯벌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갯벌을 살리기 위한 일련의 직접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만 폐쇄 직후 이사하야만의 갯벌을 살리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은 ‘이사하야 갯벌 생물 구출작전’ 또는 ‘불타는 땅을 위한 공수작전’ 등을 통해 갯벌구제를 의한 노력을 현실화시켰다. 예컨대 말라버린 갯벌에 후쿠오카 등지의 해안에서 운반해온 해수를 공급하여 조금이라도 갯벌을 살려보자는 의도가 그것이었다. 아울러 이들 단체들은 농수성이나 이사하야시, 나가사키현, 정부에 간척사업의 재고를 요청하고 질문서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만 전망이 밝은 편이 아니다.

 

그들의 여러 작업 중 돋보이는 행동이 「이시하야만 자연권리소송」이다. 이사하야만의 대표적 생물종이라 할 수 있는 키조개·짱뚱어·농게·갈매기·도요새의 생존 권리를 대변하여 6명의 변호사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이 소송에는 많은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송이 전개될수록 피고측인 농수성을 포함 일본정부는 불성실하고도 모순적인 답변, 예컨대 “이사하야 대수해를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는다”거나 “홍수대책은 건설성이 할 일이다. 파악하고 있지 않다” 등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방재의 명분을 상실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개의치 않고 있다.

 

현재 이사하야의 미래를 생각하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명한 이용에 대한 제안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러한 제안 역시 고육지책의 일환일 뿐이다. 즉 이미 많은 돈이 투입된 상태고 또 그렇다고 갯벌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를 다 취하자는 방식 등이다. 그래서 ‘생태교육장으로, 어류산란장으로, 농업을 위한 지대로 구분하여 관리하자’거나, 또는 ‘문제가 되고 있는 제방 곳곳을 헐어냄과 동시에 그것을 다리로 연결, 생태관광사업으로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제안자 스스로가 ‘관리되지 않는 관리’가 가장 바람직한 이용임을 술회하고 있다. 아무튼 이사하야만은 향후 일본의 갯벌보존과 개발의 분수령을 이루는 정점으로서 작용하리란 것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울러 그것은 이웃한 한국의 갯벌보존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사하야만을 막았던 2백여개의 철판, 단두대라 부른다. ⓒ 이사하야긴급구제본부

 

위에 글을 쓴지 10년 이상이 (2013.4.17) 경과 했다. 현장으로부터 떠나지도 꽤나 됐다. 우연히 이사하야만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아래 글은 오마이뉴스 김준이라는 기자가  새만금의 모델이 되었던 일본의 아리아케가이 이사하야 물막이 공사 완료 10년 째인 지난 2007년  4월 12일부터 17일까지 '아이아케가이 바다와 갯벌을 다녀온 다음 작성한 글의 후반부 글이다. 그의 글을 통해 평생 일본습지보전운동을 해온 시민운동가 야마시다(山下弘文)씨가 2000년 작고한 사실도 알았다. 그의 명복을 빈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
간척사업이 진행되면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것은 갯벌이며, 하천에서 유입된 엄청난 양의 오염원을 정화시키던 역할도 사라졌다. 혼메이가와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유기물은 이사하야를 통과해 곧장 아리아케가이로 유입되고 있다. 게다가 방조제 사업으로 조석과 조류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어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물막이 공사 후 4년. 아리아케가이의 김 양식장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생산량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물론 탈색으로 김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김 양식의 성패는 조류와 유속에 의해 결정된다. 자연의 시간에 따라 수천 년 수만년 들고 나면서 만들었던 물길이 막혔으니 탈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2000년 가을부터 2001년 겨울 아리아케가이의 특산물인 김 양식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피해가 어민들만 아니라 인근 제조업자·유통업자 등에게 미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실 간척 피해는 간척사업을 시작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간척사업이 시작되기 전 해면어획량(어류·패류·해조류·수산동물)은 6만 톤이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2만 톤이 줄고, 막히고 나서 다시 2만 톤이 줄었다. 아리아케가이의 김 생산량은 1996년에 사가현은 17억매, 후쿠오카 14억매, 구마모토 9억매를 생산했지만, 2000년 피해 당시에는 사가현은 10만매, 후쿠오카 6만매, 구마모토 7만매 정도로 감소했다. 이후 김 양식지를 옮겨 겨우 생산량은 회복되었지만 품질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김양식이 피해를 입은 것은 적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80년대 거의 발생하지 않던 적조가 이사하야 간척사업이 시작되던 1986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해 물길이 막힌 1997년에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김 양식이 크게 실패했던 2000년 적조발생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다 생물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해수 1리터에 3㎎의 산소가 필요하다. 바닷물에 포함된 산소량(용존산소량)이 3㎎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산소부족(빈산소현상)'라고 한다.

아리아케가이는 조석과 조류의 차이가 크고, 해수가 위아래 잘 섞이기 때문에 산소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해산물의 생산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물길이 막히면서 쌓이면서 유속과 조차가 약화되면서 산소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사하야만의 제방 입구 유속은 이전 보다 10~20%감소했고, 고기잡이 어업이 활발한 시마바라의 경우 20~30%가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하천으로부터 유입되는 담수의 양과 방향이 바뀌고, 해수와 담수의 성층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층화 현상은 저층에 산소공급을 차단해 빈산소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인근 현으로 확산되는 변화
이사하야만의 간척사업으로 갯벌과 갯벌생물, 수질정화능력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리아케가이의 풍부한 어패류와 어민들의 생활 터전이 사라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리아케가이의 바다의 변화가 인근 현(구마모토·후쿠오카·사가·나가사키)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가 큰 지역의 어민들의 빚이 늘고 고향을 버리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다. 김 흉작 이후 제조업체들은 폐업이 늘어 전업을 해야 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불행한 일도 발생하고 있다.

물길이 막힌 지 10년. 아리아케가이의 어민들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어선어업, 잠수기어업, 맨손어업(패류채취), 김 양식 어민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이사하야만과 아리아케가이를 풍요로운 보물의 바다로 되돌리는 일은 환경변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우선 과거와 방제조공사 이후의 자료를 비교해 아리아케가이의 조류·조석·수질·저질·적조·산소부족 현상을 조사해야 하며, 수문을 열어 변화의 추이를 분석해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과 전문가들의 주장이다.